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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유산』 웨믹의 두 정원
    정원의 의미를 논할 때 자아의 확장, 내면의 반영이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대개 정원은 치유와 성장 등 긍정적인 가치와 연결된다. 반면 잘 가꾸어지지 않은 정원을 불안정한 내면과 연결시키기도 하는데,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1861) 1에 나오는 미스 해비셤의 새티스 하우스 정원이 대표적이다. 그녀의 삶은 신랑이 사라져버린 결혼식 당일 멈췄다. 해비셤은 수십 년 동안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고, 저택의 모든 것은 천천히 부식되어 간다. 정원도 잡초가 무성하고 황폐하기 그지없다. 이곳을 떠올리고 책을 펼쳤지만 20여년 만에 다시 읽다보니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인물인 웨믹과 그의 정원이 더 흥미롭게다가온다. 주인공 핍이 익명의 후원자의 도움으로 런던에서 신사가 되는 교육을 받게 되었을 때, 이 일을 대행하는 재거스 변호사의 사무실 직원이 웨믹이다. 부수적 인물이지만 지금 보니 소설에서 가장 멀쩡한 사람이 아닌가. 디킨스 연구자들은 그를 『위대한 유산』에서 가장 근대적인 인물로 평하는데, 근대를 넘어 오늘날 대도시 직장인도 그를 부러워할 것 같다. 사무실은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고 야근도 없으며 정시 퇴근 후에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 조금씩 땅을 사 모아 자기만의 성채를 짓고 정원을 가꾼다.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친구를 환대하고 연인과 시간을 보낸다. 퇴근 후에도 집에서 일을 하는 재거스와 달리 웨믹은 훌륭한 ‘워라밸’을 유지한다. 소설 중간중간 나오는 묘사를 통해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는 웨믹의 균형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일단 그는 멀티 페르소나, 이른바 ‘부캐(부 캐릭터)’가 있는 인물이다. 재거스 사무실의 차갑고 단호한 웨믹 씨와, 월워스 집의 다정다감한 존 웨믹은 “겉모습만 닮은 또 다른 쌍둥이”처럼 다르다. 어느 쪽이 ‘본캐’일까.2 …(중략) **각주 정리 1. 영문학계에서는 원제의 great를 ‘막대한’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번역서에서는 이를 핍의 내적 성장을 반영한 ‘위대한’으로 번역한다. 완역본으로는 민음사본(이인규 역, 『위대한 유산』, 2009)과 열린책들본(류경희 역, 『위대한 유산』, 2009)이 있다. 2. 실제의 주체성을 나타나는 ‘얼굴’과 우리가 상황에 따라 연기하고자 하는 ‘가면’에 대해서는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문학과지성사, 2015)의 3장을 참조하라. 신사가 되고자 하는 핍의 성장 과정 또한 이 책에서 논의되는 성원권 투쟁과 관련지어 해석해 볼 수 있다. *환경과조경396호(2021년 4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사운즈 포레스트 더현대서울 실내 정원 디자인알레 설계
    지난 2월 여의도에 문을 연 더현대서울은 자연친화적인 공간 구성이 돋보이는 복합 쇼핑몰이다. 1층부터 꼭대기까지 건물 중앙을 비우는 보이드(void)구조로 설계되어 탁 트인 개방감을 선사한다. 쇼핑 공간을 가장자리로 배치해 중앙에 인공 폭포와 대규모 실내 정원을 위한 공간이 마련됐고, 쾌적한 실내 환경과 식물 생육에 필요한 채광을 위해 건물 천장은 유리로 마감됐다. 디자인알레는 그리너리 VMDgreenery VMD로서 백화점 전 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식재 공간을 디자인했다. 1층부터 꼭대기까지 다채롭게 변화하는 녹지 공간을 선보이고자 했다. 최대 3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인공 폭포가 있는 워터폴(waterfall)가든에는 교목을 심고, 보이드 공간에서 잘 보이는 3층의 카페에는 다양한 질감의 식물을 배치했다. 5층에는 햇빛이 내리는 숲 속 분위기의 정원을 연출했으며, 6층엔 유실수와 다채로운 플랜터로 장식한 양묘장 콘셉트의 휴식 공간을 조성했다. 조경 계획과 더불어 더현대서울만의 상징 플랜터를 디자인했다. 유기적인 곡선이 특징인 백색의 플랜터를 배치해 인테리어와의 조화를 꾀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6호(2021년 4월호)수록본 일부
  • 끊임없는 소통, 조경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 마포프레스티지자이 조합장 김종채 인터뷰
    “조합원의 의견을 반영해 바뀐 공간이 다섯 곳이나 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담겨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단지 내 어느 곳보다 가치 있는 공간들이다.”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쳐 보이는 김종채 조합장의 만면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는 2019년 9월 염리3구역의 재개발을 이끌 새로운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염리3구역에 들어설 마포프레스티지자이(이하 마프자)의 공사 기간이 반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기존 조합장이 해임된 후 오랫동안 사업이 정체됐던 만큼 풀어야 할 과제도 산더미였다. 김 조합장은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치우듯 처리하는 대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자 했다. “가장 우선순위에 둔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나”, “독특한 외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등 여러 질문에 돌아온 답변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소통’이다. 끊임없이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에 답하며 일구어낸 것은 무엇일까? 바람 선선한 날, 준공을 앞둔 마프자 잔디광장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통으로 일군 단단한 관계 김종채 조합장의 목표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함을 느낄 수 있고, 완성도가 높은 주거 단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커뮤니티 공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주거 환경이 편리해지고 있지만, 이웃과의 단절과 공동체의 파편화는 심화되고 있다. 마프자는 이웃 간 소통하고 함께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먼저 분열된 조합원을 하나로 도모하고, 그간 느슨해진 시공사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조합원 간 갈등이 발생한 이유는 조합 잉여금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잉여금을 환급받기를 원했고, 다른 누군가는 잉여금을 더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를 바랐다. 원하는 이들에게 잉여금을 돌려주기 위해 재원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수립된 예산을 검토해 세밀하게 재편성하고 상가 및 임대 아파트 매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공사 계약 해지 등을 통해 환급금을 마련했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 결과 조합이 한층 단단해졌다. 시공사인 GS건설과도 꾸준한 대화를 통해 서로 원하는 바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협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조합원 그리고 시공사와의 관계가 변하며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공사는 특화안 기획에 더욱 열의를 보였고,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다양한 주거 단지를 답사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단톡방’과 온라인 카페를 통해 전달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조합원 중 디자인 전문가를 모아 ‘마감재협상자문단’을 구성해 더 설득력 있고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모두의 눈으로 찾은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 마프자는 오르막에 놓여 동간 단차가 크고 동쪽에 긴 옹벽을 두고 있다. 김 조합장과 조합원들은 자칫 단점이 될 수 있는 대지의 특징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았다. “옹벽은 좋은 작품을 돋보이게 할 캔버스가 될 수도 있고, 단지 서쪽의 자투리땅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여의도의 전경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전망이 좋다. 이를 활용해 우리 단지만의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한 결과, 보강토 옹벽 일부가 자연석과 작은 수목이 어우러진 하나의 경관으로 바뀌었다. 잔디마당에서 바라보이는 곳에는 여름철 청량함을 즐길 수 있는 쉼터이자 볼거리인 벽천이 마련됐다. …(중략) *환경과조경396호(2021년 4월호)수록본 일부
    • 김모아
  • [기웃거리는 편집자]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얼마 전 덕수궁에 다녀왔어. 살구꽃이 환하고 나뭇가지에서 쭈글쭈글한 새 잎이 나고 있었어. 한국은 지금 이런 날씨야. 꽃 핀 나무를 좇다가 석조전으로 들어갔어.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거든.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 직접 종이를 자르고 엮는 건 아니고, 그 안에 들어갈 내용을 채우는 거야. 어떤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을지 고민하고, 적당한 사진을 구하고 글을 다듬곤 해. 건물 바깥에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푸른 장소를 만드는 일에 관한 잡지야. 뭔지 잘 모르겠으면 집 앞 공원에 가봐. 참, 거긴 지금 튤립이 한창이겠다. 종이는 참 신기해.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으니까.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일제 식민지기 문인과 화가들의 교류를 보여주는 전시야. 문학과 미술, 절묘한 조합이지 않니. 너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알잖아. 글과 그림이 얼마나 다른지. 또 얼마나 닮았는지. 어려운 시대적 배경이 예술가들의 연대를 더욱 돈독히 했다면 그들을 연결한 실질적 매개체는 종이야. 방송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종이는 바라는 것을 마음껏 표현하는 도구이자 글과 그림이 공존할 수 있는 바탕이었어. 신문의 연재 란에서 소설가와 삽화가가 만났고, 시인과 화가가 의기투합해 잡지를 창간했어. 편집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화가는 동료의 글이 담긴 책의 전반적인 꾸밈새를 디자인했고, 편지는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지. 출간된 지 100여 년이 흘러서 누렇게 바랬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책들을 한참 구경했어. 문득 너랑 만들던 그림책이 떠올랐어. 우린 시대에 비관해 예술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심심한 어린애들일뿐이었지만 종이를 만질 땐 꽤 진지했잖아. A4 용지 서너 장을 반으로 자르고 잘 가다듬어 왼쪽 가장자리를 스테이플러로 찰칵 집으면 제법 모양새를 갖춘 책이 됐지. 나는 스테이플러 심이 많은 게 싫어서 두세 번, 너는 꼼꼼해서 네댓 번. 나름 책이라고 표지에 제목도 쓰고 다음 장엔 목차도 넣고. 연필로 그린 캐릭터 아래 대사를 쓰거나 이야기에 맞춰 나중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지. 한 액자 앞에서 잠깐 멈춰 있었어. 교과서에서 봤던 백석 기억나? 그 잘생긴 시인 말이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처음으로 『여성』에 발표될 때의 지면이 벽에 걸려 있었어. 『여성』은 1936년 4월 백석이 그의 벗 정현웅 화가와 만든 잡지야.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시 아래 정현웅의 삽화가 나란히 놓였어. 백석의 시에 큰 감흥이 없었는데 그림과 함께 보니 어느새 발이 푹푹 빠지는 눈 속에 있는 듯했어. 김환기 화가가 김광섭 시인에게 보낸 편지도 있었는데, 덕분에 난해하게만 보였던 김환기의 그림 에 숨겨진 의미를 짐작했어.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를 무척 좋아한 나머지 이런 편지를 쓰게 돼. “멍멍한 시간, 할 일이 없어 혼자서 맥주를 마시며 1월 31일에 쓰신 이산怡山 선생(시인 김광섭) 글월을 읽었어요. 왜 출판사가 나타나지 않을까. 빨리 이 봄에 시집을 내이고 해요. 그리고 한 권 보내주세요. 원색석판화를 넣어 호화판 시집을 제가 다시 꾸며 보겠어요. … 한 권에 3만원짜리 시집을 내야겠어요. 되도록 비싸서 안 팔리는 책을 내고 싶어요. 이런 것이 미운 세상에 복수가 될까. 요새 제 그림은 청록홍(靑錄紅). 점밖에 없어요. … 이 점들이 내 눈과 마음엔 모두가 보옥(寶玉)으로 보여요. 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쏟아져 오는데 왜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참 모르겠어요. 창밖에 빗소리가 커집니다.”(1996년 김환기의 편지 일부) 김환기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의 시에서 비롯된 거래. 그 시를 들려주고 싶어. 어쩌면 이걸 위해 덕수궁에 간 건지도 몰라.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김광섭, ‘저녁에’) 나는 잘 지내. 시인도 화가도 아니지만 책을 읽고 만들면서. 때때로 심심한 편지를 쓰면서.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사물이 보이는 방식은 사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확연히 드러내 준다
    사무실 입구에서 걸음을 크게 다섯 번 떼면 편집장과 편집주간이 머무는 작업실에 닿는다. 평소에는 조심스럽게 똑똑 문을 두드리고 드나들던 공간인데, 이 달 내내 그 문턱을 노크도 없이 넘어 다녔다. 방 한쪽 벽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책장 때문이었다. 두 팔을 쫙 벌려도 다 안을 수 없는 거대한 책장에는 1호부터 395호까지, 환경과조경이 39년간 꾸준히 취재하고 편집해 엮은 종이 묶음이 가득하다. 이번 호 특집 준비를 위해 한가득 잡지를 끌어안고 들락날락하기를 수십 번, 사무실에 갇혀 운동을 멀리하고 지낸 팔뚝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저려오기 시작했다. 표지와 책등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몇 번인가 했던 고민을 다시 되뇌었다. 잡지가 너무 무겁나, 너무 크진 않나. 책은 시각 매체로 분류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꽤 여러 감각을 동원해 책을 읽는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 책장을 넘길 때 종이와 종이가 스치며 내는 소리,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무게와 두께가 주는 안정감, 나아가서는 종이에서 나는 냄새까지(이번 호 풍경 감각에 소개된 애니메이션 ‘아따맘마’는 135화에서 등장인물 아리가 좋아하는 책의 기준을 냄새로 삼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따라서 이 감각의 총체를 책임지는 책의 생김새는 그 속을 채우는 콘텐츠만큼이나 중요하다.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은 10년간의 작업 기록을 담은 『도큐멘테이션』을 펴내며 책의 형태를 일종의 설계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판형이나 종이의 종류 등 책이 지닌 형태를 설계하고자 했다. 어떤 판형이 적절한가, 그 판형을 선택했을 때 두께는 어떻게 변하는가, 그 부피감이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표현하기에 적당한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도큐멘테이션』의 외형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조경가의 일과 일상 사이”, 2018년 4월호, p.136) 책 디자인에서 가장 먼저 결정되는 부분이 바로 판형이다. 가로와 세로의 길이로 결정되는 책의 크기는 편집 디자인의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내용물의 성격을 가늠하게 한다. 판형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다양하지만, 신국판, 사륙배판, 국배판이 가장 많이 쓰인다(많이 쓰이는 만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낮다). 그리고 신국판(152×225mm)은 주로 소설과 수필 그리고 시집에, 사륙배판(188×257mm)은 교재와 잡지에, 국배판(210×297mm)은 자료집이나 시각성이 강한 패션지와 사진집에 사용된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시시때때로 읽는 책일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서가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보는 종류일수록 커진다. 참고로 문제집이나 두께가 얇아 접기 좋은 주간 신문은 타블로이드판(257×364mm)을 많이 사용한다. 『환경과조경』의 판형은 가로 230mm, 세로 275mm. 국배판보다는 통통해 웬만한 잡지 사이에 꽂으면 책등이 톡 튀어나오고 대신 키가 좀 작다. 넉넉한 크기의 가방이 아니면 넣기 어려워 가지고 다니기는 좀 힘들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휴대폰과 태블릿PC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 『환경과조경』의 판형은 편집위원 회의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주제다. 수차례의 검토에도 불구하고 좀 더 얇고,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판형으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지와 도면을 크고 시원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판형이 작아지면 그만큼 잡지가 두꺼워지고, 글과 이미지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책 귀퉁이를 강하게 잡아당겨 펼치고 있어야 한다. 온라인 세상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헤아리다 오래전 대학교 설계실의 풍경을 떠올렸다. 강 주변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설계실 책꽂이에서 물과 관련된 콘텐츠가 실린 잡지와 책을 몽땅 꺼내 펼쳐놓으니 눈앞에 작은 전시장이 만들어졌던 그 날을. 프랑스의 아동문학가로 활동하며 여러 그림책을 펴낸 페리 노들먼(Perry Nodelman)은 『그림책론』에서 “사물이 보이는 방식은 사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확연히 드러내 준다”고 말한다. 『환경과조경』의 형태에도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다양한 바람이 담겨있다. 책장에 순서대로 꽂혀 바라만 봐도 흡족한 풍경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바삐 이동하는 지하철이나 버스도 좋지만 몇몇 꼭지는 조용한 방에서 한껏 집중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 가끔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듯 부담 없이 훑어보기에 좋았으면 하는 마음. 그 의도가 잘 실현되어 독자에게까지 닿기를 바랄 뿐이다.
  • [PRODUCT] 3차원 놀이 공간을 구현하는 ‘네트모험놀이시설’ 돔 형태의 구조물에 네트를 미로처럼 연결한 놀이 시설
    로프를 엮어 만든 네트는 다양한 형태의 시설물과 결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아이들이 자유롭게 매달리거나 오르내릴 수 있고,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 부상의 위험도 줄여준다.주로 조합 놀이대의 부속품으로서 흔들 다리나 오르기용으로 쓰이기 마련인데,이 같은 평면적인 구조는 금세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지난 3월 디자인파크개발이 네트를 입체적으로 연결한 이색적인 놀이 시설을 선보였다. ‘네트모험놀이시설’은 규모가 작고 활용도가 낮은 기존 네트 놀이 시설을 보완하고자 네트를 3차원 구조와 결합한 제품으로, 돔 형태의 구조물에 네트가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를 이뤄 아이들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한다. 이리저리 얽힌 로프를 돔 바깥으로도 연장해 오르기, 매달리기, 중십잡기, 건너기 등의 기능을 더했다. 소재로는 와이어를 감싼 컴파운드 로프를 사용했다. 파단 강도가 6톤에 이르며 재질이 부드럽고 변색에 강하며, 직경 16mm부터 22mm까지 규격이 다양하다. 이외에도 큰 돔 안에 작은 돔이 있는 ‘대탈출’, 거미줄에서 모티브를 얻은 ‘스파이더’, 나비가 내려앉은 모습을 연출한 ‘버터플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새싹을 형상화한 ‘숲속탐험’ 등 다양한 콘셉트의 네트 놀이 시설이 있다. TEL. 1577-0343 WEB. www.designpark.or.kr
  • [에디토리얼] 공터에서
    이달에는 오랜만에 본문 기사 한 편을 쓰게 되었다. 올해 8월 통권 400호 출간을 기념해 편집부 에디터들과 편집위원들이 돌아가며 지난 39년간의 『환경과조경』 전권을 리뷰하는 기획물의 세 번째 순서를 떠맡게 된 것. 등 떠밀려 다시 읽은 옛 잡지는 통권 101호부터 150호까지, 1996년 9월호부터 2000년 10월호까지 쉰 권이다. 뽀얗게 먼지 쌓인 잡지에 파묻혀 때아닌 추억과 향수를 곱씹다 데드라인을 한참 넘기고 말았다. 게다가 요즘은 원고지 10매 안팎의 짧은 칼럼에 길들어 있어서 모처럼 50매 넘는 글쓰기 모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에디토리얼만 백지로 비어 있고 모든 지면의 최종 교정과 디지털 작업까지 끝난 지금, 심장 쫄깃한 마감의 스릴을 애써 즐기며 다른 꼭지들의 편집과 레이아웃을 한 번 더 간섭하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김모아 기자와 윤정훈 기자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이달에는 편집부의 보배 김 기자와 윤 기자가 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찾고 모으고 고른어린이 놀이터 프로젝트 13개를 싣는다. 서울의 초등학교 신상 놀이터부터 저 멀리 터키 이스탄불과 스웨덴 스톡홀름의 어린이공원에 이르기까지, 3월호 지면을 넘기다 보면 틀에 박힌 놀이터 디자인의 전형을 깨는 갖가지 신박한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다. 어린이 놀이터 디자인은 참 쉽지 않은 숙제지만, 결국 핵심은 마음껏 뛰놀게 해주는 바탕 아니겠는가. 지면에 배치된 열세 곳 놀이터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바람직한 어린이 놀이 환경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룩한 질문을 던져야 마땅하겠지만, 그만 어릴 적 놀이터의 추억들을 소환하기에 이른다. 김 기자를 빨리 안심시키려면 어쩔 수 없다. 비록 꼰대 소리 듣더라도 이번 에디토리얼은 ‘라떼 이즈 홀스(나 때는 말이야)’로 가는 수밖에. ‘라떼는’ 빈 땅이면 다 놀이터였다. 대도시에도 어디나 널린 게 빈 땅이었다. 김훈의 『공터에서』가 나왔을 때, 소설 내용과 상관없이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모른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단어 ‘공터’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래, 그땐 그랬지. 공터라고 불렀었다. 도시 여기저기에 방치되고 유기된 ‘지도 바깥의 땅’, 공터는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주택가 곳곳에도, 등하굣길에도 공터들이 있었다. 아이들 키보다 한참 더 높이 자란 잡초더미 공터도 있었고, 돌밭이 드넓게 펼쳐진 공터도 있었다. 누군가는 메뚜기를 잡거나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오후를 보냈고, 누군가는 땅거미 내려앉을 때까지 고무줄놀이, 비석 치기, ‘오징어가이상’을 하고 놀았다. 모험을 즐기는 아이들은 화약놀이나 불장난을 즐겼지만, 나에게 공터는 야구장이었다. 다른 스포츠 경기장과 구별되는 야구장의 매력은 규격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베이스 간 거리,홈에서 투수판까지의 거리, 타석의 크기를 비롯한 내야의 여러 규격은 격자형 도시의 블록 크기처럼 일정하지만, 외야의 넓이, 펜스 높이와 재질, 파울 지역의 크기는 야생의 자연처럼 제멋대로다. 『볼파크(Ballpark)』(2019)의 저자 폴 골드버거(Paul Goldberger)는 야구장이란 “도시(내야)와 자연(외야)이 만나는 변증법적 공간”이라고 잔뜩 힘준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라떼의’ 놀이터 공터야말로 도시와 자연이 제대로 뒤엉킨 매력적인 야구장이었다. 돌과 자갈이 널린 내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바운드로 우리를 즐겁게 했고, 잡초더미 외야로 타구를 보내기만 하면 무조건 홈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서북부 변두리 주택가에서 강 건너 잠실의 아파트 단지로 순간 이주한 아이는 공터계의 신세계를 만난다. 아파트 단지에는 정성껏 만든 놀이터와 단정한 놀이 기구가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파트 놀이터란 태생적으로 인기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후반의 아파트 주차장은 언제나 텅 비어 있지 않았던가. 훨씬 넓으면서도 평평하고 반듯해 놀기 좋은 공터, 주차장은 아이들의 새로운 천국이었다. 주차 라인을 요모조모 활용하면 공터가 다목적 다기능 놀이터로 변신했다. 돌밭과 잡초더미 공터보다 주차장 공터는 다방구를 하기에도, 얼음땡을 하는 데도 편리했다. 야구는 두말할 나위 없다. 아스팔트 바닥이라 슬라이딩 캐치는 어려웠지만, 불규칙 바운드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야 땅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주차 라인을 잘만 이용하고 분필로 금을 조금만 더 그으면 ‘파울’이냐 ‘인’이냐를 두고 패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됐다. 향수, 노스탤지어란 모름지기 너무 깊이 빠져들지만 않는다면 효용이 있는 법이다. 재미있고신나는 이번 호 지면의 놀이터 작품들을 즐겁게 보다가 급기야 ‘라떼의’ 공터 향수에 빠져 의식의 흐름대로 허우적거리다 보니 텅 빈 지면이 이럭저럭 찼다. 이제 김모아 기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차례다. 김 기자, 빨리 앉히고 한 번만 교정 봐서 바로 인쇄 넘깁시다! 이번 호부터 격월로 새 연재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을 싣는다.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으로 이름난 ‘조경작업소 울’의 조성빈과 김연금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티 만들기에 힘쓰고 있는 이들을 만나 대화하는 인터뷰 꼭지다. 연결은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도시와 사람, 사람과 도시의 새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지면,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 [풍경 감각] 다이빙 수업
    때론 길에서 만난 식물들이 숙제 같다. 그림으로 옮기면 딱일 것 같은. 절정의 순간을 맞은 꽃,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잎사귀, 서리를 맞아 아름답게 오그라든 열매 같은 것들이 특히 그렇다. 정면과 측면에서 사진을 찍고, 잎 한 장, 열매 하나를 렌즈에 담으며 고민한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가로 구도가 세로보다 나을까? 배치는 어쩌지…. 머리를 쥐어짜다 보면 마주친 순간에 느꼈던 즐거움은 어느새 휘발되어 버린다. …(중략)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2018년 서울정원박람회,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정동극장 공연‘궁:장녹수전’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식물학 그림책『식물문답』을 출판했다.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세기말의 혼돈과 희망
    내가 『환경과조경』을 처음 만난 건 대학에 합격하고 한 달쯤 지난 뒤였다. 천장 벽지의 패턴을 눈감고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와식 생활을 즐기다 마침내 결심했다. 낯선 친구 조경과 이제 친해져 보자. 강남역 지하상가의 대형 서점 ‘동화서적’에서 1987년 1월호(통권 15호)를 사서 읽고 또 읽었다. 화가 이왈종의 그림을 표지에 쓴 파격이 근사했다. 판형은 지금보다 조금 길고 약간 좁다. 계간에서 격월간으로 바뀐 첫 호, 152쪽, 3,800원. 대학 구내식당 점심이 400원, 호프집 생맥주 한잔이 500원인 시절이었다. 특집 ‘전국대학 학생 조경작품’ 덕분에 조경학과에서 뭘 배우고 어떤 작업을 하는지 단숨에 눈치챌 수 있었다. 올 8월의 통권 400호 출간을 기념해 지난 39년간의 잡지를 되돌아보는 기획의 세 번째 순서,내가 다시 읽을 옛 잡지는 통권 101호부터 150호까지, 1996년 9월호부터 2000년 10월호까지다. 1996년 가을에 나는 박사 논문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잔뜩 위축된 박사과정 4년 차였고, 2000년 가을에는 불안정한 박사 백수 신분으로 필라델피아의 유펜에서 밀레니엄을 맞아 꿈틀대던 미국 조경의 변화상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조경비평’과 ‘대안적 조경 잡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나는, 조경진(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이하 모두 당시 소속과 직책), 박승진(조경설계 서안 실장) 등 몇몇 선배들과 힘을 합쳐 무크지 『로커스Locus』 창간호(1998)와 2호(2000)를 만들고 『우리 시대의 조경 속으로』(1999)를 펴내느라 『환경과조경』을 펼쳐볼 겨를이 없었다. 아니, 애써 열어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세기말. 모두가, 사회 전체가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던 시대였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했고, 공원과 녹지가 민선 시장들의 공약 리스트에 단골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터진 IMF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와 사회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모뎀과 PC통신을 넘어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1999년, 하나로통신이 최대 8Mbps 속도의 ADSL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인터넷은 마침내 대중과 결속하기에 이른다. 이동 통신 시장이 무선 호출기에서 휴대 전화로 급격히 이동한 1998년 이후에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이 급격히 바뀐다. 변화와 혼돈,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세기말의 풍경은 101호에서 150호까지 쉰 권의 『환경과조경』 지면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올인원’ 잡지 설 연휴 첫날, 1996년 9월호(101호) 표지의 뽀얀 먼지를 조심스레 닦아내며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뒤표지에 찍힌 정가는 6,300원이다. 200쪽에 달하는 분량, 광고 지면이 2021년보다 두 배 이상인 걸로 보아 잡지사 재정 상태가 지금보다 나았으리라. 편집부 데스크는 김인숙(편집부장대우)이고, 기자는 김찬주, 김진오, 정종일 셋이다. 한글 제호는 ‘환경과조경’, 영문 제호는 ‘The Korean Landscape Architecture’다. ‘환경 & 조경’에서 ‘환경과조경’으로 제호를 바꾼 45호(1992년 1월호) 이후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크기는 몇 차례 미세하게 변했지만 글꼴 자체는 계속 유지되었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에 두고 분홍 코스모스를 클로즈업한 풍경 사진을 쓴 표지는 25년 전의 평균적 미감을 고려하더라도 올드한 느낌이다. 식자로 조판한 뒤 인쇄한 필름을 투명한 대지에 오려 붙이는 옛날 방식이 아니라 애플의 쿽Quark 프로그램을 써서 본문 편집 디자인을 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정갈한 멋이 있었던 1980년대 『환경과조경』보다 오히려 어수선해 보인다. 이 시절의 『환경과조경』은 실로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통권 101호의 꼭지들을 지면 순서 그대로 나열해 보자. 함께 생각해 봅시다, 뉴스, 내일을 위하여, 특별기획(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습지 보전), 초점(건설산업기본법 제정에 관한 조경 분야 토론회), 조경계 동서남북, 동아리탐방, 만나보고 싶은 사람, 신정보소개, 실무자코너, 특별기획시리즈(한국 전통의 도시공원), 기획시리즈(조경설계.시공시 고려해야 할 재료별 특성), 리포트, 해외석학에게 듣는다, 유학생활기, 수상작, 그리운 내 고향, 시가 있는 환경, 신간안내, 해외레이다, 인터넷정보, 편집자에게, 만평, 카메라포커스, 문화가소식, 편집후기. 올인원(all-in-one). 정말 모든 게 잡지 한 권에 다 있다. 지식의 전달, 기술과 실무 정보의 제공, 완공작 소개, 최근 소식을 총망라한 구성이 ‘조경 백화점’을 연상시킨다. 특별히 이채로운 꼭지는 93호(1996년 1월호)부터 139호(1999년 11월호)까지 이어간 ‘그리운 내 고향’인데, 조경환(105호), 임현식(106호), 전유성(107호), 최백호(125호) 같은 연예인부터 이해찬(93호), 이한동(112호) 같은 정치인까지 각계의 명사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114호(1997년 10월호) 지면에서는 대선을 목전에 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그리운 내 고향’을 만날 수 있다. 기사 타이틀은 “어린왕자가 되어 자연과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자 오락”이다. 해외 설계사무소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따끈따끈한 근작과 새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게 가능해진 1990년대 말, 젊은 세대 조경인들과 조경학과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올인원’ 『환경과조경』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갔다.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 서울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 Seoul Mungyo Elementary School Mound Playground
    아이들을 위한 푸른 요새 6월의 어느 날, 차를 타고도 오르기 힘든 오르막길을 굽이굽이 올라간다. 이런 곳에 학교가 있을까 싶을 때쯤 높은 옹벽이 눈앞에 나타난다. 옹벽 위에 선 학교. 구릉의 중턱을 계단처럼 깎아 학교 부지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학교 앞뒤로 높은 옹벽이 들어섰다. 학교는 작은 요새 같다. 앞으로 탁 트인 시내를 전망할 수 있고 뒤로 나지막한 산을 마주하고 있다. 마주한 산을 따라 10m쯤 되어 보이는 옹벽이 운동장을 두르고 서 있다. 옹벽 자체는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지만, 옹벽 너머의 숲이 부드러운 푸른빛으로 학교를 감싸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을 위한 요새. 문교초등학교를 처음 방문한 날의 기억이다. 옹벽의 재발견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총천연색의 생각을 한데 모아 추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담고자 했지만, 공간적 한계와 예산의 제약에 따라 반영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 놀이터를 리모델링하는 방향보다 놀이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장소를 찾고, 시설물보다 자연 요소가 주가 되는 놀이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선정한 공간은 옹벽 앞 화단 주변으로, 이따금 주차장으로 쓰이는 교내 자투리 공간이었다. 부담스러운 옹벽의 넓은 노출면을 적절히 가리면서 문교초등학교의 특징을 살린 놀이터를 만들기로 했다. 단점이었던 높은 옹벽이 오히려 공간적 장점으로 전환되는 드라마가 연출됐다. 완성된 놀이터는 옹벽에 반쯤 기대어 있는 물결치는 놀이 언덕의 모습을 하게 됐다. 다른 곳이라면 훨씬 큰 면적이 요구되는 설계안이었지만, 높은 옹벽을 활용해 비교적 작은 공간에 구현할 수 있었다. …(중략) 설계 오픈니스 스튜디오(최재혁, 장찬희) 워크숍 에이치이에이, 오픈니스 스튜디오 시공 산미조경 발주 문교초등학교, 서울시교육청 꿈을 담은 놀이터 위치 서울시 금천구 독산로 54길 102 면적275m2 완공2020. 4. 사진 오픈니스 스튜디오 최재혁은 오픈니스 스튜디오(Openness Studio)의 대표 디자이너이며, 자연감각의 소장이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설계 실무를 익혔다.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설계공모전 대상, 2017 코리아가든쇼 대상을 수상했으며, 참여 전시로는 한강예술공원 ‘흐름’(2017), 2017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 ‘첼로(Cello)’, 국립현대미술관 ‘예술가의 밭’(2020) 등이 있다.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 예술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장찬희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오픈니스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의 초기 구상부터 실시설계까지 업무 전반을 담당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디자인부터 빌드까지 아우르는 전문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 오픈니스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