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웃거리는 편집자] 업
사바 아사나(Shava-asana). 요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세다. 전신의 긴장을 풀고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양팔이 각각 몸에서 30도의 각도로 떨어진 상태에서 손등이 마루에 닿게 하고 편히 눕는 자세다. 이 동작으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요가를 마무리한다. 공부하고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오랜 시간 앉아서 보내고 있다. 활동량이 적어지고 자세가 나빠져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집에서 종종 영상을 틀어 놓고 요가 하는 걸 어깨너머 따라 한 게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점차 자세도 고쳐지고 허리도 편안해졌다. 스트레칭도 잘 하지 않던 내가 이제 엄마보다 더 자주 요가를 한다. 잊히지 않는 사건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어쩌면 우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닌 지나가다 본 문장, 알고리즘을 통해 본 동영상,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더 많은 전환점을 갖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칼이 집에 풍선을 달고 모험에 나선 것은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영화 ‘업Up’(2009년)은 주인공인 칼 프레드릭슨과 아내 엘리가 함께 그린 일생을 4분 정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101분의 러닝타임에서 짧은 장면일 수 있지만 칼이 왜 모험을 떠나는지, 집을 버릴 수 없었던 욕심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엘리가 세상을 떠나고 칼의 집 주변이 재개발되는데, 담당한 회사가 칼에게 거액을 주며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 칼은 엘리와 추억이 많은 집을 떠날 수 없었다. 어느 날 회사 직원이 실수로 칼의 우체통을 망가뜨리게 된다. 화가 난 칼은 직원의 머리를 한 대 친다. 이 일로 재판까지 가게 되고 경찰은 칼을 요양원에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칼은 요양원이 아닌 화면을 꽉 채울 만큼의 풍선을 집에 매달고(수만 개쯤 될 것 같다) 엘리와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파라다이스 폭포로 모험을 떠난다. “당신이 말한 그곳으로 가는 중이야(I'm going to the place you mentioned).” 칼이 꿈꿨던 모습으로 시작된 건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모험은 칼에게도 썩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
“모험은 문밖에 있다(Adventure is out there).” 우리는 모험을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디딘다. 어떤 위험과 변수가 닥칠지 모르지만 모험을 계속 진행한다. 모험을 방해하는 위험과 변수가 어쩌면 잡아야 할 기회일지도, 평생 함께할 동료일지도 모른다. 칼이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어린이 러셀을 만난다. 러셀은 야생 탐험대가 될 수 있는 배지를 모으고 있었는데, 하나의 배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배지를 받기 위해 러셀은 칼을 도와주려고 했다. 칼은 러셀의 도움을 거절하지만 러셀은 떠오르는 집에 매달려 칼의 여행 파트너가 되어준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인 줄 알았던 칼에게 여행 도중 만난 러셀과 더그, 캐빈은 평범하지 않은 여행을 선사해 준다.
파라다이스 폭포에서 칼과 엘리가 동경했던 찰스 먼츠를 만난다. 찰스 먼츠는 마을 사람들에게 괴물을 만났다는 오명을 받고 있었다. 이에 찰스 먼츠는 오명을 벗기 위해 러셀, 더그, 캐빈을 납치한다. 칼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엘리와 함께한 추억이 깃든 가구를 버리기 시작하고 머물렀던 집을 미련 없이 떠나보낸다. 칼의 옆자리는 평생 엘리였지만 이제는 모험의 불청객이었던 러셀, 더그, 캐빈에게 새로운 짝꿍 자리를 내어주고 러셀에게 마지막 배지를 칼이 달아주며 영화는 끝난다.
칼이 간직해온 모험 책은 엘리가 남긴 문장으로 끝이 난다. “멋진 모험을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이젠 당신의 새로운 모험을 떠나 봐요(Thank you for sharing this wonderful adventure. now go on your new adventure).” 이 문장이 칼의 마음을 바꾸는 전환점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모험은 어떻게 끝날지 예상할 수 없다. 때로는 지칠지라도 지난주에 읽은 책, 어제 본 드라마, 매일 만나는 동료가 모험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사회초년생이자 신입인 나는 매일 똑같은 지하철을 타고 원고를 쓰고 취재를 하며 교정을 보는(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보낸다. 똑같을 것 같지만 오늘 본 문장이, 지난 연재가, 많은 설계 작품이 나에게 어떠한 영감을 불어넣어 줄지 모른다. 평범한 오늘이 다가올 모험의 자양분이 될지 모른 채 여전히 모험을 떠나고 있다.
“오늘이란 평범한 날이지만 미래로 통하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야(Today is a normal day, but it's the most precious time that leads to the future).”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순간을 믿어요
붉은 벽돌 건물은 유독 단풍과 함께할 때 더 예쁘다. 노랗고 붉은 잎을 따라 걷다 보니 금세 주신하 교수가 머무는 서울여대 과학관에 닿았다. 요즘 인스타그램 팔로워 늘리는 데 재미를 붙였는데, 그날에는 인터뷰 현장을 찍어 12월호를 예고하는 스토리를 올리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아직 팔로우하지 않았다면 인스타그램에서 @lak_korea를 검색하시길). 멋들어진 사진이 가득 붙은 벽과 책장을 찍다가, 한구석에서 ‘과제 가져가세요’가 적힌 박스 하나를 발견했다. 그 정체는 ‘디자인 노트’ 과제함. 주 교수는 설계에 대한 재미를 붙여주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어떤 공간의 사진을 찍고 감상을 적는 과제를 내주었다고 설명했다. 박스 뒤에는 ‘과제 제출하세요’가 쓰여 있단다.
듣자마자 떠올린 생각은 ‘귀찮겠다’. 비슷한 과제를 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느티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막 조경학과에 입학한 내가 아는 나무의 종류는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해 잘 아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와 비슷했다. 가르치는 이의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수많은 나무의 특징을 일일이 알려주고 외우게 할 순 없다. 스스로 익히되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끼게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게 수목 관찰일기였을 것이다. 교내에 있는 열 개의 나무를 선정하고 관찰한 내용을 일주일마다 글과 그림으로 정리해 제출할 것.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성가셔한 과제였다. 큰 변화가 있으면 좋으련만 성정이 투박한 내게 나무는 매일 푸르고 매일 조용한 존재였다.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다 어느 날 누가 ‘단풍나무 꽃 벌써 졌더라’하면 ‘뭐? 꽃핀 것도 못 봤는데!’ 하고 달려가는 식이었다. 하루는 친구가 돈이라도 빼앗긴 사람처럼 망연히 걸어오기에 물으니, 쭉 관찰해오던 인문학관 앞 가중나무가 밑동만 남은 채 사라졌다고 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잘려 나간 것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라 점수를 못 받거나 하진 않았지만 친구는 계속 아쉬운 얼굴이었다.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일은 긴 시간의 관찰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가중나무와 정이 든 모양이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수목 관찰일기가 총점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30% 정도였지만 이 과제를 충실히 한 친구들의 학점이 훨씬 높았다. 식물에 대해서도 훨씬 잘 알았다. 역시 재능 중 최고는 끈기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일찍부터 지하철에 올랐다. 『환경과조경』 전속 사진작가인 유청오가 참여한 전시 ‘더 튤립The Tulip’이 서울식물원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부터 장장 한 시간 사십 분이 걸리는 긴 여정에 벌써 지친 나와 달리,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이 기회에 온실도 둘러보자며 잔뜩 신이 난 기색이었다. 온실을 구경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식물문화센터 2층 프로젝트홀에 들어섰다. 꽃을 주제로 한 사진전은 처음이었다. 사실 튤립 하면 놀이공원이나 지역 축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좋아했던 그 꽃밭은 설계를 배우며 유치한 풍경으로 전락해버렸는데, 툭하면 땅의 맥락과 상관없이 조악한 조형물과 함께 사진의 배경처럼 꽃을 심는 게 싫어서였다. 그날 사진을 통해 바라본 튤립은 좀 달랐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본래의 형태는 사라지고 튤립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생각들이 툭툭 튀어 올랐다. 붉은 얼룩이 박힌 튤립은 어항 속을 유영하는 금붕어 같았고, 전체적으로 옅은 분홍빛을 띠는 튤립은 복숭아의 단면을 닮아 있었다. 배가 고팠던 건지 초밥이나 굽지 않은 차돌박이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있었다. 괜히 미워 보이던 튤립이 각양각색의 얼굴을 가진 생물로 보였다. 이 순간의 어떤 매력에 홀려 유작가는 셔터를 눌렀을까. 오래전 언제나 똑같아 보이는 나무 앞에서 사진기를 들고 망설이던 내 모습이 기억났다. 긴 시간 동안 하나의 피사체를 뷰파인더에 담는 일은 그 대상을 탐구하고 돌보고 영원히 기억하려는 일과도 닿아 있다. 언니네 이발관도 노래하지 않았나.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
인터뷰 중 분위기를 환기할 겸 우리는 주 교수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늘 사진기를 가까이 두시네요. 어떤 찰나를 남기는 데 큰 애정이 있는 거 같아요.” “휴대폰을 포함해서 사진기가 총 세 개 있는데, 콤팩트한 사진기는 늘 가방에 넣고 다녀요. 그 순간이 아니면 영원히 못 찍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갑자기 내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아날로그에 대한 글을 읽고충동적으로 구매한) 필름 카메라가 가여워졌다. 올해가 가기 전 어디엔가 넣어두었을 필름을 찾아봐야겠다.
-
[PRODUCT] 친환경 코르크 바닥재
어린이 놀이 공간 포장재의 새로운 대안
2009년 설립된 코르크로는 건강한 삶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 힘쓰는 기업이다. 본래 고무칩 탄성 포장재 회사로 시작했지만, 고무칩이 가진 한계와 친환경적 소재에 대한 열망으로 천연 소재인 코르크를 그 대체재로 삼아 연구를 거듭했다. 노력 끝에 지중해 연안에서 자란 나무에서 얻은 질좋은 코르크와 코르크로의 기술력을 결합해 친환경 코르크 바닥재를 개발했다.
참나무의 겉껍질인 코르크는 자연적이며 물성이 훌륭한 원재료다. 소리와 진동을 잘 전도하지 않으며, 세포벽의 수베린과 세로이드는 액체와 기체가 내부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 코르크의 부패를 방지한다. 마모와 마찰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며, 탄성 기억력이 좋아 온도와 압력 변화에도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특히 나무에 해를 끼치지 않고도 채취가 가능하며, 연소 과정에서 불꽃이나 유독 물질을 내뿜지 않아 친환경적이다.
바닥재로 흔히 쓰이는 고무칩은 열을 흡수해 여름철 아이들을 화상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악취를 내뿜으며, 많은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킨다. 우드칩은 친환경 소재이지만 물기에 약해 쉽게 썩으며 벌레의 서식지가 되기도 한다. 반면 코르크 바닥재는 고무칩과 같은 높은 탄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코르크 세포 내부의 공기층은 열의 흡수를 막아 여름철에도 쾌적한 환경을 형성하며 도심 열섬 현상을 완화한다. 투수성이 좋아 비가 오는 날 바닥이 물웅덩이로 가득 차는 일을 방지할 수도 있다. 코르크 특유의 향기와 부드러운 촉감, 자연스러운 색감은 친근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탁월하다. 어린이 놀이 공간뿐 아니라 운동 공간 바닥에 코르크 바닥재를 사용하면 친환경적이며 건강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시공 시 코르크로의 ‘코르크용 친환경 무독성 바인더’를 사용하면 포장 강도가 더욱 높아진다.
TEL. 1533-2675 WEB. www.corkro.com
-
[에디토리얼] COP26과 IFLA 기후행동공약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팬데믹 뉴스에 가려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올여름 지구촌 곳곳이 폭염과 홍수로 몸살을 앓았다. 한여름에도 냉방기가 필요 없는 미국 북서부를 사상 최악의 폭염이 강타했다. 시애틀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오른 건 1894년 관측 이래 처음, 그야말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남부 유럽은 용광로처럼 끓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소도시 플로리디아는 49도를 찍었다. 폭염은 시민의 삶을 위협하고 유례없는 가뭄 피해를 낳았다. 북부 유럽에선 물난리가 났다. 폭우와 홍수로 180명 넘게 사망한 독일, 그 피해는 처참했다.
지난 8월 9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기후변화가 인류의 존망을 결정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진단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올해부터 2040년 사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견줘 1.5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IPCC는 2018년 보고서에서는 1.5도 상승하는 때를 2030~2052년으로 예측했는데, 이번에 10년가량 예측을 당긴 것이다. 온난화 안정의 전제 조건이 탄소중립이라고 강조한 이번 2021년 IPCC 보고서는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COP26)의 과학적 근거로 쓰일 예정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방출을 제한해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동의한 협약이다. 1992년 6월 리우 회의에서 채택돼 1994년 3월 발효됐으며, 1995년부터 매년 당사국 총회(COP, Conference of the Parties)가 개최되고 있다. 2015년 열린 COP21에서는 2020년 이후의 신기후체제 수립을 위한 최종 합의문인 ‘파리협정’이 채택됐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도 이하로 제한하고자 노력한다”는 파리협정으로는 온난화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그래서 유엔기후변화협약 196개국과 유럽연합이 한자리에 모여 획기적인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논의할 이번 COP26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목표인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COP26 개최 이전에 제출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지난 9월 19일,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COP26 개최에 발맞춰 ‘기후행동공약(IFLA Climate Action Commitment)’을 발표했다. 전 세계 77개 나라 7만 명 넘는 조경가들이 지구 온난화를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 셈이다. IFLA는 “기후 위기 해결의 열쇠는 탄소 배출량 감소, 인간 사회의 회복탄력성과 전환, 자연환경의 지속가능성에 있다”고 선언하면서, 기후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조경의 전문 역량을 다음과 같이 재확인했다. “조경가는 지구촌 환경과 사회의 파멸을 예방할 고유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조경가는 전문적인 계획, 설계, 관리를 통해 글로벌 생태계를 보호·개선하고, 인간의 건강과 웰빙과 행복을 촉진하며, 온난화에 몸살 앓는 환경을 냉각시키고 대기 중 탄소를감소시킬 수 있다 .…… 자연 기반 해법, 기술 혁신,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의적 전문성을 갖춘 조경은 도시에 최대한 많은 숲을 조성해 탄소를 제거하고 생물 다양성을 구축하며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이상 고온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한다. 조경가는 도시 환경뿐 아니라 글로벌, 광역, 지역, 휴먼 스케일 등 모든 규모의 생태계 기능을 보호, 강화, 향상시키며 …… 기후변화에 대응할 회복탄력적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조경가는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강한 열망을 충족시켜준다.” 또한 IFLA는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전 세계 조경가의 전환적 협력과 행동을 촉구하면서 여섯 가지 방향을 약속했다.
1.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의 증진: IFLA에 가입한 77개국 조경가들은 지구촌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구하는 노력을 가속화할 것이다.
2. 2040년까지 전 세계 탄소 배출 넷제로(net zero) 달성: 조경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작동 탄소와 체화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경관 고유의 수용력을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며, 청정·복합 운송 시스템을 지원할 것이다.
3. 살기 좋은 도시와 커뮤니티의 수용력과 회복력 강화: 조경가는 그린 인프라 접근법을 통해 도시 열섬 효과를 완화하고 화재, 가뭄, 홍수 위험을 줄이는 데 힘쓸 것이다.
4. 기후 정의와 사회 복지 옹호: 조경가는 공정과 평등, 식량 안보, 청정 수질과 행복을 위한 모두의 권리를 증진시킬 것이다.
5. 문화 지식 체계의 학습: 조경가는 기후변화 영향을 완화하는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토착 문화의 토지 관리 지식을 존중하고 적용할 것이다.
6. 기후 리더십의 발휘: 조경가는 기후 위기 대응을 선도할 위치에 있다. 조경가는 기후 긍정적 설계(climate positive design)를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와 지속적 협력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과학자와 정치가의 목소리를 통해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 들었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두려움이 좋은 방향의 실천을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위기감을 자극하는 경고가 계속되면 우리는 무감각해지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중에게 두려움을 강요하는 과학의 경고와 정치의 훈계보다는 조경의 실질적이고 지혜로운 실행이 필요한 시대, IFLA의 기후행동공약은 한국 조경계의 실천 좌표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3월호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이어온 인터뷰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을 이번 호로 맺는다.조경가 조성빈, 김연금(조경작업소 울)의 수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풍경 감각] 풍경의 이름
#1 이름은 붙였어? 오래도록 갖고 싶었던 카메라를 들고 나선 날, 친구가 물었다. 소중한 카메라이니 이름을 붙여야 한단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게 이상하고 부끄러운 일 같았지만, 친구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놀리고 싶어졌다. 그럼 메라라고 할까? 그 이후로 ‘메라’를 볼 때마다 사뭇 진지했던 친구의 표정이 떠올라 웃음 짓는다.
#2 오랜만에 ‘메라’로 기록한 사진들을 살피니, 강아지가 뛰노는 풀밭이 보인다. 까만 눈, 분홍색 코가 박힌 하얀 진돗개. 뭐라고 부르든 달려오는 모습이 귀엽고 또 괜히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곰탱이’라고 이름 지은, 나의 첫 강아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좀 더 고운 이름으로 부를 걸 하고 후회했지만, 덕분에 나는 곰탱이라는 말을 하얗고 보송하게 기억한다.
#3 설계 회사에서 지었던 공간 이름 몇 개를 떠올려 본다. 커피 앤 티 가든, 느티나무 쉼터, 매화나무 언덕, 어울림 마당, 다함께 정원, 진입 광장. 일정에 쫓겨 급하게 정한 이름이 많다. 머리를 싸맸지만 마땅한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택한 차선책도 많다. 설계 도서에 적지 못하더라도 메라나 곰탱이 같은 이름으로 불러 볼 걸. 미소가 떠오르는 이름, 하얗고 보송한 이름을 소중한 풍경에 붙여 볼 걸.
-
마포새빛문화숲 1단계
Dangin-ri Park of Seoul Combined Cycle Power Plant, the 1st Phase
첫인상: 작동하는 거대한 보일러 그리고 스팀 블로잉
2013년 가을, ‘당인리 서울복합화력발전소 공원화 설계공모’가 시작되었다. 현장을 둘러보면서 무척 낯익은 모습에 가슴이 설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 서울 마포의 유서 깊은 장소라는 특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배관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풍경이 남다르게 보였던 것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군인 시절 서울구치소에서 보일러병으로 복무할 때 보았던 거대한 보일러와 형형색색의 파이프들이 아직까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각각의 배관 설비가 저마다 기능을 수행하며 작동하는 모습은 마치 전체가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특히 보일러 배관의 이물질을 청소하는 스팀 블로잉(steam blowing)은 단연 압권이었다. 배관 안의 찌꺼기를 제거하여 거대한 보일러를 다시 새롭게 만드는 역동적인 작업이 수증기를 시원하게 내뿜었다.
마포새빛문화숲, 문화의 새빛을 밝히다
스팀 블로잉을 공원 조성의 기본 개념으로 설정함으로써 자연적·도시적·사회적 과제를 시원하게 날려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또 하나의 바람은 서울에서 한강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원이 되는 것이었다. 마포새빛문화숲의 세부적인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자연성을 회복함과 동시에 갇혔던 물을 다시 흐르게 하여 땅과 자연과 사람의 관계성을 회복한다. 문화와 예술, 새로운 생각과 사상을 담아내며, 일상과 비일상의 프로그램을 담는 비움의 공간이 되도록 한다. 당인리 발전소의 산업유산적 가치를 되새기며, 경계를 허물고 도시 맥락을 담아내어 지역민에게 일상의 삶과 생동감이 있는 장소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한다.
*환경과조경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조경설계 이화원
시공 포스코건설, 에코밸리
발주 중부발전
위치 서울시 마포구 당인동 1번지
면적 118,779m2 (공원 면적 95,054m2)
완공 2021. 4.
김이식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에 조경설계 이화원을 설립한 이후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국립생태원, 북서울미술관, 대통령기록관, 당인리 서울복합화력발전소 공원화(마포새빛문화숲) 설계 등이 있다. 조경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설계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
남산예장공원
Namsan Yejang Park
길, 공원, 남산자락, 서울
남산자락과 공원을 관통하는 길이 남산예장공원을 만드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구조를 이룬다. 남산은 서울의 중심이자 풍수지리적으로 안산과 주작에 해당하는 산이다. 설계의 중심이 되는 이야깃거리이지만 너무 깊게 빠져들면 자칫 명확한 공간을 만들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었다. 즉 남산은 설계에 있어 크고 명확한 단서인 동시에 공간 해석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존재였다.
남산이라는 복잡한 대상에 쉽게 접근하고자 설계 요소의 위계를 역으로 짚어보았고, 그 여정의 끝에서 ‘길’이라는 설계의 실마리를 찾았다. 길을 통해 만들어지는 남산 예장자락을 상상했다. 자락의 경관이 도시에 스며들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다지 많은 생각이 녹아 있지 않은 것 같은 초벌 드로잉이 설계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중요한 것을 더욱 중요하게, 명확한 것을 더욱 명확하게, 흐릿한 자국을 조금 더 선명하게 그렸다. 명동과 접한 남산 예장자락의 위치적 중요성과 산자락의 명확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그 속에 담긴 근현대사의 기억을 시민들이 조금 더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여러 형태의 공간을 다양한 길의 흐름에 따라 설계하고 배치했다.
샛자락 그리고 사람, 문화, 역사, 나무의 길
남산예장공원 프로젝트의 목적은 남산의 자연 경관 복원과 도시 문화 공간 연결이다. 경관을 재생하며 만드는 길의 위치적 특성, 켜켜이 싸인 숲과 산이 지나온 시간으로 완성되는 남산예장공원은 복합 기능을 갖춘 도시 녹지 공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건축 기능 공간을 지하화해 예장자락의 표피를 남산 숲자락의 확장 공간으로 만들고, 길이 있어야만 하는 곳에 원래 있던 것 같은 편안하고 친숙한 분위기의 길을 놓아 연결함으로써 활기를 불어넣었다. 내부화된 기능 공간과 남산 숲자락의 확장은 ‘샛자락’(『환경과조경』 2016년 4월호 참조)이라는 자락 경관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복합화해야 하는 장소를 해석하는 데 명쾌한 해답이 되었다.
디자인 철학과 장소의 기억에 편중된 방향으로 전개되는 설계를 지양했다. 명동과 남산, 관광객과 케이블카, 아픈 역사와 남산2청사, 남산 위의 소나무, 문화거리 등 복잡한 요소가 얽힌 예장자락에 네 개의 길을 스며들게 함으로써 이 장소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고자 했다.
남산예장공원은 퇴계로와 접한 들머리 진입 광장과 예장숲을 기점으로 시작돼 남산을 향하는 나무의 길과 사람의 길을 통해 이어지고, 소파로와 접한 문화의 길은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와 연결되며, 남산2청사가 있던 공간은 역사의 길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예장자락이 근현대사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해 나무의 길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길로, 사람의 길은 사람숲으로 조정되었다. 역사의 길로 조성될 계획이었던 남산2청사 부지에서는 공사 중 조선총독부 관사 유구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개방형 유구 보존의 방식으로 남겨 ‘기념6’이라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지하에는 남산과 명동 방문자를 위한 버스전용주차장과 서울시가 추진하여 개관한 이회영 기념관, 실내 문화 공간인 예장마당이 마련되었다.
*환경과조경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조경설계호원
건축 설계 시아플랜
조경 시공 안산조경건설
위치 서울시 중구 퇴계로26길 36 일대
면적 22,832.62m2
완공 2021. 6.
조경설계호원은 유형의 물적 공간을 구현해 삶의 다양한 변화를 추구한다.디자인의 창의적 사고와 공간 구현의 기술적 사고를 중시하며,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의 이미지 연출을 위해 조경이 행하는 모든 영역의 조력자로서 디자인 행위를 추구한다.
-
대치 르엘
Daechi LE|EL
대치 르엘은 대치유수지체육공원을 비롯해 양재천, 탄천, 한강으로 이어지는 수변 녹지 공간과 가까워 일상 속에서 풍부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단지다. 특히 양재천에서 뻗어 나온 수변 녹지를 단지 내부로 연결하고자 했다. 곳곳에 수경 시설을 배치해 언제나 수변 공원에 온 듯한 청량감을 느끼게 하고, 다양한 규모의 휴게시설을 연계해 쾌적함을 더했다.
설계를 시공으로 구현하며 가장 고민한 부분은 건물과 조경 공간의 조화였다. 6개동 중 4개동이 7층 이하인 저층 주거 단지이기 때문에 고층 주동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단지와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다. 건물과의 조화를 고려해 대형목보다는 수형을 조형적으로 다듬은 수목을 선별해 식재하고, 특정한 공간에 힘을 주기보다는 단지의 전 공간이 고루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동일 수종의 교목을 군식하기보다 다양한 수종을 공간의 분위기에 맞춰 배치하고, 하부 식재를 정형화해 정돈
된 이미지를 연출했다.
물소리가 흐르는 단지
청량한 물소리가 문주에서부터 사람들을 반긴다. 부드러운 곡선과 직선을 조합해 설계한 문주 한가운데 워터 커튼 형식의 수경 시설을 설치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도심 속 주거 공간에 드나들며 물소리를 듣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문주를 지나면 일렁이는 물결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캐스케이드가 나타난다. 캐스케이드와 연계된 녹지에 다채로운 초화를 심고 학 조형물을 설치해 동양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여울폭포를 완성했다. 이외에도 대형 티하우스와 결합된 폰드, 석가산과 연못으로 구성된 물의 뜰 등 다양한 수경 공간이 생활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배치
했다.
*환경과조경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라모디자인그룹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시공 아세아종합건설
시설물 스페이스톡, 원앤티에스
위치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77 일원
규모 273세대
대지 면적 12,456.3m2
조경 면적 3,900.04m2
완공 2021. 9.
-
오목공원 리모델링 지명 설계공모
낡은 물건을 고쳐 쓰듯 오래된 공원에도 수선이 필요하다. 도시는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고, 주변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도시공원은 고립된 녹색 섬이 되어버리기 쉽다. 단순히 노후한 시설을 교체하는 수준을 넘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도시공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결과를 담아 공원을 새롭게 리모델링해야 할 시점이다.
양천구는 2018년부터 1980년대 목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다섯 개 공원(목마공원, 파리공원, 오목공원, 양천공원, 신트리공원)의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조성된 지 30년 넘은 공원을 현재와 미래 세대의 다양한 여가를 수용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목표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양천공원을 재조성했으며, 파리공원과 목마·신트리 공원은 설계공모를 마친 뒤 각각 2021년, 2022년 준공을 목표로 실시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오목공원은 목동지구의 다섯 개 공원 중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다. 양천구의 관문이라 불리는 오목교가 인근에 있으며, 방송국, 교육 시설, 업무 시설, 주거 단지에 둘러싸여 바쁜 도시인을 위한 쉼터로 쓰이고 있다. 주민 이용률이 높은 공원으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지만 노후한 시설물이 안전사고를 일으키고 경관을 해치고 있다. 또한 1989년 개원 이후 시설 파손에 따른 부분적인 보수와 무분별한 시설물 설치가 기존의 공원 설계 개념을 약화시켜 전반적인 개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5월 26일 양천구는 혁신적 설계안을 발굴하고자‘ 오목공원 맞춤형 리모델링 지명 설계공모’를 열었다. 초청된 조경가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최영준(랩디에이치), 김현민(스튜디오일공일), 박경의·이윤주(엘피스케이프), 양태진(조경그룹이작)은 크게 네 가지 기본 방향을 충족하는 설계안을 제시해야 했다. 첫째, ‘문화도시 양천’에 걸맞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오목공원의 확장성과 목동 지구의 중심 공원으로서의 상징성을 고려해 서남권을 대표하는 혁신·문화 허브 공간을 계획한다. 둘째, 도시민의 편의와 사회적·환경적·경제적 측면의 지속성을 추구하고, 새로운 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 스마트 공원을 계획한다. 셋째, 여가와 휴식을 위한 오픈스페이스를 확보하고 입체적인 보행 네트워크를 구축해 차별화된 랜드마크 공간을 창출한다. 넷째, 정원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가능한 공공정원형 공원을 계획한다. 더불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원을 위해 인근의 지역 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했다.
다섯 초청작 중 박승진의 ‘어반 퍼블릭 라운지’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박승진은 “기존 오목공원이 지닌 흔적과 기억을 보존하면서 중앙에 입체적인 회랑을 도입했다. 이 회랑이 공원의 모든 길과 숲을 연결하는 이동 통로이자 이용자들의 다양한 활동을 기반으로 공원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가변적 공간이 되도록 기획했다”며 설계 의도를 설명했다. 심사위원회는 “공원 중앙의 회랑은 건축물과 조경 시설로 한정 지을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공간이다. 리모델링 이후 공원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하는 상징 요소로, 운영 주체와 프로그램에 따라 창의적 쓰임새를 창출할 것”이라고 평했다.
양천구는 당선 팀에게 기본 및 실시설계권을 부여해 2022년 말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당선작 및 참가작 전시회 개최, 작품집 발간을 통해 노후 도시공원의 성공적 리모델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심사평
공원 리모델링은 단순한 공원 노후 시설 정비가 아니다. 지난 30여 년간 변화한 시대적 가치와 사회 문화를 감안해 새롭게 진화된 형태의 공원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공원이 지닌 가치를 살리면서 공원의 새롭고 다양한 쓸모와 사용법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촉발할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표현을 끌어내야 한다. 다섯 작품 모두 공원의 현 상황을 존중하면서 지침서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려 한 노력이 돋보인다. 디자인 사고와 표현, 완성도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어반 퍼블릭 라운지: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중앙부 광장에 회랑과 정원을 제안함으로써 기존 공원의 구조와 식생을 최대한 존중하고 공사비의 한계를 해결하려 한 전략이 돋보인다. 중앙부 회랑은 반 건축·반 조경적 시설로 리모델링 이후 공원의 새 면모를 부각할 상징적 요소이며, 운영 주체와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하고 창의적인 용도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회랑 내부에서 일어나는 활동 프로그램에 동시대 도시공원 문화를 이끌어나가려는 고민이 잘 투영되어 있다. 또한 현 식생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식재 계획, 중앙 정원 식재 설계에 과학적 접근과 섬세한 감각이 잘 드러나 있다. 현재 오목공원의 이용 밀도와 행태를 해치지 않으면서 디자인 의도에 맞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어떻게 도입하고 운영할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또한 중앙부 회랑의 건축적·조경적 면모를 살리면서 공사비 규모를 초과하지 않고 다양한 창발적 이용과 주변과의 연결을 유도해내야 할 것이다.
둥그런 능선의 재탄생: 공원의 현 상황을 존중하면서 지침서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려는 노력이 돋보이고, 완성도 측면에서도 우수하다. 다만 공원의 지형과 수목의 변화를 제시한 데 비해 공원이 지닌 상황과 가치에 대한 뚜렷한 주제가 드러나지 않은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오목 유스랩 파크: 연결 공간과 에지 파크 등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공원의 설계 방향이 우수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한 점도 모범적이다. 하지만 공원의 콘셉트가 청소년이라는 특정 계층에 다소 편중된 점이 아쉽다.
오목 파크 리브리지: 공원과 주변 지역의 연결 방법, 강항 조형성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입체 보행 네트워크 시설 하부의 유기적인 연결 방식 역시 참신하다. 다만 지형 변경과 수목 이식이 많은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아이코닉 다이어리: 현재 공원의 상황을 존중하며 지침서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당선작
어반 퍼블릭 라운지Urban Public Lounge
디자인 스튜디오 loci + 스튜디오 ubac
참가작
둥그런 능선의 재탄생
랩디에이치
참가작
오목 유스랩 파크Omok Youth Lab Park
스튜디오일공일
참가작
오목 파크 리브리지Omok Park Re-Bridge
엘피스케이프
참가작
아이코닉 다이어리Iconic Diary
조경그룹이작
주최 양천구 공원녹지과
위치 서울시 양천구 목1동 921번지 일원
지역 지구 도시지역, 자연녹지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목동중심지구), 공원
면적 21,470.4m2
공모 방식 지명초청공모
공모 참가자 명단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최영준(랩디에이치)
김현민(스튜디오일공일)
박경의, 이윤주(엘피스케이프)
양태진(조경그룹이작)
예정 공사비 25억원(제경비 및 부가세 포함)
예정 설계비 1억8천1백만원(부가세 및 손해배상책임 보증증권 포함)
예정 설계 기간 착수일로부터 180일
시상 내역
당선작: 기본 및 실시설계권, 지명 보상비 375만원
참가작: 지명 보상비 375만원
운영위원
오순환(한국조경학회 상임이사, 운영위원장)
김병채(채움조경 대표)
안영애(안스디자인 대표)
서미경(해안건축 수석)
김정임(서로아키텍츠 대표)
김응순(양천구 환경녹지국장)
온수진(양천구 공원녹지과장)
안성진(양천구 미래도시기획단장)
심사위원
성종상(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최원만(신화컨설팅 대표)
박경탁(동심원조경 소장)
김현(단국대학교 교수)
이소진(건축사사무소 리옹 대표)
서영애(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예비 심사위원)
-
[오목공원 설계공모] 어반 퍼블릭 라운지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박승진, 최상민, 오지훈, 고희선
+
스튜디오 ubac
김희정, 정다현, 이주영, 김민주
오목공원의 가치
사람들이 찾지 않는 도시공원은 반쪽짜리 공원이다. 오목공원은 양천구의 다섯 개 근린공원 중 가장 중심부에 있으며, 지하철역과 가깝고 백화점을 비롯한 업무 및 상업 시설에 둘러싸여 있다. 더불어 주변에 목동단지 재건축, 국회대로 공원화, 유수지 부지 복합개발이 예정되어 있어 잠재력이 큰 공간이다. 이제 풍부한 녹지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이용자에게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선사하는 공원으로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
공원의 변신
30년간 가꿔 온 녹지는 유지하고, 중심부의 선큰 공간과 벽천, 넓은 포장 공간을 쓸모 있는 라운지로 탈바꿈시킨다. 네 개의 면으로 만들어지는 회랑을 중심으로 안쪽은 정원 영역, 바깥쪽은 숲 영역으로 구분된다.
회랑으로 둘러싸인 정원 영역에 회랑 바닥보다 50cm 정도 낮은 잔디 마당을 조성한다. 이로 인해 형성된 단차는 자연스러운 앉음벽이 된다. 평소에는 빈 잔디 마당이지만 특정 기간에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또한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빗물을 저류해 다채로운 수경관을 연출하거나 물놀이 공간을 제공한다. 하부 공간에는 빗물 저수조를 설치해 저장된 우수를 공원 관리 용수로 활용한다.
회랑 바깥의 숲 영역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녹지가 있던 자리다. 녹지를 좀 더 풍성한 도시숲으로 만들기 위해 소교목과 대관목, 관목, 초화, 지피 식물을 더해 하부 식생을 강화한다. 식물 서식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녹지와 이용 공간을 구분하고, 바닥으로부터 살짝 들어 올린 형태의 동선을 조성한다.
숲 속에는 관리동을 신축하고 다목적 코트, 숲 놀이터, 피크닉 정원, 숲 속 교실을 분산 배치한다. 이로써 공원 한가운데 놓인 회랑은 공원의 모든 동선을 연결할 뿐 아니라 모든 활동의 중심지가 된다.
*환경과조경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디자인 스튜디오 loci + 스튜디오 ub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