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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12)
    관우의 혼령이 나타난 당양 옥천사와 몸만 모신 관릉관우가 죽자 혼령이 흩어지지 않고 당양현의 옥천산에 이르렀다. 보정이란 노승이 암자에서 좌선하고 있으려니“내 머리를 돌려 달라.”고 관우가 적토마를타고 나타났다. 보정은“인과는 앞뒤가 서로 어긋나지 않소이다. 지난 날 안량과 문추, 오관의 여섯 장수들은 모두 누구에게 머리를 돌려 달라 하겠소?”하니 홀연히 깨닫고는 머리를 조아려 사라졌다.�고을 백성들은 관우의 높은 덕을 사모하여 산마루에 사당을 짓고 사시사철 제사를 지냈다.유비가 오나라를 정벌하러 갈 때 장비의 아들 장포와 관우의 아들 관흥을 데리고 갔다. 관흥이 아비를 죽인 동오의 반장을 찾으러 적진 깊숙이 쳐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불빛을 따라 내려오는데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집안에는 관공의 신상神像그림 한 폭이 걸려 있어 노인에게 물어보니“이 자방사람들은 모두 관장군을 신으로 공경하여 살아계실 때에도 집집마다 모셨는데, 신령이 되셨으니 어찌 모시지 않을 수 있겠소.”라고 말하였다. 마침 길을 잃은 장수 하나 찾아오니 바로 반장이었다. 반장은 달아나려 했으나 관우가 신령이 되어 나타나 앞을 가로 막는다. 반장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리는 순간 관흥의 칼이 번쩍 반장의 목을 벤다. 관흥은 반장의 심장을 도려내어 그 피를 관우의 신상 앞에 뿌리고 제사를 지냈다.- 황석영『삼국지』7권에서 요약
  • 유혹하는 오브제: 홍의택 디자인 워크숍
    디자이너이며 경원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이기도한 홍의택의 전시회가 디자인 워크숍이라는 형식을 빌려 서울문화재단 청계본관의 전시장에서 지난 1월 8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홍의택은 국내 대학 최초로 공공디자인 관련 센터인 퍼블릭디자인혁신센터(PIDC)를 운영하고 다양한 수도권의 공공디자인사업에 참여하는 공공디자인 전문가이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근대산업유산 활용화사업을 자문하고 군산의 원도시(原都市)재생 마스터플랜을 계획하는 등 도시재생 전문가로도 활동 중인 교수이자 디자이너이다. 그러한 그의 전시는 당연히 공공디자인이나 도시디자인 관련 전시일 줄 알았는데 전시내용은 생경스럽다 못해 다분히 당황스럽다.터치를 하면 로봇처럼 걸어 다닐 것 같은 네 발 달린 후추통, 종이로 만든 기억도 아련한 라디오, 시멘트로 거칠게 만든 작은 촛대, 도끼부인이 되어버린 버터나이프, 일체형 슬리퍼 등 그를 모르는 사람이 방문했다면 여느 디자이너의 소품전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이 전시회에서 그가 공공디자인 전문가라는 냄새는 안전 삼각대를 이용한 유니크한 조명 조형물 정도일 뿐.플라스틱, 시멘트, 나무 등 모두 죽어있는 무생물이지만 그가 디자인한 오브제들은 새로운 매력과 감흥으로 단장해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표정과 감정이 숨어있는 작은 요정같은 느낌이 든다.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일상 속에서 항상 스치는 사물들에서 다양한 표정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발견하는 이러한 다소 엉뚱하고 당황스러운 전시에 대해 그는 변화무쌍한 디자이너의 재기발랄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전시도록에 수록된 ‘사물의유혹’이라는 전시 머리글에서 그는, “디자이너로서교육자로서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지난 십 년간 틈틈이 해온 스케치북의 아이디어들을 모은 작품들”이라며, “이러한 행위를 스스로 작업이라 부르고 홀로 만족하고 홀로 교감하며 즐거워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사회적이며,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 공공디자이너이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작업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재미있고 자유로우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도시의 표정을 책임지고 만드는 역할을 감당해나가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전시를 통해, 삭막한 도시를 그저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 시설물과 경관으로 채우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 아니라, 따스한 시선과 감각으로 도시 곳곳을 아름답고 생명력 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로 선명하게 투영되고 있다.
  • 조경기술사, 자연환경기술사. 도전! “LANE”
    2011년 1월 4일.우리 카페이름을 뒤집어 놓은 듯한, 조경인이면 거의 다 알만한, 더욱 간단하게는 이 글이쓰여있는 요~ 서적을 발간하는 편집부에서 ‘소통’과 ‘나눔’, ‘독자들을 위한’, ‘?내어드림’, ‘?참신하다 못해 톡톡 튀어야 하는 아이디어’ 등등 엄청 의미심장하고 살짝 가증스럽고 매우 듣기 좋은 단어들을 동원하여 그쪽이 채워야 할 지면을 우리에게 쓰윽~ 미뤄 주셨더군(그것도 가장 처음으로 6면씩이나…).“미리 밝혀두지만 그쪽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보는 사회지도층 카페의 원고를 받아보는 유일한 출판사야!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놀랄 거야. 이런 카페가 있나 하구? 그러면 좀 놀라도 돼! 그러라고 쓰는 거니깐!”“물론 이 글이 편집자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치자. 그리고 편집자가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여 이 글을 싹뚝 잘라먹는다고 치자. 그래도 우리 카페에 오면 다시보기 할 수 있어 그 정도면 카페의 가장 이기적인 선택이 되겠지만 사회지도층 카페의 선택이니까 존중해 줘.” 하! 하! 하!웃자고 한 이야기에 설마 죽자고 덤비시는 건 아니겠지요?안녕하세요? 2011년 <환경과조경> 기획코너“ZOOM IN GROUP”에 가장 처음으로 간택된 Daum의 ‘조경기술사, 자연환경기술사. 도전! 카페, LANE’입니다.앞서 장난처럼 말씀 드렸듯이 처음 원고 청탁을 받고 카페의 모든 운영진들이 머리를 맞대고 불꽃을 튀겨 보았으나 처음이라는 막연함과 두려움에 선뜻 어떻게 지면을 메워가야 할지난감했었습니다. 하지만 편집부에서 주신 몇 가지 질문과 우리가 부싯돌처럼 부딪쳐 만든 참신하지도 톡톡 튀지도 못한 몇 가지 질문과 콘텐츠로 일부를 할당하고 나머지는 지면을 커버하기 가장 쉬운 사진자료의 확장신공을 통해 주어진 6면을 깃털처럼 가벼운 글로 채워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이야기, 우리 카페의 탄생2007년 2월 13일 깊은 겨울밤. 그는 우연히 Daum의 “카페”라는 가상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 가상공간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는 가상공간의 무한한 변화와 가능성만큼이나 큰 두려움을 느끼지만…, 이내 한 자 한 자 빈 칸을 채워나간다. 카페명 <조 . 경 . 기 . 술 . 사 . 자 . 연 . 환 . 경 . 기 . 술 . 사 . 도 . 전>이렇게 하여 카페 “LANE(Landscape Architecture Nature Environment)”가 탄생한다.여기서 그는 카페지기인 강현구 기술사(닉네임 강나루, 서울시설관리공단)이다. 그는 카페를 열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저는 카페지기 강나루입니다. 이 카페는 조경관리나 자연환경관리의 업무나 공부를 하면서 기술사를 취득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문을 연 카페입니다. 여러분들의 기술사 취득을 위해 자료공유가 많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저에게 있는 자료는 모두 다 공유할 계획입니다. 아무튼 이 카페가 여러분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많은 정보의 장으로 활성화되길 기원합니다.”그리고 카페지기의 말대로 모든 것이 공유되고 이루어졌다. 그는 카페가 문을 연 2007년 2월 13일부터 현재까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는 물론 기술사 취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를 모아 총 4차로 나누어 202주차에 걸쳐 게시하였으며, 이외에도 각 회원들이 올린 소중한 자료들이 학습정보 게시판을 통해 공유됨으로써 그동안 조경기술사 32명, 자연환경기술사 24명을 배출하는 등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조경 및 자연환경기술사 명문카페로 자리매김하였다. 물론 회원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 카페의 회원수는 2,729명(2011년 1월 14일 현재)이다. 이 코너는 독자들과의 ‘소통’ 및 조경분야의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조경단체간 릴레이 방식으로 추천된 단체들이 6면에 걸쳐 자유롭게 기획·편집하도록 운영될 예정이며, 책정된 원고료는 참여 단체의 이름으로 사회단체에 기부함으로써 미약하나마 조경분야의 사회참여 기회가 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11)
    세월이 갈수록 품격이 올라간 관우의 두침묘 낙양 관림 여몽이 형주를 점거하자 관우는 맥성에 머물다가 북문을 빠져나와 산길로 접어든다. 산골짜기에서 갑자기 크게 함성이 일며 양쪽에서 복병이 나와 긴 갈고리와 쇠사슬을 던져 관우가 타고 있던 말 다리를 휘감아 쓰러뜨렸다. 관우부자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한 손권은 항복을 권한다. 관우는 “이 푸른 눈 붉은 수염에 아직 자라지도 못한 쥐새끼 같은 놈아!” 하면서 죽기를 바라니 나이 58세(219)에 참수를 당한다. 그가 타던 적토마도 손권이 마충에게 주었으나 굶어죽었다. 이로써 손권은 형주와 양양일대의 땅을 모두 손에 넣었다.여몽이 손권의 술잔을 마시려다 갑자기 관우가 되어 손권의 멱살을 움켜쥐고 욕설을 퍼붓다가 피를 토하고 죽는다. 손권은 놀라 유비의 분노를 조조에게 돌리려고 관우의 수급을 수습해 조조에게 보낸다. 조조가 뚜껑을 열어보고 “관공은 그간 별고 없으시오?” 하니 관우의 머리가 입을 딱 벌리더니 눈동자가 움직이고 머리털과 수염이 꼿꼿이 일어섰다. 조조는 혼절하며 “관장군은 참으로 천신이로다!” 라고 한탄한다. 두려움이 앞선 조조는 후하게 장사지내 유비의 원한을 남쪽으로 돌리라는 사마의의 계책을 받아들여, 침향목으로 몸을 조각해 수급에 맞추고 왕후의 예로서 낙양성 남문밖에 장사지냈다.- 황석영 『삼국지』 7권에서 요약
  • 고정희의 식물이야기(10): 사람과 같이한 식물의 긴 역사 3
    사과나무 정원의 불가능성에 대하여얼마 전 중국 산둥반도의 위해시(威海市)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위해시는 지리적으로 한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조건이 한국 서해지방과 거의 같다고 한다. 한국에서 눈이 내릴 때 거기도 눈이 내렸다.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까지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리는 동안 무심히 내다본 창밖에 뜻밖에도 눈 덮인 사과나무 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궁금해서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위해시는 중국의 대표적 사과산지라고 한다. 중국 사과의 80퍼센트가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하니 대단한 양이다.사과나무 팬으로서 이처럼 반가운 일이 또 있을까. (중략) 사과나무를 귀히 여기는 영국의 오랜 전통과 함께 위해시가 사과의 도시라는 우연의 일치가 내게는 행운으로 여겨졌다. 드디어 사과나무를 정원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온 듯 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바가 있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사과나무를 잘 알고 있다고 믿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사과나무는 열매 생산을 위해 여러 세대에 걸쳐 과수원에서 길들여진 것들이다. 해마다 크고 붉은 열매를 맺게 하기위해 투여하는 비료와 농약에 익숙해진 나무들이다. 그런 나무는 농약과 비료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마치 마약중독자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정원에 심기가 어렵다. 정원의 나무를 과수원과 같은 방법으로 약을 투여해가며 관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수원처럼 일년에 십여 차례씩 약을 뿌리게 된다면 그곳은 이미 정원이라고 할 수 없겠다. 야생종 사과나무 혹은 정원용으로 재배하는 사과나무를 구할 수 있다면 모를까. 정원용 사과나무라면 대부분 꽃사과일 것이다. 결국 또 막다른 골목에 도달할 것이 염려되었다. (중략) 그러나 사과나무가 본래부터 병충해에 약하고 까다로운 나무는 아니었다. 사과뿐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도 본래부터 병충해에 약하고 까다로운 식물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는 인류가 꾸려온 오랜 농경생활의 결과일 뿐이다. 최대의 수확을 얻기 위해 약을 뿌려 벌레를 제거해 주고 비료를 주어 쉽고 편하게 양분을 취하게 했다. 그 결과 사과나무는 땅 속 깊이 뿌리내려 양분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고 귀찮게 하는 벌레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가는 능력, 즉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지키는 능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환경으로부터 격리되어 홀로 서게 된 사과나무는 지금껏 공생을 누려왔던 생태계의 보호 없이 인간의 관리와 통제 하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들의 작품이다. 열매를 맺는 도구가 되어 인간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본래의 자연성을 잃고 기형이 된 것뿐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식탁이 진정 풍요로워진 걸까? 풍요로운 식탁으로 해서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진 것일까?
  • 디지털 카메라와 경관
    베스트 출사지 선유도가 말해주는 경관의 진화옛날 사진첩을 뒤적거리다보면 언젠가 소풍을 갔다가 우르르 단체로 찍은 사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랜드마크가 될 만한 장소를 배경으로 자리한 우리들, 그 속에 손톱보다 더 작은 나를 찾아보는 일은 참 재미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진첩의 시간이 멈추어 버렸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화 되면서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얼굴들은 이제 컴퓨터 화면 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정된 필름의 양으로 많은 정보를 담아야 했던 예전의 방식과는 다르게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제한된 그 모든 것들도 해제되었다. 이제 우리는 손톱만한 얼굴을 찾아야 하는 단체사진 대신 자신의 얼굴로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셀카를 찍는다. 단체사진이 사라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사진을 찍을 때 포착하는 피사체가 변화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데에 횟수의 제한이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카메라의 프레임에 우리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남기기”가 아닌 그 이외의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경관”과 같은 공간적 피사체가 바로 그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공간적 피사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본능과도 같다. 우리들에게는 공간에 소속되고 소유하고도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름다움과 감동을 일으키는 경관에 대한 소유욕은 그것을 피사체로 담는 창조적 행위를 통해 오래전부터 유연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영국의 한 백작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벽에 걸어두며 보기를 즐기다가 창 밖에 실제로 그 풍경이 들어설 수 있도록 정원을 구성하였던 것이나, 한국의 한 선비가 감동을 주는 자연 산세에 반해 먹을 갈고 정자를 세우는 것 등이 그런 욕구 표출의 행위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거 풍경화의 발달이 풍경식정원의 형태를 창조해냈듯, 숭고한 풍광 속에 살고 싶어 차경의 기법을 창조해 냈듯, 디지털 카메라 기술의 힘으로 경관을 찍기 시작한 사람들의 행위도 우리네 경관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진문화 속의 경관 포착의 행위는 가상공간 상 블로그, 미니홈피,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 인프라를 통해 한층 진화한다. 이미지가 되고, 의사소통의 도구가 된 이들 경관이 인프라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고, 다양한 표현방식을 통해 재형성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피사체인 경관을 개인 개인이 자신의 온갖 지식과 감상을 함축시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보”의 형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 Disturbance Ecology: 메사추세츠 군사보호지역 생태계획
    본 프로젝트는 지난해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에서 진행된 스튜디오 프로젝트 “Mat Ecology”의 하나로 재생적인 생태, 사회경제적 프로세스를 구축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2008년 Chris Reed 교수의 지도로 진행된 이 스튜디오는 Mat Ecology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부분들로 구성된 조직적인 들판으로 이는 광범위한 영역에 분산되어 정형적 혹은 논리적인 작동들에 의해 규제되며, 내부적 기저나 외부적 영향에 따라 변형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스튜디오의 진행방식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2차원, 3차원적 Mat 패턴과 Mat 모델연구들을 검토한 후, 경관시스템과 생태, 대도시화, 그리고 재생기술과 관련한 다양한 방식의 Mat 적용과 적응 방법들을 연구했다. 이번 스튜디오는 특히, Mat Ecology의 관점에서 군사활동으로 인해 오염된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생태계와 회복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본지는 Chris Reed 교수로부터 추천을 받은 Geneva Wirth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 폴 샬레프(Paul Chaleff) 展
    지난해 11월 16일부터 12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갤러리 서미(Gallery Seomi)에서는 추상도자조각으로 유명한 폴 샬레프(Paul Chaleff)의 전시회가 열렸다.폴 샬레프는 1990년대 이후 도자기 본연에 대한 이해를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추상표현주의, 구성주의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미술사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도자조각을 선보여와 추상도자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세계적인 조각가이다. 그가 추구하고 있는 도자조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조각과 도예의 접목으로 생겨난 것으로 실용적인 기능에 충실해 온 전통적 도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점토라는 매체의 자유로운 조형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창조가 가능해지면서 시작된 조각 장르이다. 이는 최근의 미술사나 미학사에서 볼 수 있듯 현대 조각에 개방성이 추구되면서 모더니즘 이후의 조각이 조각으로서 형식의 일관성을 강조할 뿐 철, 돌, 알루미늄, 점토, 나무, 철사, 마직물, 시멘트 등 특정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점과 맥을 같이 한다. 이번 서울전에서 선보인 “사자의 몫(Lion’s Share)”과 “해마(Hema)” 그리고 “스플래쉬(Splash)”는 각각 그 규모는 다르지만 두 개의 점토 덩어리들이 마치 “서로 반대로 작용하는 두 개의 힘”처럼 작용하도록 관련 있게 조작하는 작가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가 스스로 “충돌하는 형식들”이라고 언급하는 이런 접근법은 흡사 1세기 전의 보치오니의 조각에서 나타난 역동적인 운동성과도 닮아있다. 전시장에 전시된 그의 작품을 보면 약간 녹이 슨 듯, 푸른 이끼가 낀 듯한 묘한 색감을 띤다. 마치 쇠를 녹여 주물로 제작한 듯 보이나 엄연히 흙으로 빚어 가마에서 구워낸 도자조각들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물리적인 존재가 주는 외형적인 단단함이 보이는 동시에 근본적으로 점토라는 재료가 주는 유연성이 작가의 태도로 드러나 있다. 그는 “흙과 물로 생성된 점토는 이 지구상에 어떤 소속감을 전해주는 물질이다. 만약 점토가 없다면 진정한 고독이나, 명상, 소생의 환희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흙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원초적인 안정감을 작품을 통해 강조한다.
  • 유럽경관협약에 대응한 영국 조경계의 활동(UK LANDSCAPE CONFERENCE 2010)
    11월 8일.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빅토리아 시대의 영화와 20세기의 세계화로 인해 제조업이 내리막을 걸으면서 도시의 슬럼화된 모습을 동시에 지층으로 간직한 리버풀의 거리와 항구는 전형적인 영국 날씨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까지 더해져 스산하기만 했다. 단지 항구 주변 가로등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간간히 리버풀이 낳은 세계적인 팝그룹인 비틀즈의 음악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러나, UNESCO에 의해 지정된 리버풀의 6개 역사지구 중 하나에 위치한 St. George’s Hall에는 영국의 중앙 및 각 지방정부와 공공단체, 그리고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3일 동안 진행된 Landscape Institute에서 주관한 UK Landscape Conference가 전문가 및 언론에게 주목을 받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이태리 피렌체에서 2000년에 발의된 유럽경관협약(European Landscape Convention)에 영국이 2006년에 가입한 후, 협정에 준하는 기준과 제도를 마련해 오던 영국의 관련 단체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점. 둘째는 2009년에 시작된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에서 시상하는 European Landscape Award에 영국이 처음으로 그들을 대표하는 경관을 후보로 내세우는 자리인 점이다. 컨퍼런스가 개막된 첫째날 저녁에는 훌륭한 만찬과 함께, UK Landscape Award 발표에 이어 지리학자이자 인기 방송인인 이안 스튜어트(Iian Stewart) 교수가 출연하여 BBC에서 방영될 ‘스코틀랜드 경관을 만드는 것(The Making of Scotland’s Landscape)’에 대한 시사회가 있었다.처음으로 개최된 UK Landscape Award는 지방정부와 전문가, 그리고 지역주민이 합심하여 기획하고, 가꾸고, 보존해온 해당지역의 지역특성을 잘 나타내는 경관을 대상으로 하였다. 영국의 네 개의 행정구역인 잉글랜드(3), 스코틀랜드(1), 북아일랜드(1), 웨일즈(1)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온 6개의 지역3이 경합을 벌였으며, 대상인 ‘UK Landscape of the Year’는 잉글랜드 북동쪽에 위치한 더람(Durham)의 Heritage Coast 복원 계획에 돌아갔다. 북해 연안의 더람은 문화지리학적, 생태적으로 상당한 특색과 가치를 지니고, 해안을 낀 자연풍경 또한 깎아지른 절벽이 장엄하게 펼쳐진 독특한 해안선과 함께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었으나, 지난 100년 동안 석탄산업에서 발생된 폐기물 150만 톤 가량이 해안가에 적치되어 오염되면서 ‘검은 해안(The Black Beaches)’으로 불리는 등 고유의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이렇게 방치된 해안을 지역의 공무원, 각 분야의 전문가, 그리고 자원봉사로 참여한 지역주민들이 조직한 The Durham Heritage Coast Partnership에서 합심하여 다양하고 독특한 가치를 지니고 있던 예전의 해안과 이와 어우러진 경관을 되찾아내었다.
  • 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10)
    관우가 끝내 지키지 못한 전략요충지 형주삼국지에 형주(荊州)는 여러 번 나오지만 삼국시기에 형주성은 없었고 형주라는 방대한 지역만 존재했다. 유표가 통치하던 시기의 형주성은 양양이었고, 적벽대전 이후에는 형주의 중심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관우가 통치하던 때의 형주성은 당시 강릉(현재 형주)이었다. 형주지방은 오늘날 호북성, 호남성 전체와 하남성, 섬서성, 광서성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중국의 중심부로서 북으로는 장안, 낙양과 가깝고, 서쪽으로 가면 파촉과 한중, 동남으로 가면 장강유역, 육로로는 남양, 강릉, 의창으로 연결되는 화북과 화남의 중간지역이다. 위, 촉, 오 세 나라가 총력을 기울여 차지하려고 했던 삼국시대 최대의 쟁점지역이요 병가의 필쟁지지(必爭之地)였다. 유표가 점거할 당시 형주는 물자가 풍부해 수많은 인재들이 난을 피해 이곳으로 모였고,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던 유비가 제갈량을 만난 것도 형주지방의 융중이었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바로 형주를 유비가 차지하는 것이 대전제였으나 유비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원대한 꿈이 없었던 유표가 죽자 형주는 바로 조조의 차지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