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필라델피아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토스카나 지방의 Villa Gamberaia 정원
    Villa Gamberaia의 정원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정원 관련책자에 이태리 르네상스를 대표할 수 있는 토스카나 지방의 이상적인 정원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과거의 모습이 도면 등으로 알려진 것이 별로 많지 않고 소유주가 바뀌면서 그 시대 양식이나 그들의 취향에 따라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15세기부터 300여 년간 최초의 디자인이 어느 정도 정확하게 유지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조심스럽게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쉽게 조망이 가능한 적정규모의 모양새가 훌륭한 공간구성이나 Parterre의 빛과 총림 속 그림자의 공간대비, 절제된 표현양식, 토피어리의 단순화된 기하학적 문양 등의 조화는 분명 토스카나 지방의 보석과도 같은 정원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중략) 정원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치도에서 보듯이 Villa를 중심으로 동쪽의 언덕으로는 오렌지원과 총림이 자리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Parterre가 위치하고 있으며, 그리고 총림과 Paterre 사이로는 폭 10m, 길이 225m에 이르는 장식 없이 단순한 초원형태의 잔디밭길이 자리잡고 있다.사이프러스 수벽으로 이어지는 가로수길이 끝나고 Villa에 다다르게 되면 아름답게 펼쳐지는 토스카나의 파노라마 때문에 방문객들은 저절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이곳으로부터 Villa의 정면을 지나게 되면 정원내에서 인상적인 부분의 하나인 Parterre와 만나게 된다. Parterre는 연못과 낮은 수벽형태의 토피아리가 다양하게 조화를 이루며 여러개의 작은 공간들을 연출해주는 정원내에서 중요하고도 장식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녹색의 토피아리 공간에서 장미꽃들은 화려한 색깔로 단조로움을 없애주고 테라코타 화분들 역시 녹색과 황토색의 강한 대비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원형, 사각형, 원뿔형 등의 토피아리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공간들을 마치 미로를 찾듯이 산책하는 것은 꽃으로 장식된 다른 일반적인 자수화단과는 달리 이곳 Parterre 관람의 특색이자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인 수 Kim, In Su 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 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남한산성 역사공원화를 제안하며
    · 위치 : 경기도 광주순 중부면 산성리 일대 · 면적 : 약 16만평 · 성격 : 성곽도시로서의 공원화 / 환경의 중요성과 역사문화의 가치성 부각 의의 이 곳은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남한산 정상에 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지금은 수도권의 근교로서 상징적인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성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국방과 지역계획, 건축과 같은 물리적인 형태와 민속신앙 전설 따위의 정신적인 면모를 두루 간직하여 자연적인 환경과 역사문화가 비교적 잘 조화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음식점이 무질서하게 난립되어 있어 환경과 문화재 훼손이 심각하여 흉하게 변모해 가고 있어 이곳을 주제공원으로 계획하여 민족의 수난과 저력을 재확인하고 교육을 겸한 역사유적 공원으로 만들어 국내 외인들의 훌륭한 역사관광지로서 지역주민과 인류에 공헌하고자 한다. 기본방향 남한산성 도립공원에는 산성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성곽을 비롯하여 백제 시조인 온조왕을 모신 숭렬전, 그 밖에 수어장대, 침괘정, 현절사, 연무관, 장경사, 지수당과 같은 많은 유적과 효자약수터 그리고 열녀비를 위시하여 효행과 충절을 기리는 장소가 흔하게 널려 있다. 또한 민족지도자 해공 신익희 선생이 어린시절 다니던 남한산 초등학교가 근대사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큰 민족의 수난인 병자호란이 이곳에서 마감하면서 민족의 저력을 과시한 장소로도 그 중요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남한산성을 역사공원화하여 지역발전에 이바지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산성과 건축물 남한산은 해발 약 500m의 천연적인 요새지역이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 백제의 온조가 남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웠다. 수도를 서울 근교에 두고 위례성이라 불렀다(온조 13년, 기원전 6년). 그리고 남한산성을 쌓고 약 380년간 백제의 도읍으로 삼았다. 이 산성은 신라가 통일한 후 신라의 문무왕 12년(672년)에 새로 축성하면서 일장성(日長城) 또는 주장성(晝長城)이라 하고, 지금의 성벽은 광해군 때 시작하여 인조4년(1628년)때 수차례 증축을 마쳤다. 이후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1637년 45일만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다. 역사적으로 비운의 터가 되는 셈이다. 1963년 1월 21일 국가사적 57호로 지정된 남한산성 성곽의 본성은 인조 4년(1628년) 축성되었고, 외성(봉암성, 한봉성)은 숙종때에 축성되었다. 시설규모는 본성 연장 9.05km, 옹성을 포함해 11,755km이며 성곽의 높이는 3~7.5m이다. 현재 수어장대만 있으며, 접문 4개와 옹성 5개소, 봉화 2개소, 암문 16개소가 있디. 기본계획 토지이용계획 남한산성이 있는 남한산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산세가 수려하고 자연생태계가 중부 일원의 일반적인 생태계와 같다. 그리고 역사문화의 흔적들이 많기 때문에 가급적 원형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토지이용계획을 하였다. 아울러 역사관련 행사와 민속관련 행사를 연중계획표에 의하여 진행하고 , 사극을 위한 촬영장소를 만든다. 동선계획 · 산책로 : 산성을 순회할 수 있는 성곽을 중심으로 외부와 내부를 연계시킨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자연 속에서 호연지기와 역사의식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건강관리에 도움을 주도록 한다. · 문화재 관광을 연계시키는 순환행 순로(This way)의 개발로, 자연속에서 휴식과 문화재 관광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한다. 산세가 험하고 문화재와 볼거리들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중간에 크고 작은 민속행사(Folk Event)로 원활한 관광을 유도한다. · 자연스럽게 자연환경의 중요성과 역사문화의 가치를 고취시켜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유산(생태와 역사문화)으로 손색이 없도록 한다. · 주야간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야간행사로 야외에서 병자호란과 관련된 사극을연극과 영화 등으로 관람할 수 있는 야간순로를 개발한다. · 특히 중국 관광객과 연계, 병자호란 때의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 부각시켜 중국 학생들에게 역사문화의 장소가 될 수 있는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도록 한다. 시설물 설치계획 · 기본방향 : 시설물의 형태와 색조는 자연환경과 어울리며 문화재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계획하고, 지역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우선하여 시각의 통일화작업(V.I.P개념 도입)을 철저하게 시도한다. · 시설물 설치 : 안내 간판, 조경시설물은 벽체부착이나 지상 돌출보다는 가급적 바닥이나 시각적인 피해를 주지않도록 설치에 유의한다. · 기반시설 정비계획 : 급 · 배수 시설은 가급적 매설이 아닌, 열려진 시설(Open ditch)로 계획하고, 전기 · 전자 · 통신 및 방재시설은 가급적 배관으로 매설하고, 가로등의 경우 돌출형을 피하고 은닉하여 간접적 효과를 유도한다. · 주차 및 교통시설 : 통과교통과 관광을 위한 차량은 중복과 정체를 의식하여 체계화한다. 차량과 보행 동선은 철저히 분리하고 차량관련 시설은 지하공간으로 유도하여 지형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조경 및 유적지 정비계획 현재 식재방법과 돌쌓기에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러한 무질서한 현황을 조사한 후 지역이 장소성과 역사성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자연에 순응하되 건축물이나 조형물 주변 그리고 각종 시설물 주위의 식재는 수종과 방법을 전통조경 기법에 따라 옛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한다. 단계별 복원 정비계획 역사적인 고찰에 의해서 성곽 복원 정비, 건축물 복원 정비, 조경 및 시설물 복원 정비 등3단계로 나누어 단계별로 추진하고, 장기계획으로 궁터, 승병 관련자료를 검토, 이벤트로 활용하도록 한다. 현 영 조 · 서울환경 계획연구소 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국토환경 관련 법제도의 최근 동향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향토경관
    - 시간이 만들어 가는 경관과 시간을 첨가한 조경 - 민속촌은 어디까지나 민속촌이지 오리지널 전통마을은 아니다. 전통마을로서 오리지널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하회 같은 마을을 따를 수 없겠지. 그런데 그런 대표적인 오리지널 전통마을 하회도 마을경관이란 점에서, 개장한지 수십 년이 지난 용인의 민속촌과 비교하여서 결코 우위에 있을 것도 아니고 민속촌이라 하여 하회보다 못할 것이 없겠다 싶다. 전통조경이란 전통적인 경관을 이루고 전통적인 소재를 통하여 막연하게나마 현대경관과는 어떻게든 차이가 나는 그야말로 전통적인 모습으로 다루는 조경을 일컫는 말이라 해 두자. 민속촌은, 마을도 오리지널이 아니며 근자에 레저시설로 조성된 것이고 그 단지 안에 모아놓은 가옥이며 모든 소재들도 새로 단장한 것일 뿐 아니라 혹은 지방 어디에서 옮겨다 온 것이라 해도 반드시 가옥 하나를 통째로 옮겨놓은 것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 민속촌을 역사경관의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마 거기에 있겠다. 그 점을 감안하고라 하여도, 조성된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이 시점에서 민속촌은 전통경관 또는 전통조경의 이야기를 위한 좋은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으로써 이번 이야기의 서두로 삼을 만 하다. 전통경관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옛것이 만들어 놓은 경관이고 보면 옛날의 조경이 만들어 놓은 경관이자, 그간 흘러온 수많은 시간이 만들어 온 경관이라 하겠다. 시간에 의해 스스로 이루어져 가는 조경. 향후 전통조경을 위한 한두 생각 전통조경에서 우리는 두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역사경관을 대상으로 이를 어떻게든 오리지널 성격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가 하는 역사경관보존의 측면에서 요구되는 조경행위와, 역사경관과는 무관하게 우리의 전통적인 이미지로써 현대조경을 다루어보려는 조경행위의 일환이라고 해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로 보자면 이렇다.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하여 사찰의 포장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전통사찰은 누가 뭐래도 역사경관의 대상이니 사찰의 바닥을 포장하고 계단을 새로 개보수하는 일은 문화재보존 차원에서 다루어져야할 일이지만, 사찰에서 보여준 포장은 전통적인 바닥의 그것은 아니었다. 바닥에 국한될 일이 아니라 문화재보존의 차원에서 오리지널에 맞춰 다루어져야 한다는 명제를 가지지만 그 적용 여부에 있어서 현대조경의 기술로써 다루어 가게 되어 있다. 특히 지난 호에서 다루었던 청계사의 경우처럼, 사찰의 화장실이며 부도밭 조성은 역사경관 일곽에 새로 조성해 가는 현대조경의 일이므로 전통조경은 참으로 현대적인 조경행위와 맞물려가는 것이라 할 것이다. (정 기 호 Jung, Ki Ho·성균관대학교 건축·조경 및 토목공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캐서린 구스타프슨
    1997년 여름, 파리의 밤하늘은 애도와 호기심으로 뒤덮였었다. ‘세기의 연인’이란 이름으로 회자되던 다이애나 전 영국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이후 그녀의 사후 6주년을 추모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인 ‘다이아나 기념 분수 Memorial fountain to Diana, Princess of Wales 하이드파크내에 설치할 추모분수에 대한 현상설계가 2001년 공표되었고 100여개의 아이디어가 제출되었다. 위원회는 그중 2개의 작품을 최종후보로 검토를 하였는데 ‘아방가르드’적인 충격을 표현한 봄베이 출신의 영국 예술가 ‘앤시 카푸어’와 ‘절제와 우아함’이 돋보인 미국 조경가 ‘캐서린 구스타프슨’이 그 주인공들이다. 당선자 ‘구스타프슨’은 설계에 앞서 대상지를 방문한 후 이 땅의 물성은 시간과 공간을 반영할 수 있을 정도로 평온하다고 판단하였고, 다이애나비의 특징인 ‘만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과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받는 성격’을 추상적 모티브로 삼아 타원형 석조수반(50m x 80m) 에 물을 이용한 움직임을 연출하였다. ’ 조성을 위한 국제 현상설계의 공표로 2001년 세계의 조경가들은 전자와는 또 다른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 행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노력과 그 작품을 기대하는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영국에서는 ‘웨일즈 국립 식물원의 온실계획’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지면을 빌어 여류 조경가 ‘Kathryn Gustafson'과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고자 한다. ‘Kathryn Gustafson'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파리에서 공부를 한 조경가이자 환경 예술가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그녀의 영역은 ‘Architecture land & Environmental’ 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르며 그녀를 수식하는 말의 대표적인 용어가 ‘Sculpting the land, Art of landscape' 임을 보더라도 작품성향을 짐작할 만하다. 직설하여 이야기하면 그녀는 형이상학적인 전개와 도출 속에 형이하학적 결과물을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상상과 형태’의 조화를 만들어 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조경에서 발견되어지는 그녀의 선험적이며 실험적인 성향은 그녀만이 독특하게 가진 풍부한 미적 감성과 독창적으로 나타나는 공공조경 사이의 절묘한 결합에서 느낄 수 있는데, 그녀 작업의 키워드는 곧 ‘조화 harmony' 라는 언어로 귀결지을 수 있으며 그녀는 항상 지형과 의식의 조화, 육체와 영혼의 조화, 그리고 대상지의 흔적과 미래의 적용가능성에 대한 조화를 이야기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화를 반영한 그녀의 작품들은 땅의 움직임에 대하여 모험적이며 대담한 충동과 아름답고 우아하며 관능적인 곡선의 조각을 만들어가고 조합함으로서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기존의 관습에 도전하는 것이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특별함을 자극시키는 것이다. 그녀는 디자인과 예술에 있어 절충주의적 성향을 선호한다. 그녀는 절대주의인 ‘카시미르 말레비치’, 추상표현주의의 ‘얼리엄 데 쿠닝’, ‘이사무 노구치’ 등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하는데 그녀의 작업은 사조적으로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이 포스트 모던과 포스트 미니멀로 전환되는 시기에 이루어 졌기에 미술사조에 따른 연계성에 주목을 받은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대의 건축, 회화, 조각 등을 통합한 연대기적 분위기에 동승한 영향이 아닌 다분한 주관적 감상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할 듯하다. 또한 추상적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한 그녀의 설계언어는 정의하기 어려운 직관과 기억 그리고 감정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발산되는 조경설계는 이러한 지적인 것들을 종합함과 동시에 나아가 심리적으로는 도발을 시키지만 육체적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영역의 것들을 연장한 것이다. 성장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 작품의 성향과 배경을 추적하다보면 때로는 가장 근본적이기도 하며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성장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 거리이다. 이것은 그 사람과 작품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을 거슬러 가는 여행의 하나이며 발견하지 못한 사상과 감성을 추적하여 새로운 시각에서의 작가연구를 위한 모태가 되는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Kathryn은 1951년 로키산맥의 발아래에 위치한 워싱턴 주의 한 작은 마을인 ‘야키마’에서 외과의사의 딸로 태어났다. 추후 어린시절에 대한 회상에서 그녀는 사과나무와 말들 사이에서 성장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집 서문에 이러한 시절에 대한 감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여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피력하고 있다. “정원과 현대미술과 그리고 자연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그러한 것들에 대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신 나의 부모님께 이 책을 드립니다.” 이렇듯 어린시절의 기억과 성장배경은 추후 설계 작업의 모티브로서 많은 영향을 미치었는데, 그녀의 작업은 유년시절의 기억에 담아두었던 산의 이미지에 유래한다고 이야기를 하며 워싱턴에 위치한 로키산맥의 사진을 자주 보여 주곤 하였다 한다. 이에 덧붙여 피력하기를 “나의 작업의 대부분은 몸체(산의 경관)와 같다. 나는 경관의 형태를 몸체처럼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 하나의 예로 ‘로레알 정원 L'Oreal Factory, Aulnay-la-Barbiere, France, 1992'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은 기업의 핵심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과학과 미적 가치’를 옥외공간에 표현하고자 하였다. 전체적으로 개화하지 않은 꽃의 형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골격의 기초를 잡으며, 주변 지형에 의하여 위요된 공간을 조성하고 그 내부의 중심이 되는 비밀의 정원은 인체의 형태를 감각적으로 조각한 지형물과 물이 흐르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정제된 디자인 속에 식재계획은 외부에서 내부의 중심을 향하여 점진적으로 다가오게 하여 그 질감을 느끼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지형의 조작과 물의 흐름을 통한 대지예술의 극대화를 기여하였다. (권 진 욱 Kwon, Jin Wook 계원조형예술대학 화훼디자인과)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스케치업으로 하는 3D조경설계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중국 운남성 여강고성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구엘공원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은 뭐니 뭐니 해도 가우디이다. 가우디를 보기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이 매년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비단 건축이나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가우디의 건축을 접하게 되면 그 아름다움에 압도당하고 매료된다. 구엘공원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시의 북서쪽 언덕 위 펠라다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가우디의 클라이언트이자 후원자였던 구엘은 가우디에게 의뢰하여 1900년부터 14년에 걸쳐 15헥타르 정도의 부지에 구엘공원을 만든다. 현재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산책하거나 연인들이 데이트하는 장소로 사랑받는 공원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원래는 구엘과 가우디는 이 곳을 60여개의 주택단지가 있는 이상적인 전원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구엘이 이 곳을 공원이라 이름붙인 것은 그가 젊은 시절 프랑스 님에서 유학할 시절 라 퐁텐느 공원에 크게 감명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 구엘공원의 구불구불한 길은 영국 픽쳐레스크 정원과 유사한 성격을 지녔기에 스페인식 공원(parc)가 아니라 영어식 공원(park)로 표기했다 한다. 물론 구엘공원이 지향했던 이념은 여러 계층이 어우러지는 영국식 공원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구엘공원은 고급 건축물을 세워 부자들이 거주하는 전원도시로서 엄격히 사생활이 보장받을 수 있게 담이 쌓여져 있고 일반인들과는 적절히 격리된 유토피아적 도시공동체로 구상되었다. 이상도시의 꿈은 사라졌지만 공원의 틀은 남게 된다. 구엘공원의 구조는 경사지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 공간이 형성되어있다. 가우디는 산지형 원형을 살리기 위해 등고선을 따라 길을 만들었고, 움푹 들어간 곳에는 이 지역에서 파낸 돌로 다리를 만들었다. 다리 위에는 다듬지 않은 거친 돌로 화분이 놓여졌다. 부지에서 발견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구조물은 '부지에 순응하는 디자인‘(site-specific design)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85개의 도리아식 기둥으로 도리아식 신전은 원래 시장으로 만들어진 장소이며, 옥상 부분의 광장은 극장으로서 각종 문화공연 및 이벤트장소로 만들어졌다. 이 극장은 20세기 초부터 자선행사나 대규모 파티, 그리고 축구, 테니스, 경주 등 각종 여가공간으로 이용된다. 구엘 공원의 명물인 극장 주위의 벤치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벤치이다. 공원 벤치는 단지 공원의 장식물이 아닌 조각 작품이며 예술품이다. 이 벤치에 편안히 앉아있으면서 보는 바르셀로나 시가지풍경은 그만이다. 형형색색의 타일의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풍경은 더욱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공원의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입구 계단이다. 계단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이어져있다. 계단에는 도마뱀과 카탈루냐 문장과 뱀 머리를 조합한 모자이크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단 공간의 화려한 색상과 환상적 이미지는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동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조 경 진 Zoh, Kyung Jin,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발언과 참여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