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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뮌헨 조경박람회 (Bundesgartenschau 2005 in Muenchen)
    귀부인들이 튤립을 옷섶에 매달아 자랑하듯 그 남편들은 자기 “재산”을 다른 방식으로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이 자신들의 정원을 자랑삼아 일반에게 개방하기 시작한 것이 오랜 조경박람회의 기원이다. 조경박람회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번 변천과정을 겪고 지금과 같은 방대한 규모와 다원성에 도달하긴 했지만 시작은 개인정원이었고 그 중심에는 한 송이 황금튤립이 서 있다. 이렇게 과거 한 때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고 태양왕 루이 14세의 궁에서 귀부인들의 아름다운 가슴을 장식했던 튤립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만 송이로 번성하였고 2005년 뮌헨 조경박람회의 오프닝을 담당했다 (국내에서 알려져 있는 “조경박람회”라는 명칭은 전시회의 성격으로 봐서 옳은 번역이기는 하지만 독일에서는 아직도 ‘Gartenbauausstellung(Garden Exhibition)’이라 부르며 정원이 그 주인공임을 잊지 않고 상기시킨다). 유럽 사람들의 꽃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는 에덴동산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18세기 계몽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에덴동산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났다는 것을 사실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지어 부르던 목가(牧歌)가 낙원을 향한 그칠 줄 모르는 그들의 그리움을 대변해 준다. 날씨가 나쁜 나라일수록 꽃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더욱 많은데, 그러다보니 꽃의 나라 홀란드를 위시하여 독일, 벨기에, 덴마크, 영국 등 일년 내내 햇빛 보기 힘든 나라에서 해마다 육종되고 가꾸어지고 전시되는 화초의 종류를 이제는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투박한 흙 속에서 튤립이나 장미가 탄생하여 아름다움을 빛낼 때 그 누가 에덴동산을 느끼지 않으랴.조경박람회의 의미 - 조경박람회는 대략 5년에서 10년의 준비과정을 거친다. 올림픽처럼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되는데 2001년에는 포츠담에서 연방박람회가, 2003년에는 로스톡에서 국제박람회가 개최되었었고, 올해 2005년에는 뮌헨에 차례가 돌아왔다. 뮌헨시는 1987년부터 부지를 이미 정해 놓고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1999년 나무들을 심어 숲을 조성해 놓았었다. 함부르크는 2013년에 열릴 국제 조경박람회 준비에 벌써부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격년 혹은 4년의 간격으로 열리는 연방이나 국제차원의 박람회 외에도 주(州)차원으로 해마다 여기저기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독일의 관련박람회를 일일이 다 찾아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늦어도 2001년, 즉 포츠담에서부터 전례가 없던 방법의 컨셉과 진행을 계기로 하여 이제 독일의 조경박람회는 새로운 조경소재와 작품을 소개하는 범주를 훨씬 뛰어넘어 도시개발의 중요한 도구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어차피 개발되어져야 할 도시구역을 조경박람회와 한데 묶어 개발함으로서 도시의 질과 품격도 같이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특히 구조가 빈약한 도시일수록 조경박람회가 둘도 없는 기회를 제시한다는 사실을 포츠담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포츠담은 박람회의 주 전시장이 되었던 거대한 Park을 축으로 하여 아예 신도시를 개발하였을 뿐 아니라 예로부터 문화경관으로 유명한 도시의 구석구석을 하나의 맥락으로 새 단장하여 실은 포츠담시 전체가 박람회장이 되었었다. 오히려 도시가 축소되어 가고 있는 독일의 추세이고 보면, 그래서 녹지가 도시경관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보면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뮌헨은 물론 동독에 속했었던 포츠담과는 비교되지 않으리만큼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예를 따르고 있다. 뮌헨의 동쪽 끄트머리 림구에 위치한 박람회장은 1992년까지 비행장이 들어서 있었다. 1939년 세계 제2차대전의 발발과 함께 세워졌던 림비행장은 시설이 낙후했을 뿐 아니라 도심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1960년 비행기 추락사고가 있은 후 민원이 빗발치듯했다. 1986년 비행장 이전이 확정되고 이 560ha 부지의 이용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뮌헨시는 일단 “박람회의 도시”라는 기본개념을 잡고 종합박람회장을 중심으로, 주거단지, 상업지구 그리고 총 면적의 삼분의 일 이상을 차지하는 부지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으로 기본방향으로 정했다. 1991년 현상공모를 통해 기본계획을 구체화시켰고 그 결과 1997년 박람회장이 제일 먼저 준공되었으며, 총 7천세대로 계획된 주택도 상당부분 건설되었다. 도시의 짜임새를 보면 중앙에 자리한 택지를 공원이 동, 서 그리고 남, 세 방향에서 감싸고 있으며 북쪽 머리 부분에 횡으로 종합박람회장이 놓여 있다. (고 정 희 Go, Jeong Hi, 삼성에버랜드 환경개발사업부 주거조경팀)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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