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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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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년 9월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CODA] 나의 공원
대단한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이번호 코다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한창 개봉 중인 영화 이야기는 아니니 괜한 걱정은 붙들어 매두시길. 1. 공원을 보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란 물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네 컷의 사진이다. 잡지에 사용한 적도 있고, 단행본에 참고 이미지로 쓰기도 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공원이다. 뭐 대단히 유명한 곳은 아니다. 분당 까치마을에 있는 ‘벌말공원’이란 자그마하고 평범한 공원이다. 실제로 공원으로 이용(?)해 본 기억도 거의 없다. 그저 무심히, 묵묵히 지나쳐 갔을 뿐이다. 거의 매일. 집에서 사무실로 출근하려면 그곳을 거쳐 가야 했으니까. 그런 곳을 카메라에 담은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집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유일한 녹색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 동안 꾸준히 한 공간의 사계절을 기록해보리라 마음먹고 나서 떠오른 첫 번째 공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열두 달짜리 나만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한밤중 시간대를 달리해 가며, 5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특히 빗발이 흩날리거나 소복이 눈이 쌓인 날이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당시는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지 않은 때여서, 슬라이드 필름 값을 아끼겠다고 한 번에 열 컷 이상은 찍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같은 앵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맨 처음에 촬영한 사진을 인화한 후 드럼 스캔을 받고 그걸 출력해서 카메라 가방에 넣어 놓고는 매번 들여다보며 셔터를 눌렀다. 바닥에 나만 아는 촬영 포인트도 표시해놓고, 줌렌즈의 줌 기능도 고정시켰다. 그렇게 해서 건진 ‘벌말공원의 사계’를 담은 네 컷의 사진을 재탕, 삼탕 우려먹었다. ‘이용’하지 않고 바라보거나 지나간 공원이지만, 여러 갈래의 출근길 동선 중에서 벌말공원을 경유하는 코스를 잡은 건 최단 거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공원이 있어서였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아주 가까이에 있는…. 2. 공원을 읽다. 네 컷의 사진에 이어 떠오른 건 두 권의 책이다. 조경비평 봄 멤버들과 함께 쓴 『공원을 읽다』(나무도시, 2010)와 환경과조경 편집부가 엮은 『한국의 공원 - PARK_SCAPE』(도서출판 조경, 2006). 『한국의 공원』에는 선유도공원부터 포항환호해맞이공원까지 총 서른 곳의 국내 공원을 수록했다. 특히 절반 이상의 공원은 사진을 새로 촬영했다. 그 덕에 집에서 가깝지도 않은 선유도공원, 올림픽공원, 하늘공원, 평화의공원을 그 해에만 서너 번 방문했고, 일산호수공원, 길동자연생태공원, 여의도공원, 파리공원, 서울숲,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분당중앙공원, 서대문독립공원, 용산가족공원, 울산대공원도 한 번 이상 찾았다. 순전히 촬영을 목적으로…. 그렇게 많은 공원을 자주 방문한 경우는 그 해가 유일했다. 당시 잡지원고에 종종 등장하던 파리공원도 솔직히 그 때 처음 가보았다. 다음 해에 국내조경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쓸 일이 생겼는데, 이때의 답사가 무척 유용했다. 공원 중에서는 선유도공원, 하늘공원, 올림픽공원, 일산호수공원, 평화의공원을 그 글에 소개했다. 특히 선유도공원, 하늘공원, 올림픽공원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서울숲은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서서울호수공원과 북서울꿈의숲은 완공전이었다.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는 공원 리스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공원』이 답사의 추억으로 남은 책이라면, 『공원을 읽다』는 그야말로 독서의 즐거움으로 기억되는 책이다. ‘근대, 극장, 정치, 정원, 놀이공원, 산, 물, 네트워크, 노인, 밤문화, 안전, 도시’ 등 12가지 키워드로 공원을 들여다 본 기획이었는 데, ‘노인, 밤문화, 안전’처럼 의외의(?) 키워드가 등장해 교정 보는 내내 흥미진진 했다. 특히 이경근의 ‘도시의 산, 한국의 공원’은 자신 있게 주변에 일독을 권했다. 『한국의 공원』이 주요 공원의 현장 답사를 이끌었다면, 『공원을 읽다』는 공원에 대한 다양한 담론 탐색을 이끈 셈이다. 3. 공원에 가다. 출근길에 지나쳐 간 공원을 빼고, 가장 많이 찾은 공원은 일산호수공원이다. 아마 방문 기록 2위는 마로니에공원이나 분당중앙공원이 아닐까 싶다. 마로니에공원은 목적지는 아니었다. 대학로 주변에서 데이트를 꽤 많이 한 덕분에 그 공원을 종으로 횡으로 참 많이도 지나다녔고, 그늘이 좋아 쉬어 간 적도 많다. 순전히 공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 빈도로만 따지면 일산호수공원, 분당중앙공원 순이다. 일산과 분당에서 몇 년씩 살았으니까. 근데 신도시 두 곳에서 산기간은 비슷한데, 공원을 방문한 횟수는 제법 차이가 난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패턴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특히 아이한테 미안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주말 방콕을 즐기는 건 똑같다. 다만 분당에 살 때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아주 어렸고, 공원도 차를 타고 15분 이상 이동해야 했다. 일산으로 이사한 후 아이는 신나게 뛰어 놀 나이가 되었고, 현관문을 열고 단지를 빠져 나와 6차선 도로만 건너면 바로 공원이었다. 일산을 떠나 파주로 이사한 후에도 파주에 있는 공원이 아니라, 일산호수공원을 찾았다. 아이가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타게 된 이후에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놀았고, 공원에서 진행되는 행사도 몇 차례 구경했다. 요즘처럼 무더운 한여름에는 해질 무렵 노래하는 분수대 주변에서 치맥을 즐기기도 했다. 일상과 공원이 가장 밀접했던 한 때였다.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뭣하지만, 10월호 특집으로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를 준비하고 있다. 그냥 이 질문 하나만 던지고, 7명의 에디터가 각자 떠오른 생각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써보기로 했다. 누구는 직관적으로 떠오른 공원을 소개하겠지만, 누군가는 이 질문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나의 공원은 어디에도 없다’며 왜 그러한지를 따질 것이다. 공원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나 장면을 소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느슨하게 공원의 일상과 쓰임과 필요와 의미를 엉기성기 재구성해 볼까 한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이번 달 코다에 ‘나의 공원’ 이야기를 다해버렸으니, 다음 달 특집에는 뭘 써야 하지?
[편집자의 서재]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편집자의 서재에 쓸 책을 고민하다가 나의 서재를 확인했다. 독서 패턴을 알아보기 위함이랄까.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형태와 도구에 대한 실험 또는 기술에 대한 관심에 따라 구매한 책들이 대부분이었고 2000년대 나온 책이 상당수였다. 고전으로 분류할 만한 건 찾기 어려웠다. 항상 새롭다는 것들 중에 이상하거나 특이한 것이 좋았고, 떠오르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업과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집중했다. 사들이는 책도 마찬가지였고, 대개 화려한 이미지가 가득했다. 두 달 전쯤 그달의 눈요기를 책임져줄 책을 찾고 있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나의 검색 습관에 따라 이런 저런 책을 추천했는데, 그날은 까만 바탕의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폰트로 제목만 달려 있는, 처음엔 ‘이게 뭔가 싶은’ 책을 추천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출판사 로고에 불과했지만,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노먼 포터, 최성민 역, 작업실유령, 2015)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랫입술을 깨물게 했다. ‘그러게. 내가 좋아한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그게 뭐지’싶은 거다. 충격이었다. 노먼 포터Norman Potter가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논하는 그 독특한 방식은 그동안의 환상을 처참히 무너뜨렸다. 힘든 일이라는 건 질릴 만큼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 자체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10대 청소년이 아이돌에 갖는 환상처럼 말이다. 내지의 절반 이상을 실무에서의 디자인 노동 과정과 그 고뇌에 할애하고, 그 부분을 짙은 주황색 내지에 담아낸 책의 편집 방식부터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다.1 “디자인작업의 10%는 영감에 의존하고 나머지 90%는 고된 노동, 즉 일종의 예술적 업무행위로 이루어진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그렇다는 거지, 책의 형식과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미친 짓임에도 이 책에 언급된 내용을 잘 해낼 수 있으면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 더 나은 디자인 교육(수습)의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찾아낸다 해도 넌 웬만하면 실패할 것이다.’ 자주 들어왔던 이야기 아닌가? 처음 이 책을 받아들면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책으로만 읽힐 수 있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때처럼 가끔은 논점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기도 하지만, 결국엔 끊임없이 디자인의 사유와 산물에 숨은 (노동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나아가 디자인을 공부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단순히 도면 위의 스케치 아티스트가 아닌 실천적 디자인을 갈구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직업적’ 소명을 열렬히 설명한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라고 말이다. 두 달간 거의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이런 저런 생각을 끄적이고 밑줄을 그어대어 지저분해진 책을 다시 펼쳤다. 밑줄 친 부분은 “믿지 말아야 한다”, “~하기 어렵다”, “바람직하지 않다”, “착각이다”, “~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로 안된다”까지 상당수가 부정적인 서술어로 마무리 짓는 문장이다. 얼마 전 나를 가르쳤던 교수가 한 말이 오버랩 되었다. “어쩌면 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쉽게 갖게 되는 (변화를 이끌겠다는 식의) 영웅 심리를 버리지 못하거나 마음 한 구석에 숨겨 놓는 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쉽게 스스로를 포기할지 모른다.” 포터는 그런 영웅 심리를 끌어내리려고 한 것일까? 끊임없이 겸손의 태도를 갖길 바라며 학교에서 배운 건 디자인의 몇 가지 기본 사항을 확인한 데 지나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1년 간, 타협과 양보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고백(?)’하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담당 에디터로 있으면서 이 연재를 ‘그들이 설계하는 법: 화려한 모습 편’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기획 의도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초년생 디자이너와 학생을 주요 독자층으로 한다’는 것이긴 하지만, 실패한 경우보다는 잘된 프로젝트나 남에게 보여주기에 좋은 경우를 보여주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던 건 아닌지. 또 주관적인 편집을 거친 이야기에 현실을 잘 모르는 목표 독자층은 글로는 표현될 수 없는 (90%의) 노동을 배제한 채, (10%의) 영감과 화려함만을 읽어내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질문’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60세를 훨씬 넘긴 어느 유명 디자인 스쿨의 교수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두 시간의 인터뷰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이 책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공식적인 자리였음에도 결국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 그 갈피를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던진 “디자이너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나도 모른다. 그럼에도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라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그때서야 ‘요약: 학생은 디자이너이다’라는 8장의 제목을 시작으로 조각난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는 듯했다.2 “우리를 기다려 주는 역할 따위는 없다. …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되묻는 … 학생이 확신할 수 있는 바가 하나 있다면 … 창의적 도전이 어떤 속성을 띨지는 닥쳐 보아야 알지, 예견할 수는 없다 … 단지 ‘근본 원리’를 바탕으로 적절한 결정을 내리려는 태도, 직업윤리에 관해 진솔하고 현실적인 태도를 스스로에게 촉구할 뿐이다.” 포터가 책의 첫 문장으로 “당신은 제도판 위의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조직하는 사람이다”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을 인용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본문에서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던 저 일련의 조각들을 어떤 순서로 읽느냐에 따라 실망과 좌절을 느끼기도 했으며, 희망과 도전의 실버라이닝silver lining(밝은 희망)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 포터와 그 ‘60대 교수’가 쉬운 답을 기대하지 말 것을 주지시키면서도 한 가지에는 분명한 답을 제시했다. ‘정신과 태도가 기술과 도구를 앞선다.’ 즉 유행을 타지 않고 행동의 중심이 되는 소명 의식과 직업적 윤리의식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읽어낸 걸까. 몇 날 며칠 이어진 야근에 지친 어느 인턴 사원은 실무를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이가 고작 디자인 고전 하나 읽고 내뱉는 ‘끄적임’에 불과한 외침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띠워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당신의 서재 또한 10%의 화려한 기술로만 가득 차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아무튼 저자가 강조한대로, 이 책에 담긴 그 어떤 권고나 처방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현대 운동의 정신과 손을 맞잡고 싶다 해도, 그 정신이 그냥 찾아와 주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밖에 나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용산기지의 공원화와 세계유산 등재
지난 7월 24일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용산공원의 세계유산적 가치 규명 학술대회’가 열렸다. 용산기지는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을 계기로 지난 100여 년 간 일본군 병영(1904년~1945년)과 용산미군기지(1945년~현재)로 사용되어 온 곳이다. 서울시는 2014년 3월‘역사도심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근대 건축 분야 전문가 자문을 통해 용산공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으며, 2014년 11월 ‘용산공원’은 ‘한성백제유적’, ‘성균관과 문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 추진 대상의 하나로 최종 선정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용산공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치를 규명하고 그 타당성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되었다. 조광 위원장(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은 기조 강연 ‘용산공원의 문화유산적 가치와 보존’에서 “세계적인 도시 경쟁력 평가 항목에 문화 관광 분야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중 세계문화유산의 개수를 주요 평가 지표의 하나로 강조하고 있다”며, 서울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추진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조 위원장은 이를 위해 사료의 수집과 검증을 통해 명분을 수립할 것을 강조했다. 신주백 교수(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는 주제 발표 ‘동북아의 역사적 전개와 용산기지’에서 군사적 시설로 사용되어 온 용산기지를 동아시아 역사 흐름과 연계해 설명했다. 특히 일본군의 관점에서 용산기지가 중일전쟁의 후방기지 중 최전선 역할을 하게 되면서 100만 이상(2개 사단)의 군이 상주하기 시작한 시기(1916~1919년)와 제17방면군 사령부가 들어서게 된 이후 대미 작전의 최전방 사령부로 활용되는 시기(1945~1948년), 그리고 미군의 관점에서 한국전쟁 발발 이후의 시점에 집중하여 용산기지가 세계사적 측면에서 갖는 군사 역학적 중요성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신 교수는 이를 통해 “용산기지를 한국 근현대사를 넘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가 중첩된 공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용산기지를 역사화하는 과정에서 식민의 역사와 냉전(분단)의 역사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반도의 역사를 ‘식민’으로 한정하는 실수를 범해 일본의 하시마섬 등 23개 일본 산업 시설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의 기준에 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이어진 두 번째 주제 발표 ‘용산기지의 변화 과정을 통해 본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용산기지가 현재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김종헌 교수(배재대학교 건축학부,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는 경성시가전도(1927)와 같은 지도나 다수의 배치도와 건축물 평면도 등의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1920년대 말 용산기지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서울의 중심에 “용산기지만큼 잘 보존된 근대 문화유산은 찾을 수 없다”며 용산기지를 ‘20세기’의 세계 유산으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현재 제시된 용산공원 마스터플랜과 관련 계획은 이러한 역사적 유산의 현황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며 보존해야할 유산과 보존 방식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김 교수는 현재 용산기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준Ⅱ, Ⅳ, Ⅵ1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마지막 주제 발표로 진행된 ‘도시공백都市空白 용산공원의 의미와 가치’의 발표자로 나선 김인수 대표(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는 더 나은 용산기지 공원화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는 “용산공원은 이미 공원의 모습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며 공원을 만든다는 명목 하에 불필요한 토목 공사나 철거 행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공원화 과정에서 ‘서울공원박람회’와 ‘중간 이용Zwischennutzung’과 같은 이벤트를개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공원박람회는 엠셔파크Emscher Park나 모리스 로사 에어필드 공원Maurice Rosa Airfield Park처럼 독일에서 산업 문화 유산의 활용방안을 고민할 때 도입했던 정원박람회의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공원 조성과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공공 이벤트화하자는 것이다. 실제 엠셔 파크는 버려진 제철소의 흔적을 공원과 문화 시설로 잘 활용한 사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점에서 청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중간 이용’은 본격적인 재생 이전에 시설의 활용 가능을 확인하고 그 이용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제한된 시간 동안 일반 시민의 이용을 허용하는 실험적인 방법이다. 김 대표는 “100년이라는 장소·시간·기능의 공백을 채우기에 앞서 치밀한 기획이 필요하며 용산기지의 중요성과 그 상징성에 상응하는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이벤트를 통한 시민의 의견 청취와 이용 행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은 조명래 교수(단국대학교 도시지역계획학과)가 좌장을 맡아 진행하였으며 최성자 위원(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송인호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소장), 한동수 교수(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조건 연구원(동국대학교)이 참여했다. 토론자들은 대체로 용산기지(공원)의 세계문화유산적 가치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하지만 최성자 의원이 “공원화와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주제가 동시에 논의된다는 점은 의아하게 느껴졌다”고 밝힌 것처럼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한동수 교수는 서울시가 제시한 ‘도시 경쟁력을 상승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명분에 문제를 제기하며 “세계 속의 용산공원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 도시, 서울 시민의 삶 속에서 용산공원의 의미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정치·외교적 목적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경향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 자격으로 의견을 개진한 강철기 교수(경상대학교 산림환경자원학과)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용산기지의 공원화 과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우리 스스로 없애버리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현 교수는 군시설이라는 점의 민감성은 인정하면서도 “용산기지의 공원화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논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개하지 못해 아쉬운 관련 정보가 너무 많다”며 더 나은 논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보다 천천히 다루어야 하는 문제임에 분명”하다는 조명래 교수의 말처럼 100년의 공백 속 미지의 땅인 용산기지를 알아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은 분명해 보인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지난 100년의 용산기지의 가치에 대한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향후 100년을 바라봐야 하는 용산기지가 ‘공원화’와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두 가지 조금은 다른 길에 서있는 듯한 목표를 좇다 모두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서울시는 용산기지를 2023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용산공원은 용산미군기지 이전이 완료(2016년 말까지 평택으로 이전 예정)되는 시점인 2017년부터 2027년까지 1,156만m2 규모로 장기적이고 단계적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제22회 조경디자인캠프, ‘용산공원, 경계를 넘어’ 주제로
유례없는 대형 오픈스페이스이자 한국 현대 도시사의 굴곡과 복잡한 도시 형태가 뒤엉켜 있는 용산공원과 그 일대는 지난 몇 년간 많은 조경가, 도시설계가, 건축가에게 섣불리 손대기 어려운 난제로 꼽혀왔다. 미래 조경가들은 용산공원의 경계부에 ‘도시 재생’의 해법을 어떻게 제시할까? 44명의 미래 조경가들이 초대형 공원인 용산공원과 다양한 주변 도시 조직의 경계에 적용할 수 있는 도시 재생의 실천적 해법을 탐색했다. 지난 7월 20일부터 31일까지 한국조경학회(회장 김성균)가 주최한 제22회 조경디자인캠프가 서울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가 교장을, 윤희연교수(서울대학교)가 교감을 맡았다. 주제는 ‘용산공원, 경계를 넘어’. 이 까다로운 대상지에 장소 고유의 가치를포용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덧대어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과제가 학생들에게 주어졌다.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가 ‘도시 공원의 사회적 가치와 거버넌스’를 주제로, 송도영 교수(한양대학교)가 이태원의 계층성과 인종성에 대해, 안창모 교수(경기대학교)가 용산의 100년간 이야기와 그 역사성에 대해, 김연금 소장(조경작업소 울)이 경리단길이 던지는 도시 재생에 대한 질문을 주제로 4일간 특강을 진행해 대상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학생들은 사례지 답사를 통해 설계를 진행하는 대상지를 직접 걷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스스로 파악해나갔다. 학생들이 그리는 용산공원 일대의 미래 조경디자인캠프는 최혜영(West 8), 강중구(AECOM Hong Kong) 튜터의 스튜디오 A, 김세훈(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튜터의 스튜디오 B, 다니엘 오(고려대학교), 나성진(전 JCFO) 튜터의 스튜디오 C로 나눠 공원과 도시 조직이 치열하게 충돌하는 경계부―이태원길·서빙고, 남영동, 경리단길 일대―를 각 스튜디오의 대상지로 다뤘다. 스튜디오 A는 이태원길에서부터 서빙고로 이어지는 용산공원의 동측 경계 부분을 대상지로 다루며 도시속의 경계에 대해 고민했다. 대상지의 물리적·비물리적 특성을 이해하고 훗날 용산공원이 그 경계들과 어떻게 작동할지 상상함으로써 용산공원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해보고자 했다. 스튜디오 B는 남영동을 대상지로 삼아 공원과 도시의 매개를 탐구했다. 서울역을 관통하는 철도와 한강대교부터 시청까지 뻗어 있는 한강대로 사이에 위치한 남영동은 공원과 도시를 매개하는 연결 고리로서의 잠재력이 크지만 지금까지 도시의 낙후된 후면부로 남아있는 곳이다.스튜디오 C는 남산식물원과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시작해 용산공원으로 이어지는 경리단길을 대상지로 다루며 경계공간의 오픈스페이스를 어떤 방식으로 설계해야 할지 고민했다. 남산, 용산공원, 한강을 잇는 경계 공간이자 서울의 ‘길’ 문화와 ‘경사지’ 지형을 대표하는 경리단길의 오픈스페이스 디자인에 대한 실험을 통해 서울의 도시 공원들이 어떻게 서울의 변화에 긴밀히 대응하며 도시 재생의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탐구했다. 캠프의 마지막 날, 용산공원 경계부를 대상지로 한 총 15개의 작품이 제출되었고 학생들의 열띤 발표가 이어졌다. 서영애 소장(기술사사무소 이수),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 서예례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용현 교수(공주대학교)가 리뷰를 맡았다. 대상은 공원과 도시 사이에서 중간적 성격을 띠는 남영동 일대의 오픈 스페이스의 면적, 도시 건축물의 용적률, 식재의 밀도 등에 변화를 주어 프로그램, 동선, 경험 및 활동의 볼륨을 증가시키는 안을 제안한 스튜디오 B의 ‘볼륨을 키워요’(한국전통문화대학교 김명조, 서울대학교 유지민, 청주대학교 윤병두)가 차지했다. 대상에게는 한국조경학회장상이 수여됐다. 최우수상에는 ‘Weave it’(부산대학교 김종명, 서울시립대학교 김병호, 서울대학교 신채영), ‘Operation of fabric: flexible entrance’(부산대학교 엄성현, 서울대학교 송기현)가선정됐으며 한국조경사회장상이 수여됐다. 우수상은 ‘녹사평, 초록으로 물들다’(경희대학교 백규리, 서울여자대학교 박지연, 계명대학교 손원석), ‘전망, 전망’(청주대학교 김용환, 서울여자대학교 구수진, 서울대학교 이호상), ‘Project CC’(서울시립대학교 이진선, 강원대학교 김서현,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 최우석)가 차지했다. 또한 올 해부터 학생들의 투표를 통해 각 스튜디오별로 한 명씩 인기상을 시상했다. 김예지(동아대학교), 안로사(부산대학교), 이호상(서울대학교) 학생이 인기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상을 수상한 김명조 학생은 “밤을 정말 많이 샜다. 하기 싫은 건 쉬운 일이라도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데 이번에는 몸은 힘들었어도 정신적으로 너무 즐거웠다”고 캠프를 수료한 소감을 말했다. 같은 팀의 유지민 학생은 “학기 중에는 과목을 여러 개 병행하니까 설계에집중하기 힘든데 캠프에서는 설계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조경디자인캠프가 유익한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윤병두 학생은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설계를 함께 하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싶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며 서로 다른 학교에서 모인 학생들과 교류를 나누는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길고도 짧았던 2주 “학생들에게는 계속 미안한 점이 있었습니다. 캠프 진행한 200동 9층이 너무 더웠죠? 아마 한국에서 제일더웠을 겁니다. 지금 가장 더운 철이고 다른 건물들과 달리 중앙 냉방 시스템이라 6시만 되면 에어컨이 꺼져서 정말 물속에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조경디자인캠프의 수료식에서 교장을 맡은 배정한 교수는 더운 작업실에서 늦게까지 남아 작품을 만들었던 학생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말 그대로 이열치열. 44명의 조경학도들은 뜨거운 여름을 열정으로 맞섰다. 무더울수록 맵게 익어가는 빨간 고추처럼 학생들의 눈빛이 2주 전보다 자신감으로 맵게 빛났다. “처음에는 ‘방학인데 이걸 왜 했지’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캠프가 끝나갈수록 ‘일주일만 더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조원들과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2주 간의 캠프 기간이 금방 지나갔고 아쉬워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조경디자인캠프를 마치며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 백규리 학생(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을 비롯해 소감을 발표한 많은 학생들이 2주 간의 프로그램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에어컨을 틀지 못해 더운 작업실에서 작품을 마무리했다는 학생들에게는 ‘뜨거운 계절’을 보내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미완의 광복, ‘북한’을 바라보는 예술적 시선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독립, 분단,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과제를 통찰하는 전시 ‘북한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북한을 어떻게 제시하고 상상하며 재연결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기획된 이 전시는 정치적 상황이나 교류 사업과 같은 기존의 남북한 관련 주제에서 벗어나 북한을 예술의 주체로서 바라보는 한편, 우리가 북한을 예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북한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전시 제목에 쓰인 ‘프로젝트project’라는 용어는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의미한다. 북한에 대한 장기적인 시선을 포함하는 ‘북한프로젝트’는 ‘앞으로 나아가pro 만들어가는 것ject’에 초점을 맞추어 북한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행동하고 있는 지금의 실행 자체를 강조한다. 북한을 프로젝트함으로써 규정짓기 어려운 북한이라는 존재가 끊임없는 의미작용을 거쳐 하나의 규정된 정의의 작품object이 되려고 하는 과정, 그러나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과정,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의미가 확장되는 과정이 이 프로젝트의 의의다. ‘북한프로젝트’는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북한의 시각예술 분야(유화, 포스터, 우표)를 조명하는 국내외컬렉션이 첫 번째, 최근 북한의 풍경과 주민의 일상을 촬영한 외국 작가들의 사진이 두 번째, 마지막은 북한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영상 설치 작업이다. 북한 유화는 북한 화가들이 작업한 작품이며 네덜란드 로날드 드 그로엔 컬렉션Ronald de Groen Collection, 포스터는 네덜란드 빔 반 데어 비즐 컬렉션Win van der Bijl Collection, 우표는 한국 신동현 컬렉션Shin Donghyun Collection으로 구성되어 한국 최초로 공개되었다. 북한 유화는 ‘조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유화’의 함축적 표현이다. 1950년대 소련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유화의 발전을 이루었으나 점차 민족적 감성에 맞는 미술의 발전이 요구됨에 따라 미술가들은 ‘북한식 유화’를 만들어 이에 부응했다. 조선화를 바탕으로 한 유화는 마치 한국화처럼 바탕에 양감의 표현을 최소화한 표면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 이번 로날드드 그로엔 컬렉션은 혁명적인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들보다는 생활에 가까운 작품 위주로 구성되었다. 내용면에서 국가 체제의 이념 구현을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북한 주민과 북한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을 주로 볼 수 있다. 북한 포스터는 선전화라고 불리기도 하는 만큼 선전을 위한 표제어와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한 주민들의 계도를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북한 포스터 컬렉션인 빔 반 데어 비즐 컬렉션은 포스터가 북한 사회에서 매우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제작되며 대중 선전 도구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섹션이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로 나뉘어 전시된 포스터는 각 시기에 국가가 당면한 과제를 북한 주민에게 구호를 통해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우표 생산국 중 하나인 북한은 그 규모만큼이나 다양한 소재와 방식을 자랑한다. 신동현 컬렉션은 북한의 우표들이 해외 컬렉터에 의해 평가되고 결정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계기로 우리 민족의 손으로 우표를 정리하고자 만들어졌다. 이 컬렉션은 북한의 『조선우표목록』에 수록된 공식 발행 우표의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어 우표에 반영된 북한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엿볼 수 있다. 영국의 닉 댄지거Nick Danziger, 네덜란드의 에도 하트먼Eddo Hartmann, 중국의 왕 궈펑Wang Guofeng이 담은 북한의 도시 건축, 풍경, 인물 사진을 통해 최근 북한의 모습을 만나보는 섹션 또한 마련되었다. 뉴스가 다루지 않는 북한 일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도주의적 시각보다 북한 건축 공간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공산 국가 건축에 대한 꾸준한 작업으로 시작된 그들의 사진은 북한 주민의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또 한편으로는 작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시각을 삶의 풍경, 도시 공간의 공허함, 사회주의 국가의 구성원과 건축물이 보여주는 스펙터클로 표현하고자 했다.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는 분단 현실을 다뤄온 강익중의 ‘금수강산’, 냉전기 소련과 미국의 우주 개발 경쟁과 북한 땅굴 사건을 병치해 리서치 자료와 함께 보여주는 박찬경의 ‘파워통로’, 그리고 사진과 글쓰기로 현장에 대한 기록과 문제제기를 제시하는 노순택의 ‘붉은 틀 #I-01’,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일상을 이야기하는 이용백의 ‘우리에게 희망은 언제나 넘쳐나’가 전시되었다. 또한 남북 구분이 없는 하나의 세상을 작품을 통해 염원하는 탈북 작가 선무, 3D 가상현실 기법을 이용해 관람객에게 DMZ에 들어가 보는 경험을 선사하는 권하윤, 남북한 피아니스트의 음악적 대화를 통해 대립의 극복을 시험한 전소정의 작품이 초대되었다. 북한 예술가를 비롯한 국내외 여러 시각을 포함하는 이번 전시는 서로간의 대화를 위한 세 가지 다른 시야의 맵핑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작가와 관람객 모두 북한에 대한 시각을 교환하며 담론과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것을 다시 본다 7월 28일 서울시립미술관은 북한대학원과 공동으로 ‘북한프로젝트’전과 연계한 학술 심포지엄인 ‘북한을 바라보는 것을 다시 본다’를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정치와 경제적 틀에 국한되어 논의되던 북한에 대한 관심을 문화적 차원으로 확장하고자 기획되었으며, ‘북한의 Visual Art’, ‘북한의 문화, 문화로의 북한’, ‘라운드테이블-북한(이) 바라보기’, 이렇게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각 섹션은 북한 노동신문에 나타난 최고 정치 지도자의 사진과 북한의 기록 영화, 그리고 북한의 미술과 북한을 그린 우리나라 영화와 같이 각기 다른 매체를 대상으로 북한이 제공하는 시각과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사이의 온도차를 조망했다. 북한의 시각예술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섹션에서 변영욱 기자(동아일보)는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역대 지도자들의 모습은 권력의 정당화와 체제 유지를 위해 정밀하게 만들어진 하나의 방편이라고 해석했다. 김승 교수(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는 북한 기록 영화에 담긴 표상 분석과 그 내러티브에 담긴 의미 체계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북한의 문화에 대한 두 번째 섹션에서 발표한군 드 궤스데르Koen de Ceuster(Leiden University)의 사상예술성 탐구와 북한 예술에 대한 예술성 판단의 유무에 대한 논의는 북한 미술의 미적 특질, 향후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전영선(건국대학교)은 북한을 소재로 한 우리 영화를 통해 북한을 그리는 시각의 시대적 변화 양상을 소개했다. 북한을 다룬 영화는 시대나 유행에 따라 초점이 되는 구체적 대상과 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엔 한정된 스펙트럼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논의는 북한에 대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함을 떠올리게 했다. 북한과 관련한 여러 가지 매체들을 대상으로 하되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고찰이 전제되었다는 점이 바로 이번 심포지엄과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다.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주최 측의 말대로 우리의 시선과 시각은 결코 중립적일 수도 순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것’의 의미를 문제시한다는 것은 전시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한편,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접근 방식을 성찰하는 기회가 된다. 접근을 통한 변화가 아니라 변화를 통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임을 북한 관련 예술을 통해 고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도의 이면을 항해하다
오지 여행가이자 국제 구호 활동가로 잘 알려진 한비야의 책 제목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지도가 가진 사회문화적인 메타포를 잘 보여준다. ‘지도’란 우리가 잘 아는 세상을 의미하고 ‘지도 밖’이란 미지의 세계 혹은 소외된 공간이나 사람들의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지도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로 받아들이곤 하지만 사실 지도는 만드는 사람의 정치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그 안에 담기는 정보가 선택되고 가공된다. 즉 지도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관계망을 드러내고 시대의 관습을 투영하는 매체인 셈이다. 그래서 지역적 맥락을 중시하는 도시, 조경, 건축분야에서는 맵핑mapping을 분석 도구로 활용하고 더 나아가 디자인의 생성 도구로 확장하기도 한다. 맵핑이 디자이너에게 창조적 과정이 되고, 더 나아가 예술가들의 표현 방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공간을 주관적으로 인식하면서 발생하는 실제와 재현된 지도의 간극에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충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8월 5일부터 26일까지 송원아트센터에서는 통상적인 지도의 형식과 개념을 넘나들며 맵핑의 범주를 확장하는 전시 ‘신지도제작자’가 열렸다. 한국, 프랑스,독일 등 14명의 작가와 디자이너, 건축사가가 참여해 드로잉, 설치, 회화, 미디어아트, 디자인 등 다양한 형식으로 세상을 지도화했다. 지도와 예술의 만남,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대화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작품에 대한 접근 방식이 워낙 다르고 작업에 담아내는 내용의 간극도 상당히 크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양면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배치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듯이 상대적인 방식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병치했지요.” 전시의 기획자인 독립 큐레이터 심소미의 말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활동하던 참여 작가들이 어떻게 맵핑을 해석하고 표현하는지 그 다양함에 주목하는 것은 ‘신지도제작자’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전시장 초입에 전시된 카롤린 코바쏜Caroline Cobasson의 ‘블랙아웃 맵Blackout Map’(2013)은 지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블랙아웃 시리즈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접이식 지도에 검은 스프레이를 뿌려 시각적 정보를 모두 지워버렸다. 마치 밤하늘을 보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둠과 적막이지나간 자리에 언뜻언뜻 남아있는 지도의 흔적이 마치 은하수처럼 떠오른다. 코바쏜의 작업이 직관적이고 정서적으로 자연의 광대함과 무한한 신비의 세계를 열어준다면, 부로 데튜드Bureau d’tudes의 ‘세계 정부World Government’(2013)는 현실 세계의 구조적인 관계망을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동시대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영역을 맵핑하는 카토그래피cartography 작업을 해왔던 작가는 자본주의 발전과 유형에 대한 관계망을 구체화한 ‘권력 지도’를 선보였다. 이 엄청난 양의 정보 앞에서 관객은, 작가가 구축한 세계를 해석하느라 머리가 바빠진다. 그러나 동시에 화면을 가득 채운 픽토그래픽pictographic과 컬러풀한 버블은 그 자체로 지도의 배후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의 아우라aura를 뿜어낸다. 반면 유창창의 ‘COME’ 시리즈는 불안과 공포를 신경질적으로 드러낸다.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해보기 위해 지도 앞으로 한 발 다가서 보면 지도 안의 정보는 꼼꼼하게 지워져 있다. 유창창의 지도 작업은 2010년경 한참 사회가 각종 참사와 분쟁들로 소란스러울 때 등장산되고 흘러내리면서―실제 작품에 뿌려진 것은 작가의 정액이다―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전시장 한편에는 1966년판 유라시아 지질구조지도가 전시되어 있다. 벽면을 가득 메운 이 ‘순수한’ 지도는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에 충실하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디자인과 아름다운 색감을 보여주기도 해서 의외로 이 전시에 잘 녹아든다. 그 바로 옆에는 임선이의‘붉은 눈으로 본 산수’(2008)가 전시되어 있다. 지도의 등고선을 칼로 오려내 켜켜이 쌓아 올린 작업이다. 흔히 조경가나 건축가들은 대상지의 지형을 이해하기 위해 참고용으로 ‘콘타를 뜬다’. 그런데 임선이 작가는 무한한 수공의 노력을 통해 이러한 등고선 지도contourmap를 조각으로 만들어 새로운 풍경을 맵핑한다. 보이지 않는 장소, 보이지 않는 삶의 이야기 과거의 지도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의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하는 맵핑도 있다. 줄리앙 코와네Julien Coignet의 ‘군도Archipel’는 고지도에서부터 현재의 지도까지 시간을 달리하는 지도를 중첩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준다. 작가는 구글 검색을 통해 한반도 주변 섬들의 과거와 현재 지도들을 한자리에 불러들여 가상의 풍경을 만들었다. 남한, 북한, 일본 등 세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현재는 분쟁 중인 곳도 있고 과거에는 다른 나라 영토였던 섬도 있다. 이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통해 마치 고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영토나 국경의 개념이 얼마나 한시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 드러낸다. 지도에 얽혀있는, 혹은 지도가 드러내지 않는 삶을 드러내는 작가들도 있다. 이들은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주관적 시선과 세계와의 관계를 표현한다. 린다 하벤슈타인Linda Havenstein의 ‘구룡 워크The Guryong Walks’(2015)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지만 존재하는 ‘장소 아닌 장소no place’ 구룡마을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시에서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들을 들춰내는 작업은 은폐된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예술의 임무라는 점을 다시금 환기한다. 김태헌은 너무 좁아서 지도에 잘 드러나지 않는 성남의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도시의 빛바랜 색들을 채집해 재현한 작업을 선보였다. 심소미 큐레이터는 “이 작가는 1990년대 말쯤 성남 개발에 대한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작업과 리서치를 많이 했습니다. 소위 요즘 유행하는 작업들을 일찍 시작한 셈입니다. 최근에는 작은 회화 작업을 주로 하셨구요. 선생님의 초창기작업을 연상하고 전시를 부탁드렸는데, 자연스럽게 그 두 가지 작가적 태도가 연계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라며 작품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태헌 작가가 색을 채집하는 방법은 의외로 원시적이고 노동집약적이다. 일례로 오래된 문을 발견하면 그 표면에 접착용 셀로판테이프를 붙였다가 떼어낸다. 그리고 작업실로 돌아가 그 색을 똑같이 재현하는 방식이다. “수십 년의 때가 묻은 색을 페인트를 섞어서 똑같이 만들어 내는 작업이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마치 추상화처럼 전시되어 있는 ‘성남 구시가지의 색’(2015)은 이렇듯 작가가 직접 땀 흘려 채집한 45가지 골목길의 색들이다. 실제 작가들이 몸으로 체험하며 만들어내는 작업은 애초의 계획과는 다른 의외의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한국의 이주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작업을 주로 해온 미디어아티스트 자우녕의 작업이 그렇다. 나룻배를 가지고 계셨던 아버님과 함께 광나루에 살았던 작가는 어린 시절 한강의 모래사장에서 뛰어 놀았다고 한다. 그기억 때문에 한강에 남아있는 모래를 찾아 전시하려던 것이 본래의 계획이었는데, 서울에서 남양주, 팔당댐까지 모두 걸으며 모래를 찾았지만 남아있는 모래사장은 없었다. 대신 사람들의 유품처럼 강물에 떠내려온 물건들을 발견했고 그 죽음의 잔재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시장에서 복원했다. “처음에 이 오브제들을 보았을 때 기획자의 입장에서 너무 당황했죠. 그때 저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 다른 전시물들에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는 게 보였어요.” 그렇게 자우녕의 작품은 전시장의 한 구석에서 사람들의 삶을 애도하고 기억하면서 맵핑의 범주를 고민하게 한다. 그밖에도 전시장에는 시각을 청각으로 전환한 백정기의 ‘맑은 밤 혼자 걷는다’(2011)나 일상 속 장소에 깃든 개인적인 기억과 몸의 움직임, 주관적인 감성의 흔적등을 자신만의 지도화한 김정은의 ‘부유하는 장소 맵핑Floating Place mapping’(2015) 혹은 통계를 활용한 다이어그램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접근한 맵핑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다. 경험이나 기억, 지각, 이데올로기, 사회 문제 등 지도에 담긴 주제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지도’의 복합적 성격과 가능성을 드러낸다. 한편으로 이번 전시의 상당수 작업들이 온전히 작업실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작가들이 몸으로 겪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은 예술 작품과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의 작업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한 전적으로 예술적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 같지만 끝없이 반복된 노동 이후에 찾아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공통된 숙명을 느끼게 한다.
셀가스카노의 서펜타인 파빌리온 2015
‘런던에 상륙한 사이키델릭 번데기’, ‘무지갯빛 애벌레’등은 올해 서펜타인 파빌리온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런던 하이드파크 내 위치한 현대미술관인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매년 여름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청해 선보이는 한시적인 건축 프로젝트다. 요약하자면 낮에는 카페로 쓰이고 밤에는 포럼이나 오락을 위해 활용되는 300m2 면적의 파빌리온을 세워 약 4개월가량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서펜타인 갤러리 측은 올해의 파빌리온을 지을 초청 건축가로 스페인의 건축 스튜디오 셀가스카노selgascano를 선정했다. 재미있는 디자인playful design과 대담한 색채 사용이 특징인 이들 신예 건축가가 완성한 파빌리온은 건축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한없이 가벼운 디자인 이번 파빌리온은 마치 두 마리 애벌레를 X자 형태로 겹쳐 놓은 듯한 모습인데, 스틸 프레임을 사탕 포장지같은 얇은 막과 리본이 이중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 다채로운 색깔의 이중 외피는 반투명한 플라스틱인 불소수지필름(ETFE: 콘월에 있는 온실인 에덴 프로젝트를 덮고 있는 재료)으로 만들어졌다. 방문객들은 파빌리온의 여러 구멍을 통해 자유롭게 들어가고 나갈 수 있으며, 구조물의 외부와 내부 레이어 사이의 ‘비밀 통로secret corridor’를 통과할 수도 있다. 건축가는 대상지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런던에서 이동하는 방식에서 이 작업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레이어가 많아서 혼돈스럽지만 구조화된 흐름을 보여주는 런던의 지하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영국의 왕립 공원에 번데기 모양의 파빌리온을 만든 셀가스카노는 부부 건축가인 호세 가스José Selgas와 루시아 카노Lucía Cano가 1998년 마드리드에서 설립한 건축설계사무소다. 셀가스카노의 작업은 건축에서 드물게 쓰이는 합성 재료synthetic materials나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이들은 독특한 색채와 자연을 참조하는 디자인을 추구했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이나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를 설명한다. 셀가스카노는 대중이 “구조, 빛, 투명성, 그림자, 가벼움, 형태, 예민함, 변화, 놀람, 색채 그리고 재료와 같은 단순한 요소를 통해 건축을 경험”하길 바랐다. 그 결과 탄생한 파빌리온의 “각 출입구는 색채와 빛 그리고 놀라운 형태의 공간을 통해 특별한 여행을 허락한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디렉터인 줄리아 페이튼-존스Julia Peyton-Jones는 한 인터뷰에서 이번 파빌리온이 “여름내내 사람들이 만나고 커피를 마시고 생생한 이벤트가 펼쳐지는 장소”라며, 올해의 프로젝트가 ‘파티 파빌리온’이 되기를 희망했다고 했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매년 여름 금요일을 택해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 열리는 이벤트 무대인 ‘공원의 밤Park Nights’을 기획해왔다. 올해 프로그램으로는 음악, 공연, 토크, 영화상영 등이 있다. 이러한 시즌은 서펜타인 갤러리의 공동 디렉터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매년 10월진행하는 마라톤 행사와 함께 절정을 이룬다. 실제 올해 파빌리온의 심장부는 카페와 같이 사람들이 모이는 오픈스페이스다. 영국의 홍차 전문 브랜드인 포트넘앤 매이슨Fortum & Mason은 파빌리온 내에 베이스를 차리고 아이스크림 카트를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파빌리온에서 아이스크림뿐만 아니라 이 브랜드를 유명하게 만든 애프터눈티 세트인 햄퍼링Hamperling도 즐길 수 있다. 이들의 디자인 의도는 매혹적으로 작동한다. 화창한 날이면 파빌리온의 벽과 바닥은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에 의해 몽롱한 색깔이 어른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파빌리온 내부의 조명에 무지개처럼 (혹은 신호등처럼) 빛나는 ‘번데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미 이곳은 “인스타그래머들의 파라다이스”가 되었다.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instagram에서는 이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는 동굴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다양한 포즈를 취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셀가스 역시 사진 재생이 파빌리온의 핵심 부분임을 인정했다.1 재미와 기능 사이 셀가스카노의 파빌리온은 투명성과 가벼움은 확보했으나 디테일과 안전 문제에 대한 지적은 면하지 못했다. 사실 리본 테이프가 스틸 프레임에 아슬아슬하게 엮여 있는 모습은 미덥지 않다.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면 이 장난기 넘치지만 연약한 구조물이 자신의 모습을 지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2 그래서 건축의 기본적인 기능을 충족시키기 못하는 이 파빌리온은 ‘건축architecture’이 아니라 ‘사물thing’이라는 비판을 불러 오기도 한다. 한 건축 비평가는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는 미스 반 데어 로에 Mies van der Rohe의 경구를 떠올리며, “이 파빌리온은 6개월 동안 디자인되고 완성되는, 툭 등장했다 사라지는 재미있는 궁전이며 건축적 미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3 반면 셀가스와 카노는 이 파빌리온이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진행 중인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완벽하고 세련된 보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여 실험하는 기회”라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번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디자인에 대한 일각의 비판(즉 디테일이 결여되었다거나 조잡하다는 평가)은 일부 짧은 조성 기간이나 제한된 예산 등의 기본 조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 셀가스는 한 인터뷰에서 제작비와 시간 부족으로 한 가지 재료만을 사용하려던 원래 계획을 변경했다고 밝히기도 했다.4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건축가 초청부터 완성까지 최대 6개월을 넘지 않는다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위한 예산은 없다. 파빌리온의 조성 비용은 후원―올해의 주요 후원은 국제적 금융기업인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가 했다―이나 현물지원, 그리고 완성된 구조물의 판매를 통해 충당된다. 그러나 이 판매 금액은 전체 비용의 40%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미 스밀랸 라디치Smiljan Radi 의 2014년 파빌리온은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Hauser & Wirth art gallery로 옮겨졌다. 올해의 파빌리온도 세컨드 홈Second Home에 팔려 LA에서 두 번째 삶을 시작할 예정이다. 경비는 많이 들지만 수명은 짧은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상당한 모금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이 좀더 스펙터클하고 오락적 성격을 강화한 구조물을 만들도록 압력을 가한다는 주장5도 설득력을 가진다.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실제 프로젝트에 비해 훨씬 더 실험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제작비 조달의 한계 앞에서 스폰서를 위한 기능 위주의, 수집 가능한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실험적인 공공 프로젝트의 가치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지난 2000년 서펜타인 갤러리의 후원금 모금 파티를 위해 자하 하디드Zaha Hadid에게 설계를 의뢰한 임시 야외 천막이 예상 외로 인기를 얻으면서 연례행사로 발전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런 일시적인 프로젝트는 드문 일이었고, 서펜타인 갤러리는 파빌리온 시리즈를 통해 영국 안팎에서 현대미술을 선도하는 공공 갤러리로 거듭날 수 있었다.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혁신성은 지속적으로 건축 실무의 영토를 넓혀 왔지만 영국에서는 작업하지 않았던 신진 건축가를 초청하는 작가 선정 기준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그간 렘 쿨하스Rem Koolhaas, 프랭크 게리Frank Gehry,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등 스타 건축가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2013년의 소우 후지모토Sou Fujimoto, 2014년의 스밀랸 라디치 그리고 올해 셀가스카노 등은 고국 밖에서의 작업이 드문,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건축가들이다. 이들은 연간 30만 명이 방문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활동의 범위를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이 파빌리온이 예술과 사회·문화적인 행사들과 결합되며 대중과의 신선한 만남을 주선한다는 점도 성공의 요인이다. 그러나 어느덧 15주년을 맞이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문제점 역시 지적되는 최근, 혹자는 서펜타인 파빌리온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제 갤러리의 앞마당을 넘어, 좀더 다양한 경계에 있는 디자인을 지원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번 파빌리온이 재료의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는 혁신적이고 매혹적인 건축인지 혹은 한시적이고 불완전한 그 무엇에 불과한지는 논쟁거리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건축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고, 보다많은 사람들에게 건축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후원을 받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건축의 본질을 탐구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공공적 가치는 아직 유효한듯하다.
[시네마 스케이프] 암살
“경성,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올 여름 대중적 성공을 거둔 영화 ‘암살’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은 경성 암살 작전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에서 경성은 커피라는 것을 마실 수 있는 곳, 즉 근대화된 도시를 의미한다. 그녀는 아기 때 유모의 품에 안긴 채 만주에 온 후 간도 학살을 목격하고 독립군의 명사수가 되었다. 그녀가 처음 접하게 될 경성의 낯선 근대 풍경은 영화에서 어떤모습일까. 1930년대의 경성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정치, 경제, 종교, 군사, 교육의 중추 기능을 집중시킨 도시다. 1940년 조선총독부의 외주로 만든 영화 ‘경성’은 경성의 하루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당시의 실제 풍경을 볼 수 있다. 새벽에 기차가 경성역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에는 활기찬 일상과 화려한 본정의 밤거리가 담겨 있지만, 지배자의 시선으로 대상화한 경성 풍경이 주를 이룬다. 최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몇 편 발표되었지만 당시의 풍경을 엿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영화 ‘암살’은 1910년대의 손탁 호텔부터 영화 속 주요 배경인 1933년의 경성역, 미쓰코시 백화점과 선은전 광장, 명치정과 아네모네 카페, 서소문거리와 주유소를 비교적 세심하게 재현하고 있다. 남산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신사이로는 만리재와 경성역의 원경까지 볼 수 있다. 선전용 영화가 아니면 엽서나 사진 같이 박제된 이미지로만 접했던 근대 태동기의 풍경이 담겨 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고대의 유산, 물
#57 로마 시민을 위한 물 - 기원전 4세기, 아콰에둑투스 에어컨은 물론 없고 선풍기도 잘 모르는 베를린에서 35도를 오가는 폭염이 2주일 이상 계속되고 있다. 더위에 멍해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로지 하나, ‘물’이다. 조경사에서 물이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서구의 정원은 물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식물이 가장 중요했겠지만 물 없이 자랄 수 있는 식물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물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금껏 보아 온 드넓은 풍경 호수의 잔잔함이 아니라솟구치고 쏟아져 내리며 물보라를 뿌리는 시원함에 대한 이야기가 좋을 것이다. 오백 개 넘는 분수가 마구 솟구치는 빌라 데스테Villa d’Este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원에 물을 정성스럽게 담아낸 것은 이미 고대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잠시 고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아득한 옛날, 정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은 하필 건조하고 더운 지역이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물론이고 그리스와 로마 역시 더운 곳이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자연적인 오아시스에 만족하지 않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산의 원천에서 물을 끌어다 마른 땅을 적셔 평야를 만들었고, 도시가 형성된 후부터는 고도의 관수 시스템을 완성했다.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파라다이스 정원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관수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 정원의 기원이 메소포타미아에 있고 메소포타미아 정원의 구조를 결정한 것이 관수 시스템이었으므로 서구 정원의 기하학이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해석도 있다.1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면적을 고루 적시려면 수로를 격자형으로 정연히 배치하는 것이 가장 합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원에 가장 먼저 수로가 등장했다. 더불어 수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샘 혹은 분수가 있었고 수로의 물이 모이는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연못의 물은 다시 지하나 지상의 수로로 빠져나가 정원 밖의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천 시스템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려면 정원 밖에도 수로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베를린처럼 땅만 조금 파면 물이 나오는 곳이라면 정원에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퍼 올렸을 것이다. 한국처럼 산이 많은 곳이라면 뒷산 골짜기에 졸졸 흐르는 계류를 끌어다 썼을 것이다. 그러나 사막에 도시를 세웠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참 많은 수고를 하여 물을 끌어다 대었으므로 그 덕에 엔지니어링이 남다르게 발달할 수 있었다. 기왕 수고하는 김에 돌을 반듯하게 깎아 수로를 만들어 보기 좋게 했으며 물이 흘러나오는 샘도 동물 모양이나 꽃 모양으로 아름답게 장식했다. 수압을 이용해 물을 역류시키는 기술도 터득했던 사람들이었기에 분수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상하수도 시스템이 농경 문화와 함께 발달했고 도시를 존재하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고대의 물 공급 시스템이 현재의 상하수도 시스템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 기술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스로 전해지고 그리스에서 다시 로마로 전해지면서 극치를 이루었다. 아콰에둑투스aquaeductus2라고 불리는 로마의 물 공급 시스템은 가히 기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며 로마 엔지니어링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지금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지를 다니다 보면 계곡에 교량처럼 생긴 석조 구조물이 더러 남아있는데, 많은 이들이 이 교량을 아콰에둑투스라고 이해하고 있다(가르교 사진 참조). 그러나 아콰에둑투스는 본래 샘, 수로, 저수지 등을 포함한 물 공급 시스템 전체를 말한다. 펌프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해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했다. 속도를 조절해야했으므로 근소한 경사(0.035~0.37%)를 주면서 수로를 연결했는데, 물을 보호하고 증발을 막기 위해 전 연장의 85%는 지하에 터널을 만들어 흐르게 했다. 다만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곳에는 교량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으면 펌프를 써서 끌어올렸겠지만 당시의 역류 기술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치형으로 운치 있게 만든 것은 미학적 이유보다는 구조적 이유 때문이었다. 2층이나 3층으로 지은 것 역시 골짜기의 깊이, 즉 교량의 높이에 따라 기둥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3 그 결과로 숨을 죽이게 하는 건축 미학이 탄생했다. 수로의 폭은 대개 1m 남짓, 깊이는 평균 1.5m 정도였으니 상당한 양의 물이 흘렀다. 산 위의 샘물을 우선 저수지에 모았다가 이를 수로로 흘려보냈으며 물이 도시에 도착하면 다시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하 탱크에 모았다. 말이 지하 탱크이지 그 규모나 축조 양식은 대형 성당을 방불케 했다. 그래서 이를 카스텔 룸, 즉 ‘성’이라고 불렀다. 이 카스텔 룸에서 다시 세 개의 용수로가 각각 갈라져 나갔다. 하나는 도시 곳곳에 설치된 공용 수도에 공급되었고, 그 다음 테르메라고 불리는 공중목욕탕에 공급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각 주택에 보내졌다. 이런 시스템이 처음 만들어진 때는 기원전 312년, 아직 공화정이던 시절이었다. 이후 인구가 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물의 수요도 증가했으므로여러 개의 아콰에둑투스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약 700년이 지난 서기 400년경에는 로마 시에만 11개의 시스템에 총 연장 504km의 수로가 연결되었다. 공중목욕탕이 11개소, 사설 스파가 856개소, 그리고 도시 전역에 1,352개의 공공 분수가 있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 가면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분수는 본래 장식용이 아니라 공공 수도 시설이었다. 여기서 종일 물이 졸졸 흘러 누구나 마시고 쓸 수 있었다. 주택 대부분에 별도의 수도가 연결되어 있었으나 서민 연립 주택의 경우 1층에만 수도가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여기서 물을 길어다 썼다. 이렇게 하여 고대 로마인들은 매일 목욕을 하며 물을 펑펑 썼고 물 소비량으로 문화적 수준을 가늠했다. 당시 1인당 하루 물 소비량이 현재 유럽인들 소비량의 두 배 이상이었다.4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게르만족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게르만족에 속하는 고트족이었다. 서기 537년 로마를 포위하고 공략했던 고트족은 도시로 들어가는 모든 수로를 메우거나 파괴해 버렸다. 이후 로마 제국이 무너지면서 그들의 화려한 물 문화 역시 말라버렸다. 로마의 모든 문화와 문명은 멀리 비잔틴 제국으로 이사 갔고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는 서서히 퇴색해 갔다. 이후 바티칸에 교황청이 세워지면서 교황들이 아콰에둑투스를 일부 복원하긴 했지만 그때의 영광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물론 아콰에둑투스는 로마 시에만 설치된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곳곳은 물론 점령지에도 수로를 놓고 스파를 만들어 로마 제국의 위상을 높였다. 지금도 동으로는 터키, 서로는 영국, 북으로는 독일까지 아콰에둑투스와 로마의 분수, 테르메의 흔적이 수없이 남아 있다. 조경이나 건축을 하는 사람치고 아콰에둑투스의 높은 교량을 보고 가슴 뛰지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파리 시트로앵 공원의 디자이너들 역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콰에둑투스에서 영감을 받아 수로 시스템을 만들고 공원의 동쪽 경계로 삼았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취약한 도시, 회복탄력적인 도시
취약한 도시 화재, 화산 활동, 산사태, 질병, 오염, 지진, 쓰나미, 홍수, 태풍, 폭염. 현대 사회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대표적인 열 가지 환경 재해다. 최근 발생한 국내의 메르스 사태부터 2012년 가을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Sandy로 인한 미국동부의 초토화,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사회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도호쿠東北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붕괴에 이르기까지 각종 재해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그림1). 특히 제한된 공간 안에 많은 사람과 자산이 밀집해 있는 도시에서는 한 번 재해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증폭되기 쉽고 이에 따른 트라우마도 깊다. 더욱이 개발이 완료된 도시를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덜 취약한 지역으로 도시의 일부를 옮기기 위해서는 보상과 이주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 도시의 취약성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그림2). 여기서 ‘취약성vulnerability’이란 특정 재해 위협에 대해 한 사회가 대처하거나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위험성의 정도를 말한다. 이렇게 보면 취약성은 재해 자체의 규모나 지속 시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지역 사회의 민감도, 피해 후 정상 상태로 회복하는 속도와 역량, 과거의피해 경험을 기억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학습 능력, 그리고 재해와 관련된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관용과 사회적 시선까지도 총체적인 취약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잠재적 위험, 확률, 리스크 2013년 3월, 포항시 용흥동 주택가에서 작은 산불이 일어났다. 한 초등학교 뒷산에서 점화된 불씨는 강한 바람을 타고 주변 산림에 옮겨 붙었고 이후 많은 수의 학교와 주택이 밀집한 지역까지 4km 이상 이동하며 대형 산불로 번졌다. 진화를 위해 소방 인력 약 2,500명이 동원되었으나 그 피해는 엄청났다. 주택 50동 이상이 폐허로 변했고 주민1,500여 명이 대피해야 했다.1 용흥동 산불의 발생 과정을 재구성해봄으로써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재해의 여러 개념을 정리해 보자. 우선 도심지에서 산불은 왜 발생하는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누군가의 고의적인 또는 부주의한 발화다. 물론 자연 현상에 의해 불씨가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용흥동에서는 한 중학생의 불장난이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발화가 도시 공간 어디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주 불을 사용하는 외부 공간, 이를테면 주택지 인근에서 논밭두렁을 태우는 곳,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소각하는 장소, 빈번한 흡연이 이루어지는 공터가 잠재적으로 도심 산불의 원인을 제공한다. 이러한 행태와 장소 특성을 포괄하여 잠재적 위험hazard이라 부른다. 하지만 잠재적 위험이 늘 대규모 피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연 상태의 산림과 달리 도심지에서는 발화 지점에 낙엽이나 건조한 잡초가 집중적으로 축적되어 있거나 그 주변에 목조 주택과 슬레이트 구조물처럼 불에 타기 쉬운 시설이 분포할 때, 그리고 건조한 날 발생한 불이 큰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요소가 모여 발생 확률probability을 결정한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적 위험이 높은 발생 확률을 만나 대형 인명·재산 피해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즉 원인이 결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방아쇠가 필요하다. 용흥동에서는 산불이 확산되는 경로를 따라 가연성 물질이 연속적으로 있었다. 그리고 다수의 주택과 학교 시설이 경로를 따라 위치해 있었고, 특히 1980년대 이후 야산을 따라 무허가 주택이 집중적으로 지어지면서 사회적 약자와 노인 계층이 거주하기 시작했다.3 산불발생지 주변에는 불법 노상 주차가 협소한 골목을 막고 있어 소방차의 신속한 접근과 진화 작업이 어려웠다. 이렇게 당겨진 방아쇠가 일으킨 결과인 대형 산불과 관련 피해를 리스크risk라고 부른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같이 하기
이번 마지막 글에서는 여성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던 내가 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꾼 후 그 초기부터 현재까지 디자인 프로젝트는 물론 연구와 강의까지 모든 활동을 함께 해 온 건축가 파트너이자 남편인 매튜 줄Matthew Jull과의 대화를 담고자 한다. 설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공동 작업의 과정과 팀의 시너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작은 회사의 특성상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팀 자체가 바뀔 때가 많고 학교에서 직접 가르치는 학생들도 많이 참여시키다보니 그렇게 만들어진 팀원간의 궁합까지 매번 다른 것이 사실이다. ‘같이 하기’는 쿠토노톡KUTONOTUK과 북극 디자인 그룹Arctic Design Group(ADG)의 공동 대표로서 나와 매튜 줄이 디자인과 연구를 병행하는 방법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다. 영어대화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뉘앙스가 조금 달라지기도 했지만, 되도록 평소 대화할 때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조리나(이하 조): 우리 둘만의 돋보이는 공통점은 일종의 아웃사이더였던 게 아닐까? 지금은 디자이너로 인정받으며 활동하고 있지만, 다른 대학원생들과 비교하면 디자인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디자인 비전공자들이었잖아. 결국 대학원에서 각각 건축과 조경 학위를 수여받긴 했지만 디자인은 우리에게 두번째 길이었어. 너는 물리학 박사를 마치고 연구원 생활까지 하다가 건축으로 진로를 바꾼 경우고, 나 역시 정치학과 여성학을 공부하고 NGO에서 일하다가 조경의 길을 선택한 거잖아. 학부 때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점이 현재 우리 설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 매튜 줄(이하 줄): 글쎄. 하나 확실한 건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학부 전공으로 건축이나 조경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러지 않도록 말리겠다는 거야. 우리의 배경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자인은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 특히 지금 시대의 건축가나 조경가는 다방면에 걸쳐 많이 알아야 하는 제너럴리스트임이 분명한데다 서로 다른 가치와 사고 방법을 연결하고 종합할 수 있는 지혜를 요구하잖아. 물론 도시의 물 순환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거나 공공 건축을 위주로 설계를 진행했다거나 구체적인 전문 분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조: 하지만 우리의 그런 배경이 디자인에 매번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것은 아니잖아. 줄: 그게 아이러니한데,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아. 하지만 공간 또는 디자인을 정의하고 해석하는 방향에서 묻어나오는 것 같아. 우리가 북극 디자인 그룹을 만든 이유 중의 하나도 디자인 배경이 없는 사람들과 디자인을 이야기해 보기 위해서잖아? 조: 뭐.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난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개념 중의 하나가 세상의 모든 것이 문화적 구성체cultural construct라는 점이었던 것 같아. ‘태생적 운명’이라는 개념에 도전하면서 무엇이 되었든 인간 사회에서는 역시 각자 생각하고 말하기 나름이라고 주장하는 거지. 진리도 언젠가는 변할 문화적 사상이라는 얘기잖아. 조경을 하면서 특히 ‘자연’에 관한 정의를 내릴 때, 이런 여성학의 배경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자연’ 또한 언제 어디서나 색다르게 제조manufacture될 수 있는 문화적인 매체라는 거지. 또 한 시대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지 NGO에서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꾼다’거나 ‘바꾸겠어!’ 같은 슬로건을 보면 오히려 사기가 떨어져. 안 믿겨지더라고. (웃음) 조리나는 1982년 생으로, 미국 웰슬리 대학교(Wellesley College)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미국 마이클 반 발켄버그 어소시에이츠(Michael Van ValkenburghAssociates)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맥스완 아키텍트 + 어바니스트(Maxwan Architects + Urbanists)에서 다양한 도시설계, 조경,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Virginia) 조경건축학과 대학원 강사로 있으며, 하버드 GSD에서 초청강사로 가르친 바 있다. 건축가인 매튜 줄(Matthew Jull)과 쿠토노톡(KUTONOTUK)의 공동 대표로서 헬싱키 구겐하임(HelsinkiGuggenheim)과 헬싱키 공공 도서관(Helsinki Public Library),MoMA PS1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MoMA PS1 Young ArchitectsProgram), 유로판(Europan) 등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수상한바 있다. 또한 북극 디자인 그룹(Arctic Design Group)의 대표로서 미국 워싱턴 D.C.의 정책 연구 기관과 협력하여 북극 도시와 극한 랜드스케이프(extreme landscapes)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www.kutonotuk.com | www.arcticdesigngroup.org 매튜 줄(Matthew Jull)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지구물리학(Theoretical Geophysics)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파리의 지구물리학 연구소(Institut de Physique du Globe)와 미국의 우즈 홀 해양 연구소(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하버드 GSD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SOM(Skidmore, Owings & Merrill LLP), 스티븐 홀 아키텍트(Steven Holl Architects), MIT 센서블 시티 랩(SENSEable CityLab)에서 건축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2008~2012년에는 네덜란드 OMA/Rem Koolhaas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건축학과 조교수(Assistant Professor)이자 조리나와 쿠토노톡 및 북극 디자인 그룹의 공동 대표로 있다. www.kutonotuk.com | www.arcticdesigngroup.org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로리 올린
조경가 로리 올린은 최근 조지 루카스 등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예술훈장National Medal of Arts을 수여 받았다. 이 훈장은 미국 정부가 예술가에게 주는 가장 영예로운 상이다. 역대에 국가예술훈장을 받은 조경가는 단 세 명, 댄 카일리, 로렌스 핼프린, 그리고 이안 맥하그가 있다. 조지 루카스는 누구나 알지만 일반인 중에 로리 올린을 들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조경가의 사회적 기여와 개인적 성취가 현대 문화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영화감독과 나란히 거론되었다는 점에서 조경계에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만큼 올린은 단지 훌륭한 조경 디자인을 넘어, 대중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사회의 문화적 토대 자체를 구축해 온 인물이다. 브라이언트 파크, 콜럼버스 서클, 배터리 파크 시티, 게티 센터, 워싱턴 모뉴먼트 등 기념비적인 작업을 해 왔으며, 50여 년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가르쳤고 하버드 대학교와 칭화 대학교 조경학과의 학과장을 역임하는 등 실무와 교육의 병행을 통해 현재 세계 조경계를 이끌고 있는 수많은 중요한 디자이너를 길러냈다. 어떤 평론가들은 올린을 옴스테드 이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조경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의 관심과 주제는 대부분 미국 도시의 이야기지만, 반세기에 걸친 통찰과 지혜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과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것이기에 우리 도시에도 큰 교훈을 준다. 개발과 산업, 성장의 시대를 쉼 없이 달려 온 한국 사회도 이제 저성장과 청년 실업, 다양성과 복지를 화두로 국면을 전환하고 있고 조경 및 관련 산업 또한 여기에 발맞추어 변하고 혁신해야 함을 누구나 느끼고 있다. 로리 올린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미국사회가 이미 1970~1980년대를 거치며 혹독히 겪은 사회적 혼란과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관찰할 수 있다. Q. 알래스카 출신이라는 개인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해 달라. A. 대학에서는 원래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 나의 눈으로 봤을 때 알래스카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은 토목 엔지니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한두 해 다녀보니 토목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예술적이지 않았다. 이미 학기가 지나고 있었고 장학금도 받고 있었지만 뭔가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건축을 해보자는 결심이었다. 본토에 와서 고향과 가장 가깝고 가장 비용이 적게 들어 택한 학교가 워싱턴 주립대학교였다. 당시 알래스카가 주로 승격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워싱턴 주, 오레곤 주, 아이다호 주는 알래스카 학생에게 주민 수준의 등록금 혜택을 주고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학비 보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매년 여름마다 다음 학기를 위한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 알래스카 도로건설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결과적으로 워싱턴에서 4년을 보낸 것은 참으로행운이었다. 당시 건축학부에서 도시계획과 조경학과를 신설했기 때문이다. 명문 학교인 하버드, 버클리, 미시간 등을 모델로 삼으려 했다. 또 하나의 행운은 보자르의 전통 속에서 훈련 받은 노교수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워싱턴 주립 대학교는 역사적인 안목을 갖춘디자인을 교육하는 데 매우 뛰어났다는 점이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혹독하게 드로잉 연습을 시켰다. 4년 내내 거의 매일같이 그리고 또 그렸다. 2학년 때 워싱턴대학교는 리차드 하그Richard Haag를 영입해 조경학과를 신설했다. 그가 커리큘럼을 짜고 이사회의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조경학과에 속한 학생들이 없었기때문에 우리 학년의 스튜디오를 담당하게 되었다. 나는 일 년 동안 리차드 하그 스타일의 이론과 역사 수업에 푹 빠졌고 그것은 정말 좋았다. 그는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스탠 화이트Stan White의 제자였는데 화이트는 옴스테드의 사무실 출신이었다. 히데오 사사키 등이 그의 동료였다. 리차드 하그는 대단한 선생이었다. 그것이 세 번째 행운이다. 리차드는 사무실을 열었는데 학생 중 드로잉에 능한 몇 명을 뽑았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실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나에게 무척 자연스런 일이었다. 졸업 후엔 캘리포니아에서 육군에 복무했고 시애틀의 한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리차드 하그 사무실과 자주 협업했고 나의 학교 친구들이 리차드의 직원이었기에 건축과 조경의 협업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1964년도에 나는 뉴욕으로 이주해 당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었던 에드워드 라라비 반스Edward Larrabee Barnes의 회사에서 건축가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이미 알래스카에서 일하면서 지형을 만들고 도로를 설계하는 데 익숙했고 조경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캠퍼스 등의 대규모 마스터플랜 등을 집중적으로 맡게 됐다. 때는 1960년대였다. 당시의 상당수 젊은이처럼 나 또한 사회적으로 공인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여행을 시작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오두막에서 생활하고 돌아다니다가 돈이 떨어지면 이런 저런 일을 하는 식이었다. 결국 시애틀로 돌아왔는데 이제 정말 그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많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유럽을 보고 싶어 장학금을 신청했다. 풀브라이트, 롬 프라이즈Rome Prize, 구겐하임 재단에 지원했다. 어느 것 하나라도 합격하게 되면 고향을 벗어날 이유가 되기 때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셋 다 합격하게 되었다. 결국 구겐하임과 로마의 미국 재단을 설득해 양쪽의 프로그램을 모두 누리는 것으로 조정했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 기반을 두고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해 왔다.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고, 주요 작품이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 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이며, 저서로 『시티오브뉴욕』(공저)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서 조경 설계를 연구하며 학생들이만드는 것의 기쁨을 알아가도록 돕고 있다.
[재료와 디테일] 화분, 장식을 넘어 생활로
아침 출근길에 버스를 타기 전에 늘 집 앞 식당을 거치곤 한다. 맛이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곳이었지만 글의 재료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식당 앞 풍경은 훌륭한 영감을 주었다. 상도동 급경사지의 지형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옹벽 앞에서 홀로 외롭게 그러나 당당하게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작은 화분과 꽃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흙을 담을 땅조차 부족한 곳에 억지로 공간을 만들어 식물을 심는다고 잘 자라줄지도 의문이고, 이런 경우엔 관리의 어려움도 뒤따른다. 큰 나무가 필요하지 않다면 이렇게 작은 화분을 이용하는 것이 녹시율도 높이고 경관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좋은 방법이란걸 식당 주인의 지혜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주위에 화분은 흔하다. 관리가 용이하면서 실내분위기를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인테리어 소재이기도 하다. 도심의 흔한 찻집에서도 실내에 녹색을 들이려는 노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큰 나무에서 작은 나무 또는 인조목까지 화분을 채우는 식물을 다양화할 뿐만 아니라, 화분을 바닥에 그냥 내려놓거나 벽이나 테라스 난간에 걸어두는 등 활용법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화분의 활용은 실내에서 흙으로 식물의 생육 조건을 만드는 것이 힘들다는 걸 방증하기도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유지 관리의 어려움에 있을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공간 공감] 박수근미술관
박수근미술관이 그의 고향 강원도 양구에 문을 연 지 14년이 지났다. 대표적인 작가 중심 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이 미술관은 박수근기념관, 현대미술관, 박수근파빌리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건물 모두 건축가 이종호가 설계했다. 미술관 건립 후 뜻있는 여러 사람들이 박수근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 근현대 미술 작품을 기증하여 미술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낮은 언덕에 둘러싸여 있는 세 전시관은 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주변 풍광을 거스르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특히 기념관과 파빌리온은 박수근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인 ‘마티에르’를 건축적으로 해석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종호는 설계 노트에 이렇게 기록한 바 있다. “박수근의 작업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일련의 전개 과정이 중요하다. 대지에 미술관을 새겨 나갔다. 박수근의 그림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새겨진 것이다.” 미술관의 외벽으로 화강석 깬돌을 성곽처럼 쌓았다. 여기에서 박수근 고유의 무채색의 거친 마티에르를 조우할 수 있다. 이 석축은 건축 외벽이라기보다는 성곽처럼 보이며 박수근 그림의 연장처럼 느껴진다. 관람객은 이 석축을 강렬하게 경험하며 미술관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누구든 박수근 회화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밖에 없다. 미술관 내부에 들어서면 박수근의 그림들이 생각보다 작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크기가 작다고 해서 결코 감흥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림의 소박함과 진실함에 감동받게 되고 그런 감동이 건축적 체험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기념관의 지붕 위를 걸어 박수근파빌리온에 이르는 길은 성곽에 닿아 있는 기다란 산기슭을 따라 나 있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최우수작: 산림천택 여민공지山林川澤 與民共之
산림천택 여민공지 평평한 땅에 못이 많다는 의미의 평택. 이는 곧 산림천택山林川澤을 의미한다. ‘산과 숲’, ‘내와 못’을 일컫는 산림천택은 오랫동안 동식물의 서식처이자 인류의 생활공간이었다. 평택은 과거 ‘여덟 갈래의 물줄기가 에워싸고 흐르는 지형’을 의미하는 하팔현河八縣이라고도 불렸으며 지난 100년간 그러한 산림천택을 ‘백성들이 공유하도록 하는 與民共之(여민공지)’을 도시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산림천택 여민공지’라는 설계 개념은 이러한 터를 활용하여 국제적 수준의 도시 환경을 위한 기틀을 다지고 산림천택의 공간을 시민들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여 평택 고덕 신도시가 미래의 국제적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변 공원 복합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는 수변 중심 공원을 제안한다. 도시민의 야외 활동 유형의 변화는 물론 증가하는 자연 체험에 대한 요구와 도심 생산 활동 참여를 고려한 프로그램과 관련 시설을 도입했다. 수변 데크, 모래사장, 물놀이 공간과 같은 휴게 공간과 엑스스포츠로 대표되는 물을 이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개발사업 및 택지개발사업(1단계) 조경(공원·녹지)
LH가 주최한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개발사업 및 택지개발사업(1단계) 조경(공원·녹지)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공모전의 결과가 지난 7월 21일 발표되었다. 최우수작으로는 수성엔지니어링과 어리연조경디자인 컨소시엄이제출한 ‘산림천택 여민공지’가 선정되었다. 우수작에는제이티이엔지의 제출안이 선정되었으며, 가원조경설계사무소와 디알에이디자인그룹 컨소시엄의 제출안이장려작으로 뽑혔다. 발주LH 위치경기도 평택시 서정동·장당동, 고덕면 일원 사업면적2,677,064m2 조경면적501,864m2 추정공사비466억원 이하 상금 최우수작(1점)_조경(공원·녹지 등)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권, 용역금액: 11억 2,200만원 이하(관리 용역 포함) 우수작(1점)_3개 업체 응모시: 상금 2,000만원/ 4개 업체 이상 응모시: 상금 2,500만원 장려작(1점)_3개 업체 응모시: 상금 1,000만원/ 4개 업체 이상 응모시: 상금 1,500만원 참여작(전체)_1,000만원 이하(3,000만원/4위 이하 업체수) 심사위원 김진오(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교수) 이상석(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강찬수·안상욱·김선일·김호겸(LH 조경) 이명훈(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 박영규(LH 도시계획) 유제호(LH 토목)
우수작: 그린 플러그Green Plug
플러그에 대한 단상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러그. 사전적 의미의 ‘플러그’는 전기 회로를 ‘쉽게 접속하여 사용하기 위하여’ 코드 끝에 부착하는 ‘접속 기구’다. 또한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을 때는 ‘작동의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갖게 되고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고 가변적인 접속을 허락한다. ‘쉽게 접속하기 위한 편리함’과 ‘작동의 매개체’로서의 플러그. 그렇다면 사람들이 도시에 보다 쉽게 접속해서, 도시를 보다 활력 있고 생동감 있게 작동시키는 ‘도시의 플러그urban plug’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길, 공원 등 다양한 오픈스페이스는 도시를 작동시키는 매개 공간으로서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단, 매개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위한 오픈스페이스는 다양한 커뮤니티의 요구를 수용하고 커뮤니티간의 네트워크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하나의 용도에 특정화되지 않는 가변적이고 융통적인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오픈스페이스는 사람들을 보다 쉽게 도시에 접속시켜 도시를 생동감 있게 작동시키는 ‘도시의 그린 플러그’가 된다. ‘그린 플러그Green Plug’는 도시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 넣어 ‘작동하는 도시operating city’ 동탄의 모습을 제안한다.
최우수작: 참[站]: 삶의 쉼표를 주는 공원
도시의 가파른 성장을 통해 도시민에게 부족한 삶의 보금자리는 늘어났지만, 도시인의 삶은 점점 더 여백 없이 무한 질주를 강요받고 있다. 동탄 신도시의 4단계 공원은 도시민의 삶에 ‘쉼표’가 될 것이다. 4단계 대상지는 오산천에서 무봉산까지 걸쳐 있어 수직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을 보인다. ‘참’은 동탄 신도시 4단계 공원의 지형적 특성인 수직적 고저차를 분절하고 천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선형의 지루함을 조절하여 도시인에게 ‘삶의 쉼표’를 주는 설계 전략이다. 동탄고유의 경관인 들녘, 여울, 마루를 모티브로 하여 세 가지 참의 유형을 고안했으며 수평적으로는 10분 거리의 간격으로, 수직적으로는 10m 높이의 간격으로 계획했다. 도시 생태원Urban Eco Garden(근린공원 1, 2, 3호) 대상지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부이며 개발로 인한 훼손이 덜하다. 높은 자연성을 활용하여 현재의 지형과 식생은 변형시키지 않고 수직적으로 분리된 동선과 공간을 연결하여 인위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변화를 즐기도록 한다. 선납제 연지원(근린공원 2호)을 중심으로 도시의 동서 녹지축을 따라 ‘하천-들-도시-숲’의 한국적 경관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참’은 공원과 도시가 결합하는 주요 결절점, 주요 전망 공간 등에 위치하며 ‘한국적 신도시’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돕는다.
화성동탄(2)지구 택지개발사업 4단계 조경(공원·녹지)
LH(사장 이재영)가 주최한 ‘화성동탄(2)지구 택지개발사업4단계 조경(공원·녹지)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설계공모’의결과가 지난 7월 20일 발표되었다. 최우수작에는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와 동부엔지니어링의 컨소시엄이 제출한 ‘참[站]: 삶의 쉼표를 주는 공원’이 선정되었다. 우수작에는 신화컨설팅과 성호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의 제출안이, 가작에는 평화엔지니어링의 제출안이 뽑혔다. 발주LH 위치경기도 화성시 석우동, 반송동, 동탄면 금곡리 등 일원 사업면적4,845,172m2(4단계) 조경면적1,272,779m2 추정공사비709억원 이하 상금 최우수작(1점)_조경(공원·녹지 등)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권, 용역금액: 17억 5,100만원 이하(관리용역 포함) 우수작(1점)_3개 업체 응모시: 상금 2,000만원/ 4개 업체 이상 응모시: 상금 2,500만원 장려작(1점)_3개 업체 응모시: 상금 1,000만원/ 4개 업체 이상 응모시: 상금 1,500만원 참여작(전체)_1,000만원 이하(3,000만원/4위 이하 업체수) 심사위원 김동엽(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안경진(건국대학교 녹지환경계획학과 교수) 김신원(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교수) 안상욱·김선일·조학제(LH 조경) 배웅규(중앙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김필규(LH 도시계획) 최은수(LH 토목)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
지난 8월 말, 원효대교 구간 완공을 마지막으로 2015년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의 모든 대상지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서울시와 한화그룹은 지난 6월 1일부터 12일까지 ‘불꽃 아이디어로 유쾌한 그늘을!’이란 미션을 내걸고 어둡고 축축했던 서울 곳곳의 고가 하부를 밝고 쾌적한 모습으로 바꾸기 위한 시민 공모를 추진해 일곱 개 팀을 선발했고 전문가 두 팀을 추가로 초청했다. 일곱 개 시민 팀은지난 7월 9일(오전 10시), 서울광장에서 개회식을 갖고 12일(오전 12시)까지 해당 공간을 바꾸는 ‘액션’을 진행했다. 심사위원단은 12, 13일 양일에 걸쳐 현장 평가를 실시하며 액션 과정의 참여율과 구현된 모습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초청작 한화 불.꽃길 / 한화 불꽃계단 한화그룹, 한컴, 커피리닷컴, 오버맨, 아이디어플랩, 컴퍼니F, HJ벽화, 배화여자대학교 지식경영동아리, 대학생연합광고동아리 애드컬리지 최우수상 버들붕어와 반딧불이 돌아왔다! 그린디자인 우수상 한강 백사장의 추억 호가든(好Garden) 한화상 한게임 한마음 P.O.P(Players Of Players)
이태원梨泰園: 한남고가 하부 공간
대상지는 남산1호터널로 이어지는 한남고가도로가 시작되는 곳 하부에 있다. 고가의 하부 공간인 대상지는 그 어떤 흥미 요소나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하지 않았고, 쓰레기가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삭막하고 넓기만 했다. 게다가 그 빈 땅은 경사지였다. 반면 대상지 반경 500m 내에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입구, 보행 육교, 문화 시설(블루스퀘어)과 주거 시설 등이 모여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이 꽤 많았고, 비교적 보행에 유리한 환경이므로 상당한 잠재력이 있는 공간이라고 해석되었다. 문제는 넓은 면적에 비해 공사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늘 그렇지만 이곳에 사람들이 머물게 하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욕망이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어도 그냥 머물며 빈둥거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예쁘게 치장하면 눈길은 한번 주겠지만 그걸로 다다. 과밀한 도심에 뻥 뚫린 구멍 같은 이 공간에 사람들이 머물 수 있어야만 소위 작동하는, 역할을 하는, 그래서 생명력이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세 가지 아이디어 소형 고압 블록 현장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을 뒤덮고 있던 소형 고압 블록이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비스듬한 경사면을 이루며 그 어떤 용도도 부여받지 못한 채 그냥 깔려 있었다. 그 재료를 잘 만져 이 공간을 전혀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디자인 엘 시공서울라데팡스 발주용산구청 공원녹지과 위치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727-33(북한남삼거리 블루스퀘어 앞) 면적약 1,000m2 완공2014. 11. 디자인 엘은 분당에 사무실을 둔 조경설계사무소다. ‘Link Landscapewith Life’를 사무실 작업의 모토로 삼고 그 첫 글자를 따 이름 지었다.10명 내외의 설계가들이 모여 작업하고 있으며, 현재 박준서 소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올해로 설립 10년째를 맞이하는 ‘엘’은 그림으로만 존재하는 설계, 지어지지 않는 설계를 지양하고 실체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설계를 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설계 해법을 찾고 그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경관과 공간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LH 본사 신사옥
천년 고을에 자리 잡은 천년나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천년 고을 진주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공공 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경남 진주에 신사옥을 조성해 지난 4월 약 1,400여 명의 직원들이 새 사옥으로 이전했다. LH 신사옥이 자리 잡은 진주혁신도시는 서쪽으로 남강을 사이에 두고 진주 시청과3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부지 서쪽에는 남강으로 유입되는 영천강이 흐르고 있으며, 동북쪽으로는 마치 달을 토해내는 듯하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 월아산月牙山이 보인다. 사옥 주변으로는 한국남동발전, 한국산업기술시험원 건물이 들어서 새로 조성된 진주혁신도시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그 주변으로는 아파트단지가 들어섰으며, 영천강과 남강 사이에는 진주종합경기장의 유려한 곡선이 펼쳐진다. LH 신사옥은 약 29,000평의 대지에 연면적 41,000평, 지상 20층 지하 2층 규모로 조성되어 각종 문화·체육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영천강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도시구조에 따라 자리 잡은 새로운 사옥은 풍요와 나눔이라는 기업 가치를 상징하는 ‘천년나무Millennium Tree’를 중심 개념으로 삼았다. 에너지절약형 건축을 지향하는 건물의 형태는 패시브 디자인을 반영해 유선형 매스로 계획되었다. 두 갈래로 뻗은 나뭇가지 형태의 저층부와 북쪽 가지에서 솟아오른 20층 규모의 타워는 마치 학이 비상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특히 건물의 정면에는 전통 문살을 입면 프레임(격자형 X-루버)으로 차용해 비정형 매스의 시각적 강렬함을 더하고 있다. 주민과 함께하는 사옥 신사옥은 LH 직원들과 관련 방문자들을 위한 업무 공간이기도 하지만 새롭게 조성된 진주혁신도시의 주민들과 진주 시민들에게 높은 질의 오픈스페이스와 각종 문화·체육 시설을 제공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신사옥은 월아산으로 향하는 통경축을 중심으로 동측에는 업무 시설과 문화·전시 시설(토지주택박물관, 홍보관), 서측에는 보육 시설과 체육 시설(실내체육관, 수영장, 헬스장, 축구장, 테니스장 등)을 배치했다. 부족한 녹지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남쪽의 근린공원 및 공개공지와 통합하여 계획했으며, 미리 조성된 북쪽의 소공원과도 자연스러운 연계를 유도했다. 따라서 이용 시설에 따라 내부 사용자와 자동차는 동측으로, 외부 주민들은 서측으로 이용 동선이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부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은 비상시 차량 동선이지만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대신 보도와 같이 바닥을 포장해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도록 했다. 기본 및 실시설계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기술제안설계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 건축설계(설계공모)무영건축+토문엔지니어링 건축(원안), DA건축(기술제안) 시공현대건설 컨소시엄(현대건설, 계룡건설, 중앙건설, 도원ENC, STX건설) 감리LH신사옥건설단 위치경상남도 진주시 충의로 19 대지면적97,165.70m2 조경면적31,350.00m2 공사기간2012.10.29 ~ 2015.3.2
경의선숲길을 거닐다
20대 초중반을 대흥동에서, 후반을 동교동에서 보내고 있다. 동아리 선후배 및 동기들과 어울려 이 주변 술집과 골목을 누비며 밤을 새고 무수한 레포트와 이력서를 동네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쓰곤 했던 내게 (현재의)경의선숲길과 그 일대는, 말하자면 나의 ‘주 무대’ 같은곳이다. 지금이야 이곳에 공원이 들어서고 주변에 번듯한 상가도 세워져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철길 일대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이 었다. 철길로 인해 오랫동안 단절되어온 탓에 철길을 사이에 두고 도시의 풍경은 낯선 느낌이 들만큼 확연히 달라졌다. 특히 서강대 학생들에게 철길 너머의 인근 하숙촌은 옆 건물 하숙생 알람 소리에 맞춰 기상한다는 농담―실제로 경험해 본 바, 단순한 우스개만은 아니다―이 있을 만큼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열악한 주거 환경과 소금 단지만큼 짠내 나는 하숙집 아주머니의 바가지로 악명 높은 동네였다. 철길 일대는 가로등이 별로 없고 으슥해 늦은 밤이면 근처를 지나가기가 망설여지는 위험 지역이기도 했다. 철길을 따라서 억센 잡초가 뒤덮고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었지만 아무도 이곳을 치우거나 가꾸지 않았다. 한때 중요한 물자와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는 경의선 철길은 도시 조직에 파묻히고 결국 지중화되어 폐쇄되면서 지역의 슬럼으로 변해갔다. ‘별 것 없는’ 공간이 사랑받는 법 5~6년 전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이 으슥한 ‘뒷골목’이 공원으로 바뀐 것을 처음 보고 느꼈던 놀라움을 말하기 위해서다. 2012년,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찾아가 봤던 경의선숲길 1단계 구간(대흥동 구간)은 규모도 크지 않고(17,450m2) 디자인이 특별히 세련된 것도 아니지만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주민들이 활발히 이용하는 ‘생기 있는 공원’이었다. 올해 개장한 경의선숲길 2단계 구간(연남동, 염리동, 새창고개 구간), 특히 연남동 구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뜨거울 정도다. SNS나 블로그 등에 공원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고 공원을 중심으로 한 상권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인근 스트리트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에서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찾는 생활형 공원이 되고 있다는 점은 이 공원이 유행처럼 인기를 끌다 금방 시들해질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느 공원처럼 탁 트인 광장이나 테마 놀이터도 없고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기도 힘든 좁고 긴 선형 공원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의선숲길권역의 문화 재생과 늘장
누구를 위한 숲길 공원인가 지난 6월 말 메르스 여파 속에서 서울시의 경의선숲길 2단계 공사(연남동, 염리동, 새창고개 구간)가 완료되었다. 6.3km에 걸친 선형 공원의 상당 부분이 개통되어 앞으로 경의선숲길은 주변 지역에 여러 가지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경의선숲길은 그 규모와 특성과 함께 의미 또한 중요하다. 우선 폐선부지 전 구간에 걸쳐 유휴 공간을 체계적으로 활용해 공원 녹지가 추가적으로 확보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울의 서북 생활권을 관통하는 녹지축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다. 이미 공원 조성과 운영 관리 과정에서도 지역 여건을 반영한 ‘문화 공원’으로서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연적이기보다는 지나치게 장식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 공원의 조경 요소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적 삶의 문화를 생태적 요소와 함께 어우러지게 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특히 서교동, 연남동, 신촌등 홍대 문화권과 크게 맞물려 있는 문화 지형적 특성을 감안하면 경의선숲길은 서북권뿐만 아니라 서울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주민 협의와 참여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시민 참여에 바탕을 두고 공원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공원이 도시 차원에 미칠 영향을 고려 하면서 향후 운영과 관리를 위한 거버넌스를 준비했는 가’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주변의 도시적 맥락보다는 경의선숲길 자체에만 의미를 국한시킨 점, 그리고 제한적인 주민 참여라는 한계는 이미 서울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상호 협약에서부터 예견되었다. 협약의 내용은 공단이 서울시에 공원 조성을 위한 부지 사용권을 제공하는 대신 서울시는 역세권 개발과 관련한 인·허가에 협조한다는 것이다. 이 협약은 서울시가 지역 생활에 기반한 장소성과 도시적 전략의 차원에서 경의선 권역을 다루기 어렵게 하는 한계선을 이미 설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역세권 개발 방식을 짚지 않을 수 없다. 거의 2km에 이르는 구간에서 실행될 대기업의 대형 역세권 개발이 주변 지역에 야기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정한은 1996년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도시연대)를 설립하여 7년간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1990년대 후반 인사동에서 ‘마을만들기’라는 개념을 이론화하고 인사동 유지 보전을 위한 작은 가게 살리기 활동을 펼쳐 인사동 지구단위계획과 문화지구 지정을 이끌어냈다. 이후 인사동과 북촌한옥마을을 기반으로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를 운영한 바 있다. 2001년 이후 홍대 앞 클럽데이를 10년간 주관했고, 2003년 지역 재생과 공간 재활용을 아젠다로 내걸고 문화·예술, 도시, 건축, 조경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 지역 활동가 100여 명이 참여하는 사단법인 공간문화센터를 설립한 후 현재까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경의선 폐선부지의 개발 유보지에 세워진 사회적 경제 장터 ‘늘장’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되살아난 옛 골목길의 정취
거실 같은 골목길 예전에 필자가 살던 동네의 골목은 자동차 한 대는 쉽게 지나가도 동시에 두 대가 지나가기에는 어려운 좁은 폭의 길이었다. 그 골목길 어귀의 전봇대 불빛 아래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도매 식품’이라는 간판을 단 그 가게에서 가장 비싼 과자는 200원짜리 ‘가나초콜렛’이었다. 포장은 밤색과 빨간색의 두 가지였는데 왜 다른 포장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낮 시간에는 할머니와 ‘일하는 언니’들이 골목길에 나와 수다를 떨곤 했고, 그 옆에서는 유치원을 다니기엔 아직도 많이 어린 아이들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그런 골목길이 하교 시간부터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는 축구나 야구를 하는 동네 운동장이 된다. 주말 낮이나 평일 저녁에는 어른들이 배드민턴을 치러나오기도 했다. 배드민턴공은 대문 위에 떨어지기 일쑤여서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가끔씩 벽을 타고 올라가서 몇 개씩 주워오곤 했다. 장황하게 골목길의 풍경을 묘사한 이유는 우리의 골목길을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해왔는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1970년대까지 골목길은 우리의 거실이었고 운동장이었다. 그러다가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골목길=주차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어 멀리 있는 시골도 편히 갈 수 있게 되었지만, 대문 앞의 공원 같고 마당 같고 운동장 같던 골목길은 없어졌다. 운동장 같던 골목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자동차를 얻었으니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놀이터가 필요 없다. 방과 후에 학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가끔씩 서는 장터를 위해 수십 년간 사용되어 오던 놀이터의 놀이기구와 모래를 모두 없애고 그 자리를 공터로 만들었다. 이제 우리가 집을 나서 갈 수 있는 곳은 돈을 내야 들어 갈 수 있는 카페와 정신없는 길밖에 없다. 새로 짓는 계획 도시의 중앙에는 좋은 공원이 자리 잡고 있지만, 왠지 그 공원은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작정하고 차려입고 가기 전에는 좀처럼 발걸음이 향하질 않는다. 서울숲이 그렇고, 분당중앙공원이나 광교호수공원도 그렇다. 참 좋은데 자주 가기는 힘들다. 공원과 접근성 얼마 전 경의선숲길을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이 공원은 다르다. 근처 홍익대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처음 개장한 다음에는 가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잡지사에서 건축가의 시선으로 경의선숲길을 평해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게 되었고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마음을 잡고 가보았다. 처음에는 들어가는 곳을 찾지 못해 헤매었다. 경의선 홍대입구역 7번 출구로 들어가서 3번 출구로 나온 다음에야 겨우 경의선숲길을 볼 수 있었다. 시원하게 뚫린 선형 공원의 개방적인 모습이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공원 주변으로 있는 각양각색의 맛집과 소위 ‘힙’해 보이도록 리모델링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시장기를 해결하기 위해 ‘○○블루스’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항정살 철판구이’를 맛있게 먹고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이 공원의 특징은 주변의 도심 조직과 밀접하게 붙어있다는 점이다. 서울숲이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대규모로 조성되었음에도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센트럴파크에 비해 현격히 적은 이유는 서울숲의 주변부 대부분을 단절하는 강변북로와 순환도로에서 찾을 수 있다. 겨우 도시와 접한 성수동쪽 면이 부분적으로 공원과 연결되어 있지만 사실 사람들이 그쪽으로 갈 일 자체가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에 센트럴 파크는 직사각형의 공원 부지 사방으로 수많은 거리가 접하고있어서 다양한 도심 속 프로그램과 유기적인 연계가 가능하다. 한 예로 센트럴 파크 중심에서 5번가로 나오면 바로 앞에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 보이고, 심지어 5번가와 접한 공원 내에는 록펠러가 기증한 엄청난 예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도 있다. 미술관 하나는 공원 바깥쪽에 다른 하나는 공원 안에 위치해 있는 모습이 마치 공원과 도시가 ‘장군 멍군’하는 형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센트럴 파크는 도시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공원이 된 것이다. 반면에 서울숲은 도로로 막혀 있다. 분당중앙공원 주변으로는 아파트 숲밖에 찾아 볼 수 없으며, 누군가 공원에 가려 해도 구름다리를 타고 7차선의 도로를 건너야 한다.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부교수이자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하버드 대학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리처드 마이어 뉴욕 사무소와 MIT건축연구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2013년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2010년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2009년 젊은 건축가상등을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Modernism : A Hybrid between Eastern and Western Culture』, 『52 9 12』, 『현대건축의 흐름, 모더니즘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가 있다.
사람들 순하게 말 붙여 올 때까지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손 잡는 숲이 될 때까지
한 번이라도 해보면 “그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멈추기 어렵다는2 설계 공모전과는 달리,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짓는 사람에게는 다시 반복되는 일이라도 그 때마다 기쁨을 기대하는 ‘완성’이라는 순간이 있다. 흥분감이나 초조함이라는 자극적인 상태는 이미 잉태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차분해졌고, 희열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보다 그 때만큼은 ‘엄숙함’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 까? 자신이 설계에 참여한 공간을 (바쁘다보니?) 완성된 이후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설계자도 있지만, 시공 현장까지 면밀하게 체크해가면서 설계를 피드백하고 해결해가는 책임 있고 부지런한 설계자에게도 그 완성의 순간 이전과 이후에 느끼는 감정은 다를 것이다. 그저단 하루의 차이라 하더라도…. 공원이라면 그 순간은 언제일까? 사사키 요우지는 이 순간을 “준공식이 있던 날 초대된 어린이들이 느티나무 숲 속을 환성을 지르며 달려가고 아이들의 신선한 옷 색깔이 모노톤으로 통일된 바닥과 대비되어 약동하였다. 그 풍경이야말로, 우리들이 목표로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도시 광장’ 탄생의 순간이었다”3라고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기대했던 모습을 확인하는 희열과 함께 그 순간부터 공간이 어떻게 작동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움도 뒤섞여 있다. ‘설계 의도를 잘못 이해하지는 않을까? 불편해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더 좋은 안을 떠올리지 않을까’ 등등의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비유한다면 집이 완성되어가면서 전기와 상하수도, 가스, 인터넷 등 설비 장치들이 외부와 연결되어 마치 생명체와도 같이 박동하기 시작하는 부팅 모멘트에서 초조해하는 감정의 교차와도 같다. 출산의 순간, 무엇보다 아이의 손발가락부터 세어볼 때의 설렘…. 자기 새끼 아니면 누가 알까? 경사진 산책로를 내려가며, 저 아래에서 다소 불편한 관절을 내색 않으려는 걸음걸이로 올라오고 있는 주민에게 말을 붙인 것도 혹시라도 그런 어색함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이 동네에 사세요? 철길이 공원으로 바뀌니까 좋으신가요” 옷차림이 정갈해서 왠지 말붙여도 긴 답을 기대 못할 것 같은 어르신. 정답과도 같은 간단한 답만 되돌아오고, 다시 제 갈길 걸으며 사진 찍느라 아무래도 지체하고 있던 사이 마지막 지점을 되돌아와 반갑게도 다시 말을 붙여 오신다. 그래서 시작된 동행은 느릿느릿 연남동 구간의 끝인 홍대입구역까지 이어졌다. 이 부근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거주했다고 하시니 누구보다 지역의 변화에 대해 훤하시다. 당시 집에 유선 전화를 신청하고 설치하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하는 힘든 시대였지만 특별히 신촌로터리에서부터 전봇대 5개 설치할 비용을 들여 쉽게 했다는, 그래도 동네 사람들에게 공용으로 쓰게 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까지. 그 정도로 힘쓸 만한(?)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이주’가 미덕인 서울에서 50년 가까이 한 동네에 정주하신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다. 실은 필자도 1970년대 중반(엊그제 같은데 딱 40년 전이다!)이 지금 같았더라면 이 공원 길을 따라 서강대가 있는 노고산 아래의 고등학교를 통학했을 것이다. 이미 은퇴하고 공원 산책을 유일한 운동으로 하시는 어르신은 필자에게는 아버지 정도의 나이셨지만 적어도 이 부근의 경관 변화를 공유한다는 접점이 있었던 탓인지 말씀도 즐겁게 하시고 듣는 사람도 흥미 있는 동행이 되었다. “주민들 의견을 듣는다고 해서 나가보기도 했고 오래된 나무를 훼손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어떤 것은 잘 보전하고 옮겨 심은 것도 잘 되었어. 지하에서 나오는 물을 활용한 연못도 마음에 들어. 저절로 물고기가 살기 시작했다니까.”, “에엣, 정말이요?” 조동범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원예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학했다. 전남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로컬에서공원 녹지 거버넌스 활동과 마을 만들기, 시민 가드너 양성의 현장 활동도 하고 있다. 2000년경부터 광주 도심 철도 폐선 부지 공원화 운동과 그 이후15여 년에 걸쳐 공원 조성, 주변 지역의 마을 만들기, 주민 참여 운영 관리 방안 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조경학회 기획·설계분과 부회장을 맡아 환경조경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경의선숲길을 그리다
경의선숲길은 총연장 6.3km의 경의선 철길 폐선 부지에 조성된 선형 공원으로, 경의선(용산선)과 공항철도가 기존 철길의 지하에 건설되면서 공원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경의선숲길의 지하 약 10~20m 아래에는 경의선 철로(복선)가, 그보다 더 아래인 지하 약 30~40m에는 공항철도가 지나간다. 서울시가 철도 부지의 소유권자인 한국철도공사와 앞으로 30년간 무상으로 공원 부지를 사용할 수 있는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그동안 지역 간 단절 요소로 남아 있던 철길이 새로운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제천부터 용산문화체육센터까지 이어지는 6.3km의 길 중 약 4.3km는 공원 조성 구간이고 2km는 복합 역사 구간이다. 공원 구간의 면적은 약 101,700m2, 폭원은 10~60m이며, 총 3단계에 걸쳐 조성되고 있다. 2012년 2월에 1단계 구간(대흥동 구간, 길이 760m, 설계 선진엔지니어링)이 준공되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연남동·염리동·새창고개 구간은 2단계 구간으로 올해 6월에 준공되었다. 3단계 구간은 와우교·신수동·원효로 구간으로 2016년 5월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다. 경의선의 어제와 오늘 마포와 용산 일대를 횡단하는 이 길은 열차가 다니기 훨씬 이전부터 많은 사람과 물자가 왕래하던 활발한 교통로였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을 오가는 경강 상인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었고, 길 주변으로 창고와 마을이 번성하기도 했다. 새창고개, 염리동, 광흥창, 신수철리(신수동) 등 경의선숲길이 통과하는 곳의 지명을 살펴보면 이 지역의 옛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1906년 군사적 목적으로 철길이 놓인 이후에도 물류 수송의 중심 지역으로 기능하면서 점차 도시가 확장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1970년대 이후 운송 수단의 발달로 인해 점차 그 중요성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 도심 속 철길은 생활 환경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낙인 찍혔고 주변 지역은 자연스럽게 슬럼화되었다. 안계동은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서인환경, 두산개발을 거쳐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를 설립했다. 평화의공원, 서울숲, 난지한강공원처럼 굵직한 작품부터 사도감어린이공원, 율수원처럼 소규모 작품까지 다양한 층위의 프로젝트를맡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임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동심원조경에서 일하고 있다. 2012년 여름부터 경의선숲길 프로젝트를 담당하여 지금까지도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는 중이다. 경의선숲길지기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1906년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개통된 경의선은 이후 산업철도로 한동안 사용되었고, 1951년부터 2009년까지는 통근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철길로 인해 지역 단절과 생활 환경 낙후 등의 문제점이대두되어 2005년부터 철길의 지중화 사업이 추진되었고, 이로 인해 발생한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6월 27일, 연남동·염리동·새창고개 2단계 구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 경의선숲길을 그리다 _ 안계동·이남진 • 사람들 순하게 말 붙여 올 때까지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서로 손잡는 숲이 될 때까지 _ 조동범 • 되살아난 옛 골목길의 정취 _ 유현준 • 경의선숲길권역의 문화 재생과 늘장 _ 최정한 • 경의선숲길을 거닐다 _ 조한
[칼럼] 노들섬에 그리는 꿈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사회를 꿈꾸는 노들섬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아키토피아의 실험’은 전쟁 이후 한국 사회가 꿈꿔온 건축·도시의 이상향을 잘 보여준다. 전시에 소개된 세운상가, 파주출판도시, 파주 헤이리아트밸리, 판교 신도시 등은 더 나은 곳을 꿈꾸는 유토피아적 상상력과 욕망이 투사된 장소들이다. 이들 장소에서 건축가와 정치인은 국가 개발의 이상을 탐색해 보았고(세운상가), 코디네이터가 된 건축가는 이상적인 문화 공동체를 실험해 보았다(파주출판도시). 한편 중산층의 개별 욕망이 집적된 최근의 판교 신도시는 국가 주도의 유토피아가 개인적 유토피아로 옮아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6월 10일 공고되어 진행 중인 ‘노들꿈섬 공모전’ 또한 이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장소를 그리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한때 중지도中之島라 불리고 시민들이 강수욕을 즐겼던 곳, 지금은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노들섬에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사회의 이상을 구현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 공모전의 MP 서현 교수(한양대학교 건축학과)가 공모 지침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그것은 조선 개국 초기 우리 선조가 내다보았던 도시 천 년의 꿈과 희망의 그림이며 여전히 ‘서울’이 꿈꿔야 할 이상이다. 한강예술섬이 노들꿈섬이 되기까지 노들섬이 우리의 꿈을 그려낼 수 있는 공간이란 의미에서 ‘노들꿈섬’이란 이름을 얻고 공모전을 시행하게 된 배경에는 이 섬을 기념비적 문화 장소로 탈바꿈하려는 거듭된 시행착오가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05년의 문화 단지 조성 계획은 설계비 과다 요구 등으로 무산되었고, 2008년 재추진된 한강예술섬 조성 사업 또한 지나친 사업비로 찬·반 논란만 지속해 오다가 2012년 최종 보류된 바 있다. 이후 이 섬은 사업 장기 보류와 함께 텃밭으로 임시 활용되어 왔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매력적인 장소야말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공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에 2012년 서울시는 이 섬의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를 재개했고, 2013년에는 전문가 의견을 조사하여 “오페라하우스 건립은 반대하지만 섬 자체는 잠재적 가치가 크므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활용 방법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이와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노들섬 포럼’(2013년 8월)을 필두로 시민토론회, 워크숍 등 시민·전문가들이 함께하는 다양한 논의가 지속되었고, 사진 공모전, 학생 디자인 캠프, 온라인 시민 투표, 전문가 아이디어 스케치, 시민 아이디어 공모 등의 참여 프로그램이 노들섬의 새로운 활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방편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로써 노들섬의 조성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의 가치로 수렴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민 모두가 언제나 함께 가꾸고 즐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단계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획·운영 계획 선행 후 공간·시설 계획을 추진하는 단계적 공모 방식 노들꿈섬 공모의 지침은 공모전 주제어를 ‘시민’과 ‘역사’로 제시하고 있다. 즉 시민의 참여로 완성되는 섬, 적정한 규모로 시작하여 시민의 경험과 기억이 적층되는 섬을 지향한다(노들꿈섬 조성 사업은 2015년 시나리오 플랜, 2017년 1단계 완성, 2037년 최종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 따라 공모전 형식 또한 기존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공모전이 ‘기획·운영 중심의 단계적 공모 방식’을 통해 섬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안부터 운영 전략, 전략에 최적화된 공간 계획, 그리고 탁월한 최초 운영자 모두를 선정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다. 서울시가 총 3차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는 노들꿈섬 공모 방식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참신하고 유연한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받아 다수의 팀을 선정하는 1차 운영구상(기획·운영안) 공모단계를 마치면, 선정된 팀들은 2차 운영 계획·시설구상 공모에서 실현가능성이 담보된 운영계획서와 공간 및 시설에 대한 대략 구상안을 겨루게 된다. 이 2차 공모를 통해 운영자와 운영계획안이 최종선정되면, 선정된 안을 기반으로 시설 설계 지침을 마련하고 이 안에 따라 3차 공간·시설 조성 공모를 별도 추진한다. 이것은 건축, 조경, 도시 전문가가 참여하여 진행하는 전통적인 설계공모 형식이다. 이렇듯 대규모 공공 공간의 기획과 운영을 최초 제안자가 책임지고 맡는 것은 전례 없는 시도로, 꼭 필요한 시설을 점진적으로 완성해 나감으로써 과도한 재정 부담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시설 조성 후에는 공공의 운영비 보조 없이 자체 수익으로 운영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의의를 갖는다. 한수의 비어있는 섬에 그리는 소통과 화해의 공간 그런데 왜 하필 노들섬일까? 접근성이 좋지 않아 그저 멀리 바라보며 스쳐 지나가던 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 삶 가까이 끌어오려는 시도, 주변과 동떨어져 있어서 오히려 선도적 사업 방식을 적용하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이점 등은 이 질문의 충분한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 신영복의 글씨 ‘서울’의 방서傍書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天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작가는 해설에서 “북악은 왕조를 상징하고 한수는 민초를 상징한다. 북악은 5천 년 동안 백성들의 고통에 무심하였지만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700리 유정하게 흐르고 있다”고 쓴 바 있고, 이후 책을 통해 “북악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멀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한강이야말로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통과 화해의 상징”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1 물론 이것은 시정市政이 지향할 바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겠지만, 이로써 함께 나누고 즐기면서 소통하는 공간을 한수의 비어있는 섬에 구현하려는 시도가 전혀 맥락 없어 보이지 않는다. 이 새로운 방식의 공모는 지난 7월 31일 1차 운영구상 공모 참가 접수를 마감하고 작품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사례 없는 첫 시도이니만큼 리스크가 전혀 없진 않을 테지만, 그동안 전문가들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부단히 애써 온 결과가 한강의 작은 섬에 새로운 장소적 의미와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미래가치로 드러나길 기대해 본다. 그래서 과정과 결과 모든 것이 이 시대의 이상향이 되기를. 정귀원은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서울건축에서 건축 실무를 익혔다. 『공간(SPACE)』, 『건축인 포아(poar)』 등의 건축 전문지를 거쳐 현재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편집장으로 한국의 건축과 도시를 폭넓게 바라보고 있다.
[에디토리얼] 빅데이터 인문학
가을을 여는 첫 페이지다. 산들바람 같은 글감이 없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9월호를 마감하고 있는 지금은 아직 한여름 폭염의 절정이다. 청량한 가을 맞이 에디토리얼을 쓰기에는 더워도, 너무, 덥다. 독자 여러분은 숨 막히는 무더위를 무엇으로 이겨내셨는지. 부지런하다면 이번 호 특집으로 소개하는 ‘경의선숲길’이라도 거닐며 여름밤의 후끈한 기운을 즐기겠지만, 밖에 나가 몸 쓰기를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나에겐 가만히 앉거나 누워 뒹굴며 닥치는 대로 책 읽기가 최선의 피서 방법이다. 아니 책장 넘기기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며칠째 산만한 잡식성 독서를 이어가다 연초에 샀으나 묵혀두었던 노란색 표지의 책 한 권에서 모처럼 몰입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수학, 진화생물학, 언어학, 컴퓨팅을 넘나드는 젊은 과학자 에레즈 에이든Erez Aiden과 장바티스트 미셸Jean-BaptisteMichel이 지은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사계절, 2015). 『빅데이터 인문학』은 “인문학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의 혁명적 전환을 제안”하며 두 저자가 개발한 프로그램인 ‘엔그램 뷰어Ngram Viewer’에 대한 책이다. 빅데이터는 이제 낯설지 않은 용어다. 현재 보통 사람의 데이터 발자국, 즉 전 세계적으로 한 사람이 연간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양은 거의 1테라바이트에 가깝다고 한다. 이것은 약 8조 개의 예-아니오 질문(1비트)과 맞먹는 양이다. 빅데이터는 더 커지고, 더 커지고, 더 커지는 중이다. 단순히 정보량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빅데이터는 이전 방법으로는 ‘다루기에 너무 크다too big to handle’는 개념에서 나온 말이다. 두 저자는 넘쳐나는 데이터, 즉 디지털 지문을 분석하여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렌즈를 고안했다.“인간 문화의 역사적 변화를 관찰하는 새로운 도구”임을 자처하는 ‘엔그램 뷰어’는 검색창에 특정 단어를 입력하면 단1초 만에 800만 권의 책을 검색해 그 단어가 지난 500년간 사용된 빈도의 추이를 그래프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즉 어떤 단어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책에 매해 몇 회 등장했는지 그 결과를 빈도로 변환시켜 시각화해서 알려주는 놀라운 도구다. 쉼표를 사용해 여러 단어를 함께 입력하면 그 단어들의 사용 빈도를 동시에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언어는 인간의 생각과 욕망을 대변하고, 언어를 집적한 기록이 책이다. 엔그램 뷰어에 쓰인 800만 권의 책은 2004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구글 북스’ 프로젝트에서 추려낸 것이다. 구글은 이 세계의 모든 책을 디지털화한다고 선언한 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1억 3000만 권 가운데 3000만 권 이상의 책을 스캔하여 디지털 텍스트로 만들었고, 2020년이면 이 거대 프로젝트가 완결될 전망이다. 에이든과 미셸은 이 방대한 자료를 1초 만에 읽어주는 독서왕 로봇을 만들어낸 셈이다. 만약 인간이 밥을 먹거나 잠을 자기 위해 중단하는 일 없이 분당 200단어씩 읽는다면 총 1만 2000년이 걸릴 분량을 순식간에 무료로 읽어준다. 충분한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다. 무협지 이상으로 재미있지만 그래도 책 읽기가 번거롭다면 지금 바로 웹 브라우저 주소창에 books.google.com/ngrams를 쳐보시길 권한다. 직사각형 검색창에 관심 있는 어떤 단어를 넣고 엔터키를 누르기만 하면 엔그램 뷰어의 놀라움을 실감할 수 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landscape를 넣어보실 것 같다. 언제부터 경관이라는 단어가 책에 등장했는지, 어느 시기에 이 단어의 사용이 급증했는지, 지금은 어떤지, 그 빈도의 추이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그래프가 뜬다. 랜드스케이프 가드너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를 비교해 보는 분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쉼표를 사이에 두고 landscape gardener와 landscape architect를 넣으면, 전자는 1770년대에 처음 등장하고 후자는 1850년대에 처음 쓰이는데 1910년대를 기점으로 둘의 사용 빈도가 완전히 역전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엔그램 뷰어에 따르면 내가 태어난 1968년부터 ‘커피’가 ‘차’를 앞질렀다. 도넛의 철자가 doughnut에서 donut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던킨도너츠Dunkin’ Donuts가 창립된 1950년대부터라고 한다. 지난 2세기 동안 태어난 사람 가운데 가장 유명한―물론 여기서 ‘유명한’은 책에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사람 열 명은 히틀러, 마르크스, 프로이트, 레이건, 스탈린, 레닌, 아이젠하워, 찰스 디킨스, 무솔리니, 바그너 순이다. 일주일째 나는 이 강력한 장난감에 별의별 단어를 다 입력해 보고 있다. 당연히 19금 단어들도 넣어 본다. 조경사 연구에 뭔가 단서를 얻을까 싶어 18세기 조경가들의 이름을쳐 본다. 그냥 이유 없이 이안 맥하그와 피터 워커를 비교해 본다. 환경미학과 환경윤리학은 환경철학의 부분 집합이라는 게 교과서의 설명이지만, 입력해 보니 환경윤리학의 출현 빈도가 환경철학의 세 배 이상이다. 한여름 무더위는 물론 소중한 점심시간도 잊게 해주는 중독성 강한 장난감이다. 데이터 세트를 다운받으면(books.google.com /ngrams/datasets) 시각화된 그래프를 통해 대강의 감을 잡는 것을 넘어 상세한 통계 분석도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엔그램 뷰어에 대한 폭발적 반응에 이렇게 능청을 떤다. “우리는 이 시간 집어먹는 괴물을 만든 데 대해 모든 이에게 사과하고 싶다.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시간을 허비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다. 방법이 있기만 하다면 우리는 생산성 저하로 야기된 모든 손해를 원상복구하고 싶다.” 엔그램 뷰어는 누구나 가지고 놀 수 있는 빅데이터 장난감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저자들이 “컬처로믹스culturomics”라고 말하듯, 그 목표는“빅데이터를 통해 언어, 개념, 문화의 진화를 탐구하는 인문학”이다. 물론 우리가 인문학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적확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이 피서용 장난감은 빅데이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원제는 ‘Uncharted’, 말 그대로 ‘전인미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