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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노들섬에 그리는 꿈
Column: A Dream on the Nodeul Island
  • 환경과조경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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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사회를 꿈꾸는 노들섬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아키토피아의 실험’은 전쟁 이후 한국 사회가 꿈꿔온 건축·도시의 이상향을 잘 보여준다. 전시에 소개된 세운상가, 파주출판도시, 파주 헤이리아트밸리, 판교 신도시 등은 더 나은 곳을 꿈꾸는 유토피아적 상상력과 욕망이 투사된 장소들이다. 이들 장소에서 건축가와 정치인은 국가 개발의 이상을 탐색해 보았고(세운상가), 코디네이터가 된 건축가는 이상적인 문화 공동체를 실험해 보았다(파주출판도시). 한편 중산층의 개별 욕망이 집적된 최근의 판교 신도시는 국가 주도의 유토피아가 개인적 유토피아로 옮아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6월 10일 공고되어 진행 중인 ‘노들꿈섬 공모전’ 또한 이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장소를 그리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한때 중지도中之島라 불리고 시민들이 강수욕을 즐겼던 곳, 지금은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노들섬에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사회의 이상을 구현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 공모전의 MP 서현 교수(한양대학교 건축학과)가 공모 지침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그것은 조선 개국 초기 우리 선조가 내다보았던 도시 천 년의 꿈과 희망의 그림이며 여전히 ‘서울’이 꿈꿔야 할 이상이다.


한강예술섬이 노들꿈섬이 되기까지

노들섬이 우리의 꿈을 그려낼 수 있는 공간이란 의미에서 ‘노들꿈섬’이란 이름을 얻고 공모전을 시행하게 된 배경에는 이 섬을 기념비적 문화 장소로 탈바꿈하려는 거듭된 시행착오가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05년의 문화 단지 조성 계획은 설계비 과다 요구 등으로 무산되었고, 2008년 재추진된 한강예술섬 조성 사업 또한 지나친 사업비로 찬·반 논란만 지속해 오다가 2012년 최종 보류된 바 있다. 이후 이 섬은 사업 장기 보류와 함께 텃밭으로 임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매력적인 장소야말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공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에 2012년 서울시는 이 섬의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를 재개했고, 2013년에는 전문가 의견을 조사하여 “오페라하우스 건립은 반대하지만 섬 자체는 잠재적 가치가 크므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활용 방법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이와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노들섬 포럼’(2013년 8월)을 필두로 시민토론회, 워크숍 등 시민·전문가들이 함께하는 다양한 논의가 지속되었고, 사진 공모전, 학생 디자인 캠프, 온라인 시민 투표, 전문가 아이디어 스케치, 시민 아이디어 공모 등의 참여 프로그램이 노들섬의 새로운 활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방편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로써 노들섬의 조성 방향은 크게 두 가지의 가치로 수렴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민 모두가 언제나 함께 가꾸고 즐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단계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획·운영 계획 선행 후 공간·시설 계획을 추진하는 단계적 공모 방식

노들꿈섬 공모의 지침은 공모전 주제어를 ‘시민’과 ‘역사’로 제시하고 있다. 즉 시민의 참여로 완성되는 섬, 적정한 규모로 시작하여 시민의 경험과 기억이 적층되는 섬을 지향한다(노들꿈섬 조성 사업은 2015년 시나리오 플랜, 2017년 1단계 완성, 2037년 최종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 따라 공모전 형식 또한 기존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공모전이 ‘기획·운영 중심의 단계적 공모 방식’을 통해 섬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안부터 운영 전략, 전략에 최적화된 공간 계획, 그리고 탁월한 최초 운영자 모두를 선정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다.

서울시가 총 3차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는 노들꿈섬 공모 방식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참신하고 유연한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받아 다수의 팀을 선정하는 1차 운영구상(기획·운영안) 공모단계를 마치면, 선정된 팀들은 2차 운영 계획·시설구상 공모에서 실현가능성이 담보된 운영계획서와 공간 및 시설에 대한 대략 구상안을 겨루게 된다.

이 2차 공모를 통해 운영자와 운영계획안이 최종선정되면, 선정된 안을 기반으로 시설 설계 지침을 마련하고 이 안에 따라 3차 공간·시설 조성 공모를 별도 추진한다. 이것은 건축, 조경, 도시 전문가가 참여하여 진행하는 전통적인 설계공모 형식이다. 이렇듯 대규모 공공 공간의 기획과 운영을 최초 제안자가 책임지고 맡는 것은 전례 없는 시도로, 꼭 필요한 시설을 점진적으로 완성해 나감으로써 과도한 재정 부담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시설 조성 후에는 공공의 운영비 보조 없이 자체 수익으로 운영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를 갖는다.


한수의 비어있는 섬에 그리는 소통과 화해의 공간

그런데 왜 하필 노들섬일까? 접근성이 좋지 않아 그저 멀리 바라보며 스쳐 지나가던 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 삶 가까이 끌어오려는 시도, 주변과 동떨어져 있어서 오히려 선도적 사업 방식을 적용하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이점 등은 이 질문의 충분한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 신영복의 글씨 ‘서울’의 방서傍書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天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작가는 해설에서 “북악은 왕조를 상징하고 한수는 민초를 상징한다. 북악은 5천 년 동안 백성들의 고통에 무심하였지만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700리 유정하게 흐르고 있다”고 쓴 바 있고, 이후 책을 통해 “북악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멀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한강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통과 화해의 상징”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1 물론 이것은 시정市政이 지향할 바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겠지만, 이로써 함께 나누고 즐기면서 소통하는 공간을 한수의 비어있는 섬에 구현하려는 시도가 전혀 맥락 없어 보이지 않는다.

이 새로운 방식의 공모는 지난 7월 31일 1차 운영구상 공모 참가 접수를 마감하고 작품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사례 없는 첫 시도이니만큼 리스크가 전혀 없진 않을 테지만, 그동안 전문가들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부단히 애써 온 결과가 한강의 작은 섬에 새로운 장소적 의미와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미래가치로 드러나길 기대해 본다. 그래서 과정과 결과 모든 것이 이 시대의 이상향이 되기를.



정귀원은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서울건축에서 건축 실무를 익혔다. 『공간(SPACE)』, 『건축인 포아(poar)』 등의 건축 전문지를 거쳐 현재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편집장으로 한국의 건축과 도시를 폭넓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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