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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의 공원화와 세계유산 등재
용산공원 세계문화유산적 가치 규명 학술대회
  • 양다빈
  • 환경과조경 2015년 9월

지난 7월 24일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용산공원의 세계유산적 가치 규명 학술대회’가 열렸다. 용산기지는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을 계기로 지난 100여 년 간 일본군 병영(1904년~1945년)과 용산미군기지(1945년~현재)로 사용되어 온 곳이다. 서울시는 2014년 3월‘역사도심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근대 건축 분야 전문가 자문을 통해 용산공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으며, 2014년 11월 ‘용산공원’은 ‘한성백제유적’, ‘성균관과 문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 추진 대상의 하나로 최종 선정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용산공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치를 규명하고 그 타당성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되었다.

조광 위원장(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은 기조 강연 ‘용산공원의 문화유산적 가치와 보존’에서 “세계적인 도시 경쟁력 평가 항목에 문화 관광 분야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중 세계문화유산의 개수를 주요 평가 지표의 하나로 강조하고 있다”며, 서울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추진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조 위원장은 이를 위해 사료의 수집과 검증을 통해 명분을 수립할 것을 강조했다.

신주백 교수(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는 주제 발표 ‘동북아의 역사적 전개와 용산기지’에서 군사적 시설로 사용되어 온 용산기지를 동아시아 역사 흐름과 연계해 설명했다. 특히 일본군의 관점에서 용산기지가 중일전쟁의 후방기지 중 최전선 역할을 하게 되면서 100만 이상(2개 사단)의 군이 상주하기 시작한 시기(1916~1919년)와 제17방면군 사령부가 들어서게 된 이후 대미 작전의 최전방 사령부로 활용되는 시기(1945~1948년), 그리고 미군의 관점에서 한국전쟁 발발 이후의 시점에 집중하여 용산기지가 세계사적 측면에서 갖는 군사 역학적 중요성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신 교수는 이를 통해 “용산기지를 한국 근현대사를 넘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가 중첩된 공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용산기지를 역사화하는 과정에서 식민의 역사와 냉전(분단)의 역사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반도의 역사를 ‘식민’으로 한정하는 실수를 범해 일본의 하시마섬 등 23개 일본 산업 시설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의 기준에 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이어진 두 번째 주제 발표 ‘용산기지의 변화 과정을 통해 본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용산기지가 현재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김종헌 교수(배재대학교 건축학부,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는 경성시가전도(1927)와 같은 지도나 다수의 배치도와 건축물 평면도 등의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1920년대 말 용산기지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서울의 중심에 “용산기지만큼 잘 보존된 근대 문화유산은 찾을 수 없다”며 용산기지를 ‘20세기’의 세계 유산으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현재 제시된 용산공원 마스터플랜과 관련 계획은 이러한 역사적 유산의 현황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며 보존해야할 유산과 보존 방식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김 교수는 현재 용산기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준Ⅱ, Ⅳ, Ⅵ1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마지막 주제 발표로 진행된 ‘도시공백都市空白 용산공원의 의미와 가치’의 발표자로 나선 김인수 대표(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는 더 나은 용산기지 공원화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는 “용산공원은 이미 공원의 모습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며 공원을 만든다는 명목 하에 불필요한 토목 공사나 철거 행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공원화 과정에서 ‘서울공원박람회’와 ‘중간 이용Zwischennutzung’과 같은 이벤트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공원박람회는 엠셔파크Emscher Park나 모리스 로사 에어필드 공원Maurice Rosa Airfield Park처럼 독일에서 산업 문화 유산의 활용방안을 고민할 때 도입했던 정원박람회의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공원 조성과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공공 이벤트화하자는 것이다. 실제 엠셔 파크는 버려진 제철소의 흔적을 공원과 문화 시설로 잘 활용한 사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점에서 청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중간 이용’은 본격적인 재생 이전에 시설의 활용 가능을 확인하고 그 이용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제한된 시간 동안 일반 시민의 이용을 허용하는 실험적인 방법이다. 김 대표는 “100년이라는 장소·시간·기능의 공백을 채우기에 앞서 치밀한 기획이 필요하며 용산기지의 중요성과 그 상징성에 상응하는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이벤트를 통한 시민의 의견 청취와 이용 행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은 조명래 교수(단국대학교 도시지역계획학과)가 좌장을 맡아 진행하였으며 최성자 위원(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송인호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소장), 한동수 교수(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조건 연구원(동국대학교)이 참여했다. 토론자들은 대체로 용산기지(공원)의 세계문화유산적 가치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하지만 최성자 의원이 “공원화와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주제가 동시에 논의된다는 점은 의아하게 느껴졌다”고 밝힌 것처럼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한동수 교수는 서울시가 제시한 ‘도시 경쟁력을 상승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명분에 문제를 제기하며 “세계 속의 용산공원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 도시, 서울 시민의 삶 속에서 용산공원의 의미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정치·외교적 목적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경향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 자격으로 의견을 개진한 강철기 교수(경상대학교 산림환경자원학과)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용산기지의 공원화 과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우리 스스로 없애버리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현 교수는 군시설이라는 점의 민감성은 인정하면서도 “용산기지의 공원화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논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개하지 못해 아쉬운 관련 정보가 너무 많다”며 더 나은 논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보다 천천히 다루어야 하는 문제임에 분명”하다는 조명래 교수의 말처럼 100년의 공백 속 미지의 땅인 용산기지를 알아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은 분명해 보인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지난 100년의 용산기지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향후 100년을 바라봐야 하는 용산기지가 ‘공원화’와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두 가지 조금은 다른 길에 서있는 듯한 목표를 좇다 모두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서울시는 용산기지를 2023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용산공원은 용산미군기지 이전이 완료(2016년 말까지 평택으로 이전 예정)되는 시점인 2017년부터 2027년까지 1,156만m2 규모로 장기적이고 단계적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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