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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옛 골목길의 정취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 환경과조경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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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숲길에 접한 도로는 불과 2차선밖에 되지 않는다. 아예 도로와 접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공원으로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다. 벤치 너머의 상가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유청오

 

거실 같은 골목길

예전에 필자가 살던 동네의 골목은 자동차 한 대는 쉽게 지나가도 동시에 두 대가 지나가기에는 어려운 좁은 폭의 길이었다. 그 골목길 어귀의 전봇대 불빛 아래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도매 식품’이라는 간판을 단 그 가게에서 가장 비싼 과자는 200원짜리 ‘가나초콜렛’이었다. 포장은 밤색과 빨간색의 두 가지였는데 왜 다른 포장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낮 시간에는 할머니와 ‘일하는 언니’들이 골목길에 나와 수다를 떨곤 했고, 그 옆에서는 유치원을 다니기엔 아직도 많이 어린 아이들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그런 골목길이 하교 시간부터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는 축구나 야구를 하는 동네 운동장이 된다. 주말 낮이나 평일 저녁에는 어른들이 배드민턴을 치러나오기도 했다. 배드민턴공은 대문 위에 떨어지기 일쑤여서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가끔씩 벽을 타고 올라가서 몇 개씩 주워오곤 했다.

장황하게 골목길의 풍경을 묘사한 이유는 우리의 골목길을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해왔는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1970년대까지 골목길은 우리의 거실이었고 운동장이었다. 그러다가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골목길=주차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어 멀리 있는 시골도 편히 갈 수 있게 되었지만, 대문 앞의 공원 같고 마당 같고 운동장 같던 골목길은 없어졌다. 운동장 같던 골목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자동차를 얻었으니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놀이터가 필요 없다. 방과 후에 학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가끔씩 서는 장터를 위해 수십 년간 사용되어 오던 놀이터의 놀이기구와 모래를 모두 없애고 그 자리를 공터로 만들었다. 이제 우리가 집을 나서 갈 수 있는 곳은 돈을 내야 들어 갈 수 있는 카페와 정신없는 길밖에 없다. 새로 짓는 계획 도시의 중앙에는 좋은 공원이 자리 잡고 있지만, 왠지 그 공원은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작정하고 차려입고 가기 전에는 좀처럼 발걸음이 향하질 않는다. 서울숲이 그렇고, 분당중앙공원이나 광교호수공원도 그렇다. 참 좋은데 자주 가기는 힘들다.


공원과 접근성

얼마 전 경의선숲길을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이 공원은 다르다. 근처 홍익대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처음 개장한 다음에는 가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잡지사에서 건축가의 시선으로 경의선숲길을 평해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게 되었고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마음을 잡고 가보았다. 처음에는 들어가는 곳을 찾지 못해 헤매었다. 경의선 홍대입구역 7번 출구로 들어가서 3번 출구로 나온 다음에야 겨우 경의선숲길을 볼 수 있었다. 시원하게 뚫린 선형 공원의 개방적인 모습이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공원 주변으로 있는 각양각색의 맛집과 소위 ‘힙’해 보이도록 리모델링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시장기를 해결하기 위해 ‘○○블루스’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항정살 철판구이’를 맛있게 먹고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이 공원의 특징은 주변의 도심 조직과 밀접하게 붙어있다는 점이다. 서울숲이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대규모로 조성되었음에도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센트럴파크에 비해 현격히 적은 이유는 서울숲의 주변부 대부분을 단절하는 강변북로와 순환도로에서 찾을 수 있다. 겨우 도시와 접한 성수동쪽 면이 부분적으로 공원과 연결되어 있지만 사실 사람들이 그쪽으로 갈 일 자체가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에 센트럴 파크는 직사각형의 공원 부지 사방으로 수많은 거리가 접하고 있어서 다양한 도심 속 프로그램과 유기적인 연계가 가능하다. 한 예로 센트럴 파크 중심에서 5번가로 나오면 바로 앞에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 보이고, 심지어 5번가와 접한 공원 내에는 록펠러가 기증한 엄청난 예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도 있다.

미술관 하나는 공원 바깥쪽에 다른 하나는 공원 안에 위치해 있는 모습이 마치 공원과 도시가 ‘장군 멍군’하는 형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센트럴 파크는 도시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공원이 된 것이다. 반면에 서울숲은 도로로 막혀 있다. 분당중앙공원 주변으로는 아파트 숲밖에 찾아 볼 수 없으며, 누군가 공원에 가려 해도 구름다리를 타고 7차선의 도로를 건너야 한다.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부교수이자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하버드 대학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리처드 마이어 뉴욕 사무소와 MIT건축연구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2013년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2010년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2009년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Modernism : A Hybrid between Eastern and Western Culture』, 『52 9 12』, 『현대건축의 흐름, 모더니즘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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