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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박희성
미지근함의 미학
냉정한 사람, 피가 차가운 사람, 쌀쌀 맞은 사람, 냉소적인 사람. 우리는 어떤 대상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온도에 비유할 때 차가움을 꺼내오곤 한다. 연구자라는 사람을 온도에 빗대야 한다면 차가운 쪽에 가까울 거라 생각했다. 연구 대상을 왜곡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치밀하게 분석하고 멋대로 상상하며 결론 내리지 않으려면, 잘 벼린 칼날 같은 태도가 필요할 것 같았으니까. 박희성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 예상보다 그가 앞으로 누벼야 할 이론의 바다가 훨씬 넓다는 걸 알게 됐다. 길고 긴 항해 내내 차가울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미지근함에 대해 생각했다. 열정으로 시작해 결코 차게 식지 않는 사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를 보온병처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긴 여정에도 지치지 않고 포기를 생각하지 않는 그 적정한 온도에 대해서.
어제는 뭐했나요?
밀린 논문을 썼어요. 학기 중에는 강의를 비롯해 다양한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데, 전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라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지 못해요. 조금 미뤄오다 이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밀린 논문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연구교수(이하 교수)에게 논문은 일종의 과제 같은 존재인가 봐요.
논문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죠. 승진이 목적인 사람도 있고 개인적인 연구 욕심이 있는 사람도 있고요. 전 생산물이 없는 연구자는 본분을 잊은 거라 생각하거든요. 자기반성을 섞어 조금이라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생업이 있다 보니 순수하게 학자로서 공부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에요. 연구비 펀딩을 받은 경우, 페이퍼 형태의 최종 제출물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어요. 지금 쓰고 있는 논문도 그런 과제 중 하나이고요.
‘연구자’ 하면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요. 이른 아침 일어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이요. 실제로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나요.
반성하게 되네요. 저 역시 그런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전 오히려 밤에 집중이 잘되는 스타일이라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편입니다.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커피는 자주 마셔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환경과조경 홈페이지에 박희성을 검색해봤어요. 촘촘하진 않더라도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대략적으로 그려보기 좋은 아카이브거든요. 그런데 뜻밖의 결과에 눈이 갔어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옥외공간 조성 설계공모’, ‘한국도로공사 본사 이전사옥 건립 설계경기’, ‘사상광장로 명품가로공원 조성 기본계획 현상설계공모’ 참가자 명단에 교수님 이름이 있더군요. 처음부터 교수님을 연구자로서 만났기에, 설계에 참여한 적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이 중 두 개 공모는 우리엔디자인펌 연구소장으로서 함께한 공모더군요.
2000년대 초 조경설계사무소가 기업부설연구소를 많이 열었었어요. 설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의도이기도 했고, 정부에서 세제 혜택을 주기도 했죠. 강연주 소장(우리엔디자인펌)은 연구 집단과의 교류에도 관심이 많았고, 기존 설계 방식에서 벗어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역량을 다지겠다는 의지가 있는 분이었어요. 2006년 우리엔디자인펌 조경설계연구소가 만들어졌고, 기존 조직이 연구소와 설계소로 나누어졌죠(“설계사무소 소장으로 산다는 것, 그 냉정과 열정 사이”, 『환경과조경』 2016년 5월호 참고). 그즈음이 당ㆍ송대 산수원림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로, 조경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는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미학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하다 보니 점점 조경의 범주 바깥으로 밀려나는 기분이었죠. 기회가 되면 조경설계를 알아보고 싶었는데, 마침 우리엔디자인펌의 조경설계연구소가 제게 기회를 줬어요. 1년 반 정도 머물렀으니 긴시간은 아니었지만 많은 설계공모에 참여할 수 있었고 알찬 시간을 보냈어요.
조경 연구자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연구원, 교수뿐인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연구자는 설계공모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조경설계연구소에 들어간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연구자가 설계에 참여한다고 해서 프랙티스를 기반으로 하는 교수처럼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죠. 1~2년 정도의 시간으로 설계가가 되지도 못할뿐더러, 저의 부족함은 채울 순 있어도 연구자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조언도 있었고요. 맞는 말이었어요. 당연히 제가 선을 그리고 도면을 만드는 설계를 할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어요. 대신 설계의 큰 콘셉트를 만드는 일을 했죠. 대상지를 분석해 공간 설계를 끌고 나갈 기본 방향을 만들고, 틀이 갖춰지면 작은 세부 요소를 구체화하고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연구자로서 공부해온 이론들이 큰 도움이 됐어요. 제가 제안한 콘셉트가 설계에 반영되는 걸 보며 공간을 바라보는 맥락과 해석하는 방식이 조경의 관점에서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안심했어요. 설계공모뿐 아니라 일반 연구 용역도 진행했고, 관광 같은 다른 분야와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어요. 다른 직원이 연구소가 세워지기 전보다 설계하며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이야기를 해주어서 안심했습니다.
우리엔디자인펌을 떠나서는 바로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겼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입사한 지 일 년 반쯤 지나니 생각이 복잡해지더라고요. 과연 이곳에 발붙일 수 있을지, 또 회사 경영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보통의 직장인들이 다 할 법한 고민들이었어요. 때마침 서울학연구소에서 조경을 전공한 연구자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사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연구를 진행하는지는 모르고 들어왔는데, 완전히 새로운 판이더라고요.
조경학과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어떤 미래를 꿈꿨었나요. 자신에게 연구자의 소질이 있다는 걸 언제 깨달았는지 궁금합니다.
참 오래된 이야기네요. 큰 뜻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하게 된 건 아닙니다. 학부 졸업 시기가 다가오니까 막막했어요. 4년 동안 열심히 공부는 했는데 조경에 대해 뭘 아나 싶고, 졸업작품을 만들면서는 사람이 실제 사용할 공간이 될 선을 이렇게 가벼운 고민만으로 그려도 되나 망설여졌어요. 조경설계를 하려면 내가 어떤 공간을 지향하는지 조금의 가닥이라도 잡은 상태여야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대로 무작정 취업하게 된다면 또렷한 지향점 없이 흘러갈 테고 그래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돌이켜보니 이상한데, 당시 설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이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울대학교 조경미학연구실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막상 연구에 발을 들이니 이론 분야는 바다와 같이 넓고,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도 워낙 많더라고요. 어떤 일을 할 때 제가 더 즐거운지 생각해봤더니 책을 볼 때 마음이 더 편안하더라고요. 그렇게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석사논문 주제가 ‘한중 정원과 문인, 자연미’였죠. 지금까지도 동아시아 조경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고요. 긴 시간 하나의 분야를 계속 연구하면 지치지는 않나요.
점점 진전하는 느낌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이 연구를 마치고 보니 저 부분을 더 연구해야겠구나 하는 식으로요. 지루할 틈이 없어요. 조경이라는 학문 자체가 하나의 색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다방면을 살펴야 하거든요. 학위 논문을 쓸 때 절 고민에 빠트린 건 조경이 순수 학문이 아니라 실천적 학문이라는 점이었어요. 그에 반해 전 미학, 즉 이론을 공부했으니 어디까지 발을 담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예컨대 정약용의 자연관을 공부하고 싶으면 그 사람의 학문 세계와 시학,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알아야 하죠. 그런데 마냥 이론만 들여다보고 있을 순 없어요. 조경은 실체가 있는 공간이니까요. 이론에서 빠져나와 공간을 구체화해야 하는 지점이 있는데, 이론과 공간 사이를 잘 드나드는 기준을 세우는 게 참 어려웠어요. 어떤 공간을 만든 사람의 특징을 개인 성향으로 볼 것인지, 사회문화적 영향과 당시의 철학, 경제적인 부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지도 고민해야 하죠. 덕분에 다양한 사료를 살펴야 하고 다양한 연구 방식을 써야 하죠. 지루하고 지난한 연구의 나날을 이런 변주로 극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많은 주제 중 하필 동아시아 정원에 관심 갖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학부 시절 안계복 교수님(대구가톨릭대학교)의 동양조경사 수업을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어요. 당시 동양 조경을 공부할 수 있는 교재가 적었는데, 윤국병의 『조경사』(일조각, 1978)라는 오래된 활자본 책이 있어요. 체감 상 내용의 30퍼센트 이상 한자로 쓰여 있었죠.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책인데, 시험공부를 한다고 한자를 일일이 다 찾아보며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열심이었죠. 동서양의 조경사를 다 아우르는 책이었고 정말 잘 쓴 책이었어요. 그때부터 이미 동아시아 정원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대학원에 입학해 서양 미학 공부도 했지만 짧은 학습 시간 때문인지 내용에 충분히 공감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공부를 하면 하겠지만 체화하기는 쉽지 않겠다 싶었죠. 오래 연구할 주제라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하기보다 내가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조경 연구자의 일에 대해 “짧게는 몇 백 년, 길게는 천 여 년 전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공간을 상상하는 일”(“언제나 지금만 같길 바라”, 2021년 4월호)이라 표현했었죠. 자료 분석과 연구의 차이가 있다면, 논거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하느냐의 여부인것 같아요. 그 상상력의 정도가 중요할 텐데 어떤 기준으로 접근하나요.
상상보다는 가설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상정하고 연구를 시작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주장과 색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선배와 선생님이 항상 내 것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해줬어요. 무조건 내가 맞다는 생각을 경계하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펼친 상상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지, 견강부회해서 편견에 휩싸여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되묻는 훈련을 많이 하려했어요.
제가 연구하는 시대는 크게 전근대 사회와 서구 문명과 교류가 이루어졌던 근현대로 나뉘어요. 전근대 시기의 연구는 미의 인식, 즉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며 아름다움을 느꼈으며 무엇을 추구했는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등을 살펴 동아시아 문인의 보편적인 미의식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글이라는 사료를 통해 인물의 성정과 사고 체계를 짐작하고, 이를 기반으로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지향했는지 추론이 가능하죠. 하지만 공간의 생김새나 정원의 조성 방법 등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반면 근현대 시기는 좀 더 과학적인 가설을 세워 상상해볼 수 있죠. 실체가 있고 자료도 많아서 객관적으로 논증할 수 있거든요. 근현대는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한 근간이기도 해서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연구는 지식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그 대상을 치밀하고 깊이 있게 조사하는 일이고, 그 점 때문에 자칫 지루할 것 같다는 인상을 남겨요. 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지금껏 연구를 진행해오면서 머리가 번뜩하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었나요.
당연히 있습니다. 예컨대 가설이 좀처럼 참인지 진짜인지 증명되지 않고, 어렴풋이 답은 알 거 같지만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진이든, 회화든, 글이든 사료가 등장하며 의문점이 단숨에 풀릴 때가 있어요. 해결의 열쇠가 갑작스러운 등장 같지만, 대부분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끝에 보상처럼 따라와 준 것 같아요. 연구자는 스스로 세운 가설이 증명되는 순간의 짜릿한 감동을 잊을 수 없는데, 연구를 지속하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즘 느끼는 건데 시대는 끊임없이 변해도 인간의 본성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연구하는 시대의 사람들이 했던 생각과 고민, 그리고 성숙해가는 과정이 지금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우리와 똑같이 꽃 보며 즐거워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으며 설레어했던 모습을 발견하면 시공간을 뛰어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학생들에게도 그 시절이 결코 별천지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타인의 삶처럼 가르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공감대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던스케이프’(2022년 1월호~2023년 12월호) 연재를 통해 철도와 가로 같은 인프라에서 출발해 가로, 공원, 정원, 옥상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도시 풍경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에 대한 관심을 확인했어요. 원림, 양화소록, 장안성 등 본래 연구하던 시대와는 훌쩍 떨어진 근현대로 연구 분야를 확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근대 시기의 미학과 자연관만 계속 공부하다 보니 막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연구만 계속할 게 아니라 연구자로서 동시대 조경도 다뤄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요. 동아시아 정원이 마이너한 연구 분야라 외로웠던 점도 한몫을 한 것 같네요. 때마침 서울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고 보니, 조경 연구자는 저 혼자였고 건축과 역사전공을 한 연구자가 대부분이었어요. 서울학연구소가 학제간 연구를 지향하는 집단이라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함께할 기회가 생겼죠.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미학과 철학을 다뤄온 제 입장에서 건축과 역사 분야의 연구법은 과학적이고 철저한 논증을 기반으로 한 명징함 그 자체였어요. 흥미로워서 온갖 세미나에 참석하고 그들이 사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법들을 공부했죠. 이곳에 몸담은 김에 새로운 연구를 해볼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방법론만 습득할 게 아니라 연구 대상 자체를 확장하려고 보니 조경 분야가 근현대를 그저 암흑기로 치부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도시사적으로 많은 일이 벌어졌던 시기고, 다른 분야에서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그 빈칸을 채워보자 하는 마음으로 근현대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학제 연구라는 개념이 제겐 좀 모호하게 느껴져요.
실제로 쉽지 않은 연구 방법이에요. 연구자끼리 모이면 서로 뇌 구조가 다르다는 농담을 자주해요. 처음에는 갈등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서로 연구를 전개하는 방법과 훈련 받아온 연구 방법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우선 큰 주제가 있으면 계속해서 토론을 해요. 예를 들어 한양도성이 주제라면, 각자 한양도성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이야기하는 거죠. 구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도성을 만드는 인물과 제도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결코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가 만나는 순간이 있죠. 상관없을 것 같은 이야기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기고 맥락이 읽히게 되면 환경과 사람 사이에 다양한 인과 관계가 가설로 만들어집니다. 연구 결과를 텍스트에 의지해 설명하던 인문계 연구자는 지도나 도면 하나로 표현하면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요. 현상을 시각화하면 텍스트로는 볼 수 없던 경향을 포착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공계 연구자는 글의 행간을 읽는 훈련을 통해 보이지 않던 현상을 파악하는 경험을 합니다. 사료의 수집이나 활용법, 자료를 객관적으로 해독하는 기술도 배웁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받고 사고력을 확장하는 게 학제간 연구의 장점이죠.
연구하며 다양한 사료를 볼 텐데, 마음을 빼앗기는 사료 유형이 있을 것 같아요.
시각적 자료, 일본식으로 표현하자면 비문헌 자료가 아무래도 매력적이죠. 본인이 세운 가설에 몰입하다 보면 문헌 자료를 곡해할 여지가 많아요. 즉 비약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조경처럼 공간을 다루고 실체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학문에서는 회화, 사진, 엽서, 지도 같은 시각 자료가 왜곡이 덜한 정보를 제공하죠.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시각 자료에는 상상 이상의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데, 자칫하면 중요한 정보를 놓치기 십상이에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 보려는 경향이 있어서, 전혀 보이지 않던 정보가 나중에 갑자기 보이는 경우도 많거든요. 따라서 넓고 깊게 반복적으로 살펴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회화 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의 회화는 관념을 표현한 부분이 많고, 원근법을 생략하고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과 다를 거라는 인식이 많아요. 그런데 경험한 바로는 회화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스케일이 왜곡되거나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지만, 중요한 정보는 모두 담겨 있어요.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죠.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자의 의도가 하나하나 읽혀서 너무 재미있어요.
옛 사료를 많이 접하는 연구자의 경우 특정 물건을 수집하기도 하던데요.
열정적인 연구자들은 이베이 같은 경매 사이트에서 사료를 사 모으기도 하는데 저는 평범한 편입니다. 원체 제공되는 자료가 많은 시대잖아요. 학위논문을 쓸 당시만 해도 자료 수집이 쉽지 않아서 자료 확보 능력이 연구 능력으로 간주되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 시절의 노력이 허무할 정도로 다양한 자료가 공개되어 있죠. 그래서 오히려 수집보다는 그 자료를 어떤 실로 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모두에게 제공된 백 가지 정보 중 어떤 현상을 골라 어떤 물음에 답할지 틀을 짜는 게 연구자의 역량이죠.
참, 학위 논문을 쓰던 시절 중국 조경사 연구를 위해 칭화대학교와 베이징대학교를 다녔었죠. 그곳의 생활은 어땠나요.
정약용 선생과 다산초당원을 주제로 논문을 쓴 이후에도, 한국정원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 절 따라다녔어요. 사실 정약용은 매너리즘에 빠진 당시의 성리학을 비판하고 조선이 주체가 되어 유학을 바로 세우려고 했던 학자이니, 공부하고 나면 또렷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물음에 대한 답을 낼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정약용도 지금의 성리학은 너무 왜곡되었으니 원시 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공맹 사상으로 회귀하더라고요. 결국 한국정원의 고유성은 중국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건가 고민하다 보니 중국을 공부하면 한국과 차별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오른 거죠. 치기 어린 마음으로 덤벼든 겁니다.
걱정이 많았지만 운이 좋게도 중국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요. 말도 잘 못하는 애가 중국 정원을 공부하겠다고 와 있으니 교수와 동기들이 어여삐 여겨 준 거죠. 개인적으로 중국이라는 대륙에 얼마나 많은 정원 이론이 연구되고 있을지 기대했는데, 의외로 제가 한국에서 책으로 접한 내용들 이상의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있었을 당시에는 그들도 우리만큼 자신들의 정원에 대해 잘 모르더군요. 문화대혁명 이후 학문 체계가 중화사상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어요. 우리 게 최고라는 생각 아래에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나올 리 없죠. 오히려 바깥에서 여러 가지 시선으로 해석한 연구의 다양성이 더 풍부했고 흥미진진했어요.
대신 현장을 직접 답사하면서 얻은 게 많습니다. 정원이나 자연환경을 묘사한 회화 작품을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거든요. 예컨대 왕유라는 당나라 시인이 노모를 모시려고 만든 망천별업이라는 거대한 정원이 있어요. 수레바퀴 망(輞) 에 내 천川을 쓰는데, 해석하면 물이 수레바퀴가 지나간 것처럼 휘돌아가는 모양으로 흐르는 장소가 별업의 배경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림에도 그렇게 묘사되어 있는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찾아가보니 회화에서 보던 모습이 그대로 펼쳐져 있더라고요. 천년이 훌쩍 지난 곳이니 거의 남아있는 게 없었지만, 회화에 묘사된 자연의 분위기와 스케일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어요.
한번은 백거이의 여산초당으로 알려진 곳을 찾아갔는데, 글과 경관이 너무 안 맞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의아했지만 그곳에서는 모두 맞다고 하니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었어요. 오히려 다른 장소에 들렀다가 그곳 매표소 직원에게 지나가는 식으로 물어봤는데, 마침 지나던 내국인이 제 질문을 듣고는 본인이 알고 있다며 장소를 알려주었어요. 얼결에 얻은 정보라 확신은 없었지만, 알려진 장소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했기에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에 산길을 한참 올라갔더니, 백거이 시문에 묘사된 북향로봉 아래에 자리 잡은 여산초당이 거짓말처럼 드러났어요. 어두워지고 있어서 사진을 충분히 찍을 수 없는 아쉬움이 컸지만, 그때 느꼈던 전율과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비로소 글쓴이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어요. 지금은 제대로 된 곳으로 안내가 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당‧송대 산수원림 연구를 마쳤을 때 한 인터뷰에서 “중국과 한국 정원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싶다”(“禪과 정원조성 관계 연구한 ‘공학박사’ 박희성씨”, 「불교신문」 2006년 9월 6일)고 말했죠. 이후 진전이 있었나요.
나름대로 해야 할 연구들을 정리해두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그래도 실천한 것 중 하나는 강희안의 『양화소록』과 명말청초의 문인 문진형이 쓴 『장물지』를 분석해 초화류를 감상하는 방법과 그 지향점이 어떻게 다른지 미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연구예요. 사실 강희안과 문진형은 동시대 사람이 아니어서 비교가 가능할까 하는 고민이 있었지만, 두 인물은 각각 중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이기 때문에 식물에 대한 태도와 감성의 차이는 확연히 다른 것을 확인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다시 연구를 재개하고 싶습니다.
한국정원의 정체성 확립은 조경 분야의 오랜 과제입니다. 정원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있어야 한국정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이어갈 수 있고요. 국가공원과 더불어 국가정원이 지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정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여요.
학생들에게 한국정원을 가르쳐야 하는 때가 오면, 우선 우리는 한국의 정원을 잘 알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을 먼저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한국정원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은 조선에 국한되어 있어요. 조선은 관념적 사고를 추구하는 사회였고, 조형적 창작물을 만들기보다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였죠. 이러한 조선이 단일 왕조로 무려 500여 년을 지속했어요. 규범과 질서를 강조하던 국가였기 때문에 다른 정원이 끼어들 여건도 아니었죠. 여러 연구자가 이야기하는 조선의 수려한 산수가 특별한 정원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데 영향을 미쳤다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조선은 사회적‧경제적 여건 때문에 고도로 훈련된 정원 기술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어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게 조선의 색이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현재 실체가 남아 있는 건 대부분은 조선의 정원이고 북한 소재의 역사정원은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이죠. 훨씬 더 화려하고 정교할 거라고 짐작되는 고려, 백제, 신라의 정원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조선의 정원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중국의 3대 누정 중 하나인 등왕각에 간 적이 있어요. 당나라 때 만든 거대한 누정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는 게 신기했는데,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있더라고요. 여러 층에 마련된 사료를 보며 기존의 등왕각은 이미 불에 타 소실됐고 여러 차례 다시 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주목해야 할 점은 기존의 등왕각을 재현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송나라 때는 송나라 양식으로, 명나라 때는 명나라 양식으로 지었더라고요. 그 시대의 가장 최고의 누각이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당시의 건축술로 최선을 다해 재설계한 거죠. 대신 과거의 누정이 어떠했는지 기록하고요.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산은 철저하게 고증해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전통을 토대로 자유로운 해석과 실험을 시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성을 실험함에 있어, 실패와 망작에도 너그러울 필요가 있어요. 전통을 경직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라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변하지 않는 전통이 있겠지만 삶의 방식과 태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뀌기 마련입니다. 시대성은 동시대의 취미와 실천이 잘 축적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니, 많은 시도와 실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모방보다 자유로운 재해석의 실험을 시도해야 후손들이 이 시대의 정원을 보며 한국의 정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산림청이 진행한 K-가든 사업에 참여한 이유도 한국정원을 재해석하는 방향을 좀 더 유연하게 정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어요.
건축의 경우, 1960~1970년대에 거푸집을 정교하게 만들어 콘크리트로 목조 건물의 형상을 만드는 실험을 했었어요. 어린이 놀이터의 많은 놀이 기구도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던 시대였죠. 세종문화회관은 한옥의 기능과 구조, 형식을 근대 건축술로 재해석한 작품인데, 오늘날 재해석의 모범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실험을 계속했다면 지금쯤 한옥을 현대화하는 많은 기술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이제는 정교한 거푸집을 만드는 기술자를 찾기 힘들어졌죠. 우리에게는 식민지 트라우마가 있어요. 우리가 많은 것을 박탈당한 것도 사실이지만, 식민지와 무관하게 동아시아에 서구의 문물이 들어와 기존의 문화와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기도 했던 역동적인 시기이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변화를 주도한 주체가 아니었고 수동적으로 문물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우리가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여 내재화하는 시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암흑기, 공백기로만 보지 않고 근대로의 전이 과정으로 바라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선조들의 고민과 태도를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객관적 시선에서 바라보고 숨은 가치들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선은 정원을 가꾸려는 마음과 정원을 즐기고 싶은 욕망은 있었지만 고도의 정원술은 없었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구릉 많은 지형을 어떻게 이용할지, 배수 체계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할지, 주어진 자연 요소를 어떻게 극대화해 감상할지 등을 고민했다는 건 알 수 있지만, 정원 콘셉트를 잡고 자연과 인공 사이에서 정원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어 누릴 수 없던 조선의 경직된 분위기는 정교하게 정원을 즐기고 가꾸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어요. 노골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마음껏 드러낼 수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곰곰이, 여러 번 살펴볼 때 비로소 의도가 읽히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죠. 그렇기에 조선의 정원이 뒤떨어진다고 치부할 수는 없고 조선이라는 시대를 알고 공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정원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기보다, 시대의 배경과 맥락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시경관연구회 보라’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홈페이지를 보니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조경학 전공자 중심의 자율 연구 집단. 도시, 경관, 역사, 이론의 키워드에 관심을 둔 조경 전공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는 장이다”라고 소개되어 있어요. 자율 연구 집단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나요.
보라는 조경 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연구 집단입니다. 연구는 설계와 달라서 홀로 작업하는 내성이 필요합니다. 박사학위논문을 쓰면서부터는 오랜 시간을 고독하게 지내야 하는데, 학위 수여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허탈감과 고독함이 크게 다가오죠. 연구자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할 감정이지만 가끔 그 현실을 자각하며 복합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프로젝트를 통해 연대할 수도 있지만 기회가 많지 않죠.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는 박사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이런저런 기회로 알게 되었고 함께 도모할 일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모였어요. 연구의 바탕과 관심 분야가 제각각이라 걱정했는데, 조경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서로 의견도 주고받고 흥미로운 많은 대화가 오가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가지게 됐습니다. 연구의 길을 잃었을 때나 혹은 연구의 의지를 상실할 때면 서로 용기를 주고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이 열리기도 해요.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한 서울시 도시공원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조경계에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리게 된 성과까지 덤으로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은 각자의 연구를 지속하면서 어떤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해 볼지 구상 중입니다.
일부러 느슨하게 이어가는 활동이기도 해요. 마음 맞는 연구자들의 사교 모임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책무가 주어지는 순간부터 부담스러워질 테고, 서로가 가진 일의 양을 비교하는 등 미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 크든 작든 이 활동이 끊이지 않도록 이어가자는 암묵적인 규약 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풀다보니 참 여러 주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자칫하면 중심을 잃을 정도로요. 지금 박희성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가장 큰 질문은 무엇인가요.
황기원 교수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은 늘 학자는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공부해서는 안 되고, 후학을 양성하고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요즘 들어 그 말을 자주 되새깁니다. 우선 동아시아 국가의 정원술을 우월의 관점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꾸준하게 가지려고 합니다. 결국은 한국정원의 고유성을 알리고 가치 발굴, 보존 관리, 활용을 하는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근대 주택정원 연구도 이어가고 싶어요. 대다수의 근대 정원이 개인 소유라 방문이 어렵고 공간의 변형이 많아 어려움이 있는데, 동서양 문화의 교류와 혼종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 한국조경의 흐름과도 연결 지점이 있을 것 같고요. 최근에는 김정화 교수(네바다주립대학교)의 제안으로 길지혜 박사와 함께 잔디 경관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공원에서 흔히 보게 된 잔디밭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근대의 대표 경관으로 인식되었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무덤에서나 볼 수 있던 잔디의 경관이 어떻게 근대 정원과 공원에 꼭 두어야 하는 필수 공간으로 변화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미국과의 연결고리가 확인되어서, 잔디의 교류와 전파의 과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 한국의 들잔디가 미국에 수출되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함께 연구할 예정입니다. 전근대, 근대를 막론하고 한국에 국한된 연구를 하기보다 교류와 영향을 함께 보려는 태도를 견지하려 해요.
마지막으로 한국조경학회 학술부회장을 맡았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갈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학술 주제를 발굴해 내용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합니다. 조경이 다루어야 하는 과제가 참 많아요. 나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주제도 조경 분야 안에 있다면 사실 나와 연동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거든요. 조경인이라면 공감대를 형성해 함께 고민해야 할 다양한 주제를 다룰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참여를 견인해 일찍부터 조경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의 한 꼭지를 맡게 되어(“언제나 지금만 같길 바라”) 과월호를 통해 1세대 조경가의 활동을 한꺼번에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들이 제도적, 환경적으로 지금보다 더 열악한 여건에서 조경의 역할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걸 다시 깨달았죠. 그렇게 마련된 토대 위에서 우리는 너무 안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그 토대를 더 단단히 다지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데, 자신의 몫을 다하는 데만 충실한 면이 있어요. 조경이라는 분야가 어떤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도 부족했고요. 오히려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관에 대해, 도시 외부 공간에 대해, 역사 유산의 주변부 관리와 운영에 대해 조경이 정말 잘 해내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변화하는 시대와 관계망 속에서 조경이라는 분야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토론의 장을 만드는 역할을 학술분과가 해냈으면 합니다. 물론 여러 사람의 협조가 필요할 거예요. 조경학회의 다른 분과를 비롯해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함께 협력해 세미나를 꾸려보고 싶어요. 이 자리를 빌려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린다는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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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거칠고 거친 1960년대, 재생의 물살 속으로
공원도 꼬까옷이 필요해
‘좋은 공원’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수많은 조경인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좋은 공원을 만드는가? 좋은 공원이 되기 위한 조건에는 무엇이 포함될까? 변화된 사회에 걸맞게 새롭게 단장한 공원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물론 필연적이다― 공원은 어떤 ‘꼬까옷’으로 단장해야 할까?(각주 1)
조경사 강의 중 1960년대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제스처가 커진다.(각주 2) 1960년대는 환경, 우주 개발, 세계 정세, 금융, 도시계획 등 온갖 분야에서 새로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시기였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나씩 뽑자면 끝이 없겠지만 환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던 당시 조경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안 맥하그(Ian McHarg)를 필두로 한 생태적 지역계획 방법론과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그리니치 빌리지 마을 보존 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에피소드 1. 그리니치 빌리지의 그와 그녀
시민 참여, 장소 만들기, 도시재생, 지역다움 보존 등 재개발의 반대 선상에 놓인 분야의 교과서 격인 제인 제이콥스의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1961)은 제이콥스를 인문 도시계획 분야의 일약 스타로 만들어 주었고, 1960년대 초 그리니치 빌리지를 둘러싼 그(로버트 모세스, 당시 75세)와 그녀(제인 제이콥스, 당시 48세)로 대표되는 ‘도시 개발 대 마을 보존’의 대결이 불거졌다.(각주 3) 사실 제이콥스가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건 1961년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 아파트 개발 사업으로, 실제로 고층 빌딩이 아닌 낮은 층수의 인간적 스케일(human scale)로 건설이 진행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미디어에, 그리고 이후 학계에 한층 더 큰 여파를 낳게 된 건 그리니치 빌리지(Greenich Village), 특히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가로지르는 로어 맨해튼 고속도로(LOMEX) 계획이었다. 도시에 (현재) 살고 있는 거주민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 도시 발전을 위해 일정 부분 거주민의 희생이 있더라도 교통을 우선할 것인가?(각주 4)
뉴욕시 공원 운영위원장, 로버트 모세스
조경가의 인식 속 로버트 모세스(Robert Moses)의 평판이 바닥을 찍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하나는 대중교통 등한시, 웨스트사이드 고속도로와 허드슨 브리지 등의 교통 개편, 슬럼을 없애고 커뮤니티를 해체한 대대적인 재개발로 뉴욕시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다른 하나는 로버트 카로(Robert Caro)의 퓰리처 수상에 빛나는 모세스 전기, 『위대한 브로커(The Power Broker)』(1974)로 인한 것으로, 오늘날 도시계획 관료로서 모세스의 생각과 실천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강력한 계기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세스가 뉴욕의 도시공원과 공공 공간 활성화에 미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테다.
1934년 1월 18일, 뉴욕시 공원국은 “다섯 개로 나뉘어 운영되던 자치구별 공원 운영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에 따라 한 명의 운영위원장이 뉴욕시 전체의 공원을 다루게 되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 명의 위원장’은 뉴욕주 공원위원회의 대표이기도 했던 로버트 모세스였다. (뉴욕시 보직을 수락하기 전 모세스는 뉴욕시 자치구별 운영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당시 뉴 욕시장이었던 라 과디아(La Guardia)는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공학적이고 효율적인 도시 운영(각주 5)의 가능성을 중요하게 보고 있었고, 이에 따라 뉴욕시 대표적 진보주의자였던 모세스가 뉴욕주와 뉴욕시의 공원녹지계획을 모두 진두지휘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 발행된 뉴욕시 공원국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모세스가 추구한 공간 효율성 증대와 활성화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대중교통보다 자동차를 중시했으며, 도로를 따라 여러 파크웨이를 조성했다. 흔히 ‘벨트 파크웨이(Belt Parkway)’라고 불리는 이 파크웨이들은 반세기 전 옴스테드가 주장한 ‘공원의 연장선이자 도로’로서의 파크웨이가 아니라, 뉴욕시의 여러 자치구를 연결하는 새로운 고속도로 옆 버퍼 공간으로서 녹지대를 의미했다. 즉 도로로서 파크웨이의 의미가 사라지고 효율적이고 편안한 자동차 운행을 위한 장식이자 분리대로서 파크웨이의 기능적 측면이 강조된것이다.
*환경과조경442호(2025년 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오랜 기간 조경의 장식적 활용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 다만 ‘장식’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리하자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Anita Berrizbeitia, “Design: On the (Continuing) Uses of the Arbitrary”, A Cultural History of Gardens in the Modern Age , John Dixon Hunt, ed., New York: Bloomsbury Publishing, 2016.
2. 은사인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의 조경 이론 수업도 1969년에 방점을 찍고 있다. 권위자 이름을 빌려 의견에 무게를 실어본다.
3. 이 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연도 제작된 바 있다. ‘불도저: 로버트 모세스를 위한 노래’, 모세스의 삶을 바탕으로 한 ‘직선에 미친 사람(Straight Line Crazy)’, 로버트 모세스와 제인 제이콥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 ‘놀라운 질서(A Marvelous Order)’ 등 이다.
4. 봄, 가을에는 전자로, 여름, 겨울에는 후자로 기울어진다. 기상청에 물어보자.
5. 20세기 초중반 정치적 차원에서 미국 북동부의 진보주의란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논리에 따라 도시를 운영하는 것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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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링하는 도시생활자-공동공간 쇼핑안내서
제16회 조경비평상 가작
“나는 우리가 여전히 가로와 광장이 공공을 위한 영역이라는 생각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공을 위한 영역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요.(각주 1)쇼핑은 인류 공공 활동의 마지막 남은 형식일 것입니다.”(각주 2)
1. 몰링하는 도시생활자
나는 아침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대형 쇼핑몰을 산책하고 있다.(각주 3) 아쿠아리움 주변은 학생들로 북적인다. 연차를 쓴 오늘, 딱히 별다른 목적은 없다. 그저 어슬렁거리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실 생각이다. 우연히 괜찮은 카디건을 발견하면 입어볼 수도 있겠다. 몸뚱이에 외제들로 가득한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 국산 브랜드 한두 곳을 둘러보긴 할 건데 오늘 지갑을 열 생각은 없다. 어제부터 열린 팝업에서 러닝 장갑이나 양말 색깔이 마음에 들면 와이프 선물로 살 수도 있겠다. 이따 영화를 볼지 스파에 갈지는 고민 중이다. 강아지 터깅 장난감과 바질페스토는 사갈까 싶다. 근데 귀찮으면 밥만 먹고 집에 가서 쪽잠이나 자려 한다. 나는 이따 쇼핑하긴 할 건데 쇼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지금 쇼핑하고 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각주 4) 이러한 오프라인 리테일 공간에서의 산책과 점유, 방랑과 배회를 몰링(malling)이라 부른다.(각주 5)
바깥은 지금 미세먼지가 많기도 하고 날씨 예보는 고장 난 오락기처럼 오락가락한다. 사오월과 구시월을 지나 그래픽·사인의 남루함을 드러내는 주변 공원에는 촌스러움이 싹트고 지루함이 개화한다. 공원의 맥락을 무시한 채 뜬금없이 등장하는 땡땡 정원들. “왜 공원 안에 정원이 있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건축도 없고 공원도 엉망인데 별 요상한 정원들만 많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철학적 대화는 꽃 사진을 찍는 아저씨들의 조리개 너머로 개똥처럼 사라진다. 제각각의 그래픽·사인으로 난장을 이루는 여느 핫플 거리들은 공황장애 초기 증세를 유발한다. 그렇다고 파시즘이 점령한 마을처럼 색채가 획일화되고 경직된 기획 공간을 걷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세금으로 충당한 재원을 이렇게 썼다는 전시 행정의 비루함. 힘들게 모은 돈으로 자녀를 통제하려는 엄마 아빠의 욕심과 오버랩된다. 찰나의 영감보다는 특유의 비장함과 모종의 살기로 뒤덮인 거리. 따분함과 씁쓸함을 배가시킨다. 공원 게이트 주변에 걸린 정치 편향적 현수막들과 공사 준공을 뽐내는 전시 행정의 파편들. 다수의 광장, 거리, 공원 등의 공공 공간들은 검소하면서도 누추하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다. “공공 영역은 사라지고 공공 공간만 남았다”는 누군가의 도시 진단이 떠오른다.(각주 6) 그사이 마주치는 몇몇 상인들의 태도는 부담스러운 비즈니스적 환대감 또는 저급한 불친절함 그 어딘가의 좌표에 널부러져 있다.
반면 대형 쇼핑몰은 과거의 잡스러움과 호객 무드를 탈피한 지 오래다. 편집숍, 박람회장, 미술관의 큐레이터 무드로 고객을 느슨하게 환대한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는 이제 불필요한 화법이다. 똘망똘망한 눈빛과 연출성 웃음보다는 되려 차분하고 시크한 눈빛의 담담함이 덜 부담스럽고 더 전문적으로 느껴진다. 대형 쇼핑몰은 고객이 상품과 교감할 시간, 선물 거리를 고민할 시간, 브랜드 가치를 경험할 시간, 그 경험 자체를 공유할 시간, 어슬렁거림과 익명성을 누릴 시간이 모두에게 고결한 시간들로 인정되는 고립 영토다. 이곳에선 서로의 취향과 영역이 오롯이 존중된다. 상품이 진열되고 간택되는 “셀링 공간”은 브랜드 고유의 가치가 전개되는 “쇼룸”의 형식으로 전환되었기에(각주 7) 상품 앞에, 아니 쇼룸과 몰이라는 이 영토 안에서 익명의 이웃들이 평등해지는(듯한)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각주 8)
대형 쇼핑몰에서는 전체 공간을 아우르는 일관된 무드의 그래픽·사인이 공간의 레이아웃을 잡는다. 그 안에서 여러 테넌트들이 각자의 개성을 전개한다. 주차장, 식품, F&B, 코스메틱, 여성 패션, 럭셔리, 컨템, 남성 패션, 스포츠, 리빙, 식당가, 문화센터, 옥상정원들이 각 층에 고루 배치되어 있다. 이색적인 팝업스토어와 보이드 VM, 유명 아티스트의 수준 높은 전시회와 테니스 클래스, 시네마와 스파, 셀렉숍 콘셉트의 서점과 특색 있는 카페들, 적당한 온도의 에어컨디셔닝과 깨끗한 화장실, 편리한 ESC와 무장애를 위한 E/V는 덤이다. 적재적소에 전략적으로 배치된 벤치들과 고감도로 연출된 화분과 화단이 인공적인 환경에 환대감을 선사한다. 보타닉·바이오필릭 개념의 대형 쇼핑몰 디자인은 유행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디자인 옵션 중 하나가 되었다.(각주 9) 유리 천장은 높이 뚫려 은은한 햇빛이 들어오고 고감도로 디자인된 적당한 크기와 색감의 그래픽·사인이 공간에 안정감을 더한다. 매장 주변의 보행 폭원은 4m에서 12m까지 널찍해서 마주 오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둘이 걷다 하나가 없어질 리없다. ESC는 MD 구성에 따라 1ㆍ2층을 연결하기도 하고 2ㆍ4층을 과감하게 연결하기도 한다.
벤야민이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목격한 쇼핑공간의 스케일을 몇십 배 넘어서는 이곳엔 콜하스가 예견했던 대형 건축의 특성들이 충만하다. 대형 쇼핑몰 건축 파사드와 내부의 디자인 연계는 모호하고(건축내ㆍ외부의 분리), 내부 공간들은 서로 다른 취향의 디자인 콘셉트로 가득하며(내부와 내부의 분리), 내부 공간의 테넌트와 팝업은 끊임없이 변모하고(단절과 연계의 지속적 변화), 고객들은 전후방 구분 없이 각 층과 각 방향에서 쇄도한다(전이감의 해체).(각주 10)
2. 라지(large)-쇼핑몰과 유사공(共)원
대형화된 쇼핑 공간에서의 몰링은 여느 도시공원 산책과 유사하다. 동선 디자인에는 픽처레스크의 유려한 곡선 DNA가 담겨있다. 더 많은 양의 브랜드를 보행자에게 인식시키려는 쿨한 상업적 시뮬라크르다. 대형 쇼핑몰은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으며 유니버설 디자인의 수준은 펫 라운지까지 이르렀다. 케빈린치가 제시했던 도시 이미지의 다섯 가지 요소도 이곳에서 유효하다. 에지는 고객 사이드 동선·직원 후방 동선으로, 패스는 메인 동선으로, 디스트릭트는 각 테넌트의 매장들로, 노드는 트래픽 교차점과 결절부(VP) 공간으로, 랜드마크는 곳곳의 대형 보이드와 VM·팝업 공간으로 완벽히 치환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도시생활자에게 다른 행성 소 도시에 온 듯한(낯설지만 익숙한) 기분을 선사한다. 장축 200~400m에 단축 100~150m를 선회하는 대형 쇼핑몰은 거대한 공원과도 같다. 어느 조경 비평가도 모 기자에게 야구장을 파크(park)라고 하지 않았던가.(각주 11) “도시가 공원이고 공원이 곧 도시”라는 20여 년 전 다운스뷰 파크에서의 문장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도시가 대형 쇼핑몰이고 대형 쇼핑몰이 곧 도시”라는 은유 역시 가능해 보인다.
대형 쇼핑몰의 독특한 몰링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은 “라지(large)”가 선사하는 규모감이다.(각주 12) 국내 오프라인 대형 리테일의 경우 교외형 아울렛은 2007년(여주 신세계아울렛), 도심형 대형 백화점은 2009년(부산 신세계백화점), 도심형 복합쇼핑몰은 2014년(잠실 롯데월드몰)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도심형 대형 백화점과 쇼핑몰의 경우 건축물 외부 녹지와 외부 주차장을 제외한 1층의 건축(영업) 면적만 따지더라도 근린생활권 근린공원 1만㎡와 도보권 근린공원 3만㎡ 이상의 규모를 충분히 상회한다. 1층 몰링에 약 15분(약 1km)이 소요된다고 가정하면, 지하 1층~지상 5층 몰링에만 약 1시간 30분(6km)이 소요된다.
또한 대형 쇼핑몰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와 시행규칙 별표1에서 규정한 공원시설(조경시설, 휴양시설, 유희시설, 운동시설, 교양시설, 편익시설, 공원관리시설, 도시농업시설, 그밖의 시설) 대부분을 포함한다. 설치하기에 어색한 시설은 “9. 그 밖의 시설” 중 “가. 장사시설”, “라. 보훈회관”, “마. 무인동력비행장치 조종연습장” 등 세 가지 종류에 불과하다.(각주 13) 법규적으로도 이 둘은 모두 국계법이 정한 “기반시설”이다. ‘국계법’ 시행령 제2조(기반시설)에서 규정한 일곱 가지 종류의 기반시설 중 공원은 공간시설에, 대형 쇼핑몰은 유통·공급시설에 해당한다. 모두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2조(도시·군계획시설결정의 범위)에 따라 도시·군관리계획결정을 받아야 하는 도시계획시설이다.(각주 14)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형 쇼핑몰은 동선의 형태와 공간의 구조, 근린공원·문화공원의 규모감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공원시설을 수용하며 주어진 시간 내에 누구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다. 구경하고 관찰하고 구매하고 사진을 찍고 기다리는 활동,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멍을 때리는 활동, 브랜드 팝업이나 대규모 이벤트에 참여하는 활동도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다. 심지어 야구장, 극장, 공연장처럼 입장료를 징수하지도 않고 좌석에 차등을 두지도 않으니 그 유사도가 대단히 높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공원(公園)은 사(私)적인 장소의 반대 개념으로서 국가나 사회에 관계된 “공적인(public) 장소”를 의미하므로, 대형 쇼핑몰을 유사공원이라 부르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공원의 아류 또는 공원의 가면을 쓴 상업적 페이크 공원(fake park)에 불과한 것 아닐까?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가 몰링 경험이 선사하는 공동의 감각에 다시 한번 주목하는 순간, 유사공원의 가능성이 개화한다. 이 접근은 유사공원의 성립 조건을 공(公)과 사(私)라는 소유 개념에 두는 것이 아니라, 공공(公共)공간에서의 두 번째 공(共), 즉 커먼즈(커머닝)의 공간 경험에 주목하는 미학적 접근이다. 이에 따라 대형 쇼핑몰은 단순히 공원과 닮아 보인다는 의미의 유사공원(類似公園)일 뿐만 아니라 유사공원(類似共園), 즉 공과 사의 구분 없이 둘 또는 그 이상의 것에 관계하는 “공동(통)적인 것(commons)”을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 유사공원은 엄연히 새로운 버전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거듭난다. 이 세계관에서 대형 쇼핑몰, 야구장, 공항, 가로, 환승센터, 역사, 박물관, 대형병원 등은 모두 유사공원의 지표인 “공동공간 커머닝(감각)”이라는 속성을 득하게 됨으로써 유사공(公)원의 위상, 아니 유사공(共)원이 된다.(각주 15)
*환경과조경442호(2025년 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렘 콜하스, 봉일범 역, 『렘 콜하스: 학생들과의 대화』, 엠지에이치엔드맥그로우한, 2000, p.45.
2. Rem Koolhaas, Chuihua Judy Chung, Jeffrey Inaba, Sze Tsung Leong(eds), Project on the city Ⅱ Harvard Design School Guide to Shopping , Cologne: Taschen, 2002, p.1. “Shopping is arguably the last remaining form of public activity”라는 선언은 렘 콜하스와 하버드 GSD의 도시연구서 시리즈 중 쇼핑과 도시의 관계를 다룬 두 번째 연구서 서문의 첫 문장이다. 이 연구서는 네 명의 저자가 작성한 약 800여 페이지의 에세이 모음집이며, 첫 번째 연구서 『Great Leap Forward』는 부동산의 세계화를 다룬다.
3. 이 글에 등장하는 대형 쇼핑몰은 비좁은 공간의 중소형 백화점이 아니라, 판매자와 잠재 고객 간의 거리가 최소 7m 이상 떨어져 서로의 시선이 희미하게 캐치되는 쇼핑 공간, 세미-프라이버시 확보라는 익명성의 규율을 암묵적으로 준수하는 쇼핑 공간을 의미한다. 이 기준은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 제3호에서 규정하는 대규모 점포(대형마트, 전문점,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의 규모 3천제곱미터 이상의 매장 면적을 훨씬 상회한다. 롯데월드몰(잠실), 더현대서울(여의도), 스타필드(하남, 고양), 타임빌라스(수원), 롯데백화점(동탄),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의왕, 동부산), 현대백화점(판교), 현대프리미엄아울렛(김포, 남양주), 신세계백화점(대전, 대구), 롯데몰 웨스트레이크(하노이) 등 백화점·아울렛·복합쇼핑몰 일체를 일컫는다.
4. 쇼핑의 개념은 구매하는 쇼핑, 구경하는 쇼핑을 거쳐 브랜드 고유의 가치를 오감으로 경험하는 개념, 그 경험을 익명의 이웃과 공유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왔다. 즉 물질 소비가 브랜드의 경험가치 소비로 전환된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쇼핑이 물질에 국한되지 않고 심리적인 것이 되는 양상은 마르크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쇼핑을 “돈과는 상관없는 하나의 공연”으로 보았다. 렘 콜하스, 프레드릭 제임슨, 임경규 역, 『정크스페이스ㅣ미래도시』, 문학과지성사, 2020, pp.92~93.
5. 대형 쇼핑몰의 몰링은 독특한 유형의 공동(커머닝) 감각을 선사한다. 커먼즈 연구가 데이비드 볼리어(David Bollier)에 따르면 커머닝이란 공유된 자원을 관리하는 체제들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상호 지원, 갈등, 협상, 소통 그리고 실험의 행동들을 의미한다. 이 글은 “커먼즈가 기본적으로 물질적 욕구와 정서의 공유 전반을 포괄한다”는 그의 주장에 주목함으로써 공동공간에서의 공동 경험, 즉 “커머닝 감각”이라는 용어를 제시하였다. 또한 커먼즈와 커머닝이 “단순한 공유(sharing)의 의미일 뿐만 아니라 나눔과 참여의 의미를 갖는다”는 한디디의 유연한 해석은 이 글이 몰링의 의미에 대한 전반적 기조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커머닝과 커먼즈의 유의미한 담론은 다음을 참조할 것. 데이비드 볼리어, ‘Commoning as a Transformative Social Paradigm(사회변형 패러다임으로서의 커머닝)’, The Next System Project, thenextsystem.org/newsystemsreader; 데이비드 볼리어, 배수현 역,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갈무리, 2015; 한디디, 『커먼즈란 무엇인가』, 빨간소금, 2024.
6. “공공성과 공공 영역은 사라지고 물리적인 공공 공간들만 남았다”는 그의 기조는 여러 에세이에서 일관되게 드러난다. 4번 책, pp.31~44.
7. 롯데백화점 본점 ‘탬버린즈’, 잠실 롯데월드몰 ‘아더에러’, 하남 스타필드 ‘젠틀몬스터’ 사례처럼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도 브랜드의 가치는 전개된다. 무신사 스탠다드와 같은 단독 매장들도 대형화가 되면서 피팅룸 역시 사이즈를 확인하는 엄숙한 밀폐 공간이 아니라 피팅의 과정을 즐기는 유희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8. 상품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고가의 명품들이 중산층에게 박탈감을 선사하고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례로 조던 신상의 획득은 클릭을 누가 더 먼저하고 오픈런을 누가 더 먼저하느냐에 달려있게 되었다.
9. 의왕 롯데프리미엄아울렛과 여의도 더현대서울 모두 2021년에 오픈했다. 보타닉·바이오필릭 쇼핑 공간 콘셉트는 1851년 영국 만국박람회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글의 3장에서 다시 한번 언급할 예정이다.
10. 대형 건축의 특성들은 국내에 번역된 그의 여러 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기는 하나 그중 가장 친절한 설명은 1번 책을 참조할 것.
11. 최근 야구장과 대형 쇼핑몰이 하나로 연결된 세계 최초의 돔품몰(인천 청라) 청사진이 공개됐다. 유사공원(야구장, 대형 쇼핑몰)의 기묘한 동거를 주제로 삼자대면을 한다면 그 기자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12. 1956년 미국 최초의 몰, 미네소타주 사우스테일 쇼핑 센터의 규모는 보통 사람들이 도심에서 세 블록 정도를 걷는다는 원칙에 근거하여 그 거리에 해당하는 1,000피트가 평균 길이가 되었다. 설혜심, 『소비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7, p.351.
13. 제도적으로 대형 쇼핑몰은 건축법에서 규정하는 다수의 시설을 대거 포함한다. 특히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84조(시장의 구조 및 설치기준)와 ‘건축법’ 시행령 별표1(용도별 건축물의 종류)에서 정한 방대한 종류의 편익시설을 참조할 것.
14. 세부적으로 대형 쇼핑몰은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정의)에 따른 대규모 점포(대형마트, 전문점,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에 해당하며 ‘건축법’ 시행령 제3조의5(용도별 건축물의 종류)에 따라 판매시설 중 소매시장에 해당한다.
15. 물론 유사공원 중 민간 자산의 경우 커머닝의 종류가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예측되며 특정 조직의 규율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에서 커머닝의 한계가 존재한다. 쇼핑 공간에 우수고객 등급별 차등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유사공원 정의가 비약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우수고객제도라는 보상 마케팅은 고립 영토의 자체 규율이라는 점과 그 내용이 공개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공원으로서의 결격 사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권정삼은 씨토포스와 도화엔지니어링에서 도시·조경 디자인과 인허가 컨설팅을 담당했다. 현재는 롯데백화점 디자인센터 비주얼 부문에서 국내외 다양한 공간 디자인 빌드 파트너사와 협업하며 오프라인 리테일(백화점, 쇼핑몰, 아울렛)의 실내외 조경 디자인 프로젝팅, 프로듀싱, 디렉팅을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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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조경비평상 심사평
월간 『환경과조경』이 주최한 ‘2024 조경비평상’에는 여섯 편의 원고가 접수됐다. 지난 1월 15일 본지 세미나실에서 배정한 편집주간, 남기준 편집장, 박승진 편집위원이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권정삼의 ‘몰링하는 도시생활자’를 가작으로 선정했다.
비평은 대상과 현상을 탐구하거나 조사한 결과를 적는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니다. 에세이와도 다르다. 비판적 읽기와 쓰기를 넘나드는 비평은 대상과 현상의 의미를 해석하고 가치를 평가해야 하며, 주장과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비평은 창작보다 더 어려운 글쓰기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조경비평은 조경 행위의 결과물인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공간 또는 문화 현상을 기술, 해석, 평가하는 작업이므로 쉽지 않은 글쓰기 장르다.
논거를 충실히 갖춘 글보다 한 번에 읽히는 글과 이미지가 사랑받는 시대에 여섯 편의 평문이 접수되어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다수의 출품작이 비평의 필요충분한 형식을 갖추지 못했고, 동시대 조경에 의제를 던지거나 기성 담론에 균열을 내는 참신한 주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응모자 모두 조경비평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확인한 바, 다음 ‘조경비평상’의 문을 다시 두드릴 것을 권한다.
가작으로 뽑은 ‘몰링하는 도시생활자’는 경쾌한 글쓰기 스타일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대형 쇼핑몰에서 도시공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참신한 발상을 논리적으로 끌어갔다는 점에서 가작으로 선정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한층 더 압축적으로 논지를 전해 독해의 밀도를 높였다면 어땠을지 궁금하지만, 역으로 길게 풀어쓰는 형식 자체가 장점으로 읽히기도 했다. 출품자 권정삼의 말처럼 대형화된 쇼핑 공간은 일종의 공공 영역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몰링’ 행위는 도시공원에서 경험하는 산책과 유사한 면이 있다. “도시가 대형 쇼핑몰이고 대형 쇼핑몰이 곧 도시”라는 주장, 대형 쇼핑몰이 “유사공원의 지표인 공동공간 커머닝(감각)이라는 속성을 득하게 됨으로써 유사공公원의 위상, 아니 유사공(共)원이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수상을 축하하며, 이번 글쓰기에서 보여준 잠재력이 앞으로의 비평 활동에서 더욱 정련되어가기를 기대한다.
가작 수상작과 함께 최종 토론에 오른 제출작 ‘서사의 발견’은 글의 탄탄한 구조가 돋보이는 평문이었다. 조경에 서사를 담아야 한다는 주장을 세 가지 예를 통해 제시한 점이 안정적이었지만, 조경과 서사를 잇고 엮는 논지가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데 심사 의견이 모였다. 응모자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작가론, 작품론을 비롯해 다양한 평문이 도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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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바람 따라 보낸 하루
일요일 아침,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울린다. 힘겹게 눈을 떠 잠을 깨우는 녀석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면 매주 보던 알림이다. “지난주 스크린 타임은 12% 증가하였으며 하루 평균 기록은 4시간 25분입니다.” 울릴 때마다 알람 소리를 꺼두어야지 생각하지만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당장 울리는 알람 소리 끄기에만 급급해 설정을 바꾼다는 걸 까먹어 매주 만난다. 메시지를 볼 때마다 조금은 반성하게 된다. 증가만 하는 스크린 타임 기록, 줄어드는 일은 손에 꼽힌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8시간을 잠을 자고 8시간을 회사에서 지내니 16시간을 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8시간. 8시간 중 절반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는 소리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계산한 시간을 보니 하루 중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다. 특히 밥 친구로 OTT나 유튜브를 보는 습관이 스크린 타임을 늘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밥 먹으며 보는 몇 가지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이 중 업로드되면 바로 찾아가 보는 채널이 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핑계고’다. 유재석이 게스트들과 함께 떠들어 제끼는(이 채널에서 ‘수다를 떤다’는 단어를 ‘떠들어 제낀다’라고 표현한다) 영상으로, 라디오처럼 즐길 수 있어 밥 먹을 때 잘 챙겨 본다.
배우 황정민이 핑계고에 출현해 채널명을 실수로 ‘풍향고’라고 잘못 말해 시작된 스핀오프 시리즈는 내게 색다른 계획을 세우게 했다. 유재석이 풍향고에 ‘바람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정식으로 풍향고가 만들어졌고 유재석, 황정민, 지석진, 양세찬이 함께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으로 떠나면서 조건을 덧붙였는데, ‘애플리케이션 없이 떠나는 여행’이다. 사전에 비행기 표만 예약하고 숙소, 이동 수단, 환전, 음식점 등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베트남에서 고군분투하는 출연진의 모습이 웃기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어딜 가든 휴대폰을 안 챙긴 적이 없으니 애플리케이션을 쓰지 않고 여행을 간다는 걸 상상한 적이 없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해외여행은 무리인 것 같아 당일치기로 가까운 곳을 다녀오는 걸로 도전했다. 목적지는 경기도 양평의 어느 대형 카페. 첫 장소만 정하고 다음 장소는 도착하면 고르기로 했다. 출발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수도권만 확대되어 있고 명소가 표기된 종이 지도를 구하는 게 힘들었다. 서점에서 파는 국내 여행 책을 뒤져 원하는 지도를 찾았고, 종이 한 장 들고 떠났다. 최대한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더 집중해서 지도와 표지판을 봤다. 무사히 도착한 카페에서 마신 커피는 더 달달했고, 통창으로 본 남한강의 풍경은 시원하게 뻥 뚫린 기분을 느끼게 했다.
다음 목적지는 딸기 체험 농장. 처음에는 양평의 대표 명소 두물머리를 가려고 했는데, 카페 오다 본 ‘달달한 딸기도 따고 케이크도 먹고’라는 광고 문구가 생각나 농장으로 가게 됐다. 가지고 온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 기억을 더듬어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도착했다.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서 취소 표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금 고민됐지만 하자고 마음먹었으니 기다리기로 했고, 다행히 자리가 났다. 딸기 따고, 딴 딸기로 케이크도 만드는 꽤나 알찬 체험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해 근처에 보이는 한정식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글로 읽을 땐 큰 탈 없이 다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경로 이탈도 많이 하고 목적지 하나 정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카페에서 그냥 집에 갈까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찼지만 이왕 시작한 아날로그를 즐겨 보기로 했다. 어딘가에 앉으면 SNS 게시물을 보는 게 루틴이 되었는데 할 게 없으니 주위를 더 둘러보게 됐다. 특히 동행자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 반, 뭔가 더 재미있을 거 같은 설렘 반으로 바람 따라 떠난 여행은 스스로 쌓아둔 장벽을 무너뜨리게 했다. 뭐든 해낼 수 있는 무모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새해 버프까지 더해진 자신감은 을사년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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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결국 편지를 읽어 줄 주인을 찾는 일이지 않을까
정기구독자 수 그래프의 기울기를 들여다보는 시기다. 가슴에 잡지 더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답답해진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래서 떠올린 게 활자라도 내 안에 채우자는 생각이었다. 두꺼운 책은 부담스러웠다. 그렇다면 한손에 쏙 들어오는 127×191mm 판형에, 331g의 가벼운 무게의 책이 좋겠다. 15년간 잡지를 만들어온 베테랑 편집자이자 『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자인 박지수의 『잡지 만드는 법』(유유, 2023).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가볍게 휙휙 넘겨 보겠다는 게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었는지 읽다 멈추기를 반복해야 했다.
“잡지의 이름에는 뜻과 소리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제호가 지닌 모양‧시각성이다. 아무리 뜻과 소리가 좋은 제호라도 표지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되기 어려운 형태라면 곤란하다.”(『잡지 만드는 법』 28쪽, 이하 책 제목 생략) 친구 Y가 내게 왜 잘 만든 로고를 활용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표지에 환경과조경의 텍스트 로고 laK를 크게 넣어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던 때의 일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니 설명이 이어졌다. 환경과조경이라는 제호는 올드하고 딱딱한 느낌이 강한데, 이 로고는 힙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라크’라고 부르면 안 되냐는 말에 공식 제호가 있는데 굳이 혼란을 줄 필요는 없다고 답했었다. 환경과조경이라는 이름을 먼저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답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Y의 말이 가끔 생각난다. 은밀히 라크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유도해 보라고, 어떤 이름이건 더 많은 사람에게 불리면 좋은 거 아니냐던 그 말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킬 것. 표지를 고를 때 가장 유념하는 부분이다.”(157쪽)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독특한 형태의 도면을 표지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선을 빼앗는 공원의 전경 등 풍경 사진도 좋지만, 조경설계를 다루는 전문지라는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가 도면이라는 데 편집자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더 감성적이고 화려한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할 수 있는 정원, 여행, 라이프스타일 잡지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의미에 무게를 두고 즉각적인 반응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포맷과 폼이 고정되면 단순히 형식만 일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춰 내용이 규격화된다. …… 그렇게 되면 독자에게 편안함과 익숙함을 제공했던 포맷과 폼이 어느 순간 지루함과 정체감으로 다가가기도 한다.”(39쪽) 고백하자면, 2022년 새롭게 시도한 지면을 편집할 때 갑갑함을 자주 느꼈다. 잡지 서두에 배치된 이 꼭지는 프로젝트의 설명글과 더불어 조경가의 인터뷰를 함께 담았는데, 지질을 달리해 촉각적으로도 구분되도록 기획됐다. 접지 제본 방식 특성상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늘 16쪽으로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 지면에 소개할지 말지 고민이 되는 프로젝트가 생기기도 했다.
종이 위에서 여러 번 멈춰 섰지만, 가장 오래 걸음을 옮기지 못한 곳은 『보스토크 매거진』의 독자 상상도(23쪽)가 그려진 지면이었다. 사진에 관심있는 다양한 영역의 독자 800~1,000명을 중심으로, 사진, 디자인, 미술, 영화, 문학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키워드에서 가지처럼 뻗은 긴 텍스트는 이미지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학생, 사진 찍는 문인들, 광학기기 이미지에 관심 있는 이들 같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환경과조경』의 독자 상상도를 그려보려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떠올리는 데도 실패했을 때는 귓가가 화끈해졌다. 박지수는 이따금 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는 일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편지는 파도를 헤치고 어딘가에 가닿을 수 있을까, 그 여정은 편지를 띄운 주인을 찾는 일이 아니라, 결국 편지를 읽어 줄 주인을 찾는 일이지 않을까. 어쩌면 갑자기 사라지는 것보다,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없는 것보다 더 외로운 건, 끝내 어느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하는 일, 그것이 무서워 더 이상 바다로 나서지 않는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206쪽) 막연해서 채워 넣지 못했던 2025년 목표에 한 가지 문장은 적을 수 있게 됐다. 편지를 읽어 줄 주인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보기. 잡지를 기획할 때 편지를 읽는 그들의 얼굴과 표정을 상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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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옥상과 인공지반 녹화를 위한 GR-엣지 하이퍼
경계 자재 이상의 다목적 녹화 자재
초박형, 경량형에 국한됐던 옥상녹화는 최근 생태면적률 가중치 변화에 따라 혼합형, 중량형 등을 통해 높은 수준의 녹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고려해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는 GR-엣지 하이퍼로 색다른 녹화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GR-엣지 하이퍼는 알루미늄 소재의 규격화된 중공형 패널을 조립해 녹지 경계를 만드는 조경 자재다. 각 패널을 조립하듯 쌓아 올려 높낮이를 조절하며, 간편한 설치 방식으로 연장 시공할 수 있다. 설계 형태에 따라 직선은 물론 패널의 밴딩을 통해 곡선 시공까지 가능하다. 세련된 색상으로 도장 마감해 분위기 있는 공간을 연출하고 필요에 따라 원하는 색상으로 변경할 수 있다. 일정 간격마다 견고하게 설치한 서포트는 배부름 현상을 방지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높인다. 패널 상단을 곡선 형태로 마감해 이용자의 안전을 도모했다.
넓고 긴 녹지 공간을 포함해 소규모 점형 녹지 공간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조립 방식으로 완성되는 제품이라 플랜터형 공간 구성에도 적합하다. 원하는 공간에 손쉽게 설치할 수 있어 포켓 정원, 한뼘 정원과 모바일 정원 등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제품이다. 응용 방식에 따라 도시 농업에 활용할 텃밭 플랜터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GR-엣지 하이퍼는 녹지 공간의 경계를 구성하는 단순 자재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와 높이의 녹지 조성에 필요한 필수 자재가 되었고, 나아가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경 자재로 거듭나고 있다. TEL.02-587-9444 WEB. www.greeninfr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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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우연한 풍경은 없다
김연금 박사를 보내며
비합리와 몰상식을 초월한 광기와 폭거,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가 시민들을 다시 차디찬 광장으로 불러냈다. 안온한 일상을 빼앗긴 겨울, 45년 전으로 퇴행한 이 도시의 정치적 풍경 앞에서 여느 해 1월호처럼 새해의 잡지 편집 방향을 희망차게 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해 12월 17일, 조경계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한평공원’의 주창자이자 커뮤니티 참여 디자인 이론가이며 어린이 놀이 환경 실천가로 분투해온 김연금 박사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는 투병의 마지막 순간 남동생을 통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끝인사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어쩌다 보니 청춘만 살았습니다. 항상 애쓴 만큼 보상이 적었다고 투덜거렸는데, 돌이켜 보니 함께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저의 청춘은 늘 신났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거의 다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저를 애처롭게 여기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변함없는 가족들의 사랑으로 의연하게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그릇이 크지 못해 저의 말과 태도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이 있다면 사과드립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특히 포용력 있는 리더가 되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됩니다. ‘조경작업소 울’의 새로운 리더는 포용력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저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누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두유와 토마토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요란스럽지 않은 미소로 반겨주는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책을 읽은 뒤 출근하고, 퇴근 뒤에는 가족들과 투닥거리며 저녁을 먹는 것입니다. 혹여 시간이 맞는다면 마음 맞는 친구와 만나 먹고사는 일 너머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욱더 좋겠죠.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김연금, 2024년 12월 4일 수요일 오후).
1971년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자란 김연금 박사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평생 옥수동에서 살았고, 바로 옆 동네 약수동에 ‘조경작업소 울’을 열어 참여와 소통, 연대와 돌봄에 뿌리를 둔 디자인 작업과 행동을 펼쳐왔다. 그는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조경학자이자 조경가였다. 박사논문을 개작한 첫 저서 『소통으로 장소 만들기』(한국학술정보, 2009)가 이론과 실천의 경계를 허무는 학문적 태도를 보여준다면, 마지막 저서 『놀이, 놀이터, 놀이도시』(한숲, 2022)에는 현장의 실험에 토대를 둔 조경가의 지혜와 열정이 짙게 배어 있다.
김연금 박사는 한국 조경 50년사가 낳은 몇 안 되는 글쟁이였다. 편집자가 일말의 주저함 없이 글을 청탁할 수 있는 필자였다. 그의 글은 논리적으로 명징했음은 물론 “진솔하고 명랑했다”(고정희). 김연금 박사의 저술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우연한 풍경은 없다』(나무도시, 2011)는 삶의 장소와 실천의 실험실을 가로지르는 그의 글 풍경의 씨앗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별생각 없이 매일 스치는 풍경, 그 앞에 문득 서보자. 그리고 말을 건네 보자. 오늘 하루 어땠냐고. 좀 생뚱맞은 질문도 던져보자. 당신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냐고. 갑작스런 질문에 처음엔 서로 좀 어색하겠지만, 곧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연인 듯하나, 절대 그렇지 않은, 삶의 필연성이 빚어낸 풍경이니까”(5쪽).
김연금 박사는 단독 저서뿐 아니라 여러 책 작업에 기획자로, 번역자로, 공동 필자로 참여했다. 그가 기획자 겸 편집자 역할을 맡은 『이어 쓰는 조경학개론』(한숲, 2020)은 조경학 전문 지식을 안내하는 지도 같은 책이다. 팀 워터맨의 원저를 번역한 『조경 설계 키워드 52』(나무도시, 2012)도 조경학과 교과서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다.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나무도시, 2007),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다: 주민참여로 가꿔나가는 삶의 공간』(나무도시, 2009), 『용산공원』(나무도시, 2013),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한숲, 2021),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한숲, 2022) 등에 필자로 참여한 글에는 이론과 실천, 비평과 설계를 횡단한 그의 여정이 고스란히 감광되어 있다.
책으로 묶이지 않은 김연금 박사의 글들은 『환경과조경』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흩어져 있다. 아마도 공식적인 마지막 글은 채 맺지 못한 연재물 “공원에 간다(5): 서울숲, 따로 또 같이”(‘e-환경과조경’ 2024년 11월 11일)일 테다. 끝부분을 옮긴다. “그래서 그녀는 개인으로서, 작업의 일환으로서 미래에 공원을 만들고 싶어 한다. 혼자 소유하고 즐기는 정원이 아닌, 각자 즐기면서도 함께 하는 공원.”
『놀이, 놀이터, 놀이도시』의 필자 소개 글 마지막 몇 문장을 옮겨 적지 않을 수 없다. “천생 몸치라 공놀이며 고무줄놀이며 뭐든지 못했고 항상 깍두기였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놀았다. 다정한 환대와 집중의 시간이 좋았다. 그 기억으로 사는 것 같다. 얼마간 못 놀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다시 놀려고 한다. 어린이들과 함께.” 허약하고 부박한 이 조경판은 남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김연금 박사는 편안한 곳에서 마음껏 노시길.
2025년을 여는 이번 호는 본지가 주최한 ‘제7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원종호(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소장) 특집호다. ‘보이지 않는 조경’의 힘을 실천해온 원종호 소장의 작업들, 그의 에세이 “보이지 않는 조경의 길”, 김모아 기자의 인터뷰, 파트너 정욱주 교수와 동료 최재혁 소장의 글을 특집 지면에 담았다. 원종호 소장의 조경 작품과 조경에 대한 생각을 한눈에 조감하는 기회가 되기를, 또 그의 작업을 촘촘한 비평의 장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2014년 1월호~2016년 12월호)의 필자 고정희 박사(써드스페이스 베를린 대표)가 8년 만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번에는 매달 ‘우먼스케이프’로 독자 여러분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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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시 만난 세계, 조경의 위로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기대했던 지난해 겨울, 난데없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대한민국은 또다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이했다. 놀란 시민들은 국회로 한달음에 달려가 완전 무장한 특수부대 계엄군과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냈다. 국회에서 어렵사리 계엄 해제가 의결되고 진통 끝에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차디찬 겨울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1980년대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시절에 목 놓아 부르던 민중가요 대신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깃발을 든 2030 청년들이 걸 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으로 부르며 축제와 다름없는 새로운 시위 문화를 만들어냈다. 해외 언론들은 한국이 ‘K팝 문화’에 이어 새로운 ‘K시위 문화’를 만들어냈다며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찬사를 쏟아냈다. 반면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로 한국 경제는 증시 급락, 원‧달러 환율 급등 등 큰 충격을 받았고 정부와 한국은행은 유동성 공급 등 긴급 대책을 시행해 시장 안정화에 나섰지만, 정치적 위기에서 비롯된 소비 위축, 금리와 물가 상승 등 경제 리스크는 지속되고 있다.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저하시켜 자본의 급격한 유출로 인한 국내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나라의 어려움과 함께 지난해 조경계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임금과 원자재 가격 등이 오르면서 건설 업종 수익성이 전년 대비 크게 나빠졌고, 하도급 회사가 대다수인 조경 시공 회사 경영에도 연쇄적으로 적신호가 켜졌다. 정부의 ‘건전 재정’이라는 명목하에 복지, 민생 안정 정책은 후퇴하고 공공 부문의 건설 관련 예산도 대폭 삭감되어, 선행 지표 격인 건설 계약액도 5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대부분 영세한 조경설계사무소도 일감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연말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져 주택 거래가 위축되고, 공공 기관이 발주하는 건축·토목 사업도 영향을 받아 향후 건설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조경계의 어려움도 더 커지고 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옛 선인의 고사처럼 2025년 신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회복과 함께 조경계도 찬란한 부활을 꿈꾸어본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계엄 사태에 놀란 시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위로의 노래로 울려 퍼지듯, 조경이 만드는 세상도 우리 사회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한국 조경은 산업화 시대의 단순한 국토 환경 조성 역할을 넘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녹색 공간 복지에 기여하는 필수 분야로 자리매김해 왔다. 공원 녹지로 대표되는 생활 공간의 녹색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는 지역 사회에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해 기후위기로 인한 홍수, 폭염 등 자연재해로부터 시민 안전을 도모하고 인간과 환경의 건강을 뒷받침하는 대기와 수질 개선에 도움을 준다.
조경가는 옥상 녹화, 벽면 녹화, 빗물 정원, 잔디 수로, 투수 포장 등 기존 토목의 접근 방식과 다른혁신적 친환경 인프라 해결책을 통해 크고 작은 지역 사회가 빗물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조경은 공원과 개방된 공간을 자연 탄소 흡수원으로 변환하는 기후 포지티브 디자인(climate positive design) 접근 방식을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연과 함께 설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지구상의 생명체를 지탱하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원한다. 또 조경가는 자연환경과 함께 인간 커뮤니티를 돌봄으로써 인종과 성별, 직업과 국가를 넘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문제에 대해 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커뮤니티, 공정한 사회로의 길을 모색하고 선도한다. 조경가는 환경 및 사회과학 교육과 첨단 기술의 활용을 통해 활기차고 탄력적이며 공평하게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커뮤니티를 설계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동네의 작은 골목길부터 어린이 놀이터, 공원, 도시 전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에서 조경가는 공공 레크리에이션 시설, 운동 시설, 자전거 도로, 산책로 등 신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를 조성하며, 지역 사회의 장기적인 건강과 회복력을 향상시키고 안전하고 건강하며 능동적인 교통 시스템을 갖춘 걷기 좋은 교통 중심 환경을 계획하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조경은 이제 소극적 의미의 경관적, 미학적 기능을 넘어 공공 복지를 실천하는 사회 서비스의 중요한 첨병이다. 자연환경과 인간 커뮤니티를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설계하면서 우리 사회에 풍부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방면의 생태적, 문화적 기능을 향상시킨다.
배정한 교수는 저서 『공원의 위로』에서 “공원은 도시의 여백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숨통이다. …… 공원은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주는 위로의 장소이자 모두를 환대하는 공간”이라며 공원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선한 영향력의 무한한 잠재력을 전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련을 겪었던 우리 세대에게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줄 알았던 민주주의의 위기와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새해에는 조경이 모든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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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감각] 가지치기
길게 뻗어 나온 줄기가 발걸음에 걸려서 화분이 쏟아지고 말았다. 무성한 모습이 좋아 일부러 가위를 대지 않았는데. 아깝게 부러진 잎사귀를 주워 모은다. 투명한 유액에 검은 흙먼지가 엉긴다. 뭉개진 자국에서 시린 풀냄새가 난다.
줄기를 잘 보고 발을 디뎠다면, 베란다가 조금만 더 넓었다면, 크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런 사고는 없었을 텐데. 쏟아진 뿌리를 추스르고 흙도 새것으로 바꿔 다시 심는다. 너무 차갑지 않은 물로 샤워를 흠뻑 시킨다. 남은 잎사귀에 매달린 물방울이 반짝인다. 우리가 여러 계절을 함께 하려면 가지치기를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