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보통의 존재, 잡초 ‘식물일기’ 전, 5.12.~5.18.
    도시에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식물이 산다. 길 가장자리를 따라 선 가로수, 높은 건물 앞을 치장한 정원, 창문 밖으로 옹기종기 내어놓은 화분들까지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보도블록 틈바구니나 갈라진 벽 사이를 비집고 자란 이름 모를 풀에 유독 오래 시선을 두게 된다. 누군가의 계획에 따라 심어지지 않아 고운 손길로 관리 받지 못한, 머무를 곳을 스스로 정해 자라난 잡초는 꼭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가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닮았다. 김제민은 이처럼 주변에 아무렇게나 크고 있는 식물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가다. 그는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하다가 박재동 화백의 시사만화에 마음을 빼앗겨 동네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불어난 미술에 대한 애정은 김제민을 서울대학교 서양학과에 입학시키기에 이르렀다. 지난 5월 12일부터 18일까지 갤러리도스에서 이 김제민의 식물 그림을 모은 전시 ‘식물 일기’가 열렸다. 그는 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하지만, 작은 풀포기를 하나의 캐릭터로 의인화해 익살스러운 정경을 담기도 한다. 김제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식물들 의 이미지는 실은 모두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대변자이며, 나의 분신이며, 자화상”이라고 밝혔는데, 그래서일까 화폭을 넌지시 들여다보고 있으면 꼭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리모컨을 옆에 두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풀포기를 그린 ‘TV 좀 작작 보고’ 아래에는 “TV 좀 작작 보고 운동 좀 해라, 이 화상아!”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작가가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말로보이는데, 어찌나 친근한 상황인지 관객도 쉽게 저 게으른 식물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후략) *환경과조경398호(2021년 6월호)수록본 일부
  • 2020 코리아가든쇼 주광춘의 ‘초대장’ 대상 선정
    지난 5월 4일 ‘2020 코리아가든쇼’가 순천만국가정원에서 개막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은 코리아가든쇼(이하 가든쇼)는 작년 10월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5월로 연기됐다. 산림청이 주최하고 국립수목원, 전라남도, 순천시가 공동 주관한 이번 가든쇼는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공간, 정원’을 주제로 10개의 정원을 선보였다. 작년 10월 한 달간 진행된 공모를 통해 10명의 작가를 선정했으며, 면적 70m2 내외의 정원 설치 비용으로 개소당 4,000만원(설계비 500만원, 시공비 3,500만원)을 지원했다. 조성을 마친 정원을 대상으로 최종 심사를 진행한 결과 주광춘의 ‘초대장Invitation to Nature’이 대상작(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상금 700만원)을 차지했다. 최고작가상(산림청장상, 상금 500만원)은 황신예의 ‘정원의 속도’에게, 2020년의 작가상(전라남도지사상, 상금 300만원)은 강희원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위한 정원’에게 돌아갔다. 순천 이 주목한 작가상(순천시장상, 상금 100만원)에는 권아림의 ‘유리투정원You Can Live Here, Too’과 이현승의 ‘차경: 자연을 얻는 방법’이, 코리아가든쇼 작가상(국립수목원장상, 상금 100만원)에는 심준보의 ‘클라우드 룸’, 임우성의 ‘이누이트의 새로운 겨울’, 정성희의 ‘일상풍경’, 정홍가의 ‘링’, 최윤정의 ‘리틀포레스트’가 선정됐다. 대상작은 두 개로 구획된 공간에 자연 본연의 모습과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정원을 표현했다. 정원 안에 투영되는 자연의 모습과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왜곡된 현실의 이미지를 담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표현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인호 교수(신구대학교,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장)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식물 배치가 자연스럽고 정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설명했다. (후략) *환경과조경398호(2021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만리동광장, 손기정체육공원, 중림동 일대에서 5월 14일부터 5월 20일까지
    회색 건물숲이 가득한 도심에서 세계 각국의 특색 있는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다. 본래 작년 10월 개막을 목표로 준비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지속되면서 개최가 2021년 5월로 연기되었다. 아직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피로감이 누적된 시민에게 정원박람회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선사하고자 했다. 서울시와 서울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환경과조경이 주관한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주제는 ‘정원을 연결하다, 일상을 생각하다Link Garden, Think Life’다. 단절된 도시 공간을 정원으로 연결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정원을 통한 물리적 생태계의 연결, 심리적 커뮤니티의 연결, 이를 통한 도시 환경 개선과 공동체 회복을 목표로 전 세계 조경가와 정원 디자이너들과 함께 서울시만의 정원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했다. 도심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정원 5월 14일 손기정체육공원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일주일간 손기정체육공원, 만리동광장, 중림동 일대에서 오프라인 전시가 펼쳐졌다. 앤드류 그랜트Andrew Grant(그랜트 어소시에이츠 대표)가 선보이는 해외 초청정원(1개소, 남대문로문화공원), 6개국의 조경가가 참가하는 작가정원(5개소, 손기정체육공원), 중림동 동네정원사가 만든 ‘동네정원’(16개소, 중림동 일대), 학생들이 꾸린 ‘학생정원’(5개소, 만리동 및 손기정체육공원 일대), 영화와 카페를 모티브로 한 팝업가든(10개소, 만리동광장과 손기정체육공원), 서울에 사는 외국인 가족이 만든 ‘세계가족정원’(20개소, 만리동광장)이 조성됐다. 해외 초청정원과 작가정원, 동네정원, 학생정원은 정원박람회 기간이 끝난 후에도 존치되어 시민들의 녹색 쉼터로 쓰인다. 해외 초청정원을 설계한 앤드류 그랜트는 싱가포르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를 설계한 세계적 조경가다. 그가 남대문로문화공원에 조성한 ‘덩굴의그물망The Vine’s Web’은 도시와 정원 사이의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를 덩굴을 형상화한 구조물로 표현한 정원이다. 매년 조경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작가정원 부문은 국제공모를 시도해 변화를 꾀했다. 정원박람회 주제에 맞게 상생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19개국 80팀(국내 50팀, 해외 30팀)이 참여했으며,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프랑스, 한국, 홍콩 등 6개국에서 참여한 5팀이 최종 선정됐다. 금상은 테오 히달고 나체르Teo Hidalgo Nacher(스페인)와 데이비드 바르디David Vardy(영국)의 ‘분홍섬The Pink Island’이 차지했다. 만리재로에서 손기정체육공원으로 올라가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이 정원은 두 개의 고리를 통해 자연과 인공의 무한한 순환을 은유한다. 은상에는 이반 발린Ivan Valin(홍콩)과 나탈리아 에체베리Natalia Echeverri(홍콩)의 ‘기층+꿰다’, 동상에는 제허르 달렌베르흐Zeger Dalenberg(네덜란드)와 캉탱 오브리Quentin Aubry(프랑스)의 ‘공감의 정원’, 원종호와 박태영의 ‘기억을 걷는 시간’, 홍광호의 ‘결승선, 자연의 위로’가 선정됐다(자세한 내용은 48~73쪽 참조). (후략) *환경과조경398호(2021년 6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식물성 도산
    이것저것에 관심(만) 많은 D는 종종 자신의 사업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날의 주제는 텃밭이 딸린 자급자족 식당. “매장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수확해서 그 자리에서 신선한 요리를 만들어주는 거지.” 큰 흥미를 못 느낀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농사가 쉽냐?”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얼마 전, 직접 키운 채소로 음료와 디저트를 만든다는 카페가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D와 함께 압구정을 찾았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카페의 이름은 ‘식물성 도산’. 여기에서의 ‘성’은 별성星, “지구와 화성 사이에 위치한 신선함의 별”이라는 뜻이란다. 식물로 이루어진 싱그러운 행성이라니. 일단 콘셉트는 합격이다. 간판은 없다시피 하고 외관은 메탈 소재로 마감돼서 멀리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큰 창을 통해 보이는 실내 수직 농장이 눈길을 끌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신기한듯 한 번씩 쳐다봤다. 종종 지하철 역사에서 보던 (보라색 조명이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수직 농장과는 달랐다. 하얀 프레임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채소들이 백색광 아래서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한 스마트팜 스타트업에서 운영하는 카페였다. 즉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쇼룸이었던 것. 디자이너가 누군지 몰라도 일단 ‘콘셉트에 진심인 편’인 건 분명해 보였다. 곳곳에 식물성이라는 콘셉트가 녹아들어 있었다. 우선 제조 음료 대부분은 식물성植物性이다. 나는 두유가 들어간 식물성블랙(라테)을, D는 매장에서 직접 기른 바질로 만든 바질파인소르베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니 카운터에서 보딩boarding 쿠폰을 주었다. 지구에서 식물성으로 가는 우주선 탑승권처럼 디자인된 작은 종이였다. 유치하게 뭐 이런 걸……. 대수롭지 않게 받았지만 속으론 엄청 좋았다(참고로 난 콘셉트에 약하다). 카운터 옆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물속에 뿌리가 잠긴 여러 개의 화분이 마치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처럼 레일을 따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카페를 가로지르는 긴 테이블 위쪽의 절반가량은 화산석으로 빼곡하게 채워 행성의 거친 표면을 표현했다(지독한 콘셉트 같으니라고!). 음료를 기다리며 ‘풀멍’(풀을 멍하게 보는 것)하다 시선을 돌리니 매장에서 수확한 야채 상품과 수경 재배 키트가 보였다. 로메인 등의 엽채류가 신선해 보이도록 뿌리를 자르지 않은 채 포장했고, 작은 박스형의 수경 재배 키트는 모듈식이어서 개당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쓸만해 보이고, 흙은 최소한만 필요해서 키우는 데 품이 덜 들 것 같았다. 포장된 채소와 수경 재배 키트를 한참 눈으로 만지작거렸다. 급기야 제품을 검색해보기에 이르렀는데, (지금의 지갑 사정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3단 프레임을 사면 매달 5kg의 채소를 얻을수 있다는 말에 소비심이 흔들렸다. 정교하게 설계된 공간이 내 안의 잠자는 도시 농부를 깨우고 있었다. 공간, 경험, 브랜딩 이 삼박자에 놀아났다는 생각이 드는 차, 주문한 음료가 나왔음을 알리는 진동벨이 울렸다. 여담이지만 커피보단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야금야금 뺏어 먹다 결국 스푼을 하나 더 받아왔다). 한 입 먹을 때마다 파인애플 섞인 시원한 바질 향이 기분 좋게 밀려들었다. 바질을 보면서 먹어서 그랬나. “저 키트 하나 사볼까? 아니면 스마트팜 관련주는 어때?” D에게 물으니 시큰둥한 답이 돌아왔다. 라면 물 올리기도 귀찮아하는 네가 퍽이나 잘 하겠다며. 그리고 차기 식품 산업의 미래는 배양육에 있다나? 그러거나 말거나. 초록빛 행성이던진 미끼를 물어버린 나는 통통하게 물오른 바질 잎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상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 윤정훈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좋아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
    태어난 곳은 서울과 산자락 하나를 공유하는 경기도 어디쯤. 보통 뜻하지 못하게 가난을 맞닥뜨리면 더 외곽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라는데, 부모님은 특이하게도 서울 북쪽에 어중간하게 놓인 동네로 기어드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내 최초의 기억은 다세대 주택과 단독 주택이 뒤섞인 동네 한구석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여태 서울의 귀퉁이를 떠돌고 있다. 메가시티 같은 그럴듯한 수식어가 어울리는 시민은 못됐다. ‘서울 촌놈’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을 때, 딱 나를 위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집과 학교 근처만 뱅뱅 맴돌아 경험이 얄팍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번도 도시를 떠나본 적 없는 나는 시골 풍경을 마주하면 한참 눈을 떼지 못한다. 뿌리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기도 한다. 왜 그럴까. 이유를 궁금해하다 보니 어릴 적 기억에 가닿았다. 할머니는 괴상한 마을에 살았다. 꽤 번화한 도시 가까이에 있지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에 칭칭 감겨 있어서 촌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버스는 두 시간에 한 번 오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차를 타고 이십 여분을 달려야 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으면 부엌 바닥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지만, 고구마밭에서 포대 자루로 썰매 타기에 바빴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미닫이식의 중문을 열면 우리 집보다 큰 마당이 보이고, 넉넉하게 비워둔 외양간에서 통통하게 살찐 송아지가 울었다. 마당 밖에는 시야를 닫는 높은 건물이 없었다. 좁은 방과 고불고불한 골목길이 익숙했던 나에게 할머니의 마을은 남부럽지 않은 여행지였다. 크고 높고 넉넉했다. 이상하게도 그 안에 서면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이 모두의 것처럼 느껴졌다. 막 모내기를 마친 논이나 고춧대가 자라고 있는 밭에 분명 주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굽이치는 고랑과 이랑, 힘없는 줄기를 받쳐주는 지지대를 따라 일렬로 선 작물 모두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인데도 자연의 일부 같았다. 아마 논밭의 식물들이 뒤편의 작은 숲과 똑같이 햇빛을 받고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풍경은 계절의 흐름을, 또 자연 앞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의 존재를 깨닫게 한다. 갖은 노력을 다해도 야속한 장맛비는 이제 막 잎을 틔운 작물의 허리를 꺾고, 자비 없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뙤약볕은 잎끝을 태운다. 그럴 때면 땅은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또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잎 하나 줄기 하나 최선의 모습으로 관리한 것처럼 보이는 정원보다 한 전시장에 깔린 카펫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도 같았다. 지난 5월 22일, 제17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이 개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귀국보고전을 열지 않은 대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주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는데, 전시장의 한복판에 낯익은 풍경 하나가 낮게 누워 있다.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의 ‘블랙 메도우Black Meadow: 사라지는 자연과 생명의 이야기’다. 이 카펫은 비엔날레의 주제인 ‘이주, 디아스포라의 확산, 기후변화의 충격, 사회적·기술적 변화의 속도’를 논의하는 공간적 바탕으로, 먼 훗날 기후변화로 인해 생명이 사라진Black 초지Meadow를 은유한다. 금강 변에서 채취한 갈대꽃과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쓰는 사탕수수 두 종으로 만들어진 카펫은, 사실 빗자루 천여 개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해 만들어졌다. 이미 한참 전에 생명을 잃은 식물로 만든 풍경인데도 블랙메도우는 나를 순식간에 어딘지도 모르는 강가로 데려간다. 숨죽이면 강물 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이 불면 나도 갈대와 함께 스러져버리고 싶은 풍경 속으로. 슬프게도 블랙메도우는 오롯이 상상에 기대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청소기의 등장으로 갈대 빗자루는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고, 풍성한 갈대밭을 자랑하는 금강하굿둑은 생태계 교란으로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 이런 풍경은 칼로 도려낸 듯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 얽혀 있는 작은 새와 동물 더불어 식물들까지 함께 데리고 떠나 강 주변의 풍경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좋아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오은, ‘아찔’)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어느 날 잠에서 깨니 집도, 땅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가질 수 있었던 풍경이 사라졌다면 어떤 기분일까. 시 속 화자가 보고 있던 “거울 속 할 말이 없는 표정”이 어느새 나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 김모아
  • [PRODUCT] 스마트폰처럼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 퍼걸러’ 이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쾌적함과 에너지 효율을 높인 휴게 시설물
    세인환경디자인이 출시한 ‘스마트 퍼걸러’는 스마트폰처럼 하나의 제품 안에 여러 시설을 탑재한 휴게 시설물이다. 에어 커튼, UV.LED 살균기, 프리 필터, 헤파 필터, 냉난방기, 디스플레이, 무선 충전기, SOS 벨 등 이용자의 건강과 편의를 증진하는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퍼걸러 반경 3m 안에 사람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필터를 갖춘 흡입기와 LED 살균기, 에어 커튼이 작동된다. 미세먼지를 거르고,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을 없앤 깨끗한 공기를 분사하며 이용자의 몸에 붙은 유해한 물질을 제거한다. 내부에서의 움직임 또한 센서가 인식하여 자동으로 에어컨, 모니터, 온열 벤치를 작동시키는데, 에어컨은 실내 온도에 따라 냉방, 난방, 송풍 모드를 스스로 조정한다. 퍼걸러 하단부에 설치된 와류 토출구는 냉난방기에서 나오는 바람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게 막아준다. 실내외 공기 질을 측정해 이용자에게 알려주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온습도, 미세먼지 등에 관한 정보를 인포그래픽으로 알기 쉽게 전달한다. 휴대폰 충전이 필요할 땐 내부에 마련된 책상의 무선 충전기를 이용하면 된다. 퍼걸러 내부에 사람이 없으면 자동으로 모든 기능이 종료되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TEL. 02-877-8811WEB. www.seindesign.co.kr
  • [에디토리얼] 편집자로 산다는 것
    책을 편집하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복합적인 작업이다. 특히 『환경과조경』 같은 디자인 전문 월간지의 편집은 기획, 조사, 취재, 인터뷰, 작품 섭외, 필자 섭외, 교정과 교열, 사진 촬영, 편집 디자인, 마케팅이 한 번에 뒤섞여 돌아가는 도전적인 작업이다. 편집자가 멀티플레이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달 일정한 날짜에 잡지를 내야 하므로 편집자는 항상 시간과 싸운다. 필자가 원고 마감을 지키지 않더라도, 약속한 날까지 사진이 도착하지 않더라도, 데드라인 전날 편집장이 원고 교체를 결정하더라도 무조건 정해진 날 편집을 마무리해야 한다. 편집 일을 하며 무척 당혹스러운 건 한 달을 먼저 산다는 점이다. 12월에 다음 해 1월호를 만들면 막상 새해 첫날이 와도 감흥이 없다. 칼바람 부는 2월에 새봄맞이 3월호에 집중하다 보면 계절을 착각하기 십상이다. 겨울에 봄옷 입고 가을에 겨울옷 입는 편집자가 적지 않다. 무더위가 한창인 늦여름에 낭만적인 가을 풍경 이야기를 쓰다 보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조경 저널리즘의 최전선을 질주하고 있는 김모아, 윤정훈 편집자의 한 달을 잠깐 들여다보자.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빼서 늘 집중해야 하는 건 기획 업무다. 기획의 스펙트럼은 참 넓다. 1년간 어떤 흐름으로 무슨 주제와 콘텐츠를 구성할지 계획하는 장기 기획,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주제를 발굴하고 엮는 특집 기획, 콘텐츠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보장해주는 긴 호흡의 연재 기획. 물론 면밀한 조사와 성실한 취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머리를 쥐어짜며 작성한 기획서가 곧바로 채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기획서에 대한 편집주간과 편집장의 반응은 기껏해야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아니면 ‘더 발전시켜 봅시다’다. 작품과 필자를 섭외하고 원고 일정을 관리하는 일 앞에는 늘 난맥이 놓인다. 오히려 해외 작품 섭외에는 ‘루틴’이 있어서 공력이 적게 든다. 설계사무소 홈페이지, 뉴스레터, 웹진, 소셜미디어에서 신중히 고른 후보작 리스트를 두고 편집회의를 한다. 후보작을 좁힌 뒤 이메일로 섭외를 시작하는데, 대개 해외사에는 홍보 담당 부서나 직원이 있어서 바로 반응이 온다. 도면, 사진, 설명을 한 묶음으로 정리한 ‘프레스 키트’가 금방 도착한다. 정작 막막한 건 국내 작품의 발굴과 섭외다. 실을 만한 근작을 수소문하기 위해 갖가지 레이더를 총동원한다. 의외로 섭외 성공률이 낮다. 섭외되더라도 진행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 정리된 도면과 출판 가능한 사진이 없는 경우, 정제된 형식의 작품 설명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집과 연재 원고에 맞는 필자를 찾고 섭외하는 일에는 다양한 조사와 공부가 필요하다. 필자와 소통하며 원고를 맡기고 받는 일은 잡지 편집의 중요한 과정이다. 필자는 원고 마감일을 어기기 일쑤다. 요즘은 편집자의 애를 태우는 ‘잠수형’ 필자가 거의 없지만, 연이은 독촉 연락에 이제 곧 보낸다는 말만 반복하는 ‘철가방형’ 필자가 여전히 드물지 않다. 최악의 상황이 언제든 일어난다. 도착한 원고가 편집자의 기획 의도와 완전히 다르거나, 필자와 편집자의 소통 과정에서 서로 조율한 방향과 크게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다시 써달라고 요청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많은 시간이 들고 손이 가는 편집 과정은 교정과 교열, 그리고 편집 디자인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와 취재 기자의 기사가 도착하면 우선 모니터로 일독하며 오탈자를 바로잡고 잡지사의 띄어쓰기 원칙, 외래어 표기법 규칙에 맞게 원고를 수정한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머리를 맞대고 수정 원고와 이미지들을 배치하고 구성하는 편집 디자인이 시작된다. 출력한 초벌 편집본을 놓고 1교가 진행된다. 디자이너의 수정을 거쳐 재출력한 버전으로 편집자를 바꿔가며 2교와 3교를 진행한다. 교정과 교열은 오탈자 정도만 고치는 작업이 아니다. 문법과 어법에 맞지 않는 단어나 문장을 잡아내고,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나 표현을 적확하고 자연스러우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걸러내고 다듬는 일이다. 글이 더 잘 읽히게, 지면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재구성하는 일이다. 4교에서 책임자의 ‘OK’가 떨어지면 인쇄 이전의 과정이 끝나고, 다음 달의 역동적인 사이클이 다시 시작된다. 여러 멀티플레이어 편집자들이 1982년 7월부터 2021년 5월까지 『환경과조경』 397권을 만들며 어제와 오늘의 한국 조경을 기록하고 내일의 조경 문화를 설계해 왔다. 이번 호 특집 ‘편집자들’에 그들을 초대했다. 『환경과조경』을 거쳐간 김정은, 백정희, 손석범, 양다빈, 조수연, 조한결 편집자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환경과조경』은 어떤 잡지였으며, 조경이란 무슨 의미였나요?”
  • [풍경 감각] 스트로브잣나무와 개
    사철나무, 서양측백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이 나무들은 그 자체보다무언가를 가리고 막는 쓰임으로 익숙하다. 이 식물들을 보면 떠오르는개 한 마리가 있다. 본가 아파트 단지에는 샛길이 있다. 쪽문으로 드나드는 발걸음이만든 짧은 지름길인데, 적절히 나무를 심어둔 단지 내 보행로와 달리식재 밀도가 낮아 길에서 1층 세대의 집 안이 보였다. 베란다에 그개가 늘 있었다. 검고 큰 덩치에 순한 인상, 리트리버 종류가 아니었나싶다. 어머니는 주인과 산책하는 걸 가끔 보았다고 했지만 나와마주칠 때는 늘 그곳에 조용히 누워 바깥을 보고 있었다. 그 개가 보던 창밖은 어땠을까? 특별한 풍경은 아니었다.그래도 그 집 앞에는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하얀 봄맞이꽃이며 개망초같은 풀꽃, 누군가 심어둔 노란색 낮달맞이꽃, 소국 같은 화초들이계절마다 피고 졌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맺힌 붉은 산수유열매에는 직박구리와 참새가 날아들었고, 스트로브잣나무 숲에서는까치가 울었다. 사람들은 그 풍경을 가로지르며 여름이면 진창을찰박거리고 겨울이면 쌓인 눈을 뽀드득 밟는 소리를 냈다. 언제부턴가 그 개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여쭤보니 이사를간 것 같다고 하신다. 그 집 앞은 여전한데. 검은 개는 지금 어떤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환경과조경397호(2021년 5월호)수록본 일부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2018년 서울정원박람회,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정동극장 공연‘궁:장녹수전’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식물학 그림책『식물문답』을 출판했다.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 조현진
  •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아날로그 시대의 끝자락
    남들 하는 건 다 해보라는 부모님 말에 따라 (이러란 뜻은 아니었겠지만) 반년 정도 재수생 생활을 했다. 일명 ‘반수생’, 고작 6개월밖에 안 되는 시간이 어찌나 지루하고 길었는지 수험생 신분을 다시 한 번 벗어던질 때의 해방감과 그해에 일어난 일들을 유독 선명하게 기억한다. 오답 노트 복기에 열을 올리던 2008년 하반기, 미국 대선이 치러졌다. 한창 조경에 관심을 두던 때라 버락 오바마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게 생각난다. 이듬해 벚꽃이 필 무렵에는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신종플루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열이 나나 싶더니 사흘을 꼬박 앓아누웠다. 무엇보다 휴대 전자기기가 무서운 속도로 변해갔다. 전자사전은 구식이 된 지 오래, PMP가 진화하나 싶더니 가볍고 성능이 좋은 노트북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의 필수품이었던 MP3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터치폰에 좀 익숙해졌나 싶을 즈음 아이폰이 국내에 등장했다. 카메라, 음악 플레이어, 게임기, 웹 서핑은 물론 애플리케이션만 깔면 휴대폰에 수많은 기능을 더할 수 있다니! 손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신입생 때만 해도 책 읽는 일은 조금 유별나거나 고루한 취미로 여겨졌다. 당시의 나 역시 책보다는 바깥이 흥미로웠다. 도서관보다는 영화관이나 전시관에 자주 들락거렸다. 활자가 얌전하게 배열된 종이는 무한 확장이 가능한 액정과 스크린 속 세상보다 좁아 보였다. 이곳저곳 쏘다니기 바빴던 내가 『환경과조경』을 펼치게 된 건, 순전히 설계 수업 때문이었다. 텅 빈 도면에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데 아이디어는 없고, 참고 자료만이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노트북은 없었고 핸드폰 액정은 너무 작았고 2층 컴퓨터실과 1층 설계실을 오가기에는 버려지는 시간이 너무 많아 고민하던 내 시야에 한쪽 서가에 주르륵 꽂혀 있는 잡지들이 들어왔다. 검색을 대신해 원하는 키워드를 책등에서 찾아 쏙쏙 뽑아들었다. 에디터의 손길이 닿은 종이 묶음은 무수한 자료의 망망대해를 헤맬 필요 없이 양질의 콘텐츠를 쥐여 주었다. 그때 책상 위에 『환경과조경』을 펼쳐 놓은 모습을 다시 회상하니 큐레이션이 잘 된 전시장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때부터 종이 매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현대 조경을 대표하는 작품은? 다시 읽을 잡지는 통권 201호부터 250호, 2005년 1월부터 2009년 2월호까지다. 내가 2009 년 봄 조경학과에 입학했으니, 신입생이 되어 접한 조경의 바로 직전 소식들이 담겨 있는 셈이다. 2005년을 여는 첫 달은 『환경과조경』이 통권 300호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인 201호가 발간된때다. “어느 칼럼니스트가 적절하게 지적한 바 있듯이, 10년, 20년 혹은 100호, 200호와 같은 인위적인 눈금은 우리의 삶에 리듬을 부여하고, 우리에게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오휘영, “월간 『환경과조경』 통권 200호 발간에 즈음하여”, 2004월 12월호). 『환경과조경』도 이뜻깊은 숫자를 기념해 표지를 비롯해 전반적인 편집 디자인을 정비하고, 새로운 필진을 발굴하고조경 담론과 조경 비평을 활성화하자는 목표를 되새겼다. 더불어 올린 특집 ‘열 개의 공간, 다섯 가지 시선’은 무려 118쪽에 달하는 지면을 할애한 굵직한 기획이었다. 당시는 국내에 현대적 의미의 ‘조경’이 들어온 지 30여 년을 지나던 때였는데, 이쯤해서 그간 축적된 조경 작품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편집부 내부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2014년 11월, 조경설계 실무자를 비롯해 담당 교수, 비평가 200여 명을 대상으로 조경 작품에 관한 이야깃거리를 끌어낼 수 있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는 152명, 참여율도 높은 편이었 다. 이 결과를 토대로 201호에 열 개의 조경 공간을 새롭게 소개하고, 개별 공간에 대한 비평과 설 문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경향과 특징, 문제점을 다룬 다섯 편의 글을 수록했다. 편집부가 던진 질문은 다섯 개였다. 나름대로 다채로운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고민했을 텐데, 아쉽게도 순위권에 오른 작품의 스펙트럼은 그리 넓지 못하다. 순서만 조금씩 달라질 뿐 계속해서 엇비슷한 이름이 등장한다. 그 질문과 결과를 옮겨 적는다.(후략) *환경과조경397호(2021년 5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자들
    조경의 테두리 안에서 의미 있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찾는 편집자의 발걸음은 늘 사람과 공간 사이를 떠돈다. 특집을 기획하고, 취재를 다녀오고, 필자를 독촉하고, 늦은 밤까지 기사를 편집하고, 교정지와 눈싸움을 하다보면 어느새 달이 바뀌어 있다. 한 달 혹은 그보다 오랜 시간을 쏟아 만든 잡지 한 권에는 독자를 위해 세심히 선별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주 사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잡지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편집자의 취향과 사유가 은근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만든 사람만 아는 크고 작은 의미가 종이 묶음 사이사이 숨겨져 있다. 『환경과조경』을 거쳐 간 편집자를 초대하는 기획은 오래전부터 편집회의에 오르내린 소재다. 마땅한 특집 아이디어가 없을 때, 잡지가 기념할 만한 숫자를 관통할 때마다 소환했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서랍 속에 봉인하기를 거듭했다. 올 8월 발간될 통권 400호를 기념해, 천천히 오랜 시간 살을 붙여 완성한 이 기획을 지면에 올린다. 이제 새로운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섯 명의 OB 에디터를 초청했다. 『환경과조경』에 실린 작품과 특집, 연재, 독특한 꼭지를 편집자의 시점으로 다시 살피며 당시 조경 분야의 이슈와 경향, 잡지의 변천사는 물론 편집자들의 일상과 고민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원고를 청탁하며 던졌던 질문을 독자 여러분에게도 건네고 싶다. “당신에게 『환경과조경』은 어떤 잡지였으며, 조경이란 무슨 의미였나요?” 진행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 편집부
<<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