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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이코한옥 Eco Hanok
    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광주 도심, 버려진 한옥과 동네 마당을 복구해 작지만 특별한 공간을 지역 친환경 자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1965년 지어져 폐가가 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구성 재료의 추출, 가공, 제작 과정에서 세 가지 생태적 원칙을 따랐다. 첫째, 폐기물이나 저평가된 자원을 건축 자재로 사용해 채취, 가공, 사용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한다. 둘째, 토착 지식과 현대 기술을 결합해 저에너지, 저비용으로 품질을 극대화한다. 셋째, 전문 지식, 노동, 자원, 지역의 네트워크 속에서 건축 생산의 역할을 설정한다. 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어떤 건축물도 그 주변과 지역의 맥락에서 분리될 수 없다. 아무리 신중하게 기획한 프로젝트라도 환경 파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옥 리노베이션 너무 낡아 개보수가 불가능한 작은 문간채는 해체했다. 그 잔해에서 다시 쓸 수 있는 요소를 분리해 본채 개보수에 활용했다. 부서진 얇은 콘크리트 포장은 일부 걷어내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흙바닥으로 되돌렸다. 각종 폐자재를 재활용해 새 자재의 사용을 줄였다. 지역의 사회적 기업이 입주할 공간과 상시 개방된 정원으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한옥 도편수가 건물 상태를 조사한 결과, 목재가 흰개미 피해로 손상된 것을 발견했다. 지붕, 벽체, 바닥을 우선 걷어내고, 3D 스캔을 기반으로 목재 요소의 크기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낡은 지붕을 걷어내면서 수십 년간 짊어지고 있던 하중이 사라지자 부재들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새 기와를 얹고 적정한 하중을 가해 부재의 수직, 수평을 다시 맞췄다. 취약한 부분을 보강해 한옥 목구조의 안정을 되찾았다. 목구조에 경량 흙 채움 공사를 하고 시멘트로 마감했다. 불규칙한 집의 형태와 전통 기술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시스템화한 패널 마감재 사용은 지양했다. 지붕 단열재로는 한옥에 흔히 쓰는 흙 혼합물 대신 왕겨를 태워 만든 훈탄을 사용했다. 내외부 벽 마감에 쓴 회반죽은 유럽에서 제작한 샘플과 테스트 패널을 바탕으로 현장과 주변 지역 재료를 활용해 개발한 것이다. 마당과 담 땅을 정리해 아래 흙을 드러낸 뒤, 걷어낸 단단한 포장재는 재사용을 위해 보관했다. 한편의 정원에는 유지·관리가 편하고 회복력이 좋은 식물을 심었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잘 다듬으면 단정한 정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화단 가장자리는 부분적으로 수리하고 즉흥적으로 고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구멍난 옷을 기우는 작업처럼 보이겠지만 아름다운 방식이었다.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해 설계했고, 최소한의 작업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지와 골목 사이에 새로 세운 담은 한옥과 마당을 에워싸인 느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장식적 스크린 역할을 하는 담은 집의 경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주변의 단단하고 폐쇄적인 풍경과 대비된다. 담의 재료는 패각 석회와 흙을 혼합해 만든 블록이다. 재료 연구와 개발 한국을 처음 방문한 2022년, 흙 건축, 밀 생산, 시장 상인, 양식 해조류, 전통 옻칠 공예와 관련된 단체와 전문가를 찾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더불어 지역 산업의 기술과 공예 지식을 결합해 밀짚, 조개껍데기, 건조된 해초 등 지역 자원을 건축 자재로 가공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패각 석회와 골재 혼합물을 시멘트 블록 제작 기계를 사용해 블록으로 만들고, 열과 압축력만으로 해초 패널을 제작하고, 현장에서 발생한 흙을 전통적인 도자기 타일에 바르는 유약으로 만들었다. 지역 자원 조사, 네트워크 구축,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재료 실험을 거쳐 최종 생산과 현장 적용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배경과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이 과정을 함께했다. 패각류와 해조류의 경우, 프랑스에서도 재료 연구가 진행됐다. 대륙과 해양을 넘나드는 자재, 학습, 지식 교류로 이코한옥을 완성했다. 2023년 11월 패각류와 폐골재를 배합해 야외 벤치를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기존 창고를 철거하며 나온 콘크리트, 시멘트 벽돌, 기와, 지붕의 흙, 폐목재를 마당 한편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워크숍에서 조선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팀과 함께 콘크리트 덩어리와 시멘트 벽돌을 망치로 깨 골재로 만들었다. 생석회를 일정 시간 물과 반응시켜 만든 핫라임과 모래알 크기로 분쇄한 굴 패각을 혼합했다. 벤치의 판을 만드는 작업은 다짐 흙벽과 유사하게 거푸집에 혼합물을 넣어 손다짐 달구로 다진다. 굴패각과 현장에서 수집한 재료가 문양으로 벤치의 문양처럼 켜켜이 드러났다. 워크숍은 재료 실험이자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했다. 이코한옥의 의미 이코한옥은 전통 지식과 현대 도구를 결합하는 방식의 유용성과 지혜를 보여주면서, 전통 공예 기술로 소규모 유지·보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자원과 물질의 흐름을 지역 산업과 연결해 기존의 풍경, 기계 장치, 인프라를 토대로 새로운 경제 가치를 창출한다. 새로운 기술과 자재가 기성 건축 문화를 어떻게 바꿀지 막연히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건설 산업에 종사해온 사람들이 보유한 기술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한다. 실험실(개발)에서 공장(반복)으로, 그리고 현장(최종 실행)에 이르기까지 수평적 지식과 문화 양식, 즉 세심하고 회복 가능한 생태적 생산 방식을 중시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지역의 문화적, 물질적 자원을 깊이 이해하는 여러 협력자에게 의존한다. 공동의 접근과 이해는 작은 프로젝트가 더 큰 가능성을 내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지역의 산업·생산자·시공자가 수용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냈다. 정리 김모아 순환폴리의 조경 순환폴리에서는 광주폴리 둘레길과 함께 폴리 대상지의 조경설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과거 폴리 프로젝트의 오브젝트적 성격을 넘어, 폴리가 도시 조직의 일부가 되어 시민들에게 활용되게 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Vnh와 안팎은 ‘이코한옥’과 ‘옻칠 집’의 조경설계 및 시공, 시민 참여 조경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을 담당했다. 공공의 마당 한옥만의 사적 마당이 아닌 공공의 마당이자 정원을 제공하고자 했다. 버려진 한옥이 단일 입구를 통해 오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담장의 일부를 터 동네 안쪽의 좁은 골목과 연결함으로써 통과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되어 동네 골목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었다. 인접한 골목을 걸으면서부터 정원의 식재들을 엿볼 수 있고, 작지만 풍요로운 마당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마당에는 작가와의 협업으로 만든 화덕과 우물이 배치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코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조경을 즐기기도 하고, 우물에서 손을 씻는 등 이 공간에 잠시 참여했다 지나간다. 순환 재료 시스템과 디자인 재생과 순환이라는 프로젝트 주제에 어떻게 동조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설계를 시작했다. 이코한옥의 건축은 광주와 호남 지역 등 광역적 순환 자원의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Vnh은 조경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대상지 내에서의 순환 재료, 순환 자원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대상지의 맥락과 자원의 생명력을 연장하고자 했다. 흔적을 존중하는 디자인: 버려진 한옥의 마당에서 대상지의 시간을 기억하고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는 흔적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마당 콘크리트 바닥의 일부를 존치하기로 했다. 콘크리트는 오래되어 낡고 얼룩진 질감, 오염, 크고 작은 균열을 갖고 있었다. 틈새로 잡초가 자라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단단한 바닥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문간방, 화단, 정화조 및 파이프 등 폐한옥을 재건축하며 반드시 철거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으로 콘크리트는 파손된다. 철거 중 기존 균열을 따라 자연스럽게 깨어진 콘크리트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마당 중심에 위치한 이 콘크리트는 이코한옥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밟는 곳이며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재료의 수집과 새로운 적용: 한옥과 대상지에서 나온 각종 재료를 수집해 새로운 방식으로 배치하고 활용했다. 외부에서 새롭게 반입하는 재료를 최소화했고, 실제로 각 조경 요소를 매개하는 잡석 포장 외에는 새 재료를 도입하지 않았다. 일종의 재활용이자 자급자족의 방식이다. 틈틈이 현장을 탐색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수집했다. 한옥 철거 과정에서 나온 재료에는 바닥 콘크리트와 구들장, 화단의 조경석이 있었다. 구들장은 마당의 디딤석으로 재활용했다. 전통 난방 방식인 구들장에 사용된 판석들은 그 형태와 크기가 디딤석으로 쓰기에 매우 적절했다. 과거 건축 내부에서 마감재 안에 가려져 있던 재료가, 이코한옥에서는 마당으로 옮겨지고 노출되어 사람들이 직접 만질 수 있는 요소로 적용됐다. 화단 경계석으로사용됐던 다양한 크기의 돌은 마당과 골목을 이어주는 계단으로 재탄생했다. 한옥 건축 중 여분으로 남거나 파손되어 사용하지 못한 재료는 기와, 꼬막 패각류, 라임벽돌이 있었다. 독특한 색감과 질감, 곡선의 모듈을 평면적 패턴으로 배치하거나 입면적으로 쌓아올려서 사용했다. 암키와는 마당의 중요 요소인 화덕과 우물을 강조하는 악센트 포장재로 사용했다. 표면에 노출된 기와 단면을 이용해 다양한 패턴 조합을 실험해 결정했다. 기와 패널 사이의 채움재로 꼬막 패각을 썼다. 건축이 개발한 라임벽돌에 사용한 꼬막 패각과 같은 것으로, 파쇄되기 전에 가져와 둥글고 거친 입자와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활용했다. 또한 기존 담장의 콘크리트 기초 때문에 식재 토심 확보가 어려워 단이 있는 화단을 만들어야 했는데, 상대적으로 반경이 작고 높은 수키와를 쌓아올려 마당의 수직적, 입면적 조경 요소로서 배치했다. 따뜻하고 색다른 색감과 질감을 가진 기와를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조경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구현할 뿐 아니라 건물과의 재료 연계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코한옥 조경의 설계와 공사에서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이었다. 콘크리트 플랫폼의 형태나 구들장 및 조경석의 형태, 크기, 개수는 책상에서의 예상 도면과 일치하지 않았다. 재료의 양도 한정되어 있었다. 예측해 치수화하기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기에, 현장에서 다양한 테스트와 시행착오가 이루어졌다. 도면의 형식으로 캐드가 아닌 스케치를 선택한 이유도 이러한 불확실성에 즉각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불확실성은 오히려 설계에 대한 신선한 감각과 역동성을 깨우는 즐거움을 주었다. 시민들의 참여, 조경 식재를 통한 도시재생 워크숍 수집해 재배치한 조경 요소들은 디자인 콘셉트의 특성상 다양한 재료를 마당에 콜라주한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이러한 여러 요소를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 식재의 역할이다. 키가 큰 사초류에 들꽃 같은 초화류를 더해 자연스러운 색감이 섞인,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기존 마당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이를 그대로 두어 새로운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요소로 사용했다. 식재는 시민들이 식물을 직접 심고 가꾸며 공간 조성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다. 공공 마당의 역할을 정원 조성의 과정에서부터 부여하고자 대중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2회의 시민 참여 조경 워크숍을 기획해 실행했다. 일반 시민 대상 워크숍의 전반부는 ‘흔적을 통한 조경설계와 도시재생’을 주제로 진행됐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폐기물을 활용한 조경 프로젝트와 이코한옥의 조경설계의 목표와 진행 과정을 소개했다. 후반부에는 이코한옥 현장에서 식물 심기 체험을 진행했다. 전문가 대상 워크숍은 근 미래에 조경가로 성장해 지역 조경 문화를 이끌어갈 조경 전공 학생들을 초대했다. 조경 식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교육하고 그 내용을 몸소 체험해볼 수 있도록 식재 현장 실습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아이 동반 참가자 등 다양한 성격의 시민들에게 지역 사회와 도시재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내가 함께 만든 공공의 자원’은 시민들의 주인의식을 높이고 프로젝트의 공공성을 확장시켰다. 완공 후 세 달이 지난 지금,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동네 주민들의 소소한 참여의 흔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지난번에는 우리가 심지 않은 새로운 꽃을 발견했고, 어디선가 무의 씨앗이 날아와 자라고 있다. 이곳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공공의 마당이자 정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신다영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건축과 R&D 어셈블+BC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 R&D 윤정원(건축생산 큐레이터, 서울시립대학교), 김형기(조선대학교 건설재료연구실), 서울시립대학교 TAD Lab 제작 지원 드림라임, 클레이맥스, 고령기와, 세진플러스, 홍익휴먼스 시공과 설계 지원 스튜가하우스+어반소사이어티+송련재+일신공예사+현진건축+한옥사랑 조경 이상훈(전남대학교)+신다영(Vnh)+안팎 공예 김시월공예연구소, 장지방, 가라지가게, 스튜디오 오유경 3D 스캔&모델링 테크캡슐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209-106 어셈블(Assemble)은 런던을 기반으로 건축, 예술,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기존 자원을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그에 맞는 조직을 세우기도 한다. 제임스 비닝(James Binning)과 마크 게비건(Mark Gavigan)이 참여했다. BC 아키텍츠(BC Architects)는 건축, 연구, 재료 혁신의 교차점에서 활동하는 하이브리드 조직으로, 벨기에를 기반으로 지역 자원과 공예를 현대적 설계 관행에 통합하는 데 집중한다. 로렌스 베케만(Laurens Bekemans)과 요한 우베르(Yohann Hubert)가 건축 서사와 설계 실행을 이끌었다.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는 생태 지역적 접근법을 개척한 팀이다. 특정 지역을 구성하는 문화적, 환경적 층위를 조사·분석하고, 디자인을 통해 저평가된 자원에 새 용도를 부여한다. 농부와 건축가, 장인과 대학 실험실 사이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다니엘 벨(Daniel Bell), 헤나 버니(Henna Burney), 산드라 레부엘타 알베로(Sandra Revuelta Albero)가 함께했다. Vnh는 현시대와 근 미래에 필요한 도시의 공공 영역과 조경설계를 탐구하는 조경설계사무소다. 뉴욕에서 12년간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에서 도시, 건축, 조경 기반의 폭넓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신다영 대표와 이상훈 디렉터가 2024년에 설립했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부터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 소규모 디자인까지 다양한 작업을 수행한다. 땅 본연이 주는 자원과 영감을바탕으로 사람을 위한 생기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고자 한다.
  •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옻칠 집 Urushi Shell
    옻칠, 자연 소재의 재평가 옻칠은 한반도, 중국, 일본에서 오랫동안 쓰여 온 전통 자연 재료다. 일본에서 우루시urushi라고 불리는 옻칠은 옻나무 수액에서 추출해 내구성이 뛰어난 천연 도료이자 접착제다. 그릇, 냄비, 활, 농어업 기구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온 옻칠은 생산 가공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으며 산림 자원의 업사이클링에 기여한다. 애정의 건축 옻의 전통 기술을 보존하는 데 장인 정신도 중요하지만, 옻을 현시대의 우수한 재료와 기술로서 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현대 기술과 융합해 현대 생활에 맞게 옻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자연 옻을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 옻칠 집의 셸처럼 건축 구조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옻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전통적인 장인 정신을 뛰어넘어 일본 특유의 제조 능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자 한다. 고대 불상에서 영감을 받은 옻칠 집은 세계 최초로 옻을 구조적 건축 재료로 활용했다. UV 및 수분 저항, 구조적 형태 제작 능력에 대한 철저한 연구바탕으로 자연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계획, 설계, 건축, 운영, 개조, 철거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환경을 고려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발전할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고장난 물건을 버리기보다 수리해서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했다. 옻칠이 햇빛에 노출되어 차츰 퇴색될 때 적절한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옻칠 집은 만드는 과정에 공예를 만드는 것 같은 정성이 들어간 만큼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처음 모습 그대로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옻칠 집은 지역과 시민의 애정을 전제로 하는 건축 작업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 이토 도요 건축사무소 디자인 협업 가나다 미쓰히로, 도키 겐지, 도쿄예술대학, 미야기대학 구조 가나다 미쓰히로, 도쿄예술대학, 에이럽 생산 캐탈리스트, 고 시젠 고보, 스튜디오 아르케 옻칠 도키 겐지, 미야기대학+사토 가즈아, 시젠코보 조경 Vnh+안팎 진행 리쉬이야기 협업 아사히 빌딩월, 테이진, 쯔쭈미 아사키치 우루시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38-7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토 도요(Ito Toyo)는 도쿄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기쿠타케 기요노리 건축사무소에서 일한 후 1971년에 어반 로봇을 세웠고, 이후 1979년 도요 이토 &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건축의 최전선에서 혁신적이면서도 편안한 공간을 실현하는 건축을 해왔다.
  •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에어 폴리 Air Folly
    에어 폴리는 산업 부산물과 해양 폐기물을 활용해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뤄가기 위한 재활용 건축물이자 비닐하우스를 재해석한 것이다. 해조류를 기반으로 한 환경 친화적 생분해성 비닐로 건축 구조물을 제작했다. 바다 쓰레기가 되었을 미역 줄기로 만든 해조류 필름은 쓸모를 다한 후 토양 또는 해양 생태계에 쉽게 흡수될 수 있어 폐비닐 대체재로 쓰일 수 있다. 해조류 원단 사이 공기층을 만들어 내구성이 있도록 구조적으로 보완하면 가구, 제품, 의류로 쓰임을 확장할 수 있다. 조립, 해체, 이동이 자유로운 모듈 방식의 공간 구조는 재생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이 같은 순환 시스템을 통해 재료를 버리지 않고 다른 쓰임으로 연결할 수 있다. 유동적인 현대의 삶을 반영하는 공간과 구조는 바래가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에어 폴리의 제작, 사용, 분해 과정을 통해 토양과 바다에서 도심의 식탁과 공간으로, 그 후 다시 땅과 물로 돌아가는 해조류 비닐의 새로운 생애주기를 살펴본다. 해조 필름 전라남도 고흥 미역 양식장 인근에 있는 비닐 공장에서 농업용 멀칭 비닐 해조류 컴파운드를 기반으로 생분해성 해조 비닐의 두께, 폭, 색상을 테스트했다. 이곳은 종량제 봉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필름을 넓은 폭으로 대량 생산할 수는 있지만 필름 두께와 표면 균일도에 문제가 있었다. 정성오 교수에게 농업에 사용되는 멀칭 필름에 대해 자문을 받아 두께를 조정했다. 에어 폴리에 사용하는 필름은 옷의 원단에 사용하는 멀칭 필름 두께보다 더 두꺼워야 공기를 가두고 어느 정도 힘을 견딜 수 있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과 R&D 바래(전진홍+최윤희) 협력 기획 이경미 디자인 권서현, 이인애, 장성하, 조예진, 허해인 자문 박문길, 정성오 제작 정광우, 함지연 영상 스튜디오딥로드 패션 배여리 그래픽 김민재 프로그램 정림건축문화재단(건축학교) 설치 홍민희 식물 이주연 특별감사 강나래, 강지성, 곽소연, 곽성현, 김인환, 박동준, 얄루, 유명제, 이재선, 장미현, 장승환, 정진욱, 카밀라최, 황현진, 대학생건축과 연합회, 라인시스템 위치 광주시 동구 동계로 16-15 쿡폴리 콩집 바래는 전진홍과 최윤희가 2014년에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다. 역동적인 도시 환경과 시간에 조응하는 사물의 생산과 순환에 관심을 두고 리서치 기반의 건축 작업을 한다. 재료 분류 수집 로봇에서부터 키네틱 파빌리온, 장소 조건에 적응하며 형태를 달리하는 입체 미디어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2017),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2018)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건축과 환경의 상호 작용을 고찰하며 조립과 공기로 가벼움의 건축을 실험하고 있다. 최근 활동으로는 『어셈블리 오브 에어』(팩토리2, 2021), 한국과학기술원과의 협업을 통해 선보인 ‘에어빔 파빌리온’,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에어 빈’, 현대 모터스튜디오의 ‘에어 오브 블룸, 인해비팅 에어’가 있다.
  • 올림픽파크 포레온 Olympic Park Foreon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 재개발 추진부터 준공까지, 부동산 뉴스에 등장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이슈가 가득하고 관심을 많이 받은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둔촌주공아파트 143개동 5,930세대를 85개동 12,032세대로 재건축한 단지다. 약 17만㎡녹지에 교목 1만 6천 주, 관목 15만 5천 주, 초화 100만 본이 식재됐다. 티하우스와 퍼걸러 60여 개, 수경 시설 16개, 어린이 놀이터 18개(물놀이터 6개), 주민 운동 시설 12개소, 휴게 정원 30여 개소가 설치됐고, 옥상 녹화 면적은약 2만2천5백㎡에 달한다. 4개 시공사와 4개 설계 본부가 1년에 걸쳐 조경 특화설계를 진행하고, 시공을 하면서 현장 상황과 요청에 맞추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의 결과를 위해 함께 설계를 조율했다.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단일 공동 주택 단지로는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조경 공사비는 물론 역대 최대의 설계·시공 전문가를 투입해 완성한 단지다. 올림픽파크 포레온 올림픽공원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형 공원이며 강동구 주민의 생활권 공원이다. 단지명인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올림픽공원과 푸른 자연 위에 자리한 따뜻하고 평온한 곳”이라는 의미로, 올림픽공원을 향한 둔촌주공아파트 주민의 각별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이에 주목해 올림픽공원의 랜드마크를 단지의 조경 공간에 옮겨 담아 단지와 공원의 관계성을 높이고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설계 목표로 삼았다. 넓은 단지의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자연의 경관을 담는 ‘메가 네이처 파크(Mega Nature Park)’라는 콘셉트로 조경 계획을 진행했다. 단지를 일곱 개 선형 공간으로 나눈 뒤 세부 공간을 계획했다. 단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심 클러스터는 메가 포레스트와 메가 그린필드로 구성된다. 단지를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축인 포레스트웨이와 스트림웨이는 자연 그대로의 녹음을 단지 내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레벨 차가 있는 곳에는 선형 마당인 스케이프라인과 비스타라인을, 올림픽공원과 단지를 연결하는 대형 보행로에는 아티스틱 애비뉴를 조성했다. 메가 포레스트 둔촌동 습지를 포함해 생태경관 보전지역과 경계가 맞닿아 있는 단지 동측은 주동의 층수가 낮고 인동간격이 충분하다. 이를 활용해 녹음이 단지로 흘러들어와 자연 그대로의 숲과 정원이 된 듯한 공간을 계획했다. 에버그린가든: 메가 포레스트의 핵심 공간인 에버그린가든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숲을 콘셉트로 한 공간으로 대형 팽나무 숲, 넓은 잔디밭 등으로 구성된다. 배롱나무 대형목과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는 소나무는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포시즌가든: 팽나무 대형목을 중심으로 넓은 잔디밭과 티하우스, 데크가 조화를 이루는 안락한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뀌는 자연의 색채를 담아내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고요하고 평온한 휴식처로 조성했다. 메가 그린필드 단지를 가로지르는 녹지를 수목으로만 가득 채우는 것을 경계했다. 비움과 채움 공간을 구분해 리드미컬한 오픈스페이스 공간을 만듦으로써 주동과 주동 사이의 조경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거석원(巨石園): 돌 사이에서 자란 소나무가 있는 바위산을 등산하다 보면 험한 환경을 이겨내는 식물의 생명력, 소나무가 바위산을 짊어진 듯한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돌과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단지 내에 표현하고자 했다. 울주, 횡성 일대에서 모양이 자연스럽고 야생 들풀이 피어난 거석을 수집해 레벨차가 생기는 단지 외곽 경사면에 배치하고 조형 소나무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메가 그린필드: 단지 중앙의 메인 외부 공간인 메가 그린필드는 넓게 펼쳐진 잔디광장이다. 독특한 형태의 수경 시설인 아이파크 워터 오브제, 조형적 티하우스, 특색 있는 형태로 시선을 끄는 대형목이 너른 잔디밭과 어우러져 있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조명을 통해 야간에도 이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계획했다. 예원(藝園, Artistic Bosque): 공간 강조와 배경의 구분을 위해 주동 사이에 위치한 사각형의 공간을 몬드리안 방식으로 분할했다. 레이아웃의 특징이 두드러지도록 조형 퍼걸러, 잔디마당, 산책로, 수목 식재 패턴을 평면 속 직선과 맞추어 배치했다. 이로써 평면을 구성하는도시적 선형이 3차원 공간을 경험하는 이용자에게도 전달된다. 정형적으로 식재된 수목 사이의 좁은 산책로를 따라 진입하면 넓게 열린 잔디광장을 만나게 된다. 공교롭게도 이 오픈스페이스 사방을 야생적인 분위기의 신단풍 숲이 감싸고 있어 이용자는 열려 있지만 동시에 위요감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신단풍 숲 하부에는 골재 크기가 작은 쇄석을 포설하고 작은 초화류를 심었다. 더불어 정원형 의자를 배치해 이용자가 자유롭게 접근해 원하는 방식으로 휴식하도록 유도했다. 총림을 배경으로 놓인 비정형의 3D 프린팅 벤치, 이끼를 품은 자연의 돌, 저녁을 밝히는 갈대등, 공간 확장 효과를 내는 스테인리스 미러월이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일상 속 예술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다양한 상(2024 K-디자인 어워드 위너 및 2024 우수디자인상품 선정 및 동상 수상)을 수상했다. 둔촌진경원(遁村眞景園): 9호선 둔촌오륜역에서 단지로 들어서 제주 팽나무길을 지나면 둔촌진경원이 펼쳐진다. 산을 표현한 가벽을 배경으로 식재된 왕벚나무 대형목과 주변을 둘러싼 석가산이 어느 깊은 계곡 주변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국영상대학교 교수진과 협업을 통해 계획한 프로젝션 맵핑 미디어 아트를 석가산에 맵핑해 야간에는 색다른 경관이 연출된다. 비스타라인 비스타라인은 강동대로에서 단지 출입구를 지나 풍성로에 이르는 남북 통경축이다. 이 통경축의 시작점인 북쪽과 남쪽에 장방형의 오픈스페이스를 조성했다. 송류원(松流園): 비스타라인 북측에 위치한 송류원은 약 200m 길이의 잔디마당이다. 잔디마당의 녹지와 포장의 경계를 허물고 아름드리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라는 수종의 조형미와 한국의 미가 공간에 잘 드러나도록 식재 위치를 선정하고 사계절 푸르른 경관을 느끼게 했다. 북측 진입부에는 1.5m 단차를 활용한 캐스케이드를 조성했다. 단지로 들어설 때 들리는 청량한 물소리는 앞으로 펼쳐질 공간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높이는 효과를 낸다. 캐스케이드와 소나무에 둘러싸인 2층 티하우스에서는 다채로운 경관을 다양한 방향에서 관망하고 휴식할 수 있다. 남측 입구에는 둔촌주공아파트의 흔적인 ‘둔촌축제 기념비’를 설치했다. 기념비 주변에 대형 배롱나무를 식재하고 바 테이블, 통석 벤치 등 휴게 시설을 배치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백일 동안 화려하게 피어 있는 배롱나무 꽃을 감상하며 서로 소통하고 추억을 나누게 될 것이다. 라이브러리 앤드 가든(Library & Garden): 비스타라인 남측 잔디마당에는 성균관대학교 최혜영 교수가 디자인한 정원을 조성했다. 주민 편의 시설 인근이라는 점을 고려해 정원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로 설계됐다. 이 커뮤니티 정원에서 주민들은 사색하며 일상의 지친 심신을 달래고 서로 교류하며 생각과 지혜를 나누게 된다. 정원 맞은편에는 연못에 담긴 듯한 2층의 티하우스를 설치했다. 이곳에 올라 넓은 잔디마당을 배경 삼아 정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포레스트웨이 포레스트웨이는 강동구 생태 자연의 중요 요소인 일자산의 숲 경관을 단지 내로 잇는 녹지축이다. 일자산~올림픽파크 포레온~올림픽공원~성내천~한강으로 연결되는 녹지 흐름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공공보행통로가 될 것이다. 녹음이 흘러들어오는 단지 동측에서 연결된 소나무 숲길에 한 폭의 진경산수화 같은 자연을 생생하게 구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석가산과 세 개의 폭포가 흐르는 연못, 그 규모에 어울리는 2층의 티하우스를 조성해 웅장한 분위기의 쾌적한 공간을 만들었다. 지형으로 인해 공공보행통로 내 데크 층에 단차가 발생하는데, 이를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도록 곡선형 보행로 주변으로 자연을 닮은 휴게 정원인 슬로프 가든을 조성했다. 물, 돌, 곡선 등 자연의 요소를 단순화해 다양하게 조합한 미술품 ‘바람의 탑’을 중심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초화류를 심고 화산석을 배치해 거친 야생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공보행통로를 따라 단지 서측으로 이동할수록 짙은 소나무 향을 느낄 수 있다. 소나무로 가득 찬 숲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유려한 곡선의 산책로를 조성했다. 산책로를 느리게 걸으며 오감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산책로 곳곳에 목재 데크와 곡선형 앉음벽 등을 설치했다. 스트림웨이 스트림웨이는 단지 외곽의 둔촌동 습지를 포함한 생태 경관 보전지역의 우수한 자연 요소를 테마로 한 공공보행통로다. 공공보행통로를 따라 다양한 수공간을 배치해 단지의 동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습지를 마주하고 있는 단지 경계에서 시작된 정형적 형태의 폰드 세 곳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폰드와 다양한 수목들 사이에서 풍부한 삶의 감성을 느끼기를 바랐다. 폰드 중심에 위치한 티하우스에서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다. 공공보행통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 풍성한 단풍나무 숲길을 만날 수 있다. 이 숲길을 따라 배치한 자연형 계류 종점에 2층의 티하우스를 배치했다. 티하우스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의 모습이 이곳을 단지 내 핫스폿으로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스트림웨이의 서쪽 끝에는 유려한 곡선의 중첩이 돋보이는 조형 폰드와 공중에 떠 있는 돌(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워터 라운지인 투영의 정원을 조성했다. 해가 뜰 무렵에는 떠오르는 햇살이 돌 뒤에서 흩뿌려지는 풍경이 만들어지고, 저녁에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조명이 독특한 경관을 연출해 물의 정원이자 빛의 정원으로 기능하게 된다. 아티스틱 애비뉴 아티스틱 애비뉴는 강동대로와 양재대로가 만나는 사거리에서 단지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출발하는 보행로다. 롯데월드타워와 올림픽공원을 잇는 경관축을 단지로 끌어들이는 중심보행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두 그루의 큰 나무를 형상화한 높이 12m의 미술 작품을 설치해 단지의 시작을 알리는 랜드마크로 삼았다. 송경원(松徑園): 아티스틱 애비뉴가 단지에서 레벨이 가장 낮은 공간이라는 점을 활용해 중후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했다. 이를 위해 채도가 낮은 마감재를 사용하고, 웅장한 분위기의 소나무를 심고 하부에 야성적이고 거칠게 다듬은 바위를 배치했다. 탁 트인 잔디마당에는 폭포형 수경 시설과 오픈형 티하우스를 설치하고, 고풍스러운 소나무가 식재된 길을 조성했다. 티하우스에는 공동 주택 최초로 AI 기술을 활용한 공간별 실시간 음악 큐레이션 서비스 기술을 적용했다. 보타닉 가든-30여 개의 휴게 정원 레스팅가든: 칠엽수를 단일 수종으로 군식해 집중력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반면 하부에는 다양한 초화류를 식재해 다채로운 경관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 미스틱가든: 과거 둔촌주공아파트 4단지에 있던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재현했다. 더불어 아름다운 암석을 배치하고 미스트 분수를 곳곳에 설치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휴게 정원을 조성했다. 힐링웨이가든: 외곽 산책로의 시작점에 있는 힐링웨이가든을 둔촌습지와 연계해 약 100m 길이의 자연형 생태연못으로 조성했다. 단풍나무 가로수길, 야생 초화가 거칠게 자란 암석원을 따라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외곽 경계의 단차를 활용해 단지 외부의 자연을 시각적으로 끌어들여 숲속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성읍원(城邑園): 팽나무 숲 사이로 데크 길을 의도적으로 구불구불하게 놓아 바쁜 일상 속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공간을 조성했다. 무심히 놓은 이끼석과 현무암 괴석이 곳곳에 핀 야생화, 팽나무와 어우러져 제주의 작은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자아낸다. 돌 틈 사이에 설치한 미스트는 숲속의 신비로운 경관을 연출하는데, 동틀 녘 나지막한 현무암 돌담에 앉아 있으면 안개 낀 제주의 고즈넉한 아침 분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휴휴원(休休園): 휴휴원에는 색조Hue(휴)와 쉼休(쉴휴)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이곳에서 청량한 물소리,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운 색감을 보여주는 식재, 그 중심을 지키는 바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물위에 떠 있는 바위산을 뜻하는 부소담악(浮沼潭岳)에서 착안해 70m의 계류와 연못, 그 위에 네 개의 석가산이 떠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1m 정도의 레벨차를 활용해 계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었다. 계류의 시작, 중간, 끝부분에 연못과 함께 조성한 휴게 공간에서 한국의 돌과 물이 만든 풍경 속에서 쉬고 또 쉬어갈 수 있다. 아뜰리에 가든: 몬드리안의 격자 추상 작품을 모티브로 설계했다. 산책길에 높낮이를 만들어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고 고풍스러운 고벽돌 플랜터로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키 큰 소나무 숲을 조성해 숲속에 조성된 정원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정원을 방문할 때뿐 아니라 주동에서 내려다볼 때도 격자 추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정원을 완성했다. 사유원: 차분한 색상과 통일된 설계 언어를 통해 충분한 사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 마운딩과 수목을 더해 경관의 입체적 변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진회색 길 주변으로 짙은 녹색의 초화류와 관목을 밀식해 자연스러운 시선의 이동을 유도하고, 다간형의 배롱나무를 흩뿌리는 방식으로 식재해 자연스럽게 입체감을 형성했다. 이용자의 시선은 중첩되는 마운드의 선형을 따라가게 되는데, 특히 높은 마운드 로 둘러싸인 공간에 테이블 의자를 배치해 온전히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밝은 색의 휴게 시설과 갈대 조명,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초화류의 모습은 조화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색채의 대비를 만들어낼 것이다. 예원과 더불어 2024 K-디자인 어워드에서 위너로 선정됐다. 안녕? 올림픽파크 포레온! 사라진 둔촌주공아파트를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시작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2013~) 프로젝트를 이끈 주역은 이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이었다. 도시에서 ‘고향’이라는 단어가 아파트를 지칭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평생을 보낸 원주민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단지 내 기록관을 세워 40여 년간 쌓은 기억을 전시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장소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을 읽을 수 있다. 조경설계도 이에 발맞춰 기존 단지 외부 공간에 있던 의미 있는 시설을 보존해 다시 설치하거나 재해석해 새로 조성하는 노력을 더했다. 새롭게 변신한 공동주택 단지에서 살아가며 장소 애착을 갖게 될 또 다른 아파트 키드가 이 지면에 소개하지 못한 다른 조경 공간에서도 추억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글 그룹한어소시에이트, 시공사 컨소시엄 사진 유청오 기본설계 서인조경 조경 특화설계 그룹한어소시에이트 시공 현대건설,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조경 시공 유일종합조경, 다원, 미담, HDC랩스, 동영조경, 아세아종합건설 휴게 시설 아르디온, 원앤티에스, 드림월드, 플레이잼 놀이 시설 스페이스톡, 아르디온, 플레이잼, 원앤티에스, 드림월드 석가산 미담, 수림원, 아세아종합건설 위치 서울시 강동구 둔촌1동 170-1 일대 규모 12,032세대 대지 면적 462,793.3m2 조경 면적 170,691.72m2 준공 2024. 11.
    • 그룹한어소시에이트
  • [해륙순환 도시주의] 다시 쌓는 불턱
    “시끄럽다! 저리가라!” 삼양 3동에 남아있는 할망(할머니) 불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씨 삼춘(삼촌의 제주 방언)이 소리쳤다. 그가 애기 해녀였던 시절, 뭘 물어보려 불턱에 찾아가면 할망들에게 시끄럽다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우영팟에서 검질매고(김매고) 나온 잡초들을 불턱에 가져와 불을 피워두던 애기 해녀는 이제 노년의 잠수회장이 되었고, 할망 불턱도 옆집에서 창고를 지으며 반쯤 허물어져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지 오래.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쉬는 사적인 공간이자, 하루의 물질부터 마을의 대소사까지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는 공적인 자리였던 불턱은 해녀 공동체의 건축적 상징이다. 하지만 해녀 인구의 고령화와 감소로 인해 이러한 공간들도 사라져가고 있다. 답사 중 스러져가는 탈의장이나 불턱을 볼 때마다, 나는 삼춘들이 떠난 뒤의 바당밭의 미래를 고민하고는 했다. 소멸해가는 것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내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기록이었다. 기록은 문화의 증거가 된다. 답사를 다니며 측량한 여러 불턱과 잠수탈의장을 이번 글에서 살펴보겠다. 두 번째 방법은 변화다. 앞선 글에서는 바다와 땅을 오가는 영양분을 섬과 바당밭 풍경의 스케일에서 살펴보고 지속가능한 순환을 그려봤다. 깨끗한 물을 끌어와 화학 비료와 육상 양식장 배출수, 축산 폐수 등으로 오염시켜 바다에 방류해왔던 근대적 착취에서 벗어나, 돼지 분뇨를 이용해서 지렁이를 키우고, 광어 양식장에서 나오는 유기물로 해조류를 키워 소라나 전복을 먹이는 통합 다중 영양 양식(Integrated Multi-Trophic Aquaculture)을 상상해봤다. 버려지는 소라 껍데기는 해녀들이 오가는 조간대 길의 재료가 되어 검은 현무암 지대를 수놓으면 그 길에서 해녀 공동체가 다른 이들과 함께 걷는 일도 가능할 것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건축적 스케일에서 삼양 3동 할망 불턱을 다양한 세대가 만나는 공간으로 변화시켜본 과정을 다뤄보겠다. “또똣ᄒᆞᆫ디 이리로 오라(따뜻한 여기로 와라)” 불턱은 해녀 건축의 원형이다. 불턱은 크게 자연형과 인공형으로 나뉜다. 자연형 불턱은 자연 지형을 이용해 바람을 막아 불을 피워 사용한 형태를 지칭한다. 종달리에 위치한 돌청산 불턱이 대표적 예다.(각주 1) 현무암이 고르게 퍼져 있던 암반 지대가 마치 입을 벌리듯 갑자기 움푹 내려앉으며 바다로 이어지는 돌청산 불턱은 양옆으로 솟은 작은 현무암 절벽이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아주었다. 또한 이 골짜기는 해녀들이 바다로 드나드는 자연스러운 길이 되기도 했다. 자연 지형이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는 경우 옛날 해녀들은 직접 돌담을 쌓아서 불턱을 만들었다. 이를 인공형 불턱으로 분류한다. 일례로 하도리에 위치한 보시코지 불턱이 있다. 해안도로변에서 마주하는 보시코지 불턱은 성인 허리께 높이의 약 동서 12m, 남북 6m의 직사각형 돌담으로, 그 단아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담장 주변을 수놓은 문주란과 함께 담 위쪽에 덧발린 백색 모르타르가 눈길을 끄는데, 이는 인근 무두개의 산호모래로 만든 시멘트 모르타르다. 초기에는 오직 돌을 쌓아서 만드는 구조였으나, 제주에 시멘트가 보급되면서 해녀들은 이 모르타르로 돌담 틈새를 메워 바람을 차단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시멘트가 귀했던 초기에는 가장 바람에 많이 노출되고 구조적으로 취약한 위쪽에만 시멘트를 덧발랐다. 보시코지 불턱 입구로 들어서면 낮은 중간 담을 두어 내부를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한 구조가 드러나는데, 여기에 해녀 사회의 위계가 반영되어 있다. 서쪽의 높은 지대는 하군 해녀들이, 동쪽 낮은 지대는 상군 해녀들이 사용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보통 물리적으로 높은 자리에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이 앉는 것과 달리, 낮은 지대에 사회적 위치가 더 높은 상군 해녀들이 앉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불턱에 앉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소란스러운 풍경이 뒤로 물러나고, 사나운 바람과 파도 소리는 돌담을 거치며 온화해진다. 묵묵한 돌담 위로 하늘은 지나가고.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청산은 성산일출봉과 비슷하게 생긴 바위를 주민들이 일컫는 말이다.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 교수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 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와 정원사로 일하며 조경과 건축을 함께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
    • 강준호
  • [어떤 디자인 오피스] 그룹한어소시에이트 그룹한의 선한 설계
    30년, 한국 조경의 역사와 함께 1994년 창립한 그룹한어소시에이트(이하 그룹한)는 2024년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는 조경설계사무소다. 현재 계열사 7개에 150여 명의 전문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대형 공원과 주거 공간 설계에 강점을 두고 도시설계부터 정원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조직화된 시스템과 노하우를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창의적 비전으로 미래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 20여 국가에서 매년 100개가 넘는 국내외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세계조경가협회(이하 IFLA) 대상 3회 수상, 대한민국 조경대상 대통령상 등 200개가 넘는 상을 수상했다. 자연과의 동거를 꿈꾸며 그룹한은 조경설계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이원화를 극복하고 일상에서 자연과 문화의 접점을 찾아 역동적이고 생동하는 자연성을 디자인하고 있다. 2016년에 준공된 배곧생명공원은 인간에 의한 개발로 훼손된 해안 매립지를 다시 자연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생명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대상지의 핵심인 중앙공원은 서해에서 급격하게 나타나는 조수 간만 차를 이용해 바닷물을 공원 내로 끌어들이고 자연 에너지만으로 담수와 기수, 해수가 만나는 복합적 생태계를 구성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관을 연출하고 다양한 연안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배곧한울공원은 사라진 해안선을 되살리고 바다의 기억을 회복하고자 갯벌, 바람 등 여덟 가지 바다의 기억을 테마로 설정하고, 매립에 의해 직선화된 6km의 호안을 굴곡진 12km의 역동적 호안으로 새롭게 바꾸었다. 미완의 작품이지만 송도 G5 블록 공원 현상설계에서는 서해안의 대표적 원경관인 갯골과 해식 절벽을 디자인 모티브로 지형을 만드는 바람의 흐름을 따라 바닷물을 대지 내로 끌어들여 새로운 물길과 대지의 모양새를 만들어 냈다. 2013년 개관한 국립생태원은 습지 생태계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는 금구리구역, 한국의 기후대별 삼림 식생을 재현한 하다람구역 등으로 구성했다. 기존 대상지의 식생과 수문을 면밀히 분석하여 훼손을 최소화하고 자연적인 수순환 체계 확립과 종 다양성 증진을 위한 최적의 서식지 조성으로 박제된 자연이 아닌 살아있는 생태계를 구현했다. 천안삼거리공원은 능수버들의 유래와 흥타령을 간직해온 대상지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 흥이 넘치는 삼남길을 재현하고 광활한 습지와 능수버들 군락이 춤추는 자연마당을 조성해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작용들을 끌어내고자 했다. 이러한 디자인은 겉모습의 자연에 대한 동경을 넘어 변화하고 역동적인 자연, 문화적인 자연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 예술적 또는 과학적 설계 방법론을 지향하는 상반된 디자인 경향을 융합해 나가면서 조경 디자인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나가고 있다. 자연의 생태계와 인간의 예술적 감성을 통합적 안목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자연의 생태적 과정에 디자인의 상상력과 의미를 결합하는 조경설계를 궁극적으로 추구한다. 우리의 작품 중 예술 지향적인 작품으로 일산자이에 설치한 조형 퍼걸러는 꽃잎을 확대하고 스케일을 과장해 만든 크고 작은 구멍들이 그늘을 제공한다. 퍼걸러 바닥에는 햇볕의 방향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가 장관을 이룬다. 근린공원의 수경 시설은 친수 공간과 환경 조각품을 결합한 스토리텔링으로 조경과 미술이 통합된 예술 장식품을 구현했다. 양평 현대그룹 연수원의 평면은 기하학적 추상화를 연상하게 하고, 수원 SK 스카이뷰에 설치한 소나무 환경 조각품은 진입로 좌우로 식재된 소나무 군락과 통합된 조형미를 구현한다.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 수원센트럴아이파크자이에 설치한 조형 수경 시설과 제주 신화역사공원 조경설계공모 당선작,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의 수공간은 땅의 융기와 용암의 팽창, 등고선 지형의 복원 등을 표현한 대지 예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명지지구 조경설계공모 당선작은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생태학적 환경 이론과 대지 예술의 구현이라는 예술 지향적 조경설계를 결합해 완성했다. 쓰레기 매립지였던 대상지에 철새의 먹이인 새섬매자기 군락을 복원하고, 강 하구의 습지, 사구, 물골의 수문학적, 지형적 특성을 디자인에 반영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상생하고 치유되는 공원을 목표로 삼았다. 미사강변센트럴자이의 외부 공간 설계는 ‘디자인 위드 워터Design with Water’란 메인 콘셉트를 중심으로 물 관리와 함께 수공간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생명이 살아있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동탄목동공원(재난안전공원)은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재난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중심으로 설계했다. 권역 안에서 수용할 수 있는 안전 및 대피 시설의 규모를 과학적으로 산정하고 도시 재해 시에 임시 거처로 활용할 수 있는 피난 광장과 관리 시설을 평상시 놀이 체험 및 교육 시설과 연계하며 조형미를 드러낼 수 있게 디자인했다. 렛츠런파크 영천은 경마공원에 머무르지 않고 부지 전체를 대지 예술로 승화시켜 정원 중심의 테마파크를 제공하는 지역문화형 공원으로 계획했다. 영천시의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객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원을 지향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5-1생활권 스마트 조경 설계공모 당선작은 지속가능한 스마트 공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연·인문 자원이 가진 지역성과 정체성을 기반으로 스마트 과학 기술을 접목해 도시와 시민이 협력해 도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동적 시스템을 구축한다. 성남 복정 1, 2 공공주택지구 조경설계공모 당선작은 기후위기 영향을 줄이기 위한 탄소중립 공원으로 계획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라 녹색 공간의 지표를 제안하고, 자연 기반 탄소 흡수 및 저장량을 현재까지의 연구를 기반으로 정량화해 대상지 설계안에 탄소중립을 위한 생활의 실천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조경의 전통적인 반도시적 가치 지향에서 벗어나 도시 속에서도 그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조경과 건축과 도시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영역에서 조경가로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며 영역 간의 네트워크를 조절하는 지휘자로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관점의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다. 가덕도 개발개념 현상설계안은 도로와 방파제 같은 회색 인프라가 아닌, 실개천과 조류의 흐름에 따라 경관과 그린 인프라가 우선적으로 고려된 경관 중심적 계획의 프로세스를 제시한다. 3기 신도시 공원의 첫 주자인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 공공주택지구 조경설계공모 당선작은 기존 대형 중앙공원 중심의 1, 2기 신도시 공원 계획의 패러다임을 탈피한 휴먼 스케일의 선형공원을 도입했다. 입주민의 일상 깊숙한 곳까지 공원ㆍ녹지가 자리 잡는 것을 지향하고 지역 경관을 담은 디자인 모티브, 입체적 선형공원, 도시와 상호 작용하는 일상의 공원을 추구한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추구했지만 미완의 작품으로 남은 대형 프로젝트로는 용산공원, 서남권 국회대로 상부공원, 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 등이 있다. 일산 식사지구 도시 개발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부터 조경가가 참여해 전체 마스터플랜 계획 과정에서 회색 인프라가 아닌 녹지 원형으로부터 그린 DNA를 추출하고자 했다. 새로운 도시 녹지 체계를 재생하고 그린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전략으로 생태적 관점으로 도시 골격을 구성한 프로젝트의 좋은 예시다. 이와 같이 대규모 주거 단지 개발에서 그룹한이 주도적 역할을 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실천한 프로젝트들이 있다. 군부대 이전 부지에 대규모 중앙공원으로 녹색 축을 만들고 ‘조경이 만드는 도시’를 추구한 창원 중동유니시티와 산수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봉우리와 계곡을 주제로 친환경 단지를 구현한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 지형의 선형이 살아있는 대지 예술로 단지를 가로지르는 중앙 공간과 대자연을 품은 생활 공간을 계획한 디에이치 아너힐즈, 한강으로의 경관 축을 따라 대규모 오픈스페이스가 설계된 잠실5단지, 메가 네이처 파크(Mega Nature Park)를 콘셉트로 올림픽공원의 자연을 담은 올림픽파크 포레온 등이 있다. 그룹한은 대지 예술로부터 영감을 얻어 독립적인 건축을 미적, 철학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나의 흐름을 일관성 있게 완성하고자 하는 건축가들과 협업해 왔다. 세종시 정부 청사, LH 사옥, 부산현대미술관,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 판교 알파돔, 동탄 롯데백화점 복합몰, 마곡 원웨스트 서울, 송도 롯데몰, 제주중문리조트 등 조경, 건축, 도시가 혼합된 영역에서 조경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전통의 계승과 한국적 조경을 위하여 다양한 설계 방법을 통해 전통 조경을 계승하고 한국적 조경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시도를 이어왔다. 꽃담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수경 시설인 벽천에 도입한 수지 LG빌리지와 전통을 재현한 부여 백제문화단지는 초창기 작품에서 시도된 형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전통 마을을 이루는 조성 방식인 풍수사상 등을 재해석해 실개천과 비보숲 등 산수 조성 기법을 현대적인 공간 조성 방식으로 구현했다. 양주자이의 실개천은 풍수사상을 접목해 천보산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실개천을 단지 내로 끌어들여 녹지와 수계가 유지되도록 생태와 문화의 그린 네트워크를 구현했다. 강남 도심 속 대규모 주거 단지인 반포자이는 한강으로부터 단지를 관통하는 두 갈래의 실개천을 도입해 다양한 휴게 공간과 오픈스페이스, 놀이 공간과 운동 시설 등을 배치하고 자연스럽게 물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서울대학교 행정관 광장은 차경과 비움의 전통적 조영 원리를 계승한 작품으로 전통 한옥 마당이 가진 비움의 미학에서 영감을 얻어 채우는 대신 비움을 통해 실용의 미를 실천했다. 청계중앙공원은 숲(山經)과 개울(水經), 그리고 길(修己)이 만드는 한국 전통 마을의 구성 원리를 차용하고 자연과 상생하는 음양오행 사상을 도입한 전통 조경의 재해석을 통해 한국적 도시 공원의 모델을 제시했다. 세계로 향한 발걸음 그룹한은 2007년부터 매년 IFLA 학생설계공모전의 공식 후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지사를 설립해 세계화의 초석을 다졌다. 일산자이 제로가든(2011), 배곧생명공원(2014) 등 으로 IFLA 작품 대상을 받는 등 국제 무대에서 한국 조경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생명의 강(River of Life)(2011), 부르나이 케다야강 워터프런트(Kedaya Eco-corridor Waterfront)(2014), 아제르바이젠 바쿠 올림픽 경기장(Baku Olympic Stadium)(2014), 이란 아틀라스 플라자(Atlass Pars)(2016), 필리핀 클락 더 샵 힐즈 리조트(The Sarp Hills Resort)(2016),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토이테파 신도시(Toytepa Newtown)(2017), 미얀마양곤 한타와디국제공항(Hanthawaddy International Airport)(2019)등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서 다양한 국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오피스 구성과 문화 그룹한은 휴게 및 놀이 시설 설계·시공, LID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친환경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자매 회사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며 성장 중이다. 가이아글로벌은 ‘아이들의 꿈이 현실이 됩니다’라는 비전을 토대로 2002년에 설립한 친환경 놀이 시설물 브랜드다. 화학적 방부 처리가 필요 없는 유럽산 1등급 아까시 원목과 무독성 천연 안료를 사용해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생태 놀이터를 만든다.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도시, 자연과 미래 세대를 위한 그린인프라 기술과 제품의 개발 및 보급을 목표로 2011년 설립됐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연구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토인 디자인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도시에서 예술성과 기능성을 겸비한 새로운 조경 시설물 개발을 위해 2014년에 설립됐다. 도심 속의 녹색 안식처를 지향하며 자연을 담고, 자연을 닮은 자연 감성의 미래형 야외 조경 시설물 연구 및 개발을 하고 있다. 또한 조경계의 유일한 전문지인 월간 『환경과조경』과 「한국조경신문」을 발간하며 ‘조경문화발전소’로서 조경계의 역사를 꾸준히 아카이브하고 조경 분야의 소통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회사 행사 매년 임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사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매년 봄마다 사옥 옥상에서 진행하는 스프링파밍데이는 채소와 과일들을 함께 심고 가꾸는 이벤트로 구성원들에게 사무실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가평의 그룹한 연수원 포레하우스를 통해 계열사 워크숍과 직원 가족들을 위한 무료 힐링 여행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임원 해외 워크숍과 전 직원 국내 및 해외 답사, 우수 사원 해외 답사 프로그램 등도 진행하고, 환경조경나눔연구원과 함께 가평 꽃동네, 한사랑마을 등에서 나눔과 봉사활동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소장들의 소회 그룹한의 의미 그룹한 30주년을 기념해서 지난날의 사진과 추억들을 열어보았다. 막상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내가 한 프로젝트, 나와 함께한 사람들 모두에게 그룹한이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해졌다. 신입 공채 입사 동기 13명 중 이제 3명이 남았다. 신입부터 대리, 과장, 차장까지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세우게 되는 목표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지만 지금 얼만큼 이루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룹한은 내게 사회생활의 시작이었고, 힘든 직장 생활의 과정이었으며, 함께한 사람들과의 추억이었다고 정의하고 싶다. (전략 1본부, 김원대 소장) 내일의 꿈 “꿈을 먹고 사는 조경가 오태호입니다.” 2021년 겨울이 시작될 즈음, 그룹한 빌딩 6층 면접장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어린 시절, 독일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궁전의 정원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 깊은 감동은 나를 조경의 길로 이끌었다. 그때 눈에 담았던 그림 같은 풍경을 내 손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은 지금도 변함없다. 조경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언젠가 국내 최고의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다소 막연한 꿈을 꾸었고 내게 그룹한은 동경이자 꿈이었다. 그룹한에게 소망하는 바가 있다면, 어제의 내가 그랬듯 내일의 누군가에게 동경이자 꿈이 되어주길 바란다. (전략 2본부 , 오태호 소장) 다음 30년을 그리며 2024년은 그룹한이 30주년을 맞이한 해고, 그룹한과 함께한 지도 만 25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내게 한 회사에 어찌 그렇게 오래 다닐 수 있는지 묻는다. 돌이켜보면 정말 이 일이 좋아서 즐기며 했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힘든 순간도 많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를 굳이 꼽자면 조경에 대한 각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대표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나와 함께 걸어가며 서로의 힘듦을 공감할 수 있는 동료들이 아니었을까. 그룹한은 30주년을 넘어, 앞으로의 30년을 더해도 거뜬하게 조경계를 이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설계 1본부, 김애경 소장) 한계를 넘는 새로운 도전 “그룹한에서는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사 면접에서 전임 소장으로부터 들은 말의 의미를 지금 팀을 이끌며 깊이 이해하게 됐다. 주로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만큼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최근 진행 중인 군포대야미 공원 프로젝트에서는 기후 최적화 분석을 적용해 여름철에도 쾌적한 공원을 목표로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그늘을 만들고, 바람이 흐르는 공간을 구상해 여름에도 시원한 공원이 되도록 계획하고 있다. 어떻게 더 새롭고 창의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를 하며 늘 하는 고민이지만, 매 프로젝트에서 한계를 넘어서는 해결책을 고민해온 것, 그것이 그룹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설계 2본부, 강이주 소장)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20년 전 내 기억 속의 그룹한은 이전 회사에서 저녁 시간 잠시 빠져나와 경력직 면접을 보러온 것이 처음이었다. 유난히도 반짝이던 엘리베이터, 숨이 약간 찰 정도로 언덕을 올라야 하는 방배동 제일 높은 곳의 빌딩. 젊은 조경 그룹. 그때만 해도 20년을 근무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힘들었지만 우리는 늘 작은 성공을 할 수 있어 자신감이 넘쳤고 최고의 회사 일원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동료 간의 우정과 경쟁, 선후배 간의 끈끈한 연대와 더불어 그때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한결 수월하게 내가 원하는 설계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20년을 그룹한과 함께했으며 우리는 같이 성장해왔다. 앞으로 더욱 성장할 그룹한과 나의 20년을 기대해본다. (설계 3본부, 주세훈 소장) 다채로운 가능성과 기회 그룹한은 나에게 많은 기회와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평생 가보지 못할 남극부터 앞으로도 살아보지 못할 아파트, 살면서 가서는 안 되는 공공 청사들까지 프로젝트로 다가오는 20년간의 만남이 있었다. 정기 워크숍은 평소 숨쉬기 운동밖에 모르던 나에게 겨울에는 보드를, 여름에는 래프팅과 서바이벌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아마 100명의 사람과 뭉친 해외 패키지를 떠나는 경험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가던 나에게 다채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준 그룹한에 감사한다. (설계 4본부, 정미혜 소장) 유유자적의 삶을 꿈꾸며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조경가는 실재할 수 있는가. 조경설계를 하던 동료들과 이 주제로 늦은 술자리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일이 바빠져 예약해 둔 휴가를 취소할 때 상사들을 탓하곤 했는데, 입사 6년차이자 소장인 지금은 모든 것이 내 탓이다. 지금 이 글은 연말까지 꼼짝없이 특근을 하며 고생해야 하는 우리 팀원들을 위한 고백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은 만추의 절경이 펼쳐진 10월 말, 마음은 저기 어딘가 시원한 바람 부는 벤치에 앉아 카페라테를 마시고 있지만 몸은 컴퓨터 앞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이여, 빼앗긴 들에도 기필코 봄은 오고 우리는 곧 도서에 도장 쾅쾅 찍어서 납품을 하고야 말지어니. 함께 지금 이 역경을 묵묵히 함께 버텨내주어 몹시 감사하다. 오늘 유유자적한 삶을 살지는 못해도 내일 유유자적한 삶을 꿈꾸는 조경가 배상. (설계 5본부, 송시내 소장) 30년의 타임라인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룹한은 10주년을 맞이했다. 내가 기억하는 10주년의 그룹한은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인재와 희망이 넘치던 곳이었다. 입사 10년차, 20주년을 맞이한 그룹한은 성장의 정점을 달렸다. 부산과 뉴욕 지소가 설립됐고, 계열사가 늘어났고 해외 설계사들과의 무수한 교류와 조경설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실험이 시도됐다. 30주년을 맞이한 그룹한은 조경 분야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가 연결된 곳이 됐다. 수많은 사람이 그룹한을 통해 인연을 맺었으며 업계 내 외부의 다양한 공간으로 진출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에게 그룹한은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30년의 시간은 그룹한을 단순한 직장을 넘어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보관해야 할 중요한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룹한과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이 가진 기억이 소멸하지 않도록 지속되길 바란다. (그룹한 김기천 본부장) 주니어 디자이너와의 대화(각주 1) 창립 당시와 현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당시 조경 분야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조경설계사무소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건축이나 토목 분야와 비교했을 때 역할과 위상이 너무 낮아 비전을 갖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조경설계사무소를 만들어서 우리 사회에 조경에 대한 인식을 뿌리내리고, 후배들에게 조경설계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심어주고 싶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조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많이 나아졌다. 특히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하던 당시와 비교할 때 워라밸 관점에서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 사라졌거나 현재도 남아 있는 비공식적 전통 혹은 재밌는 관습이 있나 다양한 사내 행사 중에서도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진행하는 해피아워가 있다. 모든 부서별로 지난 한 달간의 프로젝트를 모든 사원들이 돌아가며 발표를 하고 함께 소통하는 시간으로 매달 새로운 활력을 불러 일으킨다. 또 과거에는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한 독특한 인사 시스템으로 일명 로터리(lottery) 제도를 시행했다. 능력 있는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누구든 PM에 지원할 수 있게 하고 직원들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자율적으로 팀을 만들어 가는 전통이다. 회사에서 가장 특별했던 순간 직원들과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지만 함께 일했던 순간보다 사실 여행가고 놀던 기억이 더 그립다. 사회에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직원들과 주말에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다녔던 기억들이 특별하다. 환경조경나눔연구원과 함께 조성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정원은 역사의 아픈 상처로 고통 받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조경이 선물한 따뜻한 마음이었다. 손수 삽을 들고 기념식수를 했던 생전의 김복동 할머니께서 기뻐하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평 꽃동네에서 예쁘게 조성된 정원을 보고 하루 동안의 기적이라며 좋아하던 수녀님의 환한 미소도 여태껏 기억에 남아있다. 또 2007년부터 IFLA 학생설계공모전의 공식 후원사로 참여해 지금까지 전 세계의 조경 학생들이 참가하는 국제 행사에 우리 회사가 기여하고 있다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룹한이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조경 디자인을 위한 중요한 원칙이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조경이 그냥 건축이나 도시 분야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경이 만드는 도시’가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기존 대상지가 가진 생태적,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잘 보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가 만들어져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화가 공존하며 서로 상생의 길로 나갈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우리의 디자인 원칙이다. 3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지나온 여정은 파란만장했고 앞으로 가야할 길도 결코 만만치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극복해왔던 것처럼 나와 그룹한 가족 모두가 멋지게 해내리라 믿는다. 우리에겐 조경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는 용광로와도 같은 열정이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꺼지지 않는 혁신의 에너지가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당당하게 정도경영의 바른길을 걸어 갈 용기가 있다.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보다 지난 30년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가족과도 같은 우리 동료들이다.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아쉬웠던 프로젝트 수많은 공모전에서 당선됐지만 오히려 낙선했던 작품들에 아쉬움이 크다. 광교호수공원 국제설계공모에서 아쉽게도 우승을 놓치고 실망에 잠겼을 때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제임스 코너가 “이제 지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이고, 전쟁에서 많이 져본 자만이 이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거야”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당시 이미 세계적인 조경설계의 대가인 그도 수많은 공모전에서 낙선한 작품이 더 많았다고 했다. 스타 조경가로부터 지는 법을 배우고 다시 새로운 용기가 생겼고 더 많은 공모전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30주년을 맞이한 감회가 어떤지 궁금하다 10주년을 맞이할 때는 회사가 급속한 성장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파묻혀 있었다. 사원이 50명이 넘은 뒤 조직 관리의 어려움을 느끼고 체계적인 경영 공부를 위해 미국 와튼스쿨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했다.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을 경영자라는 마인드로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주년 즈음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를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GSD 객원교수로 근무하면서 뉴욕 맨해튼에 그룹한 미국 지사를 세웠고, 조지 하그리브스, 제임스 코너, 사사키 등 세계적인 조경가들과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국제적인 조경설계사무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30주년이란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흘러 이제 다시 미래를 준비할 때가 온 것 같다. 앞으로도 그룹한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경외하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디자인,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미적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해 나갈 것이다. 더불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건강한 사회와 이웃의 행복한 삶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욱 힘쓸 것이다. 조경에 한이 맺혀 그룹'한'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얼핏 들었다. 지금 어느 정도는 그때의 한이 풀렸는지 궁금하다 1994년 11명의 젊은 디자이너를 모아 작은 조경설계사무소를 창업했다. 당시에 조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우리가 앞장서서 조경의 한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을 사명에 새기고 크게 된다는 의미와 한국을 대표한다는 의미의 한자 클 한(韓)으로 의미를 더했다. 또 1인이 아닌 팀으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와 장차 큰 기업으로의 성장을 염원하는 뜻으로 그룹을 사명에 넣어 그룹한을 완성했다. 창업한 지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한국 조경설계 분야의 성장과 역사를 함께 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500명에 가까운 인재가 그룹한의 문지방을 넘나 들었다. 한때 100명이 넘는 인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고 IMF와 리먼 사태와 같은 국내외의 숱한 위기의 파도를 넘어오면서 그룹한은 조경설계를 바탕으로 친환경 놀이터, 조경 시설, 자재 개발, 조경 미디어 등 글로벌 조경 그룹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각주 정리 1. 그룹한 30주년을 맞이하며 입사 1~3년차 주니어 디자이너들(민연주, 강다운, 김민지, 임민부, 이민정, 이다솔, 김혜지, 김채송)로부터 그룹한의 과거와 현재, 비전 등에 대한 궁금한 점을 질문 받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룹한어소시에이트는 인간과 자연의 상생, 미적 가치와 효용성의 극대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창의적이고 선한 디자인을 실천하고 있다.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경외하고, 생물종 다양성과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지향한다.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남산-공원
    서울의 길에서는 (남)산이 보인다(각주 1) 조경과 도시를 키워드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관한 연구를 하다 보면 몇 번이고 마주치게 되는 남산 혹은 남산공원. 서울시 공원 홈페이지는 남산을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서울의 상징”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서울 시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산과 얽힌 기억 한두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남산-공원에 쌓인 복잡한 역사적 켜와 정치·사회적 맥락으로 인해 화자의 연령대, 시기, 취향에 따라 남산의 경험은 크게 갈리게 된다. 남산을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선조의 발자취로 볼 것인가? 한양도성이라는 걸출한 문화유산이 그 형태를 뽐내는 유산의 위치로 볼 것인가? 대도시 서울 속 자연의 재현으로 볼 수도 있는가?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힐튼호텔부터 케이블카와 말 많고 탈도 많은 남산돈까스까지, 20세기 중후반 서울의 대중문화 속에 새겨진 장소 기억으로 볼 것인가? 그도 아니면 바라보는 곳, 즉 대상으로서 남산에 무게를 더 둘 것인가? 에피소드 1. 만화의 집 일상에서 남산을 어떤 공간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를 훌쩍 졸업하고 난 뒤 신도시로 이사 갔음에도 ‘일부러’ 남산을 오고 갔기 때문. 2000년대 초반의 여름 주말, 연신 ‘더워’와 ‘왜 이렇게 먼 거야’를 중얼거리며 경사진 좁은 보행로를 걸어 올랐다. 언덕이라면 질색팔색 하는 중학생이 자발적으로 남산을 오른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 현재는 문을 닫은 ‘만화의 집’이 그 이유였다. 서울에서 만화 좀 봤다는 20세기 소년, 소녀라면 열에 일고여덟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들어보지 않았을까. 최근 몇 년간 재건축으로 인해 회현역 근처로 자리를 옮겨 운영했지만, 원래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현재 남산예장공원이라고 알려진 곳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담론화가 부족할 뿐 이 부지의 역사도 한 굴곡한다. 1950년대 KBS 사옥으로 완공됐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는 국토통일원 청사, 1980년대에는 안기부, 1999년(Y2K!)부터 서울경제진흥원이 운영하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자리로 유지되고 있다. 그 이전에는 통감부 자리였고, 일제강점기 중반부터 한동안은 과학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남산의 유구한 역사와 비슷한 결을 지닌 부지다. 그렇다면 왜 만화의 집에 가야 했는가? 답은 간단하다. 온종일 무료로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만화책 컬렉션을 볼 수 있는 시영 만화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네 만화방보다 깨끗하고 만화책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이쪽 계열 학생들이 시내 곳곳에서 모여드는 핫플이기도 했다. 다만 다들 만화책 읽기 바빠서 사랑방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2024년 10월에 출간된 건축가이자 조경가이며 도시경관기록자로도 잘 알려진 김인수의 책에서 따온 소제목이다. 김인수, 『서울의 골목길에서는 산이 보인다: 오래된 골목길에서 바라본 서울, 그 30여 년의 기록』, 목수책방, 2024.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 [기웃거리는 편집자] 기쁨이와 불안이
    갓난아이가 부모를 보고 웃는다. 아이 머릿속에 있는 감정 컨트롤 본부에 입장한 첫 감정은 기쁨이(joy). 기쁨이가 본부에 들어온 지 33초 만에 감정이 바뀐다. 슬픔이(sad)가 감정 컨트롤 버튼을 누르며 등장한다. 기쁨이와 슬픔이에 뒤이어 소심이(fear), 까칠이(disgust), 버럭이(anger)가 본부에 입장한다. 감정 컨트롤 본부의 리더는 기쁨이. 기쁨이는 다섯 개의 핵심 기억 구슬 색깔이 기쁨의 상징색인 노란 색으로 유지될 수 있게 노력한다. 이 구슬들은 아이의 성격을 형성해 주는 다섯 섬(엉뚱 섬, 하키 섬, 정직섬, 우정 섬, 가족 섬)과도 연결되어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2015)의 주인공 소녀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 이야기다. 영화는 라일리 아빠가 직장을 옮기면서 정든 도시를 떠나 새 도시에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사 간 집과 도시,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찰나, 기쁨이와 슬픔이가 장기 기억 파이프에 빨려 들어가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사라지게 된다. 라일리는 감정 조절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이 정도 배경 지식을 갖추고 나면 영화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상할 수도 있다. 위기를 이겨내면서 싸웠던 주인공들이 화해하고, 왜 갈등이 빚어졌는지 깨닫게 되는 디즈니 영화 특유의 클리셰. 맞다, 이 영화도 생각한 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라일리의 이야기가 나도 겪은 과정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내 머릿속에도 열일하고 있는 감정 컨트롤 본부와 장기 기억 저장소, 꿈 제작소, 기억 처리반이 있을 것 같다고 상상하게 해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기쁨이는 기쁨만이 라일리를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힘들다고 솔직하게 울 수 있게 도와주는 슬픔이와 함께 모든 감정이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노란색으로만 칠해졌던 핵심 기억 구슬은 여러 감정의 색이 섞이고 무너졌던 성격 섬은 더 단단해진다. 새로운 도시와 학교에 적응한 라일리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날 것 같던 영화는 새로운 막을 예고한다. 13살이 된 라일리는 우수상을 받을 만큼 공부를 잘하고 친구들에게 친절하며, 여전히 아이스하키도 잘하고 키가 훌쩍 컸다. 그녀의 성격 섬 중 가족 섬은 다른 섬에 비해 많이 작아졌고 우정 섬이 매우 커졌다.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모인 여러 신념이 만든 ‘난 좋은 사람이야’ 자아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를 도와주고, 친구들과 우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자아는 ‘인사이드 아웃 2’(2024)의 새로운 장치다. 2015년에 개봉한 시즌 1에 이어 9년 만에 개봉한 시즌 2. 시즌 2는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자아 정착기를 담았다. 사춘기에 들어선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 이유 모를 사이렌이 울리고 기존 감정들에게 예고도 없이 새 단장이 시작된다. 그렇게 등장한 새 감정들, 불안이(anxiety), 당황이(embarrassment), 따분이(ennui), 부럽이(envy). 네 개 감정이 더 추가됐고, 감정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라일리의 감정이 요동친다. 아이스하키 시합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라일리는 불안이 가득한 자아에 지배되면서 ‘난 아직 부족해(I’m not good enough)’란 말이 반복해서 들리고, 불안이의 컨트롤 제어가 안 된다. 폭주하는 불안이를 막은 건 기쁨이의 한 마디. “라일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네가 정하는 게 아냐, 이제 라일리를 놔줘(You don't get to choose who Riley is. You need to let her go).” 불안이의 폭풍이 잠재워지고 부정과 긍정이 섞인 여러 자아가 형성된다. 감정들은 자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라일리 본인이라는 걸 깨달으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 중간에 나온 라일리 부모의 감정 컨트롤 본부 리더는 버럭이와 슬픔이. 부모도 라일리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 컨트롤러가 기쁨이에서 버럭이와 슬픔이로 바뀐 듯하다. (요즘) 나의 감정 컨트롤 본부의 리더는 불안이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직전이라 불안이가 리더가 된 것 같다. 소문 무성한 30대의 여정을 견뎌낼 체력이 있는가, 아픈 곳은 없는가, 이 정도의 통장 잔고와 관리면 잘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잘 걸어온건지 등등 불안이 가득한 연말이다. 그래도 이 지면만 채우면 이번 달 잡지도 마감이다. 마감해서 신난 기쁨이와 싱숭생숭한 불안이가 감정 컨트롤 버튼을 동시에 누르고 있다.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내 속에 있는 그 의심을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도망친 거야
    이건 비밀인데, 횡단보도에 서는 족족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더니 어두운 집 앞 골목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가로등이 켜졌던 날 어쩌면 신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냥 좀 지쳤던 날이었다. 꾸역꾸역 써내려간 특집 기획안은 오류로 날려 먹고 점심시간에 기분 전환 겸 맛있는 커피라도 마시려고 멀리까지 걸어갔더니 휴무라는 글자가 카페에 걸려 있던 날. 축 처진 내게 찾아온 좋은 우연의 연속은 날 유치한 상상에 빠트렸다. 짐 캐리의 얼굴을 한 신(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때문이다)이 “너 오늘 하루 고됐구나, 내가 좋은 일 몇 개 좀 주마”라며 훌훌 웃는 모습을. 이때의 기억이 강렬해서인지 그 뒤로 우연이 겹칠 때면 짐 캐리 얼굴이 떠올라 웃게 됐다. 이번 달에도 몇 번 그의 얼굴을 마주했는데, 운 좋게 본 영화와 흥미진진하게 본방 사수했던 드라마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괴물’(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예매를 미루다가 관람 시기를 놓쳤던 영화다. 꼭 영화관 큰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던 터라 아쉬워하던 중, 기적처럼 들려온 재개봉 소식에 일정 조정이고 뭐고 예매부터 해버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에 걸맞은 영상미와 음악, 연출,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명치 아래를 꽉 오그라트리는 묵직하고 참혹한 이야기. 러닝 타임이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생각했다. ‘제목이 완전 덫인 영화구나, 어쩜 이렇게 잘 지었지. 그런 점까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MBC)랑 닮았다. 연출이 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아름답다는 점까지도.’ 두 작품은 제목을 일종의 장치로 사용한다. 보고 있으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꾸 괴물은 누구인지, 배신자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추리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괴물은 아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랫말을 통해 노골적으로 묻기까지 한다. “괴물은 누구게.” 던져진 올가미를 가뿐히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미련한 나는 그 미끼를 덥석 물고 괴물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진짜 괴물은 계속해서 탓할 사람을 찾고 증거로 치기에는 뜨뜻미지근하게 조각난 장면들을 가지고 남에게 함부로 혐의를 씌운 나라는 걸.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속 여러 인물이 던진 질문들은 드라마 속 인물을 넘어 시청자에게 보내는 물음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확신해? 그 확신부터 의심해.” 그 말에 찔려 잠깐 가동을 멈추었던 내 사고 체계는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추론을 시작한다. 작은 꼬투리를 잡고 멋대로 상상을 키워가며 함께 드라마를 보던 엄마에게 쟤 이상하다고 속삭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전부가 내 망상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또 다른 등장인물의 대사로 변명을 하고 싶어진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될 때는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괴물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전달하려는 진정한 의미는 관람객과 시청자의 반응을 포함할 때 완벽해질 것이다. 영화를 본 시점이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한참 방영되고 있을 때였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해서 우연의 중첩이 주는 짜릿함을 마주했다. 마지막 회, 갈등이 고조됐을 때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가 그 심리적 자극을 극대화했다. “내가 괴물이라서 버린 거잖아”, “버린 게 아니라 도망쳤어. 내 속에 있는 그 의심을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도망친거야.” 친밀한 배신자 역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이 지면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이번 호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 우기고 싶은 우연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연결고리는 광주폴리다. 광주폴리를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번 순환폴리는 내게 색다른 감각을 안겼다. 폴리를 짓는 것을 넘어 그 재료와 짓는 방식을 연구하고 개발한 것,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과 협력했다는 사실을 현장과 도록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이들이 주목한 재료 중 하나가 다양한 패각인데, 신기하게도 ‘해륙순환 도시주의’의 강준호도 제주 해녀 활동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라 껍데기와 전복 껍데기를 재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순환폴리의 또 다른 특징은 폴리가 누정과 같은 도시 속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는 점이다. 누정이 어떤 공간인지 궁금하다면 책장을 다섯 쪽 앞으로 넘기면 된다. 이 우연을 발견한 사람들의 표정이 어떨까. 궁금해진다
  • 안과 밖이 만나는 접점, 누정 조선시대 누정 로망, 12월 10일까지
    누(樓)와 정자를 뜻하는 정亭을 합쳐 이르는 누정은 인간이 잠시 자연 속에 머무르며 풍광을 감상하는 공간이었으며, 정신을 수양하고 후학을 교육하고 문학과 예술에 대해 논하는 장소였다. “대저, 누정은 높고 광활한 데나 그윽하고 깊은 곳이 둔다. 저기가 싫증나면 여기가 그립고 이곳이 지겨우면 저곳이 생각나니, 이는 한결같은 사람의 마음이다”(안축, 『취운정기』 중 『동문선』 제68권)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누정은 수많은 건축 유형 가운데 관찬지리서의 중심 항목으로 당당히 하나의 자리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사랑받으며 곳곳에 설치되고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다. 지난 11월 15일 한양대학교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시대 누정 로망’ 전시는 조선시대 누정에 함축된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한다. 조선왕조 500년 전반에 걸쳐 등장하고 변화했던 누정이 지난 역사와 사회, 문화를 대변하는 응축된 결정체임을 드러내고자 기획됐다. 누정의 경영주와 주변 인물, 입지와 환경, 묵적의 필체와 내용, 건축 형태와 구조 등 관련 자료를 엮어 전시했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건 실내에 들어선 거대한 누정이다. 전시 콘셉트에 맞춰 마련한 휴식 공간이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치려 하는데 네 기둥 아래에 달린 바퀴가 눈길을 끈다. 이 누정의 정체는 문자로만 남아 있는 ‘사륜정’을 전라남도 무형유산 대목장인 김영성 선생과 제자가 실물 크기로 재현한 것이다. 사륜정은 고려시대 이규보가 창안한 이동식 누정이다. 당시 실제로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기획 의도, 구조, 치수, 쓰임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종이에 남겨진 기록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실체화된 사륜정은 우리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누정에 관한 새로운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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