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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T 스튜디오] 덩윈 디스커버리 공원 Dengyun Discovery Park
    덩윈 디스커버리 공원(Dengyun Discovery Park)은 자연 속에서 상상력을 키우고 탐험하는 이들을 위해 조성됐다. 대상지는 중국 남해안 지역의 거대 도시인 푸저우(Fuzhou) 교외에 있다. 부지의 표고 차가 상당해 다양한 자생 식물이 자라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기존 여건 속에서 생태계와 녹색 통로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며 놀이터, 자연과 상호 작용하는 시설을 설치하고자 했다. DNA 체인 입구의 놀이터는 건설 현장에서 차량 통행을 위한 플랫폼으로 사용됐던 공간이다. 이곳에 자연 탐사 여행의 시작을 상징하는 6m 높이의 DNA 체인을 설계했다. DNA와 유사한 모양을 가진 나선형 구조물이며 우주 생명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필수 원소의 형태를 참고했다. 역동적인 곡선과 거미줄 구조의 내부 공간은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양한 활동을 유도한다. 휴식의 공원 공원 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언덕 사이에 자리한 반사 연못인 유란 풀(Youlan Pool)을 만나게 된다. 주변이 탁 트인 유란 풀의 대각선 가장자리에서는 먼 곳의 개활지까지 볼 수 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풀을 둘러싼 가느다란 선은 인공 수계와 밖을 구분 짓는 경계이며, 홍수가 발생하면 선의 양쪽 수면 높이가 동일해진다. 이곳은 언덕 반대편의 철골 수로와 연결된다. 여름날 사람들은 풀에서 물놀이를 즐기거나 그늘에서 쉬며 휴식을 취한다. 공원 순환로를 따라 놀이와 휴식 공간을 설계했다. 고사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분수 제이드 펀(Jade Fern)에서는 더운 날씨를 식혀줄 물방울이 흩날리고, 파빌리온 돔에서는 모임을 열거나 공연을 할 수 있다. 돔의 육각형 패턴은 베일과 같이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는다. 패턴의 스테인리스 스틸은 거울처럼 주변 환경과 사람의 모습을 반사함으로써 분리된 내부와 외부를 이어준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Z+T Studio, Landscape Architecture Lead Designer Zhang Dong, Tang Ziying Designer Team Zhang Qing, Yang Yupeng, Chen Yifan, Qian Qinhe, Zhou Teng, Lou Siyuan, Wang Qi Installation Design Z+T Art Studio Designer Team Liu Hongchao, Zheng Jialin, Fan Yanjie, Wang Hu, Zhang Zhexin, Zhang Siyu, Zhang Yichao, Sun Chuan, Liu Binyuan Location Fuzhou, China Area 2ha Completion 2020. 11. Photographs Holi&client
    • Z+T
  • [Z+T 스튜디오] U–센터 광장 U-Center Plaza
    U–센터 광장은 베이징 우다오커우(Wudaokou)에 위치한 쇼핑몰 U–센터 측면에 조성된 광장이다. 교통 요충지 한복판의 U–센터 주변에는 버스 터미널, 택시 정류소, 자전거 주차장이 있으며 50년 이상 사용된 철도 건널목이 있다. 지역 내 10곳의 대학교와 인근 영화관으로 인해 유동인구가 많아 쇼핑몰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혼잡한 환경을 만들기도 했다. 철도 건널목은 50년 전 우다오커우를 지역의 중심지로 부상시켰다. 우다오커우라는 지명 또한 건널목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다오커우는 중국어로 철도 건널목을 의미한다). 쇼핑몰 주변 공간을 재구성하면서 철도 건널목의 역사와 이 같은 역사의 근본적 가치, 즉 하나의 공간에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을 구축하고자 했다. 활용도 낮은 공간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쇼핑 몰 측면의 기다란 주차장을 대체할 광장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대상지와 주변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새로운 목표와 프로젝트의 복잡성으로 인해 전통적 조경 설계 문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 생겨났다. 광장의 경관은 대도시 라이프스타일에 걸맞은 속도로 스스로 변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광장 일부를 지름 17m의 턴테이블로 설계했다. 턴테이블이 360도 회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분이다. 턴테이블 안팎으로 광장을 가로지르는 얕은 풀(pool)을 설치했는데, 50분마다 풀이 맞물리며 풀 속 분수와 조명이 작동하게 된다. 분수와 조명은 턴테이블이 멈춰서 있는 10분 동안 물과 빛을 내뿜으며 광장을 활기 넘치는 축제의 길로 만든다. 어떤 이들은 갑자기 솟구치는 분수에 놀라고, 또 어떤 이들은 다시 그 순간이 찾아오길 기다린다. 반복되는 사이클을 철도 건널목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패턴과 비슷하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시간이라는 개념을 구체적 경험으로 만들 수 있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Z+T Studio, Landscape Architect Lead Designer Zhang Dong, Tang Ziying Designer Team Zhao Hua, Xu Min, Liu Xin Installation Design Z+T Art Studio Designer Team Liu Hongchao, Zheng Jialin, Fan Yanjie, Sun Chuan, Wagn Hu, Zhang Zhexin Location Beijing, China Area 0.36ha Completion 2016. 5. Photograph Zhang Hai
    • Z+T
  • [Z+T 스튜디오] 취장 크리에이티브 서클 Qujiang Creative Circle
    중국 시안(Xian)의 취장 신구(Qujiang New District)에 위치한 크리에이티브 서클(Creative Circle)은 쇼핑몰, 오피스 빌딩, 호텔, 아파트, 여가 시설 등이 모여 있는 도심 복합 시설이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고대 도시 시안의 고유한 패턴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는 신개념 도심 구역을 만드는 것이었다. 도로 구성을 전체적으로 재정비하고 도시 광장을 조성했다. 독립적인 건물 사이의 원활한 연결을 위해 4층에 하이 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만들었다. 여러 시설이 모인 만큼 다양한 요구 사항을 적절히 절충한 설계가 필요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 최대한 많은 공간 활용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문화적 미니어처 당나라 시대 장안이라 불렸던 시안은 황하 유역의 고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로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 중화 민족의 변화를 기록하는 문화적 미니어처로서, 시안의 비석 숲이라 불리는 베이린 박물관(Beilin Museum)에는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적 서예가들이 제작한 비석과 조각이 모여있다. 이 중 번영하는 장안의 팔경을 표현한 작품은 화(Hua) 산의 우아한 봉우리들, 안개가 자욱한 차오탕 사원(Caotang Temple)의 비경, 바허(Bahe) 강의 시적인 설경, 리산(Lishan) 산에 드리우는 극적인 일몰, 취장 풀(Qujiang Pool)의 고결한 정원, 타이바이(Taibai) 산의 눈부신 빙하, 웨이허(Weihe) 강의 유서 깊은 페리, 대안탑(Giant Wild Goose Pagoda)의 장엄한 일출을 담고 있다. 가상과 현실이 섞인 장안 8경은 인간의 지혜와 자연의 풍요로움이 자아내는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최신 기술과 좋은 재료를 결합하여 8경을 재현하는 것은 기능적 요구에 충실한 설계일 뿐 아니라 문화적 흔적을 상기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이 같은 개념을 기반으로 다섯 개 시설물의 디자인을 시작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글 Z+T Landscape Architect Z+T Studio, Landscape Architecture Lead Designer Zhang Dong, Tang Ziying Designer Team Zhou Xiao, Niu Yuxuan, Gu Xinjun, Yang Yupeng, Qian Qinhe Installation Design Z+T Art Studio Designer Team Liu Hongchao, Zheng Jialin, Fan Yanjie, Sun Chuan, Zhang Zhexin, Zhou Shiqi, Hu Yihao Location Xian, China Area 7ha Completion 2019. 2. Photograph Zhang Hai
    • Z+T
  • [Z+T 스튜디오] 주주리 정원 Jiu Zhu Li Garden
    중국 화동 저장(Zhejiang) 성 닝보(Ningbo)에 위치한 주주리(Jiu Zhu Li)는 도서관, 독서실, 피트니스 센터, 카페테리아를 갖춘 커뮤니티 센터다. 주거용 건물과 간선 도로 사이에 자리 잡은 5,000m2 규모 삼각형 부지에 센터와 어울리는 정원을 조성했다. ‘하늘의 정자’를 뜻하는 천일각(天一閣)에서 영감을 받아 정원의 개념을 세웠다. 천일각은 16세기 닝보에 세워진 2층 건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설 장서각이다. 앞마당에는 중국 전통 정원을 갖추고 있다. Z+T는 현대 도시 생활에 부합하는 동시에 지역의 문화 및 전통적 정원 설계 문법을 전달하는 설계를 모색했다. 토속 풍경의 본질은 일종의 장식물로 복제되기보다는 학습되고 변화되어야 한다. 공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고전의 정신을 구현하고, 경관을 통해 자연을 경험하고 감상할 수 있는 내향적 공간을 만들었다. 주주리 정원의 자연은 고전 정원의 미니어처가 아니다. 시간, 빛, 그림자, 물, 나무, 바위를 한데 아우르고 자연 요소와 인공적 환경을 다채로운 경험과 결합시켰다. 주요 공간 주주리 정원은 입구 마당, 남쪽 통로, 톈이(Tianyi) 물의 정원, 고요의 연못, 빛과 그림자 통로 등으로 구성되었다. 공간의 비율, 전환, 연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천연 마감석, 금속, 불투명 U자형 유리와 유리 패널 등 재료 전반을 신중히 연구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글 Z+T Landscape Architect Z+T Studio, Landscape Architecture Lead Designer Zhang Dong, Tang Ziying Designer Team Xu Min, Yao Yu, Bian Shaohao Location Zhejiang, China Area 0.5ha Completion 2017. 2. Photograph Zhang Hai
    • Z+T
  • [Z+T 스튜디오] 우전 아리라 호텔 Wuzhen Alila Hotel
    중국 우전(Wuzhen)에 위치한 아리라 호텔(Alila Hotel)은 수천 마리 왜가리 떼가 서식하던 버려진 농가에 지어졌다. 농가의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습지를 보전하고, 호텔에 즐거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요소를 추가했다. 이 호텔은 고대 중국의 도시 관수 체계를 바탕으로 개발된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이다. 내부 수경관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여 아름다울 뿐 아니라 수자원 조절 작용과 습지 재생 기능을 갖춘 경관을 만들었다. 물길과 식생 호텔의 객실은 물의 미로로 둘러싸여 있는데, 역사적으로 중국 동남부 수상 도시로 유명했던 우전을 떠올리게 한다. 폭이 10m에 달하는 세 개의 물길(두 개는 동-서 방향, 하나는 남–북 방향이다)은 중요한 중심축으로서 리셉션 입구, 식당과 레크리에이션 구역, 객실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여섯 갈래의 물길은 123개의 객실을 7개 구역으로 나눈다. 물길은 전망을 완성하는 틈을 만들고, 내·외부 물의 순환을 돕는다. 지표면의 수생 식물은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단지 서쪽에 위치한 물길에는 호텔의 유출수가 흘러 들어간다. 식생은 진흙의 토양과 손쉬운 이식을 염두에 두고 선정됐다. 나뭇가지가 지붕 모양으로 우거지는 메타세쿼이아를 좁은 길을 따라 식재해 수직을 이루는 선형 공간들을 강조했다. 나뭇가지의 섬세한 질감은 건물 지붕의 윤곽, 흰색 벽과 대조를 이룬다. 장식적 기능을 하는 녹나무, 자몽나무와 같은 상록수는 건축의 강하고 단순한 선을 부드럽게 만든다. 옛 선조들이 고안한 물의 미로는 수원지 근처 고밀도 거주지에서 홍수를 막는 방책이다. 또한 공간 구성의 가이드라인이 되기도 하는데, 인프라 기술과 사회적 기능의 조합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사람들이 창문을 열거나 뜰을 걷고, 길을 따라 이리저리 다니는 모습은 물에 반사되어 독특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가사와 경관 객실 단지의 경관은 역사 속 중국 동남부 수상 도시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동시대 가사를 바탕으로 설계했다. 이 가사에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수상 도시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1월에는 안개가 끼고, 2월에는 개천이 강물이 되며, 3월이면 구름이 두꺼워지고, 4월이면 여자들은 짚을 엮고, 5월이 되면 시인들이 달빛 아래 배를 띄우며, 6월에 연꽃이 피고, 7월에 난초향이 나는 노가 연인에게 여성의 소원을 전해주고, 8월이 되면 사람들은 불경의 구절을 외우고, 9월이 되면 신들은 바다와 하늘을 오가는 뗏목을 만들고, 10월에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남자들을 기다리고, 11월에 고독한 여행자는 집으로 돌아가며, 12월이 되면 눈 오는 밤에 찾아오는 손님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적인 이미지 상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추상적인 시적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시각화했다. 호텔 각 뜰의 빈 공간, 시야와 빛을 여러 번에 걸쳐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공공 영역에 다섯 개의 경치와 개인 호텔 방에 숙박하는 손님들을 위한 일곱 개의 경치를 설정했다. 간결한 디자인으로 구현한 경치는 은은한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볼 수 있는 비 오는 봄날 등 시골 풍경과 가사 속에 등장하는 토속적 풍경을 보여준다. 열린 반응과 해석 우전 아리라 호텔은 중국 내 물이 풍부한 지역의 사회, 문화, 환경적 맥락을 바탕으로 전략적인 경관 인프라를 탐구했다. 최소한의 설계적 개입으로 열린 반응과 해석을 강조했으며, 지역 경관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글 Z+T Landscape Architect Z+T Studio, Landscape Architecture Lead Designer Tang Ziying, Zhang Dong Designer Team Zhang Yanan, Liu Xin, Chen Yifan, Wang Mo, Zhang Meifang, Yao Yu, Sun Chuan, Xi Qi, Peng Yang, Yu Yongfei Location Zhejiang, China Area 5ha Completion 2018. 8. Photographs Zhang Hai, Hao Shao, Yao Yu
    • Z+T
  • [Z+T 스튜디오] 매직 국제 유치원 Magic International Kindergarten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 중국 상하이 바오산(Baoshan)에 위치한 매직 국제 유치원(Magic International Kindergarten)은 주택 단지 내 분양 센터를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다. 2008년, 3,100㎡의 부지를 다양한 활동을 위한 야외 놀이터로 탈바꿈하기 위해 센터를 이전하고 유치원에 필요한 야외 공간 계획을 시작했다. 부지는 상업 도로들에 의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높은 밀도로 식재된 관목은 벌레와 모기가 밀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아이들에게 잠재적 위험 요소로 작용했다. ‘특별한 아이, 특별한 교육’이라는 유치원 철학에 부합하도록 맞춤 제작된 인터랙티브(Interactive) 시설을 조성하고 기존 수목을 보존하면서 숨겨진 오픈스페이스를 최대한 발굴해 활용했다. 유치원이 아이들의 첫 번째 교육의 장인 점을 고려해 상상력과 영감을 자극하는 열린 공간을 제공했다. 세부 전략 먼저 환기와 안정성을 위한 시야를 확보하고자 관목을 적절히 정리했다. 기존 수목을 최대한 보존하되 몇몇 지점의 높이에 변화를 주었다. 입구에 있던 수경 시설은 아이들을 환영하는 통로로 바꾸었다. 삼각형의 파란 천을 엮어 투과성을 갖는 천막을 만들었다. 천막을 통과한 햇빛은 돌로 포장된 바닥을 푸른빛으로 물들이고 그림자와 함께 예술적 풍경을 만든다. 소방안전차로의 일부는 매직 국제 유치원의 로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얼룩말 무늬를 활용해 만든 야외 카펫은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인 동시에 소방 안전기능을 담당한다. 중심에는 경사진 잔디 언덕을 조성하고, 시멘트 사면에 둘러싸인 원형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아이들이 야외에서 학습하고 역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놀이 공간이 되었다. 방문객 주차장은 30m 달리기 트랙으로 바꾸었다. 이 트랙을 통해 다른 활동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토대를 살리고 대상지 경계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수동 관수 시스템을 갖춘 다섯 개의 플랜터를 포함해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일련의 인터랙터브 시설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동안 자연과 친해지도록 구성했다. 모듈형 정글짐은 기어오르고, 매달려 오르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시설이다. 원형 램프와 선(Sun) 잔디밭은 녹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안고 뛰어 놀 수 있고 소규모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불필요한 공사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하 인프라 도면을 구해 설계에 참고했다. 여덟 가지 전략을 통해 개방적이면서 안전하고 즐거운 환경 속에서 유년기 아이들의 가치관, 건강, 사회 및 운동 기능 발달을 꾀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이 탄생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글 Z+T Landscape Architect Z+T Studio, Landscape Architecture Lead Designer Zhang Dong, Tang Ziying Designer Team Fan Yanjie, Liu Hongchao, Zheng Jialin, Sun Chuan, Wang Hu, Zhang Zhexin Installation Design Z+T Art Studio Location Shanghai, China Area 3,100m2 Completion 2019. 9. Photograph Li Ho
    • Z+T
  • [Z+T 스튜디오] 인터뷰: 참여와 실험이 그리는 경관
    2014년 설립된 랩디에이치는 다국적 문화를 바탕으로 넓은 스펙트럼의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2018년 최영준은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오피스를 이끌고 있지만, 지금도 종종 중국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동시대 중국 조경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랩디에이치의 다른 사무실과 독립적인 사무실을 운영하며 젊은 건축가와의 협업을 즐기는 최영준에게 스튜디오 내에 디자인 아틀리에와 세 개의 랩을 두고 독특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Z+T의 두 소장은 흥미로운 인터뷰가 아닐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었지만 이메일을 통해 오간 즐거운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최영준은 2014년 랩디에이치 로스앤젤레스 오피스에서의 만남을 회상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서울 오피스의 조재연(Zhao Zaiyan) 디자이너가 대화에 동승했다. 인터뷰를 끝마치며 최영준은 간단한 소망을 덧붙였다. “이번 여름 광주에서 열리는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스크 없이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_ 편집자 주 5년 전, Z+T 아트 스튜디오의 워크숍을 방문했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바이오필릭 랩(Biophilic lab)의 출발을 알리는 글을 위챗(WeChat)에서 봤고요. 오랜만에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랩이 하나 더 늘었더라고요. 기술적·전문적 성숙과 축적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각 랩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각 랩이 주체가 되어 별도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아니면 Z+T의 프로젝트를 주제와 기술의 관점에서 가로지르려는 노력인지도 궁금합니다. 새로 문을 연 T-랩은 재료와 구조를 중점적으로 연구합니다. 정교한 설계와 제작에 대한 창의적 아이디어 제공을 목표로 한 탐색적 성격의 스튜디오죠. 최근 아트 스튜디오의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실현 가능성의 문제에 부딪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T-랩은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어 디자인 사고의 폭을 넓히고 디자인적 가능성만을 고민하기 위해 만든 연구소입니다. T-랩은 아트 스튜디오 공장 옆 컨테이너에 있어요. 작년에 스튜디오로 개조했죠. 현재 T-랩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없습니다. 주로 목업(mock-up) 작업이나 새로운 재료 사용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바쁘지 않을 때 디자이너와 함께 재료 회사의 작업실로 워크숍을 가 재료와 구조를 탐구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Z+T의 랩에는 아트 스튜디오, 바이오필릭 랩, T-랩, 세 개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아트 스튜디오만 독립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고, 나머지 두 스튜디오는 프로젝트에서 보조적 역할을 하는 연구 성향이 더 강해요. 이런 연구는 조경 산업에 더 폭넓게 관심을 갖게 하고 프로젝트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연구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프로젝트에 적용해보고 싶어요. 조경 주도적 또는 조경 독립적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하는데, 건축, 토목 등 다른 분야와 협력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아마 대부분의 조경가가 그렇겠지만, 조경이 비교적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호합니다. 건강한 협력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건축 회사와 함께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서로가 추구하는 완성도와 아름다움에 대한 의견이 비슷하고 상호 존중이 전제되어야 하죠. 여러 방면에서 뜻이 맞지 않는 팀과는 협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현실 여건을 고려해 합리적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일정 부분 양보를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Z+T의 원칙을 져버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프로젝트를 포기할 겁니다. 협업에 있어서는 불교도가 흔히 말하는 숙명적인 ‘운명’을 기대하는 편입니다. 『뉴 호라이즌스(New Horizons)』에서 Z+T의 작업을 축약하는 키워드로 참여(participatory)를 꼽았고, 2018년에는 『참여의 경관(Participatory Landscape)』을 출간한 바 있죠. 공공 대상의 참여 프로젝트는 의도한 대로 되지 않아 실패하기 쉽고, 보상 개념의 인센티브가 분명하지 않으면 참여 유도가 어렵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참여를 끌어내는 노하우가 있나요? 참여는 ‘그림 같은 경관으로서 조경’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 사용한 단어예요. 경관은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 즉 인간은 경관과 대립적 요소가 아니라 경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경관이 제공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자연환경에 들어감으로써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Z+T가 추구하는 불변의 디자인 철학이기도 합니다. 사실 전문적인 설계 방법론으로 사용자 참여 디자인을 적용한 프로젝트를 해본 적은 없어요. 현재 상하이에서 주민 참여를 독려하는 커뮤니티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경험과 비교해볼 때, 중국에서는 조경가가 사회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존경을 받는 편입니다. 최대한 많은 이를 만족시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조경 프로젝트가 늘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절충된 합의안보다는디자인에 신념을 갖고 주도적으로 완성도 높은 설계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사용자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거예요.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자외선, 비바람과 싸워야 하는 조경의 특성상 재료에 제한이 많은 편인데, 안전 관련 규정 등으로 인해 선택의 폭이 더 좁아지고 있어요. Z+T는 늘 프로젝트에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려 하죠. 내구성, 관리 문제와 반비례하는 예술적 물성의 구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나요. 재료 선택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과정 중 하나죠. 조경의 특성과 안전 관련 규정 외에도 가격, 클라이언트 수용력이 재료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컬러 필름이 부착된 아크릴은 실외에서 2~5년 정도 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하지만 사용 면적이 넓지 않고 클라이언트가 이를 교체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다면 아크릴을 추천하는 편입니다. 재료의 내구성과 효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중요합니다. 재료 사용에서 한계를 돌파하려면 디자이너가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시장의 동태를 파악하고 재료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재료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사전에 테스트를 해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대나무, 밧줄, 그물, 유리 같은 재료는 예술적 측면에서는 아주 좋지만 내구성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대나무의 방부 처리 등 기술적 측면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면 어떨까요. 재료 관련 기술을 개발할 때 조경 자재 시장은 큰 돌파구를 찾게 될겁니다. 두 아들의 아빠로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놀이 조경 프로젝트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자연과 떨어진 도시 놀이터에 참여적 생태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녹이는지 궁금합니다. 그 영감은 자녀에게서 받는지, 어릴적 기억에서 소환하는지도 알고 싶고요. 두 자녀와 함께 놀이를 할 때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 유년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된 모든 것들이 영감이 됩니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Last Child in the Woods)』은 현 시대 아이들은 야외에서 노는 것보다 실내에 머물러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묘사했는데, 우리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책의 표현처럼 “아이들을 야외에서 뛰놀게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순수한 자연환경을 찾기 어렵기도 하지만, 놀이터 등 외부 공간이 어린이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기꺼이 전자 기기를 내려놓고 야외로 뛰어나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놀이를 즐기는 동시에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놀이터를 디자인해 더욱 매력적인 장소를 만들고자 합니다. 『참여의 경관』에서 중국의 조경 교육은 건축, 식재, 예술 기반의 세 갈래로 나뉘고, 이로 인한 장단점이 있다고 설명했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조경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를 위해 직원에게 강조하는 교육적 측면이 있나요. 미국에서 일할 때 동료들이 조경 업계는 “과잉 교육을 받는다”고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조경 실무를 하는 데는 학부 졸업만으로 충분합니다. 만약 석사 과정을 밟을 생각이라면 어떤 방면으로 나아갈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요. 학교마다 조경 교육의 방향과 목표가 다른데,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에 진학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조경 산업은 범위가 매우 넓어서 몇 년 만에 모든 것을 다 익히고 다루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공이 무엇이든 열정과 열린 마음, 항상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의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직원이 넓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독서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전공 서적뿐 아니라 역사,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통해 자신의 지식 창고를 업데이트 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U-센터 광장(U-center Plaza)의 회전하는 분수를 수업에서 보여줬을 때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기억이 나요. 철도가 있던 대상지의 기억을 상징화한 아주 흥미로운 디자인이죠. 유지·관리 등의 문제로 클라이언트가 반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클라이언트에게 콘셉트를 제안할 때 콘셉트 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시공 방법, 공사비, 유지‧관리비도 함께 보여주어 의사 결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합니다. U-센터 광장의 콘셉트 디자인 보고서에는 회전 장치 제조 회사와 유지‧보수비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함께 담았죠. 클라이언트가 광장 옆 복합 상업 시설의 건물주이기 때문에 개장 후에도 광장을 매력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봤어요. 비용의 크기는 광장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새로운 수익을 얼마나 가져다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에 낮은 유지·관리 비용을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클라우드 파라다이스(Cloud Paradise, 2017)의 취시류환(曲溪流欢)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릴 적 비 온 뒤 놀던 모래사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런던의 다이애나 메모리얼 이후 가장 인상적인 수경 시설이에요. 대상지에 6%의 경사가 있는 소방도로를 반드시 포장면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 위에 소방차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디자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취시류환은 장둥이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한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수경 시설이에요. 비가 와 질척거리는 산길, 빗물로 인해 생긴 작은 물줄기가 만들어낸 형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콘크리트로 조각한 이 물줄기는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시선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진흙투성이 개울과 물웅덩이에서 아이들이 놀기 바라는 젊은 부모는 거의 없을 거예요. 대부분 그것을 더럽다고 느끼니까요. 하지만 콘크리트로 만든 물줄기에서 놀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진흙투성이 개울과 물웅덩이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지만요. 종종 상업적 성격의 중국 프로젝트를 할 때 너무 과한 요소를 사용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물어볼 때가 있어요. Z+T의 취장 크리에이티브 서클(Qujiang Creative Circle)은 놀이 시설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시설을 강조하고 조형성을 강하게 드러내죠. 주주리 정원(Jiu Zhu Li Garden), 우전 아리라 호텔(Wuzhen Alila Hotel)의 경우 미니멀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취장 크리에이티브 서클과 대비를 이루고요. 디자인의 강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중국 철학에서 종종 ‘도度’를 강조하는 걸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이해하는 도는 적절함(대부분의 사람을 이를 보통의 정도(中庸)라고 이해합니다)과 더불어 자신의 특정한 태도(態度)에 국한하지 않고 프로젝트의 특성과 요구되는 바에 따라 잔잔함(静谧)이나 활발함(歡悦)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활발함을 혼란스러움으로, 잔잔함을 무미건조함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비즈니스를 위해 과함이 필요할 때가 있고, 마케팅 측면에서 ‘조금 더 많은 것(再多一点)’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많은 디자인 요소가 활발한 공간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복잡한 공간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기 힘들죠. 클라이언트가 너무 많은 요소를 넣기를 원할 때, 규모에 따라 요소 간의 균형을 맞추어 최대한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잔잔함은 활발함보다 더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이에요. 미니멀리즘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을 뜻합니다. 불필요한 것을 쳐내고 남은 디자인 요소는 모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강력해야 합니다. 강력한 디자인 요소를 선택하거나 특정 요소를 선택해 이를 강력하게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좋은 조경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변화의 속도가 빠른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답일 수 있지만,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프로젝트가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고 싶어요. 40~50년 뒤 두 분이 현역에 있지 않을 때 Z+T는 어떤 모습일까요? 회사 내부적으로 새로운 리더십을 키우고 있는지, 어떤 구조의 설계 스튜디오를 지향하는지와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은퇴는 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날이 오겠죠. 따라서 이 질문은 유효합니다. 각자의 장점을 존중하고 함께 일하는 회사 내 협력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문 분야 간의 긴밀한 협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중국인들은 아직 협력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교육 방식과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일 거예요. 일을 잘해내려면, 특히 조경 같은 복잡한 산업의 경우, 천재보다는 근면성실하고 겸손하며 인내심이 있고 협력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른 분야와의 협업뿐 아니라 조경 내부의 협업에서도 마찬가지죠 최영준은 서울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피스박김, PWP, SWA 그룹 로스앤젤레스 오피스 등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14년 디자인을 통한 희망적 가치와 사회적 책무 구현을 목표로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를 중국인 파트너와 공동 설립했으며, 2018년 서울 오피스를 열고 국내외 다양한 조경 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 최영준
  • 옴스테드 200 The 20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Frederick Law Olmsted
    현대 조경의 선구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 _ 임한솔 옴스테드의 공원관 _ 조경진 공원으로 만든 도시, 옴스테드의 선형 공원 _ 신명진 옴스테드 아카이브, 기억의 집 또는 아스날 _ 김정화 옴스테드가 남긴 것들 _ 김민주 옴스테드 200, 더 읽을거리 _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지금 이곳에 공 원을 만 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 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1850년대 센트럴파크의 필요성을 역설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 1822~1903)의 말을 21세기에 되돌아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일상에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도시공원을 재발견했다. 잔디밭에, 물가에, 작은 벤치에 거리를 두고 앉은 사람들을 보며 도시공원은 “도심에서 자연으로의 최단 시간 탈출”을 가능하게 한다는 옴스테드의 말을 실감했다. 아직 팬데믹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 2022년,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1822년 4월 26일 생)을 맞이했다. 옴스테드는 조경 전문 직능과 학문 분과의 장을 연 선구자다. 현대 도시 공간 구조를 재편했을 뿐 아니라 현대적 개념의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기틀을 세웠다. 미국 조경계는 이 역사적인 해를 기념하고자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본지도 이에 발맞추어 옴스테드의 생애, 주요 저작과 프로젝트, 공원관과 조경론, 옴스테드 아카이브 등을 살펴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 등 격변을 겪고 있는 동시대 도시에 대한 시사점을 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진행 배정한, 남기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옴스테드 200] 현대 조경의 선구자,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
    조경의 아버지 조경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첫손에 꼽힐 인물이 있다. 조경의 원어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를 전문업의 명칭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주인공이자 도시공원의 전범으로 널리 알려진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Olmsted, 1822~1903, 이하 옴스테드)다. 옴스테드는 설계가로서 정규 교육이나 도제식 수련을 받은 적이 없다. 또한 조경가 외에 작가, 저널리스트, 사회 비평가, 행정 관료로도 불리는 등 다양한 일을 수행했다. 심지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조어를 최초로 발명하지도 않았으며, 그 명칭을 오랫동안 공유한 파트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옴스테드를 ‘조경의 아버지’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진정한 아버지는 유전자의 원천 그 이상이다. 아버지는 불완전한 개체의 성장과 자립을 지지하는 존재이며 때로는 존경의 대상으로, 때로는 반면교사로 떠오르는 규율 그 자체다. 옴스테드는 여러 직업을 두루 경험하고 설계와 글쓰기, 조직 운영을 종횡무진하며 조경업의 안팎을 살펴보고 그 정체성을 구축해냈다. 옴스테드의 남다른 삶의 궤적은 유동적인 경계를 지닌 직능의 미래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옴스테드가 강조한 픽처레스크(picturesque) 자연미는 조경 직능의 전통이자 한계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옴스테드를 조경의 아버지로 기리고 추고하게 되는 것은 그의 업적 못지않은 흔적 때문이기도 하다. 옴스테드는 미국 전역에 걸쳐 500여 건의 작업을 수행했고 조경가로 일하는 동안 6,000여 건의 보고서와 서신을 남겼다. 옴스테드의 두 아들이 미국조경가협회(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와 하버드 대학교 조경 프로그램을 설립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말하자면 옴스테드는 후대의 조경 종사자들에게 전범과 원리, 인력 체계까지 물려주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옴스테드의 후예로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서른이 되기까지: 현장의 배움들 옴스테드는 코네티컷(Connecticut) 주의 하트포드(Hartford)에서 태어났다. 옴스테드 가문은 하트포드에서 여덟 세대에 걸쳐 살았다. 성공한 포목상인 그의 아버지는 풍경 애호가였다. 유년 시절의 옴스테드는 가족을 따라 뉴잉글랜드와 뉴욕 북부 등지의 경치 좋은 곳으로 자주 여행을 다녔다.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과 영향을 강조하는 옴스테드의 미감은 이때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풍경을 체험하며 남다른 시간을 보낸 반면, 옴스테드의 성장 과정은 정규 교육과는 거리가 있었다. 옴스테드는 주로 목사들로부터 교육 받았는데, 예일 대학교 진학에 거의 근접하기도 했지만 옻독이 오르는 바람에 시력 문제가 생겨 학업에 몰두할 수 없었다. 대학에 다니는 대신 옴스테드는 다양한 현실 경험을 쌓았다. 뉴욕의 포목점에서 일하고 중국으로 무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측량과 화학, 과학적 농법과 농장 운영 등을 익혔다. 옴스테드의 아버지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20대 후반의 아들에게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 농장을 마련해주었다. 옴스테드는 이곳에서 농업과 관리 운영의 이론을 실천으로 구현해보았다.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옴스테드의 삶은 조경과 직접 연관되지는 않았지만 미학적, 실무적 측면에서 차근차근 조경 자산을 쌓아가고 있었다. 두 번의 여행과 작가 옴스테드 농장을 경영하던 1850년대 초,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와 만나기에 앞서 그의 인생을 바꾼 여행을 두 차례 다녀온다. 첫 번째는 1850년에 6개월간 떠난 유럽 여행이다. 이때 옴스테드는 영국 리버풀의 버컨헤드 공원(Birkenhead Park)을 방문하고 큰 자극을 받는다. 옴스테드는 “민주주의 미국에는 이와 같은 민중의 정원(People's Garden)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공원의 접근성이 모든 미국인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여행에 함께한 친구의 추천으로 옴스테드는 1852년 「뉴욕 타임스」의 전신 「뉴욕 데일리 타임스(New York Daily Times)」로부터 취재 여행을 의뢰받는다.타임스는 옴스테드에게 남부 지방을 여행하며 노예제를 포함한 농업 방식과 경제에 대해 써줄 것을 요청한다. 옴스테드는 1854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남부 여행을 다녀왔고 타임스에 일련의 글을 출판하며 이름을 알린다. 옴스테드는 글을 통해 노예제의 서부 확장에 반대하고 남부 지방의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다. 이 무렵 옴스테드는 작가의 꿈을 꾸고 있었다. 옴스테드는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뒤 신생 출판사의 파트너와 유명 월간지의 에디터를 맡기 시작한다. 단행본 출간에도 힘을 기울여 첫 번째 여행을 바탕으로 『어느 미국 농부의 영국 여행기(Walks and Talks of an American Farmer in England)』(1852)를 출간하고, 두 번째 여행을 바탕으로 세 권의 연작을 출판한다(1856, 1857, 1860). 그러나 작가의 운명 대신 조경가의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옴스테드는 1856년 출판사 일로 영국 런던을 방문하며 여러 공원을 경험했고, 이듬해인 1857년 센트럴파크의 감독관(superintendent)으로 취업한다. 센트럴파크, 감독관에서 설계자로 옴스테드가 센트럴파크 감독관 자리를 얻은 지 몇 달 뒤, 영국 출신 신진 건축가인 캘버트 복스(Calvert Vaux, 1824~1895)가 감독관인 옴스테드에게 센트럴파크 설계공모에 함께 참가하자고 제안한다. 복스는 원래 앤드류 잭슨 다우닝(Andrew Jackson Downing, 1815~1852)의 부름을 받고 미국으로 왔지만, 다우닝이 1852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 상황이었다. 다우닝은 건축, 경관, 원예 등에서 선구적 이론을 제시한 바 있는 전문가였다. 옴스테드는 복스와 뜻을 함께하며 다우닝이 남긴 생각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이전까지 설계 경험이 전무했지만 복스의 제안을 수락한 이후 낮에는 감독관, 저녁에는 설계가로서 공모전 준비 작업에 참여한다. 옴스테드와 복스는 설계공모에 ‘그린스워드(Greensward)’ 계획을 제출해 다른 32팀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당선된다. 이 제안은 탁 트인 잔디밭을 중심으로 풍부한 식재와 목가적 풍경을 갖춘 동시에 도시와 이용자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어낸 수작이었다. 옴스테드와 복스는 지면 아래로 꺼진 횡단 도로를 제안함으로써 도시 교통을 고려하면서도 공원의 감상을 저해하지 않도록 했다. 또한 공원 내에 분리된 동선 체계를 적용해 이용 행태에 따른 간섭을 줄이고 이용자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정하도록 했다. 센트럴파크는 옴스테드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며 그의 후기 작업에서 구체화되는 설계 원칙들의 시험장이었다 센트럴파크 조성은 19세기 뉴욕의 공공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의 사업으로 꼽힌다. 미국인 엔지니어, 아일랜드인 인부, 독일인 정원사, 아메리카 원주민 석공 등 2만여 명의 노동자가 공사에 참여했으며, 암반을 부수기 위해 게티즈버그(Gettysburg) 전투보다 더 많은 화약을 터뜨렸다. 3천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약 3,800만㎥에 해당하는 돌과 흙을 옮겼고 36개의 다리와 아치를 지었으며 11개의 고가도로를 건설했다. 또한 50만 그루의 교목, 관목, 덩굴이 식재됐다. 설계공모 당선 이후 옴스테드는 총괄건축가(architect-in-chief)직함을 갖고 전방위로 활동했다.그러던 중 남북전쟁이 일어난다. 미국 위생위원회와 마리포사 이스테이트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옴스테드는 뉴욕을 떠나 워싱턴 D.C.로 간다. 그곳에서 옴스테드는 미국 적십자의 전신이자 북부 연합군의 의료 지원을 담당하는 미국 위생위원회(US Sanitary Commission)의 첫 번째 사무국장이 된다.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 현장에서 갈고닦은 조직 운영 기술을 발휘하여 병영의 위생을 감독하고 의료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실무를 총괄한다. 위생위원회에서 2년가량 일한 옴스테드는 1863년, 집안의 경제 사정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금광 사업지인 마리포사 이스테이트(Mariposa Estate)에 관리자로 취직한다. 옴스테드는 요세미티(Yosemite)계곡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코네티컷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풍경에 익숙해진 한편, 민간의 상업적 이해관계로 인해 자연이 위협받는 것을 목격한다. 위생위원회와 마리포사 이스테이트 경력은 옴스테드가 조직 운영 기술로 상당히 인정받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위생위원회 경력은 옴스테드가 자신의 조경 설계 필수 원칙 중 하나로 위생 공학을 강조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마리포사 이스테이트에서 일하던 당시, 옴스테드는 요세미티 보호구역을 감독하는 위원회의 책임자로 임명됨으로써 환경 보존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다. 1865년 제출한 요세미티 보고서에서 옴스테드는 사익으로부터 공익을 보호하는 것을 정부의 의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옴스테드는 미국 국립공원 체계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업 조경가로서의 활동과 이어지는 실천 1865년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옴스테드는 이후 30년 동안 전업 조경가로 활동한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캘버트 복스와 센트럴파크 작업을 마무리 짓고 프로스펙트 공원(Prospect Park)을 설계한 것이다. 두 사람은 옴스테드, 복스 앤드 컴퍼니(Olmsted, Vaux & Co.)라는 사명으로 1872년까지 함께 활동한다. 그 뒤 옴스테드는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조경가(Frederick Law Olmsted, Landscape Architect)라는 직함으로 1884년까지 활동하다가 이후 회사의 이름을 몇 차례 바꾸게 된다. 옴스테드는 1895년 현업에서 물러나고, 그를 도와 일하던 두 아들인 존 찰스 옴스테드(John Charles Olmsted, 1852~1920)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주니어(Frederick Law Olmsted Jr., 1870~1957)는 1898년부터 옴스테드 브라더스(Olmsted Brothers)라는 사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이 회사 이름은 1961년까지 존속했다. 옴스테드가 세운 회사는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 전역에서 공원 설계, 공원 시스템 설계, 주거 단지 설계, 대학 캠퍼스 설계, 국립공원 계획, 도시계획 등 6천여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옴스테드의 회사는 조경업의 전문성을 발전시키고 다음 세대 전문가를 교육하는 일을 거의 홀로 감당했다. 찰스 엘리엇(Charles Eliot)과 워런 매닝(Warren Manning), 윌리엄 라이먼 필립스(William Lyman Phillips) 등 그와 관련된 전문가 다수는 훗날 자신의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무엇보다도 두 아들은 미국조경가협회의 창립 멤버이며, 특히 옴스테드 주니어는 하버드의 조경 프로그램을 설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조경재단(Landscape Architecture Foundation)은 옴스테드의 이름으로 매년 장학생을 선정함으로써 그 역사와 유산을 기리고 있다. 옴스테드의 유산 픽처레스크 자연미와 민주주의의 이상을 담아내고 대지의 구체적 맥락과 공간의 실용적 기능을 고려하는 옴스테드식 설계는 그가 떠난 지 거의 12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조경 설계의 기본으로 유효하다. 세간에는 센트럴파크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옴스테드의 작업은 대형 공원 외에도 도시 규모의 녹지 계획과 자연환경 보존, 주거 단지와 캠퍼스 설계를 아우른다. 옴스테드는 미국 국회의사당과 시카고만국박람회를 위한 조경가로 지명되는 등 국가적 프로젝트를 통해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우리가 옴스테드를 조경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동인은 옴스테드의 시작보다는 이후의 과정에 있을 것이다. 현대 조경이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화, 사회적 불평등, 질병과 오염의 문제를 도시화와 산업화의 광풍이 몰아치던 19세기의 옴스테드도 고민했다고 한다면 과언일까. 이상과 현실을 이어붙이고 미학과 공학을 접목시키려던 옴스테드의 염원은 지금 여기의 소망과 다르지 않다. 예나지금이나 설계는 보이는 것만을 바꾸지 않는다. 참고 자료 ·National Association for Olmsted Parks,“About the Olmsted Legacy”(www.olmsted.org/the-olmsted-legacy/about-the-olmsted-legacy) ·National Association for Olmsted Parks,“Olmsted 200, Meet Mr. Olmsted-LIFE”(olmsted200.org/frederick-law-olmsted/life/) ·Library of Congress,Collection: Frederick Law Olmsted Papers”(www.loc.gov/collections/frederick-law-olmsted-papers/) ·Library of Congress,“Today in History-April 26”(www.loc.gov/item/today-in-history/april-26/) ·Greensward Group,“Central Park History” (www.centralpark.com/visitor-info/park-history) 임한솔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감영 원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경, 건축, 역사에 관심을 두고 설계와 이론, 도시와 자연,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다르게 보고자 한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온오프라인 매거진 유엘씨(ULC)를 만들고 있다.
  • [옴스테드 200] 옴스테드의 공원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미국 지성사의 주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조경가이자 작가, 사회 비평가, 공공 행정가로서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영국 답사기, 남부 노예 제도 취재기, 공원과 도시에 관한 에세이, 서간문 등 그가 남긴 글은 실로 분량이 엄청나다. 전기만 해도 10종이 넘고, 그를 다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도 여러 편이다. 옴스테드가 남긴 물적 유산만큼 그가 지성사에 남긴 유산은 찬란하다. 옴스테드의 글과 그에게 영향을 미친 당대 사상가들을 살펴보면서 옴스테드 공원관의 형성 배경과 특징을 살펴본다. 옴스테드가 처음 접한 공원은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이 설계한 버컨헤드 공원(Birkenhead Park)이었다. 옴스테드가 1850년 뉴욕에서 출발해 리버풀에 도착한 후 처음 찾은 버컨헤드는 당시 리버풀 인근의 신도시였다. 배낭을 메고 동네 빵집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버컨헤드 공원을 꼭 가보라는 권유로 찾게 되었다. 이 우연한 만남으로 옴스테드와 공원의 인연이 시작됐다. 옴스테드에게 공원은 미국 사회가 꿈꾸는 평등과 민주주의의 공간이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사유하는 암체어(armchair)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센트럴파크 감독관 직책을 맡고, 공모전 당선 후에는 설계자로 활동하면서 그는 답사를 통해 쌓은 경험과 독학으로 축적한 지식을 결합해 자신의 공원관을 형성했다. 이후 미국 여러 도시의 공원을 계획하면서 공원에 대한 옴스테드의 생각이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공원에 관한 옴스테드의 글 옴스테드의 대표적인 글에서 공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852년 출간한 『어느 미국 농부의 영국 여행기(Walks and Talks of an American Farmer in England)』에서 그는 버컨헤드 공원을 ‘민중의 정원(People’s Garden)’이라 지칭한다. 옴스테드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 감동한다. 그러한 풍경은 미국 도시에서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영국에서는 가난한 농부도 여왕처럼 공원을 즐긴다고 표현한다. 무엇보다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이 공원이 시민이 소유하는 공간이었던 점을 높이 평가했다. 빵집 주인도 자기 동네 공원에 자긍심을 가진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공원: 백과사전적 관점(Parks: An Encyclopedic View)”(1861)이라는 글은 유럽 도시공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다룬다. 당시는 센트럴파크 설계 공모 당선 후 실시설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례 연구 기록물을 살펴보면 옴스테드가 유럽 공원의 역사와 여건을 잘 숙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설계가가 궁금해할 주제인 공원의 상대적 크기와 면적당 수용 인원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옴스테드가 공원에 대한 연구를 심도있게 수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870년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사회과학협회 총회에서 발표한 글 “공공 공원과 도시의 확장(Public Parks and the Enlargement of Towns)”에서 옴스테드는 공원에 관한 생각을 보다 선명하게 밝힌다. 도시가 급속하게 확장할 때 맑은 공기, 밝은 햇빛, 푸르름을 제공하는 자연 공간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광활함은 공원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한다. 밀집된 도시와 차단된 곳에서 시민들이 산책하면서 고요함과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먼 미래를 보고 도시의 확장을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공원 계획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원의 역할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문화인이 되기 위한 시민 교육의 장이고, 둘째 심신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활력 공간이며, 셋째 시민에게 자긍심을 주며 도시를 매력적으로 하는 공유 자산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공원론이다. 옴스테드는 1886년 글 “마음 상태의 건강한 변화(A Healthy Change in the Tone of the Human Heart)”에서 존 러스킨(John Ruskin)을 인용하면서 문명화된 사람은 질서, 정교함, 깔끔함 같은 특성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품격 있는 도시는 섬세한 톤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교회, 도서관, 갤러리, 온실, 정원, 기념물, 공원 등 공공 공간의 수준이 도시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도시의 이러한 아름다움은 보편적 시민의 예술 감각에 따른다고 주장한다. 왜 옴스테드가 좋은 공원을 만들고자 했는지, 왜 공원을 통해 시민 교육을 하고자 했는지 이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옴스테드 공원관의 형성 배경 몇 편의 글을 통해 살펴본 공원에 대한 옴스테드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원은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고, 시민들에게 도시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곳이다. 둘째, 계층 갈등을 비롯한 사회 문제 해결의 장이다. 셋째, 시민 교육의 공간이다. 넷째,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장소다. 이러한 공원관 형성에는 동시대 사상가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영국의 낭만주의 사상가인 존 러스킨과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러스킨은 『건축의 일곱 등불(The Seven Lamps of Architecture)』(1849)에서 “건축은 사용 목적이 무엇이든 그 모습이 인간 정신의 건강, 힘, 그리고 즐거움에 기여하도록 하는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칼라일은 『의상철학(Sartor Resartus)』(1836)에서 “육체, 자연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영혼, 신 등 보이지 않은 것으로 상징하는 의상”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옴스테드는 공원과 같은 공공 건축이 도시의 정신을 상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옴스테드가 캘버트 복스(Calvert Vaux), 제이컵 레이 몰드(Jacob Wrey Mould)와 함께 작업한 센트럴파크의 베데스다(Bethesda) 테라스에는 러스킨의 영향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 장인들의 섬세한 솜씨로 제작된 테라스 장식물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낮과 밤의 서사가 세련되게 표현됐다. 옴스테드는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와 같은 당시 초월주의자들의 자연관에도 영향을 받았다. 초월주의자들에게 도시는 악이고 자연은 지고의 존재로 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도시에 공원을 만드는 것은 인간 회복의 한 방편이었다. 에머슨은 『자연(Nature)』(1836)에서 “자연은 몸과 마음에 치료 효과를 주어 심신을 정상으로 회복시킨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에머슨의 영향을 받은 소로는 야생 자연인 월든에서 한동안 생활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월든(Walden, Life in the Woods)』(1854)을 저술했다. 그는 월든 호수에서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옴스테드에게 공원은 자연과 교감하면서 신의 내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된다.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저작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1835)에 주목해야 한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가가진 선진성을 높이 평가했지만 문화적 소양의 부재를 지적했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드 토크빌의 생각은 옴스테드에게 영향을 미쳤고, 공원이라는 유럽의 민주적 공간과 제도를 미국 사회가 빨리 수용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에게 공원을 조성하는 일은 계층 갈등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문화적 소양을 습득하고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장으로서 공원은 유용한 도구였다. 옴스테드는 이를 잘 수용했다. 스위스 철학자 요한 게오르크 치머만(Johann Georg Zimmermann)의 『고독(Solitude)』(1791)은 당대에 잘 알려진 저작이었다. 그는 『고독』에서 풍경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으며, 건강한 고독은 자기 회복을 위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경향이라고도 말했다. 옴스테드도 어릴적부터 자연 풍경이 주는 치유 효과를 체감하고 있었다. 옴스테드 연구자들은 치머만의 사상이 옴스테드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 공원에서 우리는 자연 경치의 명상을 통해 서로 경쟁하지 않고 위협받지 않는 상태를 경험한다. 치머만은 건강한 상태의 고독을 자기 시간에 대한 몰입과 지나친 은둔으로 사회생활에서 격리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라 했다. 당시 새로 등장한 공원은 치머만이 말하는 건강한 고독을 경험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옴스테드 공원관의 의미와 한계 옴스테드 공원관이 갖는 의미와 시사점은 무엇인가. 옴스테드식 공원은 이후 수없이 복제되고 확대 및 재생산됐다. 어쩌면 아직도 전 세계의 공원은 옴스테드의 우산 아래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옴스테드의 공원관과 실천 행위는 이후 전문가들의 공원 계획, 설계와 큰 차이를 보인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옴스테드는 당대의 사상을 자신의 공원 만들기라는 실천 행위를 통해 구현했다. 도시의 자연인 공원은 쓰임새 있는 물리적 공간일 뿐 아니라 그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과 바람 직한 미래상이 담긴 공간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옴스테드의 공원은 그 가치와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탄탄한 철학이 있는 공원, 확고한 비전이 담긴 공원이기에 생명력이 길다. 이러한 점은 옴스테드의 개인적 역량에서 기인한 것이기 하다. 그는 인문적 소양을 갖추었고 사회적 발언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공원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높여 주었다. 물론 그와 함께 일한 캘버트 복스와 제이컵 레이 몰드의 디자인 역량이 옴스테드의 추상적 차원의 이상을 뛰어난 디테일 디자인으로 구체화시키는 데 힘이 되기도 했다. 옴스테드 공원관의 한계는 무엇인가. J. B. 잭슨(J. B. Jackson)은 “과거의 공원과 미래의 공원(The Past and Future Park)”(1994)이라는 글에서 옴스테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조경가이자 도시설계가로서 그의 작품은 통상적으로 숭배되지만, 그의 사회 철학에 나타나는 엘리트주의, 반도시적 논조, 자연환경에 대한 강조 등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의 공원 개념은 사회 계층의 단편화, 고독한 경험과 가족적 경험의 지향, 개인과 환경의 수동적 관계를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적절한 비판이다.센트럴파크는 초기에 산책 등 수동적 레크리에이션을 강조하면서 노동자 계층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실제로 여러 계층의 화학적 결합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원을 계속 리모델링하면서 여러 계층이 공원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가기도 했다. 이후 많은 비평가는 옴스테드의 공원이 도시에 담을 쌓았다고 비판하면서 도시와 소통하는 공원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견 타당한 의견이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변화하는 도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영원불변하는 만병통치의 해법을 주문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옴스테드의 공원은 지금도 여전히 잘 이용된다. 잭슨이 지적하는 계층별 이용 분리, 공원 경험 방식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사회학적인 문제다. 오늘날에도 공원을 이용하는 방식은 ‘따로 또 같이’다. 즉 개인적 방식과 때로는 집합적 방식이 혼용된다. 군중 속에서 개인의 자유가 방해받지 않는 상태를 더 원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뉴노멀의 공원 이용법’일 것이다. 공원은 시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하나의 가능태다. 옴스테드는 공원의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를 제시한 것이며, 이후 다른 형식과 내용의 공원을 창출하는 것은 후대 공원 설계가의 역할일 것이다. *환경과조경408호(2022년 4월호)수록본 일부 조경진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 한국조경학회장, IFLA 2022 조직위원장, 정원도시포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