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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밍턴 워터프론트 파크
    Wilmington Waterfront Park 로스앤젤레스항의 산업유휴지를 탈바꿈시킴으로써 탄생한 윌밍턴 워터프론트 파크를 통해 인근 지역 9개 블록이 새롭게 변모하게 되었으며, 30에이커에 달하는 현대적인 공공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는 윌밍턴과 주위의 수변 공간을 시각적으로 연계시킬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공간적 중심축이 되어 일상 속에서의 리듬을 자아내고 있다. 폭넓은 대중 참여 및 공공 봉사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건립된 윌밍턴 파크는 지역 경제 발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생태 및 사회적 다양성을 촉진하는 데 있어서 견인차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디자인 의도제한된 예산을 통해 최대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한편, 윌밍턴 지역에 훌륭한 공공 경관을 제공해 줄 유연한 장소를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항구가 공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강력한 조형적 지형을 만들어냈는데, 평면에 가깝던 기존 부지를 완만한 경사가 있는 잔디로 덮인 최대 높이 16피트의 지형으로 변모시켰다. 경관의 조형적 특성 덕분에 멋진 경치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일종의 해변 테라스를 조성하게 됨으로써 다양한 지형적 특성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또한 다섯 군데의 놀이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이른바 ‘그레이트 론(Great Lawn)’이라 불리는 대형 공공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공원 지형의 상층부에는 엘 파소 해변산책로(El Paso Promenade)가 조성돼 보행자들이 공원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는 의자, 전시용 정원, 전망용 망원경, 그리고 자전거도로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캘리포니아 해안 산책로(California Coastal Trail)와 연결된다. 한 개의 사장교와 빨간색으로 도장된 세 개의 보행자용 다리는 공원 지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윌밍턴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엘 파소 산책로와 하층부의 통행로를 리듬감 있게 연결시켜준다. 나무들이 늘어선 산책로는 공원의 보행자 탐방로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며,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명상과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벤치, 어린이들을 위한 모험 놀이터, 모임과 공연이 이뤄지는 광장, 그리고 숲속의 피크닉 공간 등이 모두 산책로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By transforming a Port of Los Angeles brownfield site, the Wilmington Waterfront Park reclaims nine city blocks for the adjacent community, and provides a contemporary 30acre public open space that visually links Wilmington with its remnant waterfront, physically anchoring the neighborhood by creating a focal point for its daily rhythms. Built from an intensive public outreach process, the park has become a catalyst for reinvigorating local economic development and for promoting ecological and social diversity. The design intent was to create a safe community recreation area, a flexible place for the community of Wilmington’s growth that embodies their concerns, engages the site’s unique industrial context, utilizes the best sustainable practices possible within a constrained budget, and provides a public landscape to an underserved community of Wilmington. In order to protect the community park from the port’s impacts, the designers created a strong sculptural landform which transitions the existing planar grade of multi-purpose playfields into a gently sloping, shaded landscape of grass rising to a promontory 16 feet high. The sculptural quality of the landscape creates a sc enic backdrop while emulating the form of a coastal terrace selectively unfolding a topographically diverse terrain melding with a series of five informal playing fields aggregated to create a large civic space and festival ground referred to as the ‘Great Lawn’. Atop the landform, the El Paseo Promenade provides a primary component of the pedestrian circuit with seating, display gardens, observation binoculars, and a shared use pedestrian bicycle path extending the California Coastal Trail connecting to the park’s regional context. One cable-stay and three pedestrian bridges emblazoned with red punctuate the landform creating a unique landmark for Wilmington and rhythmically extending the El Paseo promontory over lower pedestrian pathways. Tree-lined promenades extend the park’s network of pedestrian circuits offering a variety of seating for respite, contemplation, and people watching including interactive water features, an adventure playground for children, plazas for gathering and performances, and picnicking within the tree groves. Landscape Architect & Architect _ Sasaki Associates, Inc.Client _ Port of Los AngelesLocation _ Los Angeles, California, USAArea _ 30 acresCompletion _ 2011Photograph _ Craig Kuhner, Bruce DamonteEditor _ Son, Seok BeomTranslator _ Ahn, Ho Kyoon
    • / 2013년01월 / 297
  •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
    2012 Young Landscape Architect Design Competition공모전은 저마다 다양한 목적들을 가지고 개최된다. 주최 측의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하고, 보다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진행하기도 한다. 신진조경가 공모전도 마찬가지다. 2007년에 시작해 3회째를 맞이한 이 공모전은 신진조경가 발굴을 통해 국내 조경설계분야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번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은 여타의 공모전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신진조경가 발굴이라는 목적과 더불어 미집행공원 대상지의 공원조성을 앞당길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조성계획을 마련함으로써 공원일몰제에 대처하려는 목적을 기반에 두고 있다는 것. 여기에는 신진조경가들의 참신하고 독창적인 설계안이 바탕이 된다. 광주 중앙근린공원은 이러한 취지에 가장 적합한 대상지 중 하나이다. 이곳은 장기 미집행공원으로서 공원일몰제에 의해 2020년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무려 2,941,637㎡에 달하는 대형공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광주광역시에서는 중앙공원을 국가도시공원 대상사업으로 추진하기에 이르렀고,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사)한국조경학회 조경설계연구회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신진조경가 공모전의 3번째 대상지로 선정된 것이다.전문가대상楓岩山水園 _ 산등성이, 골짜기, 고갯길의 재구성박유선((주)비오이엔씨) / 원종호, 최재혁(KnL환경디자인 스튜디오) 전라남도의 원형적인 풍경은 넓게 펼쳐진 평야와 지평선 너머로 겹겹이 흐르는 나지막하고 연속적인 산수의 풍경이었다. 남도를 대표하는 도시 광주는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산으로의 시각적, 물리적 접근성이 악화되었고, 산수의 아름다움도 퇴색되어 가고 있다. ‘풍암산수원’은 도시 조직 안에 잠식되어가는 중앙공원을 산과 접한 구릉형 공원으로서 보전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에 대하여 제안한다. 광주시민대상시민과 전문가가 함께하는 577 프로젝트박진구(스튜디오 테라)광주중앙공원은 시민들이 매일 매일 산책하는 일상의 공원이다. 또한 공원은 콘서트와 이벤트가 개최되는 열린 문화 공간이다. 그러나 광주중앙공원은 지형과 도로, 불법적인 토지 점유, 숲에 의해 주변 도시와 단절되어 있고, 공원 내부적으로는 5개의 권역이 서로 분리되어있다. 577 프로젝트는 현재 공원이 가지고 있는 일상성을 유지하고 주변 도시와 소통하며 진화할 수 있도록 공간적인 바탕과 문화적인 기반을 조성해 주는 프로젝트이다. 5단계에 걸쳐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7개의 주요 공간과 7개의 참여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를 통해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공원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주된 아이디어이자 전략이다.대상지 _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풍암동·화정동 / 남구 주월동규모 _ 2,941,637㎡기간 _ 2012년 8월 30일 ~ 2012년 11월 26일주최 _ 광주광역시 + (사)한국조경학회주관 _ (사)한국조경학회 조경설계연구회후원 _ 국토해양부, (사)한국조경사회,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회, (사)한국도시설계학회 광주전남지회, 환경과조경, 라펜트, 한국조경신문심사 _ 성종상·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조경가(심사위원장, 심사권 없음)안계동·(주)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 조경가최원만·(주)신화컨설팅 대표, 조경가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조경가켄 민성진·SKM 건축사무소 대표, 건축가이무용·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 편집부 / 2013년01월 / 297
  • 세종시 중앙녹지공간 기본계획 및 기본설계 3
    The Master Plan and Schematic Design for Central Open Space in Multi-functional Administrative City, Korea도시상징문화밴드/도시공원프로그램밴드중앙녹지공간에서 공원의 시설면적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시작단계부터 우리 스스로에게 큰 이슈가 되었다. 중앙녹지공간은 단순히 면적만으로도 도시 중심에 놓이는 공원 중에서 기념비적인 규모인 반면, 실질적으로는 52%를 초과하는 도시 전체 공원녹지 비율과 2030년 50만의 인구를 목표로 하는 세종시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자칫 과도한 계획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었다.이에 따라 인구 50만의 적정 공원시설 규모와 일상적인 이용거리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의 집중이 요구되었고 중심행정타운과 인접한 중앙호수공원의 끝단으로부터 중앙녹지공간과 도시 구역의 연접 구역을 약 2.5km로 잇는 집중시설 구역을 새로운 금강보행교의 신설을 통해 도시의 남단과 연결시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집중시설 구역은 중심행정타운의 경관특성길(Scenic Drive)과 건축적인 문화시설, 중앙호수공원과 부속시설, 중앙녹지공간의 주요 공원시설 및 문화시설지를 아우르는 두 개의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가진 밴드로 묶어 각각 ‘도시상징문화밴드’와 ‘도시공원프로그램 밴드’로 명칭하였다. 도시상징문화밴드는 대형공원 구역과 도시 구역의 경계에서 중앙호수공원 및 제천의 수변 구역을 따라 금강까지 이어지는 2.5㎞의 대규모의 집단화된 건축적인 문화시설 경관을 형성하며 중앙녹지공간의 비워진 경관과 함께 세종시의 중심 경관을 이루는 큰 틀을 형성하도록 하였다. 도시상징문화밴드가 공원과 도시의 경계에서 집단화된 건축적인 문화시설 경관을 통해 세종시의 중심 경관을 형성한다면 도시공원프로그램밴드는 문화시설의 외부 공간을 통합하고 아우르는 일상적인 보행접근범위 내에서의 도시공원 시설프로그램 구역으로 계획되었다.도시상징문화밴드와 도시공원프로그램밴드는 실내외의 이용프로그램들을 상호보완하며 예술, 참여, 휴게, 도시관광 등의 여러 프로그램들을 담당하도록 계획하였다. 계획조정 단계에서 왜 굳이 이 구역이 부드러운 곡선이 아닌 직선화된 레이아웃을 가져야 하는가에 여러 차례의 반대되는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우리는 이 땅에 오랜 시간 이루어져 왔던 경작지의 구획이 곧 대지가 가진 생산적, 인문적 특성으로서 존치시키거나 기억할 이미지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또한 대규모의 성토를 통해 이루어지게 될 문화시설의 기반 조성에 있어 보다 비용을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며, 자연/공원 구역과 건축/문화 구역의 보다 극적인 경관의 대비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직선이냐 곡선이냐는 애매한 레이아웃 디자인상의 논제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국제공모 당선작의 레이아웃으로 일단락되었다.
  • (사)한국조경학회, (사)한국조경사회 신임회장 2013 신년대담
    혁신을 위한 신진(新陳)전략 유럽발 경제위기로 시작된 경기침체가 장기불황으로 이어지면서 조경분야도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도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산업계 전반에 불어 닥친 한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 2013년에는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고, 동시에 조경분야를 대표하는 (사)한국조경학회와 (사)한국조경사회도 새로운 단체장이 이끌게 되면서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조경분야 전반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라펜트와 함께 새로 취임하는 신임 단체장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고변을 들어보고자 자리를 마련했다. 사람의 변화와 함께 분야 전반에 드리운 어려운 상황에도 긍정적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면서… 일시 _ 2012년 12월 10일(월)장소 _ 한국과학기술회관 신관 1007호 (사)한국조경학회 사무국주최 _ 환경과조경, 라펜트대담 _ 김한배·(사)한국조경학회 제21대 회장,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정주현·(사)한국조경사회 제17대 차기회장, 경관제작소 외연 대표사회 _ 오정학·본지 전문위원, 경기도시공사 최자호·라펜트 부장, 총괄팀장정리·사진 _ 이형주 기자
    • / 2013년01월 / 297
  • 광주 중앙근린공원 조성계획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공모전 시민심사
    광주의 큰 숲…중앙공원 시민이 낳고, 전문가가 기르는 공원 광주 중앙근린공원의 새로운 계획 마련의 필요성이 시민들에 의해 제기되어 공모전이 시작되었으나 실제 계획안 마련과 설계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요구된다. 때문에 시민들이 목소리를 모아 광주시와 (사)한국조경학회에 광주 중앙근린공원 조성의 뜻을 전한 것이다. 이번 공모의 가장 큰 의의는 공원을 이용하는 주체가 공원 조성의 주체로 직접 참여했다는 것이다. 도시공원을 만드는 주체는 조경 전문가와 지자체이다. 하지만 그 공원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는 시민들에게 달려있다. 아무리 잘 계획되고 만들어진 공원이라 할지라도 실제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전문가들의 식견에 부합하는 전문가대상과 시민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시민대상. 하나의 대상지에서 선정된 2개의 안이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실제 대상지에 녹아들어갈 수 있을지,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를 남기게 되었다. 녹색성장시대로 불리며 도시 내 녹지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증가하는 시점에 수많은 공원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민들의 녹지에 대한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녹지를 지켜내려는 조경가들의 열정 어린 노력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가 만나,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원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국가도시공원의 명문화를 앞당길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30년간 미집행 된 상태로 방치된 2,941,637㎡에 달하는 “대형공원”, 이곳에 “시민들의 요구”와 전문성을 가진 “신진조경가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담기 위해 달려온 88일 간의 여정은 공원일몰제에 대처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민과 전문가가 하나 된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공원 조성과정에서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보다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 2012 조경기술세미나
    전환기 조경설계업,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2012년은 조경업 전체가 그 어떤 때보다 추운 한 해였다. 조경 설계분야 또한 급속도로 위기를 맞이했으며 하나같이 이보다 더 힘들 수는 없다고들 말한다. 이러한 때에 선진국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으며 현재 우리의 부족한 점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색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때마침 12월 12일에 열린 2012 조경기술세미나에서는 ‘전환기 조경설계업,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주제로 선진사례의 발표와 전반적인 토론을 통해 설계업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 싸이와 황지해의 한국성
    서양 사가들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쭉 찢어진 눈과 노란 피부의 악귀들을. 그들은 13세기 때 난데없이 유럽의 관문인 동유럽에 들이닥쳤다.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지나간 도시는 시체와 잿더미뿐이었으니. 물론 용맹한 기사들로 구성된 유럽연합군이 맞섰다. 그러나 기사단은 허울만 좋았지 날쌘 악귀들의 제물에 불과했다. 워낙 압도적인 존재였기에 이제 대적은 불가능해 보였다. 전 유럽이 공포로 얼어붙었다. 얼마나 겁에 질렸으면 스스로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의 형벌로 보기까지 했을까?잘 알다시피 그 악귀는 몽고 기마병이다. 그로부터 약 800년 뒤인 2012년. 그 때와 똑같이 말을 타고 싸이가 달려갔다. 천리마보다 빠른 투명마였다. 유튜브를 이용해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찢어진 눈과 짧은 다리, 영락없는 몽고 기마병이다. 다만 이번에는 공포가 아닌 ‘흥겨움’으로 무장했고, 쳐들어간 게 아니라 환대를 받았다. 곧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그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소위 식스팩과 꽃미남의 자칭 월드스타도 실패했다. 동남아를 휘젓던 화려한 군무도 잘 먹히지 않았다. 그러던 서구의 벽을, 싸이는 단숨에 뚫었다. 그들은 대체 싸이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월드스타가 뽐내던 근육질 몸도, 조막만한 얼굴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이미 내가 가진 것은 남이 가지고 있어도 흥미가 없지 않는가? 더구나 내가 오리지널을 가졌는데 짝퉁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 기껏해야 “그것 참, 흉내도 잘 내는구나!”가 고작일 것이다. 싸이는 이미 예전에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가장 세계적인 것이므로, 극단의 토속적인 외모로 한국을 알릴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오래전부터 건축이, 그리고 상당기간 조경이 고민해 온 ‘한국성’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재작년과 작년의 두 해에 걸쳐 첼시 플라워쇼에서 수상한 황지해 작가의 정원도 마찬가지다. 더 타임스가 ‘가장 독창적인 정원’이라 평했으니 황지해도 애초에 짝퉁이 될 생각은 없었나 보다.그의 정원은 재작년엔 해우소, 작년엔 DMZ가 모티브였다. 남에게 드러내기 싫은 공간이자 아픈 우리 역사의 한 지점이다. 그것이 독창적인 곳으로 변했고, 심금을 울리는 장소로 거듭났다. DMZ 정원에 “명품 나무와 꽃 대신 들풀, 야생화를 심었다.”는 그의 설명에서는 싸이의 음악을 B급 정서로 소개하는 뉴스가 조용히 중첩된다. A급을 기준으로 했을 때 B급일 뿐이지 사실 저잣거리 정서이자 대중정서로 봐야 한다. 한국성의 가치는 당연히 소수 1%의 것보다 99%의 것이 더 크다. 비싸고 희귀한 식물보다 우리 주변에서 어릴 때부터 흔히 봐 왔던 식물들을 심은 DMZ 정원의 가치가 만만찮은 이유이다. DMZ 정원에는 군인들이 지혈할 때 쓰던 쑥, 배 아플 때 짜서 마신 질경이, 대체식량이 되어준 머루와 다래, 냉이, 민들레가 심어졌다. 굳이 스토리텔링을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연상 작용이 활발해지고 이야기가 연결된다. 고관대작 양반집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생활사였기 때문이리라. 실재하는 삶이야말로 항상 최고의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정원 역사가 긴 유럽에서 어설프게 그들을 흉내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방형과 원형의 평면기하학과 몇 가지 박제된 구조물로 틀에 박힌 문화적 상징을 만들지도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정원은 남다르다. 종내 한국적 공간에 이르지 못하는, 한국적 조경설계만을 무한 재생산하는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흔히 볼 수 있다. 설계의도를 현란한 수사로 포장한 작품들을. 그러나 언어적인 수사학이 공간의 한국성을 보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별다른 인과관계도 없다. 그들이 즐겨 차용하는 언어학에서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의 차이만큼이나 그 간극은 오히려 크다.황지해의 정원은 유럽 현지인들에게 이질적 정서를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다. 거울속의 나를 보는듯한 동질성보다 타자적인 충격은 항상 잊었던 것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형태적인 이질성 속에서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하나씩 그 맥락이 이해될 때 조용히 머리가 끄덕여졌을 것이다. 감동이 오기 위해서는 이렇게 공감이란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 공감은 소통이 원활할 때 오는데, 공통된 경험만큼이나 원활한 소통을 돕는 것은 없다. 영국이 한국전 참전국이라는 것은 DMZ 정원의 성공을 위한 마지막 장치였다. 그리고 이것을 미리 읽어낸 것은 온전히 작가의 덕이다. WTO에 이은 FTA 체제화는 이미 조경시장의 국내외 혈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외국에 나가 저들과 경쟁해야 하고, 우리 시장을 넘보는 저들과 맞서야 한다. 그러나 설계시장을 보면 외국 진출은 미미한 상태에서 오히려 외국 업체의 국내 진출만 잦아지고 있다. 작년에 큰 관심사였던 용산공원 현상설계는 결국 외국 업체의 안이 뽑혔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과 장소성이 중시된 대상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외국 업체를 압도하지 못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흔히 실무에서는 서구의 현상설계 당선작과 여러 사례들을 보며 그 기법을 익히는데 온통 몰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외 설계경향과 기법을 익히는 데만 온통 신경을 집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물론 베스트셀러는 항상 좋은 공부가 된다. 그러나 그것만 보아서는 시대적 추세와 경향을 바지런히 쫓아다닐 뿐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구축은 점차 요원해지고, 결국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 만족하는 신세가 된다. 용산공원의 추억은 뼈아프지만 깊이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시대에서 한국 조경이 산토끼는커녕 오히려 집토끼도 놓칠 수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이와 황지해는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의 한 자락을 슬며시 보여주었다. Historians in the Western world can never forget the demons from Asia. They, all of a sudden, attacked the eastern Europe, the gateway to other European nations. They left behind none but bodies of the deceased and ashes of the buildings burnt to the ground. A group of courageous knights tried to fight back only to fail unmatched by the seasoned monsters of battles. European people were devastated by immense fear, desperate and helpless. They were so afraid that they even thought the disaster was God’s punishment for their moral corruption. As you know, these fierce warriors were Mongolian horsemen. In 2012, after 800 years or so, pop star Psy rushed to the countries, riding his own invisible horse finer than any other horse in the world. He could be moving at the speed of light via YouTube. His appearance might have reminded his audience of Mongolian cavalry, but this time it is not panic, but excitement that this horseman’s trying to offer. He is not being feared, but welcomed. The clattering of his invisible horse’s hoofs is now being heard everywhere in the world. In fact, few of the Korean idol stars have made a splash on the global scale so far, even though they are beautiful and talented and sometimes call themselves so called world stars. On the other hand, Psy, seemingly rather easy in some aspects, has taken the world by storm. He’s not a muscular and handsome guy in the slightest. Then what do people like so much about Psy? Psy once mentioned that ‘to be Korean can be to be global, and someday he can make his native country be known in the world with his ‘folksy’ look.’ This allows us to think again about what can be considered Korean in architecture, in particular, in landscape architecture. So do the gardens of Jihae Hwang, who won medals at Chelsea Flower Show for 2 consecutive years. As The Times described her work as the most distinctive, she must have demonstrated ingenuity. The motives for the last year and this year were Hae-woo-so (Emptying One’s Mind) and De-militarized Zone respectively. The toilet of a temple, which is believed to be where you can empty your mind, is never a place you’d like to share with others, and the still inhabited area between two hostile military forces makes us remember such a tragic moment in our history. She transformed them into unique spaces touching people’s hearts. Hwang said she had planted wild herbs and flowers instead of luxurious trees and plants. This kind attitude is also to be observed in Psy’s music, which has often been described as some sort of B-list culture. However, this is not merely a B-class approach in comparison with A-class standard, but represents, at the same time, the emotions of the streets, that is, the feelings of ordinary people. The core of Korean emotion is not about top 1%, but about the rest of people. The true value of DMZ Forbidden Garden is appreciated when we understand the reason that the gardener planted familiar species instead of expensive and rare ones. As the designer herself states ‘the barbed wire fence surrounding the garden creates a feeling of mystery and unease. Carefully considered installations feature the remains of warfare, including defensive walls, trenches and charred trees. […] The watchtower reminds visitors of the surveillance of the DMZ and also provides an observation point for the garden.’ The garden inspires audience to come up with images, which, in turn, leads to storytelling. The story’s focus is not on an affluent but boring life of aristocrats, but on an everyday of common people. It is the portrait of real life that can create a great impression. Hwang’s garden is distinctive in that she does not imitate the European tradition, never creating stereotyped cultural symbols. I have witnessed many entries to various design competitions. The designers tried to explain the intention of their work, rarely to succeed. The language itself never guarantees the relevance of the work, and how much the work represents the quality of being uniquely Korean. There is no causal relationship to be found. The gardens created by Jihae Hwang must have provided Europeans with an opportunity to experience different kind of emotions. Feeling strange usually reminds us of the things that we have long forgotten. We sympathize when we think of the meaning of being different and gradually understand the context where it is created. Sympathy is essential for us to be deeply moved by something, and sympathy is created when there is an effective communication process; in other words, when people have something in common. Great Britain is one of the 16 nations that participated in the Korean conflict, and that contributed, more or less, to making Hwang’s garden a success. As the scheme of WTO, and now that of FTA rules the country, the market has become a battlefield for both international and local companies. However, there are far more foreign organizations that enter the local market than the Korean landscape architects that strive to expand their business overseas. We should ask ourselves how much effort we have made to realize what is truly Korean in the landscape architectural works. Yes, we have to keep learning from others and being sensitive to international trends, but we should also create and develop our own characters, in order not to be just fast followers. Psy and Jihae Hwang present a priceless lesson for us to overcome ourselves and find a way to a new direction.
  • 교환 불가능한 공간 혹은 공간감에 대하여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공간을 지각하거나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하면, 다들 어불성설이라 할 것이다. 어디를 가나 우리 몸이 이미 공간 속에 처하니, 공간을 떠나 살 방도가 아예 없다고도 말할 것이다. 그런데, 공간이라는 말을, 현대건축의 본질은 빈 공간void의 형식화에 있다고 주창한 콜린 로우의 맥락에서, 그러니까 현대건축의 관점에서 쓰기로 한다면, 그러한 명백히 우문 같아 보이는 물음에, 우답이든 현답이든, 즉답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빈 공간은 모조리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대건축을 창조한 것은 실수라는, 그리하여 그 실수의 결과물을 정크스페이스라 칭한 렘 콜하스의 다음의 주장을 들으면,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렘에 따르면, 우리는 목하 정크스페이스 곧 “에스컬레이터와 공기조화air-conditioning가 만나 석고판sheetrock이라는 인큐베이터에서 임신되어 나온 산물이 셋은 역사책에 빠져있다”에서 살고 있다. 본디그러니까, 적어도 건축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지’ 곧 현상/표상에 존재한다고 주장한 비트루비우스 당대부터 이미지로 존재해온 건축은, 다국적 자본이 가상의 공간에서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경제력이 곧 정치력이 된 소비사회인 스펙터클과 시뮬라크르 사회에서, 무겁고물질로 출현하는 까닭에, 느리고디자인 시점과 공사완료 시점 간의 시차로 인해, 기술 의존적이고, 자본 기생적인 조건 안에서 두 종류의 밀도광각과 정보로 스펙터클의 경쟁에 참여하면서 경제와 더불어 오직 확장일로의 닦달 속에 놓여있는위계를 축적으로, 구성을 첨가로 대체하는 까닭에, 필연적으로 껍질에 의해 봉합“벽들이 소멸되고 오직 칸막이들로만 구획되는, 종종 금으로 마감된 피막으로 어른거리는, 구조가 장식 밑에서 보이지 않게 신음하거나, 더 나쁘게는 구조가 장식이” 되는 경로를 밟았고, 그리하여심지어 디테일 곧 재료들의 결합도 “호치키스와 테이프로 규정”되는 탓에, 공간 혹은 공간감을 어쩔 수 없이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론적 성찰 앞에서는, 처음에 던진 질문의 크기가 좀 더 커졌을 것이다. 물론 기술자본주의가 생산해내는, 따라서 당연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정렬된 정크스페이스도 빈 공간을 지녔다. 어찌 공간 없는 건축이, 그리고 도시가 존재하겠는가. 그런데 그것은 정확히 “빅 브라더의 배의 내부”로서, 우리의 감각과 감성과 욕망을 선취함으로써 내어놓은 브랜드스페이스들의 카탈로그인 까닭에, 앞서 언급한 태동기와 성기에 속한, 그러니까 20세기 초의 현대건축의 핵을 구성한, 그러한 공간이 아니고, 따라서 그러한 공간감과 동떨어져 있다. 그것은, 쾌락과 쾌적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능력의 뇌관을 제거시킨채 파편으로 존재하는,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모든 파편들이 가시적인, 현기증 나는 팝옵티콘적 대중 영합주의 공간으로, 언제든 어디서든 교환가능하고 복제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흐리멍덩함의 퍼지fuzzy 제국”을 이루어, 혼돈으로부터 만들어내는 질서 잡힌 공간이 아니라, 동질적인 것들로써 생산되는 회화적인 공간이며, 첨가적이고 중층적이고 가벼운 공간으로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똑바른 것과 굽은 것, 포만한 자와 굶주린 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융합해서, 영원히 탈구된 것들을 이음매 없는 쪽매붙임으로 제공”하는, “디자인은 없고 다만 창조적인 증식”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정크스페이스가 아닌 공간 혹은 공간감, 그러니까 교환 불가능한 공간은 어디에 현존할 수 있거나 지각/경험 가능한 것인가? 돈이 운동하는 것이것이 바로 자본의 정의다은, 인간의 모든 욕구와 욕동과 충동과 욕망이, 최첨단 수리통계와 심리학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기술과 기법에 의해 영토화되고, 탈영토화되고, 재영토화되는 순환구조에 기입됨으로써만 가능한 탓에, 결국 돈이 정지된 곳이거나, 돈이 되지 않는 곳일 수밖에 없다. 풀과 나무, 심지어 청정한 공기마저 상품, 그것도 지구적 스케일의 긴박한 생태위기감 조성 탓에, 새롭게 떠오른 핫 아이템이 되었으니, 역설적으로, 무소부재한 상품포장들의 파편들이 우발적으로 아나모포시스anamorphosis를 그려내는 상황이거나, 그것들을 매우 정치하게 재조직해내는 거대 스케일 디자인의 미세한 창발적 작업에 기대는 것이 훨씬 더 현실가능하지 않을까? 혹은, 오늘날의 건축이 정크스페이스로 껍질존재가 되었으니, 거꾸로, 곁 혹은 딸린 존재로 머물러왔던 땅과 풀들과 나무들과 바람과 하늘에, 자본주의의 망에 이미 포획된 그것들의 껍질은 미련 없이 포기하고, 빈 공간의 부피를 만들어주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이지 아닐까? 그것이 본디의 의미의 땅의 경지경, 빛의 경광경, 바람의 경풍경이지 않을까? 익숙한 상품들의 전혀 다른 범주화로, 그리고 그 껍질들로써 교환 불가능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도무지 불가능한 일일까? If you say you can’t recognize or experience space, most people will respond that doesn’t make sense at all. They may even say that since we are already in space wherever we go, there is not a single way we can live without being in any space. As Colin Rowe points out, however, who maintained that the modern architecture is formation of void, it might be somewhat difficult to come up with the answer to this question of space if it is to be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the contemporary architecture. It is mainly because the void of a modern society is completely fragmented. Moreover, it appears even truer when you consider the remark of Rem Koolhaas, who said that the modern architecture is created by mistakes, and the result of those mistakes can be referred to as Junkspace. According to Koolhaas, we are living in Junkspace, which is “product of the encounter between escalator and air conditioning, conceived in an incubator of sheetrock (all three missing from the history books).” As architecture, which has long been perceived as an image, now exists in a fast paced society where multinational capital is moving at the speed of light through cyberspace and a consumer society where economic power is regarded as political power, under the unavoidable pressure of its infinite expansion, confronted with the serious competition of creating spectacles, it is believed that architecture has, inevitably, been deprived of its space or its sense of space. Now we are faced with a much bigger question. Junkspace being produced by technology-oriented capitalism is sure to possess void. How could there be architecture or cities without space? However, since it is nothing but the catalog of brand spaces created with our sense, sensitivity, and desire already deprived, it can never be the same space which played an integral part of modern architecture in the early 20th century, consequently far removed from the same sense of space. It is just a sum of fragmented spaces existing solely for pleasure and comfort, and, at the same time, each fragment is visual space of popularism leading to serious vertigo. Therefore, it is exchangeable and copiable, anytime and anywhere. It is “light-weight space where the public and private, the straight and bent, the satiated and starving, and the elite and pop culture are all mixed together for seamless marquetry,” and where there is not design but some creative reproduction.” Where do we possibly recognize and experience unexchangeable space different from Junkspace? As the core of capitalism is the method and technology of advertisement, which manipulates human lust, desire, and impulse exploiting the most advanced statistics and psychology, and this is where money flows in, we can experience true space or sense of space only at a place where money stops moving or it’s impossible to many money. We are living in an era where even the ecological catastrophe on a global scale is made to contribute to selling plants, trees, and fresh air as products, or hot items in some cases. Now that modern architecture has become Junkspace, an abstract surfacel without its content, it might be a more realistic approach to create volume of void with earth, plants, wind, and the sky, abandoning what has been already captivated by the power of capitalism and never looking back. Is it really impossible to compose unexchangeable space by differently categorizing some familiar i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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