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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그림, 물을 철학하다
    Water is expressed philosophically as old paintings 사람들은 물을 찾아 모여들었다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최초의 생명체는 물에서 시작되었다. 역사(歷史)시대가 시작되기 훨씬 전인 신화(神話)시대부터 물은 사람의 곁에 있었다. 아니 물 곁에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람들은 물을 찾아 모여들었고 모인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시작되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강이었음이 이를 말해준다. 과테말라의 마야, 요르단의 페트라, 스페인의 알 안달루시아 무슬림 왕국, 위구르 왕국의 카레즈, 우리나라의 한강 등도 물길을 움직여 문명을 일군 지역이다. 이처럼 물은 곧 사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물 곁에서 삶과 죽음을 이어오면서 문명을 일구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물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들여다보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얘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필자는 오랫동안 동양화를 보면서 그림 속에 물이 거의 빠지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물은 항상 사람들의 삶 속을 흐르며 생명을 키우고 문화를 키웠다. 지금보다 훨씬 물이 풍부했던 시절의 옛 선인들 역시 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연구했던 기록을 여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림을 뜻하는 ‘산수화(山水畵)’는 ‘산과 물을 그린 그림’이 뜻하듯 그림에서 물은 매우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동양에서 산수화는 ‘자연을 그린 그림’의 대명사로 인식되면서 오랜 역사를 거쳐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따라서 산수화 속에는 그것이 그려졌던 당대인들의 사상과 철학과 문화가 담겨 있다. 지금까지 물에 대한 연구는 주로 과학적이고 환경적인 부분에 치중되어 왔다. 이 책에서는 동양화를 통해 각 시대 사람들이 물혹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림에 기대어 물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민해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진정한 집필의도다. 신화시대부터 역사시대를 거쳐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까지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물의 변천사를 고찰하노라면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물의 본질에 대해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필자의 전공이 미술사인 만큼 편의상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물을 들여다 볼 계획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동양인과 서양인이 같지 않다. 이번 연재에서는 동양화를 중심으로 동양인의 세계관을 고찰하게 될 것이다. 그림을 통해 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단순히 회화작품을 감상하는 글은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그림에 나타난 물의 인문학적 고찰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림을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속에서 당시 사람들의 삶의 철학과 희로애락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을 바라보는 각 시대 사람들의 염원과 철학과 바람을 들여다보노라면 앞으로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보일 것이다.
  • 李家催家 드로잉전
    동갑내기 건축가 이관직((주)비에스디자인 건축사사무소 대표)과 최삼영((주)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두 사람의 공동 드로잉전이 지난 12월 12일부터 23일까지 카페 소소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서 열렸다. 1985년부터 공간연구소에서 건축을 시작한 두 사람은 스승인 김수근 교수건축가가 별세했을 당시 “우리가 교수님 나이쯤 되었을 때 건축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보자.”며 뜻을 모았다. 이후 오랜 시간 건축 일을 하며 축적해온 생각을 다시금 정리하는 기회로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건축이라는 일이 만들고 그리기를 반복하는 작업이지만 이번 전시는 업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소한 일상의 드로잉을 모았다. 때문에 전시 장소도 부담스럽지 않고 친근한 카페로 선정했다. 이관직 건축가는 펜 드로잉과 현장에서 그리는 사생(寫生) 작업을 주로 한다. 집들을 가지고 약간의 회화적인 구성을 추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집 이야기 시리즈 작업을 많이 하는데, 그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 1931~1997)가 도시를 이해했던 방식이 ‘상상 속의 도시’로 번역된다고 말한다. 이를 ‘수선전도(首善全圖)’를 이용하여 표현하였는데, 끊임없이 건물이 추가되면서 확장되는 도시를 현대적인 의미로 재가공했다. 그는 “우연히 어떤 인상적인 장면을 만나 그 인상을 붙잡아 놓고 싶을 때 메모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도시의 일상적인 건축의 그림들과 일상의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도시의 마을, 골목 외에도 낯선 장소에 갔을 때 느낀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한 드로잉도 그의 주요 작업의 하나이다. 반면 최삼영 건축가는 보다 회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특히 오래된 집들이 가지고 있는 맛을 잘 살려낸다. 드로잉을 일종의 휴식이라고 말하는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다녔던 여행지의 풍경이 담겨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매일 하는 작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다른 장소에 가서 일상을 쉼의 장소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건축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잃지 않도록 빠르게 그리기에 적합한 도구들을 주로 쓴다. 만년필이나 플러스펜, 연필 등 건축할 때 많이 쓰는 도구들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바로 그림을 그리곤 한다. 이관직 건축가는 “무사에게 칼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펜이 있죠. 주로 설계 작업할 때 만년필을 많이 쓰는데, 드로잉 할 때도 만년필을 쓰면서 훈련이 되었습니다.”라고 하며, 일을 할 때와 일을 하지 않을 때 드로잉 작업에 같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서로의 작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조금 특이한 것은 최삼영 건축가가 사용하는 채색도구들이다. 그는 채색을 할 때 친자연적인 재료들을 쓰는데, 특히 브라운 계열 채색에는 커피를 이용하여 설탕을 넣어보기도 하고 넣지 않고 쓰기도 한다고.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만한 조경가 12인(1)
    The Forefront of Landscape Architecture 12 Innovators Opening New Horizons of the Field 연재를 시작하며리먼 사태 이후 지속된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 조경분야는 국내적으로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도시숲 법안을 비롯하여 도시디자인, 경관, 공공디자인, 도시농업, 정원, 어린이 놀이터 총량법안 등 지난 한 해 동안에도 건축, 도시, 임업 등 우리 조경의 업역을 침해하는 타 분야의 도전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조경분야가 지난 40년간 양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하고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을 게을리했던 ‘자만의 그늘’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전통적인 조경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가진 장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가야 한다. ‘탈영역의 시대, 통섭의 시대’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세상은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전·후방이 따로 없는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고 있음을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 성숙단계에 접어든 한국 조경의 앞날은 과연 순탄할 것인가?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의 학과장인 찰스 왈드하임은 ‘경계의 허물어짐이 조경의 영역을 침식한다는 관점을 벗어나 오히려 조경이 더욱 강성해질 수 있는 기회로 보아야한다.’ 고 강조한 바 있다. 저자는 이제 조경의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에 우리 조경가들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그룹한 뉴욕 지사의 최이규 지소장과 독일 지사의 안수연 지소장의 도움으로 조경의 업역을 넓혀가는 주목할만한 조경가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계 조경 시장의 새로운 영역들을 하나하나씩 확인해보고자 한다. 그 새로운 영역들과 소개할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1. 대규모 도시설계(Large Scale Urban Design) _ Signe Nielsen 2. 해일에 대비한 갯벌 및 해안 생태 공원(Salt Marsh Design) _ Van Atta3. 좁은 도시면적을 이용한 레인가든(Stormwater Treatment) _ Mayer Reed4. 브라운필드 및 도시생태(Brownfield Design) _ Julie Bargman, Dirt Studio5. 토착 식물 디자인(Roof top and local planting design) _ Oehem van Sweden6. 조경 이론(Urban Design and Landscape) _ Witold Rybczinski7. 시민 참여(Community Design) _ Walter Hood8. 환경예술(Art & Design) _ Claude Cormier, Canada9. 탄소제로 및 친환경 소재(Life-cycle Design and low-impact materia) _ Michael McDonough Partners10. 친환경 주거정원(Sustainable Residential Design) _ David Kelly, Rees Roberts Partners11. 대규모 도시옥상농업(Urban Rooftop Farming) _ Ben Flanner, Brooklyn Grange 12. 스마트 성장 도시디자인(Smart Growth Design) _ Andres Duany 시그니 닐슨(signe nielsen) _ 뉴욕 Mathews Nielsen Landscape Architects 소장(설립 1979년) 도시의 영역을 개척하는 조경가2009년 건설전문지인 ENR New York은 조경가들이 감독하는 업역의 팽창과 대규모 프로젝트를 관할할 임무를 맡게 된 지위 변화를 다루며, 조경가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보도하였다. 기존에 건축가나 토목 및 수자원 엔지니어, 도시계획, 도시설계에서 다루던 분야를 조경가가 담당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번 달에는 뉴욕 맨해튼 허드슨스퀘어 지역의 도시설계에 대한 총괄임무를 맡으며 주목을 받고 있는 뉴욕의 조경가 시그니 닐슨을 다루고자 한다. 세계의 수도 뉴욕, 디자인의 격전지인 맨해튼에서 탁월한 디자인 감각과 도시환경에 대한 깊은 경륜을 바탕으로 조경의 최전선에서 타 분야를 이끌고 있는 그녀에게는 강인한 전사의 느낌이 배어있기도 했다. Q. 당신의 회사에 대해 말해주시겠습니까? 직원이 되거나, 고객이 되면 어떤 점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까? A. 우리 회사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장소를 만들자”입니다. 이것을 풀어서 말해보자면, 우리 디자인이 순간적으로 반짝하며 유행을 타는 일회성의 디자인이 되지 말고,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해도 높은 심미적 안목과 인본주의적 정신, 그리고 환경적으로 건전한 공간으로 남아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회사가 이들을 “완전한 조경가”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특정한 일만을 반복해서 수행하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완전한 전문인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영역 전반을 다양하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고객들이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즉각적으로 책임감 있게 대응하려고 하며, 주어진 예산 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가져 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봅니다. 디자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에 두고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까지 고객을 도와주고 있습니다.Q. 당신의 20대를 기억하십니까?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어떻습니까? 지금의 젊은 청년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나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으십니까?A. 저의 사회 초년병 시절은 때로 매우 신나기도 하고, 지루하고 침체된 시기도 있었지만, 항상 어떤 꿈으로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 현재의 저는 매일매일 행정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업무의 진창에서 허덕이곤 하는데, 이것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겐 매우 성가신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공공 정책에 영향을 주고 싶다는 희망과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 사이를 꽤나 성공적으로 조율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과정 중에 그것을 초월하는 시간과 짬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매일매일 계속해서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투쟁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에게 소망에 대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이 직업에서 매우 성공적이라면 아마도 저와 같이 회사를 운영하고, 온갖 미팅에 분주히 다니고, 보험에 대해 골머리를 썩이고, 일을 수주하고, 직원들 월급을 고민하고, 계약서를 놓고 이래저래 협상을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주시하세요. 유연하게 남보다 뛰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이거다 싶으면 당신의 전부를 던져서 도전해보세요.저는 1,000권이 넘는 책을 갖고 있지만, 특별히 아끼는 책이 있다기보다는 각각의 때와 경우에 맞는 책은 모두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봅니다. 저는 책을 사랑하고 아끼고 자주 봅니다. 반복해서 읽는 경우도 많구요. 강의에 인용하거나 저희 직원들에게 어떤 부분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책이란 건 그야말로 인생의 벗이죠.
  • 이재연 ․ 윤영조 _ 조경디자인 린(주) 대표이사
    Lee, Jae Yeon ․ Yoon, Young JoLHYn Landscape Architecture Design Company 조경가 인터뷰 시즌2‘다시 조경가다!’ 난데없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수많은 폐인들을 양산한 TV 드라마에나 붙을 법한 ‘시즌제’를 꺼내든 까닭은 이 코너가 지난 2009년 1월호부터 10월호까지 진행되었던 ‘조경가 인터뷰’의 부활 내지는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여 그때를 기억하거나 애독해주었던 독자들은 반가워 할 수도 있겠으나, 역시 형만 한 아우 없고 시즌1보다 나은 시즌2 드라마를 찾기 어렵다는 공식(?) 앞에 살짝 부담감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조경가’에 주목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하는 2013년 <환경과조경> 편집방향이 첫 번째요. 두 번째는 시즌1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조경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다. 이 땅에 조경이 도입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가까이 인지되지 못하고 있는 ‘조경가’라는 타이틀과 역할을 제대로 알려보자는 의도이다. 소위 말하는 전문인을 나타내는 글자 ‘가家’가 단지 건축인들에게만 붙는 접미사가 아니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랄까. 세 번째는 한국 조경가들에 대한 ‘작가론 혹은 작품론’에 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므로 잡지에서 조경가에 대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담아내면 앞으로의 연구가 보다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다소 거창한 이유들 앞에 글을 쓰기가 점점 무거워지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인터뷰에 나서기로 한다. 그렇다면, 어떤 조경가를 소개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인터뷰할 조경가를 선정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이번에는 그동안 <환경과조경>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주류 조경가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비주류 조경가를 포함 신진 조경가를 새롭게 발굴해보자는 취지도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숙고 끝에, 계획안으로만 존재하는 작품이 아닌 실제로 완공된 작품을 가진 조경가를 대상으로 하며, 선정은 ‘편집부 마음’이란 결론을 내렸다. 자칫 무모하며 일방적일 수도 있으며 이기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그래서 공신력을 심각하게 저하시킬 수도 있는 모호한 기준을 내건 까닭은 지난 시즌1을 통해 명확하고 냉철한 선정기준이 오히려 적절한 인터뷰 대상자를 찾는데 상당한 걸림돌이 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조경가를 소개하는 데는 고루함보다는 자유함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다. 물론 지난번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앞으로 계속 인터뷰를 진행하며 차차 더 나은 선정기준과 보다 진일보한 소개방법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자, 이제 감히 독자들께 부탁드린다. 이 코너를 통해 다양한 조경가들의 육성을 담아내고자 노력할 터이니, 부디 창의적인 시각과 새로운 해석을 통해 조경가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 주시고, 평론 및 작가론 연구의 밑거름이 될 풍성한 담론들을 확대, 재생산해주시길 말이다. 그럼 이제 시즌2 첫 번째 초대 손님을 모셔볼까 한다.2012년 조경디자인 린(주) 설계시공 준공작아카밸리 이천 캠퍼스(Acavalley Icheon Campus)Acavalley는 Academia와 Valley의 합성어로 경기도 이천 설봉산 숲 속에 마련된 어린이를 위한 교육, 문화, 복지공간으로 유치원, 어린이집, 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로 이루어진 복합타운이다.총 2,500평의 대지에 연면적 1,600평의 규모로 부대시설로는 어린이도서관, 공연장, 키즈카페, 스케이트장, 골프연습장, 영어마을, 체육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고품격 복합 유아 교육기관이다.조경설계 및 시공 _ 조경디자인 린(주)발주 _ 아카밸리 이천캠퍼스위치 _ 경기도 이천시 사음동 482-48대지면적 _ 8,590㎡에디터 _ 손석범사진 _ 조경디자인 린(주)
  • 광주 중앙근린공원 조성계획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공모전 시민심사
    광주의 큰 숲…중앙공원 시민이 낳고, 전문가가 기르는 공원 광주 중앙근린공원의 새로운 계획 마련의 필요성이 시민들에 의해 제기되어 공모전이 시작되었으나 실제 계획안 마련과 설계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요구된다. 때문에 시민들이 목소리를 모아 광주시와 (사)한국조경학회에 광주 중앙근린공원 조성의 뜻을 전한 것이다. 이번 공모의 가장 큰 의의는 공원을 이용하는 주체가 공원 조성의 주체로 직접 참여했다는 것이다. 도시공원을 만드는 주체는 조경 전문가와 지자체이다. 하지만 그 공원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는 시민들에게 달려있다. 아무리 잘 계획되고 만들어진 공원이라 할지라도 실제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전문가들의 식견에 부합하는 전문가대상과 시민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시민대상. 하나의 대상지에서 선정된 2개의 안이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실제 대상지에 녹아들어갈 수 있을지,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를 남기게 되었다. 녹색성장시대로 불리며 도시 내 녹지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증가하는 시점에 수많은 공원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민들의 녹지에 대한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녹지를 지켜내려는 조경가들의 열정 어린 노력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가 만나,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원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국가도시공원의 명문화를 앞당길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30년간 미집행 된 상태로 방치된 2,941,637㎡에 달하는 “대형공원”, 이곳에 “시민들의 요구”와 전문성을 가진 “신진조경가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담기 위해 달려온 88일 간의 여정은 공원일몰제에 대처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민과 전문가가 하나 된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공원 조성과정에서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보다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 2012 조경기술세미나
    전환기 조경설계업,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2012년은 조경업 전체가 그 어떤 때보다 추운 한 해였다. 조경 설계분야 또한 급속도로 위기를 맞이했으며 하나같이 이보다 더 힘들 수는 없다고들 말한다. 이러한 때에 선진국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으며 현재 우리의 부족한 점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색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때마침 12월 12일에 열린 2012 조경기술세미나에서는 ‘전환기 조경설계업,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주제로 선진사례의 발표와 전반적인 토론을 통해 설계업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 싸이와 황지해의 한국성
    서양 사가들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쭉 찢어진 눈과 노란 피부의 악귀들을. 그들은 13세기 때 난데없이 유럽의 관문인 동유럽에 들이닥쳤다.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지나간 도시는 시체와 잿더미뿐이었으니. 물론 용맹한 기사들로 구성된 유럽연합군이 맞섰다. 그러나 기사단은 허울만 좋았지 날쌘 악귀들의 제물에 불과했다. 워낙 압도적인 존재였기에 이제 대적은 불가능해 보였다. 전 유럽이 공포로 얼어붙었다. 얼마나 겁에 질렸으면 스스로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의 형벌로 보기까지 했을까?잘 알다시피 그 악귀는 몽고 기마병이다. 그로부터 약 800년 뒤인 2012년. 그 때와 똑같이 말을 타고 싸이가 달려갔다. 천리마보다 빠른 투명마였다. 유튜브를 이용해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찢어진 눈과 짧은 다리, 영락없는 몽고 기마병이다. 다만 이번에는 공포가 아닌 ‘흥겨움’으로 무장했고, 쳐들어간 게 아니라 환대를 받았다. 곧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그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소위 식스팩과 꽃미남의 자칭 월드스타도 실패했다. 동남아를 휘젓던 화려한 군무도 잘 먹히지 않았다. 그러던 서구의 벽을, 싸이는 단숨에 뚫었다. 그들은 대체 싸이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월드스타가 뽐내던 근육질 몸도, 조막만한 얼굴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이미 내가 가진 것은 남이 가지고 있어도 흥미가 없지 않는가? 더구나 내가 오리지널을 가졌는데 짝퉁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 기껏해야 “그것 참, 흉내도 잘 내는구나!”가 고작일 것이다. 싸이는 이미 예전에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가장 세계적인 것이므로, 극단의 토속적인 외모로 한국을 알릴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오래전부터 건축이, 그리고 상당기간 조경이 고민해 온 ‘한국성’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재작년과 작년의 두 해에 걸쳐 첼시 플라워쇼에서 수상한 황지해 작가의 정원도 마찬가지다. 더 타임스가 ‘가장 독창적인 정원’이라 평했으니 황지해도 애초에 짝퉁이 될 생각은 없었나 보다.그의 정원은 재작년엔 해우소, 작년엔 DMZ가 모티브였다. 남에게 드러내기 싫은 공간이자 아픈 우리 역사의 한 지점이다. 그것이 독창적인 곳으로 변했고, 심금을 울리는 장소로 거듭났다. DMZ 정원에 “명품 나무와 꽃 대신 들풀, 야생화를 심었다.”는 그의 설명에서는 싸이의 음악을 B급 정서로 소개하는 뉴스가 조용히 중첩된다. A급을 기준으로 했을 때 B급일 뿐이지 사실 저잣거리 정서이자 대중정서로 봐야 한다. 한국성의 가치는 당연히 소수 1%의 것보다 99%의 것이 더 크다. 비싸고 희귀한 식물보다 우리 주변에서 어릴 때부터 흔히 봐 왔던 식물들을 심은 DMZ 정원의 가치가 만만찮은 이유이다. DMZ 정원에는 군인들이 지혈할 때 쓰던 쑥, 배 아플 때 짜서 마신 질경이, 대체식량이 되어준 머루와 다래, 냉이, 민들레가 심어졌다. 굳이 스토리텔링을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연상 작용이 활발해지고 이야기가 연결된다. 고관대작 양반집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생활사였기 때문이리라. 실재하는 삶이야말로 항상 최고의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정원 역사가 긴 유럽에서 어설프게 그들을 흉내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방형과 원형의 평면기하학과 몇 가지 박제된 구조물로 틀에 박힌 문화적 상징을 만들지도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정원은 남다르다. 종내 한국적 공간에 이르지 못하는, 한국적 조경설계만을 무한 재생산하는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흔히 볼 수 있다. 설계의도를 현란한 수사로 포장한 작품들을. 그러나 언어적인 수사학이 공간의 한국성을 보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별다른 인과관계도 없다. 그들이 즐겨 차용하는 언어학에서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의 차이만큼이나 그 간극은 오히려 크다.황지해의 정원은 유럽 현지인들에게 이질적 정서를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다. 거울속의 나를 보는듯한 동질성보다 타자적인 충격은 항상 잊었던 것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형태적인 이질성 속에서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하나씩 그 맥락이 이해될 때 조용히 머리가 끄덕여졌을 것이다. 감동이 오기 위해서는 이렇게 공감이란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 공감은 소통이 원활할 때 오는데, 공통된 경험만큼이나 원활한 소통을 돕는 것은 없다. 영국이 한국전 참전국이라는 것은 DMZ 정원의 성공을 위한 마지막 장치였다. 그리고 이것을 미리 읽어낸 것은 온전히 작가의 덕이다. WTO에 이은 FTA 체제화는 이미 조경시장의 국내외 혈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외국에 나가 저들과 경쟁해야 하고, 우리 시장을 넘보는 저들과 맞서야 한다. 그러나 설계시장을 보면 외국 진출은 미미한 상태에서 오히려 외국 업체의 국내 진출만 잦아지고 있다. 작년에 큰 관심사였던 용산공원 현상설계는 결국 외국 업체의 안이 뽑혔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과 장소성이 중시된 대상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외국 업체를 압도하지 못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흔히 실무에서는 서구의 현상설계 당선작과 여러 사례들을 보며 그 기법을 익히는데 온통 몰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외 설계경향과 기법을 익히는 데만 온통 신경을 집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물론 베스트셀러는 항상 좋은 공부가 된다. 그러나 그것만 보아서는 시대적 추세와 경향을 바지런히 쫓아다닐 뿐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구축은 점차 요원해지고, 결국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 만족하는 신세가 된다. 용산공원의 추억은 뼈아프지만 깊이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시대에서 한국 조경이 산토끼는커녕 오히려 집토끼도 놓칠 수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이와 황지해는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의 한 자락을 슬며시 보여주었다. Historians in the Western world can never forget the demons from Asia. They, all of a sudden, attacked the eastern Europe, the gateway to other European nations. They left behind none but bodies of the deceased and ashes of the buildings burnt to the ground. A group of courageous knights tried to fight back only to fail unmatched by the seasoned monsters of battles. European people were devastated by immense fear, desperate and helpless. They were so afraid that they even thought the disaster was God’s punishment for their moral corruption. As you know, these fierce warriors were Mongolian horsemen. In 2012, after 800 years or so, pop star Psy rushed to the countries, riding his own invisible horse finer than any other horse in the world. He could be moving at the speed of light via YouTube. His appearance might have reminded his audience of Mongolian cavalry, but this time it is not panic, but excitement that this horseman’s trying to offer. He is not being feared, but welcomed. The clattering of his invisible horse’s hoofs is now being heard everywhere in the world. In fact, few of the Korean idol stars have made a splash on the global scale so far, even though they are beautiful and talented and sometimes call themselves so called world stars. On the other hand, Psy, seemingly rather easy in some aspects, has taken the world by storm. He’s not a muscular and handsome guy in the slightest. Then what do people like so much about Psy? Psy once mentioned that ‘to be Korean can be to be global, and someday he can make his native country be known in the world with his ‘folksy’ look.’ This allows us to think again about what can be considered Korean in architecture, in particular, in landscape architecture. So do the gardens of Jihae Hwang, who won medals at Chelsea Flower Show for 2 consecutive years. As The Times described her work as the most distinctive, she must have demonstrated ingenuity. The motives for the last year and this year were Hae-woo-so (Emptying One’s Mind) and De-militarized Zone respectively. The toilet of a temple, which is believed to be where you can empty your mind, is never a place you’d like to share with others, and the still inhabited area between two hostile military forces makes us remember such a tragic moment in our history. She transformed them into unique spaces touching people’s hearts. Hwang said she had planted wild herbs and flowers instead of luxurious trees and plants. This kind attitude is also to be observed in Psy’s music, which has often been described as some sort of B-list culture. However, this is not merely a B-class approach in comparison with A-class standard, but represents, at the same time, the emotions of the streets, that is, the feelings of ordinary people. The core of Korean emotion is not about top 1%, but about the rest of people. The true value of DMZ Forbidden Garden is appreciated when we understand the reason that the gardener planted familiar species instead of expensive and rare ones. As the designer herself states ‘the barbed wire fence surrounding the garden creates a feeling of mystery and unease. Carefully considered installations feature the remains of warfare, including defensive walls, trenches and charred trees. […] The watchtower reminds visitors of the surveillance of the DMZ and also provides an observation point for the garden.’ The garden inspires audience to come up with images, which, in turn, leads to storytelling. The story’s focus is not on an affluent but boring life of aristocrats, but on an everyday of common people. It is the portrait of real life that can create a great impression. Hwang’s garden is distinctive in that she does not imitate the European tradition, never creating stereotyped cultural symbols. I have witnessed many entries to various design competitions. The designers tried to explain the intention of their work, rarely to succeed. The language itself never guarantees the relevance of the work, and how much the work represents the quality of being uniquely Korean. There is no causal relationship to be found. The gardens created by Jihae Hwang must have provided Europeans with an opportunity to experience different kind of emotions. Feeling strange usually reminds us of the things that we have long forgotten. We sympathize when we think of the meaning of being different and gradually understand the context where it is created. Sympathy is essential for us to be deeply moved by something, and sympathy is created when there is an effective communication process; in other words, when people have something in common. Great Britain is one of the 16 nations that participated in the Korean conflict, and that contributed, more or less, to making Hwang’s garden a success. As the scheme of WTO, and now that of FTA rules the country, the market has become a battlefield for both international and local companies. However, there are far more foreign organizations that enter the local market than the Korean landscape architects that strive to expand their business overseas. We should ask ourselves how much effort we have made to realize what is truly Korean in the landscape architectural works. Yes, we have to keep learning from others and being sensitive to international trends, but we should also create and develop our own characters, in order not to be just fast followers. Psy and Jihae Hwang present a priceless lesson for us to overcome ourselves and find a way to a new direction.
  • 교환 불가능한 공간 혹은 공간감에 대하여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공간을 지각하거나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하면, 다들 어불성설이라 할 것이다. 어디를 가나 우리 몸이 이미 공간 속에 처하니, 공간을 떠나 살 방도가 아예 없다고도 말할 것이다. 그런데, 공간이라는 말을, 현대건축의 본질은 빈 공간void의 형식화에 있다고 주창한 콜린 로우의 맥락에서, 그러니까 현대건축의 관점에서 쓰기로 한다면, 그러한 명백히 우문 같아 보이는 물음에, 우답이든 현답이든, 즉답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빈 공간은 모조리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대건축을 창조한 것은 실수라는, 그리하여 그 실수의 결과물을 정크스페이스라 칭한 렘 콜하스의 다음의 주장을 들으면,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렘에 따르면, 우리는 목하 정크스페이스 곧 “에스컬레이터와 공기조화air-conditioning가 만나 석고판sheetrock이라는 인큐베이터에서 임신되어 나온 산물이 셋은 역사책에 빠져있다”에서 살고 있다. 본디그러니까, 적어도 건축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지’ 곧 현상/표상에 존재한다고 주장한 비트루비우스 당대부터 이미지로 존재해온 건축은, 다국적 자본이 가상의 공간에서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경제력이 곧 정치력이 된 소비사회인 스펙터클과 시뮬라크르 사회에서, 무겁고물질로 출현하는 까닭에, 느리고디자인 시점과 공사완료 시점 간의 시차로 인해, 기술 의존적이고, 자본 기생적인 조건 안에서 두 종류의 밀도광각과 정보로 스펙터클의 경쟁에 참여하면서 경제와 더불어 오직 확장일로의 닦달 속에 놓여있는위계를 축적으로, 구성을 첨가로 대체하는 까닭에, 필연적으로 껍질에 의해 봉합“벽들이 소멸되고 오직 칸막이들로만 구획되는, 종종 금으로 마감된 피막으로 어른거리는, 구조가 장식 밑에서 보이지 않게 신음하거나, 더 나쁘게는 구조가 장식이” 되는 경로를 밟았고, 그리하여심지어 디테일 곧 재료들의 결합도 “호치키스와 테이프로 규정”되는 탓에, 공간 혹은 공간감을 어쩔 수 없이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론적 성찰 앞에서는, 처음에 던진 질문의 크기가 좀 더 커졌을 것이다. 물론 기술자본주의가 생산해내는, 따라서 당연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정렬된 정크스페이스도 빈 공간을 지녔다. 어찌 공간 없는 건축이, 그리고 도시가 존재하겠는가. 그런데 그것은 정확히 “빅 브라더의 배의 내부”로서, 우리의 감각과 감성과 욕망을 선취함으로써 내어놓은 브랜드스페이스들의 카탈로그인 까닭에, 앞서 언급한 태동기와 성기에 속한, 그러니까 20세기 초의 현대건축의 핵을 구성한, 그러한 공간이 아니고, 따라서 그러한 공간감과 동떨어져 있다. 그것은, 쾌락과 쾌적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능력의 뇌관을 제거시킨채 파편으로 존재하는,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모든 파편들이 가시적인, 현기증 나는 팝옵티콘적 대중 영합주의 공간으로, 언제든 어디서든 교환가능하고 복제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흐리멍덩함의 퍼지fuzzy 제국”을 이루어, 혼돈으로부터 만들어내는 질서 잡힌 공간이 아니라, 동질적인 것들로써 생산되는 회화적인 공간이며, 첨가적이고 중층적이고 가벼운 공간으로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똑바른 것과 굽은 것, 포만한 자와 굶주린 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융합해서, 영원히 탈구된 것들을 이음매 없는 쪽매붙임으로 제공”하는, “디자인은 없고 다만 창조적인 증식”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정크스페이스가 아닌 공간 혹은 공간감, 그러니까 교환 불가능한 공간은 어디에 현존할 수 있거나 지각/경험 가능한 것인가? 돈이 운동하는 것이것이 바로 자본의 정의다은, 인간의 모든 욕구와 욕동과 충동과 욕망이, 최첨단 수리통계와 심리학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기술과 기법에 의해 영토화되고, 탈영토화되고, 재영토화되는 순환구조에 기입됨으로써만 가능한 탓에, 결국 돈이 정지된 곳이거나, 돈이 되지 않는 곳일 수밖에 없다. 풀과 나무, 심지어 청정한 공기마저 상품, 그것도 지구적 스케일의 긴박한 생태위기감 조성 탓에, 새롭게 떠오른 핫 아이템이 되었으니, 역설적으로, 무소부재한 상품포장들의 파편들이 우발적으로 아나모포시스anamorphosis를 그려내는 상황이거나, 그것들을 매우 정치하게 재조직해내는 거대 스케일 디자인의 미세한 창발적 작업에 기대는 것이 훨씬 더 현실가능하지 않을까? 혹은, 오늘날의 건축이 정크스페이스로 껍질존재가 되었으니, 거꾸로, 곁 혹은 딸린 존재로 머물러왔던 땅과 풀들과 나무들과 바람과 하늘에, 자본주의의 망에 이미 포획된 그것들의 껍질은 미련 없이 포기하고, 빈 공간의 부피를 만들어주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이지 아닐까? 그것이 본디의 의미의 땅의 경지경, 빛의 경광경, 바람의 경풍경이지 않을까? 익숙한 상품들의 전혀 다른 범주화로, 그리고 그 껍질들로써 교환 불가능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도무지 불가능한 일일까? If you say you can’t recognize or experience space, most people will respond that doesn’t make sense at all. They may even say that since we are already in space wherever we go, there is not a single way we can live without being in any space. As Colin Rowe points out, however, who maintained that the modern architecture is formation of void, it might be somewhat difficult to come up with the answer to this question of space if it is to be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the contemporary architecture. It is mainly because the void of a modern society is completely fragmented. Moreover, it appears even truer when you consider the remark of Rem Koolhaas, who said that the modern architecture is created by mistakes, and the result of those mistakes can be referred to as Junkspace. According to Koolhaas, we are living in Junkspace, which is “product of the encounter between escalator and air conditioning, conceived in an incubator of sheetrock (all three missing from the history books).” As architecture, which has long been perceived as an image, now exists in a fast paced society where multinational capital is moving at the speed of light through cyberspace and a consumer society where economic power is regarded as political power, under the unavoidable pressure of its infinite expansion, confronted with the serious competition of creating spectacles, it is believed that architecture has, inevitably, been deprived of its space or its sense of space. Now we are faced with a much bigger question. Junkspace being produced by technology-oriented capitalism is sure to possess void. How could there be architecture or cities without space? However, since it is nothing but the catalog of brand spaces created with our sense, sensitivity, and desire already deprived, it can never be the same space which played an integral part of modern architecture in the early 20th century, consequently far removed from the same sense of space. It is just a sum of fragmented spaces existing solely for pleasure and comfort, and, at the same time, each fragment is visual space of popularism leading to serious vertigo. Therefore, it is exchangeable and copiable, anytime and anywhere. It is “light-weight space where the public and private, the straight and bent, the satiated and starving, and the elite and pop culture are all mixed together for seamless marquetry,” and where there is not design but some creative reproduction.” Where do we possibly recognize and experience unexchangeable space different from Junkspace? As the core of capitalism is the method and technology of advertisement, which manipulates human lust, desire, and impulse exploiting the most advanced statistics and psychology, and this is where money flows in, we can experience true space or sense of space only at a place where money stops moving or it’s impossible to many money. We are living in an era where even the ecological catastrophe on a global scale is made to contribute to selling plants, trees, and fresh air as products, or hot items in some cases. Now that modern architecture has become Junkspace, an abstract surfacel without its content, it might be a more realistic approach to create volume of void with earth, plants, wind, and the sky, abandoning what has been already captivated by the power of capitalism and never looking back. Is it really impossible to compose unexchangeable space by differently categorizing some familiar ite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