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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용득, 동인조경 마당
    시작하며 2009년 1월부터 달라진 네이버에서 “한국인”코너를 즐겨보고 있다. 미술가, 건축가, 의사, 스포츠인, 영화인 등 카테고리는 총 다섯으로, ‘가’가 둘에, ‘사’가 하나, ‘인‘이 둘이다. 의사 같은 경우에는 전공분야별로 100명의 의사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100개 의학분야의 해당 교수들에게 “가족이 귀하가 전공하는 분야의 병에 걸렸을 때 어떤 의사에게 보내고 싶은지 5명씩 추천해 달라”고 묻고 이를 집계해서 1명씩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질문이 참 와닿기도 하고, 인기투표와 같은 이런 설문조사의 위험성이 편치 않기도 하다. 그렇지만, 제한된 기회를 통해 누군가를 소개해야 할 때, 설문조사만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지면을 시작한 1월호에 선정의 어려움을 구구절절 소개한 바 있으니 상세한 부연은 생략하더라도, 매호 간단한 선정 이유를 밝히며 글을 시작하는 까닭은 설문조사와 같은 방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정 원칙은 “최근 개최된 설계공모 당선자나 근래에 완공된 작품을 설계한 조경가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뿐이다. 설문조사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기왕이면 최근에 잡지를 통해 소개되는 작품의 뒷이야기도 좀 들어보자는 취지로 그러지 않았다. 또 설계공모의 취지 중 하나가 신진 작가의 등용문이니, 자연스레 새로운 조경가들을 소개하는 기회도 될 수 있으려니 했다. 이달의 인터뷰이(interviewee)인 황용득 소장이 ‘조경가 인터뷰’같은 코너를 통해서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힐 때까지만 해도, 원칙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황용득 소장의 말을 듣고 나서 되짚어보니 첫 회의 박윤진·김정윤 소장을 제외하곤, 2월부터 4월까지 모두 창립한 지 10년 이상 된 설계사무소 대표자들을 연달아 모시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이다. 원칙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운영의 묘를 찾아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번 달은 3월호에 이어, 1월의 광교 특화 컨셉과 2월의 광교 호수공원 이외에 규모가 컸던 설계공모전이었던 영종하늘도시 당선자이자, 의정부민락(2)지구 당선자인 동인조경 마당(이하 마당)의 황용득 소장을 모셨다. 둘 모두 그룹한 어소시에이트(대표 박명권)와 공동작업이었고, 황용득 소장은 광교 특화 컨셉 지명설계공모에 초청받기도 했으며, 오는 5월 5일 완공 예정인 상상어린이공원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황용득 _ 조경가로서 당신은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만의 고유한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제 3자가 인정을 해주고 안 해주고는 중요치 않다. 작업을 계속해나갈수록 자신만의 내러티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내가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원칙은 무엇인지를 늘 자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점차 정리된 화두가 대략 네 가지 정도 있는데, 첫 번째는 “자립형 체계”에 대한 관심이다. “신 에너지의 창출”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공원과 같은 조경공간을 소비적 구조가 아닌 생산적 구조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땅을 공원으로 만들게 되었다 치자. 그런데 그 공원은 공원으로 조성되기 이전에 논이거나 밭이거나 숲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생산해내던 시기가 있던 대지였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공원으로 그 땅이 바뀌게 되면, 그곳에서는 오로지 소비만 이루어질 뿐이다. 더구나 그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요즘 들어‘저탄소 녹색성장’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는데, 그 이전에 이미 소비를 줄이고 자족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에너지를 생산해내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로 공원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규모 공간이라면 몰라도, 일정 규모 이상이라면 그에 대한 고민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한다. 특히 대형 공원은 어떠한 제약도 없이 태양열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태양 에너지의 생산이 가능하고, 그 에너지를 공원 내의 조명등에 사용할 수도 있다. 자체적인 에너지 순환이 가능한 것이다. 또 시설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식재량을 늘려서 이산화탄소 저감에 기여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것을 비롯, 새로운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자립형 체계가 가능한지를 계속해서 찾고, 그런 고민을 디자인에 반영해보고자 한다. 그런 모색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면, 거기서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파주 Ubi Park에서 실제로 제안했던 것인데, 태양 전지판으로 둘러싸인 경관 구조물이 세워지게 되면,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고, 그 자체가 색다른 경관요소가 되면서 동시에 에너지 발전소가 될 수 있다. 태양 전지판이 조경자재처럼 쓰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다른 디자인이 결과로 나올 수 있다.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서 요즘에는 Auto Park의 구현을 모색중이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커나가는 공원을 우리가 제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 우연한 풍경은 없다(3)
    도시의 무지개, 우주가 보여준 찰나의 아름다움 찬란한 만남 위키백과에게 물어보니 무지개는 ‘공기 중에 떠 있는 수많은 물방울에 태양빛이 닿아 그 물방울 안에서 굴절과 반사가 일어날 때, 물방울이 프리즘과 같은 작용을 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그러니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수많은 물방울과 태양빛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를 보는 당신도 있어야 한다. 당신이 적당한 위치에 서 있어야만, 당신이 발견해주어야만 무지개는 존재한다. 이 삼자간의 대면이 있어야 무지개는 있다. 현상학적 표현으로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우주, 무한을 바라보기 자연의 기본적 원소들인 공기, 물, 태양과의 만남. 궁극적으로 이러한 만남은 당신과 ‘우주’와의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나타나기 전에도 있었고,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있을 근원적인 것들이 무시간적으로 순환하는 우주. 우주라는 커다란 단어 앞에서 ‘만남’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으니 우주의 현상을 잠깐 엿보는 순간이라고 바꿔 말해야겠다. 우리의 문명이 만든 세상이 전부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지만, 우주는 문득 문득 자신을 보여줘 도시 너머 ‘저기’가 있음을 암시한다. 누구는 계곡의 가파름을 가벼이 무시하고 즐기기도 하고, 또 누구는 분수라는 것을 발명하여 도시 속에 들여 놓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무지개는 의도적으로 만들 수 없다. 가끔은 우주를 만나자 이 도시에서, 우주를 만나자 혹은 무한을 바라보자. 시간을 쪼개어, 들로 바다로 산으로 달려갈 수도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도시 안의 일상에서 ‘찬란하게 잠깐’이나마. 섬광같이 찬란히 빛나는 그 만남을 갖자.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상과 도시를 아름답게 보고자 하는 마음과 눈이 필요할 터이다. 누가 보건 말건, 우주는 자신의 순환을 지속하면서 무심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뿐이니, 찰나의 풍경을 엿보는 건 온전히 우리의 몫. 조경이라는 작업도, 공공미술이라는 작업도 우리를 순수한 자연의 한 요소로 되돌리는 그런 작업일 수 있으니, 우리부터 그런 감수성을 챙기자. 그리고 사람들이 가끔은 우주를 만나도록 도와주자
  • 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시작하며조경가 인터뷰의 발단이 되었던『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에 썼던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그룹한=아파트조경’이란 세간의 인식은 박명권 대표에게 약일까, 독일까? 잘 할 수 있는 것, 지금 하고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사이에 괴리가 있진 않을까? 공간을 테마로 풀어내는 걸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생태적이라는 수식은 어디까지 붙일 수 있을까?” 사실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이하 그룹한)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펴낸 작품집을 보며 어느 정도의 궁금증은 해소된 터였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었기에, 거기에 몇 가지 새로운 궁금증을 더해 박명권 대표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그룹한은 2008년 12월호에 실린 영종하늘도시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 조경현상설계공모와 지난달 잡지에 실린 의정부민락(2)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공모의 당선자이다. 둘 모두 동인조경 마당(대표 황용득)과의 공동작업이었는데, 영종은 동인조경 마당이 대표 설계사였고, 의정부민락은 그룹한이 대표 설계사였다. 또 그룹한은 광교 호수공원 국제설계공모에서 필드 오퍼레이션스(대표 제임스 코너)와 함께 “8경”이란 작품을 출품해 2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대 규모의 설계사무소 내비게이션의 화살표만 쳐다보며 핸들을 돌리다보니, 어느새 이수역 부근. 내방역과 이수역 사이의 눈에 잘 띄는 언덕에 위치한 그룹한 사옥의 외관에는 리모델링 전에는 없던 “그룹한”이란 큼지막한 사인물이 내걸려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 사옥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그 건물이 그룹한 사옥인지 알 수 있는 사인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명함에도 번지수와 층수만 기재되어 있을 뿐, 그룹한빌딩이란 표시는 없었다. 당시에는 아무래도 주변의 이목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룹한은 언제부터인가 분야 내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 관심과 호기심은 대략 두 가지 방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 설계사무소의 규모다. 사옥의 3개층을 쓰고 있는 서울 본사와 부산지소, 그리고 미국 뉴욕과 보스턴지소의 임직원을 모두 합하면 무려 직원수가 103명에 달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조경설계사무소인 것이다. 더구나 그룹한을 제외하고는 50명을 넘는 설계사무소가 1곳 정도에 불과하고, 30명 이상인 설계사무소도 채 열 곳이 되지 않을 정도로 국내 조경설계분야에는 대규모 오피스가 많지 않다보니(엔지니어링 제외), 그룹한의 규모는 이래저래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 가지는“아파트 조경과 테마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우선 대형 디자인 오피스 이야기부터 들어보았다. 사실 아뜰리에 형태의 소규모를 지향하는 설계사무소가 있는가 하면,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진행해나가는 대형 디자인 오피스가 공존하는 상황은 국내만의 추세가 아니다. 1939년 가렛 에크보 등에 의해 설립된 EDAW는 세계 각국에 36개의 사무소와 1천7백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매머드급 디자인 오피스이고, 히데오 사사키가 설립한 사사키 어소시에이츠 역시 보스턴 본사에만 약 240명,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 약 4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또 최근 잇따른 ASLA Award 수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의 Turenscape는 1998년 3명의 직원으로 출발해 10여년만에 300여명의 디자이너가 근무하고 있는 중국 최대의 디자인 오피스로 성장했다. 이에 반해 최근 국내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발모리 어소시에이츠는 2005년 특집을 진행할 당시 직원이 11명에 불과했고, 필드 오퍼레이션스 역시 직원이 10명을 넘지 않은 창업 초기에도 이슈가 되는 작품들을 다수 발표했었다. 대규모와 소규모 설계사무소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터인데, 그룹한은 어떻게 대형 디자인 오피스로 커나가게 되었을까? 이것이 첫 번째 궁금증이었다. 박명권 _대학 시절, 전국조경학과학생연합회 회장을 했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업계 사정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조경계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종합 조경업체도 11곳 밖에 없었고, 조경설계사무소는 한림을 비롯해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설계사무소와 협회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인턴을 해보았는데, 특히 건축이나 토목분야와 비교했을 때 조경업의 위상이 너무 낮았다. 이건 조경계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 내 자신이 조경에 대한 비전을 갖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학부생 시절에 설계를 무척 좋아하고 적성에도 잘 맞는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이 컸다. 조경설계가 좋긴 한데, 도무지 미래가 보이질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학 선배들도 대부분 관공서나 공기업, 대기업 혹은 학계로 진출했지, 조경업체에 취직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전조련 학생회장을 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게 된 후배들과 대학 졸업 전에 실내조경 회사를 창업했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설계실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현업에서 겪어본 조경설계업의 현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건축, 토목과의 격차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이 생겨서, 이 조경에 대한 ‘한’을 좀 풀어보자는 각오로 그룹한을 창업했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룹한이란 이름은 그래서 짓게 된 것이다(웃음).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설계사무소로 ‘크게’ 키워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중의적으로 그룹‘한’이라고 지은 것이다. 또 조경설계는 다른 예술분야와 달리 개인 보다는 팀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룹’을 붙였다. 아무튼 초기의 열악한 상황 때문에, 회사를 설립하면서 조경설계의 사회적 인지도를 높여서 우리 사회에 조경설계에 대한 인식을 뿌리 내리고, 후배들에게 조경설계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처음에 시작할 때는 큰 규모의 설계사무소 사례를 보질 못했다. 국내에는 조경설계사무소 자체가 많지 않았고, 해외와는 교류가 적어서 해외 업체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뜰리에 규모로 하겠다’ 혹은 ‘큰 규모로 하겠다’란 생각 자체가 없었다. 다만 ‘조경설계를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생각만 가지고 일을 해나가다보니 어느새 직원이 30명이 되었는데, 그때까지는 그냥 일만 열심히 하면 됐었다. 그런데 30명에서 50명으로 늘어날 때, 특히 50명이 넘어가면서는, 이를테면 작가적인 마인드만 가지고는 오피스를 끌고 갈 수 없었다. 100명에 육박해가면서 더 키워나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을 때, 와튼스쿨 최고경영자 과정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 시간동안 차분히 큰 회사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경영이론도 습득하게 되어, 그룹한은 대기업은 아니지만 조직구성이나 시스템을 조금씩 개편하면서 대규모 디자인 오피스로의 성장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 우연한 풍경은 없다(2)
    빠이(Pai), 하이(Hyperlink, Hybrid 그리고 Hi)의 장소성 만국인이 ‘멍’ 때리는, 유토빠이 빠이는 유토빠이(UtoPai)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유토피아라는 것이다. 치앙마이의 한국인 민박집에서 만난 한 배낭여행자는 빠이의 홍보대사를 자처해, 만나는 모든 이에게 ‘빠이 방문’을 권했다. “ 그곳의 무엇이 좋으냐?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요즘 말로 ‘멍 때리는 곳’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다른 말로 하면 휴식하는 곳, 게으름 피울 수 있는 곳, 빈둥거리는 곳, 그냥 죽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영어로는 ‘killing time’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별 이유 없이 길을 서성이고 강가에 누워 책을 보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그렇게 각종 인종이 멍 때리기를 하는 곳이 빠이, 유토빠이다. 맴돌면서 ‘Hi’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무엇보다 즐기는 일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20분이면 충분한 마을의 길을 맴도는 것이다. 네모난 마을의 처음과 끝이 따로 없이 연결되어 있는 길을 그냥 맴도는 것이다. 길을 맴돌면서 길거리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도 먹고, 좌판 물건을 구경하고 잠깐 잠깐 길에서 펼쳐지는 공연도 구경하고. 돌 때마다 다른 노점상이 나타나고 다른 이벤트가 있어 맴도는 것이 지루하지 않다. 계속 맴을 돌다보니 보는 이들을 계속 보지 않을 수 없다. 영어로 ‘하이(Hi!)’ 태국어로 ‘싸왔디 캅(카)!’. 그러면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통성명도 하게 된다. “또 만났네”, “그런데 너는 얼마나 빠이에 있을 거야?”, “다음 여행지는 어딘데?” 물론 “Where are you from?”도 잊지 않는다. 그러다 관계가 더 발전되면 수다를 떨기도 한다. “오늘은 뭘 하면서 하루를 보냈어?”, “어제는 왜 안 보였는데? 궁금했잖아”, 어떤 이는 맴을 돌다 친해진 노점상의 옆에 주저앉아 장사를 돕기도 한다. 이곳을 안내하는 많은 정보들이 ‘프렌드리(friendly)’를 자랑거리로 내세우는데, 그럴 만도 하다. 겔Jan Gehl은 우연한 만남이 거듭되다보면, 눈인사를 하게 되고 그러다 친구가 되기도 한다고 했는데 그의 이론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이 곳이다. 2008년 봄, 우연히 찾은 빠이의 매력에 빠져 네 달에 한 번씩은 찾고, 올 때 마다 보름 이상은 머문다는 한국 여자 분은 길에서 만난 미국인에게 “언제 다시 왔어?”라고 정말 ‘프렌드리’하게 인사를 한다. 그들은 이웃이다. 혼자 여행을 하는 이들은 모두가 이방인인 이곳에서 자신의 안부를 묻는 이를 만나고 다정함을 느끼고 소속감을 갖는다. 모두가 혼자이기 때문에 섞이는 것이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틀 머물려고 했던 계획을 바꾸어 2주일, 2주일만 머물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2개월, 2개월만 머물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2년. 그리고 그냥 주저앉기도 하면서 빠이오니어(paioneer)가 된다. 프랑스인, 미국인, 영국인이 아니라 파리지앵, 뉴욕커, 런더너이듯이 말이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그냥 그 장소의 일원으로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도 멍 때리면서. 하이퍼링크(Hyperlink)는 하이브리드(Hybird)를 부르고 신기하지 않은가? 수많은 발길이 잠깐 멈추어 이곳을, 이곳의 오묘한 장소성을,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그것도 산속 오지에다 말이다. 하이퍼링크의 시대이기에 가능한 하이브리드의 장소성이라고 감히 정의해본다. 인터넷과 로밍한 전화와 ATM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을 또 세계 각지로 하이퍼링크 시킨다. 이들이 묻혀온 다양한 문화는 ‘Hi’를 매개체 삼아 서로 뒤섞여 빠이를 만들었다. 근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비평적 지리학자 마세이(Doreen Massey, 2003, The conceptualization of place(in place in the world))의 “이 세상 어디에도 원주민은 없다”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글로벌 시대의 장소와 장소성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뿌리내림이나 고착성과 같은 장소성에 대한 전통적 이해 방식에서 벗어나 흐름, 이동, 연결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답한다. 또 최정민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2008, 현대 조경에서의 한국성에 관한 연구)에서 한국성이라는 것도 어떤 운명적인 자연이나 전통이 아니라 발견적이고, 생성적이고 전략적인 것이라면서 열린 태도를 강조했는데 ‘한국성’을 ‘빠이성’이라고 치환해보면 그의 진의가 보다 쉽게 다가온다.
  • 최원만, 신화컨설팅
    시작하며 기억은 정확치 않았다. 최원만 사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자료를 뒤적거리다 발견한 <환경과조경> 2001년 5월호 표지에는 자그마치 8명의 인물 사진이 실려 있었다. 지난호 이 지면에서‘박윤진·김정윤 소장이 올해의 조경인 수상자가 아니면서 표지에 인물사진이 실린 유일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고 했었는데, 보기 좋게 기억이 빗나가 버린 것이다. 당시“‘지금, 여기’조경인의 하루”라는 특별기획을 통해 소개했던 최원만 사장을 8년여만에 다시 지면에 모셨다. 표지에 인물사진이 실렸었는지는 기억치 못했지만, 당시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사용하던 신화컨설팅(이하 신화)의 논현동 사무실 풍경은 잔상이 꽤 오래도록 남았다. 특히 볕이 잘 들던 2층의 소장실은 온화한 최원만 소장(당시)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참 아늑했었다. 그때 신화의 설계특징을 물었을 때“색으로 치면 무채색이었으면 좋겠다. 대상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는 무채색”이라고 답했었는데,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지, 당시 16명이었던 직원은 얼마나 늘었는지, 광교·여의도·판교 당선작은 어떻게 안을 풀어나갔는지 등등의 궁금증을 안고 신사동 아이콘빌딩으로 이전한 신화의 4층 사무실로 들어섰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이 몸에 밴 탓인지, 말을 아끼는 편이어서 인터뷰 분량이 부족하진 않을까 살짝 걱정하면서……. 창립 20주년을 맞아 마침 올해가 1989년 12월 12일 처음 문을 연 신화컨설팅이 창립 20주년이 되는 해라, 우선 그 이야기로부터 말문을 열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김도경 교수(경희대)와 홍형순 교수(중부대), 그리고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이 신화를 가꾸어나가고 있는 유의열 회장과 최원만 사장, 이렇게 네 명의 멤버로 출발한 신화는 이제 직원 31명인 대표적인 한국조경설계사무소로 자리 잡았다. 서인과 한림이 대표자가 바뀌거나 중간에 휴지기가 있었던 것에 비해, 서안과 신화는 연속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한국조경설계의 변화와 성장을 이끈 대표적 사무소인 셈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그려나가고 있는 신화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 중심에 있는 최원만 사장의 디자인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졌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최원만 _ 물론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의 기억이 자꾸 새로워진다. 음식도 어렸을 때 먹던 음식을 나이 들어 다시 찾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잊고 지내던 것들에 대한 향수가 커졌다. 구체적으로 디자인에 집중해서 이야기하자면, 전에는 솔직히 디자인의 형태에 치중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보기 좋은 형태를 얻을 수 있을까, 보여지는 그림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런데 요즘엔 종이 위의 형태 보다는, 이 디자인이 결국 어떤 입면으로 서게 될 것인가, 적용할만한 자연소재는 새로운 것이 없을까를 고심한다. 콘크리트라 하더라도 세월이 흘러 전혀 다른 질감을 갖게되면, 하나의 자연소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소재 찾기에 몰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가 많아졌다. 가장 달라진 점은 어렸을 때 보았던 어떤 원형 기억과 같은 옛 모습을 창출하려고 할 때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설계 대상지의 기억을 찾고 싶고, 또 찾아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욕 과잉의 시기가 지나고, 정서적 혹은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것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
  • 우연한 풍경은 없다(1) 옥수동 계단, 세월에 새긴 인정투쟁의 리듬
    별 생각 없이 매일 스치는 풍경, 그 앞에 문득 서보자. 그리고 말을 건네 보자. 오늘 하루 어땠냐고? 좀 생뚱맞은 질문도 던져보자. 당신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냐고? 갑작스런 질문에 처음엔 서로 좀 어색하겠지만, 곧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연한 풍경은 없으니까. 우리의 조경이라는, 공공미술이라는 작업이 삶의 풍경에 관계하는 일이라면, 그 삶이 그려내는 풍경을 공대하고 그것들이 품은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의 작업 또한 풍성해지지 않을까? 이 연재를 시작하는 짧은 이유이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향하던 시절, 가파른 돌산이라 농사도 지을 수 없어 과수원이 있거나 대장장이나 살았다던 옥수동에, 여우도 울었다던 옥수동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먼저 하천가를 따라 집이 지어졌다. 하천가의 바위에 기대어 판자, 천막, 돌, 흙 같이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로 벽이 세워졌고 검은 루핑으로 지붕도 얹혀졌다. 방과 부엌을 나누는 것은 사치였고 그냥 방 하나가 집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를 “하꼬방”이라 부른다. 하꼬(箱)는 상자, 궤짝 등을 가리키는 일본어인데, ‘방(房)’이라는 단어가 붙어 하꼬방이 된 것이다. 집도 아닌 방이 궤짝같이 작고 허술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낮 동안 행정의 단속으로 사라졌던 하꼬방은 밤이면 다시 지어졌다. 하천가가 모두 점령되면 그 뒤로 한 켜, 또 한 켜. 어느새 옥수동의 온 산은 하꼬방으로 가득 찼다. 급한 경사는 계단으로 극복했고, 그도 안 되면 돌아서 길을 냈다 “46년 됐어,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서울로 왔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하꼬방 4개만 있었어. 저기 4층 집 있지 거기 하나 있고 저 위에 집 하나 있고 거기엔 우물도 있었지. 그리고 여기에 두 집 있었지. 처음엔 논도 있었지 근데 맨 산이었지, 여우도 울고 나무도 많고 나무가 꽉 찼었지. 처음에는 하꼬방이었다가, 한 칸, 한 칸 지었지, 벽돌 얻어서, 흙담으로 돌로. 처음에는 지프차 천막으로 집 지었다가. 그 땐 한 달 벌어서 방 한 칸 만들고 한 달 벌어서 방 한 칸 만들고 그랬지. 내가 이사 오고 한 3, 4년 되니까 하꼬방이 꽉 차기 시작했지. 길도 없었어. 경치? 경치도 없고, 공기도 안 좋아. 미군이 버리는 기름 갖다 태우고, 석탄 태우고, 연탄도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고, 여기 공기가 얼마나 안 좋았는데, 시커매서.” - 옥수쌀집 할머니, 개인면담, 2000년 5월 26일 이곳에 찾아든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하늘이라도 가릴 수 있는 잠자리가 필요했을뿐, 길이나 상·하수도 같은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케 하는 기반시설은 사치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하천은 오염되기 시작했고 구분되지 않은 집과 길은 그 자체가 불편이었다. 정부의 손길은 멀었기에, 이들은 스스로 길을 내고 공동 우물과 공동 화장실도 지어 자신들의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략) 옥수동 사람들이 겪어낸 시간은 처연하기까지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명랑하다. 나무가 비바람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몸에 새긴 둥그런 파동이, 어르신들 이마의 주름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또 그렇게 시간을 온전히 드러내는 리듬은 건강하다. 거짓이 없다. 단추 하나로 몇 수십 미터를 단숨에 오르내리지는 않는다. 한 단 한 단 높이의 변화를 시간 속에서 근육으로 느끼고 견뎌야 한다. 배려심 또한 옥수동 계단이 갖는 미덕일 터이다. 한 방향으로 향하나, 중간에 집이 나타나면 살짝 방향을 틀어주고 불편하지 않도록 단의 폭도 넓혀준다. 보기엔 불편해보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의 몸에 맞춰진 만큼 걸음걸이에 적당한 크기를 지녔다. 또 이들은 얼마나 개성이 뚜렷한지 모르겠다. 지하철역의, 대로에 놓인 육교의 그 일률적이고 재미없는 계단과는 격이 다르다. 시간에 따라 편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모양을 갖추었기에 그 폭도 높이도 모두 달라 별다른 기교 없이도 지루하지 않다. 부창부수라고 이곳 사람들은 이 개성을 잘도 활용한다. 좀 넓어지는 곳에는 화분을 내어놓기도 하고 오르다 힘들면 잠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기도 하고 계단에 맞추어 집을 잘도 지어냈다.
  • 4대강 정비사업 들여다보기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주재로 개최된‘2008년 제3차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이하 4대강 정비사업)’의 진행을 발표한 시점부터이다. 충주(한강), 대구·부산·안동(낙동강), 연기(금강), 나주·함평(영산강)을 중심으로 2008년 말부터 2011년 말(댐·저수지 등은 2012년)까지 약 18조원의 국가예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그러나 지역적 특색을 살린 하천정비에 나서기로 한 것. 사업목적은 온난화와 각종 이상기후 때문에 발생하는 홍수와 가뭄 등의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아보자는데 있다. 여기에 사회간접자본(SOC)사업에 대한 투자와 창출되는 신규 일자리를 통해 가라앉은 내수경기와 지역경제를 부양시키겠다는 사업적 타당성도 견지하고 있다. 더불어 정부에서는 4대강 정비사업과 문화를 융합시킨‘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를 비롯, 다양한 구상으로 본 사업과 연계되는 세부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단순한 하천정비 사업이 아니라는 말.사실 올 연초 정부는 저탄소·친환경·자원절약 등 녹색성장전략에 고용 창출정책을 융합한 녹색뉴딜사업, 그‘9개 핵심사업’중‘4대강 정비사업’을 하나의 축으로 설정한 바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에서 내놓은 카드가 녹색성장이고, 그 가운데 4대강 정비사업이 9개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생태와 경제성 대규모 하상준설, 인위적인 갑문설치 등으로 점철되어진 한반도 대운하. 결국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하기에 이른다. 우리 하천에 인위성이 담긴 터치를 배제하자는 국민적 요구이기도 하다. 4대강 정비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도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변질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대상지에 대한 설계안은 얼마든지 설계변경으로 변형이 가능하고, 지금의 계획안에서 살짝만 비틀어도 물류수송이 가능한 대운하의 밑그림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대규모 토목공사만으로 만들어진 하천이 아닌, 자연친화적, 생태적 공간으로 정비되어진 하천의 모습을 바라고 있다. 플랜이 세워지고, 사업도 시작됐다 지난 12월 29일 생태하천 조성을 위한 착공식이 안동·나주지구에서 열렸다. 단순한 착공식이 아니라 4대강 정비사업이 가시화되었단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정부는 선도사업지구로 선정된 충주(한강), 대구·부산(낙동강), 연기(금강), 함평(영산강) 등 나머지 5개 지구의 사업도 조만간 착공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지난 5년여 동안 중단되었던 경인운하 사업도 홍수방지, 물류수송, 한강 르네상스와 연계 등을 목표로 다가오는 3월부터 재개하겠다는 국토해양부의 발표가 있었고, 4대강을 문화가 흐르는 강으로 만들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보고도 있었다. 사업은 이미 시작되었고, 사업의 옳고 그름보다 이제는 ‘어떻게’에 역량을 집중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자라나고 있다. 마치며 ‘녹색 뉴딜정책’,‘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토목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심지어‘정비는 찬성하되 훼손은 반대한다’는 여론의 무게까지, 4대강 정비사업이 조류를 타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찬성 혹은 반대, 아니면 방법론, 그 어느 것이 되었든 미온적이어선 안된다. 일련의 내용은 그동안 우리가 정성스레 가꾸어온 한 그루의 사과나무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본계획 수립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 의견을 제시하고, 견제를 함으로써 분야의 전문성을 강조해야 할 때이다.
  • 2008 크로스장르 _ 건축제안展“경기도미술관@안산”
    경기도미술관(관장 김홍희)은 오는 2월 15일까지 <크로스장르 _ 건축제안展“경기도미술관@안산”>을 개최한다. 경기도미술관 1층 로비에서 지난 12월 17일부터 개최되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미술과 인접한 타 장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기획 전시로, 현대미술과 건축의 새로운 관계를 도출하고자 한다.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이, 이번 프로젝트는 경기도미술관의 위치, 장소, 공간에 기초한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작업으로 펼쳐지게 되며, 총 4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참여작가는 건축사무소 이나바INABA의 설립자인 제프리 이나바(미국),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한국),���빅의 비야케 잉겔스(덴마크), 그리고 매드의 설립자인 마얀송(중국)이다. 참여 건축가(건축사무소)들은 안산시의 역사적, 문화적, 지형적 특성을 연구하여 향후 실행 가능한 네가지 마스터플랜을 도출하였다. 이 마스터플랜은 안산시를 위한 건축적 제안이며, 동시에 경기도미술관의 활성화 방안이자 미술관 내 전시를 위한 작품이 된다. 관람객들은 작품의 내재된 기능들을 찾아내어 스스로 재배치하고 이용하면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 위치하는 건축 오브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정림개발(주) 이종문 대표이사
    근래들어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영역간 교류와 통합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한 분야내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 분야로의 진출이 많아지고 있으며, 조경계도 이러한 움직임에 예외가 아니어서 타 분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분야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진출 분야가 한정적이고 실패 사례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바, 향후 이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정림개발(주)의 이종문 대표이사는 조경인들에게 모범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조경 시공현장에서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호텔업을 비롯한 서비스ㆍ교육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종문 대표이사를 만나 그의 철학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호텔 경영선친이 1958년부터 가꾸어 온 3만2천여평의 숲에“도심 속 자연공간”을 표방하며 들어선 메이필드호텔은 2003년 10월 7일에 그랜드오픈을 하였으며, 그 출발부터 다른 호텔과는 차별화되었다. 대부분의 호텔들이 건물을 중심으로 조경이 부수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비해, 메이필드호텔은 50여년동안 가꾸어 온 숲속에 건물이 들어섰기 때문에, 다른 어느 곳보다도 녹지공간의 중요성이 높았으며, 더불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숲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이 대표는 호텔을 설계시, 어느 곳에서든지 수목을 볼 수 있도록 하여 고객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마음으로 느낌으로써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또한 계절의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수목을 통해 도심 내에서 특별한 경관을 창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이 모든 일들은 이종문 대표의 풍부한 실무 경험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후학들을 위한 교육원 설립한 분야에 먼저 진출했던 선배로서 후학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이 대표는 경영 이외에 후학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이중 하나로, 메이필드호텔내에 “메이필드스쿨”이라는 기관을 두어 조경실무와 호텔 서비스 등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주제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장형 스튜디오 설계 실습을 통한 식재, 시설물의 시공,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실무 중심의 교육을 현장에서 실행함으로써, 건설 근로자가 아닌 전문조경기술자를 양성하여 향후 조경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박윤진․김정윤_오피스박김
    시작하며 이번에 신설한 “조경가 인터뷰” 코너는 지난 8월에 출간된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에 쓴 “조경가 리뷰에 앞서”란 글의 후속 기획이다.의도는 단순하다. 이제 조경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다. “조경의 시대”가 단지 듣기 좋은 레토릭이 아니라면, 조경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조경가들에 대해서 다양한 시선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자면 뭔가 이야기할 꺼리가 미리 좀 있어야 할테니 그걸 잡지에서 해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담고자 하는 내용은 이렇다. 특정 조경가의 중요 작품에 대해, 특징과 경향, 작품을 빚어낸 생각에 대해, 때에 따라서는 설계 어휘와 방법론, 프로세스, 미학관 등등에 대해, 가능하다면 설계 철학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물론 이 모두를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조경가는 작품의 경향에 대해, 어떤 이는 대표작 위주로, 또 다른 조경가는 무난하지만 재미 없는 소개 수준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간을 읽어주는 눈 밝은 독자들에 의해서, 더 나아가서 담겨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덧붙여 의미를 생산해내는 창조적인 독자들에 의해, 조경가에 대한 담론으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꿈꿔본다. 소개하는 방식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정리가 기본 포맷이 될 것이다. 조경가를 만나 그(들)의 생각을 옮겨보자, 이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다만, 가급적 짧은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는 진행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답형으로 묻고 답하는 방식은 가독성도 떨어지고 질문과 대답이 겉돌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형식을 실험해가며 최대한 조경가들의 육성을 담아보려고 한다. 그들에 대한 담론은 결국 그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묻고 답하는 방식을 피하되 육성을 담을 수 있는 어떤 묘수가 있을지는, 몇 회에 걸쳐 찾아볼 생각이다(초반에 소개되는 분들에겐 양해를 부탁드릴 수밖에). 참고로 이번호는 몇 가지 키워드에 대해 풀어서 질문을 던져 놓고, 그에 대한 실마리가 담겨 있는 답변을 재구성해 소개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다면, 어떤 조경가를 선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대목이다. 사실 그 문제가 해결이 안돼서, 앞에서 언급한 책의 큰 주제가 “우리시대의 조경가”에서 “설계공모 리뷰”로 선회되었으니, 선정 기준의 난감함은 정말 큰 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해결책이 찾아졌다. 얼마전 열린 “광교신도시 공원 특화 컨셉 디자인 공모 시상식 및 세미나”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이규목 교수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욕을 먹는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플로어에서 이야기한 순간이었다. ‘어떤 이슈가 있길래, 그렇게 말씀하셨을까’라는 생각은, 조금 더 자세히 작품에 대해서 알고 싶고 듣고 싶다는 궁금증으로 커졌고, 순간 “조경가 인터뷰” 코너의 방향이 머릿속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당선자인 김정윤․박윤진 소장을 만나 섭외까지 마무리 짓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최근 2-3개월 내에 이슈가 되었던 설계공모 당선자나 그 기간 동안 완공된 작품을 설계한 조경가를 “이 달의 조경가”로 하면 어떨까하던 처음의 망설임은, 그게 최선이라는 결론으로 바뀌었다. "특화 컨셉"이란 미션_광교의 경우 조경가 선정 원칙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준 이규목 명예교수(서울시립대)의 코멘트를 거칠게 옮겨보면 이러하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이 담겨 있는 능숙해 보이는 안과 어떻게 보면 설계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의 안이 최종 단계에서 논의되었는데, 조경설계의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후자의 안에 한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심사평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여러 가지 쟁점 중의 하나는 “한두 가지의 강한 아이디어만으로 도시 전체에 걸쳐진 공원이 성공적으로 조성될 수 있는가”였다. 그런가 하면, 역시 당시의 세미나에서 의견을 밝힌 조경진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는 “당선작은 서구적 공원이 아닌 새로운 한국적 공원 모델을 제시했다. 이제까지의 한국조경설계가 컨셉과 기법에 치중한 것에 비해 디테일과 일상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김정윤 소장의 안이 한국적이며, 일상에 대한 천착에서 비롯되었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디자인한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는 평은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어떤 측면에서 당선작은 한국적으로 읽혀졌고, 일상에 대한 고려가 엿보였던 것일까? "8%, 하이힐을 신고 정상에 오르다"라는 어찌보면 광고 카피 같은 제목의 안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우선, 하이힐을 신은 사람이 상징하는 것은, 보통의 산이라면 정상까지 오를 수 없는 복장이나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이다. 그야말로 ‘누구나’ ‘언제나’ 산에 올라 산을 즐길 수 있어야 도시공원으로 기능하는 것이라 본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오피스박김은 휠체어와 유모차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경사 8%의 프로미나드를 계획한 것이다. 결국 작은 물길이 흐르는 부담 없는 경사의 프로미나드와 그 산길의 중간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개방형 공간, 그것이 광교 당선작의 전부라 말할 수도 있는 셈이다. 거기에다 작위적인 네이밍 방식을 취하지 않고, “호수로 가는 길, 자연으로 들어가는 길목, 숲속의 배움터, 나무 아래 작은 밭”처럼 공간의 특징을 그대로 이름으로 풀어낸 점에서도 기존과 다른 자세가 엿보인다. 그런 점들 때문에 다른 안과 구별되고, 디자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까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순하되 새롭고 강렬하다. 그런데 산 정상까지 8%의 길을 내겠다는 발상은, 새롭지만 일견 과도해 보인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윤_한국에는 산이 정말 많다. 그래서 도시를 만들 때, 평지에는 집을 짓고 산은 그대로 남기게 되는데, 그 산지를 어떻게 도시공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나 광교는 어느 신도시 못지않게 산지가 많아, 풍부하고 넉넉한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어서, 도시민의 라이프 스타일에 부합하는 산지형 공원은 무엇일까, 그 해법을 제시해보고 싶었다. 우선 평지에 있건 산지에 있건, 도시공원이라면 점심시간에 일하다가도 "야, 우리 산책 가자" 그러면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또 휴일엔 아이를 데리고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도시공원이어야 한다. 만약에 이번 공모에서 주어진 산지를 기존 방식대로 이용하고자 했다면, 그야말로 약수터가 될 뿐이다. 이곳을 산이 아니라 공원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지형 공원에 하이힐을 신고 갈 수 있듯이, 도시의 산지형 공원 역시 하이힐을 신고 당연히 갈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8%, 하이힐을 신고 정상에 오르다”란 컨셉이 도출되었다. 굉장히 간단한 발상이지만, 도시의 산지형 공원이 어떠해야 할까란 문제를 잘 정의하지 않았나 싶고, 그 부분을 심사위원님들이 잘 봐주신 것 같다. 그리고 과도한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대신 숲에서 하늘을 만날 수 있는 작은 개방공간과 같은 한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만을 넣어서 산이 가지고 있는 공간감을 계속 즐기되, 예전에 우리가 경치 좋은 산과 물을 찾아가서 향유하던 라이프 스타일을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재현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설계를 하는 조경가들도 그렇고, 사업을 주관하는 발주처도 그렇고, 심사를 맡는 전문가들도, 모두 말로는 새로운 안이 나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로 답사도 많이 다니고, 결국 설계공모도 하는 것일 텐데, 막상 공모를 통해서 못보던 안이 나오면 대번에 현실성이 없다고 한다. 굉장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번 안에 대해서도 산의 지형을 따라야지 거기다 왜 8%를 만드느냐, 그렇게 정상까지 가야할 필요가 있느냐, 시공성이 있느냐, 환경 훼손이 심한 것은 아니냐, 걱정이 많으시다. 쉽게 임도를 생각하면 된다. 임도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절성토를 최소화해서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다. 그리고 프로미나드는 8% 미만이지만 두 가지 경사의 프로미나드를 가로질러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각자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원하는 방법으로 산을 만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울러서 요즘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조경에는 왠만한 아기자기한 외부 공간들이 다 있다. 광교신도시에 지어질 아파트 외부공간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산지형 공원에까지 만남의 광장을 비롯한 다채로운 이용 위주의 공간이 필요할지 의문이었다. '아기자기한 조경'이 아닌, 산이 줄수 있는 공간적 경험의 기회를 극대화 하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다. 박윤진_프로미나드의 중심을 흐르며 보행자와 함께 산을 도는 물길은 광교 신도시의 랜드마크면서 큰 경관자원인 두 호수의 상징적 수원으로 계획한 것이다. 이 물길은 새로 만들어질 도시내 11개 하천과 두 개의 호수를 비롯한 광교 수체계 내에서 만들어지게 되는데, 다른 물길들에 비해 수량과 규모는 매우 작지만 산속에서 훨씬 더 시적인 경관을 연출할 것이다. 또 하나는 한가지 강한 아이디어로 모든 공간을 설명하는 것이 최선인가라는 의견도 있는데, 비슷한 아이디어 몇 개를 병치시키기 보다 처음부터 명확한 위계를 가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만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실행단계에서 합리적 취사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광교의 경우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설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이번 작품은 산이라는 공간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카펫트 같은 공간이다. 바닥이 편안하지 않으면, 제대로 체험할 수 없다. 거기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