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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근 상명대 부총장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교육현장 만들기에 앞장1. 부총장으로 임명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전 동국대학교 최상범 교수님의 부총장 임명에 이어 조경학과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부총장으로 임명되셨는데요. 소감 부탁드립니다. 조경학과 교수가 총장이나 부총장이 된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수는 있지만 특별히 뉴스거리로 삼을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조경학과가 신설된 지도 벌써 37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으니 충분히 교육행정가나 정치가, 지방자치단체장 등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조경가라는 전문가적인 식견이 교육경영분야의 리더로서 활동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실감하고 있습니다. 2. 임기 내 이루고자 하는 사업 및 계획을 말씀해 주신다면. 먼저, 교육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직원의 이름은 물론 서로를 알아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가졌던 교직원 연수 때에는 신임 교수들의 나이, 고향, 생년월일, 출신학교를 공개했었고, 또 신선한 발상이라는 호응을 얻기도 했었습니다.두 번째로 학생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기반으로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 만들기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이는 젊었을 때부터 학교와 학생에 대한 저의 교육 철학이기도 하여 이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신입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받자고 학장님들에게 제안을 했었습니다. 학생들의 생년월일, 취미, 특기, 장래희망, 가족관계 등이 적힌 소개서를 미리 받아 사전에 학생들을 면담하고 관리하면 교육적인 효과가 배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1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받아온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끔 그것들을 들여다보면서 예전 제자들을 떠올려 보기도하고, 그들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들 자기소개서는 제가 학생들을 관리하는데 크나큰 자산이요, 보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세 번째는 천안만의 색깔, 천안만의 교육역량을 강화해서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특성화 대학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천안지역은 IT와 디자인예술 등 지역 나름대로 특징이 있고,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를 잘 살려서 캠퍼스를 특성화시킬 것입니다.네 번째는 학교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Seed Money마련에 힘쓸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교는 등록금만으로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교수 연구비, 장학금 등의 진작을 위해 보다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사회의 기부문화는 실제로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대부분의 대학교 건물에는 기증자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학교의 건물 증축 및 보수 등은 상당부분 이런 기부금으로 충당이 되고, 학생들이 낸 등록금은 순수하게 학생의 복지, 장학금에 쓰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쉽지는 않지만 학교발전기금 조성을 위해 산학협력사업을 강화하고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에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 고정희의 식물이야기(1): 연재를 시작하며, 금낭화와 가로수
    식물부재의 조경계요즘 식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세간이라고 하는 이유는 증가하는 관심의 주체가 조경계가 아니라 조경계 외의 세상이라는 뜻이다. 설문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이메일로 식물에 대해 문의해 오는 ‘일반’독자들이 늘고 있고,‘ 야생화’에 대해서 혹은‘정원’에 대해서 특강을 부탁하는 조경계 외의 단체들도 종종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유추해 보는 거다. 일반인들이‘정원과 식물을 거의 동일시’여기고 있는 반면 정원을 만드는 조경인들은 정작 식물을 대하는 태도가 여전히 시큰둥하다. 유사한 소재를 가지고 조경과에서 특강을 했을 때 오는 반응은“뭔가 멋진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고작) 식물이야기인가?”정도라고나 할까. 식물을 제외한 조경은 과연 멋진 것일까?몇 해 째 대학에서 설계 강의를 하고 있는데 식물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은 스무 명 중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하다. 도면에 멋진 라인을 그리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식물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식재설계에 신경 쓰라고 압박하는 일에도 슬그머니 지쳐가는 즈음인데〈환경과조경〉에서 고정희의 식물이야기를 연재하자고 한다. 필자는 식물학자가 아니고 다만 조경에서 식물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는 사람에 불과하다. 국내의 조경계에서 식물에 대한 관심도가 의외로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끊임없이 식물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마 계기가 되어주지 않았나 싶다. 식물에 대해 어떤 ‘멋진’이야기를 펼쳐놓아야 관심들을 가져줄까. 모든 사물이 그렇지만 식물 역시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혹은 용도 에 따라 별도로 조명되어져야 하는 소재이다. 조경에서 다루는 식물은 자연속에 존재하는 식물과 같은 것이지만 같지가 않다. 금낭화나 삼지구엽초 등의 아름다운 식물들이 도시 공간에서 자리 잡기 힘겨워하는 것이라든가, 고층 건물을 등지고 서있는 소나무가 강원도 숲 속의 소나무와 똑같은 광채를 내뿜지 못한다는 것들 때문에 식물을 하나씩 살펴보고 도감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금낭화에 실패한 사연금낭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처음 한택식물원을 방문했을 때가 금낭화가 만발한 계절이었다. 금낭화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부슬비가 오는 날 이어서인지 촉촉이 젖은 계곡을 가득 매웠던 금낭화 군락들의 모습은 형용할 말이 모자라게 황홀하였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데 그 후 한 번 정원에 심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금낭화는 Dicentra spectabilis 혹은 Bleeding Heart라는 비장한 이름하에 유럽에서도 많이 심는 식물로서 한국과 만주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한국에서라면 어디나 꽂아놓아도 잘살 것이며 한택식물원에서 본 것과 같은 명장면을‘연기’해줄 것을 기대했었으나 그들은 별로 빛을 발하지 못했고 성장상태도 신통치 않았다. 그들의 연기력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연출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금낭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결과였다. 부슬비 오는 날 보았던 금낭화 군락의 선명한 아름다움에 대해 좀 더 깊이 사고해 볼 필요가 있었던 거였다. 금낭화의 아름다움을 정원에 이식하고 싶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그들이 원하는 환경을 제대로 만들어 주지 않았고 그들은 성장 거부라는 반응으로 대답해 왔다. 금낭화는 습하고 그늘진 계곡에 무리지어 자생하는 다년생 초본으로서 키는 대개 70센티미터 정도이고 가장 큰 특징은 가지가 휘어지게 붙어있는 주머니 모양의 꽃들이다. 대체로 진분홍에 가깝지만 흰 것도 있다. 꽃이 물론 압권이어서 유명해졌지만 잎의 모양새도 좋은 편이며 볼륨감이 있다. 물론 심고 난 다음 바로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고 3~4년 지나서 제 골격을 갖추게 되면 거의 관목과 같아서 자리를 제법 차지하는 식물이다. 꽃이 지고 나도 잎이 싱그러움을 보태주는 까닭에 여러모로 고마운 식물인데 이렇게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자라게 하려면 말할 것도 없이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습한 계곡이라는 그들의 성장배경을 도시 속에 고스란히 재현해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계곡까지는 어찌어찌 흉내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계곡에 드리우는 아름드리 수목의 그늘이며 이끼며 습한 기운 등 시간의 흔적은 단시간에 재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계곡 출신이라도 어디서나 그런대로 잘 자라는 노루오줌 혹은 관중 등에 비해 금낭화는 까다로운 편이다. 그 때 실패한 이후 금낭화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식물원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뒤편의 서늘한 담장 그늘 정도에 심어보면 어떨까 라는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 어느 정도 보호된 서식 환경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다음 기회에 꼭 시도해 보려고 한다. 물론 금낭화를 어디서 구해다 심었는가 하는 점도 상당히 큰 역할을 차지한다. 같은 식물이라도 재배되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프로페셔널한 관리를 받고 포트에서‘뿌리가 완전히 돌아서 나온’식물은 식재 후 활착이나 성장 행태가 확연히 다르다. 조경공간에 식재되는 식물은 그 환경이 자연과 완연히 다르기 때문에 어린 시절 재배원에서 제대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자라갈 수 있다. 식물 재배원을 서구에서‘Nursery’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조경 식물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식물 하나하나의 성격과 서식환경 등을 파악하는 외에도 생산 및 유통과정을 이해해야 하며 어떤 현장에 어떤 방식으로 심어져야 원하는 장면이 연출될 것인가에 대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져야 한다. 필자의 경우는 즉흥적 연출에 크게 의존하는 편이므로 사전에 배식도면을 꼼꼼히 챙겼더라도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장면을 크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현장소장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도 할 수 없는 것이 종이 위에서 연상하던 것과 현장의 상황이 늘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고 물론 아직도 배워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적용’기법이런 식으로 조경공간에 어떤 식물을 어떤 방식으로 심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엮어서 하나의 학문으로 체계를 잡은 것을‘식물적용학’이라고 한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식물 개체들에 대한 성격묘사라기 보다는 이들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심는가에 대한 원칙과 기법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원예학이 주인공들에 대한 성격묘사에 준한다고 한다면 식물적용학은 스토리텔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떤 나무가 어떻게 생기고 어떤 꽃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배식했을 때나, 식물을 꽃이나 잎, 줄기의 색이나 형태, 질감 등을 보고‘감각적’디자인을 했을 때 오는 실패의 요인들을 줄이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식물은 유감스럽게도 볼 때 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꽃을 보는 식물이라고 꽃에만 치중하여 배식하는 경우, 꽃은 일 년에 2~3주, 길어야 4주 정도 피어있는 반면에 잎이나 줄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대개는 간과하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잎이나 줄기 등 부분적인 매력에 치중했을 때 그 식물이 가지는 부피식물이름 외우기 누군가 내게 그 많은 식물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식물공부를 하고 싶어도 대부분은 여기서 주눅이 들어 포기하고 마는 것을 안다. 식물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아는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식물을 알게 되면 이름도 알게 된다는 간단한 이치인 것이다. 한 번 각자 알고 있는 친구와 지인, 친척, 탤런트, 스타들의 이름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면 어떨까. 그들의 이름을 영어단어 외우듯이 밤새 외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을 알게 되면 그의 이름도 알게 되고 그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 습관, 특징 등도 자연스럽게 같이‘알게’ 된다. 같은 원리가 식물에도 성립된다. 필자 역시 식물 이름을 일부러 외운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 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1)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은 탁주탁현 누상촌에 사는 유비는 한실종친이지만 집이 가난하여 짚신을 팔고 돗자리를 짜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유비가 홍건적을 토벌하는 의병을 모집하는 방문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꼴에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쉬는데 뒤에서 장비가 버럭 같이 소리를 질러 꾸짖는다. 통성명을 한 후 장비는 재산을 내어 대사를 도모하자고 제안을 한다. 조상 대대로 탁현에서 장원과 토지를 가지고 살면서 술을 팔고 도야지를 잡아 지내오던 터였다. 이 두 젊은이가 근처 주막을 찾아들어 술을 들 때 관우가 또한 의병지원하기 전 술 한잔 하려고 들어와 통성명하게 된다. 하동 해량이 고향인데 토호 한 놈이 권세를 믿고 하도 사람을 업신여겨 때려죽이고 5, 6년 동안 강호로 피해 다니는 중이었다.세 사람은 장비의 장원으로 가서 한참 꽃이 만발한 복숭아동산에서 의형제를 맺기로 한다. 이튿날 도원에서 검정소와 흰 말 한 마리에 갖은 제물을 차려 놓고, ‘우리가 동년 동월 동일에 태어나지는 못했으나 동년 동월 동일에 함께 죽자’고 맹세하고 의를 맺어 형제가 된다. - 황석영『삼국지』1권에서 요약유적은 1800여 년 전의 사건과 관련되어 진본은 거의 없고 사실보다는 소설에 근거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허구와 실재가 혼재되어 있다. 유비를 옹호하고 조조에는 반대한다는(擁劉反曺) 후세의 춘추사관이 반영되어 촉한정통론이 우세했고, 중화주의를 내세우는 한족 중심주의가 나타난다. 일반 문화유적과 차이점은 유적의 대부분이 진짜가 아니라 소설로서의 삼국지와 신화,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허풍과 과장 끼가 있는 중국인들은 후세의 평가와 가치관에 따라 유적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확대재생산해 왔으며, 이런 경향은 현재에도 이어져 199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도 많다. 유적이건 소설이건 삼국지의 저변에는 숙명적 결정론이라고 볼 수 있는 천명사상이 깔려 있다. 연재는 매회 한 장소씩, 사진과 함께 소개하며, 소설 내용의 일부분을 발췌하고 그와 관련된 유적과 경관을 소개한 다음 필자 나름의 해석을 포함시키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탁현은 현재 하북성 탁주琢州시로서 북경 서남쪽 6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소도시이다. 북경에서 두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이곳에는 과연 도원결의의 현장답게 장비의 본거지에 관한 유적, 도원결의 현장, 그리고 유비의 고향 등 몇 군데로 나뉘어서 유적들이 분산되어 있었다. 먼저 찾은 곳은 장비의 거점이라고 꿈에 나타났다는 장소로서 장비의 사당인 충의점이 조성되어 있다(사진1). 그리고 조금 떨어져 장비가 고기를 매달아 냉장시켰던 우물을 중심으로 장비점이 있다. 우물은 꽤 오래 된 것으로(사진2) 우물 가장자리에 밧줄로 고기를 매달아 오르내렸던 패어진 자국까지 있으니(사진3) 거의 진짜처럼 보인다. 장비점 충의점 유적은 우물만 진짜이고 문화혁명 때 모두 파괴된 것을 1990년대에 새로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장비점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역사주제공원에는 중심에 커다란 복숭아조각을 세웠고(사진4) 그 옆에 유비 관우 장비 세 젊은이가 결의형제를 맺어 술잔을 들고 있는 조소상을 좀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놓았다(사진5). 삼국지에 유비는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눈으로 자기 귀를 볼 수 있고, 팔이 남달리 길어서 두 손이 무릎을 지난다’고 했으니 중앙의 인물일 듯하고, 관우는 ‘수염의 길이는 두어 자는 되어 보이고 얼굴은 무르익은 대추 빛이라’ 했으니 우측에 있는 사람이고, 장비는 ‘두 눈은 부리부리한 고리눈, 제비턱에 범의 수염이 있다’고 했으니 좌측의 인물일 것이다. 조금 남쪽으로 삼의궁이라는 공원이 또 있는데 이곳이 옛날부터 진짜 도원결의 장소라고 알려져 있다. 삼의궁은 당나라 때 조성했는데 이미 그때 규모가 1만 제곱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여러 기념사당이 있고 그 모퉁이에 도원결의 장소를 나타내는 비석이 서 있어 모두들 이곳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사진6).
  • N66 조리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제안으로 주목받는 젊은 조경가지난 1월『SHIFTboston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한국인 조리나 씨가 Matthew Jull 씨와 함께「What the hell is that?」이라는 작품으로 장려상Honorable Mention을 수상하였다. 조리나 씨는 Wellesley College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고, Harvard University 디자인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였다.지난해(2009년) Harvard University 졸업식에서는 최우수상major prize을수상하였으며『메티/레포드가든의국제가든페스티벌(Jardins de Metis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Competition)』에서는“Special Mention”에 선정되는 등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조경가이다. 현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거주하고 있고, Maxwan Architects & Urbanist에서 조경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Matthew Jull 씨와 함께 개인회사인 “N66”을 시작하였다. 『SHIFTboston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Honorable Mention(장려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드린다. 어떤프로젝트였는지, 그리고 N66팀의 작품 설명과 수상소감을 부탁드린다. 보스턴 활성화와 시민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던『SHIFTboston 아이디어 공모전』은 보통의 디자인 공모전과는 달리 좀 더 다양하고 신선하며 도발적인 제안을 찾는 공모전이었습니다. 심사위원은 잘 알려진 Morphosis 회사의 2005년 Pritzker Prize 수상자인 Thom Mayne과 건축이론가 겸 라이스대학원Rice University 건축과학장인 Sarah Whiting, 게릴라적 예술 프로젝트로 도시의 변화를 추구하는 Scott Burnham을 포함하여 총 7명이 었구요. 지난 1월 14일에 보스턴에 있는 ICA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미술관에서 수상자를 발표하는 포럼이 열렸는데, 그 자리에 많은 보스턴 정부 관계자들과 사업가, 디자이너들이 참석했습니다. 총 141개 작품이 미국의 16개 주와 세계 14개국에서 들어왔으며, 그 중 대상 1팀, 우수상 2팀, 장려상 1팀이 선정되었습니다. 「What the hell is that?(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이라는 제목은 보스턴 시청 건물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입니다. 보스턴 시청 건물은 1960년대 부르탈리즘brutalism의 영향으로 디자인된 건축물로서 대중에 첫 선보였을 때부터 수많은 엇갈린 반응들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중에 보스턴 글로브 신문 기자가 쓴“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What the hell is that?”라는 글이 있는데, 이를 제목으로 빌려 온 것입니다. 현재 보스턴의 Menino 시장은 시청 건물을 팔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성명을 내 놓았으며, 지난 몇 년 사이 이 건물을 재해석하려는 수많은 디자인 아이디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건축역사가들은 오히려 이 건물의 개념과 역사를 고려할 때 충분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등 어느새 시청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민들 사이에선 점점 멀어진‘미운오리새끼’로 변해버렸습니다. OMA의 Matthew Jull과 같이 구상한 저희 작품은 이런 시청건물을 건축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거나 물질적으로 개조하기 보다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perception을 변화시키려는데 목적을 두고 새로운 연상association, 모사replication, 상징iconography, 정보information 관계를 통해 현재의 정부 건물을 대중문화와 융합시키고자 하는 것이 취지였습니다. 이런‘새 단장’캠페인을 통해 일상 생활에 쉽게 스며들 수 있는 미니어처 시청 상품이나 시청 건물에 관한 재밌는 정보가 담긴 거리의 빌보드 혹은 그래피티, 패션 디자이너들이 만든 시청 귀걸이나 시청 반지, 보스턴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는 광고 캠페인을 개발하고, 건물에 관한 새로운 유행, 이야깃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비록 밉지만 그다지 밉지 않은, 오히려 발랄하고 활기찬, 또 는 메인 이미지가 보여주듯 젊은 여성이 핸드백 안에 소장하고 다닐 만큼 값어치 있고 독특하거나 꼭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시청 이미지의 변신을 도화시키려 한 것이 주된 아이디어였습니다. 1960년대의 첫반응,“ 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 라는 것에 대한 재해석이기도 했죠. 아주 재미있게 준비했던 공모전이었는데, 어찌보면 건축과 여성학, 마케팅과 문화비평을 섞어 놓은 듯 한 작품이었습니다. 수상 후에 SHIFTboston팀에서 저희 작품 아이디어를 보스턴에 실제로 적용시키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와 현재 추진 중에 있습니다.
  • 서울시 푸른도시국 최광빈 국장
    도시녹화사업, 문화를 담아내는 소프트웨어에 주력할 터“공원녹지를 조성해 시민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공직생활은 베푸는 마음으로 즐기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 에 남는 말이었다. 30년 동안 그가 지녀온 마인드가 빛을 발했다. 생활권 녹지 330만㎡ 확충, 도심공원녹화사업 등으로 서울시를 그린시티 서울로 변화시키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그가 서울시 푸른도시국 국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공원에 가시적인 시설물을 담기보다는 시민들의 문화를 담고자 했던 최광빈 국장이 앞으로 꾸려갈 서울시 공원녹지조성정책, 추진전략들을 들어보았다.서울 푸른도시국 국장이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소감과 앞으로의 포부를 말씀해 주신다면.과장하다가 국장되어서 좋은 것은 독방을 쓴다는 것인데(웃음), 어떤 한 섹터씩을 담당하다가 총괄해야 되는 입장에 서니까 좀 더 신중해지고, 또 결정력을 갖고 시장님께 건의해야하는 최종적인 자리에 있다 보니까 심적인 부담도 커집니다. 공원과장과 조경과장을 각각 두 번씩 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일들의 얼개를 대강은 알지만, 최종적으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다보니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업을 시행하면서 내세울 원칙이 있다면 공원은 만드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들고 나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입니다. 공원에는 여러 가지 시스템이 있는데, 공원의 외피적인 것을 관리하는 하드웨어가 있고, 편의 및 서비스, 문화시설을 다루는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현재는 북서울 꿈의 숲을 계기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찰을 해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수행해 오신 사업 성과들 중 몇 가지만 말씀해 주신다면. 과거에는 사람들의 문화, 삶 등을 담아야 하는 소프트웨어가 단순했죠. 이에 대해 조금 후회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제가 여의도공원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는 공원의 하드웨어에 좀 더 주력을 했었습니다. 화장실에 음악을 틀어주고, 여자화장실에는 아기보호의자를 처음으로 수입하여 엄마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월드컵경기장이나 서울숲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성과를 얻었는데, 제일 풀리지 않는 숙제가 서비스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식음을 판매하는 일반사업자들이 수익을 빨리 창출해내려고 서비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실패한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2009년) 10월에 개장한 북서울 꿈의 숲의 경우에는 서비스부문에서 성공을 한 사례입니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강북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계획했던 공연장 및 콘서트홀 조성과 그에 맞는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브랜치branch 개념의 극장을 갖길 원했던 세종문화회관과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문화시설이 부족한 강북권을 위해 장기적으로 질 높은 공연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수익을 재생산할 수 있을 거란 설득을 하였고, 그리하여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시민들에게 질 좋은 공연하면서 서비스면에서도 강남권 못지않게 제공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심성관리도 하게 되고 문화적인 마인드도 갖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구경하거나 운동만을 했던 과거의 공원개념과 달리 이런 것들이 선진문화가 갖게 되는 공원의 복합성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발판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서비스 퀄리티quality 즉, 소프트웨어에 대한 돌파구를 찾게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사업으로는 동네뒷산공원화가 있습니다. 마을에서 방치해두었던 쓰레기 더미 공간을 공원화 하는데 공원용지보상과 더불어 동네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쉼터와 정자, 등산로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공원시설이나 고급포장만이 능사는 아니었습니다. 관의 입장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로 자투리 공간을 일구는 일이 무단경작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수요가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여 1년 단위로 한 평 남짓한 공간을 분양하여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휴게정자에 허브를 심어 주민들이 허브냄새를 맡거나 만지면서 자연과 접촉하도록 해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하였습니다.학교공원화사업은 신내초등학교 내에 나무를 심는 아주 단순한 의도로 처음 시작했었습니다. 학교 내에 나무를 추가로 심고, 학교 담장을 허물어 놀이시설, 경계화단을 조성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담장을 허무는 데는 학교 측의 반대가 있었고, 학교담장이나 아파트 경계담장 등이 도시경관을 해치고 있음을 설명하고 학교담장을 헐어 쉼터나 생태연못 등을 만들거나 필요하다면 놀이시설을 만들어 줄 것을 제의하고 나서 동의를 받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폐쇄적이었던 처음과 달리 서로 해달라며 지원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사업들은 지역주민설명회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들을 듣는데, 입을 맞추어 하는 얘기는 담장을 허물고 녹지가 조성됨으로써 아파트의 부가가치가 올랐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닫고 살기보다는 열고 살자는 문화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 새 박사 원병오 교수
    평생을 새와 함께 해온 한국 조류학의 산 증인, 피상적 생태복원에 쓴 소리한국 조류학의 살아있는 증인새 박사 원병오 교수. 그는 오직 새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열정으로 6·25 전쟁의 폐허 속에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조류학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한 장본인이자 발전시켜온 한국 최고의 조류학자이다. 흔히 새 박사라 하면 방송활동으로 잘 알려진 윤무부 교수를 떠올리지만 윤교수를 비롯한 국내 조류학계를 이끌고 있는 학자 대부분이 원병오 교수의 제자들이니 ‘한국 조류학의 아버지’란 평가가 가히 어색하지 않다.그가 조류학자가 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학자이자 김일성대학 생물학부장 및 북한 생물학연구소장을 역임하면서 북한의 조류 연구를 집대성한 아버지 원홍구 박사의 영향 때문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산과 들을 누비며 새를 관찰한 것이 오늘날 그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조류학자가 된 원동력이다. 조류를 공부하기 위해 원산농대 축산학과를 졸업했으나 6·25 전쟁으로 연구를 계속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부모와 헤어진 후 남으로 내려왔다. 이후 1956년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새를 연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농림부 중앙임업시험장(현 홍릉수목원)에 들어가 한국의 조류와 포유류에 대한 본격적인 표본 수집과 분포 및 생태 등에 대한 조사연구 등을 시작했고, 몇 해 뒤 이를 종합해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1963년 그가 조류의 이동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다리에 링을 달아 서울에서 날려 보낸 북방쇠찌르레기를 2년 뒤 북에 있는 아버지가 발견함으로써 남북의 부자 조류학자가 15년 만에 생사를 확인한 일화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후 50여 년 동안 경희대에서 교직 및 연구생활을 하며 50여 종의 새로운 새를 발견했고, 철새 100여 종의 이동경로와 계절적 분포를 새로 밝혀내 보고했으며, 160여 편의 논문 및 20여 권의 저서를 저술했으니, 그를 두고 어찌 한국 조류학의 살아있는 증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조경, 생태보단 개발위주로 보여이런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경업자에게 환경조성사업을 맡기는 촌극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의 책 『자연생태계의 복원과 관리 - 조류서식지 조성과 복원을 중심으로』발간과 관련된 인터뷰 발언 중 하나인 이 말은 어쩌면 조경계 전체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메가톤급 발언이기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 들어본즉 과거 서해안 간척지 조성사업에 관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기본계획을 맡았던 조경분야를 보고 느낀 점을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이란다. “예전 ○○방조제에 들려보고 깜작 놀란적이 있어. 조경학과 ○○○ 교수가 해 놓은 것이라는데, 파괴된 생물서식지를 조성해도 모자란 곳에 기념공간이니, 여가관광지를 만들어 놓고……, 대체 그게 무엇이란 말이야…”라며 지금껏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사실 원병오 교수가 이 책을 펴낸 것도 위의 안타까움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근래까지 아시아 지역에서는 자연 생태계 조류의 관리 및 보호에 관한 안내서나 전문적인 서적이 거의 없어. 한국과 일본, 중국 및 동남아 국가에서는 전공자도 드물지. 그래서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강의한 내용과 이 분야에서 앞서 있는 미국과 영국의 자료들을 모아 엮어서 낸 거야”라고 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조류의 도래지 복원사업을 설계하는 과정에 수년간 기초조사에 참여하면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과 복원사업현장을 방문하며 외국학자, 정책담당자, 실무책임자와 만나 많은 내용을 직접 배우고 확인한 사실을 강조했다. 개발 막을 수 없다면 대체서식지 마련해야또 각종 개발사업들로 인해 생물서식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묻자 새만금 사업이나 한강 하구의 파주, 김포 일대의 신도시처럼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개발사업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러한 경우 반드시 대체 서식지를 마련해야 함을 이야기했다. 특히 한강 하구의 경우 이미 하구둑이 조성된 우리나라의 다른 주요 강들과 달리 분단이라는 현실로 인해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므로 반드시 생물들이 살아갈만한 대체장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단순히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식가능한 환경으로 조성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에는 실제 사례가 많아. 그 방법을 모르거나 의문이 간다면 실제로 가서 눈으로 보고 배우고 이야기 해야지”라며 ‘눈 가리고 아웅’식의 방편 마련보다는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라고 일러주었다.
  • 새 박사 원병오 교수
    평생을 새와 함께 해온 한국 조류학의 산 증인, 피상적 생태복원에 쓴 소리한국 조류학의 살아있는 증인새 박사 원병오 교수. 그는 오직 새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열정으로 6·25 전쟁의 폐허 속에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조류학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한 장본인이자 발전시켜온 한국 최고의 조류학자이다. 흔히 새 박사라 하면 방송활동으로 잘 알려진 윤무부 교수를 떠올리지만 윤교수를 비롯한 국내 조류학계를 이끌고 있는 학자 대부분이 원병오 교수의 제자들이니 ‘한국 조류학의 아버지’란 평가가 가히 어색하지 않다.그가 조류학자가 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학자이자 김일성대학 생물학부장 및 북한 생물학연구소장을 역임하면서 북한의 조류 연구를 집대성한 아버지 원홍구 박사의 영향 때문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산과 들을 누비며 새를 관찰한 것이 오늘날 그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조류학자가 된 원동력이다. 조류를 공부하기 위해 원산농대 축산학과를 졸업했으나 6·25 전쟁으로 연구를 계속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부모와 헤어진 후 남으로 내려왔다. 이후 1956년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새를 연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농림부 중앙임업시험장(현 홍릉수목원)에 들어가 한국의 조류와 포유류에 대한 본격적인 표본 수집과 분포 및 생태 등에 대한 조사연구 등을 시작했고, 몇 해 뒤 이를 종합해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1963년 그가 조류의 이동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다리에 링을 달아 서울에서 날려 보낸 북방쇠찌르레기를 2년 뒤 북에 있는 아버지가 발견함으로써 남북의 부자 조류학자가 15년 만에 생사를 확인한 일화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후 50여 년 동안 경희대에서 교직 및 연구생활을 하며 50여 종의 새로운 새를 발견했고, 철새 100여 종의 이동경로와 계절적 분포를 새로 밝혀내 보고했으며, 160여 편의 논문 및 20여 권의 저서를 저술했으니, 그를 두고 어찌 한국 조류학의 살아있는 증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조경, 생태보단 개발위주로 보여이런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경업자에게 환경조성사업을 맡기는 촌극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의 책 『자연생태계의 복원과 관리 - 조류서식지 조성과 복원을 중심으로』발간과 관련된 인터뷰 발언 중 하나인 이 말은 어쩌면 조경계 전체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메가톤급 발언이기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 들어본즉 과거 서해안 간척지 조성사업에 관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기본계획을 맡았던 조경분야를 보고 느낀 점을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이란다. “예전 ○○방조제에 들려보고 깜작 놀란적이 있어. 조경학과 ○○○ 교수가 해 놓은 것이라는데, 파괴된 생물서식지를 조성해도 모자란 곳에 기념공간이니, 여가관광지를 만들어 놓고……, 대체 그게 무엇이란 말이야…”라며 지금껏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사실 원병오 교수가 이 책을 펴낸 것도 위의 안타까움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근래까지 아시아 지역에서는 자연 생태계 조류의 관리 및 보호에 관한 안내서나 전문적인 서적이 거의 없어. 한국과 일본, 중국 및 동남아 국가에서는 전공자도 드물지. 그래서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강의한 내용과 이 분야에서 앞서 있는 미국과 영국의 자료들을 모아 엮어서 낸 거야”라고 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조류의 도래지 복원사업을 설계하는 과정에 수년간 기초조사에 참여하면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과 복원사업현장을 방문하며 외국학자, 정책담당자, 실무책임자와 만나 많은 내용을 직접 배우고 확인한 사실을 강조했다. 개발 막을 수 없다면 대체서식지 마련해야또 각종 개발사업들로 인해 생물서식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묻자 새만금 사업이나 한강 하구의 파주, 김포 일대의 신도시처럼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개발사업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러한 경우 반드시 대체 서식지를 마련해야 함을 이야기했다. 특히 한강 하구의 경우 이미 하구둑이 조성된 우리나라의 다른 주요 강들과 달리 분단이라는 현실로 인해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므로 반드시 생물들이 살아갈만한 대체장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단순히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식가능한 환경으로 조성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에는 실제 사례가 많아. 그 방법을 모르거나 의문이 간다면 실제로 가서 눈으로 보고 배우고 이야기 해야지”라며 ‘눈 가리고 아웅’식의 방편 마련보다는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라고 일러주었다.
  • 『도시의 강과 문화 & Waterfront』展
    인류의 삶과 문화의 장으로서 도시 수변공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다..세계 4대 문명이 모두 강을 중심으로 발생했으며 역사 속의 수많은 나라들이 물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던 것을 보면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물이 매우 중요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물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아주 먼 오래전부터 인류는 물을 찾아 그곳에 정착하고 문화를 형성해왔다. 오늘날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강이나 바다 등 물과 인접한 곳에 자리한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최근 이러한 수변공간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많은 도시들이 수변공간을 도시 재생의 새로운 촉매제로 활용하는 한편, 수변개발을 통해 도시의 브랜드 이미지 및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양상이다. 한강 르네상스와 4대강 사업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역시 수변공간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의 선진 도시들은 강과 호수, 바다와 같은 수변공간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하고 있을까?지난 연말 이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모은 사진전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바로 진주산업대 조경학과 강호철 교수. “도시의 강과 문화 & Waterfront”를 주제로 한 이 전시회에는 강호철 교수가 지난 15년간 세계 40여 도시들을 직접 발로 뛰면서 촬영한 15만여 장의 사진들 가운데 특별히 엄선한 70여 점이 선을 보였다. 일찍이 강과 바다를 끼고 융성한 문화를 이룩해 온 인류가 강과 바다의 보존과 활용 과정에서 겪은 오랜 시행착오와 경험이 스며있는 지혜로운 모습을 담은 그의 사진들 가운데 일부를 모아 지면에 소개한다. 이 사진들을 통해 최근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수변개발에 있어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또 새롭게 얻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진제공_ 강호철·진주산업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2010 Jara Island International Baggat Art Exhibition
    바깥미술전지난 1월 30일부터 2월 11일까지 경기도 가평 자라섬 내 중도에서는“화해和諧, 그리고 은유의 숲”이라는 주제로“2010 자라섬 국제 바깥미술전”이 열렸다. 바깥미술전은 자라섬의 자연을 배경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자연설치미술전으로서 매년 겨울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1981년 청평면 대성리를 시작으로,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1997), 제부도 갯벌(1999), 난지도(2002), 북한강(2004) 등을 거쳐 2005년부터 자라섬에서 열리고 있다.올해는 30회를 맞아 동양의 자연주의적 미학담론을 토대로 아시아적 생태미술을 조망하고자 몽골-한국-일본을 잇는 범아시아적 전시를 기획했다. 그래서 바깥미술회 회원의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 초청 작가와 몽골, 일본 등 해외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었다.이 전시회는‘수도권 편중’·‘대규모 지향’의 여타 국제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한 의제의 공동화와 현실에 대한 실천적 긍정적 대안을 실현코자 참여작가 모두가 노력하며, 단순히‘자연 안에 있는 작업’이 아니라 재료, 기후, 지형 등‘자연과 함께 생성되는 예술 작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번 전시회에는 총 27개의 작품이 전시되었으며, 전시 주제인“화해和諧, 그리고 은유의 숲”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 Joseph J.Lalli, CEO of EDSA
    Q1 _ EDSA was founded in 1960 and well known hospitality planning and design internationally, conducting projects over 90 countries and is one of the largest landscape architectural design firm in the nation. Could you introduce your firm, EDSA to Korean landscape architects and interdisciplinary professionals?A1 _ EDSA is a diverse practice, not only in geographic areas, but also in project types and it's people, the staff at EDSA comes from over 25 different countries. We feel this diversity not only adds richness to our work environment but also to the work we produce. In terms of size, we had no real goal about how large we would be, our real goal was to help create opportunities for the younger staff, this helped us retain some of the best talent and led to much of our internal growth, slow but steady.EDSA is an internationally-renowned, full-service planning, landscape architecture, and urban design firm with over 250 employees. Established in 1960, the Firm has extensive experience in attractions and entertainment, campus and cultural, communities and new towns, ecotourism and environmental planning, hotels and resorts, as well as urban design. EDSA is headquartered in Fort Lauderdale, Florida, and has offices in Orlando, Florida; Beijing, China, and Baltimore, Maryland.Q2 _ Could you introduce the milestone projects designed by EDSA and explain feature characteristic or main philosophy in those projects?A2 _ Along the way, there have been certain key projects that have led us to newer, bigger and some crucial opportunities; there have been many milestones along the way. A common thread was the simplicity and the huge impact they have had and continue having not only on our body of work, but equally important on our clients and the people who used them. 70’ PepsiCo, Purchase, New York, USA: created a park like setting for a major corporation that was the beginning of a trend to improve work environments. It was soon realized that these types of spaces led to less turnovers, decrease in absences by illness and an overall efficiency that did not exist in the previous facility.80’ Grand Cypress, Orlando, Florida, USA: a major impact on the hospitality industry in Orlando, it raised the bar to new levels. Also, during this period there was the El San Juan Hotel and Casino (San Juan, Puerto Rico), Treyburn(Durham, North Carolina, USA), Haig Point (Daufuskie Island, South Carolina, USA), Orlando International Airport (Orlando, Florida, USA) and Pont Royal (Aixen Provence, France).90’ The Fort Lauderdale Beach Front and Riverwalk, Florida, USA, these two projects had a major impact on the image of Fort Lauderdale and the economic development for the city. The Museum of Anthropology in Xalapa, Mexico was one of a kind and an important tourist destination. This decade was also the beginning of Atlantis in Paradise Island, Bahamas, which led theme tourism into the next millennium.2000’ Many more incredible projects opened up in the Middle East such as Royal Mirage and Madinat Jumeirah. The beginning of the 2000’ has been fantastic with many excellent projects opening all over; it was also the start of our China operations which has led us to many incredible opportunities. Currently, we are finishing Design Development Drawings for an incredible project in Al Ain, UAE; The Al Ain Wildlife Park and Resort, it is part of Abu Dhabi. It is a Wildlife Park and Resort; the main components are the Zheik Zayed Learning Center which is the jewel of the project, a world desert zoo, 4 safari treks and a research and conservation area, and others. Along with these elements, is a resort hotel, shopping and entertainment and a residential component. The project is currently under construction and scheduled to open in November 2011.Q1 _ 미국에서 1960년에 설립된 EDSA는 호스피탈리티 계획 및 설계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60여 개국에 걸친 프로젝트 수행 실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조경설계회사 중 하나인데, 한국의 조경 실무자 및 인접분야 전문가들에게 EDSA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A1 _ EDSA는 글로벌한 스케일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그와 관련된 전 세계 25개국의 스텝들도 매우 다양합니다. 이런 다양성은 업무 환경 뿐만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 수행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DSA는 단순히 회사의 규모를 확장하기 보다는 최고의 자질을 가진 스텝들에게 좋은 경험 및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진적인 내실을 다지면서 이들과 함께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EDSA는 전 세계적으로 계획, 조경, 도시설계의 제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설계회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60년에 설립되었으며, 현재 250명의 디자인 스텝들이 근무하고 있고, 특히, 어트랙션, 엔터테인먼트, 캠퍼스, 신도시, 커뮤니티 계획, 생태관광, 환경계획, 호텔 리조트, 도시설계 분야에서 특화된 프로젝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사는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 로더데일에 있으며, 미국 올랜도, 볼티모어와 중국 베이징에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Q2 _ 그동안 EDSA가 수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대표작품에 대해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그 작품들의 특징과 거기에 담겨있는 EDSA의 설계철학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A2 _ 과거의 일부 프로젝트들은 우리를 새롭고 크고 또한 더 중요한 기회로 이끌어 왔습니다. 이들 프로젝트의 공통된 맥락은 설계의 직관적 명료함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EDSA 프로젝트에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설계철학은 저희 클라이언트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연대별로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하겠습니다.1970년대 펩시코 본사(미국 뉴욕주 퍼체이스 소재)는 공원과 같은 자연환경 속에 대기업을 입지시켜서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으로서 새로운 트랜드의 시발점이 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 이후, 펩시코 본사의 이직율과 병가가 줄었고 전반적인 업무 향상을 가져왔는데, 당시 유사한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입니다.1980년대 그랜드 사이프레스(플로리다주 올랜도 소재)는 올랜도 지역의 호스피탈리티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리조트의 수준을 한단계 상승시킨 작품입니다.그 외 주요 작품으로는 엘 산 후안 호텔 리조트(푸에르토리코, 산 후안 소재), 트레이번(노스 캐롤라이나, 덜햄소재), 헤이그 포인트(사우스 캐롤라이나 다우푸스키 소재), 올랜도 국제공항(플로리다주 올랜도 소재), 그리고 폰트 로얄(프랑스, 엑스 프로빈스 소재)이 있습니다.1990년대 포트 로더데일 비치 프론트와 리버워크(플로리다 포트 로더데일 소재), 이 두 프로젝트는 포트 로더데일의 도시 이미지 및 경제적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친 프로젝트입니다. 잘라파 인류학 박물관(멕시코, 잘라파 소재)은 멕시코의 주요한 관광명소이며, 이 시기는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테마관광 분야에서 중요한 프로젝트인 아틀란티스(바하마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소재)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2000년대 중동지역의 로얄 미라지와 마디낫 주메이라 리조트 같은 대규모의 아주 멋진 프로젝트들로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중국에 진출하여 실질적인 사무실 운영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의 알 아인 와일드라이프 파크 리조트의 기본설계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 작품의 주요시설로는 부지의 핵심이 되는 셰익자이에드 학습 센터, 월드 데저트 동물원, 4개의 사파리 지역, 연구 및 보전 센터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리조트 호텔, 쇼핑 및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주거지역이 있습니다. 2011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현재 공사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