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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DA] 기성세대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12월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호를 준비하다보니 조금 일찍 송년의 기분에 젖어든다. 특히 연재를 마감하는 필자들의 마지막 원고를 보고 있자니 여러 소회가 엇갈린다. 한껏 지적인 글의 필자도 마지막 순간에는 독자와 자신의 거리를 좁힌다. 마치 연극이 끝난 후 무대 인사를 하듯이 본연의 모습을 살짝 드러내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의 연재를 마무리하며 내비치는 필자들의 속내를 보니 할 일을 끝냈다는(이젠 마감을 안 해도 된다는) 홀가분함보다는 아쉬움이 묻어난다고 느끼는 것은 멜랑콜리한 연말 기분 탓일까. 가끔 필자와 편집자의 관계는 연애하는 사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감을 두고 벌이는 밀고 당기기와 그로 인해 쌓이는 일종의 애증(!) 때문이다. 10년 전쯤 만난 한 필자는 매달 빚쟁이처럼 원고를 받아가는 나를 힘겨워했다(당시 나는 필자가 마감 날짜를 잘 지키도록 유도하는 편집자가 좋은 편집자라고 생각하고 원고 독촉 전화를 즐겨하곤 했다). 연재를 마무리하고, 연재 원고를 묶어 단행본을 출간하는 지난한 과정까지 모두 마치고 난 후 하루는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내가 더 할 일이 없냐”고 묻는 전화였다. 매달 당연하게 쓰던 원고를 쓰지 않으니(매달 받던 독촉 전화를 받지 않으니) 갑자기 주말에 뭘 해야 할지 당혹스럽단 이야기였다. 그는 얼마 뒤 취미로 밴드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지금도 가끔 그가 생각난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나의 연애 방식도 다변화되었다. 심소미 씨와는 그녀가 기획한 전시회에서 만났다. 첫눈에 반했다고 할까. 도시와 예술, 조경과 건축의 영토를 넘나드는 듯한 그녀의 관심사에 호기심을 느낀 난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날 것 같지 않나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시장을 떠났다. 결국 올해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에서 좋은 글과 사진으로 매달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바쁜 가운데 필요한 말만 주고받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필자다. 굳이 필자 유형을 구분해 본다면 이심전심형 필자랄까. 아쉽게 내년 1월호면 연재가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지면으로 만나고 싶다. 다른 이들의 연애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매달 독일에서 원고를 보내온 고정희 박사의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는 조한결 기자가 맡았다. “처음에는 형식적인 관계였어요. 사실 박사님과 전 일면식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펜팔하는 기분이에요.” 조 기자는 20세기부터 고대 이집트까지 5천 년 조경사를 종횡무진 늘어놓는 필자의 박식함과 원고를 뒷받침하는 사료의 방대함에 늘 감탄하는 애정을 보인다. 그녀에게 필자는 흠모의 대상처럼 보인다. 조 기자 역시 만만치 않은 꼼꼼함으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갔다. 몇 시간씩 구글링을 하며 원고를 확인하다 질문을 보낸 후 원하는 답변을 얻어내곤 다시 필자에게 탄사를 내뱉는 식이다(내가 보기엔 너님도 대단하다). 지난 해 이맘때, 그러니까 2015년 12월호 에디토리얼에 배정한 편집주간은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를 유형화한 적이 있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마감이 한참 지나 독촉 문자, 메일, 전화를 하면 그제야 아직 못 쓴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읍소형”과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잠수형”을 오고가는 필자 덕택에 매달 애를 태우는 기자도 있다. 하지만 인쇄소로 넘어가기 직전 주옥같은 원고를 토해(?)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쁘고 반가운 것이 또 편집자의 마음이랄까. 매달 반복되는 두 사람의 줄다리기는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는 연애를 보는 듯하다. 이번 호에 여러 필자들이 덧붙인 ‘연재를 마치며’를 살펴보니 그들과 함께 연재를 기획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지금은 내년 연재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재를 마감하는 필자가 여럿 있는 만큼 2017년 새로운 꼭지로 독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는 필자도 여럿이다. 새로운 연재 꼭지의 기획 의도와 방향, 호별 주제 목록 등이 담긴 기획서를 보면서 마감 유형을 가늠해 보는 것도 이즈음의 즐거움이다. 누군가는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모범생형”이지만 까다로울 것 같고, 어떤 이는 기획서부터 기한을 지키지 못해 애를 태우지만 결국 편집부가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기획으로 새로운 연애에 대한 설렘을 유발한다. 개인적으로 2016년이 어떤 의미였는지 되돌아본다면, 올해는 내가 마흔 살이 된 해다. 얼마 전 마흔 살이 되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웃으며 얼버무린 그 자리에서 삼켰던 말은 이러했다. 항상 젊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닌 것 같다고. 사실 마흔 살이 되면서 내가 ‘기성세대旣成世代’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단어가 떠올랐을까. 사전을 찾아보니, “현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나이가 든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지금의 사회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올해는 나도 어디엔가 후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단체를 물색했다. 그러다 언론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한 시민 단체가 재정적 어려움으로 어렵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잡지사에 몸담은 내 첫 번째 후원 대상으로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는 좋은 선택처럼 보였다. 온라인 가입 신청서의 최소 금액 버튼을 누르고도 내심 뿌듯했다. 이후 그 시민 단체로부터 매달 소식지가날라 왔다. 포장지도 뜯지 않은 채 책상 한구석에 쌓여가는 소식지를 보면서 그 시민단체의 살림살이를 걱정했다. 나처럼 적은 회비를 내는 사람에게까지 소식지를 보내면 과연 운영이 될까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포장지를 뜯고 소식지를 넘겨보았다. 소식지는 흑백의 소박한 편집이었지만, 한 달간의 활동 내용과 여러 필자와 회원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후원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뜻에 동의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참여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일원이 되었구나. 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전문지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려 보면, 어려움이 닥치면 습관처럼 환경을 탓하곤 했다. “문화가 성숙해야” 혹은 “저변이 확대되어야” 하는 말들을 되뇌기도 했다. 세상은 남이 바꿔주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깨닫는다.
  • [편집자의 서재]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
    2006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영화가 개봉했다. 론 하워드 감독의 ‘다빈치 코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예술 작품 속의 비밀, 시체 주변에 남겨진 다잉 메시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밀 단체,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성배 등 각종 흥미로운 요소로 흥행에 성공했다. 암호를 풀면 열리는 신비한 장치들은 현란한 액션 없이도 ‘인디아나 존스’나 ‘툼 레이더’를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각종 자료로 뒷받침해 관객들을 실재와 허구를 넘나들며 영화에 몰입하게 했고, 이는 다빈치 코드의 원작 소설가 댄 브라운을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다빈치 코드의 중심에는 명화 최후의 만찬이 있다. 사실 다빈치 코드뿐만 아니라 여러 영화나 드라마가 명화를 재해석해왔다.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속 소녀의 삶을 그린 동명의 영화나 조선의 풍속화가 신윤복이 사실 ‘미인도’ 속 여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담은 드라마 ‘바람의 화원’ 등. 그림은 화가에 의해 포착되어 멈춰진 장면이다. 앞뒤 맥락을 알 수 없어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고, 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명화를 소재로 한 책에는 의외의 전개로 재미를 주는 작품이 많았고, ‘르네상스 명화에 숨겨진 살인사건’이라는 문구를 표지에 내건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 역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스토리로 나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였다.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는 오히려 설득력 있는 역사적 자료를 제시해 명화에 숨겨진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책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다빈치 코드의 로버트 랭던 교수는 없지만 숨겨진 사건을 풀 힌트를 제공하며 나를 따라다니는 해설가가 있다. 초반에는 지면을 가득 메운 사진과 예시들이 버겁게 느껴졌지만, 어느새 책장의 앞뒤를 넘겨가며 자료를 살피고 사건의 추적에 동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가 다룬 명화 ‘채찍질’은 회화의 군주라 칭송받던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의 작품이다. 그림은 크게 좌우로 나뉜다. 왼편에서는 세 명의 남자가 기둥에 묶인 예수를 채찍질하고 있다. 그러나 채찍질이라는 잔인한 단어와는 거리가 먼 낮은 채도의 색이 그림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어 평화롭게 느껴진다. 고문당하고 있는 예수의 몸에는 피는 물론이고 작은 생채기 하나 없다. 게다가 고통스럽지 않은지 담담한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현실을 뛰어넘은 초인 같아 보인다. 이 공간에는 괴로운 신음도 채찍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없다. 이 고요함은 오른편에 서 있는 세 남자에 의해 더욱 커진다. 왼편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을 전혀 모르는 듯 평온한 표정의 남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남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서로를 보지 않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도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가득해 보인다. 베른트 뢰크는 이처럼 고요한 그림 속에 살인의 키워드가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림 오른편의 세 명의 남자 중 왜 가운데 남자만 맨발일까?’라는 트집 같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는데, 무려 맨발의 남자가 ‘오단또니오 다 몬데펠뜨로(이하 오단또니오)’ 백작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오단또니오는 사치스러운 생활과 각종 범죄를 일삼은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고문관으로 1444년 7월 시민 봉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밤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난 그는 십자가 앞으로 끌려갔다. 봉기군에게 살려 달라 애원했지만 살해당했고 죽은 후에도 이리저리 끌려다녀 사지가 찢겼다고 한다. 작가는 오단또니오와 맨발의 남자를 ‘붉은 튜닉’이라는 매개로 엮는다. 맨발의 남자가 입고 있는 붉은 튜닉이 오단또니오 백작이 살해당할 당시 입고 있던 잠옷이며, 붉은색은 순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맨발은 오단또니오의 결백함을 상징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는 이 그림 자체가 오단또니오를 그의 이복동생 페데리꼬 다 몬떼펠뜨로(이하 페데리꼬)가 죽였다며 고소하는 기소장이라 주장한다. 고작 행색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림 안에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암투와 살인사건이 숨어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베른트 뢰크는 삐에로 델라 쁘란체스까의 다양한 작품에 나타난 “적절한 증거”와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이야기의 파편들”을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공고히 다져나가고,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페데리꼬가 오단또니오의 작위를 물려받은 해가 오단또니오가 죽은 지 30년 되는 해이며, 로마의 살인 공소 시효가 끝나는 시점이라는 대목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책을 덮고 나니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분명 “나는 엄정한 사료 분석에 따라 채찍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겐 몬떼펠뜨로 가문의 형제 살인 사건이 역사적 사실처럼 느껴진다. 너무 많은 자료와 그 사이를 연결하는 ‘~한 것이 아닐까’라는 그럴듯한 추측을 반복적으로 접한 탓이다. 만약 베른트 뢰크의 가설을 무너뜨릴 만한 정보를 접하게 된다면 난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A는 B다’라는 뉴스와 ‘A는 B가 아니다’라는 뉴스가 동시에 올라오는 시대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거짓과 진실을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언론인이 갖춰야 할 소양 중 하나일 텐데, 인내심이 없는 내겐 항상 힘든 일이다.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 [CODA] 이폴리타를 추억하며
    오랜만에 만난 H가 이젠 바쁜 일이 끝났냐고 물었다. 그녀의 동그란 눈을 보니 가벼운 질문의 대답도 어렵다. 거의 한 달 만에 찾은 필라테스 스튜디오. 몇 가지를 체크해본 H는 계속 그렇게 나쁜 자세로 앉아서 일을 하면 디스크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에디슨이 발명한 것이 전기가 아니라 야근이라고 주장한 한 카툰이 떠오른다!) 이게 다 프랑스의 긴 휴가 때문이라고 툴툴거려 본다. 환경과조경의 평화로운 루틴을 뒤흔들었던 서울정원박람회가 끝나니 11월호 마감이 코앞이다. 이번 달 『환경과조경』은 무려 100여 페이지를 할애한 해외 작가 특집으로 꾸몄다. 그 주인공은 프랑스 조경설계사무소인 아장스 테르Agence Ter다. 우리 편집부는 바쁜 10월을 대비하여 지난 6월 말부터 아장스 테르에게 작가 특집을 제의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그러니까 아장스 테르가 L.A. 퍼싱 스퀘어 공모전의 우승팀으로 선정되고, 그 결과가 『환경과조경』 7월호에 수록된 직후였다. 섭외는 곧바로 성사되었고, 아장스 테르와의 인터뷰는 프랑스 리포터인 박연미 씨가 흔쾌히 맡아주었다. 박연미 씨는 졸업 설계 작품을 앙리 바바Henri Bava에게 크리틱 받았던 인연을 전하며 반가워했다. 프랑스의 많은 조경학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설계사무소가 아장스 테르라는 말도 덧붙였다. 7월 중순, 박연미 씨는 아장스 테르의 파리 오피스에서 세 명의 공동대표와 인터뷰를 순조롭게 마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잡지에 수록할 작품 리스트를 협의하고 자료만 받으면 정원박람회 행사 준비와 무난하게 병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인터뷰 직후부터 담당인 조한결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휴가를 갔는지 담당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의 휴가는 길다던데…, 찜찜했지만 길어야 한 달 정도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기다림이 9월까지 이어지자 우리의 우려는 불안과 초조로 변해갔다. 그 긴긴 여름이 다 가도록 감감무소식인 아장스 테르 덕택에 조 기자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고, 기다림에 지친 편집부는 11월호의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물러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담당자인 에밀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길고 길었던 프랑스의 여름휴가가 끝이 난 모양이었다. 에밀리는 열정적인 직원이었다. 일단 연락이 재개되자 메일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신이 난 조 기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에밀리와 대화를 이어갔다. 아장스 테르는 네 가지의 아주 구체적인 디자인 전략에 따른 카테고리를 보내왔고, 이에 맞춰 11개의 작품을 수록할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3헥타르에서 3천 헥타르까지 그 규모도 다양했다. 수록 작품의 리스트를 만들면서 편집부는 한정된 지면 안에서 몇몇 작업을 자세하게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할 것인지 사이에서 갈등했다. 결론은 한 설계사무소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특집인 만큼 다양한 작품을 수록하는 쪽으로 났다. 사실 몇 백, 몇 천 헥타르에 달하는 도시적 스케일의 작업을 잡지 몇 페이지에서 속속들이 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 기자는 3천 헥타르의 가론 대공원 프로젝트를 편집하면서 책 한 권도 모자라다며 아쉬워했다. 비록 한정된 지면 안에서 작품을 접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스케일과 문화권을 넘나드는 아장스 테르의 작업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물을 과감하게 이용하는 전략이나 도시권 규모의 계획 프로젝트는 유난히 리서치나 콘텍스트 분석을 강조하는 그들의 디자인 철학이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고 수긍하게 한다. 작품뿐만 아니라 설계사무소의 운영 방식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세 공동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아마 이 가운데 누군가는 운영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설계에 주력하는 등의 역할 분담이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인터뷰 원고를 받고 보니, 지난 30년간 여러 대륙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기본적인 콘셉트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언제나 그 셋이 함께 했단다. 처음에는 대외용 멘트가 아닌가도 싶었다. 그런데, 인터뷰는 세 명과 했는데 답변이 하나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박연미 씨에게 물으니 “셋이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덧붙이는 식으로 대화를 풀어내 답변을 분리할 필요를 못 느꼈어요. 마치 한 사람이 말하듯이 이야기를 해서 좀 놀라울 정도였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터뷰 전 박연미 씨는 아장스 테르는 도제식 성향이 강한 프랑스 조경계에서도 시스템에 의한 설계를 지향하고 있는 독특한 아틀리에라고 귀띔해 그 운영 방식에 대한 궁금함이 컸다. 인터뷰 원고를 보니 앙리 바바를 비롯한 세 명의 공동대표는 프로젝트의 핵심 콘셉트를 함께 만들고, 그 구현은 팀원들에게 맡긴다.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대표 디자이너의 스타일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풀어가는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가는 아장스 테르의 저력이 바로 그 시스템을 유지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조경가 집단이 보여주는 작업의 진화와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또 그 개념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바로 이 지점에 종이 매체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고해졌다. … 정보의 홍수 시대에, 종이 매체는 그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 이번 특집이, 그간 지면의 한계 때문에 부족함을 느꼈을 독자들에게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특별한 편집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토포텍 1을 작가 특집으로 다뤘던 작년 2월호의 코다에 썼던 문장이다. 다시 보니 낯간지럽게 편집 의도가 거창했다. 당시 토포텍 1의 특집은 지금은 설계를 하겠다며 훌훌 떠나버린 양다빈 기자가 맡았었다. 그땐 토포텍 1의 담당자였던 이폴리타와 양 기자가 100여 통의 메일을 주고받으며 특집을 꾸렸다. 두 사람 모두 잘 있는지 궁금해진다.
  • [편집자의 서재] 검색, 사전을 삼키다
    이전 직장에서 ‘검색’은 공적인 하루 업무 중 하나였다. 언론인의 꿈을 안고 들어간 모 통신사의 이슈팀에서 인턴 기자로 일을 시작한 첫 날, 각 부서의 부장이 차례로 회의실에 들어와 부서를 소개하고 앞으로 신입 인턴들의 활약을 기대한다는 덕담 한 마디씩 남기며 퇴장할 때만 해도 나는 펜을 무기 삼아 현장을 누비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부장들의 장황한 소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팀장이 들어와 회사의 띄어쓰기, 표기법, 맞춤법 규칙 등을 정리한 스타일 북한 부와 기사 작성 매뉴얼 한 부를 나눠줬다. 서너 쪽으로 정리된 얄팍한 기사 작성 매뉴얼을 손에 들고 나서야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됐다. 우리의 취재처는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의 기자실이 아니라 네이버, 다음, 디시인사이드, 네이트판과 같은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나 오유(오늘의 유머), 인스티즈, 엽혹진(엽기 혹은 진실), 디젤매니아, 파우더룸, 아이러브싸커 등의 커뮤니티 게시판이었다. 말하자면, 회사가 우리에게 기대한 것은 현장 취재가 아니라 ‘검색어 대응’과 ‘어뷰징’이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1위부터 10위까지 팀원끼리 분배해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라는 반응을 보였다”와 같은 문장으로 끝나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붕어빵 틀로 찍어내듯 생산하는 일이었다. 한동안 이슈팀 인턴 기자라는 이력은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은, 자랑스럽지 않은 경력이었다. 다행히 영상 취재 팀에 소속되어 하루 종일 검색어 기사에 매달리는 다른 팀원보다는 나았지만 주말 당직을 서야 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검색어 대응과 어뷰징에 시달려야 했다. 인턴 마지막 날, 모 부장이 격려하며 한 마디 했다. “때로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어떤 기사를 클릭하고, 어떤 이슈에 반응하는지 감이 생기지 않았어?” 그 해 하반기, 그 매체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는 일명 ‘거제 마티즈 사건’ 기사였다. 불륜 커플이 도심 한복판 차 안에서 성행위를 벌이다 블랙박스에 찍혀 SNS를 통해 신상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는 선정적인 내용이었다. 압도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였지만 기사를 쓴 인턴 동기는 누가 자신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그 기사가 뜰까봐 부끄럽다고 했다. 검색 엔진은 단 몇 번의 클릭과 입력만으로도 넘쳐나는 정보를 제공하지만 정보의 질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든 남들보다 더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내용의 기사를 써야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언론 매체에 대한 실망과 회의를 잔뜩 품고 잡지의 세계로 도망치듯 뛰어들게 되었지만, 경쟁 상대는 바뀌지 않았다. 검색과의 싸움에서 늘 고전을 면치 못하는 잡지 편집자인 내게 지난 5월 출간된 『검색, 사전을 삼키다』는 벼락같은 일갈과 진정성 있는 격려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출판의 꽃이자 자존심’인 사전이 검색에 삼켜져 버린 시대라니. 나처럼 종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사형 선고나 지옥의 묵시록처럼 들릴 법한 책의 제목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메시지는 ‘검색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를 자처 하는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전의 몰락 원인으로 꼽히는 검색 회사에서 웹 사전을 기획하고 있다. 저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무료로 콘텐츠를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되면서 사전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검색과 사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검색 서비스는 대부분 첫 번째 검색 결과로 출판사로부터 저작권을 사들인 사전을 내놓는다. 사전은 ‘최소한의 검색’이자 ‘검색 결과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색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가진 전문 사전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딱지와 우표 수집에서 시작해 음반 수집을 거쳐 수집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어휘 수집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자신의 수집 역사와 정리벽을 이야기하며 사전에 대한 애정을 담백하고 유쾌하게 드러낸다. 사전이 얼마나 고상하고 우아한 물건인지를 예찬하는 그의 맛깔난 애정 고백을 읽다보면 이제는 한물 간 것으로 보였던, 지루하고 고루하게만 느껴지던 사전이 새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상 사전은 위기 수준을 넘어 멸종 위기에 놓인 상태다. 유명한 출판 브랜드의 백과사전 한 질이 중산층의 기준으로 여겨지던 과거의 전성기가 무색하게 올해 종이 사전은 45년 만에 소비생활 대표 종목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사전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이 231원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전의 몰락을 무조건 검색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지난 6월, 그가 한 인터뷰에서 ‘종이 사전의 몰락과 원인은 인터넷 검색에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내놓은 대답은 나를 숙연하게 했다. 종이 사전의 쇠퇴에는 일본이나 영미권 사전을 생각 없이 번역하거나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개성 없는 사전을 펴내던 종이 사전 편집자의 태만과 무능 탓도 있다는 것. 편집자로서의 근본적인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곱씹어볼 만한 대답이다. 잡지의 세계로 뛰어들었지만 어쩌면 지금의 작업도 인턴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 작품을 소개하는 경우, 인터넷 검색을 통해 회사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약 100쪽에 달하는 분량의 이번 아장스 테르 특집도 마찬가지로 구글 검색과 함께 했다. 검색과 종이 매체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야를 가로지르는 접근을 통해 전문 영역의 한계와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아장스 테르의 디자인 철학이 새삼 새롭게 읽힌다.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베를린 시티 랩 ZK/U 시티 프로젝트
    베를린 서북부의 모아비트Moabit는 제조 산업을 담당한 공장과 발전소 등이 있던 외곽 도시로, 베를린 제조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모아비트의 서북 경계선에 위치한 ‘ZK/UZentrum für Kunst und Urbanistik, 보통 제트 코우라고 발음한다’는 기차역을 아트 스튜디오로 개조한 예술 공간이다. 디렉터 마티아스 아인호프Matthias Einhoff, 필리프 호르스트Philip Horst, 하리 작스Harry Sachs가 설립했으며 베를린 시에서 무려 40년 동안 공간을 장기 임대받아 활용하고 있다. “40년이라고요?”라고 경외심을 담아 묻자, “이웃 도시 암스테르담은 이런 경우 99년간 장기 임대를 해준다. 40년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지극히 유럽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비영리 단체인 ZK/U는 베를린의 수많은 예술 공간 중에서도 ‘도시’에 집중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아트 스튜디오다. 찬찬히 스튜디오를 살펴보니 과거 기차역이 지닌 공간의 특성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특별한 기운이 느껴진다. 게이트를 열고 들어서면 펼쳐지는 너른 마당은 역 앞 광장, 건물이 들어선 곳은 기차의 선로, 인터뷰를 진행한 테이블이 놓인 공간은 플랫폼이다. 플랫폼 안에는 주전부리를 팔던 매점도 천연덕스럽게 그대로 놓여 있다. 유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도시 베를린의 예술 공간답다. 베를린의 예술 유휴 공간 유휴 공간을 활용해 예술 공간을 탄생시키는 것은 이미 전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가 되어버렸지만, 베를린은 그중에서도 원조 격 도시라고 부를 만하다. “왜 건물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모두가 납득할 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돈이 없었으니까.” 서독과 동독의 통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 독일은 거의 경제적 파산 상태가 되었다.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이지만 GDP나 도시의 물가는 뮌헨이나 뒤셀도르프, 함부르크가 훨씬 높다. 오히려 베를린은 독일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11%)을 기록하고 있는 가난한 도시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우호적인 도시 환경을 지녔고, 저렴한 물가로 전 세계 젊은 예술가를 모이게 만드는 젊은 예술 도시이기도 하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poor but sexy라는 베를린의 닉네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베를린의 특성은 무엇이든 그대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폭격을 맞은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둔 성당, 기차역이나 우체국 등 공공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아트 스튜디오 등이 너무나 많다. 예술 공간뿐 아니라 카페, 바, 클럽 등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건물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과거에 어떤 공간으로 사용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독특한 건물 재사용 문화가베를린의 정경—어딘가 모르게 음습하지만 섹시하고 흥미로운—을 형성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조숙현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 전문지 『Film 2.0』과 미술 전문지 『퍼블릭아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와 『서울 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서울이 예술가와 생활인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시가 되기를 꿈꾼다. 현재 베를린에서 표류 중이며, 미래 도시의 희망을 베를린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 [CODA] 11만2천5백
    남기준 편집장의 코다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실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게도 이번 달도 코다를 쓰고 있다. 편집장과 번갈아 쓰고 있는 이 지면을 석 달째 붙들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지난달에도 말씀드렸듯 10월 여러분께 찾아갈 ‘2016 서울정원박람회’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도 박람회 준비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편집장의 낭랑한(!) 전화 통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편집장이 동심원의 20주년 기념 작품집 제작 역시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경계에서 한 설계사무소가 20년을 버텨왔다는 것도 축하할 일이지만, 그 기록을 남긴다는 점도 반길 만하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라면 한 기업의 사적 기록이기도 하지만 조경계의 역사라고 부를 법하다. 최근 몇몇 설계사무소에서 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사진작가에게 작품 촬영을 의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경계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크고 작은 사무실들이 작품집을 만든다는 소식은 좋은 징조처럼 보인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과거를 정리하고 반추하며, 미래를 위해 장점과 강점을 찾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의 작업을 존중하고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존중하겠는가. 결론은 그래서 이번 달도 바쁜 편집장을 대신해 코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서울정원박람회 오픈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그 뒷이야기로 이 지면을 채워볼까 한다. 식물을 경험하는 또 다른 감각 성황리에 사전 접수가 마감된 ‘해설이 있는 정원 투어’는 서울정원박람회장에 조성된 정원을 전문 가드너와 함께 돌아보며 식물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김성식 국립수목원 식물클리닉센터장, 노회은 제이드가든 가드너, 남수환 천리포수목원 가드너, 한택식물원의 강정화 이사, 그리고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와 김장훈 전문정원사까지 총 6명의 전문가가 흥미로운 정원 식물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본래 독특한 디테일이 더 있었다. 기획자인 이형주 기자가 장애인을 위한 정원 투어를 제안했다. 감각에 제한이 있는 사람도 정원을 통해 자연과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다. 저널리스트 고규홍에게 투어 해설을 부탁드렸다. 고규홍은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나무 바라보기를 시도한 경험을 담은 『슈베르트와 나무』라는 책을 펴냈고, 이 기자는 이 두 사람의 사례에 감화된 상태였다. 정원 투어 요청에 대해 이 기자가 받은 답변은 이러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여러 사람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고규홍은 김예지와 1년 가까이 교감한 덕택에 그녀가 나무를 느끼는 데 중계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관계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며, 두 사람 모두 식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는 전언은 인상적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장애인과 교감하는 방식에 관해 특강을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역으로 해주기도 했다. 조경가나 전문가들에게 정원을 조성하는 데 색다른 시각을 던져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여러 여건상 그 특강은 이번 박람회에서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 일련의 대화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오팔지 휘날리며 그리고 많은 고민과 토론, 시행착오 끝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그늘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람회의 개ㆍ폐막식, 정원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공연, 영화 상영 등이 벌어질 박람회장 중앙무대 앞 광장에 그늘막을 설치하는 미션에 관한 이야기다. 200여 평에 달하는 면적을 가려야 하므로 기성품으로는 해결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천막을 치듯 광목천을 씌우려고 했지만 천의 무게를 감당하는 기초의 천문학적(!) 제작비 때문에 좌절되었다. 그다음 등장한 아이디어가 헬륨 풍선으로 그물망을 지탱하는 안이었다. 그러나 헬륨 풍선은 7시간 밖에 못 견딘다는 한계 때문에 탈락. 그럼 이번엔 일반 풍선. 애드벌룬 업체에서는 바람이 불면 그물을 지탱하던 풍선이 터져 버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진 난상토론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그럼 가벼운 셀로판지를 달자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던 차에 L.A.의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에 설치된 ‘Liquid Shard’가 확신을 주었다. 그물망에 불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하늘로 날리는 영상은 우리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물망에 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타프(tarp)를 치듯이 지지하기로 결정하고 좋은 아이디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도 잠시, 그늘막 디자인을 맡았던 C 실장은 매번 초조한 얼굴로 편집부 문을 밀고 들어왔다. C 실장은 셀로판지를 달 그물망을 찾아 전국을 뒤졌다. 새를 막는 방조망부터 차량 덮개용 그물, 운동 경기용 네트까지 알아본 끝에 부산에서 적당한 어망을 발견했다. 그물코를 계산해 어망을 제작하니 이번에는 셀로판지가 문제로 떠올랐다. 도대체 어느 정도 간격으로 몇 장이나 달아야 할까. 이때 쓰인 셀로판지의 이름은 업계 용어로 ‘오팔지’, 쉽게 설명하면 사탕 포장지다. 환경과조경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마케팅팀의 P 부장과 H 대리가 그물망과 씨름하며 적당한 모듈을 찾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 동기가 떠올랐다. 졸업 후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휘하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파리 패션쇼 준비를 한다기에 모두들 부러워했다. 그런데 비즈(beads) 2천 개를 일일이 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2천 개 쯤은 별거 아니라는 결론이다. 계산 결과 11만2천5백 조각의 오팔지가 필요했다. 그 다음의 제작 과정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제발 청명한 가을 하늘에 오팔지가 만국기처럼 휘날리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 [편집자의 서재]로드
    때때로 배경은 인물의 표정이나 대사보다 많은 것을 전달한다. 주인공의 눈물 대신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가로등 불빛만이 유일한 조명인 골목길은 스릴러 영화의 단골 소재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풍경은 청춘의 상징으로 곧잘 사용된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여주인공이 잘 지내냐는 외침을 던지는 장소가 짙푸른 수목이 우거진 산이었다면, 설산의 풍경을 배경으로 두었을 때만큼의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끝없이 펼쳐진 하얀 눈밭은 영화의 분위기와 상대에게 닿을 수 없는 물음을 더욱 먹먹하고 아련하게 그린다. 『로드The Road』의 배경은 잿빛이다. 잿빛은 파괴된 도시의 모습과 희망이 없는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전부 불에 타버린 도시에는 색이 없다. 부서진 아스팔트, 바람에 날리는 재, 금이 간 건물, 신발에 끈끈하게 달라붙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등 명도나 질감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회색빛이다. 일반적으로 희망이나 생명력을 상징하는 나무도 이 책 속에서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할 뿐이다. 숯덩이처럼 타버려 하늘을 향해 뻗은 날 선 나뭇가지가 메마른 느낌을 더하고, 검은 상록수 숲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유일하게 색을 지닌 것은 조리된 고기의 단면에 맺힌 핏물이나 고장 난 자판기에서 발견한 코카콜라 캔(붉은 물체 중 가장 선명하게 묘사되는데, 책의 저자인 코맥 매카시는 과거 코카콜라의 지원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등의 먹을거리와 계속해서 도시를 태우고 있는 불길과 소년의 마음속에 있다는 ‘불’이다.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 문명, 인간성까지 파괴된 세계에서 생명력 또는 희망을 품은 것만 색을 지니고 있다. 한 남자와 그의 아들의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흑백의 여정 사이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색들은 어둠에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회색빛 세계에 『로드』의 불친절한 전개 방식은 막막함을 더한다. 일반적인 재난, 지구 종말을 다룬 작품과는 달리 이 책은 세계가 불타버린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는 수준의 설명은커녕, 언제부터 세계가 타기 시작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부터 남자와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파괴된 도시 위를 걷고 있었다. 둘의 관계나 이름 하나 나오지 않지만, 둘의 대화에서 ‘아빠’라는 호칭이 오가는 것으로 부자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이야기에는 어떤 극적인 요소도 없다. 먹을 것을 찾고, 잠자리를 찾고, 바닷가로 향하는 길을 찾는 일이 반복되며 시간은 흐른다. 수식어구 하나 없는 문장으로 표현된 풍경과 담담한 대화를 통해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 긴 시간을 “한 해가 저물어 갔다. 몇 월인지는 알 수 없었다”라는 두 문장만으로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어떤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스톤 박사가 어디가 끝인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우주에 홀로 남겨졌을 때처럼.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에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알았어요.” 부자의 담담한 대화에는 부성애와 더불어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녹아있다. 식량을 약탈하려는 사람이나 인육을 먹는 사람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공포와는 다른 종류다. 긍정적인 일을 상상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이들의 여정은 계속된다. 그저 길이 있기 때문에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두운 현실 때문에 소년의 가슴 속 희망을 상징하는 ‘불’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해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 작은 아이 기억나요, 아빠?”, “그 아이 괜찮을까요?”, “길을 잃었던 걸까요?”, “길을 잃었던 걸까봐 걱정이 돼요”라며 지나쳐온 아이를 걱정하는 아이의 대사가 밝게 빛난다. 소설 초반부, 남자는 우연히 자신이 살았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집 안의 가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과거를 추억하는 모습에 나 역시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를 떠올렸다. 같은 동네 안에서 서너 번 이사를 다녔던 탓에 집보다는 골목에 쌓인 추억이 많은데, 체계적인 계획 없이 만들어져 삐뚤빼뚤한 형태로 조성된 골목길은 숨바꼭질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골목은 말끔한 선을 따라 재정비되었고, 몸을 숨길 수 있었던 낮은 벽돌담은 범죄 예방을 위해 허물어졌다. 때때로 옛 동네를 지나갈 때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보다 주택에 사는 내가 더 많은 추억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건방진 것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아파트를 허무는 일이 주택을 허무는 일보다는 어려우니,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는 시간도 길 테니 말이다. 이번 달의 특집인 광교신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어디에 추억을 쌓게 될까. 아파트 단지 뒤쪽으로 펼쳐져 있는 사라질 염려가 없는 호수공원이 문득 부러워진다.
  • 베를린 인디 공간, 어벤져스 파티! 베를린 프로젝트 스페이스 페스티벌 2016
    8월 한 달 동안 31개의 독립 예술 공간이 오픈 스튜디오를 진행하는 축제가 베를린에서 열렸다. 바로 ‘베를린 프로젝트 스페이스 페스티벌(Project Space Festival Berlin, 이하 PSF)’이다. PSF는 2014년 베를린에서 시작되어 올해 3회를 맞았다.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개념을 한국식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대안 예술 공간에 가장 가깝다. 하지만 단순한 전시 기능 외에도 생계형 스튜디오의 특성을 지니거나 다양한 독자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독립 예술 공간’으로 보는 편이 더 옳다. 독립 공간이란 대규모 상업 자본이나 관 혹은 시에서 주도하는 형태가 아닌, 예술 독립군들이 제멋대로 운영하는 공간이며 개별적인 성격과 목소리를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언더그라운드 문화 집결소로 주목할 만하다. 베를린과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긴요한 관계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현대 예술의 최전방 도시답게 베를린 시에 존재하는 프로젝트 공간만 무려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매년 100여 곳이 이 페스티벌에 참가 신청서를 접수하고 그중 심사를 통해 선정된 31개 공간이 페스티벌에 참여한다고 하니, 가히 ‘인디 공간 어벤져스 파티’라고 칭할 만하다. PSF는 베를린의 작은 대안 공간 ‘인시투(nsitu)에서 시작됐다. 2012년 1980년대생 젊은 큐레이터 세 명이 만든 이 공간은 큐레이토리얼적 실험과 퍼포먼스, 비디오 상영, 전시 등 현대 예술에 관한 실험을 선보이는 비영리 예술 공간이며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던 중 2014년부터 베를린의 실험적 공간 30여 곳을 모아 페스티벌을 벌이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 PSF다. 매해 다른 테마가 선정되고 심사위원도 이에 따라 새로 뽑힌다. 심사위원은 아티스트, 페스티벌 운영 위원, 큐레이터, 저널리스트 등으로 구성되며, 올해의 주제는 노마드다. 이에 따라 베를린 외부에 위치한 브루흐 & 달라스(Bruch & Dallas), 코미디 클럽(Comedy Club), 토코노마(TOKONOMA)가 참여했는데, 디아스포라(diaspora)를 정체성으로 둔 공간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페스티벌은 처음으로 베를린 시에서 시티 택스(city tax) 지원을 받게 되었는데, 특히 이 지원금이 베를린 광관 조세에서 기인했다는 점이 의미가 깊다. 시티 택스란 관광 숙박비에 매겨진 일정 금액의 세금으로, 올해에는 이 중 일부를 페스티벌에 지원해 참여자에게 참가비를 받지 않고 오히려 소정의 아티스트 피(fee)를 지급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즉, 베를린 시가 “베를린의 프로젝트 스페이스들이 베를린 시에 기여하고 있으므로 시의 지원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라는 PSF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베를린 시의 독립 예술 공간에 대한 지원은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베를린은 매년 실험 공간 한 곳을 선정하여 3만 유로의 상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인디 문화와 공간에 대해 인식하고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인디 공간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데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다. PSF는 31개 공간에 24시간을 공평하게 제공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확장하는 장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프로젝트 공간과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면, 베를린의 특수한 역사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동독과 서독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형성된 도시 베를린은 예술과 저항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스쾃(squat) 운동가들은 버려진 건물을 점거하고 예술 활동을 벌였으며,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질 당시에는 온갖 예술가가 모여 벽화를 그리고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다. 베를린 거리를 걸으면 이런 인디 정신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 신기할 뿐이다. 또한 전 세계의 이민자가 모이는 디아스포라 도시답게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수도 많고 운영 형식이나 성격도 매우 다양하다. 31개 공간은 베를린 전역에 흩어져있다. 위치만큼이나 성격도 다양하고 분명하며, 다양한 젠더와 인종 어젠다를 내걸고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42호(2016년10월호)수록본 일부 조숙현은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영화 전문지 『Film 2.0』과 미술 전문지 『퍼블릭아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와 『서울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서울이 예술가가 공존할 수 있는 도시가 되기를 꿈꾼다.현재 현대 미술의 희망 도시 베를린에서 표류 중이며, 인디 공간의 미래를 베를린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찬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 서울 앉기, 서로 알기 2016 공공디자인 공모전
    지난 8월 4일,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에서 ‘2016 공공디자인 공모전’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2016 공공디자인 공모전’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의 외부 공간에 설치할 벤치를 ‘서울 앉기, 서로 알기’라는 주제로 디자인하는 시민 공모전이다. 공간을 재해석한 창의적인 시설물을 통해 소통이 있는 활기차고 즐거운 도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이번 공모전의 목표였다. 대상을 수상한 나석영의 ‘마주하는 집’은 길음2동 주민센터를 배경으로 협소한 외부 공간을 활용했다. 좁은 도로와 보도 없이 바로 맞닿아 있어 주변 공간이 부족한 주민센터 외벽에 배관 파이프로 집 모양을 형상화한 벤치를 설치하여 주민의 작은 쉼터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단조로운 건물 외관을 개선하고 주민센터의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도 보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협소한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금상에는 윤소희, 김한슬의 ‘작지만 다양한’과 황도일의 ‘단지 의자’가 선정됐다. ‘작지만 다양한’은 주차장과 보행로 간의 구분이 모호하고 협소한 용답동 주민센터의 외부 공간에 보행 영역을 구분해줄 수 있는 트렐리스형 벤치다. 가벼운 프레임에 접이식 벤치를 설치해 보행 통로, 정원 같은 휴식처, 전시 및 교류 공간 등으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단지 의자’는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혜화동 주민센터에 어울리는 장독을 콘셉트로 했다. 누구나 앉아 보고 싶은 친근한 장독 단지 의자가 고풍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도 은상 4작품, 동상 7작품, 장려상 15작품, 입선 20작품 등 총 49점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시상식 및 전시회는 9월 21일부터 9월 29일까지 서울시청 본관 1층 로비에서 개최된다. 수상자에게는 서울특별시장상과 함께 대상 5백만 원, 금상 2백만 원, 은상 1백만 원, 동상 50만 원, 장려상 30만 원, 입선 2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서울시는 수상작을 실물로 제작하여 시민들이 직접 앉아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작품집과 매뉴얼을 제작하여 자치구 및 산하사업소에 배포할 예정이다. 또한 전시회에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활용도가 높은 작품은 추가로 제작하여 주민센터에 설치할 예정이다. 수상작 및 수상자 명단은 ‘내 손안에 서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서울역 7017 인포가든 미리 만나는 서울역 고가, 2016. 6. ~ 11.
    서울도서관 모퉁이의 보행 통로에 흰색 원통들이 등장했다. 원통 위에는 푸른 식물이 자라고 있고, 바닥은 회색 블록이 깔린 주변 보도와는 다르게 흰색 시멘트로 포장됐다. 주변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 공간은 2017년 완공될 서울역 고가 보행길을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조성된 ‘서울역 7017 인포가든(이하 인포가든)’이다. 인포메이션과 가든의 합성어인 인포가든은 서울역 고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서울시가 조성한 작은 정원이다. 지난 6월 23일 서울시는 인포가든을 개방했고, 이를 기념하며 같은 달 26일까지 다양한 전시와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인포가든의 설계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당선 작가인 비니 마스(MVRDV)가 맡아 진행했다. 218m2의 작은 보행 공간 위에 원통형의 전시 시설과 안내 시설, 식재 화분tree pot 열 개, 가로등 세 개가 설치됐는데, 이는 비니 마스의 서울역 고가 설계안 ‘서울수목원The Seoul Arboretum’의 핵심 요소들이다. 실제 서울역 고가에는 20개의 편의 시설과 684개의 식재 화분이 설치되어, 서울 곳곳을 연결하는 거대한 수목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직경 5m, 높이 3.5m의 원통형 전시 시설의 지붕에는 사계장미가 식재됐다. 벽면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특히 내부의 벽면이 붉은색으로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이 시설에서는 서울역 고가의 역사와 미래를 체험할 수 있다. 중앙에 설치된 스마트 미디어 테이블에서는 서울역 일대의 변화와 서울역 고가가 완공된 모습을 3D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전시관 상부에 마련된 5개의 모니터에서는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서울역 고가 시민 개방 행사, 서울역 일대 스케치투어 영상 등이 상영된다. 이 밖에도 전시 시설 대각선 방향에 있는 안내 시설에서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10개의 식재 화분에는 반송, 백송, 소나무, 잣나무, 사계장미, 팥배나무, 산사나무가 식재됐다. 이 화분은 일반형과 벤치형으로 나뉘는데, 지름이 1.7m 정도 되는 식재 화분에는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목재 벤치가 설치됐다. 여러 나무와 서울도서관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작은 피난처를 제공한다. 인포가든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주말, 공휴일에는 오전 10시 ~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무다. 11월 말까지 운영한 후에는 실제 서울역 고가로 옮겨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역 고가는 지난 5월 기존의 바닥판을 걷어낸 데에 이어 새로운 바닥 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10월 말이면 새로운 상판 포장 작업을 마무리하고, 내년 4월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남은 공사를 진행할 것이다. 새롭게 태어날 서울역 고가는 어떤 모습일까? 인포가든 외에도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모으기 위해 트리팟 기부 캠페인, 고가 만화 전시, 서울 드로잉 전시회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11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추후 서울역 7017 홈페이지(www.ss7017.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