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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DA] 11만2천5백
    남기준 편집장의 코다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실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게도 이번 달도 코다를 쓰고 있다. 편집장과 번갈아 쓰고 있는 이 지면을 석 달째 붙들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지난달에도 말씀드렸듯 10월 여러분께 찾아갈 ‘2016 서울정원박람회’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도 박람회 준비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편집장의 낭랑한(!) 전화 통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편집장이 동심원의 20주년 기념 작품집 제작 역시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경계에서 한 설계사무소가 20년을 버텨왔다는 것도 축하할 일이지만, 그 기록을 남긴다는 점도 반길 만하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라면 한 기업의 사적 기록이기도 하지만 조경계의 역사라고 부를 법하다. 최근 몇몇 설계사무소에서 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사진작가에게 작품 촬영을 의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경계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크고 작은 사무실들이 작품집을 만든다는 소식은 좋은 징조처럼 보인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과거를 정리하고 반추하며, 미래를 위해 장점과 강점을 찾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의 작업을 존중하고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존중하겠는가. 결론은 그래서 이번 달도 바쁜 편집장을 대신해 코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서울정원박람회 오픈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그 뒷이야기로 이 지면을 채워볼까 한다. 식물을 경험하는 또 다른 감각 성황리에 사전 접수가 마감된 ‘해설이 있는 정원 투어’는 서울정원박람회장에 조성된 정원을 전문 가드너와 함께 돌아보며 식물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김성식 국립수목원 식물클리닉센터장, 노회은 제이드가든 가드너, 남수환 천리포수목원 가드너, 한택식물원의 강정화 이사, 그리고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와 김장훈 전문정원사까지 총 6명의 전문가가 흥미로운 정원 식물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본래 독특한 디테일이 더 있었다. 기획자인 이형주 기자가 장애인을 위한 정원 투어를 제안했다. 감각에 제한이 있는 사람도 정원을 통해 자연과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다. 저널리스트 고규홍에게 투어 해설을 부탁드렸다. 고규홍은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나무 바라보기를 시도한 경험을 담은 『슈베르트와 나무』라는 책을 펴냈고, 이 기자는 이 두 사람의 사례에 감화된 상태였다. 정원 투어 요청에 대해 이 기자가 받은 답변은 이러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여러 사람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고규홍은 김예지와 1년 가까이 교감한 덕택에 그녀가 나무를 느끼는 데 중계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관계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며, 두 사람 모두 식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는 전언은 인상적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장애인과 교감하는 방식에 관해 특강을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역으로 해주기도 했다. 조경가나 전문가들에게 정원을 조성하는 데 색다른 시각을 던져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여러 여건상 그 특강은 이번 박람회에서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 일련의 대화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오팔지 휘날리며 그리고 많은 고민과 토론, 시행착오 끝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그늘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람회의 개ㆍ폐막식, 정원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공연, 영화 상영 등이 벌어질 박람회장 중앙무대 앞 광장에 그늘막을 설치하는 미션에 관한 이야기다. 200여 평에 달하는 면적을 가려야 하므로 기성품으로는 해결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천막을 치듯 광목천을 씌우려고 했지만 천의 무게를 감당하는 기초의 천문학적(!) 제작비 때문에 좌절되었다. 그다음 등장한 아이디어가 헬륨 풍선으로 그물망을 지탱하는 안이었다. 그러나 헬륨 풍선은 7시간 밖에 못 견딘다는 한계 때문에 탈락. 그럼 이번엔 일반 풍선. 애드벌룬 업체에서는 바람이 불면 그물을 지탱하던 풍선이 터져 버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진 난상토론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그럼 가벼운 셀로판지를 달자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던 차에 L.A.의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에 설치된 ‘Liquid Shard’가 확신을 주었다. 그물망에 불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하늘로 날리는 영상은 우리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물망에 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타프(tarp)를 치듯이 지지하기로 결정하고 좋은 아이디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도 잠시, 그늘막 디자인을 맡았던 C 실장은 매번 초조한 얼굴로 편집부 문을 밀고 들어왔다. C 실장은 셀로판지를 달 그물망을 찾아 전국을 뒤졌다. 새를 막는 방조망부터 차량 덮개용 그물, 운동 경기용 네트까지 알아본 끝에 부산에서 적당한 어망을 발견했다. 그물코를 계산해 어망을 제작하니 이번에는 셀로판지가 문제로 떠올랐다. 도대체 어느 정도 간격으로 몇 장이나 달아야 할까. 이때 쓰인 셀로판지의 이름은 업계 용어로 ‘오팔지’, 쉽게 설명하면 사탕 포장지다. 환경과조경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마케팅팀의 P 부장과 H 대리가 그물망과 씨름하며 적당한 모듈을 찾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 동기가 떠올랐다. 졸업 후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휘하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파리 패션쇼 준비를 한다기에 모두들 부러워했다. 그런데 비즈(beads) 2천 개를 일일이 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2천 개 쯤은 별거 아니라는 결론이다. 계산 결과 11만2천5백 조각의 오팔지가 필요했다. 그 다음의 제작 과정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제발 청명한 가을 하늘에 오팔지가 만국기처럼 휘날리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 [편집자의 서재]로드
    때때로 배경은 인물의 표정이나 대사보다 많은 것을 전달한다. 주인공의 눈물 대신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가로등 불빛만이 유일한 조명인 골목길은 스릴러 영화의 단골 소재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풍경은 청춘의 상징으로 곧잘 사용된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여주인공이 잘 지내냐는 외침을 던지는 장소가 짙푸른 수목이 우거진 산이었다면, 설산의 풍경을 배경으로 두었을 때만큼의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끝없이 펼쳐진 하얀 눈밭은 영화의 분위기와 상대에게 닿을 수 없는 물음을 더욱 먹먹하고 아련하게 그린다. 『로드The Road』의 배경은 잿빛이다. 잿빛은 파괴된 도시의 모습과 희망이 없는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전부 불에 타버린 도시에는 색이 없다. 부서진 아스팔트, 바람에 날리는 재, 금이 간 건물, 신발에 끈끈하게 달라붙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등 명도나 질감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회색빛이다. 일반적으로 희망이나 생명력을 상징하는 나무도 이 책 속에서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할 뿐이다. 숯덩이처럼 타버려 하늘을 향해 뻗은 날 선 나뭇가지가 메마른 느낌을 더하고, 검은 상록수 숲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유일하게 색을 지닌 것은 조리된 고기의 단면에 맺힌 핏물이나 고장 난 자판기에서 발견한 코카콜라 캔(붉은 물체 중 가장 선명하게 묘사되는데, 책의 저자인 코맥 매카시는 과거 코카콜라의 지원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등의 먹을거리와 계속해서 도시를 태우고 있는 불길과 소년의 마음속에 있다는 ‘불’이다.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 문명, 인간성까지 파괴된 세계에서 생명력 또는 희망을 품은 것만 색을 지니고 있다. 한 남자와 그의 아들의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흑백의 여정 사이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색들은 어둠에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회색빛 세계에 『로드』의 불친절한 전개 방식은 막막함을 더한다. 일반적인 재난, 지구 종말을 다룬 작품과는 달리 이 책은 세계가 불타버린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는 수준의 설명은커녕, 언제부터 세계가 타기 시작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부터 남자와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파괴된 도시 위를 걷고 있었다. 둘의 관계나 이름 하나 나오지 않지만, 둘의 대화에서 ‘아빠’라는 호칭이 오가는 것으로 부자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이야기에는 어떤 극적인 요소도 없다. 먹을 것을 찾고, 잠자리를 찾고, 바닷가로 향하는 길을 찾는 일이 반복되며 시간은 흐른다. 수식어구 하나 없는 문장으로 표현된 풍경과 담담한 대화를 통해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 긴 시간을 “한 해가 저물어 갔다. 몇 월인지는 알 수 없었다”라는 두 문장만으로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어떤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스톤 박사가 어디가 끝인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우주에 홀로 남겨졌을 때처럼.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에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알았어요.” 부자의 담담한 대화에는 부성애와 더불어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녹아있다. 식량을 약탈하려는 사람이나 인육을 먹는 사람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공포와는 다른 종류다. 긍정적인 일을 상상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이들의 여정은 계속된다. 그저 길이 있기 때문에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두운 현실 때문에 소년의 가슴 속 희망을 상징하는 ‘불’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해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 작은 아이 기억나요, 아빠?”, “그 아이 괜찮을까요?”, “길을 잃었던 걸까요?”, “길을 잃었던 걸까봐 걱정이 돼요”라며 지나쳐온 아이를 걱정하는 아이의 대사가 밝게 빛난다. 소설 초반부, 남자는 우연히 자신이 살았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집 안의 가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과거를 추억하는 모습에 나 역시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를 떠올렸다. 같은 동네 안에서 서너 번 이사를 다녔던 탓에 집보다는 골목에 쌓인 추억이 많은데, 체계적인 계획 없이 만들어져 삐뚤빼뚤한 형태로 조성된 골목길은 숨바꼭질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골목은 말끔한 선을 따라 재정비되었고, 몸을 숨길 수 있었던 낮은 벽돌담은 범죄 예방을 위해 허물어졌다. 때때로 옛 동네를 지나갈 때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보다 주택에 사는 내가 더 많은 추억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건방진 것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아파트를 허무는 일이 주택을 허무는 일보다는 어려우니,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는 시간도 길 테니 말이다. 이번 달의 특집인 광교신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어디에 추억을 쌓게 될까. 아파트 단지 뒤쪽으로 펼쳐져 있는 사라질 염려가 없는 호수공원이 문득 부러워진다.
  • 베를린 인디 공간, 어벤져스 파티! 베를린 프로젝트 스페이스 페스티벌 2016
    8월 한 달 동안 31개의 독립 예술 공간이 오픈 스튜디오를 진행하는 축제가 베를린에서 열렸다. 바로 ‘베를린 프로젝트 스페이스 페스티벌(Project Space Festival Berlin, 이하 PSF)’이다. PSF는 2014년 베를린에서 시작되어 올해 3회를 맞았다.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개념을 한국식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대안 예술 공간에 가장 가깝다. 하지만 단순한 전시 기능 외에도 생계형 스튜디오의 특성을 지니거나 다양한 독자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독립 예술 공간’으로 보는 편이 더 옳다. 독립 공간이란 대규모 상업 자본이나 관 혹은 시에서 주도하는 형태가 아닌, 예술 독립군들이 제멋대로 운영하는 공간이며 개별적인 성격과 목소리를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언더그라운드 문화 집결소로 주목할 만하다. 베를린과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긴요한 관계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현대 예술의 최전방 도시답게 베를린 시에 존재하는 프로젝트 공간만 무려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매년 100여 곳이 이 페스티벌에 참가 신청서를 접수하고 그중 심사를 통해 선정된 31개 공간이 페스티벌에 참여한다고 하니, 가히 ‘인디 공간 어벤져스 파티’라고 칭할 만하다. PSF는 베를린의 작은 대안 공간 ‘인시투(nsitu)에서 시작됐다. 2012년 1980년대생 젊은 큐레이터 세 명이 만든 이 공간은 큐레이토리얼적 실험과 퍼포먼스, 비디오 상영, 전시 등 현대 예술에 관한 실험을 선보이는 비영리 예술 공간이며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던 중 2014년부터 베를린의 실험적 공간 30여 곳을 모아 페스티벌을 벌이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 PSF다. 매해 다른 테마가 선정되고 심사위원도 이에 따라 새로 뽑힌다. 심사위원은 아티스트, 페스티벌 운영 위원, 큐레이터, 저널리스트 등으로 구성되며, 올해의 주제는 노마드다. 이에 따라 베를린 외부에 위치한 브루흐 & 달라스(Bruch & Dallas), 코미디 클럽(Comedy Club), 토코노마(TOKONOMA)가 참여했는데, 디아스포라(diaspora)를 정체성으로 둔 공간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페스티벌은 처음으로 베를린 시에서 시티 택스(city tax) 지원을 받게 되었는데, 특히 이 지원금이 베를린 광관 조세에서 기인했다는 점이 의미가 깊다. 시티 택스란 관광 숙박비에 매겨진 일정 금액의 세금으로, 올해에는 이 중 일부를 페스티벌에 지원해 참여자에게 참가비를 받지 않고 오히려 소정의 아티스트 피(fee)를 지급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즉, 베를린 시가 “베를린의 프로젝트 스페이스들이 베를린 시에 기여하고 있으므로 시의 지원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라는 PSF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베를린 시의 독립 예술 공간에 대한 지원은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베를린은 매년 실험 공간 한 곳을 선정하여 3만 유로의 상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인디 문화와 공간에 대해 인식하고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인디 공간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데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다. PSF는 31개 공간에 24시간을 공평하게 제공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확장하는 장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프로젝트 공간과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면, 베를린의 특수한 역사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동독과 서독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형성된 도시 베를린은 예술과 저항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스쾃(squat) 운동가들은 버려진 건물을 점거하고 예술 활동을 벌였으며,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질 당시에는 온갖 예술가가 모여 벽화를 그리고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다. 베를린 거리를 걸으면 이런 인디 정신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 신기할 뿐이다. 또한 전 세계의 이민자가 모이는 디아스포라 도시답게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수도 많고 운영 형식이나 성격도 매우 다양하다. 31개 공간은 베를린 전역에 흩어져있다. 위치만큼이나 성격도 다양하고 분명하며, 다양한 젠더와 인종 어젠다를 내걸고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42호(2016년10월호)수록본 일부 조숙현은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영화 전문지 『Film 2.0』과 미술 전문지 『퍼블릭아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와 『서울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서울이 예술가가 공존할 수 있는 도시가 되기를 꿈꾼다.현재 현대 미술의 희망 도시 베를린에서 표류 중이며, 인디 공간의 미래를 베를린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찬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 서울 앉기, 서로 알기 2016 공공디자인 공모전
    지난 8월 4일,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에서 ‘2016 공공디자인 공모전’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2016 공공디자인 공모전’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의 외부 공간에 설치할 벤치를 ‘서울 앉기, 서로 알기’라는 주제로 디자인하는 시민 공모전이다. 공간을 재해석한 창의적인 시설물을 통해 소통이 있는 활기차고 즐거운 도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이번 공모전의 목표였다. 대상을 수상한 나석영의 ‘마주하는 집’은 길음2동 주민센터를 배경으로 협소한 외부 공간을 활용했다. 좁은 도로와 보도 없이 바로 맞닿아 있어 주변 공간이 부족한 주민센터 외벽에 배관 파이프로 집 모양을 형상화한 벤치를 설치하여 주민의 작은 쉼터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단조로운 건물 외관을 개선하고 주민센터의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도 보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협소한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금상에는 윤소희, 김한슬의 ‘작지만 다양한’과 황도일의 ‘단지 의자’가 선정됐다. ‘작지만 다양한’은 주차장과 보행로 간의 구분이 모호하고 협소한 용답동 주민센터의 외부 공간에 보행 영역을 구분해줄 수 있는 트렐리스형 벤치다. 가벼운 프레임에 접이식 벤치를 설치해 보행 통로, 정원 같은 휴식처, 전시 및 교류 공간 등으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단지 의자’는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혜화동 주민센터에 어울리는 장독을 콘셉트로 했다. 누구나 앉아 보고 싶은 친근한 장독 단지 의자가 고풍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도 은상 4작품, 동상 7작품, 장려상 15작품, 입선 20작품 등 총 49점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시상식 및 전시회는 9월 21일부터 9월 29일까지 서울시청 본관 1층 로비에서 개최된다. 수상자에게는 서울특별시장상과 함께 대상 5백만 원, 금상 2백만 원, 은상 1백만 원, 동상 50만 원, 장려상 30만 원, 입선 2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서울시는 수상작을 실물로 제작하여 시민들이 직접 앉아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작품집과 매뉴얼을 제작하여 자치구 및 산하사업소에 배포할 예정이다. 또한 전시회에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활용도가 높은 작품은 추가로 제작하여 주민센터에 설치할 예정이다. 수상작 및 수상자 명단은 ‘내 손안에 서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서울역 7017 인포가든 미리 만나는 서울역 고가, 2016. 6. ~ 11.
    서울도서관 모퉁이의 보행 통로에 흰색 원통들이 등장했다. 원통 위에는 푸른 식물이 자라고 있고, 바닥은 회색 블록이 깔린 주변 보도와는 다르게 흰색 시멘트로 포장됐다. 주변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 공간은 2017년 완공될 서울역 고가 보행길을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조성된 ‘서울역 7017 인포가든(이하 인포가든)’이다. 인포메이션과 가든의 합성어인 인포가든은 서울역 고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서울시가 조성한 작은 정원이다. 지난 6월 23일 서울시는 인포가든을 개방했고, 이를 기념하며 같은 달 26일까지 다양한 전시와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인포가든의 설계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당선 작가인 비니 마스(MVRDV)가 맡아 진행했다. 218m2의 작은 보행 공간 위에 원통형의 전시 시설과 안내 시설, 식재 화분tree pot 열 개, 가로등 세 개가 설치됐는데, 이는 비니 마스의 서울역 고가 설계안 ‘서울수목원The Seoul Arboretum’의 핵심 요소들이다. 실제 서울역 고가에는 20개의 편의 시설과 684개의 식재 화분이 설치되어, 서울 곳곳을 연결하는 거대한 수목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직경 5m, 높이 3.5m의 원통형 전시 시설의 지붕에는 사계장미가 식재됐다. 벽면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특히 내부의 벽면이 붉은색으로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이 시설에서는 서울역 고가의 역사와 미래를 체험할 수 있다. 중앙에 설치된 스마트 미디어 테이블에서는 서울역 일대의 변화와 서울역 고가가 완공된 모습을 3D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전시관 상부에 마련된 5개의 모니터에서는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서울역 고가 시민 개방 행사, 서울역 일대 스케치투어 영상 등이 상영된다. 이 밖에도 전시 시설 대각선 방향에 있는 안내 시설에서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10개의 식재 화분에는 반송, 백송, 소나무, 잣나무, 사계장미, 팥배나무, 산사나무가 식재됐다. 이 화분은 일반형과 벤치형으로 나뉘는데, 지름이 1.7m 정도 되는 식재 화분에는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목재 벤치가 설치됐다. 여러 나무와 서울도서관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작은 피난처를 제공한다. 인포가든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주말, 공휴일에는 오전 10시 ~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무다. 11월 말까지 운영한 후에는 실제 서울역 고가로 옮겨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역 고가는 지난 5월 기존의 바닥판을 걷어낸 데에 이어 새로운 바닥 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10월 말이면 새로운 상판 포장 작업을 마무리하고, 내년 4월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남은 공사를 진행할 것이다. 새롭게 태어날 서울역 고가는 어떤 모습일까? 인포가든 외에도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모으기 위해 트리팟 기부 캠페인, 고가 만화 전시, 서울 드로잉 전시회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11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추후 서울역 7017 홈페이지(www.ss7017.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 2016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 2016 Chaumont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고려에 망국의 빛이 드리워지고 조선 건국의 조짐이 보이던 혼란스러운 시기인 14세기 말 15세기 초, 유럽에서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핏빛이 가득한 전쟁이 한창이었다. 바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이다.프랑스에서 가장 긴 루아르Loire 강변의 건물들이 요새 역할을 해준 덕분에 프랑스는 영국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요새는 아름다운 루아르 강변을 바라보며 오랜 전쟁의 피로를 푸는 오락과 휴양의 장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프랑스 서남쪽, 길이 200km의 강변을 따라 위치한 인구 2,000명의 작은 마을 쇼몽에는 매년 30만 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간다. 세계 3대 정원 축제인 쇼몽 국제정원 페스티벌Chaumont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이 열리기 때문이다.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19개의 루아르 고성The Loire Valley between Sully-sur-Loire and Chalonnes 중 쇼몽 성Château-Chaumont에서는 1992년부터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이 축제에서는 작가의 개성이 담긴 정원뿐만 아니라 고성 곳곳에 전시된 예술 사진, 설치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축제는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열리며 올해는 한국 설치미술가 이배의 작품과 한국과 프랑스 작가의 합작품인 ‘대단원을 위한 정원Le Jardin du Dernier Acte’, 2015년 조성된 ‘한국 정원Le Jardin Coréen’등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기라도 하는 듯 한국의 색채를 축제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다가올 세기의 정원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은 매년 독특한 주제로 진행된다. 올해의 주제는 ‘다가올 세기의 정원Gardens from the coming century’으로 미래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랑스에서 개최한 축제이니만큼 프랑스 작가의 참여율이 높지만, 국제 정원 페스티벌의 명성에 걸맞게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스위스, 미국, 벨기에, 캐나다, 한국 등 다양한 나라의 작가가 출전했다. 매년 300~400개의 출품작이 등록되고 그 중 25개 내외의 작품만이 실제 정원으로 구현된다. 이 축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특별한 자부심을 갖는 데, 축제를 준비하는 조직 그리고 작가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관람객의 분위기가 여느 정원박람회와 다르기 때문이다. 진행위원회는 산업의 진흥을 위해 여러 물품을 모아 놓고 판매·선전하는 박람회와 구별되도록 작품 조성 의도를 부각시키고 관람객의 집중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정원을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관람하는 방문객의 모습은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을 세계 조경가가 참여하고 싶은 3대 정원 축제로 만든 힘이다. 다가올 세기, 미래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2016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에서 각기 다른관점으로 표현된 24개의 작품을 통해 미래의 정원을 만나볼 수 있다. 케 비에네 라 플뤼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는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는 관점에서 표현한 ‘케 비에네 라 플뤼Que Vienne la Pluie’는 미얀마의 인레Inlé 강에서 영감을 얻어조성됐다. 마치 거대한 맹그로브mangrove 아래에 생긴 터널에 휴식 공간이 마련된 것처럼 보인다. 이 정원은 하나의 실험장으로, 자연이 인간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으며 인간이 자연 안에서 자유로이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올해 쇼몽 국제 정원페스티벌에서 창작상Le prix de la Création을 수상하였다. 익스플로시브 네이처 미래의 환경이 아무리 척박해져도 자연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 적응해나갈 것이다. ‘익스플로시브네이처Explosive Nature’의 거대한 구조물 틈새 사이사이에는 씨앗 폭탄Seed Bombs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환경을 스스로 찾아내고, 그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요소로 표현됐다. 인간의 힘이 아닌 자연 스스로의 힘으로 정원이 조성되는 모습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정원으로 디자인 및 혁신적인 아이디어상Design et idées novatrices을 수상하였다. 대단원을 위한 정원 안지성 작가가 참가한 한-프 합작팀의 ‘대단원을 위한 정원’은 트랑스포자블상Le prix du Jardin transposable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자연이 거의 남지 않은 2250년에 고가로 소비되는 제품이 된 자연을 느끼기 위해 극장을 찾아야만 하는 미래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같은 트랑스포자블상을 수상한 ‘누 아이언스 투 오 자르댕Nous Irons tous au Jardin’과 식물의 색채 및 조화상 Palette et harmonie végétales을 수상한 ‘르 자르댕 데 에멜장스Le Jardin des Emergences’를 선보였다. 몇 백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정원박람회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지만, 3.5헥타르의 공간에 24개의 정원이 조성된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정원 축제가 된 이유는 정원을 조성하는 작가의 철학과 개념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원을 단순히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다룬다. 또한 작가의 철학과 주제에 대한 개념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떻게 물리적으로 표현되는지에 주목한다. 매년 사회적인 이슈 혹은 즐거움, 원죄와 같이 철학적인 주제를 선정해 정원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전 세계 조경가의 꿈의 무대가 될 수 있었다. 올 여름 프랑스 파리 혹은 유럽으로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에 한번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왕이면 쇼몽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도록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매년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빛의 정원’이라는 이름의 저녁 축제가 열리는 데, 올해도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 난민과 홈리스의 시대, 도시와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 & ‘홈리스의 도시’ 전
    전 세계는 지금 난민과 홈리스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프랑스 니스의 트럭 테러, 브렉시트, 반이민 정책을 구호로 외치는 정치인의 지지율 상승 등 최근 화제가 된 이슈들은 난민이나 이주민을 둘러싼 갈등과 관계가 깊다. 비단 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누적 난민 신청자는 1만 5천여 명이지만, 난민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은 580여 명 정도로 단 4%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편 모국에서 일명 ‘난민’이 된 사람들도 있다. ‘전세난민’, ‘취업 난민’, 심지어는 ‘연애 난민’까지. 타국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주민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이제 ‘난민’이란 단어는 평범한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일반 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과 경제 불황은 평범한 사람들을 홈리스로, 난민으로 내몰고 있다. 난민과 홈리스의 시대, 도시와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난 7월 8일부터 8월 7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선보이는 두 개의 전시,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과 ‘홈리스의 도시’는 우리 앞에 던져진 질문에 도전한다. 물리적인 보호를 넘어 인식의 전환으로 아르코미술관 1층에서 선보이는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은 국내 난민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고 이러한 현실이 일부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돌보아야 할 공통의 문제임을 환기한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이 기획하고 주관한 이번 전시는 ‘건축적 제안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지만, 난민을 위한 물리적인 보호소나 쉘터를 단순히 디자인하는 작업보다는 영상, 아카이브, 사진, 일러스트 등 난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폭넓은 작업을 선보인다. 한 예로, 건축팀 에스오에이는 문화인류학자 김현미 교수(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와 협업해 농촌 지역 여성 이주자들의 주거 실상에 대해 연구하고 새로운 거주 형태를 제시하는 ‘다시-정착’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제대로 된 거주 공간이 아니라 농장 옆에 가설 구조로 지어놓은 비닐하우스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이주자들의 거주 환경을 사진과 맵핑으로 소개하고 이들을 위한 새로운 공동 주택 유형으로 농산물 간이 집하장을 변형시키는 안을 제시했다. 건축가 인터뷰 영상에서 강예린 공동 소장은 “이주자는 새로운 삶과 기회를 찾아서 이주를 실행할 만큼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이라며 이주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들을 동정하거나 불쌍한 시선으로 대하는 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건축가 집단 레어 콜렉티브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함께 ‘마음 한쪽 마당 한쪽 내어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 의사가 있는 지역 주민의 집 마당 한 구석에 설치할 수 있는 유기 동물 임시 대피소를 프로토타입의 설치물로 선보였다. 우리 사회에서 난민 문제는 무관심 속에 버려지고 사람들이 혐오하기까지 하는 유기 동물의 상황과 유사할 지도 모른다는 은유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레어 콜렉티브는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유기 동물의 문제를 다루면서 내 삶과는 동떨어진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난민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도록 했다. 이번 전시의 디렉터를 맡은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이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우리 사회의 ‘난민’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들을 우리 사회로 아우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홈리스의 삶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 난민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대안을 건축적인 방법으로 제시했다면, 아르코 미술관 2층에서 선보이는 ‘홈리스의 도시’는 현대 도시의 주거 문제와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할 기본적인 생활 조건 등의 문제를 파고든다. 10여 개국 16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아시아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21세기형 난민의 삶과 그 배경에 대해 영상, 사진, 설치 등의 작업으로 풀어냈다. 전시를 기획한 목홍균 독립큐레이터는 홈리스의 시선에서 도시의 거주 문제를 주목했다. 그는 “UN은 홈리스를 집이 없거나 옥외 또는 여인숙에서 잠을 자는 사람, 집이 있지만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 교육, 건강관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홈home’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특히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다. 집은 물리적인 공간일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공간이며 고향이다. 따라서 ‘홈리스’는 ‘노숙자’만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며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다양한 이유로 홈리스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구타당해 집을 떠난 여자(조영주, ‘가정상실’, 혼합매체, 2016),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시의 개발이 중단된 고층 빌딩에 슬럼을 이룬 빈민들(U-TT, ‘토레 다비드’, 영상, 20분, 2013), 1950년대에 지어진 베이징 아파트의 지하 벙커에 거주하는 도시인들(심치인, ‘쥐종족’, 영상설치, 10분, 2010~2015),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 등 일련의 비극을 겪으며 고향을 떠나게 된 사람(김혜민, ‘옛날 옛적에 판문점’, 싱글채널 비디오, 47분, 2013) 등 전시에서는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홈리스가 등장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현대 도시의 홈리스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의 도시는 홈리스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시의 홈리스에게 과연 희망이 있는가’란 질문이 떠오른다. “도시는 지구에서 가장 무정하고 인공적인 장소다. 그 궁극의 해법은 도시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도시를 떠남으로서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도살장의 고기 운송 방식에 착안해 획기적인 대량 생산 시스템을 도입한 헨리 포드의 말이다. 그의 절망적인 인식처럼 도시를 버리고 떠나는 것만이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까? 어떤 작가는 풍자적으로, 어떤 작가는 시니컬하게 ‘홈리스의 도시’를 해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명의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현대의 도시가 잃어버린 ‘홈’의 인간적인 정서를 그리워한다. 레고 블록을 이용해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진행형 설치 작품인 ‘함께 만드는집’(문재원, 레고 설치, 2016)이 어두운 분위기의 전시물로 구성된 ‘홈리스의 도시’ 전에서 유일하게 화려하고 유쾌한 작품이었다는 점은 무정하고 인공적인 홈리스의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공동체’와 ‘공감’의 가치를 믿고 기대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난민과 홈리스의 시대, 우리에게 던져진 거대한 도전에 이번 두 전시는 소박한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소박한 답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지난 7월 15일,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 전시와 연계한 난민 포럼에서 인권학자 조효제 교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는 “난민에 대한 배척과 혐오가 점점 심해지는 오늘날, 사회운동가나 인권단체가 아닌 건축계와 예술계에서 난민의 인권에 대한 전시를 기획한 시도 자체가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이라며 이번 전시의 의의를 강조했다.
  • 아파트에 얽힌 우리의 삶 아파트 인생 展 2014.3.6.~2014.5.6.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아파트는 급작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들었다. 1950년대 서울에 초창기 아파트가 출현한 후 불과 30여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은 각자 삶의 위치에 따라 아파트를 다르게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펼쳐진 다층적인 삶의 모습은 길지 않은 아파트 발달사 속에 촘촘하게얽혀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를 전시로 엮어냈다.기획을 맡은 정수인 학예사는 “아파트는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며 “아파트가 담고 있는 삶의 여러 모습을 통해, 주로 비판의 대상이었던 아파트를 ‘우리 것’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전시 의도를 밝혔다. “아파트 인생” 展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우선 중산층의 표상이 된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아파트 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의 삶이 이어진다. 마지막 ‘내 고향 아파트’에서는 차가운 콘크리트를 따듯한 고향으로 여기는 아파트 키드를 묘사한다. 세대와 계층의 차이로 다르게 펼쳐진 세 가지 ‘아파트인생’인 셈이다.연계 전시로 열리는 “프로젝트 APT” 展도 눈여겨볼만하다. 아파트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현대 작가17인이 참여하여 아파트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다.아파트의 탄생과 소멸, 아파트에 내재된 욕망, 아파트에 관한 추억과 환상이 담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 아파트와 중산층의 역사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에서는 해방 이후 최초로 건설된 종암아파트부터 오늘날의 타워팰리스로 이어지는, 아파트 공급과 중산층 양산의 역사가 전개된다. 각 시대별 아파트가 탄생한 배경과 아파트를 ‘좇는’ 중산층의 삶을 당시의 사진과 분양 홍보물, 아파트 지구도 등다양한 사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아파트의 발달로 인해 변화하는 어머니들의 삶과 복부인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풀어냈다. 생활양식의 변화를 다룬 전시 가운데 서초삼호아파트의 내부를 구현한부분이 흥미롭다. 서초삼호아파트는 재건축을 위해 철거될 예정인데, 그곳에 살던 한 가구의 집(111m2, 33평)을 전시장에 옮겨 놓았다. 분양 당시의 모습을 거의 변형 없이 유지하기 위해 라디에이터, 붙박이형 거실장식장 등을 고스란히 전시했다. 아파트 내장재와 함께 옮겨온 생활용품과 가구는 시대에 맞게 추가 보완하여 1980년대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는데 이용했다. 관람객은 현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30년 전 아파트 생활 공간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거스르는 독특한 체험이다. 쫓겨나는 사람들: 철거민들의 이야기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이 중산층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한편, 아파트로부터 쫓겨나 삶이 무너진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 “홀리데이”(2006)의 철거 반대 운동 장면을 편집한 영상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코너는 이러한 철거민들의 삶을 다룬다. 아파트 개발은 서울의 빈민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터전마저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1960년대 서울 도심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은 상계, 목동 등지의 외곽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1971년에는 광주 대단지 이주 사건이 일어나면서 도시빈민운동의 시작을 알린다. 1980년대는 상계, 목동개발로 촉발된 철거민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난 시기다. 전시된 사진과 언론 출판물 등은 이러한 철거민들의 삶을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은 1980년대 철거민들이 마주한 처절한 현실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한다. 내 고향 아파트: 아파트 키드 세 번째 코너에 들어서면 동요 “고향의 봄”이 들려온다. 노랫말 속 ‘꽃피는 산골’을 고향의 이미지로 떠올리는 중년들에게 콘크리트로 포장된 아파트는 어색한 타향일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를 전후로 태어난 ‘아파트 키드’에게 아파트는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고향이다. 아파트가 품고 있는 그들의 다양한 추억을 보여주기 위해 약 한 달간 시민 사진 공모가 진행되었다. 전시에는 『윤미네 집』으로 유명한 고 전몽각 작가 등 총 10인의 사진이 공개된다. 재건축으로 철거를 앞둔 둔촌주공아파트를 주제로 하는 전시도 볼 수 있다. 이인규 시민큐레이터의 주도로, 둔촌주공아파트를 고향으로 여기는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모았다. 이 사진들은 전시장의 ‘기억의 지도’ 위에 놓여졌다. 사진 속에는 삭막한 아파트 단지가 아닌 눈썰매를 타는 언덕, 코끼리 모양의 미끄럼틀 등 즐거움이 깃든 장소가 담겨 있다. 둔촌주공아파트를 비롯한 ‘아파트 키드’의 고향은 오늘날에도 재건축을 위해 허물어지고 있다. 무너진 아파트 잔해에는 이들의 따듯한 기억이 서려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우리 곁에 언제나 익숙하게 서 있는 아파트를 ‘삶’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렌즈에 비친 아파트는 단조로운 회색 블록이 아니다. 살아있는 중산층의 역사이고, 철거민들의 삶을 누른 흔적이며, 아파트 키드의 아늑한 고향이다. 이러한 삶의 단면들은 결코 낯선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파트로 빚어진 도시 속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시는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안내하는 아파트 인생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아파트 인생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 조현준
  • 양질의 공원 조성으로 구도심 활성화 모색 안동시 도심소공원 설계 공모
    지난 2월 ‘안동 도심소공원 조성 기본계획(안) 현상설계 공모’의 당선작이 발표됐다. 당선작은 해동기술개발공사가 제출한 작품으로 ‘한국의 선비 정신’을 콘셉트로 하여 안동 구도심의 소공원을 특화 공간으로 설계했다. 안동시는 지난 2012년 4월부터 10월까지 48억 원을 들여 ‘안동 중앙문화의거리 사업’을 시행한 바 있는 데, 이 사업은 신한은행~대구도료, 안동관~대구은행(510m) 구간의 가로를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마련하여 공동화 되어 가는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며 사람들이 찾아들자 부족한 녹지와 야외 쉼터 확충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시는 구도심의 부족한 녹지 해결을 위해 중앙문화의거리 시점부에 방치된 공터를 매입했고, 이를 소공원으로 조성해 중앙문화의거리와 연계된 녹지를마련하고자 했다. 공모전의 대상지는 안동시 운흥동 소공원(가칭) 외 2개소(옥야동 소공원, 태화동 소공원) 약 3,000m2로, 안동 중앙문화의거리와 연접해 있는 공간이다. 각각 안동 구시장과 신시장, 서부시장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데, 방문객뿐만 아니라 시장의 상인과 구도심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을 겸하고 안동시에서 공 들인 ‘안동 중앙문화의거리 사업’의 연장선에 있어 소공원 대상지의 입지적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에 시에서는 입찰 방식이 아닌 설계공모로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동안 대부분의 소공원 조성은 입찰을 통해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에 많은 소공원들이 저가 설계 입찰이나 입찰 후의 하도와 재하도, 하급 공무원과 시공/시설물 업체의 유착 등으로 공사 결과물이 허술해 실제 이용률이 저조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결국 재공사를 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3월 7일 서울시설공단 주관으로 열린 ‘조경공사전문가 합동 토론회’에서도 설계 원안의 품질이 조경공사 품질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시공사 관계자들은 현장의 상황과 크게 다른 설계도면도 다수 생산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발주처가 설계자 선정에 보다 신중을 기하길 당부하기도 했다. 조경공사 발주 방식 개선의 필요성이 점차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일반입찰 방식으로는 한 회사 기술진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로 두세 가지 안을 만들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공원은 한 번 조성하면, 몇 십 년은 유지해야 하므로,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모아 제대로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생각했다”며, 설계공모를 실시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 한양도성 주변 성곽마을 학술회의 성곽마을의 가치와 가능성
    한국 인구의 1/5이 서울에 산다. 그만큼 한국의 도시 중 가장 번화하고 활성화되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도시 곳곳에 과거의 흔적들이 스며있고, 일상에서 유구한 역사의 맥락과 닿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형과 하나 된 한양도성 성곽 유적이 서울을 가로지르고있기 때문인데,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며 파괴되었음에도 상당 부분 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도시 속에서 원형을 잘 유지한 성곽 유적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몇 년간 한양도성 성곽의 멸실된 구간에 대해 복원 작업과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졌고, 최근 몇 년 사이 한양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다. 지난해 11월 14일에는 한양도성의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 후1년간 ‘진정성’과 ‘완전성’을 인정받으면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확정된다. 여기서 짚어볼 부분이 있다. 바로 성곽마을이다. 확장되는 유산의 개념 그동안 한양도성의 가치는 성곽 자체에만 중점을 두어 문화재라는 단편적인 테두리 안에서 제한된 시각의 접근이 이루어졌다. 한양도성 성곽과 연접한 곳에는 20여개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대개 성곽마을은 노후화된 마을로 개발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기점으로, 이제 그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서울연구원과 온공간연구소는 서울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한양도성 주변에 위치한 성곽마을에 대한 학술회의(서울시 후원)를 개최했다. 한양도성이 아닌, 성곽마을을 주제로 한 회의가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박소현 교수(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따르면 유산의 개념과 대상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고, 이제 장소와 경관까지도 유산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양도성의 진정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단일 건축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서울의 장소성과 도시 경관으로서 가치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 박 교수는 “단일 건축물일 때의 보존 방식과 장소 및 경관일 때의 보존 방식은 다르다”면서, “살아있는 유산의 보존을 위해서 가장 근간이 되는 요인의 하나로 지역공동체의 지속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양도성 성곽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성곽마을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재개발에 발목 잡힌 주거 환경 개선 성곽마을은 계획된 마을이 아니다. 전후 피난민들이 한양도성 주변으로 모이면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다. 때문에 주거를 위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많은데, 박학룡 대표(동네목수)는 ‘장수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곽마을의 실태를 전했다. “장수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과 갈라진 콘크리트 벽, 깨진 골목길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분양권이나 투자수익을 위해서는 동네가 더 낡고 위험해야 한다고 여기는 집주인들이 많았다. 집주인과 연락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세입자들은 언제 헐릴지 모르는 남의 집을 굳이 돈을 들여 관리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재개발예정구역이 된 순간부터 전혀 관리되지 않는 동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개발 계획이 성곽마을 주민들의 환경 개선에 대한 의지를 꺾어놓고 있었다. 다른 마을도 이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혜경 교수(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가 프로젝트를 진행한 북정마을의 최대 화두도 재개발이었다. 토지를 소유한 주민들은 마을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바라보고, 그렇지 않은 주민은 환경이 더욱 열악한 곳으로 밀려났다. 성곽의 보존 그리고 재개발. 환경적 제한과 개발 논리 사이에서 성곽마을 사람들은 소외되어 왔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받아들이고 살아온 것이다. 장소와 사람의 내밀한 대화 아파트 재건축이나 대규모 공사를 통한 정비가 주거환경 개선의 최선으로 여겨지던 과거의 방식은 이제 시민에게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자체 재정도 이러한 개발을 수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도심부 관리계획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기존 장소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재조명해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박학룡 대표는 주민 간의 관계 회복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해 장수마을 경관 개선 가능성을 일깨웠고, 이혜경 교수는 관官, 학學, 예藝, 민民 파트너십을 통해 북정마을을 예술의 무대로서 기능하게 하여 주민들에게 의지를 불어넣었다. 기존과다른 방식으로 주거 환경 개선에 나서 성공적인 성곽마을 개선 사례로 꼽히며 장수마을과 북정마을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양도성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치는 사람이다. 학술회의에서 발표자와 토론자들 사이에 거듭 강조된 내용은 사람들과 장소가 가진 이야기다. 주거 환경 개선을 통한 경관 향상과 한양도성 성곽의 물리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살아있는 장소가 되어야 그 가치가 배가 된다는 것이다. 송경용 이사장(나눔과 미래)은 “과거의 도시 개발방식은 개발의 희생자에게 또 다시 희생을 강요해왔지만, 이제 그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 주민들과 그들이 사는 장소의 내밀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양도성의 성곽이 살아있는 생물로서, 사람과 성이 대화하는 성곽마을로 살아 숨쉬기를기대했다. 한양도성과 성곽마을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대화. 이는 성곽마을을 넘어 도시에 대규모 개발만이 주거 환경과 경관 개선의 정답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