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PRODUCT] (주)이노블록 스톤 페이버 3종 출시 블랜딩, 트래버틴, 팀버 스톤 페이버
    (주)이노블록이 스톤 페이버 3종을 새롭게 선보였다. 블랜딩 스톤 페이버, 트래버틴 스톤 페이버, 팀버 스톤 페이버가 그것. 이번에 출시된 세 제품은 천연석이나 목재 질감을 자연스럽게 구현해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가로 경관 연출이 가능하다. 특히 세 제품 모두 독일 바이엘 안료를 사용해 자연석 느낌의 색상을 구현하고, 백화 억제 효과가 뛰어나다. 자연석 질감의 프리미엄 블록, 블랜딩 스톤 페이버 블랜딩 스톤 페이버(Blending Stone Paver)는 기존 데카스톤(Deca Stone) D1 규격 제품과비슷하지만 모따기가 되어있으며 아홉 가지의 다양한 규격의 블록으로 구성된다. 독일 고델만 사(社)와의 기술 제휴로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형태의 디자인 블록이다. 한가지 제품에 세 가지 색상의 조화로 아름다운 자연석 질감을 표현하며, 멀티몰드 시스템으로 다양한 사이즈를 조합해 생산하므로 별도의 패턴 없이 시공이 가능한 것이특징이다. 석회암 질감의 고급 석재 대체 블록, 트래버틴 스톤 페이버 트래버틴 스톤 페이버(Travertin Stone Paver)는 다양한 가로 경관 연출이 가능한 높이80T의 보도용 블록이다. 천연석(석회, 퇴적암) 질감을 구현해 고급 석재의 대체재로 활용할 수 있으며, 세 가지 색상이 블렌딩되어 자연미를 느낄 수 있다. 멀티몰드 시스템으로 패턴 설계 없이 경관 연출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목재 나이테 질감의 데크 대체 블록, 팀버 스톤 페이버 팀버 스톤 페이버(Timber Stone Paver)는 목재의 나이테 질감을 구현한 제품으로 일반정형 블록과 조합하여 다양한 사용이 가능하며 높이 80T의 보도용이다. 세 가지 색상을 블렌딩하여 대리석의 질감을 구현한다.TEL. 031-358-4711 WEB. www.inoblock.co.kr *환경과조경346호(2017년 2월호)수록본 일부
    • (주)이노블록www.inoblock.co.kr
  • 서울,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기 제1회 서울은 미술관 국제 콘퍼런스
    1. 공공 미술의 주인은 시민이다. (서울은 미술관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서울시민을 가장 먼저 배려한다. 1. 공공 미술은 시민의 삶을 위한 것이다. (서울은 미술관은) 예술의 이름으로 시민의 일상과 생업을 방해하지 않는다. 1. 공공 미술은 공간과 자원을 소중히 여긴다. (서울은 미술관은) 신중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 개입한다. 1. 공공 미술은 도시의 결점을 가리고 표면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은 미술관은) 도시의 문제를 찾아내고 개선한다. 1. 공공 미술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함께 변화한다. (서울은 미술관은) 가변적이고 일시적일지라도 지금 이 시대의 의미와 가치를 담는다. _ 공공 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약속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에는 사진을 촬영하고 추억을 남기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랜드마크 하면 보통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처럼 거대한 건축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리 크지 않은 공공 미술 작품이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기도 한다. 시카고의 클라우드 게이트, 뉴욕 월스트리트의 황소가 그 예다. 지역의 특색을 담은 공공 미술 작품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관광 수익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서울에서도 이 같은 공공 미술 작품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2016년 4월 강남 코엑스 앞에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말춤’의 손동작을 본뜬 거대 청동 조형물이 들어섰다. 강남 마이스 관광특구를 외국 관광객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인데, 시민들의 반응은 그리 탐탁지 않았다. 시시각각 트렌드가 변하는 오늘날 이미 유행이 지난 문화 상품이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 일차원적인 조형물의 형태가 다소 유치하다는 의견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시민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공공 미술이 제 역할을 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2016년 12월 13일과 14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회 서울은 미술관 국제 콘퍼런스’는 서울의 공공 미술의 방향에 대해 고찰했다. ‘서울은 미술관’은 서울시가 추진 중인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도시 전체를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부드럽고도 강한 미술과 예술의 힘을 서울 전역으로 확산해 역동성과 아름다움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다. 서울시가 주최한 이번 콘퍼런스는 미술계 및 각계 전문가, 예술가와 시민이 기존 공공 미술의 문제점과 한계를 살피고 관행을 변화시킬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45호(2017년1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곶감과 수필
    기자들이 돌아가며 쓰는 ‘편집자의 서재’의 차례가 돌아오는 달이면 주섬주섬 에피소드를 챙기기 시작한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스크랩해 둔 기사나 이메일 목록을 뒤지기도 한다. 편집부 전원이 함께한 행사나 특별한 기획 기사가 있는 달이면,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두고 편집부 내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없으면, 오랫동안 묵혀두어 종갓집 씨간장처럼 발효된 첫사랑 카드도 꺼내든다. (아직도 어느 밤 문득 ‘이불킥’하게 하는 첫사랑 카드까지 꺼내들 만큼, 나는 뻔뻔하고 절박해졌다.) 코너의 제목은 ‘서재’인데 에피소드에 의존하고 있다니, 기자의 얄팍한 독서량에 의구심을 가질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독서 기록과 감상을 소개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취향과 삶,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멋진(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싶지만…. 역시 80%는 빈약한 독서 때문이다. 게다가 내 차례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 놓고 여유를 부리다가 덜컥 ‘편집자의 서재’를 쓰게 된 이번 달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런 이유로 이번에는 새로 나온 책도, 신선한 작가의 책도, 잡지와 관련된 책도 아니지만,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윤오영의 수필집 『곶감과 수필』. 처음엔 몰랐다. 중고 서점에서 2,500원 주고 산 이 책이 내게 가장 소중한 책이 될 줄은. 학창 시절, 문학 교과서에서 윤오영의 ‘달밤’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나 책을 샀는데 새 책이 아니라 그런지 책장에 처박아두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문장과 수사’ 강의에서 수필 쓰기 연습을 하며 참고를 위해 펼쳐본 것이 벌써 6년째다. 내게는 글쓰기의 새로운 세계로 이끈 ‘글쓰기 교본’ 같은 책이다. 시골 노인과 함께 달구경을 한 소박한 경험이 전부인 짧은 수필, ‘달밤’을 읽고 ‘수필도 시처럼 아름다울 수 있구나’ 느꼈다. 수사적인 표현이나 설명을 최대한 절제하고 담백하게 썼는데도, 달밤의 호젓한 풍경이 회화적으로 그려졌다. ‘씀바귀’는 친구와 씀바귀 나물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 경험을 쓴 수필이다. 그는 씀바귀의 쓴맛에서 두보의 시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까지 꿰뚫는 인생의 심오한 철학을 논한다. 아내와 밤에 붕어 물 먹는 소리를 듣고 쓴 ‘붕어’는 ‘뭐 이런 것까지도 글로 쓸까’ 싶기도 하지만, 붕어 물 먹는 소리를 듣기 위해 부부가 잠도 안자고 숨 죽여 귀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코믹하고 정겨워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평범한 경험들을 소중하게 글로 엮어 내는 작가는 얼마나 맑은 사람일까. 그 작은 경험들로부터 인생의 어떤 통찰을 이끌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글을 읽었을까. 거칠고 긴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단정해지기까지 몇 번을 고치고 매만졌을까. 윤오영은 ‘곶감과 수필’에서 수필을 곶감에 비유했다. 감(문장)이 곶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고운 껍질을 벗기고 시득시득하게 말려야 하며 여러 번 손질을 해야 한다. 감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하얀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는 모양을 내 매만진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든 곶감이다. 그다운 친근하고 멋진 비유다. 사람들을 만나 소개를 할 때면 전공 학과를 밝히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국문과를 나온 기자라고 하면 ‘글은 술술 쉽게 쓰겠다’고 기대하는 분들이 많지만, 고백건대 난 여전히 글 쓰는 것이 어려운 3년차 기자다. 한때는 좋아하는 수필가의 글이나 유명한 기자의 칼럼을 따라 글 구성 방식이나 문장 스타일, 글을 시작하고 끝맺는 법 등을 흉내내보기도 했다. 지금도 좋아하는 글은 스크랩해두었다가 시간이 있을 때 필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 특히 수필처럼 경험이 묻어나오는 글은 “그 제재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 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 써지는 것”이라서 다른 사람의 글을 흉내 낸다고 비슷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민 교수는 「윤오영론」에서 “허물이 없고서야 탈피가 있을 수 없듯이, 과거의 문장을 모르고 전통을 계승한 바 없고 대가에 사숙(私淑)한 바가 없으면 탈피할 무엇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필이 가장 오래된 문학이면서 미래의 문학일 수 있는 이유다. ‘문장과 수사’ 강의 말, 시나 소설은 별다른 평을 받지 못했지만 수필에서 받은 작은 격려가 지금까지 이 어려운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게 했다. 내용은 우리 가족 남자들의 탈모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담백한 글쓰기를 포기하고 에피소드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환경과조경345호(2017년1월호)수록본 일부
  • [CODA] 그들이 시작하는 법
    대망의 2017년 1월호 준비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바쁜 걸음을 옮기던 편집장은 날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불안했다. 예의 그 친절한 말투로 “팀장님, 제가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잡지협회 교육생 인터뷰 좀 대신 해주세요.” 흡. 우선 전쟁터 같은 책상의 물건들을 책장 안으로 숨겼다. 조한결 기자가 머뭇거리며 사진 촬영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런 젠장. 얼른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작업복(트레이닝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고쳤다. 다행히 머리는 아직 동여매지 않은 상태였다. 꿈과 희망을 안고 잡지사 탐방을 오는 그들에게 너무 생생한 현실로 실망감을 안겨 주고 싶진 않았다. 가까스로 우아한(멀쩡한?) 모습으로 미팅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잡지협회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그들의 마지막 과제는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잡지사에 인터뷰를 다녀와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취재기자의 업무와 사내 문화, 채용 관련 이야기를 담아 후배 교육생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단다. 그들이 물었다. 『환경과조경』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하냐고, 조경을 전공해야 하냐고 물었다. 조경을 전공하지 않아도 이 분야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면 오케이. 해외의 정보와 자료를 접해야 하므로 외국어를 잘하면 물론 우대.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잘 써야 한다고 답해주었다. 그것이 공식적인 답변이지만 사실 내 기준은 이 일에 대한 열정이라고 말했다. 함께 시작했던, 또 그 후에 만난 여러 기자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처 모두 알 수 없는 지금, 과연 글쓰기 능력이 우선일까, 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중요할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엄혹한 시대에 후배들에게 ‘꽃길’을 깔아줄 수도 없으면서 ‘열정’이라고 입 밖으로 내뱉으니 참 식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이는 분야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기준이 아닐까. 물론 “기껏 가르쳐 놓았더니 내 길이 아니라고 떠나버리면 회사로서는 손해다”라고 한탄하는 여러 설계사무소 소장님들의 말씀이나, 적성을 찾기 위해 직접 부딪혀 경험해 볼 수밖에 없는 사회 초년생들의 고민과 선택 또한 모두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10월 말, L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부탁할 요량이었다. L 소장은 이 꼭지의 필자로 편집부의 리스트에 계속 올라 있었지만 시점이 문제였다. 꼭지명이 ‘그들이 설계하는 법’이니 ‘설계’에 방점이 찍히지만, 글이 중요하게 드러나는 잡지의 특성상, 그들이 글 쓰는 성향도 고려의 대상이다. 새해를 맞이해 분위기를 전환해 줄 필자가 필요했다. 그가 미루거나 거절하지 않기를 바랐다. 필자에게 원고를 청탁할 때 최대한 그들이 거절할 수 없는 멘트를 준비한다. 그들이 머뭇거리며 고민하거나 거절의 이유를 찾는 동안, 난 그가 얼마나 이 주제에 적합하며 ‘유일한’ 필자인지 떠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약해진 그들은 (편집주간의 표현에 따르면) 스스로의 일상을 마감이라는 감옥으로 보낸다. L 소장에게는 “언젠가 제가 전화할 줄 아셨지요”라고 했다. 피할 수 없다고, 지금이 그 때라고 정공법을 택했던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L 소장의 원고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앞으로 석 달 동안 그 특유의 문체를 즐감할 수 있으리라. 그가 글과 함께 보내온 첫 번째 그림은 모카주전자와 찻잔이다. 그 그림을 보니 반갑다. 잡지 교육생들이 물었다. 필자 섭외는 어떻게 하냐고. 우리는 취재원들과 오랜 관계를 맺으며 교류한다고 답했다. 나도 예전에 그런 게 궁금했던 것 같다. 잡지에 실리는 정보들은 다 어디서 나냐고 나의 첫 번째 편집장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편집장은 “잡지사에 있다 보면 다 들어와” 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 대답에는 많은 것이 생략돼 있었다. 2014년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무렵, L 소장이 설계한 대관령 하늘목장에 함께 갔을 때였다. 양다빈 기자와 조한결 기자가 떨어진 나뭇잎들을 비로 쓸어가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을 때, 나는 L 소장과 어느 정원에서 저 모카주전자에 커피를 내려 마셨다. 지금도 잡지에 사진으로 남아 있는 양다빈 기자의 어깨와 초록색 비를 보면 괜히 미안해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십오륙여 년 전에 즐겨 다녔고, 그 이전부터 그가 즐겨 다녔다는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가 깎아주던 사과가 기억난다. 나는 그 시간들과 내 선배들이 그와 맺어온 인연을 믿었나 보다. 그래서 L 소장에게 맡겨 놓은 원고를 내어 놓으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나 보다. 2017년에는 최이규 교수가 1년 만에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이란 이름의 인터뷰 꼭지로 돌아왔다. 2013년부터 그는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2014년부터는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라는 이름으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우리 시대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2013년 당시 뉴욕에 있던 최이규 교수와 국제 통화로 연재의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며, 바다 건너 있는 그는 원칙을 중시하는 까다로운 필자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 귀국한 그는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공간을 향한 인물 개인의 의지, 그것이 산업 구조를 혁신하는 핵심적 에너지”라며 기존 조경에서 주변부에 존재했던 주제들을 중심으로 초대해 펼쳐 놓는다.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빌려 풀어 놓는 그의 글에서는 혁신을 갈망하는 그의 메시지가 음성 지원되는 듯하다. 이젠 믿고 보는 인터뷰 필자다. 그리고 안동혁의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오경아의 ‘정원 탐독’ 등이 새롭게 선보이는 연재다. 올해는 유난히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시 읽는 글들이 많다. 다른 제목을 떠올리기 어려웠으니 우연이거나 말장난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 주변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욕구가 충만한 것은 아닐까. 새로운 필자들과 쌓아갈 시간도 기대가 된다. 2017년 1월호의 문을 닫는 글을 쓰다 보니, 이번 달은 새로운 연재들 때문인지 다양한 성격의 글들이 지면을 메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잡지雜誌란 단어의 의미를 풀어보면 본래 잡다하게 뒤섞인 기록이 아니던가. 잡지협회 교육생들과의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환경과조경』을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당당하게 ‘조경 문화 발전소’라고 답해 주었다. 올해도 새로운 필자들과 발전소를 열심히 돌리리라. 독자 여러분들도 이 다양한 글 어디엔가에서 ‘열정’의 실마리를 찾으시길 바라며 이달의 문을 닫는다.
  • [PRODUCT] Tank-Solar Smart Bench
    Tank-Solar Smart Bench(태양광 스마트 벤치) 현재 태양광 시장의 일반적인 시설물은 지붕에 설치된 획일적인 모습으로, 미관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일조권 침해 등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에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가 없는 풀뿌리 발전소가 기후 변화 대응·에너지 분산화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시민이 직접 보고, 만지고, 느껴볼 수 있어 태양광에 대한 이해를 돕고, 에너지 절감과 관련된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존의 태양광 시스템과 조화를이룬다면 또 다른 모습으로 승격도 가능할 것이다. 2014년 설립된 (주)한축테크는 보도블록 기능을 수행하면서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태양광 발전 블록을 개발했다. 또한 이를 적용한 태양광 벤치, 펜스형 태양광 가로등 시스템, 횡단보도용 태양광 펜스, 도난 방지 태양광 자전거 보관대, 보도블록형 일체형 태양광 보안등, 태양광 버스정류장, 조경용 태양광 발전 블록 등의 제품을 출시해 시민에게 보다 가까운 태양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한축테크의 모든 태양광 제품의 기본을 이루는 태양광 발전 블록은 블록 표면에 441개의 굴절 렌즈 어레이를 형성하는데, 이는 항상 태양 빛을 직각으로 유지시켜 기존의 태양 전지 모듈보다 높은 발전 효율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든다. 특히 태양 전지 모듈을 블록형과 일체형으로 제작해 내구성을 확보했으며, 보도블록에 사용할 수 있어 별도의 태양광 설치 장소 없이 태양광이 비추는 어느 곳이든 소·중·대형의 에너지 존(E-Zone)을 형성할 수 있다. (주)한축테크의 태양광 스마트 벤치는 옥외용 벤치로 내구성이 강해 시민이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다. 벤치의 좌판에 태양광 발전 블록을 설치해 주간에 전기를 생산하도록 했다. 저장된 전기는 야간에 보안등, 경관 조명 등으로 활용할 수 있어 공원, 자전거도로, 학교, 휴양지 등에 다양한 형태로 설치가 가능하다. 또한 주변 환경을 개선해 야간의 범죄를 예방하고 안전을 도모할 수 있으며, 주·야간에 휴대폰을 손쉽게 유·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TEL031-966-4246 WEB www.tanksolar.co.kr
    • (주)한축테크
  • [CODA] 기성세대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12월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호를 준비하다보니 조금 일찍 송년의 기분에 젖어든다. 특히 연재를 마감하는 필자들의 마지막 원고를 보고 있자니 여러 소회가 엇갈린다. 한껏 지적인 글의 필자도 마지막 순간에는 독자와 자신의 거리를 좁힌다. 마치 연극이 끝난 후 무대 인사를 하듯이 본연의 모습을 살짝 드러내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의 연재를 마무리하며 내비치는 필자들의 속내를 보니 할 일을 끝냈다는(이젠 마감을 안 해도 된다는) 홀가분함보다는 아쉬움이 묻어난다고 느끼는 것은 멜랑콜리한 연말 기분 탓일까. 가끔 필자와 편집자의 관계는 연애하는 사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감을 두고 벌이는 밀고 당기기와 그로 인해 쌓이는 일종의 애증(!) 때문이다. 10년 전쯤 만난 한 필자는 매달 빚쟁이처럼 원고를 받아가는 나를 힘겨워했다(당시 나는 필자가 마감 날짜를 잘 지키도록 유도하는 편집자가 좋은 편집자라고 생각하고 원고 독촉 전화를 즐겨하곤 했다). 연재를 마무리하고, 연재 원고를 묶어 단행본을 출간하는 지난한 과정까지 모두 마치고 난 후 하루는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내가 더 할 일이 없냐”고 묻는 전화였다. 매달 당연하게 쓰던 원고를 쓰지 않으니(매달 받던 독촉 전화를 받지 않으니) 갑자기 주말에 뭘 해야 할지 당혹스럽단 이야기였다. 그는 얼마 뒤 취미로 밴드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지금도 가끔 그가 생각난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나의 연애 방식도 다변화되었다. 심소미 씨와는 그녀가 기획한 전시회에서 만났다. 첫눈에 반했다고 할까. 도시와 예술, 조경과 건축의 영토를 넘나드는 듯한 그녀의 관심사에 호기심을 느낀 난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날 것 같지 않나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시장을 떠났다. 결국 올해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에서 좋은 글과 사진으로 매달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바쁜 가운데 필요한 말만 주고받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필자다. 굳이 필자 유형을 구분해 본다면 이심전심형 필자랄까. 아쉽게 내년 1월호면 연재가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지면으로 만나고 싶다. 다른 이들의 연애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매달 독일에서 원고를 보내온 고정희 박사의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는 조한결 기자가 맡았다. “처음에는 형식적인 관계였어요. 사실 박사님과 전 일면식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펜팔하는 기분이에요.” 조 기자는 20세기부터 고대 이집트까지 5천 년 조경사를 종횡무진 늘어놓는 필자의 박식함과 원고를 뒷받침하는 사료의 방대함에 늘 감탄하는 애정을 보인다. 그녀에게 필자는 흠모의 대상처럼 보인다. 조 기자 역시 만만치 않은 꼼꼼함으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갔다. 몇 시간씩 구글링을 하며 원고를 확인하다 질문을 보낸 후 원하는 답변을 얻어내곤 다시 필자에게 탄사를 내뱉는 식이다(내가 보기엔 너님도 대단하다). 지난 해 이맘때, 그러니까 2015년 12월호 에디토리얼에 배정한 편집주간은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를 유형화한 적이 있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마감이 한참 지나 독촉 문자, 메일, 전화를 하면 그제야 아직 못 쓴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읍소형”과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잠수형”을 오고가는 필자 덕택에 매달 애를 태우는 기자도 있다. 하지만 인쇄소로 넘어가기 직전 주옥같은 원고를 토해(?)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쁘고 반가운 것이 또 편집자의 마음이랄까. 매달 반복되는 두 사람의 줄다리기는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는 연애를 보는 듯하다. 이번 호에 여러 필자들이 덧붙인 ‘연재를 마치며’를 살펴보니 그들과 함께 연재를 기획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지금은 내년 연재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재를 마감하는 필자가 여럿 있는 만큼 2017년 새로운 꼭지로 독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는 필자도 여럿이다. 새로운 연재 꼭지의 기획 의도와 방향, 호별 주제 목록 등이 담긴 기획서를 보면서 마감 유형을 가늠해 보는 것도 이즈음의 즐거움이다. 누군가는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모범생형”이지만 까다로울 것 같고, 어떤 이는 기획서부터 기한을 지키지 못해 애를 태우지만 결국 편집부가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기획으로 새로운 연애에 대한 설렘을 유발한다. 개인적으로 2016년이 어떤 의미였는지 되돌아본다면, 올해는 내가 마흔 살이 된 해다. 얼마 전 마흔 살이 되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웃으며 얼버무린 그 자리에서 삼켰던 말은 이러했다. 항상 젊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닌 것 같다고. 사실 마흔 살이 되면서 내가 ‘기성세대旣成世代’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단어가 떠올랐을까. 사전을 찾아보니, “현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나이가 든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지금의 사회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올해는 나도 어디엔가 후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단체를 물색했다. 그러다 언론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한 시민 단체가 재정적 어려움으로 어렵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잡지사에 몸담은 내 첫 번째 후원 대상으로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는 좋은 선택처럼 보였다. 온라인 가입 신청서의 최소 금액 버튼을 누르고도 내심 뿌듯했다. 이후 그 시민 단체로부터 매달 소식지가날라 왔다. 포장지도 뜯지 않은 채 책상 한구석에 쌓여가는 소식지를 보면서 그 시민단체의 살림살이를 걱정했다. 나처럼 적은 회비를 내는 사람에게까지 소식지를 보내면 과연 운영이 될까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포장지를 뜯고 소식지를 넘겨보았다. 소식지는 흑백의 소박한 편집이었지만, 한 달간의 활동 내용과 여러 필자와 회원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후원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뜻에 동의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참여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일원이 되었구나. 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전문지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려 보면, 어려움이 닥치면 습관처럼 환경을 탓하곤 했다. “문화가 성숙해야” 혹은 “저변이 확대되어야” 하는 말들을 되뇌기도 했다. 세상은 남이 바꿔주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깨닫는다.
  • [편집자의 서재]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
    2006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영화가 개봉했다. 론 하워드 감독의 ‘다빈치 코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예술 작품 속의 비밀, 시체 주변에 남겨진 다잉 메시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밀 단체,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성배 등 각종 흥미로운 요소로 흥행에 성공했다. 암호를 풀면 열리는 신비한 장치들은 현란한 액션 없이도 ‘인디아나 존스’나 ‘툼 레이더’를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각종 자료로 뒷받침해 관객들을 실재와 허구를 넘나들며 영화에 몰입하게 했고, 이는 다빈치 코드의 원작 소설가 댄 브라운을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다빈치 코드의 중심에는 명화 최후의 만찬이 있다. 사실 다빈치 코드뿐만 아니라 여러 영화나 드라마가 명화를 재해석해왔다.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속 소녀의 삶을 그린 동명의 영화나 조선의 풍속화가 신윤복이 사실 ‘미인도’ 속 여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담은 드라마 ‘바람의 화원’ 등. 그림은 화가에 의해 포착되어 멈춰진 장면이다. 앞뒤 맥락을 알 수 없어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고, 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명화를 소재로 한 책에는 의외의 전개로 재미를 주는 작품이 많았고, ‘르네상스 명화에 숨겨진 살인사건’이라는 문구를 표지에 내건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 역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스토리로 나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였다.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는 오히려 설득력 있는 역사적 자료를 제시해 명화에 숨겨진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책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다빈치 코드의 로버트 랭던 교수는 없지만 숨겨진 사건을 풀 힌트를 제공하며 나를 따라다니는 해설가가 있다. 초반에는 지면을 가득 메운 사진과 예시들이 버겁게 느껴졌지만, 어느새 책장의 앞뒤를 넘겨가며 자료를 살피고 사건의 추적에 동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가 다룬 명화 ‘채찍질’은 회화의 군주라 칭송받던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의 작품이다. 그림은 크게 좌우로 나뉜다. 왼편에서는 세 명의 남자가 기둥에 묶인 예수를 채찍질하고 있다. 그러나 채찍질이라는 잔인한 단어와는 거리가 먼 낮은 채도의 색이 그림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어 평화롭게 느껴진다. 고문당하고 있는 예수의 몸에는 피는 물론이고 작은 생채기 하나 없다. 게다가 고통스럽지 않은지 담담한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현실을 뛰어넘은 초인 같아 보인다. 이 공간에는 괴로운 신음도 채찍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없다. 이 고요함은 오른편에 서 있는 세 남자에 의해 더욱 커진다. 왼편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을 전혀 모르는 듯 평온한 표정의 남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남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서로를 보지 않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도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가득해 보인다. 베른트 뢰크는 이처럼 고요한 그림 속에 살인의 키워드가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림 오른편의 세 명의 남자 중 왜 가운데 남자만 맨발일까?’라는 트집 같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는데, 무려 맨발의 남자가 ‘오단또니오 다 몬데펠뜨로(이하 오단또니오)’ 백작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오단또니오는 사치스러운 생활과 각종 범죄를 일삼은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고문관으로 1444년 7월 시민 봉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밤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난 그는 십자가 앞으로 끌려갔다. 봉기군에게 살려 달라 애원했지만 살해당했고 죽은 후에도 이리저리 끌려다녀 사지가 찢겼다고 한다. 작가는 오단또니오와 맨발의 남자를 ‘붉은 튜닉’이라는 매개로 엮는다. 맨발의 남자가 입고 있는 붉은 튜닉이 오단또니오 백작이 살해당할 당시 입고 있던 잠옷이며, 붉은색은 순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맨발은 오단또니오의 결백함을 상징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는 이 그림 자체가 오단또니오를 그의 이복동생 페데리꼬 다 몬떼펠뜨로(이하 페데리꼬)가 죽였다며 고소하는 기소장이라 주장한다. 고작 행색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림 안에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암투와 살인사건이 숨어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베른트 뢰크는 삐에로 델라 쁘란체스까의 다양한 작품에 나타난 “적절한 증거”와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이야기의 파편들”을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공고히 다져나가고,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페데리꼬가 오단또니오의 작위를 물려받은 해가 오단또니오가 죽은 지 30년 되는 해이며, 로마의 살인 공소 시효가 끝나는 시점이라는 대목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책을 덮고 나니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분명 “나는 엄정한 사료 분석에 따라 채찍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겐 몬떼펠뜨로 가문의 형제 살인 사건이 역사적 사실처럼 느껴진다. 너무 많은 자료와 그 사이를 연결하는 ‘~한 것이 아닐까’라는 그럴듯한 추측을 반복적으로 접한 탓이다. 만약 베른트 뢰크의 가설을 무너뜨릴 만한 정보를 접하게 된다면 난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A는 B다’라는 뉴스와 ‘A는 B가 아니다’라는 뉴스가 동시에 올라오는 시대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거짓과 진실을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언론인이 갖춰야 할 소양 중 하나일 텐데, 인내심이 없는 내겐 항상 힘든 일이다.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 [CODA] 이폴리타를 추억하며
    오랜만에 만난 H가 이젠 바쁜 일이 끝났냐고 물었다. 그녀의 동그란 눈을 보니 가벼운 질문의 대답도 어렵다. 거의 한 달 만에 찾은 필라테스 스튜디오. 몇 가지를 체크해본 H는 계속 그렇게 나쁜 자세로 앉아서 일을 하면 디스크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에디슨이 발명한 것이 전기가 아니라 야근이라고 주장한 한 카툰이 떠오른다!) 이게 다 프랑스의 긴 휴가 때문이라고 툴툴거려 본다. 환경과조경의 평화로운 루틴을 뒤흔들었던 서울정원박람회가 끝나니 11월호 마감이 코앞이다. 이번 달 『환경과조경』은 무려 100여 페이지를 할애한 해외 작가 특집으로 꾸몄다. 그 주인공은 프랑스 조경설계사무소인 아장스 테르Agence Ter다. 우리 편집부는 바쁜 10월을 대비하여 지난 6월 말부터 아장스 테르에게 작가 특집을 제의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그러니까 아장스 테르가 L.A. 퍼싱 스퀘어 공모전의 우승팀으로 선정되고, 그 결과가 『환경과조경』 7월호에 수록된 직후였다. 섭외는 곧바로 성사되었고, 아장스 테르와의 인터뷰는 프랑스 리포터인 박연미 씨가 흔쾌히 맡아주었다. 박연미 씨는 졸업 설계 작품을 앙리 바바Henri Bava에게 크리틱 받았던 인연을 전하며 반가워했다. 프랑스의 많은 조경학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설계사무소가 아장스 테르라는 말도 덧붙였다. 7월 중순, 박연미 씨는 아장스 테르의 파리 오피스에서 세 명의 공동대표와 인터뷰를 순조롭게 마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잡지에 수록할 작품 리스트를 협의하고 자료만 받으면 정원박람회 행사 준비와 무난하게 병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인터뷰 직후부터 담당인 조한결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휴가를 갔는지 담당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의 휴가는 길다던데…, 찜찜했지만 길어야 한 달 정도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기다림이 9월까지 이어지자 우리의 우려는 불안과 초조로 변해갔다. 그 긴긴 여름이 다 가도록 감감무소식인 아장스 테르 덕택에 조 기자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고, 기다림에 지친 편집부는 11월호의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물러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담당자인 에밀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길고 길었던 프랑스의 여름휴가가 끝이 난 모양이었다. 에밀리는 열정적인 직원이었다. 일단 연락이 재개되자 메일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신이 난 조 기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에밀리와 대화를 이어갔다. 아장스 테르는 네 가지의 아주 구체적인 디자인 전략에 따른 카테고리를 보내왔고, 이에 맞춰 11개의 작품을 수록할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3헥타르에서 3천 헥타르까지 그 규모도 다양했다. 수록 작품의 리스트를 만들면서 편집부는 한정된 지면 안에서 몇몇 작업을 자세하게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할 것인지 사이에서 갈등했다. 결론은 한 설계사무소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특집인 만큼 다양한 작품을 수록하는 쪽으로 났다. 사실 몇 백, 몇 천 헥타르에 달하는 도시적 스케일의 작업을 잡지 몇 페이지에서 속속들이 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 기자는 3천 헥타르의 가론 대공원 프로젝트를 편집하면서 책 한 권도 모자라다며 아쉬워했다. 비록 한정된 지면 안에서 작품을 접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스케일과 문화권을 넘나드는 아장스 테르의 작업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물을 과감하게 이용하는 전략이나 도시권 규모의 계획 프로젝트는 유난히 리서치나 콘텍스트 분석을 강조하는 그들의 디자인 철학이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고 수긍하게 한다. 작품뿐만 아니라 설계사무소의 운영 방식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세 공동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아마 이 가운데 누군가는 운영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설계에 주력하는 등의 역할 분담이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인터뷰 원고를 받고 보니, 지난 30년간 여러 대륙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기본적인 콘셉트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언제나 그 셋이 함께 했단다. 처음에는 대외용 멘트가 아닌가도 싶었다. 그런데, 인터뷰는 세 명과 했는데 답변이 하나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박연미 씨에게 물으니 “셋이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덧붙이는 식으로 대화를 풀어내 답변을 분리할 필요를 못 느꼈어요. 마치 한 사람이 말하듯이 이야기를 해서 좀 놀라울 정도였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터뷰 전 박연미 씨는 아장스 테르는 도제식 성향이 강한 프랑스 조경계에서도 시스템에 의한 설계를 지향하고 있는 독특한 아틀리에라고 귀띔해 그 운영 방식에 대한 궁금함이 컸다. 인터뷰 원고를 보니 앙리 바바를 비롯한 세 명의 공동대표는 프로젝트의 핵심 콘셉트를 함께 만들고, 그 구현은 팀원들에게 맡긴다.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대표 디자이너의 스타일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풀어가는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가는 아장스 테르의 저력이 바로 그 시스템을 유지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조경가 집단이 보여주는 작업의 진화와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또 그 개념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바로 이 지점에 종이 매체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고해졌다. … 정보의 홍수 시대에, 종이 매체는 그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 이번 특집이, 그간 지면의 한계 때문에 부족함을 느꼈을 독자들에게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특별한 편집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토포텍 1을 작가 특집으로 다뤘던 작년 2월호의 코다에 썼던 문장이다. 다시 보니 낯간지럽게 편집 의도가 거창했다. 당시 토포텍 1의 특집은 지금은 설계를 하겠다며 훌훌 떠나버린 양다빈 기자가 맡았었다. 그땐 토포텍 1의 담당자였던 이폴리타와 양 기자가 100여 통의 메일을 주고받으며 특집을 꾸렸다. 두 사람 모두 잘 있는지 궁금해진다.
  • [편집자의 서재] 검색, 사전을 삼키다
    이전 직장에서 ‘검색’은 공적인 하루 업무 중 하나였다. 언론인의 꿈을 안고 들어간 모 통신사의 이슈팀에서 인턴 기자로 일을 시작한 첫 날, 각 부서의 부장이 차례로 회의실에 들어와 부서를 소개하고 앞으로 신입 인턴들의 활약을 기대한다는 덕담 한 마디씩 남기며 퇴장할 때만 해도 나는 펜을 무기 삼아 현장을 누비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부장들의 장황한 소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팀장이 들어와 회사의 띄어쓰기, 표기법, 맞춤법 규칙 등을 정리한 스타일 북한 부와 기사 작성 매뉴얼 한 부를 나눠줬다. 서너 쪽으로 정리된 얄팍한 기사 작성 매뉴얼을 손에 들고 나서야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됐다. 우리의 취재처는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의 기자실이 아니라 네이버, 다음, 디시인사이드, 네이트판과 같은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나 오유(오늘의 유머), 인스티즈, 엽혹진(엽기 혹은 진실), 디젤매니아, 파우더룸, 아이러브싸커 등의 커뮤니티 게시판이었다. 말하자면, 회사가 우리에게 기대한 것은 현장 취재가 아니라 ‘검색어 대응’과 ‘어뷰징’이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1위부터 10위까지 팀원끼리 분배해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라는 반응을 보였다”와 같은 문장으로 끝나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붕어빵 틀로 찍어내듯 생산하는 일이었다. 한동안 이슈팀 인턴 기자라는 이력은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은, 자랑스럽지 않은 경력이었다. 다행히 영상 취재 팀에 소속되어 하루 종일 검색어 기사에 매달리는 다른 팀원보다는 나았지만 주말 당직을 서야 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검색어 대응과 어뷰징에 시달려야 했다. 인턴 마지막 날, 모 부장이 격려하며 한 마디 했다. “때로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어떤 기사를 클릭하고, 어떤 이슈에 반응하는지 감이 생기지 않았어?” 그 해 하반기, 그 매체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는 일명 ‘거제 마티즈 사건’ 기사였다. 불륜 커플이 도심 한복판 차 안에서 성행위를 벌이다 블랙박스에 찍혀 SNS를 통해 신상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는 선정적인 내용이었다. 압도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였지만 기사를 쓴 인턴 동기는 누가 자신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그 기사가 뜰까봐 부끄럽다고 했다. 검색 엔진은 단 몇 번의 클릭과 입력만으로도 넘쳐나는 정보를 제공하지만 정보의 질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든 남들보다 더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내용의 기사를 써야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언론 매체에 대한 실망과 회의를 잔뜩 품고 잡지의 세계로 도망치듯 뛰어들게 되었지만, 경쟁 상대는 바뀌지 않았다. 검색과의 싸움에서 늘 고전을 면치 못하는 잡지 편집자인 내게 지난 5월 출간된 『검색, 사전을 삼키다』는 벼락같은 일갈과 진정성 있는 격려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출판의 꽃이자 자존심’인 사전이 검색에 삼켜져 버린 시대라니. 나처럼 종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사형 선고나 지옥의 묵시록처럼 들릴 법한 책의 제목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메시지는 ‘검색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를 자처 하는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전의 몰락 원인으로 꼽히는 검색 회사에서 웹 사전을 기획하고 있다. 저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무료로 콘텐츠를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되면서 사전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검색과 사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검색 서비스는 대부분 첫 번째 검색 결과로 출판사로부터 저작권을 사들인 사전을 내놓는다. 사전은 ‘최소한의 검색’이자 ‘검색 결과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색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가진 전문 사전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딱지와 우표 수집에서 시작해 음반 수집을 거쳐 수집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어휘 수집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자신의 수집 역사와 정리벽을 이야기하며 사전에 대한 애정을 담백하고 유쾌하게 드러낸다. 사전이 얼마나 고상하고 우아한 물건인지를 예찬하는 그의 맛깔난 애정 고백을 읽다보면 이제는 한물 간 것으로 보였던, 지루하고 고루하게만 느껴지던 사전이 새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상 사전은 위기 수준을 넘어 멸종 위기에 놓인 상태다. 유명한 출판 브랜드의 백과사전 한 질이 중산층의 기준으로 여겨지던 과거의 전성기가 무색하게 올해 종이 사전은 45년 만에 소비생활 대표 종목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사전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이 231원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전의 몰락을 무조건 검색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지난 6월, 그가 한 인터뷰에서 ‘종이 사전의 몰락과 원인은 인터넷 검색에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내놓은 대답은 나를 숙연하게 했다. 종이 사전의 쇠퇴에는 일본이나 영미권 사전을 생각 없이 번역하거나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개성 없는 사전을 펴내던 종이 사전 편집자의 태만과 무능 탓도 있다는 것. 편집자로서의 근본적인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곱씹어볼 만한 대답이다. 잡지의 세계로 뛰어들었지만 어쩌면 지금의 작업도 인턴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 작품을 소개하는 경우, 인터넷 검색을 통해 회사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약 100쪽에 달하는 분량의 이번 아장스 테르 특집도 마찬가지로 구글 검색과 함께 했다. 검색과 종이 매체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야를 가로지르는 접근을 통해 전문 영역의 한계와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아장스 테르의 디자인 철학이 새삼 새롭게 읽힌다.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베를린 시티 랩 ZK/U 시티 프로젝트
    베를린 서북부의 모아비트Moabit는 제조 산업을 담당한 공장과 발전소 등이 있던 외곽 도시로, 베를린 제조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모아비트의 서북 경계선에 위치한 ‘ZK/UZentrum für Kunst und Urbanistik, 보통 제트 코우라고 발음한다’는 기차역을 아트 스튜디오로 개조한 예술 공간이다. 디렉터 마티아스 아인호프Matthias Einhoff, 필리프 호르스트Philip Horst, 하리 작스Harry Sachs가 설립했으며 베를린 시에서 무려 40년 동안 공간을 장기 임대받아 활용하고 있다. “40년이라고요?”라고 경외심을 담아 묻자, “이웃 도시 암스테르담은 이런 경우 99년간 장기 임대를 해준다. 40년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지극히 유럽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비영리 단체인 ZK/U는 베를린의 수많은 예술 공간 중에서도 ‘도시’에 집중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아트 스튜디오다. 찬찬히 스튜디오를 살펴보니 과거 기차역이 지닌 공간의 특성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특별한 기운이 느껴진다. 게이트를 열고 들어서면 펼쳐지는 너른 마당은 역 앞 광장, 건물이 들어선 곳은 기차의 선로, 인터뷰를 진행한 테이블이 놓인 공간은 플랫폼이다. 플랫폼 안에는 주전부리를 팔던 매점도 천연덕스럽게 그대로 놓여 있다. 유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도시 베를린의 예술 공간답다. 베를린의 예술 유휴 공간 유휴 공간을 활용해 예술 공간을 탄생시키는 것은 이미 전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가 되어버렸지만, 베를린은 그중에서도 원조 격 도시라고 부를 만하다. “왜 건물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모두가 납득할 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돈이 없었으니까.” 서독과 동독의 통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 독일은 거의 경제적 파산 상태가 되었다.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이지만 GDP나 도시의 물가는 뮌헨이나 뒤셀도르프, 함부르크가 훨씬 높다. 오히려 베를린은 독일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11%)을 기록하고 있는 가난한 도시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우호적인 도시 환경을 지녔고, 저렴한 물가로 전 세계 젊은 예술가를 모이게 만드는 젊은 예술 도시이기도 하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poor but sexy라는 베를린의 닉네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베를린의 특성은 무엇이든 그대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폭격을 맞은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둔 성당, 기차역이나 우체국 등 공공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아트 스튜디오 등이 너무나 많다. 예술 공간뿐 아니라 카페, 바, 클럽 등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건물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과거에 어떤 공간으로 사용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독특한 건물 재사용 문화가베를린의 정경—어딘가 모르게 음습하지만 섹시하고 흥미로운—을 형성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조숙현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 전문지 『Film 2.0』과 미술 전문지 『퍼블릭아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와 『서울 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서울이 예술가와 생활인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시가 되기를 꿈꾼다. 현재 베를린에서 표류 중이며, 미래 도시의 희망을 베를린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