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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유빙의 숲
‘맘껏광장’ 지면의 레이아웃을 구상하면서 마지막 페이지에 넣으려던 사진이 있었다. 광장 중심부의 메타세쿼이아에 매달린 노란 리본들, 바람에 날리는 리본에 한 아이가 손을 뻗는 사진이었다. 어린애는 그것이 마냥 예뻐 보였거나 그저 호기심이 많았던 것이라 해도 어쩐지 절묘한 순간 같았다. 잠시 사심이 발동해 사진을 넣을 명분을 떠올렸다. 리본은 추모 행사 때 달렸고 행사는 맘껏광장의 청소년운영위원회가 주도한, 그러니까 아이들이 나선 일이다, 이곳이 아동권리광장임을 다른 방식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으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전체적인 공간 구조와 특성을 잘 보여주는 이미지를 넣는 것이 먼저였다. 한정된 지면에 광장의 다양한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그 사진은 빼기로 했다.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다. 어쩌면 이 공간보다 특정 사건을 부각할 수도 있으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무척 지겨워하거나 때론 정치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하므로.
아직 4월인 탓인지 아니면 그 사진이 자꾸만 떠올라서인지, 기자의 사심이 용인되는 이 지면에는『유빙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이 책을 담백하게 소개하자면 여덟 개의 짧은 이야기가 모여 있는 소설집이다. 사사로운 마음을 품고 소개하자면 2014년 침몰하는 배를 목격한 이후 써내려간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가 그날의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진 않지만 작가는 그날 이후 죽음 이후의 일들에 시선을 두곤 했다. 소설 속 다양한 이야기를 곰곰이 읽다 보면 그날과 같은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말 같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첫 번째 단편 ‘유리주의’에는 전면이 통유리로 된 호텔과 그곳에 묵는 관광객들이 등장한다. 호텔 청소부들이 아침마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들을 치우고 끊임없이 창을 닦는가 하면 사소한 갈등에 사로잡힌 투숙객들은 호텔 앞 호수의 괴물을 보고도 못 본 척 침묵한다. ‘유빙의 숲’은 어미를 잃고 심해를 헤매는 삼백 살 된 상어, 가라앉는 배에서 조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형사,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병에 걸린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극으로 방황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귤목’에는 손자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보낸 할아버지가 나온다. 아들은 갑자기 손자가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전하는데, 말도 없이 떠난 것에 이상함을 느낀 할아버지는 직접 제주도로 향한다. ‘뼈바늘’은 살해당한 여자와 그것을 방관한 남자가 영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는 이야기로, 절망에 빠진 누군가에게 더 큰 절망을 안겨주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뒤이은 세 단편 ‘귤橘, 화花―도주 1’, ‘쇳물의 온도―도주 2’, ‘파도의 온도―도주 3’의 주인공 이화는 남편에 이어 자식마저 잃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은 상황에 놓였지만 죽지 못하고 아득바득 살아간다.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한데 섞고 서로 관련 없는 이야기를 동시에 늘어놓는다. 난해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비현실적인 계기를 통해 현실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가를 관찰하는 것”2이며, 에둘러 말하는 작가의 조심스러움이기도 하다.
“그 사람을 잃고 남은 사람들이 시간을 견디는 이야기, 어떻게든 도망가 봤지만 결국 파도 위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채로 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3로 이루어진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은 ‘커피 다비드’다. 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다비드는 다양한 원두를 선별해 사람들에게 맛 좋은 커피를 내주고, 저마다의 이야기도 들어준다. 다비드가 하루를 마치고 카페 문을 닫으려는 때 섬으로 구급대 헬기가 날아오고 누군가 실려 간다. 그간 헬기를 탔던 사람 중 젊은 산모를 빼고는 모두 유골로 돌아 왔다. 그는 헬기가 떠난 후 아무도 없는 카페의 모든 불을 켠다. “어두운 하늘로 날아간 누군가가 이 빛을 보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기 때문이다. 결국『 유빙의 숲』을 잡지의 말미에 두기로 한 것은 다비드 때문이다. 맘껏광장에 노란 리본이 매달려서가 아니고, 글을 쓰는 때가 아직 4월이어서도 아니며, 소설에 애정이 있어서도 아닌, 작가가 모든 이야기의 끝에 어떤 시작처럼 다비드를 놓은 것처럼 4월이 끝나고 5월 시작되는 지점에 이 책을 놓아두고 싶었다.
각주 정리
1. 이은선, 『유빙의 숲』, 문학동네, 2018.
2. 같은 책, p.279.
3. “ 이은선 ‘꼭 잊지 말아야 하며 사랑해야 한다’”, 「채널예스」 2018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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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기
후드 티나 맨투맨이 익숙하지만 이날만큼은 블라우스와 재킷을 집어 든다.조금 허전해 보이는 손목에는 팔찌보다는 시계가 제격,노트북과 태블릿PC,공들여 작성한 질문지까지 챙겨 넣으면 인터뷰가 있는 날 출근 준비가 그제야 끝난다. 2015년 말에 입사했으니 이제4년 차 편집자,여전히 기획과 취재,편집,기사 쓰기 등 어려운 것투성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긴장되는 일을 뽑으라면 역시 인터뷰만 한 게 없다.썩 외향적이지 않고 말주변이 좋은 편도 아니기에,낯선 상대와 대화하는 일은 상상만으로 허리를 꼿꼿히 세우게 만들고 입안을 바싹 마르게 한다.
잡지 만드는 게 꿈이기만 했던 시절, 인터뷰는 뭔가 멀고도 신기한 전문적인 영역의 일이었다. 멋들어진 단어가 가득하지만, 결코 오글거리진 않은 문장으로 정리된 인터뷰는 잘 정돈된 공간에 앉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인텔리를 떠올리게 했다. “다들 어쩜 그렇게 멋있게 말할까? 굉장히 멋진 말로 이루어진 질문이 10줄쯤 나오면 그것보다 더 멋있는 말로 이루어진 대답이 20줄쯤 나왔다”1는 누군가의 글이 딱 내 마음 같았다. 긴장감 넘치는 랠리처럼 이어지는 문답을 읽고 있으면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똑똑해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는 그 멋진 말들에 압도됐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멋있고 날카롭고 사색적인 질문을 할 수가 있지?”2
그러니 난생처음 인터뷰 자리에 동행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건 당연한 일일 테다. 정식 인터뷰어가 아닌 경험을 쌓기 위한 신입 기자로서 함께하는 것이었지만, 내게도 인터뷰 질문지가 쥐어졌다. 얼마나 시적이고 함축적인 문장이 가득할까, 그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질문지는 시적이기보단 체계적이었고, 함축적이기보단 치밀했다. 완고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틀을 잡아줄 줄기 질문들 밑에 여러 가능성과 이야기의 확장성을 염두에 둔 가지 질문들이 담뿍했다. 그 모양이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이야기를 끌어내겠다는 포부로 가득한 전략서 같았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는 모든 일이 그렇듯, 잘 짜인 질문지도 현장에서 완벽한 마스터플랜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대화는 질문지를 탈출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잘도 뻗어 나갔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간신히 본래의 주제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저쪽으로 삐죽, 또다시 이야기가 샌다. 신입 기자의 초조함이 불안함으로 바뀔 즈음 인터뷰이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 잠깐 사이에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질문지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주제와 잘 어울렸고,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 신선했다. 질문과 답변 사이 침묵의 길이가 짧아지고 대화에 발랄한 리듬이 얹어질 때, 글자로 빼곡한 인터뷰지가 사실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 찰나를 맞이하는 게 이렇게 즐겁다면 주제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대화에 마음을 졸이는 일도 꽤 견딜만한 기다림의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했다.
약 18년간 전문 인터뷰어로 활동하며 50여 권의 인터뷰집을 펴낸 지승호는 “인터뷰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3라 말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존중이 느껴진다면 누구나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철저한 사전 조사는 상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동시에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어 인터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인물에 대해서는 인터뷰이의 작품이나 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탐구하면 된다지만, “20년 된 친구에게도 못한 얘기”를 하게 만드는 편안함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문득 2019년 1월호에 실린 조경가 김호윤과 배정한 편집주간의 인터뷰 서문이 떠올랐다. “서로 긴장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마주 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보며 소장 방의 사이드 테이블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때로는 서로를 보는 것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라포르rapport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다음번 인터뷰 장소로는 창밖 풍경이 예쁜 카페를 물색해봐야겠다.
각주 정리
1. 박찬용, 『잡지의 사생활』, 세이지, 2019, p.93.
2. 같은 책, p.93.
3. 엄지혜, “인터뷰어 지승호 ‘내레이션이 너무 많으면, 다큐도 재미없잖아요’”,「채널예스」 2015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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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녹화율 67%를 자랑하는 ‘리비오그린’
블록 내 넓은 식재 공간으로 잔디 활착률을 높인 제품
리비오 에코디자인연구소Livio Eco Design Institute가 신제품 ‘리비오그린Liviogreen’ 잔디 블록을 출시했다. 리비오그린은 잔디 생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해 인공 지반의 녹화율과 배수 기능을 효율적으로 높이는 제품이다. 기존의 소형 잔디 블록은 내부 식재 공간이 협소해 잔디 활착률이 낮았다. 하지만 리비오그린은 블록 상부에 폭 100mm, 깊이 40mm의 U자형 식재 공간을 두어 좀 더 많은 토양을 보유할 수 있다.
또한 뿌리가 좌우로 넓게 뻗어 나갈 수 있어 잔디 분포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67%의 높은 녹화율을 자랑하는 리비오그린은 큰 하중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되어, 많은 사람이 지나는 보행로나 광장, 주차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리비오그린은 게릴라성 집중 호우에 대응하거나 여름철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공간을 조성하기에도 적합하다. 배수 기능이 필요한 공간에는 블록의 식재 공간에 식물 대신 자갈을 넣어 투수성을 높일 수 있으며, 잔디의 증산 작용으로 노면 온도 상승 억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공간 미화가 주된 목적이고 유지 관리의 편의성을 중시한다면, 토양 대신 인조 잔디를 채워 세련된 선형 녹지를 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TEL.02-6928-5588 WEB.hilyung7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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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회 좌담] 2019, 환경과조경의 변화를 진단하다
지난해『환경과조경』 편집팀은 유독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종이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고 독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그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로 2018년 12월 ‘젊은 조경가’상을 신설했고, 『환경과조경』 2019년 1월호부터 디자인과 콘텐츠의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환경과조경』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피는 열혈 독자라면, 지난 일 년간 지면에서 꾸준히 이루어졌던 실험들이 이번 리뉴얼에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진단하고자 지난 3월 14일 늦은 5시, 편집위원들이 모였다. 잡지의 구성, 편집, 디자인부터 조경 매체의 역할, 지향점, 앞으로 다루어야 할 콘텐츠까지, 다층적 토론이 이어졌다.
남기준(이하 남) 오늘 2019년 상반기 편집위원회 좌담의 아젠다는 네 가지다. 이야기 나누고자하는 첫 번째 주제는 2019년을 맞이해 단행한 디자인 리뉴얼이다. 지난 2014년 1월호를 기점으로『 환경과조경』은 대대적인 리뉴얼을 진행한 바 있다. 내용과 형식의 개편뿐만 아니라 영문 제호도 ela(environmental landscape architecture)에서 laK(landscape architecture Korea)로 변경했다. 리뉴얼 5주년을 맞이해 2019년 1월호에서는 표지부터 본문 편집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에 변화를 꾀했다. 2014년부터 이어 온 장수 꼭지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막을 내렸고, 최이규 교수의 인터뷰 연재물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도 마침표를 찍었다. 그 대신 ‘당신의 사물들’,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그리는, 조경’, ‘공간의 탄생, 1968~2018’ 등 새 연재물을 마련했다.
두 번째 회의 주제는 작년 말『환경과조경』이 신설한 ‘젊은 조경가’상이다. 제1회 젊은 조경가로 호원의 김호윤 소장, HLD의 이해인·이호영 소장이 선정됐고, 1월호와 2월호를 젊은 조경가 특집으로 꾸렸다. 이 상과 특집호에 대한 반응과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의견을 듣고자 한다.
세 번째 아젠다는 1, 2월호에서 다룬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와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다. 공모전을 다룬 방식과 지면 구성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고자 한다. 주상절리대 공모의 경우 ‘조경이상’이 주최한 별도의 공개 비평 모임도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광화문광장 공모의 경우, 공모는 이미 끝났지만 프로젝트의 문제와 방향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편집위원들은 전문가로서 광화문광장 사업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지막 의제는 이번 리뉴얼과 함께 신설한 코너 ‘이달의 질문’에 대한 것이다. 이번 4월호의 질문은 “『환경과조경』을 읽는, 혹은 읽지 않는 이유는?”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최근 많은 종이 매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잡지 매체는 독자를 유지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환경과조경』도 지속가능한 잡지를 꿈꾸며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환경과조경』이 더욱 친근하게, 매력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듣고자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일시2019년 3월 14일 오후 5시
장소 환경과조경 회의실
남기준 편집장
민성훈 수원대학교 건축도시부동산학부 교수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배정한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이호영 HLD 소장
최이규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정리 김모아 기자
녹취 윤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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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박원순 개인전’, 2019. 3. 8. ~ 3. 24.
‘설마 그 박원순?’ 전시 제목을 보자마자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그 박원순이 맞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작가로 데뷔했다. 무려 그 이름 세 글자를 전면에 내세운 개인전이다. 시장은 어떻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을까. 전시를 기획한 예술가들 덕분이다. ‘서울-사람’은 서울시의 개발 담론에 문제의식을 느낀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프로젝트 팀이다. 이들은 본인들을 ‘박원순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규정하고, 박원순 시장을 60대 중견 작가로 ‘가정’했다. 그렇다, 이번 전시는 박 시장 본인이 기획한 것이 아니다.
3월 8일부터 3월 24일까지 을지로 상업화랑에서 진행된 ‘박원순 개인전’은 박원순 시장의 임기 중 일어난 도시재생 사업과 재개발 사업을 통해 현대 한국 도시 정책의 현주소를 돌아본다. 을지로 일대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자 심승욱, 오세린, 일상의실천(권준호, 김경철, 김어진), 정용택, 차지량, 최황, 한정림, CMYK 총 8팀의 예술가들이 모였다. 전시의 코디네이터를 맡은 차지량 작가는 기획 의도의 첫머리에 이렇게 서술했다. “서울의 어떤 풍경이 사라지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이던 날, … 2019년 1월은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과 재개발 사업들의 문제가 또다시 가시화되던 시기였고, 그러한 현상에 반응한 예술가들이 을지로에 모였다.”
청계전-을지로 일대는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동서 약 40만㎡의 땅은 8개 구역으로 나뉘어 전면 철거 대상이 됐다. 박원순 시장 재임 후인 2014년, 기존의 8개 구역은 점진적 정비라는 명목하에 171개 구역으로 쪼개졌고, 곧 오피스텔과 주상 복합 아파트 등이 빼곡하게 세워진 조감도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메이커 시티’로 만들겠다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오랜 시간 세운상가와 주변의 수많은 제조업 점포가 일군 네트워크를 고려하지 않은 단편적 조치였다. 2018년 10월, 각종 공구상과 금속 가공 공장이 밀집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구역중 3-1, 4, 5구역은 관리처분계획인가가 고시되어 작년 말부터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전시 기획 팀은 철거가 예정된 세운3구역 인근 화랑에서 전시를 준비했다. 전시장은 조명 상가 사이에 끼워진 듯 놓인 건물의 3층이다. 약 1m 폭의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의 을지로 재개발추진위원회 사무실을 지나한 층 더 오르면 대형 화환이 관람자를 맞이한다. 시장의 첫 개인전을 축하하는 의미로 전시 기획 팀이 보낸 것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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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언어로 청계천과 을지로를 지키는 법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반대: 포스터 궐기
청계천-을지로 일대에는 5만 명에 이르는 장인과 상인이 있다. 빽빽이 들어선 공구 및 자재 상점에는 없는 게 없다. 동네 철물점처럼 하나의 가게가 여러 품목을 다루는 게 아니다. 고무 밴드만 파는 가게도 있고, 스프링만 판매하는 곳도 있다. 문고리 전문점 앞에는 얼핏 봐도 백여 개가 넘는 문손잡이들이 즐비하다. 장인의 거리에서는 온종일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멎을 줄을 모른다. 철공, 전기, 금속 도장 등 여러 분야의 장인들의 손에서 갖가지 재료들이 새롭게 태어난다. 장인과 상인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한데 얽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유기체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을지로 인현동 일대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2006년 지정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사업1이 시작된 것이다. 상인과 장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오래된 삶터를 떠나야 했고, 세운상가 인근 세운3-1, 4, 5구역은 순식간에 빈터가 되었다. 서울시가 세운상가를 “기존 산업과 새로운 기술의 융합, 분야를 넘어선 협업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 창의·제조 산업의 혁신적 거점”으로 만들고 “그 활력을 세운상가군 일대 주변 지역까지 확산”2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2017)를 시행한 지 일 년이 채 안 된 시점의 일이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철거 소식에 낙담한 건 상인과 장인뿐만이 아니었다. 청계천과 을지로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메이커와 예술가,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 등 이곳의 가치를 아는 모든 사람이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지키고자 했다. 이들은 새로운 연대를 모색했다.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SNS에 공유하는 것. 궐기는 성공적이었다. 참가 자격, 디자인 지침도 없는 궐기에 각양각색의 포스터가 접수됐다. 텀블러,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된 포스터는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 예술가답고 새로운 방식의 궐기는 어떻게 기획되었을까? 포스터 궐기 기획자 이영연 대표(저스트프로젝트)와 민동인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종로구 종로3가동 175-4번지 일대로, 총 8개 구역(세부적으로 171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세운3구역은10개의 소구역으로 구성되며, 3-1, 4, 5구역은 지난 2018년 사업시행인가가 고시되어 전면 철거됐고, 3-7, 8, 9구역은 사업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3-3구역은 사업시행인가 고시를 기다리고 있으며, 3-2, 6, 7구역은 업무 및 생활 숙박 시설로 사업 계획을 변경하는 중이다.
2.다시·세운 프로젝트 홈페이지(http://sewo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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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공간에 글로컬리티 서사를 불어넣기
2016년 작고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설계 콘셉트 환유의 풍경(motonymic landscape)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여러 가지 측면의 논쟁을 야기했다.
첫째, 역사적 측면이다. DDP 건설을 위해 국내 최초의 근대 체육 시설이자 한국 스포츠의 성지인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해야 하자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일었다. 1925년 10월 15일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육상 전용 경기장인 주경기장(이후 축구장 기능 추가)과 야구장, 정구장이 건립됐다. 1928년 연희전문학교 소속의 이영민이 첫 홈런을 기록했고, 1929년에는 최초의 전국 종합 체육 대회인 전全조선종합경기대회가 열렸다. 1977년 박스컵 축구대회에서는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종료 7분을 남기고 차범근이 세 골을 넣었고, 1982년 프로 야구 개막전과 1983년 프로 축구 개막전이 개최되는 등 한국 스포츠의 역사적 순간들이 운동장에 담겨 있었다.
둘째, 사회적 측면이다. 과거 이명박 시장이 추진한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인해 황학동에서 영업하던 노점 상인들이 동대문운동장으로 반강제로 이동해야 했고, 결국 운동장 안에 풍물시장을 새롭게 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제2의 청계천 격으로 DDP를 건설하고자 노점상들을 더 먼 외곽 지역(현재의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이동시키면서 도시 정책에 의해 하위 계층은 도심 공간에서 지속해서 배제됐다.
셋째, 지역 발전의 측면이다. 1990년대부터 동대문시장 상인들은 시장 한복판에 위치한 동대문운동장을 지역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불필요한 시설로 인식했다. 2000년대 이후 상권이 침체되자 동대문운동장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돔 야구장, 시민공원 등 여러 개발안이 제시되었다. DDP 건설을 지지한 지역 상인들은 풍물시장의 신설동 이전을 요구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지역 발전의 가치가 충돌하게 됐다.
넷째, 건축적 측면이다. 건축가 고故 정기용이 DDP를 매미처럼 생겼다며 주변 지역과의 부조화를 강하게 비판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언론, 시민 사회, 건축 전문가들의 디자인에 대한 비판 또한 논쟁의 한 축을 이루었다. 당시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서울을 세계도시로 만들고자 한 오세훈 시장은 세계적 명성을 가진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을 받아들이고, 동대문의 지역성은 설계에서 고려하지 않았다1.
이러한 DDP에 대한 논쟁은 시민 사회, 언론, 전문가들이 다층적으로 활발하게 참여했다는 점에서 도시 공공 건축물에 관한 한국 사회의 공론장의 발전 사례로볼 수 있다. 하지만 DDP는 결국 완공됐고, 가열찼던 논쟁의 태풍은 찻잔 속으로 잦아들었다. 완공 전의 우려와 달리, 지역과 어울리지 않는 매미 같은 독특한 외관을 보기 위해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DDP를 찾고 있다. 2017년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와 같은 수준 높은 전시회가 열리고 서울패션위크, 밤도깨비 야시장 등을 비롯한 여러 행사가 꾸준히 개최되면서 DDP는 동대문 지역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자리 매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사의 일시성 때문인지 DDP는 어떤 기의(signifie)와 장소성으로 채워져 있는지가 모호하며, 텅빈 기표(floating signifiant)이며 무장소적이라 여겨진다. 필자들은 DDP 공간에 글로컬리티(glocality)서사를 불어넣는 전략을 제안하고자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1.Hwang Jin Tae, “Territorialized urban mega-projectsbeyond global convergence: The case ofDongdaemun Design Plaza & Park Project, Seoul”,Cities 40, 2014, pp. 82~89.
황진태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동아시아 발전주의 도시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하기』(동녘, 2017), 『대치동: 사교육 일번지』(서울역사박물관, 2018) 등의 연구서를 펴냈다.
김가우는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환경조경학 석사 과정에 재학하며 생태 계획, 생태계 서비스, 둘레길, 환경 DNA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국립공원공단 북한산사무소에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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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캡처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 대상작
지난 2월 25일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의 수상작이 발표됐다. 서울시가 주최한 이번 공모는 이용도가 낮은 도시 공간의 창의적·혁신적 활용 방법을 모색하고자 개최됐다. 고가 상부, 간선 도로, 지하철역, 지하 차도 상부 등 활용도가 낮은 공간 12개소1와 그 일대가 대상지로 주어졌으며, 참가자들은 이중 한 곳을 선정해 도시 기반 시설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시는 작년 12월 28일부터 올해 2월 15일까지 약 한 달간 공모전을 진행했고, 참가 등록한 491팀 중 179팀의 작품이 접수됐다. 2월 20일 진행된 심사에는 이영석 대표(어반인덱스랩), 이장환 대표(어반오퍼레이션즈), 정재희 교수(홍익대학교), 차성민 대표(씨오에스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홍성용 대표(건축사사무소 NCS 랩)가 참여했다. 다수의 대상지가 주어진 만큼 수상작은 대상지별로 나눠 선정되었다. 그 결과 최우수상 7점, 우수상 41점, 입선 81점이 선정됐으며, 최우수 작품 중 조용준·장서희·김수린의 ‘더스트 캡처(Dust Capture)’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더스트 캡처는 하늘공원과 난지한강공원 사이 강변북로 상부에 미세 먼지에 대응하는 그린 인프라스트럭처를 제안한다. 미세 먼지를 흡착하고 정화하는 거미 모양의 구조물을 통해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단절된 대상지를 주변 지역과 연결하고자 했다.
더스트 캡처
대한민국의 초미세 먼지 농도는 2017년 기준 연평균25.1ug/m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으며 OECD 평균의 약 두 배가 넘는다.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 먼지는 새로운 도시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새로운 유형의 기반 시설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상지는 하늘공원, 강변북로, 난지한강 공원에 이르는 구간이다. 하늘공원과 난지한강공원은 강변북로로 인해 서로 단절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도시 지역과 수변 공간 간 자유로운 통행이 제한되고 녹지 체계도 끊어졌다. 하지만 이 일대에는 하늘공원, 월드컵공원, 난지천, 한강 등 다양한 생태 자원뿐만 아니라 서울에너지드림센터, 수소스테이션, 마포자원회수시설, 연료전지발전소 등 재생 에너지 관련 시설이 분포한다. 환경 보존에 앞장서는 대상지의 정체성을 극대화해 기후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시설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로써 단절된 지역을 연결하고 인근의 자연 자원 및 기반 시설과 어우러지는 새로운 공공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호(2019년 4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1.12개소 대상지는 다음과 같다. 효령로 고가 상부, 연희IC,남산1호터널요금소 상부, 회기로5길(공지+적환장),북부간선도로(우이천~석계역), 한남제1고가차도, 도봉산역,연희지하차도 상부, 강변북로-하늘공원, 뚝섬로-응봉산, 이촌역 앞도로-철도 상부, 용산동2가 주민 센터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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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질문] 당신이 『환경과조경』을 읽는, 혹은 읽지 않는 이유는?
노동의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스스로가 빈껍데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쌓여가는 일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는 때때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매달『 환경과조경』을 읽는 동안에는 “나는 사람을 위한 공간 만드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길을 잃었을 때 펼쳐보는 지도처럼 내가 있는 곳, 걸어갈 곳을 깨닫게 해준다. 지금 마주한 숫자 하나보다 중요한 게 있다. 그걸 잊고 싶지 않아 『환경과조경』을 읽는다.
성문현 현대엔지니어링
긴 글을 좀처럼 잘 읽지 않는다. 그런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처럼. 글이 친근했던 때도 벌써 오래전이다. 이제 이미지가 그 뒤를 따르고, 최근에는 영상이 그 길 위에 섰다. 글자보다 그림이, 그림보다 영상을 보는 것이 편하다. 대형 서점에서 조경학 코너는 사라졌고, 이제는 누군가가 정성 들인 노력을 발굴하는 일도 귀찮고 의미 없게 느껴진다. 생각이 필요한 읽기는
지루하다. 외래어를 지나치게 사용해 혼란을 야기하는 보그체는 기분마저 망친다. 그래서 나는『 환경과조경』뿐만 아니라 다른 잡지도 거의 보지 않는다. 물론『 환경과조경』의 고유한 색과 깊이를 존중한다. 하지만 하루 수차례 웹 페이지를 들락거려도 인쇄된 잡지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잡지를 본다는 핑계로 들르던 서점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이 질문에 답할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왜 그런지 스스로 돌아보고자 기록해 본다.
안명준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소장
불안감. 아싸(아웃사이더)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작은 사무실에 앉아 홀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혼자만의 생각의 늪에 빠져 유행에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환경과조경』을 읽는다. 다른 사람은 어떤 설계로 공간을 풀어낼까? 이 시대의 조경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길을 찾아가고 있는가? 이 시대의 이슈는 무엇인가? 동시대의 조경하는 여러 사람을 보며, 내가 찾아가는 길이 맞을 것이라 위안하고 스스로를 독려하기 위해 『환경과조경』을 읽는다.
이상수 스튜디오이공일 소장
1. 환경과조경 통신원이라서. 2. 조경 꿈나래라서. 3. 표지 디자인이 예뻐서. 4. 생각보다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서. 5. 조경 전문지라고 하면 『환경과조경』이 최고라서.
김선미 공주대학교 조경학과
『환경과조경』 의 콘텐츠는 학술적 측면에서는 풍부하지만, 현장에서 설계하는 내겐 잘 와닿지 않는다.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았으면 한다. 조경사무소에서 보기에는 실무적인
내용이 적은 편이다. 주로 턴키 방식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소개되어 참고할 만한 이미지가 없다.
김종우 디자인그룹 모빌 과장
『환경과조경』 을 처음 접한 건 2년 전 학교에 복학했을 때다. 조경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막연하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학업에 매진하던 때였다. 학과 선배가『 환경과조경』을 추천해 주었다. 조경시공학, 조경설계론, 조경관리학 등 학문적으로만 떠올렸던 조경에 대한 이미지가 잡지를 읽으면서 많이 바뀌었다. 특히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들의 신선한 설계법과 아이디어는 조경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조경 설계를 더 제대로, 깊게 배워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좀 더 체계적 시스템을 갖춘 조경학과로 편입하게 됐다. 또한 영화 속 장소를 조경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흥미롭게 풀어낸 ‘시네마 스케이프’와 각종 설계공모 당선작을 수록해 놓은 ‘컴피티션’ 섹션은 내가 왜 조경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상기시켜준다.
김영찬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영상 매체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큰 노력 없이도 많은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책으로만 얻던 고급 정보 또한 다른 방식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 이제 정보 전달의 역할은 책에만국한되어 있지 않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던 때도 지났다. 이러한 이유로『 환경과조경』 을 읽지 않는다. 대신 인터넷을 사용한다. 내겐 e-환경과조경만으로 충분하다.
임지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 최신 조경 트렌드를 알 수 있다. 2. 사진 등의 자료가 감각적이다. 3. 학과 수업과 연계되는 깊이 있는 콘텐츠가 있어 참고 도서로도 좋다. 4. 구독자와의 소통이 잦다. 5. 환경과조경 통신원이라서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6. 책장에 진열하면 간지난다.
안건희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환경과조경』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직무 경험을 쌓기 위해서다. 취업을 준비하는 나는 간접 경험을 쌓는 수단으로 『환경과조경』 구독을 선택했다. 인터넷 뉴스나 다른 자료를 통해서 조경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양이 많고 복잡해 필요한 내용만을 선별하기가 쉽지 않다. 『환경과조경』 은 수많은 정보 중 중요한 몇 가지만을 골라 정리해준다. 홀로 정보의 바다에서 헤매는 것보다 여러 명의 편집자가 고심해서 만든 요약본을 구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각종 공모전의 수상작을 감상하면서 설계 공부를 할 수 있어 유용하고, 표지 디자인이 세련돼 소장하고 싶은 점도 『환경과조경』을 읽는 이유 중 하나다. 매월 신선한 디자인을 기대하는 재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조경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환경과조경』을 추천한다. 조경 잡지 구독과 같은 작은 관심이 모여, 우리나라 조경 분야의 발전에 큰 힘이 되었으면 한다.
박지원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환경과조경설계』로 제호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환경과조경』이 다루는 내용의 80%가 설계나 디자인, 나머지 20%가 다른 조경 분야에 대한 콘텐츠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 구독을 멈췄다. 조경에서 설계 외 다른 분야에 대한 정보는 일반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것이 유용하다.
정혜승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실무를 경험하면서 학문과 멀어짐을 느끼는데,『 환경과조경』은 이 간극을 메워준다. 또 뛰어난 조경가의 경험이나 다른 나라의 조경 이야기는 현재에 안주하려는 나를 일깨우는 자극제다. 설계에 참고할 수 있는 알찬 내용이 담겨 있어 과월호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가볍게 보기도 좋고, 깊게 읽기도 좋다. 『환경과조경』은 조경을 배우고 경험하는 모든 조경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잡지다.
김기웅 강산어소시에이트
1. 읽다 보면 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2.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서. 3. 재미있어서. 4. 그림과 사진이 많아 빠르게 읽을 수 있어서. 5.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잡지라서.
남수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조경을 잡고 싶어서, 조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환경과조경』을 읽는다.
이대영 스튜디오 엘 소장
주로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환경과조경』의 콘텐츠를 접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페이스북만으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고 본다. 『환경과조경』을 본 경험이 많지 않지만, 페이스북의 콘텐츠와 인쇄 매체의 콘텐츠가 똑같다면 굳이 잡지를 구매할 필요가 있을까.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의 정보 전달 방식은 매체의 성격에 따라 달라야 한다.
예를 들면 SNS에서는 인쇄 매체에서 구현이 불가능한 동영상 같은 콘텐츠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의 니즈를 좀 더 분석하고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조경 콘텐츠를 좀 더 늘려,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즐길 수 있는 잡지를 만드는 시도도 필요하다. 이제는 주변의 카페나 공공 공간, 건물 등에서 조경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심 속 콘크리트 정글 속에 사는 시민들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함께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원제 상명대학교 교수
2011년 여름, 강남역 서점에서 처음 뽑아 들었던『 환경과조경』. 그 재미있는 잡지는 나를 조경의 길로 이끌었다. 이 우연한 계기로 지리교육과 새내기의 관심사는 공간을 탐구하는 지리학의 영역에서 공간을 구현하는 조경의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그 설렘에 매료되어 업으로까지 삼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환경과조경』은 조경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고 또 마음 한켠에 고민을 던져준다. 일상과 업무에 치여 문득 회의가 몰려올 때면 잡지를 다시 펼쳐보곤 한다. 그 안에는 그동안 잊고 지낸 설렘이 있다.
엄호정 현대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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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백의 그림자
평일 낮의 을지로는 처음이었다. 을지로 재개발을 다룬 전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눈앞에 펼쳐진 을지로3가의 풍경은 조금 생경했다. 주말에 종종 이곳을 지난 적 있지만 그때마다 뭐랄까, 도심이라기엔 다소 고요하고 적적했다. 주말과는 달리 이 시간의 을지로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가게들은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었다. 큰 길을 따라 몇 걸음만 가면 금방 목적지였으나 조금 돌아가기로 했다. 좀 더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건물 틈새로 난 골목에 들어가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불편한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제작, 용접, 절단, 프레스 등이 적힌 간판이 내걸린 작은 공구상과 공장이 즐비했다. 볼트 너트 전문, 앵글 전문, 체인 전문, 용수철만 잔뜩 모아 놓은 곳도 보였으며, 위잉, 지잉, 땅땅땅, 쉬익, 큰 길에서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크고 작은 기계로 무언가를 손보거나 만들고 있었다. 도심부 제조업의 중심지라는 수식어가 피부로 와닿았다.
한 가게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간판에는 ‘OO볼트사’, 창문에는 ‘낫트’가 붓글씨로 쓰인 가게였다. 약 1.5m 높이로 쌓인 작은 쇠붙이들이 두세 평 남짓한 점포를 빽빽하게 채웠고, 한 노인이 그 쇠산 위에 돌처럼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인지 『백의 그림자』의 ‘오무사’가 떠올랐다. “왼쪽으로는 주차장을, 오른쪽으로는 조명 가게나 공구 상점들을 두고 걷다가 오른쪽으로 첫 번째 골목이 나타날 때 발길을 틀어서 그 길로 접어들면, … 그 맞은편에 오무사가 있었다. … 빽빽하다라는 말의 이미지 사전을 만든다면 아마도 그런 광경일 것이 틀림없었다.”2이내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 마음에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네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백의 그림자』는 세운상가에서 일하는 두 남녀(은교, 무재)가 주인공인 소설이지만 작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만큼 작은 전구 가게인 오무사를 공들여 묘사했고, 나는 그런 천천한 문장에 마음이 동하곤 했다. “흔히 사용되는 알전구 같은 것이 아니고,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 원가량 하는,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조그만 전구들을 파는 곳”, “손님이 찾아와서 어떤 종류의 전구를 달라고 말하면 … 서두르는 법 없이 그렇다고 망설이는 법도 없이 선반의 한 지점으로 부들거리며 다가가서, 어느 것 하나 새 것이 아닌 골판지나 마분지 상자들 틈에서 벽돌을 뽑아내듯 천천히 상자 하나를 뽑아내고 그것을 책상으로 가져와서 일단 내려 둔 뒤엔 너덜너덜한 뚜껑을 젖혀 두고 ….”2 을지로의 골목을 엿보고 나서는 오무사가 어딘가 존재하거나, 존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3들고 가는 길에 전구가 깨지거나 불량품이 있을 수 있으니 스무 개를 사면 스물한 개, 마흔 개를 사면 마흔한 개, 꼭 하나씩 더 넣어 준다던 주인 할아버지도.
청계천이 그랬고 DDP가 그랬듯 서울은 계속 변해왔지만 이번에는 조금 이상스러웠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만들고, 모아 놓고, 팔고, 사고, 맡기고, 찾아가는데, 세상 물건을 이루는 부속품은 다 여기서 나올 것만 같고, 이런 곳이라면 인공위성4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래되고 낡아서 없어지는 게. 뒤늦게 을지로 재개발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다. 기사 속 공공의 용어는 너무나 간결했고 그래서 더 폭력적이었다.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 지칭하는 것도, 거대한 제조업 생태계를 2구역, 3구역 등으로 찢어 규정하는 것도, 한 사람의 삶과 공동체의 내력이 퇴적된 시간의 지층을 슬럼이라 부르는 것도. 은교와 무재의 대화가 계속 맴돌았다.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누가요? 신문이며, 사람들이. 슬럼? 좀 이상하죠. …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걸까요. 슬럼, 하고.” 슬럼, 곱씹을수록 얄궂은 말이다.
각주 정리
1. 황정은, 『백의 그림자』, 민음사, 2017.
2. 위의 책, pp.101~103.
3. 실제로 황정은의 부친은 세운상가에서 삼십 년 넘게 일해 왔고, 황정은 또한그를 도와 일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세운상가 일대가구체적인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4. 예술가 최황은 을지로 재개발을 반대하기 위해 실제로 을지로 공구 상가에서인공위성을 만들어 지구를 촬영했다(최황, “을지로에서는 인공위성도 만들수 있다”, 「오마이뉴스」 2019년 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