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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비밀기지 만들기
여덟 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개중 또렷한 몇 가지는 조금 어둡고 비밀스러운 장소에 관한 기억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박스로 만든 집. 아빠가 어디서 커다란 냉장고 박스를 주워와 거실 한가운데 집을 만들어주었는데, 남다른 손재주로 꽤 그럴듯한 집을 만들었다. 문은 물론 커튼 달린 창도 있었다. 일곱 살의 나와 네 살배기 동생은 그 안에 쭈그려 앉아 소꿉놀이를 하거나 그림책을 만들었다. 또 다른 기억은 의자 밑에서다. 사촌 언니로부터 업라이트 피아노를 물려받았는데, 피아노를 치는 시간보다 피아노 아래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피아노 의자는 다른 의자에 비해 높고 널찍해서 엎드려 인형 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피아노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질 즈음 의자 딸린 식탁이 생겼다. 엄마는 식탁 의자 두 개를 적당히 떨어뜨려 그 위에 젖은 이불을 널어놓곤 했는데, 이불을 걷고 들어가니 또 다른 아늑한 공간이 펼쳐졌다. 환한 형광등 빛이 두툼한 이불로 필터링돼서 무섭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어두워 좋았다. 그 후로 한동안 식탁 의자 위에 이불 지붕을 만들고 그 속으로 기어들어가 놀곤 했다. 이외에도 숨바꼭질 할 때 장롱 안이나 긴 커튼 뒤에 몸을 숨기며 숨죽였던 순간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멀쩡한 집과 놀이터를 두고 왜 그렇게 좁고 어두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을까. 장소가 주는 특별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설레고, 뭔가 비밀한 일을 벌이는 것 같아 신이 났다. 이제는 옷장 안이나 미끄럼틀 아래로 숨어들지 않지만 카페의 구석진 자리를 찾거나 다락을 선호하는 습성이 그때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이런 사소한 기억을 소환한 것은『비밀기지 만들기』다. 제목은 비장해 보이지만 실은 무진장 귀여운 책이다. 토관과 드럼통 사이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 남자애가 그려진 표지를 보자마자 훔치듯 집어들었다. (이 책의 진짜 귀여움은 비밀기지처럼 숨겨져 있다. 책을 구하면 커버를 잘 살펴보시라.) 책의 저자인 건축가 오가타 다카히로는 ‘일본기지학회’라는 단체를 운영하는데, 군사 요새가 아닌 유년 시절의 비밀스러운 놀이 공간을 연구하며 워크숍 등을 진행한다. 이에 관한 책『 비밀기지 만들기』는 비밀기지를 짓기 적합한 장소(주로 데드 스페이스)부터 재료, 위장하는 법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할 만한 (만화책 보기, 숙제 베끼기, 흙장난, 불장난 등 집에서 했다가는 큰 화를 면치 못할) 활동까지 알려준다. 설문 조사를 토대로 누군가 어린 시절 실제로 만들었던 비밀기지를 소개하는데, 소소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부터 진짜인지 믿기 어려운 것도 있다. 아파트 1층 베란다 아래, 우산 세 개를 겹쳐 만든 공간, 나무 위의 집을 보며 피식피식 웃다가 쓰레기봉투를 떨어뜨리는 긴 통로, 영화 ‘괴물’(2006)에서나 봤던 대형 배수로 안을 보고는 설문 응답자의 진실성을 살짝 의심했다. 이런 데서 놀았는데 살아남았다고?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비밀기지에 대한 다카히로의 철학은 분명하다. 비밀기지를 만들며 친구와 힘을 합치는 법, 갖가지 실패를 경험하기에 유년 시절에 꼭 필요한 활동이라는 것. 특히 위험에 둔감한 아이들이 크고 작은 위험을 경험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어른들이 이러한 아이들의 놀이를 (적당히 모른 척하며) 기꺼이 도와주기를 독려한다. 어른에게도 나름 유용한 측면이 있다. 자신만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니까. 구본준 건축칼럼니스트의 추천사처럼, 어린이로 되돌아가 꿈꾸던 비밀기지를 짓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책이다. “비밀기지 만들기는 전혀 재미없어 보이는 풍경 속에서 적당한 틈새를 찾아내고 그 속에 들어가, 그곳에서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조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주변 세상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힘이 아닐까.”2돌아보면 언제부턴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너무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여 왔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상상 속에서 나만의 비밀기지를 건설했다. 일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딴짓거리를 하고 싶을 때 몸을 숨길 수 있는 나만의 은신처! 엉성해 보이지만 꽤 그럴듯하다(부모님도 편집장님도 몰라야 하므로 구체적 장소는 밝힐 수 없다).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머리를 집어넣는 순간, 앗. 그새 몸이 너무 커져 버린 걸 잊고 있었다.
*각주 정리
1. 오가타 다카히로, 임윤정·한누리 역, 『비밀기지 만들기』, 프로파간다, 2014.
2. 같은 책,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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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한강 풍경
새해 첫머리부터 굵직굵직한 공모 소식이 날아들었다. 먼저 코엑스에서 잠실 종합운동장까지 이어지는 영동권역을 국제 업무, MICE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서울 국제교류복합지구 수변 생태·여가문화 공간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 종합발전계획의 일환으로 개최된 공모는 ‘한강과 탄천’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수변 공간을 대상지로 설정하고, 물줄기로 끊어진 두 지역을 ‘탄천보행교’를 놓아 연결할 것을 강조했다.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2015, 본지 2015년 11월호 참조)의 평가 요소였던1. 부지 안에 담아낸 기능과 디자인의 완결성 2. 주변 도시 조직과의 연계성 3. 한강 및 탄천 수변 지역의 처리 방식 중 2번과 3번 요소가 묘하게 얽혀 새롭게 태어난 공모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상지와 목표가 뚜렷해진 만큼 “호쾌한 구조물 위를 걸어서, 운치 있는 녹지를 지나서, 편리한 모노레일을 타고서 당도한 한강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가벼운 산책과 시원한 사이클링과 한강을 바라보며 식사와 차를 즐기는 것”, “수영이나 보트를 타는 정도”1에서 수상 레저 스포츠는 물론 자연과 한데 어우러진 각종 문화·예술·일상 활동으로 확장됐다. 조감도에서 어떤 패턴을 완성하는 산책로와 녹지로만 채워졌던 수변이 명확한 목적과 형태를 가진 공간으로 바뀐 것도 당연하다. 공교롭게도 2월호 지면을 채운 또 다른 공모 역시 한강변을 다뤘다. ‘한강변 보행네트워크 조성 공모’의 대상지는 좁고 어둡고 낙후된 한강대교 남단 여의나루역에서 시작되어 동작역까지 이어지는 한강 수변길, 한강변의 접근성과 활용성을 증대하고 다양한 여가·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걷기 편한 환경을 구축해야 했다. 물가의 특성을 충분히 수용한 디자인 물과 수직으로 만나는 조경의 전략이 우수한 안을 선정했다는 심사평은 공모의 초점이 ‘한강’에 맞추어져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뿐만 아니라 노들섬 특화공간 조성사업, 샛강 생태 거점 조성사업, 한강대교 백년다리 조성사업 등 한강변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적당한 크기로 마름질된 프로젝트 조각들을 어떻게 이어 붙일지는 의문이지만, 한강을 바라보는 일에만 익숙한 내게 물을 적극적으로 즐기게 하는 각종 전략들은 묘한 설렘에 휩싸이게 만든다.
지면 가득 채운 공모를 살피며 한강에 담긴 막연한 낭만에 대해 생각했다. 한밤의 한강은 사람을 쉽게 감상에 빠트린다. 늦은 밤 에도 불을 꺼뜨릴 줄 모르는 빌딩숲이 저 너머로 멀어지고, 대신 일렁이는 강을 배경으로 가벼운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를 채운다. 한없이 여유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때만큼은 바쁘고 정신없는 도시의 일상이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야근러들이 밝힌 도시의 불빛들이 로맨틱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자연과 도시가 뒤엉킨 독특한 서울의 구조도 한눈에 들어온다. 경쟁이라도 하듯 높게 선 건물 뒤편으로 펼쳐진 야트막한 산, 산등성이를 타고 오른 조막만 한 집들이 이룬 마을, 천변을 따라 차곡차곡 들어선 아파트 덩어리들.
아파트에까지 눈길이 닿으면 시각이 조금 달라진다. 어떠한 낭만에서 꾸준히 쌓아온 선망으로. 자기 관리라는 명목으로 출근 전 강변을 따라 즐기는 가벼운 조깅, 커피 한잔을 마시며 통창으로 내려다보는 한강의 모습은 성공한 서울 사람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한강이 몇몇 사람들의 소유물처럼 느껴졌다. 꽁무니를 붉게 물들인 자동차들이 스멀스멀 한강 다리 위를 기어가는 광경 역시 기묘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줄곧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인데도, 저 자동차 행렬에 끼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정한 서울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한강은 좀처럼 내 공간 같지가 않다. 콘크리트 제방 옆으로 옹색하게 펼쳐진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으면, 꼭 진짜 서울 사람에게 잠시 자리를 빌린 듯한 기분이 든다. 이따금 찾는 특별한 장소는 될 수 있지만, 결코 내 일상에 녹아들 수는 없는 공간. 한강을 바라보는 대상에서 직접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바꾸겠다는 설계안에 들뜨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날이 따뜻해지면 한 번쯤은 한강을 따라 긴 산책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왕이면 선명한 강변 풍경과 함께하면 좋으니, 올봄에는 미세 먼지 소식이 드물었으면!
각주 1. 민성훈, “계획가가 외면한 것”, 『환경과조경』 2015년 11월호,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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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보행 환경을 만드는 ‘논브라켓 울타리’
브라켓을 사용하지 않는 결합 방식으로 내구성을 높인 제품
친환경적이고 쾌적한 보행 환경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산책로, 등산로, 보행교에 목재가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목재 데크나 울타리의 경우 목재의 수축 및 팽창 현상, 낮은 내구성으로 인해 시공 후 하자 발생률이 높고 유지 관리 비용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나사나 브라켓 등 결합 부품을 활용한 시공 방식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연결부가 벌어지거나 결합 부품에 녹이 스는 등의 문제도 발생시킨다. 친환경 합성 목재를 생산하는 이노스의 ‘논브라켓non-bracket 울타리’는 목재 보행로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기술적으로 보완한 ‘데크로드 시스템deck road system’의 일환으로 개발된 제품으로, 시공이 쉽고 하자를 예방해 유지·관리 비용을 최소화한다.
논브라켓 울타리는 기둥재에 난간재를 끼우는 방식으로 설치된다. 기둥재에 압출 성형 단계부터 난간재 삽입 홈을 형성해 제작해 브라켓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 같은 결합 방식은 외부 충격과 하중에 견디는 힘을 더 강하게 만들어 안전한 보행을 도모한다. 또한 매끄러운 결합부를 형성해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 제품에 사용된 합성 목재는 잣 껍질을 원료로 해 곰팡이와 병충해를 방지하며, 천연 목재와 유사한 질감과 색상을 낸다. 더블클립 기술로 조립한 바닥부와 논브라켓 울타리를 결합하면 시공 시간을 더욱 단축할 수 있다.
TEL. 033-734-0987 WEB. www.kino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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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동물원 정문 광장 지명 설계공모
디자인 엘·에이치오엠건축사사무소·안팍의 ‘네트로 와일드’ 당선
서울대공원 동물원 정문이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예술적 공간으로 탈바꿈될 예정이다. 2019년 10월 1일 서울대공원은 노후한 동물원 정문을 새롭게 조성하고자 ‘서울대공원 동물원 정문 광장 마스터플랜 수립과 정문 및 부속시설 리모델링 지명공모’를 개최했다. 광장의 기능과 더불어 쉼을 제공하는 설계안을 수립하고 그에 걸맞은 경관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박준서(디자인 엘), 서영애(기술사사무소 이수), 양태진(조경그룹 이작), 윤성융(서호엔지니어링), 이대영(조경상회 스튜디오 엘) 5인의 조경가가 초대 받았고, 이 중 박준서, 서영애, 양태진, 이대영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작품을 제출했다. 11월 21일, 김용미 심사위원장(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과 김병채(채움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 변금옥(도화엔지니어링 부사장), 이소진(아뜰리에리옹 서울 소장), 최신현(씨토포스 대표)이 심사를 진행했다.
당선작에는 디자인 엘·에이치오엠건축사사무소·안팍컨소시엄의 ‘네트로 와일드(Netro Wild)’가 선정됐다. 2등작은 조경그룹 이작·이데아키텍츠 컨소시엄의 ‘오랜나무 그늘의 시간으로 공존의 의미를 말하다’(상금 800만원), 3등작은 기술사사무소 이수·구우건축사사무소·허비영 컨소시엄의 ‘광장의 재구성: 집약, 연결, 확산’(상금 600만원), 4등작은 조경상회 스튜디오 엘·오즈앤엔즈 건축사사무소·그린컬처조경설계사무소 컨소시엄의 ‘아름다운 그늘이 있는 동물원’(상금 400만원)이 차지했다. 당선팀은 기본 및 실시설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지정된다. 올해 3월까지 설계를 마치고, 10월까지 재조성을 마칠 계획이다.
네트로 와일드
네트로는 새로움을 뜻하는 네오(neo)와 과거로 돌아간다라는 뜻의 레트로(retro)의 합성어로, 네트로 와일드는 광장을 품은 거친 숲을 의미한다. 동·식물원 진입로의 거친 숲을 지나며 사람들은 도시로부터 벗어나 시공간적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9천 제곱미터의 넓은 정문광장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입구 공간, 서비스 공간, 동물원 진입 공간을 구획했다. 각 공간의 진출입 동선을 녹지와 시설로 분리해 이용자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낮은 공간에 고객 지원 시설을 배치해 관리 동선과 진입 공간을 자연스럽게 구분하고, 서비스 코어를 두어 이용객의 편의를 높이고자 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1호(2020년 1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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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단지 경관의 회복탄력적 설계
에버스케이프 어워드 2019
지난 12월 3일, 주거 단지 외부 공간에 대한 회복탄력적 설계를 주제로 한 ‘에버스케이프 어워드 2019’의 수상작이 발표됐다. 2018년에 제정되어 2회를 맞이한 에버스케이프 어워드는 삼성물산 조경사업팀이 주최하는 공모전이다. 급변하는 도시 환경에 대한 혁신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조경, 건축, 도시 관련 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기획되었다. 이번 공모의 주요 과제는 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 도시 쇠퇴, 기후 변화 등 도시의 변화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대응하는 창의적인 주거 단지 외부 공간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핵심 개념으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제시해야 했다. 참가자들은 1,000세대 내외 주거 단지를 대상지로 선정하고, 주동 배치와 건축물 형태를 제외한 외부 공간과 시설물을 설계했다.
지난 10월 14일까지 참가 신청을 한 80팀 중 38팀이 작품을 제출했다. 같은 달 18일 1차 심사를 통해 10팀이 선정됐다. 응모작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1차 선발팀을 대상으로 한 달간 팀별 멘토링을 진행했다. 멘토링 조경가로는 강한솔 소장(얼라이브어스), 백종현 소장(자연감각), 이호영 소장(HLD), 최영준 소장(랩디에이치), 최혜영 교수(성균관대학교) 등 한국 조경의 미래를 이끌 젊은 조경가 5인이 위촉됐다. 11월 22일,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전재현 그룹장(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조경사업팀)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대상 1점(1,000만원), 우수상2점(각 500만원), 가작 3점(각 300만원), 입선 4점을 선정했다.
대상에는 황현수·정겸(연세대학교) 팀의 ‘브레스 인 브레스 아웃(Breathe In - Breathe Out)’이, 우수상에는 김병철·박지현·이석이(서울시립대학교) 팀의 ‘아티피셜 플랫, 네이처 언이븐(Artificial Flat, Nature Uneven)’과 이민경·박찬호(연세대학교)·김택현(인하대학교) 팀의 ‘어반 팡(Urban Pang)’이 선정됐다. 가작을 수상한 팀은 김태현·조영호·안성우(연세대학교), 송시원·박소민·정지섭(서울시립대학교), 김태원·진민령·조윤아(한국전통문화대학교)이며, 입선은 이제혁·김혜영·김수인(삼육대학교), 박태영·김홍준(경희대학교), 김민호·조영준·정제상(강원대학교), 배규민·임주영·정현주(충북대학교) 팀에게 수여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1호(2020년 1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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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이 된 이야기, 이야기가 된 경관
‘스토리스케이프’ 전, 우란문화재단, 12월 5일부터 1월 11일까지
도시를 이루는 것은 건물과 도로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이 물리적인 빈틈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도시를 온몸으로 살아온 이들의 기억이다. 도시공간연구자 서준원은 개발에 의해 시시때때로 변하는 도시 속 보통의 장소에 경관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는 2014년부터 북촌 계동, 용산전자상가 등을 대상으로 지역의 장소성과 역사성,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기록한 ‘공간잇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동네 곳곳을 누비며 주민들이 살아온 시간과 배경에 주목하고, 지역 학생들과 함께 동네 슈퍼, 건물 뒤편의 텃밭, 골목길 담벼락 벽화 등에 얽힌 사연, 장소의 변천사를 조사해 마을 지도와 책자를 만들었다. 서준원에게 경관은 곧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성수동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스토리스케이프’ 전은 서준원 대표(공간잇기)의 연구 전시로, 우란문화재단의 문화·예술 인력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재단은 소장한 예술 작품을 대중에 공개하고 소장품의 주제와 맥을 같이 하는 국내 예술가 및 연구자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이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초청된 연구자는 소장품을 매개로 자신의 연구 주제를 확장하는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전시한다. 프로그램의 시작으로 사진작가 마이클 울프(Michael Wolf)와 서준원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마이클 울프가 홍콩의 뒷골목을 촬영하면서 동시대 소시민들의 일상을 기록했다면, 서준원은 서울에 담긴 개인사와 그들이 만드는 경관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큰 주제를 공유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1호(2020년 1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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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
이제 그만 행복해질 때도 됐잖아요. 코엔 형제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2013)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포크송 가수인 데이비드 르윈이 뒷골목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자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으로 시작해, 아주 일관된 방식으로 주인공 인생의 형편없는 순간을 낱낱이 전개하는 영화였다. 잘 곳도 없어 남의 집 소파를 전전하는 처지에 여자 친구의 낙태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고, 갖은 고생 끝에 찾아간 유명 프로듀서에게는 듀엣 파트너와 재결합하라는, 맥빠지는 충고를 듣는다(긁혀버린 자존심은 둘째치고, 그의 듀엣 파트너는 예전에 자살했다). 급전이 필요해 저작권을 포기하고 팔아 치운 노래는 히트 조짐이 보이고, 다 그만두고 ‘시체처럼 버티던’ 선원 생활로 돌아가려는 계획마저도 (항해사 자격증을 버린 탓에) 수포로 돌아간다. 누가 코엔 형제 아니랄까 봐. 이제는 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에 코웃음 치며 더 나쁜 상황을 더하고 더하는 서사에 진이 다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묵묵하게 르윈의 시간을 따라가는 이 영화의 문법에 묘하게 설복되었다. 안도감이나 위로에 가까운 감정이 들었다. 남의 불행을 위안 삼아서가 아니라, 이기는 일보다 지는 일이 보통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실패를 죄악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편도 아니고, 그저 남보다 뒤처지는 일이 잘못인 줄로만 알고 못 견뎌 하던 시절.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말하는 성공이 실제로부터 얼마나 먼지 알게 되고,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도 모호해지며 선망하던 ‘성공’이라는 단어는 부담스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찌질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어두운 면면까지, 삶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이야기에 더 애착을 갖기 시작한 게. 승리와 패배를 구분하는 일에 무뎌지기로 했던 게.
최승린의 소설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에는 실패와 불행, 후회로 점철된 다양한 인생이 등장한다. 축구 선수였지만 경기장 벤치를 전전하다 부상을 입고 프리미어 리그 인터넷 중계팀에서 일하는 인물,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얕은 재능을 가진 사진작가,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를 포기하고 오퍼상으로 평생을 보낸 가장. 누구에게나 도래하는 내리막길의 시간을 조명한다.
영웅으로 기억되는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에게도 “내밀한 실패의 기억”은 있다. 표제작(‘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의 ‘나’는 은퇴 후 간암으로 투병 중인 최민철의 자서전을 편집하다 그의 성공이 교묘하게 편집된 사실을 알게 된다. 메이저 리그 구단에 입단할 수 있었던 것은 구단이 “마침 아시아 시장을 인식한 덕분”이고, 최민철의 몸값이 “일본 선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쌌기 때문”이다. 구단과의 계약 만료를 앞둔 최민철은 한국으로의 복귀를 원한다. 하지만 그의 귀국을 한국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탓에 다른 구단으로 이적해 미국에 잔류한다. 최민철은 선수 생활 내내 자신을 숨 막히게 했던 것이 관중의 응원가와 “아무도 자신이 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고 고백한다. 최민철이 사망한 후 ‘나’는 생각한다. “21세기의 한국은 준비가 되어 있을까. 영웅이나 상징이 아닌, 한 명의 약한 인간으로 최민철을 한국에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2
“모두 언젠가는 실패를 한다. 지단이나 메시도 축구화를 벗는 날이 온다. 그게 언제인지가 중요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그런 의미조차 사그라진다. 모두가 실패자가 될 때, 그래서 누구도 실패자가 아닌 때가 온다.”3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며 2019년을 돌아봤다. (언제나 그랬듯) 이룬 것에 비해 이루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 살은 얼마나 더 쪘고, 퇴근 후 유튜브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며, 맡은 일을 얼마나 어이없게 말아먹었는지(?)를 열렬히 토로했다. 신세 한탄과 자조적인 셀프 디스에 가까웠지만, 마음은 울적함보다 재미와 안도에 가까웠다. (생각만으로도 아뜩하지만) 새로운 한 해에 만들 열두 권의 잡지를 떠올려본다. 한 번쯤은 지독하게 안 풀렸던 설계, 망한 프로젝트로 조금 우습지만 보통의 이야기에 가까운 지면을 꾸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실현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만, 추진하게 되면 제목은 이렇게 지어야겠다.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잡지를 보세요.’
**각주 정리
1. 최승린,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 난다, 2018.
2. 같은 책, p.60.
3. 같은 책,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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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일상의 기록, 시대의 기억
달력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할 때면 낯선 숫자와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올해의 네 자리 숫자는 유독 서먹하다. 2020, 치약 이름도 생각나고 을지로 골목 귀퉁이에 있을 법한 카페 이름 같기도 하다. 데이비드 몽테뉴(David Montaigne)의 예언과 달리 지구는 어떤 종말의 징조도 보이지 않고 2019년의 마지막 달을 통과하고 있다. 이즈음이면 내 나름대로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에 돌입한다. 일 년 동안 함께한 일기장 첫 장을 펼쳐 짤막한 투 두 리스트(to do list)에서 해낸 것과 해내지 못한 것을 구분한다. 변함없이 게으르게 보낸 지난날을 잠시 반성하곤 곧장 온라인 문구숍에 접속한다. 2020년에 걸맞은 새 일기장을 마련할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기를 썼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가 배신당한 기억 때문이다. 비밀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기장을 반으로 접어두면 읽지 않겠다기에 친구와 싸운 이야기를 구구절절 적었더니, 다음날 친구와 교무실로 소환당해 강제로 화해를 해야 했다. 고자질이라도 한 기분에 친구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이후 선생님의 시선을 신경 쓰다 보니 모범생 같은 소리만 잔뜩 늘어놓게 됐고, 일기는 숙제를 위한 글짓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됐다.
일기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인 건 공부 빼면 모든 게 다 재밌었던 고삼 시절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던 때였다. 등교, 수업, 야자(야간 자율 학습), 하교, 다른 사람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 반복되던 시기.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나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은 그 시절의 나를 조금이라도 특별한 사람으로 남기는 일이었다. 그때 들인 버릇이 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오래된 취미 생활의 산물이 이제 책장 한 칸을 거뜬히 채운다. 게으른 내가 일상을 계속 기록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 각양각색의 낡은 책등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어떤 변천사가 보이는 듯도 했다.
수험생 시절 선택한 일기장은 먼슬리(monthly), 위클리(weekly), 프리 노트(free note)로 구성된, 문구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노트였다. 먼슬리에 기록할 일정이라고는 시험, 가족과 친구의 생일 정도가 전부였고 위클리에는 그날 풀어야 하는 문제집 이름과 쪽수가 미션처럼 적혔다. 프리 노트는 온갖 것들의 스크랩북이었다. 일기를 비롯해 수업 시간에 끄적인 낙서, 친구와 나눈 필담, 간단한 감상평을 적은 영화 티켓이 노트를 두툼하게 불렸다. 내용은 고만고만했다. 진로, 성적, 야자 시작 전 먹을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이 줄을 이었다. 그래도 완벽히 똑같은 날들은 없었다.
수능의 압박에서 벗어나 시간이 넘쳐나는 대학생이 된 후에는 일반 노트에 달력이나 글 박스를 직접 그려 마음대로 꾸몄다. 사진과 글 박스의 크기를 고심해 배치한 흔적이 잡지 레이아웃을 고민하는 지금의 내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조경은 종합과학예술”이라는 말에 홀려 일기장을 설계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곳으로 쓰기도 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꽤 많은 아이디어가 당시에 봤던 영화나 전시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업무 일정을 정리해야 하는 회사원이 되자, 쓸모없이 느껴졌던 위클리가 다시 절실해졌다. 잡지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매달 마지막 주의 일기장을 채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한 달 중 가장 치열한 시간의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까워 궁여지책으로 업무 중 사용한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급박하게 갈겨쓴 글씨, 메모 옆에 덧붙인 이모티콘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이 기록물의 힘은 묘하다. 필름 카메라와도 비슷한데, 한 번 기록한 것을 수정하려면 반드시 자국이 남고 그렇기에 내용을 신중히 고르고 거듭 정제해야 한다. 이러한 특성이 종이 매체를 전자 매체보다 특별한 것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일기가 개인의 기록이라면, 잡지는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기억하는 매체다. 이 매체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감각이 더해지면, 잡지 역시 개인의 추억이 깃든 기록물이 될 테다. 지금은 막을 내린 ‘오피니언’(2018)과 ‘이달의 질문’(2019)의 기획 의도 일부가 이 호흡을 끌어내는 데 있었다. 이를 대체할 새로운 꼭지는 아직 기획되지 않았다. 이러한 시도를 지면에서 계속할지, 독자와의 접점이 좀 더 많은 온라인에서 하는 편이 나을지는 아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손이 많이 가는 어려운 기획을 거듭하는 이유는, 이것이 종이 매체를 특별하게 만들며 지탱해 온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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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벤치 ‘소런’
조개껍데기 형상과 무늬를 반영한 디자인
다채로운 디자인의 휴게 시설물로 공원, 광장, 아파트 단지 등 도시 공간에 경관 가치와 여유를 더해온 조경 시설물 전문 기업 예건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디자인 벤치를 출시했다. 흰색 파이프로 만든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인 벤치 ‘소런Solen’이다.
소런은 조개껍데기의 형상과 무늬를 콘셉트로 디자인됐으며 종류는 두 가지다. 정원, 갤러리, 카페, 주거 단지의 소규모 휴게 공간에 적합한 소런 가든 체어·테이블 세트, 공원이나 거리 등 넓은 공공 공간에 잘 어울리는 소런 등벤치를 제작했다. 가든 체어 좌판에는 작은 구멍이, 등벤치 좌판에는 직선의 틈이 있어 비나 눈이 내려도 벤치에 물이 고이지 않는다. 소런의 가장 큰 특징은 등받이 부분이 동심원처럼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형태로 디자인되어 시각적 안정감을 준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등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입체적 구조로 이용자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 단순한 색채와 형태의 벤치는 어떤 장소와도 잘 어울리고,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TEL. 031-943-6114 WEB. www.yek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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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라는 상상의 무대
‘ㅇㅍㅌ: 서울풍경’ 전, 연남장, 10. 30. ~ 11. 24.
획일적이고 삭막한 도시의 상징, 부동산 열풍과 치솟는 집값의 주범으로 여겨지는 아파트는 줄곧 건축적,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아파트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일상을 보내는 장소이고,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드’들은 아파트를 마음의 고향이자 추억과 애착이 담긴 장소로 인식한다. 근래 들어서는 재개발되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오래된 아파트를 기록하고 추억하는 다큐멘터리, 도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파트의 역사가 길어지는 만큼 이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서울 연남동 ‘연남장’에서 열린 ‘ㅇㅍㅌ: 서울풍경’ 전은 아파트를 자유로운 상상의 무대로 전환한 전시다. 전시를 주최한 하스HaaS는 국내 건축 문화 콘텐츠의 확산과 한국 건축의 우수성을 알리는 관광 스타트업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서울에는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문화재부터 첨단 기술이 집약된 DDP, 랜드마크로 기능하는 롯데월드타워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단일 건물을 제외할 때 서울 풍경의 주를 이루는 것은 아파트다. 전시 총괄을 맡은 김현정 대표(하스)는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아파트를 좀 더 색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그는 “아파트를 비판적으로만 보기보다 관객들이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일상에 무언가를 더해주는 전시를 구성함으로써 아파트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추억을 얻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장 내부는 전형적인 아파트 내부 구조를 본떴으며, 사진가부터 일러스트레이터, 미디어 아티스트 등의 예술가들이 아파트에 관해 가진 다양한 인식을 담아냈다.
전시장 입구에서 익숙한 형태의 출입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ㅇㅍㅌ’라는 전시 이름을 호수판처럼 붙인 현관문이 있고, 동그란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선과 도형이 현란하게 겹치는 영상을 마주하게 된다. 아파트 내부에 이르기 전 복잡한 단지를 헤매는 경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안용진의 ‘숲’이다. 작품은 본격적인 전시 공간에 이르기 전 지나는 전이 공간에 배치되어 그 의미를 한층 부각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0호(2019년 12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