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오퍼레이티드 그라운드 ‘서울형 저이용 수변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 대상작
    하천과 그 일대의 수변은 다양한 문화와 사람이 교류하는 장소다. 시민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짓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시 내 하천을 포함한 수변 공간은 급격한 도시 개발에 따른 변화를 겪으며 시민의 생활 영역과 동떨어진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도로와 철로 등 교통 관련 시설, 저수로, 고수부지, 제방 등에 의해 도시와 단절되었고,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빈터로 방치된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는 이러한 도심 수변 공간의 잠재력을 끌어내고자 ‘서울형 저이용 수변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이하 저이용 수변공간 혁신 공모)를 개최했다. 잘 이용되지 않는 수변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발굴하고, 도시민과 하천의 관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중랑천 3개소(노원구 쓰레기 처리시설, 중화1·2 빗물펌프장, 송정 빗물펌프장), 청계천 2개소(용두 유수지, 성동구 거주자 공영주차장), 안양천 3개소(오목 빗물펌프장, 가산 제2유수지, 시흥 유수지), 도림천 1개소(신림 제2공영차고지), 홍제천 1개소(서대문구 재활용센터) 중 한 곳을 대상지로 선정하고, 다음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첫째, 수변 활성화 전략을 세우고 거점 시설을 조성한다. 둘째, 단절 요소를 극복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다. 셋째, 인근 기반 시설의 유휴 공간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김승회(전 서울시 총괄건축가), 서영애(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이장환(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 이진오(SAAI 대표), 정욱주(서울대학교 교수) 심사위원은 두 단계에 걸쳐 심사를 진행했다. 1단계에서는 제안 계획서를, 2단계에서는 7주간의 연구 기간을 통해 보다 구체화한 제안 내용을 평가했다. 그 결과 대상에는 조규형·정해랑·박상훈의 ‘오퍼레이티드 그라운드(Operated Ground)’, 최우수상에는 백건일의 ‘워터 파크(Water Park)’와 이대호·이범기·한해미·이재열의 ‘웨이브스케이프(Wavescape)’, 허근일·서자민의 ‘리버사이드 시빅 캠퍼스(Riverside Civic Campus)’가 선정됐다. 이외에도 6개 작품이 우수상을 받았다. ...(중략) *환경과조경386호(2020년6월호)수록본 일부
  • 당신이 몰랐던 철원 ‘DMZ 경, 철원’ 전, 연남장
    지난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연남장에서 열린 ‘DMZ 경景, 철원’은 접경 지역 철원을 톺아보는 전시다. 전시에는 민통선을 넘나들며 철원 땅을 두 발로 거닌 이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사진기를 들고 시간이 멈춘 듯한 산길을 걸었고, 사라지고 없는 철도의 흔적을 탐정처럼 찾아 다녔다. 비무장지대DMZ는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 펼쳐진 구역을 일컫지만 DMZ 일원은 그보다 아래인 민통선 지역까지를 포함한다. 철원, 파주, 고성, 양구 등 15개 시군의 일부가 여기에 속하는데, 그중 철원은 DMZ 중심에 위치하고 경계부의 넓은 면적이 북한과 인접한다. 일제 식민지기의 철원은 경원선 등 기반 시설이 잘 마련되어 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발전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이 같은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철원하면 접경 지역, 한국에서 가장 추운 곳, 평야, 철새 서식지 등 단편적 정보만을 떠올릴 뿐이다. DMZ 접경 지역에 관한 연구와 콘텐츠를 지속해서 개발해온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와 올어바웃(allabout)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철원의 경관과 지형, 일상 공간과 문화, 한국전쟁 이전의 흔적을 통해 엿보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채로운 형식으로 재현해 선보인다. 철원을 걷는 시선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관람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철원 토포스(topos)’다. 인쇄된 철원 지형을 전시장 바닥에 붙인 것으로, 복잡한 등고선과 생소한 지명이 눈에 띈다. 작품은 사람들이 바닥에 그려진 군사분계선을 넘어 전시장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DMZ라는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딛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이창민은 사진에 소리를 담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어떤 풍경에서 소리가 들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미지 프로파간다’ 속 철원 풍경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관람자의 내면에서 어떤 소리를 불러일으킨다. 불이 붙은 논에서는 마른 풀잎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멀리 탱크가 지나가는 풍경에서는 크고 무거운 바퀴가 마른 땅바닥을 긁는 거친 소리가 들려온다. 소이산, 조망의 공간 소이산은 철원평야 한가운데 야트막하게 솟은 산이다. 해발 352m로 높이는 낮지만 주변을 조망할 수 있어 고려시대에는 봉수대로, 한국전쟁 시에는 미군 기지로 쓰였다. 2012년 민간인에게 개방됐지만 여전히 산의 정상에는 헬기 이착륙장이, 지하에는 폐쇄된 군사 벙커가 자리한다. 조신형의 ‘상상하는 시선’은 소이산에서 보는 다채로운 풍경을 영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영상 속에는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지뢰 지대와 산책로가 아슬아슬하게 나뉘어 있고, 길을 따라 전시된 철원 주민들의 창작시가 눈에 띈다. 정상에 오르면 논위의 두루미, 평화 전망대, 남한GP, 북한GP, 백마고지 전적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좀 더 멀리 눈을 돌리면 북한의 산맥이 비현실적으로 가깝게 다가온다. 독일의 건축설계사무소 하이브리드 스페이스 랩(Hybrid Space Lab)은 이 소이산 정상 부근에 가상의 파빌리온을 제안했다. 건축가들이 직접 산을 오르며 살폈던 다양한 조망점을 기준으로 설치된 파빌리온을 통해 소이산이 갖는 상징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상상으로 복원한 폐허 철원은 일제 식민지기 조선 최초의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진 금강산전기철도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금강산 으로 가려면 경의선을 타고 원산으로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는데, 철원역과 금강산 내금강(내금강역)을 바로 잇는 열차가 개설됐다. 덕분에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철원에서 한 번만 갈아타면 바로 금강산에 닿을 수 있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여행자들은 주변 경관을 여유롭게 감상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굶주린 사람들이 철도를 뜯어다 파는 바람에 오늘날 철도는 남아 있지 않게 됐다. ...(중략) *환경과조경386호(2020년6월호)수록본 일부
  • 작품과 관객, 서로를 재료로 삼다 관객의 재료, 블루메미술관, 4. 18. ~ 8. 23.
    공감은 상대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밑바탕이다. 동물행동학자인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공감의 시대』에서 공동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모든 사회적 가치는 공감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4월 18일 블루메미술관에서 열린 ‘관객의 재료’는 이 공감 본능에 집중해 관객과 작가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교류를 다룬 전시다. 특히 관객의 생물학적 본성에 주목하며 인간의 공감 본능이 작동하는 지점인 ‘재료’에 주목했다. 모든 작품은 재료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물질적인 것, 언어적인 것, 순간적인 것에서 항구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종류가 다양하다. 작가에게 선택된 재료는 서로 접합되고, 어떤 이야기와 얽히고, 추상적 구조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되어 작품이 된다. 그런데 관객의 재료 전은 이외에도 또 다른 재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소통을 전제로 만든 작품에서 작가는 사실상 다른 재료도 쓰고 있다. 그것은 부피도 없고, 형태도 없고, 측정 가능한 범주도 없다. 어떻게 고정할 수 있는지, 얼마큼 소진되고 발현되는지 예측할 수 없다. 바로 관객이 들여오는 재료다.” 작가는 관객의 존재를 제로에 두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청자 또는 화자의 위치에 올려놓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관객을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전시는 상담 전문 기관인 ‘그로잉맘(growing mom)’의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의 전제는 그가 가진 ‘재료’의 차이”라는 말에서 촉발되기도 했다. 그로잉맘은 이번 전시를 함께 기획하며 관객이 작품을 보고 느낀 감정을 다시 작가에게 전달해 창작욕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활성화하고자 힘썼다. 전시는 손경화, 우한나, 유비호, 이병찬, 장성은, 정성윤, 조현, 최성임 등 8명의 현대미술가를 초대했다. ‘안개잠’을 선보인 유비호는 현대인의 상실과 고독에 작은 위로를 보내는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다.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한 안개잠은 한 여인이 바위 위에 주저앉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뒷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표정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 혹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쉽게 투영할 수 있다. 특히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의 존재,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바위 주변으로 몰아치는 파도 소리는 관객 내면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상념을 끌어 올리는 효과를 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6호(2020년 6월호) 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한숨의 기술
    내가 아는 한숨의 기술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전 직장에서 선배 옆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뭔가를 배우고 있는데 순간 콧구멍으로 큰 숨이 나왔다. 그때의 나는 숨을 코로 쉬는지 입으로 쉬는지 의식도 못했는데, 별안간 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한숨을 쉬어? 내가 답답해?” 당혹스러움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로 시작하는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다 상황은 대충 정리됐다. 이야기가 끝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진짜 한숨을 쉬었다. 누구에게 들릴까 입이 아닌 코로, 들이마신 숨을 옅게 내보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숨을 크게 쉰 이유는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만성 비염이라 코가 근질거렸던 걸 수도 있었는데. 어쨌든 한 가지 배운 건 누군가 옆에 있을 때는 때론 호흡도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다. 많은 숨을 한꺼번에 확 뱉지 말고 살살, 느리게. 자주 가는 동네 책방을 어슬렁거리다 구석에 놓인 『한숨의 기술』을 발견했다. 책을 두른 띠지에는 ‘임소라의 독립책방 폐업기’라고 쓰여 있었다. 임소라 작가에 대해서는 그가 낸 다른 책을 읽어서 이미 알고 있었는데, 서점을 열었다 망했다는 것과 망한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는 건 몰랐다. 내가 가진 그의 책은 한 도시의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기록한 것인데, 볼 때마다 너무 웃겨서 적절한 때에 이 지면에 소개해볼까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숨의 기술』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제목을 보자마자 한숨에 관한 웃지 못 할 사연이 떠오르기도 했고, 자영업 붐 시대에 무슨 배짱으로 폐업기를 책으로 펴냈는지도 궁금해졌다. 일단 제목의 의미는 한숨을 쉬는 법(technique)이 아닌 한숨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었다. “책이 안 팔려서, 책을 들여올 돈이 없어서, 책방에 아무도 안 와서, 그냥 막막해서 때마다 코로 마시고 코로 뱉던 한숨을 담배 연기 대신 활자로 담은 글”이라니. 담배 연기는 싫지만 담배 연기 같은 활자라는 표현은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편집자였던 임소라는 직장을 다니던 중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온라인 서점을 오픈했다. 개업과 동시에 회사 대표님으로부터 우려 섞인 권고를 들었다. 대부분의 회사는 겸업을 금지한다는 점, 업무 효율에 미칠 영향, 판매 사이트 운영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결국 등 떠밀리듯 퇴사하게 되지만 모든 시작이 그렇듯 머릿속에는 잘 될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수입은 전무하고 모아둔 돈은 금세 동났다. 뒤늦게 연 오프라인 서점도 지속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그는 책방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기록해 둔다. “내가 겪은 책방의 시계는 분침과 시침이 없다. 초침만 있는데 그 초침의 이름이 기다림인 거다. 난 초침 이름이 기다림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정말이지 그럴 줄은 몰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을 궤도에 올리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경험은 여러모로 쓰라리다. 도와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내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결정에서 도망쳤기에 실패는 오롯한 내 몫이 된다. 자랑은 아닌데, 망하고 튄 이력이라면 나도 어디서 뒤지지 않을 것이다. 입시, 취업, 인간관계까지 다양하다. 사실 한숨 사건이 일어났던 전 직장은, 졸업 후 탈조경의 모범이 되겠다며 호기롭게 (부모님의 손을 빌려 마련한 보증금으로)독립까지 하면서 다녔던 곳이다. 과한 열정에 비해 능력도 사회 경험도 인내심도 한참 모자랐던 나는 수습 기간 3개월을 겨우 마치고 달아났다. 안 친한 사람들이 물으면 인턴 같은 거였다고 얼버무리기 바빴다. 『한숨의 기술』은 덮어두고 모른척하고 싶은 시간을, 일이 안 된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 사람들이 구경하도록 내놓는다. 책방을 운영할 때의 자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준비되어 있지 않았는지, 콘셉트나 운영 방식은 얼마나 모호했는지, 손님을 대할 땐 얼마나 미숙했는지 등을 죽 정리한다. 책방은 망한 채로 남았지만 폐업 후 그가 만든 책들을 보면 이 멋도 없는 무용한 기록이 결국 그 다음으로 나가게 해주는 숨 고르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로에게는 더 좋은 책을 만들게 하는 압력이 됐을 테고, 로망을 걷어낸 핍진한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현실적 조언으로, 나 같은 프로 탈주자에게는 소소한 위로의 맛으로 다가왔다. 문득 지난달 진행한 조경협회 40주년 좌담이 떠올랐다. 패널들 사이에 오갔던 회한의 말들, 예전에 부딪혔거나 지금 직면하고 있는 한계를 누군가 슬쩍슬쩍 언급하곤 했다. 언젠가 그런 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캐물을 기회가 오면 좋겠다. 각주 1. 임소라, 『한숨의 기술』, 디자인이음, 2018.
  • [CODA] 디지털 공원
    누구나 한 번쯤 아날로그 붐에 휩쓸리고 싶어지지 않나. 레트로 열풍에 알맹이가 없다는 진단도 있지만, 레코드판이나 카세트테이프, 종이책, 만년필과 같은 것에서 낭만이 느껴진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시류에 탑승해 지난해 봄, 일본 여행을 앞두고 손바닥만 한 필름 카메라를 샀다. 변덕스러운 성정을 고려해 중고로 저렴하게, 작동법이 어려우면 구석에 처박아 놓을 게 빤하니까 반자동 모델로. 피사체야 다양했지만 가장 찍고 싶던 건 나라 사슴공원의 사슴들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블로그로 탐방한 사슴공원은 디즈니가 그린 세계 같았다. 사슴과 노래하고 춤추는 건 무리지만, 그럭저럭 어울려 함께 걸을 수 있다. 사슴이 허락만 한다면 (센베이 모양의 먹이를 대가로) 등허리를 쓰다듬고 사이좋게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게다가 그 배경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이라는 점이 멋졌다. 우거진 나무와 너른 잔디밭도 있지만, 사슴의 발길은 아스팔트 도로나 자판기와 오토바이가 서 있는 상점 앞에도 서슴없이 닿는다. 그 풍경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그럴듯한 예처럼 보였다. 차곡차곡 쌓은 환상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부서졌다. 도시와 자연이 뒤섞인 유토피아 같은 모습은 상상 그대로였는데 사슴이 달랐다. 그들은 커다란 눈을 착하게 뜨고 다가왔다. 그리고는 먹이를 갈취했다. 150엔을 주고 산 먹이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이번에는 좀 더 잘해봐야지, 다시 산 먹이를 가방에 숨기고 태연한 척 걷는데 사슴무리의 시선이 나와 일행을 계속 쫒아왔다. 순간 그 크고 예쁜 눈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100미터쯤 걸었을까 또다시 사슴 패거리에게 붙잡혀 주머니와 가방을 수색 당하고(옷 주머니와 가방에 머리를 들이밀고 샅샅이 뒤지는데 반항하면 물리거나 걷어차인다)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카메라 롤을 가장 많이 돌렸다. 어쨌든 동물원 철창 속에서 기운 없이 거니는 사슴보다야 훨씬 ‘진짜’다운 사슴을 만난 기분이었으니까.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 사슴들이 공원을 탈주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관광객이 줄어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어쩔 수 없이 도시로 향한 것 같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공원에서 장장 2킬로미터를 걸어야 닿을 수 있는 나라 역, 그곳에 쓸쓸히 선 사슴의 눈은 착해 보이지도 섬뜩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척척해 보였다. 비슷한 일이 태국에서도 일어났다. 원숭이의 도시라 불리는 롭부리 한복판에서 원숭이 수백 마리가 패싸움을 벌였다. 원인은 역시 관광객 감소로 인한 먹이 부족. 결국 사슴공원도 원숭이의 도시도 우리만 없을 뿐 거대한 관광 산업 시스템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유토피아를 빙자한 동물원이었구나. 어쩌면 가방과 주머니를 헤집던 행동이 갈취가 아닌 구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있을 때는 모르다가 없어지면 아쉽다. 문화생활이 삶을 맛깔나게 해주는 조미료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막상 미술관이며 도서관이며 공연장이며 죄 문을 닫으니 너무 적적하다. 대안으로 온라인 콘서트나 VR 미술관 등이 등장했지만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가상(혹은 증강)현실에는 음악과 예술 작품이 있지만, 스피커에서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발밑을 꽝꽝 울리는 진동과 고요한 가운데 이상한 방식으로 집중력을 높여주는 백색소음이 없다. 하나하나 따지다보니 실재하는 진짜 공간에 발을 딛고 서있다는 감각은 내 문화생활을 좌지우지하는 꽤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가상현실로 즐기는 문화생활을 일상화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테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을 넘어 공원 역시 디지털화되는 날이 올까. 바람, 풀숲, 햇빛,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인기척 등 어떤 공간의 감각을 0과 1로 완벽히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이어가다 문득 공원의 생존 여부는 공간이 아닌 역할의 문제라는 결론에 닿았다. 나무와 잔디밭, 광장, 벤치를 보기 좋게 버무린 그림 같은 풍경에 주목한 공원은 언젠가 사슴을 잃은 공원처럼 그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코로나 시대 이미 집 안에 갇힌 사람 중 몇몇은 공원 대신 액정 속 ‘동물의 숲’1을 방문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고려하며 “휴게 기능을 넘어 문화, 복지, 소통 등의 가치를 어떻게 공원에 도입할지 고민”2하는 일이 디지털 공간이 공원을 대체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 [COMPANY] 정원문화연구소 자연의 가치를 배우는 유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기업
    정원문화연구소는 2010년 제이하우스(JHaus)를 전신으로 정원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설립된 비영리 연구 기관이다. 다양한 정원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는데, 그 일환으로 교재를 발간하고 아카데미와 가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스토어에서 ‘가든아이’라는 정원 용품 상점을 운영 중이다. 김정하 소장(정원문화연구소)은 국내에서 정원 붐이 일기 전부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원 놀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해 왔다. 서울숲 녹색공유센터, 과천시 청소년수련관, 안산시 다문화글로벌센터, 서초 한우리정보문화센터, 석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꼬마정원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정원 일의 기쁨을 가르쳤다. 누리과정 및 표준보육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유아 전문 연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가 하면, 정원놀이사, 정원놀이교육사 교육 프로그램 개발·운영, 민간정원전문자격 등록 및 관리 등 정원 놀이 전문가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정원문화연구소의 프로그램은 일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는다. 일정 기간 동안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수업하며 정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점진적 교육 과정을 지향한다. 여기에는 “정원 프로그램의 목표는 식물과 지속적으로 교감하고 돌보는 행위로 공감, 창의 실천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김 소장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만 2세부터 5세까지의 아이를 대상으로 매주 한 번씩 만나 1년을 함께하는 커리큘럼을 마련했는데, 개발에만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개발 후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유아 교육 시장에 정원 교육 프로그램 보급로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직접 공략해야 했는데, 일일이 방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재는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전국 수백 명의 영업 교육사를 기반으로 네트 워크를 구축해 정원 교육의 씨앗을 퍼뜨리는 중이다. 아이들을 위한 정원 용품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캡슐에 씨앗을 담아 조제약 봉투 형식으로 포장한 ‘캡슐씨앗’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작은 씨앗을 집기 어려운 아이들을 고려해 씨앗을 캡슐에 넣어 땅에 바로 심을 수 있게 한 제품이다. 약을 떠올리게 하는 외형은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약을 먹듯 마음에 병이 들거나 위안이 필요할 때 식물을 찾았으면 하는 김정하 소장의 바람을 전한다. 캡슐은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재료로 제작되어 흙에 집어넣고 물만 주면 누구나 쉽게 식물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인 만큼 안전사고를 대비해 캡슐에는 일절 코팅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씨앗을 넣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 [PRODUCT] 기하학적 선형이 돋보이는 벤치 ‘노바’ 다면체 알루미늄 캐스팅이 연출하는 입체감
    일상 속 외부 공간에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더하는 조경 시설물 기업 ‘예건’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벤치 시리즈를 출시했다. 현대 도시 경관과 어우러지는 단순하고 명쾌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선보였는데, 그중 ‘노바Nova’는 기하하적 선형이 돋보이는 알루미늄 캐스팅 벤치다. 접은 종이에서 모티브를 얻어 납작한 직육면체를 몇 번 접은 것처럼 다리 기둥을 디자인했다. 옆에서 보면 알파벳 N을 뒤집은 듯한 형상이다. 벤치의 형태를 결정하는 이 알루미늄 뼈대는 예리하게 세공된 다면체다. 각각의 면이 조금씩 방향을 달리하면서 빛을 다양하게 반사해 벤치가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용자의 몸이 닿는 좌판과 등받이에는 목재를 사용해 쾌적성을 높였다. 이외에도 파이프와 목재가 조화돼 만드는 자연스러운 곡선이 특징인 바제Base, 플랜터와 의자를 겸하는 육각형 벤치 헥사Hexa 등 실내외 어느 공간이나 잘 어울리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이달 열리는 2020 대한민국 조경·정원박람회에서 이 같은 신제품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TEL. 031-943-6114 WEB.www.yekun.com
  • 당신이 바꾸는 세상 ‘새일꾼 1948-2020’ 전, 일민미술관, 6월 21일까지
    선거는 작기만 한 내가 커다란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종이 한 장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깃들어 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와 맞물려 선거의 의미를 되짚는 전시가 마련됐다. 3월 24일부터 6월 21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는 아카이브와 사회극의 결합을 시도한 전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록보존소의 400여 점의 선거 사료, 신문 기사 등 다양한 기록물을 전시해 73년간의 선거 역사를 살필 수 있게 했다. 예술가 21팀은 선거라는 주제를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해 설치, 퍼포먼스, 문학, 드라마, 게임, 음악 등 다채로운 형태로 선보였다.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을 선출하는 과정으로, 경합과 갈등의 장이며, 사건들의 드라마틱한 흐름을 이끄는 모멘텀(momentum)이자 참여라는 행위인 점에서 사회극이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는 점에 착안한 기획이다. 전시는 일민미술관 앞에 위치한 광화문광장을 활용해 그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 천경우 작가의 ‘리스너스 체어(Listener’s Chair)’는 광화문광장과 전시실 내부를 간접적으로 연결해 오늘날 민주주의적 소통 방식을 사유하게 한다. 정치적 입장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수많은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광장에 스피치룸(speech room)을 설치하고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스피치룸에서 수집된 목소리는 음성 변조를 거쳐 미술관 1층 전시장에 설치된 헤드폰으로 전달된다. 어둑한 공간에 원형으로 배치된 익명의 시민들이 사용했던 의자, 이야기의 주인을 알 수 없게 변조된 목소리는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아카이브는 단순히 기록물을 나열하는 소극적 방식을 탈피해 동시대의 예술 작품과 적극적인 상호 작용을 시도한다. 안규철의 ‘69개의 약속’은 역대 대통령 선거 벽보에 사용된 슬로건과 구호가 얼마나 모호하고 추상적 언어인지를 드러낸다. ...(중략) *환경과조경385호(2020년5월호)수록본 일부
    • 김모아
  • 백색에 맞물린 환상과 일상 ‘화이트 랩소디’ 전, 우란문화재단, 5월 27일까지
    분필을 잡은 손이 초벌된 항아리에 선을 긋기 시작한다. 흰 선이 한 줄 한 줄 채워지며 검은 항아리는 백자가 되어간다. 도예가 주세균은 분필이라는 일상적 소재로 한국적 아름다움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달항아리를 모방한다. 유약 대신 분필 가루가 덮인 도자, 낙서처럼 구불구불한 선이 그려진 도자는 낯선 모습으로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난 4월 1일, 우란문화재단은 백색에 투영된 다양한 이념과 심상을 공유하는 ‘화이트 랩소디(White Rhapsody)’전을 열었다. 백색은 한국의 전통성과 민족성을 대변하는 색채지만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그 함의와 소비되는 방식이 다양하게 변해 왔다. 전시는 백색을 통해 드러나는 전통의 시각성과 해석의 전형성을 현대적 시점에서 비평적으로 고찰한다. 백색에 관한 낯익은, 낯익지 않은 시선 전시장 입구에는 사전 리서치 자료와 직물, 비누, 설탕, 밀가루 등 백색 사물을 전시한 아카이브가 마련됐다. 사전 리서치는 산업, 문학, 건축 다양한 분야에서 쓰인 백색을 두루 살폈다. 이정은의 ‘화이트 인사이드(White Inside)’는 하얀 피부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최호랑의 ‘올림픽 시공간의 백색’은 88올림픽 개최 시점에 나타난 백색의 상징성을 탐구했다. 이야호는 리서치 픽션 ‘모두의 일’을 통해 흰색이 증발해버린 세상을 그렸다. 이 같은 작업은 역사와 인식 속 백색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며 이와는 또 다른 해석이 펼쳐질 것을 암시한다. 전시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다섯 명의 작가를 초대했다. 사진, 조각, 도자, 설치, 향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은 백색에 대한 작가들의 개별적 해석의 결과물로,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관념으로부터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전시의 협력 기획자인 조주리 큐레이터는 백색에 관해 “새로운 발언을 할 수 있는 세대의 작가들을 초청했다”고 설명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5호(2020년5월호)수록본 일부
  • 적층 도시 장지, 서울 컴팩트시티 국제설계공모 당선작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대규모 택지 개발을 통해 공공 주택을 공급해왔다. 거듭된 개발은 서울을 물리적 한계에 다다르게 했고, 이제 개발 가능한 토지 자원을 찾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대안으로 도시 외곽에 주거 단지를 짓기 시작했지만, 이는 시간적·경제적 비효율성, 그린벨트를 비롯한 녹지 잠식 등의 문제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SH는 저밀도로 이용되는 공공시설 부지의 입체적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 1월 17일 SH는 ‘장지, 서울 컴팩트시티(Compact City)국제설계공모’를 개최했다. 대상지는 송파구 장지동의 장지공영차고지다. 1990년대에 매연, 소음, 안전사고 문제에 대비해 시 외곽 그린벨트 지역에 지어졌지만 수도권 확장으로 주택 단지에 둘러싸이게 된 곳이다. 공모는 활용도 낮은 차고지 부지를 대규모 도시숲, 행복주택, 생활(SOC)가 층층이 어우러진 입체 도시로 재탄생시킬 것을 요구했다. 양적 공급에 치중했던 공공 주택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시도다. 과제는 세 가지였다. 첫째, 공영차고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한다. 둘째, 다양한 도시 활동을 수용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셋째, TOD(Transit Oriented Development)(대중교통지향형개발)가 녹아든 공간 구조를 통해 삶터와 일터가 어우러진 미래 도시를 계획한다. 심사위원 이상윤(연세대학교 교수), 이신해(서울연구원 선임연구원), 전숙희(와이즈건축사사무소 대표), 임영환(홍익대학교 교수), 한광야(동국대학교 교수), 헤르베르트 드라이자이틀Herbert Dreiseitl(램볼 스튜디오 드라이자이틀 대표), 피터 페레토Peter Ferretto(홍콩 중문대학교 교수)는 혁신적인 공간 계획, 창의적인 건축 설계,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오픈스페이스 계획에 주안점을 두고 심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건축사사무소아크바디+범도시건축+동일기술공사+CA조경 컨소시엄의 ‘적층 도시Multi-Layer City’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5호(2020년 5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