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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우리들
출퇴근길 지하철 계단 오르기가 유일한 운동인 내게도 한창 뛰놀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시도 때도 없이 동네를 쏘다니던 무적의 ‘초딩’ 시절. 토요일이면 4교시가 끝나기 무섭게 근처 시장으로 뛰어가 ‘방방’을 탔고, 학원 수업 전후 친구들과 모여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경찰과 도둑, 얼음땡 같은 추격전을 벌였다. 주차장, 복도와 계단, 놀이터… 놀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어디서든 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학교 운동장만큼은 내게 그다지 유쾌한 장소가 아니었다. 종종 굴욕감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등 떠밀려 이어달리기 주자가 됐다가 역전을 당한 쓰라린(?) 기억이 있고, 무엇보다 나는 공 앞에서 몸이 자동으로 굳는 아이였다. 문제는 당시 초딩들 사이에서 피구가 엄청나게 유행해서 반 애들은 체육 시간만 되면 피구를 하겠다고 선생님을 졸라댔다는 점이다. 공에 맞는 것은 물론 누군가를 공으로 맞추기는 더 싫었지만, 단체 생활이 중요했던 그땐 조용히 흰 라인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영화 ‘우리들’(2016)을 보자마자 내 안의 스위치 같은 게 켜진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운동장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 선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경직된 채로 서 있다. 피구 경기가 열리는 체육 시간, 두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씩 팀원을 고르는 편 가르기에서 선은 마지막에 남는 한 명이다. 공을 능숙하게 다루는 데도 날렵하게 몸을 피하는 데도 재주가 없어서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가장 먼저 공을 맞고 아웃된다. 운이 좋아 공에 맞지 않아도 “금 밟았다”는 지적을 받아 라인 밖으로 쫓겨난다. 선은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야무지게 돌보는 싹싹한 딸이지만 반에서는 늘 변두리를 맴돈다. 반면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보라는 반에서 선을 적당히 배제하며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다진다. 영화는 선이 소외되는 이유를 분명히 짚어내진 않는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아이들 간 계급이 나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사실 따돌림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여름방학 첫날, 선은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지아를 우연히 만나 각별한 사이가 된다. 하지만 보라가 학원에서 지아를 만나면서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아와 다시 친해지기 위해 선은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는 일이 으레 그렇듯) 어정쩡한 제스처는 더 큰 갈등과 오해를 불러온다.
부모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된 마당에 나는 선과 지아에 거의 일체화되다시피 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내게도 새 학기를 앞두고 친한 친구와 다른 반이 될까 마음 졸였던 기억, 좋아하는 친구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노력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극 중 아이들은 일상을 뒤흔드는 위기에도 쉽게 울음을 터뜨리거나 선생이나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면서도 무섭도록 사실적이다. 어른들에겐 어른들의 문제가 있고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문제가 있듯, 두 세계는 전혀 다른 문법이 적용되는 생태계임을 아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들’이 ‘Us우리들’이 아닌 ‘The World of Us우리들의 세계’로 번역된 점은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윤가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왜 어린이만 주인공으로 하느냐”는 질문에 “왜 어른만 주인공으로 찍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이들도 삶의 주체인데요. 오히려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흔하지 않아서 귀하죠. 전 어제 일보다 20년 전 일이 더 생생히 생각납니다. 어쩌면 현재의 일은 어린 시절 겪은 일들의 반복과 변주에 불과할지 몰라요.”1
영화의 마지막 장면, 카메라 앵글은 다시 운동장의 아이들을 비춘다. 극적인 화해는 없다. 다만 한 아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를 보여줄 뿐이다. 학교 혹은 동네 어딘가에 있던 열한 살의 나, 그리고 지금 그곳에 있을 열한 살들을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그때의 나만 알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오늘을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각주 1.백승찬, “윤가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우리들’…위선 따위 없어 더 사실적인 아이들의 정글”, 「경향신문」 2016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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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
정보 수집, 취재, 기획, 편집, 교정, 마감. 쉼표로 생략된 이야기가 많지만 에디터는 대강 이 정도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일 년을 보낸다. 첫 과제인 정보 수집은 귀동냥, 제보, 대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중에서도 검색은 얄팍한 정보를 재빠르게 수집하기에 제격이다. 이따금 키보드와 모니터를 통해 세계 곳곳을 탐방한다. 이번 호 지면을 가득 채운 놀이터도 그 대상 중 하나다.
마스크 없이 랜선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은 보통 두 단계로 진행된다. 검색어는 ‘놀이터’. 이 여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많아야 스무 개 남짓, 그나마도 ‘MZ세대를 위한 놀이터’, ‘새들의 놀이터’처럼 각종 캐치프레이즈 때문에 검색된 기사를 제외하면 영양가 있는 정보가 얼마 남지 않는다. 검색어를 ‘playground’로 바꾼다. 훨씬 다채로운 결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색색의 옷을 입은 독특한 형태의 조합 놀이대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공원이나 광장에 가까워 보이는 곳도 많다. 파빌리온이나 실험적 예술 작품도 거리낌 없이 놀이터라 부르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 공간에 얽혀 저마다의 놀이를 즐기고 있다. 단어가 품는 범위뿐만 아니라 물리적 면적 자체도 월등히 크다.
놀이터는 제법 여러 번 다룬 소재다. 특집으로 소개한 적도 있고, 참고할 만한 놀이터 전문 서적이 없던 시절에는 독일의 『Kinderspielplatze mit hohem Spielwert(놀이 가치가 높은 어린이 놀이터)』를 번역해 실었다. 113호(1997년 9월)에는 전통 놀이 공간을 이르는 ‘전승놀이터’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심우경 교수(당시 고려대학교 원예과학과)는 과거 “우리의 놀이는 주로 아름다운 산천에서 행해졌으며 고정된 시설이 아니고 빈터(마당)만 있으면 철에 따라서 남녀노소가 따로 함께 놀았”다고 말한다. 즉 산과 들을 비롯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놀이의 터로 삼았단 이야기다.
그렇다면 미끄럼틀과 그네가 놓인, 우리가 익숙하게 봐 온 놀이터는 언제 등장했을까. 김성문 대표(판타지 코리아)는 4호(1983년 10월호) 특별기획 지면에서 놀이터가 탄생한 이유를 “산업화의 영향에 의해 도시가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며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고층 건물과 주차장, 도로 등의 시설로 점령”되었고, 어린이를 보호하고 그들의 활동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놀이터’라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함께 수록된 삽화가 인상적인데, 자동차 사이에 낀 그네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도시의 모든 공간이 그렇듯 놀이터도 도시를 반영한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놀이터 시설 구성의 밀도도 높아지게 된다.”(기아미+김연금, 50쪽) 땅에서 한계를 맞닥트린 놀이터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솟는다. 트리하우스는 나무 주변을 감싸 오르고(영도초등학교 트리하우스, 부산 새들원), 둘레길을 닮은 데크는 지면에서 서서히 떠오르며 다이내믹한 등굣길과 놀이 공간을 선사한다.(배봉초등학교 놀이키움). 좁은 공간에서 놀이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어린이꿈공원). 이러한 입체적 시설은 중력을 거스르며 놀고 싶은 어린이의 욕구를 해소시키고 주변을 색다른 높이에서 바라보는 생경한 경험을 주지만(하늘바다놀이터), 사실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다채롭게 활용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밧줄과 암벽을 타고 공중에 매달린 그물 위를 쏘다니며 모험심을 키울 수 있게 되었지만, 내키는 만큼 달리고 실컷 공놀이를 할 수 있는, “멀쩡한 놀이터를 놔두고…스탠드 기둥에 찰싹 붙으며 도망 다니는, 매미 놀이”(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를 할 수 있는 너른 터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바벨탑에서 시작해 세계 곳곳에 우뚝 선 마천루까지, 수직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위로 오르는 행위를 신분 상승에 비유한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는 어둑한 지하를 향해 말한다.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놀이터에는 계단 따위는 없을수록 좋다. 도전 정신을 키울 수 있는 사다리도 좋지만, 휠체어와 유모차도 오를 수 있는 나지막한 경사가 더 좋다. 모두가 수직 도시를 꿈꾸는 이 시대에 놀이터는 평평하고 널찍한 수평을 바라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더불어 궁금해졌다. 더 높은 구조물을 짓고, 더 깊숙이 땅을 파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 시대에 결국 땅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또 무엇을 남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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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거리의 공기를 정화하는 ‘미스트에어타워’
향균 및 공기 정화 기능을 갖춘 안개 분사 시스템
아이디플러스IDPLUS의 ‘미스트에어타워Mist Air Tower’는 안개 분사기와 전기 집진기를 이용한 미세먼지와 기온 저감 기능은 물론, 향균 및 공기 정화 시스템까지 갖춘 복합 환경 시설물이다. 하층부에 달린 환풍기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여 타워 내부에 장착된 전기 집진기에서 폐렴균, 황색포도상구균, 초미세먼지 등의 유해 물질을 걸러내 깨끗한 공기로 다시 배출하는 원리다. 전기 집진기에는 플라즈마 장치, 집진 필터가 내장되어 미세먼지와 악취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기존의 안개 분사 시스템이 수도관을 통해 끌어온 물을 미세한 입자의 안개로 분사해 온도를 낮추고 미세먼지를 저감했다면, 미스트에어타워는 안개 분사 기능에 주변 공기를 정화하는 시스템을 더해 폭염이나 대기 오염 등의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미스트에어타워는 조형물을 연상케 하는 역삼각형 타워, 나무를 닮은 타워, 단순함이 돋보이는 일자형 타워 등 다양한 옥외 공간에 어울리는 여러 디자인으로 설계되었다. 깨끗한 공기가 필요한 버스 정류장, 유동 인구가 많은 길거리, 공연장, 놀이터 등에 설치하면 손쉽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TEL. 02-3661-2040 WEB. www.id-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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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바꾼 도시의 풍경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4월 11일까지
올림픽과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는 한 나라의 모습을 바꾸어 놓곤 한다. 서울의 풍경도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올림픽에 앞서 1980년대에 이룩한 민주화와 경제 발전의 성과를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도시 경관이 필요했다. 63빌딩, 장교빌딩 등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도심을 따라 줄지어 들어섰고, 버스정류장 표지판 등 세세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가로 환경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이처럼 올림픽이 건축과 디자인 업계에 불러온 반향은 경제, 사회, 문화에도 여파를 미치며 우리 생활 전반에 변화를 일으켰다.
지난해 12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최된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은 1980~1990년대에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급격히 성장한 한국의 시각 및 물질 문화의 기반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올림픽 이펙트’, ‘디자이너, 조직, 프로세스’, ‘시선과 입면’, ‘도구와 기술’의 4부로 구성되는데, 올림픽이 촉발한 도시, 환경, 건축, 사물의 급격한 변화를 사진,도면, 스케치, 영상 아카이브와 작품 300여점으로 시각화했다. 다양한 매체는 단순히 변화의 양상을 짚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의 시각 문화, 물질문화, 인공물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고 수용되었는지 살펴보라고 권유한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중앙홀 바닥에 펼쳐진 기하학적 패턴과 빛과 색이 점멸하는 LED 화면이 발길을 붙든다. 진달래, 박우혁이 연출한 가상의 무대 ‘마스터플랜: 화합과 전진’이다. 이들은 건축과 디자인, 경기장의 공통점이 선과 단위가 교차하며 만들어진다는 데 주목해 올림픽 당시 건축 및 디자인의 패턴을 중첩해 바닥에 풀어놓았다. 그 위에 끊임없이 반짝이며 원근과 시점의 혼란을 주는 모니터와 운동하는 소리와 일상의 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설치했다. 이 반복적 패턴은 매스 게임, 경기 규칙과 경기장의 규격, 끝없는 훈련, 미디어의 반복 메시지 등을 연상시키며 올림픽이 현재 사회 시스템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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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흔한 도시 풍경
돌아보면 도시를 이루는 어떤 것도 처음부터 자연스럽진 않았다. 1900년 4월, 조선의 밤을 희미하게 밝히던 등불 대신 종로 네거리에 최초의 가로등이 켜진 것처럼 말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거리를 채우는 형형색색의 조명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안서후의 ‘가로 세면대’가 보여주듯 세면대가 늘어선 거리 풍경 또한 머지않아 일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홈 트레이닝 시대에 운동 기구가 인테리어의 일부가 되거나 공간 활용을 위해 변기는 필요할 때만 꺼내 쓰게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가까운 미래 서울의 주거 상상도를 공유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아파트, 오피스텔, 원룸과 같이 공간 구성이 보편화된 건물들로 포화 상태인 서울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아파토피아(Apartopia)’ 전은 균질한 서울의 주거 환경과 도시민의 다양한 요구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간극에 주목한다. 작가들은 서울을 일종의 실험 공간으로 삼고 여덟 가지 키워드(수납, 침대, 변기, 세면대, 운동 기구, 부엌, 스크린, 화분)를 미래 대도시의 단초로 삼아 독특한 건축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이번 전시는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주최하는 ‘DDP 오픈큐레이팅’의 일환이다. 재단은 2020년 ‘집과 디자인(Design for Home)’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전시 기획안을 공모해 4개의 기획안을 선정했고, 그 첫 번째 전시로 ‘아파토피아’를 선보였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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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파크
수서역세권 공공주택지구 조경 설계공모 당선작, 신화컨설팅
수서역세권 공공주택지구가 뉴노멀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외부 공간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2020년 10월, LH는 ‘수서역세권 공공주택지구 조경 기본 및 실시설계 공모’를 개최했다. 대상지는 서울시 강남구 수성동 187번지 일대로, 면적이 386,479m2(조경 면적 87,570m2)에 달하는 공공주택지구다. 설계 목표는 세 가지였다. 첫째, 수서환승센터를 중심으로 대모산, 탄천 등 다양한 녹지를 연계해 녹지 네트워크의 중심지를 만든다. 둘째, 여가와 휴식을 위한 공원과 오픈스페이스를 확보하고, 입체적인 보행 네트워크를 구축해 차별화된 랜드마크를 조성한다. 셋째, 정원 디자이너와 협업해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가능한 공공 정원을 계획함으로써 도시의 새로운 매력 요소를 발굴한다.
공모는 약 한 달간 진행되었고, 같은 해 12월에 열린 심사에서 신화컨설팅의 ‘어나더 파크(The Another Park)’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당선팀에게는 설계권이 주어진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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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식물 문답』 조현진 작가 인터뷰
소년은 게임보다 길가에 핀 야생화를 보는 일이, 만화책보다 식물 도감을 읽는 것이 더 좋았다. 어렴풋한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도 언제나 식물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보던 다큐멘터리 속 꽃의 개화 장면, 성당 한 구석에 피어 있던 백합, 토끼에게 따다 주었던 토끼풀 같은 것들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식물을 관찰하고 공부했고,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식물의 세계에 더욱 빠져들었다. 소년은 자라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남기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다른 사람과 식물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식물 문답』의 저자 조현진이 책을 펴낸 계기를 설명했다. 식물에 대한 시시콜콜한 지식과 경험이 쌓일수록 그에 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도 쌓여갔다. 친구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듯, 식물에 얽힌 소소한 궁금증과 이야깃거리를 독자에게 묻고 답하는 식의 책을 구상했다. 식물 애호가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세밀화와 질문을 싣고, 뒷장에서 답과 부연 설명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행위가 곧 대화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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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마지막 수업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바닥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정확히는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하는 행동이다. 사람, 자동차, 쓰레기, 풀… 길 위엔 많은 것이 있다. 개중 대체로 작고 움직이지 않는 것들을 본다. 실은 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보지 않으려 하니 오히려 눈이 더욱 밝아진다. 일단 눈에 띄고 나면 그게 뭐가 됐든 ‘한때 살아 있던 것’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나는 길 위의 쓰레기를 보면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 되었다. 쓰레기는 떨어지기 전후의 이야기를 상상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떤 날은 날개, 어떤 날은 꼬리였다. 친구와 걷다 골목 한가운데 맨홀 위에 펼쳐진 날갯죽지와 깃털을 보았고, 4차선 간선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줄무늬를 이루는 등허리와 꼬리의 털을 보았다. 운이 안 좋다느니 조심성이 없다느니 같은 말은 할 수 없었다.
길 위에 놓인 것들을 생각하다 전설처럼 이름만 전해져 오는 존재들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이빨을 드러내는 것들, 날카로운 발톱과 뿔 같은 게 달린 것들. 혹은 작고 징그러운 것들, 쉽게 부서지는 것들.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도시의 규칙과 질서, 안전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살기 좋은 곳’이라는 말은 오직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거였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 생물체가 살만한 곳’을 만들라는 ‘생물체 설계공모’(26~47쪽)는 좀 충격이었다. 일차적으로 사람을 배제하고 어떤 공간을 만들라는 요구 자체가 낯설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은 크게 새삼스러워졌다. “인간이 아닌 생물체를 의뢰인으로 선택하고 그의 요구 사항을 규정”하고 “의뢰인의 삶을 개선하는 장소, 구조, 사물, 체계 또는 과정을 설계”하라는 공모의 전제는 ‘생태 공간’, ‘서식지 조성’ 같은, 그간 수없이 배우고 들어온 말을 다르게 풀어쓴 것뿐이었다.
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20편의 짧은 영상으로 구성된 ‘마지막 수업’ 시리즈. 영상 속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데 열심이었다. 영장류학자 이윤정은 긴팔원숭이가 특히 좋아하는 나무 열매를 알려주었고, 극지 연구자 이원영은 젠투펭귄이 친구들과 소통할 때 내는 ‘꽉꽉’ 소리를 따라했다. 그들은 영상에 직접 출연하지 못하는 동물을 대변하는 듯했다. 해충으로 여겨지는 곤충이 왜 해충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인도네시아 숲 인근 전깃줄에 왜 원숭이들이 죽은 채 매달려 있는지, 바이러스와 잘 공존하고 있던 박쥐가 왜 전염병의 원흉으로 지목받게 됐는지 따위의 이야기였다.
생태학자 김산하는 야생동물의 정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동물을 이야기할 때 너무 당연한 말처럼 생각하면서도 잊고 있는 게 뭐냐면, 동물은 서식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냥 있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동물=동물+서식지’의 개념이라는 거죠. … 서식지와 동물이 아예 하나의 개념으로 묶여 어떤 관계망을 갖지 않고서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동물, 그것이 야생동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흔히 피라미드 구조의 먹이사슬 정도로 생각하는 생태계에는 포식, 피식, 공생, 편리공생, 별 상관없는 사이, 기생과 같은 온갖 관계가 무수히 중첩되어 있어서, 어떤 동물의 멸종은 하나의 소우주가 사라지는 것, 모나리자 같은 명화가 불타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호소했다. 이윽고 덧붙인, 현존하는 포유류 중 4%만이 야생동물이라는 숫자가 무척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더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도시, ‘사람 중심’의 스마트 도시, 자율 주행의 상용화가 코앞이라는 소식이다. 잘 닦인 길을 보며 길 위의 모나리자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한때 머물렀을 바위틈, 땅속의 굴, 물풀이 무성한 늪, 우거진 덤불을 생각했다. 문득 누군가 바라고 기대하는 모든 것들이 그저 시시하게만 느껴졌다.
‘마지막 수업’은 2020년 생명다양성재단이 주최한 생태 교육 프로젝트다. 김산하, 이윤정, 이원영, 장이권, 최재천이 강사로 참여해 짧지만 굵직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강의 영상은 생명다양성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www.youtube.com/c/TheBiodiversity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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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귀여워할 때만 나를 사용해도 좋아
닫히지 않던 마스크 상자가 헐거워졌다. 다시 상자를 채워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해의 혼란이 떠올랐다. 금요일마다 약국 앞에 줄을 서고, 방 안에 틀어박혀 달고나 커피를 휘젓고, 벚꽃놀이는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속 풍경으로 대신했다. 일상이 멈추자 지구가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고요를 찾은 브라질 해변에 바다거북이 찾아오고 인도의 한 공장이 기계를 가동하지 않으니 호수에 홍학 떼가 날아들었다는, 그런 소식들 말이다. 그래서 적어도 인간들이 거리를 두고 지내는 동안 동식물들은 행복할 줄 알았다. 어떻게든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인간들이 또 무언가를 죽이고 있는 줄은 정말로 몰랐다. ‘생물체 설계공모’의 ‘달빛 파티’(28쪽)가 다룬 맹그로브투구게 이야기다.
맹그로브투구게(이하 투구게)는 아시아 연안에 서식한다. 먹을 순 있지만 살이 적어 인기가 없고, 4억5천만 년을 견디고 살아남은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이렇게 강인한 생물체의 멸종을 걱정하게 된 이유는 그들의 혈액이 세균에 매우 민감한 면역 체계를 갖추고 있어 백신의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매년 수많은 제약 회사가 수십만 마리의 투구게를 채혈하고 바다로 돌려보낸다. 일정량의 피만 얻고 본래 있던 곳으로 보내준다고 하니 얼핏 평화로워 보이지만, 바다로 돌아온 투구게 중 상당수는 더 살아가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김정화 박사가 투구게는 “갑각류가 아닌 협각류”고 “삼엽충을 닮은 생물체”라고 설명했지만, 내 눈은 이미 푸르스름한 조명과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면이 만든 신비로운 패널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었다. 투구게라니, 꼭 투구 모양의 모자를 뒤집어 쓴 꽃게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나. 신이 나 인터넷 검색창에 일곱 글자를 적어 넣었다가 펼쳐진 이미지에 소름이 돋은 팔뚝을 열심히 문질러야 했다. 투구게는 꼭 외계 생명체처럼 생겼다. 가오리처럼 납작한 몸체를 가졌는데, 게보다 거미나 전갈에 가까운 생물체임을 증명하듯이 온몸이 딱딱한 석회질 갑각으로 덮여 있다. 긴 꼬리가 달려 있고, 배에는 거미의 다리와 꼭 닮은 다리 여섯 쌍이 나 있다. 징그럽게 생겼다는 감상은 곧 섬뜩함으로 바뀌었다. 제약 회사 연구실의 벽에 투구게를 묶어 놓고 공장처럼 피를 뽑아내고 있는 사진 때문이었다. 투구게를 향했던 시선이 인간의 행위로 옮겨갔고 혐오감이 일었다.
투구게가 보편적으로 귀여워 보이는 외형이었다면 내 생각이 인간의 행동이 혐오스럽다로 빠르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 아마 투구게를 불쌍히 여기는 데 더 오랜 시간을 쏟지 않았을까. 기리보이의 노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귀여워할 때만 나를 사용해도 좋아”라며 애정을 갈구한다. 노래의 제목은 ‘호구’, 필요할 때 또 귀여워할 때만 날 찾으라는 게 사실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다 버리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할 시절 인간은 동물과 동등한 생물체로 살았다. 하지만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삼고 반려동물로 들이는 과정에서, 동물을 보호하고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 이미지화해왔다. 이제 사자와 호랑이, 곰 같은 맹수들에게도 귀엽다는 표현을 쏟아낸다. 여러 매체와 동물원이 그들을 귀여워하도록 만들었다. 귀여움은 어떤 대상에게 쉽게 마음을 붙이게 하지만, 대체로 내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무해한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귀여워하는 어떤 생물의 삶에는 보통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어떤 일과를 보내는지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투구게를 파란 피가 흐르는 묘하고 가여운 동물로 바라 보려 했던 것처럼.
또 다른 당선작 ‘파묻힌 땅’(32쪽)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 작품은 호랑이도롱뇽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전용 터널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그존재를 느끼게 한다. “도롱뇽의 울음소리, 움직임, 굴을 파는 행동은 소리, 바람, 바닥 패턴, 불빛 등으로 재현되고, 인간은 온몸을 동원해 이를 감지한다.” 생물체 공모가 요구한 것은 인간이 아닌 생물체가 살 수 있는 장소, 구조, 사물, 시스템, 프로세스였다. 그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는 것은 ‘파묻힌 땅’이 제시한 것처럼 생물체의 존재를 어떤 이미지도 씌우지 않고 인식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물리적 공간은 낡기 마련이지만, 어딘가에 뿌리를 내린 생각과 인식은 점점 자라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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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주거 단지에 소통과 여유를 선사하는 ‘복층형 티하우스’
안락한 휴게 공간과 전망대를 갖춘 티하우스
주거 단지의 외부 공간은 쾌적한 출퇴근길과 귀갓길을 넘어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공원이자, 이웃 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마을 광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세인환경디자인의 복층형 티하우스는 단지 외부 공간에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을 충족하도록 돕는다. 단순한 그늘 쉼터에서 벗어나 이용객의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고, 계절에 관계없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복층 구조의 티하우스는 안락한 모임 공간과 전망대를 갖추고 있어 작은 카페를 연상케 한다. 1층에는 폴딩 도어를 설치해 개폐가 유연한 환경을 조성했으며, 넓은 6인용 테이블이 있어 노트북 사용이나 소규모 모임에 적합하다. 야외 테이블이 있는 티하우스 왼편에는 온도를 낮추는 미스트가 설치되어 더운 여름철 바깥 활동을 장려한다. 2층에서는 탁 트인 전망을 즐기며 소파에 앉아 한층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족 혹은 이웃과 삼삼오오 모여 소소한 티 타임을 갖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플랫폼이 되길 바랐다. 내구성을 고려해 철골 프레임을 구조재로 사용했으며,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꾀하고자 외벽은 하드 우드, 고밀도 목재 패널, 석재로 마감했다. 향후 여러 유형의 조경 공간에 부합하도록 다양한 모델을 추가로 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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