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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을 이야기하다 ; 용산기지 공원화와 시민
    1. ‘의사결정자’로서의 시민‘시민 참여로 용산을 바꾸자’ 시민단체들이 발족한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를 소개하는 신문기사 헤드라인이다. 용산기지 공원화에 대한 담론이 가시화되면서 ‘시민’, ‘시민참여’ 또한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되고 있다. 용산기지의 성격상 더욱 그러하겠지만, 대표적 공공공간(public space)인 공원, 광장 조성과 관련해서 시민참여가 생태, 전통과 같이 피할 수 없는 가치로 다뤄지는 징후들은 이미 있어왔다. 월드컵 경기 응원이 광장화의 시발점이 되었던 “서울광장” 조성 당시 서울시 웹페이지에는 별도의 토론방이 개설되었었다. “서울숲”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심었고, “청계천”에서는 시민들의 글과 그림이 벽화로 남겨졌다. 공원의 미래상과 이름에 대한 시민 아이디어 공모는 이제 의례적인 것이 되어서 용산기지 공원화에서도 이미 진행되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제시한 의견이나 흔적이 공원 어딘가에 남겨진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2003년 옥수동 한평공원 사업을 진행할 때, 가난한 사람들한테 쌀이나 사주지 이런 데 돈을 쓰냐고 하시던 아주머니가 자신의 딸이 만든 그림타일이 공원 한쪽에 붙여지자 주변에 자랑도 하시고 혹시 타일이 깨지지 않을까 가끔 살피기도 하셨다. 공간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심을 갖게 하는 이러한 장치는 분명 필요하다. 그리고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을 공원 한쪽에 새기거나, 기념식수를 하는 것보다는 따뜻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들은 자못 대다수의 대중적 지지를 얻은 양 보이게 할 수도 있고, 해당 프로젝트에 얽힌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을 가리는 장치로 쓰일 수도 있다. 서울시는 서울광장 조성 당시, 인터넷 토론방과 신문이라는 공론장에서 제기된 시민들의 다양한 타당성 요구(예: 설계공모 당선안의 LCD설치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가? 왜 당선안으로 시공을 하지 않는가?)에 성심성의껏 응대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잔디 광장을 조성해버렸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시민사회와의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청계천을 따라 걸려있던 플랭카드 문구들(예: “준비되지 않은 청계천복원 10만 영세상인 다 죽인다”)에 있던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검토되었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시민참여란 의사결정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은 ‘동원’되는 대상이 아닌 ‘의사결정자’로 대접 받아야 한다. 용산기지 공원화와 ‘시민’이라는 키워드를 엮는데 있어서도 이는 적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시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 선거철 자신들이 바로 서민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 중 누가 서민이냐는 질문만큼 복잡하다. 관(冠), 시장(市場)이 아닌 제3 부문(the third sector)인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크고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해서 시민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의 대표성이나 그들 주장의 타당성 또한 의심되어야 한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정치적 활동이나 특정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목소리만이 의사결정에 강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특정 목소리가 배제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대표적 공공공간인 공원은 결과물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부터 공공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공공성은 익명적 공공성인 아닌 절차적이며 구체적인 공공성이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갖는 시민들이 대화하고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경합(競合)되는 공론장(public sphere)이 필요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1) ‘전면 공원화와 일부 복합개발’을 둘러싼 서울시와 중앙정부와의 갈등, ‘용산기지 주변 초고층 고밀도 개발’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민단체와의 갈등, 공원 성격에 대한 다양한 견해 등 의견차가 이미 드러나고 있는 용산기지 공원화의 경우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김영민의 비유처럼 텔레비전의 “명사와의 대담”같이 특정하게 통제되거나 조작된 대화 상황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자리(sitz-im-leben) 속에서, 삶의 구체적 행위로 이루어지는 복잡다기한 대화는 우연성을 날실로 현장감 있는 순발력을 씨실로 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2) 그래서 ‘어떻게 용산기지 공원화에 대한 대화를, 공론장을 이끌 것인가?’라는 질문 또한 어려운 질문이다. 다소 우회적인 대답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자신의 판단을 기꺼이 변경시킬 수 있는 성찰적(reflective)이고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고 이에 대한 믿음도 필요하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의 견해차를 확인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화3)가 아니라 상호이해와 새로운 의미 형성을 전제로 하는 대화여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 있다.4) 2. 행위자(agent)로서의 시민공론장에서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견해는 시민을 자신의 생활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행위자(agent)로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용산기지 공원을 계획하고 설계하는데 있어, 잠재적 이용자인 시민을 어떻게 볼 것인 가와도 관련된다. 지난 30년간 많은 환경-행태연구(environment-behavior studies) 분야에서는 디자인 특성과 이용 행태와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정량적 정보를 설계가들에게 제공해왔다.5) 하지만 초콜릿 성분을 분석한다고 해서 초콜릿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처럼6), 그러한 연구 결과들이 이용자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간을 상상하고 이용한다거나, 공원의 램프와 계단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이용하는 스케이트보더 등 설계가의 의도가 빗나가는 경우는 흔하다. (김연금·인터조경기술사사무소)(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용산을 이야기하다 ; 문화와 문화적이라는 것
    ‘생태적 혹은 환경친화적’이란 수식이 한동안 조경계를 풍미하더니, 근래 들어 조금씩 ‘공원=문화발전소’, ‘문화친화적인 조경’이란 표현이 들려오고 있다. 공원과 문화를 연결시키려는 이런 시도와 시선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어 보인다. 그 하나는 공원에 문화를 담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공원 내에서 문화 예술 관련 이용행태가 유발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공원 이용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문화 예술 관련 시설을 직접 유치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이 해당된다. 또 거창한 예술 프로그램이 아니라 책 읽는 공원 만들기와 같은 소박한 일상 문화를 꽃피우려는 시도들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다른 하나는 공원을 문화적으로 바라보고, 문화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선들이다. 문화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조성과정이 문화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실체가 모호한 감이 있지만, 이를테면 시민참여에 의한 조성방식 등과 호응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리고 공원을 문화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는 공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시도라는 생각들이 포함된다. 공원이 단순한 여가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예로는, 고립된 녹색 섬이 아닌 도시와 역동적으로 호흡하는 장소로 공원이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을 꼽을 수 있겠다. 아니면, 건축이 엄연히 예술이고 우리네 삶을 담아내는 문화이듯이, 공원 역시 문화예술의 결과물이고 우리의 일상과 호흡하는 문화 공간 혹은 문화적 공간이라는 생각을, 이런 시선의 언저리쯤에 놓아둘 수도 있겠다. 용산기지의 공원화 방향과 관련해서 공원과 문화의 관계를 살펴보면, 결은 조금 다르지만 역시나 두 가지 차원에서 용산기지가 문화와 접점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들을 접할 수 있다. 우선, “민속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을 용산공원 내에 조성해, 미술관과 해양박물관, 천문대 등이 집중되어 있는 시카고의 뮤지엄 캠퍼스처럼 박물관벨트"1)로 만들자는 의견이나, 한참 전의 제안이긴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국립중앙극장, 현대미술관 등을 포함한 문화시설단지” 조성을 테마로 한 연구2)나 “용산 기지의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여 자연사박물관을 건립”하거나 “기존의 녹지공간을 최대한 살리면서 일부 제한적으로 시민체육공원의 조성과 청소년 생태교육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3)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은 모두 용산공원 내에 문화예술과 관련된 직접적인 시설 건립을 통해서, 미래의 용산에 문화를 담아보자는 의견들로 볼 수 있다. 너무 거칠게 정리되어, 각각의 제안들이 담고 있는 세심한 고려사항들이 채 언급되지 못하긴 했지만, 80만평의 일부에 문화예술시설을 건립하자는 의견들이 사회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나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자연사 박물관을 건립하자거나, 입지적 단점으로 인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립극장, 현대미술관 등을 용산공원의 부지에 포함시키자는 의견은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문화생태 혹은 생태문화를 용산에 담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안은,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궤가 다르다. 기존에 들어서 있는 국립중앙박물관등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고려는 하되, 그보다는 “생태적 가치 자체를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긴박한 문화적 과제로 제시”4)해야 한다거나, “도시의 숲 속에서 산책을 통한 생태성과 역사성의 조우를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되며, 이런 점에서 생태공원화는 생태문화의 창조란 의미를 갖게 된다”5)거나, “어떠한 시설도 보류한 채 서울 시민들에게서 사라진 숲 속의 느린 산책의 길을 마련”해서 “우리들의 생각과 산책과 꿈을 잉태하는” 곳이야 말로 문화생태 공간이라는 의견6)은 모두 장차 만들어질 용산공원이 ‘문화적’으로 만들어지고 우리가 잊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로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들이다. 미래의 용산공원이 구체적인 문화 예술 관련 활동이 벌어지는 장으로서 기능하기를 바라는 의견과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1) 손수호, "경복궁은 안녕하신가", 국민일보 2006년 9월 20일자2) 김원, 『문화예술 종합단지(용산 미8군 이전지역) 조성연구』, 문화부 발주, 19923) 서재철, “용산 미군기지 반환에 따른 환경문제 대책”, 『용산 미군기지를 서울 시민의 품으로-용산 미군기지의 반환과 활용 방안 토론회 자료집』, 20034) 홍성태, “군사공간의 생태적 재생과 문화정치-용산 미군기지의 경우”, 『공간과 사회』, 2000년 겨울호5) 조명래, “용산기지의 시민생태공원화 운동”, 『민족예술』, 2000년 6월호6) 정기용, “부엌 속의 미군기지-도시 원형의 생태적 회복을 위하여”, 『ASEM 2000 한국민간단체포럼 문화분과 워크샵, 용산미군기지를 문화생태공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 모색 자료집』, 2000 사실 역사, 문화, 생태, 시민은 동떨어져 홀로 기능할 때보다 서로 어울릴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되는 것들이다. 시민의 적극적 참여 없이 문화 예술과 관련된 이용행태가 일어날 수 없고, 역사를 담는 것은 그 자체가 문화적인 접근이다. 생태와 문화는 문화생태 혹은 생태문화라는 용어에서 엿볼 수 있듯 그 동거가 어색하지 않고, 역사와 시민 역시 가까운 이웃일지언정, 그 거리가 결코 멀지 않다. 생태와 역사는 또 어떤가. 외세 침략의 아픈 역사를 생태계의 천이를 바탕으로 한 자연의 힘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의견이 아주 생뚱맞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게다가 외세에 의해, 인간에 의해 쓰여 온 땅의 역사를 이제는 자연이 쓰는 땅의 역사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또 어떤가 말이다. 그러나 이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유독 도드라질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민 참여는 진행과정과 결정단계에서 중시되어야 할 가치이므로 일단 논외로 할 때, 역사, 문화, 생태 중 특정 가치만이 앞으로의 용산에 부각된다면, 더구나 그 방식이 민족기념관이나 미술관처럼 하드웨어적인 오브제 위주로 강조된다면, 상충은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80만평이라는 적지 않은 면적에 다양한 가치를 채우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여러 의견 중 한 갈래는 하나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전체를 비우기를 원하고 있다. 해법이 아주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이런 와중에 문화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문화’를 상징적 혹은 직설적인 시설로 넣을 것인가, 프로그램으로 넣을 것인가, ‘문화적’으로 은유적인 접근만 할 것인가에 따라 용산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문화가 갖고 있는 다의성이 문제를 쉽게 풀어줄 수도 있으리란 추측은 가능하다. 이 점은 문화가 어려운 점이자 고마운 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문화’와 ‘문화적’ 중에 하나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문화와 문화적은 다르다. 특히나 그것들이 구체적인 공간에 영향을 미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문화’를 ‘문화적’으로 어찌할 것인가?
  • 용산을 이야기하다 ; 용산의 역사적 가치,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용산미군기지’. 아마도 우리나라에 뉴스라는 것이 존재한 이래로 끊임없이 접해온 주제어중 하나가 아닐까싶다. 그만큼 이 땅이 가진 가치와 의미가 상당하기 때문일텐데, 요즘은 이곳을 공원화 하는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아우성들이다. 그 중에 하나가 이곳은 역사적 의미가 많은 곳이므로 새롭게 조성되는 공원에는 반드시 ‘역사’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곳에 담아야 할 ‘역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기록, 연혁, 자취라는 이름의 역사‘역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 자연현상이 변하여 온 자취’라고 나온다. 여기서 ‘기록’, ‘연혁’, ‘자취’라는 단어는 오랜 세월동안 발생한 다양한 사실(事實)들을 사실(史實)화해서 역사라는 흔적으로 남겨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용산미군기지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용산미군기지라는 땅이 가진 기록과 연혁, 자취라고 볼 수 있겠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 땅이 가진 ‘장소성’이라고 표현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대한 활용방안을 두고 고민해 온 것도, 또 공원화가 결정된 지금 조성방법을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도 용산이 가진 장소성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용산이라는 땅의 아픈 기억열강의 사이에 위치한 반도국으로서 외세의 침략을 자주 받아 온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서울의 용산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땅이 아닌 외세의 땅이었다. 고려말 몽골군의 병참기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의 보급기지가 있었으며,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병력이 주둔하기도 했다. 이 후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철도관련시설과 병참군사 지휘소가 세워지면서 군사본거지로 개발된 용산은 해방이후에도 주한미군이 들어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이렇듯 용산이 군사적 요충지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한반도의 중심이면서 한강과 가까울 뿐만 아니라 궁성과도 가까워 군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국 각도에서 거둬들인 조세곡이 모이는 곳으로 군자창과 풍저창, 광흥창 등 관창들이 모여 있어 상업이 발달했던 곳으로 일본이 침략하면서 용산 일대에 산재한 창고와 공장들을 막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이때까지 거의 자연 상태였던 신용산 일대를 주둔기지로 개발하면서 일본의 반도 점거와 대륙진출을 위한 군사·교통의 거점으로 개발했다. 오늘날의 용산이 철도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두 얼굴을 가진 역사그렇다면 아픈 과거의 역사, 그것도 우리 민족의 땅이 아닌 외국세력의 땅이었던 용산의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과연 용산에 관한 역사를 아픔의 역사로만 바라볼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기에 새롭게 쓰여 질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역사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또는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판단 기준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해석이 가능함을 말한다.예를 들어 한글창제의 경우, 역사를 제왕이나 영웅의 업적 중심으로 보는 관점에서 보면 세종의 뛰어난 업적임은 물론 세종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통치자 중 한명으로 평가되지만, 역사 발전에 있어서 민중의 역할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보면 한글창제의 주된 동기가 백성을 불쌍히 여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한데 있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또 조선시대에는 한글이 국문이 아닌 언문에 불과했기에 세종의 여러 업적중 하나로 평가되었지만,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생겨나고 한글이 국문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근대에 이르러서는 세종이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웅으로 평가되었다.이러한 평가는 사건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그렇다면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용산을 바라보는 현시대의 역사적 요구는 무엇일까?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용산을 이야기하다 ; 용산을 이야기하자
    용산 기지의 공원화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토론회도 이례적이다 싶을 만큼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 2006년 9월 5일에는 서울YMCA에서 “용산기지 공원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토론회를 개최했고, 같은 달 7일에는 녹색연합, 문화연대, 환경연합을 비롯한 20여개 단체가 참여한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가 발족식을 열었다. 10월 12일에 열린 136환경포럼 16차 정기모임 토론회는 “용산공원, 이렇게 만듭시다”를 주제로 올렸고, 역시 같은 달 25일에는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가 주최한 “용산기지의 공원화,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11월 2일 창립기념식을 연 환경재단 도시환경연구소의 창립기념 세미나 주제도 “용산 생태공원 조성 및 주변지역 관리방안”이었다. 이런 일련의 토론회와 일간지상에 실리고 있는 의견들은 대략 4가지 정도의 쟁점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는 전면 공원화와 일부 복합개발의 첨예한 대립이다. 복합개발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막대한 이전비용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부분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고, 전면 공원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정부에서 국채발행 등 다른 대안 모색을 꾀하지 않고,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 푸는 식으로 가장 손쉬운 방법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용산기지 주변의 초고층 고밀도 개발의 부작용에 대한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서울시가 용산기지의 전면 공원화를 주장하고는 있지만, 시티파크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지 주변의 고밀도개발을 묵인 내지는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투기 광풍 등의 폐해도 거론되고 있지만, 용산기지 주변의 경관보호를 위해서도 초고층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세 번째는 추진 주체에 대한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냐 서울시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폭넓은 의견 수렴 없이 정부 주도로만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제기이다. 구체적으로 국무조정실 산하의 용산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위원회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한편, 정부 내에서도 건교부 소관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환경부에서 주도권을 맡아야 한다는 일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네 번째 쟁점으로는 공원화의 과정과 방법, 큰 방향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들을 꼽을 수 있다. 누구는 용산기지 일대가 박물관벨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어떤 이는 민족정신을 되살리는 시설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 등 기존의 문화예술공간이 접근성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므로, 용산에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문화예술공간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생태공원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구체적인 생각들은 조금씩 달라 보이기도 한다. 이와 함께 미래세대를 위해 그대로 두자는 의견도 상당하고, 미군들이 사용했던 시설과 수목의 존치를 강력히 주장하는 목소리들도 들린다. 조성과정과 관련해서는, 몇 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말 다양한 마스터플랜들을 검토해보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섣불리 마스터플랜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고 일단은 원칙과 지침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이도 있다. 심지어 지침의 제시도 섣부르고, 토양 오염 정도를 비롯한 면밀한 부지 현황조사가 최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다. 전면 공원화, 주변의 고밀도 개발 억제, 시민참여 방안 마련과 광범위한 여론 수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다. 다행히 용산기지의 공원화는 이제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어, 다양한 전문지식과 열정을 갖고 있는 여러 단체와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보자며 다투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디 좋은 결실이 맺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만, 공원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공원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조경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공공공간인 공원을 다루는 조경가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이즈음이다.일전에 어느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한 발표자는 용산기지의 공원화는 토목업자, 조경업자가 아니라 생태학자가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 하나의 조잡한 조경공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의견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조경이 지금껏 만들어온 공원이 정말 그 정도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수준 이하였거나, 아니면 조경과 조경가의 역량이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 경우여서 그런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 조용히 한국 조경의 성장에만 집중해야겠지만, 만약 두 번째 경우라면 이제는 조경가들이 대외적인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쟁점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특정 의견과 주장을 소극적으로 지지하거나 비판하는데 그치더라도, 최소한 공원화의 과정과 방법, 큰 방향에 대해서만큼은 조경가들이 의견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생명의 숲을 지지한다면 왜 지지하는지, 구체적 선례와 전문지식을 동원해 힘을 실어주기도 해야 할 것이고, 반대한다면 왜 비판적으로 생명의 숲 구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 정부와 서울시,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미처 검토하지 못한 유용한 사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소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공원의 양상이 변해 왔다면, 21세기 한국적 상황에서 우리가 중시해야할 가치는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 공원의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실천적 해법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최소한 현재의 대세로 부각되고 있는 생태공원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명확한 개념에 대한 합의만이라도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하나의 유행처럼 떠돌아다니는 생태가 정말 만병통치약인지 아니면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보기만 하더라도, 그 성과는 작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용산기지 공원화와 관련해서 대체적으로 합의되고 있는 점은 크게 세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남산부터 한강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용산기지가 공원화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땅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지축 조성이라는 대원칙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이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녹지축을 복원할 것인가에 따라 의견이 나뉘기도 한다. 역사성의 존중 방식은 기념시설물 건립이라는 극단적 양상부터 역사성을 감안해 지금의 상태 그대로 두자는 의견까지 다양한 층위로 갈리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시민참여 부분인데, 정부에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용산공원 명칭 및 아이디어 공모와 같은 이벤트성 행사를 통해 시민참여를 유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반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보다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시민 참여방안이 제도적으로 마련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이외에, 스무 개 단체가 모여 만든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의 명칭에서도 엿볼 수 있듯 생태공원에 대한 바람이 가장 큰 것으로 생각되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생태적인 공간으로 조성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생태공원’이 모두 같은 모습인지는 의문이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기대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간섭을 완전 배제하고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생태적 천이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고, 민족 주체성의 의미를 우리의 자연을 통해 구현하는 취지에서 우리 산하에 자생하는 나무와 초화를 이식하자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 새소리 듣고, 개울에 발도 담그고, 호수 옆 잔디밭에 눕기도 하고, 오솔길로 조깅도 해보고 싶은 것이 국민의 뜻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편 용산기지의 공원화 과정이 아주 긴 호흡으로 진행되어,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이 잊고 있는 느림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기존의 미군기지 시설은 적절히 손봐서 문화시설로 재활용하고 거대하고 ‘심심한’ 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나, “용산기지의 모든 바닥을 흙으로 전환시키고 정말로 필요한 나무만을 심은 후 지금부터 한세대 후 즉 30년간 출입금지 구역으로 설정했으면 좋겠다”는 주장, 또 생태적 천이과정을 통해 생명의 숲을 만들자는 이야기들은 모두 ‘금단의 땅’을 미래세대를 위해 ‘유보의 땅’으로 두자는 의견들이다. 그런데 과연 거대도시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80만평 이상의 땅을 그대로 둘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실험적인 도시 프로젝트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의 뜻이 그러한지는 아직은 알지 못한다. 또 80만평이라는 거대한 땅에 대한 스케일감이 없어서 나온 그야말로 이상적인 환상은 아닐까, 고심하게도 된다. 어쨌든 최종 결정은 최대한 유보하더라도 그 결정의 순간까지 우리는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약 몇 십년동안 유예하기로 결정이 되더라도, 지금 우리가 하는 논의들은 미래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최소한 그들의 노력과 수고를 조금은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플랜이 성급하다면 원칙과 지침과 방향만이라도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살피고 도마 위에 올려보자. 만약 기존의 방식대로 발주처의 설계지침 작성과 그에 따른 설계공모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면 결국 지침과 공모방식이 용산의 미래를 상당 부분 좌우할 터이니 이에 대한 논의는 지겹도록 많아도 좋을 것이다. 또 성급한 결정적 태도만 지양하기로 합의가 된다면, 마스터플랜을 이야기한들 무엇이 문제일까. 몇몇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적인 전문가들이 말과 글을 통해 내보이고 있는 구상 역시 하나의 그림에 불과할 수 있다. 어쩌면 그 글들이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견고한 말의 성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 검토도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의 공원처럼 전문가들이 디자인하고 공공기관이 도식적인 조경사업을 하는 식으로 조성되어선 안된다”는 주장도 나와 있는 만큼, 기존의 발주처에 의한 설계공모방식이 아닌 실현가능한 새로운 공원 조성 방식을 모색하고 실험해보는 시도도 필요할 것이다. 용산의 다른 이름은 이제 가능성의 땅이자 기회의 땅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의 터전, 도시와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의 땅!
  • 용산을 이야기하다 ; 용산 공원, 생태의 덫에 걸려들다
    용산 공원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4가지 키워드, 그 안에서 “생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용산미군기지를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를 논의하던 초기만 해도 이 곳이 반드시 공원화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물론 1980년대부터 일부에서는 공원화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들이 존재하기는 했단다. 하지만, 서울 도심에 대규모 공간이 생긴다는데, 이를 둘러싼 많은 이해 관계들이 표출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는 정부도 서울시도 모두 선포식까지 열어대며 공원화를 하겠다는데 불변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공원을 주장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정부와 서울시의 행보가 어딘가 불만스럽다. “전면공원화 할 것인가? 어떤 공원을 만들 것인가?”를 둘러싸고, 정부, 서울시, 시민단체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은 정치적 쟁점이기도 하다.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문화연대,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들은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를 발족하고, 다음과 같이 정부에 촉구하였다. 1. 용산기지는 점진적인 생태공간화가 진행되어야 한다.2. 용산공원 특별법 제정은 철회되어야 한다.3. 용산기지는 온전하게 전면 공원화되어야 한다.4. 용산기지는 기념공원이나 시설공원이 아닌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야 한다.5. 정부는 용산기지 내에 잔류하거나 새롭게 조성될 미국과 국방부의 시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6. 용산기지 주변지역은 경관 보호와 접근성 향상을 목적으로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7. ‘용산 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위원회’는 재구성되어야 한다. 애초에 “공원화” 자체가 논란이었듯, 지금 “생태”라는 키워드를 꺼내드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다. 조경가들 중에도 생태공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일부 조경가나 행정가들은 시민단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만큼이나 “생태”가 부담스러운 주제이기 때문이다.과연 생태를 앞에 두고 윈-윈의 전략은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되어 버린 용산공원과 생태를 검색해 본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조경단체장 신년사 ; 근하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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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단체장 신년사 ; 조경분야의 발전과 업계 발전의 구심점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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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단체장 신년사 ; 2007, 멋진 화합의 장, 다양한 교류의 장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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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의 조경인 ; 학술분야 -안동만 서울대학교 교수
    안 동 만 ·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세계조경가협회 부회장(아시아·태평양 지역) "한국 조경대표로 IFLA와 ASLA 등 대외 행사에 참가하며 다양한 국가와의 친분 및 교류 확대,세계조경가협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인 큰 성과" 국제화. 매체의 발달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는 국경을 넘어서는 국제화의 바람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듯 하다(물론 다분히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그러한 분위기 속에 국내 스타들이 아시아를 비롯한 각지에서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고, 국내 영화가 해외로 수출되어 리메이크되기도 하며, 김치라는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도 다이어트, 사스 예방 등 재미있는 꼬리표를 달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국제화 시대의 한류바람에 조경분야도 박자를 맞추어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세계 조경분야에 일게 될 한류 열풍에 대한 희망적인 상상을 한다면, 그 근저에 그저 묵묵히, 그리고 아주 차근차근 신중하게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주역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학술분야의 제9회 올해의 조경인으로 선정된 안동만 교수이다.다시 ‘KOREA’를 주목하다세계 조경가들은 한국에 대해 상당히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난 1992년에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조경가협회(이하 IFLA*) 세계대회를 기억하고 있는 조경가들이 많을 뿐 아니라, 그 대회는 지금까지도 무척 성대하게 치뤄졌던 것으로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세계대회의 유치는 국내 조경분야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화의 물꼬를 터 발전을 다소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1991년 콜럼비아 Bogoda 대회에서 오휘영 원장(당시 한양대학교 환경과학대학원장, 본지 발행인)이 IFLA 부회장(동부지역)으로 선출되면서 한국 조경분야의 존재를 알렸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세계 조경분야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단체가 IFLA이고 IFLA 부회장이라는 직책 역시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IFLA 부회장 선출, 그리고 세계대회 개최. 그렇게 세계 조경분야에 두각을 보인 한국의 조경은 이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안동만 교수가 IFLA 부회장(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선출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고, 그 역할에 대한 많은 조경인들의 기대와 응원이 모아진 듯 자연스레 학술분야 ‘올해의 조경인’ 선정으로 이어졌다.국제화 시대에 세계 조경분야에 한국조경의 대외적인 위상을 한껏 높인 성과에, 역할의 비중을 고려해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응원이 더해진 것이라면 추천 및 선정사유에 더 이상 추가할 말이 무색하지 않을까.“국가대표로 파견해 주시고 지원을 해주신 한국조경학회를 비롯한 많은 조경인 여러분들의 덕택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입니다만 한국 조경분야의 국제적 성과라고도 생각합니다.”많은 조경인들의 지원 덕분이라지만 실제로 안동만 교수는 지난 2000년부터 한국대표로서 IFLA와 ASLA 등 국제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대외 협력분야에 자신의 열정을 아낌없이 쏟았다. 각국 대표들은 물론, 행사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국가의 조경가들과 친분관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IFLA 동부지역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서도 2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재선될 정도로 자신의 역할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런 그의 열정과 능력이 인정을 받아 IFLA 부회장으로서 동부지역을 맡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세계 조경분야에 한류열풍을 바란다 “IFLA 세계대회(관련 세미나 등)는 조경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연구발표와 작품 소개 등을 통해 최신 연구동향은 물론 디자인 트렌드를 비롯한 해외 조경분야의 최신 경향을 직접 접할 수 있는 무척 좋은 기회입니다. 어떤 분야의 조경인이 참관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분야의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해외의 많은 조경가들이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IFLA 행사등에 참가하고 발표나 대화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는 안동만 교수는 국내 조경분야의 발전을 위해 학계를 비롯한, 업계, 관계에 종사하는 많은 조경인들이 IFLA에 관심을 갖고 제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해 많은 정보들을 취득하고 해외의 조경가들과 교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한국 조경분야를 알려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뿐 아니라 해외의 현황이나 수준 등을 직접 느끼게 되고, 선례들은 국내 조경가들의 자질을 더욱 향상시키고 조경산업을 성장·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조경설계 회사들의 참여를 독려해 IFLA 동부지역 작품상 등을 통해 국내 조경작품들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크게 일조하기도 했다.“국제화에 발맞추어 IFLA를 통해(물론 어떤 방법으로든 알려내면 좋겠지만 가장 쉬운 경로가 IFLA라고 생각한단다) 훌륭한 작품들과 한국조경의 성과 등을 알려, 가깝게는 동남아시아 각국에, 크게는 전 세계적으로 국내 조경산업(연구진, 설계자, 시공자 등)이 활발히 진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IFLA 부회장으로서 해야할 많은 일이 있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상기하는 것은 국내 조경분야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바로 이러한 조경분야에 대한 애착이 안동만 교수의 열정을 늦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조경인 ; 산업분야 -이용훈 제13대 (사)한국조경사회장
    이 용 훈 · (주)그룹21 대표, 제13대 (사)한국조경사회장 "다양한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한국조경사회의 구심점 강화,직제논란에 진취적인 입장 제출로 조경직 신설에 대한 분야의 여론 선도"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올해의 조경인상 산업분야에 선정된 (사)한국조경사회 이용훈 회장은 ‘송구하다’는 짧은 말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조경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많은 선배들을 두고, 먼저 상을 타게 된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오히려 다른 분들의 업적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모습이다.이용훈 회장((주)그룹21 대표)은 조경학과 75학번 출신으로, 1981년에 한국 조경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한국종합조경(주)’에 입사하여 1990년 3월까지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 기회로 조경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던 쟁쟁한 선배들과 조우할 수 있었고, 그들의 좋은 점을 벤치마킹할 수 있었다. 1996년 (주)그룹21을 창립하여 지난 10년 동안 조경회사를 유지해 온 뚝심도 조경에 대한 애착과 선배 조경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한다. 무엇보다 제13대 (사)한국조경사회장을 맡으며 조경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ASLA 버금가는 한국조경사회를 향해이용훈 회장은 조경학과 출신으로는 최초의 조경사회장이라는 기록을 가진다. 그래서 조경인들의 기대가 남다른 점이 있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이렇게 크게 성장한 산업분야는 없을 겁니다. 모두가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선배 조경인들 덕분입니다. 비록 그분들은 학부에서 조경학을 전공하신 분들은 아니지만 조경학과가 생기기 전부터 조경을 가꾸어 오신 우리들의 역사이죠. 우리는 그 성과를 이어받아 더욱 조경의 정체성을 굳게 해 나갈 임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조경학과가 창설된 지 33년이 지나면서 조경학과 일세대들이 리더로서의 역할을 요구 받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의 공식적인 첫 장을 그가 열게 된 것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조경은 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 이하 ASLA)를 중심으로 태동하고 성장하였습니다. 학교 보다는 실무에서 분야를 리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ASLA는 우리에게 많은 모범이 됩니다. 그러나, 대학의 조경학과 규모나 조경분야의 설계나 기술 수준을 보면 한국도 멀지 않은 미래에는 미국의 조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조경사회 사업의 양적인 팽창은 향후 10년 후 세계적인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습니다. ASLA에 버금가는 KSLA(Kore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가 되길 바라며, 그러기 위해 한국조경사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약 1만 5천명의 조경기술자들이 있는데, 학회와 사회를 구심점으로 좀더 단결된 모습을 가졌으면 합니다.”1985년 일본에서 열렸던 제25차 세계조경가협회(IFLA) 총회는 그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당시 회사에서 선정한 참가단에 포함되지 못하고 휴가와 자비를 내어서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세계조경가들의 움직임을 보며 배울 점이 많았단다. 1991년 중국 연변에서 열렸던 한민족 과학기술자대회도 참가단 중 갑자기 생긴 결원을 채우겠다고 매달려서 힘들게 다녀왔는데, 중국과 수교를 하기도 전에 북한학자와 만나게 된 것이 기억에 남으며, 이런 국제적인 행사들을 통해 국제적 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함을 강하게 느꼈다. 한국조경이 더 높은 이상을 지향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그의 긍정적인 자신감과 강한 추진력은 지난 임기동안 이루어진 한국조경사회의 다양한 사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년전 취임당시의 공약은 양적인 면에서만 보아도 매우 의욕적이다. 사실 공약을 모두 추진한다는 것이 버거워보일 정도였다.“지속적인 사업들은 계승하고, 단절된 것이 있다면 다시 부활하고, 조경을 새롭게 하는 사업들을 만들고, 이러한 틀을 만드는 것이 현시기 조경사회의 역할이라고 보았습니다. 조경학회는 한국조경을 일으킨 구심점이었지만, 아직 조경사회는 좀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10년의 목표는 세워야 세계적인 조직의 위상이 세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확고한 기틀을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무엇보다 회원들의 관심과 참여가 밑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조경인 체육대회의 규모가 대폭적으로 확대된 것이 가시적인 사례이다. 대중적인 행사에 회원들의 참여를 강화하는 것이 강한 조직력의 바탕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체육대회에 있어 참가율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체육대회의 참가대상이 관과 공사로 확대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였다. 하반기에는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시설물설치공사업협의회(회장 김활현),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회(위원장 이대성)와 함께 조경기술세미나 및 조경인 송년의 밤을 열어 조경인들이 한자리에서 한해를 정리하는 기회를 마련하여 친목과 단결을 도모하였다.학술, 기술, 정보 교류의 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엿보인다. 지난 2005년에 이루어진 서울숲과 청계천, 올해 용인동백지구와 인천 송도신도시 시공현장 답사는 학생 뿐아니라 실무의 조경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애초 공지된 정원의 두배를 초과하는 등 대단한 열의를 보였다. 그간 시공현장 답사가 부족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조경학회에서 개최하는 여름조경학교만으로 부족한 자리를 조경사회에서는 겨울조경학교를 새롭게 개최하여 채우기도 했다. 겨울조경학교는 조경산업 분야의 교류확대와 조경분야에 현안이 되는 내용들에 대한 실무 재교육을 취지로 이루어졌다. 기관지의 정기적인 발행도 눈에 띈다. 조경사회의 기관지는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고, 예전에 발간되다가 잠시 맥이 끊긴 것을 복간시킨 것으로, 회원 및 업계소식을 전달하고 조경사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홈페이지도 새단장을 하여 온·오프라인 양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높였다. 한국조경사회의 기술지인 KSLA의 창간을 통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설계 프로젝트 및 업계의 기술적 동향과 현주소를 담았다. 대한민국 조경설계대전 개최 및 작품집 발간으로 조경설계사무실의 대표적인 작품들의 전시를 통해 조경인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한자리에서 엿보는 기회를 가졌으며, 그 외 발주기관 좌담회, 한국 해비타트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봉사활동, 조경공사 설계 및 적산기준서 작성, 해외 조경사례지 답사, 해외 전시회 및 국제 세미나 참가 등 다양한 사업들이 이루어졌다. 공무원 조경직제 신설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 수행2006년 올 한해 조경인들을 기쁘게 했던 소식 중 하나는 공무원 조경직제의 신설이 현실화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중앙직 공무원에 시설직렬의 시설조경직류와 임업직렬의 산림조경직류가 신설되고, 지방직에 있어서는 중앙직과 달리 시설조경직류가 제외되고 기존 임업직렬의 명칭을 녹지직렬로 변경하여 조경직류를 신설하는 안으로 입법예고된 상태이다.이를 위해 노력한 관계와 학계의 많은 조경인들이 있는데, 조경단체 중에서는 조경사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초창기 임업직 공무원들의 반발에 대해 조경분야의 조직적인 대응이 미온적인 상황에서, 가장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입장을 제출했던 것이 바로 조경사회였다. “현재 조경관련 단체들과 임업직의 대화를 통해 공무원 조경직 신설이 확정되었습니다. 비록 지방직에서는 시설조경직류가 제외되었지만, 이 부분은 지속적인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으며, 일단 후배 조경학도들이 조경직으로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앞으로 조경직이 더 많이 채용되도록 지자체를 대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용훈 회장은 조경인들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매사에 열정과 적극적인 사고를 가져주길 당부했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조경인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환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당장 힘들다고 조경을 떠나지 말고 모두 노력해서 조경분야를 좋은 환경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으며, 현재 조경분야의 지속적인 성장을 감안하면 앞으로는 더 좋은 미래가 올것이라며 분발을 부탁했다.“조경이라는 두글자를 당당하게 내세우길 바랍니다. 우리의 이름은 조경이며, 조경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책임입니다.”‘조경’이라는 이름이 전혀 굴레가 되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이 되는 날을 꿈꾸는 그에게 이번 수상이 좋은 격려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