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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흥수목원 Suwon Arboretum Yeongheung
    수원시는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에 따라 도시공원에서 해제될 위기에 처한 영흥숲공원을 ‘친환경적 도심 내 수목원형 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공모 지침으로 요구했다. 공원과 수목원의 차이 공원과 수목원은 식물을 심어 아름다운 공간을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자 복지의 일환으로 만든 곳이고, 수목원은 관찰이나 연구의 목적으로 여러 가지 나무를 수집해 재배하는 시설이다. 두 공간은 조성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수목원은 심겨지는 모든 식물을 기록해 관리할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도 종 보존을 해야 하는 귀한 식물이 있는 만큼 일정 수준의 보안이 요구된다. 유지·관리비가 많이 드는 시설이기에 무료가 아닌 과금 시설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 수목원을 영흥숲공원에 어떻게 대입할 것인가 대상지는 산지형으로 주변이 개발되면서 조금씩 깎여 나가 도심 중앙에 산으로 남겨진 땅이다. 도시 안에서 만나기 힘든 숲이며,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학교가는 길이었던 곳이다. 이런 곳을 수목원으로 만들어 입장료를 지불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줄 것이다. 식물 전시 이용자들이 소정원을 통해 아름다운 경관을 느낀 후 나무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아름답고 값비싼 나무들로 된 전시장을 지양하고, 공간이 주는 분위기를 체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이용자들이 어렵지 않게 꽃과 나무를 접하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런 경험으로 환경이 가진 가치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완만한 논밭은 너른 잔디마당과 초화류 중심의 주제원으로 구성했다. 개장하면 바로 감상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가든으로 만들었다. 이곳을 둘러싼 숲은 향후 영흥수목원을 대표할 만한 수목들을 모으고 성장시켜 십 년, 이십 년 뒤를 기약하는 숲이 될 것이다. 생태숲(동숲)과 전시숲(서숲) 남겨진 숲은 밖에서 볼 때와 달리 고사목과 도복목이 많았고 아까시나무가 우점한 숲이었다. 도시생태학연구센터(HUNECO)가 조사한 결과, 장기 계획에 의한 적극적 수종 갱신이 필요한 상태였다. 서숲은 부분적 간벌을 통해 수목원의 컬렉션을 만드는 숲으로, 동숲은 관리를 통해 중부온대림을 보여주면서 하부에는 희귀 초화, 자생 식물을 전시한 숲으로 구성했다. 띄운 데크와 벽체를 활용해 경사도 8% 이하의 길을 구성해 숲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도록 했다. ‘물의 수목원’ 온실 온실은 물과 맞닿아 있고 5m의 레벨차를 지닌 언덕 위에 배치했다. 온실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지형차를 활용한 동선을 통해 길게 관람할 수 있다. 지하에는 화장실과 사무실 등 부대시설이 위치한다. 수원은 매홀買忽(물골)이라 불리다 수원이란 이름으로 정착됐다.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 온실에 여러 물웅덩이를 만들고 연꽃과 수련을 식재했다. 글 김영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조경 설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안계동, 김영아, 안원영, 강인화, 백충석, 홍진아, 정세미, 김평주, 최광재, 김혜빈, 한창수, 황동석, 김황순, 박소연, 김영찬, 최이숙, 류승주) 방문자센터, 온실 건축 설계 건축사사무소101(한준일, 박혁준, 김병채) 지원 산내식물원, 도시생태학연구센터, 가림환경개발 위치 수원특례시 영통구 영통동 20-1 면적 146,093.83m2 개장 2023. 4. 사진 이근호,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는 땅이 가지고 있는 힘을 충실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과도한 수사적인 디자인을 경계하고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삶을 담아내는 설계를 지향한다. 더 나은 삶의 문화를 이끄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 프리덤 광장 Freedom Square
    프리덤 광장 리뉴얼 설계공모 2016년 파네베지스(Panevėžys) 시의회는 도심의 핵심 광장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기로 결정했다. 주요 목표는 시민들이 야외 활동에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 광장의 여건은 21세기 유럽 도시의 역동적 비전을 수행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었다. 발티카(Baltica) 철도로의 접근성이 높은 광장은 풍부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강력한 지역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지닌 곳이었다. 시의회는 파네베지스 프리덤 광장 리뉴얼 설계공모를준비하며 연구와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응답자의 3분의 2가량은 광장을 그냥 지나쳐가거나 3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만 머무르다 떠난다고 답했다. 시민들은 광장의 중심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광장 주변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는 것을 더 선호했다. 많은 응답자가 기존 광장도 만족스럽지만 몇몇 종류의 인프라를 개선하면 훨씬 더 좋은 광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 목표 연구와 조사 결과를 통해 설계 목표를 도출했다. 광장의 형태를 과도하게 변화시키지 않는 섬세한 재설계를 통해 넓은 공공 공간, 오래된 나무들, 기능적인 보행자 동선 등 장점과 잠재력을 극대화해 주민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작은 섬 역사가 깊고 기능에 충실한 광장의 형태를 변경하지않고 현대적이고 발랄한 디자인, 조명, 천연 소재를 통해 개선 작업을 진행했다. 기존 광장은 주변부에 상업 기능이 밀집되어 있었고, 중심부는 이벤트 공간, 도시공원 구역, 공공 주차장―현재는 시의회 행사 장소로 사용 중―으로 나뉘었다. 그중 넓은 중심부를 작은 섬으로 분할하고, 섬마다 각기 다른 구체적인 기능을 부여해 공간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어린이 놀이터, 차분한 분위기에서 휴식할 수 있는 식물 섬, 섬과 섬 사이에 마련한 개인적인 공간이 그 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글 501 architects Lead Architect 501 architects(Martynas Norvila, KęstutisKasperavičius, Mindaugas Karanevskis, Laura Gaižutytė, Austėja Balčiūnaitė) Project Management Mutuus Landscape Design Consultant AOE Lozuraitis Lighting Design Consultant Korgas Civil Engineering Via Projecta Structural Engineering Projektuok.lt Manufacturer iGuzzini Location Panevėžys, Lithuania Area 8ha Completion 2021 Photograph Norbert Tukaj 501 아키텍츠(501 architects)는 맥락에 입각한 설계를 하는 도시계획가와 건축가로 구성된 그룹이다. 파네베지스 프리덤 광장 리뉴얼 설계공모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공공 공간 설계에 적극 참여하며 조경, 주거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엔지니어링과 시공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
    • 501 architects
  • 나투르크라프트 Naturkraft
    새로운 자연을 담은 감각적 멀티버스 덴마크 서해안에 위치한 작은 도시 링쾨빙(Ringkøbing)에들어선 나투르크라프트(Naturkraft)는 새로운 형식의 탐험관이자 자연 체험 공간이다. 50에이커 규모의 새로운 자연과 건물에서 사람들은 자연이 지닌 물리적이고 미학적인 힘을 경험하고, 미래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살필 수 있다. 핵심 공간은 새로운 자연이다. 이곳에서 신체 놀이, 학습 활동,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공간을 통해 자연의 힘을 깨달을 수 있다. 지역 고유의 지질 다양성, 자연, 문화사에 대한 종합적 연구를 바탕으로 서부 유틀란트(Jutland)의 기존 자연 경관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17km 길이의 ‘단면’을 조성했다. 이 단면을 토대로 사구, 황야, 습지, 탄소 숲 등 여덟 가지의 자연 유형을 인간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생태계와 결합했다. 그 결과 다양한 유형의 자연이 집약적이고 초감각적으로 병치되는 풍경이 완성됐다. 이는 자연이 우리 생활과 사회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 기반 도시와 미래 사회를 위한 모델 생명과 삶의 기반으로서의 자연은 나투르크라프트를경험하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 원리다. 자연의 물리적 현상과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 인지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설계를 진행했다. 인간이 경험하고 사용하며 느끼는 가시적인 자연의 힘뿐 아니라 자연의 미학적 가치를 자연현상을 통해 일깨워주고자 했다. 궁극적으로는 자연적인 과정을 활용하는 것이 미래 도시와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배우고 함께 살아가야 함을 깨닫기를 바랐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글 SLA Lead Landscape Architect(New Nature) SLA Architect(Building, Arena and Experiences) Thøgersen&Stouby Architect Hune & Elkjær Engineers NIRAS, Fuldendt Contractor Hansen & Larsen Client Naturkraft Foundation Supported Financially by A.P. Møller Foundation, Ringkøbing-Skjern Municipality, Realdania, Augustinus Foundation, Vestas, Villum Foundation, Færch Foundation, Tryg Foundation, Velux Foundation, ErhvervsVækst Ringkøbing, Beckett-Foundation, Krogager Foundation, Hedeselskabet. Location Ringkøbing, Denmark Area Site: 50ac Nature Area: 5ac Completion 2020. 6. Photograph Naturkraft, SLA, Thøgersen&Stouby, Torben Petersen SLA는 자연을 기반으로 한 조경, 지속가능한 도시 디자인, 도시계획을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설립되어 지난 30년간 여러 공공 공간과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공원과 광장에서부터 도시 전역에 걸친 마스터플랜, 국가 단위의 생물다양성 전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다룬다. 현재 유럽, 북미, 아시아, 중동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SLA
  • 힐스테이트 과천중앙 HILLSTATE Gwacheon Jungang
    힐스테이트 과천중앙은 과천시 중앙동 38번지 일대에 있으며, 과천 시청·경찰서·정부청사, 정부과천청사역과 인접한다. 도심 속에 위치하면서 관악산과 매봉산의 자연을 바라볼 수 있다는 특징에 착안해 도심의 화려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내는 야외 미술관 개념으로 접근했다. 갤러리 스퀘어 주출입구에 위치한 갤러리 스퀘어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미술 장식품이 있는 야외 미술관 개념으로 설계한 공간이다. 은행나무가 있는 관문로와 연결되는 열린 공간으로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동선을 유도했다. 중심부에는 특색 있는 경관을 조성하고자 조형 소나무와 미술 장식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수목을 식재해 아름다움을 더했다. 청량감을 줄 수 있는 수공간을 배치하고, 조형미를 느낄 수 있는 퍼걸러와 통석 벤치를 두어 편안한 휴식과 볼거리가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피크닉 가든 피크닉 가든은 풍성한 녹음 아래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야외 휴게 공간으로 중국단풍이 가로수인 교동길과 이어진다. 상록수인 소나무 위주로 식재해 낙엽수 중심이었던 기존 녹지 공간과 대비되는 늘 푸르른 공간으로 계획했다. 노란 색감의 부정형 판석으로 포장한 산책로는 자연스러우면서 온화한 느낌을 선사한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미술 장식품과 야외 테이블을 만날 수 있고, 아기자기한 데크 공간을 나무와 꽃 사이에 배치해 일상에서의 여유로움과 머무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글 한규식 씨엔케이 설계팀 소장 조경 설계 씨엔케이 건설 현대건설 시공 조경사엔앤씨 위치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38번지 대지 면적 9,480.18m2 조경 면적 1,537.72m2 완공 2022. 11. 사진 현대건설 씨엔케이(CnK)는 2003년 설립된 조경설계사무소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가치를 추구하며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젊은 시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공원, 공동 주택, 공공시설, 쇼핑몰, 테마 거리, 정원 등 조경과 환경 디자인이 필요한 분야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 씨엔케이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스튜디오테라 시대 골목에서 조경으로 시대를 고민하는 디자인 구멍가게
    오피스 철학 S는 묵음입니다 명함 뒷면의 로고를 보고 “스튜디오스 테라군요”라며 인사하는 사람에게 대답한다. 마치 영어 발음을 잘못한 사람처럼 멋쩍어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테라 맥주가 나왔을 때 이제부터 폭탄주에는 무조건 테라라며 사람들은 장난을 건넸다. 흙, 땅, 대지, 나아가 지구를 의미하는 라틴어 테라(terra)는 대지의 여신이자 10의 12제곱(1조)이며, 온라인 게임의 이름이기도 하고 문제가 된 가상화폐 이름이기도 하다. 각양각색의 테라를 만날 때마다 2010년에 테라를 선점한 우리는 시대정신을 너무 앞서 간 게 아닐까 웃기도 한다. 스튜디오테라 는 조경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공유하는 느슨한 네트워크다. 스튜디오테라가 지향하는 바는 이름에 암호처럼 코딩되어 있다. 조경계의 새로운 종(species)이 되길 바라는 바람으로 학명을 닮은 이름을 지었고, 스튜디오가 뿌리 내린 동네와 대학의 약자(UOS)가 숨어있으며, 여느 생명체처럼 성장과 세포 분열을 통해 분화한 복수(plural)의 스튜디오 연합체(studios)를 추구한다. 그리고 땅에서 시작하고 땅으로 회귀하는 풍경의 근원인 대지terra의 총체성과 복합성, 근원성과 수평성을 추구한다. 설계적 연구 집단인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 리서치 스튜디오, 연구적 설계 실무 집단인 디자인 스튜디오, 그리고 아직 테스트 단계지만 만들고 실험하는 필드 스튜디오가 현재의 단위 스튜디오이며, 끈끈한 이웃 회사인 MDL(대표 송민원)과 시대조경이라는 공간 플랫폼을 함께 쓴다. 동네 어귀마다 터줏대감처럼 자리하던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편의점이 들어선 지 오래다. 작지만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구멍가게는 마을의 가장 중요한 공공 공간이자 사교의 장이었고, 가게 주인은 동네의 모든 정보를 꿰고 있는 거간꾼이자 감시자기도 하다. 우리는 작은 오피스다. 몸집이 크지 않지만 큰일을 하기 위해 연합한다. 시(립)대 옆 주택가 골목 귀퉁이라 동네 아주머니들의 잔소리는 익숙해져야 한다. 쪽문을 빠져 나온 학생들이 맘 편히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낮게 자리 잡았다. 연구와 실무의 복합적 탐구와 작업 방식의 결과로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세 가지 주제를 소개한다. 놀이를 탐색하다 우리가 만드는 수많은 공간의 본질은 놀이에 닿아있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놀이의 속성처럼 놀이는 노동과 공부, 목표를 좇는 숨 가쁜 삶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발적이며 창의적인 재충전과 즐거움의 활동이다. 놀이를 담는 공간인 놀이터 디자인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놀이의 핵심은 어린이의 눈으로 간파할 수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일련의 작업, 그리고 연세대학교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과의 협업은 이 단순한 질문을 무한대의 탐색으로 확장하였다. 갈수록 놀이 기구는 화려하고 다양해지며 각종 인증 기준으로 안전 문제와 위생이 개선되었지만 어린이와 야외 놀이 환경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인 철학과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놀이터는 빈 그릇 같아야 한다. 물론 재미있는 그릇이어야 한다. 비어야 채울 수 있다. 어린이가 스스로 상상하고 변형시키며 채우는 그릇, 즉 공간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는 놀이터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며 이론적인 목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일은 놀이의 인프라, 혹은 놀이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소우주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 시절 바깥에서 놀았던 경험은 자연에 대한 원천의 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지구와 세계에 대한 근원적 태도를 만드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그래서 놀이터를 만드는 일은 미래의 과거를 만드는 일, 그리고 어른의 바탕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초저출생 사회에서 수가 줄어든 아동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중요 사안이며 놀이는 아동의 발달과 행복의 핵심 요소다. 어린이놀이터는 공평한 생애 첫출발을 위한 그들만의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개별 놀이터 디자인에 진심인 동시에 누구나 동등하게 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놀이 정책에도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주거를 탐구하다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집이라는 가장 원초적 공간을 개인 주택정원과 공동주택 외부 공간이라는 두 가지 틀 속에서 탐구해왔다. 주택정원은 주인의 자연관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니 그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가 설계한 첫 번째 집은 자연이 가지는 생명력과 파괴력을 절제된 방식으로 구현하길 바랐다. 두 번째 집은 어린 시절 엄마가 가꾸던 꽃밭을 닮고 싶어 했다. 세 번째 집은 유년기에 누워서 바라보던 비행기가 상징하는 여행을 다룬다. 네 번째 집은 풍경을 큐레이팅하는 컬렉터의 시선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주택정원은 한 사람이 자연을 경험하고 사유해온 삶의 여정을 공간과 식물로 각색하고 그를 위한 헤테로토피아를 만드는 일이다. 아파트는 더 어렵다. 공간을 공유하지만 그들의 욕구는 균질하지 않다. 옆 단지보다 더 나은, 적어도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입주민들의 집에 대한 욕망은 아파트 조경을 공식처럼 만들었다. ‘해마다 리뉴얼되는 상품’이 된 공동주택의 조경 트렌드 속에, 잊거나 잃어가는 자연 본연의 모습이 아파트에 구현하는 게 과연 불가능한지 반문한다. 몇 차례 아파트 조경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컨설팅 연구를 수행하며 한국 아파트 조경의 근본적인 문제와 새로운 지향점을 고민해왔다. 한국의 대표 주거 유형인 아파트가 변하면 주변의 풍경이 바뀔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만들어진 삼성 래미안 갤러리에 자연이 가진 근원성(origin)과 래미안 조경의 고유성(origin)을 담는 ‘오리지널 네이처(The Original Nature)’를 제안했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 삶이 돋보이는 조경을 구현하려는 네이처 갤러리에 미세 지형과 물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미기후와 환경적 요인을 분석하여 군락 식재 모델과 건강한 생장을 위한 식재 밀도를 제안했다. 관망하는 외관이 아닌 작동하는 외관(performative appearance)은 우리가 지향하는 원칙 중 하나다. 원 서식처의 군락 구조와 수종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숲과 계곡을 찾았고 경관적·기능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자생종과 원예종을 섞어 생육 환경에 따라 연출하였다. 도면 작업으로 경관과 서식처의 구역을 정하고 건물과 나무에 의한 음영, 빗물과 식재 기반에 따른 흙의 습기까지, 예상되는 땅의 환경을 고려해 후보 종을 선택하고 자세한 연출은 현장에서 진행했다. MDL과 함께 진행한 네이처 갤러리는 이후 스튜디오테라 초창기 멤버이자 제주도에서 식물 전문가로 거듭난 연수당의 신준호 대표가 합류해 발주처, 시공사와 한 팀으로 완성했다. 예술을 탐하다 우리는 조경 작업에 내재한 가치와 비전을 대중적인 언어와 예술적 표현으로 전달하려는 설치 작업을 병행해왔다. 이러한 설치 작업의 가장 큰 장점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재단되지 않은 작가의 개념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독립적이며 실험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십여 차례에 걸쳐 미술관의 안과 밖에서 설치물을 만들거나 전시회를 기획하여 개최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고 바깥에서는 잘 쓰지 않은 재료와 공법을 공부한다. 이 과정을 통해 조경의 예술적 측면, 즉 자연이 가지는 시학과 감동을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탐구해 왔다.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지금, 다양한 정책적, 전문가적 해결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이런 해결책들은 행정가,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바뀌어야 비로소 이러한 정책들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일상에서 자연을 더 잘 이해하고 자연에서 감동을 받고, 그래서 나와 자연을 이어주는 계기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조경이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자연이 가지는 본연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일 혹은 자연을 예술적으로 체험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서서히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경과 예술은 지구를 살리는 실천으로 만날 수 있고, 그 실천에 우리는 동참하고 있다. 우리의 낙선 다이어리 생각의 원석들 설계안은 자식 같아서 못나도 가장 예뻐 보이는 법이다. 참 많은 설계공모에서 떨어졌다. 당선됐지만 폐기된 설계안도 꽤 된다. 낙선은 우울함과 좌절감을 주지만 설계공모를 준비하면서 벼리는 디자인적 고민의 날은 무뎌질 뻔한 감각과 생각을 자극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 떨어졌을 뿐 실패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지만, 꽤 두꺼워진 낙선 다이어리 속의 생각과 스케치들은 현실에 희석되지 않아 오히려 더 또렷한 힘을 가진다. 스케치와 파일로만 남아 있는 낙선작을 가끔 부여잡고 성찰하는 이유는 뒤끝이 아닌 그 안에 매장된 생각의 원석들을 언젠가 다시 채굴할 날이 올 거라는 소소한 바람 때문일 것이다. 광주공원 심사위원과 시민들의 투표로 당선안을 선정한 소위 ‘나는 가수다’식 지명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광주공원(2011)은 예산과 행정의 이유로 건축물만 지어졌지만, 우리는 시민회관이라는 건축적 자산이 공원으로 확장되고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유산과 시민의 힘이 공원의 정체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신했다. 춘천 시민공원 춘천 시민공원(구 캠프 페이지) 설계공모(2020) 때는 이미 사라진 미군기지의 흔적을 시민들의 공간 점유와 전유를 통한 자발적 해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공원문화의 최전선, 파키비움 춘천’을 제안한 ‘기록 장치로서의 공원(Parkiveum)’은 살아있는 유산 만들기로서 우리가 공원을 바라보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배곧신도시 배곧신도시 공원 설계공모(2012)는 기수역이라는 역동적 생태계와 도시의 질서가 공존할 수 있는 대안적 방식을 고민한 기회였다. 옛 염전의 기하학적 질서는 새로운 생태계가 태어나는 모눈종이 역할을 하며 도시와 바다의 경계(Urban Ecotone)에서 재구성된다. 만리동공원 공공미술 서울로 7017 초입 만리동 공원의 공공미술 작품 지명 설계공모(2016)에서는 전쟁 후 서울역을 매일 바라보며 가족을 기다리던 피난민들의 동네라는 만리동의 의미와 현대 도시의 새로운 아이코닉 장소 만들기에 집중했다. 약속을 의미하는 반지 모양의 구조물을 통해서 공공 미술의 기능을 하는 도시 정원을 제안했다. 테라의 어제와 오늘 테라 동창회의 월간테라 어떤 방식이든, 얼마만큼 머물렀든 스튜디오테라를 거쳐 간 많은 사람이 하나씩 쌓아 올린 돌담이 지금의 우리를 정의한다. 10년을 넘기는 어느 해 테라 동창들(Alumni terra)은 기념행사를 하자는 관성적 제안을 꺼내 들었다. 숫자가 주는 이상한 압박이 가끔은 어떤 계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형식적이며 물리적인 행사보다 10년 동안 스튜디오테라를 거쳐 간 여러 사람의 현재를 공유하기로 결정했다. 각자 지금 활동하는 곳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기로 말이다. 그것이 2021년 4월 이후 새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 월간테라(Monthly terra)다. 그다음 연재를 맡은 친구는 창업과 사업 확장에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청년들이 활동하느라 바빠서 글쓰기에 소홀하다면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그가 소수의 독자를 위해 연재를 재개해주길 기다린다. 지구에 최소한의 흔적 남기기 사는 동안 자연인으로 또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최소한의 혹은 절제된 흔적을 남기기로 한다. 여기에는 과도한 조형적 어휘와 디지털 흔적도 포함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양한 온라인 매체 소통에 소홀하다는 꾸짖음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말과 자기 매니페스토가 초과 용량으로 밀려드는 정보 소화 불량 시대에, 말을 아낀 틈새에서 자라는 생각의 새싹들을 응시하는 일이 조금은 구닥다리인 우리에게 더 편안한 것 같다. 디자인은 자연과의 어떤 조우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어야하고, 디자인의 이름을 통해 행해지는 장치들이 공간의 본질을 뛰어넘는 그 자체의 조형으로 남지 않도록 자기 검열을 자주 한다. 우리를 몇 가지의 생각을 공유하는 느슨한 집단으로 소개했지만 사실 그게 정확히 무엇이며 몇 개의 생각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아마도 함께 실천하며 생각을 나누는 가운데 어느덧 수렴되는 수평선 같이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에 가까울 것이다. 동네의 문지기이자 자연과 사람의 거간꾼, 작은 오피스 스튜디오테라는 오래된 것, 느린 것, 낮은 것, 수평적인 것, 작은 것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을 존중하며 디자인한다. 이 다짐이 아직 규정되지 않은 그 몇 가지의 생각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스튜디오테라는 조경에 대한 몇 가지의 생각을 공유하는 느슨한 네트워크다. 조경을 통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 수 있고, 좋은 생각과 상상력이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고 믿는다. 설계 실무 중심의 디자인 스튜디오(design studio), 연구 중심의 리서치 스튜디오(research studio), 만들고 실험하는 필드 스튜디오(field studio)가 독립적으로 혹은 연대하여 작업한다.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의 수장인 안형주는 송가림, 박근우, 육아 중인 최진호와 함께 일하며, 리서치 스튜디오는 윤정원, 손영호, 전효정, 김선주, 정영재, 임용재, 이수빈, 김문기가 4학기 제때 졸업을 목표로 공부하며 신입생들을 기다린다. 이 틈새에 김아연이 활동한다. 현재 원주의 미술관, 논산의 예술 놀이터, 네 번째 주택정원, 장항의 폐선 철도 공원을 설계 중이고, 양양의 어린이집과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가 공사 중이다.
  • [모던스케이프]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옥상정원
    옥상정원은 도시의 부족한 녹지 공간을 확대하는 장점도 지니지만 에너지 활용과 절감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어 패시브 하우스에서 종종 언급되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런 유용성은 최근 부각된 것이고, 원래는 근대 건축과 근대적 소비 문화에 기반해 탄생한 공간이다. 옥상정원은 뾰족한 경사 지붕을 가진 옛 건축물에는 설치하기 힘들었지만, 철근 콘크리트 기둥에 의지해 세운 평면 슬래브 건축물은 옥상정원을 두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는 ‘근대 건축의 5원칙’에서 철근 콘크리트 건물 상부에 정원을 둘 것을 권장했다. 르 코르뷔지에에게 있어 녹색의 옥상정원은 건물로 상실된 자연의 대체재이자 건물에서 자연으로 나아가는 연속적 경험의 중간자다. 관찰자의 이동에 따라 펼쳐지는 건축적 산책의 종착지는 옥상정원인데, 관찰자는 벽체와 천장, 건축적 오브제를 거쳐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옥상정원에서 열린 하늘을 만나고 자연 경관을 조망하게 된다. 건축가들과 이론가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옥상정원을 두고 자연과 건축 관계의 실례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이러한 담론과 무관하게 옥상정원은 근대 건축과 함께 점차 도시민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옥상정원이 주로 백화점이나 호텔에 처음 설치됐는데,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 건물 최고층 높이에서 일상 공간을 내려다보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소한 개방감과 낯선 시선을 경험했다. 모더니스트 시인 이상(1910~1937)은 미쓰코시백화점(三越百和店) 경성점 옥상정원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도시를 조망했고, 김기림(1908~?)은 그곳에서 바라보는 도시를 금붕어가 흐느적거리는 바닷속으로 표현했다. 세련된 장식과 시설, 최고급 서비스를 향유하는 서양식 사교 활동이 가능했기에, 자본과 권력을 가진 상류 계층은 물론 진보적 성향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옥상정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김영민, “르 코르뷔지에의 자연관에 대한 비판의 전개 양상”,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7(6), 2021, pp.117~126. 박진아, “르 꼬르뷔지에 유토피아적 자연관의 절대적 이데올로기화 과정 연구”, 『건축역사연구』 13(2), 2004, pp.7~19. 신세계백화점 자료 제공, “미쓰코시 백화점 사진 자료”, 『이상리뷰』 3, 2004, pp.169~176. 이길훈, “미츠코시백화점의 설립과 경성 진출”,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2(1), 2016, pp.81~89. 전상인·김미영, 『옥상의 공간사회학』,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2. 朝鮮建築会, 『朝鮮と建築』 11(9), 1930, pp.13~39. “옥상정원을 개조하여 호텔 개방을 계획하고 동시에 아래층 정원에도 손을 대 여름용 납량원을 만들다”, 「朝鮮時報」 1921년 6월 9일. “屋上庭園開放”, 「경성일보」 1924년 7월 12일.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사진 출처 그림 1. 『京城名所』 그림 2. 신세계백화점 자료 제공, “미스코시백화점 사진 자료”, 『이상리뷰』 3, 2004, p.174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오후 4시에 머물러 있는 집 프로젝트 스페이스 ㅁ(미음), ‘오후 4시’ 잉고 바움가르텐 개인전
    오후 2시는 점심을 먹은 뒤 졸린 시간이고, 3시는 일하는 시간, 5시는 퇴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오후 4시는 어떤가. 잉고 바움가르텐(Ingo Baumgarten)은 4시를 어떤 조짐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무엇이 일어난 뒤도 아니다. 바움가르텐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건축물들이 오후 4시에 머물러 있음을 표현한다. ‘오후 4시’ 전에서 다룬 건축물들은 한국이란 공간에 있는 집이다. 사물화된 공간에 사는 존재들은 그 사물성에 지배 받아 사물화된다. 모든 공간은 시간의 영향 아래 있다. 그의 시각을 빌리자면 인간은 어디에 살고 있든 오후 4시의 공간 속을 표류하고 있다. 공간을 주제로 그리는 독일인 작가 바움가르텐은 1964년 서독에서 태어나 독일 카를스루에(Karlsruhe) 국립미술대학교에서 미술 학위를 받고 도쿄 예술대학원에서 미술 석사를 받았다. 그 후 프랑스 파리, 영국 노리치(Norwich)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바움가르텐은 가까운 주변 환경으로부터 모티브를 얻는데, 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건축물이라 생각한다. 건축물들은 문화의 현상, 징후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건물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인간의 일상, 도시의 문화, 사회 이념이 투영된 사회적 구조물로 여긴다. 이러한 점에서 바움가르텐이 그려낸 건축물은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욕망과 소망, 생활과 환상을 어우르는 표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도시의 풍경을 관찰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욕망의 변화를 건축물의 외곽으로 드러냈다. 작업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집과 빌딩, 학교, 지하철역, 교량 등 다양한 건축물 사이에서 자신의 심미안을 자극하는 것들을 선택한다. 대칭과 비대칭의 구조, 다양한 건축 자재와 색감이 만들어내는 조화와 리듬 등 조형적 요소들을 일차적으로 주목한다. 동시에 건축 스타일이 나오게 된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며 심미적 표피 속에 숨겨진 의미와 가치들을 발굴하고 총체화해 작품으로 표현한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 어제로 미래를 묻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어제의 미래’ 전
    비바 마젠타(Viva Magenta)는 팬톤이 정한 올해의 색이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이 색은 용기와 패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색과 어울리는 사진작가를 꼽는다면, 바로 마리아 스바르보바(Maria Svarbova)일 것이다. 마리아는 무표정한 인물과 정교한 구도, 따뜻한 색감이 절묘하게 조화된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사진작가다. 2010년부터 활동한 그는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30인 중 한 명이며, 2018년 핫셀블라드 마스터 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통적인 초상화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사진 스타일은 국제적 찬사를 받으며 특히 『보그』, 『포브스』, 『가디언』 등 전 세계 출판물의 특집 기사로 소개됐다. 국내에서도 SNS 등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유년시절부터 예술가를 꿈꾸며 목조 조각 복원 등을 했지만, 창작자로서 한계에 봉착하며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받은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며 사진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현재는 전 세계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작가가 됐다. 정규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시각적 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차갑지만 정교한 구도, 따뜻한 색감 그리고 신구(新舊)의 적절한 결합이다. 제대로 겪어본 적 없던 공산주의 시절 슬로바키아의 향수와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어제의 미래’는 그의 실험적인 작품 스타일을 조명한다. 174점의 주요 작품을 노스탤지어(Nostalgia), 퓨트로 레트로(Futuro Retro), 스위밍 풀(The Swimming Pool), 커플, 로스트 인 더 밸리Lost in the vally 다섯 개 섹션으로 나누어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구성했다. 다섯 개 섹션은 작가의 예술적 경험과 개인적 경험을 다룬다. 대표작인 스위밍 풀 시리즈 외에도 기업과 협업한 작품 및 최신 작품까지 선보이며 현재와 과거를 총망라한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알아두면 쓸데 있는 사전 지식
    밸런스 게임을 해보자. 지금 우울하다면, ‘집에서 쉬며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vs ‘밖에 나가 사람들과 함께(혼자 나가도 된다) 우울함 탈피하기.’ 나는 무조건 후자다. 우울할 때 집에만 있으면 끝없이 기분이 가라앉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바깥 공기를 마시며 침울한 감정에서 빠져 나오려 한다. 우울한 날뿐 아니라 쉬는 날도 종종 밖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점차 이동 반경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까지 뻗어나갔다.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 갓 스무 살 되던 해에 갔던 대만은 여행의 매력을 알게 해주었다. 패키지 상품처럼 여행사가 짜놓은 경로를 쫓아다니는 여행이 아닌 순수 직접 모든 걸 예약하며 알아보고 간 여행이라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인천공항의 새벽 공기, 긴장한 눈빛으로 대만 공항을 나서던 기분, 혹여 예약이 잘못되었을까 조마조마하며 체크인하던 호텔 로비, 예류Yeliou 지질공원행 버스에서 본 풍경. 사소한 것도 다 기억난다. 처음 주도한 여행이 대성공을 거둬 그 뒤로도 일정을 직접 짜는 자유 여행을 선호하게 됐다. 여행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변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몇 날 며칠 밤새우며 과제를 반복하던 대학 생활에 잠시나마 쉼을 주고자 휴학을 했을 때다.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친구들과 동유럽 여행을 갔다. 한 나라를 한 명씩 맡아 그 나라의 가이드가 되어 숙소부터 일정까지 알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오스트리아 담당이었는데, 대표적인 관광지, 인스타그램 감성을 자극할 포토 스폿, 꼭 먹어봐야 하는 맛집 위주로 계획을 짰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가봐야 할 곳을 조사하던 중, 유명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배경 장소를 알게 됐다. 영화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마리아가 트랩 소령의 자식들의 가 정교사가 되면서 전개된다. 경직된 가정 환경으로 인해 무뚝뚝하고 표정이 없던 아이들에게 마리아는 음악을 가르치며 생기를 선물해준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자주 보았던 터라 ‘도레미 송’이 곧장 떠올랐다. 도레미 송은 마리아와 아이들을 끈끈하게 엮어주는 도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영화를 대표하는 곡이다. 정원 가운데 있는 분수대 뒤에서 아이들이 한 명씩 나오며 퍼걸러 주위를 뛰어다니고, 입구에 위치한 계단 위로 마리아와 아이들이 함께 올라와 정원을 등지고 도레미 송을 부르는 장면. 바로 그 장소가 미라벨 궁전 앞에 펼쳐진 미라벨 정원(Mirabell Garten)이다. 미라벨 정원과 더불어 마리아와 트랩이 함께 춤을 추며 사랑을 키워 나간 정자가 있는 헬브룬 궁(Schloss Hellbrunn)도 빼놓지 않고 들렀다. 잘츠부르크 다음 도시는 빈이었는데, 이 도시에서도 미라벨 정원, 헬브룬 궁 같은 곳을 발견했다. ‘비포 선라이즈’(1996)는 빈을 낭만적인 도시로 그린 대표적 영화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셀린과 제시, 목적지는 달랐지만 서로를 향한 이끌림에 함께 빈에 내려 하루를 보내며 사랑에 빠진다. 셀린이 제시에 대한 호감을 친구에게 전화하듯 고백하던 카페 슈페를(Sperl), 함께 지낸 하루가 꿈만 같다고 이야기하던 테라스가 있는 알베르티나(Albertina) 박물관도 필수 방문 코스에 넣었다. 이곳들에서 영화 장면의 구도처럼 사진을 찍고 싶었기에 다른 그림 찾기 하듯 꼼꼼히 대조하며 공간을 둘러봤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 인스타그램용으로 찍은 사진들보다 왠지 더 정감이 간다. 이제는 반대로 영화 제목을 보면 여행지에서의 일들이 떠오른다. 어딜 가게 되면 먼저 그곳의 숨은 정보를 찾아본다. 여행 도중에 새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도 매력이지만, 사전에 지식을 쌓고 가는 여행도 꽤나 흥미롭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 말했다. 긴 인생을 산건 아니지만 짧고 굵직한 여행 경력을 가진 내 방식대로 고쳐 써본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알아두면 쓸데 있는 지식을 쌓고 떠나는 것.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모든 폐허는 저마다 찬란한 번성과 비참한 쇠락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축소된 제국이다
    공간은 짓는 데 시간이 걸리기에 계획안을 만든 때와의 시차를 갖게 된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 유행처럼 번졌던 공간 유형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비슷한 조건의 대상지를 바탕으로 한 엇비슷한 그림들이 쏟아지고 나면, 기억 속 조감도와 그에 대한 기대감이 희미해진 후에야 실제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보니 정작 완성된 공간에는 설계안을 향해 쏟아지던 관심만큼의 열기가 들끓지 않기도 한다. 그 대표적 공간 중 하나가 고가다. 빌딩과 도로로 포화된 도심에서 기능을 잃은 고가의 잠재력은 뉴욕 하이라인(Highline)을 통해 이미 증명됐다. 빌딩 숲을 색다른 높이에서 거닐고, 킬로미터퍼아워(km/h)를 위한 도로를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일은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게다가 낡았지만 여전히 단단한, 한때 도시의 번영을 도왔던 고가는 찬란한 페허로 불리기에도 충분하다. “모든 폐허는 저마다 찬란한 번성과 비참한 쇠락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축소된 제국이다.”1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고가의 균열은 사람들의 낭만적인 멜랑 콜리를 충족시킨다. 다리 위는 새로운 나 들이 장소로 적격이지만, 그 아래 공간의 여건은 다르다. 그늘은 어둠 외에도 많은 것을 불러들인다. 축축한 습기, 습기를 좋아하는 곰팡이와 벌레들. 병균과 해충을 피해 발 길이 뜸해진 곳에는 숨기고 싶은 행위를 벌이는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고가 하부는 비어 있지만 땅을 가르는 무형의 경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스페이스를 향한 갈증은 다리 아래의 땅도 바꾸기 시작했다. 토론토의 언더패스 파크(Underpass Park), 암스테르담의 A8ernA를 비롯해 버려졌던 다리 밑 공간이 공원, 커뮤니티 공간, 예술가들의 작업 및 전시 장소로 재탄생했다. 한동안 뜸했던 고가 하부 프로젝트 소식이 2022년부터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도쿄의 미야시타 공원(Miyashita Park)(『환경과조경』 2022년 2월호, 이하 발행연월만 기재), 철도 인프라를 주차장, 상업 시설, 호텔과 엮어 시대에 부응하는 다층의 공원으로 만들었다. 옥상이 주요 공간이지만 지상과 상부를 연결하는 거대한 계단을 만들어 하부의 답답함을 덜어내는 동시에 야외 스탠드로 활용하는 영민함을 보였다. 스톡홀름의 셰르토르프스 센트룸(Kärrtorps Centrum)(2022년 9월호)은 지역의 오래된 광장이다. 광장 가장자리를 지나는 지하철 고가 밑에 날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체육 시설, 그네, 자전거 보관소를 설치함으로써 활기찬 입구의 역할을 부여했다. 같은 호의 상하이 차오양 백주년공원(Caoyang Centennial Park) 대상지는 폭 10~15m, 길이 1km의 화물 철도다. 기존 철도 인프라에 지하층과 2층을 더하는 복층화 전략으로 부족한 부지를 확보했다. 날렵한 형태의 고가는 지상에 넉넉한 양의 빛을 내린다. 덕분에 식물이 무리 없이 자라고, 농구장의 아이들은 콘크리트 천장 대신 하늘을 보며 운동을 한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는 예술가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했다. 마이애미의 언더라인(Underline)과 뭄바이의 원 그린 마일(One Green Mile)(2023년 1월호)은 조건은 조금 다르지만 일종의 ‘방’을 만들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는, 같은 전략을 사용한다. 이때 고가의 형태 자체가 둔중한 원 그린 마일은 녹색의 가벽을 세우고 내부에 언덕 놀이터, 테이블과 의자를 두어 아늑한 공간을 만든다. 말 그대로 투과성을 갖는 방을 만든 셈이다. 반면 언더라인의 방은 행위를 담는 개념적 그릇이다. 위요된 공간이라기보다 탁 트인 야외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서울시도 2017년 고가 하부를 도심 속 쉼터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고가하부공간 활용사업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6개의 사업 대상지(옥수, 이문, 한남, 종암사거리, 금천, 노원역)를 선정했다. (비)일상의 수목원(한남1고가), 지붕마당(이문)을 제외한 다른 고가에는 모두 작은 건축물 형태의 실내 공간이 들어섰다. 이미 콘크리트 구조물로 한차례 감싸인 공간을 또 한 번 박스에 가둔 모양이다. 고가 하부는 열린 듯 닫혀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지 않나, 미세먼지 같은 이슈를 피할 수 없었나, 들어서야만 내부를 볼 수 있는 실내 공간은 찬란한 폐허와 다른 속도로 낡아가지 않을까. 아무래도 직접 가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테니, 날이 풀리면 잊지 않고 이곳들을 찾아갈 요량이다. 비행기 티켓 값은 버거워도 지하철 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각주 1.리처드 하퍼, 『세상이 버린 위대한 폐허 60』, 예담아카이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