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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세상을 번역하다
    페이퍼 워크, 프랙티스, 보이드, 매스, 마운딩, 라이프스타일……. 매달 나를 괴롭히는 단어의 목록이 길어진다. 『환경과조경』의 편집 지향점 중 하나는 외래어를 한국어로 순화하는 것인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신기하게도 조경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나열한 단어들을 한국어와 짝지어 보자면 페이퍼 워크-서류 작업, 프랙티스-실행/실천, 보이드-커다란 빈 공간, 매스-덩어리, 에지-가장자리, 마운딩-언덕 만들기, 라이프스타일-생활 양식 정도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미묘하게 뜻이 빗나가거나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외래어+한국어 형태의 합성어가 등장하는 경우 더욱 곤란하다. 건물이나 공간의 규모에서 비롯한 감각을 흔히 ‘매스감’(매스+감각)이라 표현하곤 한다. 커다란 건물이 주는 느낌, 거대한 건물의 크기가 자아내는 분위기, 큰 건물이 주는 감각, 머릿속으로 몇몇 문장을 나열하다 죄 없는 교정지를 노려 보며 빨간 펜을 내려놓는다. 그대로 두자, 결정하고 다음 문장에 집중하려 노력하지만 자음과 모음이 마음 어딘가를 쿡쿡 찔러대는 건지 속이 껄끄럽다. 영어의 동사를 명사처럼 쓰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마운딩’이 딱 적절한 예인데, ‘마운딩을 만들었다’와 같은 오류는 ‘언덕을 만들었다’로 바로잡으면 된다. 그렇다면 ‘조형 마운딩을 제안했다’는 어떨까. 물론 ‘조형적 언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로 고쳐 쓸 수 있지만, 필자 고유의 문체와 본래 문장 길이가 만들어내는 리듬감을 살리며 글을 다듬기 쉽지 않다. 결국 빈도수를 해결책으로 삼는다. 언덕 만들기보다 마운딩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뜻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마운딩을 조경 동네에서 통용되는 보통명사로 삼기로 마음먹는 식이다. ‘세상을 번역하다’는 번역가 황석희가 명함 뒷면에 새긴 글이다. 이 감성적인 문장은 번역의 본질 을 꿰뚫는다. 과장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치환하는 걸 넘어 어떤 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이해하고 이를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일에 가깝다. 대상에 대한 탐구 없이 진행한 번역은 세상을 왜곡한다. 영화 ‘데드풀’의 자막 작업을 하며 ‘괴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황석희에게 “엑스맨이라는 작품은 1960년대 인종차별을 메타포로 만들어졌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 영화니 돌연변이 사이에선 괴물이란 말 사용하면 안 된다”는 메일이 도착한 것처럼.1 한창 이번호 특집을 점검하던 중, 오픈스페이스의 순화어 발표 소식을 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단어는 ‘열린 쉼터’.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오픈스페이스는 “건물·구조물 등이 많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비건 폐지로 유지되는 토지를 총칭해서 말하며, 공원‧ 녹지를 포함한 녹지공간의 개념”이며 “공원‧녹지‧운동장‧유원지‧공동묘지 등 공지가 많은 시설과 농지‧산림‧하천‧호소 등 건축물로 건폐되어 있지 않은 비건폐지를 의미하는 광의의 녹지”이니 말이다.(토지이음 용어사전)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국민 2천여 명을 대상의 설문에서 93.1%의 응답자가 열린 쉼터가 적절한 순화어라는 데 동의한 점이었다. 오픈스페이스는 조경뿐 아니라 도시, 건축 분야에서도 널리 쓰는 말이다. 대중이 의미가 대폭 축소된 열린 쉼터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건, 우리가 만든 오픈스페이스가 그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했다는 뜻일 테다. 우리의 바람과 달리 광장, 공원, 산림, 녹지축은 서로 상관없는 각개의 공간으로 읽힐 뿐이다. 사방으로 트여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의 카테고리는 슬프게도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단어의 의미는 소급적으로 발생하고, 사후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48쪽). 그러므로 조경의 의미는 조경이 행한 일, 즉 조경이 만든 공간과 시스템에서 비롯할 것이다. 결국조경의 의미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조경의 이름으로 좋은 것을 만들고, 사람들이 이를 궁금하게만드는 수밖에 없다. 교과서적 해답이지만 모범적 해결책은 가장 명쾌하고 기초적이며 해냈을 때 큰 효과를 낸다. 움베르트 에코는 ‘번역이란 실패의 예술(translate is art of fail)’이라 말했다.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는 완벽한 해석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예술로 만들어나가는 건 단어 주인의 몫이기도 하다. [email protected] 각주 1.송길영, “[에스.티. 듀퐁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번역가 황석희”, 포브스 코리아, 2018년 5월 23일.
  • [PRODUCT] 숲길에서 만나는 휴식, 조선왕릉 퍼걸러 고즈넉한 정취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
    조선왕릉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고, 2020년부터는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에 위치한 40기의 조선왕릉을 잇는 600km 순례길이 개방됐다. 태릉에 설치된 예건(YEKUN)의 퍼걸러는 이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조선왕릉의 숲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퍼걸러는 키 큰 소나무를 비롯해 왕릉을 둘러싼 풍성한 숲에 스며든 듯 놓여 있다. 장소의 특수성과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도한 조형을 지양하고, 전통적 요소를 살릴 수 있는 비례와 형태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퍼걸러의 절제된 형상은 왕릉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가득 메운 나무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디테일을 통해 왕릉이 가진 특유의 정취와 장소성을 돋보이게 했다. 개방감이 느껴지는 퍼걸러에 책장을 더해, 숲길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고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했다. 크기에 따라 소형과 대형으로 구분되는데, 장소의 규모에 따라 적절한 제품을 선택해 활용이 가능하다. 전통적인 느낌을 그대로 살린 창호를 퍼걸러 내부에 설치해 장소성을 극대화했다. TEL. 031-943-6114 WEB. www.yekun.com
  • 신의 눈으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
    어떤 현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선택을 한다. 전체적인 구조를 볼 것인가, 작은 디테일을 살필 것인가. 모두를 눈에 담기에 순간은 너무 짧다. 하지만 찰나를 포착하는 사진이라면 어떨까.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는 거시적 형태와 미시적인 디테일을 동시에 다루는 사진가로 불린다. 관객을 압도하는 그의 거대한 사진은 주로 현대 사회의 장대한 풍경과 인간의 눈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을 담고 있는데, 사진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사회와 자연의 구조 속에 가려진 미미한 인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지난 3월 31일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국내 최초로 거스키의 개인전(‘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이 열렸다. 인류와 문명에 대한 통찰을 담은 거스키의 대표작 40점과 처음 공개되는 두 점의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Eisläufer)’과 ‘스트레이프(Streif)’가 전시됐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거스키는 1955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상업 사진 작가인 아버지와 초상 사진가로 활동한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다양한 사진 기법을 익혔다. 하지만 거스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상업 사진도, 초상 사진도 아니었다. 포토저널리스트를 꿈꾼 그는 1977년 에센에 있는 폴크방슐레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독일 주관주의 사진 작업의 대가인 오토 슈타이네르트(Otto Steinert)를 만난 그는 사물을 지각하는 법, 포토저널리즘의 시각과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을 배웠다. 1981년에는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 들어가 독일 현대 사진의 미학과 전통을 확립한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Bernd and Hilla Becher) 부부에게 가르침을 받은 거스키는 ‘유형학적 사진’의 기초를 다졌다. 세상을 꼭 닮은, 세상에 없는 풍경 세상의 수많은 소재 중 거스키의 이목을 잡아끈 것은 산업화의 산물들이었다. 공장, 크루즈 선박, 아마존 물류 센터 내부, 미국 대형 소매점 같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대표하는 사물이나 장면을 유형학적 시선으로 포착해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은 세상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이다. 거스키는 완벽한 수직, 수평 구도를 원했다. 파리 최대 규모의 아파트 건물을 찍은 ‘파리, 몽파르나스’(1993)는 건물 건너편 두 군데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조합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거스키는 소실점을 제거해 모든 창문의 크기가 같아 보이도록 연출했다. 그 결과 거시적이면서도 건물의 내부 디테일과 균일한 격자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이미지가 탄생했다. 미색과 검은색의 수평선이 반복되는 ‘벨리츠’(2007)는 독일 벨리츠의 유명한 아스파라거스 밭을 촬영한 것이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땅을 내려다보는 시점은 직선 구조를 부각하고, 관람객의 머리에서 지평선의 존재를 휘발시켜 버린다. 하지만 수평선이 어긋나는 곳을 살피면 아스파라거스 수확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존재가 보인다. 그 순간 기하학적 패턴으로 보이던 이미지가 다시 사진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전체와 디테일을 한 번에 담아내는 그의 사진은 관람객과의 거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매체가 된다.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 한강 수변 공간 재편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한강변 공간구상
    지난 5월 9일, 서울시는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한강변 공간구상’에 대한 입찰 공고를 냈다. 주요 내용은 한강변 주요 거점 간 연계 방안 및 통합 구성안 마련, 한강 일대 교통 인프라 및 녹지 생태 도심 확충 방안 구상, 한강변 간선도로 개선과 연계한 신규 공간 확보 및 활용 방안 마련이다. 이를 통해 ‘한강변 관리 기본계획’ 을 보완할 계획이다. 한강은 서울의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어 구조와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비전 2030’에서 수변 중심 도시 공간 구조 개편을 통해 한강의 수변 공간을 새로운 활력 거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022년 3월 발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에서도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서울의 도시 경쟁력 강화하기 위한 6대 공간 정책 중 하나로 ‘수변 중심 공간 재편’을 제시했다. 서울시는 이번 계획을 통해 한강을 중심으로 주요 중심지 간의 상호 연계를 강화하고, 수변 공간을 활성화 하는 등 한강 중심의 도시 공간을 구현하기 위한 효과적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여의도~용산, 성수~잠실, 마곡~상암 등 한강변 주요 거점 간 기능적·공간적 연계 및 통합 방안을 구상하고, 주요 거점의 특화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수변 거점 조성 방안을 주요 정비 사업과 연계한다. 또한 한강을 활용한UAM(Urban Air Mobility) 등 미래 교통 수단 운영 방안, 수상 교통 기반 등 교통 인프라, 시민 여가·문화 공간 활성화를 위한 생태 거점 조성 등 녹지 생태 도심 연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강변북로 등 한강변 간선도로 관련 계획을 검토해 유휴 공간을 파악하고,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수변 공간 구상도 함께 추진한다.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서울 동북권 도시 공간 재구성 중랑천 간선도로 입체화 연계 중랑천 일대 공간구상
    서울 동북권을 관통하는 주요 지천인 중랑천 일대가 문화, 휴식,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수변 거점으로 탈바꿈한다. 지난 5월 16일, 서울시는 ‘간선도로 입체화 연계 중랑천 일대 공간구상’(이하 중랑천 공간구상) 용역을 공고하고 7월부터 계획 수립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중랑천 공간구상 사업은 ‘서울비전 2030’에서 제시한 미래감성도시 전략의 핵심인 ‘서울형 수변감성도시’ 중 하나로 추진된다. 서울시 최상위 공간 계획이자 서울의 도시 공간 미래상을 담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의 6대 공간 정책 중 하나인 ‘수변 중심 공간 재편’과도 연결된다. 중랑천은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으로 인해 기반 시설과 공간 구조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중랑천 공간 구상을 통해 여가·문화 공간으로서 수변 공간 활성화 방안을 수립하고, 인접 지역과 한강을 연계해 경제·문화·여가 거점을 발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재건축·재개발 등 대규모 개발 예정지에서 중랑천과 연계한 정비 계획을 수립하도록 ‘대규모 개발 사업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중랑천과 주변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게 되면 하천의 잠재력을 높이고 활력을 인접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다. 중랑천 인근에 있지만 도로와 제방에 막혀 수변을 여가 공간으로 누리지 못하는 인근 저층 주거지에 대한 특화 정비 방안도 담긴다. 수변과 어우러진 저층, 저밀 형태의 특색 있는 수변 마을을 조성한다.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연결을 기다리는 모스 부호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 수집을 좋아한다. 수집하는 책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헌책이거나, 헌책이 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새 책이다. 헌책은 사장님이 직접 타 주시는 맥심 커피가 어메니티(?)로 나오는 단골 헌책방에서 주로 구매하는데, 이유는 제각각이다. 사장님의 책 광고에 혹하거나, 제목에 끌려서, 아니면 책에 적힌 낙서가 웃겨서 구매했었다. 헌책이 될 예정인 새 책은 주로 시집이나 잡지가 대부분이다. 책장에 나열된 시집의 시적인 제목만 읽어도 뭔가 시인이 된 것 같다. 월별로 정리된 잡지를 보면 그것에 깃든 동업자의 노고를 잘 알기에, 전자책으로 살 수도 있지만 늘 종이 잡지로 본다. 설령 내가 만들지 않았을지라도. 수집가라고 했지만, 실상은 나일론 수집가에 가깝다. 안 그런 이들도 있지만, 보통 수집가들은 자신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잘 팔지 않는다. 이와 다르게 현실적인 이유로 꾸준히 책을 팔아야만 했다. 나의 작고 소중한 책장은 많은 책을 감당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 휴지통 비우듯이 한 번씩 꽉 찬 책장을 비워야 할 때면 그간 안 읽었던 책을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벼락치기로 허겁지겁 읽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벼락치기는 약간의 후유증을 동반하는 것 같다. 매번 이러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새해에 다짐하는 금연 약속처럼 부질없다. 최근 나일론 수집가가 아닌 진짜 수집가의 집에 다녀왔다. 바로 정릉의 최만린미술관이다. 최만린 작가는 한국 추상 조각의 개척자로 불렸으며, 2020년에 타계했다. 미술관은 그가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작업실 겸 집으로 썼던 정릉 자택을 개조한 곳이다.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술관은 아니라서, 30분이면 모든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정원의 중앙에 위치한 아담한 연못과 빨간 벽돌로 세운 담을 에워싸고 있는 초록빛의 나무들. 조경에서 자주 쓰이는 언어로 표현하면 위요감이 충분했다. 특히 2층 오픈 아카이브 방이 좋았다. 수집에 대한 최 작가의 세심한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평생에 걸쳐 최 작가가 수집해온 자료가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영수증, 설계도, 사진, 잡지 및 신문 기사 등 각종 자료가 가지런하게 파일철로 정리 되어 있었고, 맨 아래 칸에는 최 작가와 관련된 글이 실린 잡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글이 실린 잡지의 지면에는 일일이 책갈피를 꽂아두었고, 책등에는 해당 지면의 쪽수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 두었다. 『환경과조경』도 그중 하나였다. 잊고 지냈던 초등학교 동창을 지하철역에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다행히 열람이 가능해서, 후배 동업자(?)로서 기쁜 마음으로 1990년대의 『환경과조경』을 읽다가 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문득 잡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봤다. 흥미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종이 잡지는 비인기 장르다. 대기업 중고 서점에서는 잡지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잡지를 만들어야 할까?’ ‘종이가 종교도 아니고, 무조건 종이 잡지를 예찬해야만 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늘 답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진짜 수집가의 집에 다녀오고 나서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물론 디지털 기술이 더 방대하고, 간편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종이를 넘기고, 책갈피를 꽂고, 메모를 하는 것은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수집가의 손때는 다른 이가 짧은 시간 내에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잡지는 살아있는 아카이브이자, 누군가와의 연결을 기다리고 있는 모스 부호일지도 모른다. 일면식 없는 최 작가와 내가 잡지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됐던 것처럼. 조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했던 『환경과조경』은 올해 7월 4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의 아카이브가 시간을 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모스 부호가 되기를 바라며 마친다. [email protected]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너무 바삐 이별하느라 못한 말이 있어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엄마는 상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욕심부릴 엄두도 못 낸 대학교는 엄마보다 다섯 살 어린, 집안의 장손이 대신 갔다.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다들 그렇다는 사실이 충분한 위로가 될리 없었다. 못다 이룬 학업에 대한 꿈은 자식만큼은 질릴 정도로 공부를 하게 만들겠다는 열망이 되었고,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바쁘게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학교를 다녀와 복습하고, 학원을 다녀오고, 예습하고, 잠시 TV를 보고, 학습지를 풀고, 책을 읽으면 밤이 됐다. 그래서 불행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고, 그 덕에 뜻밖의 취미를 갖게 됐다는 이야기다. 당시 유행하던 영어 학습지는 테이프를 들어야만 풀 수 있었다. 마이마이는 내가 처음으로 갖게된 휴대 전자 기기였다. 그때 라디오의 존재를 알게 됐다. TV는 허락받아야 볼 수 있었지만, 라디오는 몰래 들어도 티가 안 났다. 친구들이 흥얼거리는 대중가요도,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도 전부 라디오로 알게 됐다. 공테이프를 사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잽싸게 녹음을 했는데,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DJ의 목소리가 같이 섞여 들어갔다. 처음에는 망쳤다고 괴로워했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테이프를 재생하니 노래에 얽힌 사연이 함께 떠올라 오히려 즐거웠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집중이 더 잘된다는 핑계로 심야 라디오를 들었다. 하늘이 회보라빛에 가까운 새벽, 그즈음 흘러나오는 방송은 낮과 달리 차분하고 축축했다. 가끔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서러워졌다. 라디오는 조금 이상하고 그래서 재밌는 우체국 같았다. 수많은 이가 보낸 사연을 가득 쌓아 두고, 누군가에게 대신 말을 전하고, 위로나 조언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덧붙여 노랫말을 답장처럼 들려주는 곳. 신기하게도 그 사연에는 주인이 없어 보였다. 누구누구 씨 하고 이름을 불러도, 그게 모두의 이름 같아서 DJ가 들려준 말과 노래들을 내것으로 삼곤 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 주파수를 맞추는 작업이, 나와 같은 많은 사람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하는 일 같았다. 그래서 깊은 밤에도 외롭지 않았다. 나무요일 뉴스레터를 보낼 때 라디오 DJ가 된 기분에 젖곤 했다. 특히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듯한 문장을 쓸 때는, 더 그랬다. 뉴스레터 발행 목표를 두 가지로 설명하자면, 첫째는 정성껏 만든 잡지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것이었고, 둘째는 독자들의 삶에 좀 더 가벼운 형태로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을 지나 조금 나른하다 느낄 때쯤 울리는 새로운 편지가 도착했다는 노크 소리. 알림을 듣고 ‘일에 집중도 잘 안되고 졸린데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열어보는 데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일상의 루틴으로 각인되는 편지가 되기를 꿈꿨다. 봉투 뜯는 게 귀찮아 내버려 둔 잡지를 뉴스레터를 보고 펼쳐봤다, 기대한 바와 다르겠지만 잡지 콘텐츠는 종이 잡지로 보는 게 더 편하고 뉴스레터용 콘텐츠만 읽고 끈다 등 소소한 피드백을 받을 때면, 오랫동안 기다린 답장을 받은 것 같아 기뻤다. 내용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즐거운 와중에도 고민을 계속했다. 뉴스레터가 잡지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데 효과적인지, 오히려 『환경과조경』의 모든 채널을 섭렵하고 있는 독자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 자신이 없다. 때마침 온라인 서비스 개편과 함께 나무요일 뉴스레터는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 채 10이라는 숫자도 채우지 못하고 5호에서 안녕을 말하게 되어 아쉽지만, 딱 반절 왔으니 나머지 반을 더 나은 모습으로 채우겠다고 약속드린다. 라디오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시청한 TV 프로그램이 ‘이소라의 프로포즈’와 ‘윤도현의 러브레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프로그램은 느릿하게 주고받는 편지 같았다. 초 단위로 달리는 댓글과 달리 일주일 내내 사연을 읽고, 그 사연을 생각하고, 사연자에게 보낼 음악을 고심하는 가쁘지 않은 소통. 이소라의 프로포즈 첫 회에서 소개한 엽서 한 장을 잠시 이별하게 된 뉴스레터 구독자에게 보내는 인사말로 대신한다. “당신, 지금 뭘하고 계세요? 제가 없는 가을은 쓸쓸하지 않나요? 슬프지 않나요? 전에, 제가 달리는 차 속에서 당신께 불러드린 노래 기억하나요? 너무 바삐 이별하느라 못한 말이 있어요. 사랑해요. 일산에서, 이소라.” [email protected]
  • [COMPANY] 일진글로벌 쾌적한 삶을 지향하는 토탈 솔루션
    일진글로벌은 식물을 소재로 조경 기획부터 설계, 제작 및 시공에 이르는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는 조경 전문 회사다. 전시 기획, 꽃 조형물, 빛 조형물 등 전시 조경과 관련된 노하우를 수년간 축적해왔으며 다양한 조경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꽃이나 빛 축제 등의 기획부터 시공과 유지·관리를 책임지는 전시 기획 사업, 축제나 행사시 홍보나 랜드 마크로 활용할 수 있는 꽃 조형물 사업, 실·내외 조경과 더불어 화훼류 재배 등 조경 및 조경 자재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일진글로벌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 듯 세심한 정성을 들여 조형물을 만든다. 2016년부터 매년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2016년에 선보인 작품은 신한류와 세계의 융합을 만남에서부터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비유했다. 신한류라는 콘셉트에 담긴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서 전통 혼례를 올리는 여성상을 화단으로 연출했다. 당시 다양한 시각 자료를 찾아보며 가장 한국적인 여성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힘썼다고 한다. 또한 매력적인 전시 조경의 콘셉트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7년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는 ‘꽃으로의 초대’를 테마로 각기 다른 소주제를 가진 2개의 화단을 이어주는 알록달록 정원을 조성했다. 높이가 점점 작아지는 10개의 아치는 꽃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고, 플라워 볼과 조명 볼을 통해 꽃들의 품속에 안긴 것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야간의 은하수 조명과 조명 볼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는 팬더믹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하여 인천광역시(계양공원사업소)에서 발주한 ‘인천시청 앞 애뜰광장 사계절 꽃이 피는 시민들의 뜰’ 조성사업을 수주하여 시공하였다. ‘시민의 사계 with 꽃길’이라는 주제로 7개의 화단과 조형물이 포함된 포토존을 만들었다. 각 화단에는 데이트로 설레는 봄, 한여름 밤의 꿈, 코로나19 극복 등 다양한 테마를 주제로 화단과 조형물을 연출했다. 계절별 다양한 수종을 즐길 수 있도록 1년간 총 4회 식재와 즉각적인 보식, 유지·관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길을 밝히는 등대의 이미지를 활용해 ‘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는도시 브랜드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이를 위해 본관 계단에는 한국 최초의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를 연상시키는 조형물과 함께 등대 모양의 화단을 연출했다. 현재 일진글로벌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축적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방면으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 ‘가드닝’과 ‘풀멍’이 2022년 트렌드로 부상 중인 만큼 조경이 필요한 사업 분야에서의 협업과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조형물 설치뿐만 아니라 임대 서비스 사업도 진행 중이다. 쾌적한 삶을 위한 토탈 솔루션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글 금민수 사진 일진글로벌 TEL. 032-566-6611 WEB. www.iljinglobal.co.kr
  • [PRODUCT] 도심에서 즐기는 스마트 힐링, 스마트 티하우스 IoT 기술로 만든 쾌적한 휴식 공간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기술 중심으로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스페이스톡이 공간 디자인에 I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휴게 공간을 출시했다. 스페이스톡은 2002년 설립 이후 조경 시설, 놀이 시설 등 다양한 시설물을 제작해왔으며, 지난해 스마트 공간 솔루션 ‘넥스트톡Nexttalk’을 선보였다. 넥스트톡은 각 공간에 스마트 기술을 융합한 라잇플Life+(휴게 공간), 핏플Fit+(운동 공간), 플레잇플Play+(놀이 공간) 솔루션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라잇플은 편안한 휴식 생활을 지원한다. 특히 스마트 티하우스는 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스마트한 힐링 공간이다. IoT 기술을 바탕으로 쾌적한 실내 휴게 환경을 구현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도심 속 문화 커뮤니티 공간의 가치를 더한다. 탑재된 스마트 에어 센서는 실내 공기 질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스마트 에어 커튼은 미세먼지를 차단한다. 스마트 그린 월은 식물 기반의 친환경 공기 청정기 역할을 한다. 또한 유용한 정보와 더불어 휴식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스마트 글라스를 통해서 재생되는 미디어 콘텐츠와 터치를 통한 별풍선 터뜨리기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시간별 맞춤 오디오 재생을 통해 여유롭게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다. 날씨, 뉴스, 광고 등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디지털 디스플레이도 이용 가능하다. 이 모든 기능은 스페이스톡 통합 제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 스마트 티하우스의 기술은 다양한 휴게 공간에 적용된다. 등·하교 시 안전하게 차량과 학부모를 기다리는 스마트 키즈맘 스테이션, 냉·난방 조절과 미세먼지 차단 기능을 갖춘 스마트 버스 정류장, 주차장 쉼터와 같은 스마트 셸터, 스마트 북카페·키즈 셸터 등 쾌적한 휴게 공간이 필요한 곳에 모두 활용 가능하다. TEL. 02-525-3274 WEB. www.spacetalk.co.kr
  • 캄 칼란데 우승민, 2022 영국왕립원예협회 사진 공모전 수상
    2022 영국왕립원예협회 사진 공모전 지난 4월 1일, 2022 영국왕립원예협회 사진 공모전(RHS Photographic Competition, 이하 RHS 사진 공모전)의 수상작이 발표됐다. 1804년 창립된 영국왕립원예협회는 정원·원예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왕립원예협회가 주관하는 RHS 사진 공모전은 정원 가꾸기와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작품 접수 비용을 받지 않고 사진 촬영 기종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참여 부문은 매년 조금씩 변한다. 올해에는 정원, 야생 식물, 식물, 매크로, 창의성, 실내 가드닝, 소셜 미디어, 11~17세, 11세 미만, 포트폴리오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캄 칼란데 실내 가드닝 부분에서 2위를 차지한 우승민의 ‘캄 칼란데(Calm Calanthe)’는 국립세종수목원 난과식물전시온실에서 촬영한 새우난초 사진이다. 우승민은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 마음에 희망의 빛이 스몄다. 도심 속 일상에 자리한 수목원, 그곳에 꽃이 있고 행복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우승민은 RHS 사진 공모전의 3년 연속 수상자가 됐다. 그는 2020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거울연못을 촬영한 ‘드리미 모닝Dreamy Morning’으로 기념 정원 부문 2위, 2021년 양평 산나무 테마공원 두메향기에서 산부추를 촬영한 ‘트윙클링 앨리엄Twinkling Allium’으로 식물 부문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 이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