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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의 여운을 누리는 쉼의 장소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 시간의 정원
    갑갑한 건물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미술관이 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1986년 완공된 과천관은 너른 대지 위에 펼쳐진 산세와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됐다. 과천관을 설계한 김태수(TSKP 스튜디오 파트너)는 능선 위에 단과 3개의 둥근 기하학적 요소를 놓아 산과 조화를 추구한 건축물의 구조뿐 아니라 미술관 진입로에서 건물 입구까지 걸어가는 과정에서 자연과 마주하는 경험을 중시했다. 이러한 경험은 미술관의 최고층인 옥상에서 절정에 이른다. 과천관 옥상은 미술관 내외부 공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장소다. 중심부에서 2층의 원형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탁 트인 외곽부로 과천의 수려한 자연 풍광이 펼쳐진다. MMCA 과천프로젝트는 자연 속에 자리한 과천관의 특수성을 살리고 야외 공간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공간 재생 프로젝트다. 2021년 과천관 세 곳의 순환 버스 정류장에 조성된 ‘예술버스쉼터’에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인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은 미술관의 옥상정원을 새로운 경험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옥상 공간을 예술·생태적으로 재생해 주변 자연을 즐기고, 미술관에서의 미적 경험을 야외 공간의 자연 속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예술적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시간의 정원 국내 디자인 및 건축, 미술 관련 학계 등을 통해 18팀의 작가를 추천받아 1차 심사를 거쳐 정해진 다섯 팀 중 이정훈(조호건축)의 ‘시간의 정원(Garden in Time)’이 옥상정원 프로젝트 설치작으로 선정됐다. 시간의 정원은 직경이 39m에 이르는 열린 캐노피 구조의 대형 설치 작품이다. 지붕과 옆면의 경계에 위치한 4개의 원형링이 서로 다른 각도로 교차하며,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자연 풍광이 오롯이 드러난다.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수많은 파이프의 배열은 공간에 리듬감을 더하며, 점점 높아지는 구조물이 만든 공간감을 따라 관람객을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곳으로 유도한다. 이 곳까지 걸어가는 과정에서 관람객은 다양한 조각적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시간의 정원은 과천관을 둘러싼 드넓은 자연을 더욱 극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관람객의 시야를 조율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동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정원에 투영되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는 ‘자연의 순환’, ‘순간의 연속성’, ‘시간의 흐름’ 등을 시각화하며 자연의 감각과 예술이 공명하는 시공간을 펼쳐낸다. 작가는 최소한의 물리적 구조물로써 비물질적인 자연의 감각을 현현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새롭게 빚어냈다. 자연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빛, 바람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정원은 빛, 그림자, 바람 등 공감각적 요소의 변화가 관람객과 조우하여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리듬을 담은 공간화된 시간이자 시간을 품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공간을 걸어 다니는 관람객 행위의 시간도 더해진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옥상정원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경험의 장소로 변모한다. 미술관 초입부에서 입구까지 이르는 길의 감각, 작품 감상 후의 여운, 좁은 나선형의 램프 길을 돌아 마주하는 탁 트인 전경의 느낌 등이 옥상정원을 거니는 동안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미술관에 머물었던 시간의 층위가 쌓이고, 장소의 경험이 겹쳐진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향하여
    인터뷰란 장르를 좋아한다. 상대를 칼 없이 칼자루만으로 손쉽게 제압하는 무사처럼 내공을 갖춘 인터뷰어의 질문과 눈을 감은 채로 상대를 감지하고 급소를 찌르듯 깊은 철학과 사유가 돋보이는 인터뷰이의 대답이 오가는 인터뷰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재밌다. 사무라이 영화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눌 때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느린 화면처럼 마음이 동해 잠시 읽는 것을 멈추게 만드는 문장은 일종의 화룡점정에 가깝다. 독자로서의 즐거움도 있지만 때때로 활자(?) 노동자로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을 찜해두는데, 최근 발견한 인물은(가상 인물이라서 불가능하겠지만) 바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이름이 같은 우영우 변호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로서 서울대학교와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으며, 현재는 대형 로펌 한바다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중이다. 읽었던 모든 것을 기억할 정도로 영민하고, 하루 종일 고래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고래를 좋아한다. 쌩쌩 돌아가는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혼자서 생수병의 병뚜껑 따는 것을 어려워한다. 다소 엉뚱하고 조금 부족한 면도 있지만 변호사로서의 태도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돈보다는 법 앞에서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하고 의뢰인의 심정과 상황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변호사다. 이런 인물이 실존한다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서사보다 그가 직업인으로서 가진 귀한 마음가짐에 주목하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채널 ‘미션잇(Missionit)’을 알게 됐다. 이 채널의 미션잇 인사이트 인터뷰 시리즈는 휠체어 댄서, 역사 교사, 발레리나, 유튜버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장애인을 인터뷰한다. 영상을 통해 그들의 직업에 대한 관점과 철학을 비롯해 장애에 관한 통찰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짧은 인터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인터뷰이들은 공통적으로 장애라는 특성에 주목하는 대신 자신에 가진 강점에 집중하고, 업에 대해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유튜브 채널 ‘함박TV’ 운영자 함정균은 휠체어 이용자로서 직접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환승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보여줌으로써, 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환승역 엘리베이터 위치 등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 시각 장애인 역사 교사 류창동의 장애에 대한 명쾌한 해석도 인상적이었다. “장애인을 낯선 사람, 나와 다른 세계, 다른 생각, 다른 이상을 사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장애로 인해 방법이 다를 뿐 결국 방향은 똑같은 사람이다.” 이번 호에 소개한 모두의 놀이터 원고를 읽으며 저 문장을 떠올렸다. 결국 통합놀이터의 본질은 다른 방법을 가진 이들을 같은 방향으로 모으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한계도 있다. 현실적으로 아직 모든 장애 유형의 어린이가 놀기에 부족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김연금 소장이 주장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 환경을 도시적으로 구축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놀이터가 조성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놀이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놀이터의 본질을 바라보는 다양한 언어가 생겨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런 세상이 온다면 굳이 통합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놀이터에서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노는 게 낯선 게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비 온 후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한 가지 색깔만이 빛날 때가 아니라 일곱 가지 색깔 모두가 함께 빛날 때다. 무지개 끝에 도달하면 보물이 있다는 전설처럼 부디 미래에는 어린이들이 차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 같은 놀이터에서 재미라는 보물을 찾을 수 있기를 꿈꿔본다. [email protected]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L과 함께한 3일 중 반나절을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데 썼다. 사실 거짓말이다. 실제로 문답을 나눈 건 세 시간이 채 못 된다. 적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글이 아닌 경우, 이런 식으로 약간의 부풀림과 허영을 섞어 쓰곤 한다. 더 극적이고 흥미롭게 읽히니 말이다. 늘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라고, 풍미를 더하는 조미료 같은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날의 대화도 비슷했다. 우리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실패를 이겨낸 경험이 있나요. L의 답변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히 오갔다. 면접 준비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일련의 물음에 답할 때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을 예시로 들면, 장점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단점은 신중히 골라야 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설명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어떻게 극복하려고 애쓰는지가 핵심이다. 일을 마감까지 미루다 한꺼번에 해치우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계획표를 짜고 그 과정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같은 식으로. 실패를 이겨낸 경험담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넓지 않은 세월의 밭에서 적당한 소재를 골라 도마 위에 올려놓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미없어 보이는 부분을 자르고 양념해 조리하다 보면, 조별 과제 분투기가 건국 신화처럼 거창해지기 일쑤다. 공장처럼 자기소개서를 찍어내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열 편 정도는 회사 특성에 맞춰 공을 들여 썼지만, 낙방이 거듭되니 계속 이 작업을 반복하다간 정신이 고장나겠구나 싶었다. 취업 시장에서 높게 평가하는 틀에 맞추어 내 이야기를 다듬고 깎아내다 보면 어느새 나와 닮았지만 똑같진 않은 제2의 인물이 글 속에서 활보하고 있었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처럼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들여다보고 있자면 발가벗겨진 채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에 빠지게 했다. 그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만능 ‘자소설’(자기소개서와 소설의 합성어)을 하나 만들고, 때에 따라 조금씩 바꿔 썼다.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음은 덜고됐고, 90퍼센트의 진실에 10퍼센트의 거짓을 더한 글은 나를 지금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자소설은 이제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뜻을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익숙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A4 한 장 반도 채 안 되는 이 지면을 채우려고 추악한 옛 자기소개서를 꺼내 봤다. 얼굴이 홧홧해지겠지 싶어 열을 식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와 심호흡을 두어 번 한 후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거기에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나은 나, 언젠가 꼭 닿고 싶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거짓의 농도를 조절하려 애쓴 흔적을 발견하면 좀 창피하기는 했지만 웃음이 났다. 영화 ‘만추’의 대사 “왜 남의 포크를 써요?”를 인용하며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온 외침을 터트리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구절에서는 이때가 좀 그립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에 다다르자 조금 씁쓸했다. 자소설 속 나의 모습은 아무 의미 없는 가짜일 뿐인가. 며칠 뒤 TV에서 흘러나온 대사 때문에 휴대폰 액정에 머무르던 시선을 브라운관에 빼앗겼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드라마 ‘안나’) 마음속에 적어둔 질문에 대한 마땅한 답은 아니지만, 이 문장이 위로처럼 다가왔다. 자전적 소설을 써온 필립 로스의 책을 다수 번역한 정영목은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소설을 쓴다. 뒤집어 말하면, 소설로 쓰지 못한 일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1이라고 말한다. 자소설 쓰는 일 역시 자기 성찰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다. 늘 부족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나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 서사를 부여하는 일은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잊고 있던 바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휘청거리는 나를 바로 세워준다. 또 가끔 허상에 기대는 일은 지친 몸을 일으키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골똘히 들여다본 내 안의 이야기와 이를 정리한 글이 서류 탈락의 고배에도 나를 성장시키는 작은 발판이 되었다고 믿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이 글에도 90퍼센트의 진실과 10퍼센트의 거짓이 섞여 있다[email protected] 각주 1. 정영목,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문학동네, 2018, p.25.
  • [COMPANY] 다원녹화건설 조경의 경계를 넘어 끝없는 진화를 꿈꾸는 기업
    다원녹화건설은 1992년 설립되어 비탈면 녹화 공사, 보강토 옹벽 공사 등 생태 환경 복원을 통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국토를 만드는 데 힘써왔다. 특히 2007년 개발한 ‘코매트(Co-mat)’는 성토와 절토로 인해 생긴 비탈면을 친환경적 방식으로 녹화하는 법을 제시했다. 자연 분해성 섬유를 이용해 기반재의 응집력과 근계 발달을 유도하는 이 공법은 건설신기술 제461호, 환경신기술 제158호에 등록되어 다원녹화건설의 기술력과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수익성이 높아 회사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녹화 사업은 조경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은 편이다. 김용각 회장(다원녹화건설)은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했고,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대중 대표를 불러들였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략기획실을 꾸려 현재를 점검하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일이었다. 다원녹화건설의 역량과 강점, 시장 환경 등을 분석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조경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객관적인 눈으로 회사를 바라보게 했다. 6개월에 걸친 수차례의 검토 끝에 내놓은 답은 신사업으로의 확장이었다. 김대중 대표는 “기존의 환경 복원 사업이 조경과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 확장을 결심했다. 더불어 기존 시공 중심의 사업 영역에서 밸류체인(value chain)을 어떻게 넓힐지 고민했다. 방법은 크게 조경 시공의 전 단계로의 확장과 후 단계로의 확장으로 나뉜다. 특히 전 단계로의 확장은 원자재 생산에 해당된다. 그런데 조경은 살아 있는 식물을 다루는 분야다. 식물이 정해진 규격에 맞춰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보니 농작물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변동이 심하다. 넓은 수목 농장과 수목을 관리하는 시스템, 노하우를 보유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목을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갖추는 편이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매출 규모 자체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꾀하고, 구매 협상권을 갖추는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사업 확장 이후 다원녹화건설은 매출과 규모 면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이에 주변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수목 하자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김대중 대표는 “보통 완공 뒤 2~3년 지난 시점까지 하자에 대한 의무가 주어진다. 2018년에 본격적으로 주택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는데, 2020년부터 하자가 발생한 현장이 누적되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장 수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유지·관리에 미리 신경을 써둔 덕분에 그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다원녹화건설에는 나무의사와 경력이 많은 소장급의 직원 8명으로 구성된 CS팀이 있다. 이들은 건설사, 관리사무소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뿐 아니라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힘쓴다. 현장을 직접 오가며 하자율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이를 매뉴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지만, 하자가 발생한 후 수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사업을 확장하고 급격하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던 이유는 낮은 하자율 덕분이다.” 김대중 대표는 다원녹화건설의 가장 큰 강점으로 ‘사람’을 뽑는다. 그는 “최근 조경학과를 졸업한 학생도 조경 일을 하지 않으려하고, 조경으로 진로를 결정한 사람들도 시공 회사를 제일 후순위에 두곤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원녹화건설을 택한 직원들을 귀하게 여기고, 열심히 훈련시켜 우리만의 색을 입히고자 노력한다.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직원 개개인의 특성을 깊이 파악하고, 어떤 면이 장점이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정확히 지시해주려고 노력한다. 더불어 고정된 팀을 운영하는 대신 서로 부족한 면을 보완할 수 있는 직원들로 구성된 팀을 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한다. “책이나 매뉴얼로는 공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프레젠테이션 능력, 현장에서의 지휘력, 건설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체득할 수 있도록 팀구성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다원녹화건설은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열어 다원녹화건설을 함께 만들어 온 임직원과 그 걸음에 함께해준 협력 업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성공을 거둔 만큼 쉬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김대중 대표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에 나를 맞추기 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데 더 쾌감을 느낀다. 그만큼 어려운 일들을 겪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얻는 성취감이 더 크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개발 사업을 차츰 진행하고 있다. 늘 건설업에서 맨 마지막 단계에 진행되는 조경 시공을 하며 겪은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이 사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발주처가 무시할 수 없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현재 신사업을 기획 중인데, 조경뿐 아니라 더 넓은 범위에서 그 대상을 찾고 있다. 업의 영역과 틀을 깨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글 김모아 사진 다원녹화건설 TEL. 02-539-8344 WEB. dawonland.co.kr
  • [PRODUCT]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쓰는 야외 운동 기구
    비장애인에 초점을 맞춘 야외 운동 기구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디자인파크의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공원 BF인증 기준에 부합해 야외 운동 기구에 소외됐던 장애인에게 운동의 기회를 제공한다. 비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며 장애인용 운동 기구와 함께 일반형 운동 기구를 조합해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는 휠체어 규격에 맞춘 설계로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재활자 등 휠체어 이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요 색인 파란색은 물체를 가볍게 인식하게 만들어 운동의 부담을 덜어주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운동 기구와 연결된 포스트 양쪽에는 안내판이 부착되며, 포스트 측면의 PC패널에 다양한 문양, 로고 등의 이미지를 삽입할 수 있다. 안내판의 경우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위치와 문구를 설정했다. 또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주변이 어두워지면 포스트 상부의 LED가 점등되도록 했다. TEL. 1577-0343 WEB. www.designpark.or.kr
  • 조경이 콘텐츠인 미술전의 실험, 인공자연 전 안동혁 HLD 소장 인터뷰
    우리가 마주하는 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미지다. 최적의 콘셉트를 꺼내기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 하나의 선을 도출하기 위해 그린 곡선과 직선, 마우스와 키보드로 만든 수많은 도면. 이 같은 중간 작업물들은 최종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한 여정에서 쉽게 사라지곤 한다. 하지만 안동혁(HLD 소장)은 설계 과정에서 탄생한 이미지들에 주목했다. 그는 “원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설계에서 정말 과정이 중요하다. 이미지를 설계 최종 단계의 레프리젠테이션을 위해 만드는 방식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중간 과정으로서 이미지 작업의 효용 가치 또한 높다. 설계안이 좋은 공간으로 구현될 것인지 검토하기 위해, 또는 공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판단하고 보완하기 위해 이미지 작업을 하기도 한다. 실 제로 좋은 공간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카메라를 향해 도 좋은 사진이 나온다. 설계로 구현하고자 하는 공간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5일까지 삼청동 가모갤러리에서 열린 안동혁의 개인전 ‘인공자연: 그리고 그 무대의 뒷편’은 중간 작업물의 가치를 보여주는 전시다. 2006년부터 2022년까지의 작업물은 안동혁이 디자인 행위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인공의 자연을 만들어왔는지 보여준다. 통념적 자연 또는 조경의 이미지와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는 인공적 결과물, 완성된 현실의 공간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작업물,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한 중간 작업물과 예술적 영감을 현실화하기 위한 스터디 작업물까지 다양한 층위의 작품이 전시됐다. 그는 인공자연 전을 “조경이 콘텐츠인 미술전의 실험”이라고 표현한다. 인공자연이란 무엇이고, 그의 실험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아직 한낮의 햇볕이 뜨겁지 않은 6월의 어느 날, 안동혁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인공자연 전의 초석은 오래 전부터 놓여 있었다. 안동혁은 조경 설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중간 과정물이 회화나 조각 같은 미술 전시의 콘텐츠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여러 사람과 논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운 좋게도 그 자리에 함께한 가모갤러리의 관장이 이전에 하지 않았던 독특한 전시가 될 것 같다며 초청 전시를 제안했다. 원대한 비전을 품고 기획한 전시는 아니었지만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안동혁은 “조경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는 대중과 조경의 접점이 생겼다는 점이 큰 의의다. 전시 중 일반 관람객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조경이 이런 것도 하는 줄 몰랐어요’였다”며 “이번 전시가 미약한 시작이지만 전문 조경인과 일반 대중 사이의 연결고리, 조경과 미술 두 영역의 연결고리로 기능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 천리포수목원 민병갈 추모정원 민병갈의 길, 설립자와의 동행을 콘셉트로 재조성
    고 민병갈(Carl Ferris Miller)이 설립한 천리포수목원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식물종(2022년 5월 기준 16,840분류군)을 보유한 수목원이다.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민병갈은 1962년 우연히 천리포에 방문했다. 그 곳에서 만난 마을 주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땅을 매입한 일을 계기로 한국 최초의 사립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을 만들게 된다. 1979년에 한국으로 귀화했고 식물 보존과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쳐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라 불렸다. 그는 식물들의 피난처를 마련해 천리포수목원을 인간 중심이 아닌 공간, 식물들의 천국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2002년 민병갈이 별세한 후에도 천리포수목원은 그의 철학을 이어 받아 식물 중심의 수목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그를 기리는 민병갈 추모정원을 조성했다. 지난 2022년 4월은 민병갈 서거 20주기였다. 이를 맞아 KB금융그룹의 후원을 받아 민병갈 추모정원을 1,080m2의 면적으로 재조성했다. 2021년 12월부터 수목원 임직원 의견 수렴, 외부 전문가 자문을 진행하고 2022년 2월 중순 설계를 완료해 4월 6일 공사를 마쳤다. 민병갈 추모정원은 천리포수목원의 밀러가든(Miller Garden) 중심부에 위치한다. 주변 공간과 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모티브를 얻어 ‘민병갈의 길, 설립자와의 동행’이라는 콘셉트의 정원을 조성했다. 민병갈의 나무 공간, 추모 공간, 휴게 공간을 거닐며 식물을 감상하고 때로는 쉬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식물이 행복한 공간’을 꿈꿨던 민병갈의 뜻을 잇기 위해 식물이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수목원을 만들고자 힘썼다. 대상지의 지형, 토양, 향 등을 분석해 추모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식물을 선정하고 시간이 지나도 잘 자랄 수 있도록 식재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 월간 『환경과조경』 창간 40주년 기념 조경비평상 가작: 거리에 대한 권리 철거된 ‘르네상스 호텔’과 공개공지, 그리고 이우환의 ‘관계항’
    들어가며: 비非–건폐지라는 언어 거리는 대화의 수단이다. 어떤 간격으로부터 생산된 공간은 기호나 음성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발화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인간이 대화에 있어 상대와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각주 1)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사이 공간은 ‘침묵의 언어’로, 사람은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을 비롯한 여러 감각 기관을 동원해 거리와 공간이 담고 있는 정보를 인지하며, 그것을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이는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인공적으로 생산된 사물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도 활용됐으며, 인간의 정주 환경을 구성하는 도시 공간의 적정성을 분석하는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예컨대 도시를 이루는 길과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건폐지는 현대 도시가 지녀야 할 공공성에 대한 발화들이 전개되어온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었다. 한국 도시가 이 같은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근래의 일로, 그 구사력의 수준은 도시를 구성하는 외부 공간의 질을 평가하는 주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대상: 역삼동 231번지의 공개공지 2021년 1월, 테헤란로 한가운데 조성된 거대한 공개공지는 ‘한 세대를 거친 공개공지 제도가 현 시점에서 어떤 종류의 진전을 보여주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역삼 센터필드’(2021)가 들어선 테헤란로 231번지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르네상스 호텔’(1988)이 있던 곳이다. 30여 년의 터울을 두고 다른 제도 조건 아래 세워진 두 건물의 대지 점유 방식은 매우 대조적이다. 그 차이는 공개공지에 철거된 호텔의 외벽 일부와 그 경계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개공지 의무화 전, 올림픽 개막에 맞춰 준공된 르네상스 호텔은 고층으로 갈수록 면적이 줄어드는 형태로 설계되어 상하층의 면적 차이에 따른 몇 개의 옥외 공간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기법은 비슷한 시기 서울역 앞에 세워진 ‘게이트웨이 타워’(1991)와 르네상스 호텔 맞은편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상록회관’(1991)에도 나타난다. 승효상은 상록회관과 르네상스 호텔의 코어(승강기, 피난 계단 등으로 구성된 수직 동선)를 중심으로 저층부까지 여러 겹의 켜가 중첩되는 형식이 지닌 제스처가 당시 백지 상태였던 테헤란로 주변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테헤란로에 들어선 건물들은 공개공지의 설치 의무화라는 새로운 제도적 조건 아래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달라진 거리와 공간은 전보다 높은 수준의 공공성을 구현하게 됐는가, 아니면 기존에 지니고 있던 모종의 공공적 가치를 훼손했는가. 이 질문은 곧 각 건물이 생산한 도심 내 외부 공간을 보행자와 시민이 얼마나 자유롭게 전유할 수 있는지, 그로써 이루어지는 ‘침묵의 대화’가 얼마큼 풍요로울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물음에 대한 답은 공개공지 제도의 출처와 한국에 도입된 배경의 간극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공개공지 제도는 뉴욕의 ‘조닝 레볼루션’(1960)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도 입안자는 그로부터 이 년 전 완성된 미스 반 데 로에의 ‘시그램 빌딩’을 통해 국가 기관뿐 아니라 사적 소유의 대지와 건물 역시 공공 영역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시그램이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다른 건물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지점은 완결된 입방체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지 않았다고 보았다. 미스는 전체 대지 중 건물 전면의 상당 면적을 비워둔 채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광장으로 계획했다. 이는 대지 대부분을 건물로 점유하고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좁아지면서 테라스를 형성하는, 소위 웨딩 케이크 형태의 건물과 시그램 빌딩의 가장 큰 차이였다. 이후 뉴욕에는 실외뿐 아니라 실내에도 수많은 공개공지가 설치돼 도시 환경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그램과 웨딩 케이크의 차이는 곧 공개공지 제도가 도입되기 전 준공된 르네상스 호텔과 그 이후의 건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간극과 같은 것이다. 승효상의 말처럼 저층부의 더 많은 대지를 점유함으로써 만들어진 옥외 공간이 도시 가로에 기여하는 하나의 ‘켜’로 기능하려면, 그로부터 보행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충분한 접근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반대의 경우 이는 단지 내부 공간의 질을 제고하는 장치이며, 공공 보행로에 밀착된 거대한 담장으로 세워질 뿐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승강기와 계단 등 수직 동선이 건물 중심부에 위치해 테라스로의 직접적 접근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내부를 경유해야만 하는 르네상스 호텔이 주변의 도시 가로와 보행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은 특별히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사정 또한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동안 한국 도시에서 건물 상부의 옥외 공간은 위험한 차도와 거대한 건물로 과밀해진 서울에서 공원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 장소로 여겨졌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도심 내 외부 공간에 대한 조경계의 논의 또한 ‘옥상 공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2 김수근 역시 1970년대 여의도 마스터플랜의 보차 레벨 분리 계획과 세운상가의 공중 보행로 등 도심지 대단위 개발 계획을 통해 입체화된 도시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구상들은 국가의 재정적 한계로 인해 번번이 계획안으로 머물렀다. 결국 도심지 외부 공간의 개편은 개별 필지 단위의 민간 개발을 통해 공개공지라는 전혀 다른 양상과 목적 하에 이루어졌으며, 그 배경에는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이라는 국제 스포츠 행사가 있었다. 아시안게임을 앞둔 군부 정권은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도시 미관을 국제적 수준으로 정비할 것을 지시했고, 당시 서울시가 발주한 ‘서울시 주요 간선도로변 도시설계안’은 한국 도시에 적용된 공개공지 제도의 모태가 됐다.3 외부인에게 가장 노출이 많았던 길목인 을지로와 마포 일대에 집중적으로 각종 면세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필지 단위의 재개발이 일어났다.4 이 시기 『환경과조경』은 ‘빌딩조경’5 섹션에서 도심 내 비–건폐지를 다뤘는데, 당시 공개공지 조경 설계는 대부분 기본 배치 계획 이후 사후적 개입에 머물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때 현대적 도시 경관이라는 외양은 사유지의 공유와 이를 누릴 시민의 권리보다 우선되는 가치였다. 이후 3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조성된 공개공지의 모습은 도시 공간의 주인으로서 시민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이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거대한 조형물 또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입구가 폐쇄되고 주차장과 영업장으로 점유된 공개공지에서 시민들이 머물 자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오랜 기간 지속되었고, 르네상스 호텔 철거 이후에 대한 기대는 이를 해결하는 데 있었다. 분명한 건 압도적 규모의 공개공지에 의해 과거 호텔의 옥외 공간이 차지했던 대지의 상당 부분이 보행자가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건 여전히 검은 양복을 입은 관리 요원들에 의해 통제된 행동만이 허가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센터필드의 공개공지에서 자전거를 끌고 걷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행위는 제재 대상이다.6 서울은 또 하나의 그럴듯한 도시 경관을 얻게 됐지만, 공공 공간에 대한 관심과 관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건물이 얻는 용적이나 높이의 혜택에 비해 공개공지가 도시 가로에 기여 하는 바는 아직 미약하다. 사유지의 일부로 만들어진 이 장소에 대한 권리가 시민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라는 인식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에드워드 홀, 최효선 역, 『침묵의 언어』, 한길사, 2013. 2. 민현식, “생활하는 장소로서의 옥상조경”, 『환경과조경』 1984년 10월호; 윤승중 외, “옥상조경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책. 3. 강병기, “이달의 건축환경문화 작품해설”, 대통령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 2006년 9월. 4. 박정현, “올림픽 파사드: 체면, 가면, 입면”,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국립현대미술관, 2021. 5. 황기원, 이규목 외, ‘빌딩조경’, 『환경과조경』 1987년 5월호. 정영선의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6건의 빌딩조경 사례를 소개한 전후로 약 2년간 12개호에 걸쳐 빌딩 외부 공간을 다뤘다. 6. 건축비평가 이언 보든(Iain Borden)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을 비지배적 공간 전유의 한 예로 들었다. …… 지배 세력은 이윤지향적 이용의 논리, 동질화의 목표, 도시 공간의 통제라는 맥락에서 개인의 저항적인 이용을 특히 ‘스케이트 스토퍼(skatestopper)’라는 형태로 저지하려고 한다. 우베 레비츠키, 난나 최현주 역, 『모두를위한 예술?』, 두성북스, 2013. 정평진은 건축 전문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여러 매체에 도시와 건축에 관한 글을 쓰며 설계경기 아카이브 ‘스코어러(scorer)’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 2022 조경비평상 심사평
    창간 40년을 기념해 월간 『환경과조경』이 주최한 ‘2022 조경비평상’에는 네 편의 평문이 제출됐다. 지난 6월 2일 본지 세미나실에서 남기준 편집장, 박승진 편집위원, 배정한 편집주간이 독회를 가지며 심사한 결과, 정평진의 응모작 “거리에 대한 권리: 철거된 ‘르네상스 호텔’과 공개공지, 그리고 이우환의 ‘관계항’”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했다. 비평은 일상의 글이나 논문과 다르며 게다가 조경비평은 조경이라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공간 또는 현상을 예리하게 기술, 해석, 평가하는 작업이므로 꽤 어려운 글쓰기 장르다. 하나의 조경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덩그러니 놓인 중성의 물체가 아니다. 작품을 생산한 설계자와 설계 작업의 과정, 작품이 구현되는 장소의 성격과 맥락, 장소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환경, 장소에 쌓인 시간과 역사, 공간을 쓰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 당대의 라이프스타일과 미감, 이 모든 것과 얽혀 있는 공간 정치 등이 뒤엉켜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 편의 글에서 이 모든 것을 다 포착해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달리 말하자면, 구체적인 주제와 선명한 관점, 일관성 있는 논리 전개와 고유한 주장이 있어야 비평의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에 응모한 네 편의 원고는 예년에 비해 글쓰기의 수준과 글의 완성도는 매우 높았지만 주장하고자 하는 논점을 명료하게 끌고 나가지는 못했다는 점에 심사위원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럼에도 정평진의 응모작은 “가장 이야기다웠고”(박승진) “대상이 구체적이며 글 전체를 이끄는 구성력과 선명한 문제의식이 있었으며”(배정한) “비평의 목적 자체가 분명했다”(남기준)는 점에서 가작으로 선정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글이 일관되게 이야기하듯, 거리는 도시의 대화 수단이다. 도시를 이루는 길과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식의 비–건폐지는 도시의 공공성에 대한 발화가 전개되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다. 정평진의 평문은 비–건폐지를 대표하는 공개공지의 한국적 현실과 과제를 철거된 르네상스 호텔과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선 공개공지라는 구체적 대상을 통해 추적하고 발견한다. 수상자에게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한국 조경의 최전선을 이끌어갈 비평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가작 수상작과 경합을 벌인 응모작은 임한솔의 “과거로 짓는 내일의 공원”이었다. 이 글은 “공원 위에 공원을 그리는 일”, 즉 최근의 공원 리모델링 프로젝트들을 둘러싼 다각도의 이슈를 짚는다. 심사위원들은 보존과 활용을 가로지르는 미묘한 논제를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기술한 것이 이 글의 미덕이라고 보았으나 결론부의 주장이 약해 기사처럼 읽힌다는 점을 아쉽다고 평가했다. 전효정의 “랜드스케이프 없는 랜드스케이프아키텍처: 경관에 무관심한 조경 설계 태도”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다루고 있으나 그 연결고리가 충분치 않고 예증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삭의 “맵(map)과 신(scene) 사이: 생성적 평면을 넘어 관계적 입체를 향하여”는 글의 전개를 뒷받침하는 논거가 튼튼하지 않아 논리의 비약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수상하지 못한 세 응모자 역시 예비 비평가로서 부족함없는 자질과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심사위원 모두 공감했다. 다음 ‘조경비평상’의 문을 꼭, 다시, 두드릴 것을 권한다. [email protected]
  • [기웃거리는 편집자] 리틀 포레스트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받는 질문이다. 가슴을 울린 명대사,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예상치 못한 반전, 여운을 주는 엔딩 등 좋아하는 이유를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영화도 있다. ‘리틀 포레스트’(2018)가 그렇다. 리틀 포레스트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고향 집에 돌아가 사계절을 보내면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다. 아버지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시골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던 혜원은 어느 날 빈집에 놓인 편지를 발견한다. “혜원이가 힘들 때 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돌연 떠난 엄마가 남긴 글을 보며, 자신도 이 시골을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며 집을 떠났지만, 서울 생활은 팍팍하기만 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으로 식사를 때우며 살아간다. 준비하던 임용고시는 떨어지고 함께 준비하던 남자친구는 시험에 합격한다. 지칠 대로 지친 혜원은 서울 생활을 뒤로한 채 고향으로 내려간다. 혜원은 고향에서 스스로 키운 작물들로 직접 제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 간다. 사실 리틀 포레스트는 보고 싶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018)이 막을 내려 엉겁결에 본 영화였다. 재미없진 않겠지라고 걱정한 게 무색하게, 암흑한 상영관의 조명이 켜지고 나서야 끝났다는 걸 깨달았을 정도로 푹 빠져있었다. TV에서 이 영화가 방영되고 있으면 시작 부분이 아니더라도 리모콘을 내려놓고 다시 보곤 한다. 재탕, 삼탕해도 여전히 지겹지 않다. 하지만 좋은 점을 설명할 길은 찾지 못했다.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왜 나의 인생 영화 목록 1위를 차지하게 됐는지 말하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답을 찾지 못해 커다란 벽 앞에 선 기분이었는데, 최근 숨겨져 있던 벽의 문을 찾았다. 얼마 전, 제3회 LH가든쇼가 진행된 인천 아라센트럴파크를 방문했다. 아파트 단지 틈새에 놓인 근린공원에 ‘대지의 주름, 자연의 물결’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 사이를 누비며 작가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정원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정원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정원을 살펴봐야 설계자의 의도가 보인다고 했던가. 인터뷰를 마치고 벤치에 앉아 정원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특히 최원만 대표(신화컨설팅)의 ‘자연의 물결’에 설치된 하얀 의자에 앉아 종이배 프레임에 담긴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하늘을 오랫동안 올려다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득해서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꽤 감격스러웠다. 잠깐이었지만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하늘을 보며 아무 걱정 없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주말에 영화를 보려고 넷플릭스를 켰다. 볼만한 콘텐츠를 한참 찾다가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봤다.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장면 속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혼자 있는 혜원을 위해 재하가 오구(개)를 데려와 준다. “조그마한 게 무슨 위로가 된다고……” 혜원은 중얼거리고 재하는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라며 오구를 남겨둔 채 집을 나선다. 고민이 많을 때면 종종 집 근처 산, 공원에 찾아가 풀멍(풀을 바라보며 멍때리기)을 한다. 고민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자연에 기대어 있다 보면 걱정에서 해방되곤 한다. 영화 속 장면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행복이 어디 숨었는지 알려주는 힌트 같았다. 이젠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 소소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우리 주변에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거든요, 그리고 저의 작은 숲이 되어주기도 해요.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