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PREV 2003 Year NEXT           PREV 09 September NEXT

환경과조경 2003년 9월

정보
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무료

기사리스트

좌담 ; 조경산학대전이 남긴 것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부천 상동지구 공무원 아파트
· 위치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2동(상동택지개발지구 내 13A, 18, 19 블럭)· 대지면적 : 13A블럭(25,085.57㎡), 18블럭(26,335㎡), 19블럭(23659㎡)· 조경면적 : 13A블럭(9,427.25㎡), 18블럭(8,001.03㎡), 19블럭(7,615.18㎡)· 세대수 : 13A블럭(5개동, 476세대), 18블럭(10개동, 670세대), 19블럭(8개동 581세대)· 발주 :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시공사 : LG건설(주)· 건축설계 : (주)무영종합건축(대표 안길원)· 조경설계 : 이림조경(대표 이윤호)· 식재 : (주)건림원(대표 윤오임, 현장소장 오창희)· 시설물 : 대경조경(주)(대표 김우경)· 준공일 : 2003년 8월 16일 백송마을 상록·LG 아파트(13A 블럭)백송마을 상록·LG 아파트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분양을 실시한 아파트이다. 따라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주로 짓는 임대아파트 보다 조금 넓은 33평형으로 계획되었다. 지하에 넓은 규모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상부의 주차면적은 넓지 않은 편이고, 아파트 동 사이의 간격이 넓어 상당한 면적의 녹지공간을 확보하였다. 전체 면적 대비 녹지 면적이 35%이상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다른 어떤 아파트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수치.상록·LG 아파트라 쓰여진 진입부(분양한 아파트이므로 입주민들이 건설사(LG건설)를 아파트 이름에 넣기를 희망했다고)를 따라 안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면 중앙광장이 나타난다.중앙광장은 4개의 공간으로 분할된 것처럼 보이는데, 가운데 소로를 두고 반원형으로 약간 솟은 녹지에 소나무가 심겨져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나머지 공간들 중 한곳은 장송들로, 한곳은 어린이 놀이공간으로 한곳은 쉼터가 있는 휴게공간으로 조성되어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어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건물 사이와 빈터 곳곳에는 작은 쉼터들이 조성되었다. 쉼터들은 나무 그늘이나 퍼골라 아래의 벤치들로 이루어져 담소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기에도 적당하다. 단지 외곽으로는 통나무 포장으로 된 산책로가 감싸듯 이어져 있고, 다른 단지와의 경계부는 담장이 아닌 수목의 터널로 휴식장소를 조성해 놓은 것도 특이한 점이다. 그리고 수경시설이 눈에 띄지 않는 점도 최근 지어진 다른 아파트들과의 차이점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대개의 아파트 단지 수경시설이 입주 후에는 가동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관리상의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목련마을 상록아파트(18블럭·19블럭)백송마을 공무원 아파트와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목련마을 상록아파트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임대 아파트(24평형)로, 한 세대 당 임대하는 기간은 4년이라고 한다. 18, 19 블록 모두 대상지는 직사각형 형태를 이루고 있어 중앙의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아파트가 배치되었고, 각 동 사이의 공간에 녹지가 마련되었다.역시 동 간격을 충분히 확보하여 비교적 많은 수목을 식재하였고, 나무 그늘 아래로 곳곳에 벤치를 마련하고 지피식물을 심어놓아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하게 한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임대 단지인 만큼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어린이 놀이시설을 곳곳에 배치하였다. 어린이 놀이터의 포장은 고무블럭을 이용해 안전사고를 줄이도록 했고, 모래밭 주위로는 가벽을 설치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화 캐릭터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려놓았다. 특히 그림은 만졌을 때 요철을 느낄 수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준다.같은 공무원 아파트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13A, 18, 19 블록의 아파트들은 모두 비슷한 분위기의 외부공간으로 조성되었는데, 비교적 넓은 녹지에 간간이 놓여진 대형목과 아래쪽의 쉼터, 잔디밭과 포장의 조화, 비슷한 형태의 퍼골라, 일자형의 벤치와 지피식재 등이 적당히 어울려 있는 모습이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젊은 조경가, 당신은 희망입니다
비개인 후, 강 건너 북한산을 바라보며차창 밖으로 반짝이는 햇살을 봅니다. 며칠 전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햇살 볼 틈도 없었나 봅니다. 비개인 후의 하늘은 청명하고 그 하늘 자락 끝, 저 멀리 북한산도 가깝게 보입니다. 평소에는 연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북한산이 한 눈에 잡힐 듯 보이는 비개인 하늘을 보며 글을 씁니다.어쩌면 곁에 늘 존재하는데도 연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북한산의 모습이 조경설계를 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사실 설계란 작업은 비개인 후 문뜩 보여지는 북한산만큼이나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그래도 그 흐린 날 속에서 빛을 내는 잠깐을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고생하는 이런 모습들은, 그 희열(?)감에 앞서 어쩌면 바보스러운 선택이 아닌지 모릅니다. 조경학과를 다니면서의 미래에 대한 염려나 갈등은 조경설계를 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계속되고 소위 소장이라는 이름의 대표자가 된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강약이 다르고 내용의 정도만 다를 뿐. 조화로운 삶보다 특별한 것을 위해그러한 갈등 속에서도 조경설계를 계속해온 이유, 그리고 계속하는 이유는 거창한 내용도 아닌 조금은 우직하고 소박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처음 조경을 시작할 단계의 업계 상황은 지금보다도 열악하여 조경설계란 식재설계가 전부인 것처럼 오식되어 소위 뺑뺑이 그리기를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의 거창한 미사여구와 치장과는 달리...그래서 오기가 생겼었습니다. ‘조경의 본때를 보여주자’ 라고.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터를 닦아 놓고 밑바탕이 되게 하리라고...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땐 작은 소망도 하나 더 있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도심지에 조그만 땅이라도 사서 멋들어지게 설계하고 멋들어지게 시공하여 조경가의 손으로 만든 작은 공원을 기증하여 조경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용하게 하는 그런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것들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바다가 거기 있어서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는 시공 위주의 회사였고, 설계실이라는 이름속의 설계쟁이는 많은 생각을 담아 표현해내고, 멋이라는 것과 씨름을 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습니다.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도 싫고 그런 풍토에 안주하려는 모습도 싫어 이런저런 것을 핑계 삼아 편하고 인정받을 만한 곳을 과감히 떠나기로 했습니다.주머니 돈을 탈탈 털어 사무실을 차린 곳은 부산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왜 사무실을 부산에 차렸느냐고. 내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바다가 거기에 있어서...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지만 그것이 사실이었고 그 외엔 별다름이 없었습니다.아무런 연고가 없었지만 부산의 생활은 멋보다는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일의 재미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오기로 시작한 도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오너의 무지에 대한 설득, 토목 전문가나 건축가와의 싸움(?), 공무원과의 한판(?), 직원들에게는 그들과의 싸움에서 절대 지지 말라고 호통도 치고 격려도 하고, 그 속에서 그래도 재미를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어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설계사무소 대표로 살아가기새삼스럽게 설계사무소를 내고 엔지니어링 협회에 등록하고 직원들과 토론하고 일을 하며 일과 연관된 사람들과 만나며 살아가기.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기분이 좋기 마련이지만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혼자서 판단해야 하고, 모두가 퇴근한 후 홀로 앉아 구상을 하기도 하고, 다 못한 일을 집에 가서 마져 하려고(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 도면을 둘둘 말아 들고 가기도 하고, 이번일 끝나면 어디 여행이나 가야지 하는 생각이 일에 치여 매번 밀리고.... 그리고 이러한 싫은 일들도 있고... 싫은 일 힘들게 하는 상황·이렇게 그려주십시오 하는 건축가의 주문·옥외 공간에 공간 이름 작명을 요구하는 주문·무슨 설계비가 그리 비싸냐며 경비도 안 되는 설계비 주는 이들·도면 납품 후 코딱지만한 설계비 반쯤 깍자는 이들·지난번 설계비 지금 줄테니 급히 도면 그려달라는 이들·저 이번달까지만 일하겠습니다 라는 젊은 조경가(?)·다시 일 할테니 월급 올려달라는 협상·다시는 조경안하겠다며 홀연히 떠나 숨어 살 듯 다시 조경하는 젊은 조경가(?)·이 회사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배우겠다고 하며 꼭 뽑아달라고 하더니 1년쯤 후 그냥 그렇게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는 이들·건축설계나 토목설계가들이 무진장 월급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매월 한차례 모여 자기 사장 소장 헐뜯고 욕하는 이상한 젊은 모임·자기 자신의 실력 향상을 위해 절대 투자를 안 하는 이·할일이 많은데 어쩔 수 없이 의뢰받은 일을 직원들에게 작업 설명하기·평소에 바쁘다고 전화조차 못한 채 지내다가 심의 교수명단 보고 찾아가야 할 때 그렇지만 묵묵히 자기일하고 밤일하며 힘들어도 내색 안하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입니다. 격주휴무하자 해놓고 그것을 빼앗는 내 자신이 밉습니다.모든 분야에서 나름대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조경설계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조경일을 미워하기보다 사랑했고 힘들어하기보다 재미있어했고 벽을 만나면 피하지 않고 벽을 넘어보거나 뚫어 버리고자하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언제나 자리를 펴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스스로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경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보다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비오는 날의 풍경어느 날 작업 중인 프로젝트의 디테일 때문에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쉘터의 낙수물을 조절하는 레인체인과 배수구의 디자인이 필요했습니다. 레인체인(Rain Chain)은 낙수물이 물홈통 대신 낙수구에 걸어놓은 사슬을 말합니다. 물홈통을 따라 흘러내린 물은 보이지 않지만 의뢰인은 비오는 날 처마를 따라 흐르는 물이 눈에 보여지는 풍경을 원했습니다. 보통은 쇠사슬을 매달아 물 흐름을 유도하는데 기존의 레인체인은 그에 장식성을 더해 물이 흐르지 않는 경우에도 경관성이 있게 보여지는 제품이 몇 개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품 자체가 무겁고 물 흐름에 대한 저항이 커서 주변으로 물이 튀어나가는 문제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 흐름과 경관성을 고려하여 심플한 형태를 선택하고 시제품보다 굵기를 더해 심플한 형태로 제작 의뢰한 후 레인 체인과 바닥이 만나는 퇴수구의 디테일을 매만져야 했습니다.레인체인에 연결되는 경우 퇴수구 위에 작은 자갈을 깔거나 트렌치에 직접 연결하거나 또는 물확을 놓아 물고임이 있게 하는 방법이 있지만 의뢰인의 대상지는 화강석으로 포장된 자리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임공간이기 때문에 돌출된 물확의 설정은 어렵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마련된 일은 화강석 통돌에 퇴수구에 맞는 구멍을 뚫어내고 포장면과 일체화 된 놀이로 양각한 연꽃잎을 새겨 넣기로 했습니다. 마침 의뢰인의 정원엔 고풍스런 석등 몇 개가 있었고 그 형태는 교묘한 이중성으로 존재하였습니다. 비오는 날 레인체인을 타고 흐르는 낙수물이 연꽃잎을 따라 타고 흘러 들어가는 퇴수구의 모습은 비가 오지 않아도 비오는 날이면 더 궁금해지는 비오는 날의 풍경이 될 수 있습니다.조경 디자인을 하면서 커다란 흐름은 엮어나가고 이어나가 그림을 그려나가지만 그 속에서 살아갈 우리들의 눈높이나 발끝 앞의 풍경은 소홀한 것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커다란 흐름도 중요하지만 작은 디테일도 소중히 여기는 습관과 여러번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 듯 싶습니다.내 앞마당, 길거리 광장 안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의 존재도 소중하지만 보도블럭 틈 그늘진 곳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개미자리의 흰풀꽃을 소중히 여길 줄도 알아야겠지요. 보도블럭 틈새에서 자라고 있는 ‘개미자리’의 아주 작은 흰꽃이나 무성한 풀섶 속에 보랏빛 웃음을 감추고 있는 깨알보다 작은 꽃을 피우는 ‘꽃마리’를 보신 적은 있나요. 한겨울, 봄을 기다리는 한 알의 씨앗을 생각하며얼마 전 어느 학생에게 그의 미래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고프다고 대답했습니다. 조경설계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갖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지금 힘들더라도 그래도 참고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진정한 스페셜리스트가 되라고 하고 싶습니다. 먼 훗날 가서 다른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다음세대, 조경을 사랑하는 세대에 작은 밑거름이 되었다는 자긍심을 느껴 보십시요.많은 날 연무에 끼여 보이지 않던 북한산이 비갠 후 눈에 확 들어오듯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자태를 드러낸 북한산을 보듯, 어쩌다 그런 날이 있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날들의 희열을 느끼는 그런 세상을 기대하며...우리들의 앞날은 당신들이 희망입니다. 김정수 Kim, Jeong Su(주)환경디자인 아르떼 대표 디자이너
인천중앙공원
· 위치 : 남동구(간석1,4동, 구월3동), 남구(관교동) 일원· 전체면적 : 357,000㎡(국·공유지 309,000㎡, 사유지 48,000㎡)· 조성기간 : 1988 ∼ 2004(17년간) 인천중앙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간석동, 구월동이 지금과 같이 인천의 중심 시가지가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옛날에 간석동은 인천부(간석동, 구월동, 십정동을 관할) 주안면의 면 소재지였으며, 파발이 머물던 주안역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경인철도가 개설되면서, 역사가 간석동에서 충훈리(忠勳里)로 이전을 하였고, 이 주안역으로 인해 충훈리의 이름이 현재의 주안동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니 실제 주안이라는 이름은 간석동과 구월동을 두고 이르던 말이고, 현재는 옛 충훈리가 주안동이라 잘못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인천중앙공원은 직선 도로를 양쪽으로 끼고 약 4.5km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 1988년부터 공원화가 추진되어 왔으나 아직 전체가 완공되지 않은 상태다. 총 9개 지구로 나뉘어 테마별로 공원화가 추진되어 왔으며, 현재는 7개 지구의 공원을 마무리 하였고, 나머지 1, 2지구는 기존의 무허가 건물들의 철거와 보상을 추진 중에 있다. 총 면적 357,000㎡ 가운데 271,000㎡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약 76% 정도의 조성율을 보이고 있다.도로와 함께 길게 뻗은 공원의 주변에는 인천시청,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각종 은행과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인천의 신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예전에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던 곳이 인천의 중심시가지로 발돋음 한 것이다. 허름한 건물들을 허물고 공원을 조성하는 장기적인 인천시의 노력으로 도시의 경관이 꾸준히 향상되어 왔으며, 시민들에게 녹색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연인들의 주요 데이트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요즘은 인라이너들에게 인기가 높은 장소다. 또한 북측의 만월산과 남측의 문학산을 이어주는 녹지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어 생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녹지조성지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인천중앙공원의 여러 지구 둥에서 비교적 최근인 2000년, 2002년에 준공을 마친 3, 4, 5 지구를 둘러보았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10돌 맞은 여름조경학교
(사)한국조경학회(회장 임승빈)가 여름조경학교를 개최해 온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여름조경학교는 졸업을 앞둔 조경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무적인 교육을 시킬 목적으로 10년 전에 처음 시작되어 현재는 행사의 규모와 내용적인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며 상당히 확장된 영역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 예술, 환경, 설계이론, 미학, 조경비평 등의 다양해진 주제의 특강이 이루어지며, 스튜디오의 운영으로 참가 학생들 모두가 직접 설계 프로젝트도 수행하게 된다. 건축, 도시 등 타 분야의 전문가, 조경분야의 유명한 학자와 능력있는 설계사무소 소장들이 직접 교육에 참여하여 질 높은 교육이 진행된다. 무엇보다 조경업의 현실에 대해 서로 다른 학교, 다른 회사, 다른 직위의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와 고민을 나눌 수 있고, 각 설계사무소의 특징을 미리 탐색할 수 있어 취업을 결정하는데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약하지만 같은 졸업 기수 간의 만남과 정보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회를 거듭할수록 조경계의 전국적인 정보 네트워크의 한 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올해도 특강, 스튜디오 강좌, 투어 등 다채로운 교육이 진행되어 참가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 교장을 맡았던 김한배 교수(서울시립대)는 "도시인프라와 도시경관이라는 주제를 통해 흔히 조경의 주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는 도시인프라를 도시경관의 관점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조경과 도시인프라의 접점을 찾아가고자 했다"며 "지금까지 다른 분야의 영역으로 알았던 것을 조경의 시각으로 다시 보고, 조경의 공간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것이 올해 여름조경학교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매년 참신한 주제설정과 알찬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이 행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다. 그러나 설계·계획분야로 한정된 교육 프로그램은 아쉬운 점이다. 물론 현재 조경학회의 인력과 재원으로는 시공분야의 교육을 진행하기가 매우 힘든 점이 있으나, 장기적으로 시공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이 제시되고, 점차 실천이 구체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름조경학교를 준비·운영하는 체제가 안정화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조경학회 내에 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서 이를 총괄하는 교장에게 역할과 책임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은 매년 기복이 심하지 않은 교육의 질을 확보하기 힘든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시급히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로 보인다. 여름조경학교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좀더 많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조경인들의 창의성이 만발할 수 있는 조경인의 축제로서, 또한 새것에 민감할 줄 아는 조경학의 역동적인 수원지로서 도약해 나가길 바란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하늘공원의 생태학습프로그램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아동의 공간인지능력 발달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름을 날려버린 서초 IC 분수대
· 공사발주처 : 서초구청 공원녹지과 · 공사기간 : 2002 12. 9 ∼ 2003. 7. 15 · 분수 설계 및 설비 : (주)신성건설 / 동서코퍼레이션(주) · 전기공사 : 경인전력공사 · 조명 : (주)샘라이팅 · 사업비 : 8억 7천만(분수 : 6억, 전기 2억 7천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그래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 그런 곳은 지저분하게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거나 공사자재들이 어지럽게 적재되어 있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지자체 이후 그런 장소들은 꾸준히 미화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대부분이 녹색의 옷을 입었다. 예전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관리도 매우 잘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민들의 눈은 단순한 녹색에 지치기 시작한 듯 하다. 낡은 곳을 단순히 한가지로만 색칠을 한다면 그곳은 오래지 않아 다시 낡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설계가가 마법을 부려 의미 충만한 장소성이 자리잡거나, 생태적으로 매우 건강한 자연이 꿈틀대는 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녹색만으로는 부족했던 몇%를 고민해 보자. 서울의 관문인 경부고속도로와 남부순환 도로가 교차하는 서초 I.C 녹지대에 7월말 경 분수대가 하나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지난 7월 24일 서초구청장, 초청시인, 그리고 지역의 주민들이 모여 준공 기념행사를 가졌다. 녹지대 위에 비교적 규모있는 분수대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사람들의 눈이 좀더 다른 무언가를 간절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더위야 물러가라 이곳은 공사 전에는 단순 녹지대였으며, 공사를 하면서 이곳에 식재되어 있던 이팝나무 12주를 비롯하여 관목 등이 분수대의 주변으로 이식되었다. 공사 후에는 분수를 가동하기 위해 모터펌프 5대가 돌며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있는데, 이 분수를 위해 지하수가 새로 개발되기도 했다. 최고 높이 30m나 되는 분사 노즐이 4개가 박혀있으며, 15m가 20개, 1.5m가 32개가 설치되어 있어 총 106개의 분사노즐이 하늘 높이 물을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1개소당 7개씩 총 700개의 안개노즐도 분수의 환상적인 연출을 돕고 있다. 분수대 주변으로 동선은 있으나, 사방에 도로가 포위하고 있는 위치적 특성 때문에 사람의 접근성이 떨어져서인지 휴게시설물은 놓여있지 않다. 차를 타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분수를 향해 보내는 미소가 이번 공사의 목적이 가로 경관개선의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저녁이 되면 129개의 수중등과 4개의 투광등의 도움을 받아 화려한 야경을 선사한다. 이곳을 지나쳐 서울을 방문하거나 떠나는 사람들은 야간 조명과 분수의 절묘한 조화를 감상하며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현재는 오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그리고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8시부터 9시까지 하루 세차례 물을 뿜어대고 있으며, 일년 중에는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가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온통 녹색만으로 바닥을 칠한 듯한 녹지대는 이제 재미가 없다. 우량한 나무들이 새들과 노래를 부르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공간을 만들거나, 비록 좁은 공간이라도 가능한 한 다이내믹한 경관을 만들기 위해 몇%만 더 관심과 노력을 지속해 가길 바란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성남시 은행 수목관찰원
· 위치 : 중원구 은행동 1,932번지 일원· 면적 : 34,760㎡(10,515평)· 조경설계 : 1·2차 - 오렌지엔지니어링(주), 3차 - 동일기술공사(주)· 시공 : 1·2차 - (주)영진토건, 3차 - (주)우신건설· 기술자문 : 한택식물원 신용모 이사· 사업기간 : 2001년 3월∼2003년 7월 지난 2001년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에는 작은 수목관찰원이 들어섰다. 당초 양묘장 부지로 활용도가 떨어지던 땅에 다양한 수목을 식재하여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이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었다. 인근은 주택밀집지역이고, 당시 휴식공간이 부족했기에 이곳은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그리고 2002년. 바로 옆에 위치하던 1만톤 규모의 배수지가 용도 폐기되자 수목관찰원을 확장, 조성하게 되었다. 이 때 배수지 한곳은 벽체를 그대로 이용하여 연못을 조성하였고 나머지 배수지 한곳은 콘크리트 벽체 일부와 상수도관 10여미터를 노출, 존치시겨 방문객들이 배수지의 상징물로 알 수 있도록 조성했다.계속된 수목원 확장으로 올해 초에는 무단 농작물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는 시유지에 관내 공공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지장수목을 이식하여 중국 단풍, 칠엽수, 소사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숲을 조성하게 되었다. 출발은 작은 수목관찰원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규모를 갖춘 그럴듯한 수목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덩굴식물원에는 문주 형태의 시설물을 설치하여 등나무, 능소화, 인동덩굴, 으름, 다래, 등 10여종의 덩굴식물을 심었고, 연못 주변에 위치한 향기원에는 우리의 산책하며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산초나무, 정향나무, 생강나무, 구상나무 등과 향기가 백리까지 간다는 백리향, 인동, 꽃향유, 배초향 등 10여종의 식물을 심었다.연못 아래 길을 따라 조성된 관목원에는 4월에 아름다운 보라색 꽃을 피우는 팥꽃나무를 시작으로 노랑병아리꽃나무, 분꽃나무, 조팝나무, 갈기조팝나무, 참조팝나무, 댕강나무와 가을 의 붉고 탐스러운 열매를 자랑하는 백당나무, 가막살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다. 수목원의 정상부에 위치한 수생식물원에는 정화능력이 강한 옥잠화, 노랑어리연꽃, 부들, 고랭이, 속새 등 다양한 수변, 수생 식물이 심겨져 소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이외에도 자그마한 주제원들이 마련되어 있는데, 약용식물원, 미나리아제비원, 철쭉원, 원추리원, 기린초원과 요즘의 어린이들은 자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없는 무, 배추, 가지, 파, 매밀 등이 심겨진 채소원과 사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등이 심겨진 유실수원 등이 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어렵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습니다
"어렵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다."큰 조직에 있다가 다소 늦게 독립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겼다. 어떤 분은 "몇년 더 한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하고, 어떤 분은 "인생 내리막길에 웬 대형사고냐?"고 농을 던지기도 하셨지만, 나이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중에 하나일 뿐이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나이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또 여성이라는 것도 역시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중에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내가 설계사무실을 시작한 것은 내 잠재의식 속에 있는 일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꿈을 찾고 싶어서이다. 아직 꿈은 찾지 못하였지만 언젠가는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 동안 너무 안주하며 살아 온 내 삶에 대해 더 이상 늦기 전에 전환점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시작하였고, 아직은 초기라 어려운 일이 많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다. "인생은 운칠기삼" - 조경을 시작하게 된 계기근래 여성들은 많은 교육을 받아 자식들에게 조언을 넘어 자식의 전공선택, 직업, 결혼 등 인생 방향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내 어머니께서는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하셨고, 사회경험도 없는 전형적인 주부였다.아버지 역시 자식들에게 어떤 일을 조언할 만큼 식견은 없었고, 법대를 가면 법관이, 상대를 가면 대기업의 (지금으로 말하면) GEO, 공대를 가면 최소한 밥벌이는 할 수 있다는 보편적 사고를 지닌 분이셨으며, 자식들에게 무엇을 강요할 만큼 강한 성품을 지닌 분은 아니셨다.더욱이 딸인 나에게는 별다른 기대를 안 했던 분이다. 그저 한 집안이 잘 되려면 아들, 그것도 장남이 잘되어야 한다는 그 시대의 평범한 사고를 가진 보통 부모님이었다. 그래서 나의 전공 선택 과정은 매우 자유로웠다.대학과 학과 선택은 나 혼자의 몫이었는데, 처음에 조경을 선택한 것은 개인적으로 미술에 흥미가 있어서 였다. 조경학을 하면 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잘 모르고 선택하긴 했지만 비교적 내게 잘 맞는 것을 보면 시작부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 설계가의 꿈오랫동안 일을 해오면서 구조적인 문제, 예산의 문제로 인해 내 의지대로 일을 해 나갈 수 가 없었던 경우가 매우 많았다. 조경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없었던 시기에는 발주자도 조경에 대해 잘 모는 경우가 많아서, 매우 어설프긴 했지만 내 의도대로 설계를 한다는 것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는 경험과 철학이 부재하여 부끄러운 설계만 한 듯 하다.지금은 발주자, 관련자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하니, 어떤 경우에는 초기 의도와 달리 정체성도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마무리 지어지기도 하여 허탈감, 자괴감 등으로 마음이 얼룩지고 아쉬움만 남게된다. 설계자, 발주자, 시공업자 모두가 자그마한 일이라도 혼연일체가 되어 마치 자식을 키우듯 정성을 다하는 팀웍으로 일을 하였으면 한다. 일의 규모를 따지기 전에 의미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과 일을 했으면 하지만 아직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다.그러나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힘들었던 시간이 곧 즐거운 시간“-즐거웠던 시간일을 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이다. 그 때는 마스터플랜을 잡는데도 조경하는 사람들이 배제된 시기였다.현상공모가 늘 그러하듯 마지막 며칠 동안은 조막손도 아쉬운 때인데, 마침 내가 조막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밤새며 즐겁게 일을 하고 새벽 5시에 사무실을 나오는데,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정경 - 약간 청회색의 하늘과 실루엣으로 보이는 건물들, 신선한 공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환경미화원들의 분주한 움직임. - 에 대한 기억은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요즘도 가끔 새벽녘에 귀가할 때면 20년전 하고는 많이 변한 환경이지만 그 때의 감동이 다시 잔잔한 내 가슴속에 퍼지는 듯 하다.힘들었던 시간은 곧 즐거운 시간과 연결된다. 마치 바람이 많이 들어간 공이 탄력을 받듯 어려움이 클수록 그 어려움을 극복하였을 때의 즐거움은 더 크다. "사람과의 관계" - 힘들었던 시간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며 풀어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사람문제로 일을 겪으면 한 동안 의기소침하여 위축도 되고 가슴도 아프지만 난 오늘도 일을 하고 있다.조경설계는 시공결과가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말이란 설계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도면은 구체적인 실행을 위한 수단이다. 설계자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한다.우리의 환경은 지금 우리 시대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환경에 적합한 설계 및 시공이 되어야 한다. 국민소득은 10만불도 안되는 사회에서 국민소득 2, 3만불 되는 사회 환경을 생각하면 안 된다. 또한 우리 국민들이 공공공간을 대하는 의식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국토, 우리 국민들의 정서, 우리들의 경제력, 공공공간이라는 특성상의 행정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국의 좋은 것이 우리에게도 좋다는 등식은 맞지 않을 것이다.이런 모든 상황 - 예산, 시공성, 공간 이용자의 권리, 행정력 등 - 을 고려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만을 담는 단순함을 지향했고 그렇게 설계했다. 그러나 이를 보고 설계자질 운운하며 매도할 때는 정말 맥이 빠지고 힘들었다. "긍지를 갖자. 그리고 심지 깊고 긴 안목으로..." - 조경인이 품었으면 하는 꿈들장안평 골동품상가에 가보면 같은 반다지도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반다지는 당대의 유명한 장인이 좋은 자재로 제작해 수 천만원을 호가하고 어떤 것은 이름 없는 목수가 흔한 송판으로 제작해 불과 몇 십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당대의 장인만이 역사의 주인공인가? 난 송판으로 만든 반다지에서 따뜻한 삶의 숨결을 느낀다.모두 최고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이 일은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인데 우리 모두 긍지를 가지고 일하자. 같은 어린이놀이터라도 입지가 다르고, 이용자가 다르다.심지어 인접부지에 있는 같은 성격의 공간을 설계한다 해도 시점이 다르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직업은 얼마나 신나는 직업인가?대학에서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능력, 급여, 여타 이유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렇게 글이라도 쓰게 된 것은 우직하게 이 일을 오래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경업계가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시장규모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독립된 영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면서 발생된 것이 인력문제이다. 특히 IMF때 기술자를 육성하지 않아 현재는 경력자가 부족한 것 같다. 나 역시 경력자 한 사람이 5개월만에 그만두면서 회사 설립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3∼5년 후면 인력문제는 지금보다는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현재의 자그마한 이익에 신경 쓰지 말고 좀 크게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인생에서도 설계에서도...... "여성이기 전에 직장인" - 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일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일이라기 보다는 재미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싶다.일을 시작한지 2년쯤 되었을 때니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이다. 국민관광지 프로젝트를 할 때였다. 하루는 출근을 하니 P. M이 공무원과 예산검토를 위해 지방을 가야한다고 해서 급하게 출장을 갔다. 당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돌아올 생각은 않고 저녁 무렵에야 비로소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관방 하나를 빌렸는데, 신입과 다름없었기에 말도 못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남자 십 여명에 여자는 혼자서 "혼숙"을 한 셈이다.여러가지로 불편하여 앉아서 밤을 새우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어깨가 짓눌리는 것 같아 일어나니 한 사람이 다리 한 쪽을 내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이 상의는 벗고 팬티만 입고 자는 것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여기저기서 밤새 일을 하다 엉켜서 자는 것을 보곤 웃음이 나왔다.아마도 그 분은 나를 여자로 보기 전에 같이 일을 하는 동료로 생각해 주었던 것 같고, 그런 경험도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인생은 혼자서 헤쳐 가는 것“-여성소장으로서의 어려움여성소장으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라고 하면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성만이 공유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양성평등이 대부분 보장되어 있으나 사회나 가정에서의 의식은 여성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고 있어서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그 중에서도 육아문제는 육체적인 문제를 넘어 정신적으로 번민하게 할 때가 많다.설계업계에서 질 높은 여성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육아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여성들에게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그러나 조경을 하는 여성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무엇을 급하게 바꾸려하지 말자고. 1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고 10년 후면 또 변할 것이니까 조급하게도 느긋하게도 생각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며 살자고.남자들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마시고 헛소리도 해가면서 푼다고 하는데, 직장을 마치고 나면 나에겐 또 다른 책임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보니 직원들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인생은 혼자서 헤쳐가야 하는 것이고 술이라는 항생제가 아닌 스스로의 자기조절과 극복을 통해 모든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강한 치료법이다.이제는 성에 의한 구분의 시대는 지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소장이라서 힘들지 소장 앞에 또 다른 수식어가 붙지 아니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안 영 애 Ahn, Young Ae안스디자인 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대전광역시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헤른하우젠 정원의 라 그로테
이번 여름 필자는 모든 것에 우선해서 그녀의 마지막 영혼을 보기위해 조금은 무거운 마음과 조금은 설레는 맘으로 하노버로 향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유리 진열장에 담겨 있는 듯 했고 햇살이 좋았다. 끝없이 길게 늘어선 알레를 뒤로하고 들어선 곳. 써프라이즈 ! 거기에는 괴암도 없었고, 동굴도 없었다. 그대신 바로크 양식의 매우 조화롭고, 완벽한 비율로 세워진 자그마한 건물이 잘 가꾸어진 정원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는 마치 하나의 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창조한 이태리의 타롯정원을 연상케 했으며, 특히 내용을 감히 추측할 수도 없는 외형디자인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타롯정원의 정문을 떠오르게 했다. 니키의 오랜 동료이자 협력자였던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타롯정원 정문을 설계하면서 정원의 비범한 마술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정원은 하나의 고립된 섬으로 남아주길 원했고 정원이 주는 놀라운 선물을 외부의 일상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의도했었다. 가로로 길게 늘어선 거대하고 육중한 벽사이로 둥근 입구만 있을 뿐이었다. 기대에 차서 바라본 동굴이라는 곳은 타롯공원의 입구 이상의 실망감을 주는 듯 했지만 이는 잠시, 작지만 결코 작지않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스미는 것을 느끼면서 조심스레 다가 갔다. 탄탄한 구성과 니키의 특허품격인 유리 창틀이 니키임을 말해주었고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입구의 첫 번째 공간을 들어서면서 난 한번 더 숨을 들이쉬며 이내 쓰러질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타롯정원에서 느꼈던 거대함과 웅장함, 화려함과는 또 다른 삶의 깊이와 니키의 영혼이 그곳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니키는 이곳에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 아니면 무엇을 가지고 가고 싶었을까. La Grotte - 동굴 헤른하우젠에 위치한 정원과 역사적 동굴인 라 그로테는 1638년 백작 게오르그가 궁전 살림용으로 농장을 건설하게 되고 이후 백작 요한 프리드리히가 이 건물을 1666년에 여름궁전으로 증축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큰 정원 "그로센 가르텐"의 시초였다. 이후 궁전을 확대하면서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는 그로테(동굴)와 그러쎄 카스카데(큰 폭포)가 건축되었다. 이후 백작이 사망하자 그의 아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정권을 물려 받게되었고 아우구스트와 그의 아내 소피는 정원구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들을 시행하게 하였는데 이때 세워진 건축물들이 정원극장, 누보 쟈르뎅, 큰 지하궁의 조형장식, 남쪽끝에 위치한 파빌리온, 그리고 갤러리 건물들이었다. 소피는 그의 글에서" 헤른하우젠 정원만이 우리가 자랑할만한 것이며, 이 정원이야 말로 실로 아름답게 잘꾸며져 있다"라고 남겼다. 그후 그녀의 아들 하노버 공작 게오르그 누드비히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이 정원은 정기적으로 여름 궁전으로서 화려한 축제행사를 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불가피한 긴축재정과 관리소홀로 점차 몰락하게 되었는데 다른 한편에서 보면 오히려 잘된 운명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당시 유럽의 귀족들은 새로운 취향에 따라 바로크풍 정원을 풍경정원으로 리모델링하였는데, 이를 피해갈 수 있었고 이로인해 원래 바로크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전쟁과 인플레이션, 자금의 가치 하락 등으로 정원은 몰락하게 되고 결국 하노버시는 1936년에 정원을 구입하여 복구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창조적인 기념물 보존"이라는 이념에 따라 현존하는 것들을 다시 복구하여 원상태로 다시 되돌리는 것 뿐만 아니라 정원에 다른 여러 가지 추가장식 요소들을 첨가하여 개선하였다. 이렇게 하여 생겨난 전망 테라스, 미로정원, 특별정원들은 복구공사에 보여준 도시민들의 열정과 역사적인 헤 른하우젠 정원이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영송 (주)소토대표(구송앤주)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내안에 갇혀있는 그림을 꺼낼 수 있는 날을 위해......
성균관 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1990년 조경설계 서안(주) 입사, 현재 서안 근무 중........이상은 이력서에 기재 될 내 이력의 전부이다. 환경과 조경의 원고 청탁을 받고 잠깐 망설였다. 다름 아닌, 보다시피 조촐한 나의 이력 때문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아직 다른 이들에게 나설 만큼 빼어난 조경가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편집부에서 분명 나에게 청탁을 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지금까지의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혼잣말처럼 글을 써 보기로 했다.자신의 생각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려하는 위선과 후배들에게 무지한 충고를 범하는 오만함이 스며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경 설계를 하게 된 동기에 있어 극적인 상황이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경학과라는 학과에 대해 알게 된 후 공립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조경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지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렇게해서 자연스럽게 진로를 잡았으며 학력고사 성적에 맞추어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재학시절에는 그냥 설계 과목이 좋았고, 설계만이 조경을 제대로 하는 것 같은 즐거운 착각 속에 살았다. 학교 스튜디오에서 수많은 밤을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며,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설계에 대한 욕망을 술과 독설로 대신 그득 채우고 나면, 아침 해는 나의 뇌처럼 텅빈 하늘 중천을 떠다니곤 했던, 참으로 욕심과 의욕만 충만했던 학창시절 이었다. 다행히 졸업설계 전시장에서의 아직 깨지 않은 술과 독설로 무장한, 버얼건 얼굴의 필자를 가상히(?) 여기신 소장님 덕분에 실습생 신분으로 서안이라는 회사에 첫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서안에서의 첫 요구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은 모두 잊으라는 것이었다. 언뜻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아마도, 업(業)과 학(學)을 혼돈하지 말라는 충고와 이제는 프로의 세계에 들어 왔다는 절대적 적자생존의 법칙에 대한 예언과도 같았다. 또한, 그것은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고 새로운 세계로의 시작이었다.공간에 대한 분석 과정과 공간성격의 도출과정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선, 정말로 도면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세계에서 첫 대면했던 도면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나를 당시의 흥분으로 돌려놓기에 충분하다. 그 때 작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도면이 아름다우면 그 공간도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샤프나 홀더를 갈고 제도판에 앉아 땀방울 떨어질까, 선 비뚤어질까 호흡마저 조절하며 도면을 치던(그리던) 시절, 얇은 트레이싱지를 뚫어지기 직전까지 힘주어 그어댔던 수많은 도면들, 그 안에 불어넣은 선들의 섬세함은 곧 설계자의 마음가짐이었으며, 삼각자는 나를 태우고 떠다니는 조각배요, 트레이싱지는 노 저으며 떠나는 0.3평의 무한한 꿈의 바다였다.그렇게 조경업계에 입문하여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단순히 뒤에서 버팀목으로 포진하고 있는 선배들을 믿으며 쫓아 다녔던 타 업종과의 협의며 회의는 늘 가슴 들뜨는 일이었고, 스스로 이미 조경업에 취해 있었으며, 건축, 토목 또는 그 밖의 모든 설계에서 조경이 똑바로 인정 되어야 한다는 조경의 확신에 대한 젊은 날의 빛나는 광기에 가득 차 있었다. 이 재 연 Lee, Jae Yeon 조경설계 서안(주) 실장(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조경 ; 사람과 땅이 어울린 이야기 (16) - 9월, 산과 골을 만든다
이번 달에는 약속대로 지형(地形)을 다루면서 독자들과 만나기로 한다. 지난달의 나무와 관련해서 볼 때 지형과 나무의 관계는 사실 매우 밀접하다. 예를 들어, 소나무는 적당한 높이의 언덕위에 모여 심겨야 제격이다. 도시의 평지에 심기거나 가로수로 줄지어 심겨진 소나무는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원래 소나무가 산에서 자라는 나무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형이 항상 나무와 같이 어울려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나무 없이도 지형은 그 자체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소재다. 땅바닥면으로부터 조형의 대상으로까지 성장한 지형얘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토목의 땅, 조경의 땅 지형은 말 그대로 땅의 모양을 말하고 지형을 만진다는 것은 땅의 모양을 다듬고 고치는 일이다. 실제 외부공간에서 지형을 만지는 일은 주로 작은 언덕 같은 것을 만드는 일이 되어서 외부공간을 만드는 이들은 마운드 (mound)를 둔다 또는 마운딩(mounding)을 한다는 말을 사용한다. 골프장의 페어웨이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 같이 잔물결로 굽이치듯 땅의 표면에 파동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언듈레이션 (undulation; 땅에 파동두기)라는 말로 표현한다. 모두 영어식 표현이지만 실무에서는 그렇게 통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땅을 다루는 일은 토목의 권한내에 있다. 몇천세대가 살게 될 큰 택지지역의 지반 고르기와 경사가 급한 곳을 깍아내는 절토(切土)와 낮은 땅을 높이는 성토(盛土)등의 개념은 토목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토목이 다루는 땅의 스케일, 즉 규모는 통상 조경의 땅보다는 훨씬 커서 조경이 보이고자하는 땅의 섬세한 경관적 바램을 이루기에는 역부족이다. 조경의 땅은 작기는 하지만 지형의 변화가 미세해서 토목의 거시적인 눈으로는 잡아내기 힘들다. 조경의 땅이 토목의 땅에 비해 작고 미시적이긴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토목의 땅다루기에 필요한 모든 조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덧붙이도록 하자. 비가 내린 뒤 생기는 땅 표면의 물길 잡기나 절토와 성토의 토량계산 등은 단지 토목만의 일이 아니라 조경의 땅을 다루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기본적 이해들이다. 언덕이나 동산(童山)같이 아래의 땅에 비해 솟아오른 지형을 제주도 쪽에서는 오름이라고 부른다. 있는 그대로의 땅의 조형적 속성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군 시절, 6.25당시 격전장으로 유명했던 철원평야의 백마고지(白馬高地)에서 대공 발칸포기지 공사를 할 때의 경험인데 - 훈련 철에는 칼같이 훈련받고 훈련 끝나면 예외 없이 시멘트와 골재와 씨름하는 우리나라의 야전공병은 정말 훌륭한 군인임에 틀림없다 - 그 넓은 철원평야의 한가운데 백마고지만 볼록 솟아있는게 신기했다. 백마고지의 정상에서 보면 주변의 철원평야가 한 눈에 들어왔다. 추수 직전의 가을 저녁 무렵 석양빛을 받고 있는 철원평야를 보신 적이 있는지. 그때의 철원평야는 곱기도 했고 또 힘차기도 했다. 소음이 전혀 없는 한적함 속에서 - 민통선내 철원평야의 조용함과 평안함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 들녁의 황금색이 온 천지에 넘쳐났다. 옷과 얼굴이 시멘트로 범벅이 된 사병하나가 화랑담배를 피면서 철원평야를 내려다 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무 것도 지금은 중요치 않다는 생각을 한다. 작은 기억하나가 그 길고 힘들었던 시간을 일순간에 녹여낸다. 오름의 공간은 꼭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시애틀 교외의 개스웍스파크 (Gas Works Park)는 70년대 초반 정유공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만든 공원이다. 미국 조경가 해그 (R. Haag)는 공무원들과 시민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정유공장의 일부 시설이 공원에 그대로 남도록 했는데 이 결정이 결국 이 공원을 시애틀의 명물이 되도록 만든다. 공원에 일부러 남겨진 정유공장의 시설은 옛날 이 공원의 자리가 어떻게 쓰였었는지 또 무슨 과거를 갖고 있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훌륭한 책자이고, 공원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게하는 일종의 영상매체이다. 정유공장시설외에 공원에는 명물이 하나 더 있다. 높이 20여 미터의 작은 동산이 그것인데 주말이면 많은 시애틀시민이 이곳으로 올라와 연을 날리며 바람을 즐긴다. 동산에서 내려다보는 만(灣) 저쪽의 시애틀 도심의 스카이라인은 한편의 대단한 파노라마이다. 폐유에 의해 오염된 토양이 토양박테리아에 의해 자 연정화되는 몇 십년동안 생육이 어렵기 때문에 이 공원 내에는 전혀 나무를 두지 않았다. 나무가 없는 까닭에 잔디와 초지류로만 덮인 동산의 외형 윤곽선은 멀리서 봐도 그대로 참하게 살아있다. 20여 미터의 높이의 동산하나가 사람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공간적 감흥을 전해주는 사례이다. 시애틀이건 제주 도건 어디건 간에 동산은 오르는 맛,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맛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이는 맛이 같이 있어야 한다. 진 양 교 Chin, Yang Kyo·(주) 토문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 부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