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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습니다
  • 환경과조경 2003년 9월

"어렵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다."
큰 조직에 있다가 다소 늦게 독립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겼다. 어떤 분은 "몇년 더 한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하고, 어떤 분은 "인생 내리막길에 웬 대형사고냐?"고 농을 던지기도 하셨지만, 나이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중에 하나일 뿐이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나이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또 여성이라는 것도 역시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중에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
내가 설계사무실을 시작한 것은 내 잠재의식 속에 있는 일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꿈을 찾고 싶어서이다. 아직 꿈은 찾지 못하였지만 언젠가는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 동안 너무 안주하며 살아 온 내 삶에 대해 더 이상 늦기 전에 전환점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시작하였고, 아직은 초기라 어려운 일이 많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다.

"인생은 운칠기삼" - 조경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근래 여성들은 많은 교육을 받아 자식들에게 조언을 넘어 자식의 전공선택, 직업, 결혼 등 인생 방향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내 어머니께서는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하셨고, 사회경험도 없는 전형적인 주부였다.
아버지 역시 자식들에게 어떤 일을 조언할 만큼 식견은 없었고, 법대를 가면 법관이, 상대를 가면 대기업의 (지금으로 말하면) GEO, 공대를 가면 최소한 밥벌이는 할 수 있다는 보편적 사고를 지닌 분이셨으며, 자식들에게 무엇을 강요할 만큼 강한 성품을 지닌 분은 아니셨다.
더욱이 딸인 나에게는 별다른 기대를 안 했던 분이다. 그저 한 집안이 잘 되려면 아들, 그것도 장남이 잘되어야 한다는 그 시대의 평범한 사고를 가진 보통 부모님이었다. 그래서 나의 전공 선택 과정은 매우 자유로웠다.
대학과 학과 선택은 나 혼자의 몫이었는데, 처음에 조경을 선택한 것은 개인적으로 미술에 흥미가 있어서 였다. 조경학을 하면 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잘 모르고 선택하긴 했지만 비교적 내게 잘 맞는 것을 보면 시작부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 설계가의 꿈
오랫동안 일을 해오면서 구조적인 문제, 예산의 문제로 인해 내 의지대로 일을 해 나갈 수 가 없었던 경우가 매우 많았다. 조경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없었던 시기에는 발주자도 조경에 대해 잘 모는 경우가 많아서, 매우 어설프긴 했지만 내 의도대로 설계를 한다는 것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는 경험과 철학이 부재하여 부끄러운 설계만 한 듯 하다.
지금은 발주자, 관련자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하니, 어떤 경우에는 초기 의도와 달리 정체성도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마무리 지어지기도 하여 허탈감, 자괴감 등으로 마음이 얼룩지고 아쉬움만 남게된다. 설계자, 발주자, 시공업자 모두가 자그마한 일이라도 혼연일체가 되어 마치 자식을 키우듯 정성을 다하는 팀웍으로 일을 하였으면 한다. 일의 규모를 따지기 전에 의미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과 일을 했으면 하지만 아직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힘들었던 시간이 곧 즐거운 시간“-즐거웠던 시간
일을 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이다. 그 때는 마스터플랜을 잡는데도 조경하는 사람들이 배제된 시기였다.
현상공모가 늘 그러하듯 마지막 며칠 동안은 조막손도 아쉬운 때인데, 마침 내가 조막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밤새며 즐겁게 일을 하고 새벽 5시에 사무실을 나오는데,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정경 - 약간 청회색의 하늘과 실루엣으로 보이는 건물들, 신선한 공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환경미화원들의 분주한 움직임. - 에 대한 기억은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요즘도 가끔 새벽녘에 귀가할 때면 20년전 하고는 많이 변한 환경이지만 그 때의 감동이 다시 잔잔한 내 가슴속에 퍼지는 듯 하다.
힘들었던 시간은 곧 즐거운 시간과 연결된다. 마치 바람이 많이 들어간 공이 탄력을 받듯 어려움이 클수록 그 어려움을 극복하였을 때의 즐거움은 더 크다.

"사람과의 관계" - 힘들었던 시간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며 풀어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사람문제로 일을 겪으면 한 동안 의기소침하여 위축도 되고 가슴도 아프지만 난 오늘도 일을 하고 있다.
조경설계는 시공결과가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말이란 설계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도면은 구체적인 실행을 위한 수단이다. 설계자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한다.
우리의 환경은 지금 우리 시대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환경에 적합한 설계 및 시공이 되어야 한다. 국민소득은 10만불도 안되는 사회에서 국민소득 2, 3만불 되는 사회 환경을 생각하면 안 된다. 또한 우리 국민들이 공공공간을 대하는 의식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국토, 우리 국민들의 정서, 우리들의 경제력, 공공공간이라는 특성상의 행정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국의 좋은 것이 우리에게도 좋다는 등식은 맞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 - 예산, 시공성, 공간 이용자의 권리, 행정력 등 - 을 고려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만을 담는 단순함을 지향했고 그렇게 설계했다. 그러나 이를 보고 설계자질 운운하며 매도할 때는 정말 맥이 빠지고 힘들었다.

"긍지를 갖자. 그리고 심지 깊고 긴 안목으로..." - 조경인이 품었으면 하는 꿈들
장안평 골동품상가에 가보면 같은 반다지도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반다지는 당대의 유명한 장인이 좋은 자재로 제작해 수 천만원을 호가하고 어떤 것은 이름 없는 목수가 흔한 송판으로 제작해 불과 몇 십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당대의 장인만이 역사의 주인공인가? 난 송판으로 만든 반다지에서 따뜻한 삶의 숨결을 느낀다.
모두 최고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이 일은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인데 우리 모두 긍지를 가지고 일하자. 같은 어린이놀이터라도 입지가 다르고, 이용자가 다르다.
심지어 인접부지에 있는 같은 성격의 공간을 설계한다 해도 시점이 다르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직업은 얼마나 신나는 직업인가?
대학에서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능력, 급여, 여타 이유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렇게 글이라도 쓰게 된 것은 우직하게 이 일을 오래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경업계가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시장규모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독립된 영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면서 발생된 것이 인력문제이다. 특히 IMF때 기술자를 육성하지 않아 현재는 경력자가 부족한 것 같다. 나 역시 경력자 한 사람이 5개월만에 그만두면서 회사 설립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3∼5년 후면 인력문제는 지금보다는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자그마한 이익에 신경 쓰지 말고 좀 크게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인생에서도 설계에서도......

"여성이기 전에 직장인" - 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일
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일이라기 보다는 재미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싶다.
일을 시작한지 2년쯤 되었을 때니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이다. 국민관광지 프로젝트를 할 때였다. 하루는 출근을 하니 P. M이 공무원과 예산검토를 위해 지방을 가야한다고 해서 급하게 출장을 갔다. 당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돌아올 생각은 않고 저녁 무렵에야 비로소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관방 하나를 빌렸는데, 신입과 다름없었기에 말도 못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남자 십 여명에 여자는 혼자서 "혼숙"을 한 셈이다.
여러가지로 불편하여 앉아서 밤을 새우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어깨가 짓눌리는 것 같아 일어나니 한 사람이 다리 한 쪽을 내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이 상의는 벗고 팬티만 입고 자는 것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여기저기서 밤새 일을 하다 엉켜서 자는 것을 보곤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그 분은 나를 여자로 보기 전에 같이 일을 하는 동료로 생각해 주었던 것 같고, 그런 경험도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인생은 혼자서 헤쳐 가는 것“-여성소장으로서의 어려움
여성소장으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라고 하면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성만이 공유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양성평등이 대부분 보장되어 있으나 사회나 가정에서의 의식은 여성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고 있어서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그 중에서도 육아문제는 육체적인 문제를 넘어 정신적으로 번민하게 할 때가 많다.
설계업계에서 질 높은 여성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육아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여성들에게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조경을 하는 여성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무엇을 급하게 바꾸려하지 말자고. 1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고 10년 후면 또 변할 것이니까 조급하게도 느긋하게도 생각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며 살자고.
남자들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마시고 헛소리도 해가면서 푼다고 하는데, 직장을 마치고 나면 나에겐 또 다른 책임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보니 직원들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인생은 혼자서 헤쳐가야 하는 것이고 술이라는 항생제가 아닌 스스로의 자기조절과 극복을 통해 모든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강한 치료법이다.
이제는 성에 의한 구분의 시대는 지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소장이라서 힘들지 소장 앞에 또 다른 수식어가 붙지 아니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안 영 애 Ahn, Young Ae
안스디자인 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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