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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 사람과 땅이 어울린 이야기 (16) - 9월, 산과 골을 만든다
  • 환경과조경 2003년 9월
이번 달에는 약속대로 지형(地形)을 다루면서 독자들과 만나기로 한다. 지난달의 나무와 관련해서 볼 때 지형과 나무의 관계는 사실 매우 밀접하다. 예를 들어, 소나무는 적당한 높이의 언덕위에 모여 심겨야 제격이다. 도시의 평지에 심기거나 가로수로 줄지어 심겨진 소나무는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원래 소나무가 산에서 자라는 나무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형이 항상 나무와 같이 어울려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나무 없이도 지형은 그 자체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소재다. 땅바닥면으로부터 조형의 대상으로까지 성장한 지형얘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토목의 땅, 조경의 땅 지형은 말 그대로 땅의 모양을 말하고 지형을 만진다는 것은 땅의 모양을 다듬고 고치는 일이다. 실제 외부공간에서 지형을 만지는 일은 주로 작은 언덕 같은 것을 만드는 일이 되어서 외부공간을 만드는 이들은 마운드 (mound)를 둔다 또는 마운딩(mounding)을 한다는 말을 사용한다. 골프장의 페어웨이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 같이 잔물결로 굽이치듯 땅의 표면에 파동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언듈레이션 (undulation; 땅에 파동두기)라는 말로 표현한다. 모두 영어식 표현이지만 실무에서는 그렇게 통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땅을 다루는 일은 토목의 권한내에 있다. 몇천세대가 살게 될 큰 택지지역의 지반 고르기와 경사가 급한 곳을 깍아내는 절토(切土)와 낮은 땅을 높이는 성토(盛土)등의 개념은 토목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토목이 다루는 땅의 스케일, 즉 규모는 통상 조경의 땅보다는 훨씬 커서 조경이 보이고자하는 땅의 섬세한 경관적 바램을 이루기에는 역부족이다. 조경의 땅은 작기는 하지만 지형의 변화가 미세해서 토목의 거시적인 눈으로는 잡아내기 힘들다. 조경의 땅이 토목의 땅에 비해 작고 미시적이긴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토목의 땅다루기에 필요한 모든 조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덧붙이도록 하자. 비가 내린 뒤 생기는 땅 표면의 물길 잡기나 절토와 성토의 토량계산 등은 단지 토목만의 일이 아니라 조경의 땅을 다루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기본적 이해들이다. 언덕이나 동산(童山)같이 아래의 땅에 비해 솟아오른 지형을 제주도 쪽에서는 오름이라고 부른다. 있는 그대로의 땅의 조형적 속성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군 시절, 6.25당시 격전장으로 유명했던 철원평야의 백마고지(白馬高地)에서 대공 발칸포기지 공사를 할 때의 경험인데 - 훈련 철에는 칼같이 훈련받고 훈련 끝나면 예외 없이 시멘트와 골재와 씨름하는 우리나라의 야전공병은 정말 훌륭한 군인임에 틀림없다 - 그 넓은 철원평야의 한가운데 백마고지만 볼록 솟아있는게 신기했다. 백마고지의 정상에서 보면 주변의 철원평야가 한 눈에 들어왔다. 추수 직전의 가을 저녁 무렵 석양빛을 받고 있는 철원평야를 보신 적이 있는지. 그때의 철원평야는 곱기도 했고 또 힘차기도 했다. 소음이 전혀 없는 한적함 속에서 - 민통선내 철원평야의 조용함과 평안함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 들녁의 황금색이 온 천지에 넘쳐났다. 옷과 얼굴이 시멘트로 범벅이 된 사병하나가 화랑담배를 피면서 철원평야를 내려다 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무 것도 지금은 중요치 않다는 생각을 한다. 작은 기억하나가 그 길고 힘들었던 시간을 일순간에 녹여낸다. 오름의 공간은 꼭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시애틀 교외의 개스웍스파크 (Gas Works Park)는 70년대 초반 정유공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만든 공원이다. 미국 조경가 해그 (R. Haag)는 공무원들과 시민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정유공장의 일부 시설이 공원에 그대로 남도록 했는데 이 결정이 결국 이 공원을 시애틀의 명물이 되도록 만든다. 공원에 일부러 남겨진 정유공장의 시설은 옛날 이 공원의 자리가 어떻게 쓰였었는지 또 무슨 과거를 갖고 있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훌륭한 책자이고, 공원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게하는 일종의 영상매체이다. 정유공장시설외에 공원에는 명물이 하나 더 있다. 높이 20여 미터의 작은 동산이 그것인데 주말이면 많은 시애틀시민이 이곳으로 올라와 연을 날리며 바람을 즐긴다. 동산에서 내려다보는 만(灣) 저쪽의 시애틀 도심의 스카이라인은 한편의 대단한 파노라마이다. 폐유에 의해 오염된 토양이 토양박테리아에 의해 자 연정화되는 몇 십년동안 생육이 어렵기 때문에 이 공원 내에는 전혀 나무를 두지 않았다. 나무가 없는 까닭에 잔디와 초지류로만 덮인 동산의 외형 윤곽선은 멀리서 봐도 그대로 참하게 살아있다. 20여 미터의 높이의 동산하나가 사람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공간적 감흥을 전해주는 사례이다. 시애틀이건 제주 도건 어디건 간에 동산은 오르는 맛,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맛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이는 맛이 같이 있어야 한다. 진 양 교 Chin, Yang Kyo·(주) 토문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 부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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