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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저항하기
주민참여
주민참여? 물론 중요하지. 디자이너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항을 반영할 수 있고, 이용자들의 만족도도 높일 수 있고, 더욱 민주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모두 동의해. 그런데 주민참여가 설계와 큰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어.
솔직히 말해서 주민참여 설계의 사례들, 좀 촌스럽지 않아? 타일 만들기, 벽화 그리기, 텃밭 가꾸기. 항상 식상한 아이템의 반복이잖아. 만약 주민들의 불만이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주민참여라면 내가 어제 인터넷 쇼핑몰에 불만섞인 글을 써놓고 환불 요구한 것도 주민참여겠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안을 관철시켜서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기는 경우는 들어봤어도, 주민참여를 통해서 걸작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어. 그리고 그토록 신선했던 설계안들이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그저 그런 작품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그래서 말인데 친구야. 네가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주민참여에는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저항 1 –하이라인
최근 디자인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공원을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하이라인High Line을 선택할 것이다. 설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공원의 디자이너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조경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라는 사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 공원을 기획하고 만든 당사자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그림1).
맨해튼 웨스트 첼시 지구를 관통하고 있는 고가 철도 하이라인은 1980년을 끝으로 운영되지 않고 방치된 상태로 남아있었다. 뉴욕 시는 이 버려진 고가 철도를 철거할 계획을 발표한다. 어릴 적부터 이 동네에서 자란 청년 로버트Robert Hammond는 우연히 신문에서 철거 계획을 보고 의문을 품는다. ‘이 멋진 구조물을 꼭 철거해야만 할까’ 여러 건축 및 문화재 보호 단체, 그리고 시당국에 문의를 해본 결과 아무도 이 구조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이라인 철거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소식을 듣고 로버트는 난생 처음으로 주민 공청회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이라인의 철거에 의구심을 품은 또 다른 청년 조슈아Joshua David를 만나게 된다. 로버트는 조슈아에게 말을 건다. “저기요, 우리 무언가를 함께 시작하지 않을래요” 하이라인 친구들Friends of the Highline은 이렇게 두 명으로 시작되었다(그림2).1
두 청년은 하이라인을 철거하려는 시당국의 계획에 맞서 여러 가지 활동을 시작한다.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고, 대상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디자인 대안도 제시하고, 법적 대응 절차도 강구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로버트와 조슈아는 사진가 스턴필드Joel Sternfeld와 연락해 대상지의 현황 사진을 찍기 위해 하이라인 구조물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맨해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야생의 정원을 목격한다. 그때 그들은 하이라인이 모두를 위한 공원으로 다시 탄생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그림3).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하이라인의 모습을 공개한 사진 전시회는 엄청난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하이라인은 지역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다. 5년 뒤 하이라인 친구들은 지역 주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한다. 마침내 2004년 새로운 뉴욕 시장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와 시당국은 하이라인을 공원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2009년 하이라인의 첫 구간이 개장한다. 로버트와 조슈아가 하이라인 친구들을 만든 지 정확히 10년만의 일이다. 현재 하이라인 친구들은 뉴욕 공원국과 함께 공원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고 향후의 공원 이용 계획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하이라인을 제임스 코너의 작품으로 알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코너는 철거될 구조물을 보존하자고 주장한 적도 없고, 이를 공원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시당국의 결정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하이라인을 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모든 기획과 실천은 로버트와 조슈아가 생각하고 발로 뛰어가며 이루어낸 성과다. 그렇다면 하이라인은 누가 만든 것인가? 제임스 코너라는 세계적 디자이너인가, 아니면 두 명의 동네 청년인가? 우리는 좁은 의미에서 코너가 제안한 공간적 구상과 도면들을 설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하이라인의 설계는 로버트가 어릴 적부터 보아오던 구조물의 철거 계획에 저항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코너는 하이라인을 공원으로 만들기까지의 많은 과정 중 일부분만을 담당한 협력자일 뿐이다.
로버트와 조슈아는 하이라인의 가장 중요한 의의를 물어보았을 때, 철거될 위기의 근대 유산을 보존했다거나, 지역에 뉴욕을 대표하는 새로운 명소를 만들었다거나, 현대 건축과 조경에 중요한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두 청년은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었던 그들이 이러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킴으로써 누군가 또 다른 하이라인을 자신의 지역에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는 점이 하이라인의 가장 큰 의의라고 말한다.
저항 2 - 포르타 볼타와 파킹데이
로버트와 조슈아는 하이라인을 통해서 저항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저항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의 잘못된 결정이 아무런 근거가 없을 수도 있고, 나의 이웃이 그 잘못된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이유는 무관심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저항이 하이라인처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로 발전되는 경우는 매우 예외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저항의 목소리는 대립되는 논리나 무관심 속에 묻혀버린다. 그럴 경우 실천이 중요하다. 설계는 실천적 저항의 가장 중요한 도구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포르타 볼타Porta Volta라는 동네에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공지가 있었다. 어느 날 서커스 단원들이 이곳에서 서커스 연습을 시작했고 동네 아이들에게 공짜 서커스는 인기 있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 공지는 주민들이 모이는 동네의 명소가 되었다. 얼마 뒤 공지는 한 재단에 팔려 주차장으로 개발되기로 결정된다. 주민들은 그 계획안에 맞서 이 부지를 작은 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시에 제출한다.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시는 개발이 착수되기 전까지 남은 한 달 동안 주민들이 자유롭게 부지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어준다. 작은 지역 설계 회사와 함께 주민들은 쉼터,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 텃밭, 정원으로 이루어진 공원을 만들어 나간다. 이 빈터는 화려하진 않지만 주민들이 늘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가꾸어나가는 공공 장소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약속대로 한 달 뒤에 이 공원은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철거된다(그림4, 5).2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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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의 서재] 책과 헤어지지 않기2
책과 설계와 나
‘올곧은 삶’이라는 손 글씨
벌써 가물가물한 일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 너머옆집에서 자취를 하시던 담임선생님이 실로 오랜만에 내 고향 집을 찾으신 적이 있었지요. 대학 합격을 축하한다면서 불쑥 내민 문고판 크기로 출판된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finch의 『그리스 로마 신화』 표지 안에는 ‘올곧은 삶’이라는 손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의 연배가 아마도 지금 내 나이쯤이었을 겁니다. 선생님은 굳이 산골 분교만 골라서 다니시던 아동문학가였습니다. 소박한 동화를 쓰겠다는 목표를 초임부터 묵묵히 실천하시던 선생님도 때로는 삶의 궤적이비틀거린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부끄럼 탓인지 짧은 글귀의 뜻을 여쭙지 못했지요.
벌써 마흔을 넘어 수년이 부질없이 더 흘러갔습니다. 시인 허연은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내 나이에 이젠 모든 죄가 다 어울린다는 것도 안다. 업무상 배임, 공금횡령, 변호사법 위반. 뭘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린다. 때묻은 나이다. 죄와 어울리는 나이.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죄와 잘 어울린다.”2 그렇군요. 부인할 수 없어요. 적잖이 비열하고 야비해도 별 이상할 게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회의하고 탈선하고 타락하려는 삶을 ‘올곧게’ 잡아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이라는 날을 다시 살면서 결코 너의 정신을 그 위엄 있는 말이 흐리게 하는 일이 없도록, 그런 걸 해서 뭐가 되겠는가, 라는 예의 그 말이.”3라는 시인 겸 비평가 폴발레리Paul Valéry의 결연한 다짐처럼.
문사철시서화는 오늘날 설계가의 소양이지만 신영복 선생이 이르기를, 군자는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중략)… 문사철시서화文史哲詩書畵를 두루 익혀야”4했다고 하지요. 무릎을 쳤습니다. 그 대목을 읽고 바로 이 여섯 자가 다름 아닌 우리 설계자들이 평생 익힐 소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퍼뜩 드는 생각을 조금 다듬어보면, 책을 읽고 쓴다는 것과 설계를 한다는 것은 실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적어도 나에겐 아주 멀지요. 문학과 설계가 비슷한 시간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비슷한 결과 물을 내지는 않는다는 말이지요. 쉽사리 금방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자신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읽을 수가 없는 것을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되풀이 해서 읽는 것이고, 이를 통해 마침내 남의 꿈을 그대로보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접속하게 되면 정면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지요. 결국 책을 읽는 것은 광기의 도박입니다. ‘읽어버리면’ 써야 하고, 고쳐 쓰면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죽음까지 불사합니다. 성서를 읽고, 다시 읽고, 쓰고, 또 고쳐 쓴 문학가이자 혁명가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5 두렵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 방어적 태도를 취하며 책을 그저 ‘정보’의 수준까지만 받아들이고 만다는 겁니다. 문학을 통한 혁명을 외면하지요. 그렇다면 설계는 어떨까요?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받았다. 졸업 후 1999년부터 16년째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고 있다. 4년 전부터는 개인 주택 정원, 어린이집과 학교의 외부 공간, 농장 조경계획, 공장 외부환경 개선사업, 아파트 조경 가이드라인 등 하나하나 성격이 다른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중에 그 공간에서 머무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하는 조경설계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현재 스튜디오테라(STUDIOS terra)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공저로 『철새협동鳥합』이 있고, 제프 마노가 쓴 『빌딩 블로그』를 번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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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방법론에 대하여: 설계에 대한 탐구적 접근
첫 번째 글에서는 비정통성, 기회주의, 그리고 책임감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나의 설계 방법론이 구체화되기까지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호에서는 실제 설계를 함에 있어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여느 조경가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설계를 할 때 연구, 분석, 개념, 프로그램 설정, 공간의 구상과 같은 과정을 거치며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투시도를 만든다. 특별히 남과 다른 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하는 것은 아마 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남과 다른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완전히 희한한 새로운 것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하더라도 남들과는 다른 방법을 찾아서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연구 방법론은 가설을 설정하고 연구를 통해 이를 검증한다. 전통적인 설계 과정도 이와 비슷해서 합리적 분석을 통해 초기에 설계의 전제와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이용해 최종적으로 도출되는 논리와 결과를 정당화시킨다. 이와 상반되는 방법이 탐구적인 연구exploratory research다. 어떠한 가설이나 전제를 갖고 특정한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다양한 방향을 연구한 후 여기에서 나타나는 증거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구의 궁극적인 방향이 발견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탐구적 연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1996년 하버드 GSD에서 렘 콜하스Rem Koolhaas와 함께 하버드 도시 연구 프로젝트Harvard Project on the City를 수행할때였다. 연구 첫 시간에 모든 연구원이 각자의 연구 주제와 이를 위한 가설thesis을 만들어 왔는데 연구를 총괄한 콜하스가 엉뚱한 주문을 했다. 모든 가설을 버리고 백지에서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설을 원하지 않는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는 연구는 이미 답을 알고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잘 되어도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설과 입증의 전통적인 연구 방식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이와 같은 탐구적인 방법론은 획기적인 것이었는 데,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결과를 추구하는 연구방식이 지금까지 나의 설계 방법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탐구적 접근은 당연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탐구적 방법론에서 연구와 분석은 결과를 정당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차태욱은 미국 뉴욕에 위치한 수퍼매스 스튜디오(Supermass Studio)의 대표로 미국을 근거로 한 17년간의 국제적 설계 경력을 통해 설계및 프로젝트 운영, 시공에 이르는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하버드 GSD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뉴욕, 매사추세츠,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에 공식 등록된 미국 공인 조경가로서 친환경전문자격증(LEED)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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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데이비드 브룩스
예술가
2012년, 타임스퀘어 인근 뮤지컬 극장가에 대형 설치미술이 모습을 나타났다. 고층 건물 사이에 설치된 작품은 마치 땅에 묻힌 단층집처럼 보인다. 미국의 도시 외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조로운 단독 주택의 모습이지만, 땅에 묻혀 있어서 보이는 건 지붕뿐이다. 아스팔트 싱글asphalt shingle이라는 저렴하고 평범한 재료로 만든 지붕은 미국 교외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을 이룬다. 그런데 맨해튼 한가운데 출현한 이 지붕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독특하다. 게다가 작고 아담한 지붕도 아니고 무척이나 덩치 큰 주택, 소위 말하는 맥맨션McMansion 지붕이다. 맥맨션이란 넓은 대지에 자리한 최상위층의 저택과는 달리, 중산층을 겨냥해 일반적인 넓이의 택지에 면적을 낭비하는 과도한 크기와 천편일률적인 모양으로 찍어낸 듯한 주택을 말한다. 맥도날드처럼 저렴하고, 지나치게 크며, 사회적인 문제가 된 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맥맨션은 주택 시장의 비정상적인 과열을 부추기고 겉모습을 중시하는 얄팍한소비주의를 대표한다.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면서 가장 먼저 골칫덩이로 대두된 것이 맥맨션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미국의 자연 경관을 무서운 속도로 좀먹어가는 맥맨션과 스프롤sprawl 현상을 뉴욕 한가운데로 가져왔다. 그는 어린 시절 거의 매년 플로리다남부로 가족 여행을 다녔는데 해마다 습지가 메워져 주택가가 되고 쇼핑몰이 들어서는 모습에 경악했다고 한다. ‘사막 지붕Desert Rooftops(2011~2012)’은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의 확산을 예술가의 눈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스프롤’이라는 미국 사회의 복잡다단한 현상을 아스팔트 싱글 지붕으로 압축시켜 표현했다. 우리가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스프롤의 단면이 지붕이라는 장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최근작인 ‘갭 이콜로지Gap Ecology’, 일명 ‘리프트와 종려나무의 정물화Still Life with Cherry Picker and Palms(2009~2013)’는 대개 건물의 유리창 청소나 보수작업에 이용되는 이동식 리프트 위에 종려나무 화분을 올려놓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치 최근에 유행하는 옥상 정원과 그린 빌딩에 대한 냉소적인 일격 같다. ‘보존된 숲Preserved Forest(2010~2011)’은 열대 지방의 무성한 숲 일부를 갤러리로 옮겨와 스프레이 콘크리트로 수목의 잎과 줄기를 모두 덮어버린 작품이다. 아마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발 지역 도로변 숲이 시멘트 먼지를 뒤집어 써 회색빛으로 박제가 된 모습을 은유한 것 같다. 혹은 수박겉핥기식으로 전개되는 환경 보존 운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외침으로 들리기도 한다. ‘대이동과 구아노의 정물화Still Life with Stampede and Guano(2011)’는 인상적인 과정 중심의 작품이다. 시멘트로 만든 동물상을 플로리다 군도 야생조류센터Florida Keys Wild Bird Center에 넣어두어 갈매기와 펠리컨 등의 갖가지 새똥, 즉 구아노guano가 자연스럽게 표면을 덮어 만드는 패턴을 보여준다. ‘새똥’이라는 핵심적인 자연의 순환 고리를 여과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이 작품은 강렬한 시각적 효과뿐만 아니라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새똥을 맞은 시멘트 동물처럼 우리는 항상 새똥을 맞고 산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한 해에도 여러 가지 전혀 다른 콘셉트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데이비드 브룩스는 오랜 기간 보전생태학 활동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독특한 시각의 토대를 형성했다. 환경의 시대, 우리의 식상한 자연관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데이비드 브룩스의 작업은 조경가로서 눈여겨 볼만하다.
Q. 플로리다 남부와 남아메리카를 정기적으로 여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현지 조사는 예술적 작업을 위한 기초 연구인가? 보전생태학 활동에 참여하게 된 배경과 그에 대한 당신의 관점은 무엇인가?
A. 지난 15년간 많은 시간을 어류학자와 조류학자, 보전생물학자들이 이끄는 현지 조사에 자원봉사자로서 참여해 왔다. 플로리다 남부의 플로리다 군도Florida Keys와 에버글레이드Everglades,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유역Amazon Basin, 가이아나 쉴드Guyana Shield, 안데스 산맥 유역Andean river drainages 등을 탐험했다. 학제간 협력에 기반을 둔 보전생물학처럼 나의 작업은 문화적 문제와 자연환경을 연결한 결과물이다. 자연은 언제나 문화라는 틀을 통해 인식되고 이용된다. 보전생물학이란 생물종다양성을 유지하는데 사명을 둔 다학제적 과학이다. 보전생물학자들은 역사와 기반 시설, 미학, 사회적 책임 등을 시대 경관이 공유하는 토대로 보기 때문에 그런 주제들을 혼합한 분석 방법을 종종 사용한다. 나의 작업 또한 보전생태학 처럼 수많은 주제 사이를 오가며 형태적인 도구와 소재의 전통, 대상지의 제약된 환경 등을 얼기설기 엮어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나는 현대의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토해낸 심각하고 다급한 상황을 중심 주제로 다룬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활동하는 보전생물학자들이 현 시대의 가장 전위적 사상가들avant-garde thinkers이며 예술적 담론을 위한 산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5, 2007, 2010, 그리고 2012년에 나는 베네수엘라의 브라조 카시퀴아레Brazo Casiquiare, 브라질의 아크리Acre, 에콰도르의 코르디예라 델 콘도Cordillera del Condor, 페루의 마드레 드 디오스Madre de Dios 등지에서 생물학적 조사 작업을 진행하는 과학자들을 도왔다. 그 네 차례의 원정을 통해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큰 결실을 맺었고 우리는 약 40여 종의 보고되지 않은 어류를 수집했다. 그러나 이 무척이나 궁벽한 아마존의 오지에서조차 인간이 미친 영향은 충분히 충격적이 었고 경악스러웠다. 오늘날의 세계화된 경제와 문화적 욕구, 사회적 병리현상, 말세적인 규모의 생태적 재앙은 마치 하나의 복잡한 정신병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느꼈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대결을 부추기면서 엔트로피의 급격한 증가를 가속화한다. 나는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엔트로피를 기록·해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나의 분야인 문화적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은 어떤 관념적ideological인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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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지앤아트스페이스
2008년에 개관한 지앤아트스페이스Zien Art Space는 도자 예술을 기반으로 한 복합 문화 시설이다. 대개 복합 문화 시설이라는 용어는 랜드마크적 건축물과 다소요란한 사이트 플랜, 대형 환경 조형물, 그리고 수많은 인파 등을 연상시키기 마련이다. 문화와 소비의 결합을 축제적 분위기로 승화시키는 복합 문화 시설은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판타지를 제공해주어야 하는 곳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 지앤아트스페이스에서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단 크게 튀지 않는다. 자연녹지 지역의 건폐율 제한 때문에도 그러했겠지만, 슬쩍 둘러보았을 때 강하게 감지되는 형태적 잔상이 크지 않다. 오히려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길 건너편의 백남준아트센터로 몰리기 십상이다. 심지어는 가로와 접하는 면에 자작나무 숲을 조성하여 대상지를 조금 더 가리고자 하는 시도도 엿볼 수 있다. 실제로는 꽤 큰 규모의 시설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을 지하에 배치하고 지상에서는 분절된 몇 동의 건축물을 보여주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선큰 방식의 구성을 통해서 얻는 또 하나의 이익은 바깥으로 보이는 산만한 경관을 레벨 차이를 통해 차단함으로써 대상지 내의 깔끔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였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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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레인 브리지
The Ravelijn Bridge
라벨레인Ravelijn은 네덜란드의 베르헨 옵 좀Bergen op Zoom 시에 위치한 요새화된 섬이다. 군병 엔지니어인 메노 판 쿠호른Menno van Coehoorn에 의해 18세기 초에 건립되었으며, 그의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이 요새화된 섬은 방어적 기능을 위해 지상을 통한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되었고, 보급품과 병사들을 요새로 실어 나르기 위해서는 80m 가량을 노 저어 이동해야 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요새의 출입구가 그 흔적을 보여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요새는 더 이상 방어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1930년에는 주변보다 높게 세워진 목재 교량이 추가로 건설되었다. 현재 라벨레인은 주로 작은 규모의 대중 및 개인 행사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라벨레인 브리지The Ravelijn Bridge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해야 했다. 첫 번째는 요새를 도심과 연결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추가적인 탈출로를 마련하는 것이다. 라벨레인 브리지의 형태는 과거 이 요새에 물자 공급을 하는 방식에서 착안되었다. 다리의 설계 개념은 과거 배가 지나다녔던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도록 하는 것이다.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요새까지 이어지는 다리는 도시와 요새 사이를 오가던 배의 이동 경로를 그대로 재현한다. 라벨레인 브리지는 경로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배의 모습을 모방한다. 다리는 수면 아래의 지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구조를 갖는다. 겨울철에 다리를 요새의 바깥 측면으로 이동시키면 요새 주변을 실외 스케이트장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다리와 이어진보트 선착장의 계단은 수위에 따라 아래위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데크 부분은 볼록하게 만들어져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Architect RO&AD Architecten
Design Team Ro Koster, Ad Kil, Martin vanOverveld
Commissioner City Council of Bergen op Zoom
Structural Engineer W2N Engineers, Drachten,Netherlands
Contractor Allflex, Halsteren, Netherlands
Location Bergen op Zoom, Middelburg,Netherlands
Function Pedestrian bridge
Total Length 80 meters
Construction Time 3 months, finished March 2014
Photographs Eric Stekelenburg,RO&AD Architecten
알오앤에이디 아키텍텐(RO&AD Architecten)은 200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의 건축설계사무소다. 이들은 다양한 스케일과 성격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속가능성, 명확성, 열정, 그리고 신선함을 공통적으로 담아내려고 한다. 알오앤에이디는 ‘요람에서 요람까지(Cradle toCradle)’라는 원칙에 입각해 설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제품의 제작 및 사용, 그리고 재활용까지 생각하는 ‘작동하는 설계(working drawing)’로 마무리하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다.
- RO&AD Architecten / RO&AD Architec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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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롬펜버그 에스테이트
Trompenburgh Estate
트롬펜버그 에스테이트는 ’s-그레이브랜드1에 남아있는 유산 중 하나다. 트롬펜버그 에스테이트는 위쪽으로는 호이Gooi의 모래땅이, 아래로는 베흐트 강river Vecht 주변으로 이탄지peatland가 형성되어 있는 경계에 위치했다. 힐버섬Hilversum 서쪽의 미개간지였던 이 지역은 네덜란드인에게 ‘황금 세기Gouden Eeuw’2라 불리는 17세기에 초록이 무성한 영지로 탈바꿈했다.
현재의 트롬펜버그는 코르넬리스 트롬프 제독Admiral Cornelis Tromp3이 1677년에 지은 저택이다 ― 현재의 트롬펜버그 저택 이전에 이 부지에는 안드리스 비커(Andries Bicker)가1636년에 지은 또 다른 저택이 있었지만 네덜란드인에게 ‘재앙의 해’로 불리는 1672년, 프랑스인에 의해 불타버렸다. 코르넬리스 트롬프는 첫 번째 남편으로부터 영지를 물려받은 미망인 마가레타 반 레포스트Margaretha van Raephorst와 결혼하면서 트롬펜버그 영지의 주인이 되었다. ‘황금 세기’에 ’s-그레이브랜드는 호이 교외 지역의 개발로 큰 이익을 본 암스테르담의 고위 공무원들과 상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름 별장지였다. 이 시기에 그들은 자신의 농장을 아름다운 정원과 파크가 있는 커다란 시골 저택으로 개조했다. 트롬프와 반 레포스트는 그들의 저택을 고전적 양식으로 꾸몄다. 저택 앞의 호수에 떠 있는 네 개의 섬은 대칭적으로 배치되었다. 저택의 바로 뒤 둥근 거울못 주위로 기하학적인 ‘산책 정원strollinggarden’을 조성했으며, 정원 뒤로는 농지가 딸린 담으로 둘러싸인 과수원enclosed orchard을 만들었다.
Team Sylvia Karres, Lieneke van Campen, Tomas
Degenaar, Claire Oude Aarninkhof, Cristina
Colonetti
In partnership with Simon Klingen
Client Dutch Government Buildings Agency
Location ’s Graveland, Netherlands
Area 21ha
Completion 2012(Phase1)
Photographs Chiel van Diest, Karres en Brands
카레스 앤 브란트(Karres en Brands)는 네덜란드와 해외의 여러 프로젝트와 연구, 공모전 등에 참여하고 있다.토지 계획, 기반 시설 프로젝트, 공원 및 정원 설계, 도시계획, 시설물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의 공간 디자인 작업을 아우르고 있으며, 현대에 발생하는 공간적 도전에 맞서 적절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열정과 장인 정신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 Karres en Brands / Karres en Br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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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닮은’ 모습을 만드는 일
지금도 분명히 기억이 난다. 불과 몇 달 전, 나는 『환경과조경』 면접을 앞두고 친구에게 모의 면접을 부탁했다. 친구는 그럭저럭 무난한 질문을 던졌고 나는 시험공부 하듯 외워둔 ‘모범 답안’으로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 “그렇다면 ‘환경’과 ‘조경’은 어떤 관계에 있나요”에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서둘러 백과사전을 뒤졌다. “‘환경’은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생존조건의 총화이며, 인간은 유사 이래로 ‘환경’과의 상호관계를 지속해왔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은 ‘환경’을 의도적으로 변화시켜 왔는데, 이러한 변화의
결과물 혹은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인간 행위를 광의의 ‘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조경’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를 계획·설계·시공·관리하는 예술이다.”1 알 듯 모를 듯 어려운 이 문장을 곱씹으며 면접에서 절대 이 질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결국 면접장에서는 이 질문이 나오지 않았지만 어찌나 열심히 외웠던지 지금까지도 그 답안을 기억하고 있다.
뜬금없이 나의 면접 이야기를 꺼낸 것은 대관령 하늘목장에서 당시 어렵게 느껴졌던 그 질문을 다시 받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초지, 푸르른 하늘, 아스라이 물결치는 능선이 있는 풍경. 총면적 1,100만m2에 이르는 장대한 자연 경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한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자연 환경이 너무 거대하고 강렬해서 이곳에 무엇을 더하거나 뺀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곳에 조경이 비집고 들어갈 영역이 있을까’ 몇 달 전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투박함, 꾸밈없이 아름다운
“처음에는 목장의 능선을 따라 세워진 풍력발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오랫동안 목장의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풍력발전기가 오히려 시선에 방해돼요.” 취재를 가는 차 안에서 이수학 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레는 마음이 커져갔다. 실제로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풍력발전기였다. 하늘목장은 1단지와 2단지가 양 갈래로 뻗어 나가 ‘V’자 형태를 이룬다. 이 능선 둘레를 따라 100m 높이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띄엄띄엄 놓여있다. 대관령 일대에만 풍력발전기가 49대 있는데 이 중 29대가 하늘목장에 있다고 한다.2 마치 거대한 설치 미술처럼 연이어 늘어선 풍력발전기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수학 소장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이 풍경에 익숙해지고 좀 더 구석구석 바라보게 되면서 이 거대한 오브제는 쓸데없는 수식처럼 느껴졌다. 운무가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오고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하늘이 목장을 감싸는 이곳에서는 거칠고 투박한 자연만이주인공이었다.
최근 농장 체험, 목장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이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동화같이 인위적인 모습으로 꾸민 농장과 목장이 늘고 있는데 반해 하늘목장은 지난 40년 동안 가꾸어 온 목장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하늘목장의 백승두 사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외부 사람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하지만 한일시멘트 사람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이 목장은 성지와 같은 곳입니다. 선대 회장의 남다른 애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개방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지요.”3 이수학 소장은 방대한 부지에 비해 부족한 예산과 목장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남다른 애착 때문에 설계에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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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황토현, 모두가 평등한 땅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설계공모
황토현은 농민과 혁명의 기억이 오롯이 새겨진 현장이다. 우리는 과거 시제의 서술과 상징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체험하는 기억’으로 황토현과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고자 한다. 장소에 깃든 기억을 ‘지금, 여기에’ 되살리는 공원이란 방문자가 스스로 거닐고 살피고 더듬으면서 장소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공원이다.
세 가지 이야기
폴Poles - 십만의 목숨, 십만의 폴: 농민군의 죽창을 떠올리게 하는 대나무와 기둥 등 수직적 요소를 도입해 부지 전체를 하나로 엮어주고 조형미를 부여한다. 또한 ‘10만’이라는 숫자를 통해 10만 농민의 희생을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루프Loop - 모두가 평등한 세상, 평등한 +29.5: 29.5m 레벨의 루프는 산발적으로 흩어진 기존 시설을 위계가 없는 하나의 공원으로 통합하며, 동등한 레벨을 따라 걷는 경험을 통해 ‘평등’이라는 이념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끔 한다. 이 루프에서 모든 프로그램이 발생하고 엮인다. 루프 자체가 곧 기념 공간이다.
필드Field - 평등을 위해 피 흘린 전장, 황토현: 자연상태 그대로의 드넓은 초지, 그 거친 질감을 통해 전장을 체험하도록 한다. 초지의 계절 변화와 수위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게 되며,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동학의 의미를 투영할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한다.
다층적인 경관
동학의 평등사상에 입각한 위계 없는 루프를 따라 돌며 공원의 체험이 이루어진다. 루프의 연속적인 흐름은 폴, 필드와 만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성격의 기념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완결된 하나의 기념 공원을 형성한다. 루프를 돌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출되는 거친 초지는 그 자체의 물성을 통해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반면, 필드에서 바라보는 루프는 일종의 ‘지평선’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동학농민혁명이 이루고자 했던 ‘평등’이라는 가치를 환기시킨다. 폴은 루프와 필드를 넘나들면서 두 요소를 시각적, 공간적으로 엮어준다.
기억을 되짚는 여정
Intro. 혁명의 불꽃 만석보: 방문자가 가장 먼저 만나는 디자인적 요소는 가로막힌 황토벽이다. 황토벽 사이로 난 틈새로 들어가면 벽 위로 올라가는 램프를 만나게 된다. 이 램프를 따라 서서히 오르면 비로소 동학을 기념하고 체험하는 공원으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01. 모여드는 농민들: 황토벽에서부터 동학의 평등 이념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레벨 29.5m의 루프가 시작된다.
- 그룹한(박명권) + 사이건축(박인영, 이진오) + 배정한(서울대학교) + 최혜영(West 8) + 이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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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黃土峴 들풀, 하늘을 보다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설계공모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위해
1897년 동학농민혁명, 들풀과 같이 가장 낮은 자리의 농민들이 스스로 자신들 삶의 주인임을 선언하며 역사의 전면에 나선다. 인내천人乃天 즉, 신분이나 빈부의 차별을 벗어난 인본주의 사상의 전파로 농민들은 스스로를 의지하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일어난다.
2014년 가을, 땅과 함께 평생을 살다 땅으로 스러져간 농민들의 염원을 땅에 담는다. 땅을 세워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해 의연히 일어선 그들의 뜻을 기리고, 한길 땅 속 내림으로 그들의 값진 희생을 추모한다. 갈라진 땅 틈으로는 그들이 가슴에 담았던 하늘을 투영한다. 땅 결 사이로 솟아오른 들풀의 이미지처럼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가치는 방문객의 다층적인 경험 속에서 구현되고 전파된다.
높고 낮음이 없이 누구나 동등한 희망을 위해
사발통문은 은유적으로 높고 낮음 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꾼다. 기존시설과 새로이 들어서는 시설 각각에 영역과 방향성을 부여한다. 이들은 주체와 객체의 구분 없는 사발통문처럼 독립된 경관 요소로 작용하되, 전체가 모여 대상지에 하나의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중요한 전술적 거점이었던 도교산, 사시봉(농민군 주둔지), 황토현(관군 주둔지), 그리고 혁명의 도화선이었던 만석보와 배들 평야 등의 지형 속에 산재된 기존 시설 사이에 새로운 시설과 동선을 배치한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땅과 함께 숨 쉰 땅의 사람들을 위해
대상지의 황토는 붉다. 모든 양분이 용탈되고 철분만이 남은 외국 사막의 붉은 색이 아니라 갓 태어나 암석에 들어있던 무기 성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우리나라 최대 곡창 지대를 지탱하는 혈기 왕성한 젊음의 붉은색이다. 이 붉은 땅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주목한다. 산자락 완만한 남사면에서 계절따라 다양한 색채의 작물을 키워내고 밭 귀퉁이 소나무 그늘 아래서 땀을 식힌다. 드넓게 펼쳐진 작물 사이로 굽이굽이 난 붉은 빛 황톳길은 열린 하늘과 대비를 이뤄 인상적인 경관을 만들어 낸다. 황토는 땅에 뿌리내린 농민의 색깔이며 질감이다.
- CA조경(진양교) + 동부엔지니어링(이문규) + 동우건축(김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