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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곤 메모리얼
Pentagon Memorial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국방부를 향했던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희생당한 184명의 유족 대표단은 그들이 사랑했던 이들을 명예롭게 할 메모리얼을 건립하기 위한 계획을 구상하고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8개월 후인 2002년 여름, 펜타곤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가 발표되었고, 미 육군공병단에 의해 공모에 참가한 작품들을 평가할 심사위원들이 구성되었다. 심사위원단은 세계 50개국으로부터 접수된 1천 1백개 이상의 참가작들을 평가하여, 최종 결선에 진출할 6개의 작품을 선별하였다. 이후 2003년 3월 3일 미국 국방부와 미 육군공병단은 만장일치로 KBAS의 계획안을 당선작으로 발표하였다.
아메리칸항공 77편의 충돌 지점에 인접한 펜타곤 메모리얼은 다른 어떤 장소와도 같을 수 없는 특별한 곳이다. 개인적인 해석은 방문객의 몫으로 남기면서,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미리 정하지 않은 설계를 통해 숙고와 판단을 요구한다. 사실상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숭고한 중요성을 증언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는 생명을 빼앗긴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특수한 요소들이 설치됨으로써 이루어졌다.
희생자들의 나이에 근거한 시간표가 작성되었고, 184개의 추모의자들(Memorial Units)이 나이의 선(Age Line)을 따라 77편의 궤적에 평행하게 배치되었으며, 이는 1930년에서 1988년까지 분포하는 각 희생자들의 태어난 해를 표시한다. 형태와 배치가 매우 유기적이며, 각 추모의자는 각자에게 헌납된 특별한 장소로 분리됨으로써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이처럼 캔틸레버(외팔보) 형식의 추모의자의 방향은 그 사람이 충돌의 순간에 미 국방부 건물에 있었거나 77편에 탑승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각 개인의 이름이 추모의자의 끝에 새겨졌는데, 밤에는 조명을 밝힌 풀(pool)로 인해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Concept Design _ KBAS(Keith Kaseman & Julie Beckman)Landscape Architects / Architect of Record _ Lee + Papa and AssociatesClient _ The Pentagon Memorial Fund, Inc.Owner _ US Department of Defense / Washington Headquarters ServicesLocation _ Arlington, Virginia, USASize _ approximately 2 acresCompletion _ 2008. 9. 11Building Materials _ Stainless Steel, Granite(Gold & Black), Conc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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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애리조나 메모리얼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USS Arizona Memorial & Hiroshima Peace Memorial Park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한국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쉽게도 필자가 원고 청탁을 받은 것은 외국에 있는 메모리얼로 제약이 되어있어서 한국전쟁 메모리얼은 다루지 못하고, 대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메모리얼을 소재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전쟁이야기를 잠깐 해보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문자 그대로 세계 전체를 전장으로 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전쟁이었다. 참가국은 연합국측이 49개국, 동맹국측이 8개국이며, 중립국은 스위스 등 6개국에 불과하였다. 동원병력 1억 1천만명, 전사자 2천 7백만명, 민간인 희생자 2천 5백만명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할 때 제2차 세계대전은 동원병력수가 약 2배, 전사자는 약 5배, 민간인 희생자는 약 50배이다. 서양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전쟁을 일으켰고, 동양에서는 일본이 중일전쟁과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제국 해군이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의 지휘를 받으며 진주만에 대한 기습공격을 시작했다. 하와이 주 오아후 섬에 위치한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은 미국 태평양 함대와 이를 지키는 공군과 해병대를 대상으로 감행되었다. 전투기 및 폭격기 등으로 구성된 비행단이 발진하여 아침 7시 55분 목표지점에 도착하여 공격을 개시하고, 그들은 완전한 기습공격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뜻의 암호 통신문인“도라, 도라, 도라”를 함대로 전송하였다. 당시 진주만에는 130척의 미 태평양 함대의 함정들이 평온하게 정박하고 있었고, 9척의 전함중 7척이 포드섬 남쪽해안의“전함 선착장”에 일렬로 묶여져 있었다. 약 8시 10분경 USS 애리조나는 1,760파운드의 관통용 폭탄 세례를 받고 갑판이 뚫려 전방 화약고가 인화·폭파되면서 1,177명의 승무원과 함께 침몰하였다. USS 오클라호마호 역시 수발의 어뢰를 맞고 완전히 뒤집혀 4백명 이상이 그 안에 갇혔으며, 캘리포니아호와 웨스트버지니아호는 정박지에서 그대로 침몰하였다. 이밖에 메릴랜드, 펜실베이니아, 그리고 테네시호 등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하와이가 공격을 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하여 제2차 계대전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던 미국인들은 하나로 단결하게 되었다. 일본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결국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이어지게 된 태평양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1942년 8월에“맨해튼 계획”으로 명명된 원자폭탄제조계획에 착수하여, 1945년 7월 16일 원자폭탄실험에 성공한 후 일본과의 전쟁종결 수단으로서 동시에 원자폭탄의 효과를 정확히 측정해보고자 히로시마, 고쿠라, 니가타, 나가사키 등을 목표도시로 선정한 후, 비교적 공습피해가 적고 연합군포로수용소가 없었던 히로시마를 제1목표로 정하였다. 일본의 전황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인류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다. 원자폭탄은 시가지 상공 약 600m 지점에서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섬광과 함께 작렬하여, 폭심지로부터 2㎞에 이르는 시가지의 건물이 흔적도 없이 부서지고 불타버렸으며, 폭풍과 열선 등에 의해 약 14만명(1945년 12월 기준)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중에는 한국인 2만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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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메모리얼과 멜버른 전쟁기념관 중정
유족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발리 메모리얼
2002년 발리 폭파사건은 어쩌면 우리에게 낯선 사건일지 모른다. 당시 우리는 2002년 월드컵 열기의 감흥이 아직 남아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 사람들에게 있어 2002년 10월 12일은 그들의 역사상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중 하나가 되었다. 202명의 무고한 생명이 테러의 희생물이 되었고, 그중 91명의 호주인들이 생을 마감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을 추모하는 공간들이 크게 영국, 호주, 발리에 생겨났고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호주는 멜버른과 퍼스, 시드니 그리고 캔버라에 각각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그중 22명의 희생자가 있던 빅토리아주는 사건발생 3주기를 맞아 멜버른 Lincoln Square에 Bali Memorial을 조성했다.
여타 추모공간이 남은 유족들에게 큰 의미가 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상지 결정이나 디자인만큼은 그들의 의사나 의도와 상관없는 공간이 되곤 하는 게 일반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발리 메모리얼은 조금은 다른 시도가 이루어진 사례로 남을듯하다. 바로 대상지 선정과 계획 및 설계에 있어서 유족들의 절대적인 의견과 의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젊은 청년들이었기에 유족들은 그들의 젊음을 상징하는 지역을 대상지로 삼길 원했고, 이러한 이유로 발리 메모리얼이 대학가에 들어서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물과 햇볕 그리고 탁 트인 공간이 대상지내에 포함되길 원했다. 이러한 그들의 제안은 202개의 자그마한 바닥조명(전체 희생자를 상징)과 91개의 분수(호주인 희생자를 상징) 그리고 빅토리아주의 희생자 22명의 이름이 기록된 추모 현판의 도입으로 실현되었다.
Design _ Melbourne Council & Victim’s FamiliesLocation _ Lincoln Square, Melbourne, AustraliaBudget _ Au$ 185,000Construction _ 2construct
강한 대비가 인상적인 멜버른 전쟁기념관 중정멜버른에는 ‘Shrine of Remembrance’라는 이름의 전쟁기념관이 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인데 이 기념관의 중심축이 멜버른 중심가를 한축으로 가로지르는 Swanston Street의 축과 같이 하고 있어 이곳의 역사적 무게감을 더해 주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정원은 이 전쟁기념관의 한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면 한눈에 들어오는 전쟁기념관 건물의 모습과는 달리 이 정원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 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두운 대리석과 대조되는 두 가지 색이 눈에 들어오는데, 하나는 기념관을 바라볼 때 왼쪽에 위치한 붉은색의 안내센터 입구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오른편에 위치한 ‘Garden Courtyard’이다. 평면상으로는 두 곳 모두 왕관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기념관 입구에서 볼 때는 단순한 벽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안내센터 입구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붉은색의 벽과 바닥 그리고 헌화할 수 있는 곳 말고는 벽에 새겨진 몇몇 글들이 눈에 보이는 전부. 상당히 건축적인 공간이지만 거대한 기념관이 압도하는 느낌의 외부공간과 달리 위요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붉은 색의 벽면과 함께 위요된 듯 비어있는 이 공간은 때로는 기념을 위한 공간으로 단순히 비어두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Garden Courtyard’역시 안내센터 입구와 같은 형태의 공간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형태적으론 같지만 반대편의 빈 공간과는 달리 이곳은 올리브, 오크, 덩굴류 식물과 함께 목재데크로 채워져 있다. 즉 틀은 같지만 다른 내용의 그림이 그려있는 곳이다. 이러한 특성은 기념관 테라스에 올라가면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Garden Courtyard’ 디자인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고인을 추모하고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올리브 나무를 이식시킨 것이다. 이식된 올리브 나무 주변으로는 사암과 목재데크, 낙엽성 오크로 마감되었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이 정원을 보다 드라마틱하고 시적인 인상마저 들게 한다. 이 공간은 특별한 날의 기념 및 회상의 자리로 이용된다. 벤치와 벽구조물은 꽃을 헌화하기 위한 제단이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구조물 아이템은 헌화된 꽃들의 섬세함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Architect _ Ashton Raggatt McDougallLandscape Architect _ Rush/Wright AssociateClient _ Shrine of Remembrance TrusteesLocation _ Shrine of Remembrance, Melbourne,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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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평화공원과 부산 유엔기념공원
4·3 Peace Park in Jeju-do & UN Memorial Park in Busan
죽어간 넋이 진정으로 위로 받는 날이 오길 제주 4·3 평화공원에는 사건의 증언, 유가족 기록, 관련 자료의 보관 및 진상규명에 관한 연구, 또한 평화와 인권 관련 학술대회 및 전시 문화 행사를 진행할 공간으로서 제주 4·3 평화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공원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주진입부에서 가까운 위령탑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그 너머에 위치한 위령제단이 세워진 추념광장이다.
공원의 중앙부에는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귀천(歸天)”과 제주도민의 화합과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조형물 “귀천”에는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영혼들이 이제라도 수의를 입고 편안히 저승길을 가시라는 해원의 의미를 담았다. 이를 중심으로 주변에 원형을 그리며 동선이 나 있는데, 동선상에는 수변공간과 조형물“비설飛雪”, 지역별 추념의 광장 등이 들어서 있다. “비설”은 조형물이 위치한 부근에서 희생된 두 모녀의 비극을 죽음의 순간까지 아기를 꼭 껴안은 모성애로 표현한 작품이다. 눈 쌓인 겨울에 아무런 이유없이 죽어간 두 생명이 마치 덧없이 흩날리는 비설을 닮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4·3 위령제단은 오석의 아치형으로 영원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도민화합, 민주와 인권 그리고 안락의 공간을 상징하며 참배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내 나라를 지켜 준 이방인의 희생을 생각하면 너무나 작은 보답
유엔기념공원은 크게 진입부(정문 광장), 상징구역, 주묘역, 녹지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상징구역에는 터키, 그리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태국 등 참전국의 전쟁 기념비들이 각국의 지원을 통해 건립되어 있고, 주묘역에는 호주 기념비, 프랑스 기념비, 캐나다 기념 동상, 영연방 위령탑과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터키, 영국, 미국 등 7개국의 묘역이 있으며, 녹지지역에는유엔군 위령탑, 제2기념관, 연못,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무명용사의 길(수로), 한-태 우정의 다리 등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안에는 추모관, 기념관 등의 건물도 들어서 있다.
이중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건립은 2006년에, 노르웨이 기념비는 2007년에, 수로水路인 “무명용사의 길”은 2008년에 준공하는 등 각종 정비 사업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는 대한민국의 지원으로 2006년 10월에 건립된 것으로, 우주를 뜻하는 원형수반에 전몰영혼들이 머무는 하늘과 명비 그리고 보는 이들이 담겨 있으며, 수반 안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철모가 맞은편에서 평화로운 연꽃으로 승화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검정색 명비에는 참전 각국에서 제공한 40,895명의 전사자(실종자 포함)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국가별, 개인별)로 새겨져 있다.
‘무명용사의 길(Unknown.. Soldiers’Pathway)’은 2008년에 준공되었다. 유엔군 위령탑에서 남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조성된 수로水路인 이 무명용사의 길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11개국을 상징하여 11이라는 숫자와 많은 것을 연관시키고 있다. 11개의 물 계단, 수로 위쪽의 11개의 분수대, 수로 가에 늘어선 11주의 소나무 등. 또한 수로 위쪽의 분수대는 각 11개씩 양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유엔기념공원 안장국인 11개국 뿐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22개국(한국 포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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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방, 바인플랜
Yoon, Mi Bang․VINEPLAN
공간의 ‘멋’을 좌우하는 미묘한 차이, 디테일
윤미방 소장은 인터뷰 내내 “디테일”과 “멋” 그리고 “배우고 있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조감의 시선에서 보기 좋은 공간 보다, 실제 이용자의 눈높이에서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디테일”이 살아야 “멋”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런가하면 삼성아파트를 소개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는 이런 말을 들려주기도 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장소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이름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이곳의 장소성을 굳이 캐내고 억지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이용행태를 유발시킬 수 있는 이용자를 위한 공간을 꾸미는 것이 아닌가?”
남기준_누구나 다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유난히 디테일에 대한 강조, 뭐랄까 고집스러움이랄까, 애착 같은 것이 느껴진다. 디테일을 그렇게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윤미방_사람들은 200:1이나 500:1의 마스터플랜 속을 걷는 것이 아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1:1의 실제 이용 공간이 중요하다. 조감도상에서는 볼게 없더라도 직접 걸으면서 접하게 되는 눈높이에서의 디테일이 결국 공간감을 좌우한다. 마스터플랜에서 예쁘게 보이는 건, 그림으로 남을 뿐이다. 건물을 예로 들면, 사람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책상이나 소파도 멋있고 보기에 좋고 이용하기에 편해야 좋은 공간이지, 건물 외면만 보기 좋다고 멋있는 공간이 되는 건 아니다.
핫셀에서 일할 때 놀란 점 중의 하나는 시니어 디자이너들이 기본계획을 발전시켜나가는 단계에서 소소한 펜스 디자인의 디테일까지 직접 챙기고 중요시 여긴다는 점이었다. 디테일의 정말 미묘한 차이가 공간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디테일이 그야말로 디테일하게 설계된 공간은, 그곳이 비록 좁은 곳일지라도 그 공간만의 멋이 살아나게 마련이다. 이용하는 사람들도 그 작은 차이를 분명 느끼고들 있다.
남기준_“공간의 멋”을 이야기했는데, 디자인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가? 또 멋이라는 건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꽤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윤미방_기본적으로 그 공간이 요구하는 기능도 충족시켜야 하고, 주변과 어울리는 환경도 만들어야 하겠지만, 다들 멋있는 공간을 추구하지 않나 싶다. 표현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멋’의 내용과 뉘앙스가 조금 달라졌다. 전에는 시설물도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직접 디자인했다. 서초 가든 스위트(이하 가든 스위트)가 대표적인데, 가벽, 수로, 포장 등에 사용된 석재를 투톤 컬러를 기본으로 통일시키고, 벤치도 같은 석재로 직접 디자인해서 수작업으로 시공했다. 또 자연스러운 녹지공간을 만들고자 애초 계획보다 식재지역의 토심을 전체적으로 1m 정도 높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그 레벨차를 이용자들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단의 높이가 낮은 계단을 조성하고 챌판에 해당되는 부분을 둥글게 가공한 후 바닥에서 약간 띄워 마치 계단이 아니라 여러 겹의 석재가 겹쳐져있는 것처럼 보이게 디자인하기도 했다. 인공적인 느낌의 수로가 있는 공간과 자연적인 느낌의 느티나무길(산책로)이 만나는 곳에는 일부러 폭이 좁은 수로를 가로질러 놓여있는 석재 브릿지를 몇 미터 정도 느티나무길로 연장시켜서 이질적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다. 석재 브릿지는 몇 미터 정도 느티나무길로 연장되다가 끊기도록 하고, 브릿지 바로 옆에 나란히 일직선으로 산책로 동선을 만들었는데, 반대로 산책로는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되도록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몇 미터가 바로 공간의 멋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 식으로 예전에는 시설물의 형태나 어떤 패턴, 그러니까 정형적이고 모던한 멋을 많이 추구했었는데, 요즘에는 자연스러운 멋이 좋아 보인다. 지난 겨울인가 한적한 교외로 여행을 가서 논두렁을 걷게 되었는데, 다른 곳은 전날 내린 눈이 다 녹아버렸는데 논두렁 바로 옆에는 눈이 녹지 않고 논두렁을 따라 길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근사해 보일 수가 없는거다. 자연의 섭리와 질서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을 한번 추구해보고 싶다. 보슬비가 내릴 때, 폭우가 쏟아질 때, 함박눈이 내릴 때, 바람이 불 때, 각기 다른 느낌을 공간에서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있겠는가.
참, 얼마전에 근사한 디테일을 하나 보았는데, 빗물이 고였다가 떨어져 내리는 곳에 단지 호박돌 몇 개만 놓았을 뿐인데, 비가 내릴 때 그 호박돌 위로 빗물이 튀기면서 흘러내리는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보다 더 멋있는 수경시설이 어디 있겠나,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남기준_지금까지 들려준 디테일 혹은 공간의 멋과 관련하여 좋아하는 작품이나 조경가가 있을 것 같다.
윤미방_캐서린 구스타프슨을 좋아한다. 그가 디자인한 공간은 한마디로 멋이 살아있고, 특히 디테일이 충만하다. 형태가 단순해 보이는 작품도 자세히 눈여겨 보면 디테일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영국의 다이애나 기념 분수 같은 경우, 직접 가서 보기 전에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을 얼핏 보고는 왜 이렇게 단조로운 작품을 뽑았을까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보니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타원형 석조수반에는 너무나 다양한 디테일이 담겨 있어서, 어떤 지점에서는 숲 속의 계곡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어떤 곳은 이곳이 연못인가 싶었다. 물 흐르는 속도도 틀리고, 폭도 다르고, 고여 있는 정도도 상이하고, 석조 수반의 무늬도 같지 않다. Arup 엔지니어들과의 성공적인 협력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진흙 모형 제작과 고무 주형, 디지털 스캔, 3D 입체 모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디테일을 치밀하게 설계했기에 그런 공간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단순한 형태에 그렇게 다양한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 건, 결국 디테일의 힘이 아닌가 싶다. 하루 종일 거기 머물러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보는 공간이 아니라, 이용하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고, 물을 어떻게 이렇게 흘릴 수 있을까 싶어서 존경스러웠다. 그 작품 이외에도 다른 작품들도 좋아하는데, 작품마다 변화가 있으면서도 일관된 조형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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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6) 디테일: 작은 것에 대한 상상이 갖는 큰 힘
공기처럼 가벼운, 투명한 존재감으로서의 프로그램에 대한 리플로 운을 떼며
“산소 같은 여자”라는 카피를 썼던 옛 광고처럼, “공기 같은 프로그램”의 메타포는 투명하고 가벼운 존재감이 주는 유연함과 생명력을 표현한다. 또한 프로그램의 진정성은 배치도의 도형과 작명술의 단순조합에 의해 설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는 즐거운 표제였다.
시간에 따른 경관의 변화, 이용자에 따른 공간의 진화를 다루는데 있어서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느슨한 프로그램”과 “조밀한 연출력”이 아닐까한다. 분위기에 녹아있는 프로그램은 결국 설계가의 사고가 아주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미쳤을 때만 가능한 것 아닐까. 강요되지 않았지만 걷고 싶고, 앉고 싶고, 뛰고 싶게 만드는 공간의 공기는 아주 미세한 설계적 장치와 배려들이 빚어내는 마법 같은 화학작용일 것이다. 프로그램의 가벼움이 공간설계에 있어 디테일의 가벼움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오히려 더 촘촘한 설계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도로 연재순서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디테일에 대한 운을 떼기가 한결 가벼워진다.
올해 초 정도 되었을까, 컴퓨터를 포맷하기 위해 백업받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해 지난 답사 사진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피식 웃으며 재미있다고 느낀 점이 있는데, 해가 지날수록 전체 답사사진들 중에서 디테일을 찍은 사진의 수가 끊임없이 증가한 나름의 경향을 발견한 것이다. 회상해 보건데 학생시절 여행에서는 기념품 가게의 엽서에 나옴직한 구도의 사진들을 정신없이 찍어대며 꽤나 만족했었던 것 같다. 풍경화를 흉내내는 사진들이 대부분인 그때의 기록들은 다시 보니 남이 찍은 것 마냥 심드렁하기만 하다. 고백하자면 정작 디테일을 찍는 버릇은 거의 직업적 생존에 관련되어서야, 즉 디테일 설계를 스스로 직접 해야 하는 입장에 이르고서야 생긴 것이다.
요즈음 학생들과 함께 답사를 다녀오면 가끔 각자 찍은 사진들을 비교해서 보곤 한다. 여전히 그들은 나의 학생시절과 다름이 없다. 투시도에서 자주 쓰이는 구도의 풍경사진들과 꼴라쥬 소스로 쓸만한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 그리고 물론 단연 학생들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자신들을 찍는 미니홈피용 연출사진들이 대부분이다.
디테일이라는 주제를 돌덩이처럼 가슴 한켠에 가지고만 다니다가, 디테일에 대한 관심은 결국 설계과정의 학습 발달 단계와 연관이 깊은 것 같아, 즉 학생들이 디테일에 무심한건 그들의 나이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는 의심 때문에 글의 방향을 잡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한편, 학생시절의 나도, 지금의 학생들도 여전히 디테일을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단순가정을 해보니, 몇 가지 하고 싶은 얘기들이 생긴다.
디테일에 관한 개념: 전체와 부분의 관계
디테일(detail)의 어원은 불어인 “taille”나 라틴어인 “talea”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어의 “taille"는 어떤 것을 조각으로 자른다는 의미여서 재단사(tailor)”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가진다. 덜 알려지기는 했지만 더욱 흥미로운 어원은 라틴어의 ”talea"인데, 이는 식물의 접붙이기에 쓰일 용도로 큰 나무에서 가지(twig) 등의 부분을 잘라내는 일을 의미한다. 건축이론가인 로빈 드립스(Robin Dripps)의 해석에 의하면 이 접붙이기로부터 출발하는 어원의 의미는 전체에서 부분을 떼어내도 그 부분이 자연적인 자기 복제과정을 통해서 전체를 다시 구성한다는 데에 있다. 옷감을 재단해서 나온 조각들은 전체의 부분으로서의 기능에 그치지만 나무와 같은 생명체의 부분은 그 자체가 전체의 질서를 이미 가지고 있는 소우주(microcosm)와 같은 것이다. 전체의 부분이 아닌 전체를 담고 있는 부분.
살아있는 시스템을 다루는 조경설계에 있어서 굳이 꼽으라면 불어보다는 라틴어적 의미계보를 계승하고 싶은 것은 억지스럽지만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우리나라의 언어적 관습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디테일을 ”그린다” 혹은 “디자인한다”라는 표현보다는, 디테일을 ”푼다”라는 동사를 즐겨 쓴다. 이러한 숙어적 표현은 암암리에 디테일은 디자인의 일부라기보다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해결이라는 간편한 뉘앙스를 던져준다. 이러한 기술적 문제해결로서의 디테일이라는 관념이 우리의 외부공간에서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성의 없는 상세들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니얼 커크우드 디테일을 다루는 그의 저서 『The Art of Landscape Detail』에서 이러한 점을 명백히 반박한다. 디테일 역시 조경설계과정의 일부, 즉 창조적인 디자인 행위이며, 단지 이 창작활동이 특정한 스케일로 이루어질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디테일은 설계가의 생각을 공간이라는 실체로 전환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매개체임을 강조하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조경설계에 있어서 디테일을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하였는데, 실행 디테일(implementation detail)과 설계 디테일(design detail) 그것이다. 전제가 어떻게 현장에서 제작되는가에 관련된 기술적이고 도구적인 개념이라면, 후자는 설계가의 아이디어를 핵심적으로 표현하는 표현적이고 생성적인 개념이다. 전자가 시공과정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설계과정에 더 중점을 둔 것이다. 결국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디테일이 도구적이지 않고 설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창의적 요소로서 즉 “설계 디테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저서 『Detail in Contemporary Landscape Architecture』에서 저자 버지니아 맥리오드(Vrginia McLeaod) “디테일은 경관이 어떻게 조합되는지를 보여주는 진정한 재현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 역시 디테일이 부분 그 자체가 아니라 부분이 결합되는 방식, 즉 전체 경관을 구성하는 시스템에 관한 것이라는 확장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번호의 디테일에 관한 이야기는 결론적으로 디테일에 대한 개념의 업그레이드, 그에 근거한 창의적 실천과 정당한 평가의 필요성을 밝히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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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풍경은 없다(5) 면목동 동원골목시장, 그들만의 합리 그리고 우리의 활기
시장에는 마케팅 전략이, 있다 vs 없다
‘마케팅 전략’ 모든 상행위에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상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백화점에는 창문이 없다. 화장실은 꼭꼭 숨겨두어서 백화점 안을 더 둘러보고 찾을 수 있게 한다. 같은 이유로 엘리베이터는 구석에 두고 에스컬레이터는 잘 보이는 곳에 둔다. 또 식품매장은 지하에 있고 전문 식당가는 맨 위층에 둔다.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한 전략인데, 고객이 식사만 한 후 백화점을 나오지 않고 쇼핑까지 하게 되는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재래시장의 상인들도 물론 전략은 있다. 시장의 음식점들은 간판에 ‘원조’, ‘할머니’라는 단어를 넣어 역사가 있는 곳임을, ‘장충동 족발’, ‘명동 분식’, ‘전주 비빔밥’ 같은 상호로 ‘파스타는 이태리가 최고’ 같이 정통성이 있는 곳임을 내세운다.
어디가 더 합리적일까? 마트 vs 시장
고객을 더 이상 빼앗기고 싶지 않아 시장도 마트가 되고 싶어 한다. 비나 눈 같은 기후 변화에서 벗어나 언제나 상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뜨거운 햇빛을 가려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소위 아케이드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지붕을 씌운다. 그리고 마트에서처럼 카트를 끌고 다닐 수 있도록 바닥을 고르기도 하고 상인들은 옆 가게와 줄을 맞추어 물건을 진열한다. 물리적인 것만 바꾸는 것은 아니다. 쿠폰도 발행한다. 마트가 지향하는‘깔끔’, ‘편리’, ‘효율’, ‘쿠폰을 통한 사행심 조장’을 시장도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시장도 마트가 될 수 있을까? 면목동의 동원골목시장을 보자. 여기도 ‘현대화’사업을 했다. 지붕이 덮여졌고 쿠폰을 발행한다. 진열된 물건도 간판도 줄 맞추어 있다. 바닥에 물도 고여 있지 않다. 쾌적하다. 그런데 문구점 앞의 저 장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알록달록한 장난감 옆에 젓갈병이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디 마트에서는 가능한 일일까? 젓갈을 장난감 옆에 둔다면 바로 항의가 들어갈 것이다. “물건 찾기가 힘들잖아요, 위생적이지도 않구요.” ‘같은 품목은 같은 곳’이라는 기준을 갖고서는 말이 안 되지만, 또 꼭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시장에서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우연하게도 문구점 주인은 젓갈에도 조예가 깊고 좋은 젓갈 구입처를 안다. 그래서 기꺼이 장난감 사이에 젓갈을 두었다. 고객들도 안다. 이 집 젓갈은 싸고 맛있다는 것을. 그래서 기꺼이 젓갈을 사기 위해 문구점을 찾는다. 어떤가? 말이 되지 않는가?
하버마스인가? 말을 통해서 서로간의 합리성이 형성되는 생활세계에 대해 말한 이가. 우리는 시장에서처럼 서로 ‘말’을 통해서 서로의 기준을 만들고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말이 필요 없어졌다. ‘합리화’라는 명분은 굳이 말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내판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상품이 있고, 거기 쓰인 가격대로 계산대에서 돈을 지불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시장에서는 여전히 ‘말’이 필요하다. 합리성, 그 이상의 기준과 가치로 운용되는 곳이 시장인 것이다. 또 모두 드러내놓고 말을 하는 곳이니 이미지로 사람을 현혹하기도 힘들다.
시장을 거니는 일은 즐겁다. 좀 진부한 표현이지만‘, 생동감’이 있다. 브랜드의 유명세가 아니라‘골라! 골라!’같은 호객행위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그 자체가 시장의 배경음악이 된다. 또 ‘욕망’이 아니라 ‘정서’를 자극한다. “마수걸이인데 깎지 말아요” “떨이라 배추가 시들시들한데 싸게 팔아요." 또 시장에는 정확한 가격표가 없기에, 있어도 그리 절대적이지 않기에 흥정과 실랑이가 필연적이다. “좀 깎아줘! 한 개 더 줘!” “이거 팔아서 남는 거 없어, 다른 데 가봐, 이만한 가격에 살 수 있나.” 그 과정에서 덤이 오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시장은 생동감을 갖는다. 기계적 합리성의 빈틈은 대화로 채워지고, ‘활력’이라는 매력적 부산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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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Naganeupseong
낙안읍성(樂安邑城)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위치한 면적 223,108㎡, 둘레 1,410m의 조선조 군 청사 소재의 읍성으로 성곽과 객사를 비롯한 관아의 중심시설들 일부가 원형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며, 현재는 남문인 쌍청루와 동문·서문, 동헌, 객사, 내아 등에서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83년 6월 14일, 사적 302호로 지정되었다.
造營 _ 낙안읍성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읍성으로 성곽과 그 내부의 주거지 객사를 비롯한 중심시설들 일부가 거의 원형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성곽의 축성연대는 임경업 장군이 서기 626년(인조 4년) 군수 재직시 쌓았다고 하나, 1481년(성종 12년)에 편찬된『동국여지승람』에서 낙안성의 소재를 말하고 있고 성의 축조기법으로 보아 조선 초기보다 훨씬 이전에 축조되어 있었던 것을 임경업 장군이 개축한 것으로 추측된다.
立地 _ 읍성의 입지는 북방의 금전산(670m)을 진산으로 삼고, 동으로는 멸악산(오봉산)과 개운산이 위요하며, 서쪽으로 백이산(584m)과 금화산이 둘러싸고 남쪽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들판 가운데에는 약간 낮은 구릉(옥산 59m)이 있으며‘, 평지성(平地城)’의 유형을 보이고 있다. 풍수적으로는 북쪽의 옥녀(옥녀봉)가 남쪽의 장군(장군봉)을 맞기 위해 머리를 풀고 화장을 하는 중이라는‘옥녀산발형(玉女散髮型)’이며, 읍성 자체의 형국은 ‘행주(行舟)’형국이라 하여, 키, 돛, 닻, 노 등 배의 도구를 갖추어야 대길하다고 한다. 이러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지형을 이용하거나, 수목을 많이 재식하였는데 마을 중앙의 은행나무는 돛을 상징하고, 대칭으로 재식된 은행나무는 배의 균형을 유지하는 닻으로, 성곽을 따라 조성된 노거수는 노를 상징하는 경관지표물이 된다. 하천으로는 금전산 동남에서 흘러들어오는 동천과 서남에서 흘러나오는 서천이 있는데, 모두 성곽 바깥 동서면을 흐르다가 옥산 앞을 지나 들판을 건너 남해로 흘러들어 간다. 성 주변의 문화재로는 낙안향교와 충민사(忠民祠: 임경업, 김빈길 장군의 사당)가 성의 동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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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조경업, 위기를 기회로!(6) 새로운 길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막연한 불안감?
“희망은 언제나 위기를 이긴다”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공익광고가 흘러나오는 시대다. “우리는 언제나 시련을 이겨내왔다”며 “우리 가슴에 희망이 있는 한, 우리 경제의 위기는 기회로 바뀔 거라고” 호소하는 공익광고는, 오히려 지금이 얼마나 어려운 시기인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입으로는 희망을 되뇌어도, 마음은 불안에 잠식당한지 오래다. 높아지는 건 불안감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막연한 불안감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그에 따른 내수시장 침체가 불황의 골을 더 깊게 만든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불안한 걸 어찌하랴.
감원 내지는 감봉 소식이 풍문으로 떠도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면,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겠지만, 자재를 수입해 무엇인가를 만드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면 요동치는 환율에 울고 웃겠지만,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 게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자영업자라면 불경기를 탓하며 업종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하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배가 혹은 조카가 직장을 잡지 못하고 이른바 청년백수 생활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은 불황 체감 지수를 한껏 높여주지만, 매스컴의 불황 타령이 당장 자기 매출 혹은 수입과 직결되지 않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언제 남의 불황이 자기에게 불똥을 튀길지, 탄탄해보이던 직장이 휘청거리게 될지, 매출 급감이 회사를 뒤흔드는 직격탄으로 날아들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의 경기불황은 전 세계적인 것이라고들 하지 않나.
하여, 불황의 중심에 서 있건 아니건 사람들은 자연히 관련 뉴스에 귀 기울이고, 술자리에서도 경기 전망은 단골 안주감이 되고 있다. 그 자리에서 부정확한 정보들이 오가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경기를 체감하고 있는지, 어떤 준비들을 하고 있는지, 전망을 어떻게 예상하고 있는지 귀동냥하는 것은 때로 위안이 되기도 하고, 정보가 되기도 한다.
매스컴은 불황의 시기를 맞아 각종 경기지표를 알려주기도 하고 전문가의 입을 빌려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기도 하지만, 늘 빠지지 않는 건 사람들이 경기불황을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구체적 사례들이다. 전체를 대표할 수 없어도, 그들 일부의 이야기는 주목을 끌곤 한다. 어느 정도의 윤색은 있을지라도, 뜬구름 잡지 않는 생생함이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호부터 시작된 연속기획이 이제 종착점에 도달했다. “불황탈출을 위한 지혜를 모아보자”는 기본 취지의 바탕에는, 최대한 다양하고 가급적 구체적인 우리의 이야기를 소개해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어디는 부도 직전이라더라, 누구는 직원을 확 줄였다더라’와 같은 이른바 ‘카더라’ 통신의 뜬소문이 아닌, 좀 다양한 업계의 동향을 그들의 목소리로 담아냄으로써, 독자들이 각자의 경우와 견주어도 보고 참고도 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했던 것이다. 이번 회는 그 마지막으로, 결산의 차원에서 1월부터 5월까지 수록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았다. 앞선 5회의 연속기획에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었는지 훑어보며, 일반론적인 이야기일지라도 불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와 전략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참, 이 지면을 빌어 그동안 인터뷰에 응해준 많은 업계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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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뉴타운 2지구 B, C공구 미술장식품 공모전
The Competition for Art Decorations on Eunpyeong New Town
SH공사는 은평뉴타운 2지구 B, C공구 공동주택 단지에 적용할 미술장식품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3개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공모전은 총 8개 단지에 설치될 단지별 조각 또는 환경조형물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본지에서는 각 단지별 당선작을 소개한다 _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