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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1857년 뉴욕, 어떤 30대
    에피소드 1 1857년, 35세(각주 1) 6월, 여름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서: 결국 잡지사가 문을 닫는다. 온갖 분야를 다 해보는 대책 없는 아들이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도 흔쾌히 지원해준 아버지께 죄송할 따름이다. 미국 사회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선 출판사가 사업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실용주의에 미친 신사들(practical man) 속에서 실용성 아닌 의미를 찾는 이들의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쩔 수 있는가. 이제 다른 일을 찾아봐야지. 저번에 보니 시에서 추진하는 공원의 감독관을 찾고 있다고 하던데. 9월, 성공했다: 여름에 넣었던 감독관 지원 서류가 통과했다는 소식. 당파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공원에 집중할 수 있는 공화당의 인재임을 어필한 게 효과적이었다. 의원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도움을 주신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들께 감사하다. 이제야 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일까. 걱정은 중요한 일에 손을 보탠다는 흥분감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843에이커의 땅에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견을 수렴해 뉴욕에 걸맞은 공원을 만드는 일이다. 수백의 사람들이 관리하는 일이다. 지금부터 할 일이 태산이다. 10월, 새로운 기회: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다우닝 씨의 동료였던 캘버트 복스(Calvert Vaux) 씨의 연락을 받았다. 공원 설계 공모에 함께 나가보지 않겠냐고 한다. 어쩌면 1851년 런던에서 마주쳤던 그 그림 같은(picturesque) 공공 공원(public park)을 미국 땅에서 실현할 기회일지 모른다. 이 부지의 전체 지형을 조사했던 빅엘(Viele) 씨가 설계한다고 들었을 때는 나도 함께할 여지가 있을까 싶었지만, 딱히 말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복스 씨와 같이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감독관으로 있으면서 느낀 게 많다. 뉴욕 시민들은 미처 모르겠지만 이 공원은 우리의 가장 큰 유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100년, 200년 뒤 뉴욕의 가장 중요한 장소, 뉴욕 시민들의 허파이자 정신적 지주가 될 것이다. 지난 세기 프라이스가 “픽처레스크에 대한 에세이”(1794)에서 말한 ‘그림 같은’ 경관에 관한 이야기와 기록은 영국에서 시작했을지 몰라도 그 이상에 가장 근접하게 존재하는 것은 분명히 19세기 미국 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1월,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우리 가족의 자랑스러운 존, 내 사랑하는 동생이 끝내 영원히 눈을 감았다. 행복했던 뉴헤이븐의 나날들이여! 기억 속 젊음이 충만한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길. 1858년 4월, 드디어: 공모에 당선됐다는 소식이다. 감독관에서 책임 건축가로 승진했다. 33번째, 마지막으로 공모작을 접수했었는데, 지금 보니 다들 공원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앞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이 찬란한 대도시에 공원을 만든다는 대업을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기회로 삼은 게 분명하다. 이런 허영 덩어리들이 만드는 공원이 아닌, 미국인의 영혼을 달래주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의 공원(public park)’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2024년으로 빨리 감기 166년 전 중앙공원, 즉 센트럴파크가 처음 생겼다. 공원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다고 할 수는 없 겠지만, 센트럴파크가 오늘날 한국 곳곳에 널리 조성된 ‘중앙공원’이라는 녹지 유형을 안착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음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이후 연재에서도 언급하겠지만, 한국의 도시민치 고 각 시군의 중앙공원을 안 가본 사람이 있을까. 참고로 한국의 도시화율은 8할이 넘는다. (각주 2) 공원에 주목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석가의 사고적 환기가 필요하다. 중앙공원이 빠르게 도시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것처럼, 공원의 속성은 우리의 일상 배경으로 너무 쉽게 치고 들어왔다. 지난 달 글에 짧게 적었지만, 필자가 센트럴파크를 흥미로운 대상으로 인지한 것 역시 뉴욕살이 만 6년 이 지난 시점이었다. 조경을 전공하기 전이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대형 주제를 왜 놓치고 살았는지 과거의 나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 큼 옴스테드가 치밀하게 공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한창 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던 1859년에 그 려진 지형도에서 옴스테드의 집착에 가까운 면이 쉽게 포착된다. 온갖 공을 들여 식재를 하느라 공원 조성 예산을 훌쩍 넘겨버리는 바람에 위원회와 끝없는 마찰이 있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것인 마냥, 한 번의 의심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냥. 그렇다고 해서 옴스테드가 마냥 영국식 픽처레스크 정원을 미국에 옮겨오는 데 그쳤다면, 센트 럴파크 ‘공모전’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옴스테드와 복스의 설계안, ‘그린스워(Greensward)’는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바탕으로 지어졌을 뿐 아니라 센트럴파크 공원위원회가 1857년 공모전 을 개최하며 내건 여덟 가지 필수 조건을 맞춘 결과다. 여덟 조건은 다음과 같다.(각주 3) 첫째, 공원법에 따라 정해진 약 1,500,000불의 공원 조성비에 대한 구체적 지출 계획 둘째, 59번가와 106번가 사이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며 공원을 가로지르는 4개 이상의 도로 셋째, 20~40에이커 사이 규모의 연병장과 관객들이 편히 관람할 수 있는 편의시설 넷째, 각각 3~10에이커 규모의 놀이터 3개 다섯째, 전시, 콘서트 등 행사를 열 수 있는 건물을 위한 부지 여섯째, 대규모 분소 1개소와 전망대를 위한 부지 일곱째, 2~3에이커 규모의 화훼 정원을 위한 부지와 그것에 대한 설계 여덟째, 물이 흐르는 공간을 남겨두어 겨울에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만들 것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온갖 ‘도로’의 얽힘이다.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도 ‘교통’ 과 ‘체증’에는 한없이 민감하지 않는가. 마차가 대규모 보급되어 속도를 즐기는 방법을 깨우치고 있었던 옴스테드의 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숲속 산책로를 그대로 떠다 만든 듯 거미줄처 럼 얽혀 있는 램블스(Rambles)의 보행로 네트워크와 그것을 둘러싼 마차로(Carriage Road)를 보면, 센트럴파크에서 (적어도 옴스테드가 바라봤을 때)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단연코 산책과 드라이브였다. 그리고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지형을 뚫고 만든 횡단로(Transverse Road)는 분명 공원 조성으로 인해 맨해튼의 동서가 나뉘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던 공원위원회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이다. 19세기 북미에서 옴스테드, 약간의 살 붙이기 사실 옴스테드의 ‘동화 같음’은 그의 정치사회적 사상과 태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정말 많은 것―자기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희생도―을 희생하고 바친 사람이다. 이런 점은 그의 미국에 대한 애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사실 공원에 대한 수많은 글의 시작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노예 제도에 대한 그의 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미의 19세기는 쳇바퀴 돌아가듯 새로운 문물과 발견이 연이어 이어지는 시기였다. 1840년 대에 텔레그램이 생겨났고, 1820년대 말부터 동부를 중심으로 시작된 철도 건설에 박차가 가해 져 1850년대에는 이미 9,000km 이상의 철로가 깔려 있었다. 철로가 깔리면서 산업이 급격히 발 전했고 남부와 북부의 갈등도 점차 커져 결국 남북전쟁(1861~1865)으로 이어졌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원인인 노예 제도에 대한 첨예한 대립은 옴스테드의 공원론에서 남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아직은 공원의 ‘공’ 자도 모르던 시절, 옴스테드는 남부를 여행하며 「뉴욕타임스」 에 이른바 ‘노예주(Slave States)’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그는 노예 제도에 반대했지만, 동시에 남부가 반대하는 북부의 자본주의적 이기심과 도덕적 해이를 경계하기도 했다. “이처럼 저질스럽고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목표를 지닌 정치가와 (남부의 가장 훌륭한 신사조차도 여기 포 함된다) 저질스럽고 편협하며 당에 종속된 물질적인 사람들로 (북부에서 흔히 보인다) 우리의 민주주의 국가관이 대체 어떤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될 것이란 말인가 ……. 우리에게는 어렵고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높일 수 있도록 더욱 직접적으로 지원할 기관이 필요하다. 우리의 교육관은 확장되어야 하며 이런 비참하고 그저 평범 할 뿐인 교육 기관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포괄해야 한다. 힘들고 약한 자들을 그저 내버려 둘 수 만은 없다.”(각주 4) 옴스테드는 정부가 나서서 노예 제도를 근절시킬 것이 아니라 교육과 계몽을 통해 각 지주가 직접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고 외쳤다. 즉,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되 올바른 해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적 이상주의자를 그대로 본뜬 것 같은 사람이 공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옴스테드이니, 우리가 무의식중에 공원을 무언가 ‘좋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에피소드 2 2024년 서울, 여기 30대 “뭐지?” 싶을 제목을 5초만 참고 넘어가 보자.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 수업 시간에 ‘나의 인생 그 래프 그리기’ 과제를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기억이 거의 그렇듯 완전히 잊고 지냈다.몇 년전 분가를 핑계로 대대적인 짐 정리를 하다 이 그래프가 굴러 나왔다. 세상에나, 모든 것이 기억났다. 혹독한 청소년기를 보내서인지 냉소를 달고 살던 고등학생 필자는 10분 만에 뚝딱뚝딱 단순하 디 단순한 그래프를 완성했었다. (물론 혹독함은 나보다는 부모님에게 해당하는 표현일 것이다. 지면을 빌려 당시 부모 님의 고생에 고개를 숙인다) 만 18세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24세에는 취직을 하며, 35세에는 박사학위 를 받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적었다. 70대 이후로는 ‘17세의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단계니 적지 않겠다’라며 패기 넘치는 설명과 함께 수업 시간에 발표했었다. 자잘하게 삶의 크고 작은 목표 지점을 표시해가는 친구들을 보며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바뀔 걸 뭘 저렇게 귀찮게 하나하나 적고 앉았을까’하고 뚱하게 앉아 시간을 때운 기억도 난다. 박사 논문을 본격적으로 쓰 기 직전 ‘발굴된’ 이 그래프는 놀랍게도 내 인생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어이없을 정도로 일관적으 로 진행되고 있음을 잘도 보여줬다. 말 그대로 18세에는 대학을 마쳤고, 24세에는 첫 직장에 들 어갔으며, 35세에는 박사학위를 받고 말았으니 점쟁이조차 혀를 내두를 계획 중심의 인간이 여기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내게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옴스테드가 튀어 나올 테다. 그는 조경의 아버지라서? 아니다. 그가 그린 인프라를 사실상 시작했기 때문에? 절대 아니다. 그 가 지금의 내 나이, 35세에 센트럴파크의 조경가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19세기 중반에 35세라는 나이는 지금의 헛-35세와는 결이 다르다. 1850년대 북미의 평균 수명이 35.1세였는데, 영유아 사망률이 워낙 높은 시기라고 해도 결코 젊 은 나이라고만 보기 힘들다)(각주 5)박사학위를 연구 분야의 ‘자격증’이라고 부른다면, 필자는 이제야 막 자격 증을 따냈으니 앞으로 갈 길만 구만리다. 옴스테드가 35세에 비로소 ‘자격’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20~30대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보내며 (물론 매우 즐겁게 보냈다) 연구자 자격을 따기 위해 노력한, 그리 고 노력하고 있는 나와 내 동료들에게 약간의 편안함을 준다. 당장 내년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모 든 밀레니얼에게 똑같이 다가오는 사실 아닐까. 이것이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니면 무엇일까. 다만, 독자들을 위한 옴스테드의 경고문 다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또 옴스테드가 쓴 다른 글을 읽으며 경탄을 금치 못하는 모두들, 경 계하시길. 그가 조경가이기 전에 작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옴스테드가 직접 쓴 1차 사료를 읽고 있노라면 그 유려한 문장에서 연상되는 꿈 빛 같은 민주주의 사상에 쉽게 빠져들게 되기 마련이다. 옴스테드가 뉴욕 시민의 미래를 위해 센트럴파크를 계획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그 속 에는 엘리트주의적 속성, 교육과 계몽을 통해 바람직한 사고를 지닌 미국의 시민을 키워야 한다는 의지, 우수한 리더십을 통해 도시에서 시민의 행동을 제어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 엘리트주의자의 전형 같은 모습이다. 실제 센트럴파크 조성 이후 공원에서 의 수많은 ‘규정’이 만들어졌던 것이 이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이후 명상을 위한 센트럴파크가 아닌 화려하고 풀어지기 좋은 놀이공원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가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겠지.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옴스테드의 1차 사료가 여러 차례 등장할 예정이다. 날카롭고 뼈를 치는 비판적 사고 회로를 최대한 돌려 소개해드리니, 이 글을 읽는 분들 역시 예리하게 뒤통수를 노리 는 갈매기의 눈빛으로, 비판적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각주 정리 각주 1.혹시나 하는 마음에 짚고 넘어간다. 옴스테드 아카이브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가 상상력을 보탰다. 19세기 북미 신사인 옴스테드는 이렇게 경박한 말투를 쓰지 않았다. 각주 2. 국가통계포털 KOSIS “도시화율”, 2022년 9월 업데이트. kosis. kr/index/index.do. 각주 3. 센트럴파크 공원위원회, “Document No. 8, Friday, September 11, 1857”, Documents of the Board of Commissioners of the Central Park, for the Year ending April 30, 1858(1858년 4월 30일로 끝나는 회계 연도에 대한 센트럴파크 공원위원회 의 결 문서집), New York: New York City Central Park Board of Commissioners. 각주 4. Frederick Law Olmsted, “Letter to Charles Loring Brace”, in The Papers of Frederick Law Olmsted: Volume 2. Slaver y and the South, 1852~1857, Charles Capen McLaughlin and Charles E. Beveridge, eds.,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1, p.234. 괄호는 옴스테드가 적은 그대로 옮겼다. 각주 5. Human Mortality Database, 2023. www.mortality.org/ Home/Index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 수변활력거점 조성사업 제안공모 당선작 동대문구 중랑천·영등포구 안양천 수변활력거점 조성사업 제안공모
    2022년부터 서울시는 도시 곳곳에 흐르는 소하천과 실개천의 수변 공간을 새롭게 조성해 수세권을 중심으로 한 서울형 수변감성도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지역의 특성을 담은 보행로, 쉼터, 놀이 공간 등 시민들에게 곳곳에 흐르는 물길을 따라 여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2025년까지 총 30개소, 1개 자치구 당 1개소 이상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상반기에 이어 2023년 10월 20일 2개 천변(안양천, 중랑천)의 수변활력거점 조성 사업 제안공모가 개최됐다. 두 차례의 심사를 거쳐 12월 1일 당선작이 발표됐다. 두 개의 당선작을 간략히 소개한다. 안양천, HLD 안양천은 한강의 제1지류로 경기도를 거쳐 영등포구 등 서울시 서남권역의 도심을 지나가는 주요 하천이다. 안양천 하류 오목교~목동교 구간은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생태 하천이다. 이러한 생태적 경관은 대상지까지 이어지며 수려한 풍경을 선사한다. 대상지 인근은 서부간선도로 등 하천변 기반 시설로 인해 가로막혀 있지만 다수의 주거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 육교 등을 활용한 보행 접근성이 좋아서 산책하는 지역 주민이 많다. 우수한 경관, 생태성 등 하천의 가치를 최대한 보존하고 산책하는 시민에게 자연 친화적인 휴식 공간을 마련해 수변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했다. *환경과조경430호(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 감각을 자극하는 다층적 공간 경험 MMCA 과천프로젝트 2023: 연결
    ‘자연과 가까운’, ‘도시와 떨어진’, ‘산에 둘러싸인’ 등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과천관)을 소개할 때 종종 등장하는 표현들이다. 대공원역(4호선)에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20분 정도 달려야 만날 수 있으며, 청계산과 관악산을 배경으로 둔 지리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연을 소재로 조성된 과천관 내 공간도 자연 속 미술관이란 특징을 두드러지게 한다. 과천관은 이런 자연 친화적 장소성을 기반으로 ‘MMCA 과천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2020년, 야외 조각 공원을 배경으로 한 ‘MMCA 과천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021년에는 과천관 버스 정류장을 재편한 ‘MMCA 과천프로젝트 2021: 예술버스쉼터’로 새로운 기다림의 여정을 모색했다. 새롭게 변모한 버스 정류장을 통해 생태적 실천에 대한 환대, 미술관으로 향하는 숲길의 여정, 미술관에서 자연과 예술을 즐기고 그 여운을 누리는 장소적 경험을 제공했다. 2022년에는 미술관 옥상 공간을 재생하고 조망하는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을 진행했다. 옥상 공간을 예술·생태적으로 재생해 주변 자연을 즐기고, 미술관에서의 미적 경험을 야외 공간의 자연 속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예술적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2020년과 2021년이 미술관 밖의 야외 공간을 재생하는 프로젝트였다면, 2022년에는 물리적으로 미술관의 안과 밖에 공존하는 정원 일대를 재조명했다. 2023년 MMCA 프로젝트는 ‘연결’이란 키워드로 지난 프로젝트의 조성 공간과 흔적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조성하고자 한다. ‘MMCA 과천프로젝트 2023: 연결’의 대상지는 2층 야외 원형정원과 내부에서 그 풍광을 관조할 수 있는 동그라미 쉼터, 두 공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3층 옥상정원이다. 세 공간에 연결성을 부여하고 관객들이 다층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활성화를 시도했다. *환경과조경430호(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겨울마다 꺼내 쓰는 스킬
    한 번 배우면 오랜 시간 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 타는 법, 악기 다루는 법, 운동 동작 등. 배울 때 반복해서 익혀서 그런지, 오랫동안 하지 않다가 다시 해보면 처음엔 조금의 버벅거림이 있지만 어제 해본 것 마냥 금방 몸이 움직여진다. 그리고 이와 엮인 추억도 함께 소환해준다. 손과 발이 시리고, 눈이 오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이맘때만 즐길 수 있는 스키다. 스키 타는 법은 초등학생 때 처음 배웠다. 학교에서는 겨울 방학이 되면 스키 캠프를 떠났다. 참여할 수 있는 나이는 3학년부터. 언니가 먼저 스키 캠프에 가는 걸 보며 나도 따라 가고 싶었지만 아직 어려서 참여할 수 없었다. 그래서 3학년이 되자마자 바로 스키 캠프에 참가했다. 처음 온 학생들은 스키를 배워야 했고 소정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자유롭게 슬로프를 즐길 수 있었다. 스키 배우는 조에서 스키 플레이트와 부츠, 폴 드는 법부터 넘어지는 법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롤러스케이트와 스케이트를 탈 줄 알았고 나름 운동 신경이 좋다고 생각해서 스키도 금방 배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만한 자신감이었다는 걸 첫발을 내딛는 순간 바로 깨달았다. 캠프 첫 날, 스키 플레이트를 A 모양으로 만드는 법과 슬로프에 S자를 그리며 내려오는 법을 하루종일 배우고 익혔지만 넘어지기 일쑤였다. 다음 날도 반복해서 연습했고 그러던 중 잘 타는 사람들은 자유 스키 조로 승격됐다. 하지만 나는 매번 테스트에서 탈락해 캠프 마지막 날까지 리프트도 못 타본 채 첫 번째 스키 캠프는 끝났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는지 다음해 스키 캠프에도 참가했다. 이때도 스키를 못 탈 줄 알았는데, 몸이 원리를 터득했는지 넘어지지 않고 슬로프를 잘 내려왔다. 초등학생 때는 스키 캠프로 매년 스키를 탔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학업 이유로 스키를 잠시 멀리했다. 그러다 대학생 때 오랜만에 스키를 타러 갔는데, 다행히 실력이 녹슬지 않고 오히려 초급 슬로프를 벗어나 중급 슬로프로 레벨 업 됐다. 이때부터 겨울이 되면 종종 스키를 타러 스키장으로 떠난다. 가본 여러 스키장 중 가장 좋아하는 스키장은 모나 용평이다. 모나 용평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에 위치한 스키장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알파인 스키 경기장으로 사용된 곳이다. 해발 약 1,450m인 발왕산을 배경으로 다양한 수준의 슬로프가 펼쳐져 있는데, 특히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 정상인 평화봉에서 시작되는 레인보우 파라다이스 슬로프는 용평의 매력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준다. 국내 최장 길이로 약 6km에 달하는 슬로프는 발왕산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내려온다. 눈 덮인 산자락을 보며 스키를 타는 순간만큼은 눈꽃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 들게 해준다. 영화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가 다녀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새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꽤 가파른 경사도 있어 스릴도 즐길 수 있다.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추운 날씨도 잊고 온전히 스키에 빠져들게 된다. 도착 지점에 있는 매표소를 보면 겨울왕국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이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강원도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하루 혹은 이틀 뒤에 이곳으로 떠나는 걸 추천한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추운 몸을 녹여줬던 어묵 국물과 허기진 배를 달래줬던 핫도그와 추로스는 스키 여정에 행복함을 더해줬다. 20여 년 전에 배웠던 기술을 몸이 잘 기억해줘서 이런 소확행(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종종 타는 자전거도 첫 페달만 잘 돌리면 씽씽 내달릴 수 있고, 더운 여름에 즐기는 수영도 동작을 기억해내면 물살을 가를 수 있다. 스키를 습득했던 그맘때 배운 악기가 떠올랐다. 콩쿠르까지 준비했던 플루트다. 꽤 오랜 기간 배웠는데, 성인이 되고는 한 번도 연주해 보지 않았다. 과연, 그때처럼 잘 불 수 있을까, 한 곡은 완주할 수 있을까. 버벅거림이 있을지언정 매번 입력값을 잘 출력해준 나의 몸과 머리를 믿는다. 중구난방으로 다양한 기술과 행동들을 몸과 머리에 구겨 넣었는데, 오랜 시간 외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기억에서 휘발시키지 않고 잘 꺼내주는 나의 몸과 머리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한다.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무쟁이. 친구가 조경학과에 입학한 나를 핸드폰에 저렇게 저장해 두었었다. 대학생이 됐다는 사실 그 자체에 기뻤기에 그냥 웃고 말았다. 꼬인 구석 없던 신입생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새싹튼 열등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조경학이 조리경영학의 준말이냐고 진지한 얼굴로 묻고 장난스럽게 길에 선 모든 나무의 이름을 물어볼 때, 친척이 요새는 무슨 나무를 심어야 비싸게 팔 수 있냐고 추천을 해달라 할 때마다. 특히 화분에 심은 식물이 왜 죽는지 물어올 때면 짜증이 났다. 내가 다루는 세계가 광활한 도시 시스템과 공원에서 한 그루의 나무로, 마침내는 화분에 심긴 작은 식물로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찌됐건 좋아하는 식물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계수나무를 예뻐하게 됐다. 학생회관 앞 가로수로 심긴 계수나무는 쭉쭉 뻗은 수형과 달리 아기자기한 구석이 있다. 그 귀여운 면모를 보려면 가지에서 막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할 때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 동전만 한 작은 잎은 한 쪽이 조금 뾰족한 동그라미인데, 하트보다는 심장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그 모양 그대로 점점 커져 손바닥만치 자란다. 노랗게 단풍이 들면 잎에서 향기가 난다. 꽃을 보는 재미는 덜하다. 꽃이 다 피어도 꼭 꽃봉오리를 다 열지 못한 모양이라 가지 끝에 보얗고 말간 분홍 물감을 흐리게 발라놓은 것 같다. 형태보다 색으로 느껴지는 신기한 꽃이었다. 조경학과 학생이라면 무릇 (졸업을 하고 싶다면) 수목학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학생 대부분이 나무를 모르는 초짜라 그에 걸맞은 과제가 주어졌다. 나무 열 그루를 정해서 수목 관찰 일기 쓰기.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성실하기가 가장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밀린 방학 숙제를 울며 하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를 또 다시 만났다. 수목학 시험은 우리를 다른 학과생의 구경거리로 만들었는데, 독특한 시험 방식 때문이었다. 조교가 교내의 나무 중 스무 그루를 선정해 번호표를 붙여놓으면, 줄지어 서 답안지에 1번부터 20번까지의 나무 이름, 학명, 음수와 양수를 구분해 적었다. 커닝을 방지하기 위해 조교들은 학생끼리 일정 간격을 두도록 관리했다. 30여 명이 개미처럼 느리게 한 줄로 움직이니 꽤 볼만한 구경거리였을 거다. 잔혹한 점은 이 시험이 겨울(잎이 없다!)에 치러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치 수목학’과 ‘잎 줍기’ 스킬을 개발했다. 위치 수목학은 말 그대로 나무의 특징 대신 위치를 기억하는 거다. “제1공학관 모퉁이에는 병꽃나무 다섯 그루, 그 옆에 큰 나무는 수수꽃다리” 같은 식으로. 이렇게 시험을 쳐서 뭐가 남나 싶었지만 돌아보니 어떤 나무를 무슨 용도로 심는지, 어디에서 자라나는지, 어떤 나무와 이웃해야 서로 해를 끼치지 않는지를 알게 된 것 같다. 잎 줍기는 잎 없이 맨둥맨둥한 나무 앞에 섰을 때 당황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잎을 줍는 기술이다. 잎만으로 나무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수피나 가지가 자라난 모양 만을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나는 잎이 없는 참나무 앞에서 잣나무 잎을 주웠고, 활엽수랑 침엽수도 구분 못하는 바보가 됐다. 입학할 당시만 해도 식물에 별 관심 없던 동기들은 어느 날부터 회양목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을 보면 화를 냈다. 골프를 치러 다니는 친구 이야기를 들을 때면, 죽으면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골프 즐기는 제자의 머리에 번개를 꽂아주겠다던 한 교수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식물을 좋아(사랑까진 아닌 것 같다)하게 되며 옅어지는가 싶던 열등감은 도시과학대학 공동작품전에서 건물 외부에 거대한 공원을 설계한 건축학과의 작품을 보고 불안감으로 변했다. 그래서 식물을 계속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설계 스튜디오에서 식물 없이 설계를 해보고 싶다는 동기의 말에 교수는 이곳에 식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납득시킬 수 있다면 해도 좋다고 했다. 교수를 설득하라니, 당시에는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그 공간을 조경가가 설계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라는이야기로 느껴진다. 식물이 필요한 이유를 알아야 식물이 없어도 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이성복 시인은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42쪽)고 말했지만, 주어진 대상지에 식물이 필요한지 아닌지 고민하는 조경가의 고통은 분명 지구 어딘가를 푸르게 만들 것이다.
  • [COMPANY] 도슨트퍼니처 아웃도어 라이프를 안내하는 야외 가구 플랫폼
    물건들이 칼같이 진열된 곳에 가면 몸이 긴장하고, 아늑한 곳에 들어서면 어딘가에 앉아 늘어지고 싶어진다. 사람의 태도나 행동은 공간의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공간의 중심에는 가구가 있다. 새해를 맞아 가구로 방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면 방법은 쉽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의자만 검색해도 수만 가지 물품이 길게 늘어지고, 상세 페이지의 다양한 연출 이미지는 인테리어 활용법까지 알려준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실내에 갇혀 있지 않다. 시선을 방안에서 창밖으로 돌리는 순간,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비에 젖어도 잘 마르고, 햇빛에 색이 잘 바래지 않으며, 내구성이 좋아 오래 쓸 수 있는 가구의 폭은 굉장히 좁다. 캠핑 생활이 각광받으며 선택지가 그나마 늘어나긴 했지만,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담기에는 다양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외부공간디자인 더숲(이하 더숲)의 이주호 대표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가구는 공간을 완성한 후 마지막 단계에서 배치되고, 프로젝트 초기부터 콘셉트에 맞추어 가구를 함께 고민하는 경우는 드물다.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어울리는 소재와 분위기의 가구를 배치하고 싶지만 선택의 폭은 늘 좁고 가격이 합리적이지 않은 데다 급하게 진행되는 과정은 공간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민 끝에 이주호 대표는 2018년 더 좋은 공간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도슨트퍼니처를 열었다. 도슨트퍼니처는 외부 공간 디자인 전문가가 전개하는 야외 가구 플랫폼이다. ‘플랫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단순히 가구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다. 도슨트퍼니처는 외부 공간을 하나의 전시장으로 여기며 야외 가구라는 작품을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제안하는 도슨트를 자처한다. 자세한 전략과 지향점을 들어보기 위해 김가영 브랜드 매니저와 신수현 디자인팀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신수현 팀장은 “전시회에서 해설하는 사람을 도슨트라고 부른다. 그 도슨트처럼 가구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고 사명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 다양한 야외 가구를 소개함으로써 더 좋은 야외 생활을 추구하고 야외 공간의 한계를 깨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좋은 가구를 소개하고 선별해 사람들에게 안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제품군은 아웃도어 가구, 라운지, 파라솔, 시스템 퍼걸러, 기타 액세서리로 나뉜다. 김가영 매니저는 획일적이었던 야외 가구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자 국내뿐 아니라 다양한 해외 업체와 소통하고 전시회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11월, 단순한 아웃도어 가구 브랜드를 넘어 고객에게 필요한 양질의 서비스와 좀 더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는 플랫폼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도슨트퍼니처 디파트먼트’로 브랜드 리뉴얼을 마쳤다. 소재, 내구성, 색감 등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중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의 독특하고 현대적인 가구를 들여오며 도슨트퍼니처만의 특색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가구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으로 수입해서 들여오는데, 도슨트퍼니처에는 디자인 팀이 있어 ODM(제조 업체 개발 생산) 방식으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을 하고 있다. DCT는 수년 간 카페, 리조트, 팝업 스토어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연구를 토대로 만든 도슨트퍼니처의 자체 브랜드다. 녹이 슬지 않는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해 오랜 시간 사용 가능하며, 화이트, 옐로, 그린, 파스텔 톤 등 화사하고 풍부한 색감이 특징이다. 신수현 팀장은 “기존 야외 가구의 색상 대부분이 자연스러운 목재나 무채색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소비자에게 좀 더 다양한 색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마그나니(Magnani)는 이탈리아 체세나 지역에 위치한 75년 역사의 비치파라솔 및 선베드 제조 브랜드다. 도슨트퍼니처는 2023년 4월 아시아 최초로 마그나니와 단독 라이선스를 체결해 이탈리아의 전통에 뿌리를 둔 여러 가구를 선보이고 있다. 신수현 팀장은 “마그나니는 해변과 수영장을 위한 다양한 가구를 갖춘 브랜드다. 해가 많이 내리쬐는 이탈리아의 기후 특성에 따라 견고하고 비바람에 잘 버티는 소재를 사용해 국내에 적용하기 좋다고 판단했다”며 “강렬한 태양빛과 어울리는 다양한 색상과 패턴을 갖추고 있어, 공간에 이색적인 느낌을 더하기에 제격”이라고 덧붙였다. 김가영 매니저와 신수현 팀장은 도슨트퍼니처는 이미 한차례 발돋움했지만 여전히 새로움을 찾아 혁신을 거듭하는 단계라 말한다. 김가영 매니저는 “늘 소비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려 한다. 도슨트퍼니처를 처음 접하는 소비자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부분들을 개선하고, 마케팅 및 감각적인 해외 소싱을 통해 타 브랜드와는 다른 차별점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며 도슨트퍼니처만의 강점을 소개했다. 신수현 팀장은 “도슨트퍼니처는 단순히 가구를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다. 외부 공간 디자인을 하는 더숲과의 협업 체계를 갖추고 있고, 가구 판매를 넘어 공간에 맞게 제안하고 디렉팅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 김모아 사진 도슨트퍼니처 TEL. 02-431-0947 WEB. www.docentfurniture.com
  • [PRODUCT] DMZ로 떠나는 모험 모험놀이터 누리성 모험마을 모험심을 키우는 네 개의 성
    분단의 역사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DMZ 일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이자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은 만큼 다양한 연령대가 휴식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가이아글로벌이 임진각 관광지에 조성한 ‘누리성 모험마을’은 어린이가 모험을 떠나며 성장하는 여정을 주제로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모험놀이터다. 누리성 모험마을은 ‘누리탐험대와 함께 떠나는 신나는 모험’을 콘셉트로 자연을 감상하고 온 가족이 함께 쉬고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구름, 평화, 별빛, 희망의 의미가 담긴 성 형태의 조합 놀이대는 어린이의 다양한 연령대와 발달 유형을 고려한 시설물 배치와 놀이 난이도 조절 등을 통해 다채로운 모험을 어린이에게 제공한다. 기존 소나무 군락지를 활용한 트리하우스와 셸터 등을 조성해 제방 너머 임진강의 경관을 감상하며 쉴 수 있게 했다. 친환경 소재의 놀이 기구가 넓은 공간에서 자연과 어우러지고 기존의 놀이터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동선을 배치했다. 진입광장에 바닥분수를 배치해 여름철에도 시원하게 놀 수 있게 했다. 서로 다른 테마가 있는 네 개의 성을 오가는 여정은 어린이들의 모험심을 키우고 정서적, 신체적 발달을 도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TEL. 02-521-3875 WEB. gaiaglobal.co.kr
  • [에디토리얼] 열한 번째 1월호
    제가 쓰는 121번째 에디토리얼입니다. 편집주간이라는 과분한 역할을 맡은 지 작년 연말 호로 10년을 넘어선 것이죠. 이번 『환경과조경』이 2014년 리뉴얼 이후 열한 번째 1월호인 셈입니다. 매년 1월호를 마감하는 시점이 되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합니다. 새해의 편집 방향을 세우고 새 콘텐츠를 기획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하지만, 안개 자욱한 풍경 속을 걷는 막막한 느낌에 휩싸이기도 하죠. 그럴 때면 늘 샛노란 표지의 309호(2014년 1월호)를 펼칩니다.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고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309호. 2024년을 열며 혁신의 열망 가득한 10년 전 잡지를 다시 꺼내 읽습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에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 속의 조경 문화는 풍요로워졌는데도 정작 제도권 조경은 위기인 역설적 풍경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며, “조경 저널리즘의 지향과 좌표를 설정함으로써 부유하는 한국 조경을 교정해야 한다”는 10년 전 다짐을 다시 불러냅니다. 새 발행인과 편집진, 리뉴얼 T/F팀이 4개월간의 리뉴얼 프로젝트를 통해 세운 그때 그 지향과 좌표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꾼다.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동시대 세계 조경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 이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한다.” “새로운 『환경과조경』은 ‘매달 첫날을 기다리게 하는 잡지, 받자마자 소중한 두 시간을 빼앗는 잡지, 한 달에 세 번은 다시 펼쳐보는 잡지, 과월호도 다시 뒤적이게 하는 잡지’가 되기 위해 매호, 늘, 새로운 출발점에 설 것이다.” 309호 에디토리얼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10년이 흘렀지만, 2024년의 모든 호 모두 그런 내용과 형식을 갖춘 잡지가 될 수 있도록 매달 힘써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풍성한 피드백을 초대합니다. 2024년의 문을 여는 이번 호는 본지가 주최한 ‘제6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특집호입니다. 한국 조경계에서는 매우 드물게 교수와 실무 조경가를 겸업하고 있는 김영민은 설계와 이론을 병행해온 이채로운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특집에는 그의 에세이 ‘모순지도’와 작품들, 김모아 기자의 인터뷰, 동료 김아연 교수와 이남진 소장의 글을 담았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김영민의 조경 작업과 조경에 대한 생각을 그러모아 한눈에 조감하는 기회가 되기를, 또 그의 작업을 더 조밀한 비평의 장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부터 새 연재물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를 올립니다. 환경과조경 주최 ‘2016 조경비평상’ 수상자이자 본지 지면의 번역자로 활동해온 신명진 박사(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가 매달 다채로운 공원 담론을 펼쳐갈 것입니다.
  • [풍경 감각] 새해 목표
    새로운 해가 돌아왔다. 달력을 걸고 올해 목표를 꾸린다. 우선 반쯤 써 둔 신간 원고를 완성할 것이다. 생각해 둔 차기작도 투고해야지. 재미있는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오면 좋겠고, 늘 미뤄두었던 두껍고 어려운 책도 완독하고 싶다. 수영은 연수반으로 올라갈 정도로 실력이 늘었으면 하고, 멍하니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기로 다짐한다. 새로운 일 년이라는 시간이 두둑한 지갑처럼 든든해서, 정말 해낼 수 있는 목표와 실패할 게 뻔하지만 어쩐지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희망사항의 경계가 흐려진다. 무엇이든 정말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얼었던 땅이 풀리고 젖은 흙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지갑을 채웠던 이 기분도 모두 써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도 또다시 같은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깨지며 조금씩 낡아갈 것이다. 여태까지 보내온 수많은 새해들처럼. 희망에 부풀어 적었던 올해 목표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대신 한 줄을 적는다. 비슷하게 좋고 나빴던 여러 해 동안 곁에 있어 준 친구들을 닮아보자고. 지겹도록 같은 돌부리에 또다시 넘어진 친구를 울지 말라고 다그치거나 빨리 일어나라고 잡아서 끌지 않기로. 대신 그저 같은 자리에 털썩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볼 것. 친구들이 여러 번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또한 신년 기분에 취해 적은 희망사항일지도 모르지만 올해는 다르길 바란다.
  • 조경가 김영민
    설계 철학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영민은 조경설계에 앞서 설계를 하는 이유와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물어왔다. 그 고민의 뿌리는 교수라는 직업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사회는 교수에게 설계를 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설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한국에서 겸직이 금지된 교수가 설계를 하려면 타인의 이름이 필요하다. 그것이 형식적이든, 실체적이든, 교수 조경가는 설계 과정의 부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학의 영역에서 교수가 설계를 한다면, 업에 있는 조경가들과는 달라야 하며, 그것이 무엇이냐는 답을 제시하기를 원한다.” 김영민은 그 답으로 “이론을 정초하는 설계”를 내놓고, “이는 당위라기보다 일종의 자발적 결단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특집의 초점은 김영민의 이론을 정초하는 설계인 ‘모순지도’에 맞춰져 있다. 모순지도의 의미를 설명하는 에세이, 그가 설계하며 발견한 다섯 가지의 모순, 비슷한 길을 걷어온 동지와 함께 설계하고 있는 동료가 바라본 그의 모습과 인터뷰를 담았다. 김영민이 설계하는 법이 더 궁금하다면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한숲, 2016) 탐독을 추천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김영민 -- 모순지도 _ 김영민 다섯 가지 모순 _ 김영민 이론이 죽은 시대의 설계 _ 김모아 젊은 그대에게 _ 김아연 뜨거운 심장을 가진 육각형 조경가 _ 이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