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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보르 워터프런트 1단계
Aalborg Waterfront Phase I - Linking Port & City
현재 12만5천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올보르는 인구 규모로 치면 덴마크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또한 덴마크에서 두 번째로 큰 산업 도시이기도 한 올보르는 1970년대부터 산업의 침체에 따라 쇠퇴의 길을 걷다가 1990년대부터 연구 및 지식의 중심지로 새롭게 부흥하고 있다. 현재 올보르의 문화적 활동은 피오르fjord를 따라 들어선 과거의 공장 건물로 확대되었다. 산업 사회가 종말을 거둔 바로 그 지점에서 항만 활용의 대안적 방안들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올보르 시정부는 항만 지역을 새로운 여가 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공모전을 개최했다. 공모전의 기본 골격은 시민과 여러 기업들이 참여한 토론회 등을 통해확보한 아이디어를 기초로 했지만, 설계를 통해 추가적인 구상을 하도록 요구했다.
과거 대상지에는 터미널과 창고 건물, 도심과 피오르 지역을 단절시키는 혼잡한 4차선 접근로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항구로의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의 방향을 재설정했고 3동의 창고 및 터미널 건물이 철거되었다. 이 지역의 소중한 역사 유적인 창고, 로열 커스텀 하우스Royal Custom House, 올보르 성Aalborg Castle은 그대로 보존해 새롭게 건립한 4동의 건물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했다. 학문과 지식의 도시로서 올보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항구 지역에서 최적의입지를 지닌 장소에 청년 및 학생들을 위한 레지던스와 기숙사가 들어섰다.
공모전은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생태 친화적 공공 공간을 설계하고 피오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낼 수 있는 시설물을 계획하도록 했다. 또한 제한된 예산 안에서 합리적으로 건설 가능해야 한다는 점도 지침에 포함되었다. 당선작에서 가장 쟁점이 된 아이디어는 4차선 도로를 2차선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이 도로에는 매일 2만5천 대 가량의 차량이 통행했는데, 재조성 과정에서 극심한 교통 혼잡이 초래되어 4년의 공사 기간 내내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후 새롭게 마련된 대로를 통해 도시에서 항구까지 방해받지 않고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차량 통행 역시 하루 약 1만8천 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올보르 워터프런트의 마스터플랜은 도시의 중세 시대 중심지와 주변의 피오르 지역을 하나로 연결한다. 산업용 항만과 이로 인한 과중한 교통량으로 인해 피오르지역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시민들의 접근이 그리 용이하지 않은 편이었다. 도시의 전반적인 구조와 결합하면서 도시와 피오르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전에는 배후에 가려져 있던 공간이 새롭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모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다섯 가지 핵심 구역
마스터플랜은 다섯 가지 핵심 구역을 강조했다. 먼저 ‘블러바드Boulevard’는 폭이 넓은 간선 도로를 중심부에 여백을 둔 2차선 도로로 탈바꿈시켰다. 도로의 경로가 남쪽으로 변경되었는데, 워터프런트를 확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를 통해 시내에서 피오르로 접근하는것이 가능해졌다. 부두를 따라 약 1km 이어지는 블러바드의 양변에는 나무를 식재했으며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세밀한 디테일에 신경 썼다.‘프롬나드Promenade’는 워터프런트를 따라 배치된 일련의 광장으로서 계단, 테라스, 전망 플랫폼 등을 통해 사람들이 물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고, 다채로운 경험과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욤프루 앤 파크Jomfru Ane Park’는 다양한 테마와 특성을 지닌 일련의 도시 정원들로서 프롬나드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주변의 상업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공놀이, 일광욕 등의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다양하고 많은 이용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견고하고 매력적인 공간을목표로 했다. ‘캐슬 스퀘어Castle Square’는 도시와 항구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휴식 공간들의 가장자리에 해당된다.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제방을 둘러싼 넓은 녹지 공간을 마련해 중세에 건립된 올보르 캐슬Aalborg Castle이 다시 한 번 항구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했다. 끝으로 무성하게 숲이 우거진 ‘우촌 파크Utzon Park’는 구불구불한 산책로와 벚나무가 학생 및 청년들을 위한 주거지와 우촌 센터Utzon Centre를 둘러싸고 있다. 올보르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이외른 우촌Jørn Utzon을 기념하기 위해 공원과 건물이 조성되었다.
Landscape ArchitectC.F. Møller Architects,Vibeke Rønnow Landscape Architects
EngineerCOWI
CollaboratorÅF Hansen & Henneberg(lighting design)
ClientAalborg Municipality
LocationAalborg, Denmark
Size170,000m2
Year of Competition2004
Construction Period2005~2012
PhotographsAalborg Kommune, Helene Høyer Mikkelsen,Julian Weyer,
Martin Kristiansen, Vibeke Rønnow
C.F. 묄러(C.F. Møller)는 1924년에 설립된 건축설계사무소로 북유럽과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선도적인 회사다.현재 C.F. 묄러 본사는 덴마크 오르후스에 있으며 코펜하겐, 올보르, 오슬로, 스톡홀름, 런던 등지에 5개의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C.F. 묄러는장소 특정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창조적인 설계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C.F. Møller / C.F. Møller / 2016년05월 /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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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뻘 비치를 사뿐하게 누볐다
Column: Running a Practice Is Just Like Walking on the Mud Beach
시대가 변했고 가치도 변했다
내가 조경학과에 다니던 시절은 피터 워커와 그의 후학 조지 하그리브스로 대표되는 ‘개인’의 선구적 프랙티스에 매료되었던 시절이다. 그리고 소위 ‘조금 한다’는 학부생들은 설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내 사무실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부터 이렇게 자라고 있었다. 설계사무소를 연다는 것을 ‘창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색한 이유는, 이 일을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워커나 하그리브스가 비즈니스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그 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에서 적용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은 많지 않았다. 시장의 크기, 수주 구조, 계약과 지불 등 모든 면에서 한국과 미국은 달랐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취직할 곳이 없어 경계 없는 국경을 넘어 쏟아져 들어오는 인턴들로 넘쳐나는 네덜란드도 아니었다.
2006년에 서울에서 사무실을 열기는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일을 수주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우연한 계기로 일이 생겼고,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클라이언트를 소개 받았다. 이런 불확실성을 관통하여 지금까지 10년을 버티어 냈으니, 한편 스스로 자랑스럽기도 하다. 오피스박김의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면, 당시에는 힘겨운 시도 혹은 실패로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적 역량이 축적되었고 우리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안내하였다.
그간 남겨 놓은 텍스트를 묶어 단행본으로 출판하자는 의견에 공감하게 되어 올 가을에 그 축적물이 책으로 나올 예정이고, 오피스박김 후학들을 중심으로 랜드스케이프의 미래Landscape for Tomorrow를 조망할 작은 컨퍼런스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 10년의 미래 역시 불분명하겠지만, 계속 도전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는데, 나부터가 일을 제대로 해서 제대로 지어야 우리의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쌓이다 보면 우리의 후학들이 지금의 오피스박김 보다 조금이라도 더 수월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다. ‘돈 주고 조경 설계 처음 맡겨 본다’는 분들이 여전히 있고, 이런 클라이언트의 ‘계몽’ 역시 우리의 일이다. 사실 사명감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생존을 위한 반사 작용이기도 하다. 스스로 우리의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과연 누가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인가?
어느 주말, 우리 집 강아지 마리와 함께 양화한강공원에서 왕복 4km를 뛰었다. 뛰면서 돌아본 주변에는, 나만큼이나 고된 한 주를 보냈을 것으로 짐작되는 어느 가장이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잔디 사면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고, 휠체어를 탄 어느 중년은 한강물이 찰랑대는 강가까지 내려가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다리는 당시 공원 설계와 시공을 회상하며, 갈대지형과 사석호안그리고 뻘 비치를 사뿐하게 누볐다. ‘세상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하는 생각은 또 그 후 한동안 진격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아직 일천하여 의견 개진이 매우 조심스러우나, ‘창업’에 관한 기획 의도를 존중하며 소견을 밝히자면, 한국에서 설계사무소를 여는 것을 굳이 장려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말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들은 있다.
먼저, 너무 빨리 열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설계를 하다가 자기 사무실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그때 열면 된다. 르네상스 이후 별로 변한 것이 없는 설계라는 직능은 가장 고전적인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개업 초기의 열정도 좋지만 대형 회사에 소모되지 않고 직원들 월급 안 밀리려면 현실을 이겨 낼 수 있는 명확한 대차 대조표가 있어야 한다. 원한다면 때는 언젠가 올 수 있다. 그러나 오지 않더라도, 사무소에서 일하되 소장처럼 일하면 된다. 그렇게 주인처럼 설계하다 보면 자연히 어떤 위치에 있던 소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훈수에도 심장박동이 느려지지 않는다면, ‘주변부’를 주목하기 바란다. 설계라는 중심 영역 대신 이와 관련된 새로운 외연을 탐험하는 것도 개척자의 특권이다. 우리가 여전히 조경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도입 4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개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공자 역시 “부귀가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잡고 말을 모는 사람 노릇이라도 하겠지만 만약 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라고 하니, 나의 발걸음이 양화의 뻘 비치를 사뿐하게 누빌 수 있나 보다.
김정윤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GSD 졸 업 후 네덜란드 West 8 등에서 실무를 쌓았다. 치치 지진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당선을 계기로 박윤진과 함께 오피스박김을 설립했다(2004). 네덜란드 조경건축사이며 바허닝엔 대학교에 출강했다. 차세대디자인리더(산업자원부 2007), 광교공원 디자인커미셔너(2008), 서울형공공건축가(2011)로 선정되었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놀튼 건축대학원이 선도적 조경가에게 수여해온 글림처특훈교수(2011)로 임명되어 강의했다. ‘양화한강공원’, ‘광교신도시 공원시스템’, ‘SBS 프리즘 타워’, ‘현대캐피탈 배구단 캠프’, ‘CJ 광교통합연구소’ 등 공공과 민간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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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그들의 참신함을 응원한다
Editorial: For Their New Start
강의실이나 작업실이 아닌 내 연구실에서 학생 설계안 크리틱하는 일, 대학원생 논문 지도하는 일, 가끔 찾아오는 졸업한 제자와 대화하는 일을 나는 ‘외래 본다’라고 총칭한다. 물론 그들을 환자 취급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유 있게 호흡하며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종합병원 의사처럼 분초를 다투며 대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모든게 새로 시작되는 계절인 탓일까. 이번 봄에는 정말 많은 외래를 봤다. 학업 상담, 진로 상담, 인생 상담이 줄을 이었다. 그중 몇 가지 이야기를 간추려 옮긴다.
#1. 고3 티가 여전한 한 신입생. 놀랍게도 중학생 때부터 조경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한다. 어느 ‘미드’의 배경으로 나온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매료됐고, 몇 번의 클릭으로 그곳의 설계자가 캐서린 구스타프슨임을 알아냈다고 한다. 마사 슈왈츠에게도 강한 팬심을 느끼고 있다 한다. 놀란 내 표정에 고무되어 어떻게 하면 그들 같은 스타 조경가가 될 수 있는지 돌직구 질문을 날린다. 말문이 막힌다. 글쎄, 많이 보고 읽고 그리며 안목을 기르라는, 하나마나한 답을 우물거린다.
#2. 3학년 미학 시간에 눈에 띈 한 낯선 남학생. 언제 제대했는지 묻자 이번에 복학한 건 맞는데 군대를 다녀온 게 아니라 2년간 휴학하며 창업 동아리활동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답한다. 내성적인 인상이지만 말문이 트이자 미래의 사업 계획이 줄줄 쏟아진다. ‘생태적 디자인으로 지구와 인류를 구하는’ 기업을 고등학교 때부터 구상해 왔다고 한다. 포어스ForEarth.ForUs라는 사명도 미리 지어놓았다고. 뭐라 내가 말을 보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관심과 응원의 미소면 충분. 생태학과 상상력을 함께 다룬 책 몇 권을 소개.
#3. 수시 입시 면접 때부터 대학원생급 전공 지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한 4학년 여학생. 학년이 올라가며 설계 스튜디오는 물론 이론 과목에서도 빼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고 공모전 수상도 다수. 졸업 후의 계획을 묻자 명문 디자인 스쿨로 유학 가서 도시설계를 전공해 사회적 기여를 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엉성하고 허약한 조경판이 못마땅하거나 불안한가 보다. 상담의 제1원칙은 잘 들어주는 것임을 알지만, 아까운 인재 하나 놓칠 판이니 적당히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안하려고 할 때 하면 100미터 달리기 혼자 하는 것처럼 쉽지 않을까. 늘 고상한 척 하는 교수가 평소와 달리 현실적으로 접근하자 다시 생각해 보겠다 한다. 갑자기 책임감 비슷한 게 생긴다.
#4. 비교적 늦은 나이에 유학해 조경학 석사를 마치고 유명 설계사무소에서 2년여 일하다 돌아온 삼십대 중반의 제자. CG 숙련공 역할만 반복하다 보니 세계 최고의 오피스라는 간판에서도, 뉴요커 생활의 그럴싸한 허세에서도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한다. 비슷한 처지로 십 년씩 버텨온 선배들 그림자를 밟느니 열악하더라도 한국 조경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게 낫겠다 싶어 미련 없이 짐을 쌌다고 한다. 돌아오니 광야에 던져진 것처럼 막막하다는 그에게는 오백 몇 잔이 답이다. 책임질 수 없어 주저했지만 취기를 빌어 독립을 권했다. 자, 건배사, 내가 ‘독’하면 넌 ‘립’하는 거다.
#5. 대학원 졸업 후 신생 설계사무소에 들어가 근십 년을 묵묵히 버텨 온 제자. 세상 잘 읽는 영민한 친구들이 줄줄이 설계 일을 접는 중에도 말없이 설계실을 지키며 집중해 온 그, 제자지만 존경한다. 그런 그가 요즘 조금 흔들리나 보다. 보수나 근무환경 탓이 아니라 한다. 십 년 하면 뭔가 통찰력 있는 디자인 감각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란다. 앞으로 십 년 더 한다고, 그러다 오십대가 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음을 절감한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자신의 사무실을 열어 따뜻한 공간, 좋은 환경설계하는 걸 꿈꾸지만 그럴 수 있을지 의심된다며의기소침. 괜찮아, 조금 더 가면 길이 나올 거야. 내말이 형식적으로 들렸을 테지만, 분명히 진심이다. 테이블에 빈 맥주잔이 가득 찬다. 얼핏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과 소통하고 또 ‘잘 하는 일’과의 교점을 찾는다면 그들은 앞에 마주친 두꺼운 벽을 유연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생각이 선생들처럼, 선배들처럼 진부하지 않고, 참신하기 때문이다.
막 자신의 작업 공간을 꾸려 독립한 삼십대 조경가 아홉 명의 이야기를 다룬 이번 달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기획하며 여러 젊은 조경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맥주 살이 더 늘었음은 물론이다. 경험해 보지 못해서인지 나는 ‘창업’이라는 두 글자에 심한 중압감을 느낀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렇지 않았다. 설계 배우고 설계해오면서 늘 가졌던 꿈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을 뿐이라고 한다. 누구는 우연한 기회에 갑자기, 누군가는 몇 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시작한 차이가 있을 뿐.
그들에게서 발견한 또 하나의 공통점은 태도와 작업 방식의 참신함이다. 그 참신의 바탕에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잘 하는 일의 행복한 동거가 있었다. 그들과 만나고 돌아와 참신斬新의 뜻을 사전에서 확인해 봤다. 새롭고 산뜻하다. 그런데 ‘참斬’자의 유래가 예사롭지 않다. 고대 중국에서 죄인을 죽이던 극형 틀인 수레와 도끼로 이루어진 글자다.
참신이란 과거를 도끼로 치는, 완벽한 단절을 뜻하는 말이다. 참신함을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렵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참신은 진부가 된다. 진부陳腐. 사상, 표현, 행동 따위가 낡아서 새롭지 못함. 썩은 고기腐를 남들 보라고 전시陳한다는 뜻이다. 어렵게 구한 고기를 자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꺼내 보여주다 보면 고기는 썩고 악취가 난다. 고기주인은 썩은 고기에 익숙해져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도 모른다.
교훈과 계몽으로 흘러버린 글, 한 번 더 막 나가며 맺는다. 한국 조경 40년,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다. 미숙하다. 새로운 시작, 당신들의 영토가 무한히 펼쳐져 있다. 진부함을 경계하고 참신함을 이어가길 당부한다.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