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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웃거리는 편집자] 스포트라이트와 서포트
    학교를 다녀오면 야구 좋아하는 아빠 때문에 매일같이 TV에 삼성라이온즈 경기가 틀어져있었다.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게 됐고 종종 부모님을 따라 야구장을 찾았다. 첫 야구 직관은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삼성라이온즈와 해태타이거즈 경기였다. 어느 팀이 이겼고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세세한 부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회색빛 출입 통로를 지나 만났던 광활한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느낀 감정을 책의 한 구절로 표현해본다. “3루 쪽 특별 내야로 가는 계단을 다 올라간 순간 우리는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갑작스럽게 시야가 확 트이면서 그 끝에 부드럽고 거뭇거뭇한 그라운드,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베이스, 똑바로 그어진 하얀 선, 정성스럽게 손질된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었다. …… 그리고 그때 마침 우리의 도착을 기다렸다는 듯이 조명이 켜졌다. 칵테일 광선을 받은 구장은 하늘에서 내려온 우주선 같았다.”1 잊을 수 없는 풍경 때문인지 야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야구팬이 됐다. 시간이 된다면 직접 경기장에 가 야구를 관람하는 편이다.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사람은 선수와 코치, 감독이다. 승패를 가르고 팬들의 일희일비를 결정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수많은 관중의 시선이 모이고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반면 스포트라이트는커녕 이런 사람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림자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이 이벤트에 참여하고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운영자, 티켓 발권과 확인을 하는 매표소 직원, 관중들이 다치지 않게 지켜보고 보호해주는 사람 등, 하나의 경기에는 스포트라이트와 서포트가 공존한다. 이 두 가지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경기가 만들어진다. 몇 년 전 방영한 TV 드라마 ‘스토브리그’(SBS)는 서포터들의 애환을 잘 담았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으로 계약 갱신과 트레이드 등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이 드라마는 만년 리그 꼴등 팀 ‘드림즈’에 새로 부임한 단장과 구단 사람들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이야기다. 보통의 스포츠 장르 드라마나 영화라면 꼴찌 팀이 대회에서 극적으로 승리를 하는 내용으로 흘러가겠지만, 스토브리그는 야구 선수들의 이야기보다는 구단을 운영하는 프런트들의 사연과 스토브리그에 펼쳐지는 사건을 다룬다. 뒤에 숨겨져 있어 잘 보이지 않던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사흘간 광주에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가 개최됐다. 나는 사전 행사인 학생샤레트 진행을 위해 대회 일정보다 일찍 광주로 향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학생들의 숙소 체크인을 돕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려갔는데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자꾸 불시에 터져 몹시 당황했다. 게다가 언어의 장벽으로 소통까지 잘 되지 않으니 프로그램을 잘 마칠 수 있을지 무서워지기도 했다. 모든 슬픔에는 끝이 있다더니 시간은 흘렀고 마지막 일정인 최종 프레젠테이션까지 무사히 도달했다. 스토브리그는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드림즈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기 위해 그라운드로 향하고, 그 뒤편에 선 구단 사람들이 응원의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사흘간 진행된 학생샤레트가 끝난 후 열린 시상식에서 그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상장 수여를 위해 무대 위로 수상자들을 인솔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기념 촬영을 위해 무대에서 내려와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그때 친 박수는 학생샤레트를 큰 탈 없이 끝낸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상이자 격려였다. [email protected] 각주 1. 주인공인 노수학자와 그의 가사도우미 나, 나의 아들 루트가 함께 일본 프로야구팀 한신타이거즈 경기를 보러간 야구장에서 받은 느낌을 표현한 구절이다. 오가와 요코, 김난주 역, 『박사가 사랑한 수식』, 현대문학, 2014, p.126.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정신을 모르던 시답잖은 날들에 비하면 아름답다
    “머리 비우는 데 등산만 한 게 없어.” 친구의 말에 서울 외곽을 향했다. 사실 말만 거창했지, 가방든 건 이온 음료 한 병이 전부. 낮은 산등성이에서 가벼운 산책을 즐길 생각이었다. 중간에 나타난 황구의 농락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누런 강아지는 산 인근에서 절밥을 얻어먹고 자란 것 같았다. 꼬리를 흔들어대더니 나와 내 친구가 마음에 든 건지 졸랑졸랑 쫓아와 가이드 시늉을 했다. 길 안내하듯 앞장서 걷다가, 우리가 뒤처진다 싶으면 뒤에 와 종아리 뒤를 콧등으로 밀며 걸음을 독촉했다. 정신을 차리니 바위산 한복판이었다. 칼바위능선,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앞도 뒤도 모두 가파른 바위 언덕이었다. 그제야 전문 장비로 중무장한 등산객들이 러닝화에 장갑 하나 없는 우리를 보며 혀를 차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행히 나와 친구를 불쌍히 여긴 젊은 부부가 돌산 타는 법을 알려주었고, 봉우리를 향하는 길옆에서 산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꼭대기까지 가자는 말에 손사래를 치고 줄행랑을 쳤다. 지긋지긋한 바위산을 도망치듯 내려오며 자꾸 뒤를 돌아본 건, 우뚝 솟은 암반의 압도적인 수직 경관이 무서우면서도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아 름답다더니 거대한 암석 봉우리는 돌의 표면을 세세히 살피게 했다. 바람과 물이 남긴 흔적인지, 돌 위에 새겨진 잔주름을 발견하자 딱딱한 표면이 일렁이는 파도의 물결처럼 부드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광주에서는 길고 긴 수평선을 봤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의 마지막 일정인 포스트 투어, 나는 순천과 낙안읍성을 향하는 코스에 인솔자로 동행했다. 피곤하기는 했지만, 순천만국가정원을 한 번도 안 가본 사실이 내심 부끄러웠던 참이었다. 늘 사진을 통해 조감으로 본 찰스 젱스의 언덕을 실제로 마주하니 텔레토비 동산처럼 귀엽기보다는 대릉원의 고분처럼 웅장했다. 굽이치는 언덕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여러 나라의 정원을 구경하다가 스카이 큐브에 올라탔다. 걷지 않아서 좋다며 박수를 짝짝 대며 창밖 풍경을 찍다 보니 너른 땅이 나타났다. 그렇게 만난 순천만 습지는 너무 넓고 아름다워서 겁이 났다. 태풍이 북상하는 중이라 세찬 바람이 불었는데, 그때마다 수십만 개의 잎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파도처럼 온몸을 덮쳤다. 앞뒤에 걷던 일행과 멀어지고, 그 공백을 바람과 잎 소리가 채울 때면 영화 ‘그래비티’ 주인공처럼 우주에 버려진 기분에 휩싸였다. 영원히 이 갈대숲을 헤매야 할 것 같은 공포감 말이다. 흔히 조경의 특징으로 살아있는 소재(식물)를 쓴다는 점을 꼽지만, 나는 지형을 다룬다는 점을 좋아한다. 조경설계는 결국 땅에서 출발한다. 평평하거나 갑자기 치솟거나 가파르게 내리막을 그리거나 물결처럼 일렁거리거나, 지형은 그 자체로 다양한 심상을 만든다. 지형은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불어 땅에는 시간이 담기기 마련이다. ‘지형도’를 지도의 한 종류가 아닌 어떤 은유로 사용하듯, 지형은 땅의 생김새를 넘어 역사나 문화, 어떤 맥락을 담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 지형의 아름다움이 서울이 아닌 곳에만 있는 줄 알았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빈 땅이 많아지고, 지형은 더욱 다채로워질 테니까. 그래서 “서울의 지형은 정말 환상적”이라는 렌조 피아노의 말에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던 것이다.1 내로라하는 건 축가의 말에 혹한 것일까. 그의 말처럼 갑자기 서울이 구불구불하고, 푸른 산을 도심에서 볼 수 있고, 큰 강줄기를 끼고 있고, 바다가 가까운, 극도로 풍요로운 도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웬만한 곳에 서도 산등성이의 곡선을 볼 수 있고, 마음을 찡하게 하는 거대한 수평과 수직의 풍경은 없어도 오르락내리락하는 땅을 고불고불가로지르는 골목길에서는 복잡다기한 도시사가 읽힌다. 좀 늦긴 했지만 발붙이고 있는 삶의 터가 아름답다는 걸 깨닫는 일은 꽤 즐거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표현은 너무 진부해서, 좋아하는 편지글의 일부를 빌려 왔다. “나는 정신을 2004년에 처음 만났다. 민선 언니 소개로 나간 자리였다. 난생 처음보는 한 작은 애가 시작부터 영롱한 무엇이었다. 완전히 달랐다. …… 어떤 해는 정신을 한 번도 못 보고 지나가도 정신을 모르던 시답잖은 날들에 비하면 아름답다.”2 [email protected] 각주 1. “세계적 건축가 KT 새 사옥, 12m ‘공중부양’”, 「중앙일보」 2021년 6월 16일. 각주 2. 홍진경, ‘정신 생일을 축하해’, 2019년 9월 14일.
  • [PRODUCT] 오픈형 기능성 휴게 시설 스트라다 셰이드 박스 구조에서 벗어난 선형 구조의 퍼걸러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전염에 대한 우려로 인해 사람들이 밀집하거나 밀폐된 도심의 공간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건의 스트라다 셰이드(Strada Shade)는 팬데믹 시대의 환경과 도심지의 긴 가로 공간을 고려한 휴게 시설이다. 일반적으로 벽이나 기둥으로 둘러싸인 박스 구조의 퍼걸러와 달리 벽과 기둥의 활용을 절제하고 공간을 가로지르는 벤치 등을 배치해 선형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안에서 밖을 봤을 때 시선을 가리는 요소가 없어 공간에 개방감을 불어 넣는다. 이러한 열린 공간은 밀폐된 공간 속 전염의 우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선형 구조는 도심지의 긴 가로 공간에 적합하기도 하다. 대상지의 여건에 따라 시설의 길이를 늘이거나,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하나로 연결된 주된 선형을 중심으로 벤치를 지그재그로 가로지르게 배치하면 퍼걸러 내부에 다양한 포켓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곳곳에 충전기, 의자 등받이 등을 설치해 편의를 꾀했다. TEL. 031-943-6114 WEB. yekun.com
  • 제2회 더 라스트 뉴클리어 밤 메모리얼 공모 문자 사용 금지, 이미지로 구성된 세 개의 수상작
    지난해 1월 유엔 핵무기금지조약(TPNW,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이 50개국 이상의 비준을 받아 발효되었다. 2017년 7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75주년을 맞이한 2020년부터 본격적인 비준 촉구를 통해 발효된 이 조약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달리 모든 핵무기의 개발과 실험뿐만 아니라 핵보유국의 핵우산 제공까지도 금지한다. 그러나 핵무장국과 핵우산에 의존하는 국가 대부분이 비준하지 않아, 이 조약이 실질적인 핵실험 및 핵무기 사용 근절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핵무기는 폭발의 규모가 엄청난 만큼, 그 여파 역시 파괴적이다. 폭발로 인한 직접적인 파괴는 단 몇 분 만에 일어나 기폭 지점 내 대부분의 것을 증발시키며 반경 10km가 넘는 구역까지 뻗는 열복사선은 사람을 산 채로 불태운다. 피폭된 생물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방사능으로 인한 환경오염은 우리가 알던 세계를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은 위험한 곳으로 바꿔버린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폭발로 인한 ‘핵겨울’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내려가고 식량 생산량 감소로 인해 세계 인구의 최대 70%가 기근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우리는 이미 최근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전쟁과 무기 사용이 가져오는 전 세계적 영향을 확인한 바 있다. 국제적 건축공모기획사인 빌드너(Buildner)가 개최한 ‘더 라스트 뉴클리어 밤 메모리얼 공모(The Last Nuclear Bomb Memorial Competition)’는 국제 사회에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고 핵실험 및 핵무기 사용을 근절하자는 목소리를 모으고자 추진되는 공모로, 올해 2회를 맞이했다. 참가자는 빌드너가 제공한 전 세계 핵실험 장소, 핵 관련 사건·사고 발생 장소 중 한 곳을 대상지로 삼아 추모 공간을 디자인해 A1 패널 한 장을 제출해야 한다.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국제 사회의 무심함을 비판하고자 제출물에서 문자 사용을 엄격히 금지해 참여자는 오로지 이미지로만 자신의 의도를 표현해야 했다. 전 세계에서 제출된 작품 중 40여 개가 최종 후보작 명단에 올랐고, 지난 7월 12일 수상작이 발표됐다. 각국 8명의 건축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의 심사 결과 안–타이 루(An-Tai Lu, 미국)의 ‘리멤버링(Remembering)’, 사비에르 로우레이로(Xavier Loureiro, 스페인)의 ‘알렌(Alén)’, 신영재·윤병두(대한민국)의 ‘더 시드(The Seeds)’가 1, 2, 3등을 차지했다. 공모 특성상 수상작에 대한 직접적 해설이 없기에 작품에 대한 해석은 오롯이 감상자에게 맡겨져 있다. 1등작 리멤버링은 핵실험 장소의 둘레를 따라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목재를 꽂아 공간적 범위를 표현했다. 목재 경계 안쪽으로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다. 방문객들은 안쪽까지 직접 걸어 들어가야 하며 내부에서는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 경계 안으로 들어간 방문객들은미리 가져온 검은 돌을 안쪽에서부터 두고 간다. 시간이 흐르며 돌들은 점점 모이고 검은 표식은 점차 커져가 하얀 모래 빛깔 대지와 대조되는 명확한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의식은 검은 돌이 목재 경계 안쪽을 완전히 검게 채울 때까지 계속된다. 심사위원은 리멤버링에“시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방문객과 기념비 사이의 교류가 이 미니멀한 제안에 깊이와 정서를 더하고 있다. 오로지 빛뿐인 공백에서 시작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념비의 규모가 확장되는 아이디어가 아름답고 강력하다”고 평했으며, 죽은 자의 묘에 돌을 얹는 유대교의 전통과 이 제안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2등작 알렌은 핵실험 후 남겨진 움푹 팬 땅의 경계부를 가르는 선형의 길을 기념비의 입구로 삼는다. 내부와 외부를 잇는 강력한 축이기도 한 진입로는 내부의핵실험지를 물로 채운 호수로 곧장 이어진다. 계곡을지나 호수에 닿은 방문객들은 수면보다 낮은 곳에 서게 되어 마치 물에 잠기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폭발의 중심에 닿을 때 길은 끝나며 그 끝에는 계단이 있어 방문객들은 수면과 비슷한 높이에 올라 잔잔한 수면을 바라본다. 심사위원은 “시적인 이미지가 핵실험지의 규모를 드라마틱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중심을 향해 뻗은 물에 잠긴 보행로가 부재의 감각을 자아낸다.이 제안은 ‘경관의 프레이밍’, ‘감정의 변화’를 활용한 일종의 대지·설치 예술과 같다. 본래 있던 자연의 언덕을가르는 좁다란 계곡 길과 물에 잠긴 보행로를 지나는행위는 정화와 같은 종교적 의식을 떠오르게 한다”고말했다. 3등작 더 시드는 미국 애리조나의 핵실험지를 대상지로 삼았다. 폭발의 중심을 향해 선 1,000여 개의 토우들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 점차 분해되어 새로운 생명을 위한 보금자리가 된다. 어느 하나도 같은 토우는 없고, 각각의 토우는 어린이, 노인, 소방관, 산모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을 표현한다. 특히 가축과 야생동물 등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까지 포함해 핵무기로 인한 피해가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여지없이드러낸다. 대상지의 생물상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추모 공간이 추모를 위한 공간을 넘어 지역의 멸종 위기 자생 식물(Tiehm’s buck wheat)과 곤충(MonarchButterfly)을 위한 서식처가 될 수 있도록 토우 안에 자생 식물의 씨앗을 섞도록 제안했다. 비와 바람에 의해풍화되는 토우들은 생명의 무력함, 연약함을 드러냄과동시에, 죽음과 파괴가 곧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수있음을 암시한다. 심사위원은 “배치된 토우들이 시간이 흐르며 분해되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정원으로 돌아온다는 콘셉트는 매우 강력하다. 인간 이외에 다른 모든 생명까지도 품은 생태적 접근은 시간,변화, 그리고 순환을 디자인 어휘로 사용한다. 이 충격적이면서 극적인 대규모 설치 작업은 핵무기로 인한희생자가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을 포함한 생태계 전반임을 알림과 동시에, 우리가 모두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의 행위가 이를 파괴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평가했다. 신영재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한 뒤 조경설계사무소HLD에서 4년 4개월 근무했다. 현재 생태적 정원 설계/조성/연구모임 ‘초신성’과 종합예술동인 ‘madswanattack(미친백조의공격)’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아름답고 쓸쓸한것들에 관심이 많다.
  • 오감으로 재조합한 귀틀집의 풍경 ‘가장 조용한 집’ 전, DDP 배움터 3층
    깊은 산골 속 작은 집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있다. 은근한 열기를 뿜는 아궁이, 밥때가 되면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 고구마가 익어가는 화로, 정겨운 할머니의 목소리. 이런 장면들을 막연히 낭만적이라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사실 나는 도시에서 벗어난 삶을 경험한 적이 없다. 때로는 이런 상상이 나와 동떨어진 삶을 대상화하는 방식 중 하나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지난 7월 11일부터 8월 15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에서 열린 ‘가장 조용한 집’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전시다. 식물로 일상을 어루만지는 조경 작업을 하는 ‘수무’가 기획한 전시는 ‘힙’한 음악과 영상, 설치 작품으로 무주 귀틀집을 재해석했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삶을 나의 일상과 가까운 지점에서 상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주 귀틀집 전시의 주인공인 무주 귀틀집은 70년 전 무주의 한 부부가 직접 지은 신혼집이다. 집터로 잡은 곳이 오지인 데다가 집을 지을 전문가도, 제대로 된 재료도 구할 수 없던 그들은 주변의 나무를 베어 우물 정丼 모양으로 배치해 틀을 만들고, 나무를 쌓아 올려 벽을 세우고, 틈 사이를 진흙으로 메꿔 집을 완성했다. 나무와 진흙처럼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로 지은 집은 여름에는 수분을 흡수해 팽창하고, 겨울에는 수분이 적어져 수축한다. 숨 쉬듯 부풀었다 오그라들기를 반복하며 집의 구조는 더욱 견고하게 연결되고, 재료는 좀 더 단단해진다. 스스로 튼튼해지는 집의 특성에서 수무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성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했다. 약 이틀간 귀틀집에서 머무른 수무는 숨 죽인 채로 주변 환경을 둘러보고, 소리를 채취하고, 영상으로 그 주위를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포착한 자연의 소리와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작은 주체들의 모습을 새로운 콘텐츠로 빚어냈다. 무주의 시공간을 담은 캔버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하얀 모래에 반쯤 파묻힌 거대한 구조물, 그 위로 투사되는 영상과 음악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 ‘가장 조용한 집’이 나타난다. 반사 소재로 만든 우물 정 형태의 구조물은 귀틀집을 상징하는데, 빔 프로젝트에서 투사되는 영상을 담아내거나 반사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구조물을 반쯤 덮은 흰 모래는 귀틀집이 자연에 묻혀 지내온 시간이자 스며든 자연으로, 무주에서 담아온 실제 자연 영상을 고스란히 담는 캔버스가 되어준다. 모래가 쌓여 생긴 자연스러운 굴곡은 새벽녘 희미하게 밝아지는 하늘의 영상이 비칠 땐 가파른 산세 같고, 경쾌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올 땐 계곡가의 바위처럼 느껴진다. 무주 귀틀집의 사계절, 24시간을 간결한 형태로 축소한 작품은 방문객을 자연의 내면으로 인도하며, 이전과 다른 감각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만든다. *환경과조경413호(2022년 9월호)수록본 일부
  • 거리 위 사진가의 비밀 그라운드시소 성수, ‘비비안 마이어’ 전
    미스터리한 천재 사진가, 롤라이 플렉스의 장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15만 장의 필름. 많은 수식어로불리는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는 우연히 그의작품이 경매장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지난 세기 동안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무명의 사진가였다. 숨겨진 명작은 한 남자의 안목과 우연에 의한 발견 덕분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마추어 역사학자 존 말루프(John Maloof)는 집필 중이던 시카고 역사책에 넣을 사진을 찾다가 우연히 경매장에서 380달러에 낙찰받은 필름이 담긴 상자에 흥미를 느낀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였던 그는 이제껏 세상에 공개된 적 없었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리고자 마음먹는다. 플리커, 전시 등을 통해서 세상에 공개된 그의 사진에 대중은 열광했고, 이후 각종 서적과 다큐멘터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가 남긴 사진을 한국에서도 볼 기회가 생겼다. 지난8월 4일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열렸다.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270여 점의 사진과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 및 소품, 영상, 오디오 자료 등을 선보였다. 특히 거울, 쇼윈도, 그림자 등을 통해 자신을 숨기듯 표현한 그의 감각적인 셀프 포트레이트는 요즘 SNS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셀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거리의 사진가 생전에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유지했던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서 알려진 정보는 극히 적다. 뉴욕에서 태어난그는 어머니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1950년대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과 시카고를 오가며살았다. 어릴 때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부모가 이혼했고, 그들은 오랫동안 마이어를 돌보지 않고 방치했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오빠는 마약 중독에 빠졌고,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그는 가족과의 교류가 단절된 채로오랫동안 일정한 거처 없이 남의 집을 전전하며 유모, 가정부, 간병인으로 살았다. 이모할머니로부터 받은 유산으로 샀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취미였다. 카메라는 2009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독신으로 살았던 마이어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시카고와 뉴욕 일대를 누비며 거리의 사진을 찍었던마이어는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비견된다.로버트 프랭크처럼 일상 속 찰나의 미학을 포착할 줄알았으며, 사회의 소수자에 주목했던 다이안 아버스처럼 흑인, 어린이, 노숙인 등 인종과 연령, 남녀의 구별없이 거리의 모든 이를 사진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사진 속의 거리는 마치 평범한 사람들이 출연하는 극장과도 같다. 사진에는 상냥함과 비극이 동시에 존재하는 거리의 아이러니가 한 편의 드라마로 펼쳐진다.그는 구체적인 테마를 정해 놓고 이미지를 찾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어떤 것이 눈에들어올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의 이미지를 수집해야 하는 사명을 띤 사람처럼 셔터를 눌렀다. ‘센트럴파크 동물원’은 풍선이 절묘하게 한남성의 얼굴을 가린 순간을 기민하게 포착해 찍은 사진으로 일종의 유머를 엿볼 수 있다. ‘뉴욕공공도서관’에서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우아한 한 여성의 옆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여러 가지 구도를 이용하면서도 재치, 사랑, 빈곤, 우울 등 다채로운 감정의 이미지와 피사체의 다양한 표정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환경과조경413호(2022년 9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반경 안의 아름다움
    어린 시절 처음으로 마주한 서울의 아파트는 신기하면서도 조금 무서웠다. 최초의 영화라 불리는‘열차의 도착’에 나오는 증기 기관차 영상을 보고진짜 기차가 오는 줄 알고 도망갔다는 관객들처럼,초록의 시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파트의 위세에 기가 눌렸던 것 같다. 그러나서울 생활 십 년 차에 접어든 내게 이제 아파트는이정표나 다름없다. 행선지를 묻는 택시 기사에게주소지를 읊는 대신 집 근처 아파트 이름을 말하고, 고향집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동서울버스터미널을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를 보며 서울을 실감하는 동시에 이상하게 안도감이 든다. 고향보다 서울이 익숙해진 것이다. 어느 때는 아파트를 보고 시간을 가늠해보기도한다. 옛날에 살던 동네를 우연히 지나다 한창 공사 중이던 재건축 아파트가 완공된 모습을 보면서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헤아리기도 하고, 집 앞아파트 벽면을 날마다 영롱한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하루의 끝을 깨닫는다. 그 끝이아쉬워 연신 셔터를 눌렀는데 그럴 때마다 여의도진주아파트를 포함한 서울 아파트의 벽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남겼던 스웨덴 사진가 지넷 하글룬드(Jeanette Hagglund)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오롯이 아파트를 관찰자 시점으로 보는 나와달리, 아파트 안의 주인공인 주민들의 삶에 주목한 영화와 잡지가 있다. 영화 ‘집의 시간들’은 입주민 시점으로 아파트의 삶을 다룬다.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 주민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에게 아파트에서의 시간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비온 다음 날 안개가 낀 오솔길, 정전을 알리는 오래된 등,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베란다에 비치는 햇살, 날마다 들리는 새소리와 계절마다 달라지는 우거진 숲의 풍경.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장면과 추억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다시 이런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대답이었다. 도시에서 보기 드문 우거진 숲이 만드는 녹지 공간의 매력과 오랫동안 같은 터전에 자리 잡고교류했던 이들과 함께했던 순간은 그곳의 삶을 지탱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실제로 오래된 아파트 특성상 잦은 단수와 정전, 녹물 등 크고 작은 불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다른 하나는 한 대형 건설사의 웹매거진 ‘비욘드아파트먼트’다. 학군, 역세권, 공세권, 수세권 등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막연한 용어 대신 담백하게 해당 아파트 입주민의 일상을 인터뷰로 보여준다. 조깅은 어디로 가고, 단지의 영화관은 어떤지, 창밖의 소나무 정원을 보는 낙에 산다는 등 돈으로 환산되는 아파트의 경제적 가치보다 일상 속 아파트의 모습에서 생활의 가치가 읽힌다. 아울러 건축가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설계 철학이나 지향했던가치, 완성되기 전까지 했던 고민의 과정을 보여주고 아파트 베이 변천사처럼 누구나 궁금해 하는 지식을 알려준다. 두 가지 콘텐츠에서 입주민이 공통적으로 꼽은좋은 순간은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다. 물론 휴게공간, 주민 간의 유대, 편리한 공간 구조 등과 같은장점을 꼽는 이도 있었지만, 대개는 자연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만들어내는 장면을 최고의 순간으로꼽았다. 매일 조깅하는 산책로, 비 온 다음 날의 안개 낀 오솔길, 창밖의 소나무와 같이 일상에 깃든초록의 자연이 선사하는 장면이 그들의 삶에서 오래 기억되고 있었다. 최근 아파트 조경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실무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제주도에서 어렵게공수해 온 팽나무로 만든 숲에 애정이 깊다며, 지금보다 내일을 더 기다린다고 했다. 먼 훗날 지금보다 더 울창해진 팽나무 숲을 거닐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한 주 한 주 심었다는 그의 선한표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경치를 만든다는 뜻을 가진 조경의 본질은 인간의 가장 가까운 반경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만드는일 아닐까. 그 역할을 제대로 된 아파트 조경이 해낸다면 어떨까. 부의 증식이라고 여겨지는 아파트가 미의 증식이 되는 것은 너무 헛된 바람일까.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광장은 다수의 군중을 위해 존재하지만, 외로운 도시 산책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어른 말 들어서 나쁠 것 하나 없다. 뒤이어 쏟아질잔소리를 예고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이만한 진리가 없다. 날 위한 조언을 귀찮은 간섭으로 받아들였다가 낭패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요새는 선크림을 꼭 챙겨 바르라는 엄마의 말을 대충 넘겨들었던 걸 실컷 후회하고 있다. 쉽게 푸석푸석해지는피부를 보며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고, 성가시다고 눈길도 주지 않던양산 좌판 앞에서 서성거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열심히 온몸을 꽁꽁 감싸도 뙤약볕의 위력을 피할 수없는 곳이 있다. 열기를 흡수해 신발 밑창에 쩍쩍달라붙는 아스팔트, 녹음을 찾아볼 수 없는 회색공간, 햇빛을 그대로 반사하는 석재 포장,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도로의 열기를 밖으로 방출하지 못하는 도시의 섬. 이 모든 조건이 교차하는 지점에광화문광장이 있다. 그리스의 아고라, 로마의 포럼에서 출발한 광장은 고대 민주 사회의 기틀을 만든 공간이다. 중세에는 종교 행사를 열고 권력가의 힘을 내뿜는 공간으로 쓰였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상업 시설이들어서기 마련이고, 유럽의 도시는 자연스럽게 광장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아직 유럽 땅 끄트머리도밟아보지 못한 내게 광장은 미디어가 만든 낭만적필터가 덧씌워진 곳이다. 분수대와 그 주변을 평화롭게 거니는 작은 새, 사이사이에서 제각각의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 각기 다른 모양이지만 하나의결로 읽히는 차양을 단 카페와 레스토랑. 내부에는사람이 있고, 둘레에는 그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줄 콘텐츠들이 가득했다. 친구들의 SNS를 보면 유럽 여행은 광장을 가로질러 광장으로 향하는 일처럼 읽혔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비롯한 모든 핫플레이스로 이어지는 여정에 으레 광장이 있었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좀 다르다. 크기나 형태에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광장이 놓인 도시의 맥락이상이하다는 말이다. 유럽의 광장이 높지 않은 건축물이 내려준 적절한 그늘에서 바투 붙은 각종 상점에 오가는 사람과 소통한다면, 광화문광장은 높은 빌딩을 성벽처럼 두른 거대한 도로 한복판에서사방을 달리는 차량이 뿜는 열기, 매연, 소음과 다투고 있다. 그 혼잡함을 뚫고 6차선 도로를 기꺼이 건너기에 이순신과 세종대왕의 동상, 작은 잔디밭이 충분히 매력적인지는 늘 논쟁의 대상이 된다.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편의와 콘텐츠를 제공하지못하고, 정치 집회나 시위가 일어날 때만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광화문광장을 향한 지적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달 새롭게 태어난 광화문광장은 장소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확장되어 조성됐다. 넉넉하게 마련된 녹지는 사람들을끌어들이겠다는 듯 맞닿은 건물과 골목으로부터뻗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바닥분수에서 실컷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은 도시공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한결 활기차진 광장을 보니 즐거운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이곳이 짊어진 부담감이느껴져 안타깝기도 했다. 넓게 비운 터는 무엇이든담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곳이지만, 항상 모든것을 담고 있어야 하는 곳은 아니다. “광장의 공간감은 의외로 모든 활동들이 소거된 ‘빈 광장’일 때잘 드러난다. 나무의 아름다움도 모든 잎이 다 지고 난 겨울 나목裸木일 때 더욱 운치 있게 보이는 것처럼, 광장이라는 공간 또한 떠들썩한 행위들이 모조리 사라진 그때가 아름답다. …… 아무도 없는이른 새벽에 빈 광장을 홀로 걷는 일은 즐겁다. 광장은 다수의 군중을 위해 존재하지만, 외로운 도시산책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어쩌면 도시에 더 많은광장이 필요한 이유다.”1 길과 마당의 문화를 곁에 두고 자란 우리는 아직광장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충분히 영글지 못한문화를 바탕으로 모두의 요구를 담은 완벽한 광장을 만들 수 있을까. 계속해서 옮겨지고 뜯겨진 광장이 이번에는 오래 살아남아 새로운 시대의 다양성을 담는 실험 장소가 되고, 그 과정에서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새로운 광장이 발굴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광화문광장도 이곳에서만 펼칠 수 있는행위에 충실할 수 있을 테니까. 광화문광장 산책을 계획하고 있다면 나서기 전 『환경과조경』 2017년 3월호 ‘광장의 재발견’ 특집을 훑어보기를 권한다. 광장 한복판에서 일독하고 싶다면 나무 그늘과조각보 문양의 바닥 패턴을 즐길 수 있는 열린마당을 추천한다. 각주 1.박승진, “아고라포비아”, 『환경과조경』 2017년 3월호,p.19.
  • [PRODUCT] 야외용 필라테스 운동 기구 BA시리즈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야외용 운동 기구
    필라테스가 유연성과 근력을 기를 수 있고, 몸의 교정과 재활에 효과가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큰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적으로 필라테스를 실내에서 하는 운동으로 생각하지만 적절한 기구만 있다면 야외에서도 즐길 수 있다. 디자인그룹 그린나래의 BA시리즈는 기존 야외용 운동 기구와 다른 특징을 갖는 야외용 필라테스 기구다. 기존 운동 기구는 기구에 의지하기보다는 본인의 근력과 몸의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할 때 신체를 강화시킬 수 있다. BA시리즈는 기구에 지지해 신체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몸의 균형을 잡아줄수 있게 돕는다. 또한 다양한 지형 위에 설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연령대의 폭이 넓다는 점이 장점이다. 레더 체결 구조를 통해 공간을 활용한 자유로운 배치가 가능하고, 모듈이 다양해 지형에 맞추어 20종 이상의 기구를 설치할 수 있다. 5~60kg 가량의 미세한 무게 조절로 실내용 헬스 기구처럼 체계적인 운동이 가능해 모든 나이대가 함께 즐길 수 있다. BA-PL01 전신 이완 운동 기구는 필라테스 실내 기구 중 하나인 레더 바렐을 야외에서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됐다. 레더 바렐은 몸의 유연성을 늘려주는 기구로서 필라테스의 바렐 동작 시 이용한다.레더 바렐과 마찬가지로 이 제품은 둥근 부분을 이용해 척추에서 코어까지 바른 자세를 만들어주는데 도움을 준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중심으로 동작을 할 수 있어 부상 방지는 물론 재활 필라테스기구로 활용할 수 있다. TEL. 031-721-5311 WEB. gnare.co.kr
    • / 그린나래
  • [COMPANY] 자인 SNS를 통해 대중적 브랜드를 꿈꾸다
    조경 시설물 업체 ‘자인(ZAIN)’이 최근 발표한 홍보 동영상에는 조경 시설물이 없다. 산과 들, 바다, 광활한 초원과 따스한 햇살 뒤에 로고 ‘ZAIN’이 등장하며 끝난다. 멋지긴 한데 조경 시설물 홍보 영상이 맞나 싶다. 자인의 자매 브랜드인 놀이 시설물 ‘키젯’의 홍보 영상에도 놀이 시설물은 없다. 귀여운 캐릭터 ‘키젯보이’가 하늘을 날고 곤충을 채집하고 고래와 함께 바닷속을 여행하더니 ‘플레이 위드 아트(PLAY with ART)’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끝을 맺는다. 조경 시설물 시장은 대부분 B2C 거래가 아니라 기업과 기업 간에 거래되는 B2B 시장이다 보니 홍보 대상이 매우 명확하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지 않아서 보통 업체들은 홍보 영상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지금까지 시설물 광고는 잡지 지면이나 인터넷상에 제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치중해 왔는데, 시설물을 뺀 광고 영상이라니 과감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홍보 영상을 제작한 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최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kizet_playground) 등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주현 대표(자인)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트렌드를 담다 박 대표는 최신 트렌드를 홍보 영상에 담아봤다고 말한다. 그가 주목한 최신 트렌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감성이고 다른 하나는 SNS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SNS의 저변이 워낙 확장돼 있다 보니 이를 통해 감성적 교감이 이뤄진다. 카페에 가더라도 그냥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간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멋진 공간의 감성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제품’보다는 ‘공간’을 소비하는 SNS 트렌드에서 착안해 시설물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홍보 영상에서 ‘시설물’보다 ‘캐릭터’에 집중한 것이다. 조경 시설물 업체가 공유한캐릭터와 홍보 영상이 SNS에서 얼마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박 대표는 이번 시도로 SNS에서 적지 않은 반응을 확인했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팔로우가 늘면서 캐릭터의 대중적인 확장성을 확인했고,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도 세우게 됐다. 새로운 홍보가 새로운 사업으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홍보 영상을 유튜브로 공개한 지 얼마 되지않아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많이 접속했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키젯을 통해 유치원이나 가게, 아니면 개인 집 마당에어린이와 부모를 위한 소품과 놀이터를 구상하고 있다.” 자인과 키젯, 숨겨두기 아까운 ‘콘셉트’와 ‘캐릭터’올해 자인의 디자인 콘셉트는 생명체(bio), 사랑(philia), 생각(idea)을 합성한 바이오필리디어(Bio-Philidea)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자연과 인간을 위한 환경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제품 하나하나에 열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키젯은 어린이 놀이 시설물 브랜드답게 탐험가를 꿈꾸는 키젯보이의 판타지 스토리를 콘셉트로 새로운 여행과 모험으로 즐거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모든 디자인은 예술적 영감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아트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자인과 키젯의 창의적인 콘셉트를 아는 고객은 많지 않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무한한 상상력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매년 꽤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지만, 조경 시설물 시장의 특성상 부각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제품보다 브랜드 이미지에 집중한 동영상을 선보인 것은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에 들인 정성이 그냥 사장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점도 한자리하고 있다. “특히 키젯은 자세히 보면 매우 재미있는 로고다. 어린이가 행성을 여행하는 콘셉트로 ‘키즈’와 ‘플라넷’을 합성해 이름을 지었는데, 주인공인 ‘키젯보이’가 기린과 부엉이 등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는 스토리로 매년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놀이를 진행하면서 많은 컬렉션이 생기고 있다.” 조경 시설물 너머 대중적인 브랜드 가능성을 보다지금까지 자인과 키젯은 조경적인 측면에서 B2B 형태의 큰 구조의 놀이 시설물만 구상해왔는데, 조경만이 아닌 어린이 가구, 소품, 놀이, 교구 등 B2C 시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은 사업적으로 의미가 크다. 이러한 확장성을 고민할 수 있었던 데는 SNS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공간과 시간 제약 없이 매일 일기장 같이 쓸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은 소통과 홍보의 공간으로 펼쳐져 있다. 소통의 개념이 바뀐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 박 대표는 “옛날처럼 각본을 읽는 드라마나 예능보다는 오히려 각본 없이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요즘 추세다.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고 하고 자랑하고 싶으면 자랑하고, 굳이 감추지 않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비단 연예인만 실천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기업이 고객들과 소통하는 방식에도 녹아 있다”고 말했다. 사실 자인이라는 이름은 애초부터 인ㆍ아웃도어 분야를 아우르는 대중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 현재는 생활환경 디자인 그룹으로 아웃도어 쪽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인도어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해서 본래의 가치를 완성해 나갈 계획이었다. 이것이 현재 자인과 키젯의 확장성을 고민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다. SNS의 시대, 감성의 시대가 조경 시설물 캐릭터의 확장성과 자인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궁금해진다. 글 박광윤 자료제공 자인(www.dezain.co.kr), 키젯(www.thekizet.com)
    • 박광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