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올해의 조경인 - 정책분야
    강중원 · 한국도로공사 조경부장 연간 시공비만 1천억원에 달하는 한국도로공사 비탈면 녹화공사 시공감독 및 설계변경 업무의 조경직 이관에 기여 국토의 약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지형을 생각해볼 때, 도로 건설에서 발생하는 비탈면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적,물적 자원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전국의 주요 지역들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에는 도로의 규모에 걸맞는 더 넓은 비탈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런 고속도로 비탈면의 안정화 및 훼손된 경관의 복구는 쾌적하고 안전한 고속도로를 위한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그렇지만 한국도로공사에서는 최근까지 이러한 ‘절·성토 비탈면 녹화공사’를 토목공사에 포함하여 시행해왔다. 즉 녹화 공사가 식물을 주 소재로 하는 환경복원 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조경직의 참여는 사실상 배제되고 토목직 감독이 비탈면 녹화 공사의 품질관리를 맡아 왔던 것. 고속도로 건설에서 토목공사는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그런 점에서 녹화 업무는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해, 아무래도 비탈면 녹화업무는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다. 감독이 토목직인 만큼 식물 소재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제대로 된 기술력을 가진 회사보다는 저가수주를 하는 업체가 공사업체로 선정되는 경우도 발생했고, 이런 연유로 품질저하를 초래하고 조경계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그러던 중 지난 2002년 11월 강중원 부장이 부임한 이후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제기하게 되었고, 결국 한국도로공사에서는 올해 6월부터 고속도로 건설 및 개량공사 등으로 발생되는 모든 절,성토 비탈면 녹화공사의 시공감독 및 설계변경 업무를 조경에서 직접 주관하고 참여하도록 했다. 사실 조경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해왔고, 업무 이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여러가지 제약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던 것을 결국 이번에 이루어 낸 것이다. “이번 업무 이관이 저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이전의 선배들이 꾸준히 노력해왔고 또 제 능력은 부족하지만 조경부의 직원들은 물론,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심지어는 토목전공인 시설처장님까지도 조경직에서 담당하면 더 좋은 품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믿고 협조해주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비탈면 녹화에 대한 시공감독 및 설계변경 업무를 조경분야로 이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차차 설계 발주까지 조경에서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 이에 자극 받아 지자체나 타 공사에서 진행하는 비탈면 녹화 업무까지 조경분야에서 담당하게 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사실 이번 업무 이관이 가지는 의의는 단지 비탈면 녹화업무가 조경직으로 이관되었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고속도로 자생수목 활용, 비탈면녹화, 동물 이동통로 조성, 조경공사 등 환경관련 업무를 건설 초기부터 공사 준공 시까지 조경에서 총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시발점이 되었고, 더불어 조경직 인원도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조경직이 감독함에 따라 실력 있는 업체가 제값을 받아가며 시공하게 되므로 비탈면 녹화의 품질도 높아지고 시공사의 이익도 높아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한국도로공사 조경부에서 벌이는 1년 총 사업예산이 2백억 원 정도 되었는데, 비탈면 녹화사업의 시공비만 1천 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그 증가 규모도 상당하다.한국도로공사의 비탈면 녹화업무 개선은 타 기관 및 조경계 전반에도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재 전국에 퍼져있는 15개 한국도로공사 사업소 중 4개 사업소에서 시행 중이며 인력 등이 보급되는 대로 추후 전 사업소로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이번 일을 이뤄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강중원 부장을 많은 독자들이 추천해 주었고,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에서도 만장일치로 강부장을 정책분야 수상자로 선정했다. 영남대 조경학과 1기로 한양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고려대 노동대학원 수료,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조경학 연수를 하기도 한 그는 한국도로공사에는 1982년 입사했다. 노동대학원을 수료했다는 점이 특이한데, 강부장은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노동조합위원장을,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에서는 연맹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 탓인지 첫인상에서 의지와 소신을 갖고 한번 맡은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는 추진력이 엿보였다. 노조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고속도로 요금 징수인원을 도급(외주)으로 전환하는 일을 추진하다가 협박을 받은 일도 있지만 뚝심으로 시행에 옮겼고, 현재는 그때 반대했던 사람들도 모두 잘했다며 칭찬해주기도 한단다.그 외에도 현재 조경부에서는 건교부와 함께 비탈면 녹화에 대한 시공기준 마련을 위한 시방서를 준비 중이고, 도로조경 30년을 맞아 고속도로 조경소재, 조경실무, 비탈면 녹화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담은 기념자료집을 2005년에 발간할 예정으로 준비하고 있다.“조경직에서 비탈면 녹화 감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시공 품질이 과거보다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지금 비탈면 녹화 업무를 확실하게 이관시키고, 앞으로 설계부터 감리까지 모든 업무를 조경에서 담당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특히 전문화를 위해서 비탈면 녹화를 담당하는 조경 시공회사들이 최상의 질로 시공해 주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영남대 조경학과 1기로, 조경학과 졸업생으로서는 최고참으로 일선에서 뛰고 있는 만큼 앞으로 자신의 역할에 따라 업역이 넓어지기고 하고, 좁아질 수도 있으며 또한 후배들이 보고 배운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다는 그는 건축·토목 분야 못지않은 조경분야를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각오다.
  • 일본 도쿄(東京)의 도심 재개발지역
    - 시나가와(品川), 록번기(六本木), 시오도메(汐留) - 이번에 소개하는 장소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재개발지역이다.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일부러 찾아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되기에 소개해 보기로 한다. 2000년 이후 도쿄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도심지의 재개발 형태이다. 과거에는 재개발 대상인 건축물 하나하나에 대해 즉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던 재개발 아니 재건축이 최근에는 여러 건축물과 그것들을 포함하는 공간 전체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바뀌어 진행되게 되었다. 그 결과 공간을 전체적으로 계획하고 다룰 수 있게 된 까닭에, 지금껏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에 생겨나던 자그마한 공간들을 모두 합쳐진 오픈스페이스로 만들거나 또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계획안들이 나타나게 된다. 현재 재개발이 진행 중이거나 이제 막 완성된 시나가와(品川), 록번기(六本木), 시오도메(汐留) 등에서 그러한 성격을 가진 공간들과 만날 수 있었다(모두 도쿄역에서 20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지하철역의 이름이므로, 도대체 어떻게 가면되겠느냐 물을 필요도 없이 역에서 내리면 바로 지금 소개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 도심 속의 공간인 만큼 지하철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지하, 지상 혹은 2층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중심부 혹은 여기저기에 오픈스페이스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그곳에서 각 사방의 건물들로 연결되는 통로가 놓여있다. 각 장소의 성격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형태나 쓰임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아주 편안하게 효과적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던 시나가와를 중심으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역에서 이어지는 보행로는 재개발지구의 2층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맞은편 건물들과는 구름다리와 지상부, 그리고 지하부로 연결되어 있으며 보행자가 어디에 서있느냐에 따라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이 달라진다. 필자 이외에도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온 듯한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만큼 느낌이 좋은 공간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지나치게 꾸며지지도 아쉬움이 남는 부족함이 느껴지지도 않는 공간이었으며, 장소에 따라 보행공간이 되기도 근린공원이 되기도 야외카페에 앉아있는 것 같기도 때로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해 광장에 서있는 느낌을 주는 변화가 느껴지는 장소였다. 최첨단의 인공구조물과 작은 바람에도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어떻게 하면 잘 조화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는 장소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디자인 강의시간에 책에서 그림으로만 보았던 형태들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되고 쓰여지고 있는지에 대한 실제가, 디자인 모티브와 형태들이 단계적으로 변화되며 조화되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시나가와에서는 인공과 잘 어울리는 자연을 찾을 수 있다. 건축물들 사이에 공간을 마련하고 자연을 가져다놓은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던 자연 공간 속에 비슷한 모습과 색깔을 가진 건축물들을 잠시 가져다 놓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편안한 장소이다. 도심재개발이라는 동일한 목적으로 고도의 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세련되고 거대한 고층건물들 사이에 만들어진 공간의 분위기는 시오도메, 록번기, 시나가와에서 서로, 아주 많이 달랐다. 록번기, 시오도메에서는 딱딱한 공간 속에 푸르름이 드는 자연을 아주 열심히 노력하여 형태를 다듬어 집어넣은 듯한 계획가의 땀과 노력이 보이는 곳이다.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시나가와에 놓여져 있는 녹색공간에서는 자연의 형태도 계획가의 고뇌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녹색물감을 물속에 떨어뜨린 것처럼 흔적도 없이 스며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인위적으로 자연을 단지 배치하는 것, 기교를 부려가며 무리하게 채워넣는 것만으로는 자연스러움이 우러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좋은 예라 생각한다. 아울러 도시인들에게 진짜 자연을 쉽고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장소가 도심재개발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즐거움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아주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지는 편안한 공간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공간을 둘러싸고 있던 높은 건축물들의 형태는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10년 혹은 20년 후에 더 편안하고 성숙된 자연이 자리하기를 기대해본다. 배현미 Bae, Hyun Mi · 목포대학교 건축조경토목공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용산미군기지 ; 산 미군기지 활용방안 및 교통처리 방향
    199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용산내 군기지에 대한 추상적 논의는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이전의 불가피성을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용산기지에 대한 논의는 이전 가능성이 충분히 진척되지 않은 단계에서 서울의 공간구조상에서 하나의 제외되고 소외된 공간으로 설정하고, 뚜렷한 대안 제시 없이 심정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이념적 정향에로 수렴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제 용산내 군기지의 반환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낳은 부산물이 아닌 우리가 그리던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지금의 용산기지 반환은 이 기지의 사회적, 도시적 의미와 비중이 그 만큼 커지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활용방안에 대한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즉 이것은 서울의 ‘환경의 질 개선’이라는 문제와 직결되는 중요한 전략적인 문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글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미군 용산기지에 관련된 도시적 쟁점을 도출해 내고, 미군의 전후 용산기지의 활용방안과 교통체계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서울시의 도시개발과 도시정책을 볼 때 용산 미군기지가 1980년대에 우리에게 반환되었다면 아마 아파트위주의 지구가 되었을 것이고, 1990년대에 반환되었다면 아마 아파트와 공원이 반반씩 섞여진 지구가 되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용산내 군기지가 우리에서 돌아오게 되니까 비로소 ‘공원화’라는 활용방안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도시를 보는 시민의 의식이 그만큼 높아졌고, 시민들이 삶의 질을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가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용산내 군기지의 활용방안의 본질은 어떻게 개발하겠다는 발상보다 어떤 방안이 서울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고 복지를 가져올 것인가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20년간의 도시개발을 철저하게 강남중심의 개발이었다. 그 결과 강남부동산으로 인해 돈을 번 부동산재벌과 자본가들 그리고 그 자본축적에 기생하고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서울시내의 복지는 소외되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강남에 버금가는 강북을 만들 때 지역간 불평등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환경의 질이 높아지면 그 지역은 그만큼 경쟁력을 지닌다. 그래서 용산기지가 공원으로 변모한다면 강북전체의 환경친화적 개발에 커다란 기여를 하리라고 본다.용산 미군기지의 활용방안에 대한 방향을 잡기위해서는 용산을 둘러싼 서울시의 도시정책의 역사를 살펴 보아야 한다. 서울시 이원종 시장 시절인 1994년 9월 서울시는 한강을 중심으로 한 5대 전략거점,(상암, 화곡, 여의도, 용산, 뚝섬)을 발표한다. 이 5대전략거점에 용산이 포함되어 이때 이미 용산개발계획의 단추가 끼워졌다고 할 수 있다. 1995년 조순시장이 취임하면서 대규모 개발계획은 억제되었으나 ‘용산지구부도심개발’은 꾸준히 추진되었다. 용산이 부도심으로 등장한 배경에는 경부고속 철도 중앙역사라는 서울의 관문역이라는 상징성을 한몫을 했다. 여기에다 영종도 신공항 철도의 시발역이란 호재도 끼어들었다. 아울러 용산가족공원의 중앙박물관도 역시 용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2002년 서울시에서는 구체적인 용산계획을 발표한다. 이 계획의 특징은 ‘3핵 2매듭’의 개념 속에 용산의 지구별 특별설계단지를 지정했다는 점이다. 3핵지역(서울역, 삼각지 용산역)에는 부도심화를 주도할 상업, 업무기능을 배치하고, 2매듭지역(남영동, 용산동2가)에는 주거, 판매등 배후지원 기능을 맡겨 기능을 이분화하였다. 특히 용산역을 중심으로 철도 정비창을 포함한 개발계획에는 용산역이 갖는 관문성을 중시해 대단위 업무단지를 조성해 국제적 업무기능을 유치한다는 구상이다. 용산 역에는 여의도와 명동을 잇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한편 서울을 상징할 높이 350m(100~110층)의 초고층 빌딩을 짓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서울시는 용산1지역 4개, 용산 2지역 11개등 15개 특별설계단지를 지정해 핵심지역으로 개발할 계획이다.우선 도시 철도측면에서 보자. 지하철 4호선은 용산 대로기지 때문에 심한 굴곡노선이 되었다. 서울역에서 동작대교를 거쳐 과천으로 이어지는 4호선이 서울역에서 동작대교까지 직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용산내 군기지 때문이었다. 미군 당국은 군사적기밀 시설이 포진되어 있는 미군기지의 지하를 지하철 노선 건설을 위해 선뜻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용산 기지를 피해 우회해야만 하는 4호선은 서울역에서 삼각지와 한강로를 거쳐서 이촌으로 심하게 굽은 굴곡노선이 되었다. 이 잘못된 노선으로 인하여 승객들의 지하철 통행시간이 늘어나게 되어 시민들만 골탕을 먹는 상태가 벌어져 온 것이다.용산 지구의 개발계획 청사진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우선 용산역 철도청 비창이 5~6년 후에 이전 되면 21만평의 부지 환경의 쾌적성과 업무의 편리성을 제공하는 대단위 국제 업무단지가 조성한다고 한다. 이곳 건물에 용적률 300~800%를 적용하여 건물 군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개략적으로 따져 보자 이 정도 규모의 개발계획이면 첨두시 시간당 최소 약 4,000~5,000대의 교통량이 유발된다. 이 경우 필요한 일 방향 추가도로의 차로 수는 최소 4차로이다. 2004년도 고속철도 개통에 따라 중앙역사로 가능하고, 신 공항 출발역사, 경의선 복복선화의 시발역으로서 민자개발에 의한 대대적 역사기능 보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철도청이 추진하여 민간 개발사업자에게 민자역사 건설을 맡길 경우 유동인구 증가에 따라 엄청난 교통량이 유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용산역 주변을 재개발하되, 용적율 300% 적용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시킨다고 한다. 서울역과 영등포역의 민자 역사개발 경험으로 볼 때 용산 역의 경우 민자역개발지 추가 차로는 일 방향 최소 2차로가 된다. 그 밖의 국제빌딩주변지구, 세계일보사지구, 태평양부지지구, 용산 공원 남측지구에 용적률 500%~800%의 건물 군이 들어선다면 엄청난 숫자의 추가 차로가 건설되어야 함은 불을 보듯 뻔하게 예측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그렇다면 국제업무단지, 용산 역 민자역사, 지구별 재개발계획이 붓물처럼 터지게 될 때 도로 인프라를 추가적으로 건설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기존의 8차로인 한강로의 도로용량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용산 역 주변 등 이면도로 역시 아침저녁으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용산 지역의 도로교통체계상 도로의 확폭이나 추가도로의 건설을 할만한 도로나 공간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강남에서 용산구 동부이촌동을 연결하는 동작대교(왕복6차선)는 1984년 12월 완공당시 용산내 군기지에 막혀 더 이상 도심부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동작대교는 기본설계 단계에서 도심으로 연결하는 도로계획을 수립했으나, 미군기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다리 북단인 후암동 용산중고등학교앞 사거리까지 2700m(폭200m)의 도로계획선만 그어놓고 다리북단 출구는 서빙고로에 연결시켰다. 이로써 동작대교 연결도로는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지 못하고 용산기지 남단까지만 연결되는 절름발이 도로가 되고 말았다.그러면 용산기지의 공원화후 이 도로를 동작대교 북단에서 도심으로 연결해야 하나? 만약 이 도로를 도심까지 연결한다면 한강 남쪽의 새로운 교통량이 도심으로 밀려들어와 용산고등학교앞과 후암동길의 꼬리를 문 차량행열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용산기지내에 도로가 신설되면 도로가 문화재로 등장할 국립박물관 부지를 치고 나갈 뿐 아니라 심한 녹지 훼손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이러한 장래의 흉한 용산공원의 모습이 서울시내들이 원하는 모습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용산기지가 공원이 되고난 후에도 동작대교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놔둘 수밖에 없다.용산 기지가 공원이 되면 용산역 주변개발의 효과는 용산역 주변에 그치게 된다. 왜냐하면 100만여평의 용산지역이 공원이 되므로 용산역과 주변개발은 「반쪽개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용산이 부도심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역부족일수 있다. 용산기지는 반드시 공원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그래서 용산은 대형공원이 배후에 있는 부도심으로서 자리 매김해야 한다. 이 경우 용산은 한강로 주변, 용산기지관측, 이태원 축으로 국지적인 개발계획을 수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용산역 주변의 야심에 찬 매머드 업무, 상업시설의 개발계획이 과연 실현성이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이런 장미꽃 청사진은 빛이 바랠 가능성이 많다. 한마디로 도로인프라 확충가능성이 희박하고, 거대한 용산공원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용산역주변의 고밀도 개발계획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지금까지 살펴본 활용방안과 교통체계는 ‘용산기지’자체에 대한 관심사 이상으로 서울시 공간구조와 삶의 질에 대한 총체적인 전망, 계획, 경로, 수단 등의 문제가 결부된 것이다. 환경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는 용산기지를 올바르게 견인해서 활용치 못하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결과 밖에는 초래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제 분명하고, 귀중한 도시개발사적인 경험이 되었다. 이글은 용산 미국기지 이전의 산물인 용산기지 활용방안과 이에 따른 교통대책을 개괄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용산기지의 공원화에 대한 논의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제한된 의도를 가진 것이었음을 밝힌다. 원 제 무 Won, Jeimu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
  • 좌담 ; 조경산학대전이 남긴 것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젊은 조경가, 당신은 희망입니다
    비개인 후, 강 건너 북한산을 바라보며차창 밖으로 반짝이는 햇살을 봅니다. 며칠 전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햇살 볼 틈도 없었나 봅니다. 비개인 후의 하늘은 청명하고 그 하늘 자락 끝, 저 멀리 북한산도 가깝게 보입니다. 평소에는 연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북한산이 한 눈에 잡힐 듯 보이는 비개인 하늘을 보며 글을 씁니다.어쩌면 곁에 늘 존재하는데도 연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북한산의 모습이 조경설계를 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사실 설계란 작업은 비개인 후 문뜩 보여지는 북한산만큼이나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그래도 그 흐린 날 속에서 빛을 내는 잠깐을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고생하는 이런 모습들은, 그 희열(?)감에 앞서 어쩌면 바보스러운 선택이 아닌지 모릅니다. 조경학과를 다니면서의 미래에 대한 염려나 갈등은 조경설계를 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계속되고 소위 소장이라는 이름의 대표자가 된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강약이 다르고 내용의 정도만 다를 뿐. 조화로운 삶보다 특별한 것을 위해그러한 갈등 속에서도 조경설계를 계속해온 이유, 그리고 계속하는 이유는 거창한 내용도 아닌 조금은 우직하고 소박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처음 조경을 시작할 단계의 업계 상황은 지금보다도 열악하여 조경설계란 식재설계가 전부인 것처럼 오식되어 소위 뺑뺑이 그리기를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의 거창한 미사여구와 치장과는 달리...그래서 오기가 생겼었습니다. ‘조경의 본때를 보여주자’ 라고.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터를 닦아 놓고 밑바탕이 되게 하리라고...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땐 작은 소망도 하나 더 있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도심지에 조그만 땅이라도 사서 멋들어지게 설계하고 멋들어지게 시공하여 조경가의 손으로 만든 작은 공원을 기증하여 조경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용하게 하는 그런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것들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바다가 거기 있어서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는 시공 위주의 회사였고, 설계실이라는 이름속의 설계쟁이는 많은 생각을 담아 표현해내고, 멋이라는 것과 씨름을 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습니다.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도 싫고 그런 풍토에 안주하려는 모습도 싫어 이런저런 것을 핑계 삼아 편하고 인정받을 만한 곳을 과감히 떠나기로 했습니다.주머니 돈을 탈탈 털어 사무실을 차린 곳은 부산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왜 사무실을 부산에 차렸느냐고. 내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바다가 거기에 있어서...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지만 그것이 사실이었고 그 외엔 별다름이 없었습니다.아무런 연고가 없었지만 부산의 생활은 멋보다는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일의 재미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오기로 시작한 도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오너의 무지에 대한 설득, 토목 전문가나 건축가와의 싸움(?), 공무원과의 한판(?), 직원들에게는 그들과의 싸움에서 절대 지지 말라고 호통도 치고 격려도 하고, 그 속에서 그래도 재미를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어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설계사무소 대표로 살아가기새삼스럽게 설계사무소를 내고 엔지니어링 협회에 등록하고 직원들과 토론하고 일을 하며 일과 연관된 사람들과 만나며 살아가기.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기분이 좋기 마련이지만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혼자서 판단해야 하고, 모두가 퇴근한 후 홀로 앉아 구상을 하기도 하고, 다 못한 일을 집에 가서 마져 하려고(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 도면을 둘둘 말아 들고 가기도 하고, 이번일 끝나면 어디 여행이나 가야지 하는 생각이 일에 치여 매번 밀리고.... 그리고 이러한 싫은 일들도 있고... 싫은 일 힘들게 하는 상황·이렇게 그려주십시오 하는 건축가의 주문·옥외 공간에 공간 이름 작명을 요구하는 주문·무슨 설계비가 그리 비싸냐며 경비도 안 되는 설계비 주는 이들·도면 납품 후 코딱지만한 설계비 반쯤 깍자는 이들·지난번 설계비 지금 줄테니 급히 도면 그려달라는 이들·저 이번달까지만 일하겠습니다 라는 젊은 조경가(?)·다시 일 할테니 월급 올려달라는 협상·다시는 조경안하겠다며 홀연히 떠나 숨어 살 듯 다시 조경하는 젊은 조경가(?)·이 회사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배우겠다고 하며 꼭 뽑아달라고 하더니 1년쯤 후 그냥 그렇게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는 이들·건축설계나 토목설계가들이 무진장 월급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매월 한차례 모여 자기 사장 소장 헐뜯고 욕하는 이상한 젊은 모임·자기 자신의 실력 향상을 위해 절대 투자를 안 하는 이·할일이 많은데 어쩔 수 없이 의뢰받은 일을 직원들에게 작업 설명하기·평소에 바쁘다고 전화조차 못한 채 지내다가 심의 교수명단 보고 찾아가야 할 때 그렇지만 묵묵히 자기일하고 밤일하며 힘들어도 내색 안하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입니다. 격주휴무하자 해놓고 그것을 빼앗는 내 자신이 밉습니다.모든 분야에서 나름대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조경설계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조경일을 미워하기보다 사랑했고 힘들어하기보다 재미있어했고 벽을 만나면 피하지 않고 벽을 넘어보거나 뚫어 버리고자하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언제나 자리를 펴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스스로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경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보다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비오는 날의 풍경어느 날 작업 중인 프로젝트의 디테일 때문에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쉘터의 낙수물을 조절하는 레인체인과 배수구의 디자인이 필요했습니다. 레인체인(Rain Chain)은 낙수물이 물홈통 대신 낙수구에 걸어놓은 사슬을 말합니다. 물홈통을 따라 흘러내린 물은 보이지 않지만 의뢰인은 비오는 날 처마를 따라 흐르는 물이 눈에 보여지는 풍경을 원했습니다. 보통은 쇠사슬을 매달아 물 흐름을 유도하는데 기존의 레인체인은 그에 장식성을 더해 물이 흐르지 않는 경우에도 경관성이 있게 보여지는 제품이 몇 개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품 자체가 무겁고 물 흐름에 대한 저항이 커서 주변으로 물이 튀어나가는 문제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 흐름과 경관성을 고려하여 심플한 형태를 선택하고 시제품보다 굵기를 더해 심플한 형태로 제작 의뢰한 후 레인 체인과 바닥이 만나는 퇴수구의 디테일을 매만져야 했습니다.레인체인에 연결되는 경우 퇴수구 위에 작은 자갈을 깔거나 트렌치에 직접 연결하거나 또는 물확을 놓아 물고임이 있게 하는 방법이 있지만 의뢰인의 대상지는 화강석으로 포장된 자리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임공간이기 때문에 돌출된 물확의 설정은 어렵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마련된 일은 화강석 통돌에 퇴수구에 맞는 구멍을 뚫어내고 포장면과 일체화 된 놀이로 양각한 연꽃잎을 새겨 넣기로 했습니다. 마침 의뢰인의 정원엔 고풍스런 석등 몇 개가 있었고 그 형태는 교묘한 이중성으로 존재하였습니다. 비오는 날 레인체인을 타고 흐르는 낙수물이 연꽃잎을 따라 타고 흘러 들어가는 퇴수구의 모습은 비가 오지 않아도 비오는 날이면 더 궁금해지는 비오는 날의 풍경이 될 수 있습니다.조경 디자인을 하면서 커다란 흐름은 엮어나가고 이어나가 그림을 그려나가지만 그 속에서 살아갈 우리들의 눈높이나 발끝 앞의 풍경은 소홀한 것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커다란 흐름도 중요하지만 작은 디테일도 소중히 여기는 습관과 여러번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 듯 싶습니다.내 앞마당, 길거리 광장 안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의 존재도 소중하지만 보도블럭 틈 그늘진 곳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개미자리의 흰풀꽃을 소중히 여길 줄도 알아야겠지요. 보도블럭 틈새에서 자라고 있는 ‘개미자리’의 아주 작은 흰꽃이나 무성한 풀섶 속에 보랏빛 웃음을 감추고 있는 깨알보다 작은 꽃을 피우는 ‘꽃마리’를 보신 적은 있나요. 한겨울, 봄을 기다리는 한 알의 씨앗을 생각하며얼마 전 어느 학생에게 그의 미래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고프다고 대답했습니다. 조경설계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갖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지금 힘들더라도 그래도 참고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진정한 스페셜리스트가 되라고 하고 싶습니다. 먼 훗날 가서 다른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다음세대, 조경을 사랑하는 세대에 작은 밑거름이 되었다는 자긍심을 느껴 보십시요.많은 날 연무에 끼여 보이지 않던 북한산이 비갠 후 눈에 확 들어오듯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자태를 드러낸 북한산을 보듯, 어쩌다 그런 날이 있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날들의 희열을 느끼는 그런 세상을 기대하며...우리들의 앞날은 당신들이 희망입니다. 김정수 Kim, Jeong Su(주)환경디자인 아르떼 대표 디자이너
  • 어렵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습니다
    "어렵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다."큰 조직에 있다가 다소 늦게 독립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겼다. 어떤 분은 "몇년 더 한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하고, 어떤 분은 "인생 내리막길에 웬 대형사고냐?"고 농을 던지기도 하셨지만, 나이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중에 하나일 뿐이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나이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또 여성이라는 것도 역시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중에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내가 설계사무실을 시작한 것은 내 잠재의식 속에 있는 일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꿈을 찾고 싶어서이다. 아직 꿈은 찾지 못하였지만 언젠가는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 동안 너무 안주하며 살아 온 내 삶에 대해 더 이상 늦기 전에 전환점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시작하였고, 아직은 초기라 어려운 일이 많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다. "인생은 운칠기삼" - 조경을 시작하게 된 계기근래 여성들은 많은 교육을 받아 자식들에게 조언을 넘어 자식의 전공선택, 직업, 결혼 등 인생 방향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내 어머니께서는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하셨고, 사회경험도 없는 전형적인 주부였다.아버지 역시 자식들에게 어떤 일을 조언할 만큼 식견은 없었고, 법대를 가면 법관이, 상대를 가면 대기업의 (지금으로 말하면) GEO, 공대를 가면 최소한 밥벌이는 할 수 있다는 보편적 사고를 지닌 분이셨으며, 자식들에게 무엇을 강요할 만큼 강한 성품을 지닌 분은 아니셨다.더욱이 딸인 나에게는 별다른 기대를 안 했던 분이다. 그저 한 집안이 잘 되려면 아들, 그것도 장남이 잘되어야 한다는 그 시대의 평범한 사고를 가진 보통 부모님이었다. 그래서 나의 전공 선택 과정은 매우 자유로웠다.대학과 학과 선택은 나 혼자의 몫이었는데, 처음에 조경을 선택한 것은 개인적으로 미술에 흥미가 있어서 였다. 조경학을 하면 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잘 모르고 선택하긴 했지만 비교적 내게 잘 맞는 것을 보면 시작부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 설계가의 꿈오랫동안 일을 해오면서 구조적인 문제, 예산의 문제로 인해 내 의지대로 일을 해 나갈 수 가 없었던 경우가 매우 많았다. 조경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없었던 시기에는 발주자도 조경에 대해 잘 모는 경우가 많아서, 매우 어설프긴 했지만 내 의도대로 설계를 한다는 것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는 경험과 철학이 부재하여 부끄러운 설계만 한 듯 하다.지금은 발주자, 관련자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하니, 어떤 경우에는 초기 의도와 달리 정체성도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마무리 지어지기도 하여 허탈감, 자괴감 등으로 마음이 얼룩지고 아쉬움만 남게된다. 설계자, 발주자, 시공업자 모두가 자그마한 일이라도 혼연일체가 되어 마치 자식을 키우듯 정성을 다하는 팀웍으로 일을 하였으면 한다. 일의 규모를 따지기 전에 의미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과 일을 했으면 하지만 아직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다.그러나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힘들었던 시간이 곧 즐거운 시간“-즐거웠던 시간일을 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이다. 그 때는 마스터플랜을 잡는데도 조경하는 사람들이 배제된 시기였다.현상공모가 늘 그러하듯 마지막 며칠 동안은 조막손도 아쉬운 때인데, 마침 내가 조막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밤새며 즐겁게 일을 하고 새벽 5시에 사무실을 나오는데,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정경 - 약간 청회색의 하늘과 실루엣으로 보이는 건물들, 신선한 공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환경미화원들의 분주한 움직임. - 에 대한 기억은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요즘도 가끔 새벽녘에 귀가할 때면 20년전 하고는 많이 변한 환경이지만 그 때의 감동이 다시 잔잔한 내 가슴속에 퍼지는 듯 하다.힘들었던 시간은 곧 즐거운 시간과 연결된다. 마치 바람이 많이 들어간 공이 탄력을 받듯 어려움이 클수록 그 어려움을 극복하였을 때의 즐거움은 더 크다. "사람과의 관계" - 힘들었던 시간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며 풀어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사람문제로 일을 겪으면 한 동안 의기소침하여 위축도 되고 가슴도 아프지만 난 오늘도 일을 하고 있다.조경설계는 시공결과가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말이란 설계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도면은 구체적인 실행을 위한 수단이다. 설계자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한다.우리의 환경은 지금 우리 시대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환경에 적합한 설계 및 시공이 되어야 한다. 국민소득은 10만불도 안되는 사회에서 국민소득 2, 3만불 되는 사회 환경을 생각하면 안 된다. 또한 우리 국민들이 공공공간을 대하는 의식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국토, 우리 국민들의 정서, 우리들의 경제력, 공공공간이라는 특성상의 행정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국의 좋은 것이 우리에게도 좋다는 등식은 맞지 않을 것이다.이런 모든 상황 - 예산, 시공성, 공간 이용자의 권리, 행정력 등 - 을 고려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만을 담는 단순함을 지향했고 그렇게 설계했다. 그러나 이를 보고 설계자질 운운하며 매도할 때는 정말 맥이 빠지고 힘들었다. "긍지를 갖자. 그리고 심지 깊고 긴 안목으로..." - 조경인이 품었으면 하는 꿈들장안평 골동품상가에 가보면 같은 반다지도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반다지는 당대의 유명한 장인이 좋은 자재로 제작해 수 천만원을 호가하고 어떤 것은 이름 없는 목수가 흔한 송판으로 제작해 불과 몇 십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당대의 장인만이 역사의 주인공인가? 난 송판으로 만든 반다지에서 따뜻한 삶의 숨결을 느낀다.모두 최고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이 일은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인데 우리 모두 긍지를 가지고 일하자. 같은 어린이놀이터라도 입지가 다르고, 이용자가 다르다.심지어 인접부지에 있는 같은 성격의 공간을 설계한다 해도 시점이 다르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직업은 얼마나 신나는 직업인가?대학에서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능력, 급여, 여타 이유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렇게 글이라도 쓰게 된 것은 우직하게 이 일을 오래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경업계가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시장규모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독립된 영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면서 발생된 것이 인력문제이다. 특히 IMF때 기술자를 육성하지 않아 현재는 경력자가 부족한 것 같다. 나 역시 경력자 한 사람이 5개월만에 그만두면서 회사 설립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3∼5년 후면 인력문제는 지금보다는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현재의 자그마한 이익에 신경 쓰지 말고 좀 크게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인생에서도 설계에서도...... "여성이기 전에 직장인" - 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일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일이라기 보다는 재미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싶다.일을 시작한지 2년쯤 되었을 때니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이다. 국민관광지 프로젝트를 할 때였다. 하루는 출근을 하니 P. M이 공무원과 예산검토를 위해 지방을 가야한다고 해서 급하게 출장을 갔다. 당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돌아올 생각은 않고 저녁 무렵에야 비로소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관방 하나를 빌렸는데, 신입과 다름없었기에 말도 못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남자 십 여명에 여자는 혼자서 "혼숙"을 한 셈이다.여러가지로 불편하여 앉아서 밤을 새우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어깨가 짓눌리는 것 같아 일어나니 한 사람이 다리 한 쪽을 내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이 상의는 벗고 팬티만 입고 자는 것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여기저기서 밤새 일을 하다 엉켜서 자는 것을 보곤 웃음이 나왔다.아마도 그 분은 나를 여자로 보기 전에 같이 일을 하는 동료로 생각해 주었던 것 같고, 그런 경험도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인생은 혼자서 헤쳐 가는 것“-여성소장으로서의 어려움여성소장으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라고 하면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성만이 공유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양성평등이 대부분 보장되어 있으나 사회나 가정에서의 의식은 여성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고 있어서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그 중에서도 육아문제는 육체적인 문제를 넘어 정신적으로 번민하게 할 때가 많다.설계업계에서 질 높은 여성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육아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여성들에게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그러나 조경을 하는 여성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무엇을 급하게 바꾸려하지 말자고. 1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고 10년 후면 또 변할 것이니까 조급하게도 느긋하게도 생각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며 살자고.남자들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마시고 헛소리도 해가면서 푼다고 하는데, 직장을 마치고 나면 나에겐 또 다른 책임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보니 직원들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인생은 혼자서 헤쳐가야 하는 것이고 술이라는 항생제가 아닌 스스로의 자기조절과 극복을 통해 모든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강한 치료법이다.이제는 성에 의한 구분의 시대는 지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소장이라서 힘들지 소장 앞에 또 다른 수식어가 붙지 아니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안 영 애 Ahn, Young Ae안스디자인 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 내안에 갇혀있는 그림을 꺼낼 수 있는 날을 위해......
    성균관 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1990년 조경설계 서안(주) 입사, 현재 서안 근무 중........이상은 이력서에 기재 될 내 이력의 전부이다. 환경과 조경의 원고 청탁을 받고 잠깐 망설였다. 다름 아닌, 보다시피 조촐한 나의 이력 때문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아직 다른 이들에게 나설 만큼 빼어난 조경가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편집부에서 분명 나에게 청탁을 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지금까지의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혼잣말처럼 글을 써 보기로 했다.자신의 생각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려하는 위선과 후배들에게 무지한 충고를 범하는 오만함이 스며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경 설계를 하게 된 동기에 있어 극적인 상황이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경학과라는 학과에 대해 알게 된 후 공립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조경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지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렇게해서 자연스럽게 진로를 잡았으며 학력고사 성적에 맞추어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재학시절에는 그냥 설계 과목이 좋았고, 설계만이 조경을 제대로 하는 것 같은 즐거운 착각 속에 살았다. 학교 스튜디오에서 수많은 밤을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며,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설계에 대한 욕망을 술과 독설로 대신 그득 채우고 나면, 아침 해는 나의 뇌처럼 텅빈 하늘 중천을 떠다니곤 했던, 참으로 욕심과 의욕만 충만했던 학창시절 이었다. 다행히 졸업설계 전시장에서의 아직 깨지 않은 술과 독설로 무장한, 버얼건 얼굴의 필자를 가상히(?) 여기신 소장님 덕분에 실습생 신분으로 서안이라는 회사에 첫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서안에서의 첫 요구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은 모두 잊으라는 것이었다. 언뜻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아마도, 업(業)과 학(學)을 혼돈하지 말라는 충고와 이제는 프로의 세계에 들어 왔다는 절대적 적자생존의 법칙에 대한 예언과도 같았다. 또한, 그것은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고 새로운 세계로의 시작이었다.공간에 대한 분석 과정과 공간성격의 도출과정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선, 정말로 도면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세계에서 첫 대면했던 도면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나를 당시의 흥분으로 돌려놓기에 충분하다. 그 때 작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도면이 아름다우면 그 공간도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샤프나 홀더를 갈고 제도판에 앉아 땀방울 떨어질까, 선 비뚤어질까 호흡마저 조절하며 도면을 치던(그리던) 시절, 얇은 트레이싱지를 뚫어지기 직전까지 힘주어 그어댔던 수많은 도면들, 그 안에 불어넣은 선들의 섬세함은 곧 설계자의 마음가짐이었으며, 삼각자는 나를 태우고 떠다니는 조각배요, 트레이싱지는 노 저으며 떠나는 0.3평의 무한한 꿈의 바다였다.그렇게 조경업계에 입문하여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단순히 뒤에서 버팀목으로 포진하고 있는 선배들을 믿으며 쫓아 다녔던 타 업종과의 협의며 회의는 늘 가슴 들뜨는 일이었고, 스스로 이미 조경업에 취해 있었으며, 건축, 토목 또는 그 밖의 모든 설계에서 조경이 똑바로 인정 되어야 한다는 조경의 확신에 대한 젊은 날의 빛나는 광기에 가득 차 있었다. 이 재 연 Lee, Jae Yeon 조경설계 서안(주) 실장(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상적동 주택 옥상정원
    · 위치 : 경기도 성남시 상적동· 면적 : 50㎡· 설계·시공 : 기린코리아(대표 김순자) 25㎡씩 2개의 별개 공간처럼 보이는 이 개인주택의 옥상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따라서 최대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우선 한 공간은 바비큐공간으로 가족들이 어울려 자연을 감상하며 식사 할 수 있는 곳, 또 다른 한 공간은 물소리와 함께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곳으로 조성하여 꽃을 좋아하는 고객이 물소리와 함께 여러 가지 화사한 꽃들을 보며 계절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작은 공간 안에 많은 정원요소를 모두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자칫 버려질 수 있는 아주 소규모의 공간에 정원 조성을 결정한 의뢰인의 섬세함에 감사할 뿐이다.공간내에는 반송, 남천, 선주목, 공작단풍, 회양목, 미스킴라일락, 붓꽃, 저먼아이리스, 금낭화, 둥근잎꿩의비름, 노랑나리, 철쭉, 말발도리, 노랑무늬 조팝, 종지나물, 비비추, 풍로초 등 다양한 식물들을 식재하여 계절따라 변화하는 정원의 모습을 표현했다.
  • 대림통상 연희동 사옥 옥상녹화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3동 87-9·면적 : 268.5㎡·발주 : 대림이낙스(주)·공사기간 : 2002. 12. 3 ∼ 12. 16·설계 : 송림종합조경(주) 이사 김영환·시공 : 송림종합조경(주) 대표 임상규 연희동에 위치한 대림통상 사옥 옥상에는 사원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유리창을 통해 식당의 내부에서 외부가 내다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외부 경관의 질적인 향상에 대한 요구가 있었을 법한 곳이다. 작년 말에 조경공간을 조성한 이 곳은 현재 식사를 마친 사원들에게 잠시동안의 휴식과 대화의 공간이 되어 주기도 하고, 사원간 만남의 공간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게 꾸며졌다. 건물옥상에 아늑한 녹색공간을 조성하여 녹지면적도 확충하고 사원들에게는 질높은 휴게 공간을 제공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설명.바닥에는 물 빠짐을 좋게 하기 위하여 전면 배수판을 설치하고, 외부에 관수시설을 설치하여 배수문제를 해결하였다. 보도는 자연재료인 통나무 박기, 우드블럭 등을 사용하였는데, 잔디 위에 발걸음마다 박힌 디딤목이 전체적인 공간의 자연감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다른 삼면에 놓인 동선은 촘촘한 디딤목을 놓아 조성하였는데, 같은 재료지만, 포장 패턴의 변화로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전체가 비교적 좁은 공간이지만 중앙을 잔디밭으로 처리하여 최대한 넓고 트인 느낌이 들도록 했다.COOLING TOWER 부분은 흰색목재 FENCE로 차폐시키고 타워의 크기에 압도되지 않는 키높은 대나무를 식재하여 주변시설과의 이질성을 극복하였다. 이곳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여름이라 그런지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외벽으로는 목재차양 밑으로 이용자가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 놓았는데, 연식의자 및 목재마루 깔기 등을 통해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 넓게 확보하였으며, 이것들은 대나무, 석등과 함께 한국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도 크게 일조하고 있다.식재는 공간의 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되어 있으며, 교목은 대나무외 6종 37주, 관목은 화살나무 외 6종 900여주가 심겨져 있고, 흰색목재 FENCE 앞에 심겨진 대나무와 식당 건물의 경계식재지가 볼만하다.
  • 작은 누리 - 유네스코 빌딩 옥상
    ·위치 : 서울 중구 명동 2가 50-14번지 유네스코 회관 12층 옥상·면적 : 약 190평(628㎡)·설계 및 시공 : 에코텍엔지니어링(대표 김현규)·기술 지원 : 서울대 생태계획연구실·공사기간 : 2002년 10월∼2003년 4월 명동 한복판, 사람들이 발 디딜틈 없이 오가고 있고, 높다란 건물들 사이로 화려한 상점들이 제각각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곳. 둘러보아도 마땅히 쉬어 갈만한 곳은 적당치 않아 보인다. 이런 속에서 자연이나, 생태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지금 유네스코 옥상에 가면 다양한 식물과 작은 습지, 아름다운 초화류를 감상하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교육, 과학 문화의 보급 및 교류의 유네스코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의 조성, 도시지역의 생태계 안전성 및 종 다양성 증진을 위한 소생태계 조성, 소생물권 확보를 통한 생물 서식공간 그린 네트워크 창출, 도심 내 사공간(dead space)인 옥상공간을 활용한 환경교육의 장 확보를 목적으로 조성된 유네스코의 옥상정원. 이곳의 이름은 작은 생태계를 뜻하는 ‘작은 누리’다. 계단을 통해 작은 누리에 들어서면 목재 데크와 작은 안내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몇 개의 계단을 지나게 되는데, 명동 한복판에 올라서 있는 기분도 좋거니와 다양하게 식재된 식물과 아름다운 꽃들로 인해 이 때부터 기분이 좋아진다.모퉁이를 돌면 목재로 된 퍼골라가 보이고, 옥잠화, 원추리 등이 반긴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2명이 간신히 교행할 수 있도록 좁지도 넓지도 않게 마련되었다(식물들을 위한 공간을 더 많이 주고 싶었다고 한다). 길을 따라 가면 목재 데크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작은 습지와 수로를 만날 수 있고, 소 생태계를 자세하게 관찰할 수도 있다.주변에는 벌개미취, 노랑꽃창포, 원추리, 돌나물 등 다양한 식물이 식재되어 있는데, 명동 한복판에는 없을 것 같은 나비, 벌, 잠자리 등도 습지 주변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다. 물 위에는 소금쟁이도 보이고, 물달팽이도 서식한다고 한다.이곳에 고인 물은 빗물을 모았다가 사용하는 것으로 저류통에 모았다가 계속 보충할 수 있게 되어 있고, 빗물이 부족할 경우에만 일반 용수를 사용하게 된다. 또한 이물은 천천히 흘러서 순환하는데, 이때는 태양전지을 이용해 순환을 시키고 있다고.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