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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의 도시설계와 조경설계의 접목
    - Rhein Park 프로젝트를 사례로 - 본고에서는 독일의 조경설계와 도시 설계가 하나가 되는 사례를 필자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는 필자가 2000년에서 2004년까지 근무하던 Heimer+Herbstreit Umweltplanung 조경과 도시설계 사무실에서 맡았던 일 중의 하나이다. 2001년 필자는 독일의 뒤이스부룩(Duisburg)시로부터 도시계획 마스터플랜의 용역을 맡았다. 뒤이스부룩시는 자연의 선물로 라인강을 끼고 많은 녹지가 있지만 과거 노동자들의 일터로서 (즉, 루르지역(Ruhrgebiet)의 광산 철광 생산지로서의 이미지) 낡은 건축물을 비롯 더 이상 이용되지 않는 철도, 도로 등이 있다. 산업구조가 변경되면서 2000년대를 위한 새로운 탈바꿈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도시계획분야의 새로운 마스터플랜이 요구된 것이다.2001년 뒤이스부룩시 전체 녹지구조와 도시녹지발전계획에 대한 본 설계사무소의 보고에서, 장기적인 계획 측면에서 도시내부의 "Grn Ring(녹지벨트)"과 강과 인접한 잠재성 높은 도시지역으로의 "Rhein Park"의 필요성이 제안되었다.그 후 2002년 Rhein Park 프로젝트 기본구상과 기본설계용역을 받아 2003년 뒤이스부룩 시에 발표 후 최종적으로 기본구상과 설계의 틀 안에서 설계공모가 이루어졌다. 이 설계안은 향후 2008년까지 구현될 예정이다.설계 공모 대상지 개요설계 대상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지역으로서 루르지역(Ruhrgebiet)에서 산업과 공업이 집약되었던 부분에 속한다.뒤이스부룩(Duisburg) 남쪽에 위치한 대상지에는 남쪽으로 라인강이 흐르고 있다. 1848년 이래로 공업용지 즉, 철 생산가공지로써 이용되었으며 현재는 압연철사 공장으로 생산공장과 저장창고로 이용되고 있다. 공업용지로써의 대상지 토지이용은 점차적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옮겨지는 것으로 계획 중이다.대상지의 규모는 약 63ha에 달하고, 대상지 주변은 밀집된 주거단지로써 주거와 상업용지, 시민의 공공이용 용지로서의 탈바꿈이 집중적으로 요구되는 지역이다. 뒤이스부룩 시에서 150년 이상된 공업용지로써 본 대상지에는 새로운 두 개의 과제가 주어졌다.첫번째는,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도시내부의 "Grn Ring(녹지벨트)"을 연결시키는 하나의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뒤이스부룩시를 위해 라인강을 도시 내부와 연계시키고 살아 숨쉬는 주거단지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시민을 위해 라인강을 가까이 제공하여 느끼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Rhein Park"을 통하여 이 두 개의 과제를 실현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질 높은 도시의 주거, 여가, 휴식과 상업의 발전이 연결되며 지속가능한 기능의 다양함을 산출해내고자 한 것이다. 1등안Bonifatius Kirche Platz로 인접하는 곳에 넓은 두 줄의 Allee를 라인강까지 교통차단 지역으로 설정하고, 건축물의 형태는 단위블럭형 구조를 이용한다. 블록형 내부의 저층형 건축을 포함한 블록형 가장자리 건축부분은 중간중간 사이를 떨어뜨린 구조를 취함으로써 주거단지 내부의 가로수길을 조성한다.특별한 이용을 제공하는 새로운 장소의 열(列)로서 각각의 서로 다른 단독형 건축물 구조는 높은 Quality를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밤과 낮의 도시 실루엣을 라인강으로 보여주게 될 것이다.건축의 용도는 서비스업, 주거, 호텔, 레스토랑, 질 높은 상업, 문화공간 등으로 이용된다. 교통면에서 단지 내부의 도로는 거주민을 위한 차도로 이용하고, 블록 내부의 정원로와 두줄의 Allee는 질 높은 보행자 전용로로 제한된다.단지의 도시설계 축은 Rhein Park 안으로 연장됨과 동시에 라인강으로 유도되며, 새로이 밀집된 주거 단지와 녹지의 풍경은 분리되어 큰 대조를 이루어 조성된다.녹지는 끝없이 펼쳐있는 초지 풍경을 만들고 그 초지는 조금씩 경사면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는 새로운 모형들로 변화시켰다. 이로써 방문자는 복잡한 라인공원 단지의 변화가를 떠나 서로 다른 길들을 걸어 가벼운 초지의 경사면으로 인도되어 산책할 수 있도록 유도된다.과거의 역사적 산물로써의 중요한 것들은 설계에 첨가/반영시켜 새로운 시설물로 재이용한다는 원칙하에, 기존의 담으로써 경계물들은 대상지 바닥형태를 변형시키는 데에 이용되며, 서로 다른 관찰자의 시각을 자극/변화시킴으로써 Skatepark, Streetball, Beachvolleyball 등의 이용형태를 제공한다. 위의 설계안들을 보면 도시계획에 있어 조경설계가 반드시 도시설계단계에서부터 참여하여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독일에서 조경가가 하고 있는 역할을 볼 수 있다. 독일에서의 조경설계는 건축/도시설계가 만들어 놓은 건축물 주위의 주어진 공간에 조성하는 소극적인 설계가 아니라, 도시설계와 조경설계가 같은 선상에서 목적하는 바를 위해 최대의 해결안을 찾아 외부공간을 해석해 내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건축물에 대한 형태와 방향, 밀집도 등에 해당하는 외형적/물리적 부분에 대한 결과물 판단을 위해서도 조경의 역할이 중요하다. 건축물 위치와 방향의 변화, 덧붙여 건축물의 특성에 따라 도시와 도시 외부공간의 Quality가 달라지기 때문이다.조경설계는 도시 외부공간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목적하는 바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수학적/물리학적인 공간에 대한 최고의 답을 제시해야 한다. 도시계획과 건축에서 도시의 미적인 추구를 위해 만들어내는 선과 면과 사물은 이러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며, 조경가가 함께 대상지의 경관을 논리적으로 분석해냄으로써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공간이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도출된 공간은 지속가능한 기능적인 다양함을 추구함으로써 합리적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안 수 연 Ahn, Soo Yeon S+R Freiraumplanung 설계사무실(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도시계획 · 설계 관련 법령 및 제도
    - 조경분야와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 국토관리제도의 변천사1960년 초에도 우리나라에는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 관리하기 위한 토지이용제도가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1934년 6월 20일에 공포 시행한 조선시가지계획령(제령 제18호)이 토지이용제도의 전부였다. 1962년 1월 20일 법률 제983호로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기초로 도시계획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용도 지역지구제가 정착되었다. 비도시지역에 대해서는 1961년 산림법이 제정되어 보전임지의 고시와 전용 제한, 보안림의 지정과 행위제한 등 산지이용에 안전 사항들이 규정되었다. 그 이후 1972년 국토를 효율적으로 계획,관리하며 토지의 이용가치를 높임으로써 공공복리의 향상과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국토이용관리법을 제정하였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태동도시지역과 비도시지역을 2개 법으로 관리함으로써, 비도시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난개발을 막고자 도시계획법과 국토이용관리법을 통합하여 계획적으로 관리하고자 2002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종전의 건축법상의 도시설계와 도시계획법상의 상세계획제도를 통합하여 지구단위계획제도가 신설되었다. 지구단위계획과 함께 주택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도시개발법 등 관련 법령의 제·개정이 이루어지면서 제도적용의 여건과 환경이 크게 변화되었다. 국토이용체계 개편의 주요내용국토의 난개발 방지 종합대책으로 국토이용및계획에관한법률(“이하 국토계획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국토계획법의 주요 내용은 국토계획체계와 용도지역제(토지이용계획)의 개편, 제2종 지구단위계획제도와 개발행위허가제, 기반시설연동제, 토지적성평가제의 도입, 위원회의 통합 및 기능 강화 등이다. 그리고 이 법률은 국토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국토이용 및 관리의 기본원칙에서 ‘국토의 환경적 건전성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규정하고, 이에 대한 세부적 시행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1) 계획체계계획체계를 살펴보면 국토기본법을 최상법률로 하고 이를 근거로 국토종합계획과 도종합계획을 수립하게 되어 있다. 국토기본법의 하위법률로서 국토계획법이 있으며 이를 근거로 시·군의 행정구역 전체에 대해 도시(군)기본계획, 도시(군)관리계획을 수립하게 하였다. 따라서 종전의 도시기본계획구역과 도시관리계획구역의 의미는 이제 없어지게 되었다. 즉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정구역이 곧 도시기본계획구역이자 도시관리계획구역이 되는 것이다.도시(군)계획은 도시(군)기본계획과 도시(군)관리계획으로 나누어 수립된다. 기본계획은 시·군의 기본적인 공간구조와 장기발전방향을 제시하며, 도시(군)관리계획의 지침으로서의 계획이다. 기본계획은 5년마다 타당성 여부를 전반적으로 검토하여 정비하며, 관할 행정구역에서 수립하는 토지이용·교통·환경 등에 대한 계획은 이 기본계획에 부합되도록 수립하여야 한다. 관리계획은 직접적으로 지역민에게 영향을 주는 집행적 계획으로서 토지용도의 부여, 기반시설의 설치 등에 대한 계획이고 5년마다 재정비한다. 둘 이상 시·군의 공간구조 및 기능을 상호 연계시키고 광역시설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위해 광역도시계획을 수립한다. 도시관리계획과 광역도시계획의 입안·결정과정에서 국가계획과의 조정, 시·도지사간의 협의가 안되는 경우 등에는 건교부장관이 입안,결정하거나 직권 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한다. 도시(군)계획은 개발수요가 많은 수도권의 시·군, 광역시와 인근 시·군은 법 시행 후 3년 이내에 수립하고, 기타 시·군은 5년 이내에 수립토록 하고 있다. 2) 용도지역체계 개편종전의 국토이용관리법상의 용도지역은 현행 도시지역, 준도시지역, 준농림지역,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의 5개 용도지역을 도시지역, 관리지역,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의 4개 용도로 개편하고, 이를 다시 9개 지역으로 세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도시지역은 현행 도시계획법상의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 보전지역은 현재의 농림지역과 자연환경보전지역이다. 그리고 준도시지역과 준농림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 편입,관리되는 기존 고밀도 개발지역을 제외한 지역을 관리지역으로 지정하며, 이를 다시 보전관리지역, 생산관리지역, 계획관리지역으로 세분한다. 즉 준농림지역과 준도시지역을 폐지하고, 해당지역의 토지적성과 이용실태, 인구규모, 도시지역과의 인접정도 등 개발잠재력 등을 기준으로 토지의 생산성과 보전성, 입지성을 고려하여 3 가지 용도지역으로 다시 분류한다. 이 대 구 Lee, Dae Gu (주)다산컨설턴트 전무(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도시계획 · 설계의 변천과 최근 경향
    전산업사회의 도시계획 변천사원시시대에는 세계의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농경사회의 밭고랑 형태에서 출발한 직사각형과 유목민들의 가축울타리에서 유래한 원형의 취락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때에는 취락을 구성하는 개별 건축물의 배치는 아직 질서가 생기지 않고 있었다.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강 유역, 황하유역 등 비옥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에서 탄생한 고대도시는 대부분 성곽을 축조하였고 원시시대의 취락보다 훨씬 넓었으며 인구가 밀집해 있었다. 또한 고대도시의 자본축척은 신전이나 궁궐, 피라미드와 같은 기념비적 건축물이나 공공건물에 의해서 상징되었다. 공통적 특성으로는 모든 도로의 패턴이 남북 또는 동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태양각도 및 계절풍의 방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며 주거지의 구획을 작게 하여 비옥한 평야에서 도시 성벽간의 거리를 가급적이면 좁히려는 시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에게해 문명에서 출발한 그리스 도시의 가장 큰 특성은 민주체계가 도시계획에 구체화되었다는 것이다. 폴리스(polis)라고 불리우던 도시들은 1만명 내외의 소규모로서 성벽에 의해 도시부와 전원부로 구분되었다. 그리스의 도시들은 아테네를 비롯하여 통일성, 지구분할, 자연과의 조화, 확장의 제한 등의 형태를 지니며 인간의 공동생활의 이상으로서 정확하고 영속적인 형식 구성하고 있다. 시장광장인 아고라(agora)는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와 같이 모여 교류하는 공간으로 형성되었으며, 주거는 전부 동일유형으로 형성되었다. 사유지, 상거래지, 공유지로 구역을 구분하고 자연의 풍경과의 조화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무분별한 도시의 확장을 제한하였으며 도시가 과대하게 확장될 경우 지중해를 건너 식민도시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도시계획가 히포다무스(Hippodamus)에 의해 계획된 밀레투스나 프리엔느, 오린투스 등은 격자형도시로 유명한 식민도시의 사례이다.로마는 그리스의 도시계획기법에 근간을 두고 발전하였다. 대개 그리스인은 도로 건설에 있어서 미와 방어와 항만 및 비옥한 토양에 관심을 기울였고, 로마인은 도로의 포장, 물의 공급, 하수도 등 대규모 토목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유럽대륙을 정복하였다. 로마제국은 고대 역사 속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복잡한 도시였으나, 방대한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서 로마인은 카스트라(castra)라고 부르는 수 천개의 요새화된 로마군단의 캠프 건설을 하였다. 그리고 도로는 정방형이거나 직사각형인 격자구조 가로망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로마 도시의 원형은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건축십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로마의 도시가 가지는 주요 구성요소는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유래한 포럼(forum)과 써미(thermae)라고 부르는 공중목욕탕, 콜로세움과 같은 원형경기장, 그리고 귀족들의 주택인 도무스(domus)와 평민들이 모여 사는 인슐라(insula)가 있었다.중세시대에는 이민족들에 의한 침입과 압력으로 방어를 위해 성으로 둘러쌓인 형태가 필요하였다. 이런 형태는 성장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작아서 상류계층만이 그 안쪽에 거주하고 그 이하의 계층들은 성 밖의 지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도로망은 보행중심으로 협소하고 불규칙한 형태였으며, 주택은 다층으로 기능적 공간의 분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세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물리적 요소는 성벽과 광장과 성당이었다. 초기 중세도시의 성벽은 방어용으로 불규칙한 형태를 띠고 해자(moat)로 둘러쌓여 있었으며, 전형적인 중세의 주택은 작고 좁은 가옥으로서 목조건축으로 된 거주자 소유물이었다. 도시의 양상은 무질서한 것으로 보였으나 이것은 기능을 중요시한 인식에서 나온 형태로 십자군 전쟁이후 상업도시로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상인들의 지위상승에 따라 조합이 형성되고 이들의 집단 주거지역인 길드가 생겨나게 되었다. 중세의 도시들은 초기에는 산악지방에 입지한 성곽도시였으나 후기에 이르러서는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해안이나 하안에 입지하는 항구도시나 자유무역의 도시로 발달하게 된다.“로마로 돌아가자”라는 기치아래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은 도시계획에 있어서 크게 두가지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 하나는 로마시대 도시의 재건계획으로 교황 식스투스 V세의 명을 받은 폰타나(D. Fontana)의 로마 재건계획과 로제티(B. Rossetti)에 의한 페라라 재건계획이 있다. 다른 하나는 이상도시계획안인데 그 특징은 폐쇄형으로 대부분이 8각형, 6각형, 5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15~16C경 필라레테(Filarete)에 의한 8각형의 스포르진다(Sforzinda)와 스카모찌(Scamozzi)에 의한 5각형의 이상도시안이 있다. 이처럼 이상도시들은 대개 기하학적이고 완벽한 비례감을 가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실현된 이상도시 안으로는 팔마노바(Palma Nova)가 있다.절대주의를 최대의 기반으로 하는 바로크 도시의 특징은 기하학적인 형태와 전망을 가진 직선도로, 격자형과 방사형을 조합시킨 조원계획과 원형광장 등이다. 바로크의 유명한 도시계획으로는 보루형 도시에 32개의 방사형 도로를 도입하여 왕궁을 중심으로 뻗어나가게 계획된 독일을 칼스루헤가 있다. 또한 1666년의 대화재 후에 렌(C. Wren)에 의하여 새로이 건설된 런던개조계획은 도시의 주요부분을 연결하는 가로망을 제시하고 큰 교차점들을 광장으로 처리하며 시가지의 한 구획을 중심에 집중시키는 방사형 형태로 되어 있다. 1853년 나폴레옹 III세의 명에 의해 파리 시장이었던 오스만(E. Haussmann)은 파리개조계획에 착수하게 된다. 그는 파리가옥의 3/7을 철거하고 중세시대의 좁고 불규칙한 가로를 개조하여 광로(boulvard)로 직선화하고 중앙시장, 오페라 하우스 등 많은 거대한 건축물들을 축조함과 동시에 브로뉴 삼림 등을 조성함으로써 바로크 최대의 상징인 파리를 건설하게 된다. 이 우 종 Lee, Woo Jong 경원대학교 공과대학장, 도시계획학과 교수(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도시를 바꾸는 자투리 공간
    도시내 거대한 공간에 조경이 자리를 잡았다.고무적인 일이었다.대규모 하천이 복원되고, 동물들이 뛰노는 공원도 들어선다고 한다. 개발의 논리는 항상 환경을 외면해 왔고, 공원은 상업 공간에 밀려 최대한 축소되었던 것이 마치 오래전의 일인 듯 하다.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큰 곳으로 집중되었다.작은 곳은 돈이 안된다는 불만도 흘러 나온다.지난 몇 년간 잡지에는 온갖 큰 규모의 조경사업만이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도배가 되었다. 하지만 도시를 바꾸는 것이 그것뿐이겠는가. 이번 특별기획에서는 도시를 바꾸는 자투리 공간, 도시를 바꾸는 다양한 생각들을 모아보고자 했다.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어느새 우리의 관심에서 밀려버린 작은 장소를 찾아보고 그 소중한 실천들을 보듬는 마음으로 진행되었다.
  • 양재천 - 시작 그리고 이의 극복
    시작, 그리고 이의 극복 양재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양재천은 강남구에서 자랑하듯 자연형 하천 복원 사업으로 죽은 하천을 되살린 장소이다. 양재천이 전형적인 하천 정비의 산물인 직강화된 하천, 콘크리트 블록의 대칭적인 호안 단면, 밋밋한 경사의 하도, 둔치의 잔디밭, 주차장, 가끔 가다 보이는 운동시설 등의 획일적인 하천 경관을 자연이 우세한 장소로 바뀌도록 함에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도시민에게 하천을 산책하고 싶은 장소로, 조깅하는 장소로, 여러 가지 식물과 동물을 관찰 할 수 있는 학습의 장소로 탈바꿈시켰고 토목분야가 독점하던 하천에 조경가가 전문가로 참여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강남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시민들이, 매스미디어가 앞다투어 칭송하고 전문가들도 자연형 하천 복원사업의 전형(典型)으로 여기는 양재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물음은 새삼스럽다. 그 만큼 양재천을 다른 각도로 보려는 시각은 부담스러우나 양재천 자연형 하천 복원사업이 우리 시대의 ‘시작’이었고 이제 그 시작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과제로서 던져져 있기에 눈에 보이는 현상뒤에 놓여진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드러내는 일이 극복의 출발이 아닐까 한다. 복원(restoration)인가?양재천 사업을 논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고 ‘복원’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양재천에 행해진 일련의 사업들을 ‘복원(restoration)’이라는 용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복원이라하면 무엇보다도 훼손이전의 복원 대상이 분명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분명해야 하나 시작 당시 양재천에 복원 대상을 미리 설정하고 일련의 사업이 진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보다는 치수 기능 위주로 조성된 기존 하천에 훼손되지 않은 하천에서 관찰 가능한 식생 저수 호안, 하도내의 여울과 소, 하도 선형의 만곡화 등 자연 요소를 추출, 도입하였다는 진술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양재천은 기존 하천을 자연형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최초의 사례로 실험적인 성격을 강함은 당연하다. 무기 재료 위주의 호안 및 고수 부지 조성 관행에서 탈피하여 자연 소재로 무기 재료가 가진 견고함을 확보하고 동시에 식생의 도입이 가능한 지에 대한 검증이 무엇보다도 우선이었을 것이다. 그런 시행 착오의 검증 과정을 거친 여러 가지 호안 공법은 이제 대표적인 자연형 호안 공법의 모범으로 인식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엄격한 의미의 복원이라는 목표 설정이 기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만큼 양재천에는 하천을 자연형으로 변모시키는 노력과 더불어 ‘주민 이용’이라는 또 다른 가치가 동시에 추구되었다. 때로 과도하게 도입된 친수 시설(親水施設)들은 엄격한 의미의 복원이란 용어의 사용을 어색하게 만드는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생태의 두가지 측면규범으로서의 생태(生態)이 시대에 지향해야 할 여러 중요한 가치의 하나로 ‘생태’를 내세우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생태라는 용어는 이미 우리시대에 생물학적 의미를 벗어나 사회 규범으로, 철학으로, 윤리로 그 의미의 외연을 넓힌 상태이다. 갖가지 논리로 무장한 ‘생태’는 강력한 외연의 확대 덕에 조경에서 만능의 용어로 사용된다. 어디 조경 뿐이랴, 건축, 토목 분야에서도 생태라는 용어를 빼고 건설사업을 진행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사회 전반에 걸쳐 강력한 공감을 획득한 ‘생태’를 논리 전개의 근간으로 삼는데 앞장서야 할 조경 분야에서 ‘생태’라는 용어의 적정 시비가 있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생태지상주의’, ‘생태 상업주의’, ‘인간과 자연의 이원화’ 등 생태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조경에서 ‘생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음을 보여 준다. 생태라는 용어가 가지게 된 규범성은 현재 우리 환경의 건강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이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에서 기인된 패러다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생태 지상주의’, ‘인간과 자연의 또다른 이원화’라는 비판에는 생태라는 용어에 내포된 규범성으로 인해 인간(디자이너)의 상상력과 이용이 제한되어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주장한다. 이의 근거로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토대로 하는 생태학은 과학적 분석 방법에 의존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상호 참여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게 되는 모순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즉, 일방적인 자연 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김 용 규 Kim, Yong Kyu 일송환경복원(주) 대표(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올림픽공원 - 기념 경관의 탄생, 성장, 상흔
    올림픽공원 - 기념경관의 탄생, 성장, 상흔 하나의 신화, 몽촌토성의 도시경관늦은 가을 오후, 평화의 문 주변 광장에는 인라이너들이 무심히 유영하고 있었다. 눈을 돌려 안쪽을 향하면 적막한 광장 뒤로는 물위로 떠오르는 신비한 곡선의 실루엣이 있다. 몽촌토성, 신비한 고대의 우주적 경관이다. 이곳, 평화의 문과 88마당을 잇는 주순환동선에는 만추의 산보객들과 코끼리열차가 조는 듯 지나고 있다. 노란 옷의 유치원생들은 열을 지어 행진을 하고 있는 위로, 조깅하는 젊은이들은 몽촌토성의 능선 위를 경쾌하게 뛰어 오르내린다.강남의 도심부에 조성된 60만평에 달하는 이 거대한 공원은 1988년의 서울올림픽 유치 덕분에 얻어낼 수 있었던 서울을 대표하는 대공원 중의 하나다. 이에 앞서서도 이미 1960, 1970년대에 어린이대공원, 과천대공원 등의 대공원들이 조성된 바 있으나, 근대적 조경기법의 체계적 적용에 의해 탄생된 최초의 초대형 도시공원이었다는 점에 이 사업의 의의가 있다. 이 공원의 설계는 몇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올림픽유치가 확정된 이후 1983년에 경기장단지를 포함하는 올림픽공원 전체의 현상설계가 시행되었다. 공원과 경기장시설물들을 포함하는 대규모 단지계획인 이 프로젝트는 조금 이른 시기의 독립기념관 현상설계와 함께 당시의 설계계를 뒤흔든 대형 이벤트였다. 여기서 당선작은 나오지 않고 6개의 우수작만 선정되었다. 이들 우수작들을 토대로 하여 최종적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일을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설 환경계획연구소가 맡게 되었고 실시설계는 각 우수상 작가들이 나누어 맡게 되었다. 그 중 공원공간은 삼정건축과 우보기술단이 공동으로 수행하였다. 1980년대 초의 설계환경은 1970년대 중반의 조경학과 신설과 더불어 입학하여 정규 조경교육을 받고 졸업한 1세대 조경가들이 의욕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때이다. 당시 필자의 동기생들과 필자는 각각 올림픽공원의 기본계획과 실시설계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고 그런 점에서 올림픽공원은 우리들이 본격적으로 설계를 익힌 계기가 되었던 고향과도 같은 프로젝트였다.올림픽파크의 진수는 역시 몽촌토성이었다. 1968년부터 이 일대를 국립경기장 예정지로 지정해 놓았었는데, 당시로서는 몽촌토성을 개발대상에서 미연에 보호하기 위한 이중의 목적에서 사적(史蹟)지정과 함께 이중으로 지정해 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상지 중앙에 위치한 몽촌토성은 전체 면적의 대상지 전체의 30%에 육박하는 큰 면적을 차지하여 면적만으로도 전체 공원의 중심주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대공원과 한국 현대조경양식의 모형올림픽공원에는 두개의 진입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잠실대로와 연결된 것, 하나는 올림픽아파트와 연결된 것으로 이들 모두가 대칭적 형태의 직선축이라는 점에서 고전주의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중 잠실대로와 연결된 평화의 문 쪽의 축은 올림픽공원 구상에 앞선 잠실도시설계에 이미 설정되어 있었던 중심가로축의 연장이다. 현상설계시 요구조건으로도 제시된 바 있었던 주진입축이자 기념적 성격의 축이다. 또 하나의 축은 부지남쪽에 이미 설정되었던 선수촌아파트와의 연결축으로 부진입축의 성격을 갖으며 주변에 경기장 단지와 체육대학 등이 포진되어 있어 기능적 성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잠실대로의 축은 그 정점에 올림픽공원을 위치시킴으로써 서울올림픽의 상징축이자 서울시 도시경관을 이루는 대표적 경관축의 하나가 되었다.이 두개의 바로크적 정형축은 모두 중심의 몽촌토성을 향하고 있다. 즉, 양 진입경관의 정점에 공히 몽촌토성이 입지해 있다. 이들 두 진입축과 이들을 연결시키는 공원내의 간선가로망이 전체공원의 공간골격을 이루고 있다. 크게 보아 고전주의에 의한 두개의 입구 기념광장과 이들을 잇는 자연풍경식의 곡선형 원로와 해자가 전체 조경양식의 골격을 이루고, 수변 및 기타의 부분공간들의 세부설계는 기하학적이고 기능적인 모더니즘적 양식으로 처리된 절충적 양식이 공원설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절충적 양식은 멀리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1970, 1980년대의 우리나라 근대조경 도입기 공원설계의 일반적 모습을 집약해 보여준다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러한 3자 연합의 절충양식은 한국 대형공원의 기본모형으로 정착하여 이후, 평화의 공원, 서울숲 등의 대공원의 설계에서도 그 관성을 유지해 왔다고 보인다. 이러한 절충형이 이제까지 대중적 인기를 누려왔던 것은 대형 공원의 환경특성에서 숙명적으로 요구되는 전체구조의 명료성과 기념성, 그리고 배경으로서의 자연성(회화적 전원성 또는 생태성) 그리고 부분공간의 기능성을 동시에 해결하기에 편리하다는 유혹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양식들은 이미 300~400년전 유럽을 풍미하던 양식이었고,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이 시대 한국의 경관표현을 위해 아직도 유용한 수단일 수 있겠는가에 대한 냉정하고도 광범위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그 대안의 생산을 포함하여 향후 극복해 내야할 조경설계계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생각된다. 김 한 배 Kim, Han Bae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일산 호수공원 - 별 2개 반짜리 일산 호수공원
    별 3개 반짜리 일산 호수공원 호수공원, 신도시 조성의 붐과 함께 태어나다.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건설업계에 있어서 매우 활발한 시기였다. 200만호 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수도권에서는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소위 5개 신도시 조성사업이 진행되었으며, 각 도시별로는 도시 공원녹지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대규모 공원이 함께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일산 신도시 건설과 함께 조성된 호수공원은 분당의 중앙공원과 더불어 신도시 근린공원 계획에 많은 영향을 준 비교적 성공적인 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호수공원은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와 대규모 광장을 가진 대표적인 신도시형 근린공원으로, 매년 고양 꽃전시회와 3년 주기로 고양 세계 꽃박람회가 개최되는 장소로 수도권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성공한 신도시의 얼굴일산 호수공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먼저 이 공원의 위치에 대해서 다루어야 할 것 같다. 호수공원은 자유로에서 일산으로 들어오는 진입부에 위치하여, 자연스럽게 신도시 일산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강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 있는 자유로와 더불어 일산의 진입부에 위치한 호수공원은 답답한 도시환경에 익숙한 도시 거주자들에게 “신도시 = 전원도시”라는 공식을 각인 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의 아우토반이라고 불리던 자유로를 따라 운전을 하다가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넓은 수면이 펼쳐진 호수공원을 만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이러한 일종의 환타지가 호수공원 계획 당시 의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유로가 출퇴근시 주차장이 되기 전까지는 상당히 유효했었을 것이다. 이렇듯 공원은 실질적으로 이용하는 측면뿐만 아니라 이미지 형성에 무척 큰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호수공원은 일단 일산의 얼굴로는 성공한 셈이라고 하겠다. 너무 넓은 호수와 불편한 이용호수공원을 가 본 사람들 대부분은 넓은 호수에 압도되고 아름다운 노을과 멋진 분수에 감동받는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불편하리 만큼 넓은 규모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너무 넓은 호수와 광장 때문에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지적은 그 동안 호수공원에 대해 제기되었던 문제점들 가운데 1순위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평소 일산 호수공원을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공원에 대한 글을 쓰기에는 민망한 수준의 기억들뿐이라 지난 11월, 호수 공원으로 카메라를 들고 답사를 했었다. 한울광장에서 시작해서 주제광장을 지나 꽃 박람회장 건물 앞에 닿을 무렵, 그곳에 서 있는 공원 안내판을 바라보고는 한숨이 나왔다. 도저히 걸어서는 공원의 나머지 부분을 다 돌아보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어쩌면 필자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상술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공원 근처에는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곳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겨우 공원 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사진찍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느라 일반 이용자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겠지만, 자전거를 타고도 무려 4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호수를 따라 순환하는 산책로는 무려 그 길이가 4.7km에 이른다. 보통 걸음으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가는 단축 마라톤을 강요당하는 상황으로 돌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산책로 주변에 있는 광장들도 그리 편안한 크기는 아니다.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에게 넓고 잘 포장된 광장은 매우 좋은 환경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공간이다. 최근에 조성한 노래하는 분수대와 분수대광장은 그 동안 거대한 규모를 지적한 사람들의 노력을 완전히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듯 하다. 광장 끝이 잘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필자는 ‘휴먼스케일’을 떠올렸다. 휴먼스케일에 관한 위한 예로 이처럼 적절한 (사실은 나쁜 예이지만) 장소는 과거 여의도 광장 이후로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이러한 대규모 공간 중심의 호수공원은 분당의 중앙공원과는 매우 대조되는 모습이다. 분당 중앙공원의 연못 주변에는 다수의 소공간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점은 다소 전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산 호수공원에 비해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의 강북권과 강남권을 흡수하는 신도시의 라이벌로서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공원의 계획방식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물론 단순히 너무 크거나 넓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원은 시공이 끝나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계속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초기부터 제기된 식재된 수목의 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으나 지속적으로 추가 식재를 하여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 신 하 Joo, Shin Ha (주)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부설 환경계획연구소 소장(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다섯 가지 시선 ; 조경으로 사회적 발언하기
    설문결과 - 조경의 사회적 위상현대한국조경 작품 중에서 조경의 대사회적인 위상을 높인 것으로 응답된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 것으로 보여진다.그 첫째는 일정 규모 이상이라는 점이다. 일단 규모가 커야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입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실제로 이용될 기회나 가능성도 규모가 큰 것이 더할 것이니 유리(?)할 터이다. 그러나 큰 만큼 잘못이 노출되고 회자되기도 쉬울 것이니 결국 응답된 작품들은 질적인 점에서 일정수준 이상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두 번째 공통점은 응답된 작품들 대다수가 그 조성배경이나 과정에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제적 빅이벤트의 장이거나 정치사회적 관심이 주목된 곳(여의도공원, 일산호수공원)인 것이다. 양재천과 길동생태공원의 경우는 자연과 생태에 쏠린 사회적 관심사와 관련시켜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에 선유도공원은 국제적 이벤트의 주무대가 아니면서 정치사회적 관심도 적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응답의 주 요인은 조성 이후의 사회적 반향에 유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애당초 사회적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조경 행위 후에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은 문화적 행위로서의 조경 본연의 의의와 가치를 살린 것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조경의 사회적 의의는 어떻게 추구되고 달성되어져야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전문업은 사회적인 수요와 그것을 충족시키는 독점적 배타적이면서 특수한 전문기술로 성립되어진다. 이 점에서 조경의 대 사회적 의의에 대한 논의는 전문기술 차원으로 모아진다. 사회적 수요 요건은 친환경, 생태의 바람과 함께 이미 우리 사회에 충분히 충족되어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전문분야로서 조경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어필하고 있느냐고 하는 것을 한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이 글에서는 조경설계라는 행위를 통한 문화적 가치 창출 관점으로 논점을 좁혀 고찰해 보기로 하자. 단순히 다루는 소재가 자연이고 친환경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조경본연의 이념도 좋지만 문화적 행위로서 조경설계를 주창하기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와의 문화적 연대를 입증하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무언가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필자는 이쯤에서 이 글의 소주제인 장소성과 전통성의 이슈를 제기하고자 한다.(물론 조경의 사회적 의의를 논하기 위한 세부 주제는 이들 외에도 많다. 본고에서 다른 더 중요한 것들을 제쳐두고 이 두 가지만을 다루고자 하는 것은 순전히 설문조사와 연계시키고자하는 기획의도에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이다.) … 후략 … 성종상 Sung, Jason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다섯 가지 시선 ; 한국 조경설계를 변하게 한 작품들
    삶의 풍경이, 문화의 지평이 변화의 몸살을 앓고 있다. 동시대 조경의 지형도가 변하고 있는 장면 또한 다양한 각도에서 목격된다. 시간이 존재하는 한 변화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언가의 모양과 성질과 상태는 늘 변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우리는 대게 변화를 통해 희망을 그리고 진보를 노래한다. 변화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반동이자 난제의 해법을 찾고자 하는 실천의 총체적 양상인 것이다. “한국의 현대 조경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번 호 <환경과 조경>의 ‘열개의 공간 다섯가지 시선’은 과거의 변화를 반성하는 진단서와 미래의 변화를 예비하는 처방전을 동시에 작성하고자 하는 쉽지 않은 프로젝트다. 이 힘든 숙제의 실마리를 푸는 작업의 일환으로, 이 글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한국 현대 조경설계를 변화시킨 계기와 동력이 되었던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려고 한다. 한국 조경설계를 변하게 한 작품들로 초점을 옮기기 전에 우선 점검하지 않을 수 없는 몇 가지 논점이 있다. 먼저, 현대 한국 조경이 ‘작품’이라 할만한 것을 생산해 왔는가 하는, 흔히 제기되는 반문을 짚고 가야 한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또 다시 한국 조경설계의 몰개성과 무표정을 문제 삼는 일은, “고독한 지형과 우울한 풍경”을 그려 온 지난 30년 현대 조경사의 왜곡된 시스템에 시비를 거는 일은 지루한 동어반복일 뿐이다. ‘작품’이라는 말의 무거운 포장을 조금만 걷어내고 본다면, 한국에도 나름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조경 작품은 있(어 왔)다. 조경 사회의 인프라스트럭처가 작품을 작품으로, 작가를 작가로 인정하는 일을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허약했을 뿐이다.그 다음의 논점은 과연 작품이, 특정한 몇몇 작품이 복잡한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관계 속에 위치하는 조경설계라는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작품은 맥락과 관계의 작은 부분집합에 불과하므로 구조 전반의 변화에 종속되는 것이지 변화의 주연은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 한 극단에, 또 다른 극단에는 뛰어난 작품은 시대의 관례를 초월하여 변화의 세례를 선사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 놓일 것이다. 그러나 이 상반된 관점을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폭넓은 하나의 스펙트럼 속에 놓인 다채로운 시각을 대별하는 관점으로 유연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즉 조경 작품은 비단 설계 행위를 통해 구현된 가시적 결과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 방식과 접근 과정, 설계 매체와 테크놀러지, 다양한 주변 맥락과 관계 등이 형성하는 복합적 함수의 산물이며, 때로는 하나의 조경 작품이 정체된 도그마적 설계 관행을 붕괴시키며 진보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는 식의 탄력적인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라빌레뜨공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라빌레뜨공원이 20세기 후반 공원 설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동력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그것이 미테랑 정부의 파리 재개발 사업이라는 정치적 경제적 맥락, 파리의 도시 문화적 전통, 옴스테디안 파크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과제, 베르나르 츄미의 혁신적 설계 등과 같은 복합적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후략 … 배 정 한 Pae, Jeong Hann 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희원 - 희원, 시간을 디자인하다
    희원(熙園), 시간을 디자인하다 … 전략 …공간과 시간의 조화호암미술관이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는 많은 미술품들을 담고 있고 미술관 건물 또한 전통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유수한 미술관들이 아시아 정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 정원을 제대로 보여주는 미술관이 국내에서조차 아직도 없는 실정이었으므로 희원이 한국 전통정원의 복원과 창조를 그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통성을 살린 정원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여차하다간 전통성 시비에 휘말릴 우려도 있고 복원과 창조 사이에서 어디에 비중을 둘 것인지도 숙고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정원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희원이 가지는 중요한 조경사적 의의는 우리 정원 속에 담겨있는 전통의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해 조경의 담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서구의 조경 실천 경향에 온통 이목을 집중하였던 조경계의 흐름에 비해 한국적인 것에 대한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미약하였다. 개인 정원이 아닌 공공부분에서 한국정원을 풀어낼 프로젝트가 드물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희원프로젝트는 부지의 목적과 환경 조건, 발주자의 기호, 설계가의 강한 의욕 등 모든 요인들이 딱 들어맞았던 조경계의 빅 이벤트였다.오늘 우리가 희원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각 재료가 가진 물성을 잘 살려내었다는 점일 것이다. 원래부터 그렇게 그 자리에 있어온 듯한 자연스러움이 재료들로부터 느껴지는 것이다. 아울러 정원으로서 갖추어야할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고유섭(高裕燮, 1905-1944)선생의 ‘무기교의 기교’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희원이 보여주는 물성을 살려낸 세심한 디테일은 한국정원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좋은 교훈이 된다.희원의 또 다른 장점은 전통적 모티브의 도출이 적합하게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희원은 전통정원의 백화점 같다. 문과 담, 정자와 연못, 돌과 재식 등 정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 속에서 전통정원의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다. 설계 당시 가동할 수 있는 전통정원에 관한 정보를 총망라한 듯한 느낌이다. 각 부분마다 드러나는 전통 정원의 편린들은 모티브 과잉인 듯한 느낌마저 들어 오히려 정원의 자유로움을 억제한다는, 다시 말해 전통이란 것에 너무 얽매여 있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것은 안전한 선택이었다.세 번째는 전통의 조각들이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는 부지의 지형과 경관의 씨줄과 날줄 속에서 결을 따라 용의주도하게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힘들게 찾아낸 전통정원의 모티브들을 단순하게 꼴라주하거나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의 조건과 미술관이라는 기능에 충실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원야(園冶)>의 표현을 빌리자면 합의득체(合宜得體)하였다는 것이다.그러나 희원에서 보다 돋보이는 점은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주된 화두는 시간이라 할 것이다.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보물들, 미술관 주변에 널려 있는 석물들은 전부 시간의 산물이다. 그리고 정원이 지향한 한국 전통조경의 복원과 창조 또한 시간에 대한 성찰을 전제로 한다. 전통이란 하나의 양식으로 우리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만 실은 보이지 않게 쌓여 있는 시간의 두께가 우리들에게 전통이란 개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나무에게 나이테가 생기듯 시간의 나이테가 전통인 것이다.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 모아 놓은 정원의 요소들은 제각각의 일정대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이 수십 년 수백 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싱크로나이즈 되면서 도달하게 되는 상호간의 조화를 우리는 전통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전통정원을 복원 혹은 재창조한다고 하였을 때 전통성이란 단순한 형태의 모사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시간을 얼마나 적절하게 담아내느냐가 키포인트가 된다. 이런 점에서 희원의 디자인은 뛰어나다. 대석단과 그 앞의 소나무에서부터 계류 속에 놓여진 돌들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디자인을 이루었다. 물론 모두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아직도 담장과 정자의 기와는 어제 만들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도무지 시간이 깃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희원을 통해 조경가의 손길은 공간만을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기는 내용의 시간에까지도 미쳐져야 함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돌아오는 차속에서 나는 희원이 또 하나의 전통이 되어주기를 기원했다. 희원의 대석단과 소나무 위에, 그리고 담장의 기와 위에 시간이 눈처럼 쌓이고 그것이 녹고 또 쌓여 희원도 전통정원으로 남게 되길 바랐다. 희원으로 인해 전통이 박물관속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 숨쉬며 진화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리움’ 같은 현대미술관에 한국정원을 조성한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모습이 될까? 이 모든 새로운 미래의 출발점에 희원이 있다. 이 유 직 Lee, Yoo Jick 밀양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