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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된 뒤로부터 열 달이 지났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전파 속도만큼 변화 또한 신속히 일어났다. 옆자리 동료와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회의를 하는 모습이나 투명 가림막이 세워진 초등학교의 책상, 마스크 낀 수많은 사람이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풍경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일상을 유지하는 안온한 풍경이 됐다. 팬데믹은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다. 하루아침에 산업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분야가 있는가 하면, 어쩌면 영영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분야도 생겼다. 세계 곳곳에서 진단과 분석, 예측이 넘쳐났다. 일부 섣부른 결론과 어설픈 예측, 유행에 편승해 목소리를 높이려는 주장은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지친 우리에게 피로감을 더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사스SARS나 메르스MERS와 같이 일시적 유행병에 그칠까, 아니면 역사의 중대한 변곡점으로 남을까. 아직 판단하긴 이르다.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지금의 활발한 포스트 코로나 논의가 무색하게 금세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반면 페스트나 콜레라가 의료 기술의 집약적 발전을 가져오고 공중위생과 도시계획의 새로운 토대를 닦은 것처럼, 코로나19 발병이 기술과 공간의 실제적 변화를 촉발하는 지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팬데믹 이후의 도시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19명의 필자는 관찰, 진단, 분석, 예측 등 다채로운 관점으로 도시를 살핀다. 개인의 일상을 탐구하거나, 실현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과감한 상상을 펼치는가 하면, 도시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기도 하고, 회의 가득한 눈으로 현 대응책의 한계를 일깨우기도 한다. 더불어 팬데믹에 발 빠르게 대응한 도시공원의 모습과 다양한 공모전의 아이디어를 함께 실었다. 지면에 실린 이야기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좀 더 담담히 바라보게 하고, 소란 가운데 놓치는 중요한 것들을 알게 해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번 특집은 팬데믹 한가운데 서 있는 당신에게 전하는 안부이기도 하다. 언제 어떤 경로로 감염될지 모르는 무형의 바이러스에 그저 최선을 다해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는 개개인에게 특집 속 다양한 생각이 가벼운 소식처럼 닿길 바란다. 이 안부가 월간 『환경과조경』이 미처 다루지 못한 도시 구석구석, 공간과 사람들 틈으로 뻗어 나가 더 나은 메아리로 되돌아오길 기대한다. 코로나 일상 탐구 조경가 엄마의 직장 생활 _ 최지수 불안함과 성실함 사이 _ 김진환 코로나19 캠퍼스 일기 _ 정해준 기본을 되짚기, 문제를 잘게 쪼개기 _ 김연금 위드 코로나 시대의 공원 사용법 _ 서울숲컨서번시 보라매공원에 헬리콥터가 떴다 _ 서영애 뉴노멀 시티스케이프 별의 안녕을 묻다 _ 박승진 가상의 벽, 블루스케이프 _ 이홍인 호모 언택트 도시 _ 조용준 올인빌딩 _ 엘피스케이프 공원에서 정원으로 _ 오현주 불확실성의 뉴노멀 _ 이해인 도시, 새 출발 _ 홍주석 언택트와 온택트, 그래서 빅블러 _ 민성훈 도시의 안녕인가, 도시여 안녕인가 _ 김충호 빅데이터로 본 코로나 시대의 도시 서울 _ 김세훈 코로나와 교통의 미래 _ 황기연 재난 완충 지대, 공원의 가치 _ 신명진 코로나 시대의 생활권 도시 _ 모종린 미래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_ 신명진 더 읽을거리, 더 볼거리 _ 편집부 팬데믹, 공원 풍경 _ 유청오
    • / 2020년10월 / 390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조경가 엄마의 직장 생활
    샌프란시스코.하루의 일정을 알리는 슬랙Slack메시지가 도착했다.구글 캘린더로 미팅 일정을 확인하고 밤새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메일을 훑어본다.간단히 아침 요가를 하고 아이의 도시락과 아침을 준비한 뒤 출퇴근 시간을 아껴 조금 이른 시간 일과를 시작한다. 6:00 am 나는 초고층 빌딩으로 유명한 대형 건축 사무소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의 오픈스페이스 프랙티스 팀에서 조경가로 일한다. 한창 진행 중인 일은 뉴욕의 건축 팀과 협업하고 있는 서울의 프로젝트다. 몇 달 전부터 15명 정도 되는 뉴욕의 건축, 구조팀과 샌프란시스코의 오픈스페이스 팀원들이 서부보다 세 시간 빠른 동부 시간에 맞춰 매일 아침 프로젝트 미팅으로 만나고 있다. 신입 사원부터 파트너까지 한 화면에 모여 디자인 진행 상황을 발표하고 리뷰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긴장과 열정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 됐다. 8:00 am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시작되기 전에도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LA, 워싱턴 DC의 지사와 런던, 상해, 홍콩 등 전 세계의 동료와 같이 일해왔기에 원격으로 업무를 조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같은 오피스에 있는 팀원과도 원격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점과 클라이언트 미팅도 모두 화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미팅 횟수와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의사소통, 협의, 신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요즘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최지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에이컴(AECOM), 하그리브스 어소시에이츠(Hargreaves Associates, 현 Hargreaves Jones)를 거쳐 SOM에서 조경 설계를 지속하고 있다. 건축, 도시, 구조,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해 조경가의 역할을 유연하게 정립하고자 한다. 더불어 아이와 함께하는 제3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 「시소(Seesaw)」의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글을 소개하고 있다. brunch.co.kr/@playwithaina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불안함과 성실함 사이
    오늘도 확진자 수가 200명을 넘었다. 3주 넘도록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추가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것이 더는 무의미해 보인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엄습하는 불안감에 수시로 확진자 수를 헤아리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아마도 생전 처음 겪는 일에 반쯤 패닉 상태였던 듯하다. 불안도 계속되면 익숙해지는지 지금은 그 수가 몇 백이 되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올봄의 경험이 떠오른다. 나는 사무실을 떠나 선정릉에 있는 합사에 파견을 나가 있었다. 설계사무소에서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면 합사 파견 자체는 그다지 낯선 경험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일 년에 한두 번은 합사에서 일을 했다. 사실 설계사무소 직원 대부분은 합사 파견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싫어한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짧은 시일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기에 야근도 많고 주말 출근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 반면 내게 합사는 별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장소만 바뀔 뿐 일하는 것은 어디서든 매한가지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난봄은 달랐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김진환은 올해로 7년차가 된 설계 노동자다. 서울대학교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조경을 전공했고, 라이브스케이프와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거쳐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에서 실무 경력을 쌓고 있다. 조경 외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곁눈질하며 서로 상충하는 것들의 이접을 통한 창발적 생성에 주목한다. 다양한 매체에 호기심이 많으며 특히 인쇄된 활자 묶음에 관심이 많다. 틈만 나면 책을 사 모으지만 정작 읽은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코로나19 캠퍼스 일기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위기 경보 단계가 ‘경계’로 상향되고, 일주일 뒤 대학 본부는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중국 여행 취소나 연기를 부탁한다. 국제 뉴스에서나 보던 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왔다니 교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소금물 가글과 마늘 섭취 등의 민간요법, 코로나는 더위에 약하다는 뉴스가 긴장을 이완시킨다. ‘대프리카’에 사는 것이 위로되는 순간이다. 오히려 달성군 도시경관과와 진행하기로 한 3학년 스튜디오 수업 준비가 더 걱정이다. 겨울방학 강의실에서 조경기사와 공모전 준비에 한창인 학생들과 2주 연기된 개강과 한 주 짧아진 방학을 안타까워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월 18일, 서른한 번째 확진자 발생. 가벼운 감기 정도로 생각했던 바이러스는 컬트 종교를 숙주 삼아 지역 사회를 초토화했다. 3월 8일 기준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6,1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한다. 조경기사 취득 캠프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습관처럼 몇몇 학생이 강의실을 서성인다. 모든 것이 정지한 유령 도시를 나홀로 헤쳐온 무용담을 나누고 있다. 멀찌감치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만나자는 위로와 함께 그들을 돌려보낸다. 며칠 뒤 대학 내 감염 사례가 전달되고, 그사이 새로운 이름을 얻은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은 심각 단계로 격상된다. 대학의 모든 출입구는 3주간 봉쇄됐다. 뉴노멀은 그렇게 시작됐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정해준은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를 졸업하고, 짧은 실무 경험 후 영국 셰필드 대학교 조경학과에서 문화경관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과에서 경관계획, 역사환경, 경관특성화 관련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기본을 되짚기, 문제를 잘게 쪼개기
    여러 자리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이나 어린이 놀이터와 관련해서 코로나19 시기나 그 이후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매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상대방은 ‘당신은 전문가잖아요’라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눈길을 피하며 “앞으로 고민해봐야죠”라고 답하지만 뭘 어디서부터 고민해야 하는지 어렵기만 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나는 너무 게으른가라는 자기반성의 나날이 이어지던 중, 뜻밖에 위안의 말을 듣게 되었다. 나보다 더 절실하게 답을 찾으며 미술관을 운영하는 지인이 지친 듯 이렇게 말했다. “지금 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명쾌한 답을 내놓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 아닐까요?” 단순히 오프라인에서 하던 일을 온라인으로 기계적으로 옮기는 것도, 마스크를 쓰고 오프라인 활동을 그대로 진행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온라인으로 옮기는 순간 의미 없어지는 활동도 있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오프라인에서 지속해야 할 것들이 있다. 또 온라인으로 옮겼을 때 생기는 한계도 많다...(중략) 김연금은 서울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다』(공저, 2009, 나무도시), 『소통으로 장소만들기』(2009, 한국학술정보), 『우연한 풍경은 없다』(2011, 나무도시)가 있다. 엮은 책으로는 『이어 쓰는 조경학개론』(2020, 한숲)이 있다.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위드 코로나 시대의 공원 사용법
    멈추면 보이는 것들 대유행의 경고는 과장이 아니었다. 서로를 조심하며 거리를 두어야 하는 재난 상황이 지속되면서, 코로나19는 우리 도시가 얼마나 감염병에 취약한지 체감하게 했다. 학교, 도서관, 실내 체육 시설이 장기간 폐쇄되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숨 돌릴 공간에 대한 목마름도 커졌다. 마음 편히 숨 쉬고 부족한 운동량도 채울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 생활 반경 안의 공원이 이렇게 필요했던 적이 없었다.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갈수록 실내 공간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탁 트인 도시공원에 대한 시민들의 갈망이 커졌고, 나 홀로 또는 가족, 친구와 함께 서울숲을 찾는 사람들도 증가했다.1 공원은 이른 새벽은 물론 늦은 저녁 언제라도 갈 수 있는 헬스장이 되고,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가 되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테이블은 야외 사무실이 되었다. 한적한 은행나무 숲길, 수국길의 좁은 산책로를 홀로 거닐며 자연과 거리를 좁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중략) 각주 1. 5월 극성수기(1일~5일) 서울숲공원 유동 인구는 총 139,969명으로, 일평균 27,993명이 공원을 찾았다. 대중교통 기피 현상 때문에 평일에도 주차장은 연일 만차였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설치 확대에 힘입어 이동 수단으로 자전거를 택한 사용자도 급증했다. 특히 예년에 비해 한강에서 유입되는 이용객이 늘어났다.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서울숲컨서번시는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서울숲공원 수탁 운영을 위한 전담 조직으로, 녹지 시설의 유지·관리 및 이용 프로그램의 기획·운영, 시민들과의 소통 업무를 책임진다. 공원이라는 공유 자산을 창조적으로 이용해 단순한 녹지 서비스 제공을 넘어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보라매공원에 헬리콥터가 떴다
    2020년 3월 25일 오후, 사무실에서 가까운 보라매공원을 둘러보러 갔다. 공원 입구에는 형형색색의 일년초가 하트 모양으로 심겨 있었다. 촌스러웠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공군사관학교가 이전한 자리에 생긴 보라매공원은 근처 동작구 신대방동 외에도 영등포구 신길동과 관악구 신림동, 구로구 구로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동네 사람들의 명소다. 공원 중앙에는 사관학교 시절에 운동장으로 쓰던 넓은 잔디밭과 주변을 도는 순환로가 있다. 공원 시설 중에서 순환로는 사계절 내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늦은 밤까지 떼 지어 걷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기이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날도 모처럼 풀린 날씨에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공원의 이른 봄 풍경 사진을 몇 장 찍고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헬리콥터가 땅으로 점점 내려오면서 소리는 더 커졌고, 아직 잔디가 자라지 않은 맨땅의 흙이 사방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가까이에서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다. 소음이 엄청나게 컸고 먼지로 사방이 뿌옇게 변했다. 보라매병원 쪽에서 구급차가 요란한 삐뽀 소리를 내며 다가왔고 다른 편에는 소방차가 막 도착했다. 평화롭던 공원이 순식간에 뉴스에 나올 법한 풍경으로 변했다. 먼지 때문에 환자를 이송하는 장면을 정확히 볼 수 없었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서울 남산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으로 일하고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에서 공부하며 연세대학교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오래 일하며 공부하고 싶다. 건강하게!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별의 안녕을 묻다
    그저 작은 점에 불과할 뿐이야 한동안 컴퓨터의 배경화면으로 썼던 사진 한 장이 있다. 흐릿한 지평선 너머 밤하늘에 떠 있는 티끌 같은 점 하나.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Curiosity)가 2013년 1월 31일 일몰 직후 촬영한 지구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블루 마블은 온데간데없고, 외로운 점 하나. 그래도 45억 년 동안 어림잡아 천억 명이 넘는 호모 사피엔스가 살다 갔는데, 그 찬란한 문명은 어디로 가고 고작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 그것도 가까운 이웃 행성인 화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풍경이라니. 드넓은 대양과 대륙, 광활한 숲과 사막, 수많은 도시와 마을들, 모두가 결국은 하나의 작은 점으로 수렴되고 마는 것이니, 지구의 모든 존재는 어쩔 수 없는 운명 공동체다. 그 많은 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강화된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된 이후로 이동할 때 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라디오 인터뷰 프로를 듣다가 어느 게스트의 설명에 귀가 쫑긋. “원래 지구에는 약 7조 그루의 나무가 있었대요, 그런데 지금은 그 절반이 사라졌어요.” 그렇구나. 물론 자연재해 같은 원인도 있었겠지만 사람들 때문에 사라진 나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어디 나무뿐이랴. 숲과 나무가 없어지니 터전을 잃은 동물들도 사라진 것이고, 그렇게 지구의 생태 균형이 깨진 것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최근 보고에 의하면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동물의 70%가 사라졌으며, 가장 큰 원인이 인간에 의한 서식지 침범이라고 한다.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Gaia의 입장에서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서 5만 년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고 증식하고 있는 악성 바이러스가 아닐지. 숙주의 신체를 망가뜨림으로서 결국은 자신도 소멸하고 마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중략) 박승진은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설계를 공부했다. 조경설계사무소 서안에서 오랫동안 설계 실무를 했고, 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겸임교수로 조경학 관련 수업을 맡고 있다.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가상의 벽, 블루스케이프
    2020년3월14일,여느 날과 같이 일을 하는 중에 회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코로나 확산으로 록다운lockdown을 시작할 예정이니 이틀 안에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통지였다. 일종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기에 동료들과 웃으며 2주 뒤에 보자며 작별을 고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7월에 도래한 코로나 2차 확산으로 멜버른 오피스의 직원들은 연말까지도 회사로 복귀하지 못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회사는 그동안 어떤 변화를 맞이했을까 내가 근무하는 하셀(Hassell)의 멜버른 본사는 록다운을 기회 삼아 오래전부터 계획했으나 쉽사리 시행하지 못했던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할 직원들을 위해 상담팀을 꾸리고 어떤 문제든 털어놓기를 독려하는 한편, 필라테스, 요가 등의 화상 프로그램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팀원 간의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 주·월간 화상 팀 미팅을 진행하는데 각종 음료와 간식거리를 집으로 배송해주고 코미디언을 고용해 방송을 중계하는 등 사기 진작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록다운이 장기화되자 구조 조정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운영, 마케팅, 비서직 등 재택근무 체제에서 역할이 현격히 축소된 이들, 계약직 디자이너들이 그 대상이 됐다. 조경팀에 갑작스레 인력 보충이 필요한 경우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기보다는 건축, 인테리어팀에서 도움을 받거나 다른 스튜디오(하셀은 호주 5개 도시와 호주 외 5개 국가에 스튜디오가 있다)의 인력을 빌려오는 방안을 채택했다. 통상 다른 스튜디오에서 인력을 빌릴 때는 비행기, 숙소, 이동 시간 소모로 많은 부대 비용이 지출되기 마련인데 재택근무 시대에는 홍콩에서 일해도 멜버른에서 일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기에 추가 지출이 없어졌다. 스튜디오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어디서 일하는지가 크게 중요치 않게 되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이홍인은 호주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다. 한국의 오피스박김, 호주의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현재 하셀(Hassell) 멜버른 오피스에서 BIM 모델링,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가상 현실 등 신기술을 조경 실무에 응용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 호모 언택트 도시
    코로나 시대의 건축, 도시, 조경 계획은 그 자체만으로 도시를 구제할 수 없다. 우리는 상업·업무 지구 중심으로 조직된 현대 도시 구조와 속도 중심으로 계획된 도로망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도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물리적 인프라의 재편과 시스템 변화는 필연적이며, 학제 간 융합을 통해 공간을 구성하는 새로운 파라미터(parameter)들이 나타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시는 더욱 진화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예상치 못한 호모 언택트(homo untact)의 삶을 이야기하고 경기 침체로 고통 받고 있지만, 현대 도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도시 공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상상해보자. 숲길 사이로 개인용 이동 수단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테헤란로를, 다양한 유닛의 발코니 정원과 개인 텃밭이 있는 한강변 아파트 단지를, 자동차와 차도가 사라지고 물과 숲으로 채워진광화문광장을, 순환형의 2호선 지하철 따라 달리는 공중 자전거 도로를.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더 나은 건강한 도시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곳에 우리의 역할이 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최근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와 세종대로 사람숲길 사업의 총괄을 맡고 있다. 조제라는 필명으로 아이디어 공모전 참여, 즉흥적인 기획, 조경 야화(夜話), 전시하지 않는 그래픽 작업 등 실무와 동떨어진 취미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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