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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들]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수화기 너머로 윤정훈 기자가 원고 청탁의 운도 떼기 전에 이번 원고는 무조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환경과조경에 다닐 때부터 OB 에디터 특집은 남기준 편집장이 종종 비장의 카드로 만지작거리던 회심의 한 방이었다. 이 이야기가 나오면 매달 특집 이슈를 발굴해내느라 지쳐 있던 편집부 풍경에도 화색이 돌았다. 환경과조경을 거쳐간 전설(?) 같은 에디터 중에 누구를 섭외할지 웃음꽃을 피우며 한창 이야기 하다가도, 언젠가 맞이할 400호 특집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기획을 접곤 했다. 메마른 편집 회의의 분위기를 생각만으로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던 특집에 섭외되다니 반갑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기대와 초조가 반쯤 뒤섞인 마음으로 메일함을 열던 에디터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 시절 나를 가장 설레게 한 연재 두 꼭지를 꼽았다.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고정희 박사의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2014년 1월호~2016년 12월호)는 국어국문학를 전공해 조경에 무지했던 나를 조경 전문 잡지 에디터로서 성장하게 해준 연재다.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는 특히 대학생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필자의 재치 있는 입담과 해박한 지식을 따라가다 보면, 나같이 조경에 입문하는 사람도 조경이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됐는지,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었다. 고정희 박사는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만드는 탁월한 구성력을 갖춘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100장면의 제목과 주제를 미리 기획하고 연재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치밀하게 이야기를 구성했는지 장장 3년에 걸쳐 연재하는 동안 처음 기획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후략) *환경과조경397호(2021년 5월호)수록본 일부 조한결은 기술과 예술 사이에서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만들어질 수있다고 믿는다. 서강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환경과조경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새로운 배움을 찾아 서강대학교 대학원아트&테크놀로지학과에 진학하며 뮤지엄 테크놀로지를 연구했다.현재는 양평군립미술관에서 교육·전시기획 학예사로 일하며 미디어아트 웹진 ‘앨리스온’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 [편집자들] 여전히 괜찮은 기억들
    오래된 설렘 “20대 초반에 내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방송인 곽정은이 『코스모폴리탄』 기자 시절을 두고 한 말이다. 기자 일이란 한 개인의 능력과 관심사, 의견을 드러내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식의 하나라는 것. 그로부터 두 달. 운명처럼 원고 청탁 전화가 왔다. 쿵. 6년 전 내 손길이 닿은 첫 번째 잡지를 손에 들었을 때의 설렘이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 했다. “뭘 쓰면 되죠?” 시작과 끝 시작과 끝에 대한 기억은 그 무엇보다 선명하다. 긴장되는 면접처럼 특별한 기억은 오래 남기마련이니까. 환경과조경에서의 시작은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 설계공모였다(2014년 8월호). 허리케인 샌디로 인한 피해를 더는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첫 출근을 했을 때 이미 페이지 구성을 마친 상황이었다. 공모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내색은 안했지만 공모에 참여한 비아르케 잉엘스(Bjarke Ingels)의 팬이었기에 이미 익숙한 내용이었다. 비아르케 잉엘스 그룹BIG의 설계안(‘BIG U’)을 담당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쨌거나 회사 적응이 조금이나마 수월했다. 운이 좋았다. 리질리언스(resilience)(회복탄력성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의 의미를 한정 짓는 느낌이다)가 화두에 오를 때면 잡지를 기획하는 이들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는 듯했다. 회의 테이블 한가운데 자리한 리질리언스의 변주된 모습만큼 앞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확신에서였을까. 꾸준히 잡지를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2016년 여름(전진형, ‘리질리언스 읽기’, 338호~343호)과 2018년 여름(‘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 363호), 2014년부터 2년에 한 번씩 리질리언스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했다. 『환경과조경』 에디터들은 확실히 어쩌다 검색된 완공작을 편하게 싣는 것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밖에서는 감사하다. 그런데 과연 잡지 밖 세상도 같은 얼굴로 상기되어 있을까. 안타깝게도 실무에서 회복탄력성이나 리질리언스가 언급되는 장면에 대한 기억이 없다. 점수를 높이기 위한 ‘친환경’을 붙인 유사 아이템 정도가 최선이었다. 니얼 커크우드(Niall Kirkwood)교수가 한 인터뷰가 떠오르곤했다. “…회복탄력성 등에 대한 전문가가 생겨났을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하버드 GSD의 설계 교육을 묻다”, 2015년 8월호) 그의 말처럼 “실무의 98%”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다. (후략) *환경과조경397호(2021년 5월호)수록본 일부 양다빈은 2014년 여름부터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환경과조경과 함께했다. 기술사사무소 렛(LET)에서 조경 설계의 기본을 배웠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땅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자 했다. 현재는 엘피스케이프(LPSCAPE)의 팀장으로 조경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강동구청 청사 조경이 있다.
  • [편집자들] 어디든 찾아갑니다, 조경계 동서남북
    원고를 청탁받고 조금 망설이기도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메일을 읽었다. 청탁문 중간의“당신에게 『환경과조경』은 어떤 잡지였으며, 조경이란 무슨 의미였나요?”라는 질문을 본 순간, 잡지사를 다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머릿속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당시를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딱 맞는, 철없는 시절의 풋내기 기자. 미숙했던 나를 되돌아보는 일이 이렇게 겸연쩍은 일일 줄이야. 그렇다. 20년 전쯤의 나는 『환경과조경』의 편집자로서 잡지를 기획하고, 전문가에게 원고를 청탁해 어떻게든 받아내고, 취재를 해 끙끙대며 글을 쓰고 또 교정을 보면서 매달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다. 결국 이 글은 환경과조경에 근무했던 시절에 대한 짧은 회고록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손에 들린 2021년의 『환경과조경』을 보면, 내가 만들었던 그 잡지가 맞는지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영문 제호, 판형, 두께, 서체, 사진 크기, 해외 작품의 수, 집중하는 분야 등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사진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드론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멋진 사진을 잡지 양면에 가득 차게 넣는 과감한 디자인을 보기 쉽지 않았다. 작품 취재라도 나가려면 사진 기자와 함께 슬라이드용 필름을 몇 통씩 챙겨서, 노출을 확인하고 필름은 얼마나 남았는지 중간중간 점검하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찍어온 사진은 현상을 해 두툼한 라이트 박스에 놓고 확대경으로 일일이 들여다본 다음, 그중에서 잘 나온 것을 골라 을지로에 있는 출력소로 보냈다. 그러면 출력소에서 사진을 스캔해 편집이 가능한 JPEG 파일로 전환해 주었다. 시간도 많이 들었고 사진의 질과 가능했던 편집 디자인의 범주가 지금과는 비교 불가다. 가끔은 구도가 적당하고 원하는 만큼 선명한 사진이 없어 난감하기도 했고, 스캔을 받다가 필름이 손상되어 필름을 제공해준 필자에게 한소리 듣는 경우도 있었다. 어쩌면 실제보다 조금은 과장되거나 포장되어 있을지도 모를, 지금은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는 기억들이 생생하다. (후략) *환경과조경397호(2021년 5월호)수록본 일부 조수연은 조경을 전공하고 환경과조경에 입사해 『환경과조경』, 『조경시공』 등의 잡지를 만들었다. 특허 동향 조사, 기술 이전, 모듈 화분 제작, 정원 만들기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지금은 휴론네트워크에서 드론 사진과 라이다 3D 맵핑을 이용한 생활(사회)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 표지 탐구
    표지는 잡지의 얼굴이다. 책을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이 닿는 곳으로, 매력적인 표지는 서점 매대를 지나는 사람의 발목을 잡아채 기어이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콘텐츠를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해, 표지에 해당 호의 주요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핵심 이미지를 담기도 하고 도면의 일부를 확대해 실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가로 폭과 세로 높이에 따라 정해지는 판형은 잡지를 소비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잡지는 들고 다니며 읽기 편하고, 커다란 잡지는 휴대는 어렵지만 사진을 시원시원하게 담기에 좋다. 올 8월 맞이할 통권 400호를 기념해, 39년 동안 독자들을 마주했던 396가지 『환경과조경』의 얼굴들을 소개한다. 표지 변화상은 물론 편집자들이 애정하는 표지와 디자이너의 의도도 살펴볼 수 있다. *환경과조경396호(2021년 4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부
  • 책등 탐방
    책꽂이에서 꺼낼 때 가장 먼저 손에 잡히는 부분, 두께를 가늠하게 하는 책등은 종이책의 물성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서가에 나란히 꽂힌 책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독서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손끝으로 가볍게 책등을 주르륵 훑듯 1982년부터 2020년까지의 『환경과조경』을 빠르게 지나 보자. *환경과조경396호(2021년 4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부
  • 조경가 최영준
    이웃을 향한,이웃을 위한 조경_최영준 열두 가지 해시태그_최영준 낙관주의 경관_남기준 허들을 뛰어 넘는 젊음_이치훈 상하이 믹시몰 설계의 낮과 밤_타이하오 “고정되는 순간 살아있다는 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특집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첫 문장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를 최영준의 말에서 찾았다. 제3회 젊은 조경가로 선정된 그의 작업은 특정 단어나 스타일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는 미술관 중정에 선 파빌리온부터 상업 광장, 기업 휴게 공간, 한강변을 따라 흐르는 긴 보행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설계 철학이 무엇이냐 물으면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하고 싶어 한다. 열두 가지 해시태그는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설계 태도를 엿볼 수 있는 키워드다. 독특한 성정으로 얻은 별명, 일종의 다짐, 우연히 발견하게 된 조경의 특성 등에 얽힌 경쾌한 에피소드를 통해 그의 기호와 설계 경향을 살필 수 있다. 남기준의 인터뷰는 조경가로 성장해가는 그의 발자취를 좇는다. 함께 걸어가다 보면 설계사무소의 새로운 운영 방식을 고민하는 혁신적인 리더의 면모를 목격할 수 있다. 특집을 여닫는 에세이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가 유일하게 지키려 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진부한 표현이지만 또 그보다 순수한 말이 없는 것 같다는 그의 이야기가, 조경가를 꿈꾸는 이들의 마음 한구석을 따스하게 밝히기를 기대한다. 진행 남기준,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최영준
  • 이웃을 향한, 이웃을 위한 조경 [email protected]
    설계 철학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펜을 들었는데, 솔직한 마음으로는 “철학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쓰고 싶다. 어떠한 특성으로 규정되지 않고, 스스로도 규정할 수 없는 새로움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선언적 목표를 의도적으로 피하며 아직은 열린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자 젊은 조경가로서의 오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헤드라인을 적어야 한다면, “조경은 작가도 설계도 이론도 아닌 작품으로 말하는 것.” 조경은 단독 작업이 될 수 없다. 팀원과 협력해 빛나야 하는 작업이고, 설계만이 아닌 여러 전문가와 발주처 그리고 책임감 있는 시공이 있어야 완성도 높은 장소가 지어진다. 실천력 없는 조경 이론은 감흥과 영향력을 줄 수 없음이 드러난 지 이미 오래다. 미디어가 활성화되고 장소의 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대하면서, 하나의 완성도 있는 조경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울림이 되는 “작업이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질문은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작품으로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2018년 초, 3개월간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를 마무리한 말이 기억난다. “다음에 이렇게 (내 작업을) 돌아볼 기회가 있을 때는 (설계가 이렇다 저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의 이웃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를 바라보며 연재를 마친다”(『환경과조경』 2018년 3월호, p.103 참조). 내가 조경 작품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웃들을 향한, 이웃들을 위한 이야기이고 싶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최영준은 서울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피스박김, PWP, SWA 그룹 로스앤젤레스 오피스 등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14년 디자인을 통한 희망적 가치와 사회적 책무 구현을 목표로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를 공동 설립했으며, 2018년 서울 오피스를 세워 국내외 다양한 조경 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상하이 믹시몰과 공원, 삼성 반도체 실리콘밸리 본사 캠퍼스, 광저우 반케 클라우드 시티 등이 있다. 2019 한강변 보행네트워크 조성 설계공모에 당선되었고, 용칭 지구로 2020 미국조경가협회상(ASLA Awards) 도시설계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 최영준
  • 열두 가지 해시태그
    열두 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조경가 최영준의 작품을 새롭게 돌아본다. 각 해시태그에는 그의 설계 경향, 조경에 대한 믿음과 기호가 담겨 있다. #맥시멀리스트 #서자도내자식 #강박적쾌감 #레퍼런스매칭게임 #홀로서기 #센터본능 #팀플레이네버루즈 #함께걷는파트너십 #파빌리온심기 #편식은금물 #짜증유발자 #완공카타르시스 #맥시멀리스트 설계할 때 직관적인 답이 초반에 떠오르기도 하지만,그것을 완전히 신뢰하진 않는다. 하나의생각에 갇혀 있으면 발전이 어렵다. 그야말로 갇히게 된다. 적어도 세 가지의 다른 생각이필요하고 때론 무리해서라도 더 많은 대안을 만든다. 학생 시절부터 불렸던 맥시멀리스트라는별명은 우회 경로를 반복적으로 탐색하는 내 설계 전략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좋은 대안이 나오기도 하고, 각 대안을 평가하고 발전시키면서 프로젝트의 내러티브와 상상의폭이 확장된다. 설계안을 발표할 때 모든 대안이 드러나지 않아도 하나하나의 시도에서 펼쳐진이야기가 최종안에 담겨 풍부한 결과로 전달되는 것을 경험했다. 하나의 아이디어는 도면이나 모형에 담겨 대상지에 놓이기 전까지 무형의 상상에 그친다. 아이디어는 아주 간단한 형식으로라도 표현, 평가, 수정되는 경로를 거쳐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은 알 수가 없으며 여러 갈래의 길을 걸어가 본 사람만이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안다. 가장 성공적인 조경 작업의 열쇠는 넓게 확장된 가능성의 그림을 그려보고 이를 가장 적절한 강도의 제안으로 좁히는 데 있다. 발주처의 요청으로 여러 대안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작업을 자청하는 편이다. 초기 계획뿐만 아니라 상세 디자인에도 적용하는 원칙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버려지지않는다. 다른 프로젝트에서 비슷한 조건이 주어지면 그대로 활용할 수 있고, 팀의 ‘어휘’가 된다. 경험적으로 축적된 교훈과 어휘는 다음 논의에서 더욱 성숙한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한다. 아이디어는 죽지 않는다. 잠시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일 뿐, 언제든 빛을 볼 수 있다. 대안은 서로 다를수록 좋다. 형태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를수록 좋다. 팀원들이 저마다 다른 안을 발전시킬 때 다름이 만드는 풍부함을 강력하게 경험할 수 있다. 오늘도 각자 다른 안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비평과 질타 섞인 피드백을 교환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안을 다듬어 가장 빛나는 안을 1번 타자에, 그 녀석과 가장 다른 대안을 2번에 세운다. 그리고 그들에게 외친다. 굿럭!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결정된 안이 결국 좋은 선택이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아쉬움이 남는 디자인이 있다. 선택받지 못해 빛을 발하지 못한 아이디어들,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서자와도 같은 제안이 몇 가지 있다.픽셀 콘셉트로 조성된 ‘광저우 반케 클라우드 시티 2단계Vanke Cloud City Phase 2 Mi Cool Display Area’(『환경과조경』 2016년 7월호, pp.44~55 참조) 중정에 디자인을 강조하는 요소이자 이용객의 상호 작용을 돕는 다목적 시설물을 제안했다. 해가 잘 들지 않아 식물이 자라기 힘든 대상지에 수목의 그늘과 공간감을 대신하는 수직적 요소다. 소방도로를 피하면서도 각 중정의 공간감을 강조하며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살리는 제안이었다. 발주처의 긍정적인지지를 받았지만 공사비가 삭감되어 실현하지 못하고 소극적 제안으로 변경되었다. #서자도내자식 ‘치바오 믹시파크(Qibao MixC Park)’는 압도적인 크기의 대형 오피스 건물을 녹지 체계 안에 녹여내는 프로젝트였다. 유난히 날 선 건물 입면의 루버를 조경과 조화를 이루게 하면서도 남북에 위치한 녹지와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였다. 루버의 평행선이 만드는 선형의 질서와 유선형의 녹지를 혼합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대안이 있었는데, 최종안보다 온화하면서도 과감하게 대지를 감싸는 제안이자 상이한 두 가지 형태를 잘 조화시킨 안으로 기억한다. 최근 제안서를 냈지만 건축적 제안이 중심이 되어 기회를 놓친 ‘상하이 타임스퀘어(Shanghai Times Square)’가 완공된 것을 보았다. 치바오 믹시파크에서 실현하지 못했던 이중적 형태 전략이 건물의 외피부터 인테리어, 조경에까지 적용되어 있었다. 아쉬웠지만 미움받던 서자가 입신양명한 것처럼 뿌듯했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 최영준
  • 낙관주의 경관
    문화적 지평을 확장하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지원서를 천천히 다시 읽어봤습니다. 청소년기에 조경 분야를 접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능 성적에 맞춰 학과를 정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청소년기라고 했지만, 조경을 알게 된 시점은 수능을 본 후예요. 본래는 건축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프랭크 게리가 만든 건물을 봤죠.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로 기억합니다. 이런 건물이 있다니 하며 놀랐어요. 건축의 멋에 취한 거죠. 여담이지만 미국에서 일할 시절 그 건물 건너편에서 2년 정도 살기도 했습니다.” -그럼 조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간혹 고등학교 선생님이 추천해주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요. “친구의 아버님이 임승빈 명예교수님(서울대학교)과 지인이었어요. 그때 조경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건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오래전부터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던 거군요. “네. 어려서부터 미술과 발명, 창작이 접목되는 분야를 좋아했어요. 17살 무렵에는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분명한 목표도 설정했고요.” -그래서인지 학부생 시절부터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했어요. “군대에서 제대한 후 복학하기 전에 처음으로 학생 공모전에 도전했어요. 공모전 참여가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조경가로서 역량을 배양할 수 있는 유용한 경험 도구라는 걸 깨달았죠. 선배들의 도움으로 조경설계사무소 소속으로 공모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세종문화회관 주차장 공원화 설계공모’,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사업 국제 설계공모’,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국제설계공모’, ‘마곡 워터프런트 설계공모’ 등에 참여했죠. 프로젝트 성격에 따른 특성도 배우고, 건축과 토목 등 다른 분야 전문가와 교류하는 방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제2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인 박경탁 소장(동심원조경)이 ‘제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수상자였는데, 최영준 소장은 ‘제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셨네요. “제 나름대로 의미가 커요. 환경조경대전은 하나의 관문이었어요. 설계를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장래를 걸 법한 재능이 있는지 판단하고 싶었어요. 그때가 2007년인데 의학전문대학원, 약학전문대학원이 생겨나던 때였거든요. 마침 제가 수학을 좋아하고 잘해서 옆에서 바람을 넣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학원 가서 조금 공부하면 인생이 바뀐다는 식의 얘기였죠. 솔직히 순간 흔들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이 공모에서 상을 받으면 평생 조경을 해야지, 밑거름을 다질 겸 유학도 가야지 하고 다짐했죠.” -객관적 평가를 받아보려던 시기였네요. 각오가 대단했으니 굉장히 열심히 했겠어요. 어떤 작품이었나요? “졸업반 여름 내내 학교에서 살았어요. 서울에 막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해서 녹지 시스템을 구상했는데, 교통 인프라와 오픈스페이스를 결합한 창의적 시도를 했다는 평을 받았죠. 이후로도 모의고사를 본다는 마음으로 6개월에 한 번씩은 공모에 도전해보려고 했어요.” -유학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당시 설계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유학을 가기도 했죠? “저 역시 그래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최영준 소장 세대의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본격적 2세대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요. “21세기의 첫 학번인데, 당시 활발히 일어난 도시 개발과 함께 진행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죠. 아날로그 작업에서 디지털 작업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전통적 조경과 차별되는, 도시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는 조경의 이론적, 실천적 전이가 일어나기도 했죠. 이런 변화를 지켜본 덕분에 폭넓은 시야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런 만큼 좋은 설계가 무엇인지 더 궁금해졌고요. 폭넓은 경험과 배움을 기대하며 유학길에 올랐다고 볼 수 있겠네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유펜, Upenn)에서 좋은 설계가 무엇인지 답을 구했나요? “답까지는 구하지 못했지만, 조경 설계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었어요. 대형 신도시를 계획하고, 미시적 생태계의 구성 원리를 이용해 도쿄 만 기반 시설의 미래를 계획하기도 했죠. 순수 기하의 집적을 통해 조직되어 작동하는 옥외 공간의 표면을 만드는 실험적인 설계를 하 기도 했고요. 개념적, 규모적 한계나 문화의 국경 없이 조경 진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적용해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특히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과 교류하다 보니 문화적 지평을 확장할 수 있었어요. 졸업 무렵, 친한 동료들, 또 강사들과 팀을 이뤄 뉴욕의 재개발지를 대상지로 2년마다 신진 건축가를 선정하는 공모전에 참가했어요. 기능을 상실해 방치됐던 뉴욕 브롱크스(Bronx)의 송수교를 생태와 문화의 인프라로 재생시키는 안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대상을 수상하여 신진 건축가의 타이틀도 얻었죠.” -표정에서 당시의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유학 중 힘든 점은 없었나요? “물론 고생도 했죠. 특히 첫 학기에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전투력은 최고였던 시기라 포기할 줄을 몰랐죠. 첫 학기가 끝난 뒤 두세 달 혼자 작업을 더 하기도 했으니까요. 노력한 게 아까워서 당시 수업 교수였던 제임스 코너에게 결과물을 메일로 보내기도 했어요. 답장은 안 왔는데, 6개월 뒤에 뜻하지 않은 연락이 왔죠. 전 세계 건축, 도시, 조경 관련 대학의 졸업 작품 중 학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을 2년마다 경쟁시키는 ‘아키프릭스 인터내셔널(Archiprix International)’이라는 공모가 있어요. 그 공모에 유펜 디자인 대학원 대표로 참가하라는 소식이었죠. 본선 최종 결선작으로 선정되어서 캠브리지 MIT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고, ‘바르셀로나 유럽 조경 비엔날레(European Barcelona Biennial of Landscape Architecture)’에 출품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지네요. “코펜하겐 북항을 대상지로 한 프로젝트였어요. 녹지와 도시 공간의 관계를 실험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는데, 도시의 구조와 정체성을 녹지 공간이 주도적으로 끌어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아서 기뻤다기보다, 설계 과정에서 무척 헤맸던 프로젝트인데 노력하면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고 누군가가 그걸 알아봐 줬다는 게 감사했어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오기로 끝까지 파고 파다보면 뭐가 되는구나 생각하게 됐죠. 당시 맥시멀리스트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가지 작업을 많이 했거든요. 뭐든 적당히 하는 데서 멈추지 못했죠.” -한계에 그렇게 대처했군요. 파고 파다 보면 결국 물이 나온다는 마음으로, 물이 나올 때까지 팔 각오로. “요즘엔 몸이 안 따라줘서 못 하고 있지만요.”(웃음)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 남기준
  • 허들을 뛰어 넘는 젊음
    최영준과의 첫 협업은 SoA(Society of Architecture)가 설립된 2011년 세종시 ‘대통령 기록관 건립 설계공모’였다. 사업비 1,1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로 대형 건축사무소들의 리그나 다름없었다. 우리뿐 아니라 국내 상위 5개의 건축사무소가 최종 계획안을 제출했다. 결과는 낙선. 10년이 지나 그는 ‘젊은’ 조경가상을 수상했지만, 그때의 SoA와 최영준은 진짜 젊었다. 당시 최영준은 미국 SWA에서 근무하며 업무 외 시간을 협업에 투자했다. 미국과 한국의 시차를 활용한 강도 높은 작업이었다. 지금까지도 그와의 협업에서 늘 프로젝트에 대한 높은 수준의 헌신과 집중력을 느낀다. 2014년 그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를 창업했고 지금까지 SoA와 17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건축이 닫아서 만드는 공간이라면 조경은 열어서 만드는 공간이다. 최영준은 늘 닫힌 공간인 건축을 열어내는 대지의 전략을 제안한다. 건축과 건축이 아닌 것 사이를 열고, 대지와 대지 외부를 열어낸다. 신촌 파랑고래, 내포-해미 세계 청년문화센터, 인천 서구 커뮤니티센터, 춘천반다비 국민체육센터 모두 건축을 대지 내외부로 열어내는 조경 전략의 승리로 거둔 프로젝트다. 그의 전략은 설계 과정에서 건축에 과감히 개입한다. 신촌 파랑고래의 경우 건축 설계 공정이 약 60% 진행된 시점에서 건축의 배치를 남북으로 뒤집자는 제안을 했다. 동서 방향으로 좁고 긴 도시공원 한가운데 북쪽으로 배부른 형태의 건축을 남쪽으로 배부르도록 바꾸자는 것이었다. 배치를 변경하자 대지 내외부의 관계 설정이 한층 논리적으로 읽혔다. 최영준은 건축에서 보지 못하는 대지의 가능성을 치열하게 읽어내고 관철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원예나 식재 계획과 구분되는, 공간의 구조를 계획하는 조경가의 면모다. … (중략) 이치훈은 2011년 강예린, 정영준과 SoA(Society of Architecture)를 설립했다. 건축의 특수한 상황을 만드는 역사, 기술, 환경, 사회적 관계와 그 배경에 호기심을 갖고 개인적, 공적 범위에서 삶의 양식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2015년 현대카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 당선됐고, 문체부가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2016년에는 제주 생각이섬으로 김수근 프리뷰 어워드를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신촌 파랑고래, 서울로 7017의 윤슬이 있으며, 통의동 브릭웰로 2020년 서울시 건축상,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