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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루미온과 어른의 사정
    루미온Lumion은 정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프로그램이다. 1998년의 레이던Leiden이었던가. 네덜란드의 두 청년이 새로운 3D 그래픽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회사를 창업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억들이 헤비메탈과 스타크래프트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던 고등학생의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지, 후에 설계에 몸담게 된 나의 이중 자아가 만들어낸 과대망상의 편린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도 루미온은 내게 마치 호머 심슨의 도넛처럼 도파민 가득한 그런 존재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브이레이V-ray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프로그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어른의 사정을 투영하는 정말이지 대단한 골칫덩어리다. 어른의 사정이란 이런 일들이다. 공허의 심연에서 뭐라도 꺼내 15주의 커리큘럼을 채워야 하는데, 루미온을 설명하고 나면 불과 30분밖에 지나지 않는다.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루미온을 설명하며 한 시간을 넘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나면 왠지 민망해져 낯을 좀 가리다 수업을 일찍 마치게 된다. 아마도 학생들은 일찍 마친 수업을 반기다가도 이내 캠퍼스를 방황하며 내 전문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다시는 입에 올리기도 싫은 브이레이를 또 장황하게 설명하게 된다. 복잡한 용어를 잔뜩 사용하며 코 묻은 애들 사탕 뺏는 격이다. 별 볼 일 없는 내 자아를 감추며 시간을 때우기에도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하지만 예민한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쌓이면 윤곽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저 모른 척하고 싶을 뿐이지. 로컬 일루미네이션과 글로벌 일루미네이션 자, 렌더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실시간 렌더링과 오프라인 렌더링. 실시간 렌더링은 말 그대로 루미온이나 트윈모션Twinmotion처럼 리얼타임real-time(실시간)으로 돌아가는 독립 프로그램이다. 오프라인 렌더링은 스틸 컷still cut, 즉 정지 화면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렌더링 버튼을 누르고 점심을 먹고 오면 되는 브이레이 같은 것들 말이다. 당연히 실시간 렌더링은 직관적이고 빠르지만 퀄리티가 좀 애매하고, 오프라인 렌더링은 퀄리티는 좋지만 시스템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따라서 루미온과 브이레이 중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에 대한 논의는 정말 최고로 신나는 화젯거리다. 이 주제에 대해서라면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음악을 들으며 밤새라도 술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술집에 가면 갑자기 화제를 돌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열을 올린다. 진심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다. 그림 1은 로컬 일루미네이션local illumination(LI)의 예시다. 그림 2는 브이레이를 사용한 글로벌 일루미네이션global illumination(GI)의 예다. 렌더링 프로그램을 구분하는 요소는 크게 조도 시스템, 재질, 소스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조도 시스템’이다. 루미온은 실시간 작업 시 주 조도 시스템으로 로컬 일루미네이션을 사용하며, 렌더링 단계에서 여러 필터를 활용해 그 단조로움을 보완한다(그림 3). 그래서 대체 로컬이니 글로벌이니 하는 게 뭐냐고? 이제 어른의 사정이 이어진다. 아주 장황하게.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나성진bradla7@gmail.com
  • [공간잇기] 숨겨진 시간의 이야기
    무심히 변해가는 도시 우리는 유럽의 어느 나라를 여행할 때면 부러워하곤 한다. 유럽의 도시는 옛 멋을 간직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이야기를 덧입혀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건축가 유현준은 역사가 깊은 도시들은 마치 여러 장의 트레이싱지 그림이 쌓여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1역사가 깊은 도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호 관계를 조절하며 누적된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 깊은 멋을 더한다. 삶의 흔적을 시대에 맞게 쌓아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우리 도시는 어떨까. 대한민국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도시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평범한 일상이 시간이 지나 추억이 되고 그 이야기가 쌓여 특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며 사는 듯하다. 흔히 한국의 도시가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 비해 건축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이유를 오래된 건축물이 없어서라고 설명한다. 서울은 5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수많은 트레이싱지에 시대의 켜를 남기며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온,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 숨 쉬던 역사 도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듯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긴 고즈넉한 골목길을 송두리째 없애며 개발하고 있다. 골목은 ‘땅에 새겨진 문양’이라는 의미의 지문地紋 혹은 ‘땅의 이야기’라는 뜻의 지문地文이라고 했다.2건축가 승효상의 이 말처럼, 골목은 우리 윗세대가 긴 세월 삶을 가꿔온 터전이 있는 곳을 의미하지, 그 땅을 갈아엎은 뒤 새로 지어 올려 장소성이 해체된 아파트 단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시계획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오래된 건물의 경제적 가치는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며, “활기 있는 도시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아 흐르는 세월 속에서 유지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3오래된 공간의 잠재력은 사회·역사적 맥락뿐 아니라 소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공간 속에 새겨진 수많은 시간의 이야기들이 모여 도시의 다양한 지층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거창한 물음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 부모 혹은 조부모가 살았던 동네, 아니 자신이 태어난 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도시 공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의 켜를 흔적도 없이 파괴하고 또 새로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삶의 흔적 몇 년 전 동네 연구를 하던 중 만난 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재개발이 추진되던 그 동네는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오래된 마을이었다. 주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며 할머니의 일상을 몇 주간 함께하며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다세대 빌라에 살고 있었고, 그 빌라가 작은 마당 딸린 주택일 때부터 40년 넘게 같은 터에 거주해온 지역 원주민이었다. 시골에서 시집와 처음 살게 된 서울 집에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자식 셋을 모두 공부시켜 출가시켰다는 자부심이 컸다. 집 앞 골목 한 귀퉁이의 한 평 남짓한 땅에 상추와 깻잎 농사를 지어 이웃과 나눠 먹는 것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살아온 집과 동네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과 달리 할머니는 재개발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의문이 든 나는 며칠간 할머니의 일상을 관찰하며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1.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을유문화사, 2015, p.146. 2. 승효상, 『지문: 땅 위에 새겨진 자연과 삶의 기록들』, 열화당, 2009, p.79. 3. 제인 제이콥스, 유강은 역,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2010, p.272.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 10년간 생활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생활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 한국인의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SOM 뉴욕 지사, HLW 한국 지사, GS건설, 한옥문화원,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 한국인의 참다운 주거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 ‘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서준원gongganikki@gmail.com
  • [북 스케이프] 이타심의 정원, 데카메론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1재앙이 닥친 듯한 2020년 초, 일상이 멈췄다. 원인도 치료법도 모를뿐더러 언제 어떻게 옮을까 무섭고, 나도 모르게 전파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감염의 공포는 모두를 멀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과학이든 종교든 믿고 의지할 곳을 찾거나 비방을 일삼고 괴담에 휩쓸려 어리석은 짓을 한다. 한편에서는 전염병을 다룬 문학 작품에서 위로를 찾는다.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든, 허구의 사건이든 작가들은 참담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흑사병이 창궐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페스트La Peste』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책 속 194X년 알제리의 오랑에 앞서 이를 겪은 1348년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보자. 『데카메론Decameron』2은 이탈리아의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1450년부터 1453년 사이에 집필한 책으로, 몇 년 전의 재난을 회고하는 형식이다. 우선 피렌체에서 페스트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일곱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도시를 잠시 벗어나 인근 빌라에 가게 된 연유가 소개되고, 이어 이들이 열흘 동안 지내며 돌아가면서 나누는 백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에서 그리스어로 ‘10일 동안의 이야기’라는 뜻을 담은 제목이 유래했다.3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을 담은 백 개의 이야기도 흥미로우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인 정원을 눈여겨보자.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황주영juyounghwang@gmail.com
  • [에디토리얼] 아날로그의 반격
    디지털 라이프의 한계와 그 바깥에 실재하는 아날로그 세계의 견고한 미래를 구슬 꿰듯 엮어 설명하는 데이비드 색스David Sax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어크로스, 2017)은, 종이 잡지의 운명을 걱정하는 잡지 편집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준다. “디지털 경험에는 잉크 냄새도, 바스락바스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손가락에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도 없다. 이런 것들은 기사를 소비하는 방법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패드로 읽는다면 모든 기사가 똑같아 보이고 똑같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쇄된 페이지에서 인쇄된 페이지로 넘어갈 때는 그런 정보의 과잉을 느끼지 못한다”(215쪽).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잡지는 이제 온라인으로만 존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잡지나 인쇄물처럼 디지털화가 가능한 사물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그러나 색스가 촘촘히 관찰하고 있듯이, 새로운 옷을 입은 아날로그가 디지털 시대의 일상에 반격을 가하고 있는 현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레코드판과 필름 카메라가 다시 유행하고 투박한 몰스킨 노트가 히트 상품으로 부상했다. 놀랍게도 새로 창간해 성공한 종이 잡지들도 적지 않다. 지난 2월 6일, 리뉴얼 3기 신임 편집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환경과조경』의 새 ‘절친’이 된 김충호 교수(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오현주 소장(안마당더랩), 최영준 소장(Lab D+H), 최혜영 교수(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는 『환경과조경』이 전문지로서 지향해야 할 비전과 아날로그 종이 잡지로서 갖춰야 할 매력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환경과조경』을 비롯한 거의 모든 건축, 조경, 디자인 잡지가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은 똑같다. 더 이상 잡지를 사지 않는다는 것. 정기구독자가 줄지 않으면 다행이다. 랜드진Landzine 같은 디지털 잡지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웬만한 근작들의 도면과 사진을 거의 실시간으로, 게다가 ‘공짜로’ 볼 수 있는 시대. 공들여 편집한 온라인 잡지 형식이 아니더라도 핀터레스트Pinterest처럼 이용자가 스크랩하고 싶은 이미지를 포스팅하고 다른 이용자와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들이 디자인 잡지의 역할을 대신한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최근 작품을 가장 쉽게 전파하려면 적절한 해시태그를 달아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리면 그만이다. 『환경과조경』은 과연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전문지로서의 지향점에 대해서는 편집위원들의 의견이 조경 경계의 확장과 해체 대對 조경 영역의 심화와 내실화로 갈렸지만, 종이 잡지로서의 매력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일치했다.『 환경과조경』의 경쟁 상대는 랜드진,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이 아니라는 것. 데이비드 색스가 말하듯, 이미 영구적인 현실이 된 것 같던 디지털 라이프가 아날로그의 반격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비용이 큰 아날로그에 다시금 관심과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는 답은 오판일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모니터 속의 디지털 잡지는 도달해야 할 목표도, 신기한 물건도 아닌, 일상의 기본값에 불과하다『. 환경과조경』이 포착해야 할 지점은 아날로그가 주는 ‘진짜’의 욕망과 즐거움이라는 게 편집회의의 잠정적인 결론이었다. 더불어 편집위원들은 머지않은 미래, 2022년 7월이면 창간 40주년을 맞는 『환경과조경』이 하나의 조경 잡지를 넘어 한국 조경의 어제를 저장하고 오늘을 기록하는 생생한 아카이브archive임을 일깨워주었다. 아카이브로서『 환경과조경』의 역할은 발굴과 저장, 기록과 해석을 가로지르며 당대의 조경가와 작품에 조경사적 위치를 부여해주는 일일 것이다. 마침 이번 달의 특집 지면은 “공원 아카이브, 기억과 기록 사이”이다. 서울의 공원 아카이브를 구축해온 자발적 연구 집단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의 글 일곱 편과 유청오 작가의 사진으로 꾸린 이번 기획이 조경 아카이브의 비전과 역할, 그 동향과 향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달에는 알릴 소식이 유달리 많다. 아쉽게도, 2015년 3월부터 무려 5년간 이어온 주신하 교수의 인기 연재 ‘이미지 스케이프’가 이번 호 60회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눈 밝은 독자들은 짐작하셨겠지만,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표지에 그의 드론 사진을 담았다. 조경가 김창한의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도 3회 연재를 마친다. 도시공간 연구자 서준원의 꼭지 ‘공간잇기’가 이달부터 시작된다. 사라져가는 공간과 삶의 흔적을 재발견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펼쳐낼 새 지면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곽예지나 기자가 『환경과조경』 편집부의 내일을 이끌 새 식구로 합류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 배정한jhannpae@snu.ac.kr
  • [이미지 스케이프] 모자이크 스케이프
    이번 사진은 어떻게 할까? 늘 원고를 쓸 때마다 하는 고민이지만, 이번 사진은 좀 더 특별한 느낌이 드네요. ‘이미지 스케이프’는 2015년 3월 ‘이미지로 만나는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에코스케이프Ecoscape』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습관처럼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던 제 모습을 본 남기준 편집장이 연재를 제안했는데, 사진 한 장과 관련된 짧은 글을 쓰면 된다는 이야기를 별 고민 없이 덜컥 수락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연재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채 몇 달이 안 걸리더군요. 시작할 때에는 한 3년쯤 지나면 사진과 글이 어느 정도 쌓일 테니 그걸로 개인적인 기념 책자라도 만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당연히 연재도 그때쯤 마무리할 생각이었고요. 그런데 습관이란 게 역시 무섭습니다. 3년이 지나고도 계속 다음 달에는 무슨 사진으로 글을 쓰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 이번 글이 5년을 꽉 채운 60번째입니다. 뭔가 완결된 느낌을 주는 숫자 60. 그래서 이번에는 그동안 ‘이미지 스케이프’에 소개했던 사진들을 모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럴듯한 모자이크가 될 것 같았거든요. 이미지 모자이크 기법을 활용해서 작은 이미지들을 모아 큰 이미지를 만들면 좀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재된 사진만으로는 큰 이미지를 만들기에 부족해서,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좀 더 추가했습니다. 잘 안 보일 수도 있는데, 실눈(?)을 뜨고 좀 뒤로 물러서서 보면 철원역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철도를 찍는 제 모습이 살짝 보일 겁니다. 아쉬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이번 사진과 글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사진과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소통할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막상 연재를 마치려고 하니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네요. ‘이미지 스케이프’를 통해 잠시나마 휴식과 위안을 가진 적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사진과 글에 관심 가져 주신 독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주신하sinhajoo@gmail.com
  •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파이프라인
    투박하고 빈티지한 분위기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며, 카페와 요식업계 실내 디자인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숨겨졌던 설비들이 외부로 노출되면서 디자인 요소로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 하나로 다양한 시설의 뼈대를 이루지만 마감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철재 파이프를 활용한 시설을 소개한다.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제비어린이공원의 파이프 조형물이다. 조형물은 여섯 개 구간으로 구분되며, 각 구간은 위치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담는다. 아치구간은 공원 후면 진입부에 자리하는데, 철망설치구간의 좌측과 더불어 동선을 가로지르는 입구 역할을 한다. 파이프가 땅 밑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도록 구조물 끝점을 나란히 배치했다. 아치구간과 게이트구간은 안전사고를 고려해 어린이가 쉽게 매달릴 수 없는 높이와 두께로 설계했다. 철망설치구간은 녹지 안에 위치하는데, 반투과식 철망을 파이프 사이사이에 설치해 뒤편의 놀이터와 시각적·심리적 분리를 꾀했다. 파이프와 나란히 놓은 안개분수는 관수에 활용될 뿐 아니라 폭염 시 놀이터 주변의 온도를 낮춘다.소리설치구간은 놀이 시설로 진입하는 동선 중 가장 넓은 곳에 있다. 바람이 불면 스테인리스 각관에 스테인리스 파이프가 부딪쳐 소리가 나는데, 각기 다른 길이의 파이프가 다양한 높낮이의 음을 낸다. 벤치구간에는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세 겹의 파이프를 나란히 배치했다. 한여름 열에 의한 화상을 입지 않도록 파이프를 목재로 감싸 디자인의 연속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휴게 시설로 충분히 기능하게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3호(2020년 3월호)수록본 일부 김창한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했다. 기술사사무소 렛(LET)을거쳐 조경그룹 이작에서 실시설계 내역실을 이끌고 있다. 작은 교량하부 공간부터 도시 기반 시설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현재는 실시설계 디테일 제작과 내역 실무에 집중하고 있다. 주요작업으로는 신한은행 진천연수원, 제비어울림공원, 충북혁신도시,의정부고산지구, 진주 영천강 천변 특화설계 등이 있다.
    • 김창한gro13rich@nate.com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초연결 사회
    초연결 사회의 도래 2015년,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뉴욕 생활을 마천루 위에 남기고 조금은 우울한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듬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87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인생 최고 몸무게를 빚어내고야 말았다. 키 175센티미터 성인 남자의 표준 몸무게가 67킬로그램이라고 하니 대략 20킬로그램이나 초과해버린 셈이다. 아마도 마저 청산되지 않은 유학 생활의 감정의 잔재와 용산공원 진행자로서 겪는 상투적 무력감들 그리고 한국 음식에 대한 오랜 갈증이 뒤섞여 폭식과 과도기적 알코올 중독으로 폭발했던 것 같다. 2018년, 무거운 생활을 청산하고자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예상처럼 세 달도 못가 그만뒀다면 여전히 과체중인 미래 생명체로 핫도그를 손에 쥐고 강남대로를 활보하고 있겠지만, 유튜브의 발달과 자기 성장에 대한 내 특유의 ‘덕력’이 결합되면서 20킬로그램을 모두 덜어내고 주 4~5회 운동 습관을 2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이참에 운동 생활의 비술을 한껏 적어보겠다. 나의 매일 운동 네트워크는 다음과 같다. 유튜브(운동 학습 미디어)-짐gym(트레이닝 장소)-핏빗fitbit(운동량 기록 스마트워치)-짐데이gymday(운동의 반복 횟수와 무게를 기록하는 앱)-팻시크릿fatsecret(먹는 음식의 칼로리와 영양소를 기록하는 앱)-인바디 체중계(체중 및 체성분 분석)-서적(운동과 식이 요법에 관한 전문 서적들). 이 장황한 과정을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의 콘셉트에 맞춰 다시 각색해보면 아마 다음과 같을 거다. 유튜브 (온라인 교육)-짐(오프라인 플랫폼)-핏빗(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디바이스IOT Wearable Device)-짐데이, 팻시크릿(빅데이터 애플리케이션)-인바디 체중계(사물인터넷 스마트 디바이스)-서적(오프라인 교육). 이렇게 나는 꽤나 건전한 하루하루를 남몰래 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스마트 기기와 클라우드를 통해 가볍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자, ‘초연결 사회’가 바로 눈앞에 도래했다. 초연결 네트워크의 사회(2차 정보 혁명) 그림 1은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사회 패러다임 변화의 요점을 표로 정리한 자료다. 무슨 또 새로운 정보화 사회냐고, 휴대폰 영업소에서 가입을 재촉하는 5G가 귀찮기만 할 수도 있지만, 5G는 단지 비싸기만 한 요금제가 아니다. 4G보다 최대 1,000배 빠른 통신망이며 모바일 사회에서 초연결 사회로 넘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여러 기업이 2020년부터 본격적인 통신망의 세대교체를 계획하고 있으며, 5G 인프라가 안정되는 순간 상호 연결 교육connected learning, 원격 의료 서비스, 지능형 교통 시스템, 사물인터넷IoT(각종 사물에 센서와 통신 기능을 내장하여 인터넷에 연결하는 기술) 기반의 생활 등 그야말로 새로운 속도의 2차 정보 혁명 사회가 시작될 것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83호(2020년 3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나성진bradla7@gmail.com
  • [공간잇기] 일상 속 공간의 가치와 기록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마을과 동네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도시재생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면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어딘가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사전적으로 고향은 태어나서 자란 곳 혹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라고 통용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태어난 지명을 이야기하면 간단한 것 아닌가. 나는 다시 질문한다.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인가요? 아니면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결혼한 곳? 내 아이를 낳은 곳? 아니면 지금 사는 곳? 그것도 아니면 지금 나의 직장이 있는 곳인가요? 질문 공세를 마구 이어가면 사람들은 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아리송한 미소를 머금는다. 무언가 말하고 싶어 입을 꿈틀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선뜻 한 번에 입을 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대문이요. 제가 1970년대에 서울에 올라온 뒤부터 지금까지 자리잡고 자식 키우고 산 곳이에요.” “계동이 제 고향 같죠. 스무 살에 시골에서 시집와서 얼마 전까지 시어머니 모시고 자식 뒷바라지하며 남편과 참 악착같이 살아 낸 곳이에요.” “용산이요. 집은 경제적 상황 때문에 참 많이 옮겼는데, 제 가게는 30년 동안 죽 용산에 있어요. 예전엔 일 년 중 명절 당일 하루씩 딱 이틀만 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나갔으니까요.” “반포동 아파트요. 1980년대 후반에 거기서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곳에 살아 본 적이 없어요.” 어떤 동네, 어떤 세대, 어떤 경제적·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모두 다른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장소도 이유도 제각각이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오토프리드리히 볼노Otto Friedrich Bollnow는 “인간과 공간의 관계는 태생적으로 상호 의존적이며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인간과 공간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정의했다.1인간은 태어나서 숨 쉬는 순간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모든 생애 전반을 공간들 속에서 관계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집은 우리의 첫 번째 우주다. 집은 인간이 존재하는 최초의 세계다”라고 말했다.2집은 사람들에게 고향으로서의 의미가 있고, 낯선 외부로부터의 안도감과 평화를 주는 곳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본인이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태어난 곳이 아니더라도 정서적 애착 관계에 있는 특정한 장소를 고향으로 부르기도 한다. 볼노는 인간은 태곳적 내밀한 행복이 있는 곳이자 모든 생명의 근원인 ‘고향’을 찾아 회귀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도 했다. 자신이 태어난 곳의 외형이 어떻게 변하건 상관없이 감정적 교류를 한 공간(집 혹은 마을)은 개인 혹은 한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고향이 될수 있는 것이다. 파란 대문 집의 기억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 각양각색의 대문들이 길고 긴 골목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다. 나의 눈높이는 대문 높이의 중간 즈음으로 맞춰져 있고, 쭉 뻗은 골목 끝자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골목의 끝 왼쪽의 파란 대문 집 앞에 다다르자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밝은 햇살에 눈이 부시다. 파란 문 안쪽 정면엔 넓디넓은 초록색 잔디 마당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엔 위풍당당한 이층 저택이 있다. 쭉 뻗은 잔디 마당 한편엔 백 년은 된 듯 보이는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햇살 아래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잔디 마당에서 놀던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내게 달려온다. 마당과 저택 사이에서 내가 올라타고도 남을 것 같은 큰 개가 나를 향해 마구 짖는다. ‘플란다스의 개’만큼이나 크다. 저택 거실에 엎드려 바라보는 마당의 풍경은 푸르고 또 생기롭다.” 성장하면서 이따금 머릿속에 떠오르던 어떤 장면에 대한 묘사다. 꿈인지 실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골목과 마당과 집의 순차적·장소적 연결성과 그 형태가 선명하다는 것, 마당의 따스한 햇볕과 온기, 파란 대문과 잔디 마당의 색감이 강렬했다는 것이다. 이 기억이 무엇에 근거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이 장면이 떠오를 때면 마냥 가슴이 따뜻해져 슬며시 미소를 짓곤 했다. 성장한 후 가족들과 함께 어릴 적 살던 집에 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나 돌이 되기 전까지 10개월 정도밖에 살지 않았다는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의 ‘파란 대문 집’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지금은 다세대 빌라가 지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곳을 언니들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언니들은 신나서 각자 마당과 골목에서 뛰어놀던 기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도 이따금씩 떠올렸던 그 장면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골목의 모습, 파란 대문을 열면 나타나는 잔디 마당과 나무, 오른쪽의 대저택…. 이 같은 기억이 구의동 집에 대한 묘사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 언니들은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 가서 돌잔치를 한 내가 그 집을 기억해 낼 리 없다며 무시했다. 내 기억이 맞는 것인지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언니들 어렸을 때 사진을 보고 내 기억으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나조차도 내 기억일 리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물었다. “그런데 그때 거기 ‘플란다스의 개’만큼 엄청나게 큰 개가 있지 않았어요? 그 개가 정말 무서웠던 감정이 떠오르는데….”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엄청 큰 개? 설마 쫑이 말하는 거니? 걔는 (팔뚝의 반을 가리키며) 요만한 새끼 똥개였단다.” 우리는 모두 너무 놀라 몇 초 동안 서로 바라보기만 하다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1.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이기숙 역, 『인간과 공간』, 에코리브르,2011, pp.23, 172~173. 2.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역, 『공간의 시학』, 동문선, 2003, p.77.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 10년간 생활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생활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 한국인의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SOM 뉴욕 지사, HLW 한국 지사, GS건설, 한옥문화원,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 한국인의 참다운 주거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 ‘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서준원gongganikki@gmail.com
  • [북 스케이프] 르 노트르 전기, 에리크 오르세나의 『행복한 사람 앙드레 르 노트르의 초상』
    몇 년 전 개봉한 앙드레 르 노트르Andre Le Notre가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블루밍 러브Blooming Love’(원제 A Little Chaos, 2014)라는 제목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을 뿐더러, 허구의 인물인 여성 조원가와의 개연성 없는 연애 플롯plot을 전개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의 내용과 순서를 뒤섞었기 때문이다.1 많은 이들이 서양 정원의 양식이나 역사적 흐름은 몰라도 베르사유 궁의 정원과 루이 14세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프랑스 형식주의 정원 양식의 백미, 절대 왕정의 상징, 강력한 축선을 바탕으로 한 공간의 전개, 태양왕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상 등이 베르사유 정원을 수식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르 노트르는 프랑스 형식주의 정원, 혹은 절대 왕정을 제유하는 베르사유 정원의 조원가로 명성이 높고 연구도 활발하지만, 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말년에 자신의 정원 조성 비법을 모은 책을 낸 다른 조원가들과 달리 르 노트르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책은 커녕 그가 작성한 도면이나 문서, 심지어는 개인적 기록도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에리크 오르세나Erik Orsenna2가 쓴 전기 『행복한 사람 앙드레 르 노트르의 초상Portrait d’un homme heureux Andre Le Notre』3은 흥미롭다. 그는 단편적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르 노트르의 생애를 방대한 문화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연결하고 그 사이를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오, 르 노트르”라는 루이 14세의 말에서 따온 듯한 제목의 이 책은 르 노트르가 조성한 정원을 분석하는 대신, 모든 것을 다 가진 절대 군주가 인정할 정도로 행복한 이의 면목을 초상화 그리듯 살핀다. ...(중략)... 1. 가령 영화에서 여주인공 사빈 드 바라(Sabine de Barra)가 조성한 베르사유의 무도회장 총림(Bosquet de la Salle du Bal)은 1680년에서 1683년 사이에 조성되었다. 영화와는 달리 당시 르 노트르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황주영juyounghwang@gmail.com
  • [에디토리얼] 공원, 도시의 사회적 접착제
    지구 곳곳에 점점이 퍼져 있는 고밀 복합체 도시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거주하고 있지만, 도시는 여전히 가난과 불결과 위험의 대명사이자 고립과 불평등의 온실이며 반反자연의 상징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경제, 편리한 정보 기술, 풍성한 문화를 누리게 된 도시들도 갖가지 위기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 급증, 빈부 격차와 양극화, 경기 침체와 도시 쇠퇴가 뒤엉킨 난맥의 도시, 더 이상 계획가의 지혜와 엔지니어의 기술만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20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도시의 공간과 장소가 사회과학계 전반의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산과 소비, 노동과 문화를 비롯한 모든 인간 행동과 그것이 낳는 정치·사회적 문제는 도시 공간에서 구성된다는 점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지리학과 인류학은 물론 경제학과 사회학의 시선이 도시를 향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도시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과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의 최근 저작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었다. 리처드 세넷의『 짓기와 거주하기』(김영사, 2019)는 삶을 향상시키는 기술의 가치를 다룬『 장인』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협력 방식을 도모한『 투게더』를 잇는, 그의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3부작의 완결판이다. 철학과 사회학뿐 아니라 건축, 조경, 도시계획, 문학, 예술을 겹겹이 넘나드는 이 책의 키워드를 단 하나로 간추리자면 아마도 ‘열린’일 것이다. 세넷이 지향하는 열린 도시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고 배려하며 정보의 소통과 교류가 이뤄지는 윤리적 도시다. 열린 도시는 이상한 것, 궁금한 것, 미지의 것을 수용하는 도시이며, 이런 도시에 참여해 여럿 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 “의미의 명료함보다는 의미의 풍부함”을 누릴 수 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세넷이 말하는 도시의 열린 관계는 짓기building와 거주하기dwelling가 균형을 찾을 때 가능하다. 짓기와 거주하기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프랑스어 빌ville과 시테cite를 빌려온다. 빌은 “물리적 장소로서의 도시”이고, 시테는 “지각, 행동, 신념으로 편집된 정신적 도시”다. 세넷은 도시를 짓는 방식(빌)과 도시에서 거주하는 방식(시테)이 불일치하는 것은 도시의 본질적 속성임을 파악하고, 빌과 시테의 접점을 찾아 나가는 전문가와 거주자의 노력들을 탐사한다. 세넷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 “닫힌 스마트 시티”의 전형으로 인천의 송도 신도시를 꼽는다. 그는 송도가 르코르뷔지에의 “부아쟁 계획에 무성한 나무와 부드러운 곡선을 추가한 버전”에 불과하며 스마트 시티를 내세워 데이터의 중앙 통제를 이룩한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유령 도시”라고 비판한다. 세넷은 책 곳곳에서 공원이 빌과 시테를 연결하는 매개체일 수 있음을 내비친다. 이를테면 옴스테드의 센트럴 파크를 “사회적 포용이 물리적으로 설계될 수도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제안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빌에 치우친 옴스테드의 공원 비전에는 “시테를 이루는 특징적인 재료, 즉 군중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며 공원의 잠재력을 전폭 지지하지는 않는다. 세넷에 비해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도시의 고립과 불평등을 넘어서는 연결망으로서 공원의 가능성에 더 큰 기대를 건다. 전작『 폭염사회』를 통해 7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카고 폭염 사태를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 비극의 측면에서 해석함으로써 찬사를 받은 클라이넨버그는, 신간『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웅진지식하우스, 2019)를 통해 도시에서의 고립과 양극화, 불평등과 분열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가 전 세계의 다양한 도시와 지역 사회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의 위기와 재난을 극복하는 힘은 공동의 장소, 즉 필수적인 관계와 소통이 형성되는 장소를 만드는 데 달려 있다. 찾아가고 머물며 집단과 계급의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공간, 즉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클라이넨버그가 말하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물리적 공간 및 조직”이며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물리적 환경”이다. 도서관과 서점, 학교와 놀이터, 수영장과 체육 시설은 물론 공원이야말로 도시의 건전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인프라다. 공원처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꾸준하게 모여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곧 위기의 도시를 회복시켜 열린 도시의 연결 사회를 지향하는 희망의 전략이다. 허리케인 샌디가 남긴 재난을 교훈 삼아 회복탄력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진행된 국제 설계공모전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본지 2014년 8월호 참조)의 책임 연구자이기도 했던 클라이넨버그는, 이 선제적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도시의 사례들을 통해 다목적 다기능의 공원이 도시의 “사회적 접착제social glue”로 작동할 수 있음을 밝힌다. 책의 원제 “모든 이들을 위한 궁전Palaces for the People”에 생략된 주어는 단연코 공원일 것이다.
    • 배정한jhannpa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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