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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 조경] 도시 녹지, 조경의 플레이그라운드
    바우하우스의 격한 움직임에 자극받아 표현주의와 입체파 미술의 방법론까지 차용해가며 ‘우리도 바우하우스’처럼 새로운 정원 예술을 창조하려던 몸부림은 브라질의 부를레 막스나 멕시코의 루이스 바라간 등 발군의 예술가들이 나타나 일단락 지었다. 그러나 진정한 정원 혁명은 이런 화려한 무대 뒤편, 도시 전체에서 따로 진행되고 있었다. 건축과 거의 시기를 같이해 변화하기 시작했으나 매우 서서히 진행됐기에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백 년이 지난 1980년대에 비로소 지난 세기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최근 들어 바우하우스 10 0 주년 기념행사들을 준비하며 조경계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재삼 확인되었다. 심지어는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던 변화를 제2의 정원 혁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제1의 혁명은 영국 풍경화식 정원을 말한다. 신세계의 지옥, 산업 도시가 도시계획을 부르고 제2의 정원 혁명을 초래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세기 정원의 가장 큰 변화는 정원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영역에서 일어났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일어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와 큰 관계가 있다. 특히 도시의 팽창이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도시 인구의 비율이 몇 곱으로 증가하고 도시가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짐으로써 도시 재정비, 즉 도시계획이 불가피해졌다. 도시계획은 건축가뿐 아니라 정원사의 일에도 큰 변화를 초래했다. 주 활동 무대가 개인의 영지에서 도시로 이전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배층을 위해 일하던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시민 사회 전체의 용역을 받는다는 새로운 신분과 사명을 얻게 되었다. 이는 ‘사회적 책임’을 동반하는 위치였으며 이에 따라 직업관도 달라졌다. 변화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거의 반세기에 걸쳐 서서히 진행됐다. 하루아침에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한 건축가들과는 달리 평생 자연의 원리를 익히며 살아온 정원사들은 겸허했고, 하루아침에 정원을 갈아엎고 새것을 만들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겠다고 기염을 토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풀어내는 데 골몰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화와 혁신이 이루어졌다. 지배층을 ‘모시는’ 위치에서 도시 녹지를 조성하는 전문가로, 건축가와 나란히 도시설계를 책임지는 위치로 신분 상승하고 보니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전통적인 정원사 교육만으로는 충족이 어려운 과제였고 특히 아카데미 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을 만나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대학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었겠지만,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기존의 2년제 고등정원학교가 있었으나 1929년 베를린 농과대학에 조원 석사 과정이 설치되면서 드디어 대학 교육의 막이 열렸다. 긴 개혁의 과정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다. 이는 대단히 근본적인 변화였다. 이로써 정원의 사회화 과정, 민주화 과정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시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20세기 말에 들어서야 비로소 사회화, 민주화 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정희jeonghigo@gmail.com
  •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디자인과 방정식
    일관성 있는 디자인은 하나의 방정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디자인 과정에서 사유와 개념은 구체적 형태로 발전하면서 수치화 또는 도면화 단계를 거치고, 이를 통해 기호와 숫자로 된 도면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방법으로 형태를 만드는 작도 과정에서는 일종의 규칙성이 나타나는데, 마치 방정식을 세우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x2+y2=0, 사인sine, 코사인cosine, 탄젠트tangent등은 다양한 모양의 곡선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그래프를 그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근 코딩으로 구현하는 디자인도 이러한 수학적 방정식을 근간으로 한다. 단위unit 또는 단위에 기반한 시스템이 만든 경관에 대한 생각은 제임스 코너의 저서1에 잘 나타난다. 일정한 수식에 근거한 디자인은 어떻게 실제 공간과 경관으로 구현될까? 이때의 작도 방식은 어떻게 방정식으로 변환될까? 나아가 새로운 디자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 근무할 당시, ‘두바이 크리크 하버Dubai Creek Harbour’ 프로젝트를 맡아 약 4km의 해안선을 디자인했다. 물결 모양의 반복적 형태를 구현한 이 작도 과정은 일종의 방정식으로 변환될 수 있다. 우선 두 개의 물결 모양 곡선으로 외부 해안 산책 동선(방파제 에지)과 내부 순환 동선을 만들었다. 두 곡선이 만나는 지점(동선의 접합 지점)은 인공섬 내부로 연결되는 주요 결절점이 되고, 해안으로 뻗은 곡선의 끝점은 바다를 향한 조망점이 된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1.James Corner, Taking Measures Across the AmericanLandscape, Yale University Press, 1996.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진양교 교수의 ‘채우기와 비우기’ 설계 이론과 제임스 코너의 실천적 어바니즘을 기반으로 한 간단명료한 디자인에 영감을 받았다. 15년여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설계와 페이퍼 아키텍처를 추구하며, 독자적인 설계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깊이(invisible depth), 생성적 경계(generative boundary), 언플래트닝 랜드스케이프(unflattening land-scape)를 탐구하고 있다. 최근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팀의 당선을 이끌었으며, 개인 자격으로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조용준jojerem@gmail.com
  • [그리는, 조경] 설계 전략 그리기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그리게 되는 드로잉 유형은 아마도 다이어그램일 것이다. 설계가는 대상지의 여러 정보를 고려하며 설계 아이디어를 간단히 그려본다. 대상지의 자연, 문화, 역사, 경제, 사회를 포함하는 다양한 현황을 지도 위에 표시해보며 대상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부지의 바람직한 이용 방법을 합리적이면서도 창의적으로 상상하고 표현한다. 이러한 상상은 점차 진화하고 구체화되어 (이전 연재에서 살펴본)평면도나 입단면도, 투시도 형식으로 그려진다. 다이어그램은 사전적으로 “어떤 것의 겉모습, 구조 혹은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단순화된 드로잉, 즉 도식schematic representation” 또는 “그래픽 형식으로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를 뜻한다.1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간단한 평면도나 입단면도, 투시도도 다이어그램에 포함된다. 하지만 조경 설계에서 다이어그램은 경직된 하나의 유형이라기보다 평면도, 입단면도, 투시도로 표현하기 힘든 요소를 도식화한 것을 광범위하게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경관 요소, 움직임, 생태와 문화 프로그램, 그러한 요소 간의 관계, 시간에 따른 변화 등의 설계 전략을 시각화한 것을 다이어그램이라고 부른다(그림 1). 그러므로 다른 드로잉 유형과 달리 다이어그램은 경관의 겉모습과 반드시 닮아야 함을 전제하지 않는다. 설계안의 논리를 그림으로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다이어그램의 주된 임무다. 다이어그램과 유사해 종종 혼용되는 드로잉 유형으로는 맵핑mapping이 있다. 맵핑은 말 그대로 지도를 만드는 것 혹은 설계를 위해 새로 만든 지도를 의미한 다.2맵핑은 여러 경관 정보를 지도 형식으로 단순하게 나타낸 도식이라는 점에서 다이어그램에 포함된다(그림 2). 조경 설계에서 맵핑이라는 용어를 다이어그램만큼이나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조경에 땅을 다루는 작업이 많이 포함되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적인 다이어그램은 곧 맵핑인 셈이다. 어쩌면 조경 설계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내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미국 모더니스트의 다이어그램 조경 다이어그램과 맵핑을 광범위하게 생각한다면, 그 시작은 드로잉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연재(『환경과조경』 2019년 3~5월호)에서 다룬 켄트의 드로잉, 즉 투시도 형식에 마운드 조성을 위한 지형 변경 사항을 점선으로 그려 넣은 드로잉이나 렙턴이 그린 입단면도는 오늘날의 다이어그램과 닮은 구석이 있다. 옴스테드도 조경 설계를 위해 다이어그램을 남겼다(그림 3과 4). 하지만 본격적으로 다이어그램이 등장한 때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모더니스트, 즉 개릿 엑보Garrett Eckbo(1910~2000), 제임스 로즈James C. Rose(1913~1991), 댄 카일리Dan Kiley(1912~2004)의 드로잉에서였다. 이들은 클라이언트를 비롯한 다른 누군가에게 설계 전략을 보여주기 위해 다이어그램을 공들여 그리기 시작했다. 설계 과정에서 다른 드로잉 유형과 함께 다이어그램을 중요한 시각화 방식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엑보는 식재 계획을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했다(그림 5). 평면도 형식의 이 드로잉을 다이어그램이라 부르는 이유는 식재 정보를 간단한 기호로 시각화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조경 평면도에서 식재의 겉모습이 사실처럼 보이도록 그려졌다면, 엑보는 식재 유형별 형태와 질감 등의 특성을 간단한 기호로 환원해 표기했다. 물론 이제 평면도에서 나무는 정면을 그리는 플라노메트릭이 아닌 완벽한 탑뷰로 시각화되고 있다. 수종의 복잡한 정보를 간단한 규칙으로 나타내 어떻게 공간에 배치할 것인지 간결하면서도 잘 읽히게 하는 것이다.3...(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1.https://en.oxforddictionaries.com/definition/diagram 2.나디아 아모로소는 드로잉 유형을 분류할 때 다이어그램과 맵핑을 한 범주로 본다. Nadia Amoroso, “Representations of the Landscapes via the Digital: Drawing Types”, in Representing Landscapes: Digital , Nadia Amoroso, ed., London: Routledge, 2015, pp.4~5. 또한 안드레아 한센은 “지도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다이어그램의 유의어”이며 두 유형이 “복잡한 것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로 추상화하거나 단순화하여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고 말하면서, 두 범주를 분리하기보다 혼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Andrea Hansen, “Datascapes: Maps and Diagrams as Landscape Agents,” in Representing Landscapes: Digital , p.29. 배정한은 다이어그램의 형식적 유형의 하나로 맵핑을 포함시키며, 조경진은 다이어그램이 대체로 장소와 관련이 있거나 없을 수도 있지만 맵핑은 구체적 장소와 반드시 관련된다고 본다. 배정한, “현대 조경설계의 전략적 매체로서 다이어그램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34(2), 2006, p.102; 조경진, “환경설계방법으로서의 맵핑에 관한 연구”, 『공공디자인학연구』 1(2), 2006, pp.77~78. 장용순은 건축 다이어그램을 보이지 않는 것과 복잡한 관계를 사고하는 도구라고 보며, 현대적 다이어그램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네트워크, 동선, 인프라를 보여주는 연결적 다이어그램, 둘째는 조닝과 프로그램 배치를 보여주는 집합론적 다이어그램, 셋째는 공간 데이터를 시각화한 데이터스케이프 혹은 시간에 따른 변화와 잠재성을 보여주는 변이적 다이어그램이다. 또한 이러한 현대적 다이어그램 이전에는 구상적 다이어그램이 있었다고 하면서, 여기에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 투시도를 포함시키고 있다. 장용순, 『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 01 위상학』, 미메시스, 2010, pp.117~145. 3.Dorothée Imbert, “The Art of Social Landscape Design”, in Garrett Eckbo: Modern Landscapes for Living , Marc Treib and Dorothée Imbert ed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pp.152~154.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가천대학교와 원광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 이명준earsjune2@gmail.com
  • [공간의 탄생, 1968~2018] 1970년대 공간의 탄생, 농촌의 도시화
    농촌을 도시화하라 지난 5개월간의 연재에서 한국 도시화 50년의 문제의식과 현황,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이제 한국 도시화 50년의 구체적 공간 사례를 시대별로 탐구한다. 첫 번째 사례로 1970년대 공간의 탄생에 대해 농촌의 도시화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를 위해 농촌과 농촌의 도시화에 대한 기본적 질문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농촌은 과연 무엇이며, 농촌의 도시화는 어떠한 변화와 관련되어 있을까?” 농촌은 도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삶터, 일터, 쉼터 등이 융합되어 있는 마을, 즉 물리적 정주 환경을 기본 단위로 구성된다. 따라서 농촌의 도시화는 단순히 마을의 물리적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의 생활 변화, 농업의 경제적 의존 변화, 자연자원 관리의 변화 등 여러 사회생태적 변화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1970년대 농촌의 도시화를 한반도의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면, 전통적인 농촌·농경 사회가 도시·산업 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농촌 지역의 문명사적 전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명사적 전환은 한반도 최초의 농경 시점까지 소급해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이전부터 유지, 진화, 발전되어 온 정주 환경의 물리적·사회생태적 변화라고 규정할 수 있다.1 다시 말해 1970년대 농촌의 도시화는 풍수 사상, 배산임수, 씨족 마을 등 전통 마을의 구성 원리에 따라 형성된 농촌 마을의 근대화 과정이다. 이 중심에는 ‘새마을운동’이 있었으며,2 ‘새로운 도시만들기’를 향한 정부 주도의 도시화에 따라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에서 대규모의 물리적 변화가 일시에 일어났다. 한국의 정부 주도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은 1960년대 계획 국가의 형성과 함께 시작됐으며, 1960년대에는 특정 지역 개발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이, 1970년대에는 국토종합개발계획의 토대 하에 본격적인 국토 개발이 추진됐다. 이와 같은 도시화 맥락에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정부 주도로 추진됐다. 1972년 내무부의 새마을농촌건설계획 보고서의 첫 페이지는 당시의 도시화를 향한 열망적 선언을 강렬하게 드러낸다.3 이에 따르면 기존의 전통적인 농촌의 취락과 기반은 개조와 개벽의 대상이며, 1980년대의 선진화된 농촌을 목표로 농촌 정주 환경의 도시 형태 형성 및 도시 성격화를 추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새마을운동에서 보이는 농촌의 도시화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며, 근대 산업 국가로 진입하며 직면하게 되는 도시화 과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의 시작과 경과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부 주도의 농촌 개발 또는 농촌 근대화 운동으로 알려졌지만,사실 새마을운동이 처음부터 중앙 정부 주도로 체계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에 새마을가꾸기사업으로 실험적으로 시행됐으며, 197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새마을운동이라는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 새마을운동은 농촌 개발이라는 표면적 이유뿐만 아니라 쌍용양회의 시멘트 과잉 생산, 박정희 정부의 정치적 기반 유지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원인이 되어 시작됐다. 특히 박정희 정부는 1969년 삼선개헌 이후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에게 큰 지지를 보이는 농촌을 안정적인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야 했다. 이에 따라 중앙 정부는 1970년 전국 33,267개의 마을 각각에 시멘트 335포대와 철근을 무상으로 제공해 시멘트와 철근의 자유롭고 효율적인 활용을 유도했다. 그 결과는 중앙 정부의 기대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으며, 중앙 정부는 이같은 성공에 고무되어 향후 새마을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1971년에 이르러 마을 조림,진입로 확장, 소하천 정비, 퇴비장 만들기, 소류지 준설, 관정 보수, 하수구 정비, 공동 우물, 빨래터 만들기, 쥐 잡기의 10대 새마을가꾸기사업을 지정해 추진했다. 새마을운동은 초기 실험의 성공에 따라 기반 조성(1971~1973), 사업 확산(1974~1976), 사업 심화(1977~1981)의 단계를 거쳐 급속도로 확대되어 추진됐다.4 결과적으로 새마을운동은 기초 환경 개선 위주에서 점차 농가 소득 증대의 방향으로 전환됐으며, 농촌을 벗어나 도시, 공장, 직장, 학교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 김충호chkim0428@uos.ac.kr
  • [이미지 스케이프] 두 자리
    “영 불편해서 못 살겠어요. 옆방으로 가려면 신발 신고 가야 하는데, 비라도 오면 아주 힘들어요.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늑한 느낌도 없고…”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집에 살고 계신 분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분이 설계한 집에 사는 소감을 물었더니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시네요. 의외로 유명 설계가의 ‘작품’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는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 그분도 유명세에 비해 실용성이 부족한 ‘작품’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깔끔한 노출 콘크리트 마감에 군더더기 없는 형태, 권투 선수 출신의 괴짜 건축가,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일본의 현대 건축가. 모두 안도 타다오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이죠. 그는 건축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아주 높은 건축가입니다. 국내에도 원주의 뮤지엄 산, 제주도의 본태박물관과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 같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아직 모르시는 분도 많은데 서울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혜화동에 위치한 전시 및 업무 공간인 JCC아트센터와 크리에이티브센터. 지난 봄 혜화동 근처에서 약속 시간이 한 시간쯤 남아서 어디를 둘러볼까 하다가, 미뤄두었던 JCC를 방문했습니다.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JCC는 안도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마감 덕분에 멀리서 봐도 그의 작품 같아 보이더군요. 바깥쪽 외관을 대충 훑어 보고 안쪽 중정으로 들어가서 옥상 쪽으로 이동하다가 벽에 붙은 의자를 만났습니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주신하sinhajoo@gmail.com
  • [시네마 스케이프] 안도 타다오 연전전패, 그럼에도
    설계공모에서 또 떨어졌다. 갖가지 핑계를 대보고 아쉬움으로 투덜대봐야 오로지 승자만 기억되는 게임이다. 설계공모에 도전할 때는 매번 가슴 뛰지만 막상 떨어지고 나면 시간과 경제적 손실이 크다. 주어진 일을 할 때와 달리 압축적으로 집중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고민을 거듭한 결과물이 심사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정신적 타격이 가장 크다. 이번에는 대체 무엇이 부족했을까. 뒤끝 있고 쪼잔한 성품이라 깔끔하게 돌아서서 마음을 접지 못한다. 한동안 담아두었다 당선작이 완공된 다음에 기어이 확인하고 흠집을 찾아내야 분이 조금 풀린다. “다음엔 이기자고 다짐하지만 또 져요, 하하하.” 익숙한 바가지 머리의 안도 타다오가 말한다. 촌스러운 하얀색 추리닝을 입고 동네 공원에서 섀도 복싱을 하는 장면으로 다큐멘터리 ‘안도 타다오Tadao Ando - Samurai Architect’(2015)가 시작한다. 복싱 선수 출신으로 전문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본인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건축가는 배시시 웃으며 좋은 작품을 위한 “창조의 근육”을 강조한다. 1980년대 작품인 ‘빛의 교회’와 ‘물의 절’처럼 익숙한 작품부터 최근작인 상하이 폴리 그랜드 시어터Poly Grand Theatre에 이르기까지 설계와 시공에 얽힌 에피소드를 건축가가 직접 소개한다. 오사카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초기 구상안을 놓고 회의하는 장면, 책상에 구부리고 앉아 칼질하는 모습,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해나가는 과정, 정교한 거푸집을 짜고 ‘공구리’를 부어 만드는 안도식 노출 콘크리트 제작 과정까지도 볼 수 있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과 영화를 좋아했다.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 영화에 나타난 도시경관의 의미 해석”으로 석사 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도시경관으로서 서울 남산”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으로 일하고,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로 가르치며, 조경연구회 보라(BoLA)에서 공부하고 있다. 2014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5년간 『환경과조경』에 ‘시네마 스케이프’를 연재했다.
    • 서영애youngaiseo@gmail.com
  • [에디토리얼] 북한 도시 읽기
    작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실시간 영상을 통해 전파된 평양의 도시 경관도 큰 화제를 낳았다. 우리의 상상과 달리 카메라에 잡힌 동시대 평양의 거리는 활기찼다. 고층 건물의 형태와 아파트의 색채가 화려하게 변모했다. 미래과학자거리와 려명거리에는 첨단 도시의 분위기가 감돌았고, 대동강과 풍성한 녹지를 품은 도시 풍경은 여유로웠다. 한반도에 불어온 봄바람은 북한의 도시, 경관, 건축에 대한 다양한 학술회의로 이어졌고 관련 서적이 연이어 출간되기도 했다. 지난 연말,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는 ‘영화로 보는 북한 도시와 경관’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사흘에 걸쳐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북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 구조와 형태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환경과조경』은 5월호 특집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에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의 도시, 건축, 조경을 탐사해 온 전문가들을 초대했다. 이번 기획이 평양과 북한 도시들에 대한 편견이나 환상을 바로 잡고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조경학 연구자들에게는 북한의 조경 문화와 도시 경관에 대한 탐색의 실마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이번 특집을 통해, 북한을 침체된 국내 건설 시장의 돌파구로만 여기는 ‘대박론’에 대한 교정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소망한다. 북한의 도시계획과 도시 주거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해 온 정인하(한양대학교 교수)는 특집 원고에서 한국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 수립된 평양복구계획,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건축가 김정희가 펼친 사회주의 도시 마스터플랜의 이상, 1950년대의 평양 도시계획안, 1960년의 평양 도시총계획 등을 촘촘히 개괄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도시 평양의 구조, 직주근접의 토지 이용, 녹지 체계가 자본주의 도시의 그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을 논의한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북한 도시 읽기』,『 도시화 이후의 도시』 등의 저작을 통해 북한 도시의 구성 환경을 생산, 녹지, 상징의 측면에서 탐구해 온 임동우(홍익대학교 교수, PRAUD 대표)는, 이번 원고에서 북한 도시의 핵심적 상징 공간인 광장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평양에 비해 그간 많이 연구되지 않은 청진, 함흥, 신의주, 원산의 특징을 직접 작성한 액소노메트릭axonometric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시장 경제 체제의 도입을 목전에 둔 사회주의 도시의 미래를 전망한다.1 최근 출간된『풍류의 류경, 공원의 평양』의 저자인 이선(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은 평양의 여러 공원의 모태가 된 명승고적을 살펴보고, 공원과 유원지의 형성 과정과 변천사를 개관한다. “편협한 시각을 거두고 북한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때”라는 그의 시각에 눈길이 멈춘다. 『서울 평양 메가시티』와『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를 통해 한반도 광역경제권 네트워크를 구상한 바 있는 민경태(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는 사회주의 도시 평양의 미래 리모델링을 제안한다. 기존의 도시적 맥락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사회주의 도시 시스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도시 박물관’을 기획하면서 그는, 공간의 연결성을 향상시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상징적 공간을 재활용하여 관광 명소를 발굴하는 구상을 펼친다. 낙후된 시설을 재발견하는 평양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평양의 명소를 따라 걷는 올레길 코스를 제안하기도 한다. 북한 도시 특집 외에, 이번 5월호에는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스튜디오 테라 대표)의 근작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맘껏광장’, ‘숲 갤러리’를 싣는다. 최근의 ‘제주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 당선작과 함께 이번 달의 근작들에서 그의 설계의 중심이 형태와 구성에서 관계와 구조로 옮겨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녹사평역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설치된 ‘숲 갤러리’를 함께 둘러보고 그와 나눈 긴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싣는다. 그가 강조하는 “생태학적 상상력과 풍경의 디자인”이 한국 조경의 오늘을 점검하고 내일을 기획하는 키워드가 되기를 기대한다. 1. 최근 임동우는 1945년 이전 평양의 근대화 시기의 건축을 지도와 함께 자료화한 작업‘모던평양’(http://modernpyongyang.org)을 공개했다. 사회주의 도시로 재편되기 이전 평양의 근대 공간·건축 정보를 구글 API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시각화한 ‘모던평양’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평양을 재발견할 수 있다.
    • 배정한jhannpae@snu.ac.kr
  • [이미지 스케이프] 빛꽃
    또 LED 장미야? 좀 식상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DDP에서 큰 인기를 얻은 후로 너무 많은 곳에서 설치해 이젠 싫증이 나기 시작했거든요. 더구나 색이 바뀌는 LED 표현은 선호하지 않아서 말이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LED 조명을 보면 약간의 거부 반응이 들 정도입니다. 이번 사진은 ‘다락옥수’ 지붕에 설치된 LED 장미정원입니다. 다락옥수는 옥수역 고가 하부 공간을 활용해서 만든 공공 문화 시설입니다. 최근 고가 하부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시도되고 있죠? 운동 시설을 설치하기도 하고,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 주거 공간이나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곳 옥수역도 여러 번의 변신을 거듭한 끝에 작년 4월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과 모임 장소, 북카페 등으로 구성된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건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옥상부에 맥문동을 식재해서 식물로 둘러싸인 건물을 만들었는데, 이 맥문동이 말썽이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로 맥문동이 다 죽어버려서 오히려 흉물처럼 보였던 거죠. 주민들은 개선해 달라고 계속 요구했고, 그래서 이 LED 장미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4,000여 송이의 LED 장미꽃은 일곱 가지 다채로운 빛깔로 구성되어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성동구의 기대를 살짝 비웃으면서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클리셰는 이제 그만 해야지’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이상스럽게도(?)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주신하sinhajoo@gmail.com
  •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이미지의 재생산과 사유의 확장
    화가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로부터 영감을 받아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의 추상화를 그렸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김광섭의 시에서처럼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연상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의 점으로 빠져들게 된다. 김환기는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캔버스에 점을 찍었다고 한다. 점 하나하나마 다 특별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면, 하나의 점을 찍는 데도 수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림 1은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당선작인 ‘깊은 표면Deep Surface’에서 제안한 광장의 포장 이미지다. 오토캐드에 900×900mm의 정사각형 모듈을 만들고, 그 위에 폴리선polyline으로 5~7개의 점을 찍어 다각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폴리선 편집 명령edit polyline을 통해 다각형의 폴리선을 스플라인spline으로 전환 했다. 이 스플라인 위의 점들을 임의로 옮겨가며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원형들을 재생산했다. 이후 원형 패턴들을 900×900mm 모듈 안 적당한 위치에 배치했다. 몇 번의 복사 명령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지만, 광장의 전체 면적, 즉 3만6천여 개의 그리드 안에 원형의 패턴을 겹쳐지지 않도록 적절한 위치에 놓는 데는 (실제 조성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꼬박 이틀이 걸렸다. 이 작업은 도면 위에 트레이싱지를 깔고 그림을 그리는 아날로그적 작업 방식과 유사하다. 그래픽 알고리즘 편집기인 그래스호퍼 3Dgrasshopper 3D와 패턴 알고리즘 파일(온라인상에서는 수많은 패턴 알고리즘이 무료로 공유된다)을 활용하면 손쉽게 다양한 패턴을 실험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 방식을 택했을까?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변화 속에서 디자인을 배웠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상상할 때는 항상 펜을 들었다. 머릿속 상상이 손끝의 감각을 통해 지면으로 옮겨지면, 그 그림을 통해 다시 사유하게 되고, 또다시 손은 무언가를 그려낸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사유는 확장되고 디자인은 더욱 구체화된다. 그런데 디지털 프로그램의 정확성과 신속함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생략시킨다. 그래서 디지털 프로그램으로는 디자인을 상상하고 확장하기보다 단순히 결과물을 작성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디지털 시대의 산물을 온전히 체득하지 못한 내게 이 방식은 사유와 이미지, 혹은 상상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줄여준다. 여기 또 다른 이미지들(그림 2~6)이 있다. 브이레이V-ray를 통해 얻어지는 렌더IDRender ID파일들로, 렌더링 작업의 부산물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73호(2019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진양교 교수의 ‘채우기와 비우기’ 설계 이론과 제임스 코너의 실천적 어바니즘을 기반으로 한 간단명료한 디자인에 영감을 받았다. 15년여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설계와 페이퍼 아키텍처를 추구하며, 독자적인 설계 방식으로 보 이지 않는 깊이(invisible depth), 생성적 경계(generative boundary), 언플래트닝 랜드스케이프(unflattening landscape)를 탐구하고 있다. 최근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팀의 당선을 이끌었으며, 개인 자격으로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조용준jojerem@gmail.com
  • [그리는, 조경] 첫 조경 드로잉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조경과 관련된 큰 사건들이 일어났다.우선 조경이라는 전문 분야가 확립됐다.1전문 분야를 가리키는 우리말 조경가/조경에 해당하는 영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가 만들어지고 분야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다.엄밀히 말해 첫‘조경’드로잉이 그려진 시기다.이전 연재에서 다뤘던 대개의 드로잉 유형이 용도에 따라 전문화됐다.공모전 드로잉으로는 대중과 의사소통하기 수월한 투시도가 중요하게 이용됐고,공사를 위해서는 수치 정보가 정확히 기입된 평면도와 입단면도 같은 투사 드로잉이 사용됐다.현재 조경 계획과 설계에 빈번하게 이용되는 기법인 경관 정보의 맵핑과 지도 중첩map overlay방식도 이 시기에 처음 등장한다. 센트럴 파크 공모전 드로잉 우리가 공원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 중 하나인 센트럴 파크가 조성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1857년 개최된 뉴욕의‘센트럴 파크 설계공모전Plans for the Central Park’에서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1822~1903)와 칼베르 보Calvert Vaux(1824~1895)의 출품작‘그린스워드Greensward’계획이 채택되어 조성된다(그림1).서른세 개의 출품작 중 가장 늦게 제출된 그린스워드는 가로8피트,세로3피트에 달하는 마스터플랜과 이를 설명하는 열두 장의 일러스트레이션 보드(이 중 열한 장이 남아 있다),설계 설명서로 구성되었다.2옴스테드와 보의 드로잉을 보면 알 수 있듯이,그들의 안은 이전의 영국 풍경화식 정원 양식의 영향권에 있다.마스터플랜에서 보이는 구불구불한 길과 잔디가 무성한greensward지형은 풍경화식 정원을 연상시키며,공원의 주요 전망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과 공원의 모습을 묘사한 투시도 드로잉은 옴스테드와 보가 그리는 센트럴 파크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3그린스워드 계획의 마스터플랜은 다른 출품작과 마찬가지로 공모전의 지침에 따라 먹India ink과 세피아 톤으로 그려졌다.단,부지의 현재 모습과 설계 이후의 모습을 그린 아홉 쌍의 이미지 중 설계 이후를 보여주는 세 쌍의 이미지는 유화로 공들여 마무리되었다(그림2, 3, 4).4이러한 회화적 묘사 기법은 미국의 야생지wilderness풍경을 화폭에 담은 당대의 허드슨 강 화파Hudson River School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5 흥미로운 점은 현존하는 그린스워드 계획 드로잉 중 마스터플랜과 다른 드로잉 한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시도의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이다.예외인 한 장에서 위쪽 정원 아케이드 빌딩은 입면으로,아래쪽 화원은 평면으로 그려졌다.6이러한 요소는 공모 지침의 필수 요구 사항이었기 때문에 넣었던 것이며,공모전 당선 이후 옴스테드와 보의 구체적 설계 과정에서는 자취를 감춘다.짐작하자면,옴스테드와 보는 센트럴파크를 여러 장의 풍경으로 구성된,말하자면 완벽히 그림 같은 공원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중략)... *환경과조경373호(2019년5월호)수록본 일부 1.영어landscape architect/ure의 기원과 전문 분야의 탄생 과정에 관한 연구로 다음을 참조할 것. Joseph Disponzio, “Landscape Architecture/ure: A Brief Account of Origins”, 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 34(3), 2014, pp.192~200; Charles Waldheim, “Landscape as Architecture”,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34(3), 2014, pp.187~191.우리말 조경의 명칭과 전문 분야의 성립 과정에 관한 연구로는 다음을 참조할 것.우성백, “전문 분야로서 조경의 명칭과 정체성 연구”,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2. Morrison H. Heckscher,Creating Central Park,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8, p.26.그린스워드 계획의 설계 설명서는 다음 책에 실려 있다. Charles E. Beveridge and David Schuyler, eds., The Papers of Frederick Law Olmsted: VolumeⅢ,Creating Central Park 1857-1861,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3, pp.117~187. 3. 옴스테드와 보의 그린스워드 계획은 풍경화식 정원의 영향을 받았지만,조금 다른 미학을 추구했다. 18세기 초중반 영국에서 유행한 풍경화식 정원이 목가적 풍경을 지향했다면,그린스워드 안은 목가적 풍경과 함께 미국의 거칠고 손대지 않은 야생지를 감상하는 자연 문화를 반영하기도 했다.흔히18세기에서19세기 초까지의 영국의 정원을 뭉뚱그려 풍경화식 정원이라 부르고,그러한 공원이 구현한 목가적 풍경을 픽처레스크 미학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픽처레스크는18세기 말 영국의 아마추어 정원 이론가인 윌리엄 길핀(William Gilpin, 1724~1804),유브데일 프라이스(Uvedale Price, 1747~1829),리처드 페인 나이트(Richard Payne Knight, 1750~1824)가 정원 설계 방법에 대해 논쟁을 벌이면서 만들어낸 하나의 미학적 범주다.그들은 당대에 지배적 미적 범주였던 미와 숭고의 중간에 위치하는 자연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제3의 범주인 픽처레스크를 제시했다.픽처레스크는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숭고의 특징을 어느 정도 길들인 것으로,대체로 자연의“울퉁불퉁하고 거칠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의미했다.이러한 픽처레스크 미학 혹은 길들여진 숭고의 미학은19세기에 미국으로 수용되어 초월주의 자연 문학과 허드슨 강 화파의 회화에 적용되면서,야생 자연에서의 명상적 감상을 추구하는 초월적 숭고(transcendental sublime)로 변모하게 된다.옴스테드와 보가 센트럴 파크에 만들어내고자 한 자연은 그러한 미국적 숭고의 미학이 반영된 자연이다.국내 연구로 다음을 참조할 것.이명준·배정한, “숭고의 개념에 기초한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의 미학적 해석”,『한국조경학회지』40(4), 2012, pp.78~89. 4.그린스워드 계획이 혁신적이라 평가받은 이유는 공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공원 아래로 감추어 보이지 않게 하고 보행로 유형을 다양하고 유기적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이다.공모전 출품작에 대한 설명으로 다음을 참조할 것. Charles E. Beveridge and Paul Rocheleau,Frederick Law Olmsted: Designing the American Landscape, New York: Rizzoli International Publications, 1995, pp.54~55; Sara Cedar Miller,Central Park, an American Masterpiece: A Comprehensive History of the Nation’s First Urban Park,New York: Abrams, 2003, pp.81~88; Morrison H. Heckscher, Creating Central Park , pp.20~24. 5.옴스테드와 보는 센트럴 파크를 설계하고 조성할 때 허드슨 강 화파의 영향을 받았다.예컨대 보의 아내 메리 멕엔티(Mary McEntee)의 형제는 허드슨 강 화파에 속하는 저비스 맥엔티(Jervis McEntee, 1828~1891)였고,옴스테드와 보는 그에게 그린스워드의 설계 이전과 이후의 드로잉을 그리도록 부탁했다고 한다.또한 옴스테드와 보는 허드슨 강 화파의 유명 화가인 프레드릭 처치(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와도 친분이 있었다. 1871년 보의 제안에 따라 옴스테드는 처치를 센트럴 파크 공사 감독 위원으로 임명한 바 있다. Mark R. Stoll,Inherit the Holy Mountain: Religion and the Rise of American Environmental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p.98.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조경 설계와 계획,역사와 이론,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가천대학교와 원광대학교,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 이명준earsjune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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