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독일 튀링겐 주의 수도 에르푸르트(Erfurt) 시에서 2021 연방정원박람회(BUGA)가 막을 열었다. 코로나의 악조건 속에서도 무사히 준비를 마쳤으나 개막을 목전에 두고 4월은 두어 차례 눈을 뿌리는 잔인함을 보였다. 그러나 체리나무는 눈보라 속에서도 곱게 꽃을 피워 주었다.
에르푸르트 부가Erfurt BUGA 2021
지리적으로 볼 때 에르푸르트 시는 독일의 거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동서남북으로 여러 길이 교차하여 중세에 이미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도시 한복판, 언덕 위에 우뚝 선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성당과 교회가 그때의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에르푸르트의 풍경은 역사만큼 깊다. 중간 산맥의 능선이 멀리 바라보이고 남서쪽에선 튀링겐 숲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맑은 게라 강이 동쪽에서 도시를 감싸고 돌다가 북으로 사라지는데, 이 강이 부려놓은 비옥한 땅에 중세부터 꽃을 키워 꽃의 도시라 불렸다.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최초의 정원박람회가 바로 이 도시에서 열렸다. 1961년부터 ‘사회주의 국제정원박람회’가 꼬박꼬박 개최되었던 도시다. 꽃의 도시, 정원의 도시 에르푸르트. 그러다가 통일이 되고 나서 어쩐 일인지 30년 동안 잠잠했었다. 늘 같은 장소에서 정원박람회가 열렸는데 이를 ‘에가 공원(Ega Park)’이라 고쳐 부르고 조용히 지내는 듯했다. 그러다 하필 코로나의 시대에 성문을 다시 활짝 열었다.
‘에르푸르트 부가’는 두 곳에 나눠서 열린다. 전통의 에가 공원에서 전형적인 정원박람회 프로그램이 전개된다면 새로 조성된 ‘페테르스베르크 요새공원(Zitadelle Petersberg)’에서는 튀링겐 주의 유구한 정원사를 고대까지 되짚어간다. 바로 이 요새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한국의 LH정원이 조성된다.
도시 북쪽 게라 강변에는 50헥타르의 자연공원도 완성되었다. 원래 부가 제3의 장소가 될 예정이었으나 그러자면 울타리를 치고 입장료를 받아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북구에 사는 지역민 7만 명을 위한 휴양 공간이 되어야 할 곳에 4.5km에 걸쳐 울타리를 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려 그대로 개장했다. 그 대신 시야를 돌려 튀링겐 주 전체를 바라보았다. 독일의 루아르 지방이라 일컬어지는 튀링겐 주에는 오래된 성이 25여 개가 넘게 남아 있다. 이들을 모두 새로 단장해 부가에 수렴시켰다. 이로써 2021년의 부가는 에르푸르트만의 축제가 아니라 튀링겐 주 전체의 축제가 되었다.
에르푸르트 시 녹지국장 사샤 될 박사Dr. Sascha Doll는 “한국에서 온다면 대환영이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볼 것이 너무 많다. 3~4일 관람 프로그램을 짜서 안내하겠다”고 약속했다. 에르푸르트 부가 홍보실에서 내보내는 자료가 차고 넘치지만, 바쁜 녹지국장에게 굳이 인터뷰를 청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조사하며 떠오른 물음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걸 풀기 위해서는 시에서 내보내는 공식 자료보다 깊은 정보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왜 통일되고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부가를 개최하는지 궁금했는데 사샤 될 국장은 시원하게 답변해 주었다. 우선 동과 서의 이념 차이를 극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에르푸르트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정원박람회야말로 진정한 정원 축제고 서쪽의 정원박람회는 상업성을 내세우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편견이 꽤 오래 갔다고 했다. 사샤 될 박사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녹지국장들이 대체로 고리탑탑한데 그는 다이내믹한 신세대에 속한다. 부가 준비가 이미 괘도에 오른 2018년 뒤늦게 합류했다. 달리는 기차에 덥석 뛰어올라 기관차를 몰아야 하는 입장은 어떤 것일까? LH정원 조성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고 좋은 자리도 잡아 주어 호감이 갔다. 사실 우리 쪽에서 제안했을 때는 이미 모든 계획이 마무리된 것은 물론이고 공사가 한창이었기에 오히려 의외였다.
사샤 될 국장은 튀링겐 사람이다. 부친이 식물 재배원을 운영했기에 어려서부터 정원 일이 몸에 뱄고 자연스럽게 조경학과에 진학했다. 드레스덴 대학 우르스 발저(Urs Walser) 교수 밑에서 석사를 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다가 카셀대학의 슈테판 쾨르너(Stefan Korner) 교수의 연구실로 옮겨 박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다시 실무 경력을 쌓다가 에르푸르트 시 녹지국장직이 공석이 된 것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가 그 자리에 앉았다. 드레스덴의 우르스 발저 교수는 소위 말하는 ‘뉴저먼스타일(New German Style)’의 원조다. 카셀 대학의 슈테판 쾨르너 교수는 환경 생태와 조경을 접목한 세대의 대표주자로 그의 거시적 안목은 학계에 정평이 나 있다. 이렇게 출중한 두 스승 밑에서 공부한 사샤 될 박사는 과연 에르푸르트의 녹색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중도 승차해서 이끌어가고 있는 ‘부가호’가 적지 않게 삐거덕거린다는 소문이 들려와 그 진위도 묻고 싶었다. (후략)
* 환경과조경 397호(2021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