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티둔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며
‘도시공원 예술로 부산 홍티둔벙 프로젝트’라는 다소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공원이라는 장소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지는 부산광역시 사하구의 장림공단 내에 있다. 장림공단은 서부산 지역의 최대 공단인 사상공단과 사하공단에 걸쳐 있는 한 부분이다. 이 공단 내에 공원 부지가 공터로 남겨져 있었다. 앞으로는 낙동강 하구의 홍티포구와 인접해 있고, 뒤쪽으로는 아미산이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아미산에 올라가면 강과 바다가 만나는 낙동강 하구의 퇴적된 모래톱과 철새, 낙조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공주, 함양, 계룡에서 진행되었던 ‘도시공원 예술로’ 프로젝트가 기존의 공원에서 예술 행위를 기획하고 작품들을 전시했다면, 부산의 경우는 달랐다. 공원 부지는 체육공원으로 인가만 나 있었을 뿐, 실상 인근 공장들의 화물 적치장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이전에는 부재했던 장소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공단 근로자들이 쉬고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일반적인 공원이라기보다는, 당시 공사 중이던 홍티아트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예술 플랫폼을 제안했다.
프로젝트의 제목은 ‘사구둔벙’이라는 간단한 이름이었는데, 낙동강 하구의 아름다운 모래톱의 이미지를 어떻게 사람들이 땅의 예술을 통해 경험하게 할 수 있을 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사구’란 모래언덕을 뜻하고, 둔벙은 예전에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가두어두었던 물웅덩이를 지칭한다. 여기서는 모래언덕을 가두고 있는 사각형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 사각형의 공간들 사이에 ‘두렁길’을 두어 사람들이 모래 공간을 여기저기 누빌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본래 의도였던 부산시 및 사하구와 몇 번에 걸친 협의 끝에 사구둔벙의 개념은 잔디와 나무에 둘러싸인 공원의 모습으로 점차 변화되었다.
기획자와 부산시가 프로젝트의 본래 취지나 행정 사항, 실행 방법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하다 보니, 실행과정에서 정작 현재 주민의 삶을 찬찬히 관찰하고 그것들을 공공예술의 영역으로 흡수하려는 노력이 많이 미흡했다. 올 봄에 프로젝트를 보러 부산에 내려간 평론가들의 일침도 기껏 예쁘게 만든 장소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다행히 공원 곳곳에 녹음이 우거지고, 근처의 노동자들이 일과 중 휴식을 취하기 위해 두렁길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손몽주 작가의 ‘바람의 드로잉’에는 공단 근로자들과 워크숍을 한 결과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지난 늦가을에는 인근 다대포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부산문화재단과 함께 ‘SAHA 沙下’전을 시작했다. 크지는 않지만 작은 움직임들이 좀 더 활발하게 홍티둔벙을 채우고 있다.
고립된 입지이기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홍티아트센터가 홍티둔벙을 앞마당처럼 잘 사용하여,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성공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건축가의 시각을 가진 기획자의 장점은 땅의 가능성을 잘 살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획자로서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며 부대끼면서 초기의 의도가 변경된다 하더라도, 건축가라는 ‘종’은 일말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건축가가 뛰어난 ‘종’이라서가 아니라, 건축 프로젝트가 건축가를 단련시킨다). 여기서의 가능성은 낙동강 하구의 자연생태계, 아미산 전망대와 이어지는 산책로, 이전에 이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아트팩토리인 다대포의 작가들 그리고 홍티아트센터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 ‘홍티문화공원’의 공사가 끝나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기획 장영철·전숙희(와이즈 건축)
조경설계 윤성융(서호엔지니어링)
자문 강영조(동아대학교 조경학과)
시공 대덕조경
예산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부산광역시
위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1608번지
대지면적 6,787.1m2
건축면적 754.84m2
작품설치면적 5,700m2
완공 2014
장영철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수학했다. 이로재, 스티븐 홀 아키텍츠(Steven Holl Architects), 라파엘 비뇰리 아키텍츠(Rafael Vinoly Architects)에서 실무를 하고, 현재는 전숙희와 함께 와이즈 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파주 출판단지 마스터플랜 디자인 가이드라인 매뉴얼 작성, 링크드 하이브리드(Linked Hybrid in Beijing), 브루클린 어린이 박물관(Brooklyn Chidren’s Museum in New York)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전숙희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 이로재, 과스메이 시겔 앤 어소시에이츠 아키텍츠(Gwathmey Siegel & Associates Architects)에서 실무를 하고, 현재는 장영철과 함께 와이즈 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웰콤사옥, 3 Trees House, 에반스 레지던스(Evans Residence), 마이애미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Miami) 등에 참여했다.
윤성융은 1975년생으로, 동아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하고 우대기술단 조경사업부에서 실무를 시작했다. 중국 베이징 공업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디알에이디자인그룹 베이징사무소를 시작으로 설계사무소를 설립해 현재는 서호엔지니어링의 대표로 베이징, 서울, 부산에 사무실을 열고 활동하고 있다. 이후 동아대학교에서 조경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탕산테마파크, 충칭 선녀산 테마파크, 베이징 삼성타워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한국을 비롯한 해외 각지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조경을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