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조경
아파트 조경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별로 없는 시장이다. 입지, 브랜드, 평수 등이 세트로 묶인 상품인 데다 보통 공용 공간이기에, 인테리어처럼 따로 구매하기 어렵다. 요즘 시장에 나오는 상품은 서로 비슷하다. 우리는 왜 아파트 외부 공간을 계속 이렇게만 만들고 있는가. 단지 내 조경 공간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짓는 공간과 테마는 브랜드 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획일화되었다.
쏟아지는 특화 속에 차별성이 점점 없어지는 역설적 현상은 아파트가 주거 공간보다는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특권층’, ‘상위 0.1%’, ‘노블리스’ 등의 노골적인 광고 문구를 쓰면서 사회적, 경제적 구별 짓기를 전략으로 삼는다. 선망받는 삶을 원하는 소비자의 허영심에 기댄 상업적 마케팅도 한몫하는 듯하다. 일반인이 전문 지식 없이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근 단지와의 비교’만이 주요 평가 수단이 되면 우리 단지에도 석가산이 있어야 하고, 좀 더 크고 멋있는 소나무가 옆 단지보다 많아야 하고, 유명한 ‘작가’가 설계했다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이런 시장에서는 이미 좋은 평가를 받은 답안을 그대로 또는 조금만 바꿔 쓰는 것이 소비자에게나 공급자에게나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경 특화의 트렌드는 브랜드별 특성보다는 시대별 유행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하면 몇 년 안에 다른 브랜드들이 그대로 이를 모방함으로써 유행을 만드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과연 ‘입주민들은 이런 것을 원한다’고 흔히 알려진 것 중 어느 만큼이 사실인가. 이미 평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국내 아파트 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가장 자주 제기되는 민원이거나 조합의 집단적 목소리가 거세다고 해서 이를 바로 소비자의 요구로 보기는 어렵다. 스스로 판단한 가치와 선호보다는 그게 비싼 거라더라, 그런 것이 좋은 거라더라, 어째서 안 좋다더라 등 여러 ‘카더라’가 덧대어져 형성된 대중적 취향에 과연 실체가 있는가. 우리는 근본도 알 수 없는 석가산이 아파트마다 솟아 있는 것을 보면서, 사실 공급자가 해결하기 편리한 방식으로 쉽게 규정된 가짜 트렌드로 의심해왔다.
시그니처 가든
LH 분양주택 시그니처 가든 개발 프로젝트는 분양주택에 적용될 LH만의 특성을 갖는 정원 유형을 개발하기 위해 중앙정원, 동 앞 정원, 운동정원 세 가지 공간에 대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확립하고, 이를 안성 아양지구 B-1블록에 적용하기 위해 시작됐다. 새로운 주거 가치와 변화하는 이용자의 수요를 반영한 정원 공간을 개발하는 과업 목표는 지극히 상투적인 것 같지만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보자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이 시장에서 가장 큰 공공의 공급자로서 LH다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특화 정원으로 무장한 요즘 아파트와는 상반된, 오래된 자연 속에 조화를 이룬 주공 아파트에 대한 ‘아파트 키즈’의 관심에 주목했다. 영화 ‘집의 시간들’에 등장하는 입주민 인터뷰나 아카이브 잡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담담한 기록들은 시장 주도적으로 생성된 상품적 가치에 가려져 있던 일상 속 주거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성하게 숲을 이룬 나무들이나 소박하게 비워진 들판과 같은 평화로운 공간은 최근의 부동산 시장에서 만들어진 특화 아이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입주민에게 오래된 아파트의 단점을 보완하는 큰 장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큰 나무 그늘에 주차하면 열에 아홉은 차에 새똥을 맞는다. 지하 주차장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공 지반 위에 있어서 처음부터 큰 나무를 옮겨와도 더 자라지 않는 아파트 정원을 보면, 그보다는 자연 지반에 뿌리 내려 10층 높이까지 자라나는 숲이 더 좋다.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최근의 특화 정원과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 잡은 소박한 아파트 외부 공간을 비교해볼 때, 상업적으로 편향된 변화 속에서 자연의 미적 가치나 조경의 다양한 경관적 설계 해법은 과소평가되고 장식적 조형물이나 시설물 개발이 남용된 것은 아닌가.
단순히 취향의 문제를 떠나, 다른 곳의 큰 나무를 옮겨와 심는 것 자체에도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 진짜 자연이 될 수 없는 편평한 슬래브 위에 헛헛함을 채우려는 장식적인 요소들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경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센트럴 힐
중앙정원의 유형으로 개발한 공간은 ‘센트럴 힐’이다. 세 곳의 시그니처 가든 중 아파트 외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가장 잘 함축된 곳이다. 센트럴 힐은 관람형 경관 시설로 채워져 행위의 다양성이 부족한 석가산과 달리, 완만한 경사면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정자목과 열린 공간이 커뮤니티의 공동체적 가치를 담도록 하는 ‘마을 언덕’이다.
언덕은 정상부의 정자목 쉼터, 물이 따라 흐르는 동선, 열린 풀밭 구릉으로 구성된다. 바닥에 다다른 수로는 작은 폰드와 바닥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이어진다. 광장에는 언덕을 향해 열리는 티하우스가 있어 공간의 활용을 돕는다. 언덕의 높이는 약 2.5m인데, 이는 약 30×40m인 안성 아양지구 센트럴 힐 부지의 크기에 따른 것이다. 이용이 가능한 완경사를 유지하고 정상부까지 경사도 1:18 이하의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서 나선형의 동선을 따라 전면부와 후면부 경사가 다른 콩 모양의 지형을 설계했다.
식재와 시설물 모두 지형의 설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정상부에는 마을의 정자목 역할을 하는 대형 그늘목을 심고 아래 너럭바위형 앉음 시설을 배치했다. 수경 시설은 동선을 따라 같은 경사로 흐르며, 점점 넓어지다가 발을 담글 수 있는 작은 폰드와 그 옆 바닥분수로 이어진다. 급경사면에는 두 겹의 플랜터 월을 설치하여 계절을 표현할 수 있는 관목을 식재하고, 급경사에서 완경사로 변곡되는 구간은 안전을 고려해 낮은 관목을 밀식했다.
지형과 수로
유토 모형과 라이노 모델링 수정을 거쳐 경사도 5.5% 이하의 보행 동선, 1:12 이하의 편안하게 걸터앉을 구릉, 좁은 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계단식 화단, 하중에 따른 높이 제약과 대형목을 위한 유효 토심 등 각기 다른 조건을 만족하는 하나의 지형을 완성했다.
2.5m의 언덕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1.5m 이하의 토심을 상정한 지하 주차장 구조에 변경이 필요하다. 대상지의 건축 설계가 완료된 후였기 때문에, 기존 설계 하중을 넘지 않도록 언덕 하부에 EPS 블럭을 활용했고, 시공의 용이성과 공사비 등을 고려해 EPS 부피와 형상, 경량토와 일반토의 비율을 3D 설계를 통해 최적화했다. 한 대상지의 설계가 아닌 디자인 가이드라인 수립을 목표로 하는 설계이기 때문에 지형을 형성하는 원리와 설계 주안점, 다른 크기나 형상의 부지에 적용할 경우 주의해야 할 점 등 설계 원칙을 고민해 매뉴얼로 정리했다.
가산(假山)을 진짜 언덕으로 바꾼다더니 EPS 블럭이 채우고 있는 이 언덕도 가산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관람용이 아니라 점유가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환한다는 점과, 완만한 곳과 경사진 곳, 낮은 곳과 높은 곳, 길과 물가, 한적한 너럭바위와 왁자지껄한 바닥 분수존 등 하나의 언덕이 제공하는 다양한 행위의 유도라는 측면에서 ‘우리 마을 언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수로의 설계와 시공에서 일정한 경사는 매우 중요하다. 수로 경계의 경사는 산책로의 경사와 동일한데, 산책로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요건을 충족하는 5.5%의 완만한 경사로로 조성되어야 한다. 시범단지인 안성 아양지구 B-1블록의 경우 산책로는 최고점 높이인 2m까지 4.4%의 일정한 경사로 설계했다. 수로 내부에는 일정 거리마다 물넘이를 설치하여 계단식으로 물이 담기도록 하고, 바닥면의 경사는 3% 이하가 되도록 조정한다.
계단식 물넘이를 두어 수로 바닥을 산책로 경사보다 더 완만하게 설계해야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경사가 급하면 물이 너무 빠른 속도로 내려가게 된다. 유속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체로 2.5%를 넘는 경사면을 흐르는 물은 어린아이가 종이배를 띄우고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둘째, 미끄럽지 않도록 표면을 마감하더라도 사람이 밟고 섰을 때 경사가 급하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센트럴 힐의 수로는 폭이 그리 넓지 않고 바닥면에 텍스처 마감이 있어, 들어가서 뛰어노는 행위를 유도하지는 않지만 발을 담그는 등의 소극적 친수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므로 완만한 바닥 경사가 더 안전하다.
셋째, 발을 담글 수 있는 담수 구간을 일정한 거리마다 형성하여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 물이 담기는 구간이 없으면 흐르는 경사면에서 일정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유량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유속이 더 빨라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경 시설 연출 효과상의 하자를 줄일 수 있다. 담기는 구간 없이 흐르는 물의 두께가 일정한 경우, 수로의 내측과 외측의 높이가 매우 정확하게 시공되지 않으면 물이 닿지 않는 곳이 생길 수 있어 훨씬 정확한 시공이 필요하다.
리틀 포레스트와 가든 피트니스
동 앞 정원은 ‘느슨한 공존’을 추구한다. 나만의 정원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싶은 선호를 반영하되, 이웃과 공간을 나누어 쓰는 것이 가능한 정원 공간이 되도록 했다. 외부로부터의 완벽한 차단이나 분리가 아니라 적당한 가시성이 있는 공간에서 동석이 강요되지 않는 이용을 고려했다. 원래 공간명은 ‘오손도손’에서 일부를 따와 도손정원이라 했으나, 추후 영문명으로 일괄 변경하면서 ‘리틀 포레스트’로 변경되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30~50cm의 단차를 활용해 주요 공간 두 곳의 시선을 분리했다. 강요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임을 유도하기 위한 요소로 물이나 불과 같이 움직이는 자연 요소를 도입하도록 했다. 안성 아양지구에는 위로 솟는 샘물을 표현한 종형 수경 시설을 적용했고, 관리와 안전 문제로 불꽃을 감상할 수 있는 화로는 대안으로만 제시되었다. 이 휴게 공간은 마운딩 위 관목으로 더 위요감을 갖도록 했는데, 실제 지형의 높이나 관목의 밀도가 생각보다 이를 달성하지 못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단지 주변부 잉여 공간에 운동 기구만 모아 놓아서는 가고 싶은 운동 공간 또는 SNS에 공유하고 싶은 일상 공간이 되지 못한다. 운동 시설은 이용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지만 이용층이 특정 연령대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스트레칭과 유산소, 근력 운동으로 이어지는 운동의 기본 시퀀스를 따라 각 구역별로 독립적인 공간을 배분했다. 각 공간을 정원으로 둘러싸 ‘가든 피트니스’로 명명한 공간의 성격을 그대로 표현했다.
공간별 레벨을 달리하고 언덕으로 감싸는 등 기본적인 공간 형성의 틀은 리틀 포레스트와 공통분모가 많지만, 쓰임과 공간 분위기를 고려하여 포장(철평석 부정형 포장 vs. 고무칩 포장), 식재(섬세한 계절 연출 vs. 잎의 텍스처와 무늬를 강조), 시설물(자연석 놓기 vs. 조약돌 콘크리트 조형스툴)에서 전략을 달리했다.
차별화 말고 진짜 조경
양재희, 이호영·이해인 소장 인터뷰
시그니처 가든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양재희(이하 양)이번 프로젝트는 설계와 더불어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확립하는 프로젝트였다. 단순히 설계 경쟁이나 화려한 디자인으로 귀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LH의 정원 설계가 추구하는 일관성 있는 방향 설정, 체계적 설계 관리를 목표로 했고, 장기적으로는 가든 브랜드 수립을 추진하고자 했다. 맡은 업무는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용역설계의 발주, 기본설계와 실시설계의 감독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용역사가 설계를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확립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양 일회성으로 넘기기 아까운 정원 설계와 시설물 디자인 등이 LH 주택 설계에 존재했다. 이러한 좋은 설계를 디테일 도면 공유, 준공단지 설계 피드백 등을 통해 다른 단지에 적용하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또한 단지별로 정원 특화를 진행하기 때문에 정원의 주제와 설계 아이템이 일관성을 갖기 어려웠다. 통일성 있는 가든 설계 전략과 구체적인 가든 프로그램과 설계 요소를 체계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 모델 개발과 더불어 시범 단지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세 공간(중앙정원, 동 앞 정원, 운동정원)을 시그니처 가든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양 어느 단지에나 적용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입주민의 체감도와 접점이 상당히 중요한 기준이었다. 기존 정원 사례 답사, 설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이용성과 체감도가 높은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선정했다. 중앙정원인 커뮤니티 가든은 주민 간의 활발한 소통의 중심으로 삼고 싶었고, 동 앞 정원은 최근 관심이 높아진 세컨드 하우스 공간으로 자리 잡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용도와 만족도가 높은 운동 시설에도 작은 정원을 만들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번 프로젝트 설계의 첫 단추는 무엇이었나?
이해인(이하 해)엇비슷한 아파트 조경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단순히 주차장 위 평평한 중앙 공간에 수직적 요소를 만들다보니 석가산처럼 가짜 요소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러면 추억이 깃들 틈이 없다. 입주민들을 수동적 소비자로 만든다. 화려하고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언덕에서 뛰어놀고 자연스럽게 동산에 앉아서 휴식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보통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서 이러한 아파트 공간이 생겨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앙정원에 활용한 정자목과 마을 언덕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이호영(이하 호)과거에는 마을 언덕이 흔한 풍경 중 하나였다. 마을 어귀에는 큰 정자목이 있고, 평상에 어르신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대화를 나눴다. 일종의 커뮤니티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가면 마을회관에 다다르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집의 앞마당에 도착한다. 정자목부터 시작해 집의 앞마당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이를 아파트에 옮겨 왔다. 정자목 아래로 어르신들이 모이고 언덕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설계를 풀어냈다.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범용성도 중요하지만, 대상지 고유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해 세 공간의 개발 목적이 LH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 적용이 가능한 원형(prototype)을 정의하는 것이 중요했다. 단지 규모나 주동의 생긴 모양, 조경에서 쓸 수 있는 땅 모양이 다르다 보니 축소형, 표준형, 확장형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한 배치와 기준을 설정했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다. 또한 단지만의 특성을 고려해서 교목 및 관목 종류, 돌 등은 해당 지역의 맥락적 특성이 보태질 수 있도록 했다.
완성된 공간 중 마음이 드는 곳은 어디인가? 반대로 아쉬운 부분은?
호 자연형 수로는 경사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다 바뀐다. 일일이 다 계산하고, 수작업으로 열심히 만들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단순해 보인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것이 엄청난 노력과 시스템의 결과라는 걸 안다. 복잡한 시스템을 간결한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데는 많은 공이 든다. 그래서 가장 보람이 있었다. 덧붙여 잔디밭 대신 풀밭을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쉽다. 대신 시간이 지나면서 정자목이 더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잔디가 초지가 되면서 더 풍성해질 공간을 그려본다. 오로지 시간만이 불어넣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매력이다.
실제 입주민과 LH 내부의 반응은 어떤가?
양 안성 아양지구는 입주자들이 조성된 조경 공간을 보고 분양 계약을 체결한 지구다. 입주자들이 단지를 둘러보고 조경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고 들었다. 조경 공사에 참여한 기술자 한 분이 ‘분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는 후문도 들었다. 우리가 의도한 대로 실제로 살고 싶은 공간이 조성된 것 같다. 새로운 시공 방법으로 인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시공 담당자, 감리자, LH 감독 등 모든 관계자가 적극적으로 임해주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좋은 아파트 조경이란 무엇인가?
호 쓰임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차별화된 조경을 경계하고 싶다. 차별화란 명분을 앞세워 호텔이나 리조트처럼 으리으리한 조형물을 넣어서 화려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놀러가는 공간이라면 화려할수록 좋겠지만, 우리는 집에 쉬러 간다. 가령 호텔이나 리조트는 일상을 벗어나는 공간이지만, 주거 공간은 편안함이 1순위인 곳이다.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자연의 소리를 더 들을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다. 진정한 차별화는 주거 공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달리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조경설계 HLD(시그니처 가든), 조경그룹 이작(시그니처 가든 외 단지 내 조경), 데오스웍스(티하우스 및 퍼걸러)
발주 한국토지주택공사
위치 경기도 안성시 아양4로 46 일대
면적 1,790m2(단지 대지면적: 38,590m2)
완공 2021. 7.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다. 디자인을 통한 주창과 혁신이라는 철학 아래, HLD의 디자인은 공간적 문제와 도전 과제에 대한 ‘핵심적 개입’ 제공을 목표로 한다.
양재희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LH에서 아파트 설계, 공원 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담당하였고, 시공, 유지 관리, 하자 보수 등 건설 사업의 생애주기를 두루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LH 시그니처 가든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