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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회 LH가든쇼] 비포 선셋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동 방향에는 강릉이, 정서 방향에는 인천이 있다. 인천은 매년 해넘이 축제가 열릴 만큼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갯벌의 주름 사이사이를 흐르는 바닷물이 붉은 노을빛을 반사시키며 낭만적인 경관을 만든다. 1861년에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과거 검단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대대적 간척 사업으로 인해 과거의 지형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잠시 1860년대로 돌아가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었던 갯벌과 검단의 풍경을 정원을 통해 떠올려 보고자 했다. 바다와 갯벌이 만나는 자연의 지형을 구현하기 위해 콜라주 기법으로 평면을 구상했다. 갯벌은 녹지로, 바닷물은 포장으로 표현했다. 바닥은 선형의 화강석 판석으로 구성되는데, 각 판석의 한쪽 면은 비스듬히 깎여 있는 형태다. 이로써 정원에서 서쪽 방향을 바라볼 때만 경사면에 닿는 햇빛이 반사되어 석양빛이 바다와 만났을 때의 풍경을 만들게 된다. 경사면은 윤광마감으로, 다른 면은 버너마감으로 처리해 반사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을 구분했다. 윤광마감으로 된 바닥을 밟으면 기러기가 우는 듯한 소리가 나 잠시 바다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정원 끝에 설치된 기울어진 벽은 검단의 하늘을 담은 장치다. 벽의 바닥을 따라 조명을 설치하고, 스폿 조명이 벽 가운데를 비추도록 두어 밤이면 해질녘 석양의 모습을 연출하게 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김수린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와이엠 일렉트로닉스, 채움 김수린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조경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정량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 ‘종로구 통합청사 기본 및 실시설계’, ‘판교 창조경제밸리 도시첨단산업단지 기본 및 실시설계’, ‘DIGICO KT 기본 및 실시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실험적 조경 프로젝트를 즐기며, ‘GIF 드론해커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서울형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 아이디어 공모’ 대상을 수상했다.
    • 김수린
  • [제3회 LH가든쇼] 자연으로 돌아오는 시간, 회원
    개발로 인해 사라진 검단의 흔적을 되살렸다. 사라진 검단의 옛 흔적을 되새기며, 갯골과 구릉에서 찾은 해안선과 대지의 주름을 정원으로 담아냈다. 굴곡진 지형은 작은 구릉과 물길, 웅덩이가 되고 다양한 미기후와 생명을 불러온다. 돌릴 때 ‘딸깍’ 하는 소리가 나는 회전문을 통해 진입 시 극적 전환을 연출했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골과 구릉 사이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레 건너며 풀과 나뭇잎의 바스락거림, 빗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소생물의 삶을 마주할 수 있다. 목재 루버로 만든 퍼걸러 안쪽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를 배치하고, 밖에서도 정원 내부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퍼걸러 상단에 창을 냈다. 목재 특유의 색은 정원에 따뜻한 느낌을 불어넣는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최지은 시공 초신성, 탐라는 정원, 디자인공감대 최지은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라이브스케이프에서 일하고 있다. 2021년 제2회 서울식물원 식재설계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안성민, 신영재와 함께 디자인 그룹 ‘초신성’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 최지은
  • [제3회 LH가든쇼] 뫼비우스, 순환의 땅
    갯벌은 해와 달의 인력, 지구의 자전과 같이 자연의 순환 에너지로 발생하는 대지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것들은 우주적 생태계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순환의 의미를 잊곤 한다. 검붉은 갯벌의 기억을 순환의 고리를 의미하는 뫼비우스 띠와 생생한 자연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다. 세 개 레이어를 통해 자연에 감싸져 있는 인간을 표현했다. 맨 아래층 자연에 해당하는 지면에는 이끼, 고사리 등의 음지 식물과 숙근초를 식재해 야생의 자연이 가진 생동감을 표현했다. 지하고가 높은 자작나무는 맨 위층의 자연을 의미한다. 시야 확장을 위해 관목 식재를 지양하고, 자작나무의 흰색 수피를 통해 내후성 강판과의 색감 대비를 연출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류광하 시공 기로디자인, 공간시공 에이원, 성산기업, 더그린 류광하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기로디자인을 설립해 활동 중이다. 2012년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제9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서 작가정원을 조성했다.
    • 류광하
  • [제3회 LH가든쇼] 지렁이의 대지 바느질
    자연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한 채 지나친 향과 색은 얼마나 짙고 푸를까? 밤낮으로 변화하는 풍광을 사람이 아닌 지렁이의 눈높이에서 보고자 했다. 지렁이가 흙과 돌, 풀 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만든 길, 대지의 숨구멍을 정원으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공간을 공유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과 자연의 짙은 향, 생명의 에너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지렁이는 매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을 나타내는 콘셉트다. 지렁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정원으로 표현했다. 자연의 변화를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보행로 높이를 지면보다 낮게 조성하고, 가장자리를 따라 서서히 높아지는 플랜터 벽을 만들어 깊이감을 더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박성준 시공 그린부라더 박성준은 MMM 디자인 스튜디오 소장으로,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와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을 거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을 잇는 디자인을 추구하며, 생각하고 구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탐닉하길 좋아한다. 2018 태화강 정원박람회 쇼가든 부분 공동참여작가로 금상을 수상했다.
    • 박성준
  • [제3회 LH가든쇼] 기화요초, 신성한 숲의 물결
    조선시대 검단을 처음 밟은 외국인이 보았을 갯벌의 너그러움과 신성한 숲 자락에 자생하는 초목의 풍경을 구현했다. 굴곡진 갯벌을 형상화한 지형 위에 한반도 자생종 식물군의 조합으로 이뤄진 기화(구슬같이 아름다운 꽃)와 요초(옥같이 고운 풀)가 서식하는 신성한 두 개의 숲을 조성했다. 갯벌과 숲을 은유하는 공간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도시적 풍경이 된다. 전체적인 지형은 약 0.75m부터 약 1.1m까지 높이가 다양하다. 완만한 경사를 통해서 빗물이 밖으로 빠져 나가게 했으며, 마치 갯벌을 걷듯이 익숙지 않은 보행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언덕 주변을 청고벽돌로 포장했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이양희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 채움, 와이엠 일렉트로닉스, 카미가든웍스 이양희는 가천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조경그룹 이작과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21년 스튜디오 천변만화를 설립했고, 다양한 분야 간의 협업을 통한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도시 공간 내 지속가능한 여러해살이풀 식재에 대한 관심을 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설계에 적용하는 이론의 실무화를 추구한다.
    • 이양희
  • 율량 금호어울림 센트로 Yullyang Kumho Oullim Centro
    율량 금호어울림 센트로는 청주시 율량동 신라타운을 6개동, 748세대 규모로 재건축한 단지다. 인근에 초, 중, 고등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있고, 단지 앞으로는 청주시 청원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널찍한 율량천이 흐른다. 봄이면 벚꽃이 피어나는 무심천과 수변공원, 내덕생활체육공원, 운천공원을 비롯해 청주 백제유물전시관 등 역사·문화 시설도 가까이 있다. 이러한 지역 고유의 풍경과 자연을 매개체로 삼아 율량의 도시와 역사의 조화를 보여줄 수 있는 단지를 조성하고자 했다. 시간유적 최근 곳곳에 들어서는 아파트와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 개발로 인해 지역 특성과 그 땅이 가진 기억과 역사가 흐릿해지고 있다. 이에 주목해 율량의 풍부한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유적(time henge)을 콘셉트로 설정했다. 시간유적은 영속적인 시간 속의 경관을 뜻한다. 단지를 거닐며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율량이라는 지역과 땅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고자 했다. 각기 다른 테마의 공간을 분산 배치하기보다, 시간유적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담은 공간들이 일련의 거대한 녹지로 인지되게 만드는 전략을 세웠다. 타임리스 그린 율량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중앙광장 ‘타임리스 그린’에는 녹음이 가득하다. 생태계류, 생태연못, 미러폰드를 조성해 인접한 율량천이 단지 안으로 흘러든 것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크고 작은 수목과 어우러진 다양한 수경 시설은 더운 여름에도 청량감을 느끼게 하고 탁 트인 열린 자연 경관을 선사한다. 수경 시설과 함께 놓인 커다란 돌은 율량의 유적과 선돌을 상징한다. 주변으로 누운 형태의 소나무와 수형이 독특한 소나무를 심어 자연의 풍경을 담은 독특한 수 경관을 완성했다. 예술이 펼쳐지는 갤러리 단지 중앙광장을 감싼 기다란 생태계류를 이용해 과거 율량에 있었던 역참(말을 바꾸어 타던 곳)의 풍경을 담았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정원과 다양한 예술 작품을 담은 갤러리 정원을 단지 곳곳에 배치했다. 티하우스와 부대시설, 중앙광장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정원은 실외 미술관을 연상시킨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박윤경 사람과나무 사진 유청오 조경 기본설계 선엔지니어링 조경 특화설계 사람과나무 시공 금호건설 조경 시공 영림산업 놀이, 휴게, 운동 시설 스페이스톡, 그린프리즘, 청우펀스테이션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율봉로 94번길 61 대지 면적 29,640m2 조경 면적 11,098m2 완공 2022. 3. 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는 1999년 설립된 조경설계사무소다. 자연의 가치를 높이는 디자인을 모토로, 20년간의 노하우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로운 풍경을 빚어내며 조경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다.
    • 사람과나무, 금호건설
  • 현대자동차 영남권 연수원 Hyundai Motor Group Global Partnership Center and University Gyeongju Campus
    되돌이 지난 4년간 가르친 수업 중 하나가 ‘코어1’이라 불리는, 건축 등의 설계 교육을 받은 적 없는 학생이 입학 첫 학기에 듣는 필수 설계 과목이다. 15주 동안 학생들은 주 3회, 매 4시간씩 강의를 듣고 총 3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60페이지에 달하는 강의계획서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강도 높은 수업을 통해 개념 잡기, 대상지 답사, 각종 표현 방식, 여러 스케일을 넘나드는 접근 방식 등을 배운다. 수업의 별칭이 말해주듯 그야말로 조경 설계의 ‘코어’를 가르친다. 이 수업에서 가르치는 설계 과정은 상식적이고 단순하다. (1) 설계 문제의 이해, (2) 대상지 답사 및 분석, (3) 평면과 단면을 통해 개념 잡기, (4) 다양한 스케일과 종류의 드로잉을 통해 개념 발전시키기, (5) 여러 리뷰를 통해 피드백 받기 (6) 최종 결과물을 주어진 시간 내에 만들고 발표하기. 그런데 학생들이 그 수업을 거치며 배우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설계 과정이 절대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수차례 앞의 단계로 되돌아가고, 때로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개념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물론 주어진 시간의 한계는 명확하지만) 과정이 주는 스트레스에 지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설계로 만드는 기회로 삼는 학생이 좋은 성과를 내고 두 번째 학기로 넘어가게 된다. 오피스박김의 지난 18년의 설계 과정 또한 다를 바 없다. 클라이언트와 첫 대화를 하고, 대상지를 답사하고, 개념을 만들고, 여러 미팅과 보고를 거친 뒤 납품을 하고, 시공 현장에 나가 감리를 하는데,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난 뒤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저 단순해 보이는 과정에 한 방향의 화살표보다 훨씬 많은 수의 루프들이 있다. 다시 개념으로 돌아가고 다시 현장을 나간다. 시공 현장에서 선형을 바꾸고 재료를 바꾼다. 공사비 절감을 위한 취사선택의 과정에 이르러 클라이언트에게 다시 개념을 설명해야 하고 꼭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해 설득한다. 아마도 이것이 코어1 강의계획서 두 번째 페이지에 언급된 ‘설계의 방식(methodology)’ 중 첫 항목인 ‘되돌이(iteration)’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오피스박김이 진행한 모든 프로젝트는 각기 다른 성격과 강도의 되돌이 과정을 거쳤는데, 어느 단계에서 어느 앞 단계로 돌아갔고 어느 단계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고, 그 후 어떤 모양새로 앞으로 나아갔는지가 해당 프로젝트의 공간과 완성도를 설명한다. 2015년에 시작되어 2019년에 완공된 현대자동차 영남권 연수원 설계 또한 수많은 되돌이를 거쳤는데, 이 지면을 통해 프로젝트의 되돌이 과정 중 중요했던 순간들을 반추해볼 수 있었다. ‘현대적’ 쉼 필자가 유학생이던 시절, 아시아의 또 다른 경제 강소국 출신의 친구가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은 정말 대단해. 제철, 자동차, 조선 등 중공업의 강자잖아. 우리나라는 열심히 하지만 전부 경공업이라…….” 이 친구의 진심 담긴 부러움을 받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점이었다. 한국의 이 근대적 자부심의 중심에 기업 ‘현대’가 있다. 대상지는 본래 운동장의 비중이 매우 큰 현대자동차 연수 시설이 있던 곳이다. 아마도 울산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연수 기간에 머물며 축구나 집단 운동으로 단합하는 근대적 형태의 쉼과 배움을 즐겼을 것이다(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한국의 근대를 높이 평가한다. 근대적이라는 표현을 전혀 부정적으로 쓰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현대적(기업 현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쉼을 가능케 하는 외부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설계와 시공 과정 중 되돌이가 일어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진 여러 질문 중 하나였고, 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이 쌓여 설계가 공간이 되었다. 첫 단서는 대상지 답사 중 찾았다. 2015년 11월에 직원들과 함께 방문한 대상지에는 그야말로 야생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연수 시설은 모두 철거된 상태였고, 당시 유행하던 재선충으로 인해 잘린 소나무들이 외부 반출을 위해 톱밥으로 갈리고 있었다. 해발 30m 높이 해변에 위치한 대상지에서 동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대상지와 바다 사이의 두툼한 갈대숲이 따뜻하면서도 찬 가을 햇볕을 받아 금빛으로 넘실거리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때 든 확신은, 시선을 바다로 유도하고 대상지와 바다를 구분 짓는 어떤 인위적 장치도 배제함으로써 연수원 이용자와 자연 간의 직접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대적 연수 프로그램이 단합과 운동에 초점을 두었다면, 현대의 현대(contemporary Hyundai) 구성원의 연수는 개인의 쉼과 그합, 그 둘 모두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건축 설계의 주안점과도 일맥상통했다. 그 당시 목격한 야생의 아름다움이 폐허와 방치로부터 온 것이었다면, 설계를 통해 탄생하는 외부 공간에서는 세심하게 안무된 물성의 배치를 통해 야생미를 만들어야 했다. 이 프로젝트의 조경 설계 대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건물과 대상지 경계 사이의 공간과 건물 내부의 중정들이다. 건물과 대상지 경계 사이의 외부 공간은 건물에서 바다로 향하는 큰 방향 안에서 거대한 주름이 공간을 만드는 지형으로 설계했다. 오피스박김의 여러 프로젝트에서 이렇게 큰 제스처의 지형이 전반적 공간의 틀을 잡는 경우가 많다. CJ 블로썸 파크(2016년 9월호)나 현대캐피탈 배구단 복합훈련캠프(2014년 1월호)의 외부 공간이 그 예다. 사실 조경 설계 과정에서 되돌이 루프를 일으키는 요인 중 절대적으로 빈번한 것이 바로 공사비 삭감인데, 지형으로 큰 면을 채우며 스케일감을 만드는 방식은 시설물이나 비싼 나무를 빽빽히 넣는 것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경제적이다. 더구나 이 프로젝트에서처럼 절성토 균형을 너무 잘 맞춰버렸을 때는 탄소발자국의 최소화 효과까지 있다. 시공 중 현장 감리를 통해 기반 공사 중 발생된 흙을 이동시켜 쌓으며 지형의 요철을 만들었다. 벤치 등 휴게 시설물을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가구를 들고 나와 일시적인 휴게 등의 이벤트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역할이 바로 지형의 설계였다. 건물과의 관계를 살피며 3차원 설계 프로그램에서 지형의 고저 방향, 서로의 관계를 수없이 테스트하며 등고선을 변경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형은 한편 육중한 매스를 갖는 강한 형태의 건물에 스케일 감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건축의 입면은 외부 공간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차로 진입하는 모든 방문객은 이 외부 공간 너머로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지형의 주름들 이 건축의 육중한 스케일을 완화한다. 건물 내부의 중정들은 필연적으로 내부 지향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시선이 재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물성을 통해 각 공간의 성격을 정의하되 최대한 비우고, 평탄한 기반 위에 배치함으로써 재료 자체가 뿜어내는 거침의 아름다움을 존중했다. 즉 나무를 심을 때는 그리드를 따라 한 가지 수종을 식재해 단순하면서도 밀도 있는 숲을 연출했고, 진입 공간에는 너른 수면이 만드는 반사의 경관이 방문객을 맞이하도록 했다. 매우 단순한 건물의 입면이 수면에 비추어지며 극화되는 순간이다. 중정 설계에 사용된 거친 돌, 마사토, 판석, 잔디, 물 등은 조경 설계에서 흔히 쓰는 재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배치와 담는 공간의 모양에 따라 그 공간감과 경험이 천차만별이 된다는 점이다. 글과 함께 실리는 사진들이 실제 모습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연수원 완공 직후, 인류사에 유례없는 전 지구적 전염병이 돌았다. 현대는 갓 구워진 빵과 같은 이곳을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시설로 공유했다. 진정한 ‘혼자만의 쉼’이 필요한 사람들의 장소로 쓰인 것이다. 오피스박김이 설계한 ‘현대적’ 쉼이 동시대 쉼 문화에 일조하기를 기대해본다. 담담한 마음 박윤진 인터뷰 거대한 건물을 둘러싼 녹색 구릉이 인상적이다. CJ 블로썸 파크, 양화한강공원을 비롯해 그간 여러 프로젝트에서 지형을 다듬는 ‘지형술’을 이용해왔는데, 현대자동차 영남권 연수원(이하 현대차 연수원)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했나. 지형술은 대상지의 기능적 문제를 통합적으로 혹은 가장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설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양화한강공원에서는 뻘을 잘 안착시키기 위해 호안 지형을 만들었고, CJ 블로썸 파크의 경우 훼손된 사면을 복원하기 위한 입체적 블레이드 지형을 제안했으며, 서울공예박물관의 지형은 나무를 기념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그를 향해 나아가는 계단의 역할을 한다. 현대차 연수원에서는 현장 흙의 외부 이동 없이 절성토 토공량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근간으로, 건물의 스케일을 완화 혹은 더욱 강조할 수 있는 지형을 구현하고자 했다. 부드러운 형태로 과장된 스케일을 구현하려 했으니, 오피스박김의 또 다른 ‘지형술’로 구분해도 괜찮을 것 같다. 구릉의 높이가 상당히 높다.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할텐데, 특별한 노하우나 공법이 있나. 안식각을 지키고, 절토량과 성토량의 비율을 맞추는 데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구릉의 높이가 높지만, 진입 시 건물의 수평적인 매스가 배경이 되어 장쾌한 경관을 연출한다. 물론 기능적으로 배수와 사면 안정화 유지·관리를 위한 굴곡의 형태이기도 하다. 급경사를 만들거나 다른 기능이 필요한 경우, 지형틀(서울공예박물관의 완만한 언덕에 설치된 선형의 콘크리트로 지형에 미세한 차이를 드러낸다. 2021년 10월호 참고) 등 몇 가지 기법을 통해 조작을 한다. 지형틀의 경우 현장의 문제와 여건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찾게 된 공법이다. 현장 조건에 맞는 테스트와 감리를 통해 기술적 성취를 한 셈이다. 퇴계로, 만리재로 보행 환경 개선 프로젝트에서는 새로운 포장을 찾기 위한 배합과 비율, 깊이를 목업 작업을 통해 탐구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재료와 공법을 발견하는 일은 늘 흥미롭고 즐겁다. 서울공예박물관에 사용한 지형틀은 현재 한국물가정보에 등록되어 있다. 이 넓은 구릉에 숲처럼 가득 심은 나무나 벤치, 테이블, 퍼걸러 같은 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이 외부 공간을 사람들이 어떻게 감각하기를 바랐나. 이로써 건물과 지형은 어떠한 관계를 맺게 되는가. 큰 열린 경관, 그 자체로 무엇이 되기보다 사람들 혹은 여러 현상들을 초대할 수 있는 경관을 만들고자 했다. 공간을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보다, 자유롭게 열어주고 빈 곳을 만들어줌으로써 사람들이 어디든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점유하기를 바랐다. 연수원은 교육하고 학습하는 공간인 동시에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장소다. 실내에서 느끼던 압박감에서 벗어나 몸과 정신을 이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쉼이라는 개인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발현되기 위해서는 잘 조직된 의도된 비움이 필요하고, 이러한 공간은 최근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지형과 건물의 관계는 상당히 전략적이다. 거대한 건물의 부피감을 큰 압도감을 느낄 수 있는 스케일의 지형이 부드럽게 완화하고, 이 대비를 통해 현대차 연수원의 정체성이 완성된다. 크게 열려 있되 재료의 대비를 이용해 영역을 구분하고, 시원한 쾌를 줄 수 있는 경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경관을 만들었다. 현대의 기원, 고 정주영 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담담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경관이라고나 할까(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고 정주영 회장 친필 글씨 중). 특정 기업의 연수원인 만큼, 기업의 철학이나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 요구되지는 않았나. 특별한 요청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리서치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기업 문화와 특성을 이해하고자했다. 제조업인 만큼 공장 같은 큰 스케일의 공간, 기능적인 공간이 어울린다고 판단했고 해안 경관이 펼쳐져 있는 대상지와도 잘 부합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울산에 공장을 두고 있을 시절, 직원과 함께 휴식하던 곳이 지금 현대차 연수원 터다. 그렇다면 현대에 맞는 새로운 여가의 경관은 무엇일까? 현대는 한국 제조업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기업이고, 제조업은 한국 근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굉장히 중요한 산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종묘의 평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 현대차 연수원의 평면과 많이 닮아 있었다. 정방형의 정전들이 미세하게 높이가 다른 지형에 둘러싸여 있고, 지형과 건물이 만나 생기는 빈 공간도 상당히 유사했다. 근대적 여가의 기원은 이러한 빈 공간에서 동시대와 조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차 연수원의 비움은 레저와 휴식 기능도 제공하지만, 한국의 전통 공간 구조와도 닮아 있다. 단 이때의 비움은 막연한 빈 공간이 아닌,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물, 돌과 같은 재료에 의해 현상학적으로 바뀔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또한 장쾌하게 빈 공간은 다양한 물성을 드러내는 데 유리하다. 전통, 근대, 그리고 동시대는 시계열로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경험과 외부 공간을 다루는 조경 행위를 통해 확인 가능하며, 조경의 본질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비워져 있는 공간 중 유일하게 채워져 있다고 생각한 곳이 중정 속 나무 숲이다. 경관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머무르기 적합한 곳이 바로 나무 숲 중정이다. 부드럽고 투과성을 갖는 요소인 나무를 심어 하나의 레이어를 더 만듦으로써 중정의 오목함과 아늑함을 강조하려 했다. 중정에 숲이라는 필터를 하나 두어 거대한 건물이 주는 부담감을 덜고, 그 밑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쉬거나 만나게 한 것이다. 숲 아래는 흙으로 포장했는데 언제든 의자를 가져와 쉴 수 있고 토론회도 열 수 있는 다용도 공간이다. 홈페이지를 보니, 현대차 연수원에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하려 했다는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이라는 지역성이 드러나는 소재를 찾는 건 늘 오피스박김이 해온 일이다. 또한 실용적 이슈를 무시할 수 없다. 공법, 공사비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사용한 발파석은 화강암 포장의 1/5 가격에 불과하지만, 현장 설계 혹은 감리만 잘한다면 크기와 거친 정도 그리고 놓은 방식 등에 따른 다양한 방식을 구현할 수 있다. 더 거칠게 깬 돌을 놓기도 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비우고, 언덕 대신 납작한 잔디밭을 두기도 하고, 중정 사이에 나무 숲을 만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 전통 공간과 다를 바 없는 고전적 언어를 사용했지만, 물성을 대상지에 맞춰 극화하고 더 합리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크지 않은 직사각형 틀에 잔디와 깬 돌을 채워 넣었는데, 어떤 기능을 하는 공간인가. 주변 석산에서 나온 돌을 사용한 것으로, 거친 돌은 배수를 원활하게 하고 단단하고 매끈한 바닥과 대비되어 미묘한 질감이 느껴지게 한다. 현대차 연수원에서는 거대한 건축물을 둘러싼 유리 매스와는 대비되는 방식으로 거친 질감을 만들어낸다. 부드러운 잔디와 매끄러운 돌, 거친 돌의 물성을 이용해 공간의 영역을 만들어보려 한 것이다. 낮은 옥상에 설치한 직사각형 틀은 바다를 향한 일종의 제스처다. 이 공간을 쉼터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건물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주변 건물이 매끈하기 때문에 그와 다른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작지만 개방감을 안내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건물 안팎이 하나로 연결되는 부분도 있다. 단절된 안과 밖이 서로 교호하면 묘한 긴장감이 만들어지고, 작은 공간이라도 건물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질감이 바깥으로 이어지면 공간의 깊이감이 더해진다. 현대차 연수원을 비롯해 여러 프로젝트에서 주로 고인 물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기능적 이유가 큰데, 한국의 경우 겨울이 길어서 물을 사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래서 얕은 물을 주로 사용한다. 평소에는 포장 공간이지만 언제든 수경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든지, 물이 사라져도 아름다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한다. 또 최대한 과장된 효과를 낼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한다. 현대차 연수원의 경우 건물 앞 가장자리에 길게 반사못을 놓았는데, 광장인 동시에 물이 담기는 공간이다. 수면에 비친 건물을 보면 그 규모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건물 진입구 쪽에도 해가 뜨는 모습과 바다의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수공간을 두었다. 고정되어 있기보다 계속해서 변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공간을 만드는 게 오피스박김의 일관된 태도다. 이는 한정된 한국의 땅과 도시의 밀도를 의식한 것으로, 만약 대상지가 캘리포니아였다면 전혀 다른 설계를 했을 것이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연구와 설계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는 어떤 이슈에 주목하고 있나. 사실 나의 가족은 지금 보스턴에 있으므로, 나는 서울을 방문하고 있는 이방인인 셈이다. 서울과 보스턴을 오가며 감각하는 시차는,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흥미로운 기제가 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조경은 그 자체로 사회적으로 선하고, 환경적으로 매우 이타적인 분야다.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선을 만들며 이를 공간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또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보다는 새로운 생활 방식, 사회 구성원 개별 모두가 존중받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과 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 2020년 5월호, “이론과 실천과 교육을 가로지르다, 오피스박김의 2030”에서 오피스박김의 새로운 비전과 연구 과제로 ‘새로운 황야’를 이야기한 바 있다. 비록 2년이라는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새로운 황야를 탐구한 성과가 있을까(이 질문에 대한 답은 미국에 있어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한 김정윤 소장이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었다). 2020년 5월호가 발간된 직후, 하버드 GSD 학장에게 제출한 연구 제안서가 채택되어 ‘열한 개 중위도권 도시들의 잃어버린 자연(Lost Nature of Eleven Mid-Latitude Cities)’이라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서울, 보스턴, 마드리드, 파리, 뉴욕, 상하이, 비엔나, 베를린, 런던, 도쿄, 헬싱키가 각각 도시화를 겪으며 잃어버린 자연의 요소는 무엇인지, 도시화 이전의 상태와 현재의 상태를 교차 맵핑하는 방식으로 알아보았다. 올 가을 새로 시작하는 세미나 수업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이미 만들어진 평면 맵과 짝 지을 수 있는 단면 맵핑을 진행해 궁극적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지상, 지하의 자연적·인공적 자원의 재배치 공간 전략을 만들 계획이다. 우리의 서울, 강남에 대한 탐구를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오피스박김의 설계 아젠다인 ‘산수전략’과 ‘대체자연’이 프리즘 역할을 했다. 1960년대까지 논밭이었던 강남이 현재 90%에 달하는 불투수성 표면을 가진 도시가 되면서 매년 도시 홍수와 열섬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는 비단 서울만 겪는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전제하에 다른 도시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울대학교 류영렬 교수, 배지환 박사팀의 연구를 접해 강남 지표면 2~3m 아래에 유기 탄소 비율이 높은 흙이 풍부히 매장되어 있고, 이는 이 지역의 과거 토지 이용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도시에서도 그 지역의 과거와 현재 목격되고 있는 문제들의 연관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러한 연구가 궁극적으로 ‘조경적 방법’을 통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설계 전략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스케일과 지상, 지하를 넘나드는 시스템의 설계가 바로 잃어버린 황야의 기능을 부활시키는 새로운 황야(대체자연에서 발전된)가 아닌가 한다. 언제나 설계를 통해 ‘실질적 해결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실행자이기에, 학교에서의 나의 연구가 오피스박김이 구현하는 공간의 전략으로 쓰여 인류가 당면한 기후위기 해결에 작은 부분이라도 기여하는 것이 전문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설계 총괄 및 감리 오피스박김(박윤진, 김정윤) 설계 담당 오피스박김(박협, 구재영, 장민지) 시공 현대엔지니어링 건축 건축사사무소 mpart 발주 현대자동차그룹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화서리 738-1 면적 124,957m2 완공 2020. 2. 사진 김종오 오피스박김(PARKKIM)은 박윤진과 김정윤이 2004년 네덜란드에서 설립했다. 2006년 서울로 이전해 한국의 지역적 가능성에 근거한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들을 선보이는 한편, 활발한 저술과 강연 등을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왔다. 2019년 김정윤 대표의 하버드 GSD 임용을 계기로 보스턴에도 사무소를 열었다.
    • 김정윤
  • 광명 철산 롯데캐슬 &ampampamp SK VIEW 클래스티지 Gwangmyeong Cheolsan Lotte Castle &ampampamp SK VIEW Classtige
    광명 철산 롯데캐슬 & SK VIEW 클래스티지는 광명철산주공7단지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으로 롯데건설과 SK건설이 공동 계획한 단지다. 부지 남서측은 어린이 공원과 완충 녹지가 접해 있고, 남측에 위치한 교회와 단지의 큰 레벨 차로 인해 생긴 경사면을 자연스럽게 풀어낼 설계가 필요했다. 주 진입구 및 부 진입구 3개소와 보행자 진입구 4개소 등 7개 입구 각각의 특성을 고려하고 두 건설사의 아이덴티티를 적절히 살리면서 통합되고 일관성 있는 디자인을 하고자 했다. 단지 한 가운데 위치한 오픈스페이스는 중심 공간으로서 상징성을 가진 사회적 커뮤니티 장소로 계획했다. 단지 전체를 순환하는 동선 체계를 구축하고 산책로와 만나는 공간을 특화했다. 더불어 옥상 정원을 적극 활용해 특색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흐르는 풍경 광명시를 대표하는 세 가지 요소인 안양천의 물과 도시를 에워싼 숲, 광명의 빛을 디자인 요소로 차용했다. 단지 내에서 이 세 가지 요소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르는 풍경’을 디자인 콘셉트로 삼았다. 단순한 재료와 완성도 높은 디테일, 수려한 곡선 형태의 차용, 선형의 조명으로 디자인 개념을 구현했다. 클래스티지 파크 중심 공간은 단지를 상징하는 동시에 입주민의 사회적 커뮤니티와 옥외 활동 장소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곳이다. 중심 공간을 크게 커뮤니티 공간, 놀이 공간, 잔디 공간, 물의 공간으로 구분한다. 네 공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주변 어린이 공원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클래스티지 파크는 물을 이용한 생동감 있는 곳이며 공간과 공간을 연결한다. 석가산을 축조해 공간을 입체화하고 떨어지는 물소리로 주변의 소음을 자연의 소리로 바꾼다. 다양한 높이의 잔디밭은 다채로운 풍경을 연출해 경관성을 높이고 주민들을 위한 옥외 활동 장소를 제공한다. 잔디를 따라 형성된 공간에는 하절기에 물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수로와 물길을 디자인하고 동절기의 모습을 고려한 디테일 적용했다. 이 물길을 따라 가면 자연스럽게 주변 어린이 공원과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를 만나게 된다. 다양한 곡선으로 디자인된 클래스티지 파크는 밤이 되면 선형을 따라 설치된 조명에 의해 펼쳐지는 야경으로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2개 층으로 조성된 티하우스는 입주민들의 커뮤니티를 담는 시설이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클래스티지 파크의 테마인 물이 물놀이터까지 이어지도록 해 공간에 활기를 더했다.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글 홍성재 아텍플러스 부소장 사진 유청오 조경 기본 설계 디담 조경 특화 설계 기술사사무소 아텍플러스 시공 롯데건설, SK건설 롯데캐슬 조경 시공 아세아종합건설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휴게 시설 데오스웍스 SK VIEW 클래스티지 식재 SK임업 시설 현디자인 놀이 시설 아르디온, 청우펀스테이션 휴게 시설 원앤티에스 위치 경기도 광명시 시청로 50 대지 면적 48,999.7m2 조경 면적 19,242.81m2 완공 2022. 3.
    • 아텍플러스 + 롯데건설 + SK건설
  • 전주 야호 맘껏숲놀이터 Playforest_as you like!
    어쩌다, 놀이터 어린이 놀이터(이하 놀이터)와 관련된 문의가 종종 들어온다. 놀이터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 것이 벌써 25년 전 일이다. 그간 고민과 경험이 축적되었지만 어린이였던 시절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으니 시간적 거리감에 늘 조심스럽고 걱정이 앞선다. 고백하자면 놀이터는 우선순위의 논문 주제가 아니었다. 당시 조경학과에는 여학생 수가 적었고, 소수자의 눈으로 조경학의 틈새를 찾겠다는 무모함이 어쩌다 놀이터로 이어졌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어린이와 놀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이 놀이터에 대해 논문을 쓰겠다고 무턱대고 결심했을 땐 지도 한 장 없이 낯선 곳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절, 무작정 연세대학교 아동학과 교수에게 연락을 드렸다. 다른 과 학생이 놀이터에 관심을 가졌다는 기특함이었는지 길 잃은 아이에 대한 측은지심이었는지 모르나 교수님은 낯선 학생에게 첫걸음 떼는 법을 알려주셨다. 연세대학교 부속 교육 기관인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을 소개받아 교사와 대화하고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비로소 어린이의 놀이와 놀이 환경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우리 도시의 놀이 환경은 생각보다 열악하고 위험했다. 서울시 어린이집의 실외 놀이터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무모한 논문을 쓴 이후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놀이 기구는 화려해지고 다양해졌으며 각종 인증기준으로 안전 문제와 위생이 개선되었지만, 어린이와 바깥 놀이 환경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 철학과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전문가로서 그 더딘 변화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껴온 터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어떻게든 기여해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다. 어쩌다 시작하게 된 놀이터는 어느덧 전문가로서, 또 세상의 어른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무가 되었다. 맘껏, 놀이를 기획하다 유니세프(Unicef)가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아동친화도시 사업에는 도시를 만드는 의사 결정 과정에 아동이 참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야호 맘껏숲놀이터(이하 맘껏숲)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전주시와 유니세프한국 위원회의 매칭펀드로 조성한 아동 친화 공간이다. 어른 혹은 미리 정해진 규칙으로부터 자유롭게 맘껏 스스로 즐기자는 의미로 시작한 ‘맘껏’ 공간은 서울의 맘껏놀이터(2017), 군산의 맘껏광장과 맘껏카페(2019)에 이어 전주의 맘껏숲이 세 번째다. 전주시는 놀이터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놀이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 중이며 야호아이놀이과를 신설해 여러 유형의 놀이터를 만들어 놀이의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덕진공원 어귀에 위치한 맘껏숲은 옛 야외 수영장 부지에 만든 놀이 복합 공간으로 전주 시민이라면 한 번쯤 이곳에서 놀았던, 놀이의 기억이 두껍게 쌓여있는 장소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은 18세 미만의 사람을 의미하는데, 놀이터 사업이 주로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청소년들이 공원과 놀이터에서 소외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놀이터의 주 이용자에 청소년을 포함하자는 설계팀의 생각에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청소년들이 모이면 우범화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우리는 다양한 발언과 참여의 기회를 통해 상충되는 의견들을 조율하며 공간의 정체성을 함께 만드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환경 교육가, 놀이 전문가, 생태학자, 조경가로 구성된 설계팀을 꾸렸다. 설계팀은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전주시 아동자문단과의 놀이 워크숍, 숲에서 놀아보는 팝업 놀이터, 청소년이 직접 디자인하여 시공하는 맘껏아지트 만들기, 도토리의 새싹을 틔워 만드는 도토리 텃밭 만들기 등 맘껏숲에서 진행할 다양한 프로그램을 미리 테스트하며 콘텐츠를 만들어갔다. 경험을 통해 놀이터가 적절한 실내 공간과 연계되지 않으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맘껏숲에도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실내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날씨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실내 놀이터, 보호자가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 운영자가 상주할 수 있는 건축물이 절실했다. 야외 놀이터 사업으로 발주됐지만, 기본 계획에 상자 형태의 건축물을 그려 넣어 시장에게 놀이터와 연계된 실내 공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전달했다. 그 제안에 공감한 전주시가 별도의 예산을 편성했고 그렇게 맘껏숲에 들어설 맘껏하우스가 탄생했다. 전주와 덕진공원에 대한 기억과 애착을 가진 지역 건축가가 맡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실현되어 지금의 맘껏 하우스 풍경으로 이어졌다. 놀이터로서의 건축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덕진공원에 놀러가던 건축가 김헌(일상건축사사무소)은 어느새 세 딸의 아빠가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매주 이곳을 찾는다. 대상지는 약 30년간(1973~2001년) 야외 수영장이 운영되어 전주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던 곳이고, 김헌 역시 그들 중 하나다. 놀이터로 시작한 맘껏숲 프로젝트에 합류한 건축팀은 건축물이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놀이 공간의 일부가 되길 원했고 놀이터의 중심이 아닌 놀이터의 연장으로 기능하길 원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기억을 더듬어 비석치기, 땅따먹기, 두꺼비 집짓기 등 흙, 돌, 나무 같은 자연물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자연이라는 놀이의 재료가 건축물을 구성하는 마감 요소들로 이어졌고 목재(글루램), 노출 콘크리트, 석재로 마감된 맘껏하우스가 탄생했다. 맘껏하우스의 놀이 공간을 만드는 건축적 장치는 틈과 프레임이다. 물리적으로 꼭 필요한 실내 공간만 확보해 실내로 규정되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그와는 반대로 외부 공간과 사이 공간, 즉 ‘틈’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틈은 이동에 쓰이는 공간, 머물 수 있는 부피가 있는 공간, 시선과 소리가 통과하는 공간이 된다. 틈을 만든 이유는 아이들이 한 방향으로, 규정된 대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틈은 놀이를 만든다. 변화하는 박공 글루램 프레임으로 건축물의 형태를 규정짓고 공간감을 갖게 했다. 프레임은 적당한 그늘을 만들고 안전을 위한 난간 역할을 하며, 각종 놀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지대가 된다. 그네, 집라인 등 놀이 기구를 만들어주는 것보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맘껏하우스의 목표다. 자연에서 놀기 맘껏숲이라는 이름은 덕진공원의 아름드리 개잎갈나무와 대나무를 포함한 다양한 나무와 숲, 그리고 연꽃호수라는 풍성한 자연이 놀이를 담는 그릇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도시의 모든 곳이 놀이터가 될 수 있으니, 맘껏 놀 수 있는 숲이 생긴다는 건 더 풍부한 상상과 가능성을 의미한다. 과업 초기에 답사한 일본의 플레이파크(Play Park)에서 충격에 가까운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 기성 제품 하나 없이 흙과 물, 불과 목재 등 자연의 소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며 도전과 놀이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놀라웠다. 어린 시절 자연에서 놀았던 경험은 자연에 대한 태도와 감수성을 형성한다. 여행지가 아니라 일상으로 만나는 자연에 대한 기억이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만든다고 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놀이 시설물의 디자인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자연과 만나는 방식, 그 안에서 펼칠 놀이와 배움의 체험을 디자인하는 일일 것이다. 숲에서 논다는 것은 자연과의 일상적인 접촉 속에 자연의 변화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도토리의 싹을 틔워 도토리 텃밭을 만들었다. 그들이 심은 참나무 묘목이 맘껏숲의 일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양지바른 곳에 심었지만 공사 기간을 버티지 못해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들이 숲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은 그들 마음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숲은 아이들 마음에서 이미 태어났기 때문이다. 맘껏숲의 공간 덕진공원의 맘껏숲은 어린이, 청소년, 시민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 어느 정도의 영역성이 필요하다. 원형 언덕의 능선을 기준으로 맘껏하우스가 있는 놀이터는 주로 어린이 놀이 영역, 호수 쪽이 청소년과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영역으로 계획했지만,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구조다. 놀이에서는 다양성과 연속성, 자발성이 중요하다. 건축물과 놀이터가 이어져 높낮이가 있는 잔디 언덕, 순환 동선과 작은 샛길이 선택의 다양성을 주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공간 구분과 규칙을 허물고 넘나들며 놀이를 발명할 것이다. 슬라이딩 가벽에는 청소년들이 커버 댄스나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거울과 낙서벽을 설치했고, 이는 덕진공원의 호수를 조망하는 프레임 역할을 한다. 대나무숲 터널은 이미 있던 대나무숲 안에 작은 길을 낸 것이다. 맘껏아지트는 청소년들이 디자인하여 직접 제작까지 한 구조물을 존치한 것이고, 트리하우스는 별도의 예산으로 솜씨 좋은 목수들이 만들었다. 놀이 워크숍 때 시도한 밧줄 놀이 시설이 준공 이후 추가 설치됐는데, 좋은 공간은 이렇게 실험을 허락하고 나이 들며 진화한다. 맘껏숲은 운영 측면에서도 새로운 공공 놀이터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전주시의 아동·청소년 정책 '야호 프로젝트'의 하나로 놀이 활동가가 상주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놀이터다. 어린이 놀이터 만들기의 숙제 통계청의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2019)에 의하면 전 세계 유소년(0~14세)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5.6%인 반면 한국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4%다. 더욱 충격적인 건 2067년에는 유소년 인구가 8.1%로 떨어진다고 예측했다는 점이다. 초저출생 상황에서 아동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중요 사안이며 놀이는 아동의 발달과 행복에 핵심 요소다. 놀이터는 공평한 생애 첫출발을 위한 중요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놀이터 환경 역시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피해가지 못한다. 작년 말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놀러 온 다른 동네 아이들을 도둑 취급해 경찰에 신고한 황당하고 안타까운 뉴스를 기억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모든 어린이가 나이, 지역, 주거 형태, 계층, 성, 장애와 상관없이 충분하게 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과 제도를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한국의 놀이터 풍경을 지배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근거한 안전인증제도다. 놀이와 도전의 가치를 상실하고 안전만 강조하는 제도적 구속은 조합놀이대 중심의 틀에 박힌 놀이터를 양산하고 있다. 안전인증은 경직되어 운영되고 있고, 시설물 설치 후에 시행되다 보니 설계 단계에서 디자이너를 위축시킨다. 맘껏숲의 경우, 건축물과 놀이터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초기에는 건축물에서 튀어나온 무지개 다리 끝이 바로 미끄럼틀로 이어지게 설계했다. 그러나 어린이놀이시설로 규정된 미끄럼틀과 건축물이 연결되면 건축물 전체가 안전인증 대상이 된다는 황당한 이유로 디자인이 수정됐다. 안전인증으로 설계안이 의도와 다르게 변형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네와 흔들놀이 같은 기성품 대신 매달려 놀 수 있는 밧줄과 트리하우스를 도입했다. 조합놀이대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정해진 패턴으로 놀고 사고한다. 맘껏숲에는 대신 언덕, 개울과 물웅덩이, 나무, 나무토막, 흙, 놀이집, 낙서벽, 거울 등 놀이 시설뿐 아니라 놀이를 촉진하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노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놀이 시설이 많지 않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 고민하는 긴 시간을 보낸다. 성급한 부모는 주저하는 아이를 보고 이곳은 재미없다며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어른 눈에 재미없어 보여도 아이는 이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어른이 기다리지 못할 뿐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좋은 공간을 제공해줘야 한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안전은 놀이의 가치, 안전과 도전의 균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전주시의 경우,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여론에 부딪혀 고전하다가 작년 말 조례를 통과시켰다. 아이들이 놀 권리를 주장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부모들의 우려와 놀면서 만드는 소음을 못 견디는 어른들의 불편함이 조례 제정을 지연하는 데 한몫 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충분히, 그리고 즐겁게 놀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하니 어린이 놀이터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 본 원고는 2021년 건축공간연구원에서 발간한 『건축과 도시공간』 제44호 장소탐방에 필자가 김현민, 김헌, 최정인과 함께 작성한 '맘껏숲&하우스'에서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놀이의 다양성을 위한 조건들 김아연·김현민 인터뷰 서울의 맘껏놀이터, 군산의 맘껏광장과 맘껏카페에 이어 전주의 야호 맘껏숲놀이터(이하 맘껏숲)가 완성됐다. 하나의 연작처럼 느껴지는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아연(이하 아) 대학원 석사 논문 주제가 어린이 놀이터였고, 그 이후 어린이 놀이터 관련 연구를 몇 개 더 했다. 연구에서 그친 점이 늘 아쉬웠는데, 놀이 관련 이력을 발견한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다. ‘맘껏’은 맘껏놀이터를 만들 때부터 사용했는데,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사교육과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아동 권리의 지향점을 잘 담았다고 여기는 단어다. 처음에는 맘껏숲까지 사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출발은 아이들의 놀 권리 증진과 바깥에서 놀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획한 아동 친화 공간 사업이었다. 도시에서 아이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일지 고민하다보니 여러 유형의 공공 공간을 시도하게 됐다. 맘껏놀이터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를, 맘껏광장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고민할 수 있었다. 맘껏숲은 같은 놀이 공간이지만 맘껏놀이터와는 조금 맥락이 다르다. 전주 덕진공원 안에 숲과 호수가 있는 대상지라 자연을 놀이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탐색할 수 있었다. 김현민 소장은 내 꼬드김에 넘어와 맘껏광장 프로젝트부터 합류하게 됐다. 김현민(이하 현) 협업 제안을 받은 시점이 사무실을 연지 얼마 안 된 때였다. 해보지 못한 일에 관심이 많았고, 그때 만난 게 맘껏광장 프로젝트다. 사실 놀이터라는 공간이 처음부터 크게 와닿은 건 아닌데, 김아연 교수가 제안했다는 점과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참 낯설다.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설계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 아 우선 아동에 대한 정의가 나라와 법마다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동이라 하면 흔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떠올리는데, 한국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사람을 뜻한다. 아동에 대한 제한된 인식이 청소년들을 놀 권리 소외 계층으로 만들고 있다. 맘껏광장과 맘껏숲의 경우, 청소년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안했는데 반대가 심했다. 흡연이나 음주를 하는 탈선 장소로 변질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청소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인식이 커 그들을 설득하는 데 노력이 필요했다. 청소년 역시 사회의 중요 주체이고, 그들에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도시의 일부분을 청소년에게 내어주었다는 의미에서 맘껏광장과 맘껏숲이 청소년 놀이 공간의 좋은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 현 청소년들을 지켜볼 수 있는 트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맘껏숲의 경우 나무와 트리하우스, 공간을 분할하는 언덕이 시야를 가릴 수밖에 없어 반대가 컸다. 작품을 전시하거나 게시판으로 쓸 수 있는 아트펜스도 설계했는데, 같은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청소년은 참 고민이 많은 시기인데, 혼자서 깊은 고민을 하고, 학교가 끝난 늦은 시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없다. 청소년을 위한 여가 공간이나 놀이에 대한 토론 자체가 부족하다. 아 워크숍을 하며 청소년들이 원하는 공간에 대해 조사했는데, 다양한 의견을 관통한 공통점이 어른들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학업과 진로로 인한 스트레스도 크지만, 어른들에게 늘 관리되고 통제되는 터라 쉴 때만큼은 오롯이 또래들끼리 있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맘껏놀이터와 달리 맘껏광장과 맘껏숲은 인근에 실내 공간을 갖추고 있다. 아 놀이 공간은 그릇 같아야 한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도록 비어있어야 하는데, 비워놓기만 하면 활성화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모을 수 있는 프로그램과 장치가 필요하다. 맘껏놀이터를 통해 배운 게 많다. 놀이터가 생각보다 활성화되지 않아 여러 차례 방문해 그 원인을 찾았다. 우선 맘껏놀이터는 동네 놀이터가 아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한복판에 있어 동네 아이들보다는 차를 타고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한번 들러 놀고 떠나는 곳이다. 이 경우 비워놓은 놀이터의 특색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아이들은 이미 조합놀이대에서 노는 방식에 익숙해진 상태다. 조합놀이대가 없는 놀이터에서는 어떻게 놀아야 할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데, 맘껏놀이터를 방문하는 아이들은 그런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주 동선에서 벗어나 있고, 주변에 아이와 함께 온 부모가 편하게 앉거나 날씨와 상관없이 놀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없다. 카페 같은 실내 시설이 있으면 보호자가 편하게 아이를 지켜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도 형성된다. 맘껏놀이터의 경우, 주변에 편의점이 있지만 놀이터와 등을 지고 있고 법적인 문제로 인해 한동안 문을 열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놀이터 쪽으로 유입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놀이터 디자인만큼이나 공간을 활성화할 수 있는 놀이의 콘텍스트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김현민 소장과 맘껏광장을 설계하며 아이들이 점유할 수 있는 아지트 같은 실내 공간,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는 항상성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맘껏광장에는 구조물 형식의 맘껏카페를 만들었다. 맘껏숲에도 실내 공간을 두고 싶었는데 주어진 예산으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작정 전주시장에게 기본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 건물을 그린 도면을 들고 갔는데, 뜻밖에도 공감해주어 맘껏하우스를 추가로 계획할 수 있게 됐다. 전주시가 생태도시, 놀이터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시의 비전과 맞는 일이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편이다. 현 처음에는 사실 컨테이너 박스를 쌓은 정도의 제안이었는데, 여러 과정을 거쳐 예산이 확보되어 맘껏하우스를 짓게 됐다. 아 맘껏하우스를 설계할 건축가를 선정해야 했는데, 무엇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디자이너와 함께하고 싶었다. 늘 프로젝트를 하며 서울에 사는 사람이 지방에 작업을 하고 떠나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전주에서 활동하는 김헌 소장(일상건축사사무소)을 섭외하게 되어 기뻤다. 김헌 소장이 어렸을 때 덕진공원에 자주 들러 논 경험이 있어 그 의미가 더 컸다. 맘껏하우스는 맘껏숲과 같은 디자인 언어를 쓰는가. 아 디자인 언어가 같다기보다 놀이터와 건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설계를 했다. 건물 자체가 놀이 공간의 일부처럼 녹아들기를 바랐다. 맘껏하우스 2층의 경우 반 이상이 외부 공간이다. 도로변에서도 진입할 수 있도록 1층에 큼직한 입구를 많이 두었고, 가장자리에 아이들이 걸터앉을 수 있게 했다. 현 맘껏하우스와 맘껏숲의 프로그램이 촘촘히 잘 엮여있다. 건축가는 건물 안에서 본 바깥의 풍경과 안과 밖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 다양한 아이들이 협업할 때 새로운 놀이가 탄생하는 것처럼, 건물과 놀이 공간을 친구처럼 만들었다. 건축가는 관리 문제로 인해 건물 내부에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게 된 점을 아쉬워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 무지개다리를 건너 맘껏하우스 2층에 들어서고 나선형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 다시 바깥으로 나가는 식의 놀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건물이 끼어 있기를 바랐는데, 신발을 벗어야 하니 그 흐름이 끊기게 됐다. 맘껏놀이터, 맘껏광장, 맘껏숲의 공통점 중 하나가 벽, 거울, 언덕, 미끄럼틀이다. 네 요소를 즐겨 쓰는 이유가 있을까. 아 벽은 공간을 정의해준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고, 천장이 있건 없건 아지트라고 느껴지는 공간감을 형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벽은 낙서를 하거나 액자를 걸 수 있고, 거울도 설치할 수 있어 여러모로 훌륭하다. 거울은 아이와 청소년 모두에게 인기가 좋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는 일이 아동 발달에 중요하고, 청소년들은 기본적으로 외모에 관심이 많다. 커버 댄스 연습 등 취미 활동에 활용되기도 한다. 더 자주 사용하고 싶은데 깨지거나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놀이를 촉진하는 몇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높낮이다. 높낮이를 즐기기에 언덕만큼 좋은 것이 없고, 오르내리는 지형을 이용한 놀이 기구의 대표가 미끄럼틀이라 자주 쓴다. 사실 가장 설치하고 싶은 건 그네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설치 기준에 따라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부지가 작은 경우가 많아 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매번 그 점이 아쉬워 맘껏숲에는 건물과 놀이터를 잇는 무지개다리 하부에 밧줄을 주렁주렁 달아 그 밧줄을 엮어 그네처럼 타고 놀 수 있게 했다. 더불어 맘껏숲에는 트리하우스를 제안했고, 별도의 예산으로 설치했다. 기존 숲의 큰 나무들을 활용한 기획인데, 아이들이 나무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트리하우스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꿨던 로망의 공간이지 않나. 현 트리하우스는 친구와 속닥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인 동시에 고지의 역할을 한다. 개인 공간이자 모험을 위한 놀이 시설이다. 아 아이들이 일상에서 오르기 힘든 높이를 트리하우스에서 경험할 수 있다. 아이는 도전하면서 성장한다.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연 속에서 나무와 공존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좋은 구조다. 트리하우스를 잇는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보이기도 한다. 놀이 공간에는 다양한 난이도의 놀이 기구가 필요하다. 난이도가 높으면 당연히 위험하고, 난이도가 너무 낮은 공간은 아이들이 위험을 찾아 이상한 방식으로 놀이를 즐기게 해 사고 발생률을 높인다. 좋은 놀이터는 놀이의 종류와 난이도가 다양한 곳이다. 아이들은 지금은 겁이 나는 놀이 기구를 보면서 내년에는 올라야지 생각하고 언니, 형을 따라하며 큰다. 오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며 또래 그룹끼리 교류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한 교류와 상호 보살핌의 기회를 청소년에게까지 확장해주고 싶었다. 평지에 새로운 언덕을 만들 때 겪는 어려움은 없나. 현 지형 스터디를 위한 모형을 크게 만들어 다각도로 검토했다. 언덕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 2.7m다. 생각보다 높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능선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각도에서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공간의 핵심 요소이기에 충실히 스터디했다. 아 지반 침하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성토를 해 지형을 만드는 일은 늘 쉽지 않다. 걱정은 있었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안 된다는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가 없다. 맘껏아지트가 눈길을 끈다. 단순히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넘어 시공까지 함께했다. 아 나 역시 그렇지만 유니세프는 놀이 공간 계획에 아이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맘껏광장과 맘껏숲을 만들 때는 청소년과 좀 더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이재영 교수(공주대 및 한국환경교육연구소) 팀을 섭외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사용할 공간을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맘껏아지트로 해소해주고자 했다. 전주 야호학교 청소년과 함께 디자인하고 지역 목수와 직접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현 청소년 주체의 프로그램 운영 여건을 마련해준 것이 맘껏숲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놀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앵커가 없으면 공간의 주인이 사라진다. 맘껏숲에는 놀이 활동가가 상주하며 다양한 계절과 시간에 따라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아 놀이 활동가가 있는 놀이터는 정말 다채로워진다. 그동안 분실과 사고의 위험으로 금기시됐던 블록 놀이를 맘껏숲에서 시도해봤는데,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 블록이 사라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놀이 활동가가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다. 세 사업을 모두 다른 지자체에서 진행했는데 도움을 받은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있나. 현 유니세프의 아동친화도시 인증 프로그램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고 전부였다. 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으려면 우선 아동권리 전담조직을 만들고 아동친화적인 법체계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전담 조직이 있어도 놀이터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부서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마저 없다면 프로젝트가 더욱 복잡해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좋은 담당자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맘껏광장의 경우 최초 예산이 5천만 원이었다. 기존 광장에 아동권리헌장을 출력해 붙이는 정도의 간략한 계획이었다. 실제로 작동하는 공간을 만들려면 적어도 6억은 필요하다고 하니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던 담당자의 당황 가득한 침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달 정도 연락이 두절되어 프로젝트가 무산되었구나 하고 체념할 무렵, 담당 공무원이 시의원과 여러 사람을 설득해 일정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갈등을 조정하고, 추가 예산이 필요해지면 여러 단체를 설득해 기부금을 받아오기도 했다. 맘껏광장 벽에 설치한 거울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출력해 넣었는데, 이는 실시설계 단계밖에서 담당자들의 애정과 의지 덕분에 실현되었다. 현 전주에서는 뜻밖의 일이 장애물로 작용했다. 대상지인 덕진공원이 전통성을 강조하며 리노베이션되고 있어 맘껏숲에도 전통을 담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주 작은 디테일에까지 말이다. 그래서 무지개다리에 설치된 밧줄 윗부분에는 전통 노리개에서 볼 수 있는 매듭을 사용했고, 평상이나 팻말, 벽에 전통 요소을 넣었다. 심의를 통과해야 하니 과도하게 드러나지는 않되 군데군데 전통을 숨겨놓는 방식을 썼다. 아 아이들의 놀이는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보편적 특성을 갖는다. 놀이터에는 놀이만 담으면 되지 성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투영하는 게 불편했는데, 지나고 보니 결과물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상적인 놀이 공간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앞으로 실현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현 아이디어를 얻고자 일본의 플레이파크에 답사를 갔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특별한 시설이 없는 진흙탕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만들고 부수는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맘껏하우스에서 놀이 활동가, 야호학교 교사, 청소년이 모여 매주 목공 체험을 통해 시설을 만들고, 그 시설 자체가 놀이터가 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도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좀 더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아 물놀이 공간이라 하면 분수처럼 물이 솟구치는 시설이나 계류, 발을 담글 수 있는 연못을 떠올린다. 하루는 비 온 다음날 맘껏숲에 간 적이 있다.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바닥 일부가 진흙탕처럼 변해 있었는데, 담당 공무원은 하자 보수를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렇게 물이 고인 곳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 놀이터나 진흙 놀이터가 된다. 놀이터를 설계할 때 늘 성인의 눈으로 공간을 보지 않으려 경계한다. 오히려 재미있는 놀이 기회를 뺏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실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놀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100퍼센트가 아닌, 덜 디자인된 공간인지도 모른다. 플레이파크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 많은데 상당히 지저분하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시설이 깨끗하게 관리될 수 없다. 사진이 잘 나오는 깔끔한 공간보다는 아이들이 놀며 망가뜨리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 현 놀이터에 대한 고정관념이 참 많다. 놀이터는 아이들만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짜 놀이터는 아이들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어야 한다. 플레이파크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스스로 놀이거리를 찾아 논다. 고정관념과 정해진 놀이, 법규와 심의가 많다보니 놀이터의 다양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싶다. 맘껏숲놀이터 프로젝트 총괄 및 책임디자이너 김아연 맘껏숲놀이터 기본계획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윤승렬, 이현정),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조찬희), 스튜디오일공일 조경 설계 스튜디오일공일(김현민, 이현옥, 이세희, 이슬기, 최담희) 조경 시공 호원건설 맘껏아지트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심규태, 조찬희), 야호학교 청소년 및 틔움교사 트리하우스 미즈노 마사유키 + 가사골 교육놀이공동체 목재시설물 시공 쌔즈믄 미끄럼틀 시공 자인 외부 전기 시공 대아전력공사 맘껏하우스 건축 설계 일상건축사사무소(김헌, 최정인) 구조 설계 시너지구조 조경 시공 호원건설 건축 시공 태왕종합건설 건축기계·전기 설계 대화 건축 면적 146.73m2 연면적 178.52m2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316-11(덕진공원 내) 대지면적 4,684.18m2 건축주 전주시청 &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완공 2021. 5. 사진 김아연, 노경, 일상건축사사무소, 한국환경교육연구소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정원, 놀이터, 공원, 캠퍼스, 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김현민은 서울시립대학교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미국 SWA 그룹에서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술사사무소 렛, 비오이엔씨, 지드앤파트너스에서 폭넓은 실무를 경험한 뒤 2015년 스튜디오일공일을 설립했다. 실험성, 심미성, 실현성을 바탕으로 과정을 강조하는 실천적 디자인을 중시하며, 작은 정원에서부터 주거 단지, 오피스, 공원, 리조트, 골프장 등 다양한 스케일의 설계와 디자인 감리를 한다. 마이크로경관이 살아 있는 풍성하고 균형 잡힌 경관 체험을 전하고자 노력한다.
    • 김아연
  • LH 시그니처 가든 LH Signature Garden
    아파트 조경 아파트 조경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별로 없는 시장이다. 입지, 브랜드, 평수 등이 세트로 묶인 상품인 데다 보통 공용 공간이기에, 인테리어처럼 따로 구매하기 어렵다. 요즘 시장에 나오는 상품은 서로 비슷하다. 우리는 왜 아파트 외부 공간을 계속 이렇게만 만들고 있는가. 단지 내 조경 공간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짓는 공간과 테마는 브랜드 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획일화되었다. 쏟아지는 특화 속에 차별성이 점점 없어지는 역설적 현상은 아파트가 주거 공간보다는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특권층’, ‘상위 0.1%’, ‘노블리스’ 등의 노골적인 광고 문구를 쓰면서 사회적, 경제적 구별 짓기를 전략으로 삼는다. 선망받는 삶을 원하는 소비자의 허영심에 기댄 상업적 마케팅도 한몫하는 듯하다. 일반인이 전문 지식 없이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근 단지와의 비교’만이 주요 평가 수단이 되면 우리 단지에도 석가산이 있어야 하고, 좀 더 크고 멋있는 소나무가 옆 단지보다 많아야 하고, 유명한 ‘작가’가 설계했다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이런 시장에서는 이미 좋은 평가를 받은 답안을 그대로 또는 조금만 바꿔 쓰는 것이 소비자에게나 공급자에게나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경 특화의 트렌드는 브랜드별 특성보다는 시대별 유행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하면 몇 년 안에 다른 브랜드들이 그대로 이를 모방함으로써 유행을 만드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과연 ‘입주민들은 이런 것을 원한다’고 흔히 알려진 것 중 어느 만큼이 사실인가. 이미 평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국내 아파트 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가장 자주 제기되는 민원이거나 조합의 집단적 목소리가 거세다고 해서 이를 바로 소비자의 요구로 보기는 어렵다. 스스로 판단한 가치와 선호보다는 그게 비싼 거라더라, 그런 것이 좋은 거라더라, 어째서 안 좋다더라 등 여러 ‘카더라’가 덧대어져 형성된 대중적 취향에 과연 실체가 있는가. 우리는 근본도 알 수 없는 석가산이 아파트마다 솟아 있는 것을 보면서, 사실 공급자가 해결하기 편리한 방식으로 쉽게 규정된 가짜 트렌드로 의심해왔다. 시그니처 가든 LH 분양주택 시그니처 가든 개발 프로젝트는 분양주택에 적용될 LH만의 특성을 갖는 정원 유형을 개발하기 위해 중앙정원, 동 앞 정원, 운동정원 세 가지 공간에 대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확립하고, 이를 안성 아양지구 B-1블록에 적용하기 위해 시작됐다. 새로운 주거 가치와 변화하는 이용자의 수요를 반영한 정원 공간을 개발하는 과업 목표는 지극히 상투적인 것 같지만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보자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이 시장에서 가장 큰 공공의 공급자로서 LH다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특화 정원으로 무장한 요즘 아파트와는 상반된, 오래된 자연 속에 조화를 이룬 주공 아파트에 대한 ‘아파트 키즈’의 관심에 주목했다. 영화 ‘집의 시간들’에 등장하는 입주민 인터뷰나 아카이브 잡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담담한 기록들은 시장 주도적으로 생성된 상품적 가치에 가려져 있던 일상 속 주거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성하게 숲을 이룬 나무들이나 소박하게 비워진 들판과 같은 평화로운 공간은 최근의 부동산 시장에서 만들어진 특화 아이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입주민에게 오래된 아파트의 단점을 보완하는 큰 장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큰 나무 그늘에 주차하면 열에 아홉은 차에 새똥을 맞는다. 지하 주차장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공 지반 위에 있어서 처음부터 큰 나무를 옮겨와도 더 자라지 않는 아파트 정원을 보면, 그보다는 자연 지반에 뿌리 내려 10층 높이까지 자라나는 숲이 더 좋다.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최근의 특화 정원과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 잡은 소박한 아파트 외부 공간을 비교해볼 때, 상업적으로 편향된 변화 속에서 자연의 미적 가치나 조경의 다양한 경관적 설계 해법은 과소평가되고 장식적 조형물이나 시설물 개발이 남용된 것은 아닌가. 단순히 취향의 문제를 떠나, 다른 곳의 큰 나무를 옮겨와 심는 것 자체에도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 진짜 자연이 될 수 없는 편평한 슬래브 위에 헛헛함을 채우려는 장식적인 요소들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경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센트럴 힐 중앙정원의 유형으로 개발한 공간은 ‘센트럴 힐’이다. 세 곳의 시그니처 가든 중 아파트 외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가장 잘 함축된 곳이다. 센트럴 힐은 관람형 경관 시설로 채워져 행위의 다양성이 부족한 석가산과 달리, 완만한 경사면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정자목과 열린 공간이 커뮤니티의 공동체적 가치를 담도록 하는 ‘마을 언덕’이다. 언덕은 정상부의 정자목 쉼터, 물이 따라 흐르는 동선, 열린 풀밭 구릉으로 구성된다. 바닥에 다다른 수로는 작은 폰드와 바닥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이어진다. 광장에는 언덕을 향해 열리는 티하우스가 있어 공간의 활용을 돕는다. 언덕의 높이는 약 2.5m인데, 이는 약 30×40m인 안성 아양지구 센트럴 힐 부지의 크기에 따른 것이다. 이용이 가능한 완경사를 유지하고 정상부까지 경사도 1:18 이하의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서 나선형의 동선을 따라 전면부와 후면부 경사가 다른 콩 모양의 지형을 설계했다. 식재와 시설물 모두 지형의 설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정상부에는 마을의 정자목 역할을 하는 대형 그늘목을 심고 아래 너럭바위형 앉음 시설을 배치했다. 수경 시설은 동선을 따라 같은 경사로 흐르며, 점점 넓어지다가 발을 담글 수 있는 작은 폰드와 그 옆 바닥분수로 이어진다. 급경사면에는 두 겹의 플랜터 월을 설치하여 계절을 표현할 수 있는 관목을 식재하고, 급경사에서 완경사로 변곡되는 구간은 안전을 고려해 낮은 관목을 밀식했다. 지형과 수로 유토 모형과 라이노 모델링 수정을 거쳐 경사도 5.5% 이하의 보행 동선, 1:12 이하의 편안하게 걸터앉을 구릉, 좁은 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계단식 화단, 하중에 따른 높이 제약과 대형목을 위한 유효 토심 등 각기 다른 조건을 만족하는 하나의 지형을 완성했다. 2.5m의 언덕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1.5m 이하의 토심을 상정한 지하 주차장 구조에 변경이 필요하다. 대상지의 건축 설계가 완료된 후였기 때문에, 기존 설계 하중을 넘지 않도록 언덕 하부에 EPS 블럭을 활용했고, 시공의 용이성과 공사비 등을 고려해 EPS 부피와 형상, 경량토와 일반토의 비율을 3D 설계를 통해 최적화했다. 한 대상지의 설계가 아닌 디자인 가이드라인 수립을 목표로 하는 설계이기 때문에 지형을 형성하는 원리와 설계 주안점, 다른 크기나 형상의 부지에 적용할 경우 주의해야 할 점 등 설계 원칙을 고민해 매뉴얼로 정리했다. 가산(假山)을 진짜 언덕으로 바꾼다더니 EPS 블럭이 채우고 있는 이 언덕도 가산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관람용이 아니라 점유가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환한다는 점과, 완만한 곳과 경사진 곳, 낮은 곳과 높은 곳, 길과 물가, 한적한 너럭바위와 왁자지껄한 바닥 분수존 등 하나의 언덕이 제공하는 다양한 행위의 유도라는 측면에서 ‘우리 마을 언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수로의 설계와 시공에서 일정한 경사는 매우 중요하다.수로 경계의 경사는 산책로의 경사와 동일한데, 산책로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요건을 충족하는 5.5%의 완만한 경사로로 조성되어야 한다. 시범단지인 안성 아양지구 B-1블록의 경우 산책로는 최고점 높이인 2m까지 4.4%의 일정한 경사로 설계했다. 수로 내부에는 일정 거리마다 물넘이를 설치하여 계단식으로 물이 담기도록 하고, 바닥면의 경사는 3% 이하가 되도록 조정한다. 계단식 물넘이를 두어 수로 바닥을 산책로 경사보다 더 완만하게 설계해야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경사가 급하면 물이 너무 빠른 속도로 내려가게 된다. 유속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체로 2.5%를 넘는 경사면을 흐르는 물은 어린아이가 종이배를 띄우고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둘째, 미끄럽지 않도록 표면을 마감하더라도 사람이 밟고 섰을 때 경사가 급하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센트럴 힐의 수로는 폭이 그리 넓지 않고 바닥면에 텍스처 마감이 있어, 들어가서 뛰어노는 행위를 유도하지는 않지만 발을 담그는 등의 소극적 친수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므로 완만한 바닥 경사가 더 안전하다. 셋째, 발을 담글 수 있는 담수 구간을 일정한 거리마다 형성하여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 물이 담기는 구간이 없으면 흐르는 경사면에서 일정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유량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유속이 더 빨라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경 시설 연출 효과상의 하자를 줄일 수 있다. 담기는 구간 없이 흐르는 물의 두께가 일정한 경우, 수로의 내측과 외측의 높이가 매우 정확하게 시공되지 않으면 물이 닿지 않는 곳이 생길 수 있어 훨씬 정확한 시공이 필요하다. 리틀 포레스트와 가든 피트니스 동 앞 정원은 ‘느슨한 공존’을 추구한다. 나만의 정원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싶은 선호를 반영하되, 이웃과 공간을 나누어 쓰는 것이 가능한 정원 공간이 되도록 했다. 외부로부터의 완벽한 차단이나 분리가 아니라 적당한 가시성이 있는 공간에서 동석이 강요되지 않는 이용을 고려했다. 원래 공간명은 ‘오손도손’에서 일부를 따와 도손정원이라 했으나, 추후 영문명으로 일괄 변경하면서 ‘리틀 포레스트’로 변경되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30~50cm의 단차를 활용해 주요 공간 두 곳의 시선을 분리했다. 강요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임을 유도하기 위한 요소로 물이나 불과 같이 움직이는 자연 요소를 도입하도록 했다. 안성 아양지구에는 위로 솟는 샘물을 표현한 종형 수경 시설을 적용했고, 관리와 안전 문제로 불꽃을 감상할 수 있는 화로는 대안으로만 제시되었다. 이 휴게 공간은 마운딩 위 관목으로 더 위요감을 갖도록 했는데, 실제 지형의 높이나 관목의 밀도가 생각보다 이를 달성하지 못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단지 주변부 잉여 공간에 운동 기구만 모아 놓아서는 가고 싶은 운동 공간 또는 SNS에 공유하고 싶은 일상 공간이 되지 못한다. 운동 시설은 이용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지만 이용층이 특정 연령대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스트레칭과 유산소, 근력 운동으로 이어지는 운동의 기본 시퀀스를 따라 각 구역별로 독립적인 공간을 배분했다. 각 공간을 정원으로 둘러싸 ‘가든 피트니스’로 명명한 공간의 성격을 그대로 표현했다. 공간별 레벨을 달리하고 언덕으로 감싸는 등 기본적인 공간 형성의 틀은 리틀 포레스트와 공통분모가 많지만, 쓰임과 공간 분위기를 고려하여 포장(철평석 부정형 포장 vs. 고무칩 포장), 식재(섬세한 계절 연출 vs. 잎의 텍스처와 무늬를 강조), 시설물(자연석 놓기 vs. 조약돌 콘크리트 조형스툴)에서 전략을 달리했다. 차별화 말고 진짜 조경 양재희, 이호영·이해인 소장 인터뷰 시그니처 가든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양재희(이하 양)이번 프로젝트는 설계와 더불어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확립하는 프로젝트였다. 단순히 설계 경쟁이나 화려한 디자인으로 귀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LH의 정원 설계가 추구하는 일관성 있는 방향 설정, 체계적 설계 관리를 목표로 했고, 장기적으로는 가든 브랜드 수립을 추진하고자 했다. 맡은 업무는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용역설계의 발주, 기본설계와 실시설계의 감독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용역사가 설계를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확립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양일회성으로 넘기기 아까운 정원 설계와 시설물 디자인 등이 LH 주택 설계에 존재했다. 이러한 좋은 설계를 디테일 도면 공유, 준공단지 설계 피드백 등을 통해 다른 단지에 적용하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또한 단지별로 정원 특화를 진행하기 때문에 정원의 주제와 설계 아이템이 일관성을 갖기 어려웠다. 통일성 있는 가든 설계 전략과 구체적인 가든 프로그램과 설계 요소를 체계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 모델 개발과 더불어 시범 단지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세 공간(중앙정원, 동 앞 정원, 운동정원)을 시그니처 가든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양 어느 단지에나 적용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입주민의 체감도와 접점이 상당히 중요한 기준이었다. 기존 정원 사례 답사, 설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이용성과 체감도가 높은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선정했다. 중앙정원인 커뮤니티 가든은 주민 간의 활발한 소통의 중심으로 삼고 싶었고, 동 앞 정원은 최근 관심이 높아진 세컨드 하우스 공간으로 자리 잡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용도와 만족도가 높은 운동 시설에도 작은 정원을 만들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번 프로젝트 설계의 첫 단추는 무엇이었나? 이해인(이하 해)엇비슷한 아파트 조경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단순히 주차장 위 평평한 중앙 공간에 수직적 요소를 만들다보니 석가산처럼 가짜 요소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러면 추억이 깃들 틈이 없다. 입주민들을 수동적 소비자로 만든다. 화려하고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언덕에서 뛰어놀고 자연스럽게 동산에 앉아서 휴식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보통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서 이러한 아파트 공간이 생겨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앙정원에 활용한 정자목과 마을 언덕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이호영(이하 호)과거에는 마을 언덕이 흔한 풍경 중 하나였다. 마을 어귀에는 큰 정자목이 있고, 평상에 어르신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대화를 나눴다. 일종의 커뮤니티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가면 마을회관에 다다르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집의 앞마당에 도착한다. 정자목부터 시작해 집의 앞마당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이를 아파트에 옮겨 왔다. 정자목 아래로 어르신들이 모이고 언덕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설계를 풀어냈다.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범용성도 중요하지만, 대상지 고유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해 세 공간의 개발 목적이 LH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 적용이 가능한 원형(prototype)을 정의하는 것이 중요했다. 단지 규모나 주동의 생긴 모양, 조경에서 쓸 수 있는 땅 모양이 다르다 보니 축소형, 표준형, 확장형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한 배치와 기준을 설정했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다. 또한 단지만의 특성을 고려해서 교목 및 관목 종류, 돌 등은 해당 지역의 맥락적 특성이 보태질 수 있도록 했다. 완성된 공간 중 마음이 드는 곳은 어디인가? 반대로 아쉬운 부분은? 호 자연형 수로는 경사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다 바뀐다. 일일이 다 계산하고, 수작업으로 열심히 만들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단순해 보인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것이 엄청난 노력과 시스템의 결과라는 걸 안다. 복잡한 시스템을 간결한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데는 많은 공이 든다. 그래서 가장 보람이 있었다. 덧붙여 잔디밭 대신 풀밭을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쉽다. 대신 시간이 지나면서 정자목이 더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잔디가 초지가 되면서 더 풍성해질 공간을 그려본다. 오로지 시간만이 불어넣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매력이다. 실제 입주민과 LH 내부의 반응은 어떤가? 양 안성 아양지구는 입주자들이 조성된 조경 공간을 보고 분양 계약을 체결한 지구다. 입주자들이 단지를 둘러보고 조경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고 들었다. 조경 공사에 참여한 기술자 한 분이 ‘분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는 후문도 들었다. 우리가 의도한 대로 실제로 살고 싶은 공간이 조성된 것 같다. 새로운 시공 방법으로 인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시공 담당자, 감리자, LH 감독 등 모든 관계자가 적극적으로 임해주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좋은 아파트 조경이란 무엇인가? 호 쓰임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차별화된 조경을 경계하고 싶다. 차별화란 명분을 앞세워 호텔이나 리조트처럼 으리으리한 조형물을 넣어서 화려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놀러가는 공간이라면 화려할수록 좋겠지만, 우리는 집에 쉬러 간다. 가령 호텔이나 리조트는 일상을 벗어나는 공간이지만, 주거 공간은 편안함이 1순위인 곳이다.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자연의 소리를 더 들을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다. 진정한 차별화는 주거 공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달리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조경설계 HLD(시그니처 가든), 조경그룹 이작(시그니처 가든 외 단지 내 조경), 데오스웍스(티하우스 및 퍼걸러) 발주 한국토지주택공사 위치 경기도 안성시 아양4로 46 일대 면적 1,790m2(단지 대지면적: 38,590m2) 완공 2021. 7.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다. 디자인을 통한 주창과 혁신이라는 철학 아래, HLD의 디자인은 공간적 문제와 도전 과제에 대한 ‘핵심적 개입’ 제공을 목표로 한다. 양재희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LH에서 아파트 설계, 공원 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담당하였고, 시공, 유지 관리, 하자 보수 등 건설 사업의 생애주기를 두루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LH 시그니처 가든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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