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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야호 맘껏숲놀이터 Playforest_as you like!
    어쩌다, 놀이터 어린이 놀이터(이하 놀이터)와 관련된 문의가 종종 들어온다. 놀이터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 것이 벌써 25년 전 일이다. 그간 고민과 경험이 축적되었지만 어린이였던 시절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으니 시간적 거리감에 늘 조심스럽고 걱정이 앞선다. 고백하자면 놀이터는 우선순위의 논문 주제가 아니었다. 당시 조경학과에는 여학생 수가 적었고, 소수자의 눈으로 조경학의 틈새를 찾겠다는 무모함이 어쩌다 놀이터로 이어졌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어린이와 놀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이 놀이터에 대해 논문을 쓰겠다고 무턱대고 결심했을 땐 지도 한 장 없이 낯선 곳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절, 무작정 연세대학교 아동학과 교수에게 연락을 드렸다. 다른 과 학생이 놀이터에 관심을 가졌다는 기특함이었는지 길 잃은 아이에 대한 측은지심이었는지 모르나 교수님은 낯선 학생에게 첫걸음 떼는 법을 알려주셨다. 연세대학교 부속 교육 기관인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을 소개받아 교사와 대화하고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비로소 어린이의 놀이와 놀이 환경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우리 도시의 놀이 환경은 생각보다 열악하고 위험했다. 서울시 어린이집의 실외 놀이터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무모한 논문을 쓴 이후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놀이 기구는 화려해지고 다양해졌으며 각종 인증기준으로 안전 문제와 위생이 개선되었지만, 어린이와 바깥 놀이 환경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 철학과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전문가로서 그 더딘 변화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껴온 터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어떻게든 기여해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다. 어쩌다 시작하게 된 놀이터는 어느덧 전문가로서, 또 세상의 어른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무가 되었다. 맘껏, 놀이를 기획하다 유니세프(Unicef)가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아동친화도시 사업에는 도시를 만드는 의사 결정 과정에 아동이 참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야호 맘껏숲놀이터(이하 맘껏숲)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전주시와 유니세프한국 위원회의 매칭펀드로 조성한 아동 친화 공간이다. 어른 혹은 미리 정해진 규칙으로부터 자유롭게 맘껏 스스로 즐기자는 의미로 시작한 ‘맘껏’ 공간은 서울의 맘껏놀이터(2017), 군산의 맘껏광장과 맘껏카페(2019)에 이어 전주의 맘껏숲이 세 번째다. 전주시는 놀이터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놀이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 중이며 야호아이놀이과를 신설해 여러 유형의 놀이터를 만들어 놀이의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덕진공원 어귀에 위치한 맘껏숲은 옛 야외 수영장 부지에 만든 놀이 복합 공간으로 전주 시민이라면 한 번쯤 이곳에서 놀았던, 놀이의 기억이 두껍게 쌓여있는 장소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은 18세 미만의 사람을 의미하는데, 놀이터 사업이 주로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청소년들이 공원과 놀이터에서 소외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놀이터의 주 이용자에 청소년을 포함하자는 설계팀의 생각에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청소년들이 모이면 우범화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우리는 다양한 발언과 참여의 기회를 통해 상충되는 의견들을 조율하며 공간의 정체성을 함께 만드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환경 교육가, 놀이 전문가, 생태학자, 조경가로 구성된 설계팀을 꾸렸다. 설계팀은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전주시 아동자문단과의 놀이 워크숍, 숲에서 놀아보는 팝업 놀이터, 청소년이 직접 디자인하여 시공하는 맘껏아지트 만들기, 도토리의 새싹을 틔워 만드는 도토리 텃밭 만들기 등 맘껏숲에서 진행할 다양한 프로그램을 미리 테스트하며 콘텐츠를 만들어갔다. 경험을 통해 놀이터가 적절한 실내 공간과 연계되지 않으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맘껏숲에도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실내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날씨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실내 놀이터, 보호자가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 운영자가 상주할 수 있는 건축물이 절실했다. 야외 놀이터 사업으로 발주됐지만, 기본 계획에 상자 형태의 건축물을 그려 넣어 시장에게 놀이터와 연계된 실내 공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전달했다. 그 제안에 공감한 전주시가 별도의 예산을 편성했고 그렇게 맘껏숲에 들어설 맘껏하우스가 탄생했다. 전주와 덕진공원에 대한 기억과 애착을 가진 지역 건축가가 맡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실현되어 지금의 맘껏 하우스 풍경으로 이어졌다. 놀이터로서의 건축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덕진공원에 놀러가던 건축가 김헌(일상건축사사무소)은 어느새 세 딸의 아빠가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매주 이곳을 찾는다. 대상지는 약 30년간(1973~2001년) 야외 수영장이 운영되어 전주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던 곳이고, 김헌 역시 그들 중 하나다. 놀이터로 시작한 맘껏숲 프로젝트에 합류한 건축팀은 건축물이 바깥 놀이터와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놀이 공간의 일부가 되길 원했고 놀이터의 중심이 아닌 놀이터의 연장으로 기능하길 원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기억을 더듬어 비석치기, 땅따먹기, 두꺼비 집짓기 등 흙, 돌, 나무 같은 자연물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자연이라는 놀이의 재료가 건축물을 구성하는 마감 요소들로 이어졌고 목재(글루램), 노출 콘크리트, 석재로 마감된 맘껏하우스가 탄생했다. 맘껏하우스의 놀이 공간을 만드는 건축적 장치는 틈과 프레임이다. 물리적으로 꼭 필요한 실내 공간만 확보해 실내로 규정되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그와는 반대로 외부 공간과 사이 공간, 즉 ‘틈’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틈은 이동에 쓰이는 공간, 머물 수 있는 부피가 있는 공간, 시선과 소리가 통과하는 공간이 된다. 틈을 만든 이유는 아이들이 한 방향으로, 규정된 대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틈은 놀이를 만든다. 변화하는 박공 글루램 프레임으로 건축물의 형태를 규정짓고 공간감을 갖게 했다. 프레임은 적당한 그늘을 만들고 안전을 위한 난간 역할을 하며, 각종 놀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지대가 된다. 그네, 집라인 등 놀이 기구를 만들어주는 것보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맘껏하우스의 목표다. 자연에서 놀기 맘껏숲이라는 이름은 덕진공원의 아름드리 개잎갈나무와 대나무를 포함한 다양한 나무와 숲, 그리고 연꽃호수라는 풍성한 자연이 놀이를 담는 그릇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도시의 모든 곳이 놀이터가 될 수 있으니, 맘껏 놀 수 있는 숲이 생긴다는 건 더 풍부한 상상과 가능성을 의미한다. 과업 초기에 답사한 일본의 플레이파크(Play Park)에서 충격에 가까운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 기성 제품 하나 없이 흙과 물, 불과 목재 등 자연의 소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며 도전과 놀이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놀라웠다. 어린 시절 자연에서 놀았던 경험은 자연에 대한 태도와 감수성을 형성한다. 여행지가 아니라 일상으로 만나는 자연에 대한 기억이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만든다고 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놀이 시설물의 디자인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자연과 만나는 방식, 그 안에서 펼칠 놀이와 배움의 체험을 디자인하는 일일 것이다. 숲에서 논다는 것은 자연과의 일상적인 접촉 속에 자연의 변화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도토리의 싹을 틔워 도토리 텃밭을 만들었다. 그들이 심은 참나무 묘목이 맘껏숲의 일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양지바른 곳에 심었지만 공사 기간을 버티지 못해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들이 숲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은 그들 마음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숲은 아이들 마음에서 이미 태어났기 때문이다. 맘껏숲의 공간 덕진공원의 맘껏숲은 어린이, 청소년, 시민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 어느 정도의 영역성이 필요하다. 원형 언덕의 능선을 기준으로 맘껏하우스가 있는 놀이터는 주로 어린이 놀이 영역, 호수 쪽이 청소년과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영역으로 계획했지만,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구조다. 놀이에서는 다양성과 연속성, 자발성이 중요하다. 건축물과 놀이터가 이어져 높낮이가 있는 잔디 언덕, 순환 동선과 작은 샛길이 선택의 다양성을 주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공간 구분과 규칙을 허물고 넘나들며 놀이를 발명할 것이다. 슬라이딩 가벽에는 청소년들이 커버 댄스나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거울과 낙서벽을 설치했고, 이는 덕진공원의 호수를 조망하는 프레임 역할을 한다. 대나무숲 터널은 이미 있던 대나무숲 안에 작은 길을 낸 것이다. 맘껏아지트는 청소년들이 디자인하여 직접 제작까지 한 구조물을 존치한 것이고, 트리하우스는 별도의 예산으로 솜씨 좋은 목수들이 만들었다. 놀이 워크숍 때 시도한 밧줄 놀이 시설이 준공 이후 추가 설치됐는데, 좋은 공간은 이렇게 실험을 허락하고 나이 들며 진화한다. 맘껏숲은 운영 측면에서도 새로운 공공 놀이터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전주시의 아동·청소년 정책 '야호 프로젝트'의 하나로 놀이 활동가가 상주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놀이터다. 어린이 놀이터 만들기의 숙제 통계청의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2019)에 의하면 전 세계 유소년(0~14세)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5.6%인 반면 한국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4%다. 더욱 충격적인 건 2067년에는 유소년 인구가 8.1%로 떨어진다고 예측했다는 점이다. 초저출생 상황에서 아동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중요 사안이며 놀이는 아동의 발달과 행복에 핵심 요소다. 놀이터는 공평한 생애 첫출발을 위한 중요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놀이터 환경 역시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피해가지 못한다. 작년 말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놀러 온 다른 동네 아이들을 도둑 취급해 경찰에 신고한 황당하고 안타까운 뉴스를 기억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모든 어린이가 나이, 지역, 주거 형태, 계층, 성, 장애와 상관없이 충분하게 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과 제도를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한국의 놀이터 풍경을 지배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근거한 안전인증제도다. 놀이와 도전의 가치를 상실하고 안전만 강조하는 제도적 구속은 조합놀이대 중심의 틀에 박힌 놀이터를 양산하고 있다. 안전인증은 경직되어 운영되고 있고, 시설물 설치 후에 시행되다 보니 설계 단계에서 디자이너를 위축시킨다. 맘껏숲의 경우, 건축물과 놀이터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초기에는 건축물에서 튀어나온 무지개 다리 끝이 바로 미끄럼틀로 이어지게 설계했다. 그러나 어린이놀이시설로 규정된 미끄럼틀과 건축물이 연결되면 건축물 전체가 안전인증 대상이 된다는 황당한 이유로 디자인이 수정됐다. 안전인증으로 설계안이 의도와 다르게 변형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네와 흔들놀이 같은 기성품 대신 매달려 놀 수 있는 밧줄과 트리하우스를 도입했다. 조합놀이대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정해진 패턴으로 놀고 사고한다. 맘껏숲에는 대신 언덕, 개울과 물웅덩이, 나무, 나무토막, 흙, 놀이집, 낙서벽, 거울 등 놀이 시설뿐 아니라 놀이를 촉진하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노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놀이 시설이 많지 않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 고민하는 긴 시간을 보낸다. 성급한 부모는 주저하는 아이를 보고 이곳은 재미없다며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어른 눈에 재미없어 보여도 아이는 이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어른이 기다리지 못할 뿐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좋은 공간을 제공해줘야 한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안전은 놀이의 가치, 안전과 도전의 균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전주시의 경우,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여론에 부딪혀 고전하다가 작년 말 조례를 통과시켰다. 아이들이 놀 권리를 주장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부모들의 우려와 놀면서 만드는 소음을 못 견디는 어른들의 불편함이 조례 제정을 지연하는 데 한몫 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충분히, 그리고 즐겁게 놀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하니 어린이 놀이터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 본 원고는 2021년 건축공간연구원에서 발간한 『건축과 도시공간』 제44호 장소탐방에 필자가 김현민, 김헌, 최정인과 함께 작성한 '맘껏숲&하우스'에서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놀이의 다양성을 위한 조건들 김아연·김현민 인터뷰 서울의 맘껏놀이터, 군산의 맘껏광장과 맘껏카페에 이어 전주의 야호 맘껏숲놀이터(이하 맘껏숲)가 완성됐다. 하나의 연작처럼 느껴지는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아연(이하 아) 대학원 석사 논문 주제가 어린이 놀이터였고, 그 이후 어린이 놀이터 관련 연구를 몇 개 더 했다. 연구에서 그친 점이 늘 아쉬웠는데, 놀이 관련 이력을 발견한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다. ‘맘껏’은 맘껏놀이터를 만들 때부터 사용했는데,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사교육과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아동 권리의 지향점을 잘 담았다고 여기는 단어다. 처음에는 맘껏숲까지 사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출발은 아이들의 놀 권리 증진과 바깥에서 놀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획한 아동 친화 공간 사업이었다. 도시에서 아이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일지 고민하다보니 여러 유형의 공공 공간을 시도하게 됐다. 맘껏놀이터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를, 맘껏광장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고민할 수 있었다. 맘껏숲은 같은 놀이 공간이지만 맘껏놀이터와는 조금 맥락이 다르다. 전주 덕진공원 안에 숲과 호수가 있는 대상지라 자연을 놀이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탐색할 수 있었다. 김현민 소장은 내 꼬드김에 넘어와 맘껏광장 프로젝트부터 합류하게 됐다. 김현민(이하 현) 협업 제안을 받은 시점이 사무실을 연지 얼마 안 된 때였다. 해보지 못한 일에 관심이 많았고, 그때 만난 게 맘껏광장 프로젝트다. 사실 놀이터라는 공간이 처음부터 크게 와닿은 건 아닌데, 김아연 교수가 제안했다는 점과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참 낯설다.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설계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 아 우선 아동에 대한 정의가 나라와 법마다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동이라 하면 흔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떠올리는데, 한국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사람을 뜻한다. 아동에 대한 제한된 인식이 청소년들을 놀 권리 소외 계층으로 만들고 있다. 맘껏광장과 맘껏숲의 경우, 청소년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안했는데 반대가 심했다. 흡연이나 음주를 하는 탈선 장소로 변질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청소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인식이 커 그들을 설득하는 데 노력이 필요했다. 청소년 역시 사회의 중요 주체이고, 그들에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도시의 일부분을 청소년에게 내어주었다는 의미에서 맘껏광장과 맘껏숲이 청소년 놀이 공간의 좋은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 현 청소년들을 지켜볼 수 있는 트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맘껏숲의 경우 나무와 트리하우스, 공간을 분할하는 언덕이 시야를 가릴 수밖에 없어 반대가 컸다. 작품을 전시하거나 게시판으로 쓸 수 있는 아트펜스도 설계했는데, 같은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청소년은 참 고민이 많은 시기인데, 혼자서 깊은 고민을 하고, 학교가 끝난 늦은 시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없다. 청소년을 위한 여가 공간이나 놀이에 대한 토론 자체가 부족하다. 아 워크숍을 하며 청소년들이 원하는 공간에 대해 조사했는데, 다양한 의견을 관통한 공통점이 어른들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학업과 진로로 인한 스트레스도 크지만, 어른들에게 늘 관리되고 통제되는 터라 쉴 때만큼은 오롯이 또래들끼리 있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맘껏놀이터와 달리 맘껏광장과 맘껏숲은 인근에 실내 공간을 갖추고 있다. 아 놀이 공간은 그릇 같아야 한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도록 비어있어야 하는데, 비워놓기만 하면 활성화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모을 수 있는 프로그램과 장치가 필요하다. 맘껏놀이터를 통해 배운 게 많다. 놀이터가 생각보다 활성화되지 않아 여러 차례 방문해 그 원인을 찾았다. 우선 맘껏놀이터는 동네 놀이터가 아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한복판에 있어 동네 아이들보다는 차를 타고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한번 들러 놀고 떠나는 곳이다. 이 경우 비워놓은 놀이터의 특색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아이들은 이미 조합놀이대에서 노는 방식에 익숙해진 상태다. 조합놀이대가 없는 놀이터에서는 어떻게 놀아야 할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데, 맘껏놀이터를 방문하는 아이들은 그런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주 동선에서 벗어나 있고, 주변에 아이와 함께 온 부모가 편하게 앉거나 날씨와 상관없이 놀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없다. 카페 같은 실내 시설이 있으면 보호자가 편하게 아이를 지켜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도 형성된다. 맘껏놀이터의 경우, 주변에 편의점이 있지만 놀이터와 등을 지고 있고 법적인 문제로 인해 한동안 문을 열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놀이터 쪽으로 유입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놀이터 디자인만큼이나 공간을 활성화할 수 있는 놀이의 콘텍스트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김현민 소장과 맘껏광장을 설계하며 아이들이 점유할 수 있는 아지트 같은 실내 공간,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는 항상성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맘껏광장에는 구조물 형식의 맘껏카페를 만들었다. 맘껏숲에도 실내 공간을 두고 싶었는데 주어진 예산으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작정 전주시장에게 기본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 건물을 그린 도면을 들고 갔는데, 뜻밖에도 공감해주어 맘껏하우스를 추가로 계획할 수 있게 됐다. 전주시가 생태도시, 놀이터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시의 비전과 맞는 일이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편이다. 현 처음에는 사실 컨테이너 박스를 쌓은 정도의 제안이었는데, 여러 과정을 거쳐 예산이 확보되어 맘껏하우스를 짓게 됐다. 아 맘껏하우스를 설계할 건축가를 선정해야 했는데, 무엇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디자이너와 함께하고 싶었다. 늘 프로젝트를 하며 서울에 사는 사람이 지방에 작업을 하고 떠나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전주에서 활동하는 김헌 소장(일상건축사사무소)을 섭외하게 되어 기뻤다. 김헌 소장이 어렸을 때 덕진공원에 자주 들러 논 경험이 있어 그 의미가 더 컸다. 맘껏하우스는 맘껏숲과 같은 디자인 언어를 쓰는가. 아 디자인 언어가 같다기보다 놀이터와 건물이 하나로 연결되는 설계를 했다. 건물 자체가 놀이 공간의 일부처럼 녹아들기를 바랐다. 맘껏하우스 2층의 경우 반 이상이 외부 공간이다. 도로변에서도 진입할 수 있도록 1층에 큼직한 입구를 많이 두었고, 가장자리에 아이들이 걸터앉을 수 있게 했다. 현 맘껏하우스와 맘껏숲의 프로그램이 촘촘히 잘 엮여있다. 건축가는 건물 안에서 본 바깥의 풍경과 안과 밖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 다양한 아이들이 협업할 때 새로운 놀이가 탄생하는 것처럼, 건물과 놀이 공간을 친구처럼 만들었다. 건축가는 관리 문제로 인해 건물 내부에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게 된 점을 아쉬워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 무지개다리를 건너 맘껏하우스 2층에 들어서고 나선형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 다시 바깥으로 나가는 식의 놀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건물이 끼어 있기를 바랐는데, 신발을 벗어야 하니 그 흐름이 끊기게 됐다. 맘껏놀이터, 맘껏광장, 맘껏숲의 공통점 중 하나가 벽, 거울, 언덕, 미끄럼틀이다. 네 요소를 즐겨 쓰는 이유가 있을까. 아 벽은 공간을 정의해준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고, 천장이 있건 없건 아지트라고 느껴지는 공간감을 형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벽은 낙서를 하거나 액자를 걸 수 있고, 거울도 설치할 수 있어 여러모로 훌륭하다. 거울은 아이와 청소년 모두에게 인기가 좋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는 일이 아동 발달에 중요하고, 청소년들은 기본적으로 외모에 관심이 많다. 커버 댄스 연습 등 취미 활동에 활용되기도 한다. 더 자주 사용하고 싶은데 깨지거나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놀이를 촉진하는 몇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높낮이다. 높낮이를 즐기기에 언덕만큼 좋은 것이 없고, 오르내리는 지형을 이용한 놀이 기구의 대표가 미끄럼틀이라 자주 쓴다. 사실 가장 설치하고 싶은 건 그네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설치 기준에 따라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부지가 작은 경우가 많아 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매번 그 점이 아쉬워 맘껏숲에는 건물과 놀이터를 잇는 무지개다리 하부에 밧줄을 주렁주렁 달아 그 밧줄을 엮어 그네처럼 타고 놀 수 있게 했다. 더불어 맘껏숲에는 트리하우스를 제안했고, 별도의 예산으로 설치했다. 기존 숲의 큰 나무들을 활용한 기획인데, 아이들이 나무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트리하우스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꿨던 로망의 공간이지 않나. 현 트리하우스는 친구와 속닥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인 동시에 고지의 역할을 한다. 개인 공간이자 모험을 위한 놀이 시설이다. 아 아이들이 일상에서 오르기 힘든 높이를 트리하우스에서 경험할 수 있다. 아이는 도전하면서 성장한다.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연 속에서 나무와 공존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좋은 구조다. 트리하우스를 잇는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보이기도 한다. 놀이 공간에는 다양한 난이도의 놀이 기구가 필요하다. 난이도가 높으면 당연히 위험하고, 난이도가 너무 낮은 공간은 아이들이 위험을 찾아 이상한 방식으로 놀이를 즐기게 해 사고 발생률을 높인다. 좋은 놀이터는 놀이의 종류와 난이도가 다양한 곳이다. 아이들은 지금은 겁이 나는 놀이 기구를 보면서 내년에는 올라야지 생각하고 언니, 형을 따라하며 큰다. 오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며 또래 그룹끼리 교류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한 교류와 상호 보살핌의 기회를 청소년에게까지 확장해주고 싶었다. 평지에 새로운 언덕을 만들 때 겪는 어려움은 없나. 현 지형 스터디를 위한 모형을 크게 만들어 다각도로 검토했다. 언덕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 2.7m다. 생각보다 높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능선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각도에서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공간의 핵심 요소이기에 충실히 스터디했다. 아 지반 침하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성토를 해 지형을 만드는 일은 늘 쉽지 않다. 걱정은 있었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안 된다는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가 없다. 맘껏아지트가 눈길을 끈다. 단순히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넘어 시공까지 함께했다. 아 나 역시 그렇지만 유니세프는 놀이 공간 계획에 아이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맘껏광장과 맘껏숲을 만들 때는 청소년과 좀 더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이재영 교수(공주대 및 한국환경교육연구소) 팀을 섭외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사용할 공간을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맘껏아지트로 해소해주고자 했다. 전주 야호학교 청소년과 함께 디자인하고 지역 목수와 직접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현 청소년 주체의 프로그램 운영 여건을 마련해준 것이 맘껏숲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놀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앵커가 없으면 공간의 주인이 사라진다. 맘껏숲에는 놀이 활동가가 상주하며 다양한 계절과 시간에 따라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아 놀이 활동가가 있는 놀이터는 정말 다채로워진다. 그동안 분실과 사고의 위험으로 금기시됐던 블록 놀이를 맘껏숲에서 시도해봤는데,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 블록이 사라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놀이 활동가가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다. 세 사업을 모두 다른 지자체에서 진행했는데 도움을 받은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있나. 현 유니세프의 아동친화도시 인증 프로그램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고 전부였다. 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으려면 우선 아동권리 전담조직을 만들고 아동친화적인 법체계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전담 조직이 있어도 놀이터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부서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마저 없다면 프로젝트가 더욱 복잡해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좋은 담당자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맘껏광장의 경우 최초 예산이 5천만 원이었다. 기존 광장에 아동권리헌장을 출력해 붙이는 정도의 간략한 계획이었다. 실제로 작동하는 공간을 만들려면 적어도 6억은 필요하다고 하니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던 담당자의 당황 가득한 침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달 정도 연락이 두절되어 프로젝트가 무산되었구나 하고 체념할 무렵, 담당 공무원이 시의원과 여러 사람을 설득해 일정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갈등을 조정하고, 추가 예산이 필요해지면 여러 단체를 설득해 기부금을 받아오기도 했다. 맘껏광장 벽에 설치한 거울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출력해 넣었는데, 이는 실시설계 단계밖에서 담당자들의 애정과 의지 덕분에 실현되었다. 현 전주에서는 뜻밖의 일이 장애물로 작용했다. 대상지인 덕진공원이 전통성을 강조하며 리노베이션되고 있어 맘껏숲에도 전통을 담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주 작은 디테일에까지 말이다. 그래서 무지개다리에 설치된 밧줄 윗부분에는 전통 노리개에서 볼 수 있는 매듭을 사용했고, 평상이나 팻말, 벽에 전통 요소을 넣었다. 심의를 통과해야 하니 과도하게 드러나지는 않되 군데군데 전통을 숨겨놓는 방식을 썼다. 아 아이들의 놀이는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보편적 특성을 갖는다. 놀이터에는 놀이만 담으면 되지 성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투영하는 게 불편했는데, 지나고 보니 결과물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상적인 놀이 공간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앞으로 실현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현 아이디어를 얻고자 일본의 플레이파크에 답사를 갔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특별한 시설이 없는 진흙탕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만들고 부수는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맘껏하우스에서 놀이 활동가, 야호학교 교사, 청소년이 모여 매주 목공 체험을 통해 시설을 만들고, 그 시설 자체가 놀이터가 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도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좀 더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아 물놀이 공간이라 하면 분수처럼 물이 솟구치는 시설이나 계류, 발을 담글 수 있는 연못을 떠올린다. 하루는 비 온 다음날 맘껏숲에 간 적이 있다.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바닥 일부가 진흙탕처럼 변해 있었는데, 담당 공무원은 하자 보수를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렇게 물이 고인 곳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 놀이터나 진흙 놀이터가 된다. 놀이터를 설계할 때 늘 성인의 눈으로 공간을 보지 않으려 경계한다. 오히려 재미있는 놀이 기회를 뺏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실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놀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100퍼센트가 아닌, 덜 디자인된 공간인지도 모른다. 플레이파크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 많은데 상당히 지저분하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시설이 깨끗하게 관리될 수 없다. 사진이 잘 나오는 깔끔한 공간보다는 아이들이 놀며 망가뜨리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 현 놀이터에 대한 고정관념이 참 많다. 놀이터는 아이들만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짜 놀이터는 아이들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어야 한다. 플레이파크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스스로 놀이거리를 찾아 논다. 고정관념과 정해진 놀이, 법규와 심의가 많다보니 놀이터의 다양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싶다. 맘껏숲놀이터 프로젝트 총괄 및 책임디자이너 김아연 맘껏숲놀이터 기본계획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윤승렬, 이현정),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조찬희), 스튜디오일공일 조경 설계 스튜디오일공일(김현민, 이현옥, 이세희, 이슬기, 최담희) 조경 시공 호원건설 맘껏아지트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이재영, 조경준, 심규태, 조찬희), 야호학교 청소년 및 틔움교사 트리하우스 미즈노 마사유키 + 가사골 교육놀이공동체 목재시설물 시공 쌔즈믄 미끄럼틀 시공 자인 외부 전기 시공 대아전력공사 맘껏하우스 건축 설계 일상건축사사무소(김헌, 최정인) 구조 설계 시너지구조 조경 시공 호원건설 건축 시공 태왕종합건설 건축기계·전기 설계 대화 건축 면적 146.73m2 연면적 178.52m2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316-11(덕진공원 내) 대지면적 4,684.18m2 건축주 전주시청 &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완공 2021. 5. 사진 김아연, 노경, 일상건축사사무소, 한국환경교육연구소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정원, 놀이터, 공원, 캠퍼스, 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김현민은 서울시립대학교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미국 SWA 그룹에서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술사사무소 렛, 비오이엔씨, 지드앤파트너스에서 폭넓은 실무를 경험한 뒤 2015년 스튜디오일공일을 설립했다. 실험성, 심미성, 실현성을 바탕으로 과정을 강조하는 실천적 디자인을 중시하며, 작은 정원에서부터 주거 단지, 오피스, 공원, 리조트, 골프장 등 다양한 스케일의 설계와 디자인 감리를 한다. 마이크로경관이 살아 있는 풍성하고 균형 잡힌 경관 체험을 전하고자 노력한다.
    • 김아연
  • LH 시그니처 가든 LH Signature Garden
    아파트 조경 아파트 조경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별로 없는 시장이다. 입지, 브랜드, 평수 등이 세트로 묶인 상품인 데다 보통 공용 공간이기에, 인테리어처럼 따로 구매하기 어렵다. 요즘 시장에 나오는 상품은 서로 비슷하다. 우리는 왜 아파트 외부 공간을 계속 이렇게만 만들고 있는가. 단지 내 조경 공간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짓는 공간과 테마는 브랜드 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획일화되었다. 쏟아지는 특화 속에 차별성이 점점 없어지는 역설적 현상은 아파트가 주거 공간보다는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특권층’, ‘상위 0.1%’, ‘노블리스’ 등의 노골적인 광고 문구를 쓰면서 사회적, 경제적 구별 짓기를 전략으로 삼는다. 선망받는 삶을 원하는 소비자의 허영심에 기댄 상업적 마케팅도 한몫하는 듯하다. 일반인이 전문 지식 없이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근 단지와의 비교’만이 주요 평가 수단이 되면 우리 단지에도 석가산이 있어야 하고, 좀 더 크고 멋있는 소나무가 옆 단지보다 많아야 하고, 유명한 ‘작가’가 설계했다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이런 시장에서는 이미 좋은 평가를 받은 답안을 그대로 또는 조금만 바꿔 쓰는 것이 소비자에게나 공급자에게나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경 특화의 트렌드는 브랜드별 특성보다는 시대별 유행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하면 몇 년 안에 다른 브랜드들이 그대로 이를 모방함으로써 유행을 만드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과연 ‘입주민들은 이런 것을 원한다’고 흔히 알려진 것 중 어느 만큼이 사실인가. 이미 평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국내 아파트 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가장 자주 제기되는 민원이거나 조합의 집단적 목소리가 거세다고 해서 이를 바로 소비자의 요구로 보기는 어렵다. 스스로 판단한 가치와 선호보다는 그게 비싼 거라더라, 그런 것이 좋은 거라더라, 어째서 안 좋다더라 등 여러 ‘카더라’가 덧대어져 형성된 대중적 취향에 과연 실체가 있는가. 우리는 근본도 알 수 없는 석가산이 아파트마다 솟아 있는 것을 보면서, 사실 공급자가 해결하기 편리한 방식으로 쉽게 규정된 가짜 트렌드로 의심해왔다. 시그니처 가든 LH 분양주택 시그니처 가든 개발 프로젝트는 분양주택에 적용될 LH만의 특성을 갖는 정원 유형을 개발하기 위해 중앙정원, 동 앞 정원, 운동정원 세 가지 공간에 대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확립하고, 이를 안성 아양지구 B-1블록에 적용하기 위해 시작됐다. 새로운 주거 가치와 변화하는 이용자의 수요를 반영한 정원 공간을 개발하는 과업 목표는 지극히 상투적인 것 같지만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보자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이 시장에서 가장 큰 공공의 공급자로서 LH다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특화 정원으로 무장한 요즘 아파트와는 상반된, 오래된 자연 속에 조화를 이룬 주공 아파트에 대한 ‘아파트 키즈’의 관심에 주목했다. 영화 ‘집의 시간들’에 등장하는 입주민 인터뷰나 아카이브 잡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담담한 기록들은 시장 주도적으로 생성된 상품적 가치에 가려져 있던 일상 속 주거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성하게 숲을 이룬 나무들이나 소박하게 비워진 들판과 같은 평화로운 공간은 최근의 부동산 시장에서 만들어진 특화 아이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입주민에게 오래된 아파트의 단점을 보완하는 큰 장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큰 나무 그늘에 주차하면 열에 아홉은 차에 새똥을 맞는다. 지하 주차장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공 지반 위에 있어서 처음부터 큰 나무를 옮겨와도 더 자라지 않는 아파트 정원을 보면, 그보다는 자연 지반에 뿌리 내려 10층 높이까지 자라나는 숲이 더 좋다.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최근의 특화 정원과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 잡은 소박한 아파트 외부 공간을 비교해볼 때, 상업적으로 편향된 변화 속에서 자연의 미적 가치나 조경의 다양한 경관적 설계 해법은 과소평가되고 장식적 조형물이나 시설물 개발이 남용된 것은 아닌가. 단순히 취향의 문제를 떠나, 다른 곳의 큰 나무를 옮겨와 심는 것 자체에도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 진짜 자연이 될 수 없는 편평한 슬래브 위에 헛헛함을 채우려는 장식적인 요소들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경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센트럴 힐 중앙정원의 유형으로 개발한 공간은 ‘센트럴 힐’이다. 세 곳의 시그니처 가든 중 아파트 외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가장 잘 함축된 곳이다. 센트럴 힐은 관람형 경관 시설로 채워져 행위의 다양성이 부족한 석가산과 달리, 완만한 경사면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정자목과 열린 공간이 커뮤니티의 공동체적 가치를 담도록 하는 ‘마을 언덕’이다. 언덕은 정상부의 정자목 쉼터, 물이 따라 흐르는 동선, 열린 풀밭 구릉으로 구성된다. 바닥에 다다른 수로는 작은 폰드와 바닥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이어진다. 광장에는 언덕을 향해 열리는 티하우스가 있어 공간의 활용을 돕는다. 언덕의 높이는 약 2.5m인데, 이는 약 30×40m인 안성 아양지구 센트럴 힐 부지의 크기에 따른 것이다. 이용이 가능한 완경사를 유지하고 정상부까지 경사도 1:18 이하의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서 나선형의 동선을 따라 전면부와 후면부 경사가 다른 콩 모양의 지형을 설계했다. 식재와 시설물 모두 지형의 설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정상부에는 마을의 정자목 역할을 하는 대형 그늘목을 심고 아래 너럭바위형 앉음 시설을 배치했다. 수경 시설은 동선을 따라 같은 경사로 흐르며, 점점 넓어지다가 발을 담글 수 있는 작은 폰드와 그 옆 바닥분수로 이어진다. 급경사면에는 두 겹의 플랜터 월을 설치하여 계절을 표현할 수 있는 관목을 식재하고, 급경사에서 완경사로 변곡되는 구간은 안전을 고려해 낮은 관목을 밀식했다. 지형과 수로 유토 모형과 라이노 모델링 수정을 거쳐 경사도 5.5% 이하의 보행 동선, 1:12 이하의 편안하게 걸터앉을 구릉, 좁은 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계단식 화단, 하중에 따른 높이 제약과 대형목을 위한 유효 토심 등 각기 다른 조건을 만족하는 하나의 지형을 완성했다. 2.5m의 언덕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1.5m 이하의 토심을 상정한 지하 주차장 구조에 변경이 필요하다. 대상지의 건축 설계가 완료된 후였기 때문에, 기존 설계 하중을 넘지 않도록 언덕 하부에 EPS 블럭을 활용했고, 시공의 용이성과 공사비 등을 고려해 EPS 부피와 형상, 경량토와 일반토의 비율을 3D 설계를 통해 최적화했다. 한 대상지의 설계가 아닌 디자인 가이드라인 수립을 목표로 하는 설계이기 때문에 지형을 형성하는 원리와 설계 주안점, 다른 크기나 형상의 부지에 적용할 경우 주의해야 할 점 등 설계 원칙을 고민해 매뉴얼로 정리했다. 가산(假山)을 진짜 언덕으로 바꾼다더니 EPS 블럭이 채우고 있는 이 언덕도 가산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관람용이 아니라 점유가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환한다는 점과, 완만한 곳과 경사진 곳, 낮은 곳과 높은 곳, 길과 물가, 한적한 너럭바위와 왁자지껄한 바닥 분수존 등 하나의 언덕이 제공하는 다양한 행위의 유도라는 측면에서 ‘우리 마을 언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수로의 설계와 시공에서 일정한 경사는 매우 중요하다.수로 경계의 경사는 산책로의 경사와 동일한데, 산책로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요건을 충족하는 5.5%의 완만한 경사로로 조성되어야 한다. 시범단지인 안성 아양지구 B-1블록의 경우 산책로는 최고점 높이인 2m까지 4.4%의 일정한 경사로 설계했다. 수로 내부에는 일정 거리마다 물넘이를 설치하여 계단식으로 물이 담기도록 하고, 바닥면의 경사는 3% 이하가 되도록 조정한다. 계단식 물넘이를 두어 수로 바닥을 산책로 경사보다 더 완만하게 설계해야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경사가 급하면 물이 너무 빠른 속도로 내려가게 된다. 유속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체로 2.5%를 넘는 경사면을 흐르는 물은 어린아이가 종이배를 띄우고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둘째, 미끄럽지 않도록 표면을 마감하더라도 사람이 밟고 섰을 때 경사가 급하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센트럴 힐의 수로는 폭이 그리 넓지 않고 바닥면에 텍스처 마감이 있어, 들어가서 뛰어노는 행위를 유도하지는 않지만 발을 담그는 등의 소극적 친수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므로 완만한 바닥 경사가 더 안전하다. 셋째, 발을 담글 수 있는 담수 구간을 일정한 거리마다 형성하여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 물이 담기는 구간이 없으면 흐르는 경사면에서 일정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유량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유속이 더 빨라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경 시설 연출 효과상의 하자를 줄일 수 있다. 담기는 구간 없이 흐르는 물의 두께가 일정한 경우, 수로의 내측과 외측의 높이가 매우 정확하게 시공되지 않으면 물이 닿지 않는 곳이 생길 수 있어 훨씬 정확한 시공이 필요하다. 리틀 포레스트와 가든 피트니스 동 앞 정원은 ‘느슨한 공존’을 추구한다. 나만의 정원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싶은 선호를 반영하되, 이웃과 공간을 나누어 쓰는 것이 가능한 정원 공간이 되도록 했다. 외부로부터의 완벽한 차단이나 분리가 아니라 적당한 가시성이 있는 공간에서 동석이 강요되지 않는 이용을 고려했다. 원래 공간명은 ‘오손도손’에서 일부를 따와 도손정원이라 했으나, 추후 영문명으로 일괄 변경하면서 ‘리틀 포레스트’로 변경되었다. 리틀 포레스트는 30~50cm의 단차를 활용해 주요 공간 두 곳의 시선을 분리했다. 강요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임을 유도하기 위한 요소로 물이나 불과 같이 움직이는 자연 요소를 도입하도록 했다. 안성 아양지구에는 위로 솟는 샘물을 표현한 종형 수경 시설을 적용했고, 관리와 안전 문제로 불꽃을 감상할 수 있는 화로는 대안으로만 제시되었다. 이 휴게 공간은 마운딩 위 관목으로 더 위요감을 갖도록 했는데, 실제 지형의 높이나 관목의 밀도가 생각보다 이를 달성하지 못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단지 주변부 잉여 공간에 운동 기구만 모아 놓아서는 가고 싶은 운동 공간 또는 SNS에 공유하고 싶은 일상 공간이 되지 못한다. 운동 시설은 이용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지만 이용층이 특정 연령대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스트레칭과 유산소, 근력 운동으로 이어지는 운동의 기본 시퀀스를 따라 각 구역별로 독립적인 공간을 배분했다. 각 공간을 정원으로 둘러싸 ‘가든 피트니스’로 명명한 공간의 성격을 그대로 표현했다. 공간별 레벨을 달리하고 언덕으로 감싸는 등 기본적인 공간 형성의 틀은 리틀 포레스트와 공통분모가 많지만, 쓰임과 공간 분위기를 고려하여 포장(철평석 부정형 포장 vs. 고무칩 포장), 식재(섬세한 계절 연출 vs. 잎의 텍스처와 무늬를 강조), 시설물(자연석 놓기 vs. 조약돌 콘크리트 조형스툴)에서 전략을 달리했다. 차별화 말고 진짜 조경 양재희, 이호영·이해인 소장 인터뷰 시그니처 가든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양재희(이하 양)이번 프로젝트는 설계와 더불어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확립하는 프로젝트였다. 단순히 설계 경쟁이나 화려한 디자인으로 귀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LH의 정원 설계가 추구하는 일관성 있는 방향 설정, 체계적 설계 관리를 목표로 했고, 장기적으로는 가든 브랜드 수립을 추진하고자 했다. 맡은 업무는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용역설계의 발주, 기본설계와 실시설계의 감독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용역사가 설계를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확립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양일회성으로 넘기기 아까운 정원 설계와 시설물 디자인 등이 LH 주택 설계에 존재했다. 이러한 좋은 설계를 디테일 도면 공유, 준공단지 설계 피드백 등을 통해 다른 단지에 적용하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또한 단지별로 정원 특화를 진행하기 때문에 정원의 주제와 설계 아이템이 일관성을 갖기 어려웠다. 통일성 있는 가든 설계 전략과 구체적인 가든 프로그램과 설계 요소를 체계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 모델 개발과 더불어 시범 단지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세 공간(중앙정원, 동 앞 정원, 운동정원)을 시그니처 가든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양 어느 단지에나 적용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입주민의 체감도와 접점이 상당히 중요한 기준이었다. 기존 정원 사례 답사, 설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이용성과 체감도가 높은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선정했다. 중앙정원인 커뮤니티 가든은 주민 간의 활발한 소통의 중심으로 삼고 싶었고, 동 앞 정원은 최근 관심이 높아진 세컨드 하우스 공간으로 자리 잡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용도와 만족도가 높은 운동 시설에도 작은 정원을 만들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번 프로젝트 설계의 첫 단추는 무엇이었나? 이해인(이하 해)엇비슷한 아파트 조경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단순히 주차장 위 평평한 중앙 공간에 수직적 요소를 만들다보니 석가산처럼 가짜 요소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러면 추억이 깃들 틈이 없다. 입주민들을 수동적 소비자로 만든다. 화려하고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언덕에서 뛰어놀고 자연스럽게 동산에 앉아서 휴식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보통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서 이러한 아파트 공간이 생겨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앙정원에 활용한 정자목과 마을 언덕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이호영(이하 호)과거에는 마을 언덕이 흔한 풍경 중 하나였다. 마을 어귀에는 큰 정자목이 있고, 평상에 어르신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대화를 나눴다. 일종의 커뮤니티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가면 마을회관에 다다르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집의 앞마당에 도착한다. 정자목부터 시작해 집의 앞마당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이를 아파트에 옮겨 왔다. 정자목 아래로 어르신들이 모이고 언덕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설계를 풀어냈다.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범용성도 중요하지만, 대상지 고유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해 세 공간의 개발 목적이 LH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 적용이 가능한 원형(prototype)을 정의하는 것이 중요했다. 단지 규모나 주동의 생긴 모양, 조경에서 쓸 수 있는 땅 모양이 다르다 보니 축소형, 표준형, 확장형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한 배치와 기준을 설정했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다. 또한 단지만의 특성을 고려해서 교목 및 관목 종류, 돌 등은 해당 지역의 맥락적 특성이 보태질 수 있도록 했다. 완성된 공간 중 마음이 드는 곳은 어디인가? 반대로 아쉬운 부분은? 호 자연형 수로는 경사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다 바뀐다. 일일이 다 계산하고, 수작업으로 열심히 만들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단순해 보인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것이 엄청난 노력과 시스템의 결과라는 걸 안다. 복잡한 시스템을 간결한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데는 많은 공이 든다. 그래서 가장 보람이 있었다. 덧붙여 잔디밭 대신 풀밭을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쉽다. 대신 시간이 지나면서 정자목이 더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잔디가 초지가 되면서 더 풍성해질 공간을 그려본다. 오로지 시간만이 불어넣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매력이다. 실제 입주민과 LH 내부의 반응은 어떤가? 양 안성 아양지구는 입주자들이 조성된 조경 공간을 보고 분양 계약을 체결한 지구다. 입주자들이 단지를 둘러보고 조경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고 들었다. 조경 공사에 참여한 기술자 한 분이 ‘분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는 후문도 들었다. 우리가 의도한 대로 실제로 살고 싶은 공간이 조성된 것 같다. 새로운 시공 방법으로 인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시공 담당자, 감리자, LH 감독 등 모든 관계자가 적극적으로 임해주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좋은 아파트 조경이란 무엇인가? 호 쓰임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차별화된 조경을 경계하고 싶다. 차별화란 명분을 앞세워 호텔이나 리조트처럼 으리으리한 조형물을 넣어서 화려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놀러가는 공간이라면 화려할수록 좋겠지만, 우리는 집에 쉬러 간다. 가령 호텔이나 리조트는 일상을 벗어나는 공간이지만, 주거 공간은 편안함이 1순위인 곳이다.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자연의 소리를 더 들을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다. 진정한 차별화는 주거 공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달리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조경설계 HLD(시그니처 가든), 조경그룹 이작(시그니처 가든 외 단지 내 조경), 데오스웍스(티하우스 및 퍼걸러) 발주 한국토지주택공사 위치 경기도 안성시 아양4로 46 일대 면적 1,790m2(단지 대지면적: 38,590m2) 완공 2021. 7.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다. 디자인을 통한 주창과 혁신이라는 철학 아래, HLD의 디자인은 공간적 문제와 도전 과제에 대한 ‘핵심적 개입’ 제공을 목표로 한다. 양재희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LH에서 아파트 설계, 공원 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담당하였고, 시공, 유지 관리, 하자 보수 등 건설 사업의 생애주기를 두루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LH 시그니처 가든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 이해인
  • 타임워크 명동 공유정원 TIMEWALK Myeongdong Shared Garden
    Work in Green 제안 공모에서 주어진 조건은 명확하면서도 모호했다. “입주사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고, 타워부의 호텔과는 무관하니 최대한 유연하게 디자인해 주세요. 간단히 말해서 유연하게, 아시죠?” 건물의 주인은 한정된 시기를 소유할 그 누구도 아닌 자본 그 자체였다. 명동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건물 입주자도 예측이 불가능했다. 감사하게도 지명공모에서 최종 설계안으로 선정됐다. 첫 미팅에서 담당자는 ‘압도적 녹색’을 요청했다. 1, 4, 7층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옥상 정원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녹색을 강조했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건물의 성격을 보완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조경가로서 반가운 제안이지만, 이와 유사한 ‘건축물 조경’을 작업했을 때 시공 후 유지와 관리 문제가 생겼던 경험이 있었다. 노련한 건물주들은 아예 처음부터 고관리의 정원식 식재는 빼고, 간소화된 조경을 요청했었다. 미팅 중 우려를 전달했고, 녹색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발주처는 녹색이 지배적인 이미지를 원했으며, 실현을 위한 구조 검토를 비롯해 최대한의 노력을 약속했다. 보여 주기용 식재 디스플레이로 끝내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공유정원을 운영할 방안도 고려하고 있었다. 발주처, 설계자, 운영 관리자의 균형 잡힌 노력이 있다면 새로운 결실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Walk in Green 7층까지 시민들이 올라오게 하고, 장소의 본질적인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콘셉트가 바로 ‘걷기’였다. 명동은 보행 명소이자 쇼핑거리다. 그 걸음이 정원 걷기로 연속되는 정원 거리의 개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 4, 7층에 불연속 되어있는 정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걷는 경험이었다. 공유정원은 사유정원도 아니며, 완전한 공공정원도 아니다. 도심 속에서 잠시 짬을 내어 정원을 향유하며, 가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결국 이 공간의 본질은 정원에서 걷는 경험이다. 정원에서의 걸음(walk in green)을 큰 줄기로 잡고 세부 사항을 정했다. 각 층의 특성에 맞추어 구체화한 세 가지 주제 문구가 각 걸음의 경험을 설명한다. 7층은 관목을 심기에도 부족한 토심이지만, 풍성하고 너른 초지를 펼치고, 그것을 가로지르는 걸음을 의도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하는 초지의 경관은 방문자를 정원으로 초대하고, 잔디밭과 몇몇 쉼터에서 잠시 멈춰서 식물과의 교감할 수 있으며, 앞으로는 탁 트인 남산의 전망을 볼 수 있다. 4층은 업무용 오피스가 위치할 3~6층 근무자들이 잠시 쉴 수 있는 테라스로 조성했다. 마치 연속된 징검다리를 건너 테라스를 찾아가는 듯한 경험을 콘셉트로 삼아 몇 개의 연속된 정원 소로를 놓았다. 1층은 전면 도로인 남대문로와 후면의 명동3로를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로서의 거리 경관을 의미한다. 세 가지 주제 정원을 따라 걷는 걸음과 1층 카페 앞 카페거리의 경험을 제안했다. Mix in Green 토심이 거의 확보되지 않고, 미비한 배수 조건과 더불어 생태적 연결의 지원이 어려운 초고도 도심 생태계에서 생명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열악한 조건에서 생육이 가능한 식물 재료의 배열과 조합을 가장 많이 고려했다. 단단하지 못한 식재 기반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면 기본적 미기후 조건이라도 충족해야 한다. 일조량에 맞는 식재 배열과 배수의 촉진을 돕는 원칙이 필요했다. 현장 방문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된 대각선은 모든고려 사항의 중심선이 됐다. 건물 숲 사이에서 고층의 호텔 타워부가 드리우는 그림자는 대략 점심시간 이후부터 7층 옥상 가로세로 30m 정방형의 공간에 사선을 그린다. 오후 5~6시경의 일몰 시간대까지는 밝은 영역과 어두운 영역이 또렷하게 나뉘었다. 대각선에 따라서 양지에서 반음지, 음지로 이어지는 일조량의 순서는 식재 수종 그룹화를 자연스럽게 도와주었다. 방향성 없이 곡류 순환하는 동선 구조 위에 단방향의 식재 질서를 부여하고, 위치 선정을 못 하고 표류하던 잔디 마당과 테마정원의 주소를 양지쪽으로 정해주는 방향타가 됐다. 미기후 조건을 만족하는 식재 그룹은 2~3가지 보조 그룹으로 나눴다. 그 보조 그룹들을 선형 질서 안에서 무작위로 섞이도록 배치했다. 얕은 토심에서 자라게 될 키 낮은 초화류가 한 지점에 몰리게 되어 볼륨감이 옹색해지거나, 양감의 리듬이 상쇄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조합했다. 한 계절에 두드러지는 효과가 집중되지 않게끔 사계절의 연출을 시도했다. 집수정을 지나가는 몇 개의 띠는 자갈 배수로다. 계곡과 같은 역할을 하며 집중 호우 시 배수 촉진을 도울 수 있도록 했다. Hidden in Green 인공 지반 식재의 구현에는 태생적 딜레마가 따른다.자연의 식재가 무성한 느낌을 구현하고 싶지만, 인공미를 완벽히 덜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토양과 배수층의 식재 기반 확보를 위해서 플랜터의 수직적 요소는 불가피하다. 7층의 경우 최적의 플랜터 높이를 찾기 위해 숱한 수정을 거쳐야 했다. 전반적으로 플랜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인공의 인상은 줄이고, 자연 소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조형적인 노력과 인지적 효과를 고민했다. 일단 플랜터의 노출을 최소화했다. 교목 식재를 위해필요한 높은 단은 2단으로 처리하여 플랜터의 옆면이 높더라도 아랫단의 식물이 최대한 보이도록 했다. 입면상에서 길고 지루하게 노출되는 수평으로 긴 플랜터의 경우에는 적절한 지점에서 끊었다. 한쪽의 플랜터가 앞쪽으로 길어지면서 지면으로 수렴하게 하여, 두 갈래로 나뉜 플랜터 사이에 약간의 식재 틈이자 긴 호흡을 쉬어가게 하는 작은 요소를 고안했다. 몇 가지 원칙도 정했다. 보기에 편하고, 걷고 경험하는데 가장 부담이 적은 무릎 높이 이하의 설계가 첫 번째 원칙이었다. 다음은 모든 시설의 두께감을 줄여서 인지되는 무게감을 줄이고, 어두운 색을 써서 존재감을 줄여 후퇴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진회색 화산석 멀칭과 흑색 스테인리스 플랜터 소재의 색상 매칭을 통해, 플랜터와 멀칭재 등 식물을 제외한 모든 다른 요소들은 뒤로 보내고, 자연 소재의 질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의자도 존재감을 최소화하고 식물과의 조화에 초점을맞췄다. 융화된 외관과 더불어 정원 안에서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벤치형보다는 ‘닷 스툴(Dot Stool)’이라 이름 지은 동그란 1인용 의자를 플랜터 경계 위에 띄우고 기둥은 경계 뒤에 감췄다. 7층의 ‘이벤트 파빌리온’과 4층의 ‘그린 컨퍼런스 룸’도 자연 질감을 강조하고 식물을 적극적으로 품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했다. 조영민, 최영준 인터뷰 도심 속 아름다움을 공유하다 공유정원은 무엇인가? 조영민(이하 조)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광고 전문가로서 브랜딩콘텐츠를 오랫동안 만들었다. 전공의 영향인지 회사를 관둔 후 도심 속 유휴 공간을 활용해서 시민들에게 정원 문화를 체험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유정원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지만, 정원 문화를 같이 누릴 수 있는 장소다. 바라만 보는 정원에 그치지 않고, 가드닝이나 요가와 같은 클래스를 체험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관혼상제와 같은 행사가 이루어지고, 삶의 희로애락이 담겼던 한국의 마당과 비슷하다. 마당놀이를 벌이듯 이곳에서 온 모든 이들이 즐거운 경험을 가지고 돌아 가기를 희망한다 왜 명동이었나? 조 체험하는 정원의 기쁨을 도심 속에서 맛보는 모습을 늘 상상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도심의 여러 군데를 찾아다녔다. 우연히 비슷한 뜻을 가진 발주처를 알게 되었고, 명동이 가진 역사적 맥락이 좋았다. 다산 정약용이 시를 읊고 정원을 가꾸던 곳이 바로 명동이다. 또한 조선 시대부터 말과 마차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번화가였다. 청년들부터 시작해서 많은 문화 예술인이 모여서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낭만과 풍류가 가득했던 옛 시절의 명동처럼, 현시대의 공유정원이 그러한 정서적 가치를 갖기를 바랐다. 전체 콘셉트인 ‘워크 인 그린(Walk In Green)’은 어떤 의미인가? 최영준(이하 최)브랜드 녹녹(NockNock)의 원래 이름이 워크 인 그린이라고 들었다. 녹색 안을 걸어간다는 말이 참 와닿았고 장소적 맥락의 영향도 있었다. 예전부터 명동은 보행 명소로 유명하고, 역사적으로 광장과 같은 역할을 한 곳이다. 코로나19 이후 번화가의 명맥이 옅어지고 있지만, 광화문 지하 통합화 등을 통해 보행자 우선 환경이 조성된다면 새로운 목적지로 또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바라만 보는 정원이 아니라, 굴곡진 길을 걸으면서 체험하는 정원이 몰입도와 재미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봤다. 도면과 스케치, 모델에 담을 수 없는 경험을 사용자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발주처가 압도적 녹색을 요청했는데,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나? 최 공모 당시 발주처에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당선된 이후에는 압도적 녹색을 요청했다. 원래 제안했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험에 가까웠고, 유지 관리 문제도 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소들이 많았다. 압도적인 녹색보다는 녹색 정체성을 강조하되 유연한 공간 이용이 가능한 그린 캔버스(Green Canvas) 콘셉트를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압도적 녹색과 그린 캔버스의 중간 지점을 방향으로 잡으려고 했지만, 발주처는 녹색이 많이 구현된 이미지를 원했다.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발주처가 예산의 규모를 늘려주고, 녹녹이 원하는 정원의 이미지와 그에 따른 조성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준 덕분에 실현할 수 있었다. "정원 그 자체로피사체가 되는 것도 좋지만, 정원과 사람이 어우러져 하나의 배경으로 오롯이 남기를 원한다." 발주처, 운영사, 설계자. 삼각 구조의 소통이 이뤄졌는데, 어려운 점은없었나? 조 우선 나는 조경계 밖의 사람이기 때문에 늘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조경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엉뚱하지만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이러면 보통 반응은 두 가지다. ‘네가 뭘 아냐?’, 혹은 ‘해보자’. 최 소장은 후자였다. 외부인의 시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늘 낮은 자세로 임하면서 많이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발주처, 운영사, 설계자 모두가 이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차별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한마음으로 노력을 많이 했고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 최 일을 하면 관성적으로 하는 순간이 온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현실 가능성 때문에 주저할 때가 많다. 하고 싶은 것과 새로운 시도 사이에서 적정한 균형을 찾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조 대표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장소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대나무 식재를 추천하는 모습에서 기획자 관점에서 대상지를 보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조경가이지만 사실 식재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이번에 공유정원을 위한 사계절 혼합 식재를 계획하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원하는 식재 설계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발주처의 도움도 크다. 전체적으로 소통이 원활했던 프로젝트였다. 완성된 공유정원이 마음에 드는가. 아쉬운 점이 있나? 조 도시인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자연과 계절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공유정원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였다. 관리가 쉽지는 않지만 사시사철 푸른 것보다는 잎이 떨어지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경관들. 건물 사이 빛에 따라서 보이는 대조적인 풍경. 이러한 입체적인 숲을 원했고, 생각대로 잘 구현된 것 같다. 조경 작품은 완성이 됐지만, 정원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정원의 진짜 풍경은 이 생명력이 가득한 공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최 좋은 점과 아쉬운 부분을 딱히 꼽기는 힘들지만, 한 가지 바람은 있다.준공은 됐지만, 관리가 생명이자 본질이다. 사실 공간의 완성은 사람이다. 사람의 온기가 더해질 때 그 공간의 가치가 비로소 빛을 발한다. 정원 그 자체로 피사체가 되는 것도 좋지만, 정원과 사람이 어우러져 하나의 배경으로 오롯이 남기를 원한다. 사람의 온기가 더해지면 이 공간은 또 어떻게 변할까? 이런 상상을 늘 한다. 그래서 지금보다 내년, 내후년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우리의 삶에서 공유정원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조 공유정원의 장점은 접근성이 좋고, 몰입도가 높은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소적 맥락과 요가나 가드닝과 같은 콘텐츠들이 더해지면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 앞으로 공유정원은 사적인 아웃도어 공간으로서 주목받을 것이다. 명동처럼 특별한 장소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두 번째 공유정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다음 공간으로 강남을 염두에 두고 있다. 녹녹이란 이름의 뜻처럼 공유정원이 언제든 자연에 노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최 삶에서 아름다운 순간이 몇 번이나 있을까?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과 방식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가 아름답다고 정의하는 것은 대체로 좋은 감정을 가지는 순간이다. 나는 정원에 가면 아름다움을 느낀다. 특히 잘 가꿔진 곳일수록 더 큰 아름다움을 느낀다. 정원의 동의어는 노동이라 생각한다. 완성도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식물을 가꾸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품이 든다. 큰 비용이 소요될 뿐 아니라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공유정원은 이 노동을 다른 이가 대신하여 가꾼 정원이다. 정원을 돌보며 얻는 보람은 느낄 수 없을지라도, 늘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까이 할 수 있는 자연을 제공해준다. 아름다움은 나눌수록 커진다. 값어치가 떨어질 걱정이 없는 가치가 그 곳에 있다고 본다. 진행 금민수 디자인 팽선민 "녹녹이란 이름의 뜻처럼공유정원이 언제든 자연에 노크할 수 있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환경과조경406호(2022년 2월호)수록본 일부 글 최영준 랩디에이치 소장 사진 유청오 조경 설계 랩디에이치(Lab D+H) 관리 운영 앤로지즈(Androses) 건축 설계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 벽면 녹화 창조원 발주 이지스자산운용 면적 2,802m2 완공 2021. 9.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는 설계를 통해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확산하고자 하는 조경 중심의 디자인 그룹이다. 한국, 미국, 중국 등의 문화를 기반으로 정원부터 마스터플랜까지 다채로운 성격과 규모의 프로젝트를 다룬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설립되어 현재 한국의 서울, 중국의 상하이에 오피스를 두고 있다. 조영민은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인디애나 대학교 켈리스쿨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제일기획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삼성전자를 비롯한 다양한브랜드의 국내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과 콘텐츠 제작을 담당했다. 현재는 조경 정원 플랫폼 스타트업 ‘앤로지즈’ 대표로 공유정원 서비스 브랜드 ‘녹녹’을 운영 중이다. 최영준은 서울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피스박김,PWP, SWA 그룹 로스앤젤레스 오피스 등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14년 디자인을 통한희망적 가치와 사회적 책무 구현을 목표로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를 공동 설립했으며, 2018년 서울 오피스를 세워 국내외 다양한 조경 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 랩디에이치
  • 길음 롯데캐슬 클라시아 Gireum Lotte Castle Classya
    길음 롯데캐슬 클라시아는 노후 주택이 밀집된 길음동 일대를 19개 동, 2,029세대 규모로 재개발한 단지다. 북한산 자락에 놓인 단지는 칼바위 능선까지 이어지는 성북올레길(길음로 구간)을 비롯해 북측의 근린공원, 서측의 소공원 등 풍부한 녹지 인프라에 둘러싸여 있다. 산자락이라는 부지의 특성상 단지 내에 큰 단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단차를 활용한 특색 있는 테라스 정원을 기본 설계 개념으로 삼고, 블루 웨이브(blue wave)라는 개념을 더해 주요 동선을 따라 다양한 수경 테라스 정원을 조성했다. 길을 따라 거닐면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물소리가 하나의 큰 물결을 이루게 된다. 단차가 있는 곳에 다양한 수공간(블루테라스, 플로잉가든, 블루밍가든, 스프링스팟, 워터스크린, 생태연못, 산수첨경원)을 배치했다. 결절점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에 조성한 테마 정원(트리뷰가든, 스텝가든, 편백나무숲, 조각공원)은 공간에 독특한 특색을 부여해 넓은 오픈스페이스가 부족한 대상지에서도 다채로운 경관을 만나게 한다. 더불어 인조 잔디 산책로, 대왕참나무길, 남서를 가로지르는 현무암판석 산책로를 두어 단지를 순환하는 작은 둘레길을 조성했다. 클라시아 스케이프 주 출입구가 있는 대상지 남측은 2차선 도로와 접해있다. 도로를 건너면 백화점과 상가, 주택 단지가 펼쳐진다. 많은 사람이 오가고 단지 전체의 이미지를 좌우 하는 곳인 만큼, 화려한 문주만 설치하기보다 조경 개념을 축약해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마련했다. 소나무를 모아 심고 이를 산수첨경원과 석가산, 폭포, 암석원과 연계해 입체적 경관을 조성했다. 산의 능선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수목의 캐노피가 문주와 함께 조화로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했다. 옹벽 앞쪽으로는 수형이 곧은 소나무를 심고, 아래에는 색색의 화산석으로 물줄기가 흐르는 듯한 모습을 연출해 클라시아 스케이프를 완성했다. *환경과조경406호(2022년 2월호)수록본 일부 글조아라 롯데건설 조경팀장 사진유청오 조경 기본 설계우리엔디자인펌 조경 특화 설계제이티이엔지 시공롯데건설 조경 시공아세아종합건설 시설드림월드, 스페이스톡, 원앤티에스 위치서울시 성북구 숭인로8길 80 일원 대지 면적70,385m2 조경 면적33,947m2 완공2022. 1.
    • 우리엔디자인펌 + 제이티이엔지 + 롯데건설
  •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 Songpa Signature Lotte Castle
    송파구 거마로와 만나는 지점, 그 중심에 위치한 광장은 사람들의 발길을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로 이끈다. 광장 안쪽에서 고개를 들면 입구가 올려다 보이는데, 계단을 따라 오르는 캐스케이드가 꼭대기의 말 조형물과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싼 소나무와 어우러져 웅장한분위기를 형성해 단지의 시작을 알린다. 단지 내부의 큰 레벨 차는 캐스케이드와 같은 수직 동선으로 활용하거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곡선 보행로를 두어 경직되지 않은 숲 경관을 연출했다. 계단을 오르면 고요한 분위기의 거울연못이 나타난다. 단지 내부로 몇 발짝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역동적인 광장과는 상반된 분위기의 공간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잔잔한 수면 뒤편으로는 구름 모양의 조형석이 서있고, 거울연못 가장자리에서 바닥을 향해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물소리가 오히려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계절을 품은 길 단지를 직선으로 크게 관통하는 대로 대신 모든 공간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순환 동선을 계획했다. 동선이 형성한 틀 안에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잇는 공간으로 역할하도록 했다. 주요 동선을 따라서 송파구의 특성수이자 단지 대표 수종인 소나무를 심었다. 수고가 높고 수형이 아름다운 수목을 선별해 심어 울창한 숲이 연상되도록 했다. 소나무 아래에는 다양한 초화를 심어 계절정원을 조성했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의 다채로운 색과 모 양이 소나무길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느끼게 한다. 자연스럽게 굽은 소나무길을 따라가다 보면 단지에서 가장 높은 공간에 도달하게 된다. 단지 내부를 가로지르며 높고 낮은 대지를 잇는 이 길은 단지를 딱딱하게 구획된 공간이 아닌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단지 외곽을 따라서는 느긋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둘레길을 조성했다. 전 단지를 순환하는 형태로 계획하고, 주요 동선 및 공간과의 연결로를 두어 드나들기 쉽도록 했다. 숲길처럼 울창한 수목 아래 다층 구조의 녹지와 육생 비오톱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뻗어나가는 산책로를 거닐며 다채로운 경관과 다양한 사람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마주할 수 있다.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조경설계 서안+유일종합조경 건설 롯데건설 시공 유일종합조경(식재), 경원필드(시설물)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청우펀스테이션 휴게 시설 데오스웍스 위치 서울시 송파구 거마로 56 규모 1,945세대 대지 면적 68,332.20m2 조경 면적 31,506.57m2 완공 2021. 12. 사진 롯데건설
    • 이한결
  • 영주가흥 더리브 스위트엠 The LIV Sweet M
    경상북도 영주 가흥동은 영주종합터미널을 비롯해 다양한 업무 단지와 교육 시설이 집중된 지역이다. 가흥동 한복판을 길게 가로지르는 서천은 천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수변을 따라 조성된 다양한 수변 공간은 지역 시민들의 쉼터로 역할하고 있다. ‘영주가흥 더리브 스위트엠’은 이 풍부한 자연·문화 자원을 한데 누릴 수 있는 주거 단지다. 자연 생태 공원이자 주민들의 운동 공간, 축제 공간인 서천생활체육공원이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고, 철탄산과 석벽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서천 너머로 펼쳐진다. 더리브 스위트엠은 영주 최초 지상에 차가 없는 공원형 아파트로 더 많은 녹지와 오픈스페이스를 마련한 단지이기도 하다. 차와 부딪칠 걱정 없이 뛰놀 수 있는 외부 공간과 집 근처에서도 자연과 더불어 휴식하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 의의가 있다. 단지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문주 주변에는 소나무를 심어 입구의 상징성을 강조하고, 아이들의 안전한 통학을 돕는 어린이 정류장을 설치했다. 주동은 주상복합이라는 단지의 특성에 따라 대상지를 두르듯 ㅁ자 형태로 배치됐다. 자연스럽게 중정 형태의 오픈스페이스가 형성되는데, 높은 건물에 둘러 싸여 자칫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곳을 더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설계의 주안점이었다. *환경과조경404호(2021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기본설계 사람과나무 조경 특화설계 SGC이테크건설 조경팀, 동영조경 설계팀 조경 시공 SGC이테크건설 식재·시설물 시공 동영조경 놀이·휴게·운동 시설 토인디자인, 디피엘엔씨, 디자인파크개발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대학로 324 대지 면적 25,017.3m2 준공 2021. 9.
  • 마포새빛문화숲 1단계 Dangin-ri Park of Seoul Combined Cycle Power Plant, the 1st Phase
    첫인상: 작동하는 거대한 보일러 그리고 스팀 블로잉 2013년 가을, ‘당인리 서울복합화력발전소 공원화 설계공모’가 시작되었다. 현장을 둘러보면서 무척 낯익은 모습에 가슴이 설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 서울 마포의 유서 깊은 장소라는 특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배관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풍경이 남다르게 보였던 것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군인 시절 서울구치소에서 보일러병으로 복무할 때 보았던 거대한 보일러와 형형색색의 파이프들이 아직까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각각의 배관 설비가 저마다 기능을 수행하며 작동하는 모습은 마치 전체가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특히 보일러 배관의 이물질을 청소하는 스팀 블로잉(steam blowing)은 단연 압권이었다. 배관 안의 찌꺼기를 제거하여 거대한 보일러를 다시 새롭게 만드는 역동적인 작업이 수증기를 시원하게 내뿜었다. 마포새빛문화숲, 문화의 새빛을 밝히다 스팀 블로잉을 공원 조성의 기본 개념으로 설정함으로써 자연적·도시적·사회적 과제를 시원하게 날려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또 하나의 바람은 서울에서 한강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원이 되는 것이었다. 마포새빛문화숲의 세부적인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자연성을 회복함과 동시에 갇혔던 물을 다시 흐르게 하여 땅과 자연과 사람의 관계성을 회복한다. 문화와 예술, 새로운 생각과 사상을 담아내며, 일상과 비일상의 프로그램을 담는 비움의 공간이 되도록 한다. 당인리 발전소의 산업유산적 가치를 되새기며, 경계를 허물고 도시 맥락을 담아내어 지역민에게 일상의 삶과 생동감이 있는 장소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한다. *환경과조경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조경설계 이화원 시공 포스코건설, 에코밸리 발주 중부발전 위치 서울시 마포구 당인동 1번지 면적 118,779m2 (공원 면적 95,054m2) 완공 2021. 4. 김이식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에 조경설계 이화원을 설립한 이후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국립생태원, 북서울미술관, 대통령기록관, 당인리 서울복합화력발전소 공원화(마포새빛문화숲) 설계 등이 있다. 조경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설계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 김이식 / 조경설계 이화원
  • 남산예장공원 Namsan Yejang Park
    길, 공원, 남산자락, 서울 남산자락과 공원을 관통하는 길이 남산예장공원을 만드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구조를 이룬다. 남산은 서울의 중심이자 풍수지리적으로 안산과 주작에 해당하는 산이다. 설계의 중심이 되는 이야깃거리이지만 너무 깊게 빠져들면 자칫 명확한 공간을 만들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었다. 즉 남산은 설계에 있어 크고 명확한 단서인 동시에 공간 해석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존재였다. 남산이라는 복잡한 대상에 쉽게 접근하고자 설계 요소의 위계를 역으로 짚어보았고, 그 여정의 끝에서 ‘길’이라는 설계의 실마리를 찾았다. 길을 통해 만들어지는 남산 예장자락을 상상했다. 자락의 경관이 도시에 스며들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다지 많은 생각이 녹아 있지 않은 것 같은 초벌 드로잉이 설계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중요한 것을 더욱 중요하게, 명확한 것을 더욱 명확하게, 흐릿한 자국을 조금 더 선명하게 그렸다. 명동과 접한 남산 예장자락의 위치적 중요성과 산자락의 명확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그 속에 담긴 근현대사의 기억을 시민들이 조금 더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여러 형태의 공간을 다양한 길의 흐름에 따라 설계하고 배치했다. 샛자락 그리고 사람, 문화, 역사, 나무의 길 남산예장공원 프로젝트의 목적은 남산의 자연 경관 복원과 도시 문화 공간 연결이다. 경관을 재생하며 만드는 길의 위치적 특성, 켜켜이 싸인 숲과 산이 지나온 시간으로 완성되는 남산예장공원은 복합 기능을 갖춘 도시 녹지 공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건축 기능 공간을 지하화해 예장자락의 표피를 남산 숲자락의 확장 공간으로 만들고, 길이 있어야만 하는 곳에 원래 있던 것 같은 편안하고 친숙한 분위기의 길을 놓아 연결함으로써 활기를 불어넣었다. 내부화된 기능 공간과 남산 숲자락의 확장은 ‘샛자락’(『환경과조경』 2016년 4월호 참조)이라는 자락 경관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복합화해야 하는 장소를 해석하는 데 명쾌한 해답이 되었다. 디자인 철학과 장소의 기억에 편중된 방향으로 전개되는 설계를 지양했다. 명동과 남산, 관광객과 케이블카, 아픈 역사와 남산2청사, 남산 위의 소나무, 문화거리 등 복잡한 요소가 얽힌 예장자락에 네 개의 길을 스며들게 함으로써 이 장소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고자 했다. 남산예장공원은 퇴계로와 접한 들머리 진입 광장과 예장숲을 기점으로 시작돼 남산을 향하는 나무의 길과 사람의 길을 통해 이어지고, 소파로와 접한 문화의 길은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와 연결되며, 남산2청사가 있던 공간은 역사의 길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예장자락이 근현대사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해 나무의 길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길로, 사람의 길은 사람숲으로 조정되었다. 역사의 길로 조성될 계획이었던 남산2청사 부지에서는 공사 중 조선총독부 관사 유구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개방형 유구 보존의 방식으로 남겨 ‘기념6’이라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지하에는 남산과 명동 방문자를 위한 버스전용주차장과 서울시가 추진하여 개관한 이회영 기념관, 실내 문화 공간인 예장마당이 마련되었다. *환경과조경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조경설계호원 건축 설계 시아플랜 조경 시공 안산조경건설 위치 서울시 중구 퇴계로26길 36 일대 면적 22,832.62m2 완공 2021. 6. 조경설계호원은 유형의 물적 공간을 구현해 삶의 다양한 변화를 추구한다.디자인의 창의적 사고와 공간 구현의 기술적 사고를 중시하며,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의 이미지 연출을 위해 조경이 행하는 모든 영역의 조력자로서 디자인 행위를 추구한다.
    • 김호윤 / 조경설계호원
  • 대치 르엘 Daechi LE|EL
    대치 르엘은 대치유수지체육공원을 비롯해 양재천, 탄천, 한강으로 이어지는 수변 녹지 공간과 가까워 일상 속에서 풍부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단지다. 특히 양재천에서 뻗어 나온 수변 녹지를 단지 내부로 연결하고자 했다. 곳곳에 수경 시설을 배치해 언제나 수변 공원에 온 듯한 청량감을 느끼게 하고, 다양한 규모의 휴게시설을 연계해 쾌적함을 더했다. 설계를 시공으로 구현하며 가장 고민한 부분은 건물과 조경 공간의 조화였다. 6개동 중 4개동이 7층 이하인 저층 주거 단지이기 때문에 고층 주동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단지와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다. 건물과의 조화를 고려해 대형목보다는 수형을 조형적으로 다듬은 수목을 선별해 식재하고, 특정한 공간에 힘을 주기보다는 단지의 전 공간이 고루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동일 수종의 교목을 군식하기보다 다양한 수종을 공간의 분위기에 맞춰 배치하고, 하부 식재를 정형화해 정돈 된 이미지를 연출했다. 물소리가 흐르는 단지 청량한 물소리가 문주에서부터 사람들을 반긴다. 부드러운 곡선과 직선을 조합해 설계한 문주 한가운데 워터 커튼 형식의 수경 시설을 설치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도심 속 주거 공간에 드나들며 물소리를 듣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문주를 지나면 일렁이는 물결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캐스케이드가 나타난다. 캐스케이드와 연계된 녹지에 다채로운 초화를 심고 학 조형물을 설치해 동양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여울폭포를 완성했다. 이외에도 대형 티하우스와 결합된 폰드, 석가산과 연못으로 구성된 물의 뜰 등 다양한 수경 공간이 생활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배치 했다. *환경과조경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라모디자인그룹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시공 아세아종합건설 시설물 스페이스톡, 원앤티에스 위치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77 일원 규모 273세대 대지 면적 12,456.3m2 조경 면적 3,900.04m2 완공 2021. 9.
    • 김승태 / 라모디자인그룹, 롯데건설
  • 서울공예박물관 Seoul Museum of Craft Art
    구법의 기술 처음 방문한 풍문여고의 흙 운동장에 반해서,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무조건 프로젝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지금의 폐쇄적인 담장만 허물 수 있다면, 도시의 인상적인 오픈스페이스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공공 공간을 설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프로젝트 초청 당시 서울공예박물관장이 오피스박김에게 보여준 신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자문과 심의 그리고 동료의 불평 불만 속에서 초기안은 당연히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그동안 만들고 구현한 ‘박김사례’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었고, 그 안에 담겨진 구법의 기술은 수많은 사변을 넘어서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구법의 진화 형태나 형상이 아닌 과거의 물성―풍문여고의 흙 운동장, 안동별궁 터의 지형 언덕―을 구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를 위해 재료 실험을 했고 수차례에 걸친 목업시공을 통해 배수가 잘되며 하이힐을 신고도 편히 다닐 수 있는 흙 포장을 구현할 수 있었다. 관행적인 흙포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 새로운 흙 포장은 야구장에서 착안한 것으로, 마사토와 섞였을 때 점성이 생겨부드럽지만 단단한 경도를 갖는다. 수직으로 단절된 축대 위에 놓인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완만한 지형 언덕을 구상했다. 이미 사라진 안동별궁의 지형을 재현하되 오피스박김만의 진화된 방식으로 제안했다. 선형의 콘크리트는 지형의 높이와 함께 경관에 변화를 만들어내며, 지형의 미세한 차이를 더욱 드러낸다. 우리는 이 선형의 콘크리트를 ‘지형틀’이라고 불렀다. *환경과조경402호(2021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및 시공 감리 오피스박김(박윤진, 김정윤) 시공 아이엠유건설(김충호) 발주 서울공예박물관 위치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3길 4 면적12,830m2 준공2021 사진 김종오 오피스박김(PARKKIM)은 2004년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박윤진, 김정윤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다. 2006년 서울로 이전했고, 2018년 김정윤 대표의 하버드 GSD 교수 임용을 계기로 보스턴 지사를 개소했다.
    • 박윤진, 김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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