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PREV 2016 Year NEXT           PREV 06 June NEXT

환경과조경 2016년 6월

정보
출간일 2016. 6.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CODA]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한참을 망설였다. 분홍빛이 살짝 도는 여린 꽃잎이 마치 겹겹이 두른 여인의 농염한 치맛자락처럼 화려한 작약과, 한 달쯤 물을 안 주어도 끄떡없이 늘 푸르름을 선사할 스투키 사이에서 한동안 움직이기 힘들었다. 결국 스투키 화분을 옆구리에 끼고서 아쉬운 발걸음을 L의 사무실로 향했다. 실용주의자인 L은 “꽃은 금방 시들 잖아”하며 스투키를 반겨주었다. L은 공동으로 쓰던 사무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개인 사무실을 열게 되었다. 한동안 집 서재를 사무실로 꾸밀 것인지 고민하다가 얼마 전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닥치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며 고객 유치를 위한 궁리로 부산한 눈치였다. 특히 새로 마련한 공간이 비좁다며 엄살을 떨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가구 배치계획을 들려주곤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자기 자리를 찾아간 화분을 보니 지난달 창업 특집(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위해 찾았던 강연주 소장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사실 번듯한 사무실 공간을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직원을 뽑은 것은 회사를 만들고 1년쯤 지났을 때다. 당시 자리를 빌려 쓰던 사무실에서 나오게 되면서 신혼집 거실에 책상을 놓고 직원들 한두 명을 불렀다.” 강 소장의 마지막 말은 나를 순식간에 30년 전으로 데려갔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이사 후 갓 생긴 내 방이 다시 없어지고 동생과 한 방을 쓰게 된 것이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느 날 얼굴이 하얀 아저씨가 “오늘부터 매일 올 거야”라고 말하던 장면이다. 그리고 집에서 넘쳐나는 청사진 뒷면에 그림을 그리던 기억, 버스 타는 법을 교육시킨다며 청사진 굽는 가게에 혼자 보냈던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지 못해 울면서 돌아왔던 장면들이 끊어진 필름을 이어붙인 듯 재생되었다. 아버지가 창업했을 때가 당신 나이 40일 때였다. 당시 어렸던 나는 집에서 설계사무소를 시작했던 아버지가 이상하게 느껴졌고 그런 인상은 그대로 내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번듯한 사무실을 열었고 그 후로 오랫동안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러한 부침 가운데서도 ‘설계’를 고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것을 대물림하려는 바람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사업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차분한 목소리로 창업 당시를 설명하는 강 소장을 바라보며 기억의 빗장이 풀리고 지금 내 나이가 30년 전의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업 전선에 뛰어든 이래로 나에게 창업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 주변의 가까운 선후배들이 사무실을 열거나 창업 계획을 세우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소심한 월급쟁이인 나는 지인들이 새로 오픈하는 사무실을 보면, ‘저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일을 얼마나 해야 할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혹은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 당당하게 뛰어드는 (혹은 떠밀려가든) 그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심리 상담을 업으로 하는 L은 이런 나의 넋두리를 듣더니 엷은 미소를 지었다. “용기의 임계점은 변화의 시작이야. 용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기 싫다는 거고. 대신 남이 변하길 바라지.” “망설인다는 것은 회피인 거로군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또 피하다보면 고여서 썩게 마련이지.” “흔히 ‘창업한다’를 ‘독립한다’고 표현하잖아요.” “그래, 독립은 새로운 시작이지.” “지난 달 칼럼에서 김정윤 소장이 ‘사무소에서 일하되 소장처럼 일하면 된다. 그렇게 주인처럼 설계하다 보면 자연히 어떤 위치에 있던 소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한 말도 창업만큼 주도적인 삶을 말하는 듯해서 인상적이었어요.” “그 집단에서 자아가 독립했다는 의미지.”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요(웃음)” “음. 용기를 낼 때 말이야. 접어야 할 것과 접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아는 게 아닐까?” “어렵네. 그런데 용기인줄 알았는데 객기일 수도 있잖아요.” “용기는 미래를 예측하는 거고, 객기는 예측을 하지 않는 거지. 용기가 낙천이라면 객기는 낙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전체로 볼 때와 하나의 점으로 볼 때의 차이가 있어. 전체로 받아들이면 용기가 없어지지만 멀리서 점으로 보면 용기가 생겨. 지금의 실수도 멀리 보면 과정이거든. 점들이 모여 삶이 되는 거니까, 멀리서 보면 용기를 못 낼 이유가 없어. 근데 말이야, 저 화분은 창가에 놓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아” 그날 우리는 옥상 달빛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수다를 떨었다. L은 주변 아파트 단지의 불빛을 가리키며, 주민들을 모두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들려주었다. 30년 전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래를 낙관했을까, 혹은 변화가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두렵지만 용기를 냈던 걸까? 이번 달 칼럼이나 오피니언 란에 도착한 독자편지를 보면 지난 창업 특집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창업을 앞둔 이들 뿐만 아니라 학생과 직장인들, 그리고 오래 전 창업했던 선배들까지.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변화를 도모해야 할 순간이 언제인지 고민하고 시작을 망설인다.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나를 포함해 용기 있는 독립을 꿈꾸는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편집자의 서재]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때 이른 더위가 서울을 덮쳤다. 지난주에는 32도를 웃도는 날씨에 올해 첫 폭염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굳이 최고 기온을 확인하지 않아도, 출퇴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의 가벼워진 옷차림과 태양의 열기에 익어 말랑말랑해진 아스팔트 도로가 여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낮도 길어졌다. 퇴근 후,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해 역사를 빠져나갈 때면 어두웠던 하늘이 전보다 밝아졌다.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오기 전의 초여름 밤은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점점 마음이 급해진다. 낮이 길어져 밤이 짧아진 데다가 열대야가 찾아오면 사라져 버릴 이맘때의 여름밤이 문득 아까워지는 것이다. 요즘엔 땀이 나도 집으로향하는 계단을 뛰어서 오를 때가 많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한여름 밤—일 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의 전날밤—에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고 셰익스피어는 이에 착안해 『한여름 밤의 꿈』1을 썼다. “깊은 밤 아름다운 그 시간은 이렇게 찾아와 마음을 물들이고 영원한 여름밤의 꿈을 기억하고 있어요. 다시 아침이 와도 잊히지 않도록”2이라고 여름밤을 몽환적으로 묘사한 김현식의 노래가 수차례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름밤에 진행되는 각종 행사의 홍보 문구에 ‘환상’이라는 단어가 곧 잘 쓰이는 걸 보면, 꽤 많은 사람이 여름밤에 신비로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의 주인공인 요아킴도 여름밤의 기이함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요아킴의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가 출산이 임박해 아버지와 함께 집을 비운 사이 믿을 수 없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곧 태어날 동생에 대해 생각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던 요아킴은 어둠을 쏜살같이 가로지르는 별똥별하나를 발견한다. 뒤이어 정원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정원의 사과나무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외계인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삽화에 표현된 외계인 ‘미카’의 외양은 영화 ‘이티E.T.’의 외계인과는 조금 다르다. 머리카락이 없고 머리가 몸보다 상대적으로 크지만, 팔다리의 길이나 눈, 코, 입의 형태와 위치 등이 사람과 상당히 비슷하다. 무엇보다 미카에게는 손가락 끝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없다. 대신 미카는 유창하게 지구의 말(정확히는 노르웨이어)을 구사할 줄 안다. 미카는 자신을 보고 혼란에 빠진 요아킴에게 태연하게 묻는다. “너는 누구니?”3 책의 저자인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는 철학 입문 소설로 불리는 『소피의 세계』의 작가다. 『소피의 세계』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냈던 그의 능력은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그는 주인공 요아킴과 외계인 미카의 대화를 통해 우주의 탄생과 인간의 역사, 삶의 가치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심오한 물음의 답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 초반의 미카와 요아킴의 대화는 독자에게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어줄 것을 은근히 요구한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미카는 요아킴에게 왜 물구나무를 서있냐고 묻는다. 요아킴은 황당해하며 미카를 땅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미카는 자신이 거꾸로 요아킴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어 미카는 달에 갈 때 위쪽으로 여행하는지, 아래쪽으로 여행하는지 묻고 요아킴은 자신 있게 위쪽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넌 달에 내릴때 달 표면으로 날아와 앉잖아”, “그리고 네가 그 곳에 가 있을 때는 이 지구를 올려다보잖니”, “그럼 이 별과 달의 중간 어딘가에는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되는 데가 있겠네”4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미카의 질문에 요아킴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게 맞다고 답한다. 단순히 보자면 ‘중력’이라는 과학적 개념을 깨닫게 하는 대화지만,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과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사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 둘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져 ‘진화론’에 다다른다. “그렇지만 우린 다른 별에서 왔는데 이처럼 닮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니”5라는 대목에서 미카의 생김새가 사람과 비슷하게 설정된 이유를 깨닫게 된다. 둘은 눈과 코, 입, 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아가 온 우주의 생명체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비록 산 꼭대기로 오르는 길은 많을지 모르지만 산은 하나야. 우리가 많이 닮은 이유는 우리 각자가 산을 오르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야. 우린 그 곳에서, 그 산 꼭대기에서 함께 커다란 기념비를 세울지도 몰라”6 요아킴의 부모님이 요아킴의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미카는 한여름 밤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자는 동안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단다”7는 요아킴의 말처럼 그날 밤의 일이 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책을 통해 요아킴과 미카를 만났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벌써 6월이다. 1년의 반이 흘렀고 자연스레 지난 반년을 뒤돌아보게 된다. 알찬 시간을 보낸 이에게는 즐거운 일일지 모르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을 평범하다고 느끼며 자신이 아무 쓸모 없는 존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에게 힘이 될 만한 미카의 말을 전한다. “그냥 돌멩이라고? 이 세상에 있는 건 아무것도 평범하지 않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 그 커다란 수수께끼의 일부분이니까. 너와 나도 마찬가지야. 우린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수수께끼야.
버려진 목욕탕에서 예술로 목욕하기
버려진 목욕탕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5월 15일,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행화탕에서 ‘행화탕프로젝트’ 개관식이 열렸다. 축제행성이 주최하고 61311 기획단이 주관한 이 행사는 아현동 일대와 더불어 행화탕이 재개발될 때까지, 2년간 진행될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기획단의 명칭인 ‘61311’은 행화탕의 지번 주소에서 따왔으며 ‘행화탕’이라는 건물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 지역의 기억과 문화를 유지하고자 했다. 61311 기획단은 문화, 예술, 공간, 건축, 대중음악, 커뮤니티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 기획가인 권효진(문화·공연 기획가), 김반야(대중음악 평론가, 방송 작가), 김보경(독립 문화 기획가), 박경린(독립 큐레이터), 서상혁(축제 기획가), 양은혜(마실와이드 문화부 에디터), 이아림(매거진 및 사보 에디터), 이원형(건축가, 워니스튜디오(wonystudio) 대표), 임경민(전시 기획·운영가), 주왕택(테크니컬 슈퍼바이저, 제이투커뮤니케이션 대표)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들은 공연, 시각 예술 분야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예술 기금에 의존해 신작을 발표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대안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또한 ‘행화탕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행화탕을 지역 커뮤니티 활동과 예술프로그램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낡은 목욕탕의 재발견 1976년에 지어진 행화탕은 아현동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오던 목욕탕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찜질방과 고급 스파 시설이 증가해 행화탕을 찾던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1년 아현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5년여간 비어 있던 공간에 올해 초부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축제·공연 기획사인 축제행성이 행화탕을 임차해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한 것이다. 축제행성은 다양한 예술 작품과 프로그램을 선보일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낡고 어둑한 분위기의 행화탕은 예술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기에 적합한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2월부터 본격적인 공간 보수 작업이 기획 단원인 이원형 건축가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 61311의 다른 단원들도 틈틈이 행화탕에 방문해 공사와 청소에 참여했다. 폐관될 때, 욕조와 목욕 시설이 모두 정리되어서 행화탕이 과거에 목욕탕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았다. 벽과 바닥에 남은 공간 분할의 흔적을 이용해 기존 목욕탕의 구조를 최대한 되살리고 천장을 제거하여 서까래를 노출시켰다. 이어 물청소, 전기 배선 설치, 지붕 방수, 화장실 보수, 화단 정리 등 대대적인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탈의실, 목욕탕, 사우나실 등 10개의 다채로운 공간이 조성되었다. 행화탕은 문이 많아 전시되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입구를 변경할 수 있으며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같이 새로 태어난 행화탕은 다양한 전시와 공연, 워크숍, 교육 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대관료가 저렴해 창작자들에게 열린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목욕탕을 가득 채운 문화·예술 프로그램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약 200여 명이 행화탕의 개관식에 참여했다. 특히 과거 행화탕을 이용했던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아와 그 의미가 컸다. 개관식에는 행화탕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공연프로그램인 상상 발전소의 ‘수중인간’,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의 ‘도시소리동굴프로젝트’, 모다트의 ‘전봉준’, 서울괴담의 ‘마술극장’이 진행됐다. 또한, 개관 초청 전시 작품으로 이원형의 ‘몸의 정원’, 구수현의 ‘The Ferris Wheel페리스 휠’, 신용구의 ‘꿈의 조각들을 모으다’가 설치되었다.상상발전소의 공연 ‘수중인간’은 뱃사람을 유혹하던 사이렌의 모습을 현대 융복합 콘텐츠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탈의실에 길쭉한 원통형 수조를 설치하여 수중 퍼포먼스를 펼쳤다. 목욕탕에 설치된 전시 작품 이원형의 ‘몸의 정원’은 공간의 용도와 동선의 재구성을 통해 버려진 행화탕을 ‘예술로 목욕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바닥을 채운 검은 물과 한쪽 벽면에서 잔잔히 쏟아져 내리는 물, 하얀 징검다리, 전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통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작품을 감상하기위해서는 행화탕의 뒷문인 보일러실의 작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어둡고 좁은 보일러실은 넓고 밝은 목욕탕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목욕탕 바닥의 물과 물이 빚어내는 소리는 잠들어 있던 몸의 감각을 깨우고, 하얀 징검다리 위를 건너는 관객들의 움직임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작가는 목욕탕에서 몸을 씻겨 주었던 물이 이제 마음을 씻어 주고, 물소리와 말이 뒤섞여 울리는 소리는 음악이 되어 관객이 행화탕을 ‘몸의 정원’으로 느끼기를 바랐다. 창고에 설치된 신용구의 전시 작품 ‘꿈의 조각들을 모으다’는 한지로 만든 꽃을 통해 밝음과 어둠, 삶의 순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늘색 계단, 슬레이트 지붕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꽃이 가진 상징성을 이용해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중 ‘몸의 정원’, ‘The Ferris Wheel’과 공간투어, 기획단 소개 및 행화탕 옛모습 소개 상영 프로그램은 5월 28일까지 전시 및 진행되었다. 이후 ‘몸의 정원’은 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수중인간’, 수중 사진작가의 사진 전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물의 풍경(가제)’이라는 융복합 작품으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물의 풍경’ 전시는 6월 1일부터 12일까지로 계획되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추후 행화탕 페이스북(www.facebook.com/haenghwatang)에서 확인할 수 있다.
DDP에 누워 백두대간을 노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문을 연 지 만 2년이 지났다. 개관 이후 매번 흥미로운 전시를 올리고 있지만, DDP 특유의 비정형 공간을 ‘활용’하여 작품의 의미를 더하는 전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축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말이 무색하게도 전시를 통해 DDP의 흥미로운 공간성과 소통하며 의미를 끌어내는 노력이 열매 맺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DDP 공간과 소통하는 전시’가 비로소 무대에 올랐다. 바로 지난 4월 2일부터 5월 29일까지 진행된 ‘백두대간 와유臥遊’ 전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전시는 작품, 내러티브, 그리고 건축의 힘이 한데 맞물려 시각, 촉각, 체험, 그리고 공간성이 시너지 효과를 자아내며 관람객을 백두대간 안으로 이끌고 있다. 와유, 누워 노닐다 ‘백두대간 와유’ 전은 문봉선 작가의 수묵 산수화 ‘강산여화’(2014),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의 ‘자리’(2014), 산악사진가 10명의 백두대간 실경 사진, 그리고 동선의 곳곳을 꾸미고 있는 백두대간 자생 동식물 일러스트와 문학, 역사, 철학 자료 30점 등이 상호 작용을 통해 풍부한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의 메인 작품인 문봉선의 ‘강산여화’는 산과 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우리 강산의 담담한 모습에장대한 서사시와 같은 격格을 부여한다. 하지훈의 작품‘자리’에 누워 이 강산여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가 꾸며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와유臥遊(누워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다. 와유란 중국 송나라 화가인 종병이 산천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다 나이가 들어 나가지 못하자 집 안에 그림을 걸어놓은 채로 누워 감상했다는 데에서 유래한 감상법이다. 사실 이 감상법의 진면목은 직접 체험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난다. ‘자리’에 기대 누워 ‘강산여화’를 올려보면 고고한 높은 산봉우리를 마주하는 듯하고, 귓가에 시원한 계곡 바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디자인 둘레길을 따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백두대간은 발걸음을 멈추고 편안하게 누워 감상할 때 그 속내를 조금씩 풀어낸다. 수묵 수풀 사이로 점차 사람이 보이고, 그늘을 내어주는 짙은 녹음이 보이고, 드문드문 자동차와 비닐하우스, 철도 길처럼 화폭에 현재성을 부여하는 작은 요소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강산여화’와 ‘자리’가 표현하는 공간은 오래된 과거가 아닌, 느긋한 완행열차를 타고 갈 때 창밖으로 보일 법한 실제의 공간이다. 푸른 녹음에 둘러싸인 폭포수 앞에 술잔을 놓고 바위언덕에 걸터앉아 강산을 사유하는 신선의 모습은 우리가 잘 아는 동양 산수화의 한 모습이다. 신선을 바라보는 이는 그 모습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화폭의 산수를 ‘체험’한다. 이처럼 화폭이라는 매개를 통해 재현되는 것은 강산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다. 따라서 동양 산수화의 산수는 화폭 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차원에 실재한다. 어릴 적 읽던 무협지에 나오는, 산수화를 통해 이 산 저 산으로 노니는 고승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비록 높은 도력이 없더라도 시원한 ‘자리’에 의지해 ‘강산여화’ 속 두타산 너머 해돋이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환유 공간과 수묵화의 만남 ‘강산여화’의 백미는 무엇보다 작품의 스케일 그 자체다. 폭 1m, 길이 150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수묵 산수화가 한눈에 관람객의 시선을 앗아간다. 둥그렇게 꺾어지는 벽을 따라 전시된 작품은 나선형 비탈을 걸어 올라갈수록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마치 산길을 걸어 오를수록 지평선으로부터 새로운 경관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비록 실내라도 꾸준히 비탈을 오르며 산수를 감상하니 그 기분만은 덕유산, 지리산을 오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강산여화’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데는 공간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서로 주고받으며 동선을 따라 오가는 DDP 안팎의 공간을 거닐고 있으면 거대한 클라인의 병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 열린공간들이 상생하는 것을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환유의풍경metonymic landscape이라 표현한 바 있다. DDP내부 전시 공간도 외부의 비정형 곡선에서 생겨난 경관 요소를 그대로 이어받아 둥근 원기둥, 경사면, 타원형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전시 공간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비정형 공간이 미술 작품의 전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근대 미술에 있어 하얀색 직사각형 공간, 또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가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뉴욕에서 ‘발명’된 근대 공간의 일환으로서 현재까지도 ‘갤러리’ 공간은 보편적으로 하얀 벽, 높은 천장, 그리고 무채색의 바닥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유행처럼 전 세계로 번졌던 이 양식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와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공간의 단조로운 형태가 미술 작품의 한계로 작용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거슬러 올라가자면,미국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설계로 건축되어 1959년 문을 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역시 이 화이트 큐브 현상의 문제에 부딪혔다. 작은 추상 작품을 걸 목적으로 원기둥 형태의 곡면을 가지게 된 이 미술관은 이후 여러 근대 작품―크고, 무겁고, 입체적이며, 벽에 거는 형태의―의 전시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이트 큐브를 전시 공간으로 상정하여 제작된 작품이 화이트 큐브가 아닌 공간에 전시될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술계에서 화이트 큐브의 영향은 아직도 가시지 않아 비정형 공간 내 회화 전시는 아직도 여러 문제를 동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DDP와 같이 현대적, 또는 미래적 공간에 흔히 ‘오랜 전통’과 함께 연상되는 수묵 산수화를 전시하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점은 선입견을 깨부수는 놀라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낮은 비탈을 오를수록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의 추상 지형역시 공간 내러티브의 깊이를 더해준다. 흑백의 강조가 공간을 순간적으로 단순하게 보이게 할지 몰라도, 그안에서 벌어지는 내러티브는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산수 안 공간 초월transcendence “산과 산, 골과 골의 연결은 높고, 낮고, 깊고, 얇고, 가깝고, 멀고, 비우고, 채우고, 모이고, 흩어지고,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시점이나 원근은 ‘삼원법’을 버무려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안되면 처음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수없이 떠올리며 이 시대의 참된 ‘전통회화의 가치는 무엇’이고 그 방법은 없는가? 나는 수없이 되새기며 풀 한 포기, 소나무 한 그루, 계곡 그대로 그 답을 찾고자 이 산 저 산을 헤매었다.” _ 문봉선, ‘백두대간에 부는 바람’ 중 ‘강산여화’의 산수는 여러 방향, 위치, 시각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화폭 안에서 여러 켜가 겹쳐 있는 형태로 나타나며, 이들을 따라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장소로 빨려 들어가 있는 듯하다. 예로부터 동양의 산수화는 서양의 소실점과 다른 삼원법三遠法을 사용한다. 중국 북송 시대 화가이자 동양 산수화론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화론가인 곽희는 화폭을 통해 산을 바라보는 시점에는 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의 뒷면을 넘겨보는 심원深遠, 그리고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平遠이 있다고 했다. 문봉선은 이 세 시점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관람객을 숲 안에 데려다 놓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로 옮겨 놓기도 하고, 또는 넓은 평원에서 날아가는 새와 구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폭을 통해 모든 공간이 열리며 겹침과 확장을 반복한다. ‘강산여화’에 화답하듯 소설가 김훈이 쓴 글‘강산여율’은 삼원법을 통해 나타나는 산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본다는 것은 활로 표적을 겨누는 자의 시선이 아니다. 대상이 위치한 환경 전체를 자신의 시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전체 속에서 가파른 봉우리들이 나무와 바위의 개별성을 포용하고, 아무 발길도 닿지 않는 산비탈에서 구부러진 생애를 보내고 있는 나무 한 그루도고유한 존재감으로 당당하다. 이 겹눈의 시선이 산과 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구도를 연결해가면서 화폭을 강물로 흐르게 한다.” 필자가 전시장에 방문한 날은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하지훈 작가의 ‘자리’에 누워 ‘강산여화’에 펼쳐진 산수를 지켜보니 짙은 안개를 지나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지리산의 산기슭, 법적 ‘어른’이 되어 처음 가본 겨울의 속리산 자락, 말로만 듣던거창의 고송 모습이 떠올랐다. 문봉선의 거친 초묵법이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자리’에 앉아 와유하던 중에는 내가 산수의 장소로 옮겨졌고, 또 일어나 걷다 보면 산수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고요한 새벽 숲 속의 명상과 같은 행위에서 내 신체는 정신과 산수가 오고 가는 매개가 되어 굳은 땅 위에 자릴 지키는 고목과도 같다 느껴졌다. 시공간 여행이 이런 기분일까? ‘백두대간 와유’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의 겹침은 전시를 풍부하게 만들고 경험과 체험을 압축하며 우리의 공감각을 불러일으킨다.백두대간은 부분적으로나, 전체로나 우리나라 정서와 가장 맞닿아 있는 기억의 공간이자 살아가는 장소다. 백두대간의 실경 사진과 글, ‘강산여화’의 끊어질 듯 끊이지 않는 산자락과 높이 뻗은 산봉우리, 이 모든 것을 감상하기 위한 ‘자리’, 그리고 미소를 자아내는 동식물 일러스트레이션. 전시장과 산수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북한에 위치한 두류산 산맥의 빈자리에 닿는다. 텅 빈화폭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이 땅의 경관이 너무나도 많음을 한탄하게 한다. 푸른 천지의 모습과 문봉선 작가의 마지막 글귀가 진하게 울리며, 대지의 경관이 정치,사회적 경계와 별개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백두대간의 감성이 깃든 다양한 작품들과 건축물의 독특함이 만들어낸 ‘백두대간 와유’는 공간과 예술의 독특한 만남을 통해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들었다.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기분 좋은 궁금증을 남겨주고 있다. 앞으로도 DDP의 독특한 공간성이 전시의 내용에 유의미하게 활용되는 신선한 전시 기획이 계속해서 나올 수있을 것인가? 이번 전시를 통해 체감한 전시 공간으로서의 DDP의 가능성과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하고 있는 예술계에 기대를 걸어본다. 신명진은 뉴욕 대학교(NYU)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논문을 쓰던 중 공간과 경관에 마음을 빼앗겨 조경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현재는 석사 졸업 후 몸담았던 회사 생활을 뒤로 하고 학업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생태조경학과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바쁜 학기 중에도 좋은 전시 소식이 들릴 때면 종종학교 캠퍼스를 탈출하고 있다.
아시아 도시로부터 배우기
지난 5월 6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은 ‘라이브러리 스터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아시아의 근현대 건축’이라는 타이틀을 단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또한, ACC ‘라이브러리파크 프 로그램’으로 아시아의 주요도시 및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성과물과 수집 자료를 ‘아시아의 근현대 건축’ 주제관에서 전시하고 있다.이는 국제 심포지엄과 더불어 아시아 특유의 도시 공간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창조적 생산: 아시아의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 사이의 생산적 가능성’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서울, 뭄바이, 싱가포르, 상하이, 하노이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다섯 개 도시를 사례로 삼아 아시아 근현대 도시 건축의 형태와 각 도시의 특수성에 대한 논의가 펼쳐졌다.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 사이의 창조적 생산 가능성 심포지엄을 총괄한 서예례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는 “이번 심포지엄은 아시아 근현대 건축 담론에 대한 결론이라기보다는 실험적 질문을 생산하는 시간”이라며 서막을 열었다. 심포지엄의 큰 주제인 ‘형식적-비형식적’이라는 개념은 반反 도시 대 도시 찬양, 계획 대 무계획, 일시적 개발 대 단계적 개발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서 교수는 “도시의 형식과 비형식에 대한 담론들이 서구에서는 계속 존재했지만, 아시아 도시에서는 이런 담론들에 대한 교류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형식과 비형식에 대한 담론의 부재 속에서 아시아 도시들은 거대하고 획일적인 ‘형식적’ 도시계획을 빠르게 경험했고, 그 이면에는 ‘비형식적 공간’이 계속 존재했다. 그는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급속하게 개발된 ‘형식적 도시’ 공간 속에서 ‘비형식적 삶’을 살아가는 아시아 도시민들의 삶을 “잡종 메커니즘”이라 칭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 교수는 “형식-비형식의 문맥에서 아시아의 도시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고 이제는 유연한 방식의 도시계획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아시아의 도시들은 서구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활동력, 자생성, 생산성을 보여주는 독특한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싱가포르, 고층 주거와 새로운 버내큘러의 영역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1000개의 싱가포르’의 기획과 디자인을 맡았던 플로리안 셰츠Florian Schätz 교수(국립 싱가포르 대학교 건축학과)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작지만 영향력 있는 도시 국가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압축도시 모델을 돌아보고 이에 관한 통찰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인구수에 비해 국가 면적이 좁기 때문에 건물이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압축 도시모델’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 싱가포르 모델은 효과적인 어반 테크닉urban technique과 적절한 테스트를 마친 전략의 혼합체로 타 도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 주도의 도시계획을 통해 고층 빌딩이 지속적으로 지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도시만의 버내큘러vernacular 공간을 유지한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수직적 녹지 시스템vertical greening system은 “싱가포르의 기후 및 자연 환경과 많은 부분 맞닿아 있는, 싱가포르의 버내큘러를 재해석한 건축 방식이다.” 끝으로 셰츠 교수는 “인구는 점점 증가한다.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가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많은 도시들에게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뭄바이, 교환적 공간과 삶의 도시 교류 용적transactional capacity은 몸, 상품, 생각, 금전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용적을 의미한다. 이 흐름이 강할수록 용적도 커진다. 루팔리 굽테Rupali Gupte 교수(뭄바이 환경·건축대학교)는 교류 공간transactional space과 교류 사물transactional object은 “살아있는 도시의 본질을 만드는 데 중요한 몫을 한다”고 주장했다.뭄바이의 주거 유형 중 하나인 차울chawl은 그가 제시한 전형적인 뭄바이의 교류 공간이다. 긴 복도를 따라 방 하나 또는 두 개짜리의 작은 집들이 늘어선 아파트형태의 공간으로 지상층과 그 위의 두 개 층으로 이루어진 주택에는 약 70~100세대가 거주할 수 있다. 차울의 형태는 개개인의 경계를 흐리고, 주택이나 상점으로 사용되는 밀집된 포켓으로 이루어져 있어 연속적인 도시 공간을 창출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의 교류가 확장되고 독특한 도시성을 만들어내는 힘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뭄바이의 부동산 공급 가격 상승과 함께 개발 회사들은 새로운 부동산 개발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였다. 당시 대다수의 차울은 낡은 상태였고 이는 공격적인 개발 회사가 새로운 부동산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정부는 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슬럼 없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개혁 정책이 마련되었다. 뭄바이의 차울과 슬럼가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삶도 변하기 시작했다. 굽테교수는 “아파트 단지 경계 지역의 보안이 강화되었고 경계 흐리기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으며, 생활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던 공동 복도의 부재는 공동체의 소멸을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아시아 도시들에서실행될 도시재생의 방식들이 뭄바이의 경우를 교훈으로 삼기를 바란다.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인 개발 방식을 택하기를 권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서울, 전통 도시 조직과 귀금속 산업의 공간적 적응 유형 1970년대의 도시 재건으로 인해 남아 있던 도시의 조직들은 삭제되거나 파괴됐고 근대적인 대형 사무용 건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대지의 용도가 주거에서 산업으로 변경되면서 기존의 도시 조직이 유지되는 지역도 있는데, 종로3가가 그러하다. 양승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는 종로3가의 귀금속 세공 작업장을 사례로 기존의 도시 조직에 구축된 주거 지역이 어떻게 그 조직에 적응하는지 설명했다. 귀금속 세공 작업장은 기존의 조직에 적응하면서 순환적 유형, 손가락 유형, 집합 유형으로 유형화됐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이 형태는 대지 사용, 건물, 구획, 거리 등 도시의 형태 요소가 지니는 견고함의 차이로 구분되는데, 이전 시대에 자리 잡은 대다수의 지역에서는기존의 도시망을 대체하는 것보다 기존 토대에 새롭게 적응하는 방식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종로3가 귀금속 세공 작업장의 적응 방식을 통해 “서울중심업무지구 도시계획의 혁신적 프로세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고, 이를 통해 도시설계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하노이, 프엉坊 조직의 지속과 변동-식민지적 경험과 근대의 도시 건축 우동선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는 식민지 시대에 하노이의 건축과 도시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살폈다. 이 발표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식민성’과 ‘근대성’으로 서구 근대 문명의 이식과 식민지 경험이 하노이의 건축과 도시 변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가 핵심이다. 우리나라처럼 베트남 또한 서구의 식민지가 되면서 근대 건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는데, 식민지 지배층은 ‘치환’과 ‘매립’을 통해 하노이에 자신들의 시설을 확보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하노이의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도시의 중요한 터라는 상징성만큼은 계속해서 유지했다. 상하이, 창조 산업의 새로운 도시 모듈로서 로프트 상하이는 현재 중국에서 창조도시 담론이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 한지은 교수(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창조도시 상하이’ 건설의 핵심은 “상하이 창의산업구의 3분의 2 이상이 옛 공장이나 창고 등 유휴 산업 시설을 개조해 형성됐다”는 점이다. 즉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 로프트loft의 활용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로프트는 뉴욕의 소호SoHo와 같은 패션과 유행의 상징이며, 자원을 절약하고 도시의 역사를 보존하는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 개념으로 환영받는다. 상하이의 창의산업구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임대료 상승, 높은 공실률, 불필요한 개발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하지만 “도시의 창조적 환경 조성과 유휴 산업 시설의 활용, 산업 구조의 고도화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상하이의 창조도시 정책은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다섯 개의 아시아 도시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여러 도시들의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 내부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미시적이고 창조적인 생산의 가능성이 논의됐다. 논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은 ‘아시아의 도시로부터 배우기’일 것 이다. 아시아의 도시들에서는 도시 개발에 대한 담론이 전무한 상태에서 급속도로 근현대화가 일어났고, 우리는 잡종 메커니즘이라는 도시 체계 속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오래된 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낭만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때다. 형식적, 비형식적 도시 조직의 공간 유형을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는 아시아의 도시를 위한 새로운 이해와 시각이 필요하다.서예례 교수의 말처럼, 그 단계를 넘어설 때 “기존에 존재하는 것으로부터의 배움은 혁명적”일 것이다.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시대에 반응하는 몸
붕괴로부터 저항의 몸으로 몸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세기말적 불안과전환 속에서 몸은 여러 화두로 전개되었다. 당시 미술계에서는 몸과 욕망, 몸의 풍경,몸의 정치학, 몸의 변형과 확장 등을 소재로 한 전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2010년이 넘어가며 몸은 예술의 주된 화두에서 사라져 가는 듯 했다. 사회적 침체,경제난, 재난, 파국 등 연일 반복되는 충격의 상황에서 몸이 더 이상 도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반응하는 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최근 몸의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몸짓은 미미하나 거센 진동으로 감지된다. 수동적 몸의 저항: 히지카타 다쓰미-방언 얼마 전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에서 ‘히지카타 다쓰미-방언’(5월 6일~8일) 프로그램을 보았다. ‘히지카타 다쓰미-방언’은 1960년대 일본의 전후 사회적 암흑기에 탄생한 ‘부토舞踏’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조명한다. 당시 일본의 암울한 정치ㆍ사회적 상황에 가역적으로 반응한 히지카타 다쓰미HijikataTatsumi(1928~1986)는 쇠약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쓰러져 다시 서지 못하는 수동적인 몸을 격하게 보여주었다. 마치 나병 환자와 같이 허물어지는 그의 몸은 주저앉은 채로그 움직임을 이어나간다.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지고 있는 인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인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지고 있는 인간… 이런 완전한 수동성에는, 그럼에도불구하고, 인간적 자연의 바이탈리티가 역설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분명하다.” _ 히지카타 다쓰미, 형무소로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시네마 스케이프] 헤일, 시저!
나는 비디오 가게에서 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첫 번째 칸부터 차례로 비디오를 빌려보던 시절부터 코엔 형제 감독의 팬이었다. 그들의 초기 영화인 ‘아리조나 유괴 사건’(1987)은 여러 번 봐도 재미있다. 코엔 형제 특유의 코미디 코드가 나와 맞았는지 사소한 장면에도 배를 잡고 웃었다. 최근 그들의 영화는 무거워졌고 잔혹해지기도 했지만 이번 ‘헤일, 시저!’(2016)는 코미디에 가깝다. 다시 그들의 초창기 영화에 반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해서 반갑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는 가볍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에 종사하는 이들의 민낯과 이들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대형 영화 제작사 매니저의 27시간을 통해 대중문화인 영화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대 배경은 할리우드 시스템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시점인 1950년대 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사람이든 사회든 사유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지만 그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 되면 기존 노선에 반기를 드는 집단이 생기고, 새로운 비전을 가진 혁신이 밀려온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움을 받아들일 것인가. 고된 현재를 유지할 것인가. 세계 대중문화를 이끄는 대형 영화 제작사의 총괄 매니저가 하는 일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그의 일과는 새벽부터 멍청한 배우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일로 시작된다. 진행 중인 촬영과 편집을 점검하는 기본 업무 외에도 수중 발레극 주인공의 임신 문제 같은 배우의 사생활도 해결해야 한다. 뉴욕의 사장은 서부 영화 전문 배우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낙점하는데 감독은 그의 ‘발 연기’에 결국 폭발하고 영화사 대표 에디 매닉스(조슈브롤린 분)에게 불평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대형 시대극 ‘헤일, 시저!’의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라스트신을 앞두고 납치당한다. 이런 문제들에 봉착한 그의 주변에는 쌍둥이 기자가 기삿거리를 캐내기 위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코엔 형제다운 유머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헤일, 시저!’의 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사전 검토를 위해 자문 회의를 개최하지만 계파를 대표하는 종교인들은 엉뚱하게도 신의 본질에 대한 논쟁만 한다거나, 납치당한 주연 배우가 약 기운에서 깨어날 때 문 밖에 들리던 무시무시한 기계 소음이 알고 보니 청소기 소리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몸값인 10만 달러를 마련했지만 가방이 작아서 잘 잠기지 않아 애를 쓰는 모습도 웃음을 자아낸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중세, 정원의 암흑 시대였나?
#84 중세와 이상도시 - 성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 “너희 동양인들이 최고의 문명 수준을 누리고 있을 때 우리는 아직 원숭이처럼 나무에서 살고 있었어.” 독일 친구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던 말이다. 물론 심하게 과장된 자기 폄하적 발언이지만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등 현재 유럽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국가들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는 유럽 대륙을 빙 둘러 감싸며 전개되었다. 주변에서 고대문명이 나타났다 스러지는 동안 유럽 대륙은 문화의 블랙홀이었다. 아시리아의 공중 정원, 페르시아의 파라다이스를 거쳐 주옥같은 이슬람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유럽 대륙의 정원은 아직 태동도 하지 않았다. 정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원은 먹고살기 위한 필수 품목이었으므로 사방에 존재했다. 다만 현대인이 기대하는 정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정원, 즉 아름다운 휴식 공간, 도시 속의 자연, 혹은 장식 정원 등에 부합하는 개념이 없었을 뿐이다. 중세에는 정원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쓰였고 때로는 몹시 모호했다. 현실적인 개념과 상징적인 개념이 나란히 공존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와일드한 자연을 일궈서 얻어낸 결과물을 모두 정원이라고 했다. 우리의 밭에 해당한다. 채소밭, 약초밭, 사과밭 등이 그들의 정원이었다. 중세는 기독교가 삶의 구석구석까지 지배했던 시대다. 죽은 뒤 돌아가게 될 천국의 정원과 이 세상의 정원을엄격히 구분했다. 이슬람 정원처럼 하늘나라의 것을 미리 앞당겨 이 세상에 재현해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성당이 바로 하늘을 대신하는 곳이었다. 성당에 들어서면 우선 전실을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이곳을 파라다이스라고 불렀다. 중세 기독교의 파라다이스는 의외로 정원이 아니었다. 5세기 말엽, 게르만족이 로마를 무너뜨리고 중부 유럽의 주도권을 차지했던 시점. 거기서부터 고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대를 중세라 한다. 고대의 게르만족은 짐승 털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농경 생활을 했으며 나무를 신으로 모셨고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뛰어난 전사였다. 이 전사들이 로마를 멸망시킨 뒤 나라를 세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제 막 자리 잡아가는 국가적 체계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종교가 필요했다.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가 합당해 보였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로마 제국의 멸망, 유럽 패권의 북상, 그리고 전쟁. 이렇게 부산했던 중세 초기는 예쁜 정원을 만들기에 적합한 토양이 아니었다. 게르만족의 프랑크 왕국이 로마 문화를 계승했다고는 하나, 아직 문화 생활을 할 수준은 아니었다. 중세의 사회는 기사, 수도사, 농부의 세 계층으로 이루어졌다. 기사는 국가의 안보를 담당하는 전사들이었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왕이었다. 농부는 양식을 생산하여 모든 사람을 먹여 살렸다. 수도사에게는 가장 복합적인 역할이 주어졌다. 이들의 본업은 영혼을 구제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 학문과 기술의 연구, 교육, 질병의 치료도 이들의 몫이었다. 왕과 기사들이 대개 문맹이었으므로 왕실에 출장을 나가 사무와 재무를 돌보는 것도 수도사들의 과제에 속했다. 그러므로 수도원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했다. “왕과 그의 무리는 수 세기 동안 전쟁에 길든 전사였다. 게다가 왕들은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이 역시 중세만의 특징이었는데 새로획득한 영토의 통치권을 확립하고 백성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으며 또한 변방이 늘 시끄러웠기 때문에 왕은 말과 수레에 부하와 식솔을 태우고 이 지방에서 저 도시로 떠도는 생활을 했다. 왕실만 떠돌았던 것이 아니다. 황제가 큰 원을 그리며 떠돌았다면 영주들은 각자 자기 영토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리고 그 사이를 수많은 상인이 떠돌았고, 수도사들과 순례자들이 떠돌았으며,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돌았고, 도적들이 떠돌았고 기사들이 전쟁과 모험을 찾아 떠돌았다. 심지어는 농부들도 떠돌았다. 바이킹에 쫓겨 남쪽으로 가고, 북에서 오는 낯선 사람들을 피해 서쪽으로 가고, 새로운 농지를 찾아 동쪽으로 갔다. 10세기까지 중세는 이렇게 번잡한 시대였다. 이렇게 부산하던 시대에 유일하게 부동의 정점을 이루었던 곳이 수도원이었다. 당연히 수도원에서 정원이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1 수도원에는 두 가지 유형의 정원이 있었다. 하나는 실용 정원으로 의약을 생산하는 약초원이 핵심을 이루었고 식량을 자급자족했으므로 방대한 농경지와 저수지 및 과수원을 소유했다. 이들은 속세에 속하는 곳이었다. 한편 수도원에는 세속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별개의 공간이 있었다. 대개 성당 동쪽에 수도사들의 거처가 붙어있었는데 그곳의 중정은 사제들만의 공간이고 신성한 곳이었다. 이를 ‘클로이스터cloister’라고 했다. 기독교의 성당과 수도원 건축은 새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 고대 다신교 시절의 신전 건축에서 출발했다. 본래 존재했던 비너스 신전이나 이시스 신전에서 주인을 몰아낸 뒤 그 안에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당으로 썼던 것이다. 기독교가 동쪽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전파되었으니 전달 루트를 따라 소아시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신전들이 먼저 성당으로 탈바꿈했고 그 곳에 최초의 수도원들이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건축 양식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오리엔트와 지중해 지역의 특징적 건축, 즉 주랑으로 둘러싸인 ‘ㅁ’자 형태의 건축이 수도원 건축 양식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팔라이스트라2나 로마의 페리스틸리움3을 기억할 것이다. 원칙은 그와 같지만 용도가 달라지니 이름도 새로워져서 클로이스터라고 불렀다. 클로이스터는 본래 사제들의 통행 공간이었으므로 기능에 맞게 잔디를 깔거나 석재로 포장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나 정원이 될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중앙에 분수나 우물을 두고 자연스럽게 사분 정원이 자리 잡아갔다. 지금은 클로이스터를 정원과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세에는 아무도 이곳을 정원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중세의 정원 개념이 지금과 달랐다는 뜻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리질리언스 읽기]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 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지속가능성의 두 얼굴 1990년대 이후 국제 사회가 주장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은 매우 모순적인 용어다. 지나친 경제 개발과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촉발된 이 용어에는 사회·경제·환경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선량한 인간’과 자원을 착취하는 ‘교활한 인간’의 모습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활한 인간’은 친환경 기술이라는 명목으로 고효율의 녹색 기술을 개발하여 자연 자원을 착취했으며, 착취한 자원의 이용을 통해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자원에 대한 비용을 자연에게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으며, 이는 자연 자원 고갈을 비롯한 기후 변화, 자연 재해 등을 초래했다. 즉, 우리 사회는 현재 닥친 위기의 핵심을 보지 않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여 안일하게 대처했다. 그 결과, 오늘날 인간 사회는 오히려 ‘지속불가능한 성장’에 갇혀 경제 침체, 생태계 붕괴 등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 과학 패러다임으로의 혁명을 일으켰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기존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빛=파동’이라는 물리학계의 정설을 뒤엎고 ‘빛=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했으며,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때까지 풀리지 않았던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위기도 ‘지속가능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재 직면한 위기의 핵심은 ‘지속가능성’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보다 복잡해진 사회 시스템이 ‘최적화’, ‘효율성’과 같은 일부 가치에 치중되면서 예측하지 못한 변화와 교란들이 인류를 위협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원한다면, ‘효율적인 최적화된 시스템’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교란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무대 뒤에 있는 ‘선량한 인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기발하고 새로운 사고’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기존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지구 환경을 하나의 평형 상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평형 상태란 물질 혹은 에너지의 유입과 유출의 양이 같아서 마치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지속가능성’ 패러다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지구의 ‘안정된 상태에 최적화된 시스템’1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구 환경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여름철 강우 패턴을 살펴보자.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1시간 동안 50mm 이상 폭우는 5.1회에 그쳤으나 2000년대 들어서서 12.3회로 급증했다. 급증한 국지적 폭우는 수질 오염, 토양 침식, 도심 홍수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이러한 위협은 근래에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나 강남역 침수 등으로 가시화되었다. 이와 동시에 최근 2015년에는 극심한 가뭄도 찾아왔다. 중부 지역의 누적 강수량이 평년 대비57%에 그쳤고, 바닥을 드러낸 소양강댐은 방류량을 80% 이상 줄여 생활용수 제한 급수를 단행하게 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 과거의 강우 패턴에 최적화된 우리나라의 수자원 확보는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큰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겨울철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겨울 제주도에서의 예상치 못한 이틀간의 폭설은 9만 명의 여행객의 발을 묶었고, 59억 원의 피해와 86억 원의 복구 비용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다. 변화하고 있는 환경에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점차 마비되고 붕괴되고 있다. 연재 순서 1.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2. 리질리언스 개념의 등장과 확장 3. 새로운 사고의 틀, 리질리언스 사고 4.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전략, 적응과 전환 5.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1: 도시 리질리언스 6.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2: 해안 리질리언스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 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조경의 경제학] 공원의 적정량을 비용편익분석으로 도출할 수 있을까
비용편익분석, 벗어나기 힘든 굴레 비용편익분석cost benefit analysis은 실용적인 수단이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자면 어떤 사업 또는 투자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대되는 편익을 비교하는 (그래서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는 정부의 공공사업이나 민간의 수익사업뿐만 아니라 개인이 대학에 진학할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비용편익분석이라는 단어를 주로 정부가 공공재를 공급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사용한다. 정부가 공원의 조성여부를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여 결정하는 것은 비용편익분석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설명했듯이 공원과 같은 공공재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기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적정량이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용편익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정부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편익이 비용을 초과하는 공원만 빠짐없이 조성하면 사회적으로 적정한 공급량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비용과 편익이 제대로 추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공원뿐만 아니라 어떤 공공재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용과 편익을 정확하게 계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 철도, 발전소 등 공공사업에 비용편익분석은 널리 활용되고 있다. 때로는 고속도로가 산을 뚫고 교각을 놓아가며 울창한 수림을 관통해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고압의 송전탑이 신성한 능선들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비용과 편익을 추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비용편익분석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이를 대신할 합리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할 능력은 없지만 대체할 수단 또한 없는 것. 이것이 비용편익분석에 대해 우리가 가진 딜레마다. 공원에 드는 비용 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어려운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비용편익분석에 필요한 것은 회계적 비용accounting cost이 아닌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자원을 사용하는 데 드는 기회비용을 ‘그 자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 중 가장 큰 값’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공원에 심는 나무의 기회비용은 그것을 얼마에 샀는가(회계적 비용)가 아니라, 그것으로 집을 짓든 젓가락을 만들든 공원에 심기 위해 포기한 다른 모든 용도의 가치 중 가장 큰 값이다. 그런데 이 값을 어떻게 일일이 계산하여 비교한단 말인가? 다행히 경제학자는 시장이 완전하다면 시장가격market value에 이 값이 잘 반영된다는 논리로 수고를 피해간다. 공원에 드는 비용은 공원에 투입되는 자원들의 시장가격을 합하여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가격은 내가 시장에서 나무를 사는데 지불한 액수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는 상황에 따라 나무를 싸게 살 수도 있고, 비싸게 살 수도 있다. 때로는 원래 가진 나무가 있어서 추가적인 현금 지출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일지라도, 내가 나무를 공원에 심는다면 나는 합리적인 당사자들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주고받았을 시장가격을 지불한 것이다. 바로 이 값들을 합해야 공원에 드는 비용이 계산된다. 한편 공원에 드는 비용이 오늘 전부 지출되지 않고 미래에 조금씩 지출되는 것도 비용의 추정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슈가 숨어 있다. 첫째, 비용이 미래에 지출되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예측’해야 한다. 경제학자가 아닌 점쟁이에게도 미래의 예측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비용의 추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틀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둘째, 총지출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점의 미래 지출을 오늘의 값으로 환산해야 한다. 오늘의 백만 원과 10년 뒤의 백만 원은 그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산의 비율이다. 이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는 분석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결국 누가 추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값을 놓고 우리는 공원의 조성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셈이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설계비, 무엇이 문제인가
서영애 오늘 좌담회는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이하 조설협) 기술분과에서 추진하고 있는 ‘설계용역단가 기준 작성’ 기획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설계용역단가를 주제로 좌담회와 설문 조사, 사례 연구 등을 진행해 ‘적정 설계비 가이드라인’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첫번째 좌담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침 『환경과조경』이 설계비를 비롯하여 전반적인 설계 환경을 진단하는 특집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접해 이번 좌담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게 되었다. 설계비 문제가 공론화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오늘은 현황과 문제점에 초점을 맞춰보면 좋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안도 이야기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하반기에는 대안 모색에 보다 초점을 맞춘 좌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먼저,조설협의 안계동 회장께서 좌담회 개최 배경을 소개해주면 좋겠다. 안계동 조경설계사무소 대표자 모임인 조설협이 발족된 이후 설계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설계용역대가, 즉 설계비의 현실화다. 사실 적정한 조경 설계비에 대한 논의는 예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타 분야에 비해상대적으로도 그렇고, 절대적으로도 우리는 적정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설계비는 설계사무소의 경영과도 직결된 문제이지만, 그보다 설계 품질, 직원 처우, 인재 영입 등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점들 때문에라도 개선이 꼭 필요한 사안이다. 공공 발주 프로젝트도 그렇고, 민간 발주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당 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덤핑 수주도 문제다. 제도의 문제점도 따져봐야 한다. 물론 조경설계만의 특성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해 지금 정도의 설계비면 충분하다는 사회적 몰이해도 극복해야 한다. 지금까지 조경설계비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대응이 부족했다. 이제라도 관련 단체에서 적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얽혀있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도 각기 다르다. 때문에 우선 설계비와 관련된 현황과 문제점을 꼼꼼히 살펴보고 어떤 방식과 절차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를 모색해야 한다. 조설협 차원에서 가시적인 성과를거둘 수 없는 사안일 수도 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관련 자료와 근거를 만들게 되면 비용도 적지 않게 소요될 것이다. 지금은 조설협회원사들이 시간을 쪼개서 각자가 갖고 있는 데이터 위주로 조사정도를 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관련 자료와 근거를 모으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분명 유의미할 것이다. 서영애 설계비를 주제로 한 좌담회를 열게 된 취지를 말씀해주셨다. 그럼 본격적으로 ‘설계비, 무엇이 문제인가’를 이야기해보자. 조설협 초대 회장이기도 한 안세헌 대표는 2년여 동안 조설협을 이끌면서 설계비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다. 또 조설협의 발족 배경에는 이런 사안에 대한 설계사무소의 공동 대응 필요성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먼저 개괄적인 문제 제기를 부탁드린다. 안세헌 설계비는 조경설계가 주 업무인 전문가 그룹의 문제다. 하지만 모두가 입장이 동일하지는 않다. 대형 엔지니어링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조경설계 부서와 조경설계만 단독으로 수행하는 기술사사무소, 엔지니어링 활동주체, 일반 사업자의 경우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 전자의 엔지니어링 조경 부서는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 내에서 수주를 하고 대가를 나누기 때문에 그 기준이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엔지니어링 대가 기준에 맞추어 설계비를 받고, 기술료와 몇 가지 항목을 더해서 적정 대가를 산정한다. 반면 조경설계사무소는 설계비 기준이 천차만별이고 주먹구구식이다. 산정하는 방식도 너무 다양하다. 대부분 대지면적이나 연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관행적으로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하는 수준에서 견적을 내는 경우도 많다. 이 대목에서 회사의 자금운영 상태가 결부되면서 저가 수주 경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품질경쟁이 아니라, 도면 한 장당 가격 경쟁이 발생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합리적이고 명확한 설계비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설계의 범위가 굉장히 다르다는 점이다. 결국은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숙련된 전문 인력을 얼마의 시간동안 어떤 업무에 투입하는가가 설계비를 좌우하게 되는데, 실제로 한 프로젝트에서 수행하는 설계의 범위에 꽤 차이가 있다. 때문에 설계비와 함께 설계의 범위에 대한 규정도 필요하다. 대부분은 공정별로, 기본계획 얼마, 기본설계 얼마, 실시설계 얼마로 책정을 한다. 조금 더 상세하게 견적을 내는 경우에는 수경 시설 포함 여부, 전기나 조명 시설 포함 여부와 함께 특화 설계에 대한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설계비가 똑같은 경우에도 업무 범위는 천양지차인 경우가 많다. 대략 수량 산출만 하고 실시설계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세밀하게 일위대가까지 모두 산출해서 정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투입 인력과 시간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설계비는 업무 범위와 무관하게 책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설계대가의 기준을 정하는 것 못지않게 설계의 범위를 명확히 정하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시장 경제 체제이긴 하지만,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설계비를 마치 부동산 중개 수수료처럼 일률적으로 딱 떨어지는 금액으로 책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또 회사 규모에 따라서 1인당 매출액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많아서 설계비를 획일화·표준화하기 곤란한 점도 있다. 하지만 각 회사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주하더라도,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분명히 만들어져야 한다. 서영애 설계비 기준을 세우기에 앞서 설계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어주셨다. 진승범 대표는 현재 설계비가 문제가 되고 있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주면 좋겠다. 진승범 기본적인 설계용역대가의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지만, 몇해 전부터 설계비 문제가 많이 거론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발주 물량이 현저히 줄었지만, 조경설계사무소는 오히려 늘어났다. 게다가 조경설계와 가장 밀접한 건축설계사무소의 경영 상태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자연히 발주 물량과 금액이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되었다. 한창 호황이었을 때는 설계비 기준이 없다는 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건설 시장이 급격히 위축된 후부터 저가 경쟁이 바닥을 모르고 내려가면서 설계비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그동안 받았던 수준의 설계비를 청구하면, 다른 업체의 견적을 들이밀면서 날강도 취급을 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일례로 아파트 조경설계비는 호황이던 시절의 1/2, 1/3 수준까지 급락했다. 조경 물량이 풍족했을 때는 건축도 호황기여서, 전체 금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조경설 계비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불황이 장기화되다보니 발주측에서 조경설계비까지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다. 더구나 1/3보다 더 낮은 금액에도 일을 하겠다는 설계사무소가 있다 보니, 적정 설계비의 기본선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다. 설계에 대한 자부심도 무너져버려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최소한 이 정도의 설계비는 받아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점이다. 그동안 견적을 낼 때 대체로 아파트는 면적을 기준으로 했고, 공원을 비롯한 공공 프로젝트는 공사비 대비 요율로 산정했다. ‘전체 공사비에서 3% 정도는 받아야 하지않나’라는 식으로 설계비를 대략 책정하곤 했다. 토론안계동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장, 동심원조경 대표,안세헌 가원조경 대표, 가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호영 HLD 대표,진승범 한국조경사회 수석부회장, 이우환경디자인 대표 사회서영애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기술분과, 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정리남기준, 김모아 주최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월간 환경과조경 일시2016년 5월 9일 장소푸르너스가든 서울숲점
조경설계 전문가와 자격
조경설계 전문가의 자격은 우리나라 조경설계 분야에서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전문가를 위한 장치다. 조경설계에 자격이 필요한가? 최근 조경 영역과 관련한 문제들은 특정 산업 분야(건축, 산림, 경관, 공공디자인 등)를 위해 만들어진 정책과 법령으로부터 출발한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업역 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조경진흥법’이 만들어졌다고 당장 조경을 위한 성과를 바랄 수는 없다. 조경진흥법은차세대를 위한 밑거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조경설계 산업의 매출액, 보수, 산업 연관성, 향후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전망 등 기본적인 정보도 파악할 수 없다. 왜 조경설계의 자격을 이야기하는가? 조경 관련 산업의 출발은 ‘설계’다. 자격증이 없어도 설계는 할 수 있다. 공공 부문의 설계를 직접 수주하지 않거나 민간 부문의 설계라도 발주자가 굳이 설계 자격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설계 경력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면, 개인사업자 또는 프리랜서의 자격으로 설계를 업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법령상 자격증이 있는 사람과 불필요한 협업을 하거나 설계비를 저가로 수주하기 쉽다. 적정한 설계 대가 확보와 설계 계약 관련 분쟁이 생겼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렵다. 조경설계 전문가의 자격은 우리나라 조경설계 분야에서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전문가를 위한 장치다. 조경설계 전문가의 호칭 지금까지 ‘조경학과’는 다른 학과에 비하면 학과 이름이 잘 유지된 편이었는데 대학 구조조정으로 학과 명칭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조경설계는 조경학과의 핵심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조경설계 전문가에 대한 자격과 명칭이 불완전하다. 조경기사와 조경기술사가 있지만 건축 분야의 건축기사, 건축시공기술사와 비교해 보면 분명 차이점이 있다. 기사, 기술사 시험은 설계 능력 평가를 하는 시험이 아니다. 건축설계 전문가는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건축사’다. 이민우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공부했고,대한주택공사(현 LH) 주택연구소,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토문, 신한 이앤씨 등에서일했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로 활동했으며,한국조경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공주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설계공모, 무용론과 대안
떨어진 사무실들은 경쟁에 참여하는 부담이 더 커지고, 승률은 더 낮아진다. 설계공모가 설계사무소들을 양극화시킨다. 설계공모가 만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설계공모가 바꾼 풍경 2007년 이전, 조경설계공모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설계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자리를 가격 경쟁(설계가 입찰)이나 자격 경쟁(PQ)이 대신했다. ‘용역’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시켜도 좋을 만한 자격’과 ‘적당한 비용’이 우선이었다. ‘경쟁이 없고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의 다른 표현이다. 디자인 경쟁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면, 굳이 디자인을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무난한 조경이 양산된 이유이기도 하다. 설계에 대한 고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시에 여러 건의 설계를진행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설계 시장이었다. 그 고단함을 견디게 한 것은 조경 동네 사람들의 정서적 유대감과 자긍심,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었다. 2007년 이후, 조경설계공모는 풍부해졌다.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국내 공모뿐만 아니라 국제 공모도 빈번해졌다. 승자는 대부분 국내 팀이었다. 한국 조경이 서구의 유명 설계사와 견줄 만큼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설계공모는 조경을 사회적으로 의제화하는 데 기여했고 관성적인 무난한 조경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공모에 당선된 설계사무소는 잉여 축적이 가능했다. 심사위원은 홍보 차 찾아오는 이들로 인해 새로운 설계 경향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발주처는 설계공모를 통해 이미지를 제고했다. 하지만 과다한 경쟁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조경 동네사람들의 정서적 유대감은 약화되고 경쟁자로서의 경계심은 커졌다. 자긍심은 비즈니스 마인드로 대체되었다.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듯이, 설계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공모에 당선되면 잉여를 바탕으로 인적 자산과 경험을 축적해 공모전 승률을 높인다. 설계 경쟁에 참여하는 일은 많은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승률이 낮아질수록 비용은 증가한다. 떨어진 사무실들은 경쟁에 참여하는 부담이 더 커지고, 승률은 더 낮아진다. 설계공모가 설계사무소들을 양극화시킨다. 설계공모가 만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설계공모 무용론 설계공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분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만큼이나 “설계공모가 왜 필요한가”라는 부정적 인식도 많다. 비용이 많이 들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설계공모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는 한 것이냐고 묻는다. 설계공모를 통해 조성된 공원이나 일반 입찰을 통해 설계된 공원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최정민은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설계 실천과 교육 사이의 간극을 고민 중이다.대한주택공사(현 LH)에서 판교신도시 조경설계 총괄 등의 일을 했고,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 잠실 한강공원 설계, 화성 동탄2신도시시범단지 마스터플랜 설계공모 등에 당선되었다.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활동하면서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 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좋은 계약서, 혹은 나쁜 계약서
‘계약서’라는 법적 문서에 서명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 전략은 상호 배려라는 상식적 토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좋은 계약서가 좋은 설계안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우리 스스로가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설계사무소 소장들의 일상 업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설계안을 구상하고 발전시키고 완성해나가는 본연의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설계’라는 현실적 경제 활동을 작동하게 하는 여타의 행정 행위들이다.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며 그것이 잘진행되도록 관리하는 후자의 작업은 설계 작업이라는 본업에 밀려 부수적인 업무로 방치하기 쉽지만, 그 결과 어느 순간 너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계약서’라는 법적 문서에 서명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 전략은 상호 배려라는 상식적 토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좋은 계약서가 좋은 설계안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우리 스스로가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작이 중요하다, 제안서를 잘 만들자 모든 설계 계약은 반드시 ‘제안’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니까 계약의 출발은 제안에서 시작된다. 어설픈 시작은 어설픈 결과를 맺기 십상이므로 제안서proposal를 잘 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설계 작업은 아무리 고급스럽고 멋진 성과물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보고서나 도면집, 모형물 따위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설계안이라는 창작물에 대한 평가,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창작물을 만들기까지 투입된 전문 인력의 인건비와 기술력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인 듯싶지만 많은 경우에 제안 과정이 대단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살펴보자. 우선 모든 가격 제안에는 반드시 인력 투입에 대한 내용이 명기되어야 한다. 공사예가가 정해진 때에는 통상 공사비의 요율에 따라 설계비를 산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이는 공사비에 대한 설계비가 통상적인 범위보다 과다 혹은 과소로 책정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참고로만 삼을 뿐, 설계비의 제안은 최종적으로 투입 인건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이 제안을 통해 건축주(혹은 의뢰인)에게 이 작업을 위해 몇 명의 인원이 얼마 동안의 시간을 사용하는지를 알려 주고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과업기간을 월 단위가 아닌 주 단위로 환산하고, 주당 몇 명의 인원이 투입되는지를 표로 정리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그다음으로 구체적인 인력 투입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대부분의 민간 건축주들은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므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과업의 기간과 투입되는 총인원만으로는 건축주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왜 그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1965년 서울 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
조경설계가 위축되고 있다. 경기 침체와 건설 경기 악화라는 외적 영향은 물론이고 분야간 경계가 흐려지는 경향도 전반적인 설계 환경을 변하게 하고있다. 이런 가운데 조경설계사무소는 수주 기회의 축소, 저가 입찰 경쟁, 설계공모 불신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한 상황이다. 설계 환경의 변화는 조경 분야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본지는 조경설계 환경을 진단하고 미래의 과제를 조망하기 위해 설계 계약,설계공모, 설계 전문가와 자격 그리고 설계비에 관한 꼭지를 마련했다. 이번획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외부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근본적 원인을 성찰하고 우리 내부의 불합리함을 숙고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재료와 디테일] 톤
다르게 할 것을 요구 받는다. 아주 노골적으로. 새롭지 않으면 늘 뒤쳐진 낡은 것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한다. 심지어 능력 부족이라는 오명과 함께 지켜온 자리마저 위협받는다. 경쟁 시대의 현실이다. 종교는 없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의 한 구절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이런 내게 혹은 나와 닮은 이들에게 새로움을 강요하는 현재의 분위기는참 견디기 힘들다. 조경은 살아있어 항상 변하는 재료를 사용하는 아주 독특한 분야다. 입이 아프게 말하고 귀가 따갑게 듣던 이야기다. 이렇게 늘 새롭게 변화하는 재료를 사용해 계획하고 만드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말(보고서)로는 시간이 지나며 더 아름답게 변하는 경관 중심의 공간을 계획했다고 하지만, 변화는커녕 낡아빠진 형형색색의 시설물로 가득한 공간을 보여주었기에 사람들이 우리의 거짓말을 알아채 버린 것일까. 이 연재를 하며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과연 소재를 많이 아는 것과 그 구법에 능통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게 굳이 필요한 것인가? 뻔하지만 답도 없는 생각으로 머리만 바쁘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좋은 공간적 ‘톤tone’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사전에서 찾아보면, 톤은 본래 음악 용어로 일정한 결합 관계를 가진 몇 개의 음이 융합되어 만드는 음조를 말한다. 회화에서는 개개의 색채가 명암, 농담의 차이에 따라 형성되는 조화를 말한다. 색의 명암, 강약, 농담 등이 나타내는 미묘한 차이와 그 혼합으로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공간 공감] 커먼 그라운드
시커먼 남자 세 명이 함께 가기에 어색한 공간들이 있다. 백화점, 파스타 전문점 그리고 벽화마을…. 여자와 동행한 남자들을 간혹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왠지 자발적으로 방문한 표정들은 아니다. 이 장소들이 모든 여성들의 로망은 아니지만 여성이 우점 성별임에는 틀림없다. 화창한 5월에 방문한 건대입구의 커먼그라운드는 컨테이너 적층 건축의 인지도를 급격히 상승시킨 히트작이다. 비슷한 스타일의 프로젝트 가운데 유독 큰 주목을 받은 커먼그라운드는 오프라인 상에서 건축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해시태그에 의한 공간감의 확대 재생산을 논할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쇼핑, 파스타, 벽화의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커먼그라운드는 여성 취향을 저격하는 종합 세트장으로서, SNS 게시물에 최적화된 다양한 배경을 제공한다. 배경이 주 임무가 된 공간을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자칫 피상적으로 흐를 수 있었던 공간감은 구조와 디테일의 세련됨으로 극복하고 있다. 새로운 핫스팟에게 상위 검색 자리를 물려준다 할지라도 공간의 기본기가 제법 탄탄한 커먼그라운드는 계속해서 즐겁게 활용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_ 정욱주 컨테이너는 물건을 운반하는 수송 수단이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가설 건물이기도 하다. 커먼그라운드에는 일반 가설용 컨테이너가 아닌 좀 더 튼튼한 수송용 컨테이너가 쓰였다. 하지만 가볍고 쉽게 해체 가능하리란 이미지는 잃지 않았다. 어릴 적 최초의 가설 건물에 대한 기억은 원두막이다. 몇 개의 기둥과 짚더미를 대충엮어 만든 원두막에는 딴 세상이 있었다. 고작 2m 남짓한 높이였지만 그곳에 오르면 구름 위에 올라선 것 마냥 시원하고 아늑하고 세상을 내려다보는 다른 시선이 있었다. 가볍고 삐꺽거리는 위태로움이 높이에 대한 감각을 증폭시킨 것 같기도 하다. 어려서 그랬는지 그 가벼움과 시원함이 좋았다. 견고한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분명 다른 감각이었다. 게다가 원두막에는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감성이 있다. 그곳에 달달한 수박과 참외가 있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컨테이너로 쌓아올린 이 가벼운 건축에서 원두막의 감성을 떠올리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곳에 모인 젊은 친구들이 훗날 이곳을 내 어릴 적 원두막과 같은 공간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젊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탈일상의 공간이면서 잠깐의 추억이 돼줄 수 있는 공간이니까. _ 김용택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 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화성 동탄 청계중앙공원
시간과 질서의 깨달음 ‘정감情感 동탄’이라는 슬로건 아래, 동탄2신도시에 정과 흥이 넘치고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매력적인 한국적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전통 마을을 재해석한 한국적 마을 만들기, 자연과 상생하는 음양오행 사상을 도입한 전통 조경의 재해석을 통해 한국적 도시공원의 모델을 제시했다. 대상지는 본래 동고서저의 지형으로 동쪽 무봉산 자락의 구릉과 숲이 동탄1신도시의 반석산을 향해 흐르는 광역적 녹지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숲과 마을 곳곳을 실핏줄처럼 흐르는 물길은 다랭이논과 둠벙을 통해 안성천과 치동천으로 향하고, 굽이치는 마을길은 소규모 공장과 마을로 이어진다. 마을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은 무봉산과 동탄1신도시의 반석산을 대상지 내로 끌어들인다. 답사 당시, 대상지는 동서로는 무봉산~반석산, 남북으로는 리베라CC~치동천을 연결하는 십자 형태의 구릉과 숲 속의 원형보존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평지로 조성되어 있었다. 또한 공동주택, 학교, 상가에 둘러싸여 있어 지역 공동체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장소성을 지니고있었다. 설계 개념과 방향 전통 마을은 산과 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마당과 굽은 길 등 물리적·생태적 구성 요소로 이루어 진다. 이는 대청마루에 담 너머 앞산의 풍경을 끌어들이고 정자에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체험적인 경관을 제공한다. 전통 마을의 생태적·문화적 의미를 계승하고 현대적 가치로 재해석해 네 가지 설계 개념인 산경山徑, 수경水經, 수기修己, 승경勝景을 이용한 통합적 설계를 통해 지속가능한 한국적 그린인프라를 재현하고자 했다. 산경, 마을을 보호하는 숲 만들기: 과거의 대상지에서 볼 수 있었던 구릉과 마을숲을 모티브로 입체적인 대 지를 조성해 한국적 구릉형 공원을 계획했다. 주변 현황과 식생 구조를 고려한 다양한 유형의 마을숲을 조성해 동서축과 남북축을 이루는 광역적 녹지 네트워크를 계획했다. 입체적으로 조성된 대지는 무봉산에서 발원한 녹지축으로, 연속성을 갖는 생태적 기반이다. 또한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한 마당 및 연계 프로그램을 위한 문화적 기반 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입체적인 대지 위에 조성된 마을숲은 4가지 유형으로 구성됐다. 동서 녹지축은 전통 마을숲으로, 무봉산과 원형보존지의 식생(소나무, 상수리 군락)과 전통 마을숲의 우점 교목인 느티나무, 소나무를 주 수종으로 하는 다층 구조의 군락이 식재됐다. 남북 녹지축에는 주변 주거 단지의 프라이버시와 경관을 고려해 서어나무, 단풍나무 군락이 조성됐다. 조경설계그룹한 어소시에이트(박명권, 송영탁, 김기천, 하태우, 이경호,전주희, 김성아, 오맹학, 정광조, 정회경) 시공(주)건림원 사업명화성 동탄2지구 택지개발사업 1단계 조경기본 및 실시설계 중 청계중앙공원 발주한국토지주택공사 위치경기도 화성시 석우동, 반송동, 동탄면 일원 대지면적213,724m2(근린공원8) 조경면적153,902m2 준공2015. 10. 31. 그룹한(대표 박명권)은 1994년 창립 이래, 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룹한의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 여유와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왔다.
신장 보러 원화로 로터리
시간과 질서의 깨달음 원화로 로터리는 동서 폭이 230m, 남북 폭이 140m인 타원 형태의 부지로 스터우 산에 위치하고 있다. 산의 정상은 주변 도로보다 13m 정도 높으며 부지에는 산의 굴곡과 기존에 놓여있던 석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클라이언트는 로터리를 사람들이 진입할 수 없는 관상공간으로 설계해 줄 것을 요구했다. 즉, 공간 이용을 고려한 시설 계획을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로터리를 시간時과 질서序의 개념이 담긴 공간으로 조성하는 데 의견이 모였고 이를 위해 설계를 최소화했다. 불필요한 장식을 일체 배제하고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해 장소 고유의 분위기를 형성하고자 했다. 설계에 사용된 돌담은 유일한 인위적 시설물로, 공간의형태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굴곡진 산체를 두드러지게 만든다. 도시민들이 로터리를 고향과 같이 느끼기를 바라며 설계 철학을 표현하기보다는 대지 자체를 가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로터리의 남북에는 원화로가 있다. 원화로 북쪽에서 로터리를 향해 오는 자동차 운전자가 석벽을 볼 수 있도록 로터리 북측의 산체를 대담하게 열었다. 이 석벽은 길이가 160m에 육박하며 부지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석벽의 가장 높은 지점은 4m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부지의 타원 형태를 잘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시선이 모이는 초점 공간이 된다. DesignR-land Beijing Yuanshu Institute of LandscapePlanning and Design Project DesignZhang Junhua, Wang Zhaoju, Bai Zuhua,Zhang Peng, Li Wei Enforcement DesignZhang Junhua, Hu Haibo, Yu Feng,Li Wei, Liu Jingyi Design AssistanceShen Jungang(Bortala State Construction Bureau of Xinjiang) ConstructionLingnan Landscape Co., Ltd. Xinjiang LocationBole, Xinjiang, China Area3.26ha Design Period2013. 10. ~ 2014. 2. Completion2014. 10.
신장 루이펑 와이너리
단조로움 속의 초월성 장방형의 부지는 평탄하고 널찍하다. 부지 동쪽의 경계에는 신장 포플러가 자라고 북쪽에는 양조장이 자리하고 있다. 서쪽과 남쪽에는 도로와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와이너리의 주인은 계절마다 다른 경관을 볼 수 있는 경관성과 생산형 녹지의 기능성, 두 가지 모순된 개념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공간이 조성되기를 바랐다. 양조장의 정문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긴 축선을 만들어 대지의 주 축선으로 삼았다. 이 축선을 따라 너비 8m의 지피 식물 식재 공간을 조성했고 그 가운데에 유럽식 원형 분수 세 개를 설치했다. 이는 와이너리 문화로대표되는 유럽의 분위기를 은연중에 전달하고 세부 장식으로 와이너리가 위치한 신장의 지역성을 보여준다. 지피 식물 식재 공간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폭 3m의 석재 포장 보도와 폭 1.3m의 지피 식물 식재 공간, 동쪽에는 폭 5m의 석재 포장 보도와 폭 12m의 숲, 폭 2m의 지피 식물 식재 공간이 계획됐다. DesignR-land Beijing Yuanshu Institute of LandscapePlanning and Design Project DesignZhang Junhua Enforcement DesignZhang Junhua, Bai Zuhua, Hu Haibo, Zhang Xiaoting, Fan Lei, Yu Feng, Tang Jin, Qian Cheng Electrical and Water Science ExpertiseYang Chunming,Xu Feifei ConstructionBazhou Nature Landscaping Engineering LLC ClientXinjiang Heshuo Construction Bureau Ruifeng Winery LocationHeshuo, Xinjiang, China Area2.75ha Design Period2012. 3. ~ 2012. 5. Completion2013. 7. 장준화(Zhang Junhua)는 1998년 일본 치바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칭화 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일본 치바 대학교 원예학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4년 R-land 베이징 위안수 경관 계획 설계 사무소(R-land 北京源树景观规划设计事务所)를 설립하여 경관 계획, 공공 및 레저 공간, 테마 디자인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의 고급 부동산 경관 조성에 대한 자문이나 설계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허베이성 한단스 자오왕청 유적 공원(河北省邯郸市赵王城遗址公园), 중관 촤이신정원(中关村创新园), 산둥청 국가 습지 공원(山东荣成国家湿地), 시안다탕부예청(西安大唐不夜城), 베이징 자동차 박물관(北京汽车博物馆),룽후 옌란산 공원(龙湖滟澜山), 톈진 퇀 보호수 정원(天津团泊湖庭院),초상 자오상 자밍룽위안 단지(招商嘉铭珑原), 위안양아오베이 단지(远洋傲北), 중젠훙산시구 단지(中建红杉溪谷), 시산이호위안 별서 단지(西山壹号院) 등이 있다.
파프로캐니 호안
파프로캐니 호수는 폴란드 티히Tychy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적 1.32km2, 수심 1.5~1.9m의 호수다. 휴타 파프로카Huta Paprocka(파프로캐니의 제철소)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796년에 조성되었다. 인근에 레크리에이션과 스포츠 활동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센터가 있는 파프로캐니 호수는 티히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최근에는 이곳에 RS+가 디자인한 워터 플레이그라운드를 비롯한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조성되기도 했다. 파프로캐니 호안의 재개발 프로젝트는 지역민에게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 경관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기존의 도로와 둑은 형편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재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 부지는 잔디로만 뒤덮여 있었고 아름다운 경치에도 불구하고 낚시꾼들만 호수에 찾아왔다. 낡은 시설과 훼손된 호안을 정비하고 거주민에게 매력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였다. 티히 시 정부가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엔 주민들의 참여가 거의 없었지만 아이가 있는 가족들을 위한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ArchitectRS+(Robert Skitek) CooperationJakub Zygmunt, Jarosław Zieli´nski,Szymon Borczyk, Marcin Jamro˙z, Dorota Zwolak,Katarzyna Wi´sniewska Budget931,000 EUR LocationTychy, Poland Completion2014 PhotographsTomasz Zakrzewski RS+는 로버트 스키텍(Robert Skitek)이 2001년 설립한 건축설계사무소다. RS+는 하나의 설계 유형만 추구하지 않으며 규모가 작더라도 특징적이고 다양한 구조를 가진 디자인을 추구한다. RS+는 섬세한 분석을기반으로 기존의 문화적, 경관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제 이용자들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다.
바랑가루 보호 구역
역사 19세기 중반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시드니 하버Sydney Habour 해안의 긴 부지가 시드니의 초기 건축공사에 쓰일 사암 재료를 생산하는 해양 산업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밀러스 포인트 헤드랜드Millers Point Headland는 1960년대까지 약 100년간 평평한 사각형의 컨테이너 항구로 변해갔다. 폴 키팅Paul Keating 호주 전 총리는 이 콘크리트 항구를 영국인의 호주 이주가 시작되기 전, 즉 1836년 이전의 해안 경관을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곶으로 재창조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자연 친화적인 녹지를 전면에 내세운, 시드니 하버 토착민에 대한 건축적 기념비를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로부터 발전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2006년에 열린 시민 공모전을 통해 ‘바랑가루Barangaroo’로 붙여졌다. 바랑가루는 유럽인이 최초로 시드니에 정착했을 당시 지역 원주민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였던 캐머레이걸Cammeraygal(시드니를 기반으로 한 호주 토착 원주민 그룹) 여성의 이름이다. 공원의 주요 설계 원칙은 건축적인 요소를 제한하고 전체 부지가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되도록 했으며 1836년경의 지도와 그림을 참조해 당시 해안선의 모습을 3차원적으로 재현하도록 했다. 새로운 도시 공원은 현대적인 방식으로 지어져야 했으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처럼 재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문화적인 중심지 역할을 하는 구역은 새롭게 재현된 곶의 지형을 보여주는 해안 경관 안쪽으로 감추어져야 했다. 해안 산책로는 도시적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100년 이상 이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해안 산책로는 약 2.5km 길이로 이어지며 지난 100년간 대중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워터프런트를 연결하도록 했다. 바랑가루 마스터플랜 총 22헥타르 규모의 부지에 60억 달러가 투입되는 바랑가루 지구는 시드니 하버의 서쪽 해안을 재정의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 될 것이다. 바랑가루는 24,000개 이상의 일자리와 11헥타르 규모의 공유지, 1년에 대략 20억 달러의 경제 효과를 뉴사우스웨일스 주에 제공할 것이다. 바랑가루 지구는 바랑가루 보호 구역Barangaroo Reserve, 센트럴 바랑가루Central Barangaroo, 바랑가루 사우스Barangaroo South 등 총 세 개의 재개발 구역으로 구성된다. 바랑가루는 여가, 상업, 주거, 시민 활동 등의 용도를 결합한 시드니 워터프런트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창조하고 이를 둘러싼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킬 것이다. 2022년 모든 계획이 완료되면, 2.5km의 해안 산책로, 공원, 광장, 작은 만 등을 망라한 바랑가루 지구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구역이 공공 공간이 될 것이다. 전체공공 공간은 중심 비즈니스 구역과 넓게는 시드니 시내까지 여객선 허브와 지하철을 포함한 새로운 교통망으로 연결된다. 이 전체 계획의 첫 단계로 바랑가루 보호 구역이 2015년 8월 22일 개장했다. Lead DesignerPWP Landscape Architecture in Associationwith Johnson Pilton Walker Project ManagementAdvisian Pty Ltd GeneralContractor Lend Lease(formerly Baulderstone PtyLtd), Sydney, Australia ArchitectWMK Quarry Operation and Chief Stone MasonTroy Stratti HorticulturalistStuart Pittendrigh Soils EngineerSimon Leake, SESL Australia Construction ObservationTract Landscape Architects Civil and Structural EngineersRobert Bird Group and Aurecon Hydraulic EngineerWarren Smith and Partners Construction ManagementEvans and Peck Marine EngineerHyder Consulting Geotechnical EngineerDouglas Partners Traffic EngineerHalcrow Lighting EngineerWebb Australia Group Wayfinding and SignageEmery Studio Historic InterpretationJudith Rintoul History and ArtsPeter Emmett Landscape Contractor RegalInovations Plant Procurement NurseryAndreasens Green ClientBarangaroo Delivery Authority, New South Wales StateLand LocationSydney, Australia Area Barangaroo South - 7.5ha Central Barangaroo - 5.7ha Barangaroo Reserve - 6ha Completion2015(first phase) PhotographsBarangaroo Delivery Authority, PWP LandscapeArchitecture PWP Landscape Architecture는 피터 워커(Peter Walker)를 수장으로 30여 년 동안 최고의 조경 설계를 선보여 왔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위치한 본사는 뉴욕의 내셔널 9/11 메모리얼,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 시드니의 바랑가루 헤드랜드 파크와 밀레니엄 파크랜드, 샌프란시스코의 트랜스베이 트랜짓 센터, 워싱턴 D.C.의 컨스티튜션 가든, 뉴포트 비치의 뉴포트 비치 시빅 센터와 공원, 서울의 삼성 서초 본사, 팔로 알토의 VM웨어 캠퍼스 등 다양하고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PWP는 역사와 전통에 대한 지식과 현대 조경에 대한 연구를 결합해 디자인하며 최신 기술과 혁신적 기법을 시공에 적용한다.
[칼럼] 설계를 찾아서
5월호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읽고 몇 마디 거들고자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내용이었으면 좋겠다는 원고 청탁을 받았다. 편집주간의 글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젊은 그들의 참신한 태도와 작업 방식에 나 또한 박수를 보내며 내가 설계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운영해 오면서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낼까 한다. 학부 졸업 후 나 또한 풍운의 꿈을 안고 설계사무소에 입사했다. 첫 출근 날 강남역에 내려 사무실로 걸어가는데 지하 역사 안의 레코드 가게에서 아침부터 음악이 울려 퍼졌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환희의 송가가 등 뒤로 웅장하게 흘렀다. 마치 내 첫 출근의 위대한 첫 걸음을 환희로 채워주는 듯했다. 전율을 느꼈다. 영광스러운(?) 나의 조경 설계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7년이 흐른 후 내 사무실을 열었다. 마흔둘의 나이에 한 창업이라 주변에서는 좀 늦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동업으로 시작했기에 마음의 부담을 나눌 수 있었다. 건설 경기가 계속 악화되어 매출 대비 고정 지출의 규모가 너무 커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서로 독립해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지만, 처음의 선택은 옳았다. 지난 호에 실린 소장들의 창업 이야기를 읽으며 참신한 작업 방식과 환경은 물론 남부럽지 않은 스펙을 가진 젊은 그들의 역동성을 느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를 이겨나갈 능력을 지닌 그들에게 안도감을 느꼈다. 부러움이 앞선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력 충만한 분위기에서 좋은 설계안이 나온다고 믿고 직원들과 허물없이 호형호제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설계사무소라 하더라도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아무리 참신하고 의욕 충만한 새로운 설계사무소여도 대표자에게는 결코 뒤로 할 수 없는 책임이 따른다. 설계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오류는 일 잘하는 임원이 해결할 수 있다. 세금이나 회계 문제는 전문 세무사에게 맡기면 된다. 하지만 대표 소장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첫 번째는 직원과의 약속이다. 최근 몇 년간 경기가 계속 나빠지고 회사의 수주가 바닥을 찍는 악순환이 연속되면서 사무실의 대표는 나름 최선을 다해뛰고 또 뛴다고 생각하는데 직원들이 그 노력을 반도 몰라주는 것 같다. 또 직원들은 열심히 하는데 대표가 보기에는 무언가 모자라고 성이 차지 않는 다. 대표의 눈에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고 다그치기 시작한다. 경영자와 직원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서로가 이해해 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서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리라고 인정해 버린다. 어쩌면 ‘회사’라는 통념과 선입견 속에서 비롯된 사용자와 피사용자 간의 거리감은 아닐까? 이 어쩔 수 없는 입장 차이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하나 있는 듯하다. 내가 직원이었을 때를 기억해 내는 것. 나는 그 당시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무엇이 불만이었고 무엇에 만족했는지 다시 떠올리는 것. ‘나는 설계사무소를 이렇게 이끌어갈 것이다’라는, 처음 지녔던 자신만의 신념을 부적처럼 지니고 살아야 한다. 무언의 다짐도 약속이다. 대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해야 한다. 그리고 직원으로 채용한 사람을 믿어야 한다. 이런 약속이 직원들과 새끼손가락을 건다고, 계약서를 쓴다고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첫 생각을 잊기 마련이다. 이 정도면 됐다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사무실 가족들과 함께 쌓아온 탑이 기초부터 흔들린다. 창업하면서 큰 꿈을 꾼 바로 그때 가슴 깊숙한 곳에 스스로 묻어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내 곁에 있는 ‘스마트 피플’들이 없었다면 나의 오늘도 없었다”는 빌 게이츠의 회고를 잊지 말자. 두 번째는 설계사무소의 생명력 문제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불을 찾아서Quest for Fire’(1981)라는 영화가 있다. 약 8만 년 전, 동굴에서 사는 울람 족은 자연에서 생겨난 불을 이용해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부족의 습격과 야생 동물의 공격으로 불을 꺼뜨리고 만다. 추위에 떨게 되고 불의 필요성을 새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울람 족은 불을자연에서만 얻어왔던 터라 다시 불을 구하기 위해 부족 중에 선발된 세 명이 멀고 긴 여정에 나선다. 목숨 걸고 불을 찾아 떠난 여정 속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불을 가지고 돌아오지만 물속에 빠뜨려 천신만고 끝에 얻은 불을 잃는다. 결국 여행 중 구해낸 여성의 부족에게서 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다시 불을 얻게 된다. 영화에서 불의 의미는 생명이며 힘이다. 불을 중심으로 가족이 모일 수 있었고 불이 있어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 불을 지키려 애썼다. 불을 잃게 되자 모든 것을 걸고 불을 찾아 나섰다. 불은 반드시 구해야 할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불이 있는 종족이 곧 힘 있는 종족이었다. 설계사무소에서 불과 같은 존재는 누가 뭐래도 설계다. 설계는 우리가 지켜야 할 힘이며 생명이다. 설계사무소가 갖추어야 할 최종병기다. 가슴 벅찬 기대를 안고 새롭게 시작하는 그들, 꿈틀대는 생명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춘 그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설계를 찾아서. 이재연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2006년조경디자인 린을 설립했다. 2013년 조경박람회 초대 작가로, 2014년에는 정원문화 심포지엄 초대 작가로 선정되었다.
[에디토리얼] 조경이라는 이름
어느 제자와의 대화를 소개하며 ‘조경’의 개명 문제를 넌지시 제기했던 지난 4월호 에디토리얼에 많은 독자들이 피드백을 주셔서 내심 놀랐다. 1970년대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선택된 조경造景. 이 단어의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가 어긋나는 현상이 한국 조경의 40년 역사를 뒤엉키게 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주장에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나무나 꽃 심고 돌 놓는 것을 연상시키는 일상 용어 조경이 전문 직능이자 학제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와 등가를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 동감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제 와서 40년 넘게 지켜온 이름을 버릴 수는 없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조경의 사회적·문화적 역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가야 한다는 반론도 있었다. 공감은 하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다시 번역한다면 결국 대만처럼 경관건축景觀建築인가. 중국처럼 원림園林건축으로 옮길 이유는 없다. 일본의 조원造園은 조경보다 더 좁은 느낌이다. 일부 건축가나 유학파 조경가들처럼 조경건축이라 쓰는 대안도 있겠지만 아마 제도권 조경인들은 경관‘건축’이나 조경‘건축’에 결사반대할 게 분명하다. 이미 몇몇 대학의 학과명에서 볼 수 있듯이 조경 앞에 환경이나 생태나 도시를 덧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옹색한 감을 감출 수없다. 이미 익숙해서 둔감해졌지만, 여러 지자체의 조경관련 부서명들은 조경이라는 이름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조경 정책과 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은 푸른도시국이다. 이 근사한 이름을 단 부서 밑에 공원조성과, 공원녹지정책과, 자연생태과, 산지방재과, 그리고 ‘조경과’가 있다. 조경과의 담당 업무를 찾아보면 수목 식재 사후 관리, 시설물 관리, 가로수와 녹지대, 가로변 꽃 가꾸기정도다. ‘한국조경헌장’이 정의하듯, 조경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라면, 푸른도시국은 ‘조경국’이어야 정상적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조경계에서만 소통될 수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광교호수공원, 용산공원 등 대규모 국제 설계공모의 운영과 진행에 참여하며 공모전 결과와 당선작에 대한 보도 자료를 작성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보도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면서 유독 조경이나 조경가는 다른 용어로 고쳐 표기하곤 했다. 이를테면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조경가 아드리안 구즈의 작품이 용산공원의 미래를 그릴 설계안으로 당선되었다’는 문장에서 ‘조경가’는 예외 없이 다른 단어로 수정되었다. 조경전문가, 조경디자이너, 조경건축가는 그나마 조경을 남겨준 경우다. 적지 않은 언론은 구즈의 직업명을 공원전문가, 공원설계가, 공원디자이너, 도시공원계획가 등으로 바꿔 적었다. 기자와 편집자들이 조경에 무지한 탓이라고 분노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조경(가)으로는 의미 전달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번 호 특집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는 이 애증의 이름 조경을 달고 고군분투하는 현장의 난맥 중 계약, 공모, 자격, 설계비의 문제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박승진 소장은 계약의 중요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고, 최정민 교수는 설계공모의 문제점과 방향을 깊이 있게 다룬다. 이민우 교수는 기존의 조경기술사 자격과 구별되는 조경설계 전문가 자격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특히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조설협)와 공동으로 기획한 좌담에서는 설계비를 둘러싼생생한 현장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조설협의 전·현직 회장인 안세헌 소장과 안계동 소장, 한국조경사회 수석부회장인 진승범 소장은 설계비의 실태와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진단한다. 특히 스타트업 조경가를 대변하며 참여한 이호영 소장은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조경계 내부의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저가 수주가 만연한 현재의 상황을 문제라고 지적만 할 것이 아니라 원인 파악이 우선이라는 그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호영 소장이 예로 든, 소수 민족이나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의무화한 미국의 사례는 기성과 신생설계사무소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한국조경헌장에 명시된 ‘조경의 영역’ 중 설계는 “계획안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창작 행위이며, 계획설계, 실시설계, 감리의 과정으로 나뉠 수 있다. 조경가는 설계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복합적인 요구와 문제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한다.”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명칭인 조경과 조경가가 조경설계의 정의와 범위까지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조경가는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하며 ‘복합적인 요구와 문제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정작 되돌아오는 사회적 인식과 경제적 대가는 ‘나무나 꽃 심고 돌 놓는 조경’이다. 현실의 설계 환경을 둘러싼 여러 문제는 이 간극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특집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적 요인 탓으로만 돌리기보다는 조경계 내부를 진단하고 성찰해 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번 기획이 설계 환경의 실제, 더 나아가 조경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부족한 지면에 일회성 기획으로 담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환경과조경』은 독자 여러분의 보다 다각적인 의견과 아이디어를 모아 설계 환경과 조건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후속 기획을 마련하고자 한다. 애증(?)의 이름표 조경을 목에 걸고 오늘도 설계실의 밤을 밝히고 있는 조경가들에게 존경과 애정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