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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조경이라는 이름
Editorial: Questions on Nomenclature of Landscape Architecture
  • 환경과조경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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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제자와의 대화를 소개하며 ‘조경’의 개명 문제를 넌지시 제기했던 지난 4월호 에디토리얼에 많은 독자들이 피드백을 주셔서 내심 놀랐다. 1970년대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선택된 조경造景. 이 단어의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가 어긋나는 현상이 한국 조경의 40년 역사를 뒤엉키게 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주장에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나무나 꽃 심고 돌 놓는 것을 연상시키는 일상 용어 조경이 전문 직능이자 학제인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와 등가를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 동감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제 와서 40년 넘게 지켜온 이름을 버릴 수는 없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조경의 사회적·문화적 역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가야 한다는 반론도 있었다. 공감은 하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를 다시 번역한다면 결국 대만처럼 경관건축景觀建築인가. 중국처럼 원림園林건축으로 옮길 이유는 없다. 일본의 조원造園은 조경보다 더 좁은 느낌이다. 일부 건축가나 유학파 조경가들처럼 조경건축이라 쓰는 대안도 있겠지만 아마 제도권 조경인들은 경관‘건축’이나 조경‘건축’에 결사반대할 게 분명하다. 이미 몇몇 대학의 학과명에서 볼 수 있듯이 조경 앞에 환경이나 생태나 도시를 덧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옹색한 감을 감출 수 없다.

이미 익숙해서 둔감해졌지만, 여러 지자체의 조경관련 부서명들은 조경이라는 이름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조경 정책과 사업을 총괄하는 조직은 푸른도시국이다. 이 근사한 이름을 단 부서 밑에 공원조성과, 공원녹지정책과, 자연생태과, 산지방재과, 그리고 ‘조경과’가 있다. 조경과의 담당 업무를 찾아보면 수목 식재 사후 관리, 시설물 관리, 가로수와 녹지대, 가로변 꽃 가꾸기정도다. ‘한국조경헌장’이 정의하듯, 조경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라면, 푸른도시국은 ‘조경국’이어야 정상적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조경계에서만 소통될 수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광교호수공원, 용산공원 등 대규모 국제 설계공모의 운영과 진행에 참여하며 공모전 결과와 당선작에 대한 보도 자료를 작성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보도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면서 유독 조경이나 조경가는 다른 용어로 고쳐 표기하곤 했다. 이를테면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조경가 아드리안 구즈의 작품이 용산공원의 미래를 그릴 설계안으로 당선되었다’는 문장에서 ‘조경가’는 예외 없이 다른 단어로 수정되었다. 조경전문가, 조경디자이너, 조경건축가는 그나마 조경을 남겨준 경우다. 적지 않은 언론은 구즈의 직업명을 공원전문가, 공원설계가, 공원디자이너, 도시공원계획가 등으로 바꿔 적었다. 기자와 편집자들이 조경에 무지한 탓이라고 분노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조경(가)으로는 의미 전달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번 호 특집 ‘설계 환경을 진단하다’는 이 애증의 이름 조경을 달고 고군분투하는 현장의 난맥 중 계약, 공모, 자격, 설계비의 문제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박승진 소장은 계약의 중요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고, 최정민 교수는 설계공모의 문제점과 방향을 깊이 있게 다룬다. 이민우 교수는 기존의 조경기술사 자격과 구별되는 조경설계 전문가 자격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특히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조설협)와 공동으로 기획한 좌담에서는 설계비를 둘러싼 생생한 현장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조설협의 전·현직 회장인 안세헌 소장과 안계동 소장, 한국조경사회 수석부회장인 진승범 소장은 설계비의 실태와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진단한다. 특히 스타트업 조경가를 대변하며 참여한 이호영 소장은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조경계 내부의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저가 수주가 만연한 현재의 상황을 문제라고 지적만 할 것이 아니라 원인 파악이 우선이라는 그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호영 소장이 예로 든, 소수 민족이나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의무화한 미국의 사례는 기성과 신생설계사무소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한국조경헌장에 명시된 ‘조경의 영역’ 중 설계는 “계획안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창작 행위이며, 계획설계, 실시설계, 감리의 과정으로 나뉠 수 있다. 조경가는 설계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복합적인 요구와 문제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한다.”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명칭인 조경과 조경가가 조경설계의 정의와 범위까지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조경가는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하며 ‘복합적인 요구와 문제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정작 되돌아오는 사회적 인식과 경제적 대가는 ‘나무나 꽃 심고 돌 놓는 조경’이다. 현실의 설계 환경을 둘러싼 여러 문제는 이 간극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특집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적 요인 탓으로만 돌리기보다는 조경계 내부를 진단하고 성찰해 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번 기획이 설계 환경의 실제, 더 나아가 조경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부족한 지면에 일회성 기획으로 담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환경과조경』은 독자 여러분의 보다 다각적인 의견과 아이디어를 모아 설계 환경과 조건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후속 기획을 마련하고자 한다. 애증(?)의 이름표 조경을 목에 걸고 오늘도 설계실의 밤을 밝히고 있는 조경가들에게 존경과 애정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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