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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각 분야에서 본 조경 ; 도시설계, 건축, 원예, 소설, 조각 ; 명작속에 나타나는 경관
    대자연 하면, 무조건 수려한 풍광이나 경치를 빗대어 생각해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들의 습성이다.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란 이미 추상적 사고 안에서만 가치를 매길수 있는 고전적 정태일 뿐이며 현대문명에 걸맞게 조화되어 휴식과 감경에 공한할 수 있는 자연이라야 활성의 자연이 되리라는, 이쯤 어설픈 지식에서이리라. 그렇다고 이 어설픈 지식이 애시당초 글러먹은 졸식이란 말은 아니다. 달리 해석해 보면 이 어설픈 지식이야 말로 자연을 인식하는 그중 진보적인 태도일 수도 있겠기에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인류의 생존을 있게 했으나 인위의 지혜가 만든 조경은 인류의 생활에 공헌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은 문명 이전의 삶 그 자체일 뿐이되 생활은 문명 이후의 다양한 삶을 주도하는 효과적인 생태가 아니겠는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태도를 놓고 역설한 디즈레일리와 괴테의 금언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디즈레일리의 말은 다분히 있는 그대로의 대자연을 찬양하자는 것이며 괴테의 말은 대자연은 끊임없는 변혁을 시도하거늘 어찌 인간에 의해 변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표현한다. 이런 디즈레일리와 괴테의 자연이 한국적 인위와 알맞게 섞인 선경도 아니요 비경의 경관도 아닌 그런 조경의 미덕을 보며 살고 싶다. ※ 키워드 _ 디즈레일리, 괴테, 대자연의 풍광, 인위적 경관
  • 보여주고 싶은 경관 ; 보길도 ;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찾아서
    고의 시가생활과 은둔생활의 중심지이자 조선사대의 중요한 정원 유적지인 \"부용동 정원\"이 자리 잡은 곳.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를 발견한 것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 그가 51세 되던 해이다. 그는 이 섬의 최고봉인 격자봉을 중심으로 섬내부의 평지와 산의 경계가 마치 부용꽃 같다 하여 부용동이라 불렀다. 부용동은 고산이 기거하는 낙서제를 중심으로 하는 위락공간이었다. 고산은 별서정원을 가꾸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다가 이곳에서 일생을 마친다. 세연지는 부용동 하구에 있는 약 5천㎡ 정동의 방대한 연못. 이 연못을 중심으로 고산의 정취어린 정원이 펼쳐진다. 이 공간은 고산의 가장 낭만적인 일과가 전개되던 곳, 그래서인지 보길도 내의 정원 유적중에서 경관 처리가 가장 화려하고 계곡의 물을 잘 이용하고 있다. 고산의 거처, 낙서제, 그 주위는 수림이 우거져 있으나 앞은 훤히 트여서 부용일 일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낙서제는 그가 늘 기거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던 고산의 생활중심지이다. 낙서제가 들어선 곳의 배면은 바로 격자봉의 내룡이 입수가 되는 곳 즉, 용머리가 혈에 들어간 형국을 이루었던 곳이어서 건물은 북향을 이루는데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고산이 82세 되던 해에 동계 윗쪽에 세웠다는 곡수대. 현재 밭으로 변해있지만 당시 경관이 아름다워 고산이 휴식을 즐기던 곳이며 경원에 유배되었을 때에도 곡수대에 대해 노래한 것이 있다.낙서제로부터 정북쪽에 있으며 직선으로 1㎞거리에 있는 동천석실은 고산의 인공구조물 유적으로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석실 아래쪽 연지에 물이 넘쳐 10m 계곡 밑으로 떨어질 때면, 남쪽에 있는 태양빛을 받은 물줄기는 마치 구름을 뚫고 하늘에 오르는 용의 모습같이 보였다고 전하고, 동천석실은 승룡대라 불리기도 한다. ※ 키워드 _ 고산 윤선도, 보길도, 정원 유적지, 부용동, 별서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