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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북지역 생태문화공원 조성 설계디자인 현상공모
    서울시는 중랑구 망우동 241-20번지 일대 14만 7,336㎡fmf 공원녹지가 부족한 강북지역에 초·중학생 소풍 장소와 가족단위 피크닉 장소로 활용될 수 있는 생태문화공원을 조성하기호 하고 동북권 지역 거점공원이 될 수 있도록 현상공모를 실시해 지난해 12월 유림조경기술사사무소의 ‘행복의 숲’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이에 본지는 최우수작을 소개한다. 위치_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241-20번지 일대면적_147,336㎡녹지면적_110,502㎡(75%)시설면적_36,834㎡(25%) 행복의 숲유림조경기술사사무소+(주)한설그린 땅이 숨트임을 시작한다.우리는 좋은 숲을 만들고 물길을 열어 생명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한다.그리하여, 먼지 많은 세상을 맑게 하고근심걱정을 잊게 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행복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학교의 담장이 허물어져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고병원에는 희망의 웃음꽃이 피어오르고황량한 기차길은 해복한 숲을 향해 달리고 있다. 행복의 숲은우리와 주변 자연환경을 위한디톡스 공간이다.
  • 인천 가족공원 조성 기본 및 실시설계
    위치 _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2동 산58번지 일원면 적 _ 총 1,668,729㎡(1단계 198,841㎡, 2단계 116,500㎡, 3단계 1,353,388㎡)설계범위(1단계) _ 봉안당, 상가, 주차장, 진입도로정비, 홍보관, 관리사무소, 휴게소, 자연형하천, 보행자 전용도로 등조경설계 _ (주)서영기술단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2008 바깥미술회 대지의 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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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왕립원예협회 위슬리가든
    필자는 영국왕립원예협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의 대표 가든인 위슬리가든(Wisley Garden)에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위슬리 디플로마(RHS Wisley Diploma) 코스를 수행하면서 이곳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글을 통해서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관을 종이 몇 장에 요약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깨닫게 되었지만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개하고자 한다.영국왕립원예협회 소개1804년 설립된 영국왕립원예협회(RHS)는 영국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원예 기관으로서 거듭나고 있는데, 설립목적은 가드닝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원예의 우수성을 장려하는 동시에 식물에 대한 열정을 대중에게 공유되도록 돕기 위함이다.협회의 한해 예산이 필자가 근무하던 2001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약 3천5백만파운드(약 700억원)에 이를 정도로 그 조직과 규모가 방대한데도 불구하고 재정자립도가 거의 100%에 달할 정도로 세계적 모범이 되는 운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운영할 수 있는 주 수입원은 회원제, 플라워쇼, 출판, 교육, 가든 입장료, 기부 등에서 비롯된다.왕립원예협회는 영국의 3대 플라워쇼이자 세계적 권위의 플라워쇼인 첼시 플라워쇼(Chelsea Flower Show), 햄턴 콧 팔리스 플라워쇼(Hampton Court Palace Flower Show), 테톤 파크 플라워쇼(Tatton Park Flower Show)를 비롯하여 런던 웨스트민스터 빈센트스퀘어 홀에서 정기적인 플라워쇼를 주관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또한 출판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 식물 전문서적을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중에는 80,000여 종류 이상의 식물 소스를 찾아볼 수 있는 RHS Plant Finder라는 서적을 매년 출판하는 등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협회에 가입된 회원수만 해도 수십만명에 달하는데 이에 대한 관리 수준도 높다. 회원에 가입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지는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The Garden 잡지를 매달 무료로 받아볼 수 있으며, 위슬리가든을 비롯한 협회의 4개 가든 뿐 아니라 영국 내 약 140여 군데의 아름다운 가든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또한 희귀한 잉여씨앗도 분양 받을 수 있으며, 식물 식별, 재배방법, 병충해 방제 등에 대한 자문을 받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4,000종류 이상의 전문서적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을 이용 및 도서 대출이 가능하며, 첼시플라워쇼를 비롯한 각종 플라워쇼의 티켓을 우선 예매할 수 있는 특전을 가진다. 협회의 식물원은 대표 가든인 위슬리가든Wisley Garden을 비롯하여, 로즈모아Rosemoor, 하이드 홀Hyde Hall, 하로우 카Harlow Carr가 있는데, 나름대로의 지역 환경에 맞게 독특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고 있으며, 이들 4개의 식물원이 보유하고 있는 식물유전자원을 합치면 세계 최고라 자칭하는 큐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 Kew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다.필자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 호주, 일본, 중국 등 수백여 곳의 주요 식물원들을 다녀 보았지만 위슬리가든보다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정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모두다 각자의 느낌이 있겠지만 직접 방문해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대부분이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전 세계에서 식물원의 복합적인 역할, 즉 수집Collection, 전시Display, 기록Recording, 보전Conservation, 교육Education, 연구Research, 휴양Recreation 등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몇 안 되는 훌륭한 식물원으로 꼽고 싶다.위슬리가든의 역사영국왕립원예협회RHS 산하의 대표 정원인 위슬리가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03년 토마스 한버리 경이 60에이커의 토지를 협회에 기증하면서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원래 위슬리가든의 자리에 있던 정원은 사업가, 과학자, 발명가이자 가드너였던 조오지 퍼거슨 윌슨(George Fergusson Wilson)의 오오크우드(Oakwood) 정원이었다. 1878년 부지를 매입한 그는 까다로운 식물들을 수집하고 재배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초창기에는 백합류, 용담류, 붓꽃류, 앵초류 및 수생식물들을 주로 수집하였다.1905년에는 현재의 실험동 앞에 과일류를 재배하는 온실을 지었지만 1969년에 경관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온실을 철거하고 수로(Canal)를 만들었다. 1911년에는 위슬리가든을 대표하는 주제원 중 하나인 암석원을 완성하게 되었고, 그 대부분의 원형 구조가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교육부문에 있어서는 1906년까지 과학 연구목적과 학생 가드너들의 교육 공간을 위한 작은 실험실이 지어지면서 위슬리 원예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정원이 점차 개발되면서 직원과 학생수가 증가되어 좀 더 큰 실험동이 필요하게 되었고 마침내 1916년 훨씬 향상된 디자인과 시설로 다시 태어났다.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건물과 정원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1946년 바틀스톤 힐(Battleston Hill)에는 200그루가 넘는 교목과 250개가 넘는 고목의 그루터기를 제거하면서, 산성토양에서 잘 자라는 상록성 만병초류(로도덴드론; Rhododendron)와 낙엽성 철쭉류(아잘레아; Azalea)를 식재하였다.그 후 1954년에는 영국왕립원예협회의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엘리자베스여왕의 어머니에 의해서 아버콘웨이 하우스Aberconway House라는 학생 숙소가 오픈되었다.글, 사진 _ 김종근(들꽃수목원 실장)(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영원한 조경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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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광장과 세종로 ; 광화문 광장이 문화광장으로 태어나려면
    세종로는 육조거리이었다도시에서는 그 도시의 상징 공간, 상징축, 건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 상징공간은 가로일 수 있고, 광장 또는 건물일 수 있다. 도시는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를 가진 상징물이 필요하다. 서울의 기념비적 거리는 광화문 앞의 세종로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은 힘, 활력, 혁신,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세종로는 지난 600년간 왕과 대통령이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호령해 온 거리이다. 이곳은 행정, 정치, 경제의 중심지이다. 세종로는 관가로서 주제(主制)에 따라 광로로 건설되었고, 비록 도로의 포장은 되어있지 않았지만 토질이 좋아서 우마차가 통행하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고 한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라는 육조가 세종로 좌우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왕들이 궁궐 밖을 행차하면서 으레 이 육조거리를 지나갔다. 현재의 광화문 앞 거리는 정도전이 설계한 주작대로의 방향에서 약간 빗나가 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세종로의 방향을 관악산이 아닌 남산으로 틀어버린 것이다. 당시 남산에는 일제의 신사(神社)인 조선 신궁이 있었다. 현재는 후진적 교통체계가 판치는 광화문 거리 거리는 시민들에게 문화, 정서, 역사, 상상력을 자극하는 최선의 장소적 매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는 시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어야 하며 누구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세종로는 그렇지 못하다. 우선 폭 100m, 길이 600m의 공간은 시민들에게 위협감을 준다. 한마디로 공포의 대상이다. 이 길을 건너려면 컴컴하고 스산하기 이를 데 없는 지하도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차로로 둘러싸인 광화문은 광화문과 도심 간의 맥을 끊어놓고 있다. 광화문의 정문으로 가려면 우선 방황하기 일쑤다. 광화문 앞에는 횡단보도라는 것을 눈을 비비고 보아도 없다. 자동차만 쌩쌩 지나가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광장이다. 서울 최대의 후진성은 사람과 자동차의 대접이 거꾸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세종로와 같은 10차로 이상의 차량소통 위주의 도로는 외국도시에서는 보기 힘들다. 모든 교차로에서 횡단보도 신호등이 20초도 채 되지 않아 깜박깜박 거린다. 길 건너는 시민들은 횡단보도에서 마구 뛰어야만 한다. 세종로는 오랫동안 자동차에 의해 짓밟혀 왔다, 그래서 보행자가 철저히 무시되어 온 것이다. 비인간적인 도시계획의 대표적인 예다. 보행자와 같은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유럽도시의 선진성에 비하면 형편없는 일이다. 거리에서 사람의 자존심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지키려는 유럽도시의 도시 교통정책에 높은 평가를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종로를 보면 도로와 자동차 이외의 것들은 무시해도 된다는 의식이 그동안 얼마나 철저히 우리들에게 자리 잡아왔는지 알 수 있다. 원제무 Jaimu 한양대 도시대학원장(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초벌그림그리기, 손으로 쌓아가는 가능성
    지난 2007년 12월 제5회 조경비평상의 수상작이 선정되었다. ‘환경과조경’에서 ‘조경비평 봄’으로 주최를 옮긴 이번 조경비평상 공모에는 총 다섯 편의 평문이 접수되었으며, 조경비평 봄 회원들의 최종심사결과 이경근, 최영준의 응모작을 각각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심사기준은 주제 또는 문제의식 선택의 안목과 평문의 완성도, 비평가로서의 발전가능성 등이었다. 이에 본지는 두 편의 수상작을 수록한다. 초벌그림 그리기. 손으로 쌓아가는 가능성이수학의 초벌그림 그리기에 대한 고찰이경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졸업예정 그에 대한 스케치설계 수업을 처음들을 당시, 하루 종일 대상지인 세종문화회관을 맴돌았던 적이 있다. 해가 지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나에겐 조경보다 허기가 먼저 왔다. 1년이 흐르고 또 다른 설계수업이 찾아왔다. 그저 시간이 흐른 만큼 익숙해져서 시대의 흐름을 흉내내보기도 하고, 그럴듯한 수식을 더해도 보지만 왠지 작품은 생기가 없었다. 많은 개념이 모여 설계안을 이루는 과정에서 설계란 작업은 점점 모호하게만 느껴졌다. 1년 전에 느꼈던 허기를 그동안 너무 많은 말들로 채운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던 중, 학교에서 마련해 준 <아뜰리에 나무> 이수학 소장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막 도착했을 때는 마침 시청 앞 광장 공모전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트레싱지를 가득 매운 그의 스케치였다. 스케치들은 특강이 계속되는 동안 화면에 머물렀다. 때로는 발상의 도구로, 때로는 공간에 들어찰 실체하는 존재로 그 선들은 설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매김해 있었다. 흔히들 작가의 손에 대해 얘기한다. 손은 상상과 작품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 말하기도 하고 스스로 작품이 되고자 하는 몸의 연장(延長)으로 보기도 한다. 스케치 또한 손의 연장이라면, 시작부터 끝까지 그의 설계는 손으로, 몸으로 진행된 것이다. 설계자와 설계 사이에 데이터나 논리에 앞서, 손의 흔적이 놓여있다는 것은 생경하면서도 믿음직스럽다. 그것은 여과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그를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설계과정은 설득이 아니라 표현에 가깝다 하겠다. 자신의 설계를 보여주는 동안 말이 길어지곤 하면 그는 어김없이 웃음으로 설명을 얼버무리곤 했다. 일견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모습 같지만, 그 웃음으로부터 이 글은 시작한다. 그 웃음에서 느껴진 것은 안일한 작가주의나 무책임이 아니라 겸연쩍음이었다. 말은 손의 언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그 나름의 신중함과 말로 인한 과잉을 염려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휘 이전에 떠오른 것-트레싱지 위에 난 무수한 선은 말을 대신한 무수한 손의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어휘로 치환하지 못한 겸연쩍음, 어휘로 표현하지 못한 얼버무림 같았다. 그는 그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SASAKWA HILL LODGE
    WATG에서 계획 설계한 사삭화 힐 랏지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렌게티 지역내 35만 에이커 규모의 그루메티 사냥 구역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7동의 카테이지 및 빌라 건물군은 언덕 위에 위치해 최고의 전망을 즐길 수 있으며 야생 사냥 구역내 동물및 야생가축 (얼룩말, 영양)등의 계절별 이동이나 서식지를 직접 구경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다. Sustainability에 중점을 둔 마스터 계획 및 건물 설계 초안은 기존에 존재하는 자연환경에서 그 아이디어를 가져왔으며 자연에 서식하는 경관의 이미지에 색상이나 건물군을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최대한 고려했으며, 현존하는 자연 및 경관을 최대한 덜 파괴하며 자연과 조화롭게 개발하는데 역점을 맞추었다. 또한 부지내 아름다운 수목들을 피해 건물들을 설계했으며, 문제가 되는 부분의 수목들은 자르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옮겨 그 가치를 보존토록 했다. 또한 대부분의 조경 재료들은 현지에 자생하는 식생 재료들로 조경 재료의 현지화에 중점을 두어 물이 귀한 지역에서 관수 시설이 필요 없도록 절수하는 계획을 했다. 7동의 카테이지 및 빌라 건물들(스파, 레스토랑, 야외 수영장 등등)은 세기초의 동 아프리카의 랜치 홈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으며, 나무 패널이나 고전적인 가구들 및 인피니티 에지 수영장들도 이러한 설계영향을 받았다. 프로젝트 건설 시행 단계에서는 공사 부지내 두 군데의 채석장을 설치하고 현지 주민들을 교육시켜 공사에 인부로 채용하여 철저히 현지화에 중점을 두었으며, 또한 소규모의 콘크리트 공장을 세워 현지 주민들로 하여금 프로젝트에 필요한 콘크리트 블럭들을 직접 생산토록 하여 주민들에게 경제적 이익이 돌아가게 했다. 또한 이러한 부지내 시설물들은 야생자연구역내에 건설 관련 교통량을 현저히 감소 시겼으며, 현지에서 교육받고 인부로 일한 주민들은 공사 완공후 정직원으로 채용되어 시설물 관리 등의 임무를 맡게 했다. 이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부터 철저히 Sustainability development에 촛점을 맞추어 계획 설계 시공 되어졌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 환경 파괴의 최소화와 현지화에 성공한 프로젝트로서 현지 주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고, 경제화에 성공된 모델로써 The World’s 100 Ultimate Escapes, Travel+Leasure의 Global Vision Award, 15 to Watch등에 이름을 올렸다. Stats_ 7 free-standing cottages, including 6 suites and 1 luxury villa; 1 restaurant and 1 bar; 297,000-acre site. Features_ Spa; business centre, wi-fi available throughout; 2 tennis courts; infinity pool; Colonial Trading Post; library; wine room; billiard's room; sport's pavilion; equestrian center. Client/Owner_ VIP Safari Club Architect_ WATG Associate Architect_ MD Consultancy Landscape Architect_ The Really Useful Landscape Company Interior Designer_ Interiors Designs Company Ltd. Photography_ Courtesy of Singita Grumeti Reserves
  • 광화문광장과 세종로 ; 역사문화도시는 과정부터 문화적으로
    총론 없는 각론은 숲 없는 나무다 서울시의 광화문 앞 광장조성과 4대축 조성 사업은 도심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애초의 목적 중 가장 큰 것일 텐데, 무엇이 역사적인 것이고 무엇이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과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숲 없는 나무가 되어 버렸다. 서울시의 역사·문화축 계획은 주변 블록이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line)적인 것인데, 이 축에 대한 논의는 서울 전체의 역사문화에 대한 마스터플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콧날을 세운다고 얼굴 전체가 낳아지는 것이 아닌 이치와 같다. 숲을 살리려면 진입로를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숲 전체의 역사적 자연사(natural history)를 회복해야 한다.그렇다면 경복궁-서울광장-숭례문-서울역-남산의 역사문화축이 과연 진정성 있는 역사문화축인가? 조선 풍수에서 주산과 안산을 잇는 것은 물리적 길이 아니라 지형적 경관배치가 아니었던가. 이 지형적 경관 축에 길을 놓아 물리적 축을 만든 것은 일제에 의해서이다. 조선의 주 길은 서울시가 말하는 ‘역사 문화축’이 아니라 경복궁-광화문(표석위치)―보신각-광교-숭례문 축이었다. 조선풍수관점에서 상지(相地, 땅의 생김새를 관상한 후 길흉을 예견)하고 포치(布置)한 후 조영(造營)한 것을 서구식 물리적 축으로 해석해서 바꾸려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오늘날 서울시의 공간(도시건축)정책은 상지(相地), 포치(布置), 조영(造營)은 없고 오로지 천박한 자본논리만 존재한다. 공공의 권리인 조망권(문화 경관)은 넓은 직선도로를 강조하여 확보하는 것보다 산의 등선(맥)으로 이루어진 경관을 가려버린 고층건물들에 대한 정책적 고려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어 행정도시 이전 후 정부청사 건물과 주변 고층건물에 대한 재배치(철거포함) 및 디자인 문제로 아직까지 착공도 못하는 서울시청사 포기까지 담고 있어야한다. 서울의 도심개발의 시작은 보기 싫은 블록 내부를 가리는 빌딩들을 건설하는 것에 불과했다. 1966년 존슨 대통령 방한 이후 도심 재개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1972년 남북대화 개최를 계기로 과시형 도심 재개발 사업이 본격 시행되었다. 플라자 호텔을 통해 도심 슬럼가였던 남산 판자촌과 소공동 중국인촌을 가린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서울 도심개발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리기 위한 '가림막' 설치에 불과하였다.폭력적인 가림막 안에서 서민은 고통 속에 버림받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현대 건축을 도배하고 있는 “가림막 건축”은 도시를 이루며 켜켜이 역사와 생명의 선을 이어온 땅의 - 땅은 토건자본이나 행정가(서울시), 전문가(건축. 설계사)들에게는 자신의 이권을 채우는 수단일지는 모르지만 민중에겐 생명 그 자체이다 - 주체 들을 한낮 울타리 속의 관상용 동물로 전락시켜버렸다. 황평우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문화재청 문화경관분야 문화재전문위원(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건원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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